155:0.1 사건이 많았던 이 일요일에 게레사 근처에 배를 댄 뒤에 곧,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북쪽으로 얼마큼 갔다. 거기서 벳세다 줄리아스 남쪽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지냈다. 지난 날에 거기서 멈춘 적이 있으니까, 그들은 이 야영지가 눈에 익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는 추종자들을 주위에 부르고 바타니아와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페니키아 해안까지 가려고 예정한 여행을 위하여 계획을 함께 의논했다.
155:1.1 예수가 말했다: “시편의 저자(著者)가 이 시절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가 너희는 모두 기억을 살려야 하느니라,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고 민족들이 헛되이 음모를 꾸미는가? 자비의 사슬을 잘라 버리고 사랑의 끈을 던져 버리자 말하면서, 땅의 임금들이 주에 대항하여, 그리고 그가 기름 부은 자에 대항하여, 관원들이 함께 의논하는도다[1].’
155:1.2 “오늘날 너희는 이 말씀이 너희 눈앞에서 이루어짐을 보느니라. 그러나 시편 저자의 나머지 예언이 이루어짐을 구경하지 못할지니, 그가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이룰 그의 사명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품었음이라. 내 나라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자비롭게 선포되며 사심(私心) 없는 봉사로 세워지느니라. 내 아버지는 이교도를 비웃으면서 하늘에 앉아 있지 않으며, 크게 불쾌하여 진노하지 않느니라. 아들이 이른바 이 이교도(실제는 무지하고 가르침 받지 못한 형제)를 유산으로 받으리라는 약속은 참말이요, 나는 자비와 사랑의 팔을 펼쳐 이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리라[2]. 승리한 아들이 ‘저희를 쇠막대기로 부수고 도공의 그릇처럼 산산조각 내리라’고 암시하는 기록이 유감스러운 선언을 했어도, 이 모든 친절이 이른바 이교도에게 베풀어지리라[3]. 시편의 저자는 ‘두려움으로 주를 섬기라’고 너희에게 훈계하였느니라―나는 너희가 믿음으로 신의 아들이 되는 높은 특권을 받으라 이르노라. 그 저자는 너희가 떨면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나, 나는 너희가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라 명하노라[4]. 그는 말하되 ‘아들이 성내지 않도록 그에게 입맞추라, 그의 진노가 불이 붙으면 너희가 멸망할까 하니라[5][6][7].’ 그러나 너희는 나와 함께 살아 왔은즉 진노와 격노가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잘 아느니라. 그러나 이 훈계를 마치면서, ‘이 아들을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말했을 때, 그 시편 저자는 참 빛을 어렴풋이 보았느니라[8].”[9]
155:1.3 예수는 스물네 사람에게 계속 가르치며 말했다: “이교도가 우리에게 격분할 때 저희는 구실이 없지 않으니라[10]. 저희는 시야(視野)가 작고 좁으므로 에너지를 열심히 집중할 수 있느니라. 저희의 목표는 가깝고 다소 눈에 보이는 것이니, 그러므로 용감하고 유능하게 처리하려고 애쓰느니라. 하늘나라로 들어간다고 고백한 너희의 가르치는 행동은 너무 오락가락하며 분명치 않구나. 이교도는 저희의 목표를 얻으려고 정면으로 공격하지만, 너희는 너무 오랫동안 동경하는 죄가 있도다.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 이교도가 포위한 도시를 점령하는 것 같이, 어찌하여 영적 공격으로 하늘나라를 차지하지 않느냐? 대체로 지난날을 뉘우치고 오늘을 불평하며 헛되이 앞날을 희망하는 태도로 너희가 봉사할 때, 너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느니라.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느냐? 저희가 진리를 모르는 까닭이라. 어찌하여 너희는 쓸데없이 꿈을 꾸며 시드느냐? 너희가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까닭이라. 쓸데없이 꿈꾸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 관계되는 일을 용감히 하라.
