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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LAST TEACHING AT PELLA
제 169 편펠라에서 주신 마지막 가르침
제169편: 펠라에서 마지막 가르침
제 169 편: 펠라에서의 마지막 가르침
펠라에서 주신 마지막 가르침
1955 169:0.1 LATE on Monday evening, March 6, Jesus and the ten apostles arrived at the Pella camp. This was the last week of Jesus’ sojourn there, and he was very active in teaching the multitude and instructing the apostles. He preached every afternoon to the crowds and each night answered questions for the apostles and certain of the more advanced disciples residing at the camp.
2000 169:0.1 3월 6일 월요일 저녁 늦게, 예수와 열 사도는 펠라 캠프에 다다랐다. 이때는 거기서 예수가 머무르는 마지막 주간이었고, 그는 군중을 가르치고 사도들을 교육하는 데 매우 분주했다. 군중에게 매일 오후에 설교했고, 밤마다 사도들, 그리고 캠프에서 거하는 어떤 상급 제자들을 위하여 질문에 대답했다.
2001 CM 169:0.1 예수와 열 사도는, 3월 6일 월요일 늦은 저녁에 펠라 야영지에 도착했다. 이것은 예수께서 거기에 머문 마지막 주가 됐으며, 대중을 가르치고 사도들에게 설명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매일 오후에 무리에게 설교했고, 매일 밤에는, 야영지에 머무는 사도들 및 비교적 더 진보된 어떤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2007 URKA 169:0.1 예수와 열 명의 사도들은 3월 6일 월요일 늦은 저녁에, 펠라 야영지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예수가 그곳에 머무신 마지막 주가 되었으며, 군중들을 가르치고 사도들에게 설명하는 일에 매우 활발하였다. 매일 오후 무리들에게 설교하였고, 매일 밤에는 야영지에 머물고 있는 사도들과 특정한 상급 제자들을 위한 질문에 답변하였다.
2025 169:0.1 3월 6일 월요일 저녁 늦게, 예수와 열 사도는 펠라 캠프에 다다랐다. 이때는 거기서 예수가 머무르는 마지막 주간이었고, 그는 군중을 가르치고 사도들을 교육하는 데 매우 분주했다. 군중에게 매일 오후에 설교했고, 밤마다 사도들, 그리고 캠프에서 거하는 어떤 상급 제자들을 위하여 질문에 대답했다.
1955 169:0.2 Word regarding the resurrection of Lazarus had reached the encampment two days before the Master’s arrival, and the entire assembly was agog. Not since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had anything occurred which so aroused the imagination of the people. And thus it was at the very height of the second phase of the public ministry of the kingdom that Jesus planned to teach this one short week at Pella and then to begin the tour of southern Perea which led right up to the final and tragic experiences of the last week in Jerusalem.
2000 169:0.2 주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나사로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야영지에 이르렀고, 집회 전체가 흥분에 들떠 있었다. 5천 명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이렇게 자극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대중 봉사에서 둘째 단계의 바로 그 절정에 이르러, 예수는 짧은 이 한 주 동안 펠라에서 가르치고 다음에 페레아 남부의 여행을 시작하기로 계획했으며,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주에 마지막 비극(悲劇)의 체험까지 바로 이끌었다.
2001 CM 169:0.2 나사로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주님께서 도착하기 이틀 전에 그 야영지에도 전해졌고,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흥분했다. 5천 명을 먹인 사건 이후로, 사람의 상상력을 이처럼 자극하는 어떤 것도 발생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공적{公的}인 천국 직무에서 둘째 단계가 한창일 때, 펠라에서 이렇게 짧은 한 주 동안 가르친 다음,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주간{週間}의 마지막 비극적인 체험으로 바로 이어지는 남부 베레아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2007 URKA 169:0.2 나사로의 부활에 관한 소식이 주(主)께서 도착하기 이틀 전에 그 야영지에도 전해졌으며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였다. 5,000명을 먹인 사건 이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이처럼 자극하는 어떤 것도 발생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때 예수가 이 짧은 한 주 동안에 펠라에서의 가르치기로 계획하였던, 왕국의 대중적 사명활동의 두 번째 위상이 최고 정점에 달하였으며, 그 후에는 페레아의 남쪽으로 내려가셔서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비참한 체험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다.
2025 169:0.2 주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나사로가 부활했다는 소문이 야영지에 이르렀고, 집회 전체가 흥분에 들떠 있었다. 5천 명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이렇게 자극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대중 봉사에서 둘째 단계의 바로 그 절정에 이르러, 예수는 짧은 이 한 주 동안 펠라에서 가르치고 다음에 페레아 남부의 여행을 시작하기로 계획했으며,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주에 마지막 비극(悲劇)의 체험까지 바로 이끌었다.
1955 169:0.3 The Pharisees and the chief priests had begun to formulate their charges and to crystallize their accusations. They objected to the Master’s teachings on these grounds:
2000 169:0.3 바리새인과 주사제들은 여러 죄목을 작성하고 고발 사항을 구체화하는 일을 이미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 이유로 주의 가르침을 비난하였다:
2001 CM 169:0.3 바리새인과 수석 제사장들은 여러 혐의를 입안하고 기소내용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님의 교훈을 배척했다:
2007 URKA 169:0.3 바리새인들과 우두머리 사제들은 그들의 고소 내용들을 공식화하고 고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主)의 가르침들을 배척하였다:
2025 169:0.3 바리새인과 주사제들은 여러 죄목을 작성하고 고발 사항을 구체화하는 일을 이미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 이유로 주의 가르침을 비난하였다:
1955 169:0.4 1. He is a friend of publicans and sinners; he receives the ungodly and even eats with them.
2000 169:0.4 1. 그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다. 불경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아니 그들과 함께 먹기까지 한다.
2001 CM 169:0.4 1. 그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며;믿음 없는 자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함께 먹기까지 한다.
2007 URKA 169:0.4 1. 그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이다; 그는 악인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1955 169:0.5 2. He is a blasphemer; he talks about God as being his Father and thinks he is equal with God.
2000 169:0.5 2.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요,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자신이 하나님과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2001 CM 169:0.5 2.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이며;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2007 URKA 169:0.5 2.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이다;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고 하느님과 같다고 생각한다.
1955 169:0.6 3. He is a lawbreaker. He heals disease on the Sabbath and in many other ways flouts the sacred law of Israel.
2000 169:0.6 3. 그는 율법을 어기는 자이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다른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신성한 율법을 우롱한다.
2001 CM 169:0.6 3. 그는 율법을 어기는 자다. 안식일에 병을 치유하고, 이스라엘의 신성시되는 율법을 여러 다른 방법으로 조롱했다.
2007 URKA 169:0.6 3. 그는 법을 파괴하는 자이다. 그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며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율법을 조롱하였다.
1955 169:0.7 4. He is in league with devils. He works wonders and does seeming miracles by the power of Beelzebub, the prince of devils.
2000 169:0.7 4. 그는 악마들과 결탁하고 있다. 악마의 왕, 비엘세붑의 힘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고 겉보기에 기적으로 보이는 일을 행한다.
2001 CM 169:0.7 4. 그는 마귀들과 결탁했다. 마귀들 두목인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하고 그럴듯한 기적을 행한다.
2007 URKA 169:0.7 4. 그는 귀신들과 결탁하고 있다. 귀신들의 영주인 바알세블의 힘으로 기적을 행하고 그럴듯한 이적들을 행한다.
1. PARABLE OF THE LOST SON
1.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1. 잃어버린 아들 비유
1.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비유
1.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1955 169:1.1 On Thursday afternoon Jesus talked to the multitude about the “Grace of Salvation.” In the course of this sermon he retold the story of the lost sheep and the lost coin and then added his favorit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Said Jesus:
2000 169:1.1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군중에게 말씀했다. 이 설교를 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를 다시 했고, 그리고 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 방탕한 아들의 비유를 덧붙였다. 예수는 말했다:
2001 CM 169:1.1 목요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구원의 은혜”에 관하여 대중에게 말씀했다. 이 설교 도중에, 주님은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탕한 아들에 관한 비유를 더했다. 예수께서 말씀했다:
2007 URKA 169:1.1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군중들에게 “구원의 은혜”에 관하여 말씀하였다. 주(主)는 이 설교 속에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돈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 후에, 그가 좋아하는 돌아온 탕자 아들에 관한 비유를 더하였다. 예수는 말씀했다:
2025 169:1.1 목요일 오후에 예수는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군중에게 말씀했다. 이 설교를 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를 다시 했고, 다음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비유, 방탕한 아들의 비유를 덧붙였다. 예수는 말했다:
1955 169:1.2 “You have been admonished by the prophets from Samuel to John that you should seek for God—search for truth. Always have they said, ‘Seek the Lord while he may be found.’ And all such teaching should be taken to heart. But I have come to show you that, while you are seeking to find God, God is likewise seeking to find you. Many times have I told you the story of the good shepherd who left the ninety and nine sheep in the fold while he went forth searching for the one that was lost, and how, when he had found the straying sheep, he laid it over his shoulder and tenderly carried it back to the fold. And when the lost sheep had been restored to the fold, you remember that the good shepherd called in his friends and bade them rejoice with him over the finding of the sheep that had been lost. Again I say there is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the ninety and nine just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The fact that souls are lost only increases the interest of the heavenly Father. I have come to this world to do my Father’s bidding, and it has truly been said of the Son of Man that he is a friend of publicans and sinners.
2000 169:1.2 “사무엘로부터 요한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진리를 추구하라고―훈계를 받았느니라. 언제나 저희는 말하되 ‘찾아낼 수 있는 동안 주를 찾으라’ 하였고, 모든 그러한 가르침을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동안에,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너희를 찾고 있음을 보이려고 내가 왔노라. 우리에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서,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으러 떠난 선한 목자, 그리고 길 잃은 양을 찾아낸 뒤에, 그가 어떻게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부드럽게 우리로 지고 갔는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일렀느니라. 그리고 길 잃은 양을 우리에 되돌린 뒤에 선한 목자가 친구들을 부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낸 것에 대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기를 청했음을 너희가 기억하느니라. 다시 내가 이르노니, 뉘우침이 필요 없는 올바른 사람 아흔 아홉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놓고 하늘에서 더 크게 기뻐하느니라.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하늘 아버지의 관심을 더욱 돋울 뿐이라. 나는 내 아버지의 명령을 행하고자 이 세상으로 왔고, 사람의 아들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사람들이 언급한 것이 참말이라.
2001 CM 169:1.2 “사무엘로부터 요한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들이 너희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곧 진리를 탐구하라고-- 훈계해왔다. 그들은 항상 ‘만날 수 있는 동안에 주를 찾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가르침을 마음에 담아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찾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왔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양을 발견하자, 그것을 친절하게 어깨에 메어 데리고 돌아와서 양떼 속으로 다시 넣어줬다는, 선한 목자 이야기를 너희에게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잃었던 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선한 목자가 친구들을 부르면서, 잃었던 양을 발견한 것에 대해 함께 환호하자고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하는데,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 없다는 아흔 아홉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을 더 기뻐한다. 혼들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하늘 아버지의 관심을 더 많이 끌 뿐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분부대로 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며, 사람의 아들은 자신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임을 진심으로 말해왔다.
2007 URKA 169:1.2 “사무엘로부터 요한에 이르는 선지자들이 너희들에게 하느님을 찾으라고─진리를 탐구하라고─ 훈계하여 왔다. 그들은 항상 ‘만날 수 있는 동안에 그 주님을 찾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가르침을 가슴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는 동안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너희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왔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양을 발견하자, 그것을 어깨에 메어 친절하게 데리고 돌아와서 양 떼 속으로 다시 넣어주었다는, 선한 목자의 이야기를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해 주었다. 그리고 잃었던 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그 선한 목자가 자기 친구들을 부르면서, 잃었던 양을 발견한 것에 대하여 함께 기쁨을 향유하자고 그들을 초대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기억할 것이다. 다시 말하겠는데,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을 더욱 기뻐한다. 혼들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관심을 더욱 깊게 해줄 뿐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분부대로 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며, 사람의 아들이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말이 사실이다.
2025 169:1.2 “사무엘로부터 요한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 진실을 추구하라 ― 고 훈계를 받았느니라[7]. 언제나 저희는 말하되 ‘찾아낼 수 있는 동안 주를 찾으라’ 하였고, 모든 그러한 가르침을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동안에,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너희를 찾고 있음을 보이려고 내가 왔노라. 우리에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서,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으러 떠난 선한 목자, 그리고 길 잃은 양을 찾아낸 뒤에, 그가 어떻게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부드럽게 우리로 지고 갔는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너희에게 여러 번 일렀느니라. 그리고 길 잃은 양을 우리에 되돌린 뒤에 선한 목자가 친구들을 부르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낸 것에 대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기를 청했음을 너희가 기억하느니라. 다시 내가 이르노니, 뉘우침이 필요 없는 올바른 사람 아흔 아홉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놓고 하늘에서 더 크게 기뻐하느니라.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하늘 아버지의 관심을 더욱 돋울 뿐이라. 나는 내 아버지의 명령을 행하고자 이 세상으로 왔고, 사람의 아들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사람들이 언급한 것이 참말이라.
[8]
1955 169:1.3 “You have been taught that divine acceptance comes after your repentance and as a result of all your works of sacrifice and penitence, but I assure you that the Father accepts you even before you have repented and sends the Son and his associates to find you and bring you, with rejoicing, back to the fold, the kingdom of sonship and spiritual progress. You are all like sheep which have gone astray, and I have come to seek and to save those who are lost.
