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우주의 아버지로서 그렇게 크고 위엄 있는 하나님이, 어떻게 무한히 완전한 영원의 거처로부터 개별 인간과 사귀려고 내려올 수 있는지 사람의 유한한 머리가 이해할 수 없다면, 정신이 멀쩡하고 도덕 의식이 있는 모든 유란시아 필사자의 지능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제 조각이 거한다는 참된 사실에 근거를 두고, 그러한 유한한 지능은 신과 친교함을 확신해야 한다. 사람에게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파라다이스 아버지, 영원한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교통하기 위해서 사람은 이 영적 실체의 계심을 혼이 숙고하는, 마음 속의 체험보다 더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5:0.2 하나님은 동급인 여섯 절대자의 실존적 실체를 통해서 그의 영원한 성품의 무한성을 분배했으나, 하나님은 선(先)인격 분신의 기능을 통해서, 창조의 어느 부분이나 단계나 종류와도 언제라도 직접 친히 연락할 수 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또한 온 우주의 신다운 창조자 및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 성격을 수여하는 특권도 따로 남겨 두었고, 나아가서 하나님은 성격 회로를 통해서, 이 모든 성격 존재와 직접, 부모로서 연락을 유지하는 특권을 남겨 놓았다.
5:1.1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은, 아버지의 초연함이 아니라, 지음받은 존재들의 유한성과 물질적 한계에, 선천적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성격자와 하등 집단의 창조된 지능들의 큰 영적 차이는 상상할 수 없다. 바로 아버지가 계신 앞으로, 하등의 지적 존재들을 한 순간에 데려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은 자기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지금 있는 곳과 똑같이, 우주의 아버지가 자리에 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거기에 있을 것이다.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주의 아버지 앞으로 안전히 안내받기를 변함없이, 그리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요구할 수 있기 전에, 필사자의 앞에는 머나먼 길이 놓여 있다. 일곱 으뜸 영 가운데 어느 한 분이라도 보게 하는 영적 시력(視力)을 주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기 전에, 사람은 영적으로 여러 번 변신을 겪어야 한다.
5:1.2 우리 아버지는 숨어 있지 않으며, 멋대로 은둔하지 않는다. 그의 우주 영토에 있는 자녀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결코 그치지 않는 노력으로 그는 신의 지혜 자원을 동원했다. 무한한 위대함과 말할 수 없는 관용이 그의 장엄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사랑은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사랑하거나, 그에게 가까이 올 수 있는 모든 창조된 존재와 사귀는 것을 하나님이 동경하게 만든다. 따라서 네가 필사자로 승천하는 여행 목적지에 이르고, 만물의 중심에서 아버지 앞에 서는 그 시간과 장소와 경우를 정하는 것은, 너의 타고난 한계요, 이는 너의 유한한 인격과 물질적 존재로부터 뗄 수 없다.
5:1.3 파라다이스에 아버지가 계신 앞으로 가까이 가는 것은, 네가 영적으로 진보하는 가장 높은 유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네 안의 혼, 그리고 영답게 변하는 너의 자아와 아주 밀접히 관련된 영, 아버지가 수여한 영과 즉시 교통하는 상존(常存) 가능성을 깨닫고 너는 기뻐해야 한다.
5:1.4 시공 영역의 필사자들은 타고난 능력과 지적(知的) 자질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사회적 진전과 도덕적 진보에 특별히 유리한 환경을 누릴 수도 있거나, 또는 교양이 되는 거의 모든 인간적 혜택, 그리고 문명의 예술 면에서 예상된 진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가는 생애에서, 영적 진보 가능성은 만민에게 평등하다. 진화 세계에서 다채로운 물질 환경에서 보는 모든 그러한 사회적 도덕의 차이와 아주 별도로, 높아지는 수준의 영적 통찰력과 우주 의미가 달성된다.
5:1.5 유란시아 필사자들의 지적ㆍ사회적ㆍ경제적 기회, 아니 도덕적 기회와 자질에 어떤 차이가 있더라도, 그들의 영적 재산은 한결같고 독특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은 모두 똑같이, 아버지의 선물인 신성한 계심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신의 기원을 가진, 안에 깃드는 이 영과 가까이 몸소 교통하는 특권을 똑같이 누리며, 한편 그들 모두가 이 신비의 훈계자의 한결같은 영적 인도를 똑같이 받아들여도 좋다.
