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1 하나님은 하나됨이요, 신은 보편적으로 조정되어 있다. 온 우주는 하나의 광대한 통합된 장치이며, 하나의 무한한 지성이 이를 절대로 통제한다. 우주 창조의 물리적ㆍ지적ㆍ영적 영토는 신성하게 관련되어 있다. 완전한 자와 불완전한 자는 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유한한 진화 인간은 “내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우주의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서, 파라다이스까지 올라가도 좋다.[1]
56:0.2 총우주 건축가들의 계획과 행정에서 창조의 다양한 수준은 모두 통일된다. 시공 필사자의 제한된 생각에는, 겉보기에 부조화를 나타내고 효과 있게 조정되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많은 문제와 상황을 우주가 제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서 더 넓은 지대의 우주 현상을 살펴볼 수 있고 창조적 다양성 밑에 깔려 있는 기초적 통일성을 탐지하고, 다수의 이러한 모든 활동을 지배하는, 신의 통일성을 발견하는 이 기술에 경험이 많은 자는, 보편적 창조 에너지의 명시, 이 모든 다채로운 명시에서, 신성하고 유일한 목적을 더 잘 파악한다.
56:1.1 물리적 창조, 곧 물질 창조는 무한하지 않지만 완전히 조정된다. 물력ㆍ에너지ㆍ동력이 있지만, 이 모두가 같은 기원을 가졌다. 일곱 초우주는 겉보기에 2중이며, 중앙 우주는 3중이지만, 파라다이스는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파라다이스는 모든―과거ㆍ현재ㆍ미래―물질 우주의 실제 근원이다. 그러나 우주가 이렇게 유래한 것은 |영원에| 생긴 사건이며, 어느 |시간|에도―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공간이나 물질 우주가 중앙의 빛의 섬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우주의 근원으로서, 파라다이스는 공간보다 이전에, 시간 이전에 작용한다. 따라서 거기서 나온 파생물은 무제한 절대자를 통해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버림받은 듯하다. 이 무제한 절대자는 공간에서 이 파생물이 있는 궁극의 저장소요, 세월 속에서 그 파생물을 드러내고 규제하는 자이다.
56:1.2 무제한 절대자는 물리적 우주를 떠받들고, 신 절대자는 모든 물질적 실체의 절묘한 전반적 통제를 유도한다. 우주 절대자가 이 두 절대자를 기능적으로 통일한다. 어떤―물질, 상물질, 초한 또는 영―성격자도 모든 진정한 물질적 실체가 아래 파라다이스에 집중하는 인력(引力)에 대하여 어떤 인력 반응을 보이는가 살펴봄으로, 물질 우주에서 응집하는 이 상호 관계를 최선으로 이해한다.
56:1.3 인력의 통일은 보편적이며 변하지 않는다. 순수 에너지의 반응은 마찬가지로 보편적이고 불가피하다. 순수 에너지(원시 물력)와 순수 영은 인력보다 온전히 먼저 작용한다. 절대자들 안에서 본래부터 생기는 이 원시(原始) 물력을 우주의 아버지가 친히 통제한다. 따라서 모든 인력은 순수 에너지와 순수 영인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몸소 계신 앞에, 그의 초물질 거처에 집중된다.
56:1.4 순수 에너지는, 상대적이고 기능적인 모든 비영(非靈) 실체의 조상(祖上)이며, 한편 순수 영은 모든 기본 에너지 체계를 신이 지휘하는 통제력의 잠재성이다. 공간에 두루 나타나고 시간의 움직임에서 관찰되는 무척 다양한 이 두 가지 실체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몸에 집중된다. 하나님은 하나이니까, 그분 안에서 이 실체들은 하나이다―통일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성격은 절대로 통일되어 있다.
56:1.5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한 성품에는 물리적 실체와 영적 실체와 같은, 두 가지 실체가 도저히 있을 수 없다[2][3]. 그러나 우리가 무한한 수준으로부터,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성격 가치의 무한 수준과 절대 실체를 피하여 옆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이 두 가지 실체가 존재함을 지켜보며, 그 실체들이 그의 몸소 계심에 충분히 민감한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 안에 만물이 존재한다.
56:1.6 너희가 파라다이스 아버지가 무한한 성격이라는 무조건의 개념을 벗어나는 순간, 지성이, 최초의 단일성(單一性) 창조자인 성격자, 곧 첫째 근원 중심―스스로 계신 이―의 이러한 두 가지 우주 명시가 항상 널리 확산되는 것을 통일하는 불가피한 기법이라고 가정해야 한다.
56:2.1 생각인 아버지는 말씀인 아들 속에서 영의 표현을 실현하며, 방대한 여러 물질 우주에서 파라다이스를 통하여 실체의 확장을 달성한다. 영원한 아들의 영적 표현은 무한한 영의 기능으로 인하여, 창조의 여러 물질 수준과 서로 관련된다. 무한한 영이 베푸는, 영에 민감한 지성이 수고함으로, 그의 지성의 물리적이고 지도하는 행위 속에서, 신의 영적 실체와 신의 물질적 영향이 서로 연결된다.
