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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GOING THROUGH SAMARIA
제 143 편사마리아를 거쳐서
제143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제 143 편: 사마리아를 거쳐서 감
사마리아를 거쳐서
1955 143:0.1 AT THE end of June, A.D. 27, because of the increasing opposition of the Jewish religious rulers, Jesus and the twelve departed from Jerusalem, after sending their tents and meager personal effects to be stored at the home of Lazarus at Bethany. Going north into Samaria, they tarried over the Sabbath at Bethel. Here they preached for several days to the people who came from Gophna and Ephraim. A group of citizens from Arimathea and Thamna came over to invite Jesus to visit their villages. The Master and his apostles spent more than two weeks teaching the Jews and Samaritans of this region, many of whom came from as far as Antipatris to hear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2000 143:0.1 서기 27년 6월말에,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가 커졌기 때문에, 예수와 열두 사도는 텐트와 자질구레한 개인 소지품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저장하려고 보낸 뒤에 예루살렘을 떠났다. 북쪽으로 사마리아로 들어가면서 그들은 안식일 동안 베델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그들은 고프나와 에브라임에서 온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전도했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시민들의 무리가 와서 자기네 마을을 방문해달라고 예수를 초청하였다. 주와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가르치면서 2주가 넘게 시간을 보냈다. 여러 사람이 하늘나라의 좋은 소식을 들으려고 멀리 안티파트리스에서도 왔다.
2001 CM 143:0.1 서기 27년 6월 말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이 점점 심해졌으므로, 예수와 열두 사도는 베다니에 서 나사로의 집에 천막과 개인 물건을 맡기고 예루살렘을 떠났다. 사마리아로 들어가려고 북쪽으로 가면서, 벧엘에서 안식일을 지냈다. 그들은 여기서, 곱나와 에브라임에서 온 사람들에게 여러 날 전도했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를 방문해 달라고 예수를 초청했다. 주님과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2주 이상 가르쳤는데, 그들 가운데 여러 사람은 천국의 기쁜 소식을 들으려고 멀리 안티파트리에서 왔다.
2007 URKA 143:0.1 서기 27년 6월 말에, 유대 종교 통치자들이 점점 더 심하게 반대함으로 인하여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그들의 천막과 자질구레한 개인 용품들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보관하도록 보내고 나서 예루살렘을 떠났다. 북쪽으로 가면서 사마리아로 들어가 그들은 안식일을 베델에서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들은 고프나와 에브라임에서 온 사람들에게 여러 날 동안 설교하였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한 무리의 시민들이 예수에게 그들의 마을들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기 위하여 건너왔다. 주(主)와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2주 이상이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가르쳤는데,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왕국의 새로운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 멀리 안티파트리스에서도 왔다.
2025 143:0.1 서기 27년 6월말에,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가 커졌기 때문에, 예수와 열두 사도는 텐트와 자질구레한 개인 소지품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저장하려고 보낸 뒤에 예루살렘을 떠났다. 북쪽으로 사마리아로 들어가면서 그들은 안식일 동안 베델에서 머물렀다. 여기서 그들은 고프나와 에브라임에서 온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전도했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시민들의 무리가 와서 자기네 마을을 방문해 달라고 예수를 초청하였다. 주와 사도들은 이 지역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가르치면서 2주가 넘게 시간을 보냈다. 여러 사람이 하늘나라의 좋은 소식을 들으려고 멀리 안티파트리스에서도 왔다.
1955 143:0.2 The people of southern Samaria heard Jesus gladly, and the apostles, with the exception of Judas Iscariot, succeeded in overcoming much of their prejudice against the Samaritans. It was very difficult for Judas to love these Samaritans. The last week of July Jesus and his associates made ready to depart for the new Greek cities of Phasaelis and Archelais near the Jordan.
2000 143:0.2 남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많은 편견을 버리는 데 성공했다. 유다가 이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7월 마지막 주에 예수와 동료들은 요단강 가까이, 새 그리스 풍의 도시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를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했다.
2001 CM 143:0.2 남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가룟 유다 이외의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한 많은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다. 유다가 이 사마리아인을 사랑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7월 마지막 주간에, 예수와 동역자들은 요단에서 가까운 새 그리스 도시 파새리와 아켈라이로 떠나려고 준비했다.
2007 URKA 143:0.2 남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가룟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게 가졌던 자신들의 편견에서의 많은 것을 극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유다로서는 이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7월 마지막 주에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은 요단강 가까이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 도시인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2025 143:0.2 남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많은 편견을 버리는 데 성공했다. 유다가 이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7월 마지막 주에 예수와 동료들은 요단 강 가까이, 새 그리스 풍의 도시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를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했다.
1. PREACHING AT ARCHELAIS
1.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하다
1. 아켈라이에서 전도함
1. 아켈라이스에서의 설교
1.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하다
1955 143:1.1 The first half of the month of August the apostolic party made its headquarters at the Greek cities of Archelais and Phasaelis, where they had their first experience preaching to well-nigh exclusive gatherings of gentiles—Greeks, Romans, and Syrians—for few Jews dwelt in these two Greek towns. In contacting with these Roman citizens, the apostles encountered new difficulties in the proclamation of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and they met with new objections to the teachings of Jesus. At one of the many evening conferences with his apostles, Jesus listened attentively to these objections to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 twelve repeated their experiences with the subjects of their personal labors.
2000 143:1.1 8월의 처음 절반 동안 사도 일행은 그리스 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본부를 차렸다. 거기서 거의 순전히 이방인― 그리스인ㆍ로마인ㆍ시리아인―들의 모임에게 전도하는 첫 경험을 얻었는데, 거의 아무 유대인도 이 두 그리스 풍의 마을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다가오는 하늘나라 소식을 선포하는 데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直面)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새로운 반대에 부닥쳤다. 사도들과 가진 많은 저녁 회의 중 하나에서, 열두 사도가 개인적으로 수고하여 얻은 사람들과 겪은 체험을 되풀이하는 동안, 예수는 이들이 하늘나라 복음에 반대하는 이유를 주의 깊게 들었다.
2001 CM 143:1.1 8월 전반부에, 사도 일행은 그리스 도시 아켈라이와 파새리에 본부를 뒀고, 거기서 거의 이방인만으로--곧 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으로-- 이뤄진 모임을 상대로는 처음 전도하는 체험을 가졌는데, 이 두 도시에는 유대인이 거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로마 시민과 접촉하면서, 도래하는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에 새 어려움에 부딪쳤고, 예수의 교훈에 대한 새로운 반대에 봉착하게 됐다. 사도들과 여러 차례 가졌던 저녁 회담 가운데 하나에서, 열두 사도가 개인적으로 수고하여 얻은 사람들과 겪은 체험담을 되풀이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에 대한 이런 장애물에 대해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2007 URKA 143:1.1 8월 상반기에 사도 일행은 그리스 도시들인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 본부를 두었으며 거기에서 그들은 순전히 이방인들─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만으로 모인 모임에게 설교하는 그들의 첫 체험을 가졌는데, 이는 이들 두 도시에는 거의 유대인들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들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다가오는 왕국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에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예수의 가르침들에 대한 새로운 반대에 부닥치게 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사도들과 가졌던 저녁 회의들 중 하나에서, 열두 사도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수고를 주제로 그들의 체험들을 반복해 가면서, 왕국의 복음에 대한 이들 반대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예수는 주의 깊게 들었다.
2025 143:1.1 8월의 처음 절반 동안 사도 일행은 그리스 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본부를 차렸다. 거기서 거의 순전히 이방인 ― 그리스인ㆍ로마인ㆍ시리아인 ― 들의 모임에게 전도하는 첫 경험을 얻었는데, 거의 아무 유대인도 이 두 그리스 풍의 마을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다가오는 하늘나라 소식을 선포하는 데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直面)하고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새로운 반대에 부닥쳤다. 사도들과 가진 많은 저녁 회의 중 하나에서, 열두 사도가 개인적으로 수고하여 얻은 사람들과 겪은 체험을 되풀이하는 동안, 예수는 이들이 하늘나라 복음에 반대하는 이유를 주의 깊게 들었다.
1955 143:1.2 A question asked by Philip was typical of their difficulties. Said Philip: “Master, these Greeks and Romans make light of our message, saying that such teachings are fit for only weaklings and slaves. They assert that the religion of the heathen is superior to our teaching because it inspires to the acquirement of a strong, robust, and aggressive character. They affirm that we would convert all men into enfeebled specimens of passive nonresisters who would soon perish from the face of the earth. They like you, Master, and freely admit that your teaching is heavenly and ideal, but they will not take us seriously. They assert that your religion is not for this world; that men cannot live as you teach. And now, Master, what shall we say to these gentiles?”
2000 143:1.2 빌립의 질문은 사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었다. 빌립은 말했다: “주여, 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가벼이 여기고 그러한 가르침은 오직 허약자와 노예에게 어울린다 하나이다. 이방인의 종교는 힘세고 튼튼하고 공격적 인품을 얻으라고 북돋아주므로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나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고분고분한 무저항자의 허약한 표본으로 바꾸려 하고 그런 자들은 지상에서 곧 멸망하리라 주장하나이다. 주여, 저희는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가르침이 하늘같고 이상적이라고 아낌없이 인정하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상대하려 하지 않나이다.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에 맞지 않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나이다. 이제 주여, 이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무어라고 이르리이까?”
2001 CM 143:1.2 그들이 겪는 가장 대표적인 어려움에 대해 빌립이 질문했다. 빌립이 말했다:“주님, 이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그런 교훈이 오직 약한 자나 노예에게 어울린다고 하면서, 우리 메시지를 가볍게 여깁니다. 이방인의 종교가 강력하고 확고하고 적극적인 성품을 획득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월하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약하고 수동적인 비저항자로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그들은 확언합니다. 주님,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가르침이 신성하고 이상적이라고 기꺼이 시인하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당신이 가르치는대로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주님, 이제 이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2007 URKA 143:1.2 빌립이 물었던 질문이 그들이 겪은 어려움들에서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빌립이 말하였다: “주(主)여, 이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그러한 가르침들은 단지 허약한 자들이나 노예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메시지를 가볍게 만듭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종교가 강력하고 확고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취득에 이르도록 영감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월하다고 단언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곧 수동적인 무저항자로 이 지상에서 곧 사라질 그런 연약해지는 사람의 표본으로 전향시키려 한다고 확언합니다. 주(主)여,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며 당신의 가르침이 하늘의 것과 같고 그리고 이상적이라고 기꺼이 시인하지만, 그러나 우리를 진지하게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종교가 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사람이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니 주(主)여, 이제 우리는 이들 이방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되겠습니까?”
2025 143:1.2 빌립의 질문은 사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었다. 빌립은 말했다: “주여, 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가벼이 여기고 그러한 가르침은 오직 허약자와 노예에게 어울린다 하나이다. 이방인의 종교는 힘세고 튼튼하고 공격적 인품을 얻으라고 북돋아주므로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나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고분고분한 무저항자의 허약한 표본으로 바꾸려 하고 그런 자들은 지상에서 곧 멸망하리라 주장하나이다. 주여, 저희는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가르침이 하늘같고 이상적이라고 아낌없이 인정하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상대하려 하지 않나이다.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에 맞지 않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하나이다. 이제 주여, 이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무어라고 이르리이까?”
1955 143:1.3 After Jesus had heard similar objections to the gospel of the kingdom presented by Thomas, Nathaniel, Simon Zelotes, and Matthew, he said to the twelve:
2000 143:1.3 토마스, 나다니엘, 열심당원 시몬, 마태가 내놓은 이유, 하늘나라 복음을 반대하는 비슷한 이유를 듣고 난 뒤에,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2001 CM 143:1.3 도마와 나다니엘과 열심당 시몬 및 마태로부터, 천국 복음에 대한 비슷한 반대에 대해 듣고 난 후에, 예수께서 열두 사도에게 말씀했다:
2007 URKA 143:1.3 도마, 나다니엘, 열심당원 시몬, 그리고 마태로부터 제시된 왕국의 복음에 대한 비슷한 반대들을 듣고 난 뒤에, 예수가 열두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2025 143:1.3 토마스, 나다니엘, 열심당원 시몬, 마태가 내놓은 이유, 하늘나라 복음을 반대하는 비슷한 이유를 듣고 난 뒤에,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1955 143:1.4 “I have come into this world to do the will of my Father and to reveal his loving character to all mankind. That, my brethren, is my mission. And this one thing I will do, regardless of the misunderstanding of my teachings by Jews or gentiles of this day or of another generation. But you should not overlook the fact that even divine love has its severe disciplines. A father’s love for his son oftentimes impels the father to restrain the unwise acts of his thoughtless offspring. The child does not always comprehend the wise and loving motives of the father’s restraining discipline. But I declare to you that my Father in Paradise does rule a universe of universes by the compelling power of his love. Love is the greatest of all spirit realities. Truth is a liberating revelation, but love is the supreme relationship. And no matter what blunders your fellow men make in their world management of today, in an age to come the gospel which I declare to you will rule this very world. The ultimate goal of human progress is the reverent recognition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loving materializa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43:1.4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온 인류에게 드러내려고 내가 이 세상으로 왔노라. 형제들아, 그것이 내 사명이라. 오늘날이나 또 다른 세대에 유대인이나 이방인(異邦人)이 내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과 상관 없이 나는 이것 하나를 해내리라. 그러나 너희는 신의 사랑에도 엄한 징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생각이 모자라는 자식의 지혜롭지 못한 행위를 억제하도록 아버지를 때때로 재촉하느니라. 지혜롭게 사랑으로 아버지가 징계하는 그 동기를 자식이 반드시 이해하지는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내 아버지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온 우주를 다스리느니라. 사랑은 모든 영 실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라. 진리는 사람을 해방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상의 관계이라. 너희 동료 인간들이 오늘날의 세계를 관리하면서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상관 없이,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 인간의 진보가 이룰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경건하게 인식하는 것과 사람이 형제임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이라.
2001 CM 143:1.4 “내 아버지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전체 인류에게 계시하려고, 내가 이 세상에 왔다. 형제들아, 그것이 내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이 한 가지만 이행할 것인데, 내 교훈이 이 시대 또는 다른 세대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로부터 오해받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신성한 사랑에도 엄격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종종, 경솔한 자식의 현명치 못한 행위를 제지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자제시키는 훈련의 현명함과 사랑의 동기를, 자녀가 반드시 납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낙원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의 권능으로 온갖 우주를 지배하신다. 모든 영 실체 중에서 사랑이 최고다. 진리는 자유하게 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상의 관계다. 그리고 너희의 동료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를 관리하면서 어떤 큰 실책을 범하든지 상관없이, 앞으로 오는 세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다. 인간이 진보하는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경건하게 깨닫는 것과, 사람이 형제관계임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2007 URKA 143:1.4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넘치는 성격을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내 형제들아,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가르침이 이 시대 혹은 다른 세대의 유대인들이나 혹은 이방인들에 의해 오해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 한 가지를 행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신성한 사랑조차도 거기에 혹독한 단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의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로 하여금 그의 생각이-없는 자식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억제하도록 종종 강요한다. 아버지가 내리는 억제시키는 단련의 지혜로운 그리고 사랑-넘치는 동기를 자녀가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파라다이스에 계신 나의 아버지는 그의 사랑의 강제하는 힘으로 우주들의 우주를 지배한다. 사랑은 모든 영적 실체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진리는 해방시키는 계시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최극 관계이다. 그리고 너희 동료 사람들이 오늘 자신들의 세계를 관리하면서 어떤 실책을 저질러도 그에 상관없이, 다가오는 시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인간 진보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의 경건한 인지와 사람의 형제신분의 사랑-넘치는 물질화구현이다.
2025 143:1.4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온 인류에게 드러내려고 내가 이 세상으로 왔노라. 형제들아, 그것이 내 사명이라. 오늘날이나 또 다른 세대에 유대인이나 이방인(異邦人)이 내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것 하나를 해내리라. 그러나 너희는 신의 사랑에도 엄한 징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생각이 모자라는 자식의 지혜롭지 못한 행위를 억제하도록 아버지를 때때로 재촉하느니라. 지혜롭게 사랑으로 아버지가 징계하는 그 동기를 자식이 반드시 이해하지는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내 아버지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온 우주를 다스리느니라. 사랑은 모든 영 실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라. 진실은 사람을 해방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상의 관계이라. 너희 동료 인간들이 오늘날의 세계를 관리하면서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상관없이,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 인간의 진보가 이룰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경건하게 인식하는 것과 사람이 형제임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이라[1].
1955 143:1.5 “But who told you that my gospel was intended only for slaves and weaklings? Do you, my chosen apostles, resemble weaklings? Did John look like a weakling? Do you observe that I am enslaved by fear? True, the poor and oppressed of this generation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The religions of this world have neglected the poor, but my Father is no respecter of persons. Besides, the poor of this day are the first to heed the call to repentance and acceptance of sonship.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o be preached to all men—Jew and gentile, Greek and Roman, rich and poor, free and bond—and equally to young and old, male and female.
2000 143:1.5 “그러나 내 복음이 겨우 노예나 허약자에게 주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렀느냐? 너희, 내가 뽑은 사도들이 허약자를 닮았느냐? 요한이 허약자 같더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노예가 된 것을 보느냐? 이 세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도받은 것이 참말이라. 이 세상의 종교들은 가난한 자를 소홀히 여겼으나, 내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 게다가 오늘날의 가난한 자는, 뉘우치고 아들인 것을 받아들이라는 부름을 먼저 주목하는 자이니라. 하늘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에게,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되어야 하느니라.
2001 CM 143:1.5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내 복음이 단지 노예와 약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했느냐? 내가 택한 사도들이 약한 자처럼 보이느냐? 요한이 약한 자처럼 보였느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을 봤느냐? 이 세대의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 종교는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지만, 내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회개하고 아들신분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에, 이 시대의 가난한 자들이 제일 먼저 관심을 보였다. 천국 복음은 모든 사람--곧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그리고 젊은이나 노인, 남자나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될 것이다.
2007 URKA 143:1.5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나의 복음이 단지 노예들과 약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느냐? 내가 선택한 사도들인 너희가 허약한 자들과 흡사한 것이냐? 요한이 허약한 자처럼 보였느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노예가 된 것을 보았느냐? 이 세대에서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전파된 복음을 소유했다는 것은 참말이다. 이 세상의 종교는 가난한 자들을 소홀히 여겼지만, 나의 아버지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다. 게다가, 이 시대의 가난한 자들이 회개에 대한 소명과 아들관계의 승낙에,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이는 자이다. 왕국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에게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전파되는 것이다.
2025 143:1.5 “그러나 내 복음이 겨우 노예나 허약자에게 주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렀느냐? 너희, 내가 뽑은 사도들이 허약자를 닮았느냐? 요한이 허약자 같더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노예가 된 것을 보느냐? 이 세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도받은 것이 참말이라. 이 세상의 종교들은 가난한 자를 소홀히 여겼으나, 내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 게다가 오늘날의 가난한 자는, 뉘우치고 아들인 것을 받아들이라는 부름을 먼저 주목하는 자이니라. 하늘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 ―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 ― 에게, 그리고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되어야 하느니라[2].