2000 169:1.3 “너희가 뉘우친 뒤에, 너희가 희생물을 바치고 회개하는 모든 일의 결과로서, 그 뒤에 신이 너희를 받아들인다고 가르침을 받았으나 내가 너희에게 보장하노니, 아버지는 너희가 미처 뉘우치기도 전에 너희를 받아들이며, 너희를 찾아내고 다시 우리로, 아들이 되고 영적으로 진보하는 하늘나라로, 기뻐하며 너희를 데려오라고 아들과 그 동료를 보내시느니라.
2001 CM 169:1.3 “너희가 회개한 후에, 그리고 너희가 희생제물을 드리고 참회한 행위의 결과로 신{神}이 너희를 받아들인다고 배웠지만, 내가 너희에게 보증하는데,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기도 전에 너희를 용납하시며, 너희를 찾아내어 다시 양 무리에게로, 즉 영적 진보가 있는 아들신분의 천국으로 기뻐하면서 데려오라고, 아들과 그 동역자들을 보내신다. 너희는 모두 길 잃은 양 같으며, 길 잃은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려고 내가 왔다.
2007 URKA 169:1.3 “회개한 후에야, 그리고 희생물과 참회의 행위의 결과로 신성한 용납이 온다고 너희가 배워왔지만, 내가 너희에게 약속하는 것은, 아버지는 너희가 회개하기도 전에 너희를 용납하며, 너희를 찾아서 양 무리에게로, 영적 진보가 있는 아들관계의 왕국으로 기뻐하면서 데리고 오도록, 아들과 그의 연관-동료들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길을 잃은 양과 같으며, 길을 잃은 그들을 찾아 구원하려고 내가 왔다.
1955 169:1.4 “And you should also remember the story of the woman who, having had ten pieces of silver made into a necklace of adornment, lost one piece, and how she lit the lamp and diligently swept the house and kept up the search until she found the lost piece of silver. And as soon as she found the coin that was lost, she called together her friends and neighbors, saying, ‘Rejoice with me, for I have found the piece that was lost.’ So again I say, there is always joy in the presence of the angels of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and returns to the Father’s fold. And I tell you this story to impress upon you that the Father and his Son go forth to search for those who are lost, and in this search we employ all influences capable of rendering assistance in our diligent efforts to find those who are lost, those who stand in need of salvation. And so, while the Son of Man goes out in the wilderness to seek for the sheep gone astray, he also searches for the coin which is lost in the house. The sheep wanders away, unintentionally; the coin is covered by the dust of time and obscured by the accumulation of the things of men.
2000 169:1.4 “한 여인이 은화 열 잎을 장식 목거리로 만들고서 한 잎을 잃어버렸다가, 어떻게 등불을 켜고 그 집을 샅샅이 쓸고 잃어버린 은화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뒤졌는가 하는 이야기를 너희는 또한 기억해야 하느니라. 잃어버린 은전을 찾아내자마자 그 여자는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부르고 말하였더라,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냈음이라.’ 다시 내가 이르노니, 뉘우치고 아버지의 우리로 돌아오는 한 죄인을 놓고 하늘의 천사들 앞에서 언제나 기쁨이 있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나간다는 것을 너희에게 강조하려고 내가 이 이야기를 하노라. 이 탐색에서 길 잃은 자, 구원이 필요한 자를 찾아내려고 부지런히 노력할 때 우리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이용하느니라. 그래서 사람의 아들은 길 잃은 양을 찾으러 황무지로 나가며 또한 집에서 잃어버린 은전을 뒤지느니라. 양은 뜻하지 않게 길을 헤매며, 은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에 덮이고 사람들의 물건이 쌓임으로 감춰지느니라.
2001 CM 169:1.4 “그리고 너희는, 장식용 목걸이를 만들려고 은으로 된 열 개의 동전을 갖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려서, 등을 밝히고 집안을 열심히 쓸면서, 잃어버린 은 동전이 발견될 때까지 쉬지 않고 찾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야한다. 그 여자는 잃었던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친구와 이웃을 부르고, ‘내가 잃었던 동전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환호하자’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아버지의 양떼로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천사들 앞에는 늘 기쁨이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나서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깊이 새겨두기 위해서이며, 구원을 필요로 하면서 서 있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내려고 우리가 부지런히 애쓸 때, 우리는 이렇게 찾아내는 데 도움 될 만한 모든 권세를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으려고 광야로 나가고, 또한 집 안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도 한다. 양은 부지불식간에 길을 잃었으며;동전은 시간이라는 먼지로 덮이고, 사람들의 물건이 그 위에 쌓임으로써 감춰졌다.
2007 URKA 169:1.4 “그리고 너희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목걸이를 만들려고 은으로 된 열 개의 동전들을 감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려서, 등을 밝히고 집안을 열심히 쓸면서 잃어버린 그 은 동전이 발견될 때까지 쉬지 않고 찾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잃었던 그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내가 잃었던 동전을 찾았으니 나와함께 기쁨을 향유하자.’고 말하였다. 내가 다시 말하겠는데, 한 죄인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양 떼로 돌아오면 하늘의 천사들의 현존 안에서 항상 기쁨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나서신다는 것을 너희의 가슴속에 새겨두기 위해서이며, 이렇게 찾아 나설 때, 구원을 필요로 하며 서 있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한 우리의 부지런한 노력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가며, 집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도 한다. 그 양은 부지불식간에 길을 잃게 된 것이다; 그 동전은 시간이라는 먼지로 덮이고, 사람들의 일들로 누적되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2025 169:1.4 “한 여인이 은화 열 잎을 장식 목거리로 만들고서 한 잎을 잃어버렸다가, 어떻게 등불을 켜고 그 집을 샅샅이 쓸고 잃어버린 은화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뒤졌는가 하는 이야기를 너희는 또한 기억해야 하느니라. 잃어버린 은전을 찾아내자마자 그 여자는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부르고 말하였더라,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냈음이라[10][11].’ 다시 내가 이르노니, 뉘우치고 아버지의 우리로 돌아오는 한 죄인을 놓고 하늘의 천사들 앞에서 언제나 기쁨이 있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나간다는 것을 너희에게 강조하려고 내가 이 이야기를 하노라. 이 탐색에서 길 잃은 자, 구원이 필요한 자를 찾아내려고 부지런히 노력할 때 우리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이용하느니라. 그래서 사람의 아들은 길 잃은 양을 찾으러 황무지로 나가며 또한 집에서 잃어버린 은전을 뒤지느니라. 양은 뜻하지 않게 길을 헤매며, 은전은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에 덮이고 사람들의 물건이 쌓임으로 감춰지느니라.
1955 169:1.5 “And now I would like to tell you the story of a thoughtless son of a well-to-do farmer who deliberately left his father’s house and went off into a foreign land, where he fell into much tribulation. You recall that the sheep strayed away without intention, but this youth left his home with premeditation. It was like this:
2000 169:1.5 “그리고 이제 살림이 넉넉한 어느 농부의 아들, 생각이 모자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너희에게 하고자 하노니, 그는 깊이 생각한 끝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낯선 땅으로 가버렸고, 거기서 많은 시련(試鍊)에 부닥쳤더라. 너희는 뜻하지 않게 양이 길 잃은 것을 상기하지만, 이 젊은이는 미리 깊이 생각하고서 집을 떠났더라. 그 이야기는 이러하니라:
2001 CM 169:1.5 “그리고 이제, 어느 부자 농부의 철없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희에게 들려주겠는데, 이 아들은 고의로 아버지 집을 떠나서 다른 나라 땅으로 갔고, 거기서 고난당하게 됐다. 양떼는 아무 의도 없이 방황하게 됐지만, 이 젊은이는 미리 계획하고 자기 집을 떠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2007 URKA 169:1.5 “이제 너희들에게 어느 부자 농부의 철없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는데, 그 아들은 고의로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다른 나라 땅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양들은 아무 의도 없이 방황하게 되었지만, 이 젊은이는 계획적으로 자기 집을 떠났다는 것을 너희가 기억하기 바란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2025 169:1.5 “그리고 이제 살림이 넉넉한 어느 농부의 아들, 생각이 모자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너희에게 하고자 하노니, 그는 깊이 생각한 끝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낯선 땅으로 가버렸고, 거기서 많은 시련(試鍊)에 부닥쳤더라. 너희는 뜻하지 않게 양이 길 잃은 것을 상기하지만, 이 젊은이는 미리 깊이 생각하고서 집을 떠났더라. 그 이야기는 이러하니라:
1955 169:1.6 “A certain man had two sons; one, the younger, was lighthearted and carefree, always seeking for a good time and shirking responsibility, while his older brother was serious, sober, hard-working, and willing to bear responsibility. Now these two brothers did not get along well together; they were always quarreling and bickering. The younger lad was cheerful and vivacious, but indolent and unreliable; the older son was steady and industrious, at the same time self-centered, surly, and conceited. The younger son enjoyed play but shunned work; the older devoted himself to work but seldom played. This association became so disagreeable that the younger son came to his father and said: ‘Father, give me the third portion of your possessions which would fall to me and allow me to go out into the world to seek my own fortune.’ And when the father heard this request, knowing how unhappy the young man was at home and with his older brother, he divided his property, giving the youth his share.
2000 169:1.6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더니, 나이 어린 아들은 명랑하고 구김이 없고,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찾고 책임을 피하였으며, 한편 그 형은 심각하고 침착하고 열심히 일하며 기꺼이 책임을 졌더라. 자, 이 두 형제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았고, 언제나 다투고 헐뜯었는지라. 어린 소년은 밝고 활발하였으나 게으르고 믿음직하지 않았으며, 나이 든 형은 꾸준하고 부지런하며 동시에 자기 중심이고 무뚝뚝하고 자만심이 있었더라. 동생은 놀기를 즐겼으나 일을 피하였고, 형은 일에 몰두하였어도 노는 일이 드물었더라. 이 관계가 아주 불쾌해져서 동생은 아버지께 가서 말하였더라: ‘아버지여, 아버지 재산 가운데 3분의 1, 내게 돌아올 몫을 주시고, 나로 하여금 출세 길을 찾으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아버지가 이 요청을 들었을 때, 그 젊은이가 얼마나 집에서, 그리고 형과 지내기가 얼마나 불행한가 알았은즉, 재산을 나누어서 젊은이에게 그의 몫을 주었더라.
2001 CM 169:1.6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동생은 근심 걱정이 없고 무책임해서 항상 즐거운 시간만 찾고 책임은 회피하는 반면, 형은 진지하고 침착하고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이었다. 이윽고 이 두 형제가 서로 잘 지낼 수 없게 됐는데;그들은 항상 다투고 언쟁했다. 작은 아들은, 명랑하고 활발했으나 게으르고 신뢰성이 없었으며;큰 아들은, 침착하고 부지런한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무뚝뚝하고 자만했다. 작은 아들은, 놀기를 좋아하지만 일하기는 피했으며;큰 아들은, 일에 열심이었지만 잘 놀지 않았다. 이 두 형제의 불화가 너무 심해지자,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당신의 소유물 가운데 나에게 상속될 3분의 1을 저에게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출세 길을 찾도록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요청을 들은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집에 있으면 형 때문에 얼마나 불만스러워하는지 알기에, 재산을 나눠서 작은 아들의 몫을 떼어 줬다.
2007 URKA 169:1.6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생은 근심 걱정이 없고 무책임(無責任)하여 항상 즐거운 시간만을 찾으며 책임은 회피하였으나, 반면에 그의 형은 진지하고 침착하며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이었다. 이윽고 이 두 형제들의 사이가 나빠졌으며; 둘이 항상 다투고 언쟁을 하였다. 동생은 명랑하고 활발하였지만, 게으르고 신뢰성이 없었다; 형은 침착하고 부지런하였지만, 반면에 자아-중심적이고 무뚝뚝하며 교만하였다. 동생은 놀기는 좋아하였지만 일하는 것은 피하였다; 형은 일에 열심이었지만 잘 놀지 않았다. 두 형제의 불화가 너무 심해지자, 동생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저에게 오게 될 당신의 소유물들 중 3분의 1을 저에게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요청을 들은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에 있으면 형 때문에 얼마나 불만스러워 하는지를 알고, 자기 재산(財産)을 떼어서, 작은아들의 몫을 주었다.
2025 169:1.6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더니, 나이 어린 아들은 명랑하고 구김이 없고,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찾고 책임을 피하였으며, 한편 그 형은 심각하고 침착하고 열심히 일하며 기꺼이 책임을 졌더라. 자, 이 두 형제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았고, 언제나 다투고 헐뜯었는지라. 어린 소년은 밝고 활발하였으나 게으르고 믿음직하지 않았으며, 나이 든 형은 꾸준하고 부지런하며 동시에 자기 중심이고 무뚝뚝하고 자만심이 있었더라. 동생은 놀기를 즐겼으나 일을 피하였고, 형은 일에 몰두하였어도 노는 일이 드물었더라. 이 관계가 아주 불쾌해져서 동생은 아버지께 가서 말하였더라: ‘아버지여, 아버지 재산 가운데 3분의 1, 내게 돌아올 몫을 주시고, 나로 하여금 출세 길을 찾으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아버지가 이 요청을 들었을 때, 그 젊은이가 얼마나 집에서, 그리고 형과 지내기가 얼마나 불행한가 알았은즉, 재산을 나누어서 젊은이에게 그의 몫을 주었더라[12].
1955 169:1.7 “Within a few weeks the young man gathered together all his funds and set out upon a journey to a far country, and finding nothing profitable to do which was also pleasurable, he soon wasted all his inheritance in riotous living. And when he had spent all, there arose a prolonged famine in that country, and he found himself in want. And so, when he suffered hunger and his distress was great, he found employment with one of the citizens of that country, who sent him into the fields to feed swine. And the young man would fain have filled himself with the husks which the swine ate, but no one would give him anything.