56:2.2 지성은 무한한 영의 기능적 재산이며, 따라서 잠재성이 무한하고 보편적으로 수여된다. 우주의 아버지가 가진 원초의 생각은 두 가지 표현으로 영원하게 되는데, 하나는 파라다이스 섬이요, 또 그와 대등한 신, 곧 영답고 영원한 아들이다. 그러한 두 가지 영원한 실체는 지성의 하나님, 곧 무한한 영의 존재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지성은 영적 실체와 물질적 실체 사이에 필수 통신 경로이다. 물질적인 진화 인간은 오로지 지성의 보살핌으로 인하여, 깃드는 영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
56:2.3 시공 우주에서는 무한하고 보편적인 이 지성이 우주 지성으로서 베풀어진다. 이 지성은 보조 영들이 베푸는 원시적 봉사로부터 한 우주의 최고 집행자의 웅대한 지성에 이르기까지 연장되지만, 이 우주 지성조차 일곱 으뜸 영의 감독 하에서 알맞게 통일된다. 이 으뜸 영들은 다시 시공의 최상 지성과 조정되며, 무한한 영의 지성, 만물을 감싸는 지성과 완전히 서로 연결된다.
56:3.1 무한한 영이 파라다이스에 몸소 계신 곳에 보편적 지성 인력이 집중되는 것 같이, 보편적 영 인력은 파라다이스에 영원한 아들이 몸소 계신 곳에 집중된다. 우주의 아버지는 하나이지만, 시공에 대해서 그는 순수 에너지와 순수 영, 이 두 가지 현상으로서 드러난다.
56:3.2 파라다이스의 영 실체들은 마찬가지로 하나이지만, 시공의 모든 상황 및 관계에서 이 단일 영은 영원한 아들의 영 성격자 및 방사물, 그리고 무한한 영 및 관계된 창조들에 있는 영 성격자들과 영향, 이 두 가지 현상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아직 셋째가―순수 영 분신―곧 선(先)인격인 생각 조절자와 기타 영 개체가 있다.
56:3.3 우주 활동의 어떤 수준에서 너희가 영적 현상과 마주치거나, 또는 영 존재들과 접촉하거나 상관 없이, 영 아들과 무한한 지성 영이 베푸는 봉사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이 모두 영인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도 모른다[4]. 이 광범위한 영은 지역 우주 본부에서 지시하는 대로, 진화하는 시간 세계에서 생기는 현상으로서 작용한다. 이 창조 아들의 서울로부터, 보조 지성 영들이 베푸는 봉사와 함께, 성령과 진리의 영이 진화하는 하급 수준의 물질 지성에게 온다.
56:3.4 최상 존재와 관련하여, 절대 지성에게 복종하는 우주 지성으로서, 지성은 으뜸 영의 수준에서 더 통일되어 있지만, 진화 세계에게 베푸는 영의 봉사는 지역 우주 본부에서 거주하는 성격자들 안에서, 그리고 주관하는 신성한 봉사자의 몸 속에서, 더 직접 통일되어 있다. 신성한 봉사자들은 다시 영원한 아들의 파라다이스 인력 회로와 거의 완전히 상관되며, 거기서 시공에서 나타나는 영의 명시가 최종으로 통일된다.
56:3.5 자의식하는 지성이,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어느 한 분의 자질, 삼위일체 이전의 영 자질의 분신과 융합함으로, 사람은 완전해진 인간 존재에 도달할 수 있고, 이를 지원하고, 영원하게 만들 수 있다. 필사자의 지성은 영원한 아들의 아들, 그리고 무한한 영의 딸이 창조한 것이며, 아버지로부터 온 생각 조절자와 융합되었을 때, 진화 영역의 세 가지 영 자질을 취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영 표현이, 우주의 스스로 계신 이가, 일찍이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의 우주의 아버지가 되기 전에 자신 안에서 영원 속에 통일된 것 같이, 이러한 표현도 최후자 안에서 완전히 통일된다.
56:3.6 영은 언제나, 궁극에 세 가지로 표현되어야 하고, 마침내 실현되었을 때 삼위일체가 이를 통일해야 한다. 영은 한 근원으로부터 세 가지 표현을 통해서 생긴다. 신과 하나된 가운데 영은 최종으로 충만히 실현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며, 하나님을 발견하면서―신과 하나된 상태로―영원 속에서, 그리고 아버지의 우주적 생각을 영원한 말씀으로 무한히 표현하는, 그 우주 지성이 봉사하는 수단으로, 영은 이 신의 통일성을 체험한다.
56:4.1 우주의 아버지는 신답게 통일된 성격이다. 따라서 생각 조절자의 되돌아오는 힘으로 파라다이스로 옮겨지는, 하늘 가는 자녀들은 모두, 하보나에 이르기 전에 마찬가지로 충분히 통일된 인격이 될 터이고, 조절자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여 물질인 필사자에게 깃들려고 파라다이스를 떠났다.