1955 143:1.6 “Because my Father is a God of love and delights in the practice of mercy, do not imbibe the idea that the service of the kingdom is to be one of monotonous ease. The Paradise ascent is the supreme adventure of all time, the rugged achievement of eternity. The service of the kingdom on earth will call for all the courageous manhood that you and your coworkers can muster. Many of you will be put to death for your loyalty to the gospel of this kingdom. It is easy to die in the line of physical battle when your courage is strengthened by the presence of your fighting comrades, but it requires a higher and more profound form of human courage and devotion calmly and all alone to lay down your life for the love of a truth enshrined in your mortal heart.
2000 143:1.6 “내 아버지가 사랑의 하나님이요 자비 베풀기를 기뻐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의 봉사가 지루하게 편한 일이라는 생각에 젖지 말라.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것은 영원히 최고의 모험이요 영원을 향하는 험난한 성취이라. 땅에서 하늘나라에 봉사하는 것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일하는 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감한 남성(男性) 자질을 모두 요구하리라. 너희 가운데 여럿은 이 하늘나라 복음에 충성한 까닭에 죽음을 당하리라. 함께 싸우는 친구들이 있어 너희의 용기가 강화될 때는 육체의 싸움터에서 죽기가 쉽거니와, 인간의 가슴 속에 소중히 여기는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온전히 혼자서 목숨을 버리는 데는 더 높고 깊은 형태의 인간다운 용기와 헌신이 요구되느니라.
2001 CM 143:1.6 “내 아버지가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비 베풀기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천국에서 봉사하는 것이 단조롭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낙원으로 상승하는 것은 언제나 최상의 모험이요, 영원에 이르는 험난한 길이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위하여 봉사하려면, 너희와 너희 동업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감한 남자다움을 전부 요구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천국 복음에 충성을 바침으로써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함께 싸우는 전우{戰友}가 있음으로 용기를 얻을 때 육체의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쉽지만, 필사자의 마음 속에 소중히 여기는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온전히 홀로 생명을 버리는 데는, 더 높고 심오한 형태의 인간적 용기와 헌신이 요구된다.
2007 URKA 143:1.6 “나의 아버지가 사랑의 하느님이며, 자비의 실천을 기뻐한다고 해서, 왕국의 봉사가 단조롭고 쉬운 것이라는 관념에 젖지 말라. 파라다이스로 상승하는 것은 모든 시간에서의 최극 모험, 곧 영원에서의 험난한 성취이다. 땅에서 하는 왕국의 봉사에는 너희와 너희가 함께 일하는 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기 넘치는 남자신분의 모든 것을 부를 것이다. 너희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왕국의 복음에 대한 너희의 충성 때문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물리적인 전쟁터의 전선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너희 전우의 현존으로 너희의 용기가 강화되었을 때에는 죽는 것이 쉬운 일이지만, 너희의 필사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진리의 사랑 때문에 혼자서 너희의 생명을 차분하게 그리고 온전히 내려놓는 일은 더 높고, 더 심오한 형태의 인간적 용기와 헌신을 요구한다.
2025 143:1.6 “내 아버지가 사랑의 하나님이요 자비 베풀기를 기뻐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의 봉사가 지루하게 편한 일이라는 생각에 젖지 말라.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것은 영원히 최고의 모험이요 영원을 향하는 험난한 성취이라. 땅에서 하늘나라에 봉사하는 것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일하는 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감한 남성(男性) 자질을 모두 요구하리라. 너희 가운데 여럿은 이 하늘나라 복음에 충성한 까닭에 죽음을 당하리라. 함께 싸우는 친구들이 있어 너희의 용기가 강화될 때는 육체의 싸움터에서 죽기가 쉽거니와, 인간의 가슴 속에 소중히 여기는 진실을 사랑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온전히 혼자서 목숨을 버리는 데는 더 높고 깊은 형태의 인간다운 용기와 헌신이 요구되느니라[3].
1955 143:1.7 “Today, the unbelievers may taunt you with preaching a gospel of nonresistance and with living lives of nonviolence, but you are the first volunteers of a long line of sincere believers in the gospel of this kingdom who will astonish all mankind by their heroic devotion to these teachings. No armies of the world have ever displayed more courage and bravery than will be portrayed by you and your loyal successors who shall go forth to all the world proclaiming the good news—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The courage of the flesh is the lowest form of bravery. Mind bravery is a higher type of human courage, but the highest and supreme is uncompromising loyalty to the enlightened convictions of profound spiritual realities. And such courage constitutes the heroism of the God-knowing man. And you are all God-knowing men; you are in very truth the personal associates of the Son of Man.”
2000 143:1.7 “오늘날, 믿지 않는 자는 무저항의 복음을 전도하고 폭력을 쓰지 않고 일생을 사는 너희를 비웃을지 모르나, 너희는 이 하늘나라 복음을 진지하게 믿는 자의 긴 대열에서 처음으로 나선 자요, 이 가르침에 영웅답게 헌신함으로 온 인류를 놀라게 하리라. 너희와 충성스러운 너희의 후계자들은 좋은 소식―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임―을 외치며 온 세계로 떠나가리니, 저희가 장래에 보일 것보다 세계의 어느 군대도 더 큰 용기와 용감을 보인 적이 없느니라. 육체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이라. 정신의 용기는 더 높은 종류의 인간다운 용기이나, 가장 높고 지극한 용기는 깊은 영적 실체들을 깨우친 확신에 굳세게 충성하는 것이라. 그러한 용기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영웅다운 정신이라. 너희는 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진실로 개인적으로 사람의 아들을 아는 동료이라.”
2001 CM 143:1.7 “오늘날, 무저항의 복음을 전파하고 비폭력의 인생을 사는 너희를, 믿지 않는 자들이 비난할지 모르지만, 너희는 이 천국 복음을 믿는 진지한 신자들의 긴 행렬에서 처음으로 자원한 자이며, 이 교훈에 영웅적으로 헌신하여 모든 인류를 놀라게 할 것이다. 기쁜 소식--곧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인 것--을 전파하면서, 너희와 너희의 충성스런 계승자들이 온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데, 저희가 보여줄 것 보다 더 큰 용기와 대담함을, 이 세상의 어떤 군대도 보여 준 적이 이제까지 없었다. 육신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함이다. 정신의 용감함이 더 높은 유형의 인간적 용기이지만, 심오한 영적 실체를 깨우친 신념에 단호하게 충성하는 것이, 가장 높고 대단한 용기다. 그런 용기가, 하나님을-아는 사람의 영웅적 자질에 해당한다. 너희는 모두 하나님을-아는 사람이며;정말로 사람의 아들의 친밀한 동역자다.”
2007 URKA 143:1.7 “오늘날, 믿지 않는 자들은 너희가 무저항의 복음을 설교하고 비폭력의 삶을 사는 것을 가지고 너희를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너희는 이들 가르침들에 영웅적으로 헌신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할 사람들, 곧 왕국의 복음을 진지하게 믿는 자들의 긴 전선에서의 첫 번째 자원자들이다. 이 세상의 어떤 군대도, 세상 모든 곳으로 나아가서 좋은 소식─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을 전파할 너희와 너희의 충성스러운 계승자들로 말미암아 묘사되는 것보다, 더 큰 용기와 용감함을 보여 준 적이 이제까지 없었다. 육신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함이다. 마음이 용감한 것은 더 높은 유형의 인간적 용기이지만, 최고와 그리고 최극은 심오한 영적 실체에서의 깨우친 신념에 바치는 타협하지 않는 충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용기가 하느님을-아는 사람의 영웅다움을 구성한다. 그리고 너희 모두는 하느님을-아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바로 진리 안에서 사람의 아들의 개인적 연관-동료들이다.”
2025 143:1.7 “오늘날, 믿지 않는 자는 무저항의 복음을 전도하고 폭력을 쓰지 않고 일생을 사는 너희를 비웃을지 모르나, 너희는 이 하늘나라 복음을 진지하게 믿는 자의 긴 대열에서 처음으로 나선 자요, 이 가르침에 영웅답게 헌신함으로 온 인류를 놀라게 하리라. 너희와 충성스러운 너희의 후계자들은 좋은 소식 ―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임 ― 을 외치며 온 세계로 떠나가리니, 저희가 장래에 보일 것보다 세계의 어느 군대도 더 큰 용기와 용감을 보인 적이 없느니라. 육체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이라. 정신의 용기는 더 높은 종류의 인간다운 용기이나, 가장 높고 지극한 용기는 깊은 영적 실체들을 깨우친 확신에 굳세게 충성하는 것이라. 그러한 용기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영웅다운 정신이라. 너희는 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요, 진실로 개인적으로 사람의 아들을 아는 동료이라.”
1955 143:1.8 This was not all that Jesus said on that occasion, but it is the introduction of his address, and he went on at great length in amplification and in illustration of this pronouncement. This was one of the most impassioned addresses which Jesus ever delivered to the twelve. Seldom did the Master speak to his apostles with evident strong feeling, but this was one of those few occasions when he spoke with manifest earnestness, accompanied by marked emotion.
2000 143:1.8 이것은 그 기회에 예수가 하신 말씀의 전부가 아니라 그 연설의 서론이다. 예수는 이 선언을 확대하고 예를 들면서 아주 자세히 말씀을 이었다. 이 말씀은 예수가 일찍이 열두 사도에게 가장 열심히 하신 연설 중에 하나였다. 주는 뜨거운 감정이 눈에 뜨일 정도로 사도들에게 말씀한 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뚜렷한 감정과 더불어, 열심히 말씀하신 드문 기회 중의 하나였다.
2001 CM 143:1.8 이것이 이 경우에 예수께서 말씀했던 전부는 아니지만, 그의 연설의 서두였고, 그는 계속해서 이 발표에 대해 장시간 설명하고 예를 들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열두 사도에게 말씀했던 가장 열렬한 강연 가운데 하나였다. 주님은 뜨거운 감정이 드러날 정도로 사도들에게 말씀한 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날은 깊은 감정을 동반한 채 열정으로 말씀했던,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였다.
2007 URKA 143:1.8 이것이 그 경우에 예수가 이야기했던 것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의 연설의 서론이었고, 그는 계속해서 이러한 발표에 대한 설명과 예시를 들면서 아주 긴 시간을 이어 나갔다. 이것은 일찍이 예수가 열두 사도들에게 해준 것 중에서 가장 열정이 담긴 강연들 중의 하나였다. 주(主)는 사도들에게 명백하게 강한 느낌으로 이야기한 적이 좀처럼 없었으나, 이것은 그가 뚜렷한 감정으로 동반된 현시되는 진지함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드문 경우의 하나였다.
2025 143:1.8 이것은 그 기회에 예수가 하신 말씀의 전부가 아니라 그 연설의 서론이다. 예수는 이 선언을 확대하고 예를 들면서 아주 자세히 말씀을 이었다. 이 말씀은 예수가 일찍이 열두 사도에게 가장 열심히 하신 연설 중의 하나였다. 주는 뜨거운 감정이 눈에 뜨일 정도로 사도들에게 말씀한 적이 드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뚜렷한 감정과 더불어, 열심히 말씀하신 드문 기회 중의 하나였다.
1955 143:1.9 The result upon the public preaching and personal ministry of the apostles was immediate; from that very day their message took on a new note of courageous dominance. The twelve continued to acquire the spirit of positive aggression in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From this day forward they did not occupy themselves so much with the preaching of the negative virtues and the passive injunctions of their Master’s many-sided teaching.
2000 143:1.9 사도들이 대중에게 전도하고 개인을 상대로 봉사한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바로 그날부터 그들이 전파하는 소식에는 용기가 솟아오르는 새로운 음성이 담겨 있었다. 열두 사도는 하늘나라의 새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정신을 계속 몸에 익혔다. 이날 이후로 계속하여 그들은 다채로운 주의 가르침 중에 소극적 미덕과[1] 수동적 명령을 전파하는 데 분주하지 않았다.
2001 CM 143:1.9 사도들의 공중 전도와 개인 사역에서 결과가 즉시 나타났는데;바로 이날부터, 그들의 메시지는 용기로 지배되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했다. 열두 사도는 새 천국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기풍을 계속 습득했다. 이날부터 그들은, 다방면에 걸친 주님의 가르침 중에서 부정적 덕목과 수동적 금지명령을 전파하는 일에 그다지 몰두하지 않았다.
2007 URKA 143:1.9 사도들의 대중 설교와 개인적 사명활동에서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바로 그날부터 그들의 메시지는 용기로 지배되는 새로운 음색을 띠고 있었다. 열두 사도들은 왕국의 새로운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적극적인 침략의 영을 취득하는 것을 계속하였다. 이날 이후로 그들은 자신들의 주(主)의 다방면에 걸친 가르침의 소극적인 덕목들과 수동적인 금지명령들을 설교하는 일에 그렇게 많이 자신들을 빼앗기지 않았다.
2025 143:1.9 사도들이 대중에게 전도하고 개인을 상대로 봉사한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바로 그날부터 그들이 전파하는 소식에는 용기가 솟아오르는 새로운 음성이 담겨 있었다. 열두 사도는 하늘나라의 새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정신을 계속 몸에 익혔다. 이날 이후로 계속하여 그들은 다채로운 주의 가르침 중에 소극적 미덕과[157] 수동적 명령을 전파하는 데 분주하지 않았다.
2. LESSON ON SELF-MASTERY
2. 자제에 대한 교훈
2. 자아-정복에 대한 수업
2. 자아-통달에 대한 교훈
2. 자제에 대한 교훈
1955 143:2.1 The Master was a perfected specimen of human self-control. When he was reviled, he reviled not; when he suffered, he uttered no threats against his tormentors; when he was denounced by his enemies, he simply committed himself to the righteous judgment of the Father in heaven.
2000 143:2.1 주는 인간의 자제(自制)를 완전히 통달한 표본이었다. 욕설을 듣고서 욕하지 않았다. 고통받을 때, 괴롭히는 사람에게 위협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적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올바른 판결에 자신을 맡겼다.
2001 CM 143:2.1 주님은 인간의 자아-통제를 완성시킨 표본이었다. 그는 자신이 욕먹을 때에도 욕하지 않았으며;자신이 고통당할 때, 고통 주는 자에게 아무 위협도 하지 않았으며;적들이 고발하면,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정의로운 심판에 자신을 위탁했다.
2007 URKA 143:2.1 주(主)는 인간 자아-통제의 완전해진 표본이었다. 그가 욕을 들었을 때, 그는 욕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당했을 때 그를 고문하는 자에게 아무런 위협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적들에 의하여 비난받았을 때,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정의로운 심판에 자신을 맡겼다.
1955 143:2.2 At one of the evening conferences, Andrew asked Jesus: “Master, are we to practice self-denial as John taught us, or are we to strive for the self-control of your teaching? Wherein does your teaching differ from that of John?” Jesus answered: “John indeed taught you the way of righteousness in accordance with the light and laws of his fathers, and that was the religion of self-examination and self-denial. But I come with a new message of self-forgetfulness and self-control. I show to you the way of life as revealed to me by my Father in heaven.
2000 143:2.2 어느 날 저녁 회의에서, 안드레는 예수께 물었다: “주여,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처럼 우리가 금욕(禁慾)을 실천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당신이 가르치는 자제를 얻고자 애써야 하리이까? 당신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이 어떤 점에서 다르니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요한은 정말로 조상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서 올바른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고, 그 길은 자기 반성과 금욕의 종교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자기를 잊고 자제하라는 새 소식을 가지고 오노라. 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나에게 드러내신 생명의 길을 너희에게 보이노라.
2001 CM 143:2.2 어느 날 저녁 회담에서 안드레가 예수께 물었다:“주님, 요한이 가르친 것처럼 우리도 금욕을 실행해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가르침처럼 자아-통제를 행하려고 애써야 합니까? 당신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다릅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요한은 진실로 선조의 빛과 율법에 의거해서 의의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는데, 그것은 자아-반성과 금욕의 종교였다. 그러나 나는 자아-망각과 자아-통제라는 새 메시지를 갖고 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드러내신대로, 그 생명의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2007 URKA 143:2.2 어느 날 밤 회의에서 안드레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主)여, 요한이 가르친 것처럼 우리도 자아-부정을 실천해야 합니까? 아니면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자아-통제를 위해 분투해야 합니까? 당신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은 어떤 점에서 다른 것입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요한은 정말로 자기 선조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서 정의로움의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으며, 그것은 자아-검증과 자아-부정의 종교였다. 그러나 나는 자아-망각과 자아-통제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나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에 의해서 나에게 계시된 대로 너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2025 143:2.2 어느 날 저녁 회의에서, 안드레는 예수께 물었다: “주여,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처럼 우리가 금욕(禁慾)을 실천해야 하나이까, 아니면 당신이 가르치는 자제를 얻고자 애써야 하리이까? 당신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이 어떤 점에서 다르니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요한은 정말로 조상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서 올바른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고, 그 길은 자기 반성과 금욕의 종교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자기를 잊고 자제하라는 새 소식을 가지고 오노라. 나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나에게 드러내신 생명의 길을 너희에게 보이노라.
1955 143:2.3 “Verily, verily, I say to you, he who rules his own self is greater than he who captures a city. Self-mastery is the measure of man’s moral nature and the indicator of his spiritual development. In the old order you fasted and prayed; as the new creature of the rebirth of the spirit, you are taught to believe and rejoice. In the Father’s kingdom you are to become new creatures; old things are to pass away; behold I show you how all things are to become new. And by your love for one another you are to convince the world that you have passed from bondage to liberty, from death into life everlasting.
2000 143:2.3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아를 다스리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크니라. 자제는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재는 척도요, 영적 성장의 정도를 가리키는 지표이라. 옛 체제 밑에서 너희는 금식하고 기도하였느니라. 영에게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으로서 너희는 믿고 기뻐하라는 가르침을 받느니라.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옛 것은 사라져야 하느니라. 보라, 어떻게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것인가 내가 보이노라.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속박된 처지를 벗어나 해방된 신분을 얻고, 죽음을 벗어나 영생(永生)을 얻었다는 확신을 너희가 세상에 주어야 하느니라.
2001 CM 143:2.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성을 빼앗는 자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자가 더 크다. 자아-정복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의 척도이고, 그의 영적 발전의 지표{指標}다. 옛 규율에서는 너희가 금식하고 기도했지만;영으로 다시 태어난 너희는 새 피조물로서 믿고 크게 기뻐하라고 배운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가 새 피조물이 되고;옛것은 지나가니;보라, 모든 것이 어떻게 새롭게 되는지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리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죽음으로부터 영생{永生}으로 너희가 옮겨갔음을, 너희는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에 확신시키게 될 것이다.