155:1.4 “너희가 무슨 일을 하여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지나치게 전문화하지 말라. 우리의 멸망을 추구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한다고 진실로 생각하며, 저희는 전통 때문에 아주 좁아져서, 편견으로 눈이 멀고 두려움으로 마음이 굳어졌느니라. 그리스인을 생각해 보라, 저희는 종교 없이 과학을 가졌으나 유대인은 과학이 없이 종교를 가졌도다. 이처럼 좁고 혼잡스럽게 부서진 진리 조각을 받아들이도록 잘못 인도될 때, 사람들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은 진리와 조화되는 것―전향하는 것이라.
155:1.5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해 보자: 진리와 조화됨으로 너희의 인생에서 올바름의 이 아름다운 순수함을 모범으로 보여주기를 배우면 동료들이 너희를 찾으리니, 너희가 그렇게 얻은 것을 저희가 얻을까 함이라.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너희에게 마음이 끌리는 만큼, 너희는 진리 재산, 올바름을 가진 것을 가리키느니라. 너희가 전하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멀리 가야 하는가, 이것은 어떤 면에서 온전하거나 올바른 생애, 진리와 조화된 생애를 얼마나 너희가 살지 못하였는가를 재는 척도이라.”
155:1.6 사도와 전도사들이 밤 인사를 드리고 베개 위에 잠을 청하기 전에, 주는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155:2.1 5월 23일 월요일 아침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열두 전도사와 함께 코라진으로 가라 지시했고, 그동안에 열한 사도와 함께 케자리아 빌립비를 항하여 떠났다. 요단강 길을 거쳐 다마스커스-가버나움 길로 갔다. 거기서부터 북동쪽으로 케자리아 빌립비에 이르는 길과 만나는 점까지 갔고, 그리고 나서 그 도시로 들어가서, 거기서 2주 동안 머무르고 가르쳤다. 5월 24일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155:2.2 베드로와 전도사들은 코라진에서 2주 동안 머물렀고, 작지만 열심 있는 무리의 신자들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했다[11]. 그러나 새로운 전향자를 많이 얻을 수 없었다. 하늘나라를 위하여, 온 갈릴리의 어느 도시에서도 코라진만큼 사람들을 적게 설득한 곳이 없었다. 베드로의 지시에 따라서, 열두 전도사는 치유―육체적인 것―에 대하여 할 말이 적었고, 한편 하늘나라의 영적 진리를 더욱 활기 있게 전도하고 가르쳤다. 코라진에서 보낸 이 2주는, 여태까지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보람없는 기간이었으므로 열두 전도사에게 진정한 역경(逆境)의 세례였다. 하늘나라로 사람들을 들어가라고 설득하는 만족감을 이렇게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혼을, 그리고 새 생활의 영적 길에서 혼이 얼마나 진보하였는가 더욱 진지하고 정직하게 돌이켜보았다.
155:2.3 아무도 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을 때, 6월 7일 화요일에 베드로는 동료들을 한데 부르고 예수와 사도들과 합세하려고 케자리아 빌립비를 향하여 떠났다. 수요일 한낮 무렵에 도착하였고 코라진의 불신자들 가운데서 겪은 체험을 저녁 내내 되돌아보면서 보냈다. 이날 저녁 토론하는 동안에 예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더 언급했고, 일생의 사업에서 실패로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많이 가르쳤다.
155:3.1 케자리아 빌립비 가까이에서 이렇게 2주 머무르는 동안에 예수는 대중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어도 사도들은 그 도시에서 조용한 저녁 모임을 수없이 열었고 많은 신자가 주와 이야기하려고 야영지로 나왔다. 이 방문의 결과로 신자들의 무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예수는 사도들과 날마다 이야기했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일의 새 국면이 이제 시작되고 있음을 더욱 뚜렷하게 깨달았다[12].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의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영적 기쁨을 깨닫는 것”임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155:3.2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머무른 것은 열한 사도에게 진정한 시험이었고 견디기 어려운 2주였다. 그들은 거의 우울증에 빠졌고 열심인 베드로의 인격이 이따금 주는 자극이 없어서 서운했다. 이 시절에 예수를 믿고, 나가서 그를 따르는 것은 참으로 크고 벅찬 모험이었다. 이 2주 동안 전향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도 주와 날마다 가진 회의로부터 그들은 무척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다.