56:4.2 성격은 본래부터, 그를 구성하는 모든 실체를 통일하려고 손을 뻗는다. 첫째 근원 중심, 우주의 아버지의 무한한 성격은 구성 요소인 일곱 무한 절대자를 모두 통일한다. 필사 인간의 성격은, 우주의 아버지가 독점으로 직접 수여한 것이니까, 필사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일하는 잠재성을 마찬가지로 소유한다. 모든 인간 성격의 그러한 통일하는 창조성은 그 성격의 높고 순전한 근원을 가리키는 출생 표시이며, 성격 회로를 통해서 바로 이 근원과 단절되지 않고서 접촉하는 것을 더욱 증거한다. 이 성격 회로의 방법으로 사람의 인격은 파라다이스에 계신, 모든 성격의 아버지와 직접, 오래 가는 접촉을 유지한다.
56:4.3 칠중자의 영토로부터 최상위와 궁극위를 거쳐서 절대자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명시되는데도, 지적 존재의 모든 수준에, 그리고 완전한 우주, 완전해진 우주, 완전해지고 있는 우주의 온 영역에 있는 모든 성격자가 관계되는 한, 파라다이스에, 아버지 하나님의 몸에 집중되는 성격 회로는, 신 성격의 이 모든 다양한 표현을 완벽하게, 완전히 통일한다.
56:4.4 하나님은 여러 우주에 대하여, 여러 우주 안에서, 우리가 묘사한 모든 것이지만, 그런데도 너희에게, 또 하나님을 아는 모든 다른 인간에게, 그는 하나요, 너희의 아버지요, 그들의 아버지이다[5]. 성격자에게 하나님은 여럿일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 각자에게 아버지이며, 어떤 아이라도 아버지를 하나 이상 가지는 것은 글자 그대로 불가능하다.
56:4.5 철학적으로, 우주적으로 볼 때, 명시되는 다른 수준 및 위치와 관련하여, 너희는 여러 신들이 활동하는 것을 상상해도 좋고, 또 어쩔 수 없이 상상해야 하며, 여러 가지 삼자일체의 존재를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총우주 전역에 걸쳐서, 신을 예배하는 모든 성격자가 몸소 접촉하는 예배 체험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이다. 통일되고 성격을 가진 그 신이 우리의 파라다이스 부모요, 아버지 하나님이요, 사람 사는 세계의 필사 인간으로부터 가운데 빛의 섬에 계신 영원한 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격을 수여하고 보존하는 분이요 아버지이다.
56:5.1 파라다이스 신이 하나인 성질, 불가분성은 실존적이고 절대적이다. 신은 세 분―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으로 영원히 성격화되지만,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서 세 분은 |실제로| 하나의 신이며, 갈라져 있지 않고 불가분하다[6].
56:5.2 최초의 파라다이스 및 하보나 수준의 실존적 실체로부터, 절대 이하의 두 수준이 분화되었는데, 그 뒤에 아버지ㆍ아들ㆍ영은 성격을 가진 수많은 동료와 하위 존재들을 창조하는 일에 들어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월적 궁극 수준에서 초한적 신의 통일을 고려하려고 애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성격화된 신의 통일 기능의 어떤 모습을 보는 것이 가능하며, 다양한 창조 구역들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계급의 지적 존재들에 대하여, 그러한 성격화된 모습에 신(神)이 기능적으로 분명히 나타난다.
56:5.3 여러 초우주에서 신이 현재 하는 활동은 최상 창조자들―지역 우주 창조 아들과 영들, 초우주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파라다이스의 일곱 으뜸 영―의 작용에서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 존재들은 칠중 신의 처음 세 수준을 구성하며, 이것은 안으로 우주의 아버지께로 이끌며, 이 칠중 신의 영토 전체가 진화하는 최상 존재 안에서 체험적 신의 첫째 수준에서 조정되고 있다.
56:5.4 파라다이스에서, 그리고 중앙 우주에서, 신의 통일성은 존재하는 사실이다. 시공의 진화하는 여러 우주 전역에 걸쳐서, 신의 통일성은 하나의 성취할 목표이다.
56:6.1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서 갈라지지 않은 신으로서, 영원한 신 세 분이 활동할 때, 그들은 완전히 통일된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연합하여, 또는 따로따로 창조할 때, 그들의 파라다이스 자손은 그 특징인 신의 통일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시공 영토를 다스리는 최상 창조자이자 통치자들이 명백히 드러내는 이 신성한 목적은 궁극에 체험적으로 최상인, 군주의 통일하는 동력 잠재성이 된다. 그 잠재성은 실체의 긴장을 일으키며, 이것은 우주의 비성격 에너지가 통일된 가운데, 오로지 체험적 신의 체험하는 성격 실체들과 적절히 통일함으로 해결될 수 있다.
56:6.2 최상 존재의 성격 실체들은 파라다이스 신들로부터 솟아나오며, 하보나의 바깥 회로의 시범 세계에서, 대우주의 창조자인 신들로부터 올라오는 전능 최상위의 동력 특권과 함께 통일된다. 하나의 성격자로서 최상위 하나님은 일곱 초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하보나에서 존재했으나 오직 영적 수준에서 활동했다. 진화하는 여러 우주에서 다양한 신의 통합으로 인하여, 전능자가 최상의 동력을 진화하는 것은 궁극에 새로운 동력을 가진 신의 계심이 되었고, 이것은 최상 지성의 수단으로 하보나에 계신 최상위의 영적 몸과 조정되었다. 동시에 이 최상 지성은 무한한 영의 무한한 지성에 거하는 잠재성을, 최상 존재의 활발한 기능적 지성으로 변화시켰다.