2007 URKA 143:2.3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자신의 자아를 통치하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더욱 위대하다. 자아-통달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의 척도이며 그의 영적 발전의 지시계이다. 옛 명령 안에서 너희가 금식하고 기도하였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자의 새로운 창조체로서, 너희는 믿고 그리고 기쁨을 누리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버지의 왕국 안에서, 너희는 새로운 창조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옛 것은 지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바라보라, 만물이 어떻게 새롭게 되어가고 있는 지를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에 대한 너희의 사랑으로써, 너희는 속박으로부터 해방으로, 죽음으로부터 영속하는 생명으로 통과해 왔다는 것을 세상에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2025 143:2.3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자아를 다스리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크니라. 자제는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재는 척도요, 영적 성장의 정도를 가리키는 지표이라. 옛 체제 밑에서 너희는 금식하고 기도하였느니라. 영에게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으로서 너희는 믿고 기뻐하라는 가르침을 받느니라.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옛것은 사라져야 하느니라. 보라, 어떻게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것인가 내가 보이노라[5].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속박된 처지를 벗어나 해방된 신분을 얻고, 죽음을 벗어나 영생(永生)을 얻었다는 확신을 너희가 세상에 주어야 하느니라.
1955 143:2.4 “By the old way you seek to suppress, obey, and conform to the rules of living; by the new way you are first transformed by the Spirit of Truth and thereby strengthened in your inner soul by the constant spiritual renewing of your mind, and so are you endowed with the power of the certain and joyous performance of the gracious,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Forget not—it is your personal faith in the exceedingl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of God that ensures your becoming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Thus by your faith and the spirit’s transformation, you become in reality the temples of God, and his spirit actually dwells within you. If, then, the spirit dwells within you, you are no longer bondslaves of the flesh but free and liberated sons of the spirit. The new law of the spirit endows you with the liberty of self-mastery in place of the old law of the fear of self-bondage and the slavery of self-denial.
2000 143:2.4 “옛 길을 따르면 너희는 참고 복종하고 생활 규칙에 순응하기를 구하느니라. 새 길을 따르면 먼저 진리의 영이 너희를 변화시키고, 이렇게 함으로 네 정신을 항상 영적으로 새롭게 하여 네 마음 속 혼이 강하게 되며, 너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인자하고 적절하고 완전한 뜻을 확실히 기쁘게 행하는 힘을 부여받느니라. 잊지 말라―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값진 약속을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 네가 신다운 성품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을 보장하느니라. 이처럼 너희의 믿음으로, 영이 변화됨으로 너희는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며 그의 영이 사실로 네 안에 거하느니라. 그런즉 그 영이 네 안에 거하면, 너희는 이제 더 육체에 매인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아들이라. 자아를 구속하는 두려움과 금욕에 노예가 되는 옛 율법 대신에, 영의 새 율법은 자제로 생기는 해방을 너희에게 부여하느니라.
2001 CM 143:2.4 “옛 방법을 따르면, 너는 참고, 복종하고, 삶의 규정들에 순응하기를 추구하지만;새 방법을 따르면, 먼저 진리의 영이 너를 바꾸고, 이렇게 함으로 너의 정신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만들면서, 너의 안에 있는 혼을 강건하게 하며, 그리하여 우아하고 마음에 들고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고 기쁘게 실행하는 권능을 부여받게 된다. 잊지 말라--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에 대한 너의 개인 신앙이, 네가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보증한다. 그렇게 해서 너는, 너의 신앙으로 인해, 그리고 너의 영이 바뀜으로 인해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며, 그의 영이 실제로 네 안에 거하신다. 영이 너의 안에 거한다면, 너는 더 이상 육신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자녀다. 자아를-속박하는 두려움과 금욕의 노예가 되는 옛 율법 대신, 자아-정복으로 말미암는 해방을, 영의 새 율법이 너희에게 준다.
2007 URKA 143:2.4 “옛 길에 따라서, 너희는 삶의 법규들에 의해 억제되고, 그것에 복종하고, 그리고 순응하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 새 길에 따라서, 너희는 먼저 진리의 영에 의해 변환되고 그에 따라서 너희의 마음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함으로써 너희의 내적 혼이 강한 힘을 얻게 되며, 그렇게 너희는 인자하고 수락할 수 있고 그리고 완전한 하느님의 뜻을 확실하고 기쁘게 행할 수 있는 힘을 자질로서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신성한 본성의 공유자가 되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지극히 위대하고 값진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너희의 개인적 신앙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이처럼 너희의 신앙에 의해 그리고 영의 변환에 의해 너희는 실체 안에서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그의 영은 실재로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 영이 너희 안에 거한다면, 너는 더 이상 육신에 얽매인 노예가 아니고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아들들이다. 자아-속박의 두려움과 자아-부정의 노예가 되는 옛 율법 대신에, 영의 새로운 율법은 너희에게 자아-통달의 해방을 자질로서 부여하고 있다.
2025 143:2.4 “옛 길을 따르면 너희는 참고 복종하고 생활 규칙에 순응하기를 구하느니라. 새 길을 따르면 먼저 진실의 영이 너희를 변화시키고, 이렇게 함으로 네 정신을 항상 영적으로 새롭게 하여 네 마음 속 혼이 강하게 되며, 너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인자하고 적절하고 완전한 뜻을 확실히 기쁘게 행하는 힘을 부여받느니라. 잊지 말라 ―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값진 약속을 개인적으로 믿는 것이 네가 신다운 성품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을 보장하느니라. 이처럼 너희의 믿음으로, 영이 변화됨으로 너희는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며 그의 영이 사실로 네 안에 거하느니라. 그런즉 그 영이 네 안에 거하면, 너희는 이제 더 육체에 매인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아들이라[6]. 자아를 구속하는 두려움과 금욕에 노예가 되는 옛 율법 대신에, 영의 새 율법은 자제로 생기는 해방을 너희에게 부여하느니라.
1955 143:2.5 “Many times, when you have done evil, you have thought to charge up your acts to the influence of the evil one when in reality you have but been led astray by your own natural tendencies. Did not the Prophet Jeremiah long ago tell you that the human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and sometimes even desperately wicked? How easy for you to become self-deceived and thereby fall into foolish fears, divers lusts, enslaving pleasures, malice, envy, and even vengeful hatred!
2000 143:2.5 “너희가 나쁜 일을 했을 때, 여러 번, 너희 행위를 악한 자의 탓으로 돌리려고 생각했으나, 실제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라서 그릇된 길에 빠졌을 뿐이라. 오래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인간의 마음은 무엇보다도 속이는 성향이 있고, 때로는 지독하게 사악(邪惡)하기까지 하다고 너희에게 이르지 않더냐? 너희가 스스로 속고, 그리하여 어리석은 두려움, 약간의 탐욕, 비굴한 쾌락, 악의, 질투, 아니 복수하려는 증오심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 것이냐!
2001 CM 143:2.5 “너희가 악을 행했을 때, 너희 행동을 악한 세력의 영향 탓으로 돌리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실제로는 너희 자신의 선천적 경향으로 인해 길을 잃었을 뿐이다. 오래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너희에게,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보다 더 기만적이고 지독하게 사악하기까지 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스스로-속고, 그리하여 어리석은 두려움, 여러 가지 정욕, 쾌락에 사로잡힘, 악의, 시기, 그리고 심지어 복수심에 불타는 증오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2007 URKA 143:2.5 “너희가 악을 행했을 때, 실체에서 너희가 너희 자신의 자연본성적 성향들로 인하여 길에서 벗어나게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희의 행동들을 악한 존재의 영향으로 돌리려고 번번이 생각해 왔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오래전에 너희에게, 인간의 가슴은 무엇보다도 기만적이고 때로는 지독하게 사악하다고까지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얼마나 쉽게 자아-기만에 빠져들게 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됨으로써 얼마나 쉽게 어리석은 두려움, 갖가지 욕망, 노예로 만드는 즐거움, 악의, 질투, 그리고 심지어 복수하려는 증오에 이르기까지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1955 143:2.6 “Salvation is by the regeneration of the spirit and not by the self-righteous deeds of the flesh. You are justified by faith and fellowshipped by grace, not by fear and the self-denial of the flesh, albeit the Father’s children who have been born of the spirit are ever and always masters of the self and all that pertains to the desires of the flesh. When you know that you are saved by faith, you have real peace with God. And all who follow in the way of this heavenly peace are destined to be sanctified to the eternal service of the ever-advancing sons of the eternal God. Henceforth, it is not a duty but rather your exalted privilege to cleanse yourselves from all evils of mind and body while you seek for perfection in the love of God.
2000 143:2.6 “육체의 독선적 행위가 아니라 영이 재생함으로 구원을 얻느니라. 너희는 믿음으로 정당하게 되고, 두려움과 육체의 금욕이 아니라 은혜로 친교를 얻느니라. 하지만 영에게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늘, 언제나 자아, 그리고 육체의 욕구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인이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알 때, 너희는 하나님과 더불어 진정한 평화를 가지느니라. 이 하늘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영원한 하나님의 늘 진보하는 아들로서 영원히 봉사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예정되느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너희가 완전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정신과 육체에서 모든 악을 깨끗이 없애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특권이라.
2001 CM 143:2.6 “스스로-의로운 육신의 행위가 아니라, 영{靈}이 갱생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너희는 두려움과 육신의 금욕이 아니라, 신앙으로 정당화되고 은혜로 사귀게 되지만, 그럼에도 영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는, 늘 언제나 육신의 욕망에 속하는 모든 것과 자아를 다스리는 주인이다. 너희가 신앙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때, 하나님과 더불어 진정한 평화를 소유한다. 그리고 이 하늘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하신 하나님의 늘-진보하는 자녀로서, 영원히 봉사하는 일에 헌신하게 돼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너희가 완벽성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정신과 육체의 모든 악을 씻어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고귀한 특별혜택이다.
2007 URKA 143:2.6 “구원은 영에서의 다시-생겨남으로 인한 것이지, 육신에서의 자아-정의로운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 영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언제나 그리고 항상, 자아와 육신의 욕망에 대한 모든 것들의 주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육신에서의 두려움이나 자아-부정에 의해서가 아니고, 신앙에 의해서 정당화되며 은혜에 의해서 동료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신앙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하느님과 실제 평화를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하늘의 평화의 길로 따라오는 모든 이들은 영원한 하느님의 항상-전진하는 아들들의 영원한 봉사로 성스럽게 헌신되도록 운명되어있다. 이제부터 너희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완전함을 구하면서 모든 마음과 육체의 악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씻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너희의 드높아진 특권이다.
2025 143:2.6 “육체의 독선적 행위가 아니라 영이 재생함으로 구원을 얻느니라. 너희는 믿음으로 정당하게 되고, 두려움과 육체의 금욕이 아니라 은혜로 친교를 얻느니라. 하지만 영에게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늘, 언제나 자아, 그리고 육체의 욕구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인이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알 때, 너희는 하나님과 더불어 진정한 평화를 가지느니라. 이 하늘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따르는 자는 누구나 영원한 하나님의 늘 진보하는 아들로서 영원히 봉사하는 일에 헌신하도록 예정되느니라[8].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너희가 완전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정신과 육체에서 모든 악을 깨끗이 없애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특권이라.
1955 143:2.7 “Your sonship is grounded in faith, and you are to remain unmoved by fear. Your joy is born of trust in the divine word, and you shall not therefore be led to doubt the reality of the Father’s love and mercy. It is the very goodness of God that leads men into true and genuine repentance. Your secret of the mastery of self is bound up with your faith in the indwelling spirit, which ever works by love. Even this saving faith you have not of yourselves; it also is the gift of God. And if you are the children of this living faith, you are no longer the bondslaves of self but rather the triumphant masters of yourselves, the liberated sons of God.
2000 143:2.7 “너희의 아들 신분은 믿음에 바탕을 두며, 너희는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라. 너희의 기쁨은 신의 말씀을 신뢰함에서 생기며, 따라서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가 현실임을 의심할 유혹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바로 그 선이 사람들을 참되고 진정한 뉘우침으로 인도하느니라. 자아를 통달하는 비밀은 깃드는 영을 너희가 믿는 것과 밀접히 관계되고 그 영은 늘 사랑으로 일하느니라. 구원하는 이 믿음조차 너희는 저절로 가지지 않으니, 그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가 이 살아 있는 믿음의 자녀라면, 이제 더 자아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다스리는 승리한 주인이요, 하나님의 해방된 아들이라.
2001 CM 143:2.7 “너희의 아들신분은 신앙에 근거하나니, 너희는 두려움으로 흔들리지 않아야한다. 너희의 기쁨은 신의 말씀을 신뢰함에서 나오며, 그러므로 너희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의심하도록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참되고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자아를 정복하는 비결은 내주하는 영에 대한 너희의 신앙에 달려 있는데, 그 영은 언제나 사랑으로 일한다. 구원하는 이 신앙조차, 너희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며;이것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너희가 이 살아있는 신앙의 자녀라면, 너희는 더 이상 자아에 묶인-노예가 아니고, 오히려 너희 자신을 다스리는 승리한 주인이요, 하나님의 해방된 자녀다.
2007 URKA 143:2.7 “너희의 아들관계는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너희는 두려움으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너희의 기쁨은 신성한 말씀에 대한 신뢰에서 태어나며 따라서 너희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의심하도록 이끌려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참되고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선함이다. 자아의 통달에서의 너희의 비결은, 언제까지나 사랑으로 일하고 있는 내주하고 있는 영을 믿는, 너희 신앙과 결속되어 있다. 심지어 구원하는 이 신앙조차도 너희가 너희들 스스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역시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만약 너희가 이 살아있는 신앙의 자녀들이라면, 너희는 더 이상 자아의 얽매인 노예가 아니고, 오히려 너희 자신에서의 승리를 거둔 주인들, 하느님의 해방된 아들들이다.
2025 143:2.7 “너희의 아들 신분은 믿음에 바탕을 두며, 너희는 두려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라. 너희의 기쁨은 신의 말씀을 신뢰함에서 생기며, 따라서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가 현실임을 의심하는 유혹을 받지 말라. 하나님의 바로 그 선이 사람들을 참되고 진정한 뉘우침으로 인도하느니라. 자아를 통달하는 비밀은 깃드는 영을 너희가 믿는 것과 밀접히 관계되고 그 영은 늘 사랑으로 일하느니라. 구원하는 이 믿음조차 너희에게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 그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가 이 살아 있는 믿음의 자녀라면, 이제 더 자아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다스리는 승리한 주인이요, 하나님의 해방된 아들이라[9].
1955 143:2.8 “If, then, my children, you are born of the spirit, you are forever delivered from the self-conscious bondage of a life of self-denial and watchcare over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you are translated into the joyous kingdom of the spirit, whence you spontaneously show forth the fruits of the spirit in your daily lives; and the fruits of the spirit are the essence of the highest type of enjoyable and ennobling self-control, even the heights of terrestrial mortal attainment—true self-mastery.”
2000 143:2.8 “그러면 아이들아, 너희가 영에게서 태어났다면, 금욕하고 육체의 욕구를 경계하는 생활에 자의식하여 매인 처지에서 벗어나 너희는 언제까지나 구원받으며, 너희는 즐거운 영의 나라로 옮겨지느니라. 거기서부터 너희는 나날의 생활에서 영의 열매를 저절로 맺느니라. 영의 열매는 사람을 고상하게 만드는 즐거운 자제, 아니 땅에서 필사자가 도달하는―참된 자아 통달의―높이까지 이르는, 가장 높은 종류의 자제의 본질이라.”
2001 CM 143:2.8 “얘들아, 너희가 영으로 태어나면, 금욕하는 생활과 육신의 욕망을 경계하는 자아-의식적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구출되고, 즐거운 영의 나라로 옮겨지고, 너희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영의 열매를 맺게 되며;또한 영의 열매는, 즐길만하고 고상하게 하는 자아-통제 중에서 가장 높은 유형의 핵심, 심지어 이 세상에서 필사자가 도달하는 최고봉이다--곧 진정한 자아-정복이다.”
2007 URKA 143:2.8 “그렇다면, 나의 자녀들아, 만약 너희가 영으로 태어난다면, 너희는 자아-부정의 일생에서의 자아-의식적이 되는 속박으로부터 그리고 육신의 욕망을 염려로서 살피는 일로부터 영영토록 구원을 받으며, 그리고 너희는 기쁨 가득한 영의 왕국으로 옮겨지고 거기에서 너희는 일상생활 안에서 저절로 영의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영의 열매들은, 기쁨을 즐기고 고상하게 만드는 자아-통제의 가장 높은 유형의 본질이며, 심지어 이 세상의 필사자 달성의 높이에서─참된 자아-통달─의 본질이다.”
3. DIVERSION AND RELAXATION
3. 오락과 휴식
3. 기분전환과 휴양
3. 기분전환과 긴장-이완
3. 오락과 휴식
1955 143:3.1 About this time a state of great nervous and emotional tension developed among the apostles and their immediate disciple associates. They had hardly become accustomed to living and working together. They were experiencing increasing difficulties in maintaining harmonious relations with John’s disciples. The contact with the gentiles and the Samaritans was a great trial to these Jews. And besides all this, the recent utterances of Jesus had augmented their disturbed state of mind. Andrew was almost beside himself; he did not know what next to do, and so he went to the Master with his problems and perplexities. When Jesus had listened to the apostolic chief relate his troubles, he said: “Andrew, you cannot talk men out of their perplexities when they reach such a stage of involvement, and when so many persons with strong feelings are concerned. I cannot do what you ask of me—I will not participate in these personal social difficulties—but I will join you in the enjoyment of a three-day period of rest and relaxation. Go to your brethren and announce that all of you are to go with me up on Mount Sartaba, where I desire to rest for a day or two.
2000 143:3.1 이 무렵에 사도와 그 직계 제자인 동료들 사이에서 크게 신경이 곤두서고 감정이 날카로워진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함께 살고 일하는 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골칫거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는 것은 이 유대인들에게 큰 시련이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예수가 요즘에 하신 말씀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안드레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몰랐고, 그래서 문제와 복잡한 일을 가지고 주에게 갔다. 사도의 우두머리가 걱정거리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안드레야, 사람들이 그렇게 몰두한 단계에 이를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격한 감정을 가지고 관여할 때, 말로 그 곤경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느니라. 네 요청을 들어줄 수 없노라―나는 개인의 사회적 문제에 끼어 들지 아니하리라―그러나 사흘 동안 쉬고 긴장을 풀면서 너희와 함께 즐기리라. 너희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가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리라, 거기서 내가 하루나 이틀 동안 쉬기를 바라노라.
2001 CM 143:3.1 이 무렵에, 신경과민과 감정적 긴장 상태가, 사도들 및 그 직속 제자인 동역자들 가운데 발생했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면서 일하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을 체험했다. 이방인 및 사마리아인과 접촉하는 것이, 이 유대인들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 외에도, 최근의 예수의 발언이 그들의 어지러운 정신 상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안드레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으며;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자신의 문제와 난처한 일을 안고 주님을 찾아갔다. 사도들의 최고책임자가 자기 문제와 관련해 말하는 것을 들은 후에, 예수께서 말씀했다:“안드레야, 그들이 그런 분규에 그렇게 연루되고, 그토록 많은 사람의 느낌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때에는, 그들과 그 일을 논의할 수 없다. 나는 네가 요청한 일을 할 수 없지만--곧 이런 개인적인 사교상 분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지만--, 너희와 함께 3일간의 휴식과 긴장완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너의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올라가자고 전해라, 거기서 하루나 이틀 쉬기 원한다.