155:3.3 진리를 구체적 신조(信條)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 가고 있으며, 진리가 영적 안내와 진보의 길 표시로 쓰이는 대신에, 혼자만 옳다는 배타적 경계선으로 모습을 갖출 때 그런 가르침은 창조력과 생명력을 잃고 궁극에는 단지 보존제가 되고 화석(化石)이 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사도들은 깨달았다[13].
155:3.4 그들은 시간과 영원 속에서, 가능성 면에서 사람의 인격을 바라보는 것을 예수에게서 더욱 배웠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기를 먼저 배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많은 사람을 최선(最善)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동료들에게 사심 없이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만큼 너희는 그렇게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하는 주의 선언에 새로운 의미가 붙게 되었다.
155:3.5 케자리아에서 이번에 머무른 동안에 얻은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종교적 전통의 기원에 관계되었다, 즉 신성하지 않은 것이나 보통 생각이나 일상적인 사건에 신성한 느낌이 붙도록 버려두는 심각한 위험에 관계되었다. 그들은 한 회의에서 참된 종교는 사람이 가장 높고 참된 확신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얻고 나왔다.
155:3.6 종교적 열망(熱望)이 겨우 물질적이라면, 늘어나는 과학 지식은 사물의 초자연적 기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점진적으로 갈아치움으로 궁극에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빼앗으리라, 하지만 종교가 영적이라면, 자연 과학의 진보는 영원한 실체와 신다운 가치들을 믿는 신앙을 결코 흔들 수 없다고 예수는 신자들에게 훈계하였다.
155:3.7 종교가 온전히 영적 동기를 가졌을 때, 종교는 모든 인생을 갈수록 더 가치 있게 만들며, 높은 목적으로 인생을 채우고 초월적 가치로 인생에 위엄을 주며, 훌륭한 동기로 인생을 북돋우고, 그렇게 하면서 숭고하고 북돋아주는 희망으로 인간의 혼을 위로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참된 종교는 존재의 긴장을 줄이도록 고안되어 있으며, 나날이 살아가고 사심 없이 봉사하도록 믿음과 용기를 방출한다. 믿음은 영적 활력을 갖게 하고 올바른 열매를 맺도록 촉진한다.
155:3.8 어떤 문명도 종교의 최선을 잃고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예수는 거듭해서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종교적 체험 대신에 종교적 상징과 예식을 받아들이는 큰 위험을 지칠 줄 모르고 열두 사람에게 지적했다. 얼어붙은 형태의 종교를 녹여서, 깨우친 아들의 자유, 물처럼 흐르는 자유로 만드는 사명에 그는 지상 생애 전부를 한결같이 바쳤다.
155:4.1 6월 9일 목요일 아침에 벳세다에서 다윗의 사자들이 가져온 소식, 하늘나라가 어떻게 진전되는가 소식을 받은 뒤에, 진리를 가르치는 이 스물다섯 선생의 무리는 케자리아 빌립비를 떠나서 페니키아 해안을 향하여 여행을 시작했다. 늪 지대를 돌아서 룻츠의 길로 지나갔고, 막달라에서 레바논산에 이르는 오솔길과 만나는 교차점까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돈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는 점까지 갔으며, 금요일 오후에 시돈에 다다랐다.