56:6.3 일곱 초우주의 여러 진화 세계에서 물질 위주로 생각하는 인간은 오직 최상 존재가 이렇게 동력을 가진 성격자로 통합되면서 진화하는 그러한 신의 통일성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존재 수준에서도, 하나님은 그러한 수준에서 사는 존재들의 개념 능력을 뛰어넘을 수 없다. 진리를 인식하고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선을 존중함으로, 필사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길러야 하며, 그리고 나서 높아지는 신 수준을 거쳐서, 최상위를 이해하기까지 진보해야 한다. 신이 이처럼 동력이 통일된 것으로 파악되었으니까, 그리고 나서 신은 사람이 이해하고 도달하도록 영적으로 성격화될 수 있다.
56:6.4 하늘 가는 필사자는 초우주의 서울에서 전능자의 힘을 이해하고, 하보나의 여러 바깥 회로에서 최상위의 성격을 이해하지만, 파라다이스 신들을 발견하도록 예정된 것처럼 실제로 최상 존재를 찾아내지 못한다. 제6 단계 영인 최후자들조차 최상 존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제7 단계 영의 지위를 얻을 때까지, 그리고 미래의 바깥 우주들이 작용하고 최상위가 실제로 활동하게 될 때까지, 찾아낼 것 같지도 않다.
56:6.5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가 칠중 신의 제7 수준인 것을 하늘 가는 자가 발견할 때, 그들은 우주의 생물과 가지는 |모든| 신 수준의 성격 관계에서 첫째 분의 성격에 다다른 것이다.
56:7.1 시공의 우주에서 진화가 꾸준히 진보하는 데에는 신이 모든 지적 인간에게 주는 계시, 항상 확대되는 계시가 뒤따른다. 한 세계나 체계, 별자리나 우주, 초우주 또는 대우주에서, 진화로 진보하여 높이 도달하는 것은 이 진보적인 여러 창조 단위에 대하여,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거기서 신의 활동이 확대됨을 알린다. 신성의 실현이 그렇게 지역에서 향상될 때마다 뒤이어, 창조의 모든 다른 구역에 대하여 신의 명시의 영향, 윤곽이 분명한 어떤 영향이 확대된다. 파라다이스로부터 바깥으로 뻗으면서, 진화로 실현하고 도달한 새로운 영토는 각기, 체험하는 신이 온 우주에게 주는 새롭고 확대된 계시가 된다.
56:7.2 한 지역 우주의 구성 분자들이 점진적으로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됨에 따라서, 칠중 신은 갈수록 더 명백하게 나타난다. 한 행성에서 시공의 진화는, 지배하는 칠중 신의 첫째 표현―창조 아들과 창조 영의 결합―과 함께 시작된다. 한 체계가 빛 속에 안정되고 나서, 이러한 아들과 영의 연락은 충만히 작용하며, 한 별자리 전체가 이처럼 안정될 때, 칠중 신의 제2 단계가 그러한 영역에서 두루, 더 활발하게 된다. 한 지역 우주에서 행정부의 진화가 완결되면 초우주의 으뜸 영들이 새로이, 직접 더 보살피는 일이 뒤따른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칠중 신의 늘 확대되는 계시와 실현이 또한 시작되며, 이것은 여섯째 하보나 회로의 세계들을 통과하는 동안 승천자가 최상 존재를 이해하는 높이까지 이른다.
56:7.3 우주의 아버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은 실존적 신이 지적 생물에게 명시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것은 모든 창조에 있는, 지성 생물 및 영 생물과 개인적 관계에서 비슷하게 확대되지 않는다.
56:7.4 이 신들을 개인적 존재로서 체험으로 몸소 인식하고 그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하늘 가는 필사자가 충분히 영적으로 변화되고 적절히 교육받기 훨씬 전에, 이 필사자들은 연속되는 신 수준의 비영적(非靈的)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56:7.5 창조된 한 구역 안에서 새로운 진화적 달성이 있을 때마다, 신성(神性)의 명시가 공간을 새로이 침입할 때마다, 뒤이어 당시에 존재하고 예전에 조직된 모든 창조 단위 안에서 신의 기능적 계시가 동시에 확장된다. 우주와 그 구성 단위들의 행정 작업이 이렇게 새로이 침입하는 것은, 여기에 윤곽을 제시한 기법 그대로 집행되는 것처럼 반드시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이는 행정을 통제하는 차후의 연속되는 새 시대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려고 전위(前衛) 행정자 집단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궁극위 하나님조차 한 지역 우주가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후기 단계에, 그가 초월적으로 우주를 전반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을 미리 예시한다.
56:7.6 여러 시공 창조의 진화적 지위가 점진적으로 안정됨에 따라서, 최상위 하나님의 새롭고 더 충만한 활동이 관찰되는 것이 하나의 사실이며, 이에 상응하여 동시에 칠중 신의 처음 세 가지 명시가 철수(撤收)된다. 대우주가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되면,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최상위 하나님이 이 여러 시공 창조를 직접 통제하는 일을 맡는다면, 칠중 신이 창조 아들 및 창조 딸로 명시되어 과연 미래에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시공의 여러 우주를 조직하고 개척한 이분들은 바깥 우주에서 비슷한 활동을 하도록 해방될 것인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것을 비롯하여 관계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많이 추측해 본다.
