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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FURTHER DISCUSSIONS WITH RODAN
제 161 편로단과 계속한 토론
제161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제 161 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로단과 계속한 토론
1955 161:0.1 ON SUNDAY, September 25, A.D. 29, the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assembled at Magadan. After a long conference that evening with his associates, Jesus surprised all by announcing that early the next day he and the twelve apostles would start for Jerusalem to attend the feast of tabernacles. He directed that the evangelists visit the believers in Galilee, and that the women’s corps return for a while to Bethsaida.
2000 161:0.1 서기 29년 9월 25일 일요일에, 사도와 전도사들은 마가단에 모였다. 그날 저녁에 동료들과 함께 긴 회의가 있은 뒤에, 예수는 이튿날 아침 일찍 그와 열두 사도가 천막 축제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겠다고 발표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전도사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신자들을 찾아보라, 여인단은 한동안 벳세다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2001 CM 161:0.1 서기 29년 9월 25일 일요일에, 사도와 전도자들이 마가단에 모였다. 예수께서 이날 저녁에 동역자들과 오래 협의한 후에, 열두 사도와 함께 초막절에 참여하기 위해, 이튿날 일찍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겠다는 말씀 때문에 모두 깜짝 놀랐다. 그는 전도자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신자를 방문하도록 지시했고, 여자 단체에게는 얼마 동안 벳새다로 돌아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2007 URKA 161:0.1 서기 29년 9월 25일, 일요일,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마가단에 모였다. 그 날 저녁에 연관-동료들과 긴 논의를 한 후에, 다음 날 일찍 열 두 사도들과 함께 천막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출발하겠다는 예수의 말씀 때문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예수는 전도자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라고 지도하였고, 여자 대원들에게는 얼마 동안 벳세다로 돌아가 있으라고 지도하였다.
2025 161:0.1 서기 29년 9월 25일 일요일에, 사도와 전도사들은 마가단에 모였다. 그날 저녁에 동료들과 함께 긴 회의가 있은 뒤에, 예수는 이튿날 아침 일찍 그와 열두 사도가 천막 축제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겠다고 발표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전도사들에게 갈릴리에 있는 신자들을 찾아보라, 여인단은 한동안 벳세다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1955 161:0.2 When the hour came to leave for Jerusalem, Nathaniel and Thomas were still in the midst of their discussions with Rodan of Alexandria, and they secured the Master’s permission to remain at Magadan for a few days. And so, while Jesus and the ten were on their way to Jerusalem, Nathaniel and Thomas were engaged in earnest debate with Rodan. The week prior, in which Rodan had expounded his philosophy, Thomas and Nathaniel had alternated in present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the Greek philosopher. Rodan discovered that he had been well instructed in Jesus’ teachings by one of the former apostles of John the Baptist who had been his teacher at Alexandria.
2000 161:0.2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날 시각이 되었을 때,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아직도 알렉산드리아의 로단과 한창 토론 중이었고, 며칠 동안 마가단에 남아 있도록 주로부터 허락을 얻었다. 그래서 예수와 열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난 동안,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로단과 진지한 토론에 들어갔다. 그 전주에 로단은 자기의 철학을 해설했고, 토마스와 나다니엘은 하늘나라 복음을 그리스인 철학자에게 번갈아서 발표했다. 로단은 예전에 세례자 요한의 옛 사도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예수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이 잘 교육받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선생이었다.
2001 CM 161:0.2 예루살렘으로 떠날 시간이 됐을 때, 나다니엘과 도마는 알렉산드리아의 로단과 여전히 토론하는 중이었고, 마가단에 며칠 더 머물러도 좋다는 주님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예수와 열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나다니엘과 도마는 로단과 진지한 토론에 몰두했다. 로단이 자신의 철학을 자세히 설명했던 지난 주 동안, 도마와 나다니엘은 교대로 그리스 철학자에게 천국 복음을 제시했다. 로단은, 예전에 세례 요한의 사도들 가운데 하나로부터 자신이 예수의 교훈을 잘 배웠음을 발견했는데, 그 사도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단의 선생이었다.
2007 URKA 161:0.2 예루살렘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다니엘과 도마는 알렉산드리아의 로단과 아직도 토론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며칠 동안 더 마가단에 머물러도 좋다는 주(主)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예수와 열 명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나다니엘과 도마는 로단과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로단이 자신의 철학을 자세히 설명하였던 지난 주 동안에, 도마와 나다니엘은 교대로 그 그리스 철학자에게 왕국 복음을 제시하였었다. 로단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자기를 가르쳤으며 전에 세례자 요한의 사도들중의 하나였던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예수의 가르침을 잘 배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2025 161:0.2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날 시각이 되었을 때,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아직도 알렉산드리아의 로단과 한창 토론 중이었고, 며칠 동안 마가단에 남아 있도록 주로부터 허락을 얻었다. 그래서 예수와 열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난 동안,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로단과 진지한 토론에 들어갔다. 그 전주에 로단은 자기의 철학을 해설했고, 토마스와 나다니엘은 하늘나라 복음을 그리스인 철학자에게 번갈아서 발표했다. 로단은 예전에 세례자 요한의 옛 사도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예수의 가르침에 관하여 자신이 잘 교육받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선생이었다.
1. THE PERSONALITY OF GOD
1. 하나님의 성격
1. 하나님의 인격
1. 하느님의 개인성
1. 하나님의 성격
1955 161:1.1 There was one matter on which Rodan and the two apostles did not see alike, and that was the personality of God. Rodan readily accepted all that was presented to him regarding the attributes of God, but he contended that the Father in heaven is not, cannot be, a person as man conceives personality. While the apostles found themselves in difficulty trying to prove that God is a person, Rodan found it still more difficult to prove he is not a person.
2000 161:1.1 로단과 두 사도가 다르게 보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성격이었다. 로단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하여 그에게 제시된 모든 것을 쉽사리 받아들였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이 인격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성격자가 아니고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성격을 가진 분인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면서 자신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발견했고, 한편 로단은 하나님이 성격자가 아님을 증명하기가 한층 더 어려움을 깨달았다.
2001 CM 161:1.1 로단과 두 사도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하나님의 인격에 관한 것이었다. 로단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 제시된 모든 것을 선뜻 받아들였으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이 인격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어떤 인격자가 아니고,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인격자이심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발견한 반면, 로단은 하나님이 인격자가 아니심을 증명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2007 URKA 161:1.1 로단과 두 사도들 사이에 다르게 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개인성이었다. 로단은 하느님의 속성에 관하여 제시된 모든 것들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이 개인성이라고 착상하는 것과 같은 개인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도들은 하느님이 개인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이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고, 한편 로단도 하느님이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여전히 더욱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2025 161:1.1 로단과 두 사도가 다르게 보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곧 하나님의 성격이었다. 로단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하여 그에게 제시된 모든 것을 쉽사리 받아들였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이 인격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성격자가 아니고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이 성격을 가진 분인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면서 자신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발견했고, 한편 로단은 하나님이 성격자가 아님을 증명하기가 한층 더 어려움을 깨달았다.
1955 161:1.2 Rodan contended that the fact of personality consists in the coexistent fact of full and mutual communication between beings of equality, beings who are capable of sympathetic understanding. Said Rodan: “In order to be a person, God must have symbols of spirit communication which would enable him to become fully understood by those who make contact with him. But since God is infinite and eternal, the Creator of all other beings, it follows that, as regards beings of equality, God is alone in the universe. There are none equal to him; there are none with whom he can communicate as an equal. God indeed may be the source of all personality, but as such he is transcendent to personality, even as the Creator is above and beyond the creature.”
2000 161:1.2 성격이라는 사실은 동등한 존재들, 공감하여 이해할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 충분히 서로 교통한다는, 공존하는 사실에 달려 있다고 로단은 주장했다. 로단이 말했다: “성격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와 접촉하는 자들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이 교통하는 상징을 가져야 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ㆍ영원하며, 모든 다른 존재의 창조자이니까, 따라서 동등한 존재에 관하여 말하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혼자이라. 그와 동등한 이가 아무도 없고, 동등한 이로서 그가 함께 교통할 분이 하나도 없느니라.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성격의 근원일지 모르지만, 그런 분으로서 창조자가 지음받은 자 위에 초월하여 계시는 것 같이, 하나님은 성격을 초월하느니라.”
2001 CM 161:1.2 인격이라는 사실은, 동등한 존재들, 즉 마음이 통함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온전하고 상호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공존{共存}하는 현실에 달려있다고, 로단은 강력히 주장했다. 로단이 말했다:“하나님이 인격자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자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영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상징을 가지셔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모든 다른 존재의 창조주시기 때문에, 동등한 존재들에 관한 한, 우주에는 하나님께서 홀로 계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와 동등한 존재는 결코 없으며;동등한 존재로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인격의 근원이겠지만, 인격을 초월하는 분이고, 피조물을 훨씬 뛰어 넘는 창조주시다.”