2000 169:1.7 “몇 주 안에 그 젊은이는 자금을 모두 모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즐겁고도 이익 되는 일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곧 유산(遺産)을 모두 방탕한 생활에 낭비하였더라. 재산을 다 써버리고 나서, 그 나라에 오래 이어진 기근이 생겼고, 그는 궁핍에 빠졌더라. 그래서 배가 고프고 고생이 심했을 때, 그 나라의 한 시민에게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이 사람은 돼지를 먹이라고 그를 들로 보냈더라. 그 젊은이가 돼지가 먹는 겨로 기꺼이 배를 채우고 싶었어도 누구 하나 그에게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았더라.
2001 CM 169:1.7 “이 젊은이는 몇 주 후에 자기 돈을 다 모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지만, 재미있으면서 돈을 벌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가 곧 유산을 전부 탕진했다. 모든 것을 허비했을 때, 그 지방에 오랫동안 기근이 닥쳤고, 그는 곤궁한 신세가 됐다. 그리하여 배고픔을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자, 그 지방에 사는 사람 가운데 하나에게 고용됐는데, 그를 돼지 키우는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 젊은이는 돼지가 먹는 옥수수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그에게 아무 것이든지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2007 URKA 169:1.7 “그 젊은이는 몇 주 후에 자기 돈을 다 모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지만, 재미있으면서도 돈을 벌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곧 모든 유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재산이 모두 떨어졌을 때, 그 지방에 오랫동안의 기근이 닥쳐왔으며, 곤궁한 신세가 되었다. 그리하여 배고픔을 참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자, 그 지방에 사는 사람에게 고용이 되었는데, 그를 돼지 키우는 곳으로 보냈다. 그 젊은이는 돼지들이 먹는 옥수수 껍질로 배를 채우지 않을 수 없었으나,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2025 169:1.7 “몇 주 안에 그 젊은이는 자금을 모두 모아서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즐겁고도 이익 되는 일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곧 유산(遺産)을 모두 방탕한 생활에 낭비하였더라. 재산을 다 써버리고 나서, 그 나라에 오래 이어진 기근이 생겼고, 그는 궁핍에 빠졌더라. 그래서 배가 고프고 고생이 심했을 때, 그 나라의 한 시민에게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이 사람은 돼지를 먹이라고 그를 들로 보냈더라. 그 젊은이가 돼지가 먹는 겨로 기꺼이 배를 채우고 싶었어도 누구 하나 그에게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았더라[13].
1955 169:1.8 “One day, when he was very hungry, he came to himself and said: ‘How many hired servants of my father have bread enough and to spare while I perish with hunger, feeding swine off here in a foreign country! I will arise and go to my father, and I will say to him: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against you. I am no more worthy to be called your son; only be willing to make me one of your hired servants.’ And when the young man had reached this decision, he arose and started out for his father’s house.
2000 169:1.8 “어느 날, 몹시 배가 고팠을 때, 그가 제 정신이 들어 말하되, ‘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많은 품꾼이 고용되어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빵이 있는가, 그런데 나는 여기 낯선 나라에서, 돼지를 먹이며 배가 고파서 죽는구나! 일어서서 아버지께로 가서, 내가 아버지께 이르리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이제 더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 부름받기에 마땅치 아니하나이다. 다만 기꺼이 나를 아버지의 품꾼의 하나로 만들어 주소서.’ 이 결심이 서자, 젊은이는 일어서서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떠났더라.
2001 CM 169:1.8 “어느 날, 매우 배고프게 됐을 때, 그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내 아버지께 고용된 많은 종에게는 배부르게 먹고 남을 만큼 빵이 풍성한데, 나는 이 이국땅에서 돼지나 키우다가 굶주려 죽게 됐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렇게 말하리라: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 받을 자격이 없으니;다만 나를 고용된 종들 가운데 하나처럼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젊은이는 이렇게 결단하게 되자,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2007 URKA 169:1.8 “어느 날, 매우 배가 고팠을 때,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말했다; ‘내 아버지에게 고용된 많은 하인들에게는 배부르게 먹고 남을 만큼 빵이 풍성한데, 나는 이곳 이국땅에서 돼지나 키우다가 굶주려 죽게 되었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늘과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다만 저를 고용된 하인들 중의 하나처럼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이 젊은이는 가슴의 결정이 되자,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향하였다.
2025 169:1.8 “어느 날, 몹시 배가 고팠을 때, 그가 제 정신이 들어 말하되, ‘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많은 품꾼이 고용되어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빵이 있는가, 그런데 나는 여기 낯선 나라에서, 돼지를 먹이며 배가 고파서 죽는구나! 일어서서 아버지께로 가서, 내가 아버지께 이르리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이제 더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부르기에 마땅치 않나이다. 다만 기꺼이 나를 아버지의 품꾼의 하나로 만들어 주소서[14].’ 이 결심이 서자, 젊은이는 일어서서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떠났더라.
1955 169:1.9 “Now this father had grieved much for his son; he had missed the cheerful, though thoughtless, lad. This father loved this son and was always on the lookout for his return, so that on the day he approached his home, even while he was yet afar off, the father saw him and, being moved with loving compassion, ran out to meet him, and with affectionate greeting he embraced and kissed him. And after they had thus met, the son looked up into his father’s tearful face and said: ‘Father, I have sinned against heaven and in your sight; I am no more worthy to be called a son’—but the lad did not find opportunity to complete his confession because the overjoyed father said to the servants who had by this time come running up: ‘Bring quickly his best robe, the one I have saved, and put it on him and put the son’s ring on his hand and fetch sandals for his feet.’
2000 169:1.9 “자, 이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크게 슬퍼하였는데, 생각은 없어도 명랑한 젊은이가 없어 서운했는지라. 이 아버지는 이 아들을 사랑하였고, 그가 돌아올까 늘 지키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가 자기 집으로 가까이 오는 날,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달려나가서 맞이하였고 반가운 인사로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더라. 그리고 이렇게 저희가 만난 뒤에, 아들이 아버지의 눈물 어린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하되, ‘아버지여, 나는 하늘에, 또 아버지 보시기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이제 아들이라 부름받을 자격이 없나이다’―그러나 그 젊은이는 고백을 마칠 겨를을 얻지 못하였으니,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가 이때가 되자 달려오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음이라: ‘그의 가장 좋은 옷, 내가 간직했던 옷을 얼른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의 반지를 손에 끼우고 신을 샌달을 가져오라.’
2001 CM 169:1.9 “그런데, 이 아버지는 아들로 인해 몹시 슬퍼해왔으며;경솔하지만 명랑한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했다. 이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사랑했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가 아직도 멀리 있는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사랑과 연민으로 감동되어 그를 만나러 뛰어 나갔으며, 자애롭게 환영하면서 그를 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인사가 끝나자, 아들은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 내가 하늘에 대해 그리고 당신 앞에 죄를 지었으니;나는 더 이상 아들이라고 일컬음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아들은 고백을 다 마칠 수도 없었는데, 너무 기뻐하는 아버지가, 달려오고 있는 종들에게, ‘내가 보관해 둔 가장 좋은 옷을 빨리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을 상징하는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고, 그가 신을 신발을 가져오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2007 URKA 169:1.9 “이 때 이 아버지는 아들로 인하여 몹시 슬퍼하였다; 그 명랑하고 철없는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였다. 이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사랑하였으며 그가 돌아오기만을 항상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가 아직도 멀리 있는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사랑 가득한 연민으로 감격하여, 그를 만나려고 뛰어 나갔으며, 자애롭게 환영하면서 그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인사가 끝나자, 그 아들은 눈물을 흘리는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당신 앞에 죄를 지었으니; 저는 더 이상 아들이라 불려 질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지만─그 아들은 고백을 다 마치지도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때에 뛰어 달려오는 너무도 기뻐하는 아버지가, 하인들에게, ‘내가 보관해 둔 가장 좋은 옷을 빨리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을 상징하는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발을 가져오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2025 169:1.9 “자, 이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크게 슬퍼하였는데, 생각은 없어도 명랑한 젊은이가 없어 서운했는지라. 이 아버지는 이 아들을 사랑하였고, 그가 돌아올까 늘 지키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가 자기 집으로 가까이 오는 날,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달려나가서 맞이하였고 반가운 인사로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더라. 그리고 이렇게 저희가 만난 뒤에, 아들이 아버지의 눈물 어린 얼굴을 올려다보고 말하되, ‘아버지여, 나는 하늘에, 또 아버지 보시기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이제 아들이라 부를 자격이 없나이다’ ― 그러나 그 젊은이는 고백을 마칠 겨를을 얻지 못하였으니,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가 이때가 되자 달려오는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음이라: ‘그의 가장 좋은 옷, 내가 간직했던 옷을 얼른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의 반지를 손에 끼우고 신을 샌달을 가져오라.’[15]
1955 169:1.10 “And then, after the happy father had led the footsore and weary lad into the house, he called to his servants: ‘Bring on the fatted calf and kill it, and let us eat and make merry, for this my son was dead and is alive again; he was lost and is found.’ And they all gathered about the father to rejoice with him over the restoration of his son.
2000 169:1.10 “그리고 나서, 기뻐하는 아버지가 발 아프고 지친 젊은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뒤에, 종들을 불렀더라: ‘살진 송아지를 가져다 잡으라.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았음이라. 그를 잃었다가 찾아냈느니라.’ 저희가 다 아버지 둘레에 모여서, 아들을 되찾은 것 때문에 그와 함께 기뻐하였더라.
2001 CM 169:1.10 그리고 나서, 행복한 아버지는, 발이 부르트고 기진맥진한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하인들을 불렀다:‘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살찐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먹으면서 흥겹게 즐기자.’ 저희는 다 아버지 곁에 모여서, 아들을 되찾은 것에 대해 그와 함께 환호했다.
2007 URKA 169:1.10 그러고 나서, 행복한 그 아버지는 발이 부르트고 기진맥진한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인들을 불러 말했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살찐 송아지를 잡아 음식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가져오고 흥겹게 놀도록 하자.’ 그들은 모두 그 아버지에게 모여 그의 아들이 돌아온 기쁨을 향유하였다.
1955 169:1.11 “About this time, while they were celebrating, the elder son came in from his day’s work in the field, and as he drew near the house, he heard the music and the dancing. And when he came up to the back door, he called out one of the servants and inquired as to the meaning of all this festivity. And then said the servant: ‘Your long-lost brother has come home, and your father has killed the fatted calf to rejoice over his son’s safe return. Come in that you also may greet your brother and receive him back into your father’s house.’
2000 169:1.11 “이 무렵에, 저희가 축하하고 있는 동안 맏아들이 들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들어왔고 집으로 가까이 오는 동안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를 들었는지라. 뒷문으로 다가와서 종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내어 이 모든 잔치가 무슨 영문인가 물었더라. 그러자 그 종이 말하되 ‘오랫동안 잃어 버렸던 당신의 아우가 돌아왔고, 당신의 아버지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뻐하려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들어와서 당신도 또한 아우를 맞이하고 당신 아버지의 집으로 그를 받아들이소서.’
2001 CM 169:1.11 “이 무렵에, 저희가 축하하고 있는 동안, 큰 아들이 들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하인 가운데 하나를 불러내고, 이 모든 잔치가 왜 벌어지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종이 말했다:‘오래도록 잃었던 당신의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당신의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고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와서 동생을 환영하시고 아버지 집으로 맞아들이십시오.’
2007 URKA 169:1.11 “이 무렵, 그들이 축하하고 있는 동안, 큰아들이 들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가까이 오면서 음악 소리와 춤을 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하인들 중 하나를 불러내어 이 모든 잔치가 왜 벌어지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하인이, ‘오래도록 잃었던 당신의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당신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자기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기쁨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오셔서 동생을 환영하고 당신 그를 다시 아버지 집에 받아들이십시오.’
1955 169:1.12 “But when the older brother heard this, he was so hurt and angry he would not go into the house. When his father heard of his resentment of the welcome of his younger brother, he went out to entreat him. But the older son would not yield to his father’s persuasion. He answered his father, saying: ‘Here these many years have I served you, never transgressing the least of your commands, and yet you never gave me even a kid that I might make merry with my friends. I have remained here to care for you all these years, and you never made rejoicing over my faithful service, but when this your son returns, having squandered your substance with harlots, you make haste to kill the fatted calf and make merry over him.’
2000 169:1.12 “그러나 이 말을 들었을 때, 맏아들은 아주 마음이 상하고 성이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더라. 맏아들이 제 아우의 환영식을 분개한다는 말을 아버지가 듣고 그에게 간청하러 나왔더라.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굽히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께 이렇게 대답하였더라: ‘여기서 이 여러 해 동안 나는 아버지를 섬기었고, 아버지의 계명 중 가장 작은 것조차 한 번도 어기지 않았사온데 그래도 아버지는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아니하셨나이다. 이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보살피려고 여기 남아 있었어도 아버지는 나의 충실한 봉사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사오나, 이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탕진하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서둘러 잡고 그 때문에 기뻐하시나이다.’
2001 CM 169:1.12 “그러나 형은 이 말을 듣자, 너무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하지 않았다. 동생을 환영한 것에 대해 큰 아들이 분개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서 그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했다:‘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하여 일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도,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 곁에 남아서 보살펴드렸는데, 나의 충성스런 봉사에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버지의 소유를 창기들과 함께 탕진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자, 서둘러 살진 송아지를 잡으시고 그놈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2007 URKA 169:1.12 “그러나 그 형은 이 말을 듣자, 너무도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생을 환영한 것에 대하여 큰아들이 분개하였다는 말을 들은 그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그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일하였고,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삼 년 동안 꼬박 아버지 곁에서 보살펴 드렸는데, 저의 충성스러운 봉사에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버지의 소유를 창기들과 함께 탕진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자, 서둘러 살찐 송아지를 잡으시고 그를 즐겁게 만드셨습니다.’