56:7.7 체험하는 신의 개척지가 무제한 절대자의 영토로 뻗어나감에 따라서, 우리는 이 미래 창조들의 초기의 진화 시대에 칠중 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상상해본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과 초우주 으뜸 영들의 미래 지위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하여 우리 모두가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최상 존재가 일곱 초우주에서 한 것처럼 거기서 활동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창조 아들인 미가엘들이 이 여러 바깥 우주에서 활동하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우리 모두가 추측한다. 더러는 미래 시대에, 연결된 창조 아들과 신성한 봉사자들이 더 가까운 형태로 연합된 것을 구경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창조자 연합이 종국에 궁극의 성질을 가진, 부(副)창조자 신분의 어떤 새로운 표현이 된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밝혀지지 않은 앞날의 이 여러 가능성에 관하여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56:7.8 그러나 여러 시공 우주에서 칠중 신이 우주의 아버지께 도달하는 점진적 접근법을 마련해 준다는 것, 이 진화적 접근법이 최상위 하나님 안에서 체험으로 통일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계획이 바깥 우주에서도 지배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또 한편, 이 바깥 우주들에 언젠가 살 새 계급의 존재들은 궁극의 수준에서, 초한 기법으로 신에게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바깥 공간에서 앞날에 생길 여러 우주에서 신에게 접근하는 어떤 기법이 작용하게 될 것인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56:7.9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완전하게 된 초우주들은, 어떤 방법으로, 이 바깥 세상에서 살지도 모르는 존재들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생애의 일부가 되리라고 판단한다. 그 미래 시대에, 일곱 으뜸 영의 협력이 있든 없든, 최상위 하나님이 관리하는 일곱 초우주를 거쳐서, 하보나에 다가가는 바깥 우주 출신들을 우리가 구경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56:8.1 최상 존재는 필사 인간의 체험에서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그는 시공의 신(神), 칠중 신을 하나로 만드는 분이다. 둘째로, 그는 유한한 인간이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이다. 셋째로, 그는 초한(超限) 지성, 영원한 영, 그리고 파라다이스 성격자와 교제하는 초월적 체험을 필사 인간이 얻는 유일한 접근 방법이다.
56:8.2 하늘 가는 최후자는 지역 우주에서 태어나서, 초우주에서 양육되고, 중앙 우주에서 훈련받았으니까, 최상위 안에서 통일되는 칠중 신의 시공 신성을 이해하는 충분한 잠재성을 그들의 개인적 체험 속에서 가진다. 최후자는 그들이 태어난 곳이 아닌 여러 초우주에서 연달아 근무하며, 이렇게 하여 가능한 인간 체험의 일곱 가지 다양성을 충분히 몸에 익힐 때까지, 체험에 체험을 자꾸 쌓는다. 깃드는 조절자의 봉사를 통해서, 최후자는 우주의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체험 기법으로 그러한 최후자는 최상 존재를 정말로 |알게| 되며, 그들은 바깥 공간에서 앞날의 여러 우주에서 최상위 신에게 봉사하는 데, 그리고 여러 우주에 그를 |계시하는| 일에 예정되어 있다.
56:8.3 기억할지니, 아버지 하나님과 파라다이스 아들들이 우리에게 행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다시, 정신적으로, 솟아나는 최상 존재를 위하여, 또 그분 안에서 할 기회를 가진다. 우주에서 사랑하고 기뻐하고 봉사하는 체험을 서로 겪는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의 아들들에게 주는 모든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 차례에 그들이 이 모든 것을 동료에게, 그리고 진화하는 최상 존재에게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는 주어도 좋다).
56:8.4 모든 창조 현상은 선행하는, 창조자와 영의 활동을 반영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본 것만 행한다”하고 예수는 말씀했고,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7]. 시간이 되면 너희 필사자들은 동료에게 최상위의 계시를 시작해도 좋고, 너희가 파라다이스를 향하여 올라가는 동안, 너희는 점점 더 이 계시를 확대해도 좋다. 영원 속에서, 제7 단계의 최후자로서, 너희는 최상―아니 궁극―수준에서 이 진화하는 인간의 하나님을 더욱 계시하는 것이 허락될지 모른다.
56:9.1 무제한 절대자와 신 절대자는 우주 절대자 안에서 하나가 된다. 절대자들은 궁극위 안에서 조정되고 최상위 안에서 제한되며, 칠중 신 안에서 시공에서 수정된다. 무한 이하 수준에는 |세| 절대자가 있지만, 무한 수준에서 그들은 |하나|인 듯이 보인다. 파라다이스에서는 신이 |세 분|으로 성격화되지만, 삼위일체 안에서 그들은 |하나|이다.
56:9.2 총우주에 관한 주요한 철학 명제(命題)는 이것이다: 절대자(무한 속에서 하나인 세 절대자)는 삼위일체보다 앞서 존재했는가? 그리고 그 절대자는 삼위일체의 조상인가? 아니면 삼위일체가 절대자에 선행(先行)하는가?