2007 URKA 161:1.2 로단은, 깊이 공감하여 납득할 능력이 있는 동등성에서의 존재들 사이에서의 충분한 상호간의 교통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개인성의 사실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로단은 말했다; “개인이기 위해서는, 하느님은 자신과 접촉하는 자들이 충분히 납득되기 시작하도록 그 자신을 허용할 수 있는, 영(靈) 교통의 상징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무한하고 영원하며, 모든 다른 창조체들의 창조자이니까, 이 말은 동등성의 존재로서는 하느님은 우주에서 혼자이시라는 것이다.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 그와 동등한 자로서 교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느님은 정말로 모든 개인성의 근원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자체로서 그는 개인성에 대하여 초월하고 있으며, 이는 창조자가 창조체 위에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25 161:1.2 성격이라는 사실은 동등한 존재들, 공감하여 이해할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 충분히 서로 교통한다는, 공존하는 사실에 달려 있다고 로단은 주장했다. 로단이 말했다: “성격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와 접촉하는 자들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이 교통하는 상징을 가져야 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ㆍ영원하며, 모든 다른 존재의 창조자이니까, 따라서 동등한 존재에 관하여 말하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혼자이라. 그와 동등한 이가 아무도 없고, 동등한 이로서 그가 함께 교통할 분이 하나도 없느니라. 하나님은 정말로 모든 성격의 근원일지 모르지만, 그런 분으로서 창조자가 지음받은 자 위에 초월하여 계시는 것 같이, 하나님은 성격을 초월하느니라.”
1955 161:1.3 This contention greatly troubled Thomas and Nathaniel, and they had asked Jesus to come to their rescue, but the Master refused to enter into their discussions. He did say to Thomas: “It matters little what idea of the Father you may entertain as long as you are spiritually acquainted with the ideal of his infinite and eternal nature.”
2000 161:1.3 이 주장은 토마스와 나다니엘을 크게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구조하러 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는 그 토론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귀띔해 주기는 하였다: “너희가 아버지의 이상적인 무한ㆍ영원한 성품을 영적으로 숙지하는 한, 아버지에 대하여 너희가 무슨 개념을 품는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2001 CM 161:1.3 이 주장에, 도마와 나다니엘은 아주 곤혹스럽게 됐고, 예수께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토론에 참견하려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했다:“너희가 아버지의 무한하고 영원한 이상적 본성에 영적으로 정통하는 한, 너희가 그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갖는가 하는 것은 거의 문제되지 않는다.”
2007 URKA 161:1.3 이 주장에 도마와 나다니엘은 아주 곤혹스러워졌으며, 예수께 와서 구조해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주(主)는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기를 거절하였다. 예수는 도마에게 말해 주었다: “너희가 무한하고 영원한 하느님 본성에 대한 이상을 영적으로 깊이 알고 있는 한, 너희가 품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관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25 161:1.3 이 주장은 토마스와 나다니엘을 크게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구조하러 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는 그 토론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귀띔해 주기는 하였다: “너희가 아버지의 이상인 무한ㆍ영원한 성품을 영적으로 숙지하는 한, 아버지에 대하여 너희가 무슨 개념을 품는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1955 161:1.4 Thomas contended that God does communicate with man, and therefore that the Father is a person, even within the definition of Rodan. This the Greek rejected on the ground that God does not reveal himself personally; that he is still a mystery. Then Nathaniel appealed to his own personal experience with God, and that Rodan allowed, affirming that he had recently had similar experiences, but these experiences, he contended, proved only the reality of God, not his personality.
2000 161:1.4 하나님은 사람과 교통하며, 따라서 로단의 정의(定義)를 쓰더라도 아버지는 성격자라고 토마스는 주장했다. 이것을 그리스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몸소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직도 신비라는 이유로 물리쳤다. 그리고 나서 나다니엘은 자기가 몸소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예를 들어 호소했다. 로단은 그가 요즈음에 비슷한 체험을 가진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이를 인정했지만, 이런 체험은 오직 하나님이 실체임을 증명할 뿐이고 성격임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2001 CM 161:1.4 도마는, 하나님이 사람과 의사소통 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인격자시며, 로단의 설명에도 물론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친히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것과;하나님은 여전히 신비한 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서 이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나다니엘은, 자신이 몸소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예로 들어 호소했는데, 로단도 최근에 비슷한 체험을 했다고 동의했으나, 이 체험은 하나님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실체만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7 URKA 161:1.4 도마는 하느님이 사람과 교통을 하고, 따라서 로단의 정의(定意)에 따른다고 해도, 아버지는 개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인은 이것을 하느님이 자신을 친히 개인성을 계시하지 않는다는 것; 하느님은 여전히 신비라는 것을 근거로 물리쳤다. 그러자 나다니엘이 하느님과 가진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호소하며 다시 반론하자, 로단도 자신이 최근에 비슷한 체험이 있다고 단언하며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그는 이들 체험이 기껏해야 하느님의 실체를 증명한 것이며 그의 개인성을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2025 161:1.4 하나님은 사람과 교통하며, 따라서 로단의 정의(定義)를 써도 아버지는 성격자라고 토마스는 주장했다. 이것을 그리스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몸소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직도 신비라는 이유로 물리쳤다. 다음에 나다니엘은 자기가 몸소 하나님을 체험한 것을 예를 들어 호소했다. 로단은 그가 요즈음에 비슷한 체험을 가진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이를 인정했지만, 이런 체험은 오직 하나님이 실체임을 증명할 뿐이고 성격임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955 161:1.5 By Monday night Thomas gave up. But by Tuesday night Nathaniel had won Rodan to believe in the personality of the Father, and he effected this change in the Greek’s views by the following steps of reasoning:
2000 161:1.5 월요일 밤이 되자 토마스는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화요일 밤이 되어서, 나다니엘은 로단이 아버지가 성격을 가진 분임을 믿도록 설득했고, 다음 단계의 논리로 그리스인의 관점을 바꾸게 하였다:
2001 CM 161:1.5 월요일 밤이 되자 도마는 포기했다. 그러나 화요일 밤에, 나다니엘이 로단을 설복시켜서 아버지가 인격을 지니신 분임을 믿게 했으며, 다음과 같은 추론{推論} 단계로 이 그리스인의 관점을 바꾸기에 성공했다:
2007 URKA 161:1.5 월요일 밤이 되자 도마는 포기하였다. 그러나 화요일 밤이 되어서, 나다니엘이 로단을 이기고 아버지의 개인성을 믿게 하였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논리단계에 따라서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2025 161:1.5 월요일 밤이 되자 토마스는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화요일 밤이 되어서, 나다니엘은 로단이 아버지가 성격을 가진 분임을 믿도록 설득했고, 다음 단계의 논리로 그리스인의 관점을 바꾸게 하였다:
1955 161:1.6 1. The Father in Paradise does enjoy equality of communication with at least two other beings who are fully equal to himself and wholly like himself—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In view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the Greek was compelled to concede the personality possibility of the Universal Father. (It was the later consideration of these discussions which led to the enlarged conception of the Trinity in the minds of the twelve apostles. Of course, it was the general belief that Jesus was the Eternal Son.)
2000 161:1.6 1.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는 적어도 다른 두 존재와 동등하게 교통하며, 이들―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은 자신과 완전히 대등하고 자신과 온전히 비슷하다. 삼위일체 교리에 비추어서, 그리스인은 우주의 아버지가 성격자일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토론을 후일에 고려한 것은 열두 사도의 머리 속에, 확대된 삼위일체 개념으로 이끌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가 영원한 아들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었다).
2001 CM 161:1.6 1. 낙원에 계신 아버지는 적어도 --영원 아들과 무한 영-- 두 분의 다른 존재와 대등한 소통을 누리시며, 이 두 분은 그와 온전히 동등하고 전적으로 비슷하시다. 삼위일체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그리스인은 우주 아버지가 인격일 가능성을 할 수 없이 인정하게 됐다. (이런 논의가 후일에 고려됨으로, 열두 사도의 정신 속에서 삼위일체 개념이 확대됐다. 물론, 일반적으로 예수가 영원 아들이라고 믿었다.)
2007 URKA 161:1.6 1.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는 적어도 다른 두 존재, 자신과 충분하게 동등하고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같은─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靈)─두 존재와 교통에서의 동등성을 즐기고 있다. 삼위일체 교리의 관점에서, 그리스인은 우주 아버지의 개인성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토론에 대하여 나중에 가졌던 고려가 열 두 사도들의 마음속에서 삼위일체의 확대된 개념으로 이끌었다. 물론, 예수가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었다.)
1955 161:1.7 2. Since Jesus was equal with the Father, and since this Son had achieved the manifestation of personality to his earth children, such a phenomenon constituted proof of the fact, and demonstration of the possibility, of the possession of personality by all three of the Godheads and forever settled the question regarding the ability of God to communicate with man and the possibility of man’s communicating with God.
2000 161:1.7 2. 예수가 아버지와 대등하니까, 그리고 이 아들이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인격을 드러내 보이는 일을 해냈으므로, 그러한 현상은 세 신격(神格)이 모두 성격을 소유한다는 사실과 또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명이 되며, 하나님이 사람과 교통하는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영원한 해답을 준다.
2001 CM 161:1.7 2. 예수께서 아버지와 동등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아들이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인격을 형태화시켰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세 하나님 모두가 인격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의 증거이자 그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이 사람과 의사소통하실 수 있는 역량을 지니셨는가,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영원히 해결했다.