2025 169:1.12 “그러나 이 말을 들었을 때, 맏아들은 아주 마음이 상하고 성이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더라. 맏아들이 제 아우의 환영식을 분개한다는 말을 아버지가 듣고 그에게 간청하러 나왔더라.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굽히려 하지 않았고 아버지께 이렇게 대답하였더라: ‘여기서 이 여러 해 동안 나는 아버지를 섬기었고, 아버지의 계명 중 가장 작은 것조차 한 번도 어기지 않았사온데 그래도 아버지는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새끼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아니하셨나이다. 이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보살피려고 여기 남아 있었어도 아버지는 나의 충실한 봉사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사오나, 이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창부들과 탕진하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서둘러 잡고 그 때문에 기뻐하시나이다.’[18]
1955 169:1.13 “Since this father truly loved both of his sons, he tried to reason with this older one: ‘But, my son, you have all the while been with me, and all this which I have is yours. You could have had a kid at any time you had made friends to share your merriment. But it is only proper that you should now join with me in being glad and merry because of your brother’s return. Think of it, my son, your brother was lost and is found; he has returned alive to us!’”
2000 169:1.13 “두 아들을 참으로 사랑하였으므로 이 아버지는 이 맏아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느니라: ‘그러나 아들아, 너는 나와 함께 죽 있었고,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이 네 것이라. 네가 함께 즐겁게 지내려고 친구들을 만들었다면 어느 때라도 네가 새끼 염소를 잡을 수 있었느니라. 그러나 네 아우가 돌아왔으니, 이제 네가 나와 함께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마땅할 뿐이라. 아들아, 생각해 보라, 네 아우를 잃었다가 찾았고 그가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왔느니라!”
2001 CM 169:1.13 “이 아버지는 두 아들을 다 사랑했기 때문에, 큰 아들을 설득하려고 했다:‘그렇지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 아니냐. 너는 언제라도 새끼 양을 잡아서 너의 친구들과 흥겹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동생이 돌아왔으니, 네가 나와 함께 들어가서 기뻐하고 흥겹게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얘야, 너의 동생을 잃었다가 찾은 것과;그가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생각해 봐라!’”
2007 URKA 169:1.13 “이 아버지는 자기 두 아들을 모두 사랑하였기 때문에, 큰아들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내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 아니냐. 너는 언제라도 새끼 양을 잡아서 네 친구들과 흥겹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네 동생이 돌아왔으니, 나와 함께 들어가서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나의 아들아 네 동생을 잃었다가 찾은 것과;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생각해 보아라!’”
1955 169:1.14 This was one of the most touching and effective of all the parables which Jesus ever presented to impress upon his hearers the Father’s willingness to receive all who seek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2000 169:1.14 이것은 청중에게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임을 강조하려고 예수가 일찍이 발표한 비유,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모든 비유 가운데 하나였다.
2001 CM 169:1.14 이것은, 하늘 나라로 들어오려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버지 뜻임을 청중에게 심어주려고 예수께서 제시한,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모든 비유 가운데 하나였다.
2007 URKA 169:1.14 이 비유는 예수가 청중들의 가슴속에,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버지의 기꺼운 마음이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하여 제시한 모든 비유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효력적인 것들 중의 하나였다.
2025 169:1.14 이것은 청중에게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임을 강조하려고 예수가 일찍이 발표한 비유,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모든 비유 가운데 하나였다.
1955 169:1.15 Jesus was very partial to telling these three stories at the same time. He presented the story of the lost sheep to show that, when men unintentionally stray away from the path of life, the Father is mindful of such lost ones and goes out, with his Sons, the true shepherds of the flock, to seek the lost sheep. He then would recite the story of the coin lost in the house to illustrate how thorough is the divine searching for all who are confused, confounded, or otherwise spiritually blinded by the material cares and accumulations of life. And then he would launch forth into the telling of this parable of the lost son, the reception of the returning prodigal, to show how complete is the restoration of the lost son into his Father’s house and heart.
2000 169:1.15 예수는 이 세 이야기를 같은 때에 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길 잃은 양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생명의 길로부터 벗어났을 때, 아버지가 그러한 길 잃은 사람을 염려하고, 양떼의 참 목자인 아들들과 함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물질적 걱정과 생활에서 쌓인 것 때문에 혼동하거나 어리둥절하거나 아니면 영적으로 눈먼 모든 사람을 얼마나 샅샅이 신이 찾고 있는가 보여주려고, 집에서 잃어버린 은전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의 집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잃어버린 아들의 지위가 얼마나 완벽하게 회복되는가 보여주려고, 이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돌아오는 탕자(蕩子)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2001 CM 169:1.15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말씀하기를 대단히 좋아했다. 잃어버린 양 이야기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의 길에서 멀어졌을 때, 아버지께서는 그런 잃어버린 자를 잊지 않으시며, 양떼의 참 목자인 아들과 함께 나가셔서, 잃은 양을 찾으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말씀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는, 혼동되거나, 좌절당하거나, 인생의 물질적 염려와 축적물로 인해 영적으로 눈이 먼 모든 사람을 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찾으시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잃어버린 아들, 즉 돌아오는 탕자를 환영하는 비유의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는데, 잃어버렸던 아들의 지위가 아버지의 집과 마음 속에서 얼마나 철저하게 회복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2007 URKA 169:1.15 예수는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을 동시에 말씀하기를 대단히 좋아하였다. 잃어버린 양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의 길에서 멀어졌을 때, 아버지는 그러한 잃어버린 자들을 잊지 않으시며, 그 양떼의 참 목자인 자기 아들과 함께 나가셔서, 잃은 양을 찾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말씀하였다. 그리고 집안에서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는, 혼동되거나, 좌절당하거나, 또는 일생의 물질적인 염려들과 축재(蓄財)로 인하여 영적으로 눈이 먼 모든 사람들을 찾으시는 신성한 노력이 얼마나 철저한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잃어버린 아들, 방탕한 자를 환영하는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한 것은, 잃어버렸던 아들을 아버지의 집과 가슴속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복귀시키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2025 169:1.15 예수는 이 세 이야기를 같은 때에 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길 잃은 양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생명의 길에서 벗어났을 때, 아버지가 그러한 길 잃은 사람을 염려하고, 양떼의 참 목자인 아들들과 함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20]. 다음에, 물질적 걱정과 생활에서 쌓인 것 때문에 혼동하거나 어리둥절하거나 아니면 영적으로 눈먼 모든 사람을 얼마나 샅샅이 신이 찾고 있는가 보여주려고, 집에서 잃어버린 은전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21]. 그 다음에 아버지의 집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잃어버린 아들의 지위가 얼마나 완벽하게 회복되는가 보여주려고, 이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돌아오는 탕자(蕩子)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22].
1955 169:1.16 Many, many times during his years of teaching, Jesus told and retold this story of the prodigal son. This parable and the story of the good Samaritan were his favorite means of teaching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neighborliness of man.
2000 169:1.16 가르치던 여러 해 동안 아주 여러 번, 예수는 이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를 거듭 되풀이하였다. 이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이웃 정신을 가르치는 데 그가 가장 좋아한 수단이었다.
2001 CM 169:1.16 가르치던 여러 해 동안, 예수께서 이 방탕한 아들 이야기를 얼마나 여러 번 반복했는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이웃됨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좋아했다.
2007 URKA 169:1.16 예수는 가르치시는 동안 이 방탕한 아들 이야기를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하였는지 모른다. 예수는 이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이웃에 대한 정의(正義)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좋아하였다.
2025 169:1.16 가르치던 여러 해 동안 아주 여러 번, 예수는 이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를 거듭 되풀이하였다. 이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아버지의 사랑과 사람의 이웃 정신을 가르치는 데 그가 가장 좋아한 수단이었다.
2. PARABLE OF THE SHREWD STEWARD
2. 기민한 집사의 비유
2. 영리한 청지기 비유
2. 영리한 청지기의 비유
2. 기민한 집사의 비유
1955 169:2.1 One evening Simon Zelotes, commenting on one of Jesus’ statements, said: “Master, what did you mean when you said today that many of the children of the world are wiser in their generation than are the children of the kingdom since they are skillful in making friends with the mammon of unrighteousness?” Jesus answered:
2000 169:2.1 어느 날 저녁 열심당원 시몬은 예수의 말씀 중 하나를 논평하며 말했다: “주여, 세상의 자녀들 가운데 다수가 불의의 재물을 써서 친구를 만드는 데 솜씨 있으므로 저희가 그 세대의 하늘나라 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당신이 오늘 말씀하셨사온데 무슨 의미이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2001 CM 169:2.1 어느 날 저녁에, 열심당 시몬이 예수의 어떤 말씀에 대해 논평했다:“주님, 세상의 자녀 가운데 다수가 불의한 재물로 친구 사귀기에 능숙하므로, 그 세대의 천국 자녀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오늘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
2007 URKA 169:2.1 어느 날 저녁, 열심당원 시몬은 예수의 말씀들 중의 하나에 대하여 거론하며 말했다: “주(主)여,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솜씨 있게 친구들을 만들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자녀들이 자신들의 세대 안에 있는 왕국의 자녀보다 더 현명하다고 하신 것은 오늘 무엇을 의미하신 것입니까?” 예수는 대답하였다:
1955 169:2.2 “Some of you, before you entered the kingdom, were very shrewd in dealing with your business associates. If you were unjust and often unfair, you were nonetheless prudent and farseeing in that you transacted your business with an eye single to your present profit and future safety. Likewise should you now so order your lives in the kingdom as to provide for your present joy while you also make certain of your future enjoyment of treasures laid up in heaven. If you were so diligent in making gains for yourselves when in the service of self, why should you show less diligence in gaining souls for the kingdom since you are now servants of the brotherhood of man and stewards of God?
2000 169:2.2 “너희 가운데 더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무척 기민(機敏)하게 사업 동료를 다루었느니라. 너희가 부당하고 때때로 불공평했다면, 그래도 너희가 오늘의 이익과 앞날의 안전에 열중하여 너희의 사업을 처리하였으므로, 너희는 신중하고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었느니라. 마찬가지로 현재의 즐거움을 마련하고 한편 또한 하늘에 쌓은 보물을 너희가 미래에 꼭 즐기도록, 너희는 이제 하늘나라 안에서 인생을 정리해야 하느니라. 자신을 위하여 일할 때 자기 이익을 얻느라고 너희가 아주 부지런하였거든, 너희가 이제 사람의 형제 단체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집사인즉, 어찌하여 하늘나라를 위하여 너희는 그리 부지런히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느냐?
2001 CM 169:2.2 “너희 가운데 더러는, 천국에 들어오기 전에 사업상 동역자들과 거래하는 데 매우 영리했다. 너희가 정당하지 않았고 때로는 불공평했더라도,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안전에 열중하여 사업을 운영했으므로, 너희는 신중했고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기쁨을 고려하는 동시에 또한 하늘에 쌓아 놓은 보물을 장차 꼭 즐길 수 있도록, 너희는 이제 천국 안에서 너희의 삶을 정리해야할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일했을 때,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너희가 그토록 부지런했거든, 이제는 사람의 형제단체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청지기인데도, 너희는 어찌하여 천국을 위하여 혼을 얻는 일에 열심을 보이지 않느냐?
2007 URKA 169:2.2 “너희들 중에 일부는 너희가 왕국에 들어가기 전, 너희 사업상의 연관-동료들과의 거래에서 매우 영민하였다. 만일 너희가 부당했고 그리고 가끔 불공평했다 해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안전에 오로지 눈을 돌리며 너희 사업을 거래했다는 것에서 신중하고도 통찰력이 있었다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너희가, 너희의 현재의 기쁨을 마련하듯이 한편으로 장차 하늘에 쌓아놓은 보물에서의 너희 즐거움을 또한 확보하면서, 왕국 안에서 너희 삶을 그렇게 정하여야만 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자아에 대한 봉사 안에서, 네 자신을 위해 이익을 만드는 일에 그토록 열심이었다면, 너희가 이제 사람의 형제신분에서의 하인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청지기이면서도, 어째서 너희는 왕국을 위하여혼을 얻는 것에서는 열심을 보이지 않느냐?
2025 169:2.2 “너희 가운데 더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무척 기민(機敏)하게 사업 동료를 다루었느니라. 너희가 부당하고 때때로 불공평했다면, 그래도 너희가 오늘의 이익과 앞날의 안전에 열중하여 너희의 사업을 처리하였으므로, 너희는 신중하고 멀리 내다보는 눈이 있었느니라. 마찬가지로 현재의 즐거움을 마련하고 한편 또한 하늘에 쌓은 보물을 너희가 미래에 꼭 즐기도록, 너희는 이제 하늘나라 안에서 인생을 정리해야 하느니라. 자신을 위하여 일할 때 자기 이익을 얻느라고 너희가 아주 부지런하였거든, 너희가 이제 사람의 형제 단체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집사인즉, 어찌하여 하늘나라를 위하여 너희는 그리 부지런히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느냐?[24]
1955 169:2.3 “You may all learn a lesson from the story of a certain rich man who had a shrewd but unjust steward. This steward had not only oppressed his master’s clients for his own selfish gain, but he had also directly wasted and squandered his master’s funds. When all this finally came to the ears of his master, he called the steward before him and asked the meaning of these rumors and required that he should give immediate accounting of his stewardship and prepare to turn his master’s affairs over to another.
2000 169:2.3 “재빠르지만 불의(不義)한 집사를 둔 어떤 부자의 이야기에서 너희는 모두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느니라. 이 집사는 이기심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주인의 손님들을 억압했을 뿐 아니라 또한 주인의 자금도 직접 낭비하고 탕진하였더라. 이 모두가 마침내 주인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 집사(執事)를 앞에 부르고 이 소문이 무슨 의미인가 물으며, 당장에 그 집사 직분에 관하여 보고하고 주인의 사무를 다른 자에게 넘겨줄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였더라.
