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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THE DECAPOLIS TOUR
제 159 편데카폴리스 여행
제159편: 데가볼리 여행
제 159 편: 데카폴리스 여행
데카폴리스 여행
1955 159:0.1 WHEN Jesus and the twelve arrived at Magadan Park, they found awaiting them a group of almost one hundred evangelists and disciples, including the women’s corps, and they were ready immediately to begin the teaching and preaching tour of the cities of the Decapolis.
2000 159:0.1 예수와 열두 사람이 마가단 공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인단까지 포함하여 거의 1백 명의 전도사와 제자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가르치고 전도(傳道)하는 여행을 시작하려고 즉시 준비가 되었다.
2001 CM 159:0.1 마가단 공원에 도착했을 때 예수와 열두 사도는, 여자 단체도 포함하여 거의 100명 정도 되는 전도자와 제자가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했으며, 데가볼리의 여러 도시에서 가르치고 전도하는 여행을 시작하도록 즉시 준비됐다.
2007 URKA 159:0.1 예수와 열두 사도들이 마가단 공원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은 여인 무리단을 포함하여 거의 백 명 정도 되는 전도자들과 제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가르치며 전파하는 전도 여행을 즉각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25 159:0.1 예수와 열두 사람이 마가단 공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인단까지 포함하여 거의 1백 명의 전도사와 제자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가르치고 전도(傳道)하는 여행을 시작하려고 즉시 준비가 되었다.
1955 159:0.2 On this Thursday morning, August 18, the Master called his followers together and directed that each of the apostles should associate himself with one of the twelve evangelists, and that with others of the evangelists they should go out in twelve groups to labor in the cities and villages of the Decapolis. The women’s corps and others of the disciples he directed to remain with him. Jesus allotted four weeks to this tour, instructing his followers to return to Magadan not later than Friday, September 16. He promised to visit them often during this time. In the course of this month these twelve groups labored in Gerasa, Gamala, Hippos, Zaphon, Gadara, Abila, Edrei, Philadelphia, Heshbon, Dium, Scythopolis, and many other cities. Throughout this tour no miracles of healing or other extraordinary events occurred.
2000 159:0.2 8월 18일, 이 목요일 아침에, 주는 추종자들을 한데 불러 모으고, 사도들은 각자 열두 전도사 가운데 하나와 함께 협동해야 한다, 나머지 전도사들과 함께 열두 무리를 지어, 나가서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수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여인단과 다른 제자들은 그와 함께 남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예수는 이 여행에 4주를 배당하였고, 추종자들에게 9월 16일 금요일을 넘기지 않고 마가단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기간에 그들을 자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 달이 지나는 동안에 이 열두 무리는 게라사ㆍ가말라ㆍ히포, 자폰ㆍ가다라ㆍ아빌라, 에드레이ㆍ필라델피아ㆍ헤스본, 디움ㆍ스키토폴리스,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에서 수고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내내, 병 고치는 기적이나 다른 특별한 사건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2001 CM 159:0.2 8월 18일 이 목요일 아침에, 주님께서는 따르는 무리를 불러 모아서, 사도들마다 열두 전도자 가운데 하나와 짝을 짓고, 나머지 전도자들과 함께 열두 집단으로 나뉘어, 데가볼리의 도시와 마을들로 나가서 일하도록 지시했다. 여자 단체와 다른 제자들은 자신과 함께 남아있도록 지시했다. 예수께서는 이 전도여행에 4주{週}를 보내기로 했고, 늦어도 9월 16일 금요일까지 마가단으로 모두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기간에 그들을 종종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달이 지나는 동안 이 열두 집단은, 거라사, 가말라, 힙보, 자폰, 가다라, 아빌라, 에드레이, 필라델피아, 헤시본, 디움, 스키토폴리스, 그리고 기타 여러 도시에서 일했다. 이 여행 내내, 치유하는 기적 또는 다른 특별한 사건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2007 URKA 159:0.2 8월 18일, 목요일인 이 날 아침에, 주(主)는 자신의 추종지들을 모두 불러서 사도들은 각자 열두 전도자들 중 하나와 관계적-연합을 이루어야 하고, 나머지 전도자들도 그런 식으로 관계적-연합을 이루어 열두 집단으로 나뉘어서 데카폴리스의 도시들과 마을들에 나가 사명활동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여자 대원들과 다른 제자들은 자신과 함께 남아 있도록 지시하였다. 예수는 이 여행에 4 주간의 기간을 할당하였으며,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9월 16일 금요일을 넘기지 말고 마가단으로 모두 돌아오라고 지침을 주었다. 예수는 이 시간 동안에 종종 그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달이 지나는 동안, 열두 집단은 게라사, 가말라, 히포, 자폰, 가다라, 아빌라, 에드레이, 필라델피아, 헤스본, 디움, 스키토폴리스, 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 수고하였다. 이 여행을 두루 통하여 질병을 치유하는 기적이나 다른 비상한 사건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2025 159:0.2 8월 18일, 이 목요일 아침에, 주는 추종자들을 한데 불러 모으고, 사도들은 각자 열두 전도사 가운데 하나와 함께 협동해야 한다, 나머지 전도사들과 함께 열두 무리를 지어, 나가서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수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여인단과 다른 제자들은 그와 함께 남아 있으라고 지시했다. 예수는 이 여행에 4주를 배당하였고, 추종자들에게 9월 16일 금요일을 넘기지 않고 마가단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 기간에 그들을 자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 달이 지나는 동안에 이 열두 무리는 게라사ㆍ가말라ㆍ히포, 자폰ㆍ가다라ㆍ아빌라, 에드레이ㆍ필라델피아ㆍ헤스본, 디움ㆍ스키토폴리스,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에서 수고했다. 이 여행을 통해서 내내, 병 고치는 기적이나 다른 특별한 사건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1. THE SERMON ON FORGIVENESS
1. 용서에 관한 설교
1. 용서에 관한 설교
1. 용서에 대한 교훈
1. 용서에 관한 설교
1955 159:1.1 One evening at Hippos, in answer to a disciple’s question, Jesus taught the lesson on forgiveness. Said the Master:
2000 159:1.1 히포에서 어느 날 저녁에 한 제자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예수는 용서에 관하여 교훈을 가르쳤다. 주는 말했다:
2001 CM 159:1.1 어느 날 저녁 힙보에서, 예수께서는 한 제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용서에 대한 훈계를 가르쳤다. 주님께서 말씀했다:
2007 URKA 159:1.1 예수는 어느 날 저녁 히포에서, 한 제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용서에 대한 교훈을 가르쳤다. 주(主)는 말했다:
2025 159:1.1 히포에서 어느 날 저녁에 한 제자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예수는 용서에 관하여 교훈을 가르쳤다. 주는 말씀했다:
1955 159:1.2 “If a kindhearted man has a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goes astray, does he not immediately leave the ninety and nine and go out in search of the one that has gone astray? And if he is a good shepherd, will he not keep up his quest for the lost sheep until he finds it? And then, when the shepherd has found his lost sheep, he lays it over his shoulder and, going home rejoicing, calls to his friends and neighbors, ‘Rejoice with me, for I have found my sheep that was lost.’ I declare that there is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 and nine righteous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Even so, it is not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that one of these little ones should go astray, much less that they should perish. In your religion God may receive repentant sinners;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 goes forth to find them even before they have seriously thought of repentance.
2000 159:1.2 “마음이 친절한 어느 사람이 양 1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으면, 즉시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양을 찾아서 나가지 않느냐? 그가 좋은 목자이면,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찾지 않겠느냐? 그리고 나서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내면, 그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가서 친구와 이웃들에게 소리치리라, ‘함께 즐거워하자,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아냈음이라.’ 내가 선언하노니, 회개할 필요 없는 올바른 아흔아홉 사람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놓고서 하늘에서 더욱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렇다 해도, 이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죽기는커녕 길을 잃는 것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너희의 종교에는 하나님이 뉘우치는 죄인들을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하늘나라의 복음에서 아버지는 저희가 뉘우치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기도 전에 저희를 찾으러 나가시느니라.
2001 CM 159:1.2 “어느 마음씨 고운 사람이 양 100마리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즉시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그가 선한 목자라면, 발견할 때까지 그 잃은 양을 두루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잃었던 양을 목자가 마침내 찾으면, 그 양을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집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을 초청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크게 기뻐합시다.’ 내가 선언하는데,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로운 사람 아흔아홉 명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명을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런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가 멸망하는 것은커녕 길을 잃게 하는 것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너희 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을 받아들이실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천국 복음에 의거하면, 죄인이 진지하게 회개할 생각을 품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먼저 저희를 찾아 나서신다.
2007 URKA 159:1.2 “만일 어느 인정 많은 사람이 일백 마리의 양을 소유하고 있고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다면, 그가 즉각적으로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 두고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그리고 만일 그가 선한 목자라면, 그가 그 잃은 양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탐색하지 않겠느냐? 마침내 목자가 잃은 양을 찾으면, 그 양을 그의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칠 것이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합시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로운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명의 죄인을 더 기뻐한다는 것을 내가 선언한다. 그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길을 잃도록 하는 것조차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며, 하물며 그들이 멸망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너희 종교에서는 하느님이 회개하는 죄인들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국 복음 안에서는 아버지는 그들이 진지하게 회개의 생각을 가지기도 전에, 먼저 그들을 찾아내려고 나아간다.