56:9.3 무제한 절대자는 삼위일체와 독립된 하나의 물력의 계심인가? 신 절대자의 계심은 삼위일체가 제한 없이 활동함을 뜻하는가? 우주 절대자는 삼자일체, 아니 가장 높은 삼자일체의 마지막 활동인가?
56:9.4 처음 생각에는, 절대자가 만물―아니 삼위일체―의 조상이라는 개념은 일관성을 충족시키고 철학적으로 통일되는 일시적 만족감을 주는 듯하지만, 그러한 어떤 결론도 파라다이스 삼위일체가 영원하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무효(無效)가 된다. 우리는 우주의 아버지와 그의 삼위일체 동료들의 성품과 존재는 영원하다고 가르침을 받았고,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면, 일관성 있는 철학적 결론이 오직 하나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온 우주의 지성 존재들이 보기에, 절대자는 모든 기본적 1차 상황, 우주 안 및 우주 바깥의 공간 상황에 대하여 (가장 높은) 삼자일체가 비성격 방법으로 나란히 반응하는 것이다. 사람이 몸소 이해하고 깨닫는 모든 실질적 목적으로 볼 때, 대우주에서 모든 지적 성격 존재에게 파라다이스 삼위일체는 최종으로, 영원히, 최상으로, 궁극에 언제까지나 절대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56:9.5 인간의 지성으로 이 문제를 보다시피, 지성은 우주의 스스로 계신 이가 삼위일체와 절대자, 이 둘의 원초적 원인이요 무제한의 근원이라는 최종의 가설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절대자가 성격을 가졌다는 개념을 몹시 살펴보고 싶을 때, 우리는 파라다이스 아버지 개념과 이상(理想)으로 도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다른 면에서 비성격인 이 절대자를 이해하는 것을 수월하게 하거나 그를 더 크게 의식(意識)하기를 바랄 때, 우리는 우주의 아버지가 절대 성격을 가진 실존적 아버지이며, 영원한 아들은 체험적 의미에서 절대자가 성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절대 성격자라는 사실로 도로 돌아온다. 다음에 우리는 더 나아가서, 체험적 삼자일체들이 결국, 체험으로 신 절대자의 성격화를 초래한다고 상상하며, 한편 우주 절대자는 최상ㆍ궁극ㆍ무한성을 가진, 통일되고 조정된 신 관계―가장 높은 삼자일체―의 비성격 활동이 명백히 나타나는 그러한 우주 및 우주 바깥의 현상을 빚어낸다고 생각한다.
56:9.6 유한 수준에서 무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떤 수준에서도 우주의 아버지는 식별될 수 있으며, 파라다이스로부터 여러 진화 세계에서 그가 지은 생물은 다양하게 그를 파악했지만, 오직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이 아버지를 하나의 무한으로서 이해한다.
56:9.7 영적 성격은 오직 파라다이스에서만 절대적이고, 절대자의 개념은 오직 무한 수준에서 제한이 없다. 신의 계심은 오로지 파라다이스에서만 절대적이고,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그의 힘이 무제한 절대자의 공간 잠재력 속에 체험적으로 무한하게 될 때까지, 반드시 부분적ㆍ상대적이고 진보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한편 하나님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은 신 절대자의 명백한 계심에서 체험적으로 무한하게 되며, 또 무한의 이 두 잠재성은 우주 절대자 안에서 실체가 통일된다.
56:9.8 그러나 무한 이하의 수준을 넘으면, 세 절대자는 |하나|이며, 그런 수준을 넘어서, 어떤 다른 계급의 존재가 언제라도 무한 의식(意識)을 자각하든지 상관 없이, 신은 무한을 깨닫는다.
56:9.9 비록 무한한 영원―영원한 무한―에 본래 있는 체험적 잠재성을 자각하는 체험을 겪는 데 또 한 번 영원의 세월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영원에서 실존적 지위는 무한을 실존적으로 자의식(自意識)함을 의미한다.
56:9.10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온 우주 전역에서, 모든 지적 생물과 영 존재에게, 신과 실체의 모든 명시(明示)의 성격 근원이다. 성격자로서, 지금이나 영원한 미래에 이어지는 우주 체험에서, 너희가 칠중 신에게 도달하거나, 최상위 하나님을 이해하거나, 궁극위 하나님을 찾아내거나, 또는 절대자 하나님 개념을 파악하려고 애쓰거나 상관 없이, 너희가 영원히 만족하기까지, 각 모험이 완성될 때 너희가 새 체험 수준에서 영원한 하나님―모든 우주 성격자의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다시 찾아냈다는 것을 너희가 발견할 것이다.
56:9.11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가 통일된 것을 설명하며, 이는 우주의 통일이 절대 가치와 의미(意味)―무제한의 실체―가 궁극 이후까지 통일된 가운데, 최상으로, 아니 궁극에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56:9.12 물력 조직책들은 공간으로 나가서, 우주의 아버지가 행사하는 파라다이스 힘에, 인력에 민감하게 만들려고 공간의 에너지를 동원한다. 그 뒤에 창조 아들들이 오며, 그들은 인력(引力)에 민감한 이 물력을 사람이 사는 우주로 조직하고, 그 안에서 지적 인간을 진화시킨다. 이들은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영을 받아들이고, 어떤 가능한 신(神)의 특성으로 보든지, 아버지와 같이 되려고 나중에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56:9.13 파라다이스의 창조적 물력이 공간을 통해서 끊임없이 확장하여 진행하는 것은 우주의 아버지의 인력 손아귀에 있는 영토가 늘 뻗어나가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지적(知的) 생물이 언제나 그치지 않고 늘어날 것이라 예시한다. 이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해도 좋고, 파라다이스에 이르고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좋다.