2001 CM 169:2.3 “너희는 모두, 영리하지만 불의한 한 청지기를 둔 어떤 부자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손님을 위협해서 이기적으로 자기 몫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자산을 자기가 사용하고 허비했다. 이 모든 사실이 마침내 주인의 귀에까지 들리자, 청지기를 앞에 불러 그 소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으면서, 즉시 청지기직의 회계장부를 제출하고, 주인의 직무를 다른 이에게 넘겨줄 준비를 하라고 요구했다.
2007 URKA 169:2.3 “너희들 모두는 어떤 영리하지만 부당한 청지기를 둔 부자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청지기는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자기 주인의 손님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인의 자금도 직접 낭비하고 탕진하였다. 이 사실이 주인의 귀에까지 들리자, 그는 청지기를 앞에 불러 이들 소문의 의미를 물으면서 즉시 청지기직의 회계장부를 제출하고 그의 주인의 관련사들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준비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1955 169:2.4 “Now this unfaithful steward began to say to himself: ‘What shall I do since I am about to lose this stewardship? I have not the strength to dig; to beg I am ashamed. I know what I will do to make certain that, when I am put out of this stewardship, I will be welcomed into the houses of all who do business with my master.’ And then, calling in each of his lord’s debtors, he said to the first, ‘How much do you owe my master?’ He answered, ‘A hundred measures of oil.’ Then said the steward, ‘Take your wax board bond, sit down quickly, and change it to fifty.’ Then he said to another debtor, ‘How much do you owe?’ And he replied, ‘A hundred measures of wheat.’ Then said the steward, ‘Take your bond and write fourscore.’ And this he did with numerous other debtors. And so did this dishonest steward seek to make friends for himself after he would be discharged from his stewardship. Even his lord and master, when he subsequently found out about this, was compelled to admit that his unfaithful steward had at least shown sagacity in the manner in which he had sought to provide for future days of want and adversity.
2000 169:2.4 “이제 불충한 이 집사가 비로소 혼잣말을 하되, ‘내가 이 집사 자리를 잃으려 하니, 어찌하리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하자니 부끄럽구나. 이 집사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내 주인과 거래하는 모든 사람의 집에서 내가 분명히 환영받도록 무슨 일을 할지 아노라.’ 그리고 나서, 주인에게 빚진 자를 하나씩 부르면서 첫 사람에게 묻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하니 그가 대답하되 ‘기름 1백 되라’ 하였더라. 그리고 나서 그 집사가 이르되 ‘너의 밀랍판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서 50이라 고치라.’ 그리고 나서 또 다른 빚진 자에게 ‘네가 얼마나 빚졌느냐?’ 물으니 그가 대답하되 ‘밀 1백 되라’하였고, 다음에 그 집사가 말하되 ‘네 계약서를 가지고 80이라 적으라’ 하였으며, 수많은 다른 빚진 자들에게 이렇게 하였더라. 그래서 정직하지 않은 이 집사는 제 직분에서 쫓겨난 뒤에 자신을 위하여 친구를 만들려고 애썼더라. 그의 주, 주인조차 나중에 이를 발견한 뒤에, 앞날의 궁핍과 역경에 대비하여 마련하려고 쓴 방법으로 그 불충한 집사가 적어도 현명함을 보였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더라.
2001 CM 169:2.4 “그러자 이 불충한 청지기가 속으로 말했다:‘내가 청지기직을 잃게 됐으니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구걸하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이 청지기직을 그만뒀을 때, 나의 주인과 거래했던 모든 사람이 나를 자기 집으로 환영할 수 있도록,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겠다.’ 그리고 나서, 주인에게 빚진 자를 하나씩 불러서, 첫 사람에게,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름 일 백 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청지기는, ‘기록된 증서를 가져다가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고치라’고 했다. 또 다른 빚진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는 ‘밀 백 가마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청지기는, ‘너의 증서를 가져다가 팔십이라고 쓰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빚진 자에게도 이렇게 했다. 정직하지 못한 이 청지기는, 그 청지기직에서 물러난 후에 자기를 위한 친구들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의 주 곧 주인조차, 나중에 이것을 알고 나서, 불충한 청지기가 장차의 빈곤과 불운에 대비한, 적어도 그 태도에서는 현명함을 보여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07 URKA 169:2.4 “그러자 이 불충한 청지기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청지기직을 잃게 되었으니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하자니 부끄럽다. 내가 이 청지기직을 그만두었을 때, 내 주인과 거래했던 모든 사람의 집에서 내가 환영받을 수 있도록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겠구나.’ 그러고 나서, 자기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하나씩 부르면서, 첫 번째 사람에게, ‘나의 주인에게 얼마나 빚을 졌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름 일 백 되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청지기는 말하기를, ‘기록된 증서를 가져다가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고쳐라.’ 또 다른 빚진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는 ‘밀 일 백 가마입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네 증서를 가져다가 팔십이라고 써라.’ 그리고 다른 많은 빚진 자들에게도 이렇게 하였다. 정직하지 않은 이 청지기는 자기가 청지기직에서 쫓겨난 이후에 자신을 위한 친구들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썼다. 그의 주님이자 주인조차도, 나중에 이것을 알고는, 그의 불충한 청지기가 앞날의 빈곤과 역경에 대비한 태도에서는 적어도 총명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5 169:2.4 “이제 불충한 이 집사가 비로소 혼잣말을 하되, ‘내가 이 집사 자리를 잃으려 하니, 어찌하리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하자니 부끄럽구나. 이 집사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내 주인과 거래하는 모든 사람의 집에서 내가 분명히 환영받도록 무슨 일을 할지 아노라.’ 다음에, 주인에게 빚진 자를 하나씩 부르면서 첫 사람에게 묻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하니 그가 대답하되 ‘기름 1백 되라’ 하였더라. 그러자 그 집사가 이르되 ‘너의 밀랍판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서 50이라 고치라.’ 다음에 또 다른 빚진 자에게 ‘네가 얼마나 빚졌느냐?’ 물으니 그가 대답하되 ‘밀 1백 되라’하였고, 다음에 그 집사가 말하되 ‘네 계약서를 가지고 80이라 적으라’ 하였으며, 수많은 다른 빚진 자들에게 이렇게 하였더라. 그래서 정직하지 않은 이 집사는 제 직분에서 쫓겨난 뒤에 자신을 위하여 친구를 만들려고 애썼더라. 그의 주, 주인조차 나중에 이를 발견한 뒤에, 앞날의 궁핍과 역경에 대비하여 마련하려고 쓴 방법으로 그 불충한 집사가 적어도 현명함을 보였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더라.[26]
1955 169:2.5 “And it is in this way that the sons of this world sometimes show more wisdom in their preparation for the future than do the children of light. I say to you who profess to be acquiring treasure in heaven: Take lessons from those who make friends with the mammon of unrighteousness, and likewise so conduct your lives that you make eternal friendship with the forces of righteousness in order that, when all things earthly fail, you shall be joyfully received into the eternal habitations.
2000 169:2.5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이 세상의 아들들은 빛의 자녀들보다 앞날을 위하여 준비하면서 더 지혜를 보이느니라. 하늘의 보물을 얻고 있다고 공언하는 너희에게 내가 이르노라: 불의의 재물과 사귀는 자들에게서 교훈을 얻고, 마찬가지로 너희 인생에 처신하여, 땅의 일이 모두 실패할 때 너희가 영원한 거처에서 기쁘게 환영받도록 올바른 세력과 영원한 우정(友情)을 맺으라.
2001 CM 169:2.5 “그리고 이 세상 자녀들은, 이런 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면서, 때로는 빛의 자녀보다 더 현명함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너희에게 말하겠다: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 사람에게서 교훈을 받고, 마찬가지로 너희도 삶에 잘 처신하여, 의로운 세력들과 영원한 친구관계를 맺음으로써, 이 땅의 모든 것이 끊어질 때, 너희가 영원한 거처{居處}에서 기쁘게 영접 받을 수 있게 하라.
2007 URKA 169:2.5 “이 세상의 자녀들은 때때로, 미래를 위한 자신들의 준비에서, 이런 식으로, 빛의 자녀들이 하는 것보다 더욱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너희들에게 말하겠는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으라, 그리고 너희도 마찬가지로 너희을 삶을 그렇게 수행하여, 땅에서의 모든 것들이 시들 때, 너희가 영원한 거처에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정의의 세력들과 영원한 친구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1955 169:2.6 “I affirm that he who is faithful in little will also be faithful in much, while he who is unrighteous in little will also be unrighteous in much. If you have not shown foresight and integrity in the affairs of this world, how can you hope to be faithful and prudent when you are trusted with the stewardship of the true riches of the heavenly kingdom? If you are not good stewards and faithful bankers, if you have not been faithful in that which is another’s, who will be foolish enough to give you great treasure in your own name?
2000 169:2.6 “내가 단언하노니, 작은 일에 충실한 자는 큰 일에도 충실하며, 한편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또한 큰 일에도 불의하리라. 너희가 이 세상 일에 선견과 인품을 보이지 않았으면, 너희에게 하늘나라의 참된 재산의 관리를 맡겼을 때 어찌 너희가 충실하고 신중하기를 바랄 수 있느냐? 너희가 선한 집사요 충실한 은행가가 아니고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충실히 다루지 않았다면, 누가 그리 어리석어 너희 이름으로 너희에게 큰 보물을 주겠느냐?
2001 CM 169:2.6 “내가 단언하는데, 적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할 것이고,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할 것이다. 이 세상 일에서 선견지명과 성실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참된 하늘나라 재물을 관리하는 청지기 직분을 맡을 만큼 너희가 충실하고 신중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선한 청지기도 아니고 충실한 은행가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어떤 바보가 너희 이름으로 많은 재물을 맡기겠느냐?
2007 URKA 169:2.6 “내가 단언하겠는데, 적은 것에 신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신실할 것이며, 적은 것에 불의한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할 것이다. 너희가 만일 이 세상의 관련사에서 선견과 고결한-순수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 너희가 하늘왕국의 참된 재산에 대한 청지기직을 맡게 될 때, 어떻게 너희가 신실하고도 신중하다고 여겨지리라고 바랄 수가 있겠느냐? 만일 너희가 선한 청지기도 아니고 신실한 은행가도 아니라면,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것에 신실한 적도 없었다면, 어느 누가 너희 이름으로 큰 보물을 너희에게 줄만큼 그토록 바보이겠느냐?
1955 169:2.7 “And again I assert that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one while he despises the other. You cannot serve God and mammon.”
2000 169:2.7 “그리고 다시 내가 주장하노니,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하나를 사랑하든지, 아니면 하나에 매달리면서 다른 하나를 경멸하리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느니라.”
2001 CM 169:2.7 “다시 분명히 말하는데,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하나를 좋아하든지, 아니면 하나에 집착하고 다른 하나를 소홀히 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007 URKA 169:2.7 “내가 다시 분명히 말하는데, 어느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한다; 그는 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하나를 좋아할 것이고, 혹은 하나에 매달리고 반면에 다른 하나를 몹시 싫어할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1955 169:2.8 When the Pharisees who were present heard this, they began to sneer and scoff since they were much given to the acquirement of riches. These unfriendly hearers sought to engage Jesus in unprofitable argumentation, but he refused to debate with his enemies. When the Pharisees fell to wrangling among themselves, their loud speaking attracted large numbers of the multitude encamped thereabouts; and when they began to dispute with each other, Jesus withdrew, going to his tent for the night.
2000 169:2.8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재산을 모으는 데 탐닉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웃고 코웃음치기 시작했다. 적의(敵意)를 가진 이 사람들은 예수를 무익한 논쟁에 말려들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적들과 토론하려 하지 않았다. 바리새인들끼리 말다툼에 빠졌을 때, 그 시끄러운 말소리가 근처에서 야영하는 큰 군중의 눈을 끌었고 그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을 때, 예수는 물러나서 밤을 지내려고 자기 텐트로 갔다.
2001 CM 169:2.8 거기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재산 획득에 혈안이 돼있었으므로, 비웃으면서 조롱하기 시작했다. 대적하는 이 청중은 예수를 쓸데없는 논쟁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적들과 토의하기를 거절했다. 바리새인들끼리 말다툼을 벌이자, 그들의 큰 소리 때문에 많은 대중이 호기심으로 모여들었으며;그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물러나서, 잠을 자려고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다.
2007 URKA 169:2.8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들었을 때, 그들이 재산 획득에 탐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비웃고 코웃음 치기 시작했다. 이들 쌀쌀맞은 청중들은 예수를 무익한 논쟁에 말려들게 하려고 애썼지만, 예수는 자신의 적들과 논쟁하기 거절하였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이자, 그들의 큰 소리가 야영하는 많은 군중을 끌어 모았다; 그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자, 예수는 물러나, 밤을 지내려고 자기 천막으로 가셨다.