2007 URKA 143:3.1 이 무렵에, 신경과민과 감정적 긴장 상태가 사도들과 그들의 직속 연관-동료 제자들 사이에서 조성되었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며 일하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서 점점 어려움이 증가하는 것을 체험하고 있었다.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는 일은 이들 유대인들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 이외에도, 최근의 예수의 발언이 그들의 어지러운 마음 상태를 증강시켰었다. 안드레는 거의 자신의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자신의 문제들과 난처하게 얽혀있는 것들을 가지고 주(主)에게로 갔다. 예수는 사도들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걱정거리들과 관련하여 말하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안드레야, 너는 사람들이 그처럼 연루된 단계에 이르고 있울 때,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들의 난처한 얽힘에서 나오도록 말로 할 수가 없다. 나는 네가 청하는 것을 행할 수가 없다─나는 이러한 개인적 사회적인 어려움들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사흘 동안 휴식과 긴장-이완의 기쁨을 즐기는 데에 너희와 함께 하겠다. 네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사르타바 산에서 하루나 이틀 동안 휴식하기를 열망하니, 모두 나와 함께 그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전해라.
2025 143:3.1 이 무렵에 사도와 그 직계 제자인 동료들 사이에서 크게 신경이 곤두서고 감정이 날카로워진 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함께 살고 일하는 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골칫거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는 것은 이 유대인들에게 큰 시련이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예수가 요즘에 하신 말씀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안드레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몰랐고, 그래서 문제와 복잡한 일을 가지고 주에게 갔다. 사도의 우두머리가 걱정거리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안드레야, 사람들이 그렇게 몰두한 단계에 이를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격한 감정을 가지고 관여할 때, 말로 그 곤경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느니라. 네 요청을 들어줄 수 없노라 ― 나는 개인의 사회적 문제에 끼어 들지 아니하리라 ― 그러나 사흘 동안 쉬고 긴장을 풀면서 너희와 함께 즐기리라. 너희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가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리라, 거기서 내가 하루나 이틀 동안 쉬기를 바라노라.
1955 143:3.2 “Now you should go to each of your eleven brethren and talk with him privately, saying: ‘The Master desires that we go apart with him for a season to rest and relax. Since we all have recently experienced much vexation of spirit and stress of mind, I suggest that no mention be made of our trials and troubles while on this holiday. Can I depend upon you to co-operate with me in this matter?’ In this way privately and personally approach each of your brethren.” And Andrew did as the Master had instructed him.
2000 143:3.2 “이제 열한 형제 각자에게 가서, 남이 보지 않는 데서 이렇게 말해야 하느니라: ‘주가 한동안 쉬고 긴장을 풀려고, 우리만 그와 함께 가기를 바라시느니라. 우리 모두가 요즈음 정신이 많이 시달리고 긴장하였으니, 이 휴일 동안에 우리가 겪은 시련과 곤경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내가 제안하노라. 이 문제에 네가 협조할 것을 내가 기대할 수 있느냐?’ 이 방법으로 형제 각자에게 사사롭게 친히 접근하여라.” 그리고 안드레는 지시받은 대로 하였다.
2001 CM 143:3.2 “지금 가서 열한 형제 각자에게 사적{私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라:‘주님이 쉬면서 휴식을 취하려고, 우리와 함께 잠시 떠나 있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가 최근에 심령을 많이 괴롭히고 정신의 압박감을 체험했으므로, 이 휴가 동안에는, 우리 시련과 걱정거리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이 문제에 네가 협조할 것을 기대해도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너의 형제들 각자에게 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접근하라.” 안드레는 주님이 지시한대로 했다.
2007 URKA 143:3.2 “이제 가서 너의 11명의 형제들 각각에게 가서 사적으로 만나 이렇게 말하라: ‘주(主)가 휴식과 긴장을 풀기 위하여 한동안 우리와 같이 따로 떠나 있기를 열망한다. 우리 모두가 최근에 많은 영적 시달림과 마음의 긴장을 체험하였으므로, 나는 아무도 이 휴일 동안에는 우리의 시련과 곤경들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너의 협조를, 내가 기대해도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네 형제들 각각에게 다가가라.” 안드레는 주(主)가 지시한 대로 행하였다.
2025 143:3.2 “이제 열한 형제 각자에게 가서, 남이 안 보는 데서 이렇게 말해야 하느니라: ‘주가 한동안 쉬고 긴장을 풀려고, 우리만 그와 함께 가기를 바라시느니라. 우리 모두가 요즈음 정신이 많이 시달리고 긴장하였으니, 이 휴일 동안에 우리가 겪은 시련과 곤경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내가 제안하노라. 이 문제에 네가 협조할 것을 내가 기대할 수 있느냐?’ 이 방법으로 형제 각자에게 사사롭게 친히 접근하여라.” 그리고 안드레는 지시받은 대로 하였다.
1955 143:3.3 This was a marvelous occasion in the experience of each of them; they never forgot the day going up the mountain. Throughout the entire trip hardly a word was said about their troubles. Upon reaching the top of the mountain, Jesus seated them about him while he said: “My brethren, you must all learn the value of rest and the efficacy of relaxation. You must realize that the best method of solving some entangled problems is to forsake them for a time. Then when you go back fresh from your rest or worship, you are able to attack your troubles with a clearer head and a steadier hand, not to mention a more resolute heart. Again, many times your problem is found to have shrunk in size and proportions while you have been resting your mind and body.”
2000 143:3.3 이것은 각자의 체험 중에서 놀라운 기회였고 그들은 산에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 여행 동안 내내, 그들의 골칫거리에 대하여 거의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 다다르자 예수는 둘레에 그들을 앉히면서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모두 휴식의 가치와 긴장 풀기의 효능을 배워야 하느니라. 어떤 뒤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한동안 버려두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나서 너희가 휴식이나 예배를 마치고 새롭게 돌아갈 때, 더욱 굳은 각오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맑은 정신과 더 믿음직한 손으로 너희 문제와 씨름할 수 있느니라. 게다가 머리와 육체가 쉬는 동안, 문제의 크기와 비중이 줄어든 것을 여러 번 발견하느니라.”
2001 CM 143:3.3 이는 그들 각자의 체험에서 경이로운 기회였으며;산에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못했다. 전체 여행 기간에, 그들의 걱정거리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었다. 산 정상에 오르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기 주위에 앉히고 말씀했다:“형제들아, 휴식의 소중함과 긴장완화의 효능에 대해 너희 모두 알아야한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 방법은, 그것을 잠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휴식이나 경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신선한 상태로 돌아가면, 너희는 더 단호한 마음은 물론이고, 더 분명해진 머리와 안정된 손으로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너희가 심신{心身}을 쉬게 하는 동안에 그 문제의 크기와 비중이 줄어든 것을 거듭해서 발견할 것이다.”
2007 URKA 143:3.3 이것은 그들 각자의 체험에 있어서 놀라운 경우가 되었다; 그들은 산으로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전체 여행 기간 동안 그들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산 정상에 다다르자, 예수는 그들을 자신의 주위에 앉히고 말하였다: “내 형제들아, 너희 모두는 휴식의 가치와 긴장-이완의 효능에 대해 배워야만 한다. 너희는 어떤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해결 방법은 잠시 동안 그것들을 내버려두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고 나서, 너희가 휴식이나 경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새롭게 돌아가면, 너희는 더욱 단호해진 가슴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맑은 머리와 더욱 안정된 손길로 너희의 문제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너희가 너희의 마음과 몸을 쉬게 하는 동안에 너희의 문제가 크기와 비율에서 줄어들었다는 것을 여러 번 발견하게 된다.”
2025 143:3.3 이것은 각자의 체험 중에서 놀라운 기회였고 그들은 산에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 여행 동안 내내, 그들의 골칫거리에 대하여 거의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 다다르자 예수는 둘레에 그들을 앉히면서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모두 휴식의 가치와 긴장 풀기의 효능을 배워야 하느니라. 어떤 뒤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한동안 버려두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느니라. 다음에 너희가 휴식이나 예배를 마치고 새롭게 돌아갈 때, 더욱 굳은 각오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맑은 정신과 더 믿음직한 손으로 너희 문제와 씨름할 수 있느니라. 게다가 머리와 육체가 쉬는 동안, 문제의 크기와 비중이 줄어든 것을 여러 번 발견하느니라.”
1955 143:3.4 The next day Jesus assigned to each of the twelve a topic for discussion. The whole day was devoted to reminiscences and to talking over matters not related to their religious work. They were momentarily shocked when Jesus even neglected to give thanks—verbally—when he broke bread for their noontide lunch. This was the first time they had ever observed him to neglect such formalities.
2000 143:3.4 이튿날 예수는 열두 사도 각자에게 토론할 주제를 나누어 주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그들의 종교적 일과 관계 없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그날 전부를 썼다. 한낮의 점심으로 빵을 먹을 때, 예수가 감사를―입으로―드리는 것조차 소홀히 했을 때, 그들은 한 순간 충격을 받았다. 이때에 주가 그런 형식을 소홀히 함을 처음 보았다.
2001 CM 143:3.4 예수께서는 이튿날 열두 사도 각자에게 토의할 제목을 나눠줬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 그들의 종교 업무와 관계되지 않는 문제를 토의하면서 그날을 보냈다. 예수께서 정오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소리 내어-- 감사드리는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그런 형식을 무시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봤다.
2007 URKA 143:3.4 다음 날 예수는 열두 사도들 각자에게 토론할 주제를 하나씩 배정했다. 그날은 지난날들을 회상하고 또한 그들의 종교적 일과 무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대화하면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그들은 한낮에 예수가 그들의 점심으로 빵을 쪼개면서 감사의 기도─입 밖으로 소리 내는 것─까지도 소홀히 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일찍이 그가 그러한 격식들을 소홀히 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5 143:3.4 이튿날 예수는 열두 사도 각자에게 토론할 주제를 나누어 주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그들의 종교적 일과 관계 없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그날 전부를 썼다. 한낮의 점심으로 빵을 먹을 때, 예수가 감사를 ― 입으로 ― 드리는 것조차 소홀히 했을 때, 그들은 한 순간 충격을 받았다. 이때에 주가 그런 형식을 소홀히 함을 처음 보았다.
1955 143:3.5 When they went up the mountain, Andrew’s head was full of problems. John was inordinately perplexed in his heart. James was grievously troubled in his soul. Matthew was hard pressed for funds inasmuch as they had been sojourning among the gentiles. Peter was overwrought and had recently been more temperamental than usual. Judas was suffering from a periodic attack of sensitiveness and selfishness. Simon was unusually upset in his efforts to reconcile his patriotism with the love of the brotherhood of man. Philip was more and more nonplused by the way things were going. Nathaniel had been less humorous since they had come in contact with the gentile populations, and Thomas was in the midst of a severe season of depression. Only the twins were normal and unperturbed. All of them were exceedingly perplexed about how to get along peaceably with John’s disciples.
2000 143:3.5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꽉 차 있었다. 요한은 마음 속에서 지나치게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야고보의 혼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방인들 사이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는 기금이 모자라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베드로는 과로했고 최근에는 여느 때보다 변덕이 심했다. 유다는 때때로 찾아오는 과민과 이기심에 시달렸다. 시몬은 애국심과 형제 사랑을 절충하려는 노력으로 특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빌립은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 갈수록 어리둥절하였다. 이방(異邦) 인구와 접촉한 뒤로 나다니엘은 유머가 줄어들었고 토마스는 심한 우울증에 깊이 빠져 있었다. 오직 쌍둥이가 정상이었고 흔들리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2001 CM 143:3.5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한은 마음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야고보의 혼은 비통하게 어수선했다. 이방인 가운데 머물고 있었으므로, 마태는 기금이 모자라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베드로는 과로했고, 최근에는 신경과민이 보통 때보다 심했다. 유다는 주기적 신경과민과 이기심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시몬은 자신의 애국심과, 사람을 형제관계로 사랑하는 것을 절충하려고 애쓰면서, 보통 이상으로 혼란스러워했다. 빌립은 일이 진행돼나가는 방식에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다니엘은 이방인들과 접촉하게 된 이래 유머가 줄었고, 도마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쌍둥이 형제만이 정상이었고 평온했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떻게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지, 그들 모두 몹시 난처했다.
2007 URKA 143:3.5 그들이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요한은 그의 가슴속에서 극도로 난처하게 얽혀 있었다. 야고보는 그의 혼에서 비통하게 문제를 겪고 있었다. 마태는 그들이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머물러 왔었으므로, 기금에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베드로는 과로했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통 때보다 더 심하게 과격하게 되었었다. 유다는 주기적인 신경과민과 이기심의 공격으로부터 고통받고 있었다. 시몬은 자신의 애국심을 사람의 형제신분의 사랑으로 절충시키려는 자신의 노력으로 보기 드물게 심란해 있었다. 빌립은 일이 진행되어 나가는 형편 때문에 갈수록 더 진퇴양난이 되었다. 나다니엘은 사도들이 이방인들과 접촉하게 된 이래로 유머가 줄어들었으며, 도마는 심한 우울증을 한창 겪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 쌍둥이 형제만이 정상적이었고 뒤흔들리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어떻게 요한의 제자들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난처해하고 있었다.
2025 143:3.5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꽉 차 있었다. 요한은 마음 속에서 지나치게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야고보의 혼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방인들 사이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는 기금이 모자라서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베드로는 과로했고 최근에는 여느 때보다 변덕이 심했다. 유다는 때때로 찾아오는 과민과 이기심에 시달렸다. 시몬은 애국심과 형제 사랑을 절충하려는 노력으로 특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빌립은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 갈수록 어리둥절하였다. 이방(異邦) 인구와 접촉한 뒤로 나다니엘은 유머가 줄어들었고 토마스는 심한 우울증에 깊이 빠져 있었다. 오직 쌍둥이가 정상이었고 흔들리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 것인가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1955 143:3.6 The third day when they started down the mountain and back to their camp, a great change had come over them. They had made the important discovery that many human perplexities are in reality nonexistent, that many pressing troubles are the creations of exaggerated fear and the offspring of augmented apprehension. They had learned that all such perplexities are best handled by being forsaken; by going off they had left such problems to solve themselves.
2000 143:3.6 사흘째에 산 밑에 있는 야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숱한 골칫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급박한 문제들은 과장된 두려움의 산물이요 불안이 확대되어 생겨난 것이라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러한 모든 골칫거리는 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훌쩍 떠남으로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도록 버려두었다.
2001 CM 143:3.6 셋째 날에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적인 많은 난처한 일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많은 힘든 걱정거리가 과장된 두려움의 결과이고, 우려가 확대돼서 생겨난 결과라는 중대한 발견을 했다. 그런 모든 난처한 일은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배웠으며;그런 문제들에서 떠나감으로써 그것들이 저절로 해결되도록 내버려뒀다.
2007 URKA 143:3.6 셋째 날에 그들이 산을 내려와 그들의 야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커다란 큰 변화가 그들 전체에게 일어났다. 그들은, 많은 인간의 난처한 얽힘은 실체로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 압박을 주는 많은 문제들이 과장된 두려움의 창조물이고 증강된 걱정의 자손이라는 것이라는 중요한 발견을 해냈다. 그들은 모든 그러한 분규들은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으며; 그것들에서 떠나감으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도록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2025 143:3.6 사흘째에 산 밑에 있는 야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숱한 골칫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급박한 문제들은 과장된 두려움의 산물이요 불안이 확대되어 생겨난 것이라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러한 모든 골칫거리는 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훌쩍 떠남으로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도록 버려두었다.
1955 143:3.7 Their return from this holiday marked the beginning of a period of greatly improved relations with the followers of John. Many of the twelve really gave way to mirth when they noted the changed state of everybody’s mind and observed the freedom from nervous irritability which had come to them as a result of their three days’ vacation from the routine duties of life. There is always danger that monotony of human contact will greatly multiply perplexities and magnify difficulties.
2000 143:3.7 이 휴일이 끝나고 돌아온 것은 요한의 추종자들과 사이가 크게 개선된 기간이 시작되었음을 가리켰다. 생활의 일상적 임무에서 떠나 사흘 동안 휴가를 보낸 결과로, 그들이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달라진 것을 눈치채고 신경 과민에서 해방된 것을 바라보았을 때 열두 사도 중 다수가 정말로 기뻐하였다. 인간의 접촉이 단조로우면 골칫거리가 크게 불어나고 문제가 확대할 위험이 언제나 있다.
2001 CM 143:3.7 이 휴가에서 돌아온 것이, 그들과 요한의 추종자들 사이의 관계를 많이 개선시키는 계기가 됐다. 일상생활의 의무에서 떠나 3일간 희락에 잠긴 결과로, 열두 사도 가운데 다수는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바뀐 것을 봤고, 신경과민에서 해방됐음을 알게 되자 진정으로 기뻐했다. 인간의 접촉이 단조로울 때, 분규를 크게 부풀리고 어려움을 확대시키는 위험이 항상 있다.
2007 URKA 143:3.7 그들이 이 휴일로부터 돌아온 것은 요한의 추종자들과 크게 관계가 개선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냈다. 열두 명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의무에서 떠나 사흘 동안 휴가를 가진 결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바뀐 것을 보았고, 그들에게 생겼던 신경과민에서의 자유로움을 목격함으로써, 실제로 명랑하게 되었다. 인간의 접촉에서의 단조로움은 난처한 얽힘을 크게 배가시키고, 어려움들을 방대하게 만드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2025 143:3.7 이 휴일이 끝나고 돌아온 것은 요한의 추종자들과 사이가 크게 개선된 기간이 시작되었음을 가리켰다. 생활의 일상적 임무에서 떠나 사흘 동안 휴가를 보낸 결과로, 그들이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달라진 것을 눈치채고 신경 과민에서 해방된 것을 바라보았을 때 열두 사도 중 다수가 정말로 기뻐했다. 인간의 접촉이 단조로우면 골칫거리가 크게 불어나고 언제나 문제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
1955 143:3.8 Not many of the gentiles in the two Greek cities of Archelais and Phasaelis believed in the gospel, but the twelve apostles gained a valuable experience in this their first extensive work with exclusively gentile populations. On a Monday morning, about the middle of the month, Jesus said to Andrew: “We go into Samaria.” And they set out at once for the city of Sychar, near Jacob’s well.
2000 143:3.8 두 그리스 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많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었지만, 처음으로 열두 사도는 순전한 이방 인구와 이번에 널리 일하면서 값진 체험을 얻었다. 그 달 중순쯤,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는 안드레에게 말했다: “사마리아로 들어가자.” 그들은 야곱의 우물 가까이 시카 시(市)를 향하여 당장에 길을 떠났다.
2001 CM 143:3.8 아켈라이와 파새리라는 두 그리스 도시에서는 별로 많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게 됐으나, 열두 사도는 순전히 이방인만 상대로 해서는 처음 일하면서 귀중한 체험을 했다. 그 달 중순경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씀했다:“사마리아로 들어가자.” 그래서 그들은 야곱의 우물 근처에 수가라는 성읍을 향해 즉시 떠났다.
