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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THE TIME OF THE TOMB
제 188 편무덤에 있던 시간
제188편: 무덤에 있던 시간
제 188 편: 무덤에서의 시간
무덤에 있던 시간
1955 188:0.1 THE day and a half that Jesus’ mortal body lay in the tomb of Joseph, the period between his death on the cross and his resurrection, is a chapter in the earth career of Michael which is little known to us. We can narrate the burial of the Son of Man and put in this record the events associated with his resurrection, but we cannot supply much information of an authentic nature about what really transpired during this epoch of about thirty-six hours, from three o’clock Friday afternoon to three o’clock Sunday morning. This period in the Master’s career began shortly before he was taken down from the cross by the Roman soldiers. He hung upon the cross about one hour after his death. He would have been taken down sooner but for the delay in dispatching the two brigands.
2000 188:0.1 예수의 필사 육체가 요셉의 무덤에 놓여 있던 하루 반,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사이의 기간은 미가엘이 땅에서 지낸 생애에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기이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이 무덤에 묻힌 것을 이야기하고 이 기록에 부활과 연결된 사건들을 적을 수 있지만,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새벽 3시까지, 약 36시간에 달하는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정말로 벌어졌는가, 신빙성 있는 정보를 많이 제공할 수 없다. 주의 생애에서 이 기간은 로마 군인들이 그를 십자가에서 끌어내기 조금 전에 시작되었다. 그는 죽은 뒤에 거의 1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두 도둑을 처치하느라고 지연되지 않았다면, 그를 더 일찍 끌어내렸을 것이다.
2001 CM 188:0.1 예수의 필사 신체가 요셉의 무덤에 놓여있었던 하루 반나절, 즉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부터 부활할 때까지의 기간은, 미가엘이 이 땅에서 보낸 생애 가운데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을 매장한 과정을 설명할 수 있고, 그의 부활과 관련된 사건들도 여기에 기록할 수 있지만, 금요일 오후 세 시부터 일요일 새벽 세 시까지, 약 서른여섯 시간 동안 정말로 무엇이 일어났었는지에 관해, 믿을만한 정보를 많이 제시할 수 없다. 주님의 생애 중에서 이 기간은, 로마 병사가 그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기 직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돌아가신 후 약 한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있었다. 두 강도를 죽이는 일로 지체되지 않았다면, 그의 시신을 더 빨리 끌어내렸을 것이다.
2007 URKA 188:0.1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때로부터 부활까지, 예수의 시신이 요셉의 무덤에 있었던 하루 반나절 동안은, 미가엘이 이 땅에서 보내신 시간들 중에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을 매장한 과정을 설명할 수 있고 그의 부활과 관계된 사건들을 여기에 기록할 수도 있지만,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아침 3시까지, 약 36시간의 이 신(新)시대 동안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었는지 그 확실한 현상에 대한 자료를 제시할 수 없다. 주(主)의 일생 중에서 이 기간은 그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지기 직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돌아가신 후로 약 한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두 강도를 죽이는 일로 지체되지 않았다면 그의 시신이 보다 빨리 내려졌을 것이다.
2025 188:0.1 예수의 필사 육체가 요셉의 무덤에 놓여 있던 하루 반,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사이의 기간은 미가엘이 땅에서 지낸 생애에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기이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이 무덤에 묻힌 것을 이야기하고 이 기록에 부활과 연결된 사건들을 적을 수 있지만,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새벽 3시까지, 약 36시간에 달하는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정말로 벌어졌는가, 신빙성 있는 정보를 많이 제공할 수 없다. 주의 생애에서 이 기간은 로마 군인들이 그를 십자가에서 끌어내기 조금 전에 시작되었다. 그는 죽은 뒤에 거의 1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두 도둑을 처치하느라고 지연되지 않았다면, 그를 더 일찍 끌어내렸을 것이다.
1955 188:0.2 The rulers of the Jews had planned to have Jesus’ body thrown in the open burial pits of Gehenna, south of the city; it was the custom thus to dispose of the victims of crucifixion. If this plan had been followed, the body of the Master would have been exposed to the wild beasts.
2000 188:0.2 유대인 권력자들은 도시 남쪽, 게헤나의 노천 무덤 구덩이에 예수의 시체를 던지게 하려고 전에 계획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들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따랐더라면, 주의 몸은 사나운 짐승들에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2001 CM 188:0.2 유대인 관리들은, 성 남쪽에 게헨나라는 넓은 구덩이로 예수의 시신을 던져 넣을 계획이었으며;십자가에서 처형된 자는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 계획이 그대로 진행됐다면, 주님의 시신은 맹수들에게 뜯겼을 것이다.
2007 URKA 188:0.2 유대인 통치자들은 예수의 시신을 그 성의 남쪽에 있는 게헤나 라는 넓은 구덩이에 던져 넣을 계획이었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자는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 계획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주(主)의 시신은 맹수들에게 뜯겼을 것이다.
2025 188:0.2 유대인 권력자들은 도시 남쪽, 게헤나의 노천 무덤 구덩이에 예수의 시체를 던지게 하려고 전에 계획했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들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을 따랐더라면, 주의 몸은 사나운 짐승들에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1955 188:0.3 In the meantime, Joseph of Arimathea, accompanied by Nicodemus, had gone to Pilate and asked that the body of Jesus be turned over to them for proper burial. It was not uncommon for friends of crucified persons to offer bribes to the Roman authorities for the privilege of gaining possession of such bodies. Joseph went before Pilate with a large sum of money, in case it became necessary to pay for permission to remove Jesus’ body to a private burial tomb. But Pilate would not take money for this. When he heard the request, he quickly signed the order which authorized Joseph to proceed to Golgotha and take immediate and full possession of the Master’s body. In the meantime, the sandstorm having considerably abated, a group of Jews representing the Sanhedrin had gone out to Golgotha for the purpose of making sure that Jesus’ body accompanied those of the brigands to the open public burial pits.
2000 188:0.3 그동안에,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를 데리고 빌라도에게 가서, 적절히 장사를 지내려고 예수의 시체를 그들에게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친구들이 그런 시체를 소유하는 특권을 얻으려고 로마 당국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요셉은 사립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옮길 허락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하게 될 경우에 쓰려고, 큰 돈을 마련하여 빌라도 앞으로 갔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때문에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 요청을 듣자, 그는 요셉에게 골고다로 가서 주의 몸을 즉시 완전히 소유하도록 인가하는 명령서에 재빨리 서명했다. 그동안에, 모래 폭풍이 어지간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예수의 시체가 노천의 공동 무덤 구덩이까지 도둑들의 시체를 따랐는가 확인할 목적으로 산헤드린을 대표하는 유대인 무리가 골고다를 향해서 이미 떠났다.
2001 CM 188:0.3 한편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와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적절히 장사지낼 수 있도록 자신들에게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친구들이, 그런 시체를 소유하는 특별혜택을 얻으려고 로마 권세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요셉은 많은 돈을 지참하고 빌라도에게 갔으며, 예수의 시신을 사유{私有} 매장지로 옮길 수 있는 허락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려고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것 때문에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요청을 듣자, 그는 요셉이 골고다에 가서 주님의 시신을 즉시 온전히 소유하게 한다는 명령서에 바로 서명했다. 그동안, 모래 폭풍이 현저히 감소됐고, 강도들의 시체와 함께 예수의 시신을 넓은 공공 매장지 구덩이에 던져 넣었는지 확인하려고, 산헤드린을 대표하는 유대인 무리가 골고다를 향해 떠났다.
2007 URKA 188:0.3 한편,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와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자기들이 적절하게 장사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십자가에 처형된 사람의 친구들이 그 시체의 소유권에 대한 권리를 로마 당국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요셉은 많은 돈을 지참하고 빌라도에게 갔으며, 예수의 시신을 사유(私有) 매장지로 옮길 수 있는 허락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빌라도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그 요청을 들었을 때, 그는 요셉으로 하여금 골고다에 가서 주(主)의 시신을 즉시 그에게 소유하도록 한다는 명령서에 바로 서명을 하였다. 그 동안, 모래 폭풍이 현저히 감소되었고, 강도들의 시체와 함께 예수의 시신을 넓은 공공 매장지 구덩이에 던져 넣기 위하여, 산헤드린에서 보낸 여러 명의 유대인들이 골고다로 출발하였다.
2025 188:0.3 그동안에, 아리마대 요셉은 니고데모를 데리고 빌라도에게 가서, 적절히 장사를 지내려고 예수의 시체를 그들에게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1].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의 친구들이 그런 시체를 소유하는 특권을 얻으려고 로마 당국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요셉은 사립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옮길 허락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하게 될 경우에 쓰려고, 큰 돈을 마련하여 빌라도 앞으로 갔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때문에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 요청을 듣자, 그는 요셉에게 골고다로 가서 주의 몸을 즉시 완전히 소유하도록 인가하는 명령서에 재빨리 서명했다. 그동안에, 모래 폭풍이 어지간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예수의 시체가 노천의 공동 무덤 구덩이까지 도둑들의 시체를 따랐는가 확인할 목적으로 산헤드린을 대표하는 유대인 무리가 골고다를 향해서 이미 떠났다.
1. THE BURIAL OF JESUS
1.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다
1. 예수를 매장함
1. 예수의 매장
1.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다
1955 188:1.1 When Joseph and Nicodemus arrived at Golgotha, they found the soldiers taking Jesus down from the cross and the representatives of the Sanhedrin standing by to see that none of Jesus’ followers prevented his body from going to the criminal burial pits. When Joseph presented Pilate’s order for the Master’s body to the centurion, the Jews raised a tumult and clamored for its possession. In their raving they sought violently to take possession of the body, and when they did this, the centurion ordered four of his soldiers to his side, and with drawn swords they stood astride the Master’s body as it lay there on the ground. The centurion ordered the other soldiers to leave the two thieves while they drove back this angry mob of infuriated Jews. When order had been restored, the centurion read the permit from Pilate to the Jews and, stepping aside, said to Joseph: “This body is yours to do with as you see fit. I and my soldiers will stand by to see that no man interferes.”
2000 188:1.1 골고다에 다다랐을 때, 요셉과 니고데모는 군인들이 십자가에서 예수를 끌어내리고 있고, 예수의 추종자들 중에서 아무도 그의 시체가 범죄자의 무덤 구덩이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처리하려고 산헤드린의 대표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셉이 주의 시체를 가지려고 빌라도의 명령을 백부장에게 내밀었을 때, 유대인들은 그 시체를 소유하려고 소동을 피우고 아우성쳤다. 고함을 치면서 그들은 시체를 가져가려고 사납게 애썼고, 그들이 이렇게 하자, 백부장은 군인 넷을 자기 옆에 불렀다. 시체가 땅에 놓인 대로, 그들은 칼을 뽑아 들고, 주의 몸 좌우에 버티고 섰다. 성이 머리끝까지 치민, 이 성난 유대인 폭도들을 그들이 밀어내는 동안 백부장은 다른 군인들에게 두 도둑을 버려두라고 명령했다. 질서를 다시 찾고 나서, 백부장은 빌라도로부터 받은 허가증을 유대인들에게 읽고, 옆으로 걸어 나와서 요셉에게 말했다: “이 시체는 네 것이니 좋은 대로 하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와 내 군인들은 대기하겠노라.”
2001 CM 188:1.1 골고다에 도착했을 때 요셉과 니고데모는,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있는 것과, 그의 시신을 죄수의 무덤구덩이로 옮기는 일을 예수를 따르는 자들 가운데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산헤드린 대표자들이 옆에 서서 감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셉이 주님의 시신에 대한 빌라도의 명령서를 백부장에게 제시하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소란을 피우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들이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맹렬하게 시신을 가져가려고 하면서 행동에 옮기려하자, 백부장은 네 병사들에게 자기 옆으로 오도록 명령했고, 그들은 땅에 눕혀있는 주님의 시신 양쪽에 칼을 뽑아들고 섰다. 명령을 받은 다른 병사들이 성난 유대인들을 뒤로 물리치는 동안, 백부장은 두 강도의 시체를 내버려두라고 명령했다. 질서가 회복된 후에, 백부장은 빌라도가 보낸 명령서를 유대인들에게 읽어주고, 옆으로 가서 요셉에게 말했다:“이 시신은 당신의 소유이니 소견대로 하시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내가 병사들과 함께 지켜주겠소.”
2007 URKA 188:1.1 요셉과 니고데모가 골고다에 도착하였을 때,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있고, 죄수를 매장하는 구덩이로 그의 시신을 옮겨가는 일을 예수의 추종자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산헤드린에서 보낸 사람들이 옆에 서서 감시하고 있는 것을 그들은 발견하였다. 요셉이 주(主)의 시신에 대한 빌라도의 명령서를 백부장에게 제시하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소란을 피우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들이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맹렬하게 그 시신을 가져가려고 하면서 행동에 옮기려고 하자, 백부장은 네 명의 군인에게 옆에 서도록 명령하였으며, 그들은 칼을 빼들고 땅에 눕혀져 있는 주(主)의 몸 좌우에 버티고 섰다. 백부장은 다른 군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화난 유대인들을 뒤로 물리치는 동안, 강도들의 시체를 치우도록 하였다. 질서가 회복된 후에, 백부장은 빌라도가 보낸 명령서를 유대인들에게 읽어주고, 옆으로 가서 요셉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시신은 당신의 소유이니 소견대로 하시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내가 군인들과 함께 지켜주겠소.”
2025 188:1.1 골고다에 다다랐을 때, 요셉과 니고데모는 군인들이 십자가에서 예수를 끌어내리고 있고, 예수의 추종자들 중에서 아무도 그의 시체가 범죄자의 무덤 구덩이로 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처리하려고 산헤드린의 대표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셉이 주의 시체를 가지려고 빌라도의 명령을 백부장에게 내밀었을 때, 유대인들은 그 시체를 소유하려고 소동을 피우고 아우성쳤다. 고함을 치면서 그들은 시체를 가져가려고 사납게 애썼고, 그들이 이렇게 하자, 백부장은 군인 넷을 자기 옆에 불렀다. 시체가 땅에 놓인 대로, 그들은 칼을 뽑아 들고, 주의 몸 좌우에 버티고 섰다. 성이 머리끝까지 치민, 이 성난 유대인 폭도들을 그들이 밀어내는 동안 백부장은 다른 군인들에게 두 도둑을 버려 두라고 명령했다. 질서를 다시 찾고 나서, 백부장은 빌라도로부터 받은 허가증을 유대인들에게 읽고, 옆으로 걸어 나와서 요셉에게 말했다: “이 시체는 네 것이니 좋은 대로 하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와 내 군인들은 대기하겠노라.”
1955 188:1.2 A crucified person could not be buried in a Jewish cemetery; there was a strict law against such a procedure. Joseph and Nicodemus knew this law, and on the way out to Golgotha they had decided to bury Jesus in Joseph’s new family tomb, hewn out of solid rock, located a short distance north of Golgotha and across the road leading to Samaria. No one had ever lain in this tomb, and they thought it appropriate that the Master should rest there. Joseph really believed that Jesus would rise from the dead, but Nicodemus was very doubtful. These former members of the Sanhedrin had kept their faith in Jesus more or less of a secret, although their fellow Sanhedrists had long suspected them, even before they withdrew from the council. From now on they were the most outspoken disciples of Jesus in all Jerusalem.