3. THE RICH MAN AND THE BEGGAR
3. 부자와 거지
3. 부자와 거지
3. 부자와 거지
3. 부자와 거지
1955 169:3.1 When the meeting became too noisy, Simon Peter, standing up, took charge, saying: “Men and brethren, it is not seemly thus to dispute among yourselves. The Master has spoken, and you do well to ponder his words. And this is no new doctrine which he proclaimed to you. Have you not also heard the allegory of the Nazarites concerning the rich man and the beggar? Some of us heard John the Baptist thunder this parable of warning to those who love riches and covet dishonest wealth. And while this olden parable is not according to the gospel we preach, you would all do well to heed its lessons until such a time as you comprehend the new light of the kingdom of heaven. The story as John told it was like this:
2000 169:3.1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졌을 때, 시몬 베드로가 일어나서 지휘하며 말했다: “여러분, 형제들아, 이렇게 너희 사이에 다투는 것이 보기가 딱하구나. 주는 말씀을 마쳤고, 너희는 그의 말씀을 숙고하는 것이 좋으니라. 이것은 주가 너희에게 새로 선포한 교리가 아니라. 부자와 거지에 관한 나지르인의 우화(寓話)를 너희가 또한 들은 적이 없느냐? 우리 가운데 더러는 재물을 사랑하고 부당한 재산을 탐내는 자에게 경고하는 이 비유를 세례자 요한이 천둥처럼 외치는 것을 들었느니라. 이 옛 비유는 우리가 설파하는 복음과 일치하지 않아도, 하늘나라의 새 빛을 이해하는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다 그 교훈을 주목하는 것이 좋으리라. 요한이 일러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으니라:
2001 CM 169:3.1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지자, 시몬 베드로가 일어서서 주도권을 잡고 말했다:“형제들이여, 여러분끼리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은 그 말씀을 잘 숙고해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에게 선포하신 것은 전혀 새로운 교리가 아닙니다. 부자와 거지에 대한 나실인의 우화를 듣지 못했습니까? 재물을 사랑하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을 탐내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이 비유를 세례 요한이 외치는 것을, 우리 중에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된 이 비유는 우리가 전파하는 그 복음과는 상관없지만, 하늘 나라의 새 빛을 납득할 때까지, 여러분은 모두 이 교훈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2007 URKA 169:3.1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지자, 시몬 베드로가 일어서서, 지휘하며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들끼리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主)는 말씀하였고, 너희는 그의 말씀을 잘 숙고해 보아라. 오늘 너희들에게 선포한 것은 전혀 새로운 교리가 아니다. 부자와 거지에 대한 나지르인들의 우화를 듣지 못하였느냐? 재물을 사랑하고 정직하지 못한 재물을 탐내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이 비유를 세례자 요한이 외치는 것을 우리들 중에서도 들은 사람들이 있다. 오래 된 이 비유는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지만, 하늘의 왕국의 새로운 빛을 깨달을 때까지 너희는 모두 이 교훈을 잘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025 169:3.1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졌을 때, 시몬 베드로가 일어나서 지휘하며 말했다: “여러분, 형제들아, 이렇게 너희 사이에 다투는 것이 보기가 딱하구나. 주는 말씀을 마쳤고, 너희는 그의 말씀을 숙고하는 것이 좋으니라. 이것은 주가 너희에게 새로 선포한 교리가 아니라. 부자와 거지에 관한 나지르인의 우화(寓話)를 너희가 또한 들은 적이 없느냐? 우리 가운데 더러는 재물을 사랑하고 부당한 재산을 탐내는 자에게 경고하는 이 비유를 세례자 요한이 천둥처럼 외치는 것을 들었느니라. 이 옛 비유는 우리가 설파하는 복음과 일치하지 않아도, 하늘나라의 새 빛을 이해하는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다 그 교훈을 주목하는 것이 좋으리라. 요한이 일러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으니라:
1955 169:3.2 “There was a certain rich man named Dives, who, being clothed in purple and fine linen, lived in mirth and splendor every day. And there was a certain beggar named Lazarus, who was laid at this rich man’s gate, covered with sores and desiring to be fed with the crumbs which fell from the rich man’s table; yes, even the dogs came and licked his sores. And it came to pass that the beggar died and was carried away by the angels to rest in Abraham’s bosom. And then, presently, this rich man also died and was buried with great pomp and regal splendor. When the rich man departed from this world, he waked up in Hades, and finding himself in torment, he lifted up his eyes and beheld Abraham afar off and Lazarus in his bosom. And then Dives cried aloud: ‘Father Abraham, have mercy on me and send over Lazarus that he may dip the tip of his finger in water to cool my tongue, for I am in great anguish because of my punishment.’ And then Abraham replied: ‘My son, you should remember that in your lifetime you enjoyed the good things while Lazarus in like manner suffered the evil. But now all this is changed, seeing that Lazarus is comforted while you are tormented. And besides, between us and you there is a great gulf so that we cannot go to you, neither can you come over to us.’ Then said Dives to Abraham: ‘I pray you send Lazarus back to my father’s house, inasmuch as I have five brothers, that he may so testify as to prevent my brothers from coming to this place of torment.’ But Abraham said: ‘My son, they have Moses and the prophets; let them hear them.’ And then answered Dives: ‘No, No, Father Abraham! but if one go to them from the dead, they will repent.’ And then said Abraham: ‘If they hear not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persuaded even if one were to rise from the dead.’”
2000 169:3.2 “디베스라 이름하는 어떤 부자(富者)가 있었는데, 자주 옷과 고운 리넨을 입고 날마다 명랑하고 찬란하게 살았는지라. 그리고 나사로라 이름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헌데가 가득한 채로 이 부자 집 대문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싶어 하였더라. 그렇다, 개들까지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더라. 그러다가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쉬었더라.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이 부자도 죽고, 크게 화려하고 임금처럼 찬란하게 매장되었느니라. 이 세상을 떠나자, 그 부자는 지옥에서 깨어났고 자신이 고통스러움을 발견하고서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았는지라. 그러자 디베스가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시고, 나사로를 이리로 보내사 손가락 끝을 물에 담가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 벌 때문에 내가 크게 괴로움이니이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대답하되 ‘이 사람아, 너는 일생 동안 좋은 것을 누렸고, 나사로는 마찬가지로 나쁜 것을 견디었음을 네가 기억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데 네가 고통 받는 것을 보니, 이제 이 모두가 바뀌었구나. 게다가 우리와 너 사이에 큰 심해(深海)가 있어, 우리가 너한테 갈 수 없고 너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그리고 나서 디베스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더라, ‘내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내 형제들이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나사로가 증언하도록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시기를 내가 비나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 사람아,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저희의 말을 듣게 하여라.’ 그리고 나서 디베스가 대답하되, ‘아니, 아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러나 한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서 저희에게 가면, 저희가 뉘우치리이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이 말하였더라, ‘저희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한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지언정 저희가 알아듣지 못하리라.’”
2001 CM 169:3.2 “디브스라는 이름의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자주색과 고운 세마포 옷을 입고, 매일 화려하게 꾸미면서 희락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나사로라는 부스럼투성이의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이 부자의 출입문 곁에 머물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했으며;심지어 개들도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 이윽고 거지가 죽게 됐고, 천사들이 그를 데려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쉬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부자도 죽어서 화려하고 호화롭게 매장됐다. 이 세상을 떠나자 부자는 지옥에서 깨어났고, 고통당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있고,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가 보였다. 그러자 디브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형벌로 크게 고통당하고 있으니,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다가 내 혀를 시원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했다:‘얘야,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들로 즐겼지만, 나사로는 한결같이 불행을 체험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바뀌어, 너는 고통을 받으나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다. 게다가,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서 우리가 너에게로 갈 수 없고, 네가 우리에게 올 수도 없다.’ 그러자 디브스가 아브라함에게 말했다:‘나에게 형제가 다섯 있으니, 이 고통스런 장소에 오지 않게 증언하도록 제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다:‘얘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저희에게서 들으면 된다.’ 그러자 디브스가 대답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었던 자가 살아나서 저희에게 간다면 저희가 회개할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말했다:‘저희가 모세도 듣지 않고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죽었던 자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2007 URKA 169:3.2 “디버스라는 이름의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과 고운 세마포 옷을 입고, 매일같이 화려하게 꾸미며 환락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거기에 나사로라 하는 부스럼투성이의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이 부자의 출입문 곁에 거하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다; 심지어는 개들도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 이윽고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이 그를 데려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쉬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부자도 죽어서 화려하고 호화롭게 매장되었다. 부자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죽음의 나라에서 깨어났으며, 고통을 당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디버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형벌로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다가 제 혀를 시원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나의 아들아,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들을 즐겼지만, 나사로는 악한 고통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바뀌어서, 너는 고통을 받으나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다. 그밖에도, 너와 우리들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서 우리가 너에게 갈 수도 없고, 네가 우리에게 올 수도 없다.’ 그러자 디버스가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저에게 형제가 다섯이 있으니, 제발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증거를 주셔서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다; ‘나의 아들아,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 그러자 디버스는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은 자가 그들에게 간다면 그들은 회개할 것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그들이 모세도 듣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아니한다면, 죽었던 자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그들은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2025 169:3.2 “디베스라 이름하는 어떤 부자(富者)가 있었는데, 자주 옷과 고운 리넨을 입고 날마다 명랑하고 찬란하게 살았는지라. 그리고 나사로라 이름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헌데가 가득한 채로 이 부자의 집 대문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싶어 하였더라. 그렇다, 개들까지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더라. 그러다가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쉬었더라. 다음에, 얼마 안 있어 이 부자도 죽고, 크게 화려하고 임금처럼 찬란하게 매장되었더라. 이 세상을 떠나자, 그 부자는 지옥에서 깨어났고 자신이 고통스러움을 발견하고서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았는지라. 그러자 디베스가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시고, 나사로를 이리로 보내사 손가락 끝을 물에 담가 내 혀를 식히게 하소서, 내 벌 때문에 내가 크게 괴로움이니이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하되 ‘이 사람아, 너는 일생 동안 좋은 것을 누렸고, 나사로는 마찬가지로 나쁜 것을 견디었음을 네가 기억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데 네가 고통받는 것을 보니, 이제 이 모두가 바뀌었구나. 게다가 우리와 너 사이에 큰 심해(深海)가 있어, 우리가 너한테 갈 수 없고 너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그때 디베스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더라, ‘내게 다섯 형제가 있으니, 내 형제들이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나사로가 증언하도록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시기를 내가 비나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 사람아,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저희의 말을 듣게 하여라.’ 그때 디베스가 대답하되, ‘아니, 아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그러나 한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서 저희에게 가면, 저희가 뉘우치리이다.’ 다음에 아브라함이 말하였더라, ‘저희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한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지언정 저희가 알아듣지 못하리라[32].’”
[33]
1955 169:3.3 After Peter had recited this ancient parable of the Nazarite brotherhood, and since the crowd had quieted down, Andrew arose and dismissed them for the night. Although both the apostles and his disciples frequently asked Jesus questions about the parable of Dives and Lazarus, he never consented to make comment thereon.
2000 169:3.3 베드로가 나지르인 단체의 이 옛 비유를 이야기한 뒤에, 그리고 군중이 조용해졌기 때문에 안드레가 일어나서 밤 동안에 자라고 해산했다.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에게 디베스와 나사로의 비유에 대하여 자꾸 물었어도, 예수는 거기에 대하여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았다.
2001 CM 169:3.3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실인 동우회의 이 우화를 베드로가 마치자, 인파가 조용해졌으므로, 안드레가 일어나서 그들을 잠자리에 들도록 해산시켰다. 사도와 제자들이 디브스와 나사로의 우화에 관해 종종 질문했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에 대해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2007 URKA 169:3.3 베드로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지르인 형제들의 이 우화를 마쳤을 때, 군중들이 조용해졌으므로, 안드레가 일어나 그들을 잠자리에 들도록 해산시켰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디버스와 나사로의 우화에 관하여 예수께 종종 질문을 하였지만, 그것에 대하여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2025 169:3.3 베드로가 나지르인 단체의 이 옛 비유를 이야기한 뒤에, 그리고 군중이 조용해졌기 때문에 안드레가 일어나서 밤 동안에 자라고 해산했다.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에게 디베스와 나사로의 비유에 대하여 자꾸 물었어도, 예수는 거기에 대하여 결코 논평하려 하지 않았다.
4. THE FATHER AND HIS KINGDOM
4. 아버지와 그의 나라
4. 아버지와 그의 나라
4. 아버지와 그의 왕국
4. 아버지와 그의 나라
1955 169:4.1 Jesus always had trouble trying to explain to the apostles that, while they proclaimed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God, the Father in heaven was not a king. At the time Jesus lived on earth and taught in the flesh, the people of Urantia knew mostly of kings and emperors in the governments of the nations, and the Jews had long contemplated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For these and other reasons, the Master thought best to designate the spiritual brotherhood of man as the kingdom of heaven and the spirit head of this brotherhood as the Father in heaven. Never did Jesus refer to his Father as a king. In his intimate talks with the apostles he always referred to himself as the Son of Man and as their elder brother. He depicted all his followers as servants of mankind and messenger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2000 169:4.1 사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선포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데 예수는 언제나 애를 먹었다. 예수가 땅에서 살고 육체를 입고 가르쳤을 때, 유란시아의 사람들은 대체로 여러 나라 정부에 있는 임금과 황제들에 대하여 알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것과 기타 이유 때문에, 주는 사람의 영적 단체를 하늘나라라고, 이 단체의 영적 우두머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결코 아버지를 임금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도들과 친밀하게 나눈 이야기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서, 그들의 형으로 언급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류의 하인으로, 하늘나라 복음의 사자로 묘사했다.
2001 CM 169:4.1 그들이 하나님 나라 확립을 선포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들에게 설명하기에 늘 힘들어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면서 가르칠 때, 유란시아 사람들은 대개 여러 나라 정부의 왕과 황제에 익숙했으며, 유대인은 하나님 왕국의 도래에 대해 오래 전부터 성찰해왔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주님은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를 하늘 나라라고, 이 형제관계의 영 우두머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왕으로 표현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가 사도들과 가깝게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또는 그들의 형님으로 표현했다. 그는 따르는 자들 전부를 인류의 봉사자로, 그리고 천국 복음의 사자로 묘사했다.