2007 URKA 161:1.7 2. 예수가 아버지와 동등하니까, 그리고 이 아들이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개인성의 현시활동을 성취했으니까, 그러한 현상은 사실의 증명, 그리고 가능성의 실증, 신격(神格)의 셋 모두에 의한 개인성 소유에 대한 증명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사람과 교통하는 하느님의 능력과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과 교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언제까지나 해결한 것이다.
2025 161:1.7 2. 예수가 아버지와 대등하니까, 그리고 이 아들이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인격을 드러내 보이는 일을 해냈으므로, 그러한 현상은 세 신격(神格)이 모두 성격을 소유한다는 사실과 또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명이 되며, 하나님이 사람과 교통하는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영원한 해답을 준다.
1955 161:1.8 3. That Jesus was on terms of mutual association and perfect communication with man; that Jesus was the Son of God. That the relation of Son and Father presupposes equality of communication and mutuality of sympathetic understanding; that Jesus and the Father were one. That Jesus maintained at one and the same time understanding communication with both God and man, and that, since both God and man comprehended the meaning of the symbols of Jesus’ communication, both God and man possessed the attributes of personality in so far as the requirements of the ability of intercommunication were concerned. That the personality of Jesus demonstrated the personality of God, while it proved conclusively the presence of God in man. That two things which are related to the same thing are related to each other.
2000 161:1.8 3. 예수가 사람과 서로 교제하고 완전히 교통하는 사이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동등하게 교통하고 같은 감정으로 서로 이해하는 것을 전제(前提)로 한다,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예수는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양쪽과 이해하면서 교통을 유지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양자가 예수가 교통하는 상징의 뜻을 이해하니까, 서로 교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 조건이 관계되는 한,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성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격을 보여주며, 한편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똑같은 것에 관련된 두 가지는 서로 관계된다.
2001 CM 161:1.8 3. 예수는 사람과 상호 연합하고 완전히 의사소통하는 관계에 있으며;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동등한 대화와, 공감적{共感的}으로 이해하는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며;예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것. 예수께서는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양쪽과 이해하면서 대화를 지속하고, 예수께서 대화에 사용한 상징의 의미를, 하나님과 사람 모두가 납득하기 때문에, 상호 의사소통 역량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점을 고려하는 면에서, 하나님과 사람 양쪽이 인격 속성을 소유한다는 것. 예수의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고, 한편 사람 속에 하나님이 현존하심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는 것. 동일한 것에 관계된 두 가지 역시 서로 관계있다는 것.
2007 URKA 161:1.8 3. 저 분 예수는 사람과 상호-연관의 관계와 완전한 교통의 관계를 맺었다; 그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그 관계는, 교통에서의 동등성과, 깊이 공감하는 납득에서의 상호성을 전제로 한다; 저 분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였다. 저 분 예수는 하느님과의 그리고 사람과의 교통을 동시적으로 납득하였으며, 예수가 교통에 사용한 상징의 의미를 하느님과 사람 모두가 이해하였기 때문에, 상호 교통하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관계되는 필요성을 고려해 볼 때, 하느님과 사람 둘 모두 개인성의 속성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분 예수의 개인성은 하느님의 개인성을 실증하였으며, 동시에 그것은 사람 속에 하느님이 현존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같은 일에 관계되어있는 두 가지 일들은 서로 간에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25 161:1.8 3. 예수가 사람과 서로 교제하고 완전히 교통하는 사이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동등하게 교통하고 같은 감정으로 서로 이해하는 것을 전제(前提)로 한다,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1]. 예수는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 양쪽과 이해하면서 교통을 유지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양자가 예수가 교통하는 상징의 뜻을 이해하니까, 서로 교통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 조건이 관계되는 한,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성격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격을 보여주며, 한편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똑같은 것에 관련된 두 가지는 서로 관계된다.
1955 161:1.9 4. That personality represents man’s highest concept of human reality and divine values; that God also represents man’s highest concept of divine reality and infinite values; therefore, that God must be a divine and infinite personality, a personality in reality although infinitely and eternally transcending man’s concept and definition of personality, but nevertheless always and universally a personality.
2000 161:1.9 4. 인격은 인간적 실체와 신다운 가치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또한 신다운 실체와 무한한 가치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개념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답고 무한한 성격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비록 사람의 인격 개념 및 정의(定義)를 무한히, 영원히 뛰어넘는 성격이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보편적으로 성격이다.
2001 CM 161:1.9 4. 인격은, 인간의 실체와 신성한 가치에 대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 개념에 해당되며;하나님 역시, 신성한 실체와 무한한 가치에 대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 개념을 나타내며;그러므로, 신성하고 무한한 인격, 즉 사람의 인격 개념과 정의를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초월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실제 인격이실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항상 보편적으로 인격이시라는 것.
2007 URKA 161:1.9 4. 저 분 개인성은 인간 실체와 신성한 가치들에 대하여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저 분 하느님 역시 신성한 실체와 무한한 가치들에 대하여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 분 하느님은, 개인성에 대한 사람의 개념과 정의(定意)를 무한하게 그리고 영원하게 초월하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의 신성하며 무한한 개인성, 실체로서의 개인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언제나 그리고 우주적인 개인성이 틀림없다.
2025 161:1.9 4. 인격은 인간적 실체와 신다운 가치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개념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또한 신다운 실체와 무한한 가치에 대하여 사람이 가진 최고의 개념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답고 무한한 성격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비록 사람의 인격 개념 및 정의(定義)를 무한히, 영원히 뛰어넘는 성격이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보편적으로 성격이다.
1955 161:1.10 5. That God must be a personality since he is the Creator of all personality and the destiny of all personality. Rodan had been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teaching of Jesus, “Be you therefor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2000 161:1.10 5. 하나님이 모든 성격의 창조자요 모든 성격의 운명이니까, 하나님은 성격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하는 예수의 가르침에 로단은 이전에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다.
2001 CM 161:1.10 5. 하나님은, 모든 인격의 창조주이고 모든 인격의 운명이기 때문에, 인격이실 수밖에 없다는 것. 로단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막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2007 URKA 161:1.10 5. 저 분 하느님은 모든 개인성의 창조자이시고 모든 개인성의 운명이기 때문에 하나의 개인성이어야만 한다. 로단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의해 막대한 영향을 받았었다.
1955 161:1.11 When Rodan heard these arguments, he said: “I am convinced. I will confess God as a person if you will permit me to qualify my confession of such a belief by attaching to the meaning of personality a group of extended values, such as superhuman, transcendent, supreme, infinite, eternal, final, and universal. I am now convinced that, while God must be infinitely more than a personality, he cannot be anything less. I am satisfied to end the argument and to accept Jesus as the personal revelation of the Father and the satisfaction of all unsatisfied factors in logic, reason, and philosophy.”
2000 161:1.11 이 여러 논점을 듣자, 로단이 말했다: “확신이 드는구나. 초인간ㆍ초월ㆍ최상, 무한ㆍ영원ㆍ최종, 그리고 보편성과 같은 연장된 가치들을 성격의 의미에 붙여서, 그런 믿음에 대하여 나의 고백을 제한해도 된다면, 하나님이 성격자임을 나는 고백하겠노라. 하나님이 성격보다는 무한히 크심이 틀림없지만, 성격보다 작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확신하노라. 논쟁을 그만두고, 예수가 아버지가 몸소 계시된 것이요, 예수가 논리ㆍ이성ㆍ철학에서 충족되지 않은 모든 요소를 충족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나는 만족하노라.”
2001 CM 161:1.11 이 논증을 들은 로단이 말했다:“내가 이제 확신한다. 그런 믿음에 대해, 확대된 여러 가치, 즉 초인간, 초월, 최상, 무한, 영원, 최종, 그리고 보편성 등을 인격의 의미에 추가해서 내가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허용한다면, 나는 하나님이 인격자시라고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인격 이상의 분이심에 틀림없지만, 인격 이하의 존재가 되실 수 없음을 나는 이제 확신한다. 나는 이 논증을 마무리하고, 예수는 아버지가 몸소 계시된 분이요, 논리와 이성 및 철학에서 충족되지 못한 모든 요소를 충족시키는 분임을 받아들이는 데 만족한다.”
2007 URKA 161:1.11 이들 주장을 들었을 때, 로단은 말했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만약 여러분이 내게, 그처럼 초인간적, 초월의, 최극의, 무한한, 영원한, 최종적 그리고 우주적인, 확대된 가치들의 집단을 개인성의 의미에 덧붙이는 것으로, 어떤 그러한 믿음에 대한 나의 고백에 자격을 갖추도록 허락해 준다면, 나는 하느님은 하나의 개인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 개인성보다는 무한히 크심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는 그 이하의 그 어떤 것일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예수를 아버지의 개인적 계시로서 그리고 논리와 이성 그리고 철학의 만족되지 못한 모든 요소에 대한 만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리고 논쟁을 끝낸다는 것에 만족한다."
2025 161:1.11 이 여러 논점을 듣자, 로단이 말했다: “확신이 드는구나. 초인간ㆍ초월ㆍ최상, 무한ㆍ영원ㆍ최종, 그리고 보편성과 같은 연장된 가치들을 성격의 의미에 붙여서, 그런 믿음에 대하여 나의 고백을 제한해도 된다면, 하나님이 성격자임을 나는 고백하겠노라. 하나님이 성격보다는 무한히 크심이 틀림없지만, 성격보다 작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확신하노라. 논쟁을 그만두고, 예수는 아버지가 몸소 계시된 것이요, 예수가 논리ㆍ이성ㆍ철학에서 충족되지 않은 모든 요소를 충족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나는 만족하노라.”