2007 URKA 143:3.8 두 그리스 도시인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는 많지 않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었지만, 열두 사도들은 이방 인구들에게 독점적으로 전개한 그들의 이번 첫 번째 일에서 가치 있는 체험을 얻었다. 그 달 중순경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가 안드레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사마리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야곱의 우물 가까이에 있는 시카라는 도시를 향해 즉시 떠났다.
4. THE JEWS AND THE SAMARITANS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1955 143:4.1 For more than six hundred years the Jews of Judea, and later on those of Galilee also, had been at enmity with the Samaritans. This ill feeling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came about in this way: About seven hundred years B.C., Sargon, king of Assyria, in subduing a revolt in central Palestine, carried away and into captivity over twenty-five thousand Jews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and installed in their place an almost equal number of the descendants of the Cuthites, Sepharvites, and the Hamathites. Later on, Ashurbanipal sent still other colonies to dwell in Samaria.
2000 143:4.1 6백 년이 넘도록 유대 지방의 유대인,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도 사마리아인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이 반감은 이런 식으로 생겼다: 기원전 7백 년 무렵에, 아씨리아의 임금 사르곤은 팔레스타인 중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유대인을 2만 5천 명이 넘게 포로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의 같은 수의 큣ㆍ세파르브ㆍ하마트 족속의 후손들을 정착하게 하였다. 나중에 아슈바니팔은 또 다른 여러 이민단을 사마리아에 거주하라고 보냈다.
2001 CM 143:4.1 600년이 넘도록, 유대지방의 유대인이,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 역시, 사마리아인과 반목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이 악감정은 이렇게 연유됐다:기원전 700년경에, 앗수르 왕 사르곤이 팔레스틴 중부{中部}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2만 5천 이상의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가는 대신, 거의 비슷한 숫자의 큐타이트, 세파바이트, 및 하마타이트 후손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더 나아가 그 뒤에는, 아쉬르바니팔이 다른 거류민을 보내서 사마리아에 살게 했다.
2007 URKA 143:4.1 무려 600년이 넘도록 유대 지방의 유대인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들도 역시 사마리아인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나쁜 느낌은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되었다: 기원전 700년경에 아시리아의 왕인 사르곤이 중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25,000명 이상의 유대인을 포로로 붙잡아가고, 그들의 자리를 거의 비슷한 숫자의 큐타이트인, 세파르브인, 하마타이트인의 후손들을 정착시켰다. 나중에, 아쉬바니팔이 또 다른 정복지 거류민들을 사마리아에 거주하라고 보냈다.
2025 143:4.1 6백 년이 넘도록 유대 지방의 유대인,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도 사마리아인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이 반감은 이런 식으로 생겼다: 기원전 7백 년 무렵에, 아씨리아의 임금 사르곤은 팔레스타인 중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유대인을 2만 5천 명이 넘게 포로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의 같은 수의 큣ㆍ세파르브ㆍ하마트 족속의 후손들을 정착하게 하였다. 나중에 아슈바니팔은 또 다른 여러 이민단을 사마리아에 거주하라고 보냈다.
1955 143:4.2 The religious enmity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dated from the return of the former from the Babylonian captivity, when the Samaritans worked to prevent the rebuilding of Jerusalem. Later they offended the Jews by extending friendly assistance to the armies of Alexander. In return for their friendship Alexander gave the Samaritans permission to build a temple on Mount Gerizim, where they worshiped Yahweh and their tribal gods and offered sacrifices much after the order of the temple services at Jerusalem. At least they continued this worship up to the time of the Maccabees, when John Hyrcanus destroyed their temple on Mount Gerizim. The Apostle Philip, in his labors for the Samaritans after the death of Jesus, held many meetings on the site of this old Samaritan temple.
2000 143:4.2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종교적 불화는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이 돌아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방해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나중에 알렉산더의 군대를 친절히 도와줌으로 유대인들의 기분을 건드렸다. 이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야웨 및 부족 신들을 섬기고,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 체제를 비슷하게 좇아서 희생물을 바쳤다. 적어도 마카비의 시절까지 이 예배를 계속했고, 그때 요한 히르카누스는 게리짐 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했다. 예수가 돌아가신 뒤에, 사마리아인들을 위하여 수고하면서, 사도 빌립은 이 옛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많은 모임을 가졌다.
2001 CM 143:4.2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종교적 적개심은, 유대인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날부터 시작됐는데, 그때 사마리아인은 예루살렘이 재건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나중에 그들은, 알렉산더의 군대를 호의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유대인을 화나게 했다. 알렉산더는 그들의 우호에 보답하려고 사마리아인에게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는데, 거기서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많은 부분을 본떠서, 야훼와 자기 부족 신들에게 경배 드렸고 희생제물을 바쳤다. 적어도 마카비 시대까지 이 경배를 계속했는데, 요한 힐카누스가 그리심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사도 빌립은 사마리아인을 위하여 일하면서 이 옛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모임을 많이 가졌다.
2007 URKA 143:4.2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의 종교적 적대관계는,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인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축을 방해하려고 일을 벌였던 때이다. 나중에 그들은 알렉산더의 군대에 우호적으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유대인들을 화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관계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에게 게리짐 산에 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성전 봉사 순서를 아주 비슷하게 좇아서 야훼와 그들 종족의 하느님들에 경배하고 희생제물을 바쳤다. 적어도 그들은, 요한 히르카누스가 게리짐 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하였던, 마카비 시대까지도 이런 경배를 계속하였다. 사도 빌립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사마리아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이 옛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많은 모임들을 열었다.
2025 143:4.2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종교적 불화는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이 돌아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방해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나중에 알렉산더의 군대를 친절히 도와줌으로 유대인들의 기분을 건드렸다. 이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야웨 및 부족 신들을 섬기고,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 체제를 비슷하게 좇아서 희생물을 바쳤다. 적어도 마카비의 시절까지 이 예배를 계속했고, 그때 요한 히르카누스는 게리짐 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했다. 예수가 돌아가신 뒤에, 사마리아인들을 위하여 수고하면서, 사도 빌립은 이 옛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많은 모임을 가졌다.
1955 143:4.3 The antagonisms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were time-honored and historic; increasingly since the days of Alexander they had had no dealings with each other. The twelve apostles were not averse to preaching in the Greek and other gentile cities of the Decapolis and Syria, but it was a severe test of their loyalty to the Master when he said, “Let us go into Samaria.” But in the year and more they had been with Jesus, they had developed a form of personal loyalty which transcended even their faith in his teachings and their prejudices against the Samaritans.
2000 143:4.3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불화는 전통이 오래고 역사(歷史)가 깊다.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그들은 갈수록 더 서로 상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는 데카폴리스 지방과 시리아에 있는 그리스 및 기타 이방인 도시들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리아로 들어가자”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것은 주에게 바치는 충성심을 재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러나 한 해 남짓 예수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길렀고 이것은 그의 가르침을 믿는 신앙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도 뛰어넘었다.
2001 CM 143:4.3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적대감정은 유서-깊고 역사적이었으며;그들은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서로를 점점 더 상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는, 그리스 또는 다른 이방 도시인 데가볼리나 시리아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으나, 주님이 “사마리아로 가자”고 말씀했을 때, 그것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엄중히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 넘게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키웠는데, 이것은 그의 교훈을 믿는 신앙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까지도 뛰어넘었다.
2007 URKA 143:4.3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관계는 전통이-깊고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것이었다; 알렉산더 시대 이후로 그들은 갈수록 점점 더 서로 상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들은 그리스계 지방이나 또는 데카폴리스나 시리아의 다른 이방인 도시들에서 설교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나, 주(主)가 “사마리아로 들어가자”라고 말하였을 때, 그것은 주(主)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재는 가혹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와 함께 했던 일 년 남짓한 동안에, 그들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자기들의 신앙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까지도 초월하는, 그러한 개인적 충성심의 한 형태를 이미 발전시켜 왔었다.
2025 143:4.3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불화는 전통이 오래고 역사(歷史)가 깊다.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그들은 갈수록 더 서로 상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는 데카폴리스 지방과 시리아에 있는 그리스 및 기타 여러 이방인 도시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리아로 들어가자”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것은 주에게 바치는 충성심을 재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러나 한 해 남짓 예수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길렀고 이것은 그의 가르침을 믿는 신앙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도 뛰어넘었다.
5. THE WOMAN OF SYCHAR
5. 시카의 여인
5. 수가의 여자
5. 시카의 여인
5. 시카의 여인
1955 143:5.1 When the Master and the twelve arrived at Jacob’s well, Jesus, being weary from the journey, tarried by the well while Philip took the apostles with him to assist in bringing food and tents from Sychar, for they were disposed to stay in this vicinity for a while. Peter and the Zebedee sons would have remained with Jesus, but he requested that they go with their brethren, saying: “Have no fear for me; these Samaritans will be friendly; only our brethren, the Jews, seek to harm us.” And it was almost six o’clock on this summer’s evening when Jesus sat down by the well to await the return of the apostles.
2000 143:5.1 주와 열두 사도가 야곱의 우물에 다다랐을 때, 여행에 지쳤기 때문에 예수는 우물가에서 기다렸다. 그동안에 빌립은 시카에서 먹을 것과 텐트 가져오는 것을 도우려고 사도들을 데리고 갔는데, 사도들이 한동안 이 근처에서 머무를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을 터이지만, 예수는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이들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조금도 내 걱정을 하지 말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라. 오직 우리의 형제, 유대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하느니라.” 예수가 우물가에서 앉아서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때는 이 여름 날 저녁, 거의 6시가 되었다.
2001 CM 143:5.1 주님과 열두 사도가 야곱의 우물에 도착했을 때, 음식물과 천막을 수가에서 가져오는 일에 도움을 받으려고 빌립이 다른 사도들을 데리고 떠나있는 동안, 여행으로 지친 예수께서는 우물가에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이 근처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이 예수와 함께 남아있으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가도록 권했다:“나를 걱정하지 말아라;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며, 우리 형제 유대인만이 우리를 해치려고 꾀한다.” 예수께서 우물가에 앉아서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때는, 이 여름철 저녁 거의 여섯 시쯤이었다.
2007 URKA 143:5.1 주(主)와 열두 사도들이 야곱의 우물가에 도달했을 때, 예수는 여행에 지쳐서, 그 우물가에 머물렀고, 한편 빌립은 시카에서 음식과 천막을 가져오는 데에 그를 돕기 위해 사도들을 데리고 갔는데, 이는 그들이 이 근처에서 한동안 머물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이 예수와 함께 남아 있으려고 하였지만, 그는 그들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가도록 요청하며 말했다: “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이들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다; 오직 우리 형제인 유대인들만이 우리를 해치려고 찾아 나선다.” 그리고 예수가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물가에 앉아 있었던 때는, 이 여름날 저녁 거의 6시경이었다.
2025 143:5.1 주와 열두 사도가 야곱의 우물에 다다랐을 때, 여행에 지쳤기 때문에 예수는 우물가에서 기다렸다[12][13]. 그동안에 빌립은 시카에서 먹을 것과 텐트 가져오는 것을 도우려고 사도들을 데리고 갔는데, 사도들이 한동안 이 근처에서 머무를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을 터이지만, 예수는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이들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조금도 내 걱정을 하지 말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라. 오직 우리의 형제, 유대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하느니라.” 예수가 우물가에서 앉아서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때는 이 여름 날 저녁, 거의 6시가 되었다.
1955 143:5.2 The water of Jacob’s well was less mineral than that from the wells of Sychar and was therefore much valued for drinking purposes. Jesus was thirsty, but there was no way of getting water from the well. When, therefore, a woman of Sychar came up with her water pitcher and prepared to draw from the well, Jesus said to her, “Give me a drink.” This woman of Samaria knew Jesus was a Jew by his appearance and dress, and she surmised that he was a Galilean Jew from his accent. Her name was Nalda and she was a comely creature. She was much surprised to have a Jewish man thus speak to her at the well and ask for water, for it was not deemed proper in those days for a self-respecting man to speak to a woman in public, much less for a Jew to converse with a Samaritan. Therefore Nalda asked Jesus, “How is it that you, being a Jew, ask for a drink of me, a Samaritan woman?” Jesus answered: “I have indeed asked you for a drink, but if you could only understand, you would ask me for a draught of the living water.” Then said Nalda: “But, Sir, you have nothing to draw with, and the well is deep; whence, then, have you this living water? Are you greater than our father Jacob who gave us this well, and who drank thereof himself and his sons and his cattle also?”
2000 143:5.2 야곱의 우물 물은 시카의 우물에서 나오는 물보다 광물(鑛物)이 적었고, 따라서 마시는 물로 훨씬 높게 쳤다. 예수는 목이 말랐지만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시카의 어느 여인이 물그릇을 가지고 와서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내게 물을 다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모습과 옷차림으로 예수가 유대인인 줄 알았고 말씨로 보아 갈릴리 유대인이라 짐작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날다였고 잘 생긴 인물이었다. 유대인 남자가 이렇게 우물가에서 말을 걸고 물을 달라 하여 많이 놀랐다. 자존심 있는 남자가 버젓이 여자에게 말 거는 것, 더군다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그 시절에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다는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시니 어인 일이니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내가 정말로 너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였으나, 네가 알 수만 있다면 생명의 물 한 모금을 달라 내게 청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주여,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그릇이 없고 우물은 깊사오이다. 그러니 어디에서 이 생명(生命)의 물을 얻으시나이까?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시나이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기와 아들들과 가축도 그 물을 마셨나이다.”
2001 CM 143:5.2 야곱의 우물은 수가의 우물들보다 광물질이 적었으므로, 식수로 매우 소중히 여겨졌다. 예수께서는 목이 말랐으나, 우물에서 물을 뜰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수가의 한 여자가 물동이와 함께 물을 길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왔을 때,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의 모습과 복장을 보고 그가 유대인임을 알았으며, 그의 억양에서 갈릴리 유대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여자의 이름은 날다였고, 미모의 여자였다. 이 여자는 유대인 남자가 우물가에서 그렇게 자기에게 말하면서 물을 청하는 것에 대단히 놀랐는데, 당시에 자존감-있는 남자가 공개적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일은 온당히 여겨지지 않았고,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더욱 그랬다. 따라서 날다가 예수께 물었다:“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내가 너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이 사실이지만, 네가 이해할 수만 있었다면, 너는 나에게 생수{生水} 한 모금을 구했을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그러나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으시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줬고,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가축도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합니까?”
2007 URKA 143:5.2 야곱의 우물은 시카의 우물들보다 광물질이 적었으므로 마시는 목적으로는 많은 가치가 있었다. 예수는 목이 말랐으나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따라서 시카의 한 여인이 그녀의 물그릇을 가지고 와서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 이 사마리아의 여인은 그의 모습과 복장을 보고 예수가 유대인임을 알았으며 그의 억양에서 그가 갈릴리 유대인이라고 짐작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날다였고, 그녀는 잘 생긴 인물이었다. 그녀는 유대인 남자가 이렇게 우물 가에서 자기에게 말을 하며 물을 달라고 하는 것에 많이 놀랐는데, 이는 그 당시에는 자아-존중하는 남자가 공공연히 여인에게 말을 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더구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다는 예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청하니 어쩐 일입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내가 정말로 너에게 마실 물을 청했지만, 그러나 만일 네가 오직 납득할 수만 있다면, 너는 나에게 살아있는 물의 한 모금을 청하려 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긷는 아무것도 없고, 우물은 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 이 살아있는 물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신과 자기 아들들과 그의 가축마저 다 마시게 하였던, 우리의 조상 야곱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십니까?”
2025 143:5.2 야곱의 우물 물은 시카의 우물에서 나오는 물보다 광물(鑛物)이 적었고, 따라서 마시는 물로 훨씬 높게 쳤다. 예수는 목이 말랐지만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시카의 어느 여인이 물그릇을 가지고 와서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14]. “내게 물을 다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모습과 옷차림으로 예수가 유대인인 줄 알았고 말씨로 보아 갈릴리 유대인이라 짐작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날다였고 잘 생긴 인물이었다. 유대인 남자가 이렇게 우물가에서 말을 걸고 물을 달라 하여 많이 놀랐다
[15]. 자존심 있는 남자가 버젓이 여자에게 말 거는 것, 더군다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그 시절에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다는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시니 어인 일이니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내가 정말로 너에게 마실 물을 달라 하였으나, 네가 알 수만 있다면 생명의 물 한 모금을 달라 내게 청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주여,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그릇이 없고 우물은 깊사오이다. 그러니 어디에서 이 생명(生命)의 물을 얻으시나이까?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시나이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기와 아들들과 가축도 그 물을 마셨나이다.”
[16][17]
1955 143:5.3 Jesus replied: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thirst again, but whosoever drinks of the water of the living spirit shall never thirst. And this living water shall become in him a well of refreshment springing up even to eternal life.” Nalda then said: “Give me this water that I thirst not, neither come all the way hither to draw. Besides, anything which a Samaritan woman could receive from such a commendable Jew would be a pleasure.”
2000 143:5.3 예수는 대답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이 다시 마르려니와 살아 있는 영(靈)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생명의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솟아올라 바로 영생(永生)에 이르는 시원한 샘물이 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내게 이 물을 주시사 나로 하여금 목도 마르지 않고 물 길으러 여기까지 멀리 오지도 않게 하소서. 게다가 사마리아 여인이 그런 훌륭한 유대인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쁨이 되리이다.”
2001 CM 143:5.3 예수께서 대답했다:“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살아있는 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생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원기 회복의 우물이 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목마르지 않고 또한 이제부터는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더욱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토록 훌륭한 유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쁨이 될 것입니다.”
2007 URKA 143:5.3 예수가 대답하였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이 마르겠지만, 살아있는 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물은 그 자신 안에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솟아오르는 새로운-신선함의 우물이 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나에게 이 물을 주셔서 내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한 물 길러 여기에 오지도 않게 해 주십시오. 게다가, 사마리아 여자가 그런 훌륭한 유대인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이든지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1955 143:5.4 Nalda did not know how to take Jesus’ willingness to talk with her. She beheld in the Master’s face the countenance of an upright and holy man, but she mistook friendliness for commonplace familiarity, and she misinterpreted his figure of speech as a form of making advances to her. And being a woman of lax morals, she was minded openly to become flirtatious, when Jesus, looking straight into her eyes, with a commanding voice said, “Woman, go get your husband and bring him hither.” This command brought Nalda to her senses. She saw that she had misjudged the Master’s kindness; she perceived that she had misconstrued his manner of speech. She was frightened; she began to realize that she stood in the presence of an unusual person, and groping about in her mind for a suitable reply, in great confusion, she said, “But, Sir, I cannot call my husband, for I have no husband.” Then said Jesus: “You have spoken the truth, for, while you may have once had a husband, he with whom you are now living is not your husband. Better it would be if you would cease to trifle with my words and seek for the living water which I have this day offered you.”