2007 URKA 169:4.1 예수는 그들이 하느님의 왕국 확립을 선포하는 동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왕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들에게 설명하는데 항상 힘들어하였다. 예수가 이 땅에 사시면서 육신 가운데에서 가르치실 때, 유란시아의 사람들은 대개 국가와 정부를 움직이는 왕 또는 황제에 익숙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다가올 하느님의 왕국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주(主)는 하늘의 왕국을 사람의 영적 형제신분으로 나타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이 형제신분의 영적 우두머리로 나타내 보고자 하는 최선의 생각을 하였다. 예수는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사도들과 가깝게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또는 그들의 형으로 언급하였다.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하인으로, 그리고 왕국 복음의 메신저로 묘사했다.
2025 169:4.1 사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선포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데 예수는 언제나 애를 먹었다. 예수가 땅에서 살고 육체를 입고 가르쳤을 때, 유란시아의 사람들은 대체로 여러 나라 정부에 있는 임금과 황제들에 대하여 알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것과 기타 이유 때문에, 주는 사람의 영적 단체를 하늘나라라고, 이 단체의 영적 우두머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결코 아버지를 임금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도들과 친밀하게 나눈 이야기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서, 그들의 형으로 언급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류의 하인으로, 하늘나라 복음의 사자로 묘사했다.
1955 169:4.2 Jesus never gave his apostles a systematic lesson concerning the personality and attributes of the Father in heaven. He never asked men to believe in his Father; he took it for granted they did. Jesus never belittled himself by offering arguments in proof of the reality of the Father. His teaching regarding the Father all centered in the declaration that he and the Father are one; that he who has seen the Son has seen the Father; that the Father, like the Son, knows all things; that only the Son really knows the Father, and he to whom the Son will reveal him; that he who knows the Son knows also the Father; and that the Father sent him into the world to reveal their combined natures and to show forth their conjoint work. He never made other pronouncements about his Father except to the woman of Samaria at Jacob’s well, when he declared, “God is spirit.”
2000 169:4.2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격과 속성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체계적 수업을 준 적이 없었다.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그들이 믿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수는 아버지가 실재함을 증명하는 논리를 내놓음으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아버지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모두, 그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아들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안다, 오로지 아들, 그리고 아들로부터 아버지를 계시받을 자가 정말로 아버지를 안다, 아들을 아는 자는 또한 아버지를 안다, 그리고 그들의 통합된 성질을 드러내고 그들이 결합하여 하는 일을 보이려고 아버지가 그를 세상으로 보냈다는 선언에 집중된다.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라”고 선포했을 때를 제쳐놓고, 아버지에 대하여, 주는 결코 다른 선언을 한 적이 없다.
2001 CM 169:4.2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인격과 속성들에 대해 사도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믿으라고 사람에게 요청한 적이 없으며;그들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으로 여겼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실체임을 증명하느라 논쟁을 일으킴으로 자기의 품위를 떨어뜨린 적이 결코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모두, 그와 아버지가 하나임을 선포하기;아들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선포하기;아버지도 아들처럼 모든 것을 아신다고 선포하기;아들만이, 그리고 아들로부터 아버지를 계시 받을 자만이 참으로 아버지를 안다고 선포하기;아들을 아는 자는 또한 아버지를 안다고 선포하기;그리고 그들의 통합된 본성을 나타내고 공동 업무를 보여주시려고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선포하기에 집중됐다.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여자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선포한 것 외에는, 아버지에 대해 다르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2007 URKA 169:4.2 예수는 사도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개인성과 속성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자기 아버지를 믿으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믿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예수는 아버지의 실체를 증명하는 논리를 내어 놓음으로서 품위를 떨어트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 관한 그의 가르침들은 모두 그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 아들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는 것; 아버지도 아들처럼 모든 것들을 아신다는 것; 아들만이 실제로 아버지를 알고, 그리고 아들이 자기 자신을 계시할 그러한 자들만이 아버지를 안다는 것; 아들을 아는 자는 또한 아버지도 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들의 병합된 본성들을 나타내고 그들의 공동 작업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에 중점을 두셨다.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여인에게 “하느님은 영이시다.”라고 선포한 것을 제외하고는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다르게 선언한 적이 없었다.
2025 169:4.2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격과 속성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체계적 수업을 준 적이 없었다.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그들이 믿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수는 아버지가 실재함을 증명하는 논리를 내놓음으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아버지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모두, 그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아들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안다, 오로지 아들, 그리고 아들로부터 아버지를 계시받을 자가 정말로 아버지를 안다, 아들을 아는 자는 또한 아버지를 안다, 그리고 그들의 통합된 성질을 드러내고 그들이 결합하여 하는 일을 보이려고 아버지가 그를 세상으로 보냈다는 선언에 집중된다[34][35][36][37][38][39][40][41].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라”고 선포했을 때를 제쳐놓고, 아버지에 대하여, 주는 결코 다른 선언을 한 적이 없다
[42].
1955 169:4.3 You learn about God from Jesus by observing the divinity of his life, not by depending on his teachings. From the life of the Master you may each assimilate that concept of God which represents the measure of your capacity to perceive realities spiritual and divine, truths real and eternal. The finite can never hope to comprehend the Infinite except as the Infinite was focalized in the time-space personality of the finite experience of the human life of Jesus of Nazareth.
2000 169:4.3 예수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그의 일생이 신다운 것을 관찰함으로 너희는 그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배운다. 주의 일생으로부터 너희는 각자 하나님 개념을 소화할지 모르며, 이 개념은 영적이고 신성한 실체, 실재하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너희 능력의 정도를 가리킨다. 나사렛 예수의 인생에서, 유한한 체험을 겪은 그 시공 인격 안에 무한자가 집중된 경우를 제외하고, 유한자는 결코 무한자를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다.
2001 CM 169:4.3 너희는 예수의 교훈에 의존함으로써가 아니라, 그의 삶이 신성하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하나님에 관해 배운다. 너희는 각자 주님의 일생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흡수할 수도 있는데, 이 개념은 영적이고 신성한 실체, 즉 실제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너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낸다. 나사렛 예수의 인생에서 유한한 체험을 겪은 시간-공간 인격 안에 무한자가 집중된 경우를 제외하고, 유한자는 무한자를 납득하기를 결코 기대할 수 없다.
2007 URKA 169:4.3 너희는 예수의 가르침으로써가 아니라, 그의 일생에서의 신성을 관찰함으로써, 하느님에 관하여 배우는 것이다. 주(主)의 일생으로부터 너희는 각자, 영적이며 신성한 실체, 실제이며 영원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너희의 수용능력의 척도를 나타내는 그러한 하느님의 개념을 동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인간 일생이 겪은 유한한 체험의 시간-공간 개인성 안에서 무한자가 초점화를 이룬 것과 같은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유한자가 무한자를 이해할 희망은 결코 바랄 수 없다.
2025 169:4.3 예수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그의 일생이 신다운 것을 관찰함으로 너희는 그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배운다. 주의 일생으로부터 너희는 각자 하나님 개념을 소화할지 모르며, 이 개념은 영적이고 신성한 실체, 실재하는 영원한 진실을 깨닫는 너희 능력의 정도를 가리킨다. 나사렛 예수의 인생에서, 유한한 체험을 겪은 그 시공 인격 안에 무한자가 집중된 경우를 제외하고, 유한자는 결코 무한자를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다.
1955 169:4.4 Jesus well knew that God can be known only by the realities of experience; never can he be understood by the mere teaching of the mind. Jesus taught his apostles that, while they never could fully understand God, they could most certainly know him, even as they had known the Son of Man. You can know God, not by understanding what Jesus said, but by knowing what Jesus was. Jesus was a revelation of God.
2000 169:4.4 오직 체험을 실제로 겪어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결코 지적 가르침만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잘 알았다. 사도들이 결코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들이 사람의 아들을 알고 지내온 것 같이, 아주 확실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예수는 사도들을 가르쳤다. 예수가 말씀한 것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어떤 분이었는가를 깨닫고서 너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였다.
2001 CM 169:4.4 예수께서는, 하나님은 오직 체험 실체로써만 알려지실 수 있다는 것과;정신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충분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만큼, 하나님을 아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가르쳤다. 너희는, 예수께서 말씀한 것을 이해함으로써가 아니라, 예수께서 어떤 분이었는지 깨달음으로써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였다.
2007 URKA 169:4.4 하느님은 오직 체험에서의 실체로써만 알려지실 수 있다는 것과; 마음에서의 가르침으로는 결코 그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잘 아셨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충분하게 하느님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아는 바로 그 만큼, 그를 아주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예수가 말한 것을 아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예수가 무엇이었는지를 앎으로써, 너희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계시였다.
2025 169:4.4 오직 체험을 실제로 겪어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결코 지적 가르침만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잘 알았다. 사도들이 결코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들이 사람의 아들을 알고 지내온 것 같이, 아주 확실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예수는 사도들을 가르쳤다. 예수가 말씀한 것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어떤 분이었는가를 깨닫고서 너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계시였다.
1955 169:4.5 Except when quoting the Hebrew scriptures, Jesus referred to Deity by only two names: God and Father. And when the Master made reference to his Father as God, he usually employed the Hebrew word signifying the plural God (the Trinity) and not the word Yahweh, which stood for the progressive conception of the tribal God of the Jews.
2000 169:4.5 히브리 성서를 인용(引用)할 때를 제외하고, 예수는 하나님과 아버지, 오직 이 두 이름으로 신을 언급했다.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주가 언급했을 때, 유대인의 부족 신의 진보된 개념을 대표한 야웨라는 낱말이 아니라, 여럿인 하나님(삼위일체)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를 보통 사용했다.
2001 CM 169:4.5 히브리 성서를 인용한 경우 외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아버지라는 오직 두 가지 이름으로만 신격을 언급했다. 그리고 주님이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유대인 부족{部族}의 하나님이라는 진취적 개념작용을 뜻하는 야훼라는 단어가 아니라, 복수{複數}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를 대개 사용했다.
2007 URKA 169:4.5 예수가 신(神)을 언급할 때, 히브리 경전을 인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느님과 아버지라는 오직 두 가지 이름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주(主)가 자기의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부르실 때에는 보통 복수의 하느님(삼위일체)을 표시하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종족적 하느님에 대한 진보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야훼라는 단어는 아니었다.
2025 169:4.5 히브리 성서를 인용(引用)할 때를 제외하고, 예수는 하나님과 아버지, 오직 이 두 이름으로 신을 언급했다.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주가 언급했을 때, 유대인의 부족 신의 진보된 개념을 대표한 야웨라는 낱말이 아니라, 여럿인 하나님(삼위일체)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를 보통 사용했다.
1955 169:4.6 Jesus never called the Father a king, and he very much regretted that the Jewish hope for a restored kingdom and John’s proclamation of a coming kingdom made it necessary for him to denominate his proposed spiritual brotherhood the kingdom of heaven. With the one exception—the declaration that “God is spirit”—Jesus never referred to Deity in any manner other than in terms descriptive of his own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Paradise.
2000 169:4.6 예수는 결코 아버지를 임금이라 부르지 않았고, 유대인들이 왕국의 회복을 희망하고 요한이 한 왕국이 다가온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자신이 제안한 영적 형제 정신을 하늘나라라 이름 붙이는 것이 필요했음을 무척 유감으로 생각했다. 한 가지 예외―”하나님은 영이라”는 선언―을 제외하고, 예수는 결코 파라다이스의 첫째 근원 중심과 자신의 개인적 관계를 설명하는 조건이 아닌 어떤 다른 방법으로 신을 언급하지 않았다.
2001 CM 169:4.6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왕이라고 부른 적이 전혀 없었으며,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유대인의 희망과, 한 왕국이 다가온다는 요한의 선포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시하는 영적 형제관계를 하늘 나라라고 불러야 할 필요성이 생겼음에 대해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한 번의 예외--곧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선포--를 제외하고, 낙원의 제1 근원 및 중심과 자신 사이의 개인적 관계를 설명하는 표현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신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2007 URKA 169:4.6 예수는 아버지를 왕으로 부른 적이 결코 없었으며, 회복되는 왕국에 대한 유대인들의 희망과 그리고 다가오는 왕국에 대한 요한의 선포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시하는 영적 형제신분을 하늘의 왕국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가 그에게 생기게 된 것을 무척 유감으로 생각하였다. 한 번의 예외─“하느님은 영이시다”라는 선포─를 제외하고는, 파라다이스의 첫째근원이며 중심과 자기 자신의 개인적 관계를 서술해야하는 경우가 아닌 다른 어떤 방법에서도 신(神)에 대하여 언급한 적은 결코 없었다.
1955 169:4.7 Jesus employed the word God to designate the idea of Deity and the word Father to designate the experience of knowing God. When the word Father is employed to denote God, it should be understood in its largest possible meaning. The word God cannot be defined and therefore stands for the infinite concept of the Father, while the term Father, being capable of partial definition, may be employed to represent the human concept of the divine Father as he is associated with man during the course of mortal existence.
2000 169:4.7 예수는 신 개념을 가리키려고 하나님이라는 낱말을 쓰고, 하나님을 아는 체험을 가리키려고 아버지라는 낱말을 썼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 아버지라는 낱말이 쓰일 때, 가능한 가장 큰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하나님이라는 낱말은 정의를 내릴 수 없고, 따라서 아버지의 무한한 개념을 대표하며, 한편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으로 정의(定義)를 내릴 수 있으니까, 필사자로 존재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상관되는 대로, 신다운 아버지에 대하여 인간이 가진 개념을 대표하는 데 써도 좋다.
2001 CM 169:4.7 예수께서는 신격 관념을 나타내려고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아는 체험을 나타내려고 사용했다.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최대한 가장 큰 의미로 이해돼야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정의될 수 없고,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개념을 대표하며, 한편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인 정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필사자 실존 과정에서 사람과 관련되는 신성한 아버지에 대한 인간 개념을 대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2007 URKA 169:4.7 예수는 신(神)에 대한 관념을 정의하기위하여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하느님을 아는 체험을 정의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하느님을 가리키기 위하여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가능한 가장 큰 의미로 납득되어야만 한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정의(定意)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아버지의 무한한 개념을 상징하며, 한편으로는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인 정의(定意)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가 필사자 실존의 과정에서 사람과 연관되는바와 같이, 그렇게 신성한 아버지의 인간 개념을 대표하는 데 사용해도 될 것이다.