5:1.6 필사 인간이 진심으로 영적 자극을 얻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아낌없이 헌신한다면, 그 사람에게 깃드는 신다운 조절자가 영적 자질을 아주 확실히, 아주 효과적으로 부여했으니까, 갈수록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진취적 체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숭고한 의식,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낼 목적을 가지고 살아남는다는 하늘같은 확신이 그 개인의 체험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5:1.7 사람에게는 살아남는 생각 조절자가 영적으로 깃든다. 그러한 인간 지성이 진지하게 영적 자극을 받으면, 그러한 인간의 혼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닮기를 바라고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바라면, 인간적 결핍이 가져오는 어떤 부정적 영향도, 간섭할 수 있는 긍정적 세력도, 그렇게 신성하게 자극받은 혼이 파라다이스 입구까지 안전히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5:1.8 아버지는 모든 인간이 그와 몸소 교통하기를 바란다. 살아남는 지위와 영적 성품으로 보아서 그런 달성이 가능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장소를 아버지는 파라다이스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그리고 영원히, 너희의 철학을 가지고 안심하여라: 하나님은 너희 하나하나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도달이 가능한 분이다. 아버지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 길은 열려 있다. 어떤 우주에, 자격 있는 어떤 지적 존재라도, 파라다이스의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까지 올라가는 것을 쉽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신의 사랑의 힘, 신의 행정부의 수단과 방법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5:1.9 하나님께 도달하는 데 방대한 시간이 든다는 사실은, 무한자의 계심과 성격을 조금도 비현실로 만들지 않는다. 네가 올라가는 것은 일곱 초우주 회로의 일부요, 너는 그 둘레를 수없이 돌게 될 터이지만, 영적으로 그리고 지위로 보아서, 너는 언제나 안쪽을 향하여 도는 것을 기대해도 좋다. 이 구체에서 저 구체로, 바깥 회로에서 안쪽의 중심으로 늘 가까이 옮겨진다는 것을 너는 믿어도 좋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네가 신성한 중심 앞에 서서, 비유로 말하자면,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그것은 실제로, 글자 그대로 영 수준에 도달하는 문제이다. 신비의 훈계자가 안에 깃들어 온 존재, 그리고 그 생각 조절자와 나중에 영원히 합친 자는 누구나 이 영적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
5:1.10 아버지는 영적으로 숨어 있지 않다. 그러나 아주 많은 인간이 스스로 일부러 결정한 안개 속에 숨어버렸다. 자신의 비뚤어진 길을 고르고, 참을성 없는 생각과 비영적 성질의 자기 주장에 빠짐으로, 그들은 아버지 영과 그 아들 영과 교통하지 않고 당분간 떨어져 나갔다.
5:1.11 필사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고, 선택의 힘이 남아 있는 한, 신의 뜻을 거듭 저버릴 수도 있다.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택할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사람의 마지막 멸망은 정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이, 언제라도 자식들의 필요와 탄원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닫힌 적은 없다. 신의 뜻을 실행하려는―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바람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잃어버릴 때, 이 자녀들은 아버지의 당기는 힘을 물리치고 영원히 마음 문을 닫는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승천자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이 선택한 것을 조절자 융합이 우주에 선포할 때,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보장된다.
5:1.12 크신 하나님은 필사 인간과 바로 접촉하며, 무한ㆍ영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아의 일부를 그 사람 안에 살고 머무르라고 주신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영원한 모험을 떠났다. 네 안에, 너의 둘레에 있는 영적 세력이 인도하는 데 네가 굴복하면, 공간의 진화 세계로부터 하늘 가는 인간이 다다를 우주 목표로서, 너는 사랑의 하나님이 예정한 운명을 달성하는 데 실패할 수 없다.
5:2.1 무한자의 물리적 계심은 물질 우주의 현실이다. 지성 속에 신의 계심은 개인의 지적 체험의 깊이와 진화하는 인격자의 수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틀림없다. 신의 영적 계심은 마땅히 우주에서 차별되어야 하며, 영적 감수 능력에 따라서, 또한 신의 뜻을 행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얼마나 거룩하게 바쳤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5:2.2 영에게서 태어난 어떤 아들 속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 바른 편”에 언제나 다가갈 수 있고, 인간 성격자는 누구나 “아버지의 품”에 다가갈 수 있다[1][2].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법으로나 접촉하는 성격 회로를 언급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중앙 거처나 파라다이스의 거룩한 일곱 구체 중 어느 한 곳과 같은 다른 지정된 장소에서, 우주의 아버지와 몸소 자의식하는 접촉과 교통을 수반한다.