2000 188:1.2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유대인 공동 묘지에 묻힐 수 없었고, 그러한 절차를 금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 법을 알았고, 골고다를 향하여 나가는 길에, 단단한 바위에서 깎아 새긴, 요셉의 새 가족 무덤에 예수를 묻기로 전에 작정했고, 이것은 골고다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마리아로 이어지는 길 건너에 있었다. 아무도 이 무덤에 묻힌 적이 없었고, 그들은 주가 여기에 매장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요셉은 정말로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고 믿었지만, 니고데모는 몹시 의심했다. 산헤드린의 이 옛 회원들은 예수 믿는 것을 얼마큼 비밀로 지켰다. 하지만 그들이 공회에서 사퇴하기 전에도, 동료 산헤드린 회원들은 오랫동안 그들을 의심해 왔다. 이제부터 계속, 그들은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과감하게 말하는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2001 CM 188:1.2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유대인의 무덤에 묻힐 수 없었으며;그런 절차를 금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 법을 알았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요셉이 새로 만든 가족무덤에 예수를 묻기로 결정했으며, 그 무덤은 사마리아로 가는 길 건너편, 골고다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단단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이 무덤에는 아무도 묻힌 적이 없었고, 그들은 주님을 거기에 눕히는 것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날 것을 요셉은 정말로 믿었지만, 니고데모는 거의 믿지 않았다. 전에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이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신앙을 어느 정도 비밀리에 지키고 있었으나, 이들이 협의회를 그만두기 전에도, 산헤드린 회원 동료들 중에는 오래 전부터 이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날부터 예루살렘 전역에서 예수를 가장 과감하게 전하는 제자가 됐다.
2007 URKA 188:1.2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은 유대인의 무덤에 묻힐 수 없었다; 그러한 절차를 금지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 법을 알고 있었으며, 골고다로 가는 길에서 그들은 요셉이 새로 만든 가족묘에 예수를 묻기로 결정했었으며, 그 묘는 사마리아로 가는 길 건너편, 골고다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단단한 바위를 파내서 만든 것이었다. 이 무덤에는 아무도 묻힌 적이 없었으며, 그들은 주(主)를 그곳에 눕히는 것이 적당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요셉은 예수가 죽음에서 일어나실 것을 실제로 믿었지만, 니고데모는 거의 믿지 않았다. 전에 산헤드린 회원이었던 이 사람들은 그들이 그 공회를 그만두기 전에도 산헤드린 회원 동료들 중에는 오래 전부터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예수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을 어느 정도 비밀리에 지키고 있었다. 이 날 이후로 그들은 온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가장 과감하게 전하는 제자들이 되었다.
2025 188:1.2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유대인 공동 묘지에 묻힐 수 없었고, 그러한 절차를 금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이 법을 알았고, 골고다를 향하여 나가는 길에, 단단한 바위에서 깎아 새긴, 요셉의 새 가족 무덤에 예수를 묻기로 전에 작정했고, 이것은 골고다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마리아로 이어지는 길 건너에 있었다[2]. 아무도 이 무덤에 묻힌 적이 없었고, 그들은 주가 여기에 매장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요셉은 정말로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고 믿었지만, 니고데모는 몹시 의심했다. 산헤드린의 이 옛 회원들은 예수 믿는 것을 얼마큼 비밀로 지켰다. 하지만 그들이 공회에서 사퇴하기 전에도, 동료 산헤드린 회원들은 오랫동안 그들을 의심해 왔다. 이제부터 계속, 그들은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과감하게 말하는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1955 188:1.3 At about half past four o’clock the burial procession of Jesus of Nazareth started from Golgotha for Joseph’s tomb across the way. The body was wrapped in a linen sheet as the four men carried it, followed by the faithful women watchers from Galilee. The mortals who bore the material body of Jesus to the tomb were: Joseph, Nicodemus, John, and the Roman centurion.
2000 188:1.3 4시 반쯤에 나사렛 예수의 장례 행렬이 골고다에서 길 건너 요셉의 무덤을 향하여 떠났다. 네 사람이 나르는 동안 그 시체는 리넨 시트에 둘둘 싸여 있었고, 갈릴리에서 온 충실한 여인 구경꾼들이 뒤따랐다. 무덤까지 예수의 물질 몸을 지고 간 사람들은 요셉ㆍ니고데모ㆍ요한, 그리고 로마인 백부장이었다.
2001 CM 188:1.3 네 시 반쯤에, 나사렛 예수의 장례 행렬이 골고다를 출발해서, 길 건너편 요셉의 무덤으로 갔다. 네 사람이 운반할 수 있도록 그 시신을 세마포로 쌌고, 지켜보던 충실한 갈릴리 여자들이 뒤따라갔다. 예수의 시신을 운반한 사람은:요셉과 니고데모와 요한 그리고 로마 백부장이었다.
2007 URKA 188:1.3 4시 30분경에 나사렛 예수의 장례 행렬이 길 건너편에 있는 요셉의 무덤을 향하여 골고다를 출발하였다. 그 시신은 네 사람이 운반할 수 있도록 세마포로 쌌으며, 갈릴리에서 온 신실한 여인 감시자들이 뒤를 따라갔다. 예수의 시신을 운반한 사람들은: 요셉, 니고데모, 요한, 그리고 로마 백부장이었다.
1955 188:1.4 They carried the body into the tomb, a chamber about ten feet square, where they hurriedly prepared it for burial. The Jews did not really bury their dead; they actually embalmed them. Joseph and Nicodemus had brought with them large quantities of myrrh and aloes, and they now wrapped the body with bandages saturated with these solutions. When the embalming was completed, they tied a napkin about the face, wrapped the body in a linen sheet, and reverently placed it on a shelf in the tomb.
2000 188:1.4 그들은 시체를 무덤 속으로 날랐다. 이것은 가로ㆍ세로가 약 3미터 되는 방이었고, 거기서 장사 지내려고 서둘러 시체를 준비했다. 유대인은 죽은 사람을 정말로 묻지는 않았고, 실제로 방부(防腐) 처리를 하였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몰약(沒藥)과 앨로를 잔뜩 가져왔고, 이제 이 용액으로 적신 붕대로 시체를 감았다. 방부 처리가 끝났을 때, 얼굴 둘레를 냅킨으로 동였고, 시체를 리넨 시트로 둘둘 감고, 엄숙하게 시체를 무덤의 선반에 두었다.
2001 CM 188:1.4 그들은 시신을 무덤 안으로 운반했고, 사방 10피트 정도 되는 묘실{墓室} 안에서, 급히 장사지낼 준비를 했다. 유대인은 사실상 시신을 땅에 묻지는 않았으며;실제로는 방부처리{防腐處理}를 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많은 양의 몰약{沒藥}과 향료를 가져왔고, 이제 이 액체를 적신 헝겊으로 시신을 쌌다. 약품으로 처리하는 일이 완료되자, 얼굴을 수건으로 동이고, 몸을 세마포로 감았고, 무덤 속 선반 위에 경건하게 눕혔다.
2007 URKA 188:1.4 그들은 시신을 무덤 안으로 운반하였으며, 사방 10피트 정도 되는 묘실 안에서 급히 장사지낼 준비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그들은 실재 향유로 방부 처리하였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많은 양의 몰약과 향료를 가져왔으며, 이 액체들을 적신 헝겊으로 시신을 쌌다. 향유로 방부 처리하는 일이 끝나자, 그들은 얼굴을 수건으로 동이고, 몸을 세마포로 감았으며 무덤 안에 있는 선반 위에 존경을 담아서 눕혀 놓았다.
1955 188:1.5 After placing the body in the tomb, the centurion signaled for his soldiers to help roll the doorstone up before the entrance to the tomb. The soldiers then departed for Gehenna with the bodies of the thieves while the others returned to Jerusalem, in sorrow, to observe the Passover feast according to the laws of Moses.
2000 188:1.5 시체를 무덤에 둔 뒤에, 백부장은 군인들에게 돌 문을 무덤 입구 앞으로 굴리는 일을 도우라고 신호했다. 그리고 나서 군인들은 도둑들의 시체를 가지고 게헤나를 향하여 떠났고, 한편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내려고 슬피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001 CM 188:1.5 시신을 무덤에 안치한 후에, 백부장은 부하들에게 신호를 해서 무덤 입구에 돌로 된 문을 굴리는 일을 돕게 했다. 그리고 나서, 병사들은 강도들의 시체를 게헨나로 옮기기 위해서 출발했고,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 슬퍼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007 URKA 188:1.5 시신을 무덤에 안치시킨 후에, 백부장은 군인들에게 신호를 보내어 무덤 입구에 돌로 된 문을 굴리는 일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은 강도들의 시체를 게헤나로 옮기기 위하여 출발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키기 위해 슬퍼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025 188:1.5 시체를 무덤에 둔 뒤에, 백부장은 군인들에게 돌 문을 무덤 입구 앞으로 굴리는 일을 도우라고 신호했다. 다음에 군인들은 도둑들의 시체를 가지고 게헤나를 향하여 떠났고, 한편 다른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월절 축제를 지내려고 슬피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955 188:1.6 There was considerable hurry and haste about the burial of Jesus because this was preparation day and the Sabbath was drawing on apace. The men hurried back to the city, but the women lingered near the tomb until it was very dark.
2000 188:1.6 이날이 준비일이고 안식일이 막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장례는 어지간히 서두르고 성급하게 처리되었다. 남자들은 도시로 서둘러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아주 어두울 때까지 무덤 가까이 남아 있었다.
2001 CM 188:1.6 이날은 예비일이었고 안식일이 곧 시작되기 때문에, 매우 급하게 서둘러 예수를 장사지냈다. 남자들은 급히 성으로 돌아갔으나, 여자들은 아주 캄캄할 때까지도 무덤 곁에 있었다.
2007 URKA 188:1.6 이 날은 준비일 이었고 안식일이 곧 시작되기 때문에 예수의 장사는 매우 급하게 서둘러 치러졌다. 남자들은 서둘러 도시로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아주 캄캄할 때까지도 무덤 곁에 있었다.
2025 188:1.6 이날이 준비일이고 안식일이 막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장례는 어지간히 서둘러 성급하게 처리되었다. 남자들은 도시로 서둘러 돌아갔지만 여인들은 아주 어두울 때까지 무덤 가까이 남아 있었다.
1955 188:1.7 While all this was going on, the women were hiding near at hand so that they saw it all and observed where the Master had been laid. They thus secreted themselves because it was not permissible for women to associate with men at such a time. These women did not think Jesus had been properly prepared for burial, and they agreed among themselves to go back to the home of Joseph, rest over the Sabbath, make ready spices and ointments, and return on Sunday morning properly to prepare the Master’s body for the death rest. The women who thus tarried by the tomb on this Friday evening were: Mary Magdalene, Mary the wife of Clopas, Martha another sister of Jesus’ mother, and Rebecca of Sepphoris.
2000 188:1.7 이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여인들은 가까이 숨어 있었고, 그래서 이 모두를 보고 주가 어디에 누웠는가 지켜보았다. 이처럼 몰래 온 것은 여인들이 그런 때에 남자들과 상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여인들은 예수가 매장을 위해서 적절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요셉의 집으로 돌아가서, 안식일 동안 쉬었다가, 향료와 연고(軟膏)를 준비하고, 시체를 안치하기 위하여 주의 몸을 적절히 준비하려고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기로 자기들끼리 합의를 보았다. 이 금요일에 무덤가에서 이렇게 머문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또 다른 이모 마르다, 세포리스의 레베카였다.
2001 CM 188:1.7 이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이 어디에 안치되는지를 보려고, 여자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숨어있었던 것은, 당시에 여자들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이 여자들은 예수를 장사지낼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으며, 요셉의 집으로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내는 동안에 향료와 기름을 준비하여, 일요일 아침에 예수의 시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잘 준비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하면서 금요일 저녁에 무덤에 머물렀던 여자들은:막달라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이모 마르다, 그리고 세포리의 리브가였다.
2007 URKA 188:1.7 이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여인들은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그리고 주(主)가 어디에 안치되는 지를 보기 위하여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숨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시간에 여인들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들은 예수를 장사지낼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자기들이 요셉의 집에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내고 향료와 기름을 준비하고 그리고 죽음의 휴식을 위하여 예수의 시신을 준비하도록 일요일 아침에 정확히 돌아오도록 그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하면서 금요일 저녁에 무덤에 머물러 있었던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또 다른 이모 마르다, 그리고 세포리의 레베카였다.
2025 188:1.7 이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여인들은 가까이 숨어 있었고, 그래서 이 모두를 보고 주가 어디에 누웠는가 지켜보았다. 이처럼 몰래 온 것은 여인들이 그런 때에 남자들과 상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여인들은 예수가 매장을 위해서 적절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요셉의 집으로 돌아가서, 안식일 동안 쉬었다가, 향료와 연고(軟膏)를 준비하고, 시체를 안치하기 위하여 주의 몸을 적절히 준비하려고 일요일 아침에 돌아오기로 자기들끼리 합의를 보았다. 이 금요일에 무덤가에서 이렇게 머문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또 다른 이모 마르다, 세포리스의 레베카였다[5].
1955 188:1.8 Aside from David Zebedee and Joseph of Arimathea, very few of Jesus’ disciples really believed or understood that he was due to arise from the tomb on the third day.
2000 188:1.8 다윗 세베대와 아리마대의 요셉을 제외하고,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그가 사흘째에 무덤에서 일어나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을 정말로 믿거나 알아듣지 못했다.
2001 CM 188:1.8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다윗 세베대와 아리마대 요셉 외에는, 셋째 날에 무덤에서 살아날 것을 정말로 믿거나 이해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2007 URKA 188:1.8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다윗 세베대와 아리마대의 요셉을 제외하고는, 셋째 날에 무덤에서 살아나실 것을 실제로 믿거나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25 188:1.8 다윗 세베대와 아리마대의 요셉을 제외하고,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그가 사흘째에 무덤에서 일어나도록 예정되었다는 것을 정말로 믿거나 알아듣지 못했다.
2. SAFEGUARDING THE TOMB
2. 무덤을 지키기
2. 무덤을 지킴
2. 무덤을 지킴
2. 무덤을 지키기
1955 188:2.1 If Jesus’ followers were unmindful of his promise to rise from the grave on the third day, his enemies were not. The chief priests, Pharisees, and Sadducees recalled that they had received reports of his saying he would rise from the dead.
2000 188:2.1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가 사흘째에 무덤에서 일어나리라는 약속을 무심코 흘려들었다면, 적들은 그렇지 않았다. 주사제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는 그의 말에 관하여 보고받은 것을 기억했다.
2001 CM 188:2.1 셋째 날에 무덤에서 살아나리라는 그의 약속에 대하여,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무심했던 반면 적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석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그가 죽음에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냈다.
2007 URKA 188:2.1 세 번째 날에 무덤에서 일어나리라는 그의 약속에 대하여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관심하였더라도, 그의 적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제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그가 죽음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였다는 보고를 받아들였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2025 188:2.1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가 사흘째에 무덤에서 일어나리라는 약속을 무심코 흘려 들었다면, 적들은 그렇지 않았다. 주사제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는 그의 말에 관하여 보고를 받은 것을 기억했다.
1955 188:2.2 This Friday night, after the Passover supper, about midnight a group of the Jewish leaders gathered at the home of Caiaphas, where they discussed their fears concerning the Master’s assertions that he would rise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This meeting ended with the appointment of a committee of Sanhedrists who were to visit Pilate early the next day, bearing the official request of the Sanhedrin that a Roman guard be stationed before Jesus’ tomb to prevent his friends from tampering with it. Said the spokesman of this committee to Pilate: “Sir, we remember that this deceiver, Jesus of Nazareth, said, while he was yet alive, ‘After three days I will rise again.’ We have, therefore, come before you to request that you issue such orders as will make the sepulchre secure against his followers, at least until after the third day. We greatly fear lest his disciples come and steal him away by night and then proclaim to the people that he has risen from the dead. If we should permit this to happen, this mistake would be far worse than to have allowed him to live.”