2025 169:4.7 예수는 신 개념을 가리키려고 하나님이라는 낱말을 쓰고, 하나님을 아는 체험을 가리키려고 아버지라는 낱말을 썼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 아버지라는 낱말이 쓰일 때, 가능한 가장 큰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하나님이라는 낱말은 정의를 내릴 수 없고, 따라서 아버지의 무한한 개념을 대표하며, 한편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으로 정의(定義)를 내릴 수 있으니까, 필사자로 존재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상관되는 대로, 신다운 아버지에 대하여 인간이 가진 개념을 대표하는 데 써도 좋다.
1955 169:4.8 To the Jews, Elohim was the God of gods, while Yahweh was the God of Israel. Jesus accepted the concept of Elohim and called this supreme group of beings God. In the place of the concept of Yahweh, the racial deity, he introduced the idea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world-wide brotherhood of man. He exalted the Yahweh concept of a deified racial Father to the idea of a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men, a divine Father of the individual believer. And he further taught that this God of universes and this Father of all men were one and the same Paradise Deity.
2000 169:4.8 유대인에게 엘로힘은 신 중의 신이었고, 한편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예수는 엘로힘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 최고 집단의 존재들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종족의 신 야웨 개념 대신에,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은 세상에 두루 형제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신화(神化)된, 종족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야웨 개념을 사람의 모든 자손의 아버지라, 개별 신자의 신다운 아버지라는 관념으로 높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주의 이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이 아버지는 하나요, 동일한 파라다이스 신이라고 가르쳤다.
2001 CM 169:4.8 유대인에게, 엘로힘은 모든 신{神}의 하나님이었고,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예수께서는 엘로힘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 최고 존재들 집단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종족의 신격인 야훼 개념 대신에, 하나님은 아버지시요, 인간은 범-세계적 형제관계라는 관념을 소개했다. 그는 한 종족의 신격화된 아버지 개념을, 전체 인류 자녀의 아버지, 즉 개별 신자의 신성한 아버지라는 관념으로 증대시켰다. 더 나아가, 이 우주들의 하나님과 이 전체 인류의 아버지는 동일한 낙원 신격이라고 가르쳤다.
2007 URKA 169:4.8 유대인들에게, 엘로힘은 하느님들의 하느님이었으며, 한편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었다. 예수는 엘로힘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존재들의 이 최극 무리를 하느님으로 불렀다. 종족 신(神)인 야훼의 개념 대신에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범-세계적 형제신분 관념을 소개하였다. 그는 신(神)화한 종족적 아버지인 야훼 개념을, 사람의 모든 자녀의 아버지의 관념, 개별 신자의 신성한 아버지로 들어 올리셨다. 그리고 그는 나아가서 이 우주들의 하느님 그리고 모든 인류의 이 아버지는 하나였고 그리고 동일한 파라다이스 신(神)이라고 가르쳤다.
2025 169:4.8 유대인에게 엘로힘은 신 중의 신이었고, 한편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예수는 엘로힘 개념을 받아들였고, 이 최고 집단의 존재들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종족의 신 야웨 개념 대신에,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은 세상에 두루 형제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신화(神化)된, 종족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야웨 개념을 사람의 모든 자손의 아버지라, 개별 신자의 신다운 아버지라는 관념으로 높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주의 이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이 아버지는 하나요, 동일한 파라다이스 신이라고 가르쳤다.
1955 169:4.9 Jesus never claimed to be the manifestation of Elohim (God) in the flesh. He never declared that he was a revelation of Elohim (God) to the worlds. He never taught that he who had seen him had seen Elohim (God). But he did proclaim himself as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in the flesh, and he did say that whoso had seen him had seen the Father. As the divine Son he claimed to represent only the Father.
2000 169:4.9 예수는 결코 그가 엘로힘(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나타난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다. 그가 여러 세상에 대하여 엘로힘(하나님)를 계시하는 자라고 결코 선언하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이 엘로힘(하나님)을 보았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육체의 모습으로 계시(啓示)된 것이라고 선언했고, 그를 본 자는 누구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했다. 신다운 아들로서 그는 오로지 아버지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2001 CM 169:4.9 예수께서는 결코 자기가 육신을 입고 나타난 엘로힘(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계들에게 엘로힘(곧 하나님)을 계시하는 자라고 선포하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은 엘로힘(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반면에 자신은 육체를 입고 아버지를 계시하는 존재라고 선언하고, 자신을 본 자는 누구나 아버지를 봤다고 말씀했다. 그는 신의 아들로서 오직 아버지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2007 URKA 169:4.9 예수는 결코 엘로힘(하느님)이 육신을 입고 현시활동된 것이라 주장한 적이 없다. 그는 그가 세계들을 향한 엘로힘(하느님)의 계시라고 선포하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은 엘로힘(하느님)을 본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아버지에 대한 육체 속에서의 계시라고 선언하고, 그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는 신성한 아들로서 오직 아버지만을 대표한다고 단언하였다.
2025 169:4.9 예수는 결코 그가 엘로힘(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나타난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다. 그가 여러 세상에 대하여 엘로힘(하나님)을 계시하는 자라고 결코 선언하지 않았다. 그를 본 사람이 엘로힘(하나님)을 보았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육체의 모습으로 계시(啓示)된 것이라고 선언했고, 그를 본 자는 누구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했다. 신다운 아들로서 그는 오로지 아버지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1955 169:4.10 He was, indeed, the Son of even the Elohim God; but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to the mortal sons of God, he chose to limit his life revelation to the portrayal of his Father’s character in so far as such a revelation might be comprehensible to mortal man. As regards the character of the other persons of the Paradise Trinity, we shall have to be content with the teaching that they are altogether like the Father, who has been revealed in personal portraiture in the life of his incarnated Son, Jesus of Nazareth.
2000 169:4.10 정말로 주는 엘로힘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서, 하나님의 필사 아들들에게, 그런 계시를 필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 일생의 계시를 아버지 성품의 묘사에 국한하기로 하였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다른 성격자들의 성품에 관하여 말하면, 우리는 그들이 전적으로 아버지와 같다는 가르침에 만족해야 할 것이고, 아버지는 육신화한 아들, 나사렛 예수의 일생에 담긴 인품 묘사에 드러났다.
2001 CM 169:4.10 그는 정말로 엘로힘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했지만;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필사 아들들에게, 그런 계시를 필사적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삶을 통한 계시를, 아버지의 성품을 묘사하는 데 국한시키기로 결정했다. 낙원 삼위일체의 다른 인격자들의 성품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들이 전체적으로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가르침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고, 아버지는 육신화한 아들 곧 나사렛 예수의 생애에서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드러났다.
2007 URKA 169:4.10 그는 참으로 그와 같은 엘로힘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필사 육체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필사자 아들들에게 주는 그러한 계시가, 필사 사람들에게 이해될지도 모를 한도만큼 그 안에서, 자신의 일생의 계시를 자신의 아버지의 성격을 묘사하는데 국한하기로 하였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다른 개인들의 성격에 대해서는, 육신화한 아들, 나사렛 예수의 일생 속에서 개인적 모습으로 그려져 계시되었던 아버지와 동일하다는 가르침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2025 169:4.10 정말로 주는 엘로힘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서, 하나님의 필사 아들들에게, 그런 계시를 필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 일생의 계시를 아버지의 성품을 묘사하는 데 국한하기로 하였다.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다른 성격자들의 성품에 관하여 말하면, 우리는 그들이 전적으로 아버지와 같다는 가르침에 만족해야 할 것이고, 아버지는 육신화한 아들, 나사렛 예수의 일생에 담긴 인품 묘사에 드러났다.
1955 169:4.11 Although Jesus revealed the true nature of the heavenly Father in his earth life, he taught little about him. In fact, he taught only two things: that God in himself is spirit, and that, in all matters of relationship with his creatures, he is a Father. On this evening Jesus made the final pronouncement of his relationship with God when he declared: “I have come out from the Father, and I have come into the world; again, I will leave the world and go to the Father.”
2000 169:4.11 땅에서 일생을 살면서 하늘 아버지의 참 성품을 드러내기는 했어도, 예수는 아버지에 대하여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오직 두 가지만 가르쳤다: 하나님 자신은 영이며, 지음받은 존재들과 가지는 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에서 아버지라는 것이다. 이날 저녁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고 나는 이 세상으로 왔노라. 또 나는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리라” 선언했을 때, 예수는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최종 선언을 했다.
2001 CM 169:4.11 이 세상에서 일생을 살면서 하늘 아버지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기는 했어도, 예수께서 아버지에 관해 가르친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오직 두 가지만 가르쳤는데:자신 속에 계신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과, 피조물과 갖는 모든 관계성에서 그가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날 저녁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으며;이 세상을 떠나서 다시 아버지께로 갈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최종 선언을 했다.
2007 URKA 169:4.11 예수가 비록 자신의 이 땅에서의 일생 속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된 본성을 나타내셨다 할지라도, 그에 관하여 가르친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오직 두 가지만을 가르치셨는데: 자신 속에 계신 하느님은 영이시라는 것과, 창조체들과의 모든 관계성에서 아버지이시라는 것이었다. 이 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왔으며; 나는 다시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갈 것이다.”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예수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최종적인 선포를 하였다.
1955 169:4.12 But mark you! never did Jesus say, “Whoso has heard me has heard God.” But he did say, “H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To hear Jesus’ teaching is not equivalent to knowing God, but to see Jesus is an experience which in itself is a revelation of the Father to the soul. The God of universes rules the far-flung creation, but it is the Father in heaven who sends forth his spirit to dwell within your minds.
2000 169:4.12 그러나 너희는 잘 들어라! 예수는 결코 “내 말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대등하지 않지만, 예수를 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아버지를 그 사람에게 계시하는 그런 체험이다. 우주들의 하나님은 방대한 창조를 다스려도, 자기의 영을 너희 지성 안에 거하라고 보내는 분은 하늘에 계신 그 아버지이다.
2001 CM 169:4.12 그러나 명심하라! 예수께서는, “내 음성을 들은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전혀 없는 반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고 말씀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지 않지만, 예수를 본 것은, 그 자체로, 아버지를 그 혼에게 계시하는 어떤 체험이다. 우주들의 하나님이 방대한 창조물을 다스리지만, 너희 정신 속에 거하도록 자신의 영을 보내는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
2007 URKA 169:4.12 그러나 명심하라! 예수는 “나의 음성을 들은 자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라고 말씀한 적이 전혀 없으시지만, 반면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하느님을 안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본 것 그 자체가 혼에게 계시된 아버지를 체험한 것이다. 우주들의 하느님은 멀리 퍼져 나가는 창조를 지배하지만, 너희 마음속에 거하도록 자신의 영을 보내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1955 169:4.13 Jesus is the spiritual lens in human likeness which makes visible to the material creature Him who is invisible. He is your elder brother who, in the flesh, makes known to you a Being of infinite attributes whom not even the celestial hosts can presume fully to understand. But all of this must consist in the personal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believer. God who is spirit can be known only as a spiritual experience. God can be revealed to the finite sons of the material worlds, by the divine Son of the spiritual realms, only as a Father. You can know the Eternal as a Father; you can worship him as the God of universes, the infinite Creator of all existences.
2000 169:4.13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영적 렌즈요, 이 렌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분을 물질 인간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너희의 형이요, 육체를 입고서, 하늘의 무리들조차도 감히 넉넉히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 한 존재를 너희가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개별 신자가 몸소 겪는 체험에 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영이고, 오직 영적 체험으로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적 영역을 다스리는 신다운 아들들은 하나님을 오직 아버지로서 물질 세계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 너희는 영원자가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를 우주의 하나님, 모든 존재의 무한한 창조자로 예배할 수 있다.
2001 CM 169:4.13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영적 렌즈인데, 이 렌즈는 볼 수 없는 그분을 물질 피조물이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천상의 무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속성의 어떤 존재를, 육신 속에서 너희에게 알려주는 너희의 형님이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개별 신자가 몸소 겪는 체험에서 비롯돼야 한다:영적으로 체험함으로만,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영적 영역들을 다스리는 신의 아들은, 하나님을 오직 아버지로서만 물질세계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 너희는 영원자가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으며;그분을, 우주들의 하나님 곧 만유의 무한하신 창조주로 경배할 수 있다.
2007 URKA 169:4.13 예수는 물질적인 창조체에게 보일 수가 없는 그 분을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인간 모습에서의 영적 렌즈이다. 그는 천상의 집단들도 충분하게 납득할 수 없는 무한한 속성들의 존재를 육신을 입고 너희에게 알려주는 너희의 형님이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믿는 자 개별존재의 개인적 체험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이신 하느님은 영적 체험으로써만 알려질 수 있다. 하느님은 영적 세계의 신성한 아들에 의해서, 오직 아버지로써만, 물질적 세계들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알려지실 수 있다. 너희는 영원자를 아버지로서 알 수 있다; 너희는 우주들의 하느님, 모든 실존들의 무한한 창조자로서 그에게 경배를 드릴 수 있다.
2025 169:4.13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가진 영적 렌즈요, 이 렌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분을 물질 인간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너희의 형이요, 육체를 입고서, 하늘의 무리들조차도 감히 넉넉히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 한 존재를 너희가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개별 신자가 몸소 겪는 체험에 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영이고, 오직 영적 체험으로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50]. 영적 영역을 다스리는 신다운 아들들은 하나님을 오직 아버지로서 물질 세계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 너희는 영원자가 아버지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를 우주의 하나님, 모든 존재의 무한한 창조자로 예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