5:2.3 그러나 신의 계심은, 자연에 어디서나, 아니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일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깃드는 신비의 훈계자,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절자와 네가 교통을 시도할 때, 아주 충분히, 아주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우주의 아버지의 영이 바로 너의 지성 속에 사는데, 창공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3]
5:2.4 네 안에 깃드는 바로 이 하나님의 분신 때문에, 네가 조절자의 영적 인도와 조화되어 진보하는 동안, 너를 둘러싸고 네가 부닥치지만 너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활동하지 않는 다른 영적 영향의 존재,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 힘을 너는 더욱 잘 식별하기를 바랄 수 있다. 깃드는 조절자와 가지는 가깝고 밀접한 연락을 네가 지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사실은, 조금도 그러한 숭고한 체험이 그릇되다는 증거는 아니다. 신다운 조절자와 사귀는 것은 전적으로 개별 신자의 일생 체험에서 맺는 영의 열매가 좋은가, 그리고 얼마나 열리는가, 이것이 증명한다. “너희는 열매로 사람을 알지니라[4].”
5:2.5 필사 인간의 지성, 빈약하게 영적으로 변화된 물질 지성은, 파라다이스 조절자와 같이 그러한 신다운 개체의 영적 활동을 뚜렷이 의식하기가 지극히 힘들다. 지성과 조절자가 공동으로 빚어낸 혼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짐에 따라서, 새 단계의 혼 의식이 또한 진화되며, 이것은 신비의 훈계자의 영적 인도하심과 기타 초물질 활동이 있음을 체험하고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5:2.6 조절자와 교통하는 체험 전부가 도덕적 지위, 정신적 자극, 영적 체험이 따르는 체험이다. 그러한 성과를 자아가 이룩하는 것은, 순전히 그렇지는 않아도, 주로 혼 의식의 영역에 국한된다. 하지만 그 증거는 마음 속의 영과 연락하는 그런 모든 사람의 생활에서, 영의 열매를 맺음으로 풍부하게 장차 나타난다.
5:3.1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파라다이스 신들은 비록 하나와 같지만, 유란시아에서 사는 부류의 존재와 가지는 영적 관계에서 신들은 또한 서로 다르고, 따로 있는 세 분의 성격자이다. 개인적으로 호소하고 교통하는 문제, 그리고 기타 밀접한 관계에서, 신위(神位) 사이에 차이가 있다. 가장 높은 의미에서, 우리는 우주의 아버지, 오직 그분을 예배한다. 그의 창조 아들들 안에서 나타나는 아버지를 우리가 예배할 수 있고, 또 예배하는 것이 참말이지만,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예배와 찬미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다.
5:3.2 모든 종류의 간청은 영원한 아들, 그리고 아들의 영적 조직의 분야에 속한다. 기도, 모든 정식 교통은, 우주의 아버지를 찬미하고 예배하는 것을 제외하고, 지역 우주의 관심거리이다. 이러한 기도(祈禱)는 보통 한 창조 아들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예배는 아버지의 성격 회로의 작용으로 인하여 창조자의 몸으로 연결되고 전해진다. 우리는 더욱 나아가서, 조절자가 깃드는 인간이 표현하는 경의(敬意)를 기록하는 것은 아버지 영의 계심으로 용이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념을 보여줄 증거는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고, 모든 계급의 아버지 분신들은 그 백성의 진정한 찬미를 우주의 아버지가 계신 앞에 알맞게 기록할 권한을 받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조절자는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선(先)인격 경로도 또한 이용하며, 이들은 영원한 아들의 영 인력 회로도 마찬가지로 쓸 수 있다.
5:3.3 예배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기도는 자신이나 인간의 이익 요소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예배와 기도의 큰 차이이다. 참된 예배에는, 자신을 위한 요청이나 기타 개인적 이익 요소가 아예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헤아리는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할 뿐이다. 예배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예배하는 사람을 위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존경심을 보여 우리가 무언가 얻을까 싶어서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비할 데 없는 성격을 깨달음에 따라서 자연스럽고 저절로 우러나오는 반응으로서, 또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성품과 찬미받을 속성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그와 교통하고 그를 예배한다.