56:9.14 온 우주는 전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하나님의 권능과 성격은 하나이다. 모든 수준의 에너지와 모든 단계의 성격이 조정된다. 철학적으로, 체험적으로, 개념 면에서, 실제로, 모든 사물과 존재는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며, 어떤 사물이나 존재도 하나님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8].
56:10.1 생명과 빛 속에 안정된 세계들이 초기 단계로부터 제7 시기까지 진보함에 따라서, 창조 아들을 찬미함을 비롯하여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예배하기까지, 그 세계들은 칠중 신의 실체가 실현되는 것을 연달아 파악한다. 그러한 세계 역사에서, 이어지는 제7 단계를 통하여 내내, 항상 진보하는 필사자는 최상위 하나님을 아는 가운데서 자라며, 한편 그들은 궁극위 하나님의 보호하는 봉사가 현실임을 어렴풋이 알아본다.
56:10.2 이 영화로운 시대를 통하여 내내, 항상 전진하는 필사자의 주요한 관심거리는 이해할 수 있는 신의 요소를―진리ㆍ아름다움ㆍ선을―더욱 낫게 이해하고 더 많이 깨닫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적ㆍ물질적ㆍ영적으로 하나님을 식별하려고 사람이 노력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필사자가 이 목표를 추구할 때, 철학ㆍ우주론ㆍ신성의 경험적 연구에 자신이 갈수록 더 몰두함을 발견한다.
56:10.3 너희는 철학을 얼마큼 파악하며, 신을 예배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개인의 영적 체험을 겪으면서 신성(神性)을 이해한다. 하지만 너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우주를 보는 눈―을 아주 흔히 사람의 서툰 예술적 노력을 공부하는 데 국한시킨다. 아름다움, 곧 예술은 대체로 대조 되는 물건들을 하나로 만드는 문제이다. 다양성은 아름다움의 개념에 필수이다. 최상의 아름다움, 유한한 예술의 절정은 창조자와 인간,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두 우주 극단(極端)을 통일하는 드라마이다. 하나님을 찾아내는 사람, 그리고 사람을 찾아내는 하나님―창조자가 완전한 것 같이 완전하게 되는 인간―바로 이것이 최상으로 아름다운 것을 훌륭하게 성취하는 것이요, 우주 예술의 정점에 이르는 것이다.
56:10.4 따라서 유물론(唯物論), 다시 말해서 무신론은 못난 것의 극대화요, 유한 속에서 아름다운 것의 정반대가 극치에 이른 것이다. 가장 높은 아름다움은 이전에 있던 조화된 실체로부터 태어난 여러 변화가 통일되어 전체가 펼쳐지는 광경이다.
56:10.5 우주론 수준의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다음을 포함한다:
56:10.6 1. |호기심|. 조화를 갈망하고 아름다움을 목마르게 찾는 것. 새로운 수준의 조화되는 우주 관계를 발견하려고 끈질기게 애쓰는 것.
56:10.7 2. |미학의 이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모든 수준의 실체에서 온갖 창조적 표현의 예술적 솜씨를 이해하는 식견이 항상 높아지는 것.
56:10.8 3. |윤리 민감성|. 진리를 깨달음으로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은, 신과 만물의 관계에서 신이 선함을 인식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들이 영원히 건전함을 감지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주론조차 신다운 실체의 가치를 추구하도록―하나님을 의식하도록―인도한다.
56:10.9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세계들은 진리ㆍ아름다움ㆍ선을 이해하는 데 아주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품질의 가치 기준이 시공 영역에 신이 주는 계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진리의 중요성은 필사 인간의 지적ㆍ영적 성품 모두에 호소하는 힘을 가진다. 우주의 아름다움은 우주의 창조에서 조화되는 관계와 리듬을 포함한다. 이것은 아주 뚜렷이 지적 호소력이며, 물질 우주를 통일되게, 동시에 발맞추어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신의 선함은 사람의 유한한 지능에 무한한 가치를 계시하는 것이며, 계시는 유한한 지능이 파악하고 인간이 이해하는 영적 수준의 바로 그 문턱까지 높아질 것이다.
56:10.10 진리는 과학과 철학의 기본이며, 종교의 지적 기초를 제시한다. 아름다움은 미술ㆍ음악, 그리고 인간의 모든 체험에서 중요한 리듬을 뒷받침한다. 선은 윤리ㆍ도덕ㆍ종교의 감각을―완전을 체험하려는 욕구를―포함한다.
56:10.11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사실은 최상 지성이 지배함을 가리킨다. 이와 똑같이 확실하게,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인간의 지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실체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표현들이 조화되어 시공에서 통합된 것을 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그런 표현은 모두 선재(先在)하는 영원한 일체로부터 가지쳐 나온 것이다.