2000 188:2.2 이 금요일 밤, 유월절 저녁 식사 뒤에, 자정쯤에 유대인 지도자들의 한 무리가 가야바의 집에 모였고, 사흘째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는 주의 주장에 관하여 걱정되는 것을 의논했다. 예수의 친구들이 무덤에 손대지 못하도록 그의 무덤 앞에 로마인 경비원 한 명을 배치하라는 산헤드린의 공식 요청(要請)을 지니고, 이튿날 일찍 빌라도를 방문할 산헤드린 위원회 하나를 지명하고서 이 모임이 끝났다. 이 위원회의 대변인은 빌라도에게 말했다: “주여, 이 사기꾼 나사렛 예수가 아직도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리라’하고 말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나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흘이 지난 뒤까지, 그 무덤을 그 추종자들로부터 안전히 지키게 할 명령을 내려달라 요청하고자 우리가 당신 앞에 왔나이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와서 밤에 그를 훔치고 나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되나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버려둔다면, 이 잘못은 그를 살려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리이다.”
2001 CM 188:2.2 이 금요일 밤, 유월절 만찬이 끝난 후 자정 무렵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가야바의 집에 모였고, 거기서 그들은, 셋째 날에 살아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에 대해 염려하면서 의논했다. 이 회의는 산헤드린 회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이튿날 아침 일찍 빌라도에게 가기로 약속함으로써 끝났는데, 이 위원회는 예수의 친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의 무덤 앞에 로마 경비병을 세워 달라는 산헤드린의 공식 요청서를 가져갔다. 이 위원회의 대변인이 빌라도에게 말했다:“각하, 나사렛 예수라는 그 사기꾼이 아직 살아있을 때, ‘삼 일 후에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음을 우리가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그 셋째 날이 지날 때까지 그의 추종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와서 야밤에 그를 훔쳐간 후에, 그가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사람들에게 전파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합니다. 이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내버려둔다면, 이런 실수는 그를 살려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것입니다.”
2007 URKA 188:2.2 그 금요일 밤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자정 무렵이 되어서, 유대인 영도자들이 가야바의 집에 모였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세 번째 날에 죽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주(主)의 단언에 대한 그들의 우려를 의논하였다. 이 회의는 산헤드린 회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예수의 친구들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의 무덤 앞에 로마 경비병을 세워 달라는 산헤드린의 공식 요청을 가지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빌라도에게 가기로 약속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위원회의 대변인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각하, 나사렛 예수라 하는 그 사기꾼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 ‘삼일 후에 내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그 세 번째 날이 지날 때까지 그의 추종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는 명령을 하달해 주실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와서 야밤에 그를 훔쳐간 후에 그가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되는 것을 심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는 오류를 범한다면, 그것은 그를 살려둔 것보다도 훨씬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것입니다.
2025 188:2.2 이 금요일 밤, 유월절 저녁 식사 뒤에, 자정쯤에 유대인 지도자들의 한 무리가 가야바의 집에 모였고, 사흘째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는 주의 주장에 관하여 걱정되는 것을 의논했다[6]. 예수의 친구들이 무덤에 손대지 못하도록 그의 무덤 앞에 로마인 경비원 한 명을 배치하라는 산헤드린의 공식 요청(要請)을 지니고, 이튿날 일찍 빌라도를 방문할 산헤드린 위원회 하나를 지명하고서 이 모임이 끝났다. 이 위원회의 대변인은 빌라도에게 말했다: “주여, 이 사기꾼 나사렛 예수가 아직도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리라’하고 말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나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흘이 지난 뒤까지, 그 무덤을 그 추종자들로부터 안전히 지키게 할 명령을 내려 달라 요청하고자 우리가 당신 앞에 왔나이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이 와서 밤에 그를 훔치고 나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되나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버려 둔다면, 이 잘못은 그를 살려 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리이다.”
1955 188:2.3 When Pilate heard this request of the Sanhedrists, he said: “I will give you a guard of ten soldiers. Go your way and make the tomb secure.” They went back to the temple, secured ten of their own guards, and then marched out to Joseph’s tomb with these ten Jewish guards and ten Roman soldiers, even on this Sabbath morning, to set them as watchmen before the tomb. These men rolled yet another stone before the tomb and set the seal of Pilate on and around these stones, lest they be disturbed without their knowledge. And these twenty men remained on watch up to the hour of the resurrection, the Jews carrying them their food and drink.
2000 188:2.3 산헤드린 의원들이 이렇게 요청하는 것을 들었을 때, 빌라도는 말했다: “너희에게 군인 10명의 경비대를 주겠노라. 너희는 가서 무덤을 안전히 지키라.” 그들은 성전으로 돌아갔고, 자체 경비대에서 10명을 확보하고 나서, 이 유대인 경비원 10명과 로마 군인 10명과 함께, 이 안식일 새벽에도 이들을 무덤 앞에서 보초(步哨)로 세워놓으려고 요셉의 무덤으로 행진했다. 이 사람들은 무덤 앞에 또 다른 돌을 굴려놓고서,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방해받을까 걱정하여, 빌라도의 봉인(封印)을 이 돌들 위에, 그리고 그 둘레에 눌러놓았다. 이 스무 명은 부활의 시간까지 경계하며 남아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날라다 주었다.
2001 CM 188:2.3 산헤드린 회원들의 이런 요청을 들은 빌라도가 말했다:“병사 10명을 경비병으로 내주겠다. 너희가 가서 무덤을 지켜라.” 그들은 성전으로 돌아가서, 자기네 경비원을 열 명 더 보강하여, 유대인 경비원 10명 그리고 로마 병사 10명과 함께, 이 안식일 아침에도 이들을 무덤 앞에 보초로 세워놓으려고 요셉의 무덤으로 행진했다. 이 사람들은 다른 돌을 굴려서 무덤 앞을 막았고, 그들의 허락 없이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 돌들과 그 주변에 빌라도의 봉인{封印}을 붙여 놨다. 그리고 이 20명은 부활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 지켰고, 유대인이 그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가져다줬다.
2007 URKA 188:2.3 산헤드린 회원들의 이러한 요청을 들은 빌라도는 이렇게 말하였다: “열 명의 군인들을 경비원으로 내어주겠다. 너희가 가서 무덤을 지켜라.” 그들은 성전으로 돌아가서, 안식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경비병을 열 명 더 보강하여, 열 명의 유대인 경비병들과 열 명의 로마 군인들과 함께 요셉의 무덤으로 행진하였으며, 무덤 앞을 지키게 하였다. 이 사람들은 다른 돌을 굴려다가 무덤 앞을 막았고, 그들의 허락 없이는 접근을 못하도록 돌 주위에 빌라도의 이름으로 봉인하였다. 그리고 이 20 명의 남자들은 부활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지켰으며,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2025 188:2.3 산헤드린 의원들이 이렇게 요청하는 것을 들었을 때, 빌라도는 말했다: “너희에게 군인 10명의 경비대를 주겠노라. 너희는 가서 무덤을 안전히 지키라[7].” 그들은 성전으로 돌아갔고, 자체 경비대에서 10명을 확보하고 나서, 이 유대인 경비원 10명과 로마 군인 10명과 함께, 이 안식일 새벽에도 이들을 무덤 앞에서 보초(步哨)로 세워놓으려고 요셉의 무덤으로 행진했다. 이 사람들은 무덤 앞에 또 다른 돌을 굴려 놓고서,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방해를 받을까 걱정하여, 빌라도의 봉인(封印)을 이 돌들 위에, 그리고 그 둘레에 눌러 놓았다. 이 스무 명은 부활의 시간까지 경계하며 남아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날라다 주었다.
3. DURING THE SABBATH DAY
3. 안식일에
3. 안식일 동안
3. 안식일을 지키는 동안
3. 안식일에
1955 188:3.1 Throughout this Sabbath day the disciples and the apostles remained in hiding, while all Jerusalem discussed the death of Jesus on the cross. There were almost one and one-half million Jews present in Jerusalem at this time, hailing from all parts of the Roman Empire and from Mesopotamia. This was the beginning of the Passover week, and all these pilgrims would be in the city to learn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and to carry the report back to their homes.
2000 188:3.1 이 안식일 내내, 제자와 사도들은 숨어 있었고, 한편 온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이때 로마 제국의 온 구석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거의 150만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이때는 유월절 주간의 시작이었고, 이 모든 순례자가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고 그 보고를 집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2001 CM 188:3.1 제자와 사도들은 안식일 내내 숨어있었고, 온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때 예루살렘에는 거의 150만에 달하는 유대인이 있었는데, 로마 제국의 각 지방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몰려왔다. 이날은 유월절 주간이 시작되는 때였으며, 이 모든 순례자는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고향에 전하려고 성{城}에 남아있는 듯했다.
2007 URKA 188:3.1 안식일 기간 동안 제자들과 사도들은 여전히 숨어 있었으며,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때 예루살렘에는 거의 15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있었으며, 로마제국의 각 지방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몰려 왔다. 이 날은 유월절 주간이 시작되는 때였으며, 모든 순례자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고향에 전하기 위하여 성(城)에 남아 있으려고 하였다.
2025 188:3.1 이 안식일 내내, 제자와 사도들은 숨어 있었고, 한편 온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이때 로마 제국의 온 구석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거의 150만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이때는 유월절 주간의 시작이었고, 이 모든 순례자가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고 그 보고를 집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1955 188:3.2 Late Saturday night, John Mark summoned the eleven apostles secretly to come to the home of his father, where, just before midnight, they all assembled in the same upper chamber where they had partaken of the Last Supper with their Master two nights previously.
2000 188:3.2 토요일 밤 늦게, 요한 마가는 열한 사도를 몰래 아버지의 집으로 오시라고 호출했는데, 그들은 거기서 자정 바로 전에, 모두 주와 함께 이틀 밤 전에 마지막 만찬을 들던 바로 그 위층 방에서 모였다.
2001 CM 188:3.2 토요일 밤늦게, 비밀리에 자기 아버지 집으로 오도록 요한 마가가 열한 사도에게 요청했고, 그들은 이틀 전에 주님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눴던 바로 그 다락방으로, 자정이 지나기 직전에 모두 모였다.
2007 URKA 188:3.2 토요일 밤늦게, 요한 마가는 열 한 사도들을 비밀리에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오도록 불렀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이틀 전에 자신들의 주(主)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바로 그 동일한 다락방으로 자정이 지나기 직전에 모두 모였다.
2025 188:3.2 토요일 밤 늦게, 요한 마가는 열한 사도를 몰래 아버지의 집으로 오시라고 호출했는데, 그들은 거기서 자정 바로 전에, 모두 주와 함께 이틀 밤 전에 마지막 만찬을 들던 바로 그 위층 방에서 모였다.
1955 188:3.3 Mary the mother of Jesus, with Ruth and Jude, returned to Bethany to join their family this Saturday evening just before sunset. David Zebedee remained at the home of Nicodemus, where he had arranged for his messengers to assemble early Sunday morning. The women of Galilee, who prepared spices for the further embalming of Jesus’ body, tarried at the home of Joseph of Arimathea.
2000 188:3.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룻과 유다와 함께, 해가 지기 바로 전, 이 토요일 저녁에 가족과 합치려고 베다니로 돌아갔다. 다윗 세베대는 니고데모의 집에서 남아 있었고, 거기서 일요일 아침 일찍 그의 사자들이 모이도록 전에 주선해 두었다. 예수의 몸에 방부 처리를 계속하려고 향료를 준비했던 갈릴리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서 머물렀다.
2001 CM 188:3.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룻과 유다와 함께 가족을 만나려고, 이 토요일 저녁 해가 지기 직전에 베다니로 돌아갔다. 다윗 세베대는 니고데모의 집에 머물렀고, 심부름꾼들에게 일요일 아침 거기에 모두 모이도록 이미 지시해 뒀다. 예수의 시신에 약품을 더 바르려고 향료를 준비한 갈릴리 여자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 머물렀다.
2007 URKA 188:3.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같은 날 토요일 저녁 해가 지기 직전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룻과 유다를 데리고 베다니로 돌아갔다. 다윗 세베대는 니고데모의 집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는 자기 메신저들에게 일요일 아침 그곳에 모두 모이도록 이미 지시해 두었었다. 예수의 시신에 약품을 더 바르기 위하여 향료를 준비한 갈릴리의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2025 188:3.3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룻과 유다와 함께, 해가 지기 바로 전, 이 토요일 저녁에 가족과 합치려고 베다니로 돌아갔다. 다윗 세베대는 니고데모의 집에서 남아 있었고, 거기서 일요일 아침 일찍 그의 사자들이 모이도록 전에 주선해 두었다. 예수의 몸에 방부 처리를 계속하려고 향료를 준비했던 갈릴리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서 머물렀다.
1955 188:3.4 We are not able fully to explain just what happened to Jesus of Nazareth during this period of a day and a half when he was supposed to be resting in Joseph’s new tomb. Apparently he died the same natural death on the cross as would any other mortal in the same circumstances. We heard him say,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end my spirit.” We do not fully understand the meaning of such a statement inasmuch as his Thought Adjuster had long since been personalized and so maintained an existence apart from Jesus’ mortal being. The Master’s Personalized Adjuster could in no sense be affected by his physical death on the cross. That which Jesus put in the Father’s hands for the time being must have been the spirit counterpart of the Adjuster’s early work in spiritizing the mortal mind so as to provide for the transfer of the transcript of the human experience to the mansion worlds. There must have been some spiritual reality in the experience of Jesus which was analogous to the spirit nature, or soul, of the faith-growing mortals of the spheres. But this is merely our opinion—we do not really know what Jesus commended to his Father.
2000 188:3.4 나사렛 예수가 요셉의 새 무덤에서 쉬고 있다고 생각된 이 하루 반의 기간에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다른 필사자가 같은 상황에서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십자가에서 똑같이 자연사한 듯하다.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들었다. 그의 생각 조절자는 인격을 갖춘 지 오래 되었고, 예수의 필사의 몸과 따로 존재를 유지했으니까, 그러한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넉넉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격이 된 주의 조절자는 어떤 의미에서도 그가 십자가에서 육체로 죽은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없다. 예수가 한동안 아버지의 손에 맡긴 것은, 인간 체험의 기록부를 저택 세계들로 옮기기 위하여 필사 지성을 영으로 만드는 과제에서, 조절자의 초기 행적의 영 사본(寫本)이었음이 틀림없다. 예수의 체험 속에는 구체(球體)에서 믿음이 성장하는 필사자의 영 본질, 또는 혼과 비슷한 어떤 영적 실체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견일 따름이다―우리는 예수가 아버지께 무엇을 맡겼는지 모른다.
2001 CM 188:3.4 요셉의 새 무덤에 누워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하루 반나절 동안, 나사렛 예수께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른 필사자들이 처하는 것과 똑같은 환경에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자연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주님이, “아버지여 내 영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예수의 사고 섭리사가 오래 전에 인격화됐고, 그의 필사 존재에서 분리되어 실존했으므로, 그런 말씀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주님의 인격화된 섭리사는, 그의 육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에 결코 영향을 받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 잠시 아버지 손에 의탁한 것은, 인간 체험 기록이 맨션 세계로 옮겨지도록 대비하려고 필사 정신을 영화{靈化}시켰던, 섭리사의 초기 활동을 담은 영{靈} 이력서였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체험 속에도, 이 구체에서 신앙이-성장하는 필사자의 영 본성, 또는 혼과 비슷한 어떤 영적 실체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우리의 견해일 뿐이다--예수께서 아버지께 무엇을 맡겼는지 우리는 정말로 모른다.