2. THE DIVINE NATURE OF JESUS
2. 예수의 신다운 성품
2. 예수의 신성한 본성
2. 예수의 신성한 본성
2. 예수의 신다운 성품
1955 161:2.1 Since Nathaniel and Thomas had so fully approved Rodan’s view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re remained only one more point to consider, the teaching dealing with the divine nature of Jesus, a doctrine only so recently publicly announced. Nathaniel and Thomas jointly presented their views of the divine nature of the Master, and the following narrative is a condensed, rearranged, and restated presentation of their teaching:
2000 161:2.1 로단이 하늘나라 복음에 대하여 가진 견해를 나다니엘과 토마스가 아주 충분히 인정했으므로, 더 고려할 것이 오직 하나 남았는데, 즉 예수의 신다운 성품을 다루는 가르침, 겨우 최근에야 터놓고 선언한 신조이다.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주의 신다운 성품에 관하여 견해를 공동으로 발표했고, 다음 이야기는 그들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다시 정리하고 다시 적어 발표하는 것이다:
2001 CM 161:2.1 나다니엘과 도마는 천국 복음에 대한 로단의 견해에 온전히 동의했으나, 논의해야 할 것이 꼭 한 가지 더 남아있었는데, 아주 최근에야 공개적으로 발표된 교리, 즉 예수의 신성한 본성에 대한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다. 나다니엘과 도마는 주님의 신성한 본성에 대해 공통 견해를 발표했는데, 그들의 가르침이 제시하는 것을, 요약해서 다시 정리하고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2007 URKA 161:2.1 나다니엘과 도마는 왕국 복음에 대한 로단의 견해에 충분히 인정하였지만, 더 고려해야 할 것이 꼭 한 가지 남았는데, 아주 최근에 대중에게 선언된 교리인, 예수의 신성한 본성을 다루는 가르침이었다. 나다니엘과 도마는 주(主)의 신성한 본성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공동으로 제시하였고, 다음의 이야기는 그들 가르침이 요약, 재정리, 재구성되어진 제시이다:
2025 161:2.1 로단이 하늘나라 복음에 대하여 가진 견해를 나다니엘과 토마스가 아주 충분히 인정했으므로, 더 고려할 것이 오직 하나 남았는데, 즉 예수의 신다운 성품을 다루는 가르침, 겨우 최근에야 터놓고 선언한 신조이다.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주의 신다운 성품에 관하여 견해를 공동으로 발표했고, 다음 이야기는 그들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다시 정리하고 다시 적은 발표이다:
1955 161:2.2 1. Jesus has admitted his divinity, and we believe him. Many remarkable things have happened in connection with his ministry which we can understand only by believing that he is the Son of God as well as the Son of Man.
2000 161:2.2 1. 예수는 그의 신성(神性)을 이미 인정했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사람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일이 그의 사명과 관련하여 일어났다.
2001 CM 161:2.2 1.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성을 인정했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예수께서 사역하는 중에 놀랄만한 일이 많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써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2007 URKA 161:2.2 1. 예수는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예수의 사명활동과 관련하여, 우리가 그를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오직 납득할 수 있는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2025 161:2.2 1. 예수는 그의 신성(神性)을 이미 인정했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사람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어야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일이 그의 사명과 관련하여 일어났다.
1955 161:2.3 2. His life association with us exemplifies the ideal of human friendship; only a divine being could possibly be such a human friend. He is the most truly unselfish person we have ever known. He is the friend even of sinners; he dares to love his enemies. He is very loyal to us. While he does not hesitate to reprove us, it is plain to all that he truly loves us. The better you know him, the more you will love him. You will be charmed by his unswerving devotion. Through all these years of our failure to comprehend his mission, he has been a faithful friend. While he makes no use of flattery, he does treat us all with equal kindness; he is invariably tender and compassionate. He has shared his life and everything else with us. We are a happy community; we share all things in common. We do not believe that a mere human could live such a blameless life under such trying circumstances.
2000 161:2.3 2. 일생동안 그와 우리의 관계는 인간 우정의 이상(理想)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오직 신다운 존재가 아마도 그러한 인간 친구일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일찍이 알게 된 가운데 참으로 가장 이기심 없는 사람이다. 죄인에게도 친구이고, 감히 적을 사랑한다. 그는 우리에게 무척 충실하다. 서슴지 않고 우리를 꾸짖지만, 그가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모두에게 명백하다. 사람이 그를 잘 알수록, 더욱 그를 사랑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그의 헌신적 태도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 여러 해 동안 내내, 그는 충실한 친구였다. 비위 맞추는 말을 전혀 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똑같이 친절하게 다루며, 변함없이 부드럽고 동정심이 있다. 그의 인생과 모든 다른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요, 무엇이나 공동으로 함께 쓴다. 우리는 그렇게 벅찬 상황 밑에서 한낱 인간이 그런 티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2001 CM 161:2.3 2. 우리와 관련된 그의 생애는 인간 우정의 이상{理想}을 예증하며;오직 신성한 존재만이 그런 인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알아온 사람 중에서 가장 참되게 이타적인 인격자다. 죄인조차 친구로 삼으며;원수도 사랑한다. 그는 우리에게 매우 충실하다. 주저함 없이 우리를 책망하지만,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심이 분명하다. 당신이 그를 알면 알수록, 그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의 변함없는 헌신에 매혹될 것이다. 최근 여러 해 동안 그의 사명을 우리가 납득하지 못함에도, 그는 여전히 충실한 친구였다. 아첨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우리 모두를 똑같이 친절히 대하며;언제나 부드럽고 인정이 많다. 자기 생애와 그 밖의 모든 것도 우리와 공유한다.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이며;모든 것을 공유한다. 우리는, 한낱 인간이 이렇게 괴로운 환경에서 그토록 흠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2007 URKA 161:2.3 2. 예수의 일생과 우리와의 관계적-연합은 인간 우정의 이상(理想)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아마도 그 같은 인간 친구는 오직 신성한 존재만이 그럴 수 있다. 예수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진실로 가장 사심-없는 분이시다. 예수는 죄인들조차도 친구로 삼으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매우 충성이시다. 우리를 책망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당신이 그를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의 변함없는 헌신에 매혹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임무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내내, 그는 신실한 친구였다. 비위맞추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를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며; 언제나 부드럽고 연민이 가득하다. 그의 일생뿐만 아니라 그 모든 다른 것들도 우리와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이다; 모든 것들을 공동으로 서로 나눈다. 우리는 그렇게 벅찬 상황아래에서 한낱 인간이 그렇게 티 없는 일생을 살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2025 161:2.3 2. 일생동안 그와 우리의 관계는 인간 우정의 이상(理想)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오직 신다운 존재가 아마도 그러한 인간 친구일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일찍이 알게 된 가운데 참으로 가장 이기심 없는 사람이다. 죄인에게도 친구이고, 감히 적을 사랑한다. 그는 우리에게 무척 충실하다. 서슴지 않고 우리를 꾸짖지만, 그가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모두에게 명백하다. 사람이 그를 잘 알수록, 더욱 그를 사랑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는 그의 헌신적 태도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 여러 해 동안 내내, 그는 충실한 친구였다. 비위 맞추는 말을 전혀 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똑같이 친절하게 다루며, 변함없이 부드럽고 동정심이 있다. 그의 인생과 모든 다른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요, 무엇이나 공동으로 함께 쓴다. 우리는 그렇게 벅찬 상황 밑에서 한낱 인간이 그런 티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1955 161:2.4 3. We think Jesus is divine because he never does wrong; he makes no mistakes. His wisdom is extraordinary; his piety superb. He lives day by day in perfect accord with the Father’s will. He never repents of misdeeds because he transgresses none of the Father’s laws. He prays for us and with us, but he never asks us to pray for him. We believe that he is consistently sinless. We do not think that one who is only human ever professed to live such a life. He claims to live a perfect life, and we acknowledge that he does. Our piety springs from repentance, but his piety springs from righteousness. He even professes to forgive sins and does heal diseases. No mere man would sanely profess to forgive sin; that is a divine prerogative. And he has seemed to be thus perfect in his righteousness from the times of our first contact with him. We grow in grace and in the knowledge of the truth, but our Master exhibits maturity of righteousness to start with. All men, good and evil, recognize these elements of goodness in Jesus. And yet never is his piety obtrusive or ostentatious. He is both meek and fearless. He seems to approve of our belief in his divinity. He is either what he professes to be, or else he is the greatest hypocrite and fraud the world has ever known. We are persuaded that he is just what he claims to be.