2000 143:5.4 날다는 예수가 자기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 여자는 주의 얼굴에서 올바르고 거룩한 사람의 빛을 보았다. 그러나 친절을 흔히 있는 친숙함으로 잘못 생각했고 그 비유를 자기에게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품행이 단정치 않은 여인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드러내놓고 희롱할 생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수는 명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 이 명령에 날다는 정신이 들었다. 주의 친절함을 그릇 판단했음을 깨달았고 자기가 그의 말투를 오해한 것을 알아차렸다. 놀라서 자기가 특별한 사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머리 속에서 적당한 대답을 더듬으며, 크게 산만하여 말했다. “그러나 주여, 남편을 부를 수 없사오니 남편이 없음이니이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으니, 네가 한때는 남편이 있었는가 싶으나 네가 이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님이라. 내 말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내가 오늘 너에게 내민 생명의 물을 구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2001 CM 143:5.4 날다는 예수께서 거리낌 없이 자기와 이야기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주님의 얼굴에서 고결하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으나, 친절함을 상투적인 치근덕거림으로 오해했고, 그의 말투를 자기에게 접근하려는 태도로 잘못 해석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여자였으므로, 공공연하게 유혹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예수께서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여자여, 가서 너의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고 말씀했다. 이 명령으로 인해 날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주님의 친절을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으며;그의 말투를 오해했음을 알아차렸다. 깜짝 놀랐으며;자신이 어떤 비범한 사람 앞에 서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적당한 대답을 마음 속에서 찾지 못하여 크게 당황하면서 말했다:“나는 남편이 없으므로 남편을 불러 올 수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했다:“네 말이 맞다. 한때는 남편이 있었으나,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자는 너의 남편이 아니다.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오늘 내가 너에게 제시했던 생수를 구한다면, 너에게 더 좋을 것이다.”
2007 URKA 143:5.4 날다는 예수가 기꺼이 자기와 이야기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주(主)의 얼굴에서 고결하고 성스러운 사람의 표정을 보았지만, 그녀는 친절함을 통상적인 친밀함으로 잘못 보았고, 그의 말투를 자기에게 접근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잘못 해석했다. 그리고 그녀는 도덕적으로 단정치 않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희롱하려는 마음을 먹었고, 그때 예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엄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인아, 가서 네 남편을 여기로 데려오라.” 이 명령이 날다의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주(主)의 친절을 잘못 판단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그의 말투를 오해하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녀는 자신이 비범한 사람의 현존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으며 그녀의 마음속에서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여 더듬으면서, 커다란 혼란 속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남편이 없기 때문에 남편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하였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다. 이는 네가 한때는 남편이 있었겠지만 네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는 네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내가 오늘 너에게 제시한 살아있는 물을 찾아 나서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2025 143:5.4 날다는 예수가 자기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 여자는 주의 얼굴에서 올바르고 거룩한 사람의 빛을 보았다. 그러나 친절을 흔히 있는 친숙함으로 잘못 생각했고 그 비유를 자기에게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품행이 단정치 않은 여인이었으므로 그 여자는 드러내 놓고 희롱할 생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수는 명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 이 명령에 날다는 정신이 들었다. 주의 친절함을 그릇 판단했음을 깨달았고 자기가 그의 말투를 오해한 것을 알아차렸다. 놀라서 자기가 특별한 사람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머리 속에서 적당한 대답을 더듬으며, 크게 산만하여 말했다. “그러나 주여, 남편을 부를 수 없사오니 남편이 없음이니이다[19].”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으니, 네가 한때는 남편이 있었는가 싶으나 네가 이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님이라. 내 말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내가 오늘 너에게 내민 생명의 물을 구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1955 143:5.5 By this time Nalda was sobered, and her better self was awakened. She was not an immoral woman wholly by choice. She had been ruthlessly and unjustly cast aside by her husband and in dire straits had consented to live with a certain Greek as his wife, but without marriage. Nalda now felt greatly ashamed that she had so unthinkingly spoken to Jesus, and she most penitently addressed the Master, saying: “My Lord, I repent of my manner of speaking to you, for I perceive that you are a holy man or maybe a prophet.” And she was just about to seek direct and personal help from the Master when she did what so many have done before and since—dodged the issue of personal salvation by turning to the discussion of theology and philosophy. She quickly turned the conversation from her own needs to a theological controversy. Pointing over to Mount Gerizim, she continued: “Our fathers worshiped on this mountain, and yet you would say that in Jerusalem is the place where men ought to worship; which, then, is the right place to worship God?”
2000 143:5.5 이때가 되어서 날다는 정신이 맑아졌고 제 정신이 들었다. 그 여자는 전적으로 선택해서 부도덕한 여자는 아니었다. 남편에게 모질게 또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그리스인의 아내로서,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같이 살기로 하였다. 날다는 이제 예수에게 생각 없이 말한 것을 크게 부끄럽게 느꼈고, 몹시 뉘우치는 마음으로 주를 향하여 말했다: “내 주여, 당신께 버릇없이 말씀드린 것을 뉘우치오니,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든지 아마도 선지자인 것을 깨닫기 때문이나이다.” 주께 직접 개인적으로 도움을 막 구하려고 할 때, 그 여자는 허다한 사람이 그전에도 그후에도 한 것과 같이 행하였다―신학과 철학 토론에 주의를 돌림으로 개인이 구원받는 문제를 피했다. 그 여자는 재빨리 자신의 필요로부터 신학(神學) 논쟁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그래도 당신은 예루살렘이 사람들이 예배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하리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하나님을 예배할 바른 장소이나이까?”
2001 CM 143:5.5 이때 날다는 정신이 맑아지고 제 정신이 들었다. 이 여자는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해서 부도덕한 여자가 되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무자비하고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끔찍한 곤경에 빠져서, 어떤 그리스인의 아내가 되어 그와 함께 살기로 동의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날다는 이제 그토록 생각 없이 예수께 이야기한 것에 대단히 부끄러움을 느꼈고, 아주 뉘우치면서 주님께 말했다:“나의 주여, 당신에게 한 내 말투를 회개하는데, 당신은 내가 보기에 거룩한 사람 또는 선지자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직접 개인적인 도움을 주님께 막 구하려는 순간, 많은 사람이 그전에 그리고 그후에도 행했던 것--곧 신학적 및 철학적 토론으로 바꿈으로써 개인의 구원 문제를 비켜가는 것--을 그 여자도 행했다. 그 여자는 자신의 필요성으로부터 신학 논쟁으로 대화를 재빨리 돌렸다. 그리심산을 가리키면서 말을 계속했다:“우리 선조는 이 산에서 경배 드렸는데, 당신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경배 드려야한다고 하니, 과연 어느 곳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올바른 장소입니까?”
2007 URKA 143:5.5 이때가 되어서 날다는 침착성을 되찾았고 그녀의 더욱 좋은 자아가 깨어났다. 그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부도덕한 여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 남편에 의해 무자비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버림을 받았으며, 무서운 궁핍함 가운데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한 그리스인의 아내로 살 것을 동의했었다. 날다는 이제 생각 없이 예수에게 말한 것이 대단히 부끄러웠고 몹시 뉘우치면서 주(主)에게 말했다: “나의 주님이여, 당신에게 버릇없이 이야기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는 당신은 성스러운 사람이거나 어쩌면 선지자라는 것을 내가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그리고 그 이래로 행하였던 것─신학과 철학적 토론으로 주제를 돌림으로써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교묘히 넘기려는 것─을 행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 도움을 주(主)로부터 찾아 나서려고 하였다. 그녀는 대화를 그녀 자신의 필요성으로부터 어떤 신학적 논쟁으로 재빨리 돌렸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그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산에서 경배를 드렸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예루살렘이 사람들이 경배를 드려야 할 곳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어느 곳이 하느님을 경배할 올바른 장소입니까?”
2025 143:5.5 이때가 되어서 날다는 정신이 맑아졌고 제 정신이 들었다. 그 여자는 전적으로 선택해서 부도덕한 여자는 아니었다. 남편에게 모질게 또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어떤 그리스인의 아내로서,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같이 살기로 하였다. 날다는 이제 예수에게 생각 없이 말한 것을 크게 부끄럽게 느꼈고, 몹시 뉘우치는 마음으로 주를 향하여 말했다: “내 주여, 당신께 버릇없이 말씀드린 것을 뉘우치오니,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든지 아마도 선지자인 것을 깨닫기 때문이나이다[20].” 주께 직접 개인적으로 도움을 막 구하려고 할 때, 그 여자는 허다한 사람이 그전에도 그후에도 한 것과 같이 행하였다 ― 신학과 철학 토론에 주의를 돌림으로 개인이 구원 받는 문제를 피했다. 그 여자는 재빨리 자신의 필요로부터 신학(神學) 논쟁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그래도 당신은 예루살렘이 사람들이 예배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하리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하나님을 예배할 바른 장소이나이까?”
[21]
1955 143:5.6 Jesus perceived the attempt of the woman’s soul to avoid direct and searching contact with its Maker, but he also saw that there was present in her soul a desire to know the better way of life. After all, there was in Nalda’s heart a true thirst for the living water; therefore he dealt patiently with her, saying: “Woman, let me say to you that the day is soon coming when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will you worship the Father. But now you worship that which you know not, a mixture of the religion of many pagan gods and gentile philosophies. The Jews at least know whom they worship; they have removed all confusion by concentrating their worship upon one God, Yahweh. But you should believe me when I say that the hour will soon come—even now is—when all sincer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it is just such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they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Your salvation comes not from knowing how others should worship or where but by receiving into your own heart this living water which I am offering you even now.”
2000 143:5.6 예수는 그 여자의 혼이 직접 조물주와 면밀한 접촉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또한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알려는 소망이 그 혼 속에 있음을 보았다. 결국, 날다의 가슴 속에 생명의 물을 바라는 참된 목마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참을성 있게 다루며 말했다: “여자여, 네게 이르노니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너희가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을 날이 곧 다가오리라. 그러나 너는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 예배하나니 여러 이교도 신(神)들의 종교와 이방의 철학이 섞인 것이라. 유대인들은 적어도 누구를 예배하는지 알며, 예배를 한 분의 하나님, 야웨에 집중하여 모든 혼란을 없애버렸느니라. 그러나 진지하게 예배하는 사람이 모두 정신적으로, 진실로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곧 오리라―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고 말할 때 나를 믿어야 하나니, 이는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영이요, 그를 예배하는 자는 정신적으로 진실하게 예배해야 하느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또는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가 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바로 지금 내미는 이 생명의 물을 네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 너의 구원이 오느니라.”
2001 CM 143:5.6 예수께서는 이 여자의 혼이 창조주와 직접 면밀하게 접촉하는 것을 피하려 함을 감지했지만, 좀 더 나은 삶의 길을 알고자함이 그 혼에 있는 것 또한 봤다. 결국, 생수에 대한 진정한 갈망이 날다의 마음 속에 있었으므로, 참을성 있게 대하면서 말씀했다:“여자여, 내가 말하는데,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너희가 아버지께 경배드릴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여러 이교적 신{神}을 모시는 종교와 이방인 철학이 혼합된,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 유대인은 적어도 경배 드리는 대상을 알고 있으며;유일하신 하나님 곧 야훼에게만 경배를 집중시킴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했다. 그러나 진지한 모든 경배자가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지금이 그런 때라고-- 내가 하는 말을 네가 믿어야만 할 것인데, 아버지께서 바로 그런 경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에게 경배 드리는 자는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경배해야한다. 너의 구원은, 다른 자들이 어떻게 혹은 어디서 경배 드리는지를 앎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너에게 주는 이 생수를 너 자신의 마음 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온다.”
2007 URKA 143:5.6 예수는 이 여인의 혼이 그 조물주와의 직접 그리고 찾아내는 접촉을 피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녀의 혼 속에는 또한 더욱 나은 일생의 길을 알려고 하는 욕망이 있음도 보았다. 결국, 날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물을 바라는 참된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인내심 있게 그녀를 다루면서 말하였다: “여인아, 내가 네게 말하겠는데 너희가 이 산에서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닌 날이 곧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많은 이교도 하느님들의 종교와 이방인의 철학들이 혼합된,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있다. 적어도 유대인들은 그들이 누구를 경배하는 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경배를 한 분 하느님, 곧 야훼에게 집중함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시켰다. 그러나 모든 진지한 경배자들이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아버지에게 경배할 때가 곧 올 것이라─심지어 이미 지금 와 있다─고 내가 말할 때, 너는 나를 믿어야만 한다, 이는 아버지가 찾는 자가 바로 그러한 경배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그를 경배하는 자들은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그를 경배해야만 한다. 너의 구원은 남들이 어떻게 또는 어디에서 경배하는 지를 아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지금 내가 너에게 제공하는 이 살아있는 물을 너 자신의 가슴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온다.”
2025 143:5.6 예수는 그 여자의 혼이 직접 조물주와 면밀한 접촉을 피하려고 애쓰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또한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알려는 소망이 그 혼 속에 있음을 보았다. 결국, 날다의 가슴 속에 생명의 물을 바라는 참된 목마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참을성 있게 다루며 말했다: “여자여, 네게 이르노니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너희가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을 날이 곧 다가오리라. 그러나 너는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 예배하나니 여러 이교도 신(神)들의 종교와 이방의 철학이 섞인 것이라. 유대인들은 적어도 누구를 예배하는지 알며, 예배를 한 분의 하나님, 야웨에 집중하여 모든 혼란을 없애 버렸느니라. 그러나 진지하게 예배하는 사람이 모두 정신적으로, 진실로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곧 오리라 ― 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 ―고 말할 때 나를 믿어야 하나니, 이는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영이요, 그를 예배하는 자는 정신적으로 진실하게 예배해야 하느니라[22].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또는 어디서 예배해야 하는가 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바로 지금 내미는 이 생명의 물을 네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 너의 구원이 오느니라.”
1955 143:5.7 But Nalda would make one more effort to avoid the discussion of the embarrassing question of her personal life on earth and the status of her soul before God. Once more she resorted to questions of general religion, saying: “Yes, I know, Sir, that John has preached about the coming of the Converter, he who will be called the Deliverer, and that, when he shall come, he will declare to us all things”—and Jesus, interrupting Nalda, said with startling assurance, “I who speak to you am he.”
2000 143:5.7 그러나 날다는 땅에서 자기의 개인 생활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 혼의 처지에 관한 거북한 질문에 대한 논의를 피하려고 다시 한 번 애썼다. 한 번 더 일반 종교에 관한 질문을 택하고 말했다: “예 주여, 요한은 교화자(敎化者)가 오신다고 설교했는데, 그를 구원자라 부를 것이요 그가 오실 때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언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날다의 말을 막으며, 예수는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2001 CM 143:5.7 그러나 날다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개인 생활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 혼의 처지에 대한 당황스런 질문을 논의하지 않으려고, 한 번 더 피하려했다. 다시 일반적인 종교에 대해 질문했다:“예, 선생님, 개종시키는 분이 와서 자신을 구원주라고 칭할 것이라는 요한의 설교와,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언하실 줄을 내가 압니다”--그러자 예수께서 날다의 말을 중단시키면서 깜짝 놀라게 하는 확신으로 말씀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07 URKA 143:5.7 그러나 날다는 땅 위에 있는 그녀의 개인적 일생과 하느님 앞에 있는 그녀의 혼의 지위의 당혹하게 만드는 질문에 대한 논의를 피해보려고 한 번 더 노력을 기울였다. 다시 한번 그녀는 일반적인 종교에 대한 질문을 선택하여 말하였다: “예, 선생님. 나는 요한이 가르치기를 개종시키는 분이 와서 자신을 해방자라 칭할 것이며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언하실 것이라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그러자 예수가 날다의 말을 중단시키며 깜짝 놀라게 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다.”
1955 143:5.8 This was the first direct, positive, and undisguised pronouncement of his divine nature and sonship which Jesus had made on earth; and it was made to a woman, a Samaritan woman, and a woman of questionable character in the eyes of men up to this moment, but a woman whom the divine eye beheld as having been sinned against more than as sinning of her own desire and as now being a human soul who desired salvation, desired it sincerely and wholeheartedly, and that was enough.
2000 143:5.8 이것은 예수가 땅에서 자신이 신의 성품을 지닌 아들임을 처음으로 바로, 분명히 감추지 않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여자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인격을 가진 여자에게 선언하였다. 그러나 신의 눈은, 자신이 원해서 죄를 짓기보다 남이 그 여자에게 죄를 저질렀다고, 그 여자는 지금 구원을 바라는,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구원을 바라는 인간 혼이라고 보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2001 CM 143:5.8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이 세상에 이미 설립한 아들신분에 대해 발표한, 최초의 직접적이고 긍정적이고 숨김없는 선언이었으며;그것도 한 여자, 한 사마리아 여자,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의심스런 성품의 여자에게 선언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신의 눈으로 볼 때, 그 여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죄짓는 것보다 더 많이 죄에 빠졌고, 지금은 구원을 바라면서 그것을 진지하게 전심으로 원하는 인간 혼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2007 URKA 143:5.8 이것은 예수가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이 땅 위에서 이미 이룩한 아들관계에 관한, 최초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이고 숨기지 않은 선언이었다; 그것은 한 여인에게,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것도 그 당시의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에게 베풀어졌다, 그러나 신성한 눈이 바라본 그 여인은 그녀 자신의 욕망으로 죄를 범한 것보다는, 더욱 많은 것이 다른 사람에 저항하다가 죄를 범한 것으로 되었다고 보았으며 그리고 지금은 구원을 갈망하는 혼을 가진 인간 존재이며, 그것을 진정으로 그리고 온 전심을 다해서 갈망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2025 143:5.8 이것은 예수가 땅에서 자신이 신의 성품을 지닌 아들임을 처음으로 바로, 분명히 감추지 않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여자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인격을 가진 여자에게 선언하였다. 그러나 신의 눈은, 자신이 원해서 죄를 짓기보다 남이 그 여자에게 죄를 저질렀다고, 그 여자는 지금 구원을 바라는, 성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구원을 바라는 인간 혼이라고 보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1955 143:5.9 As Nalda was about to voice her real and personal longing for better things and a more noble way of living, just as she was ready to speak the real desire of her heart, the twelve apostles returned from Sychar, and coming upon this scene of Jesus’ talking so intimately with this woman—this Samaritan woman, and alone—they were more than astonished. They quickly deposited their supplies and drew aside, no man daring to reprove him, while Jesus said to Nalda: “Woman, go your way; God has forgiven you. Henceforth you will live a new life. You have received the living water, and a new joy will spring up within your soul, and you shall become a daughter of the Most High.” And the woman, perceiving the disapproval of the apostles, left her waterpot and fled to the city.
2000 143:5.9 날다가 더 보람있고 고귀한 생활 방법을 찾으려는 진정한 개인적 소망을 막 말하려 했을 때, 마음 속의 진정한 소망을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열두 사도가 시카에서 돌아왔다. 예수가 이 여자와 함께―이 사마리아 여자와, 그것도 두 사람만―아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에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랐다. 소모품을 재빨리 저장하고 옆으로 비켰고 아무도 감히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한편 예수는 날다에게 말했다: “여자여, 길을 가라.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였느니라. 이제부터 너는 새 인생을 살리라. 생명의 물을 받았으니, 새 기쁨이 네 혼 속에서 솟아나겠고 너는 최고자의 딸이 될지니라.” 그 여자는 사도들이 싫어하는 눈치를 채고서, 물동이를 버리고 도시로 달아났다.