2025 159:1.2 “마음이 친절한 어느 사람이 양 1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으면, 즉시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양을 찾아서 나가지 않느냐? 그가 좋은 목자이면,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찾지 않겠느냐? 다음에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내면, 그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가서 친구와 이웃들에게 소리치리라, ‘함께 즐거워하자,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아냈음이라.’ 내가 선언하노니, 회개할 필요가 없는 올바른 아흔아홉 사람보다 뉘우치는 죄인 하나를 놓고서 하늘에서 더욱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렇다 해도, 이 어린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죽기는커녕 길을 잃는 것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너희의 종교에는 하나님이 뉘우치는 죄인들을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하늘나라의 복음에서 아버지는 저희가 회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전에 저희를 찾으러 나가시느니라.[1]
1955 159:1.3 “The Father in heaven loves his children, and therefore should you learn to love one another; the Father in heaven forgives you your sins; therefore should you learn to forgive one another.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 go to him and with tact and patience show him his fault. And do all this between you and him alone. If he will listen to you, then have you won your brother. But if your brother will not hear you, if he persists in the error of his way, go again to him, taking with you one or two mutual friends that you may thus have two or even three witnesses to confirm your testimony and establish the fact that you have dealt justly and mercifully with your offending brother. Now if he refuses to hear your brethren, you may tell the whole story to the congregation, and then, if he refuses to hear the brotherhood, let them take such action as they deem wise; let such an unruly member become an outcast from the kingdom. While you cannot pretend to sit in judgment on the souls of your fellows, and while you may not forgive sins or otherwise presume to usurp the prerogatives of the supervisors of the heavenly hosts, at the same time, it has been committed to your hands that you should maintain temporal order in the kingdom on earth. While you may not meddle with the divine decrees concerning eternal life, you shall determine the issues of conduct as they concern the temporal welfare of the brotherhood on earth. And so, in all these matters connected with the discipline of the brotherhood, whatsoever you shall decree on earth, shall be recognized in heaven. Although you cannot determine the eternal fate of the individual, you may legislate regarding the conduct of the group, for, where two or three of you agree concerning any of these things and ask of me, it shall be done for you if your petition is not inconsistent with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And all this is ever true, for, where two or three believers are gathered together,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2000 159:1.3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너희의 죄를 용서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용서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그에게 가서 요령 있고 참을성 있게 잘못을 보여주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너와 그 사람 둘이서만 하라. 그가 네 말을 듣거든 너는 형제를 설득하였느니라. 그러나 형제가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가 자기의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든, 그에게 다시 가라. 서로 친구인 사람 한두 명을 데리고 가서, 이처럼 둘 아니 세 증인이라도 너의 증언을 확인하고, 죄를 저지르는 형제를 네가 공정하고 자비롭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라. 이제 그가 형제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든 너는 회중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도 좋고, 다음에 그가 단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든 저희가 현명하다고 판단하는 행동을 택하게 하라. 다루기 힘든 그런 회원이 하늘나라에서 추방자가 되게 하라. 너희는 동료들의 혼을 심판하는 시늉을 할 수 없고 너희가 죄를 용서해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하늘 무리의 감독자들의 특권을 주제넘게 빼앗을 수 없지만, 동시에 세상의 나라에서 현세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너희 손에 맡겨졌느니라. 영생에 대한 신의 선포에 너희가 개입해서는 안될지라도, 땅에서 너희는 형제들이 현세에 누리는 복지에 관계되는 행동 문제들을 결정할지니라. 그래서 형제들을 훈련시키는 데 관련된 이 모든 문제에서 땅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포하든지 하늘에서 인정받을지니라. 비록 너희가 개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없어도 집단 행위에 관하여 너희는 법을 제정해도 좋으니, 이는 이 일 중에 어떤 것에 관해서도 너희 가운데 두셋이 찬성하고 내게 요청하면, 그 간청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 모든 것이 언제라도 참말이니, 믿는 사람 두셋이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 가운데 있느니라.”
2001 CM 159:1.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니, 너희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기를 배워야하며;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 죄를 용서하시니, 너희도 마땅히 서로 용서하기를 배워야한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지으면, 그에게 가서 재치와 인내심을 갖고 그의 허물을 지적해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와 그 형제 둘이서만 하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형제가 네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계속 잘못을 행하면, 그 형제와 너에게 친구인 한두 사람을 데리고 그에게 다시 가되, 그렇게 둘이나 세 증인이라도, 너에게 죄 범한 형제를 네가 정당하게 그리고 자비롭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시키고, 너의 증언을 확증할 수 있게 하라. 그가 형제들의 말도 거절하면, 회중{會衆}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도 무방하고, 게다가 그가 모든 형제의 말도 거절하면, 그들로 하여금 현명하다고 판단하는 조치를 취하게 하며;제멋대로인 그 회원을 천국 밖으로 쫓아내라. 너희가 동료의 혼을 심판하겠다고 자처할 수 없고, 죄를 용서하거나 또는 하늘 무리 감독자들의 특권을 감히 빼앗지도 못하겠지만, 이 세상 나라에서 현세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너희에게 위임됐다. 너희가 영원한 생명에 관한 신의 판결에 간섭할 수는 없지만, 이 땅에서 형제단체의 현세적 복지에 관련하여 행동하는 문제는 너희가 결정해야 한다. 또한 형제간의 관계를 훈련시키는 것과 관련된 이 모든 문제에서, 너희가 땅에서 판결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그대로 인지{認知}될 것이다. 너희가 각 개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없더라도, 그 모임의 운영에 관련된 규율을 제정할 수는 있는데, 너희 가운데 두 세 사람이 이 일 가운데 어떤 것에든지 의견이 일치되어 나에게 요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너희가 요청한 것이 너희에게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은 항상 참될 것이니, 두세 신자가 함께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2007 URKA 159:1.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니, 너희들도 마땅히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 죄를 용서하시니, 너희들도 마땅히 서로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만일 너희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지으면, 그에게 가서 재치와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결함을 지적해 주어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와 그 형제 둘이서만 하도록 하라. 만일 그 형제가 네 말을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 형제가 네 말을 듣지 않고, 그의 방식에서의 잘못을 고집하면, 네가 다시 가되, 모두에게 친구인 둘 혹은 세 사람을 데리고 함께 가서 네 증언을 확인하는 증인으로 하고 그리고 너에게 죄를 저지르고 있는 형제를 네가 자비롭고도 공정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라. 만일 그가 형제들의 말도 거절하면, 회중(會衆)에게 그 모든 사실을 알려도 무방하고, 만일 그가 모든 형제들의 말도 거절하면, 그들이 현명한 생각에 따라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 자기 멋대로 행하는 그런 구성원은 왕국 밖으로 쫓아내도록 하라. 그리고 한편, 너희가 마치 네 동료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기라도 한 것처럼 행하거나, 죄를 용서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마치 하늘 무리 감독자들의 특권을 주제넘게 빼앗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 세상 왕국 안에서의 현세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권한은 너희 손에 맡겨져 있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신성한 판결에 너희가 쓸데없이 관여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서 그들이 형제신분의 현세적 복지에 관계하도록 행동하는 문제는 네가 결정해도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형제신분의 단련과 관련된 이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너희가 땅에서 선포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늘에서 인지(認知)될 것이다. 비록 너희가 개별존재의 영원한 숙명을 결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집단의 행위에 관하여 너희가 규율을 제정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너희 중에 두세 사람이 이 일들 중에 무엇이든지 의견이 일치되고 또한 내게 요청한 것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한, 너희가 청원은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친실이니, 이는 두세 신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2025 159:1.3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너희의 죄를 용서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용서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그에게 가서 요령 있고 참을성 있게 그의 잘못을 보여주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너와 그 사람 둘이서만 하라. 그가 네 말을 듣거든 너는 형제를 설득하였느니라. 그러나 형제가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가 자기의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든, 그에게 다시 가라[2]. 서로 친구인 사람 한두 명을 데리고 가서, 이처럼 둘 아니 세 증인이라도 너의 증언을 확인하고, 죄를 저지르는 형제를 네가 공정하고 자비롭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라
[3]. 이제 그가 형제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든 너는 회중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도 좋고, 다음에 그가 단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든 저희가 현명하다고 판단하는 행동을 택하게 하라. 다루기 힘든 그런 회원이 하늘나라에서 추방자가 되게 하라. 너희는 동료들의 혼을 심판하는 시늉을 할 수 없고 너희가 죄를 용서해 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하늘 무리의 감독자들의 특권을 주제넘게 빼앗을 수 없지만, 동시에 세상의 나라에서 현세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너희 손에 맡겨졌느니라. 영생에 대한 신의 선포에 너희가 개입해서는 안 될지라도, 땅에서 너희는 형제들이 현세에 누리는 복지에 관계되는 행동 문제들을 결정할지니라
[4]. 그래서 형제들을 훈련시키는 데 관련된 이 모든 문제에서 땅에서 너희가 무엇을 선포하든지 하늘에서 인정받을지니라. 비록 너희가 개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수 없어도 집단 행위에 관하여 너희는 법을 제정해도 좋으니, 이는 이 일 중에 어떤 것에 관해서도 너희 가운데 두셋이 찬성하고 내게 요청하면, 그 간청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 모든 것이 언제라도 참말이니, 믿는 사람 두셋이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 가운데 있느니라.”