2000 161:2.4 3. 예수가 결코 그릇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놀랍게 지혜롭고,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하다. 날마다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맞추어 산다. 아버지의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니까 결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지만, 결코 우리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그는 변함 없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겨우 인간인 자가 일찍이 그러한 삶을 산다고 공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한 삶을 산다고 주장하고, 그가 그렇게 한다고 우리는 인정한다. 우리의 경건함은 뉘우침에서 생기지만 그의 경건함은 올바름에서 솟아나온다. 그는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기도 하며 병을 고친다. 한낱 인간이 멀쩡한 정신에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신의 특권이다. 우리가 그와 처음 접촉했을 때부터 그는 올바름 속에 이렇게 완전한 듯하였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그리고 진리를 아는 가운데 자라지만, 우리의 주는 처음부터 성숙한 올바름을 나타낸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모두가 예수 안에서 이 선한 요소를 알아본다. 그래도 그의 경건함은 결코 눈에 거슬리거나 꾸미는 듯하지 않다. 그는 온유하고도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그의 신성을 믿는 것을 승인하는 듯하다. 그는 공언하는 대로 그런 분이든지, 아니면 세상에 일찍이 알려진 가운데 최대의 위선자요 사기꾼이다. 그는 자기가 주장하는 대로 바로 그런 분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2001 CM 161:2.4 3. 우리는, 예수께서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기 때문에;실수하지 않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지혜는 특출나며;그의 경건성은 뛰어나다. 그는 매일 아버지 뜻에 완전히 일치되게 산다. 아버지의 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으므로, 범죄를 뉘우친 적이 없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지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우리에게 요구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가 변함없이 죄 없음을 믿는다. 인간에 불과한 자가 그런 삶을 산다고 공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완전한 삶을 살라고 요구했고, 우리는 그가 그러함을 안다. 우리의 경건성은 회개에서 생기지만, 그의 경건성은 정의에서 생긴다. 그는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하며, 병을 치유한다. 단순히 인간이라면, 죄를 용서한다고 제 정신으로 공언할 자가 없을 것이며;그것은 신의 특권이다.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때부터 그는 자신의 정당함에서 완전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지식과 은혜 속에서 자라지만, 우리 주님은 시작부터 의의 성숙함을 나타낸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모든 사람은 예수 안에서 이 선한 요소를 인지한다. 그럼에도 그의 경건성은 눈에 거슬리거나 허식적인 경우가 전혀 없었다. 그는 온유하면서도 대담하다. 우리가 그의 신성을 믿도록 용납하는 듯하다. 그는 자신이 선언한 그런 분이든지, 아니면 세상에 알려진 자들 가운데 최고 위선자요 사기꾼이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대로 바로 그런 분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2007 URKA 161:2.4 3. 우리는 예수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는 그가 결코 그릇되지 않으시고; 그 어떠한 오류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지혜는 비상하며; 그의 경건함은 더할 나위없다. 그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완전하게 사신다. 그는 아버지의 법을 어긴 적이 없기에, 나쁜 짓에 대한 뉘우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지만,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한결같이 죄가 없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으로서 일찍이 그러한 일생을 살려고 공언했던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한 일생을 산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그가 그렇게 한다고 인정한다. 우리의 경건함은 회개로부터 솟아 나오지만, 그의 경건함은 정의로움으로부터 솟아 나온다. 그는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며, 병을 고친다. 한낱 인간은 그 누구도 죄를 용서한다고 제 정신으로 공언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신성한 특권이다.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때로부터 그는 자신의 정의로움 속에서 그렇게 완전한 듯하였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그리고 진리의 지식 속에서 자라지만, 우리 주(主)는 시작 때부터 정의에서의 성숙을 내 보이신다. 모든 사람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예수 안에서 이들 선(善)의 요소들을 인지한다. 그의 경건함은 결코 눈에 거슬리거나 티가 나지 않는다. 그는 온유하면서 두려움이 없다. 그는 자신의 신성을 믿는 우리를 승인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선언한 바로 그런 분이든지, 아니면 세상에 일찍이 알려진 자 가운데, 최고의 위선자요 사기꾼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런 분이라고 확신한다.
2025 161:2.4 3. 예수가 결코 그릇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놀랍게 지혜롭고,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하다. 날마다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맞추어 산다. 아버지의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으니까 결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하지만, 결코 우리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그는 변함없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겨우 인간인 자가 일찍이 그러한 삶을 산다고 공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한 삶을 산다고 주장하고, 그가 그렇게 한다고 우리는 인정한다. 우리의 경건함은 뉘우침에서 생기지만 그의 경건함은 올바름에서 솟아나온다. 그는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기도 하며 병을 고친다. 한낱 인간이 멀쩡한 정신에 죄를 용서한다고 공언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신의 특권이다. 우리가 그와 처음 접촉했을 때부터 그는 올바름 속에 이렇게 완전한 듯하였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그리고 진실을 아는 가운데 자라지만, 우리의 주는 처음부터 성숙한 올바름을 나타낸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모두가 예수 안에서 이 선한 요소를 알아본다. 그래도 그의 경건함은 결코 눈에 거슬리거나 꾸미는 듯하지 않다. 그는 온유하고도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그의 신성을 믿는 것을 승인하는 듯하다. 그는 공언하는 대로 그런 분이든지, 아니면 세상에 일찍이 알려진 가운데 최대의 위선자요 사기꾼이다. 그는 자기가 주장하는 그대로 바로 그런 분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1955 161:2.5 4. The uniqueness of his character and the perfection of his emotional control convince us that he is a combination of humanity and divinity. He unfailingly responds to the spectacle of human need; suffering never fails to appeal to him. His compassion is moved alike by physical suffering, mental anguish, or spiritual sorrow. He is quick to recognize and generous to acknowledge the presence of faith or any other grace in his fellow men. He is so just and fair and at the same time so merciful and considerate. He grieves over the spiritual obstinacy of the people and rejoices when they consent to see the light of truth.
2000 161:2.5 4. 그의 독특한 성품, 그리고 감정의 완전한 자제는 그가 인간과 신(神)의 결합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 그는 인간적 필요가 있는 장면에 어김없이 반응하며, 사람의 고통이 그의 마음에 호소하지 않는 적이 없다. 그의 동정심은 육체의 고통, 정신의 고뇌, 또는 영적 슬픔에 똑같이 반응한다. 동료 인간에게 믿음이나 어떤 다른 장점이 있음을 재빨리 알아보고 너그럽게 인정한다. 아주 공정하고 공평하며, 동시에 무척 자비롭고 배려가 깊다. 사람들의 영적 완고함을 슬퍼하고, 사람들이 진리의 빛을 보는 것에 찬성할 때 기뻐한다.
2001 CM 161:2.5 4.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결합된 분이라는 확신을, 그의 성품의 독특함과 감정적 통제의 완벽성이 우리에게 심어준다. 그는 인간적 결핍이라는 비참한 처지에 틀림없이 응답하며;수난은 반드시 그에게 상달된다. 그의 동정심은, 육신의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 또는 영적 비애를 막론하고 똑같이 움직인다. 동료들에게 신앙 또는 다른 어떤 은혜가 있든지 재빨리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데 관대하다. 아주 정당하고 공평하면서 또한 동시에 매우 자비롭고 너그럽다. 사람의 영적 완고함을 한탄하면서도, 그들이 진리의 빛을 보고자 할 때에는 크게 기뻐한다.
2007 URKA 161:2.5 4. 그의 성격의 독특함과 자신의 감성 통제의 완전함은 우리에게 그가 인간성과 신성의 병합이라는 확신을 준다. 그는 인간적 필요가 있어야 할 장면에서 어김없이 반응하며; 고통이 그에게 호소되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 그의 연민은 육체의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 또는 영적 슬픔을 막론하고 똑같이 움직이신다. 그는, 신앙의 현존이나 동료인간에게 있는 그 어떤 자비도 곧바로 인지하고 그리고 넉넉하게 인정해 주신다. 그는 매우 공정하고 공평하며 동시에 매우 자비롭고 사려 깊다. 사람들의 영적 완고함을 슬퍼하고 그들이 진리의 빛 보기를 따를 때에 크게 기쁨을 향유한다.
2025 161:2.5 4. 그의 독특한 성품, 그리고 감정의 완전한 자제는 그가 인간과 신(神)의 결합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 그는 인간적 필요가 있는 장면에 어김없이 반응하며, 사람의 고통이 그의 마음에 호소하지 않는 적이 없다. 그의 동정심은 육체의 고통, 정신의 고뇌, 또는 영적 슬픔에 똑같이 반응한다. 동료 인간에게 믿음이나 어떤 다른 장점이 있음을 재빨리 알아보고 너그럽게 인정한다. 아주 공정하고 공평하며, 동시에 무척 자비롭고 배려가 깊다. 사람들의 영적 완고함을 슬퍼하고, 사람들이 진실의 빛을 보는 것에 찬성할 때 기뻐한다.
1955 161:2.6 5. He seems to know the thoughts of men’s minds and to understand the longings of their hearts. And he is always sympathetic with our troubled spirits. He seems to possess all our human emotions, but they are magnificently glorified. He strongly loves goodness and equally hates sin. He possesses a superhuman consciousness of the presence of Deity. He prays like a man but performs like a God. He seems to foreknow things; he even now dares to speak about his death, some mystic reference to his future glorification. While he is kind, he is also brave and courageous. He never falters in doing his duty.
2000 161:2.6 5. 그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알고 마음 속의 소망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불안한 것에 반드시 공감한다. 우리 인간의 감정을 모두 가진 듯하지만, 그 감정은 훌륭하게 영화롭게 되었다. 선을 뚜렷이 사랑하고 죄를 똑같이 미워한다. 신이 앞에 계심을 초인간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사람처럼 기도하지만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사물을 미리 아는 듯하다. 지금도 감히 그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앞날에 그가 영화롭게 된다고 어떤 신비스러운 말씀을 한다. 친절하지만, 또한 대담하고 용감하다. 의무를 다하는 데 결코 그르치지 않는다.