2007 URKA 188:3.4 요셉의 새 무덤에서 그가 영면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하루 반나절 동안 나사렛 예수께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다른 필사자들이 처하는 것과 똑같은 환경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그가 “아버지여, 내 혼을 당신의 손에 의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의 생각 조절자가 오래 전에 개인성구현되었고 예수의 필사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실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우리는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 주(主)의 개인성구현된 조절자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물리적 죽음으로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영향을 받을 수는 없다. 예수가 잠시 동안 아버지의 손에 의탁한 것은 인간 체험의 기록을 맨션세계로 옮겨지도록 대비하기 위하여 인간 마음을 영화(靈化)시켰던 조절자의 초기 활동에 대한 영 부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체험 속에도 구체들에서 신앙이 자라 가는 필사자들의 영 본성, 즉 혼과 비슷한 어떤 영적 실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우리의 견해일 뿐이다─예수가 아버지께 무엇을 위탁하였는지 우리는 실제로 모른다.
2025 188:3.4 나사렛 예수가 요셉의 새 무덤에서 쉬고 있다고 생각된 이 하루 반의 기간에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다른 필사자가 같은 상황에서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십자가에서 똑같이 자연사한 듯하다.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고 말하는 것을 우리는 들었다[8]. 그의 생각 조절자는 인격을 갖춘 지 오래 되었고, 예수의 필사 몸과 따로 존재를 유지했으니까, 그러한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넉넉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격이 된 주의 조절자는 어떤 의미에서도 그가 십자가에서 육체로 죽은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없다. 예수가 한동안 아버지의 손에 맡긴 것은, 인간 체험의 기록부를 저택 세계들로 옮기기 위하여 필사 지성을 영으로 만드는 과제에서, 조절자의 초기 행적의 영 사본(寫本)이었음이 틀림없다. 예수의 체험 속에는 구체(球體)에서 믿음이 성장하는 필사자의 영 본질, 또는 혼과 비슷한 어떤 영적 실체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견일 따름이다 ― 우리는 예수가 아버지께 무엇을 맡겼는지 모른다.
1955 188:3.5 We know that the physical form of the Master rested there in Joseph’s tomb until about three o’clock Sunday morning, but we are wholly uncertain regarding the status of the personality of Jesus during that period of thirty-six hours. We have sometimes dared to explain these things to ourselves somewhat as follows:
2000 188:3.5 우리는 주의 육체 형태가 일요일 새벽 3시쯤까지, 요셉의 무덤 속에, 거기에 안치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 36시간 동안 예수 인격의 지위에 관하여 전적으로 분명치 않다. 얼마큼 다음과 비슷하게, 때때로 이것들을 우리끼리 감히 설명하려 해보았다:
2001 CM 188:3.5 우리는, 주님의 육신 형체가 일요일 아침 세 시경까지 요셉의 무덤 안에 놓여있었던 것을 알지만;서른여섯 시간 동안 예수의 인격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이 감히 우리끼리 이것을 설명해보려고 했다:
2007 URKA 188:3.5 주(主)의 육체적인 형체가 일요일 아침 3시경까지 요셉의 무덤 안에서 영면하였던 것을 우리가 알고 있지만; 36 시간의 기간 동안 예수의 개인성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이 감히 우리들끼리 이것을 설명해 보려고 하였다:
2025 188:3.5 우리는 주의 육체 형태가 일요일 새벽 3시쯤까지, 요셉의 무덤 속에, 거기에 안치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 36시간 동안 예수 인격의 지위에 관하여 전적으로 분명치 않다. 얼마큼 다음과 비슷하게, 때때로 이것들을 우리끼리 감히 설명하려 해보았다:
1955 188:3.6 1. The Creator consciousness of Michael must have been at large and wholly free from its associated mortal mind of the physical incarnation.
2000 188:3.6 1. 미가엘의 창조자 의식은 풀려난 채로 있고, 몸으로 육신화한 데 들어 있던, 관계된 그 필사 지성을 완전히 벗어났음이 틀림없다.
2001 CM 188:3.6 1. 미가엘 창조주 의식은, 물리적 육신화로 말미암은 연합된 필사 정신으로부터, 전체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해방됐음에 틀림없다.
2007 URKA 188:3.6 1. 미가엘의 창조자 의식은 육체적 육신화와 연관된 필사자 마음으로부터 전적으로 그리고 최대한으로 해방되었음이 틀림없다.
2025 188:3.6 1. 미가엘의 창조자 의식은 풀려난 채로 있고, 몸으로 육신화한 데 들어 있던, 관계된 그 필사 지성을 완전히 벗어났음이 틀림없다.
1955 188:3.7 2. The former Thought Adjuster of Jesus we know to have been present on earth during this period and in personal command of the assembled celestial hosts.
2000 188:3.7 2. 우리가 알건대, 예수의 옛 생각 조절자는 이 기간에 땅에 계셨고, 집합한 하늘 무리들을 몸소 지시했다.
2001 CM 188:3.7 2. 우리가 알기에, 예수께 있었던 사고 섭리사는 이 기간에도 이 땅에 현존했고, 소집된 천상의 무리들을 몸소 지휘했다.
2007 URKA 188:3.7 2. 우리가 아는 예수의 전(前) 생각 조절자는 이 기간 동안에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연관된 하늘 무리들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2025 188:3.7 2. 우리가 알건대, 예수의 옛 생각 조절자는 이 기간에 땅에 계셨고, 집합한 하늘 무리들을 몸소 지시했다.
1955 188:3.8 3. The acquired spirit identity of the man of Nazareth which was built up during his lifetime in the flesh, first, by the direct efforts of his Thought Adjuster, and later, by his own perfect adjustment between the physical necessities and the spiritual requirements of the ideal mortal existence, as it was effected by his never-ceasing choice of the Father’s will, must have been consigned to the custody of the Paradise Father. Whether or not this spirit reality returned to become a part of the resurrected personality, we do not know, but we believe it did. But there are those in the universe who hold that this soul-identity of Jesus now reposes in the “bosom of the Father,” to be subsequently released for leadership of the Nebadon Corps of the Finality in their undisclosed destiny in connection with the uncreated universes of the unorganized realms of outer space.
2000 188:3.8 3. 처음에는 그의 생각 조절자가 직접 기울인 노력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끊임없이 그가 선택하여 조정된 대로, 나중에는 육체적 필요와 이상적 필사 존재의 영적 요구를 자신이 완전히 조정함으로, 나사렛 사람이 육체를 입은 일생에 쌓아 얻은 영 신분이,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보호에 맡겨진 것이 틀림없다. 이 영 실체가 부활한 인격의 일부가 되려고 돌아왔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랬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깥 우주의 조직되지 않은 영역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과 관련하여, 밝혀지지 않은 운명을 가진 네바돈 최후 군단을 지휘하기 위하여 나중에 해방되려고, 예수의 이 혼 신분(身分)이 “아버지의 품” 속에서 지금 쉬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우주에 있다.
2001 CM 188:3.8 3. 처음에는 그의 사고 섭리사가 직접 노력함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아버지 뜻을 끊임없이 선택하여 효과를 미친대로, 육신의 요구와 이상적 필사자 실존의 영적 조건 사이에서 스스로 완전하게 조정함으로, 나사렛 사람이 육신 속에서 일생 동안 수립하여 얻은 영 정체성은, 낙원 아버지의 돌보심에 위탁된 것이 틀림없다. 이 영 실체가 부활한 인격의 일부분으로서 돌아왔는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돌아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외부 공간의 아직 조직되지 않은 영역에서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과 관련하여, 밝혀지지 않은 운명을 지닌 완결성취 네바돈 단체를 지휘하도록 나중에 양도되려고, 예수의 혼-정체성이 지금 “아버지의 품” 안에서 쉬고 있다고 여기는 존재들이 우주에 있다.
2007 URKA 188:3.8 3. 육신으로의 그의 일생동안에 이루어졌던, 나사렛 사람으로서의 습득된 영 정체성, 처음에 그의 생각 조절자의 직접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고,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결코-중지되지 않은 아버지 뜻에 대한 선택으로 달성된 것처럼, 육체적 필요성과 이상적인 필사자 실존의 영적 요구사항들 사이에서 자기 스스로의 완전한 조절로 이루어졌던 영 정체성은,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보호관리에 위탁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영 실체가 부활한 개인성의 일부분으로 돌아왔는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돌아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주에는 예수의 혼-정체성이, 외부 공간에 있는 미조직(未組職) 영역들에 아직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과 관련하여 그들의 밝혀지지 않은 운명 속에 있는, 네바돈 최종의 무리단의 지도를 위하여 나중에 배정되도록 지금 “아버지의 품” 안에서 쉬고 있다고 여기는 존재들이 있다.
2025 188:3.8 3. 처음에는 그의 생각 조절자가 직접 기울인 노력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끊임없이 그가 선택하여 조정된 대로, 나중에는 육체적 필요와 이상적 필사 존재의 영적 요구를 자신이 완전히 조정함으로, 나사렛 사람이 육체를 입은 일생에 쌓아 얻은 영 신분이,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보호에 맡겨진 것이 틀림없다. 이 영 실체가 부활한 인격의 일부가 되려고 돌아왔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랬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깥 우주의 조직되지 않은 영역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과 관련하여, 밝혀지지 않은 운명을 가진 네바돈 최후 군단을 지휘하기 위하여 나중에 해방되려고, 예수의 이 혼 신분(身分)이 “아버지의 품” 속에서 지금 쉬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우주에 있다.
1955 188:3.9 4. We think the human or mortal consciousness of Jesus slept during these thirty-six hours. We have reason to believe that the human Jesus knew nothing of what transpired in the universe during this period. To the mortal consciousness there appeared no lapse of time; the resurrection of life followed the sleep of death as of the same instant.
2000 188:3.9 4. 우리는 예수의 인간 의식, 곧 필사자로서 가졌던 의식은, 이 36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기간에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간 예수가 하나도 몰랐다고 믿을 근거를 가졌다. 필사자가 의식하기에 아무 시간의 경과가 없는 듯하였다. 즉 생명(生命)의 부활은, 똑같은 순간에, 죽음의 잠을 따라 일어난 것이다.
2001 CM 188:3.9 4. 우리는 예수의 인간 의식{意識} 곧 필사자로서 가졌던 의식은, 이 서른여섯 시간 동안 잠들어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 예수가 이 기간에 우주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필사자 의식에는 시간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았으며;생명의 부활은 죽음의 정지 상태를 뒤이어 동시에 일어난 것이었다.
2007 URKA 188:3.9 4. 우리는 예수의 인간 혹은 필사자 의식(意識)이 이 36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 예수가 이 기간 동안 우주에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필사자 의식에 그 어떤 시간의 흐름도 없었다; 생명의 부활은 죽음의 잠을 자는 동시에 즉시 뒤따랐다.
2025 188:3.9 4. 우리는 예수의 인간 의식, 곧 필사자로서 가졌던 의식은, 이 36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기간에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간 예수가 하나도 몰랐다고 믿을 근거를 가졌다. 필사자가 의식하기에 아무 시간의 경과가 없는 듯하였다. 즉 생명(生命)의 부활은, 똑같은 순간에, 죽음의 잠을 따라 일어난 것이다.
1955 188:3.10 And this is about all we can place on record regarding the status of Jesus during this period of the tomb. There are a number of correlated facts to which we can allude, although we are hardly competent to undertake their interpretation.
2000 188:3.10 이것이 무덤에서 이 기간에 예수의 지위에 관하여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이다. 우리가 암시할 수 있는 서로 관계된 여러 가지 사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이것들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2001 CM 188:3.10 이상이 예수께서 무덤에 있던 동안의 상태에 관해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전부다. 우리가 암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관련 사실이 많이 있으나, 그것을 해석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2007 URKA 188:3.10 이상이 예수가 무덤에 계시는 동안의 지위에 관하여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전부이다. 우리가 암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관련 사실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도저히 그것들의 해석을 떠맡을 능력이 없다.
2025 188:3.10 이것이 무덤에서 이 기간에 예수의 지위에 관하여 우리가 기록할 수 있는 거의 전부이다. 우리가 암시할 수 있는 서로 관계된 여러 가지 사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도저히 이것들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1955 188:3.11 In the vast court of the resurrection halls of the first mansion world of Satania, there may now be observed a magnificent material-morontia structure known as the “Michael Memorial,” now bearing the seal of Gabriel. This memorial was created shortly after Michael departed from this world, and it bears this inscription: “In commemoration of the mortal transit of Jesus of Nazareth on Urantia.”
2000 188:3.11 사타니아의 첫째 저택 세계의 여러 부활실에 있는 광대한 안뜰에는, “미가엘 기념관”이라고 알려진 구조, 지금은 가브리엘의 봉인을 지니고 있는, 물질 및 상물질로 이루어진 웅대한 구조를 지금 볼 수 있다. 이 기념관은 미가엘이 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있다가 지어졌는데, 이 비문을 지닌다: “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가 필사자로서 이동한 것을 기념하여.”
2001 CM 188:3.11 사타니아의 첫 맨션 세계 부활실들이 있는 거대한 뜰에서, “미가엘 기념관”으로 알려진 장엄한 물질적-모론시아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은 가브리엘의 봉인이 붙어있다. 이 기념관은 미가엘이 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 지어졌고, 거기에는:“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의 필사자 변환기를 기념하여”라는 비문{碑文}이 붙어있다,
2007 URKA 188:3.11 사타니아에 있는 첫 맨션세계 부활실의 거대한 뜰 안에서, “미가엘 기념관”이라고 알려진 장엄한 물질적-모론시아적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은 가브리엘이 인봉해 놓았다. 이 기념관은 미가엘이 이 세상을 떠나신 직후에 만들어졌으며, 그곳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의 필사자 과정을 기념하여.”
2025 188:3.11 사타니아의 첫째 저택 세계의 여러 부활실에 있는 광대한 안뜰에는, “미가엘 기념관”이라고 알려진 구조, 지금은 가브리엘의 봉인을 지니고 있는, 물질 및 상물질로 이루어진 웅대한 구조를 지금 볼 수 있다. 이 기념관은 미가엘이 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있다가 지어졌는데, 이 비문을 지닌다: “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가 필사자로서 이동한 것을 기념하여.”
1955 188:3.12 There are records extant which show that during this period the supreme council of Salvington, numbering one hundred, held an executive meeting on Urantia under the presidency of Gabriel. There are also records showing that the Ancients of Days of Uversa communicated with Michael regarding the status of the universe of Nebadon during this time.
2000 188:3.12 1백 명으로 이루어진 구원자별 최고 회의가 이 기간에, 유란시아에서 가브리엘이 사회(司會)를 보는 가운데 행정 회의를 열었다는 것을 보이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또한 유버르사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이 시간에, 네바돈 우주의 상태에 관하여 미가엘과 교통했다는 것을 보이는 기록들도 있다.
2001 CM 188:3.12 이 기간에, 가브리엘이 주재하는 가운데, 100명으로 이뤄진 살빙톤 최고 협의회가 유란시아에서 실무 회의를 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 거기에 있다. 또한 거기에는, 이 기간에 네바돈의 우주 상태에 관하여, 우버사의 태고 항존자들이 미가엘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2007 URKA 188:3.12 그곳에는 이 기간 동안 구원자별의 최고 의회가 가브리엘의 주재 아래 유란시아에서 백여 회에 달하는 집행 회의를 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있다. 또한 그곳에는 유버사의 옛적으로 늘 계신 이가 이 기간 동안 네바돈의 우주 상태에 관하여 미가엘과 교통을 나눈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들도 있다.
2025 188:3.12 1백 명으로 이루어진 구원자별 최고 회의가 이 기간에, 유란시아에서 가브리엘이 사회(司會)를 보는 가운데 행정 회의를 열었다는 것을 보이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또한 유버르사의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이 시간에, 네바돈 우주의 상태에 관하여 미가엘과 교통했다는 것을 보이는 기록들도 있다.
1955 188:3.13 We know that at least one message passed between Michael and Immanuel on Salvington while the Master’s body lay in the tomb.