56:10.12 선은 다양한 수준에서 신다운 완전의 상대적 가치를 정신이 인식하는 것이다. 선을 인식하는 것은 도덕적 지위를 가진 지성, 곧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 개인적 지성을 가졌음을 뜻한다. 그러나 선(善)을 소유하는 것, 곧 위대함은 신성(神性)에 정말로 도달한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56:10.13 |참된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진실과 잘못을 구별할 수 있는 머리가 있음을 암시한다. 유란시아의 인간 지성에게 투입되는, 수여된 진리의 영은 틀림없이 진리에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상승하면서 조정되는 관계, 모든 사물과 존재의 살아 있는 영적 관계에―민감하다.
56:10.14 어떤 전자(電子)나 생각이나 영이 일으키는 어떤 충동도 우주 전체에서 하나의 활동 단위이다. 오로지 죄가 정신적ㆍ영적 수준에서 항거하는, 고립되고 악한 인력이다. 우주는 하나의 전체이며, 어떤 사물이나 존재도 고립해서 존재하거나 살지 않는다. 자아의 실현은 반(反)사회적일 때 악할 가능성이 있다. “어떤 사람도 혼자서 살지 못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참이다[9]. 우주와 교제하는 것은 가장 높은 형태의 인격 통일이다. 예수는 말했다, “너희 가운데 가장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자가 되라[10].”
56:10.15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조차도―지성ㆍ물질ㆍ영으로 이루어진 우주를 사람이 총명하게 접근하는 것도―신다운 최고의 |이상|을 가진,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필사 인격자가 인간의 체험을 물질ㆍ지성ㆍ영과 통일하는 것 같이, 마찬가지로 이 신다운 최고의 이상은 최상위 안에서 동력으로 통일되며, 그리고 나서 아버지다운 사랑을 가진 하나님으로서 성격화된다.
56:10.16 어떤 주어진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모든 통찰력은, 모든 부분이 그 전체와 무슨 관계를 가졌는가 파악하기를 요구한다. 우주에서 이것은 지음받은 부분과 창조적 전체의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은 보편적이고 영원히 달성할 초월적 목표, 아니 무한한 목표이다.
56:10.17 우주의 아름다움은 물질 창조에서 파라다이스 섬이 비쳐진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다. 한편 영원한 진리는 파라다이스 아들들이 베푸는 특별한 봉사이며, 그들은 필사 민족에게 자신을 수여할 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진리의 영을 퍼붓기도 한다. 신의 선함은 무한한 영이 거느리는 다채로운 성격자들이 사랑으로 베푸는 봉사에서 더욱 충만히 전시된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 성질을 총합한 것이요, 하나님이 영 아버지임을 사람이 파악하는 것이다.
56:10.18 물리적 물질은 절대 신들이 가진 파라다이스 에너지와 광채가 시공 우주에 던지는 그림자이다. 진리의 의미는 신의 영원한 말씀이 필사자의 지능에 미치는 영향이다―최상의 개념들을 시공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신성의 선한 가치는 진화하는 구체에 사는 시공의 유한한 사람에게, 우주자ㆍ영원자ㆍ무한자,[1] 이 영 성격자들이 베푸는 자비로운 봉사이다.
56:10.19 신의 의미 있는 이러한 실체 가치는 아버지와 인격을 가진 각 사람의 관계에서 신의 사랑으로서 섞인다. 이 가치는 신의 자비로서 아들과 그의 아들들 안에서 조정된다. 그들은 영과 그의 영 자손들을 통해서 신성한 봉사로서, 곧 시간 세계의 자녀들에게 사랑으로 베푸는 자비의 표현으로서, 그들의 성질을 명백히 드러낸다. 이 세 가지 신의 성질은 주로 동력과 성격이 통합된 최상 존재로서 나타난다. 칠중 신이 이러한 성질을, 승천하는 일곱 수준에서 신성한 의미와 가치 기준의 일곱 가지 다른 연합에서 다양하게 보여준다.
56:10.20 유한한 사람에게, 진리ㆍ아름다움ㆍ선은 신의 실체를 충분히 계시한 것이다. 이처럼 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생활 속에서 영적으로 표현됨에 따라서 지적 평안, 사회의 진보, 도덕적 만족, 영적 기쁨, 우주를 보는 지혜, 이와 같은 신의 열매가 맺어진다[11]. 빛과 생명의 제7 단계에 있는 세계에서 상급 필사자는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것임을 배웠다―그들은 하나님이 사랑임을 알고 있다.
56:10.21 사랑은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56:10.22 [네바돈 계시 군단의 요청을 받고서, 유란시아 행성 영주의 대관인 어떤 멜기세덱과 협동하여, 유란시아를 방문하는 어느 막강한 사자가 발표하였다.]
56:11.1 56:10.23 우주의 통일성에 관한 이 논문은, 만투시아 멜기세덱의 지휘 하에 활동하는, 12 네바돈 성격자로 구성된 한 위원회의 집단 후원을 받고서, 여러 저자가 발표한 시리즈 가운데 25번째로 발표한 글이다. 우리는 유란시아 시간으로 1934년에, 상관들이 허가한 방법에 따라서 이 여러 이야기를 쓰고 영어로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