2001 CM 161:2.6 5. 그는 인간 정신 속에 있는 생각을 아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마음이 고대하는 것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의 불안정한 영성에 항상 동정한다. 우리의 모든 인간 감정을 그도 지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감정은 장엄하게 장식돼있다. 선을 굳세게 사랑하지만, 죄는 그만큼 미워한다. 신격 현존을 초인적으로 의식한다. 그도 사람처럼 기도하지만, 하나님처럼 이룬다. 어떤 것을 미리 아는 것처럼 보이며;이제는 자신의 죽음, 즉 자신이 장차 칭송 받을 것이라는 어떤 신비한 내용까지도 말씀한다. 친절한 동시에, 대담하고 용감하다. 그는 의무를 행하기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
2007 URKA 161:2.6 5. 그는 사람 마음의 생각들을 아시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 가슴의 소망을 납득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는 항상 우리의 고난 받는 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인간 감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감정은 장엄하게 영화롭다. 그는 선(善)을 강렬히 사랑하지만 그만큼 죄를 미워한다. 그는 신(神)의 현존에 대한 초인간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사람처럼 기도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처럼 실행한다. 그는 사물을 예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서슴없이 자신의 죽음, 앞날에 그가 영화롭게 되는 것에 대한 어떤 신비스런 사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친절하지만, 대담하고 용기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하는 데에서 결코 머뭇거린 적이 없다.
2025 161:2.6 5. 그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알고 마음 속의 소망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의 영이 불안한 것에 반드시 공감한다. 우리 인간의 감정을 모두 가진 듯하지만, 그 감정은 훌륭하게 영화롭게 되었다. 선을 뚜렷이 사랑하고 죄를 똑같이 미워한다. 신이 앞에 계심을 초인간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사람처럼 기도하지만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사물을 미리 아는 듯하다. 지금도 감히 그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앞날에 그가 영화롭게 된다고 어떤 신비스러운 말씀을 한다. 친절하지만, 또한 대담하고 용감하다. 의무를 다하는 데 결코 그르치지 않는다.
1955 161:2.7 6. We are constantly impressed by the phenomenon of his superhuman knowledge. Hardly does a day pass but something transpires to disclose that the Master knows what is going on away from his immediate presence. He also seems to know about the thoughts of his associates. He undoubtedly has communion with celestial personalities; he unquestionably lives on a spiritual plane far above the rest of us. Everything seems to be open to his unique understanding. He asks us questions to draw us out, not to gain information.
2000 161:2.7 6. 우리는 그가 초인간적 지식을 가진 현상에 항상 감명을 받는다. 미처 하루가 지나기 전에, 바로 그가 계신 데서 떨어진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주가 아는 것을 드러내는 무슨 일이 벌어진다. 그는 동료들의 생각을 또한 아는 듯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하늘 성격자들과 교통하며, 질문의 여지 없이 나머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영적 수준에서 산다. 독특하게 알아보는 그의 눈앞에 모든 것이 펼쳐진 듯하다. 그는 우리와 대화하려고 묻는 것이지, 정보를 캐내려고 묻지 않는다.
2001 CM 161:2.7 6. 우리는 그의 초인적 지식의 현상에 끊임없이 감동받는다. 주님은, 자신이 몸소 계시지 않는 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음을, 거의 매일 드러낸다. 또한 동역자들의 생각을 아는 것 같다. 천상의 인격체들과 교류하는 것이 분명하며;확실히 우리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영적 수준에서 산다. 그의 특유한 이해력은 무엇이든지 통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우리에게 질문하는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2007 URKA 161:2.7 6. 우리는 그의 초인간적 지식을 나타내는 현상에 끊임없이 감동을 받는다. 주(主)가 자신 앞에 즉시 현존하지 않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어떤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난다. 또한 그는 자기 연관-동료들의 생각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천상의 개인성들과 영적으로 밀접한 교제를 가지시는 것이 분명하며;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머무르는 곳보다 위로 한참 높은 영적 수준에서 살고 있다. 그가 특유하게 납득하고 있는 곳에 모든 것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화에 이끌려 나오게 하려고 질문한다.
2025 161:2.7 6. 우리는 그가 초인간적 지식을 가진 현상에 항상 감명을 받는다. 미처 하루가 지나기 전에, 바로 그가 계신 데서 떨어진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주가 아는 것을 드러내는 무슨 일이 벌어진다. 그는 동료들의 생각을 또한 아는 듯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하늘 성격자들과 교통하며, 질문의 여지없이 나머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영적 수준에서 산다. 독특하게 알아보는 그의 눈앞에 모든 것이 펼쳐진 듯하다. 그는 우리와 대화하려고 묻지, 정보를 캐내려고 묻지 않는다.
1955 161:2.8 7. Recently the Master does not hesitate to assert his superhumanity. From the day of our ordination as apostles right on down to recent times, he has never denied that he came from the Father above. He speaks with the authority of a divine teacher. The Master does not hesitate to refute the religious teachings of today and to declare the new gospel with positive authority. He is assertive, positive, and authoritative. Even John the Baptist, when he heard Jesus speak, declared that he was the Son of God. He seems to be so sufficient within himself. He craves not the support of the multitude; he is indifferent to the opinions of men. He is brave and yet so free from pride.
2000 161:2.8 7. 요즘에 주는 자기의 초인간성을 서슴지 않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도로서 세움받은 날부터 바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결코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는 신다운 선생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한다. 주는 서슴지 않고 오늘날 종교 선생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논박하고, 분명한 권위를 가지고 새 복음을 선포한다. 그는 주장을 내세우며, 적극적이고 권위가 있다. 세례자 요한조차 예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마음 속에 아주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군중의 지지(支持)를 갈망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용감해도 도무지 자만이 없다.
2001 CM 161:2.8 7. 주님은 최근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인간성을 담대히 증거한다. 우리가 사도로서 안수 받은 날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위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왔음을 부인한 적이 없다. 신성한 교사의 권위로 말씀한다. 주님은 오늘날의 종교적 교훈의 잘못을 담대히 지적하고, 적극적 권위로 새 복음을 주저하지 않고 선포한다. 단호하고 적극적이고 권위가 있다. 세례 요한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부족함이 아주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의 지지를 갈구하지 않으며;사람의 의견에 개의치 않는다. 그는 용감하면서도 자존심과는 거리가 멀다.
2007 URKA 161:2.8 7. 주(主)는 최근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超)인간성을 서슴지 않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도로서 임명 받은 날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자신이 위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것을 부인한 적이 없으시다. 그는 신성한 교사의 권한으로 말씀한다. 주(主)는 오늘날의 종교적 가르침들의 잘못을 증명하고 적극적인 권한으로 새로운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단호하고 적극적이시며 권위가 있으시다. 세례자 요한도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였다. 그는 자신으로서 너무나도 충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사람들의 의견에 개의치 않으신다. 그는 용감하면서도 자부심과는 거리가 멀다.
2025 161:2.8 7. 요즘에 주는 자기의 초인간성을 서슴지 않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도로서 세움받은 날부터 바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결코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는 신다운 선생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한다. 주는 서슴지 않고 오늘날 종교 선생들의 종교적 가르침을 논박하고, 분명한 권위를 가지고 새 복음을 선포한다. 그는 주장을 내세우며, 적극적이고 권위가 있다. 세례자 요한조차 예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3]. 그는 마음 속에 아주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군중의 지지(支持)를 갈망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용감해도 도무지 자만이 없다.
1955 161:2.9 8. He constantly talks about God as an ever-present associate in all that he does. He goes about doing good, for God seems to be in him. He makes the most astounding assertions about himself and his mission on earth, statements which would be absurd if he were not divine. He once declared, “Before Abraham was, I am.” He has definitely claimed divinity; he professes to be in partnership with God. He well-nigh exhausts the possibilities of language in the reiteration of his claims of intimate association with the heavenly Father. He even dares to assert that he and the Father are one. He says that anyone who has seen him has seen the Father. And he says and does all these tremendous things with such childlike naturalness. He alludes to his association with the Father in the same manner that he refers to his association with us. He seems to be so sure about God and speaks of these relations in such a matter-of-fact way.
2000 161:2.9 8. 무슨 일을 행하든 그는 늘 계시는 동료인 하나님에 대하여 항상 이야기한다. 좋은 일 하는 데 몰두하며, 이는 하나님이 안에 계신 듯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그의 사명에 대하여 대단히 놀라운 주장을 하며, 그런 주장은 그가 신이 아니라면 터무니없다. 그는 한때 선언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노라.” 분명히 신성을 주장해 왔고 하나님과 동업자라고 공언한다. 하늘 아버지와 가까운 관계를 가졌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느라고 가능한 언어를 거의 다 동원한다. 감히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누구라도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한다.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이 엄청난 일을 모두 말하고 행한다. 그와 우리의 관계를 언급하는 바로 그런 식으로 그와 아버지의 관계를 비쳐 말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주 확신하는 듯하고, 그런 사무적인 방법으로 이 관계들에 대하여 말한다.