2001 CM 143:5.9 날다가 더 나은 것들과 더 고상한 삶의 방법에 대한 진실하고 개인적인 동경을 말하려고 할 때, 즉 마음 속의 진정한 소망을 말할 준비가 됐을 때, 열두 사도가 수가에서 돌아왔으며, 예수께서 이 여자와--곧 이 사마리아 여자와 단 둘이서-- 친근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물건을 재빨리 내려놓고 아무도 감히 예수를 비난하지는 못한 채 옆으로 다가갔을 때, 예수께서 날다에게 말씀했다:“여자여, 너의 길을 가거라;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하셨다. 이제부터는 새 삶을 살도록 해라. 네가 생수를 받았으니, 새로운 기쁨이 너의 혼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고, 너는 지고자의 딸이 될 것이다.” 사도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도망갔다.
2007 URKA 143:5.9 날다가 좀 더 나은 일과 좀 더 고상한 삶의 길에 대한 자신의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소망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가슴속의 실제 욕망을 말할 준비가 이제 막 되었을 즈음에, 열두 사도들이 시카로부터 돌아왔고, 그들은 예수가 이 여인과─이 사마리아 여인과 단 둘이서─아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에 들어오게 되자 더할 나위 없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재빨리 그들의 보급품들을 내려놓고는 한 옆으로 비켜섰다. 아무도 감히 예수를 비난하지도 못하는 와중에. 예수가 날다에게 말하였다: “여인아, 너의 길을 가거라; 하느님이 너를 용서하였다. 이제부터는 너는 새 일생을 살 것이다. 네가 살아있는 물을 받아들였으니 새로운 기쁨이 네 혼 속에 솟을 것이며 너는 지고자의 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러자 여인은 사도들이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도시로 달아났다.
2025 143:5.9 날다가 더 보람 있고 고귀한 생활 방법을 찾으려는 진정한 개인적 소망을 막 말하려 했을 때, 마음 속의 진정한 소망을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열두 사도가 시카에서 돌아왔다[24]. 예수가 이 여자와 함께 ― 이 사마리아 여자와, 그것도 두 사람만 ― 아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에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랐다. 소모품을 재빨리 저장하고 옆으로 비켰고 아무도 감히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한편 예수는 날다에게 말했다: “여자여, 길을 가라.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였느니라. 이제부터 너는 새 인생을 살리라. 생명의 물을 받았으니, 새 기쁨이 네 혼 속에서 솟아나겠고 너는 최고자의 딸이 될지니라.” 그 여자는 사도들이 싫어하는 눈치를 채고서, 물동이를 버리고 도시로 달아났다.
1955 143:5.10 As she entered the city, she proclaimed to everyone she met: “Go out to Jacob’s well and go quickly, for there you will see a man who told me all I ever did. Can this be the Converter?” And ere the sun went down, a great crowd had assembled at Jacob’s well to hear Jesus. And the Master talked to them more about the water of life, the gift of the indwelling spirit.
2000 143:5.10 도시로 들어가면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 “야곱의 우물로 가라, 빨리 가라, 왜냐하면 거기서 내가 일찍이 한 일을 모두 내게 일러준 사람을 너희가 볼 것이기 때문이라. 이 사람이 교화자일 수 있느냐?” 해가 지기 전에, 큰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야곱의 우물에서 모였다. 그리고 주는 생명의 물, 깃드는 영이 주는 선물에 대하여 그들에게 더 말씀했다.
2001 CM 143:5.10 동네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시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나에게 말한 사람을 거기서 볼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개종시키는 분 아니겠습니까?” 해가 지기 전에 큰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들으러 야곱의 우물에 모였다. 그리고 주님은, 생수 곧 내주하는 영의 선물에 대해 그들에게 더 말씀했다.
2007 URKA 143:5.10 그녀는 도시에 들어가면서 그녀가 만난 모두에게 선언했다: “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시오. 거기에서 당신들은 내가 이제까지 행했던 모든 것을 내게 이야기한 사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분이 개종시키는 분일 수 있을까요?” 그러자 해가 지기 전에 커다란 군중들이 예수의 말을 들으러 야곱의 우물로 모였다. 그러자 주(主)는 그들에게 생명의 물, 곧 내주하는 영의 선물에 대해 좀 더 이야기했다.
1955 143:5.11 The apostles never ceased to be shocked by Jesus’ willingness to talk with women, women of questionable character, even immoral women. It was very difficult for Jesus to teach his apostles that women, even so-called immoral women, have souls which can choose God as their Father, thereby becoming daughters of God and candidates for life everlasting. Even nineteen centuries later many show the same unwillingness to grasp the Master’s teachings. Even the Christian religion has been persistently built up around the fact of the death of Christ instead of around the truth of his life. The world should be more concerned with his happy and God-revealing life than with his tragic and sorrowful death.
2000 143:5.11 사도들은 예수가 여자, 그것도 의심스러운 인격을 가진 여자, 아니 부도덕한 여자와도 기꺼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서 받은 충격을 결코 떨쳐 버리지 못했다. 여자, 아니 이른바 부도덕한 여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택할 수 있는 혼을 가졌고, 이로써 하나님의 딸이요 영생을 받을 후보자가 된다는 것을 예수가 사도들에게 가르치기는 무척 어려웠다. 19세기가 지난 뒤에도 많은 사람이 주의 가르침을 깨닫기를 꺼려하는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기독교조차 그리스도의 일생의 진리가 아니라 그가 죽은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쌓아 올렸다. 세상은 예수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행복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01 CM 143:5.11 사도들은 예수께서 여자들과, 그것도 미심쩍은 성품의 여자들, 심지어 부도덕한 여자들과도 기꺼이 말씀하는 것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여자들 곧 소위 부도덕한 여자들까지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선택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딸이 되고 영원한 삶을 위한 후보자가 될 수 있는 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가르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19세기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주님의 교훈을 파악하기를 꺼려하는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리스도교조차,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진리 대신, 그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확립돼왔다. 세상은, 그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그의 행복하고 하나님을-드러내는 생애에 더 관심 뒀어야했다.
2007 URKA 143:5.11 사도들은 예수가 여인들과, 그것도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들과, 심지어는 부도덕한 여인들과 기꺼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서 받은 충격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했다. 예수가 사도들에게 여인들, 심지어 소위 부도덕한 여인들도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딸이요, 영존하는 일생을 위한 후보자가 되어가는, 그러한 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심지어는 1,900년이 지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주(主)의 가르침을 파악하는 데에 똑같이 꺼려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조차도, 그의 일생의 진리를 중심으로 세워지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사망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세워졌다. 세상은 그의 비극적이고 애통한 죽음보다는 그의 행복한 그리고 하느님을-계시하는 일생에 더욱 관련되어야만 한다.
2025 143:5.11 사도들은 예수가 여자, 그것도 의심스러운 인격을 가진 여자, 아니 부도덕한 여자와도 기꺼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서 받은 충격을 결코 떨쳐 버리지 못했다. 여자, 아니 이른바 부도덕한 여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택할 수 있는 혼을 가졌고, 이로써 하나님의 딸이요 영생을 받을 후보자가 된다는 것을 예수가 사도들에게 가르치기는 무척 어려웠다. 19세기가 지난 뒤에도 많은 사람이 주의 가르침을 깨닫기를 꺼려하는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기독교조차 그리스도의 일생의 진실이 아니라 그가 죽은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쌓아 올렸다. 세상은 예수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행복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55 143:5.12 Nalda told this entire story to the Apostle John the next day, but he never revealed it fully to the other apostles, and Jesus did not speak of it in detail to the twelve.
2000 143:5.12 날다는 이튿날 이 이야기를 전부 사도 요한에게 일러주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다 밝히지 않았고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지 않았다.
2001 CM 143:5.12 날다는 이튿날 이 모든 이야기를 사도 요한에게 말했지만, 다른 사도들에게는 다 말하지 않았고,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열두 사도에게 하지 않았다.
2007 URKA 143:5.12 날다가 다음 날 이 모든 이야기를 사도 요한에게 말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는 결코 그것을 충분하게 계시하지 않았고, 그리고 예수도 열두 명에게 그것에 대한 것을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2025 143:5.12 날다는 이튿날 이 이야기를 전부 사도 요한에게 일러주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다 밝히지 않았고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지 않았다.
1955 143:5.13 Nalda told John that Jesus had told her “all I ever did.” John many times wanted to ask Jesus about this visit with Nalda, but he never did. Jesus told her only one thing about herself, but his look into her eyes and the manner of his dealing with her had so brought all of her checkered life in panoramic review before her mind in a moment of time that she associated all of this self-revelation of her past life with the look and the word of the Master. Jesus never told her she had had five husbands. She had lived with four different men since her husband cast her aside, and this, with all her past, came up so vividly in her mind at the moment when she realized Jesus was a man of God that she subsequently repeated to John that Jesus had really told her all about herself.
2000 143:5.13 날다는 예수가 “내가 일찍이 행한 모든 것”을 자기에게 일러주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여러 번 요한은 날다와 이렇게 이야기하신 것에 관하여 예수께 묻고 싶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예수는 그 여자에 관하여 오직 한 가지를 일러주었지만, 눈을 들여다보고 그 여자를 다룬 태도는 한 순간에 날다의 머리 속에 얼룩진 생활 전부를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서 다시 보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과거의 생활을 이렇게 자신이 밝힌 것을 모두 주의 눈길과 말씀과 연결하였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다섯 남편이 있다고 이르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에 다른 네 남자와 살았다. 이것은 모든 과거와 함께, 예수가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머리 속에 아주 선하게 살아났고, 그래서 예수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정말로 자기에게 일러주었다고 나중에 요한에게 되풀이하였다.
2001 CM 143:5.13 날다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내가 일찍이 행한 모든 것”을 말씀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은 날다와 나눈 이 교제에 대해 예수께 여러 번 물어보려했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 자신에 대해 한 가지 사실만 말씀했지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하는 그의 태도로 말미암아, 그 여자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변화무쌍한 인생이 잠시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자신의 과거 인생에 대한 이런 자기-계시를, 주님의 표정과 말씀에 관련시켰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 여자를 버린 이래 또 다른 네 남자와 동거했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과거와 함께 이것이 정신 속에 선명하게 나타났으므로, 나중에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모든 행적을 정말로 말씀했다고 요한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2007 URKA 143:5.13 날다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모든 것”을 예수가 그녀에게 말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은 날다와의 이 만남에 대해 예수에게 여러 번 묻고 싶었지만, 결코 묻지 않았다. 예수는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관해 단지 한 가지만 말했지만, 그러나 그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본 것과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한 순간에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녀의 얼룩진 일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그녀는 그녀의 과거 일생에 대한 이러한 자아-계시를 주(主)의 표정과 말씀에 연관시켰다. 예수는 결코 그녀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다른 네 명의 남자들과 살았었는데, 예수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가 깨달았던 순간에, 이것이 그녀의 모든 과거와 함께, 너무나 생생하게 그녀의 마음속에서 나타났기에, 그녀는 예수가 정말로 그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그녀에서 말했다고 요한에게 뒤이어서 반복했다.
2025 143:5.13 날다는 예수가 “내가 일찍이 행한 모든 것”을 자기에게 일러주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여러 번 요한은 날다와 이렇게 이야기하신 것에 관하여 예수께 묻고 싶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예수는 그 여자에 관하여 오직 한 가지를 일러주었지만, 눈을 들여다보고 그 여자를 다룬 태도는 한 순간에 날다의 머리 속에 얼룩진 생활 전부를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서 다시 보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과거의 생활을 이렇게 자신이 밝힌 것을 모두 주의 눈길과 말씀과 연결하였다[26]. 예수는 그 여자에게 다섯 남편이 있다고 이르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버림 받은 뒤에 다른 네 남자와 살았다
[27]. 이것은 모든 과거와 함께, 예수가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머리 속에 아주 선하게 살아났고, 그래서 예수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정말로 자기에게 일러주었다고 나중에 요한에게 되풀이하였다.
6. THE SAMARITAN REVIVAL
6. 사마리아의 부흥
6. 사마리아의 부흥
6. 사마리아의 부흥
6. 사마리아의 부흥
1955 143:6.1 On the evening that Nalda drew the crowd out from Sychar to see Jesus, the twelve had just returned with food, and they besought Jesus to eat with them instead of talking to the people, for they had been without food all day and were hungry. But Jesus knew that darkness would soon be upon them; so he persisted in his determination to talk to the people before he sent them away. When Andrew sought to persuade him to eat a bite before speaking to the crowd, Jesus said, “I have meat to eat that you do not know about.” When the apostles heard this, they said among themselves: “Has any man brought him aught to eat? Can it be that the woman gave him food as well as drink?” When Jesus heard them talking among themselves, before he spoke to the people, he turned aside and said to the twelve: “My meat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accomplish His work. You should no longer say it is such and such a time until the harvest. Behold these people coming out from a Samaritan city to hear us; I tell you the fields are already white for the harvest. He who reaps receives wages and gathers this fruit to eternal life; consequently the sowers and the reapers rejoice together. For herein is the saying true: ‘One sows and another reaps.’ I am now sending you to reap that whereon you have not labored; others have labored, and you are about to enter into their labor.” This he said in reference to the preaching of John the Baptist.
2000 143:6.1 날다가 시카에서 예수를 보라고 군중을 이끌어낸 날 저녁에, 열두 사도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막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에게 함께 드시라고 청했는데, 그들이 하루 종일 끼니를 걸러서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둠이 곧 다가올 것을 알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말씀할 결심을 버리지 않았다. 군중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에게 한 입 잡수시라고 안드레가 설득하려고 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나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고기가 있노라.” 이 말을 듣자 사도들끼리 말했다: “누군가 그에게 무슨 잡수실 것을 가져왔느냐? 도대체 그 여자가 예수께 마실 것 뿐 아니라 잡수실 것도 드렸느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는 옆으로 머리를 돌려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내가 먹을 고기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 너희는 이제 더 추수할 때까지 시간이 어느만큼 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서 이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나오는 것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판이 추수하도록 이미 허옇게 되었느니라. 거두는 자는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이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 결과로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는 ‘한 사람이 씨 뿌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하는 말씀이 여기서 참인 까닭이라.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곳에서 거두라고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남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막 시작하려 하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전도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2001 CM 143:6.1 예수를 만나라고, 날다가 무리를 수가에서 이끌어내던 그 저녁에, 열두 사도가 음식을 가지고 막 돌아왔으며, 하루 종일 굶어 시장했으므로,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대신 자기들과 함께 식사하자고 예수께 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곧 어두워질 것을 알았으며;그래서 그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그들과 이야기하기로 작정했다. 무리에게 말씀하기 전에 무엇을 좀 드시라고 안드레가 설득하려고 하자, 예수께서 말씀했다:“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사도들은 이것을 듣고 자기들끼리 말했다:“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그 여자가 마실 것뿐 아니라 음식도 드렸는가?” 예수께서는 그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열두 사도를 돌아보면서 말씀했다:“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까지 이러 저러한 시간이 남았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사마리아 마을에서 이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들으려고 나오는 것을 보라;너희에게 이르는데, 밭이 이미 희어져서 추수할 때가 됐다. 추수하는 자가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도록 열매를 모으는데;이는 그 결과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크게 기뻐하게 하려 함이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이 옳다. 내가 지금 너희로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러 보내고 있는데;다른 사람들이 수고했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시작하려한다.” 그는 이것을 세례 요한의 전도에 관련시켜서 말씀했다.
2007 URKA 143:6.1 날다가 예수를 보라고 시카로부터 군중을 끌어냈던 저녁에, 열두 사도들은 음식을 가지고 막 돌아왔으며, 하루 종일 끼니를 걸러서 너무 시장했었음으로 사람들에게 말하는 대신에 자신들과 함께 먹기를 예수에게 청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어둠이 곧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그 사람들에게 말하기로 한 자신의 결심을 고집하였다. 무리들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먹기를 안드레가 그에게 설득했을 때, 예수가 말하였다: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음식을 가지고 있다.” 사도들은 이를 듣자,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누가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드렸는가? 그 여인이 그에게 마실 것뿐만 아니라 음식도 드렸는가?” 예수가 그들끼리 하는 말을 듣자, 대중들에게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들을 돌아보며 열둘에게 말했다: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너희는 추수하기 전까지 이러저러한 시간이 남았다고 더 이상 말해서는 안 된다. 사마리아 도시로부터 우리의 말을 듣기 위해 나오는 이 사람들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들판이 이미 희어져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 거두는 자는 삯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이 열매를 거둔다; 따라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런즉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되다: ‘한 사람이 씨 뿌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나는 너희를 수고하지 아니한 곳에서 거두라고 이제 보내고 있다; 다른 자들이 수고하였고, 그리고 너희는 이제 막 그들의 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세례자 요한의 설교에 관련하면서 말한 것이었다.
2025 143:6.1 날다가 시카에서 예수를 보라고 군중을 이끌어낸 날 저녁에, 열두 사도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막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에게 함께 드시라고 청했는데, 그들이 하루 종일 끼니를 걸러서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둠이 곧 다가올 것을 알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말씀할 결심을 버리지 않았다[28][29]. 군중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에게 한 입 잡수시라고 안드레가 설득하려고 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나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고기가 있노라.” 이 말을 듣자 사도들끼리 말했다: “누군가 그에게 무슨 잡수실 것을 가져왔느냐? 도대체 그 여자가 예수께 마실 것만 아니라 잡수실 것도 드렸느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듣자,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예수는 옆으로 머리를 돌려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내가 먹을 고기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 너희는 이제 더 추수할 때까지 시간이 어느만큼 있다고 말하지 말라.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서 이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나오는 것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판이 추수하도록 이미 허옇게 되었느니라. 거두는 자는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이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 결과로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이는 ‘한 사람이 씨 뿌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씀이 여기서 참인 까닭이라.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곳에서 거두라고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남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막 시작하려 하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전도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1955 143:6.2 Jesus and the apostles went into Sychar and preached two days before they established their camp on Mount Gerizim. And many of the dwellers in Sychar believed the gospel and made request for baptism, but the apostles of Jesus did not yet baptize.
2000 143:6.2 예수와 사도들은 시카로 들어갔고 게리짐 산에서 캠프를 세우기 전에 이틀 동안 전도했다. 시카에서 많은 주민이 복음을 믿고 세례받기를 청했지만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2001 CM 143:6.2 예수와 사도들은 수가로 들어갔고, 그리심산에 야영지를 세우기 전까지 이틀 동안 전도했다. 수가의 거주민 가운데 다수가 복음을 믿었고 세례받기를 원했으나,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2007 URKA 143:6.2 예수와 사도들은 시카로 들어갔으며 게리짐 산에 야영지를 세우기 전까지 이틀 동안 설교하였다. 시카의 많은 거주민들이 복음을 믿었으며 세례 받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1955 143:6.3 The first night of the camp on Mount Gerizim the apostles expected that Jesus would rebuke them for their attitude toward the woman at Jacob’s well, but he made no reference to the matter. Instead he gave them that memorable talk on “The realities which are central in the kingdom of God.” In any religion it is very easy to allow values to become disproportionate and to permit facts to occupy the place of truth in one’s theology. The fact of the cross became the very center of subsequent Christianity; but it is not the central truth of the religion which may be derived from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of Nazareth.