1955 159:1.4 Simon Peter was the apostle in charge of the workers at Hippos, and when he heard Jesus thus speak, he asked: “Lord, how often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Until seven times?” And Jesus answered Peter: “Not only seven times but even to seventy times and seven. Therefore may the kingdom of heaven be likened to a certain king who ordered a financial reckoning with his stewards. And when they had begun to conduct this examination of accounts, one of his chief retainers was brought before him confessing that he owed his king ten thousand talents. Now this officer of the king’s court pleaded that hard times had come upon him, and that he did not have wherewith to pay this obligation. And so the king commanded that his property be confiscated, and that his children be sold to pay his debt. When this chief steward heard this stern decree, he fell down on his face before the king and implored him to have mercy and grant him more time, saying, ‘Lord, have a little mor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ay you all.’ And when the king looked upon this negligent servant and his family, he was moved with compassion. He ordered that he should be released, and that the loan should be wholly forgiven.
2000 159:1.4 시몬 베드로는 히포에 있는 일꾼들을 책임진 사도였다.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듣자 그는 말했다: “주여, 얼마나 자주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어도 그를 용서하나이까? 일곱 번까지이나이까?” 예수는 베드로에게 대답했다: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여라.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집사들과 함께 회계(會計)를 명한 어떤 임금과 견주어도 좋으니라. 저희가 이 장부(帳簿) 검사를 시작하고 나서, 우두머리 고용자들 중에서 하나가 앞에 끌려 와서 그가 임금에게 1만 달란트를 빚졌다고 고백하였더라. 임금의 궁정에 있는 이 관리는 어려운 시절이 그에게 닥쳤고 이 빚을 갚을 물건이 없다고 간청하였더라. 그래서 그 임금은 재산을 몰수하고 그 빚을 갚도록 그의 자식들을 팔라고 명령하였는지라. 이 엄한 선포를 듣자 이 우두머리 집사는 임금 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베풀고 그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임금에게 탄원하며 말하였더라, ‘주여, 나를 조금 더 참아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모두 갚으리이다.’ 이 나태한 종과 가족을 바라보았을 때 임금은 동정하여 마음이 움직였더라. 임금은 그를 풀어주라, 빚을 전부 용서하라 명하였더라.
2001 CM 159:1.4 힙보에서 사역하는 자들의 책임을 맡은 사도인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듣고 질문했다:“주님,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했다:“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마치, 청지기들에게 재정결산{財政決算}을 하도록 명한 어떤 임금과 같다. 그들이 회계 장부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주요 고용인들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끌려와서, 왕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이때 왕의 궁전에서 일하는 이 관원은, 어려움이 몰려왔고 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왕은 그가 소유한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아이들을 팔아서라도 그 빚을 갚으라고 명했다. 이 최고책임 청지기는 이런 엄중한 판결을 듣고 왕 앞에 엎드려서, 자비를 베풀어 시간을 더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말했다;‘주여,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다 갚겠습니다.’ 과실을 범한 이 종과 그 가족을 보자, 왕은 불쌍히 여기게 됐다. 왕은 그를 놓아주고, 빚을 모두 탕감해주라고 명했다.
2007 URKA 159:1.4 히포에 있는 일꾼들을 책임진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예수가 말하는 것을 듣고 질문했다; “주님, 내 형제가 내게 대하여 죄를 지을 때, 내가 얼마나 용서를 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입니까?” 그러자 예수가 베드로에게 대답하였다: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은 마치 자신의 청지기에게 회계 계산을 명한 어떤 임금과 같다. 그들이 이 장부의 조사를 수행하기 시작하자, 그의 우두머리 신하들 중의 하나가 불려 나와 자신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고 고백하였다. 지금 왕의 궁정에서 일하는 이 관리가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기 때문에 자기가 이 채무를 갚을 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변론하였다. 그러자 왕은 그가 소유한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아이들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명하였다. 그 우두머리 청지기가 이 준엄한 판결을 듣고, 그는 왕 앞에 엎드려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자기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간청하여 말하기를, ‘주님이시여, 나를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모두 갚겠습니다.’ 그리고 왕이 이 부주의한 관리와 그의 가족들을 바라보자, 그는 연민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그를 풀어주고 또한 그 빛을 전부 탕감해 주라고 명령하였다.
2025 159:1.4 시몬 베드로는 히포에 있는 일꾼들을 책임진 사도였다[5].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듣자 그는 말했다: “주여, 얼마나 자주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어도 그를 용서하나이까? 일곱 번까지이나이까?” 예수는 베드로에게 대답했다: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여라.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집사들과 함께 회계(會計)를 명한 어떤 임금과 견주어도 좋으니라. 저희가 이 장부(帳簿) 검사를 시작하고 나서, 우두머리 고용자들 중에서 하나가 앞에 끌려와서 그가 임금에게 1만 달란트를 빚졌다고 고백하였더라. 임금의 궁정에 있는 이 관리는 어려운 시절이 그에게 닥쳤고 이 빚을 갚을 물건이 없다고 간청하였더라. 그래서 그 임금은 재산을 몰수하고 그 빚을 갚도록 그의 자식들을 팔라고 명령하였는지라. 이 엄한 선포를 듣자 이 우두머리 집사는 임금 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조아리며, 자비를 베풀고 그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임금에게 탄원하며 말하였더라, ‘주여, 나를 조금 더 참아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모두 갚으리이다.’ 이 나태한 종과 가족을 바라보았을 때 임금은 동정하여 마음이 움직였더라
[6]. 임금은 그를 풀어주라, 빚을 전부 용서하라 명하였더라.
1955 159:1.5 “And this chief steward, having thus received mercy and forgiveness at the hands of the king, went about his business, and finding one of his subordinate stewards who owed him a mere hundred denarii, he laid hold upon him and, taking him by the throat, said, ‘Pay me all you owe.’ And then did this fellow steward fall down before the chief steward and, beseeching him, said: ‘Only hav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resently be able to pay you.’ But the chief steward would not show mercy to his fellow steward but rather had him cast in prison until he should pay his debt. When his fellow servants saw what had happened, they were so distressed that they went and told their lord and master, the king. When the king heard of the doings of his chief steward, he called this ungrateful and unforgiving man before him and said: ‘You are a wicked and unworthy steward. When you sought for compassion, I freely forgave you your entire debt. Why did you not also show mercy to your fellow steward, even as I showed mercy to you?’ And the king was so very angry that he delivered his ungrateful chief steward to the jailers that they might hold him until he had paid all that was due. And even so shall my heavenly Father show the more abundant mercy to those who freely show mercy to their fellows. How can you come to God asking consideration for your shortcomings when you are wont to chastise your brethren for being guilty of these same human frailties? I say to all of you: Freely you have received the good things of the kingdom; therefore freely give to your fellows on earth.”
2000 159:1.5 “이 우두머리 집사가 임금의 손에서 이렇게 자비와 용서를 받고 나서 일에 골몰하였는데, 그에게 겨우 1백 데나리온 빚진 그의 하급 집사(執事) 하나를 발견하고서 그를 붙잡아 멱살을 잡고 말하였더라, ‘네가 빚진 것을 모두 내라.’ 그리고 나서 이 동료 집사는 우두머리 집사 앞에 쓰러져서 탄원하며 말하였더라, ‘나를 참아 주소서. 그렇게만 하시면 내가 곧 당신께 갚을 수 있으리이다.’ 그러나 우두머리 집사는 동료 집사에게 자비를 보이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던졌더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았을 때 동료 종들은 아주 마음이 아파서 저희의 주, 상전인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는지라. 우두머리 집사가 한 일을 들었을 때, 그 임금은 고마움을 모르고 용서하지 않는 이 사람을 앞에 부르고 일렀더라: ‘너는 악하고 자격이 없는 집사이라. 네가 동정을 구했을 때 나는 너의 빚을 다 아낌없이 용서하였느니라. 내가 너에게 자비를 보인 것 같이, 어찌하여 너도 동료 집사에게 자비를 보이지 아니하였느냐?’ 그 임금은 아주 몹시 성이 나서, 고마움을 모르는 우두머리 집사가 빚진 것을 모두 갚을 때까지 붙들어 두도록 간수에게 그를 넘겨주었더라. 그렇다 해도 동료에게 자비를 아낌없이 보이는 자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더욱 풍부하게 자비를 보이리라. 똑같은 이 인간의 약점을 가진 죄 때문에 너희가 형제를 꾸짖는 버릇이 있는데 어찌 너희의 부족함을 배려해 달라고 하나님께 올 수 있느냐? 내가 너희 모두에게 이르노니, 하늘나라의 좋은 것들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땅에 있는 동료들에게 거저 주라.”