2001 CM 161:2.9 8. 그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고 자주 말씀한다.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라도 하듯이 부지런히 선을 행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에 대해 가장 놀랄만한 주장, 즉 자신이 신성하지 않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말을 한다. 그가 언젠가 선언했다;“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다.” 신성을 확실히 주장하며;하나님과 동역하는 관계라고 공언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하늘 아버지와 긴밀하게 연합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어린아이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이 모든 엄청난 것들을 말씀하고 또한 행한다. 그와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바로 그런 방법으로,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암시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하나님에 관해 참으로 확신하는 것 같으며, 이런 관계를 사실적인 방법으로 말한다.
2007 URKA 161:2.9 8. 그는 하느님에 관하여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언제까지나-제시되어 있는 연관-동료로서 변함없이 이야기한다. 그는 자기 속에 하느님께서 계시기라도 한 듯이 부지런히 선을 행한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이 땅에서의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가장 대경실색할 주장을 하는데, 이것들은 그가 만일 신성하지 않았더라면 터무니없는 말이 되어야 할 진술들이다. 그는 언젠가 선언하였다, “아브라함이 있기도 전에, 나 이다.” 그는 신성을 명백하게 주장해 왔다; 하느님과 동반자관계에 있다고 공언한다. 그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친밀한 협동관계에 있다고 주장을 되풀이한다. 그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까지 주장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엄청난 일들을 마치 어린아이가 하는 그런 자연스러움으로 말하고 행한다. 그는 자신과 우리 사이의 관계적-연합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아버지와 가지는 자신의 관계적-연합을 넌지시 말한다. 그는 하느님에 관하여 너무나 확실해서 그래서 그러한 사실의-문제로서 이들 관계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5 161:2.9 8. 무슨 일을 행하든 그는 늘 계시는 동료인 하나님에 대하여 항상 이야기한다. 좋은 일 하는 데 몰두하며, 이는 하나님이 안에 계신 듯하기 때문이다[4][5].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그의 사명에 대하여 대단히 놀라운 주장을 하며, 그런 주장은 그가 신이 아니라면 터무니없다. 그는 한때 선언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노라
[6].” 분명히 신성을 주장해 왔고 하나님과 동업자라고 공언한다. 하늘 아버지와 가까운 관계를 가졌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느라고 가능한 언어를 거의 다 동원한다. 감히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7]. 누구라도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한다
[8].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이 엄청난 일을 모두 말하고 행한다. 그와 우리의 관계를 언급하는 바로 그런 식으로 그와 아버지의 관계를 비쳐 말한다
[9].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주 확신하는 듯하고, 그런 사무적인 방법으로 이 관계들에 대하여 말한다.
1955 161:2.10 9. In his prayer life he appears to communicate directly with his Father. We have heard few of his prayers, but these few would indicate that he talks with God, as it were, face to face. He seems to know the future as well as the past. He simply could not be all of this and do all of these extraordinary things unless he were something more than human. We know he is human, we are sure of that, but we are almost equally sure that he is also divine. We believe that he is divine. We are convinced that he i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2000 161:2.10 9. 기도(祈禱)하는 생활을 보면 그는 아버지와 바로 교통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가 드리는 기도를 조금 밖에 듣지 못했지만 몇 번 안 되는 이 기도는, 말하자면 그가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과 이야기함을 가리킬 것이다. 지난날 뿐 아니라 앞날을 아는 듯하다. 그가 인간을 넘는 무엇이 아니라면, 그는 단지 이 모든 것일 수 없고 이 모든 놀라운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가 사람임을 알고 그렇다고 확신하지만, 또한 신이라고 거의 똑같이 확신한다. 우리는 그가 신이라고 믿는다. 그가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한다.
2001 CM 161:2.10 9. 기도하는 생활을 보면, 그는 아버지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우리는 그의 기도를 거의 듣지 못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마치 얼굴을 대면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말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면, 이 모든 내용이 그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이 모든 신비한 일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그가 인간임을 잘 알며, 그렇다고 확신하는 만큼, 그가 또한 신성한 분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가 신이심을 믿는다. 우리는 그가 사람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한다.
2007 URKA 161:2.10 9. 그는 자신의 기도 생활 속에서 그의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교통을 나누시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의 기도를 아주 조금밖에 듣지 못하였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마치 얼굴을 대면한 것처럼 하느님과 말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알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아니라면, 이 모든 내용들이 그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이 모든 신비한 일들을 행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그가 인간이심을 잘 알며, 그것을 확신하는 만큼, 그가 또한 신성이심을 확신한다. 우리는 그가 신성임을 믿는다. 우리는 그가 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신한다.
2025 161:2.10 9. 기도(祈禱)하는 생활을 보면 그는 아버지와 바로 교통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가 드리는 기도를 조금 밖에 듣지 못했지만 몇 번 안 되는 이 기도는, 말하자면 그가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과 이야기함을 가리킬 것이다. 지난날만 아니라 앞날을 아는 듯하다. 그가 인간을 넘는 무엇이 아니라면, 그는 단지 이 모든 것일 수 없고 이 모든 놀라운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가 사람임을 알고 그렇다고 확신하지만, 또한 신이라고 거의 똑같이 확신한다. 우리는 그가 신이라고 믿는다. 그가 사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한다.
1955 161:2.11 When Nathaniel and Thomas had concluded their conferences with Rodan, they hurried on toward Jerusalem to join their fellow apostles, arriving on Friday of that week. This had been a great experience in the lives of all three of these believers, and the other apostles learned much from the recounting of these experiences by Nathaniel and Thomas.
2000 161:2.11 로단과 회의를 마치고 나서,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동료 사도들과 함께 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서둘러 갔고 그 주 금요일에 도착했다. 이 세 신자 모두의 생애에서 이것은 큰 체험이었다. 다른 사도들은 나다니엘과 토마스가 겪은 이 체험을 돌이켜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2001 CM 161:2.11 나다니엘과 도마는, 로단과 가진 회담을 끝내고 나서, 동료 사도들과 합세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급히 출발했고, 그 주 금요일에 도착했다. 이 토론은 이 세 신자 모두의 삶에서 큰 체험이 됐고, 다른 사도들은 이 체험에 대한 나다니엘과 도마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2007 URKA 161:2.11 나다니엘과 도마는 로단과의 토론을 끝내고 나서, 다른 사도들과 합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급히 출발하였으며, 그 주간의 금요일에 도착하였다. 이 토론은 이 세 신자들 모두의 삶 속에서 큰 체험이 되었으며, 다른 사도들은 이 체험들에 대한 나다니엘과 도마의 자세한 설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2025 161:2.11 로단과 회의를 마치고 나서,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동료 사도들과 함께 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서둘러 갔고 그 주 금요일에 도착했다. 이 세 신자 모두의 생애에서 이것은 큰 체험이었다. 다른 사도들은 나다니엘과 토마스가 겪은 이 체험을 돌이켜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1955 161:2.12 Rodan made his way back to Alexandria, where he long taught his philosophy in the school of Meganta. He became a mighty man in the later affair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was a faithful believer to the end of his earth days, yielding up his life in Greece with others when the persecutions were at their height.
2000 161:2.12 로단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고, 거기서 오랫동안 메간타 학교에서 그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후일의 하늘나라 업무에서 막강한 사람이 되었다. 땅에서 마지막 날까지 충실한 신자였고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목숨을 바쳤다.
2001 CM 161:2.12 로단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고, 거기에 메간타 학교에서 본인의 철학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그는 하늘 나라를 위한 후대의 직무에서 위대한 인물이 됐으며;이 땅에 사는 마지막 날까지 신실한 신자였고,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다른 이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죽었다.
2007 URKA 161:2.12 로단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고, 그곳에 있는 메간타의 학교에서 본인의 철학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그는 하늘의 왕국의 후기 관련사들에서 막강한 사람이 되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끝까지 신실한 신자였고, 박해가 극에 달하였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2025 161:2.12 로단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고, 거기서 오랫동안 메간타 학교에서 그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후일의 하늘나라 업무에서 막강한 사람이 되었다. 땅에서 마지막 날까지 충실한 신자였고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에서 목숨을 바쳤다.
3. JESUS’ HUMAN AND DIVINE MINDS
3. 예수의 인간 지성과 신 지성
3. 예수의 인간 정신과 신성한 정신
3. 예수의 인간 그리고 신성한 마음들
3. 예수의 인간 지성과 신 지성
1955 161:3.1 Consciousness of divinity was a gradual growth in the mind of Jesus up to the occasion of his baptism. After he became fully self-conscious of his divine nature, prehuman existence, and universe prerogatives, he seems to have possessed the power of variously limiting his human consciousness of his divinity. It appears to us that from his baptism until the crucifixion it was entirely optional with Jesus whether to depend only on the human mind or to utilize the knowledge of both the human and the divine minds. At times he appeared to avail himself of only that information which was resident in the human intellect. On other occasions he appeared to act with such fullness of knowledge and wisdom as could be afforded only by the utilization of the superhuman content of his divine consciousness.