2000 143:6.3 게리짐 산에서 야영하던 첫날 밤에 사도들은 야곱의 우물에서 그 여자에게 보인 태도 때문에 예수가 꾸짖으리라 기대했으나 그 문제에 대하여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심인 실체들”에 관하여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어떤 종교에서도 가치가 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버려두고, 사람의 신학에서 진리 대신에 사실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버려두기가 너무나 쉽다. 십자가의 사실은 후일에 기독교의 바로 그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종교의 핵심 진리가 아니다.
2001 CM 143:6.3 그리심산에서 야영하던 첫 날 밤에, 사도들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 여자를 대했던 자신들의 태도를 예수께서 꾸중하리라고 예상했으나, 예수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중심 되는 실체들”에 대해, 기억에 남을 만한 말씀을 그들에게 했다. 어느 종교에서든지, 가치가 한쪽으로 치우치도록 내버려두고, 사람의 신학에서 진리 대신에 사실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기가 매우 쉽다. 십자가 사건이 나중의 그리스도교에서 바로 그 핵심을 이루게 됐으나;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서 연유될만한 종교의 중심 진리는 아니다.
2007 URKA 143:6.3 게리짐 산에서 야영한 첫날 밤에, 사도들은 예수가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꾸중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하여 어떤 언급도 없었으며, 그 대신에 “하느님의 왕국에서 중심이 되는 실체들”이라는, 기억에 남을 만한 강연을 하였다. 어떤 종교에서든지, 가치들이 불균형이 되어가도록 허용하고 그리고 종교의 신학 안에서 사실들이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락하기가 매우 쉽다. 십자가의 사실이 뒤이어 일어난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으로부터 유래될 수 있는 종교의 중심적인 진리가 아니다.
2025 143:6.3 게리짐 산에서 야영하던 첫날 밤에 사도들은 야곱의 우물에서 그 여자에게 보인 태도 때문에 예수가 꾸짖으리라 기대했으나 그 문제에 대하여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심인 실체들”에 관하여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어떤 종교에서도 가치가 한 쪽으로 치우치도록 버려두고, 사람의 신학에서 진실 대신에 사실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버려두기가 너무나 쉽다. 십자가의 사실은 후일에 기독교의 바로 그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종교의 핵심 진실이 아니다.
1955 143:6.4 The theme of Jesus’ teaching on Mount Gerizim was: That he wants all men to see God as a Father-friend just as he (Jesus) is a brother-friend. And again and again he impressed upon them that love is the greatest relationship in the world—in the universe—just as truth is the greatest pronouncement of the observation of these divine relationships.
2000 143:6.4 게리짐 산에서 예수가 가르친 말씀의 주제는, 그가 (예수가) 형제요 친구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이자 친구로서 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진리가 이 신성한 두 관계를 관찰한 것에 대하여 가장 큰 선언인 것같이, 사랑은 세상에서―우주에서―가장 큰 관계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2001 CM 143:6.4 그리심산에서 예수의 가르침의 주제는 이랬다:그는 자기(곧 예수)가 형제이자-친구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이자-친구로 여기기 원했다. 이 신성한 관계들을 주목하라는 가장 위대한 선언이 진리임과 똑같이, 사랑이 세상에서--곧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관계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강조했다.
2007 URKA 143:6.4 게리짐 산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자기(예수)가 형제-친구이듯이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아버지-친구로 여겨 주기를 원하였다. 그는, 이 신성한 관계들의 관찰에서 진리가 가장 위대한 선언인 것과 똑같이, 사랑이 세상에서─우주에서─가장 위대한 관계라는 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2025 143:6.4 게리짐 산에서 예수가 가르친 말씀의 주제는, 그가 (예수가) 형제요 친구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이자 친구로서 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진실이 이 신성한 두 관계를 관찰한 것에 대하여 가장 큰 선언인 것같이, 사랑은 세상에서 ― 우주에서 ― 가장 큰 관계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1955 143:6.5 Jesus declared himself so fully to the Samaritans because he could safely do so, and because he knew that he would not again visit the heart of Samaria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2000 143:6.5 예수가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렇게 자신을 한껏 선언한 것은 그가 안전하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려고 사마리아의 심장부로 그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2001 CM 143:6.5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에게 자신을 아주 충분히 드러내셨는데, 그렇게 해도 상관없기 때문이었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다시는 사마리아 중심부를 방문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2007 URKA 143:6.5 예수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충만하게 사마리아인들에게 선포하였는데 왜냐하면 그가 안전하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왕국 복음을 설교하러 사마리아의 중심부를 다시 방문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25 143:6.5 예수가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렇게 자신을 한껏 선언한 것은 그가 안전하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려고 사마리아의 심장부로 그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955 143:6.6 Jesus and the twelve camped on Mount Gerizim until the end of August. They preached the good news of the kingdom—the fatherhood of God—to the Samaritans in the cities by day and spent the nights at the camp. The work which Jesus and the twelve did in these Samaritan cities yielded many souls for the kingdom and did much to prepare the way for the marvelous work of Philip in these regions after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subsequent to the dispersion of the apostles to the ends of the earth by the bitter persecution of believers at Jerusalem.
2000 143:6.6 예수와 열두 사도는 8월말까지 게리짐 산에서 야영했다. 여러 도시에서 낮에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좋은 하늘나라 소식―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전도하고 밤에는 야영지에서 지냈다. 사마리아의 이 여러 도시에서 예수와 열두 사도가 한 일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많은 사람을 얻었고, 예수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을 모질게 박해함으로 사도들이 땅 끝까지 흩어지고 나서, 이 지역에서 빌립이 놀라운 일을 하도록 길을 예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1 CM 143:6.6 예수와 열두 사도는 8월말까지 그리심산에서 야영했다. 그들은 낮에는 도시에서 사마리아인에게 천국의 기쁜 소식--곧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전파했고 밤에는 야영지에서 지냈다. 예수와 열두 사도가 이 사마리아 성읍들에서 한 일은, 많은 혼을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있은 후,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에 대한 비참한 처형이 일어남으로써 사도들이 나중에 땅 끝까지 흩어지게 된 뒤에, 이 지역에서 빌립이 경이로운 업적을 남기도록 길을 예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7 URKA 143:6.6 예수와 열둘은 8월 말까지 게리짐 산에서 야영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도시들에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왕국의 좋은 소식─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설교하였고 밤에는 야영지에서 지냈다. 예수와 열둘이 이들 사마리아 도시들에서 했던 일은, 많은 혼들을 왕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뒤이어 예루살렘에서 믿는 자들에 대한 모진 박해로 말미암아 사도들이 나중에 땅 끝까지 흩어지게 된 후에, 이 지역에서의 빌립의 놀라운 일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데레 크게 이바지했다.
7. TEACHINGS ABOUT PRAYER AND WORSHIP
7. 기도와 예배에 관한 가르침
7. 기도와 경배에 대한 교훈
7. 기도와 경배에 대한 가르침들
7. 기도와 예배에 대한 가르침
1955 143:7.1 At the evening conferences on Mount Gerizim, Jesus taught many great truths, and in particular he laid emphasis on the following:
2000 143:7.1 게리짐 산에서 저녁 회의가 있을 때, 예수는 큰 진리를 많이 가르쳤고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2001 CM 143:7.1 예수께서는 그리심산의 저녁 회담에서 위대한 진리를 많이 가르쳤는데,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2007 URKA 143:7.1 게리짐 산에서의 저녁 회의들에서 예수는 많은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치셨는데 특히 다음의 것들을 강조하였다:
2025 143:7.1 게리짐 산에서 저녁 회의가 있을 때, 예수는 큰 진리를 많이 가르쳤고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1955 143:7.2 True religion is the act of an individual soul in its self-conscious relations with the Creator; organized religion is man’s attempt to socialize the worship of individual religionists.
2000 143:7.2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 자의식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생기는 개별 혼의 행위이다. 조직된 종교는, 사람이 개별 신자의 예배를 사회 활동으로 만드는 시도이다.
2001 CM 143:7.2 참된 종교는, 창조주와 자아-의식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생기는 개별 혼{魂}의 행동이며;조직된 종교는, 개별 종교인들의 경배를 사회화시키려고, 사람이 시도하는 것이다.
2007 URKA 143:7.2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의 자아-의식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혼의 행동이다; 조직된 종교는 개별적인 종교인들의 경배를 사회화시키려는 사람의 시도이다.
2025 143:7.2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 자의식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생기는 개별 혼의 행위이다. 조직된 종교는, 사람이 개별 신자의 예배를 사회적 활동으로 만드는 시도이다.
1955 143:7.3 Worship—contemplation of the spiritual—must alternate with service, contact with material reality. Work should alternate with play; religion should be balanced by humor. Profound philosophy should be relieved by rhythmic poetry. The strain of living—the time tension of personality—should be relaxed by the restfulness of worship. The feelings of insecurity arising from the fear of personality isolation in the universe should be antidoted by the faith contemplation of the Father and by the attempted realization of the Supreme.
2000 143:7.3 예배는―영적인 것을 숙고하는 것―봉사, 즉 물질적 현실과 접촉하는 것과 번갈아 있어야 한다. 일하고 노는 것을 번갈아 해야 하며,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얻어야 한다. 깊은 철학은 리듬 있는 시(詩)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 생활의 긴장은―인격이 시간 속에서 받는 긴장―예배가 주는 휴식으로 풀어야 한다. 우주에서 인격이 고립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불안한 느낌은 아버지를 믿고 숙고함으로, 그리고 최상위를 깨달으려고 애씀으로 중화(中和)되어야 한다.
2001 CM 143:7.3 경배는--곧 영적 세계에 대한 성찰은-- 물질 실체와 접촉하는 봉사와 번갈아 이뤄져야한다. 일과 기분 전환을 번갈아 해야하며;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이뤄야한다. 심오한 철학은 운율 있는 시로 완화돼야한다. 삶의 긴장--곧 시간 속에서 인격이 느끼는 긴장감--은 경배가 주는 휴식으로 풀어야한다. 인격이 우주에서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불안감은, 아버지에 대한 신앙 성찰로, 그리고 지존자에 대한 시도된 깨달음으로 해독{解毒}돼야한다.
2007 URKA 143:7.3 경배─영적인 것에서의 깊은-사색─는 봉사, 즉 물질적 실체와의 접촉과 교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일은 오락과 교대되어야만 한다;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심오한 철학은 운율이 있는 시로 압박감이 해소되어야 한다. 삶에서의 팽팽한 잡아당김─개인성의 시간 긴장─은 경배에서의 평온-가득함으로 이완되어야 한다. 우주 안에서 개인성 고립의 두려움으로부터 생기는 불안의 느낌은, 아버지에 대한 신앙적 깊은-사색으로 그리고 최극자에 대한 실체화 실현을 시도하는 것으로써 해독(解毒)되어야만 한다.
2025 143:7.3 예배는 ― 영적인 것을 숙고하는 것 ― 봉사, 즉 물질적 현실과 접촉하는 것과 번갈아 있어야 한다. 일하고 노는 것을 번갈아 해야 하며,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얻어야 한다. 깊은 철학은 리듬 있는 시(詩)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 생활의 긴장 ― 인격이 시간 속에서 받는 긴장 ― 은 예배가 주는 휴식으로 풀어야 한다. 우주에서 인격이 고립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불안한 느낌은 아버지를 믿고 숙고함으로, 그리고 최상위를 깨달으려고 애씀으로 중화(中和)되어야 한다.
1955 143:7.4 Prayer is designed to make man less thinking but more realizing; it is not designed to increase knowledge but rather to expand insight.
2000 143:7.4 기도는 사람에게 머리를 덜 쓰고 깨달음을 더 얻게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기도는 지식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을 키우도록 고안되어 있다.
2001 CM 143:7.4 기도는 사람에게 생각을 덜 하게 하는 반면, 더 깨닫도록 고안됐으며;지식을 증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을 확장하도록 고안됐다.
2007 URKA 143:7.4 기도는 사람에게 사고를 더욱 적게, 그러나실체화하는 것을 더욱 많게 만들도록 고안되어 있다; 기도는 지식을 증가시키려고 고안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통찰력을 확대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2025 143:7.4 기도는 사람에게 머리를 덜 쓰고 더욱 깨닫게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기도는 지식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을 키우도록 고안되어 있다.
1955 143:7.5 Worship is intended to anticipate the better life ahead and then to reflect these new spiritual significances back onto the life which now is. Prayer is spiritually sustaining, but worship is divinely creative.
2000 143:7.5 예배를 드리는 의도는 앞으로 개선된 생활을 예상하고 다음에 이 새로운 영적 의미를 현재 닥친 생활에 다시 비쳐 보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 자양분을 주지만 예배는 신성하게 창조하는 성향이 있다.
2001 CM 143:7.5 경배는 앞날에 더 나은 삶을 기대하도록, 그리고 그다음에는 이 새로운 영적 의미를 현 상태의 삶에 반영하도록 의도됐다. 기도는 영적으로 유익하지만, 경배는 신성하게 창조적이다.
2007 URKA 143:7.5 경배는 앞으로의 보다 나은 일생을 예상하고 그래서 이들 새로운 영적 중요한-의미를 현재의 일생에 반영하기 위하여 의도되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으로 지탱시키는 것이지만, 경배는 신성하게 창조적인 것이다.
2025 143:7.5 예배를 드리는 의도는 앞으로 개선된 생활을 예상하고 다음에 이 새로운 영적 의미를 현재 닥친 생활에 다시 비쳐 보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 자양분을 주지만 예배는 신성하게 창조하는 성향이 있다.
1955 143:7.6 Worship is the technique of looking to the One for the inspiration of service to the many. Worship is the yardstick which measures the extent of the soul’s detachment from the material universe and its simultaneous and secure attachment to the spiritual realities of all creation.
2000 143:7.6 예배는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나인 분을 바라보는 기술이다. 예배는 혼이 물질 우주로부터 얼마큼 떨어져 있는가를 재고, 또한 혼이 동시에 모든 창조의 영적 실체들에 얼마나 안전하게 붙어 있는가 재는 척도이다.
2001 CM 143:7.6 경배는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고 싶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한 분에게 주목하는 기법이다. 경배는, 물질 우주로부터 혼이 분리되는 정도를 재고, 또한 모든 창조물의 영적 실체에 대하여 동시적이고 안전한 애착을 혼이 얼마나 갖고 있는지 재는 척도다.
2007 URKA 143:7.6 경배는 많은 이에게 봉사하는 영감을 얻기 위하여 한분을 쳐다보는 것에서의 기법이다. 경배는, 혼이 물질적 우주로부터 초연함이 확장된 범위와, 또한 동시에 혼이 모든 창조의 영적 실체들과 안전하게 결속되어 있는 범위를 재는 척도이다.
2025 143:7.6 예배는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나인 분을 바라보는 기술이다. 예배는 혼이 물질 우주로부터 얼마큼 떨어져 있는가를 재고, 또한 혼이 동시에 모든 창조의 영적 실체들에 얼마나 안전하게 붙어 있는가 재는 척도이다.
1955 143:7.7 Prayer is self-reminding—sublime thinking; worship is self-forgetting—superthinking. Worship is effortless attention, true and ideal soul rest, a form of restful spiritual exertion.
2000 143:7.7 기도는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숭고한 사고(思考)이다. 예배는 자아를 잊는 것이다―초월 사고이다. 예배는 힘 안드는 집중이요, 혼의 참되고 이상적인 휴식, 일종의 편안한 영적 노력이다.
2001 CM 143:7.7 기도는 자아를-일깨우며--곧 탁월한 사고이며;경배는 자아를-잊게한다--곧 초월적 사고{思考}다. 경배는 힘들지 않는 집중이며, 참되고 이상적인 혼의 휴식이며, 편안함을 주는 일종의 영적 노력이다.
2007 URKA 143:7.7 기도는 자아-상기하는 것이다─숭고한 사고이다; 경배는 자아-잊고있는 것이다─초(超)사고이다. 경배는 노력을 쏟지않는 집중이며, 참되고 이상적인 혼 휴식이며, 일종의 평안이 넘치는 영적 분발이다.
2025 143:7.7 기도는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 ― 숭고한 사고(思考)이다. 예배는 자아를 잊는 것이다 ― 초월 사고이다. 예배는 힘 안 드는 집중이요, 혼의 참되고 이상적인 휴식, 일종의 편안한 영적 노력이다.
1955 143:7.8 Worship is the act of a part identifying itself with the Whole; the finite with the Infinite; the son with the Father; time in the act of striking step with eternity. Worship is the act of the son’s personal communion with the divine Father, the assumption of refreshing, creative, fraternal, and romantic attitudes by the human soul-spirit.
2000 143:7.8 예배는 한 부분이 전체와, 그리고 유한자가 무한자와, 아들이 아버지와 일체가 되는 행위요, 시간이 영원과 발걸음을 맞추는 행위이다. 예배는 아들이 신다운 아버지와 몸소 친교하는 행위요, 인간의 혼과 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인 태도, 친근하고 열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2001 CM 143:7.8 경배는, 부분과 전체를;유한자와 무한자를;자녀와 아버지를;시간과 영원을 동일시하는 행위다. 경배는, 자녀가 신성한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행위요, 인간의 혼과-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이고 우애 있고 열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2007 URKA 143:7.8 경배는 한 부분이 그 자신을 전체와 정체화하고있는 활동이다; 유한자가 무한자와 정체화하고있는 활동이다; 자녀가 아버지와 정체화하고있는 활동이다; 두들기는 발걸음의 활동으로 시간이 영원과 정체화하고있는 활동이다. 경배는 신성한 아버지와의 개인적 교제행위, 인간의 혼-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이며, 형제우애에서의 그리고 열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1955 143:7.9 Although the apostles grasped only a few of his teachings at the camp, other worlds did, and other generations on earth will.
2000 143:7.9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가 가르친 것 중에서 몇 가지밖에 깨닫지 못했지만 다른 세상들은 그 가르침을 깨달았고 땅에서 다른 세대들도 그럴 것이다.
2001 CM 143:7.9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의 교훈 가운데 몇 가지밖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다른 세계들은 그의 교훈을 파악했고, 이 세상의 다른 세대들도 파악하게 될 것이다.
2007 URKA 143:7.9 야영지에 있던 사도들은 그의 가르침들의 단지 몇 가지만을 파악했을 뿐이었지만, 다른 세계들은 파악하였으며, 이 땅의 다른 세대들도 파악하게 될 것이다.
2025 143:7.9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가 가르친 것 중에서 몇 가지만 깨달았지만 다른 세상들은 그 가르침을 깨달았고 땅에서 다른 세대들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