2000 188:3.13 우리는 주의 몸이 무덤에 누워 있는 동안에, 미가엘과 구원자별에 계시는 이마누엘 사이에 적어도 한 통신문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01 CM 188:3.13 우리는, 주님의 시신이 무덤에 있는 동안, 살빙톤의 임마누엘과 미가엘 사이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메시지가 교환됐음을 알고 있다.
2007 URKA 188:3.13 주(主)의 시신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동안 구원자별에 있는 임마누엘과 미가엘 사이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메시지가 교환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025 188:3.13 우리는 주의 몸이 무덤에 누워 있는 동안에, 미가엘과 구원자별에 계시는 이마누엘 사이에 적어도 한 통신문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55 188:3.14 There is good reason for believing that some personality sat in the seat of Caligastia in the system council of the Planetary Princes on Jerusem which convened while the body of Jesus rested in the tomb.
2000 188:3.14 예수의 몸이 무덤에 쉬고 있는 동안에 열린 회의, 예루셈에서 있었던 행성 영주들의 체계 회의에서 어떤 성격자가 칼리가스티아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믿을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
2001 CM 188:3.14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눕혀있는 동안에 소집된, 예루셈에서 열렸던 행성 왕자들의 체계 협의회에서, 캘리개스챠의 자리에 어떤 인격체가 앉아있었음을 믿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
2007 URKA 188:3.14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쉬고 있는 동안 예루셈에 있는 행성영주들의 체계 협의회에서 칼리가스티아의 자리에 어떤 개인성이 앉아 있었다는 것을 믿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
2025 188:3.14 예수의 몸이 무덤에 쉬고 있는 동안에 열린 회의, 예루셈에서 있었던 행성 영주들의 체계 회의에서 어떤 성격자가 칼리가스티아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믿을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
1955 188:3.15 The records of Edentia indicate that the Constellation Father of Norlatiadek was on Urantia, and that he received instructions from Michael during this time of the tomb.
2000 188:3.15 에덴시아의 기록들은 놀라시아덱의 별자리 아버지가 유란시아에 있었고, 무덤에 있던 이 시간에 미가엘로부터 지침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2001 CM 188:3.15 에덴시아의 기록에 의하면, 노라티아덱의 성좌 아버지가 유란시아에 있었고, 무덤에 있던 이 기간에 미가엘로부터 지시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7 URKA 188:3.15 에덴시아의 기록들에 의하면, 놀라시아덱의 별자리 아버지가 유란시아에 있었으며, 무덤에 있던 이 기간 동안 그가 미가엘로부터 지침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2025 188:3.15 에덴시아의 기록들은 놀라시아덱의 별자리 아버지가 유란시아에 있었고, 무덤에 있던 이 시간에 미가엘로부터 지침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1955 188:3.16 And there is much other evidence which suggests that not all of the personality of Jesus was asleep and unconscious during this time of apparent physical death.
2000 188:3.16 그리고 겉보기에 육체적으로 죽은 이 시간에, 예수의 인격 전부가 잠들어 무의식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많은 다른 증거가 있다.
2001 CM 188:3.16 그리고 거기에는, 외견상 육체가 죽어있는 이 기간에, 예수의 인격 전체가 잠자거나 무의식중에 있지는 않았음을 암시하는, 다른 증거가 많이 있다.
2007 URKA 188:3.16 그리고 분명한 육체적 죽음의 이 시간동안 예수의 개인성의 모든 것이 잠들어 무의식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많은 다른 증거들이 있다.
2025 188:3.16 그리고 겉보기에 육체적으로 죽은 이 시간에, 예수의 인격 전부가 잠들어 무의식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많은 다른 증거가 있다.
4. MEANING OF THE DEATH ON THE CROSS
4. 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의미
4. 십자가에 못박힌 죽음의 의미
4. 십자가 죽음의 의미
4. 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의미
1955 188:4.1 Although Jesus did not die this death on the cross to atone for the racial guilt of mortal man nor to provide some sort of effective approach to an otherwise offended and unforgiving God; even though the Son of Man did not offer himself as a sacrifice to appease the wrath of God and to open the way for sinful man to obtain salvation; notwithstanding that these ideas of atonement and propitiation are erroneous, nonetheless, there are significances attached to this death of Jesus on the cross which should not be overlooked. It is a fact that Urantia has become known among other neighboring inhabited planets as the “World of the Cross.”
2000 188:4.1 예수는 필사 인간으로서 민족의 죄를 대속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분을 상하고 용서 없는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효과적 접근법을 마련하려고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지 않았다. 사람의 아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죄 많은 인간이 구원받는 길을 열기 위한 희생물로서 자신을 바치지 않았다. 대속(代贖)하고 신을 달랜다는 이 관념들이 그릇되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십자가에서 예수가 이렇게 돌아가신 데 부여된 중요성, 지나쳐서는 안될 의미가 있다. 유란시아가 사람이 사는 다른 이웃 행성들 사이에서 “십자가의 세계”라고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2001 CM 188:4.1 예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비록 필사적 사람의 종족 전체가 가져야 할 죄책감을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내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어떤 길을 제공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더라도;비록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면서, 죄 많은 사람이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었더라도;속죄와 화해라는 이 관념이 잘못된 것임에도, 그래도 여전히,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돌아가신 데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는 이웃 행성들에게, 유란시아가 “십자가의 세계”로 알려지게 됐다는 것은 사실이다.
2007 URKA 188:4.1 비록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이 죽음을 죽으신 것은 필사 사람의 인종적인 죄를 속죄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시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효력적인 접근을 제공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비록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면서, 죄 많은 사람이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여시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물로 바친 것은 아니었지만; 속죄와 화해에 대한 이 관념들이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이 죽음에는 중요한 의의(意義)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거주되고 있는 이웃 행성들에게 유란시아가 “십자가의 세계”라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2025 188:4.1 필사 인간으로서 민족의 죄를 대속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분을 상하고 용서 없는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효과적 접근법을 마련하려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이렇게 죽지는 않았다. 사람의 아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죄 많은 인간이 구원받는 길을 열기 위한 희생물로서 자신을 바치지 않았다. 대속(代贖)하고 신을 달랜다는 이 관념들이 그릇되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십자가에서 예수가 이렇게 돌아가신 데 부여된 중요성, 지나쳐서는 안 될 의미가 있다. 유란시아가 사람이 사는 다른 이웃 행성들 사이에서 “십자가의 세계”라고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1955 188:4.2 Jesus desired to live a full mortal life in the flesh on Urantia. Death is, ordinarily, a part of life. Death is the last act in the mortal drama. In your well-meant efforts to escape the superstitious errors of the false interpretation of the meaning of the death on the cross, you should be careful not to make the great mistake of failing to perceive the true significance and the genuine import of the Master’s death.
2000 188:4.2 예수는 유란시아에서 육체를 입고 필사자의 일생을 한껏 살기를 바랐다. 죽음은 보통, 삶의 일부이다. 죽음은 필사자의 연극에서 마지막 막(幕)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의미를 거짓되게 풀이하는 미신 같은 잘못을 피하려고 좋은 뜻으로 노력을 기울이면서, 너희는 주의 죽음의 참된 의미와 진정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2001 CM 188:4.2 예수께서는, 유란시아에서 육신을 입은 필사자 생애 전 과정을 살기를 원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끝날 수밖에 없는 연극{演劇}에서 마지막 장면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죽음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미신적 오류에서 벗어나려고 너희가 선의{善意}로 수고하는 동안, 주님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중요성과 참된 의의{意義}를 깨닫지 못하는, 큰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2007 URKA 188:4.2 예수는 유란시아에서 육신으로 한껏 필사자 일생을 사시기를 원하였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일생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필사자 드라마의 마지막 장(場)이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의미를 거짓되게 해석하는 미신적인 실수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희의 선의의 노력들 속에서, 주(主)의 죽음에 대하여 진정한 중요성과 참된 의의(意義)를 깨닫지 못하는 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2025 188:4.2 예수는 유란시아에서 육체를 입고 필사자의 일생을 한껏 살기를 바랐다. 죽음은 보통, 삶의 일부이다. 죽음은 필사자의 연극에서 마지막 막(幕)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의미를 거짓되게 풀이하는 미신 같은 잘못을 피하려고 좋은 뜻으로 노력을 기울이면서, 너희는 주의 죽음의 참된 의미와 진정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1955 188:4.3 Mortal man was never the property of the archdeceivers. Jesus did not die to ransom man from the clutch of the apostate rulers and fallen princes of the spheres. The Father in heaven never conceived of such crass injustice as damning a mortal soul because of the evil-doing of his ancestors. Neither was the Master’s death on the cross a sacrifice which consisted in an effort to pay God a debt which the race of mankind had come to owe him.
2000 188:4.3 필사 인간은 결코 대사기꾼들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예수는 여러 구체의 배반한 통치자와 타락한 영주들의 손아귀에서 몸값을 치르고 사람을 되찾으려고 죽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조상의 악행 때문에 한 필사자의 혼을 벌하는 것처럼 상스러운 불의(不義)를 결코 생각해내지 않았다. 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인간 종족이 하나님에게 지게 된 빚을 하나님께 갚으려는 노력으로 바친 희생물도 아니었다.
2001 CM 188:4.3 필사적 사람은 최고사기꾼들의 소유물이 된 적이 전혀 없었다. 변절한 통치자들, 그리고 그런 구체의 타락한 왕자들의 결박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몸값을 지불하려고 예수께서 죽은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조상의 악행 때문에 한 필사자의 혼을 파멸시킬 만큼 우둔한 부당함을 마음에 품으신 적이 전혀 없다. 또한 주님은, 인류가 하나님께 갚아야 될 빚을 지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희생제물로서 죽은 것도 아니었다.
2007 URKA 188:4.3 필사 사람은 최고 사기꾼들의 소유물이 결코 아니었다. 예수는 변절한 통치자들과 구체들의 타락한 영주들의 손아귀로부터 몸값을 지불하고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조상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필사자 혼을 파멸시킬 만큼 우둔한 불공정성을 마음에 품으신 적이 결코 없으시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하느님께 갚아야 될 빚을 지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하나의 희생물로서 주(主)가 죽으신 것도 아니었다.
2025 188:4.3 필사 인간은 결코 대사기꾼들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예수는 여러 구체의 배반한 통치자와 타락한 영주들의 손아귀에서 몸값을 치르고 사람을 되찾으려고 죽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조상의 악행 때문에 한 필사자의 혼을 벌하는 것처럼 상스러운 불의(不義)를 결코 생각해내지 않았다. 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인간 종족이 하나님에게 지게 된 빚을 하나님께 갚으려는 노력으로 바친 희생물도 아니었다.
1955 188:4.4 Before Jesus lived on earth, you might possibly have been justified in believing in such a God, but not since the Master lived and died among your fellow mortals. Moses taught the dignity and justice of a Creator God; but Jesus portrayed the love and mercy of a heavenly Father.
2000 188:4.4 예수가 땅에서 살기 전에는 너희가 그러한 하나님을 믿어도 아마도 정당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주가 너희 동료 필사자들 사이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창조자 하나님의 위엄과 응보를 가르쳤지만,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었다.
2001 CM 188:4.4 예수께서 이 땅에 살기 전에는, 너희가 그런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주님이 너희 동료 필사자 가운데서 살다가 죽은 후로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엄과 공의를 가르쳤으나;예수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묘사했다.
2007 URKA 188:4.4 예수가 이 땅에 사셨던 이전에는, 너희가 아마도 그러한 하느님을 믿었어도 정당화되었을 것이나, 그러나 이제 주(主)가 너희 동료 필사자들 속에서 사시고 죽으신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창조자 하느님의 위엄과 공의를 가르쳤지만 ;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묘사하였다.
2025 188:4.4 예수가 땅에서 살기 전에는 너희가 그러한 하나님을 믿어도 아마도 정당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주가 너희 동료 필사자들 사이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렇지 않다. 모세는 창조자 하나님의 위엄과 응보를 가르쳤지만, 예수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었다.
1955 188:4.5 The animal nature—the tendency toward evil-doing—may be hereditary, but sin is not transmitted from parent to child. Sin is the act of conscious and deliberate rebellion against the Father’s will and the Sons’ laws by an individual will creature.
2000 188:4.5 동물적 성질―악행을 하려는 성향―은 물려받을지 모르지만, 죄는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죄는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법을 거슬러서, 의지를 가진 개별 생물이 의식하여, 깊이 생각한 끝에 반항하는 것이다.
2001 CM 188:4.5 동물적 본성--곧 악을 행하려는 경향--은 유전적이겠으나, 죄는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는다. 죄는, 의지를 지닌 피조물 개인이 아버지 뜻과 아들들의 법에 대항하는, 의식적{意識的}이고 고의적인 반역 행위다.
2007 URKA 188:4.5 동물적 본성─악을 행하려는 경향─은 유전적인 것이겠지만, 죄는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죄는 의식적인 행동이며, 의지를 가진 창조체 개별존재가 아버지의 뜻과 아들들의 법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하는 것이다
2025 188:4.5 동물적 성질 ― 악행을 하는 성향 ― 은 물려받을지 모르지만, 죄는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죄는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법을 거슬러서, 의지를 가진 개별 생물이 의식하여, 깊이 생각한 끝에 반항하는 것이다.
1955 188:4.6 Jesus lived and died for a whole universe, not just for the races of this one world. While the mortals of the realms had salvation even before Jesus lived and died on Urantia, it is nevertheless a fact that his bestowal on this world greatly illuminated the way of salvation; his death did much to make forever plain the certainty of mortal survival after death in the flesh.
2000 188:4.6 예수는 꼭 이 한 세계의 종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우주 전체를 위하여 살다가 돌아가셨다. 여러 영역의 필사자들은 예수가 유란시아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도 구원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 세상에 그가 자신을 수여한 것은 구원의 길을 밝게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그의 죽음은, 육체를 입고 죽은 뒤에 필사자가 확실히 살아남는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분명히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1 CM 188:4.6 예수께서는, 이 세계 하나만의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우주를 위하여 살다가 돌아가셨다. 예수께서 유란시아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도, 이 영역에 속한 필사자들이 구원을 얻었으나, 그럼에도 그가 이 세상에 증여됨으로써 구원의 길이 엄청나게 밝아진 것이 사실이며;그의 죽음은, 필사자 육신이 죽은 후에 확실히 생존한다는 것을, 영원히 분명하게 밝히도록 많은 역할을 했다.
2007 URKA 188:4.6 예수는 전체 우주를 위하여 사셨고 돌아가셨으며, 오직 이 세상 하나에 있는 인류를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가 유란시아에서 사시고 돌아가시기 전에도 영역들의 필사자들은 구원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세상에 증여되심으로써 그 구원의 길이 엄청나게 밝혀진 것이 사실이다; 그의 죽음은 필사자가 육신적인 죽음 이후에 생존한다는 확실성을 언제까지나 똑똑히 밝히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2025 188:4.6 예수는 꼭 이 한 세계의 종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우주 전체를 위하여 살다가 돌아가셨다. 여러 영역의 필사자들은 예수가 유란시아에서 살다가 죽기 전에도 구원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 세상에 있었던 그의 자신 수여가 구원의 길을 밝게 보여주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죽음은, 육체를 입고 죽은 뒤에 필사자가 확실히 살아남는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분명히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55 188:4.7 Though it is hardly proper to speak of Jesus as a sacrificer, a ransomer, or a redeemer, it is wholly correct to refer to him as a savior. He forever made the way of salvation (survival) more clear and certain; he did better and more surely show the way of salvation for all the mortals of all the worlds of the universe of Nebadon.