155:4.2 룻츠 가까이서, 튀어나온 바위 선반 그림자 밑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멈추는 동안, 예수는 그와 함께 했던 여러 해를 통하여 사도들이 들은 중에 가장 놀라운 말씀을 하였다. 빵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자마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아시고, 그의 영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를 지원하시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적들의 위협을 받고 도망치나이까? 어찌하여 진리의 적들과 대결하려 하지 않나이까?” 그러나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토마스가 끼어들어 물었다: “주여,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 적들의 종교에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나는 정말로 알고 싶나이다. 저희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는 무엇이 정말 다르니이까? 우리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어찌하여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차이가 있나이까?” 토마스가 말을 마치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베드로의 물음을 내가 무시하고 싶지 않으나, 바로 이때에 유대인 권력자들과 드러내놓고 충돌하기를 내가 피하는 까닭을 오해하기 얼마나 쉬울 것인가 잘 아는 까닭에, 차라리 토마스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택한다면, 그래도 너희 모두에게 더욱 도움이 되리라. 너희가 점심을 마치고 나서 대답을 시작하겠노라.”
155:5.1 종교에 대한 잊지 못할 이 강론은 현대의 말투로 간추리고 다시 진술하면, 다음의 진리를 표현하였다:
155:5.2 세계의 종교들은 두 가지 기원―자연의 기원과 계시적 기원―이 있지만, 어느 시대, 어떤 한 민족 사이에서도, 세 가지 분명히 다른 형태의 종교적 헌신이 발견되도록 정해졌다. 종교적 욕구는 다음 세 가지로 형태로 나타난다:
155:5.3 1. |원시 종교|. 신비스러운 에너지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큰 물리적 힘을 섬기려는 반 자연스러운 본능적 욕구, 주로 물리적 자연을 믿는 종교, 두려움의 종교.
155:5.4 2. |문명의 종교|. 진보하는 종교적 개념과 문명화하는 민족들의 관습―머리를 쓰는 종교―확립된 종교적 전통의 권위를 가진 지적(知的) 신학.
155:5.5 3. |참된 종교―계시 종교|. 초자연적 가치가 있는 계시,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부분적 통찰력,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무한한 성품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한 번 보는 것―인간의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영의 종교.
155:5.6 자연인의 육체적 느낌과 미신을 믿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종교를 주는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원시 형태의 예배가 인류에서 총명한 축에 속하는 종족들의 종교 형태에서 너무 많이 지속한다는 사실을 한탄하였다. 지적 종교와 영적 종교의 큰 차이점은, 전자(前者)가 교회의 권위로 지탱하는 데 반하여, 후자는 온전히 인간의 체험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155:5.7 그리고 나서, 가르치는 시간에 주는 계속하여 이러한 진리를 뚜렷하게 설명했다:
155:5.8 민족들이 상당히 지적이고 충분히 문명화될 때까지 유치하고 미신을 믿는 많은 예식이 지속할 터이고, 이것은 원시적이고 뒤떨어진 민족들의 진화적 종교 관습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인류가 영적 체험의 현실을 더 높이 더 널리 인정하는 수준으로 진보할 때까지, 큰 집단의 남녀가 지적 동의(同意)만 요구하는 권위적 종교를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성향을 계속 보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영의 종교에는 진취적 인간 체험을 겪는 벅찬 현실과 씨름하는 신앙의 모험에 지성과 혼의 적극적 참여가 따른다.
155:5.9 권위를 내세우는 전통적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 성품의 간절한 소망을 채우려는 사람의 충동에 대하여 쉬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정착되고 굳어지고 확립된, 권위의 종교는 어지럽고 산란해진 사람의 혼이 두려움에 떨고 불안에 시달릴 때, 도피해도 되는 즉석의 안식처를 마련해 준다. 그런 종교는 만족과 확신을 얻는 값으로 신자들에게 오직 시키는 대로, 순전히 지적(知的) 동의를 요구한다.
155:5.10 이런 방법으로 종교적 위로를 얻는 것을 더 좋아할 사람, 겁먹고 두려워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 것이다. 권위를 내세우는 종교와 그렇게 운명을 같이 함으로, 그들은 인격의 주권을 더럽히고 자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며, 가능한 모든 인간 체험 가운데 가장 가슴 떨리고 영감을 주는 다음과 같은 체험에 참여하는 권리를 모조리 넘겨준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즉 진리의 개인적 추구, 지적 발견의 위험에 부딪치는 흥분,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실체를 탐구하려는 결심,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모험―사람이 혼자 힘으로, 또 스스로 하나님을 찾다가 찾아내는 모험―에서 정직하게 얻는 승리, 영적 믿음이 지적 의심을 이기는 것을 실제로 깨닫는 만족,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최고의 만족을 얻는 체험이다.