2001 CM 159:1.5 “이 최고책임 청지기는, 왕에게서 그렇게 자비와 용서를 받은 후에, 자기 일을 보러 나갔고, 자신에게 오직 일백 데나리 밖에 빚지지 않은 부하 청지기 하나를 발견하자, 그를 붙잡아 목을 조르면서, ‘나에게 빚진 것을 모두 갚으라’고 했다. 그러자 이 부하 청지기는, 최고책임 청지기 앞에 엎드려 간청하면서 말했다:‘제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곧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최고책임 청지기는 부하 청지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뒀다. 다른 부하 청지기들이 돼가는 일을 보고, 너무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주인이고 지배자인 그 왕에게 나아가 그 상관에 대해 털어놨다. 왕이 최고책임 청지기의 모든 소행을 듣고, 은혜를 모르고 용서를 베풀지 않는 이 사람을 자기 앞으로 부르고 말했다:‘너는 악하고 무익한 청지기다. 네가 동정을 구할 때, 나는 너를 불쌍히 여겨서 너를 용서하고, 모든 빚을 값없이 탕감해줬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너의 부하 청지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아니했느냐?’ 왕은 매우 화가 나서, 은혜를 모르는 최고책임 청지기를 옥졸들에게 내주어,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가두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동료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더 풍성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이런 동일한 인간적 결점으로 인해 형제가 잘못을 범한 것에 대해 너희가 습관적으로 질책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와 너희의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겠느냐? 너희 모두에게 말하는데:너희가 천국의 좋은 것들을 거저 받았으니;너희도 이 땅에서 동료들에게 거저 줘라.”
2007 URKA 159:1.5 “그래서 왕의 손에서 이렇게 자비와 용서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 우두머리 청지기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는 자기 아래에 있는 청지기들 가운데 겨우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를 붙잡고 멱살을 조르며 ‘네가 내게 빚진 것을 모두 갚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 동료 청지기는 그 우두머리 청지기 앞에 엎드려, 그에게 탄원하며 말했다; ‘단지 나에 대해 참아 주십시오. 내가 곧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우두머리 집사는 그의 동료 청지기에게 자비를 보이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가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청지기의 다른 동료 하인들이 되어 가는 일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힘들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주님이자 주(主)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다. 왕이 자신의 우두머리 청지기의 행한 것을 듣고, 이 은혜를 모르고 용서하지 않는 그를 자기 앞으로 불러서 말했다; ‘너는 사악하고 무익한 청지기이다. 네가 나에게 깊은 동정심을 구했을 때, 나는 너를 아낌없이 용서하여 너의 빚 전부를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네게 자비를 보였는 데 너는 어찌하여 그처럼 네 동료 청지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였느냐?’ 왕은 매우 화가 나서 은혜를 모르는 우두머리 청지기를 옥졸들에게 내어주어 자기에게 진 빚을 모두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도록 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도 자신의 동료들에게 아낌없이 자비를 보이는 자들에게 더욱 풍성한 자비를 보여줄 것이다. 이런 똑같은 인간적인 약점에서의 죄책감에 대하여 너희 형제를 꾸짖는 버릇이 있는데, 어떻게 너희는 하느님에게 나아와 너희의 단점을 고려해 달라고 하느님께 바랄 수 있겠느냐? 너희 모두에게 말한다: 너희는 왕국으로부터 그 선한 것들을 거저 받아들였다; 그러니 너희도 이 땅에 있는 너희 동료들에게 거저 주라.”
2025 159:1.5 “이 우두머리 집사가 임금의 손에서 이렇게 자비와 용서를 받고 나서 일에 골몰하였는데, 그에게 겨우 1백 데나리온 빚진 그의 하급 집사(執事) 하나를 발견하고서 그를 붙잡아 멱살을 잡고 말하였더라, ‘네가 빚진 것을 모두 내라.’ 다음에 이 동료 집사는 우두머리 집사 앞에 쓰러져서 탄원하며 말하였더라, ‘나를 참아 주소서. 그렇게만 하시면 내가 곧 당신께 갚을 수 있으리이다.’ 그러나 우두머리 집사는 동료 집사에게 자비를 보이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던졌더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았을 때 동료 종들은 아주 마음이 아파서 저희의 주, 상전인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는지라. 우두머리 집사가 한 일을 들었을 때, 그 임금은 고마움을 모르고 용서하지 않는 이 사람을 앞에 부르고 일렀더라: ‘너는 악하고 자격이 없는 집사이라. 네가 동정을 구했을 때 나는 너의 빚을 다 아낌없이 용서하였느니라[7]. 내가 너에게 자비를 보인 것 같이, 어찌하여 너도 동료 집사에게 자비를 보이지 아니하였느냐?’ 그 임금은 아주 몹시 성이 나서, 고마움을 모르는 우두머리 집사가 빚진 것을 모두 갚을 때까지 붙들어 두도록 간수에게 그를 넘겨주었더라
[8]. 그렇다 해도 동료에게 자비를 아낌없이 보이는 자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더욱 풍부하게 자비를 보이리라
[9]. 똑같은 이 인간의 약점을 가진 죄 때문에 너희가 형제를 꾸짖는 버릇이 있는데 어찌 너희의 부족함을 배려해 달라고 하나님께 올 수 있느냐? 내가 너희 모두에게 이르노니, 하늘나라의 좋은 것들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땅에 있는 동료들에게 거저 주라.”
1955 159:1.6 Thus did Jesus teach the dangers and illustrate the unfairness of sitting in personal judgment upon one’s fellows. Discipline must be maintained, justice must be administered, but in all these matters the wisdom of the brotherhood should prevail. Jesus invested legislative and judicial authority in the group, not in the individual. Even this investment of authority in the group must not be exercised as personal authority. There is always danger that the verdict of an individual may be warped by prejudice or distorted by passion. Group judgment is more likely to remove the dangers and eliminate the unfairness of personal bias. Jesus sought always to minimize the elements of unfairness, retaliation, and vengeance.
2000 159:1.6 이렇게 예수는 사람이 동료를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위험함을 가르치고 그 불공평함을 보여주었다. 훈련을 유지하고 응보를 베풀어야 하지만, 이 모든 문제에서 형제 정신의 지혜가 앞서야 한다. 예수는 입법과 사법 권한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게 맡겼다. 이렇게 권한을 집단에 맡기는 것조차 개인의 권한으로서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판결이 편견 때문에 치우치거나 정열 때문에 왜곡될 위험이 언제나 있다. 집단의 판결은 개인적 편견에 따르는 위험을 없애고 불공평을 제거할 가능성이 더 많다. 예수는 언제나 불공평ㆍ앙갚음ㆍ복수(復讐)의 요소를 최소로 줄이려고 애썼다.
2001 CM 159:1.6 예수께서는 동료를 심판하는 자리에 앉는 편협함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렇게 가르치고 설명했다. 훈계가 계속되고 응보가 집행돼야하지만, 이 모든 것에서 형제관계의 지혜가 우선돼야한다. 예수께서는 집단에게 입법권과 재판권을 부여했으나, 개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집단에게 이렇게 권한을 부여했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권한으로 행사돼서는 결코 안 된다. 각 개인에 대해 평결을 내릴 때, 편견으로 왜곡되거나 열정 때문에 비뚤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런 위험을 제거하고 개인 성향에 따른 편협함을 없애기에는, 집단으로 판결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 예수께서는 항상, 편협함, 보복, 복수 등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2007 URKA 159:1.6 이렇게 하여 예수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개인적으로 심판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들을 가르치고 또한 그 부당함을 계시해주었다. 계속적인 단련이 있어야만 하고, 공의가 관리-행정 되어야만 하지만,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에서, 형제신분의 지혜가 만연되어야 한다. 예수는 집단 안에서 입법적이고 사법적인 권한은 인정하였지만, 개별존재로서의 그것은 그렇지 않았다. 집단으로서의 이 권한 부여 조차도 그것이 개인적 권한으로 행사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한 개별 존재의 평결에는 편견으로 인해 뒤틀리거나 열정으로 인해 왜곡될 수도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집단의 판결은 개인적 편향에서의 위험을 제거하고 불공정을 제거하는데 더욱 적당하다. 예수는 항상 부당함, 보복, 그리고 복수의 요소를 최소화하고자 애썼다.
2025 159:1.6 이렇게 예수는 사람이 동료를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위험함을 가르치고 그 불공평함을 보여주었다. 훈련을 유지하고 응보를 베풀어야 하지만, 이 모든 문제에서 형제 정신의 지혜가 앞서야 한다. 예수는 입법과 사법 권한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맡겼다. 이렇게 권한을 집단에 맡기는 것조차 개인의 권한으로서 행사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판결이 편견 때문에 치우치거나 정열 때문에 왜곡될 위험이 언제나 있다. 집단의 판결은 개인적 편견에 따르는 위험을 없애고 불공평을 제거할 가능성이 더 많다. 예수는 언제나 불공평ㆍ앙갚음ㆍ복수(復讐)의 요소를 최소로 줄이려고 애썼다.
1955 159:1.7 [The use of the term seventy-seven as an illustration of mercy and forbearance was derived from the Scriptures referring to Lamech’s exultation because of the metal weapons of his son Tubal-Cain, who, comparing these superior instruments with those of his enemies, exclaimed: “If Cain, with no weapon in his hand, was avenged seven times, I shall now be avenged seventy-seven.”]
2000 159:1.7 [자비와 참을성의 예로 일흔일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라멕이 몹시 기뻐함을 언급하는 성서로부터 유래되었다. 라멕은 그의 아들 두발 가인이 가진 금속 무기 때문에, 적들의 무기(武器)와 이 우수한 도구를 비교하면서 “아무 무기도 손에 쥐지 않고 가인이 일곱 배 원수를 갚았다면, 나는 이제 일흔일곱 배 원수를 갚겠다”하고 외쳤다.]