2000 188:4.7 예수를 희생하는 자, 몸값 치르는 자, 또는 죄값 치르는 자라 하는 것은 도저히 적당하지 않아도, 구원자라 언급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언제까지나 구원받는 (살아남는) 길을 더욱 뚜렷하고 확실하게 만들었다. 네바돈 우주의 모든 세상에서 모든 필사자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더욱 낫게, 더욱 확실히 보여주었다.
2001 CM 188:4.7 예수를 희생제물, 몸값을 대신 치른 자, 또는 죄 값을 대신 갚은 자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구원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구원(곧 생존)의 길을 영원토록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만들었으며;네바돈 우주에 속하는 모든 세계의 모든 필사자에게, 구원의 길을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줬다.
2007 URKA 188:4.7 예수를 희생자, 대속자, 구세주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적절하지 못하지만, 그를 구원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구원(살아남음)의 길을 언제까지나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만들었다; 그는 네바돈 우주들 안에 있는 모든 세계들의 모든 필사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더욱 낫게 그리고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2025 188:4.7 예수를 희생하는 자, 몸값 치르는 자, 또는 죄값 치르는 자라 하는 것은 도저히 적당하지 않아도, 구원자라 언급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언제까지나 구원받는 (살아남는) 길을 더욱 뚜렷하고 확실하게 만들었다. 네바돈 우주의 모든 세상에서 모든 필사자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더욱 낫게, 더욱 확실히 보여주었다.
1955 188:4.8 When once you grasp the idea of God as a true and loving Father, the only concept which Jesus ever taught, you must forthwith, in all consistency, utterly abandon all those primitive notions about God as an offended monarch, a stern and all-powerful ruler whose chief delight is to detect his subjects in wrongdoing and to see that they are adequately punished, unless some being almost equal to himself should volunteer to suffer for them, to die as a substitute and in their stead. The whole idea of ransom and atonement is incompatible with the concept of God as it was taught and exemplified by Jesus of Nazareth. The infinite love of God is not secondary to anything in the divine nature.
2000 188:4.8 하나님이 참되고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관념, 예수가 일찍이 가르친 유일한 개념을 너희가 일단 깨달으면, 일관성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분을 상한 군주요, 첫째 가는 즐거움이 잘못하는 백성들을 찾아내고, 자신과 거의 비슷한 어떤 존재가 그들을 위하여 고통받고, 대리자로서 그들 대신에 죽으려고 자청하지 않으면 그들이 알맞게 벌받도록 처리하는, 엄하고 전능한 통치자라는 온갖 원시적 하나님 개념을 너희는 당장에 깨끗이 버려야 한다. 몸값을 내고 죄를 대신 갚는다는 관념 전부가, 나사렛 예수가 가르치고 본보기를 보인 그 하나님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신다운 성품 가운데 어느 것보다 못하지 않다.
2001 CM 188:4.8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관념, 예수께서 일찍이 가르친 유일한 개념을 너희가 일단 파악하고 나면, 온갖 원시적 하나님 관념을 너희는 모든 면에서 일관되게 지체없이 철저히 버려야하는데, 그 원시적 관념은, 마치 하나님은 성난 군주요, 잘못하는 자기 백성을 찾아내어, 자신과 거의 비슷한 어떤 존재가 그들을 위하여 고통 받고, 대리인으로서 그들 대신 죽으려고 자청하지 않으면, 그들을 적절하게 벌주기를 가장 좋아하는, 엄격하고 전능한 지배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속전과 죄 값이라는 모든 관념은 나사렛 예수께서 가르치고 보여줬던 하나님 개념과 모순된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신성한 본성 중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2007 URKA 188:4.8 너희가 하느님의 관념을, 나사렛 예수가 항상 가르쳤던 유일한 개념인, 진실하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로서 일단 파악이 되었다면, 너희가 하느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원시적 생각을 당장에, 그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아주 철저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시적 관념은, 하느님이 그릇된 일을 행하는 자기 백성들을 늘 따져보고 탐지하고, 그들이 합당하게 벌 받는 것을 보려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거의 하느님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어떤 존재가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 받기를 자원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대리로 죽는 것을 중요한 기쁨으로 여기는, 그러한 화를 내는 주권자, 엄격하고 만능이신 통치자로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신성한 본성 안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못하지 않다.
2025 188:4.8 하나님이 참되고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관념, 예수가 일찍이 가르친 유일한 개념을 너희가 일단 깨달으면, 일관성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분을 상한 군주요, 첫째 가는 즐거움이 잘못하는 백성들을 찾아내고, 자신과 거의 비슷한 어떤 존재가 그들을 위하여 고통 받고, 대리자로서 그들 대신에 죽으려고 자청하지 않으면 그들이 알맞게 벌받도록 처리하는, 엄하고 전능한 통치자라는 온갖 원시적 하나님 개념을 너희는 당장에 깨끗이 버려야 한다. 몸값을 내고 죄를 대신 갚는다는 관념 전부가, 나사렛 예수가 가르치고 본보기를 보인 그 하나님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신다운 성품 가운데 어느 것보다 못하지 않다.
1955 188:4.9 All this concept of atonement and sacrificial salvation is rooted and grounded in selfishness. Jesus taught that service to one’s fellows is the highest concept of the brotherhood of spirit believers. Salvation should be taken for granted by those who believe in the fatherhood of God. The believer’s chief concern should not be the selfish desire for personal salvation but rather the unselfish urge to love and, therefore, serve one’s fellows even as Jesus loved and served mortal men.
2000 188:4.9 죄를 대신 갚고 희생물을 바쳐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 모든 개념은 이기심에 뿌리를 박고 근거를 두었다. 예수는 사람이 동료들에게 봉사를 베푸는 것이 영적 신자들의 가장 높은 형제 개념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신자(信者)의 으뜸가는 관심은 개인이 구원받고자 하는 이기적 소망이 아니라, 예수가 필사 인간을 사랑하고 섬긴 것 같이, 사람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따라서, 섬기려는 사심 없는 욕구이어야 한다.
2001 CM 188:4.9 속죄와 희생제물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이 모든 개념은, 이기심에 뿌리를 두고 이기심에 근거한다. 동료들을 섬기는 것이 영적인 신자들의 가장 높은 형제관계 개념이라고, 예수께서 가르쳤다. 구원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믿는 사람이 얻는 것이다. 신자의 주요 관심사는, 개인의 구원을 바라는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께서 필사적 사람을 사랑하고 섬긴 것처럼, 동료를 사랑하고자 하는 애타심이 솟아나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2007 URKA 188:4.9 속죄와 희생을 통하여 구원을 이룬다는 이 모든 개념은 이기주의에 뿌리를 두고 바탕을 두는 것이다. 자기 친구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영적 신자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최고의 개념이라고 예수는 가르치셨다. 구원은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져야만 하는 것이다. 신자의 주요 관심사는 개인적 구원을 바라는 이기적인 욕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오히려 예수가 필사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신 것처럼, 자신의 동료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그리하여, 섬기고자하는 사심-없는 욕구이어야만 한다.
2025 188:4.9 죄를 대신 갚고 희생물을 바쳐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 모든 개념은 이기심에 뿌리를 박고 근거를 두었다. 예수는 사람이 동료들에게 봉사를 베푸는 것이 영적 신자들의 가장 높은 형제 개념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신자(信者)의 으뜸가는 관심은 개인이 구원받고자 하는 이기적 소망이 아니라, 예수가 필사 인간을 사랑하고 섬긴 것 같이, 사람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따라서, 섬기려는 사심 없는 욕구이어야 한다.
1955 188:4.10 Neither do genuine believers trouble themselves so much about the future punishment of sin. The real believer is only concerned about present separation from God. True, wise fathers may chasten their sons, but they do all this in love and for corrective purposes. They do not punish in anger, neither do they chastise in retribution.
2000 188:4.10 진정한 신자는 죄로 인하여 앞날에 벌 받는 것을 그다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신자는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지금 떨어져 있는 것에만 아랑곳한다. 지혜로운 아버지가 아들들을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은 참말이지만, 사랑으로, 고치는 목적으로 이 모든 것을 행한다. 아버지들은 성이 나서 벌을 내리지 않으며, 징벌하느라고 꾸짖지도 않는다.
2001 CM 188:4.10 또한 참된 신자는, 죄에 대한 장차의 형벌을 크게 염려하지도 않는다. 참된 신자는 오직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관심을 쏟을 뿐이다. 현명한 아버지가 자녀를 꾸짖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랑에서, 그리고 바로잡아주려는 목적에서다. 그들은 화나서 벌주는 일이 없으며, 앙갚음할 목적으로 체벌지도 않는다.
2007 URKA 188:4.10 또한 참된 신자들은 죄에 대한 앞으로의 형벌을 크게 염려하지도 않는다. 실제 신자는 오직 현재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관심을 쏟을 뿐이다. 현명한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벌을 주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랑에서 그리고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화가 나서 벌주지 않으며, 응징하기 위하여 혼내지도 않는다.
2025 188:4.10 진정한 신자는 죄로 인하여 앞날에 벌 받는 것을 그다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신자는 오늘 하나님으로부터 지금 떨어져 있는 것에만 아랑곳한다. 지혜로운 아버지가 아들들을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은 참말이지만, 사랑으로, 고치는 목적으로 이 모든 것을 행한다. 아버지들은 성이 나서 벌을 내리지 않으며, 징벌하느라고 꾸짖지도 않는다.
1955 188:4.11 Even if God were the stern and legal monarch of a universe in which justice ruled supreme, he certainly would not be satisfied with the childish scheme of substituting an innocent sufferer for a guilty offender.
2000 188:4.11 응보가 최고로 지배하는 우주에서 하나님이 엄격하고 정당한 군주라 하더라도, 죄 지은 자 대신에 결백한 희생자를 바꿔치는 어리석은 계획에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001 CM 188:4.11 하나님께서 응보만이 최고로 지배하는 우주의 완고하고 율법적인 군주라 하더라도, 죄 지은 자와 결백한 수난자{受難者}를 바꾸는 유치한 책략을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2007 URKA 188:4.11 만약 하느님께서 공의가 최고를 지배하는 우주의 완고하고 율법적인 군주였다 하더라도, 그는 결백한 수난자를 죄 있는 범죄자와 바꾸는 어리석은 계획에 분명히 만족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5 188:4.11 응보가 최고로 지배하는 우주에서 하나님이 엄격하고 정당한 군주라 하더라도, 죄 지은 자 대신에 결백한 희생자를 바꿔치는 어리석은 계획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1955 188:4.12 The great thing about the death of Jesus, as it is related to the enrichment of human experience and the enlargement of the way of salvation, is not the fact of his death but rather the superb manner and the matchless spirit in which he met death.
2000 188:4.12 예수의 죽음에 관하여 대단한 것은, 인간의 체험을 부유하게 하고 구원의 길을 넓히는 데 관계되다시피,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죽음을 마주한 더할 나위 없는 태도와 견줄 데 없는 그 정신이다.
2001 CM 188:4.12 예수의 죽음에서 위대한 점은, 인간 체험의 질을 높이고 구원의 길을 확대한 것과 관련하여, 그의 죽음이라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그가 죽음을 맞으면서 보여줬던 당당한 태도, 그리고 비길 데 없는 그 기백이다.
2007 URKA 188:4.12 예수의 죽음에 있어서 위대한 점은, 인간 체험의 질을 높이고 구원의 길을 확대한 것과 관련하여, 그의 죽음 그 자체의 사실보다는 오히려 그가 죽음을 맞으시면서 보여주신 당당한 태도와 비길 데 없는 영이다.
2025 188:4.12 예수의 죽음에 관하여 대단한 것은, 인간의 체험을 부유하게 하고 구원의 길을 넓히는 데 관계되다시피,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죽음을 마주한 더할 나위 없는 태도와 견줄 데 없는 그 정신이다.
1955 188:4.13 This entire idea of the ransom of the atonement places salvation upon a plane of unreality; such a concept is purely philosophic. Human salvation is real; it is based on two realities which may be grasped by the creature’s faith and thereby become incorporated into individual human experience: the fact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its correlated truth, the brotherhood of man. It is true, after all, that you are to be “forgiven your debts, even as you forgive your debtors.”
2000 188:4.13 죄를 대신 갚는다는 이 몸값 관념 전체가 구원을 비현실 수준에 놓으며, 그러한 개념은 순전히 철학적이다. 인간의 구원은 실재하며,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을 붙잡을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 개별 인간의 체험 속으로 통합할 수 있는 두 가지 현실에 근거를 둔다. 즉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그와 관계되어, 사람이 형제라는 진실이다. 결국은 “너희에게 빚진 자를 너희가 용서하는 것 같이, 너희의 빚도 용서를 받으리라”는 것이 참말이다.
2001 CM 188:4.13 죄값을 대신 갚는 속전{贖錢}이라는 이 관념 전체가 구원을 비실체화{非實體化} 시켰으며;그런 개념은 순전히 철학적이다. 인간의 구원은 실제이며;피조물의 신앙으로 구원을 붙잡을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개별 인간의 체험 속으로 합병될 수 있는 두 가지 실체:즉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진리에 기초한다. 아무튼, “너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하는 것 같이, 너희의 빚도 용서 받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007 URKA 188:4.13 속죄의 배상이라는 이 모든 관념이 구원을 비현실의 수준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한 개념은 순전히 철학적이다. 인간 구원은 실제이다; 그것은 창조체의 신앙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개별적 인간 체험 속에 합병됨으로써 파악될 두 가지 실체에 기초한다;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의 사실과 그것에 상관되는 진실인 사람의 형제신분이다. 아무튼, 너희가 “너희에게 빚진 자를 네가 용서하는 것처럼 너희 빚도 용서받는다”는 것은 진실이다.
5. LESSONS FROM THE CROSS
5. 십자가로부터 얻는 교훈
5. 십자가의 교훈
5. 십자가의 교훈
5. 십자가로부터 얻는 교훈
1955 188:5.1 The cross of Jesus portrays the full measure of the supreme devotion of the true shepherd for even the unworthy members of his flock. It forever places all relations between God and man upon the family basis. God is the Father; man is his son. Love, the love of a father for his son, becomes the central truth in the universe relations of Creator and creature—not the justice of a king which seeks satisfaction in the sufferings and punishment of the evil-doing subject.
2000 188:5.1 예수의 십자가는 참 목자가 그의 양떼 중에서 자격 없는 양에게도 최상으로 헌신하는 것을 한껏 보여준다. 그 십자가는 언제까지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가족의 기초 위에 둔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람은 아들이다. 사랑,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그 사랑은, 창조자와 인간 사이의 우주 관계에서 핵심 진리가 된다―악을 행하는 백성이 고통과 벌을 받는 데서 만족을 얻으려 하는 임금의 응보는 그렇지 않다.
2001 CM 188:5.1 참 목자는 자기 양떼 중에서 무가치한 양을 위해서라도 최고의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의 십자가가 온전하게 묘사한다. 그 십자가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가족 개념에 기초한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며;사람은 그분의 아들이다. 사랑 곧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우주 관계에서 가장 중심된 진리를 이룬다--악을 행하는 백성에게 고통을 주고 벌을 가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왕의 응보는 그렇지 않다.
2007 URKA 188:5.1 참 목자는 자기 양떼 중에서 무가치한 것을 위해서라도 최극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의 십자가가 충만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모든 관계들을 가족의 기반 위에 언제까지나 놓는다. 하느님은 아버지이시며; 사람은 그의 아들이다. 악을 행하는 백성에게 고난을 주고 벌을 가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왕의 공의가 아니라─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창조자와 창조체의 우주 관계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진리를 이룬다.