155:5.11 영의 종교는 노력ㆍ투쟁ㆍ싸움ㆍ신앙ㆍ결심ㆍ사랑ㆍ충성ㆍ진보를 의미한다. 지성의 종교―권위를 내세우는 신학(神學)―은 형식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있는 힘을 다하라고 거의 또는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건성으로 믿는 혼에게 전통은 안전한 피난처요 쉬운 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진취적 인간 지성이 발견하고 진화하는 인간 혼이 체험할 수도 있는, 먼 바닷가의 영적 현실을 찾아서, 탐구되지 않은 진리의 거센 파도를 무릅쓰고 모험하는 믿음의 항해에서 겪는, 그러한 영적 투쟁과 정신적 불안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155:5.12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전통적 선생과 지난 시대 선지자들의 여러 신조를 확립된 체계의 지적 관념으로, 즉 권위의 종교로 만들었느니라. 모든 그러한 종교는 대체로 지성에 호소하느니라. 우리가 얼마 안 있어 비로소 새 종교를 용감하게 선언할 것이므로,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그러한 종교와 목숨을 건 싸움에 들어가려 하느니라―이 새 종교는 그 말이 오늘날 뜻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의 정신에 거하는 내 아버지의 신성한 영에게 주로 호소하는 종교이라. 그 종교는 이를 받아들여 생기는 열매로부터 권위를 얻어내리니, 그 열매는 이렇게 더 높은 영적 교통이 있다는 진실을 정말로,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몸소 겪는 체험에서 아주 확실히 나타날 것이라.”
155:5.13 스물네 사람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는 말했다: “그리고 자, 하늘나라의 영원한 진리와 최고의 장려함을 생생하게 몸소 체험하는 아름다운 현실을 스스로 발견하는 만족을 느끼면서, 너희 중에 누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더 좋은 길을 선포하는 사명에 따르는 어려움과 박해를 견디겠느냐? 아니면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들이 방어하는 길, 확립되고 굳어진 종교에 순응하는 이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더 좋으냐? 너희는 무섭고 연약하고 안일을 찾느냐? 너희는 앞날을 진리의 하나님 손에 맡기기가 두려우냐, 너희는 누구의 아들이냐? 너희는 아들이어든 아버지를 믿지 못하느냐? 너희는 전통적 권위의 종교가 주는 확신과 지적 안정으로 이끄는 쉬운 길로 돌아가겠느냐, 아니면 몸을 가다듬고서, 영의 종교의 새로운 진리,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미래, 확실치 않고 어지러운 미래를 향하여 나와 함께 가겠느냐?”
155:5.14 이것은 예수가 일찍이 하신 몇 번 안 되는 이러한 감정적 호소 중 하나였고, 말씀을 듣던 스물네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이에 뭉쳐서 충성한다는 반응을 표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손을 올려서 그들을 멈추고 말했다: “이제 너희는 따로 가라, 각 사람이 혼자서 하나님과 함께, 거기서 내 질문에 대하여 냉철한 대답을 찾아내고 그러한 참되고 진지한 혼의 태도를 찾고 나서, 그 대답을 내 아버지요 너희 아버지께 거리낌 없이 용감히 대답하라. 사랑을 주는 그의 무한한 생명은 우리가 선포하는 종교의 바로 그 정신이라.”
155:5.15 전도사와 사도들은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갔다. 그들의 정신은 격려를 받고 지성은 영감을 받았으며, 감정은 예수의 말씀에 힘차게 움직였다. 그러나 안드레가 그들을 함께 불러 모았을 때, 주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여행을 다시 떠나자. 우리는 페니키아로 가서 한동안 머무르고 너희는 모두, 너희의 육체와 지성의 감동을 더 높은 지적 충성으로, 그리고 더욱 만족스러운 영의 체험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느니라.”