5:3.4 자기 이익의 요소가 예배에 끼어드는 그 시각, 그 순간에, 교통은 예배에서 기도로 바뀌고, 더욱 적절하게 영원한 아들이나 창조 아들의 몸을 향해서 드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의 종교적 체험에서, 진정한 예배의 일부로서 아버지 하나님한테 기도를 드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5:3.5 일상 생활의 실무를 다룰 때 너는 셋째 근원 중심에 기원을 가지는 영 성격자들 손에 맡겨지며, 너는 합동 행위자의 대리자들과 협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와 교통하며, 네가 사는 세계에서, 너의 우주 전역에서 일하는 무한한 영의 지적 존재들과 연락하여, 네가 땅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생기는 세부를 해결해 나간다.
5:3.6 지역 우주의 운명을 주관하는 창조 아들이나 군주 아들은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 이 두 분을 대신한다. 이 우주 아들들은 각자의 창조 전역에 걸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찬미를 받고, 탄원하는 백성의 간청에 귀를 기울인다. 한 지역 우주의 자녀들에게, 모든 실질적 의도와 목적에서 볼 때, 미가엘 아들 한 분이 하나님이다. 그는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이 지역 우주에서 성격화된 것이다. 무한한 영은 우주 영을 통해서 이 영역의 자녀들과 개인적 접촉을 유지하며, 이들은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의 행정 및 창조의 동료가 된다.
5:3.7 진지한 예배는, 진화되는 혼의 지배 밑에서, 그리고 관계된 생각 조절자의 신성한 방향 지도를 받고, 인격의 모든 힘을 동원함을 뜻한다. 물질적 한계가 있는 지성은, 참 예배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결코 깊이 의식할 수 없다. 예배하는 체험의 현실을 사람이 깨닫는 것은, 진화하는 그 불사의 혼의 발육 상태에 주로 좌우된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적 자의식과 전혀 상관 없이 일어난다.
5:3.8 신을 예배하는 체험은 약정한 조절자가 사람의 혼이 말할 수 없는 소망과 입 밖에 낼 수 없는 희망을 신성한 아버지께 전하려는 숭고한 시도이며, 하나님을 찾는 필사 지성과 하나님을 계시하는 불사의 조절자가 공동으로 이 혼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관계된 영의 인도를 받고서, 영적으로 높아지는 자아가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 믿음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려고 애쓰는 데 그 물질적 지성이 찬성하는 행동이다. 필사자의 지성은 예배 드리는 데 찬성하고, 불사의 혼은 예배를 갈망하고 개시한다. 신다운 조절자의 계심은 필사자의 지성과 생성되는 불사의 혼을 위하여 그러한 예배를 지휘한다. 최종으로 분석해 보면, 참된 예배는 지성ㆍ상물질ㆍ영ㆍ인격, 이 네 가지 우주 수준에서 실현되는 체험이 된다―지성과 혼과 영이 의식(意識)하고, 인격 안에서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5:4.1 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진화 종교의 도덕은 두려움의 추진력으로 사람을 앞으로 |민다|.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몹시 바라니까, 계시 종교는 사랑의 하나님을 찾으라고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종교는 단지 “절대로 의존”하고 “살아남기를 보장”받는 소극적 느낌이 아니다. 종교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기초를 두고 신에 도달하는, 생생하고 힘찬 체험이다.
5:4.2 참 종교가 당장에 주는 큰 도움은 인간의 체험 속에서 지속되는 통일성, 곧 오래 가는 평화와 깊은 확신이 서는 것이다[5]. 원시인에게는, 다신교조차도 신에 대한 진화적 개념이 비교적 통일된 것이며, 다신교에서 일신교의 싹이 튼다. 머지 않아 하나님이 가치 있는 실체요, 중요한 본질이요, 진실한 생명이라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5:4.3 하나님은 운명 결정자일 뿐 아니라, 사람의 영원한 |목표이다|. 인간의 모든 비종교 활동은, 우주를 구부려서 자신의 그릇된 용도에 쓰기를 추구한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자아를 우주와 동일시하기를 구하며, 그리고 나서 이렇게 통일된 자아의 활동을 우주 가족의 동료 존재, 인간 및 초인간 존재에게, 봉사하는 데 바치려고 애쓴다.