2001 CM 159:1.7 [자비와 관용을 설명하려고 일흔-일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라멕이 그의 아들 두발가인의 철제 무기 때문에 열광했던 것에 대해 기록된 성서에서 비롯됐는데, 그는 적들의 무기와 월등히 뛰어난 이 도구를 비교하면서 외쳤다:“만일 가인이 무기를 손에 들지 않고 일곱 배로 원수를 갚았다면, 이제 나는 일흔-일곱 배로 원수를 갚으리라.”]
2007 URKA 159:1.7 [자비와 참을성의 예시로 일흔일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라멕이 자신의 아들인 두발-카인의 금속 무기 때문에 몹시 기뻐했음을 언급하는 히브리 성서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이런 우수한 무기들과 적의 무기의 우월을 비교하면서 외쳤다: “카인이 자기 손에 아무 무기도 없이 일곱 배로 복수를 하게 되었다면, 나는 이제 일흔-일곱 배로 복수를 하리라.]
2. THE STRANGE PREACHER
2. 이상한 설교자
2. 색다른 설교자
2. 이상한 설교자
2. 이상한 설교자
1955 159:2.1 Jesus went over to Gamala to visit John and those who worked with him at that place. That evening, after the session of questions and answers, John said to Jesus: “Master, yesterday I went over to Ashtaroth to see a man who was teaching in your name and even claiming to be able to cast out devils. Now this fellow had never been with us, neither does he follow after us; therefore I forbade him to do such things.” Then said Jesus: “Forbid him not. Do you not perceive that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presently be proclaimed in all the world? How can you expect that all who will believe the gospel shall be subject to your direction? Rejoice that already our teaching has begun to manifest itself beyond the bounds of our personal influence. Do you not see, John, that those who profess to do great works in my name must eventually support our cause? They certainly will not be quick to speak evil of me. My son, in matters of this sort it would be better for you to reckon that he who is not against us is for us. In the generations to come many who are not wholly worthy will do many strange things in my name, but I will not forbid them. I tell you that, even when a cup of cold water is given to a thirsty soul, the Father’s messengers shall ever make record of such a service of love.”
2000 159:2.1 예수는 가말라로, 거기서 요한과 그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찾아보러 갔다. 그 날 저녁에 질문 대답 시간이 있은 뒤에, 요한은 예수에게 말했다: “주여, 나는 어제 아스타롯에 가서, 당신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던 사람, 아니 악귀들을 내쫓을 수 있다고도 주장하는 사람을 보았나이다. 자, 이 친구는 우리와 한 번도 함께 있은 적이 없었고 우리를 따르지도 않나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 명하였나이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그를 막지 말라. 이 하늘나라 복음이 곧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복음을 믿을 모든 사람이 너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고 어찌 기대할 수 있느냐? 우리의 가르침이 이미 우리의 개인적 영향의 테두리를 넘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기뻐하라. 요한아, 내 이름으로 큰 일을 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궁극에는 우리 운동을 지지해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분명히 저희는 서둘러 나를 나쁘게 평하지 않으리라. 이 사람아,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지지(支持)한다고 여기는 것이 더 나으리라. 후세에는 온전히 자격 있지 않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이상한 일을 많이 할 터이나 나는 저희를 막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찬물 한 잔을 목마른 사람에게 주었을 때에도 아버지의 사자들은 그런 사랑의 봉사를 늘 기록하리라.”
2001 CM 159:2.1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일하는 제자들을 만나려고 가말라로 올라갔다. 그날 저녁 질의응답 시간이 있은 후에, 요한이 예수께 말했다:“주님, 당신의 이름으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마귀들도 쫓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어떤 동료를 만나려고, 우리가 어제 아스다롯에 갔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와 같이한 적이 없었고, 우리를 따르지도 않았으며;그래서 내가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했다:“그를 금하지 말라. 천국 복음이 곧 온 세계에서 선포되리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느냐? 복음을 믿게 될 모든 자가 너희 지시에 복종하리라고, 어떻게 너희가 기대할 수 있느냐? 우리 가르침이 이미 우리의 개인적인 영향 한계를 벗어나서 스스로 나타나고 있음을 크게 기뻐해라. 요한아, 내 이름으로 큰 일을 한다는 자들도,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결국 돕게 될 것임을 알지 못하겠느냐? 그들은 분명히 나에 대해 속히 악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얘야, 이런 종류의 문제라면, 우리에게 대적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는 세대에는, 온전히 훌륭하지는 않을 허다한 사람이 내 이름으로 신기한 일을 많이 행하겠으나, 나는 그들을 금하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말하는데, 냉수 한 잔을 목마른 혼에게 줬을 때에도, 아버지의 사자들이 그런 사랑의 봉사에 대해 영원히 기록할 것이다.”
2007 URKA 159:2.1 예수는 사도 요한 그리고 그와 함께 일하는 제자들을 만나기 위하여 가말라로 올라갔다. 그 날 저녁, 질문하고 답변하는 모임이 있은 후에, 요한이 예수에게 말했다; “주(主)여,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게다가 귀신들까지도 쫓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려고, 어제 아스타롯에 올라갔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친구는 우리와 함께 한 적이 결코 없었고, 우리를 따르지도 않기에 그러한 것들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하였다. “그를 금하지 말라. 너희는 이 왕국 복음이 곧 모든 세상에 선포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복음을 믿게 되는 자들 모두가 너희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고 기대할 수 있느냐? 우리의 가르침이 이미 우리의 개인적인 영향력의 경계 너머서 그 자체로 현시되고 있음을 기뻐하라. 요한아, 내 이름으로 위대한 일들을 한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결국에는 우리의 운동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하겠느냐? 그들은 분명히 입빠르게 나에 대해 악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이런 종류의 문제라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여기는 것이 너에게 더 나을 것이다. 다가오는 세대에는, 전적으로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많은 이상한 일을 행하겠으나, 나는 그들을 금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하건대, 냉수 한 잔을 목마른 자에게 주었을 때라도, 아버지의 메신저들은 그러한 사랑의 봉사를 언제까지나 기록할 것이다.”
2025 159:2.1 예수는 가말라로, 거기서 요한과 그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찾아보러 갔다. 그 날 저녁에 문답 시간이 있은 뒤에, 요한은 예수에게 말했다: “주여, 나는 어제 아스타롯에 가서, 당신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던 사람, 아니 악귀들을 내쫓을 수 있다고도 주장하는 사람을 보았나이다. 자, 이 친구는 우리와 한 번도 함께 있은 적이 없었고 우리를 따르지도 않나이다[11]. 그래서 나는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 명하였나이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그를 막지 말라. 이 하늘나라 복음이 곧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복음을 믿을 모든 사람이 너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고 어찌 기대할 수 있느냐? 우리의 가르침이 이미 우리의 개인적 영향의 테두리를 넘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기뻐하라. 요한아, 내 이름으로 큰 일을 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궁극에는 우리 운동을 지지해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분명히 저희는 서둘러 나를 나쁘게 평하지 않으리라
[12]. 이 사람아,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지지(支持)한다고 여기는 것이 더 나으리라. 후세에는 온전히 자격 있지 않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이상한 일을 많이 할 터이나 나는 저희를 막지 아니하리라
[13].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찬물 한 잔을 목마른 사람에게 주었을 때에도 아버지의 사자들은 그런 사랑의 봉사를 늘 기록하리라.”
1955 159:2.2 This instruction greatly perplexed John. Had he not heard the Master say, “He who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he did not perceive that in this case Jesus was referring to man’s personal relation to the spiritual teachings of the kingdom, while in the other case reference was made to the outward and far-flung social relations of believers regarding the questions of administrative control and the jurisdiction of one group of believers over the work of other groups which would eventually compose the forthcoming world-wide brotherhood.
2000 159:2.2 이 지시는 요한을 크게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하는 주의 말씀을 그가 듣지 않았는가? 이 경우에는 사람과 하늘나라의 영적 가르침 사이의 개인적 관계를 언급했고, 한편 다른 경우에는 한 집단의 신자들이, 앞으로 생길 세계적 형제 단체를 궁극에 구성할 기타 집단의 일을 행정적으로 통제하고 관할하는 권리에 관하여, 겉으로 나타나는 광범위한 관계, 신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언급했음을 요한은 깨닫지 못했다.
2001 CM 159:2.2 이 설명은 요한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대적하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경우에는 예수께서 천국의 영적 교훈에 대한 사람의 개인 관계에 대해 언급했던 반면, 다른 경우에는, 결국 전 세계적 형제관계를 앞으로 이룩하게 될 기타 집단들의 업무를, 한 무리의 신자들이 행정적으로 통제하고 관할하는 권리에 관해, 신자들의 겉으로 나타나는 광범한 사회적 관계를 언급했음을 요한은 감지하지 못했다.