155:5.16 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스물네 사람은 말이 없었지만, 금방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 세 시가 되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멈추었고 베드로는 예수에게 가서 말했다: “주여,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주셨나이다. 우리는 더 듣고자 하나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더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155:6.1 그래서, 산허리의 그늘에서 멈춘 동안, 예수는 영의 종교에 관하여 계속 가르쳤는데,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였다:
155:6.2 너희는 지성의 종교에 만족한 채로 있기로 작정한 너희 동료들 사이에서 뛰쳐나왔고, 저희는 안전(安全)을 몹시 바라고 전통에 순응하기를 더 좋아하느니라. 너희는 권위적 확신의 느낌을 버리고, 모험적이고 진취적 믿음을 주는 영의 보장을 선택하였도다. 너희는 제도적 종교의 모진 속박에 감히 저항하고,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는, 기록된 전통의 권위를 물리쳤느니라. 우리의 아버지는 정말로 모세ㆍ엘리야ㆍ아모스ㆍ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였으나, 이 옛 선지자들은 말씀을 그쳤어도 그는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그치지 않고 주셨도다[14]. 내 아버지는 진리의 말씀을 한 시대에 허용하고 다른 시대에 허락하지 않으면서 민족이나 세대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15]. 온전히 인간다운 것을 신답다고 부르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말며,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전통적 신탁(神託)을 통하지 않고서 오는 진리의 말씀을 놓치지 말고 헤아리라.
155:6.3 나는 너희에게 다시 태어나라, 영에게서 태어나라 요구하였노라[16]. 나는 권위의 어두움과 무기력한 전통으로부터 너희를 끌어내어, 인간의 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발견―혼자 힘으로, 자신 속에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내며, 자기 개인 체험에서 하나의 사실로서 이 모두를 행하는 천상의 체험―가능성을 실현하는 초월적 빛 속으로 인도하였노라. 그렇게 너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통의 권위에서 하나님을 아는 체험으로 건너가기 위한 것이라[17][18]. 이처럼 너희는 어둠에서 빛으로, 물려받은 민족의 신앙으로부터 실제 체험을 거친 개인적 신앙으로 옮겨갈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 너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성의 신학으로부터, 영원한 재산으로서 너희 혼 안에서 세워질, 참된 영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진보하리라.
155:6.4 너희의 종교는 전통적 권위를 믿는 단순한 지적 관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실체 그리고 아버지의 신다운 영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붙잡을 수 있는, 생생한 믿음을 얻는 실제 체험으로 바뀌리라. 지성의 종교는 너희를 희망 없이 지난날에 묶어 놓지만, 영의 종교는 점진적 계시에 있고, 영적 이상과 영원한 실체 면에서 더욱 높고 거룩한 것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도록 늘 너희에게 손짓하느니라.
155:6.5 권위의 종교는 즉시 자리잡힌 안전한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그러한 일시적 만족을 위하여 너희는 영적 자유와 종교적 해방을 잃음으로 대가(代價)를 치르느니라.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대가로, 내 아버지는 너희에게 영적으로 불쾌하고 거룩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것을 믿는 신앙을 강제로 지지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느니라. 낡아빠진 체계의 종교적 형태와 예식에 굴복함으로 바로 너의 자비ㆍ정의ㆍ진리의 감각을 짓밟으라고 요구하지 않느니라. 영의 종교는 영의 인도하심이 어디로 데려가든지, 언제까지나 진리를 따르도록 너희를 자유롭게 두느니라.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아마도 이 영은 다른 세대가 듣기 싫어한 무엇인가를 이 세대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느니라.