5:4.4 철학과 예술의 분야는, 인간 자아의 비종교 활동과 종교 활동 사이에 끼어 있다. 예술과 철학을 통해서, 물질에 머리를 쓰는 사람은 영원한 의미를 담은 영적 실체와 우주의 가치를 숙고하라고 유혹을 받는다.
5:4.5 어떤 종교도 신을 예배하기를 가르치고 인간이 구원 받는다는 어떤 교리를 가르친다. 불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끝없는 평안을 약속한다. 유대교는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사람이 올바르면 번영한다는 것을 약속한다. 그리스인의 종교는 아름다움을 실현함으로 부조화와 더러움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약속했다. 기독교는 죄로부터 구원, 거룩하게 됨을 약속하고, 모하메드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준엄한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를 |벗어나는 것이요|, 시간 세계와 영원 속에서 인간이 고립되는 잘못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5:4.6 히브리인의 종교는 선에 기초를 두고, 그리스인은 아름다움에 두었으며, 두 종교가 진리를 추구했다. 예수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주었고, 사랑은 진리ㆍ아름다움ㆍ선을 모두 포함한다.
5:4.7 조로아스터 교인에게는 도덕률을 가르치는 종교가 있었다. 힌두 교인에게는 형이상학의 종교가 있고 공자(孔子)의 추종자에게는 윤리의 종교가 있었다. 예수는 |봉사|하는 종교를 실천했다. 이 모든 종교가 예수의 종교에 이르는 올바른 접근법이므로 가치가 있다. 종교는 인간의 체험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을 영적으로 통일하는 실체가 될 운명을 가졌다.
5:4.8 그리스인의 종교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가 있었고, 히브리인은 “너의 하나님을 알라”는 가르침에 집중했으며, 기독교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목표를 둔 복음을 전파했다[6][7][8]. 예수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라”는 복음을 선포했다. 종교의 목적에 대하여 이처럼 다른 개념들은 다양한 생활 상황에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고, 예배의 깊이, 그리고 사람이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버릇의 성질이 어떠한가 예시한다. 어떤 종교이든 그 영적 지위는 어떤 성질의 기도를 드리는가에 따라 측정해도 좋다.
5:4.9 얼마큼 인간답고 질투하는 하나님 개념은, 다신교에서 숭고한 일신교로 넘어가는 사이에 불가피한 과도기 현상이다. 신을 인격화하는 높은 개념은, 순전한 진화 종교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독교는 신의 인격화 개념을 인간의 이상으로부터 초월적 신 개념,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 인격 개념의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이것이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까지 신을 인격화한 것이다.
5:4.10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은 세 가지 다른 가르침을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5:4.11 1. |히브리||인의 개념|―도덕적 가치의 옹호자인 하나님, 올바른 하나님.
5:4.12 2. |그리스||인의 개념|―통일자인 하나님, 지혜로운 하나님.
5:4.13 3. |예수||의 개념|―살아 계신 친구, 사랑의 아버지요, 신성한 존재인 하나님.
5:4.14 따라서 기독교의 복합 교리는 일관성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뻔하다. 이러한 어려움은 초기 기독교의 교리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타르수스의 바울, 다른 이 세 사람이 몸소 겪은 종교적 체험에 대체로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5:4.15 예수의 종교적 일생을 연구하면서, 예수를 긍정적으로 보라. 그가 죄 없다는 것보다 그의 올바름과 사랑으로 봉사를 베푼 것을 생각하라. 예수는 히브리인의 하늘 아버지 개념에서 나타나는 소극적 사랑을, 죄짓는 사람조차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더 높은 사랑, |적극적|이고 인간을 사랑하는 애정의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5:5.1 도덕은 자의식하는 이성(理性)에 그 기원이 있다. 도덕은 동물을 초월하지만 온전히 진화된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그 진화가 전개되면서, 조절자가 수여되고 진리의 영이 퍼부어지기 전까지 얻은 재산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도덕 수준에 도달한다고 해서 사람이 필사자로 사는 진짜 투쟁을 벗어나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물리적 환경은 살기 위한 싸움을 수반하고, 사회적 배경은 윤리적 조정을 필요로 한다. 도덕적 상황은 이성의 가장 높은 분야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하며, 영적 체험은 (하나님을 깨달았으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그처럼 되려고 진지하게 애쓰기를 요구한다.