2025 188:5.1 예수의 십자가는 참 목자가 그의 양떼 중에서 자격 없는 양에게도 최상으로 헌신하는 것을 한껏 보여준다. 그 십자가는 언제까지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가족의 기초 위에 둔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람은 아들이다. 사랑,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그 사랑은, 창조자와 인간 사이의 우주 관계에서 핵심 진실이 된다 ― 악을 행하는 백성에게 고통과 벌을 주는 데서 만족을 얻으려 하는 임금의 응보는 그렇지 않다.
1955 188:5.2 The cross forever shows that the attitude of Jesus toward sinners was neither condemnation nor condonation, but rather eternal and loving salvation. Jesus is truly a savior in the sense that his life and death do win men over to goodness and righteous survival. Jesus loves men so much that his love awakens the response of love in the human heart. Love is truly contagious and eternally creative. Jesus’ death on the cross exemplifies a love which is sufficiently strong and divine to forgive sin and swallow up all evil-doing. Jesus disclosed to this world a higher quality of righteousness than justice—mere technical right and wrong. Divine love does not merely forgive wrongs; it absorbs and actually destroys them. The forgiveness of love utterly transcends the forgiveness of mercy. Mercy sets the guilt of evil-doing to one side; but love destroys forever the sin and all weakness resulting therefrom. Jesus brought a new method of living to Urantia. He taught us not to resist evil but to find through him a goodness which effectually destroys evil. The forgiveness of Jesus is not condonation; it is salvation from condemnation. Salvation does not slight wrongs; it makes them right. True love does not compromise nor condone hate; it destroys it. The love of Jesus is never satisfied with mere forgiveness. The Master’s love implies rehabilitation, eternal survival. It is altogether proper to speak of salvation as redemption if you mean this eternal rehabilitation.
2000 188:5.2 죄인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정죄(定罪)도 묵인도 아니지만, 오히려 영원한 구원, 사랑의 구원이라는 것을 십자가는 언제까지나 보여준다. 예수의 일생과 죽음이 사람들을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남도록 설득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참으로 구원자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의 사랑은 인간의 가슴 속에서 사랑의 반응을 일깨운다. 사랑은 참으로 전염성이 있고 영원히 창조성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죄를 용서하고 모든 악행을 삼킬 만큼, 충분히 힘차고 신다운 사랑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의보다―단지 엄밀한 의미에서 옳고 그른 것보다―더 상급의 올바름을 드러냈다. 신의 사랑은 다만 잘못을 용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을 흡수하고 실제로 없애버린다. 사랑에서 나오는 용서는 자비로 베푸는 용서를 완전히 초월한다. 자비는 나쁜 일을 행한 죄를 한쪽으로 제쳐놓지만, 사랑은 죄와 그로부터 생기는 모든 약점을 언제까지나 없애버린다. 예수는 새로운 처세 방법을 유란시아에 가져왔다. 악에 저항하지 말고 악을 효과적으로 없애버리는 선을 그를 통해서 찾으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예수의 용서는 묵인이 아니라 정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구원은 잘못을 무시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옳게 고친다. 참된 사랑은 미움과 타협하거나 미움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없애버린다. 예수의 사랑은 결코 단지 용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의 사랑은 회복, 영원히 살아남는 것을 뜻한다. 너희가 이 영원한 회복을 의미한다면, 구원을 값을 치르고 되찾는 것으로 언급해도 전적으로 적절하다.
2001 CM 188:5.2 죄인을 향한 예수의 태도는, 정죄하는 것도 아니고 눈감아주는 것도 아니며, 영원한 구원, 사랑의 구원임을 십자가가 영구히 보여준다. 예수의 삶과 죽음이 사람을 설득하여, 선하고 의로운 생존을 얻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정말로 구원자다. 예수께서는, 그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사랑의 반응을 일깨울 만큼, 그토록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은 정말로 전염성이 있고, 영원토록 창조성을 갖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죄를 용서하고 모든 악행을 삼켜버릴 만큼, 충분히 강하고 거룩한 사랑을 예증한다. 예수께서는, 공의보다--곧 단지 인위적인 옳고 그름보다-- 더 높은 특성의 의{義}를 이 세상에 드러냈다. 신성한 사랑은, 단순히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잘못을 흡수하고 실제로 파괴해 버린다. 사랑으로 하는 용서는, 자비로 하는 용서를 철저히 초월한다. 자비는 악행에 대해 한편으로 죄의식을 주지만;사랑은, 죄는 물론 죄의 결과로 생기는 모든 연약함을 영구히 파괴한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유란시아에 전했다. 악에 대항하지 말고, 악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선{善}을 그를 통해서 발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예수의 용서는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정죄로부터 구원함이다. 구원은 잘못을 비난하지 않고;잘못을 바로잡아준다. 참된 사랑은, 미움과 타협하지도, 눈감아주지도 않으며;미움을 파괴한다. 예수의 사랑은 결코 단순한 용서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님의 사랑은 갱생{更生}과 영원한 생존을 내포한다. 이 영원한 갱생을 의미한다면, 너희가 구원을 구속{救贖}이라고 말하는 것도 대체로 타당하다.
2007 URKA 188:5.2 죄인들을 향한 예수의 태도는 정죄(定罪)나 묵인이 아니라, 영원한 그리고 사랑하는 구원이라는 것을 그 십자가가 언제까지나 보여준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선하고 정의로운 생존을 얻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정말로 구원자이시다. 예수는 그의 사랑이 인간의 가슴 속에서 사랑의 반응을 일깨울 만큼, 그처럼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사랑은 정말로 전달되는 속성을 가지며 영원토록 창조성이 있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죄를 용서하고 모든 악행을 삼켜버릴 만큼 충분히 강하고 신성한 사랑을 예시한다. 예수는 이 세상에 공의─단지 기술적인 옳고 그릇됨의 판단─보다 더 높은 본질특성의 올바름을 나타내셨다. 신성한 사랑은 단순히 그릇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흡수하고 실재적으로 파괴해 버린다. 사랑으로 하는 용서는 자비로 하는 용서를 아주 초월한다. 자비는 악행의 죄를 한쪽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사랑은 죄와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연약함을 언제까지나 파괴한다. 예수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유란시아에 전하였다. 그는 악에게 대항하지 말고 악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선을 그를 통하여 발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예수의 용서는 그저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죄로부터의 구원이다. 구원은 그릇된 것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들을 올바르게 만든다. 참된 사랑은 미움과 타협하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미움을 파괴한다. 예수의 사랑은 결코 단순한 용서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主)의 사랑은 갱생(更生)과 영원한 생존을 내포한다. 만일 너희가 이 영원한 갱생을 의미한다면 구원을 대속(代贖)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2025 188:5.2 죄인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정죄(定罪)도 묵인도 아니지만, 오히려 영원한 구원, 사랑의 구원이라는 것을 십자가는 언제까지나 보여준다. 예수의 일생과 죽음이 사람들을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남도록 설득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참으로 구원자이다. 예수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의 사랑은 인간의 가슴 속에서 사랑의 반응을 일깨운다. 사랑은 참으로 전염성이 있고 영원히 창조성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죄를 용서하고 모든 악행을 삼킬 만큼, 충분히 힘차고 신다운 사랑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의 ― 단지 엄밀한 의미에서 옳고 그른 것 ― 보다 더 상급의 올바름을 드러냈다. 신의 사랑은 다만 잘못을 용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을 흡수하고 실제로 없애 버린다. 사랑에서 나오는 용서는 자비로 베푸는 용서를 완전히 초월한다. 자비는 나쁜 일을 행한 죄를 한쪽으로 제쳐놓지만, 사랑은 죄와 그로부터 생기는 모든 약점을 언제까지나 없애 버린다. 예수는 새로운 처세 방법을 유란시아에 가져왔다. 악에 저항하지 말고 악을 효과적으로 없애 버리는 선을 그를 통해서 찾으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10]. 예수의 용서는 묵인이 아니라 정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구원은 잘못을 무시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옳게 고친다. 참된 사랑은 미움과 타협하거나 미움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을 없애 버린다. 예수의 사랑은 결코 단지 용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의 사랑은 회복, 영원히 살아남는 것을 뜻한다. 너희가 이 영원한 회복을 의미한다면, 구원을 값을 치르고 되찾는 것으로 언급해도 전적으로 적절하다.
1955 188:5.3 Jesus, by the power of his personal love for men, could break the hold of sin and evil. He thereby set men free to choose better ways of living. Jesus portrayed a deliverance from the past which in itself promised a triumph for the future. Forgiveness thus provided salvation. The beauty of divine love, once fully admitted to the human heart, forever destroys the charm of sin and the power of evil.
2000 188:5.3 사람들을 몸소 사랑하는 힘으로, 예수는 죄와 악의 위력을 깨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더 나은 처세 방법을 택하라고 사람들을 해방하였다. 예수는 과거로부터 구원받음을 묘사했고, 그러한 구원은 그 자체로 앞날의 승리를 약속했다. 이처럼 용서는 구원을 마련해주었다. 신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일단 인간의 가슴 속에 완전히 받아들이면, 언제까지나 죄의 매력과 악의 힘을 없애버린다.
2001 CM 188:5.3 예수께서는, 사람을 향한 자신의 개인적 사랑의 능력으로, 죄와 악의 지배를 깨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더 나은 생명의 길을 선택하도록 해방시켰다. 예수께서는, 그 자체로 미래의 승리를 약속하는, 과거로부터의 구출을 묘사했다. 용서는 이처럼 구원을 제공했다. 신성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일단 인간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받아들여지면, 죄의 매력과 악{惡}의 능력을 영원히 없애버린다.
2007 URKA 188:5.3 예수는 사람에 대한 그의 개인적 사랑의 힘에 의해서 죄와 악의 지배를 깨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람들이 더 나은 생명의 길을 선택하도록 해방시키셨다. 예수는 미래에 대한 승리가 자체적으로 약속된 해방을 과거에서부터 표현하였다, 그렇게 하여 용서가 구원을 마련하였다. 신성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일단 인간의 가슴속에 충만하게 받아들여지면, 죄의 매력과 악의 힘을 언제까지나 부수어 버린다.
2025 188:5.3 사람들을 몸소 사랑하는 힘으로, 예수는 죄와 악의 위력을 깨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더 나은 처세 방법을 택하라고 사람들을 해방하였다. 예수는 과거로부터 구원받음을 묘사했고, 그러한 구원은 그 자체로 앞날의 승리를 약속했다. 이처럼 용서는 구원을 마련해주었다. 신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일단 인간의 가슴 속에 완전히 받아들이면, 언제까지나 죄의 매력과 악의 힘을 없애 버린다.
1955 188:5.4 The sufferings of Jesus were not confined to the crucifixion. In reality, Jesus of Nazareth spent upward of twenty-five years on the cross of a real and intense mortal existence. The real value of the cross consists in the fact that it was the supreme and final expression of his love, the completed revelation of his mercy.
2000 188:5.4 예수의 고통은 십자가 처형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사렛 예수는 정말로 벅차게 필사자로 존재하는 십자가에서 25년을 넘게 보냈다. 십자가의 참된 가치는 십자가가 그의 사랑의 최고이자 마지막 표현이요, 그의 자비의 완벽한 계시라는 사실에 있다.
2001 CM 188:5.4 예수의 수난은 십자가형 사건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사렛 예수께서는 진실되고 열정적인 필사자 실존이라는 십자가 위에서 25년 이상 보냈다. 십자가의 진정한 가치는, 십자가가 그의 사랑의 최고이자 최종적인 표현이요, 그의 자비에 대한 완성된 계시라는 사실에 있다.
2007 URKA 188:5.4 예수의 고난들이 십자가형 사건만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체 안에서, 나사렛 예수가 실제적이고 격렬한 필사자 실존의 십자가 위에서 25년 이상을 보내셨다. 십자가의 실제 가치는 그것이 그의 사랑, 그의 자비의 완벽한 계시를, 최고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에 있다.
2025 188:5.4 예수의 고통은 십자가 처형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사렛 예수는 정말로 벅차게 필사자로 존재하는 십자가에서 25년을 넘게 보냈다. 십자가의 참된 가치는 십자가가 그의 사랑의 최고이자 마지막 표현이요, 그의 자비의 완벽한 계시라는 사실에 있다.
1955 188:5.5 On millions of inhabited worlds, tens of trillions of evolving creatures who may have been tempted to give up the moral struggle and abandon the good fight of faith, have taken one more look at Jesus on the cross and then have forged on ahead, inspired by the sight of God’s laying down his incarnate life in devotion to the unselfish service of man.
2000 188:5.5 사람이 사는 수백만의 세계에서, 도덕적 투쟁을 그만두고 훌륭한 믿음의 싸움을 그만두라고 유혹받았을지 모르는 수십조에 이르는 진화하는 인간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다시 한 번 보고 나서, 다음에 하나님이 사심(私心) 없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데 바친 그의 육신화된 목숨을 버리는 광경에 영감을 받고서 착실히 전진하였다.
2001 CM 188:5.5 수백만의 인간거주 세계에서, 도덕적 고투를 포기하고 신앙의 선한 싸움을 단념하도록 유혹 받을 수 있는, 수십조에 달하는 진보하는 피조물이,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를 다시 한 번 보고나서, 하나님이 사심없이 사람들을 섬기는 데 헌신하면서 육신화된 자기 생명을 버리는 모습에 영감을 받아 꾸준히 전진해왔다.
2007 URKA 188:5.5 사람이 거주하는 수백만의 거주하는 세상들에서, 도덕적 투쟁을 포기하고 신앙의 선한 싸움을 단념하도록 유혹 받을 수 있었던 진보하는 수십조에 달하는 창조체들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를 한 번 더 바라보고 나서, 사람의 사심-없는 봉사에 헌신으로 그의 육신화 생명을 버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에 고무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1955 188:5.6 The triumph of the death on the cross is all summed up in the spirit of Jesus’ attitude toward those who assailed him. He made the cross an eternal symbol of the triumph of love over hate and the victory of truth over evil when he prayed,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That devotion of love was contagious throughout a vast universe; the disciples caught it from their Master. The very first teacher of his gospel who was called upon to lay down his life in this service, said, as they stoned him to death, “Lay not this sin to their charge.”
2000 188:5.6 십자가에서 죽음이 가져온 승리는 예수를 공격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에 나타난 정신에 모두 요약된다.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하고 기도했을 때, 그는 십자가를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진리가 잘못과 싸워 승리하는 영원한 상징으로 만들었다. 사랑으로 헌신하는 그 태도는 광대한 한 우주에 두루 전염되었다. 제자들은 주로부터 그 헌신을 전염받았다. 이러한 봉사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라고 요청받은 최초의 선생, 주의 복음을 가르친 선생은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 때 말했다, “이 죄를 저희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소서.”
2001 CM 188:5.6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이 이룩한 승리는,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향한 예수의 태도의 기백 속에서 모두 요약됐다. “아버지여,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니,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십자가를,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진리가 악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영원한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런 사랑의 헌신이 방대한 우주에 두루 파급됐으며;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감화 받았다. 이런 봉사에서 생명을 버리도록 부르심 받은 최초의 선생, 자신의 복음을 전한 바로 그 선생은, 그들이 돌을 던져서 자신을 죽일 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2007 URKA 188:5.6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의 승리는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 태도의 정신 속에 모두 요약된다. 그가 “아버지여,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들이 알지 못하니,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을 때, 십자가가 악에 대한 진리의 승리와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영원히 상징하도록 만드셨다. 그러한 사랑의 헌신은 광대한 우주 전체에 널리 퍼져 나갔으며; 제자들은 주(主)로부터 그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봉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그의 복음의 가장 최초의 선생은, 그들이 돌을 던져 그을 죽일 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하였다.