155:6.6 거짓 종교 선생들에게 치욕이 있을진저! 저희는 갈급한 사람들을 어둠침침하고 먼 과거로 도로 끌어다가 거기에 버려두려 하는도다. 그래서 이 불행한 사람들은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깜짝 놀랄 운명을 가졌고, 한편 진리가 새롭게 계시될 때마다 저희는 당황하느니라[19]. “생각이 하나님께 머물러 있는 자는 완전한 평화 속에 있으리라”고 말한 선지자는[1] 단지 권위의 신학을 지적으로 믿기만 한 자가 아니었도다. 진리를 아는 이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냈고 하나님에 대하여 입으로 말만 하지 않았느니라.
155:6.7 너희에게 훈계하노니, 항상 옛 선지자들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관습을 버리라, 그 대신에 최고자의 살아 있는 선지자가 되고 다가오는 하늘나라에서 영적 영웅이 될 포부를 가지라. 지난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도자들에게 명예를 돌리는 것이 정말로 가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서 어찌하여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체험, 하나님을 너희 혼자서 찾아내고 자신의 혼 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체험을 너희가 버려야 하느냐?
155:6.8 인류의 어떤 종족이든지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자체의 지적 견해를 가지며, 따라서 지성의 종교는 종족의 이 여러 가지 관점에 늘 충실해야 하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결코 통일에 이를 수 없고, 인류의 통일과 필사자의 형제 정신은 오로지, 영의 종교를 위에서 부여함으로,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느니라. 종족의 지성은 서로 다를지 모르나 온 인류에게 똑같이 신답고 영원한 영이 깃드느니라. 권위를 내세우는 갈라지는 지성의 종교들 속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영의 종교―개인이 영적 체험을 얻는 종교―가 침투하고 압도할 때에야, 그리고 그렇게 됨에 따라서, 인간이 형제가 되는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느니라.
155:6.9 권위의 종교는 오직 사람들을 갈라놓고 양심적으로 서로 맞서는 대열에 서게 하며, 영의 종교는 점진적으로 사람들을 함께 모으고, 서로 이해하는 태도로 공감하게 하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사람들에게 신조(信條)가 한결같기를 요구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세계 상태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니라. 영의 종교는 오직 체험이 하나되기―운명이 한결같기―를 요구하고, 신조의 다양성을 충분히 허락하느니라. 영의 종교는 관점과 전망이 한결같은 것이 아니라 오직 통찰력이 한결같기를 요구하느니라. 영의 종교는 지적 관점이 한결같기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영의 느낌이 하나되기를 요구하느니라. 권위의 종교는 굳어져서 생명이 없는 신조들로 변하며, 한편 영의 종교는 성장해서, 사랑으로 봉사하고 자비를 베푸는 행위,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늘어나는 기쁨과 자유로 이끄느니라.
155:6.10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전통적으로 무력한 이러한 불운을 만났다고 해서 너희 중 누구도 저희를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경계하라. 우리의 조상은 하나님을 집요하게 열심히 찾느라고 헌신했고, 아담 시절 이후로 어떤 다른 민족도 저희가 찾아낸 만큼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를 많이 알았느니라. 내 아버지는 모세의 시절 이후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투쟁, 길고도 지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의 투쟁을 놓치지 않고 주목해 왔느니라. 지친 여러 세대 동안에, 유대인은 그침없이 수고하고 땀 흘리고 신음하고 진통을 겪었고, 오해받고 경시(輕視)당한 민족의 고통을 견디고 서러움을 겪었으며, 이 모두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것이었느니라. 이스라엘이 온갖 실패와 실수를 겪었어도, 점진적으로 모세로부터 아모스와 호세아 시절까지, 우리의 조상은 온 세계에 영원한 하나님의 그림, 갈수록 더 맑고 참된 그림을 늘 드러냈느니라. 그리하여 아버지의 더 큰 계시를 받기 위하여 길이 준비되었으며, 너희는 그 계시를 함께 가지라고 부름받았느니라.