5:5.2 종교는 과학적 사실, 사회에 대한 책임, 철학의 가정(假定), 또는 도덕이 암시하는 의무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종교는 인간이 생활 상황에 대처하는 독립된 분야이며, 종교는 도덕이 생긴 뒤 인간이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어김없이 겉으로 드러난다. 종교는 가치를 실현하고 우주와 친교를 가지는 다음 네 수준 모두에 침투한다: 자아를 보호하는 물리적 수준, 곧 물질 수준. 친교하는 사회 수준, 곧 감정 수준. 이성이 작용하는 도덕 수준, 곧 의무 수준. 신을 예배함으로 우주와 친교함을 의식하는 영적 수준.
5:5.3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하나님이 첫째 근원, 힘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다감한 예술가는 하나님이 아름다움의 이상(理想), 심미감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본다. 이치를 따지는 철학자는 때때로, 우주를 통일하는 하나님, 아니 범신적 신까지도 가정해 보고 싶어 한다. 믿음을 가진 종교가는 살아남는 것을 보살피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5:5.4 도덕적 행위는 언제나 진화된 종교보다 먼저 생기며, 계시된 종교의 일부가 되는 일도 있지만, 결코 종교적 체험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도덕적 생각과 종교적 생활에서 생기는 결과이다. 도덕성은 생물학적으로 더 높은, 영적 수준의 종교적 체험으로 이끌지 않는다. 추상적 아름다움의 찬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격찬도 통일성의 존중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5:5.5 진화된 종교는 과학ㆍ예술ㆍ철학의 어머니요, 이것은 조절자가 수여되고 진리의 영이 오는 것까지 포함하여, 계시된 종교를 받아드리는 수준까지 사람을 높여 주었다. 인간 존재가 진화하는 그림은, 종교에서 시작하고 종교에서 끝난다. 종교의 질이 아주 다르지만, 하나는 진화로 생긴 생물학적 종교요, 다른 하나는 시대적으로 계시되는 종교이다. 그래서 종교가 사람에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한편, 종교는 또한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뜻을 거역하여 신앙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5:5.6 종교적 체험의 본질이 영적 체험이니까, 결코 물질적인 머리로 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학, 곧 종교의 심리학이 생긴다. 인간이 하나님을 깨닫는다는 기본 교리는 유한자가 이해하기에 역설(逆說)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논리로 따지고 유한자가 추리해도 신이 안에 계신다는 개념, 하나님이 모든 개인 안에 계시고 그 일부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초월 관념, 신이 온 우주를 지배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적 예배를 정당화하고 인격자가 살아남을 희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격을 가진 하나님이라는 초월 개념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바로 그 하나님의 분신(分身)이 마음 속에 계심을 깨닫는 가운데, 이 두 가지 주요한 신 개념이 통일되어야 한다. 종교의 실체를 필사자가 지적으로 이해할 능력이 도무지 없다는 사실에, 종교의 어려움과 역설이 본래부터 생긴다.
5:5.7 필사자는 땅에서 현세에 머무르는 시절에도,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큰 만족을 얻는다:
5:5.8 1. |지적으로| 사람은 인간 의식이 좀더 조화되어 만족감을 얻는다.
5:5.9 2. |철학적으로| 사람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그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즐긴다.
5:5.10 3. |영적으로| 신이 동반하는 체험을 맛보면서, 참된 예배로 영적 만족감을 얻으면서 사람은 잘 자란다.
5:5.11 영역의 진화하는 필사자가 체험하는 하나님 의식은 세 가지 다른 요소, 곧 실체를 의식하는 세 가지 차별되는 수준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첫째로, 지적 의식―하나님 |관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혼 의식―하나님의 |이상|을 깨우치는 것이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영 의식―하나님이 |영 실체|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아무리 어설피 신을 깨닫더라도, 그에 필요한 이 요소들을 조화시킴으로 필사자의 인격은 항상 어떤 의식 수준에서도 하나님의 |성격|을 깨닫는다. 최후 군단에 도달한 필사자의 경우에, 시간이 지나면 이 모두가 하나님이 |최상|인 것을 깨닫도록 이끌고, 그 뒤에 궁극에 하나님의 |궁극성|을 깨닫게 될지 모르며, 이것은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초한하게, 초월 의식하는 어떤 단계이다.