2000 161:3.1 신(神)이라는 의식은 예수가 세례 받을 때까지 머리 속에서 차츰차츰 자랐다. 자신의 신다운 성품, 인간이 되기 전의 존재, 우주 특권을 충분히 자의식하게 된 뒤에, 자신의 신성을 인간으로서 의식하는 것을 그는 여러 가지로 제한하는 능력을 가졌던 듯하다. 우리에게는, 그가 세례받은 때부터 십자가에 처형되기까지 오직 인간 지성에만 의존하든지 아니면 인간 및 신의 지성, 이 두 가지 지식을 이용하든지, 전적으로 예수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그는 오직 인간 지능에 거하는 정보만 이용하는 듯했다. 다른 경우에는 신의 의식에 있는 초인간적 내용을 이용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충만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그가 행동하는 듯했다.
2001 CM 161:3.1 신성을 의식{意識}함은, 예수께서 세례 받던 때까지 그의 정신 속에서 점차 자라갔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 인간-이전{以前} 현존, 그리고 우주 대권{大權}을 온전히 자아-의식한 후에, 인간으로서 자신이 신{神}임을 의식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제한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은 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오직 인간 정신에만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 정신과 신성한 정신 둘 다 사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맡겨졌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때로는 그가 인간 지능에 들어있는 정보만 사용한 듯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신성한 의식 가운데 초인적 내용물을 활용함으로써만 가능한, 아주 충만한 지혜와 지식으로 행동했음이 분명하다.
2007 URKA 161:3.1 신성에서의 의식은 그가 세례 받는 계기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마음속에서 점차적으로 자라갔다.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인간-이전의 실존(實在) 그리고 우주적 대권을 충분히 자아-의식한 후에, 자신의 신성에 대한 인간 의식을 여러 가지로 제한시키는 힘을 소유하게 된 것 같다.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후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오직 인간 마음에만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적이고 신성한 마음들 모두를 사용하실 것인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맡겨졌던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때로는 인간 지성 속에 있는 지식만을 사용한 듯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의 신성한 의식에서의 초인간적 내용을 이용함으로써만 잘 제공될 수 있는, 그러한 지혜와 지식의 충만함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2025 161:3.1 신(神)이라는 의식은 예수가 세례받을 때까지 머리 속에서 차츰차츰 자랐다. 자신의 신다운 성품, 인간이 되기 전의 존재, 우주 특권을 충분히 자의식하게 된 뒤에, 자신의 신다운 성품을 인간으로서 의식하는 것을 그는 다양하게 제한하는 능력을 가졌던 듯하다. 우리에게는, 그가 세례받은 때부터 십자가에 처형되기까지 오직 인간 지성에만 의존하든지, 아니면 인간 및 신의 지성, 이 두 가지 지식을 이용하든지, 전적으로 예수의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그는 오직 인간 지능에 거하는 정보만 이용하는 듯했다. 다른 경우에는 신의 의식에 있는 초인간적 내용을 이용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러한 충만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행동하는 듯했다.
1955 161:3.2 We can understand his unique performances only by accepting the theory that he could, at will, self-limit his divinity consciousness. We are fully cognizant that he frequently withheld from his associates his foreknowledge of events, and that he was aware of the nature of their thinking and planning. We understand that he did not wish his followers to know too fully that he was able to discern their thoughts and to penetrate their plans. He did not desire too far to transcend the concept of the human as it was held in the minds of his apostles and disciples.
2000 161:3.2 그가 신이라는 의식을 뜻대로 스스로 제한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그의 독특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사건에 대한 선견을 동료들에게 주지 않는 일이 흔했고, 동료들의 생각과 계획의 성질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한다. 우리가 이해하건대, 예수가 그들의 생각을 헤아리고 계획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을 추종자들이 너무 잘 알기를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도와 제자들이 머리 속에 지녔던, 인간의 개념을 너무 멀리 초월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2001 CM 161:3.2 우리는, 그가 자신의 신성에 대한 의식{意識}을 의지적으로 스스로 제한시키실 수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분의 독특한 업적을 이해할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가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동역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과,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의 본질을 알고 있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들의 사고{思考}를 간파할 수 있고 그들의 계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따르는 자들이 너무 많이 알게 되기를 그가 바라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그는, 사도와 제자들이 정신 속에 지닌 인간 개념을 너무 초월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2007 URKA 161:3.2 자신의 신성 의식을, 뜻대로, 자아-제한할 수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그의 독특한 행위들을 납득할 수 있다. 그는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선험지식을 자신의 연관-동료들에게 알리기를 보류하는 일이 빈번했고,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것의 본성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리가 납득하건대, 그가 그들의 생각을 식별할 수 있고 그들의 계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신의 추종자들이 너무 잘 아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마음 안에 깃드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개념을 너무 멀리 초월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2025 161:3.2 그가 신이라는 의식을 뜻대로 스스로 제한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여야 우리는 그의 독특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사건에 대한 선견을 동료들에게 주지 않는 일이 흔했고, 동료들의 생각과 계획의 성질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한다. 우리가 이해하건대, 예수가 그들의 생각을 헤아리고 계획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을 추종자들이 너무 잘 알기를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도와 제자들이 머리 속에 지녔던, 인간의 개념을 너무 멀리 초월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1955 161:3.3 We are utterly at a loss to differentiate between his practice of self-limiting his divine consciousness and his technique of concealing his preknowledge and thought discernment from his human associates. We are convinced that he used both of these techniques, but we are not always able, in a given instance, to specify which method he may have employed. We frequently observed him acting with only the human content of consciousness; then would we behold him in conference with the directors of the celestial hosts of the universe and discern the undoubted functioning of the divine mind. And then on almost numberless occasions did we witness the working of this combined personality of man and God as it was activated by the apparent perfect union of the human and the divine minds. This is the limit of our knowledge of such phenomena; we really do not actually know the full truth about this mystery.
2000 161:3.3 신으로서 자기의 의식(意識)을 스스로 제한하는 습관, 그리고 미리 알고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을 인간 동료들로부터 감추는 기술, 이 둘의 차이를 우리는 도무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가 이 두 가지 기술을 쓴다고 확신하지만, 우리는 어느 주어진 경우에 그가 어느 방법을 이용했는가 반드시 잘라서 말할 수 없다. 인간 의식에 들어 있는 내용만으로 그가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관찰했으며, 우주의 하늘 집단의 지도자들과 그가 회의하는 것을 보고, 의심할 여지 없이 신의 지성이 활동함을 헤아리곤 했다. 그리고 나서 거의 수없이 많은 경우에, 인간 및 신의 지성이 겉보기에 완전히 통일된 가운데 활성화되어, 이러한 사람과 하나님의 통합된 성격이 일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했다. 이것이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이다. 우리는 정말로 이 신비에 관하여 완전한 진실을 실제로 알지 못한다.
2001 CM 161:3.3 예수께서 본인의 신성한 의식을 스스로 제한시키는 습관, 그리고 미리 알고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을 인간 동역자들에게 숨기는 기법, 이 둘을 어떻게 구분할지, 우리는 아주 난감한 상태다. 우리는 그가 이 두 기법을 다 사용했다고 확신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마다 어떤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그가 인간 의식에 들어있는 내용물만 갖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했으며;그때 우리는, 주님이 천상의 무리의 지휘자들과 논의하는 것을 보고자 했고, 신성한 정신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음을 분간하려했다. 그리고 거의 무수한 많은 경우에, 인간 정신과 신성한 정신이 겉으로 보기에 완전히 결합된 가운데 활성화되어, 사람과 하나님의 혼합된 인격이 역사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이것이 그런 현상들에 대해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이며;이 신비에 관한 온전한 진리를 우리가 실제로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7 URKA 161:3.3 우리는 예수가 자신의 신성한 의식을 자아-제한하는 실천 관행과, 그의 인간 연관-동료들로부터 그의 예견지식과 생각을 헤아리는 것을 감추고 있는 그의 기법, 이 둘의 차이를 도무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가 이 두 가지의 기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확신하지만, 주어진 어떤 사례에서 어느 방법을 적용한 것인지, 우리는 항상 상술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우리는 의식에서의 인간적 내용만을 가지고 그가 행동하는 것을 자주 관찰했다; 그가 우주의 천상의 무리들의 지도자들과 회의하는 것을 목격하면, 그때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신성한 마음이 기능하고 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리고 나서 거의 수없이 많은 경우에, 인간 마음과 신성한 마음의 완전한 연합이 훤히 나타나는 것으로 활성화되면서, 그에 따라 사람과 하느님의 병합된 개인성이 일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이 그러한 현상들에 대한 우리 지식의 한계이다; 우리는 실재로 이 신비에 대한 충분한 진리를 실재로 알지 못한다.
2025 161:3.3 신으로서 자기의 의식(意識)을 스스로 제한하는 습관, 그리고 미리 알고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을 인간 동료들에게 감추는 기술, 이 둘의 차이를 우리는 도무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가 이 두 가지 기술을 쓴다고 확신하지만, 우리는 어느 주어진 경우에 그가 어느 방법을 이용했는가 반드시 잘라서 말할 수 없다. 인간 의식에 들어 있는 내용만으로 그가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관찰했으며, 우주의 하늘 집단의 지도자들과 그가 회의하는 것을 보고, 의심할 여지없이 신의 지성이 활동하는 것을 헤아리곤 했다. 그 다음에 거의 수없이 많은 경우에, 인간 및 신의 지성이 겉보기에 완전히 통일된 가운데 활성화되어, 이러한 사람과 하나님의 통합된 성격이 일하는 것을 우리는 구경했다. 이것이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이다. 우리는 정말로 이 신비에 관하여 완전한 진실을 실제로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