2025 188:5.6 십자가에서 죽음이 가져온 승리는 예수를 공격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에 나타난 정신에 모두 요약된다.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소서,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나이다”하고 기도했을 때, 그는 십자가를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진실이 잘못과 싸워 승리하는 영원한 상징으로 만들었다[12]. 사랑으로 헌신하는 그 태도는 광대한 한 우주에 두루 전염되었다. 제자들은 주로부터 그 헌신을 전염받았다
[13]. 이러한 봉사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라고 요청받은 최초의 선생, 주의 복음을 가르친 선생은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 때 말했다, “이 죄를 저희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소서.”
1955 188:5.7 The cross makes a supreme appeal to the best in man because it discloses one who was willing to lay down his life in the service of his fellow men. Greater love no man can have than this: that he would be willing to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and Jesus had such a love that he was willing to lay down his life for his enemies, a love greater than any which had hitherto been known on earth.
2000 188:5.7 십자가가 사람의 최선의 성품에 최대로 호소하는 것은 동료 인간에게 봉사하는 데 목숨을 기꺼이 버린 사람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기쁘게 버리려 하는 것, 사람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질 수 없다―예수는 적을 위하여 목숨을 기쁘게 버릴 그런 사랑을 가졌고, 이것은 땅에서 그때까지 알려진 어떤 것보다 더 큰 사랑이었다.
2001 CM 188:5.7 십자가는 동료 사람을 섬기기에 생명을 기꺼이 바친 한 사람을 드러내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나타낸다. 친구를 위하여 기꺼이 생명을 바치는:이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사람은 가질 수 없다--예수께서는 적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린 사랑, 즉 이 세상에 알려진 어떤 것보다 위대한 사랑을 지녔다.
2007 URKA 188:5.7 십자가는 그의 동료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 그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으려 하였던 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안에 있는 최고에 대하여 최극 탄원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그가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으려고 하였던 것보다 더 큰사랑을 가질 수는 없다,─그리고 예수는 그의 적들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으시려는 그러한 사랑을 가졌다, 이 세상에 아직까지 알려진 어떤 것보다도 더 커다란 사랑을 소유하였다.
1955 188:5.8 On other worlds, as well as on Urantia, this sublime spectacle of the death of the human Jesus on the cross of Golgotha has stirred the emotions of mortals, while it has aroused the highest devotion of the angels.
2000 188:5.8 유란시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세상에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인간 예수가 죽는 이 숭고한 광경은 필사자들의 감정을 휘저었고, 한편 최상으로 헌신하도록 천사들을 일깨웠다.
2001 CM 188:5.8 유란시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에서도, 인간 예수가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죽는 장엄한 광경은, 필사자들을 감동시키는 동시에, 최상으로 헌신하도록 천사들을 자극해왔다.
2007 URKA 188:5.8 유란시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들에서도, 인간 예수가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장엄한 광경에 필사자들이 감동하였으며, 한편 그것은 천사들에게 최고의 헌신을 야기 시켰다.
2025 188:5.8 유란시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세상에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인간 예수가 죽는 이 숭고한 광경은 필사자들의 감정을 휘저었고, 한편 최상으로 헌신하도록 천사들을 일깨웠다.
1955 188:5.9 The cross is that high symbol of sacred service, the devotion of one’s life to the welfare and salvation of one’s fellows. The cross is not the symbol of the sacrifice of the innocent Son of God in the place of guilty sinners and in order to appease the wrath of an offended God, but it does stand forever, on earth and throughout a vast universe, as a sacred symbol of the good bestowing themselves upon the evil and thereby saving them by this very devotion of love. The cross does stand as the token of the highest form of unselfish service, the supreme devotion of the full bestowal of a righteous life in the service of wholehearted ministry, even in death, the death of the cross. And the very sight of this great symbol of the bestowal life of Jesus truly inspires all of us to want to go and do likewise.
2000 188:5.9 십자가는 신성한 봉사, 사람이 동료의 복지와 구원에 목숨 바치는 것을 나타내는 높은 상징이다. 십자가는 죄지은 사람 대신에, 기분을 상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하여 결백한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그리고 광대한 우주를 통해서 두루, 선한 자가 자신을 악한 자에게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 바로 이 사랑으로 헌신하는 태도로 그들을 구원하는 신성한 상징으로서 언제까지나 서 있다. 십자가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심 없는 봉사를 나타내는 표시로서, 죽어도, 십자가에서 죽어도,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면서 올바른 생명을 완전히 바치는 최고의 헌신(獻身)의 표시로서 서 있다. 예수가 수여한 생명의 상징, 이 큰 상징이 된 바로 그 광경은, 우리 모두에게 가서 마찬가지로 봉사하고 싶어하도록 참으로 영감을 준다.
2001 CM 188:5.9 십자가는 신성시되는 봉사, 즉 동료의 번영과 구원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을 나타내는 최고 상징이다. 십자가는, 화나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죄를 범한 자들 대신 결백한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시킴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에서 그리고 광대한 우주에 두루, 선한 자가 자신을 악한 자에게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 바로 이 사랑의 헌신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신성시되는 상징으로서 영원히 서 있다. 십자가는 가장 고상한 형태의 사심 없는 봉사, 즉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음에 처할지라도 전심으로 섬기는, 봉사하면서 의로운 생명을 온전히 내줄 수 있는 최고 헌신의 증거로서 서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이 위대한 상징의 바로 그 모습이, 나가서 그와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정말로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준다.
2007 URKA 188:5.9 십자가는 그의 동료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 그의 생명을 헌신하는, 거룩한 봉사의 높은 상징이다. 십자가는 죄 많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무죄한 아들의 희생과 그리고 성내신 하느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상징이 아니라, 지구와 광대한 우주에 걸쳐, 그것은 악에 대한 그들의 선한 증여와 그리하여 바로 그 사랑의 헌신을 하여 그들을 구원하였다는 상징으로 언제까지나 서있다. 십자가는, 비록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같은 죽음의 경우에도, 최고 형태의 사심-없는 헌신, 전심으로 사명활동하는 봉사에 의로운 일생을 한껏 증여하는 최극 헌신의 상징으로 서있다. 그리고 예수가 증여한 일생의 이 커다란 상징의 바로 그 모습이 진실로 우리 모두에게 나아가서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을 원하도록 고무시킨다.
2025 188:5.9 십자가는 신성한 봉사, 사람이 동료의 복지와 구원에 목숨 바치는 것을 나타내는 높은 상징이다. 십자가는 죄 지은 사람 대신에, 기분을 상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하여 결백한 하나님의 아들을 희생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그리고 광대한 우주를 통해서 두루, 선한 자가 자신을 악한 자에게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 바로 이 사랑으로 헌신하는 태도로 그들을 구원하는 신성한 상징으로서 언제까지나 서 있다. 십자가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심 없는 봉사를 나타내는 표시로서, 죽어도, 십자가에서 죽어도,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면서 올바른 생명을 완전히 바치는 최고의 헌신(獻身)의 표시로서 서 있다. 예수가 수여한 생명의 상징, 이 큰 상징이 된 바로 그 광경은, 우리 모두에게 가서 마찬가지로 봉사하고 싶어 하도록 참으로 영감을 준다.
1955 188:5.10 When thinking men and women look upon Jesus as he offers up his life on the cross, they will hardly again permit themselves to complain at even the severest hardships of life, much less at petty harassments and their many purely fictitious grievances. His life was so glorious and his death so triumphant that we are all enticed to a willingness to share both. There is true drawing power in the whole bestowal of Michael, from the days of his youth to this overwhelming spectacle of his death on the cross.
2000 188:5.10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는 예수를 바라볼 때, 생각 있는 남녀는 하찮은 골칫거리와 순전히 거짓으로 꾸며낸 많은 불만은커녕, 인생의 가장 혹독한 어려움에 닥쳐도 도저히 다시는 불평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은 너무 영화롭고 죽음은 아주 승리에 넘쳐서, 우리 모두가 이 두 가지를 기꺼이 함께 하도록 마음이 이끌린다. 소년 시절부터, 십자가에서 죽는 이 감동적인 광경에 이르기까지, 미가엘의 자신 수여 전체에는 마음을 끄는 참된 힘이 있다.
2001 CM 188:5.10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예수를 바라볼 때, 분별력 있는 남녀라면, 사소한 고민거리나 순전히 허구적인 많은 불만은커녕, 인생의 가장 혹독한 어려움에 닥치더라도 도저히 다시는 불평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삶은 너무나 영광스러웠고, 그의 죽음은 너무나 승리에 찼으므로, 우리 모두는 기꺼이 둘 다 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린 시절부터, 십자가에서 죽는 장엄한 광경에 이르기까지, 미가엘의 전체 증여 과정에는 끌어당기는 참된 능력이 있다.
2007 URKA 188:5.10 사고력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그가 십자가 위에서 그의 생명을 내어놓으시는 모습의 예수를 바라볼 때, 그들이 비록 최고로 심각한 일생의 어려움에 닥치더라도 그들은 도저히 다시 불평할 수 없을 것이며, 사소한 고민거리나 그들의 많은 순전히 허구적인 불평거리들의 경우에는 더욱 적을 것이다. 그의 일생은 너무나 영광스러웠고 그의 죽음은 너무나 승리에 찼으므로 우리 모두는 둘 모두를 공유하려는 기꺼운 마음으로 이끌려진다. 예수의 소년 시절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엄한 광경에 이르기까지, 미가엘의 전체 증여에는 진실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1955 188:5.11 Make sure, then, that when you view the cross as a revelation of God, you do not look with the eyes of the primitive man nor with the viewpoint of the later barbarian, both of whom regarded God as a relentless Sovereign of stern justice and rigid law-enforcement. Rather, make sure that you see in the cross the final manifestation of the love and devotion of Jesus to his life mission of bestowal upon the mortal races of his vast universe. See in the death of the Son of Man the climax of the unfolding of the Father’s divine love for his sons of the mortal spheres. The cross thus portrays the devotion of willing affection and the bestowal of voluntary salvation upon those who are willing to receive such gifts and devotion. There was nothing in the cross which the Father required—only that which Jesus so willingly gave, and which he refused to avoid.
2000 188:5.11 그러면 너희가 십자가를 하나님의 계시(啓示)로 바라볼 때, 원시인의 눈이나 후일의 야만인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여라.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엄격하게 응징하고 엄밀하게 법을 집행하는 무자비한 군주라고 여겼다. 오히려 너희는 그의 광대한 우주의 필사 종족들에게 바치는 일생의 사명에 예수가 쏟은 사랑과 헌신의 최종 표현을 십자가에서 꼭 보도록 하여라. 사람의 아들의 죽음 속에서, 필사자 구체에 사는 아들들에게 쏟는 아버지의 신다운 사랑이 펼쳐지는 그 절정을 보아라. 이처럼 십자가는 그러한 선물과 헌신을 기쁘게 받는 사람에게 기꺼이 애정을 바치고 자진해서 구원을 주는 것을 묘사한다. 십자가에는 아버지가 요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오로지 예수가 아주 기쁘게 준 것, 피하려 하지 않은 것만 있었다.
2001 CM 188:5.11 너희가 십자가를 하나님의 계시 사건으로 바라볼 때, 원시인의 눈으로 보거나 후대 야만인의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엄격한 공의를 실행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냉혹한 주권자라고 여겼다. 오히려 너희는, 자신의 방대한 우주의 필사자 인종들에게 바치는 증여 사명에 예수께서 쏟은 사랑과 헌신의 최종 증거를, 십자가에서 볼 수 있어야한다. 필사자 구체{球體}에서 사는 아들들을 향한 아버지의 신성한 사랑이, 사람의 아들의 죽음에서 최고로 꽃피웠음을 알아야한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그런 선물과 헌신을 기꺼이 받고자하는 자들에게, 자진해서 증여하시는 구원과 자발적으로 헌신하시는 애정을 나타낸다. 십자가 사건에, 아버지께서 요구하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오직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택했고 피하기를 거부했다.
2007 URKA 188:5.11 그러므로, 너희가 십자가를 하느님의 계시로서 바라볼 때, 너희가 원시인의 눈이나 그 후의 미개인의 관점으로 보지 않도록 확실히 하여라, 그 둘은 하느님을 엄격한 공의와 엄정한 법 집행의 냉혹한 주권자로 간주한다. 오히려, 예수가 그의 광대한 우주에 있는 필사 종족들에게 증여로 그의 일생의 임무에 쏟으신 그의 사랑과 헌신의 최종적인 현시활동을 십자가에서 너희가 보도록 확실히 하여라. 필사 구체들에 있는 그의 아들들을 위한 아버지의 신성한 사랑이 전개되는 절정을 사람의 아들의 죽음 속에서 보아라. 그리하여, 십자가는 그러한 선물들과 헌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하는 애정의 헌신과 자발적인 구원의 증여를 표현한다. 십자가에는 아버지께서 요구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며─오직 예수가 자진해서 주었으며, 그가 피하기를 거부하였다.
2025 188:5.11 그러면 너희가 십자가를 하나님의 계시(啓示)로 바라볼 때, 원시인의 눈이나 후일의 야만인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하여라.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엄격하게 응징하고 엄밀하게 법을 집행하는 무자비한 군주라고 여겼다. 오히려 너희는 그의 광대한 우주의 필사 종족들에게 바치는 일생의 사명에 예수가 쏟은 사랑과 헌신의 최종 표현을 십자가에서 꼭 보도록 하여라. 사람의 아들의 죽음 속에서, 필사자 구체에 사는 아들들에게 쏟는 아버지의 신다운 사랑이 펼쳐지는 그 절정을 보아라. 이처럼 십자가는 그러한 선물과 헌신을 기쁘게 받는 사람에게 기꺼이 애정을 바치고 자진해서 구원을 주는 것을 묘사한다. 십자가에는 아버지가 요구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 오로지 예수가 아주 기쁘게 준 것, 피하려 하지 않은 것만 있었다.
1955 188:5.12 If man cannot otherwise appreciate Jesus and understand the meaning of his bestowal on earth, he can at least comprehend the fellowship of his mortal sufferings. No man can ever fear that the Creator does not know the nature or extent of his temporal afflictions.
2000 188:5.12 사람이 달리 예수를 고맙게 여기고 땅에서 그가 자신을 수여한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예수가 필사자의 고통을 함께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현세에서 얼마나, 어떤 고통을 받는가 창조자가 모른다고 결코 아무도 걱정할 수 없다.
2001 CM 188:5.12 사람이 달리 예수께 감사할 수 없고 그가 이 땅에 증여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예수께서 필사자의 수난에 동참한 것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현세에서 당하는 고난의 본질이나 크기를 창조주께서 알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2007 URKA 188:5.12 만일 사람이 달리 예수를 깊이 깨달을 수도 없고 그리고 땅에서의 그의 증여의 의미를 납득할 수도 없어도, 적어도 그가 필사자로서 고통을 겪은 그러한 그의 동료관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자신의 현세적 고통의 본성이나 정도를 창조자가 알지 못한다고 걱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55 188:5.13 We know that the death on the cross was not to effect man’s reconciliation to God but to stimulate man’s realization of the Father’s eternal love and his Son’s unending mercy, and to broadcast these universal truths to a whole universe.
2000 188:5.13 우리가 알건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아들의 끝없는 자비를 사람이 깨닫도록 자극하고, 이 보편적 진리를 한 우주 전체에 퍼뜨리기 위한 것이다.
2001 CM 188:5.13 우리가 알기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은, 사람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아들의 영속적 자비를 사람이 깨닫도록 자극하고, 이 보편적 진리를 전체 우주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2007 URKA 188:5.13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 하느님에 대한 사람의 화해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그의 아들의 끝남이 없는 자비에 대한 사람의 실현을 자극하고 이 우주의 진리들을 전체 우주에 널리 알리기 위하였다는 것을 안다.
2025 188:5.13 우리가 알건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아들의 끝없는 자비를 사람이 깨닫도록 자극하고, 이 보편적 진실을 한 우주 전체에 퍼뜨리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