5:5.12 하나님을 의식하는 체험은 대대로 똑같지만, 인간의 지식이 향상되는 새 시대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 종교적 의식(意識)은 하나의 우주 현실이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이 아무리 정당(진실)하더라도, 그 체험은 기꺼이 지적 비판을 받고 이치에 맞는 철학적 해석을 허락해야 한다. 종교적 체험이 인간의 체험 전체와 동떨어진 것이 되기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5:5.13 인격이 영원히 살아남는 것은 전적으로 필사자의 지성이 선택하는 데 달려 있고, 그 결정은 불멸의 혼이 살아남는 가능성을 좌우한다. 지성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 때, 보살피는 조절자와 함께, 지성도 혼도 하나님을 |바랄| 때, 그때 살아남는 것이 보장된다. 지능의 한계, 교육의 부족, 교양의 결핍, 내세울 수 없는 사회적 지위, 아니 불행하게도 교육ㆍ교양 및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여 생기는 인간의 열등한 도덕 기준조차, 그렇게 불운하고 인간의 조건이 불리해도 믿는 개인 속에 신의 영이 계신 것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신비의 훈계자가 깃드는 것은 시작이며, 불멸의 혼이 자라고 살아남는 잠재 가능성을 보장한다.
5:5.14 필사 부모가 자식을 낳는 능력은 그들의 교육 지위, 문화적ㆍ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에 달려 있지 않다. 자연 조건 밑에서 부모 요인들의 결합은 자식을 낳기에 아주 넉넉하다. 그러한 영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처럼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정직하게 택한다면, 그 필사자 안에서 살아남는 자질을 가진 불사의 혼을 비로소 생산하고 기르는 데는 신다운 조절자와 연합하여, 옳고 그른 것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지성 외에 필요한 것이 없다.
5:6.1 우주의 아버지는 성격자의 하나님이다. 인격 지위를 가지고 가장 비천한 필사 물질 인간을 비롯하여 창조자의 위엄과 신의 지위를 가진 가장 높은 성격자에 이르기까지, 우주 성격자의 분야는 그 중심과 테두리가 우주의 아버지 안에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성격을 주고 보존하는 분이다. 마찬가지로,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마음을 다하여 신의 뜻 행하기를 택하는 모든 유한 성격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처럼 되기를 몹시 바라는 자가 돌아갈 운명이다.
5:6.2 성격은 우주에서 풀리지 않은 신비 중에 하나이다. 다양한 계급과 수준의 성격을 구성하는 데 들어가는 요소에 대하여 우리는 적당한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바로 성격의 정말 본질이 무엇인가 넉넉히 알지 못한다. 한데 합쳐서 인간 성격이 타고 다니는 몸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를 우리는 뚜렷이 파악하고 있지만, 그러한 유한한 인격의 본질과 의미를 우리는 넉넉히 이해하지 못한다.
5:6.3 최소한의 자의식으로부터 최대한의 하나님 의식에 이르기까지, 인격은 지성 자질을 소유하는 모든 인간에게 잠재한다. 그러나 지성 자질만으로 인격이 아니요, 영이나 물리적 에너지도 인격이 아니다. 인격이란 물질ㆍ지성ㆍ영 에너지가 결합되고 조정된 이 살아 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이 혼자 수여한, 우주 실체의 그 질과 가치이다. 인격은 점진적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물질 인격이거나 영적 인격일 수 있지만, 인격은 있든지 아니면 없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인격이 아닌 다른 것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직접 행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결코 인격을 가진 자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다.
5:6.4 인격의 수여는 우주의 아버지의 독점 기능, 곧 살아 있는 에너지 체제를 인격화하는 것이며, 그 체제에 우주의 아버지는 상대적 창조 의식과 거기에 자유 의지로 통제하는 속성을 준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진 성격자는 아무도 없고,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성격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성격에 있는 절대적 조절자 알맹이뿐 아니라, 인간 자아의 근본적 속성은 우주에게 우주의 아버지가 혼자 베푸는 성격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주신 것이다.
5:6.5 선(先)인격 지위를 가진 조절자는 수많은 종류의 필사 인간에게 깃들며, 그처럼 바로 이 존재가 죽음을 겪고 살아남아서, 궁극에 영에 도달하는 가능성을 가진 상물질 인간으로 인격화되는 것을 보장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격을 받은 인간의 지성에, 영원한 하나님 영의 분신, 성격자인 아버지의 선(先)인격 선물이 깃들 때, 그때 이 유한한 인격은 신답고 영원한 자의 잠재성을 소유하고, 궁극위와 비슷한 운명을 바라고, 아니 절대자를 깨달으려고 손을 뻗기도 하기 때문이다.