2007 URKA 159:2.2 이 지침은 요한을 매우 당혹스럽게 하였다. 주(主)가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다”라 말하는 것을 그가 듣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경우에는 예수가 왕국의 영적 가르침들에 대한 사람들의 개인적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요한이 알아차리지 못했었고, 한편 이번의 경우에는 신자들의 한 집단이 결국에는 다가오는 범세계적 형제신분을 구성할 또 다른 집단의 일을 관리-행정적으로 통제하고 관할하는 문제에 관하여, 겉으로 나타나는 그리고 멀리 퍼지는 신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언급한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1955 159:2.3 But John oftentimes recounted this experience in connection with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kingdom. Nevertheless, many times did the apostles take offense at those who made bold to teach in the Master’s name. To them it always seemed inappropriate that those who had never sat at Jesus’ feet should dare to teach in his name.
2000 159:2.3 그러나 하늘나라를 위하여 그가 나중에 수고한 것과 연관하여 요한은 때때로 이 체험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도 사도들은 감히 주의 이름으로 가르친 자들에게 여러 번 화를 냈다. 예수 밑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감히 그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에게 마땅치 않아 보였다.
2001 CM 159:2.3 그러나 요한은 그후에 천국을 위하여 애쓰면서 이 체험을 종종 되새기곤 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불쾌한 태도를 취했다. 주님의 발 앞에 앉아 보지도 못한 자가 감히 주님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에게 온당치 못한 일로 여겨졌다.
2007 URKA 159:2.3 그러나 요한은 그가 나중에 뒤이어진 왕국을 위한 수고들과 관련하여 때때로 이 체험을 종종 되새기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주(主)의 이름으로 대담하게 가르치는 자들이 거슬려서 그러한 자들에게 여러 번 화를 내었다. 예수의 발 있는 곳에 결코 앉은 적도 없는 자가 감히 그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그들에게 언제나 온당치 않은 것으로 보였다.
2025 159:2.3 그러나 하늘나라를 위하여 그가 나중에 수고한 것과 연관하여 요한은 때때로 이 체험을 돌이켜보았다. 그런데도 사도들은 감히 주의 이름으로 가르친 자들에게 여러 번 화를 냈다. 예수 밑에서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감히 그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그들에게 마땅치 않아 보였다.
1955 159:2.4 This man whom John forbade to teach and work in Jesus’ name did not heed the apostle’s injunction. He went right on with his efforts and raised up a considerable company of believers at Kanata before going on into Mesopotamia. This man, Aden, had been led to believe in Jesus through the testimony of the demented man whom Jesus healed near Kheresa, and who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the supposed evil spirits which the Master cast out of him entered the herd of swine and rushed them headlong over the cliff to their destruction.
2000 159:2.4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일하지 말라고 요한이 막은 이 사람은 사도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노력을 계속하였고, 메소포타미아로 계속 가기 전에 카나타에서 상당한 무리의 일행을 모았다. 이 사람 아덴은 케레사 가까이에서 예수가 고쳐 준 미친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주가 그에게서 내쫓았다고 생각한 그 악령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들을 몰아 벼랑을 넘어 거꾸로 떨어져 죽게 만들었다고 아주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2001 CM 159:2.4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가르치는 것을 요한이 금지시켰던 이 사람은, 사도들의 권면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옳은 방향으로 애썼고, 메소포타미아로 가기 전에 카나타에서 상당히 많은 신자를 모았다. 이 사람의 이름은 에이든이었는데, 예수께서 케레사 근처에서 치유했던 미친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됐으며, 주님이 그에게서 쫓아낸 것으로 추정되는 그 악한 영들이 돼지 떼 속에 들어가서, 그것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처치했다는 것을 아주 확고하게 믿었다.
2007 URKA 159:2.4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일하는 것을 요한이 금했던 이 사람은 사도들의 명령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곧장 계속하였고, 메소포타미아로 들어가기 전, 카나타에서는 상당한 신자들의 일행을 일으켜 모았다. 아덴이라는 이 사람은, 예수가 게레사 근처에서 병을 고쳐 주었던 미친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를 믿도록 인도되었었고, 주(主)가 그에게서 쫓아내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들을 내몰아 절벽을 넘어 거꾸로 떨어져 그들의 파멸에 이르게 했다고 짐작되는 악한 영들을 너무나 확신하며 믿었다.
3. INSTRUCTION FOR TEACHERS AND BELIEVERS
3. 선생과 신자를 위한 가르침
3. 선생과 신자를 위한 설명
3. 교사들과 신자들을 위한 지침
3. 선생과 신자를 위한 가르침
1955 159:3.1 At Edrei, where Thomas and his associates labored, Jesus spent a day and a night and, in the course of the evening’s discussion, gave expression to the principles which should guide those who preach truth, and which should activate all who t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Summarized and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Jesus taught:
2000 159:3.1 토마스와 그 동료들이 수고했던 에드레이에서 예수는 낮과 밤을 보냈다. 저녁에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리를 전도하는 자들을 안내하고 하늘나라 복음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활성화해야 할 원칙을 표현했다. 현대의 말투로 간추리고 다시 진술하면,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2001 CM 159:3.1 예수께서는, 도마와 동역자들이 일하던 에드레이에서 하루 낮과 밤을 보냈으며, 저녁에 가진 토론 과정에서, 진리를 전파하는 자들에게 지표가 되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모든 자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게 될 원칙에 대해 설명했다. 현대의 표현으로 요약해서 다시 기술하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2007 URKA 159:3.1 도마와 그의 일행들이 사명활동하던 에드레이에서, 예수는 하루 낮과 밤을 보냈으며, 저녁에 가진 토론의 과정에서 진리를 전도하는 자들을 안내하고, 왕국 복음을 가르치는 모든 자들을 활성화시키는 원칙들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이를 현대적인 표현으로 요약하여 다시 기술한다면,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2025 159:3.1 토마스와 그 동료들이 수고했던 에드레이에서 예수는 낮과 밤을 보냈다. 저녁에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실을 전도하는 자들을 안내하고 하늘나라 복음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활성화해야 할 원칙을 표현했다. 현대의 말투로 간추리고 다시 진술하면,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1955 159:3.2 Always respect the personality of man. Never should a righteous cause be promoted by force; spiritual victories can be won only by spiritual power. This injunction against the employment of material influences refers to psychic force as well as to physical force. Overpowering arguments and mental superiority are not to be employed to coerce men and women into the kingdom. Man’s mind is not to be crushed by the mere weight of logic or overawed by shrewd eloquence. While emotion as a factor in human decisions cannot be wholly eliminated, it should not be directly appealed to in the teachings of those who would advance the cause of the kingdom. Make your appeals directly to the divine spirit that dwells within the minds of men. Do not appeal to fear, pity, or mere sentiment. In appealing to men, be fair; exercise self-control and exhibit due restraint; show proper respect for the personalities of your pupils. Remember that I have said: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and if any man will open, I will come in.”
2000 159:3.2 언제나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라. 올바른 운동을 결코 무력(武力)으로 권장해서는 안 된다. 영적 승리는 오직 영적 힘으로 얻을 수 있다. 물질적 영향을 이용하지 말라는 이 명령은 물리적 힘 뿐 아니라 정신의 힘도 언급한다. 압도하는 논리와 우수한 정신력이 남녀들을 하늘나라로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지성을 단순히 논리의 무게로 짓밟거나, 재빠른 웅변으로 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요소인 감정을 전부 없앨 수 없지만, 하늘나라의 운동을 진전시키려 하는 자들을 가르칠 때, 감정에 직접 호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단순한 감상(感傷)에 호소하지 말라. 사람들에게 호소할 때 공정하게 하라. 자제하고 마땅한 절제를 보이라. 생도들의 인격을 적절히 존중하라. 내가 이렇게 이른 것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리라.”
2001 CM 159:3.2 사람의 인격을 항상 존중하라. 정의는 결코 무력으로 증진되지 않으며;영적 승리는 오직 영적 능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물질적 영향을 배제하라는 이 권면은, 심령의 힘뿐 아니라 육체의 힘에도 관련된다. 남자나 여자를 강제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고, 압도하는 논쟁이나 정신적 우월성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정신을 다만 논리적 무게로 짓밟거나, 날카로운 웅변술로 겁을 줘서는 안 된다.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요소로서 감정이 전혀 무시될 수는 없으나, 천국 운동을 촉진시킬 자들을 가르칠 때, 감정에 직접 호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정신에 내주하는 신성한 영에게 직접 호소하라. 두려움이나 연민 또는 단순한 감상에 호소하지 말아라. 사람에게 호소할 때 공평하며;자아-통제를 발휘하고 합당한 절제를 보여주며;배우는 자들의 인격을 진실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라.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하라:“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으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안으로 들어가겠다.”