155:6.11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고 떨리는 모험이 오직 하나 있음을 잊지 말지니, 곧 신의 뜻을 행하려고 정직하게 애쓰는 최상의 체험이라. 땅에서 어떤 직업을 가져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어떤 직업은 거룩하지 않고 어떤 것은 세속적이라. 영에게 인도받는 자, 다시 말해서, 진리에 복종하고 사랑으로 고귀하게 되며, 자비에 지배되고 공정으로―정의로―몸을 삼가는 자의 생활에는 모든 것이 거룩하니라. 내 아버지와 내가 세상으로 보낼 영은 진리의 영일 뿐 아니라 또한 이상과 같이 아름다운 영이라.
155:6.12 너희는 신학적 권위가 있는, 오래 된 기록의 페이지에서만 하나님의 말씀 찾기를 그쳐야 하느니라. 하나님의 영에게서 태어난 자는, 어디에 기원이 있는 듯 보이는가에 상관 없이,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릴지니라. 말씀을 주신 경로가 인간을 통한 듯 보인다고 해서 그 신성한 진리를 깎아내려서는 안 되느니라. 너희 형제 중에 다수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理論)을 받아들이는 머리를 가졌어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진지한 어린아이의 영적 태도를 얻어야 하늘나라를 최선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너희에게 그리 자주 가르친 까닭이라[20].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정신적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믿고 완전히 의지하는 어린아이의 그러한 |영적 단순성|이라. 하나님의 사실에 관하여 너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심을 느끼는| 능력이 더욱 자라야 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으니라.
155:6.13 일단 너희의 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너희는 당장에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의 혼에서 비로소 발견하고 궁극에는 막대한 우주의 모든 인간과 창조에서 발견하리라. 그러나 그런 영원한 실체를 깊이 생각하는 데 거의 또는 도무지 시간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혼 속에서 아버지가 최상으로 충실하고 신다운 이상적 하나님으로서 나타날 무슨 가망이 있느냐? 지성은 영적 성품이 거할 자리는 아니어도, 지성은 정말로 거기에 이르는 출입구이라.
155:6.14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아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쓰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너희는 의식하여 그런 정당한 증명을 내놓을 수 없느니라. 하지만 너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힘차게 보여주는 두 가지 증거가 있으니 다음과 같으니라:
155:6.15 1. 날마다 너의 일상 생활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영(靈)의 열매.
155:6.16 2. 너의 전 생애의 계획이 영원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희망을 추구하면서, 죽은 뒤에 살아남는 모험에 너 자신 모두, 그리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걸었다는 분명한 증명을 마련해준다는 사실. 그 하나님의 계심을, 때에 맞게 너는 미리 맛보았느니라.
155:6.17 자, 잘못 알아듣지 말지니, 내 아버지는 꺼질 듯 가물거리는 아주 가냘픈 믿음에도 늘 반응하시리라. 그는 원시인의 육체적인 미신(迷信) 감정도 주목하시니라. 믿음이 아주 약하여 권위의 종교에 수동적으로 찬성하는 태도, 지적 순응에 지나지 않는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 정직해도 두려워하는 자의 경우에, 아버지를 향하여 손을 뻗으려는 어떤 그러한 미약한 시도까지도 허락하고 길러주려고 아버지는 늘 깨어 계시니라. 그러나 어둠에서 빛으로 부름받은 너희에게는 마음을 다하여 믿는 것이 기대되느니라. 너희의 믿음이 육체ㆍ지성ㆍ영, 이 셋의 통합된 태도를 지배할지니라.
155:6.18 너희는 내 사도요, 너희에게 종교는 영적 진보와 이상적 모험이 있는 험난한 현실에 부딪치는 것이 두려워, 너희가 달아나서 지내도 좋은 그러한 신학적 피난처가 되지 말지니라. 그러나 차라리 너희의 종교는 진정한 체험하는 사실이 될지니, 그런 사실이 하나님이 너희를 발견하고, 이상으로 만들고, 고귀하게 하고, 영답게 변화시켰음을 증거하며, 이렇게 너희를 발견하고 아들 삼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원한 모험을 하려고 너희가 지원하였음을 증거하느니라.
155:6.19 말씀을 마치고 나서, 예수는 안드레에게 손짓하고 페니키아를 향하여 서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갈 길을 재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