5:6.6 신다운 성격을 수용할 능력은 선(先)인격 조절자에게 본래부터 있다. 인간의 성격을 받을 능력은, 인간 존재가 부여받은 우주 지성 자질에 잠재한다. 그러나 필사 인간의 물질 생명이 타고 다니는 수단이, 사람을 해방하는 우주의 아버지의 신성에 영향을 받고, 이처럼 자의식을 가지고 (비교적)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인격자로서 체험의 바다로 나가기까지, 필사 인간의 체험적 인격은 활동하는 기능적 실체로서 관찰될 수 없다. 물질적 자아는 참으로,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인격을 가졌다|.
5:6.7 물질적 자아는 인격과 신분, 현세의 신분이 있으며, 선(先)인격 영 조절자도 신분, 영원한 신분이 있다. 이 물질적 인격과 선(先)인격 영(靈)은 그들의 창조 속성을 모아서, 살아남는 불사의 혼 신분을 빚어낼 수 있다.
5:6.8 이처럼 불사의 혼이 자라도록 마련하고, 사람의 속 자아를 선행(先行)하는 원인에 절대로 의존하는 사슬로부터 풀어놓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옆으로 비켜서신다. 이제 적어도 영원한 운명에 관한 한, 원인에 대하여 반응하는 사슬로부터 사람이 이처럼 풀려나고, 불멸의 자아, 곧 혼이 성장하도록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은 살아남는 영원한 자아의 창조를 의지(意志)하거나 그 창조를 억제하기만 하면 되며, 이 영원한 자아는 택하는 대로 자기 것이 된다. 넓은 온 우주에서 어떤 다른 존재, 물력, 창조자, 또는 대리자도, 필사자의 자유 의지가 가진 절대 주권에 조금도 간섭할 수 없으며, 이는 선택하는 필사자 인격의 영원한 운명에 관하여, 선택하는 영역 안에서 그 자유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아남는 것에 관하여 말하자면, 하나님은 물질적 필사자의 의지가 최고 권한을 가졌음을 선포했고 이 선포는 절대적이다.
5:6.9 인간의 성격을 수여하는 것은, 선행하는 원인에 대하여 종처럼 반응하지 않도록 사람을 비교적 해방시킨다. 그러한 모든 도덕적 존재의 인격은, 진화된 존재이든 아니든,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에 집중된다[9]. 영원한 하나님의 광대한 보편적 가족 사회와 친교 집단을 구성하는, 존재의 그 친족 관계로 말미암아, 그들은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 앞으로 늘 이끌린다. 모든 성격에는 신답게 저절로 생기는 친족 관계가 있다.
5:6.10 온 우주의 성격 회로는 우주의 아버지의 몸에 집중된다.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자의식하며 존재하는, 모든 수준의 성격자를 모두 친히 의식하고 그들과 친히 연락을 가진다. 그리고 성격자가 온 창조를 이렇게 의식하는 것은 생각 조절자의 임무와 별도로 존재한다.
5:6.11 모든 인력이 파라다이스 섬에서 회로로 연결되고 모든 지성이 합동 행위자에, 그리고 모든 영이 영원한 아들 안에서 연결되는 것과 같이, 모든 성격은 우주의 아버지가 몸소 계신 앞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회로는 어떤 성격자가 예배를 드려도 이를 최초의 영원한 성격자에게 어김없이 전해 준다.
5:6.12 조절자가 깃들지 않는 성격자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주의 아버지가 선택하는 자유의 속성도 수여했고, 그러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신의 사랑의 큰 회로, 곧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회로에 둘러싸인다. 하나님은 모든 참 성격자가 주권을 가지고 선택하게 한다. 인격을 가진 어떤 인간에게도 영원한 모험을 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오로지 자유 의지의 하나님의 아들, 자유 의지를 가진 아들들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데 반응하여 영원의 문이 열린다.
5:6.13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시간 세계 자녀들의 관계를 발표하려는 나의 노력을 나타낸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건대, 하나님이 너희의 우주 아버지요, 너희는 모두 행성에서 낳은 자식임을 되풀이하는 것보다 나는 더 유익한 일을 할 수 없다.
5:6.14 [이 글은 유버르사의 한 신성한 조언자가 우주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한 시리즈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