2007 URKA 159:3.2 사람의 개인성을 항상 존중하라. 어떤 정의로운 원인도 결코 기세로서 권장되어서는 안 된다; 영적 승리는 오직 영적 힘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물질적인 영향을 이용하지 말라는 이 명령은 물리적인 기세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세도 언급하는 것이다. 압도하는 항변들과 정신적인 우월성을 남자나 여자들을 왕국 안으로 강요하는 데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이 단순히 논리의 무게로 압도하거나 빈틈없는 웅변으로 위압되도록 하면 안 된다. 인간 의사 결정을 내리는 한 요소로서 감정을 전적으로 제거될 수는 없지만, 왕국 운동을 진전시키려 하는 자들을 가르칠 때, 감정에 직접 호소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주하는 신성한 영에게 직접 호소하도록 하라. 두려움이나 연민 또는 단순한 감상에 호소하지 말라. 사람들에게 호소할 때에 공정하라; 자아-통제를 행사하고 마땅한 자제력을 전시하라; 너희 학생들의 개인성을 타당한 존중심을 보여라. 내가 하는 이 말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으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2025 159:3.2 언제나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라. 올바른 운동을 결코 무력(武力)으로 권장해서는 안 된다. 영적 승리는 오직 영적 힘으로 얻을 수 있다. 물질적 영향을 이용하지 말라는 이 명령은 물리적 힘만 아니라 정신의 힘도 언급한다. 압도하는 논리와 우수한 정신력이 남녀들을 하늘나라로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지성을 단순히 논리의 무게로 짓밟거나, 빈틈없는 웅변으로 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데 한 요소인 감정을 전부 없앨 수 없지만, 하늘나라의 운동을 진전시키려 하는 자들을 가르칠 때, 감정에 직접 호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단순한 감상(感傷)에 호소하지 말라. 사람들에게 호소할 때 공정하게 하라. 자제하고 마땅한 절제를 보이라[16]. 생도들의 인격을 적절히 존중하라. 내가 이렇게 이른 것을 기억하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리라.”
1955 159:3.3 In bringing men into the kingdom, do not lessen or destroy their self-respect. While overmuch self-respect may destroy proper humility and end in pride, conceit, and arrogance, the loss of self-respect often ends in paralysis of the will. It is the purpose of this gospel to restore self-respect to those who have lost it and to restrain it in those who have it. Make not the mistake of only condemning the wrongs in the lives of your pupils; remember also to accord generous recognition for the most praiseworthy things in their lives. Forget not that I will stop at nothing to restore self-respect to those who have lost it, and who really desire to regain it.
2000 159:3.3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데려오면서 자존심을 상하거나 꺾지 말라. 지나친 자존심은 적절한 겸손을 잃게 만들며 자만과 우쭐함과 거만(倨慢)에 이를지 모르지만, 자존심을 잃는 것은 때때로 의지(意志)의 마비를 낳는다. 자존심을 잃은 자에게 자존심을 회복하고 가진 자에게 삼가게 하는 것이 이 복음의 목적이라. 너희 생도들의 생활에서 오직 실수만 꾸짖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칭찬할 것들을 너그럽게 인정하기를 또한 기억하라. 자존심을 잃고서 정말로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자에게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아니할 것을 잊지 말라.
2001 CM 159:3.3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할 때, 그들의 자존감을 업신여기거나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과도한 자존감은 예의 바른 겸손을 보이지 못하게 할 수 있고, 결국 교만과 자만과 오만에 이르게 될지 모르지만, 자존감 손실은 흔히 의지가 마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존감을 잃은 자에게는 그것을 회복시키고, 자존감이 있는 자에게는 그것을 억제하도록 하는 데 이 복음의 목적이 있다. 너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에서 발생되는 잘못만 지적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며;그들의 삶에서 가장 칭찬할만한 것들을 후하게 인정하는 것도 잊지 말라. 자존감을 잃었던 자들과 정말로 다시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라면, 내가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으리라는 것을 꼭 기억하라.
2007 URKA 159:3.3 사람들을 왕국으로 인도할 때에 그들의 자아-존중을 상하게 하거나 꺾지 말라. 지나친 자아-존중은 적절한 겸손을 파괴할 수 있고, 그리고 자부, 자만, 그리고 거만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자아-존중을 잃는 것은 때때로 의지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자아-존중을 잃었던 자들에게는 그것을 회복시키고, 자아-존중이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을 억제하도록 하는 데에 이 복음의 목적이 있다. 너희의 제자들의 삶 안에서 오로지 오류만 꾸짖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 그들의 삶 속에서 가장 칭찬할 만한 것에 대해 너그러운 인지로 일치시키는 것을 잊지 말라. 자아-존중을 잃었던 자들과 실제로 그것을 다시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 자아-존중을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내가 어떤 일도 서슴지 않을 것임을 잊지 말라.
2025 159:3.3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데려오면서 자존심을 상하거나 꺾지 말라. 지나친 자존심은 적절한 겸손을 잃게 만들고 자만과 우쭐함과 거만(倨慢)에 이를지 모르지만, 자존심을 잃는 것은 때때로 의지(意志)의 마비를 낳는다. 자존심을 잃은 자에게 자존심을 회복하고 가진 자에게 삼가게 하는 것이 이 복음의 목적이다. 너희 생도들의 생활에서 오직 실수만 꾸짖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칭찬할 것들을 너그럽게 인정하기를 또한 기억하라. 자존심을 잃고서 정말로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자에게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아니할 것을 잊지 말라.
1955 159:3.4 Take care that you do not wound the self-respect of timid and fearful souls. Do not indulge in sarcasm at the expense of my simple-minded brethren. Be not cynical with my fear-ridden children. Idleness is destructive of self-respect; therefore, admonish your brethren ever to keep busy at their chosen tasks, and put forth every effort to secure work for those who find themselves without employment.
2000 159:3.4 겁이 많고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너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생각이 단순한 내 형제들을 희생하면서 빈정거리는 일에 빠지지 말라. 두려움에 빠진 내 자녀들을 비웃지 말라. 게으름은 자존심을 파괴한다. 따라서 너희 형제들이 자기가 택한 일을 하는 데 늘 바쁘게 지내라 타이르고, 직업을 찾지 못한 자를 위하여 일자리를 확보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라.
2001 CM 159:3.4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혼들의 자존감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 순진한 내 형제들을 희생시키면서 빈정거리는 일에 탐닉하지 않도록 하라. 두려움에 시달리는 내 자녀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 말라. 나태함은 자존감에 해로우며;그러므로 너희 형제가 선택한 과제에 계속 정진하도록 권고하고, 직업 없는 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기에 모든 노력을 다하라.
2007 URKA 159:3.4 너희가 소심하고 두려움이-가득한 혼의 자아-존중에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하라. 단순한-마음을 가진 나의 형제들을 희생시키면서 빈정거리는 일에 탐닉하지 말도록 하라. 두려움에-빠진 나의 자녀들에게 냉소적으로 대하지 말라. 게으름은 자아-존중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너희 형제들이 스스로 선택한 과업에서 언제까지나 분주하게 있도록 권고하고, 직업을 찾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일자리를 확보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
2025 159:3.4 겁이 많고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너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생각이 단순한 내 형제들을 희생하면서 빈정거리는 일에 빠지지 말라. 두려움에 빠진 내 자녀들을 비웃지 말라. 게으름은 자존심을 파괴한다. 따라서 너희 형제들이 자기가 택한 일을 하는 데 늘 바쁘게 지내라 타이르고, 직업을 찾지 못한 자를 위하여 일자리를 확보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라.
1955 159:3.5 Never be guilty of such unworthy tactics as endeavoring to frighten men and women into the kingdom. A loving father does not frighten his children into yielding obedience to his just requirements.
2000 159:3.5 겁을 주어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몰려고 애쓰는 것처럼 비열한 술책 쓰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 애정을 가진 아버지는 겁을 주어 아이들에게 정당한 요구에 복종하게 만들지 않는다.
2001 CM 159:3.5 사람들을 위협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무익한 술책을 쓰는 잘못을 결단코 범하지 말라.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기가 요구하는대로 복종시키려고 그들을 위협하지 않는다.
2007 URKA 159:3.5 남자와 여자들에게 겁을 먹게 하여 왕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분발시키는 것과 같은 그러한 비열한 술책을 쓰는 범죄를 결코 저지르지 말라. 사랑-넘치는 아버지는 자신의 요구 그대로 복종하게 만들려고 자기 자녀에게 겁을 먹게 하지 않는다.
2025 159:3.5 겁을 주어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몰려고 애쓰는 것처럼 비열한 술책 쓰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 애정을 가진 아버지는 겁을 주어 아이들에게 정당한 요구에 복종하게 만들지 않는다.
1955 159:3.6 Sometime the children of the kingdom will realize that strong feelings of emotion are not equivalent to the leadings of the divine spirit. To be strongly and strangely impressed to do something or to go to a certain place,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such impulses are the leadings of the indwelling spirit.
2000 159:3.6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신다운 영의 인도하심과 같지 않음을 하늘나라의 자녀들은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곳으로 가도록 깊이 이상하게 감명을 받는 것은 안에 깃드는 영이 그런 충동을 이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2001 CM 159:3.6 감정에 속하는 강한 느낌이 신성한 영의 인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국의 자녀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을 하거나 특정한 장소에 가고자 하는,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게 감동을 받는 것이, 내주하는 영의 인도에 수반되는 그런 자극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2007 URKA 159:3.6 언젠가는 왕국의 자녀들은 감정의 강한 느낌이 신성한 영의 인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무언가 특정한 일을 하거나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려고, 강하게 그리고 이상하게 감동을 받는 것은, 필시 그러한 충동이 내주 하는 영이 인도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2025 159:3.6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신다운 영의 인도하심과 같지 않음을 하늘나라의 자녀들은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곳으로 가도록 깊이 이상하게 감명을 받는 것은 안에 깃드는 영이 그런 충동을 이끈다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1955 159:3.7 Forewarn all believers regarding the fringe of conflict which must be traversed by all who pass from the life as it is lived in the flesh to the higher life as it is lived in the spirit. To those who live quite wholly within either realm, there is little conflict or confusion, but all are doomed to experience more or less uncertainty during the times of transition between the two levels of living. In entering the kingdom, you cannot escape its responsibilities or avoid its obligations, but remember: The gospel yoke is easy and the burden of truth is light.
2000 159:3.7 육신을 입고 사는 인생으로부터 영적으로 사는 상급 생활로 옮겨가는 사람이 다 거쳐야 하는 갈등의 범위에 관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리 경고하라. 아주 전적으로 어느 한쪽 영역 안에서 사는 자에게는 거의 갈등이나 혼란이 없으나, 모든 사람이 인생의 두 수준 사이를 거치는 과도기에 얼마큼 불안을 겪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면서, 너희는 그 나라의 책임을 벗거나 그 의무를 피할 수 없지만, 기억하라: 복음의 멍에는 쉽고 진리의 짐은 가볍다.
2001 CM 159:3.7 육신 속에서 사는 인생으로부터, 영 속에서 사는 더 고귀한 인생으로 옮겨가는 모든 사람이 거쳐야하는 갈등의 범주에 관해, 모든 믿는 자에게 미리 경고하라. 어느 쪽 세계든지 아주 포괄적으로 살았던 자에게는 갈등이나 혼돈이 거의 없으나, 사람들 대부분은, 다른 수준의 삶으로 옮겨가는 동안, 다소간 차이는 있어도 모두 불확실성을 체험하게 돼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너희로 하여금 책임에서 벗어나거나 책무를 피하도록 할 수는 없으나, 기억하라:복음의 멍에는 쉽고 진리의 짐은 가볍다.
2007 URKA 159:3.7 육신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일생으로부터 영으로 그것을 살아가는 더욱 높은 일생으로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만 하는 갈등의 주변에 관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미리 경고하라. 아주 전적으로 어느 한쪽의 영역 안에서만 살았던 자에게는 갈등이나 혼돈이 거의 없으나, 모든 사람은 삶의 두 차원 사이의 과도기 동안에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불확실성을 체험하도록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 왕국에 들어가면서, 너희들이 그 책임에서 벗어나거나 책무를 회피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복음의 멍에는 쉽고 진리의 짐은 가볍다는 것을 기억하라.
1955 159:3.8 The world is filled with hungry souls who famish in the very presence of the bread of life; men die searching for the very God who lives within them. Men seek for the treasures of the kingdom with yearning hearts and weary feet when they are all within the immediate grasp of living faith. Faith is to religion what sails are to a ship; it is an addition of power, not an added burden of life. There is but one struggle for those who enter the kingdom, and that is to fight the good fight of faith. The believer has only one battle, and that is against doubt—unbelief.
2000 159:3.8 세상은 생명의 빵을 바로 눈앞에 두고 굶는 갈급한 혼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자신 안에 사는 바로 그 하나님을 찾다가 죽는다. 팔팔한 믿음이 바로 붙잡는 거리에 하늘나라의 보물이 모두 있는데, 사람들은 동경(憧憬)하는 마음과 지친 발로 이 보물을 찾는다. 믿음과 종교의 관계는 돛과 배의 관계와 같다. 믿음은 능력이 늘어나는 것이요, 생명의 짐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자에게 오직 하나의 투쟁이 있으니, 즉 신앙의 싸움을 잘 싸우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으니, 즉 의심―불신―을 이기는 것이다.
2001 CM 159:3.8 세상에는 생명의 빵을 바로 앞에 놓고도 굶주려서 배고픈 혼들로 가득하며;자기 안에 살아계신 바로 그 하나님을 찾다가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신앙을 곧 소유하게 될 시점에, 마음으로는 사모하지만 발은 싫증난 채로 천국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 신앙과 종교의 관계는, 돛과 배의 관계와 같으며;신앙은 능력이 늘어나는 것이고, 인생에 얹혀있는 짐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에게는 오직 한 가지 싸움이 있는데, 신앙을 갖기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믿는 자에게는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는데, 의심--곧 믿지 않음--에 대항하는 전쟁이다.
2007 URKA 159:3.8 세상에는 생명의 빵을 바로 눈앞에 놓고도 굶주려 죽는 배고픈 혼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살고 있는 바로 그 하느님을 찾아 나서면서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신앙으로 즉시 잡아 챙길 수 있는 거리에 모든 것이 있는데도, 간절한 가슴과 피곤에 지친 발로 왕국의 보물을 염원하며 찾아 나선다. 신앙이 종교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는 배에 대한 돛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힘의 증가이지, 결코 일생에서의 부담이 증가되는 것이 아니다.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에서의 선한 싸움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신자에게 오직 한 가지 전투가 있으니, 그것은 의심─불신─을 이겨내는 것이다.
2025 159:3.8 세상은 생명의 빵을 바로 눈앞에 두고 굶는 갈급한 혼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자신 안에 사는 바로 그 하나님을 찾다가 죽는다. 팔팔한 믿음이 바로 붙잡는 거리에 하늘나라의 보물이 모두 있는데, 사람들은 동경(憧憬)하는 마음과 지친 발로 이 보물을 찾는다. 믿음과 종교의 관계는 돛과 배의 관계와 같다[18]. 믿음은 능력이 늘어나는 것이요, 생명의 짐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19].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자에게 오직 하나의 투쟁이 있으니, 즉 신앙의 싸움을 잘 싸우는 것이다. 믿는 사람은 오직 한 가지 투쟁이 있으니, 즉 의심 ― 불신 ― 을 이기는 것이다.
1955 159:3.9 In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you are simply teaching friendship with God. And this fellowship will appeal alike to men and women in that both will find that which most truly satisfies their characteristic longings and ideals. Tell my children that I am not only tender of their feelings and patient with their frailties, but that I am also ruthless with sin and intolerant of iniquity. I am indeed meek and humble in the presence of my Father, but I am equally and relentlessly inexorable where there is deliberate evil-doing and sinful rebellion against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2000 159:3.9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할 때 너희는 다만 하나님과 친구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친교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호소할 것이요, 그들의 특징인 열망과 이상을 아주 참되게 채워주는 무엇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에게 이르라. 나는 그들의 느낌을 다치지 않으려 애쓰고 약점을 참을 뿐 아니라, 또한 죄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의를 참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앞에서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일부러 저지르는 악행과 사악한 반란의 와중에서 나는 똑같이, 사정없이 용서하지 않는다.
2001 CM 159:3.9 천국 복음을 전파할 때 너희는 단순히, 하나님과 교제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교제는 남녀에게 똑같이 적용될 것인데, 그들의 특징인 동경과 이상을 아주 참되게 만족시켜주는 무엇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자녀들에게 이야기할 때, 내가 그들의 감정을 배려하고, 그들의 과오를 오래 참는다는 것뿐 아니라, 동시에 내가 죄에 대해 냉혹하고, 죄악을 참지 못한다는 것도 말해라. 아버지 앞에서는 내가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죄로 가득한 반역과 고의적 악행이 있는 곳에서는 내가 잔인할 만큼 냉혹하기도 하다.
2007 URKA 159:3.9 너희는 왕국의 복음을 전도함에 있어서, 단순하게 하느님과의 친구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동료관계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그들의 특징적 갈망과 이상을 가장 참되게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라는 데에서, 똑같이 호소될 것이다. 나의 자녀들에게 이야기할 때, 내가 그들의 느낌에 민감하고 그들의 연약함에 오래 참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가 죄에 대해 냉혹하고 그리고 사악한 불의에 대해 관용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어라. 나는 내 아버지의 현존 안에서는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그러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죄가-가득한 반역과 고의적인 악행이 있는 곳에서는 내가 마찬가지로 가혹하도록 냉혹하다.
2025 159:3.9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할 때 너희는 다만 하나님과 친구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친교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호소할 것이요, 그들의 특징인 열망과 이상을 아주 참되게 채워주는 무엇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에게 이르라. 나는 그들의 느낌을 다치지 않으려 애쓰고 약점을 참을 뿐 아니라, 또한 죄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의를 참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앞에서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일부러 저지르는 악행과 사악한 반란의 와중에서 나는 똑같이, 사정없이 용서하지 않는다.
1955 159:3.10 You shall not portray your teacher as a man of sorrows. Future generations shall know also the radiance of our joy, the buoyance of our good will, and the inspiration of our good humor. We proclaim a message of good news which is infectious in its transforming power. Our religion is throbbing with new life and new meanings. Those who accept this teaching are filled with joy and in their hearts are constrained to rejoice evermore. Increasing happiness is always the experience of all who are certain about God.
2000 159:3.10 너희의 선생을 슬픈 사람으로 묘사하지 말라. 앞날의 세대는 또한 우리의 빛나는 기쁨, 우리의 선의가 주는 부력(浮力), 우리의 좋은 유머가 주는 영감을 식별하리라. 우리는 좋은 소식이 담긴 말씀을 선포하고, 변화시키는 그 힘은 사람들에게 퍼진다. 우리의 종교는 새 생명과 새 의미로 고동친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가슴 속에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행복은 하나님을 확신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는 체험이다.
2001 CM 159:3.10 너희의 선생을 비탄에 잠긴 남자로 묘사하지 말라. 장차 올 세대들은 우리의 기쁨으로 인한 광채, 우리의 선한 뜻으로 인한 낙천적 기질, 그리고 우리의 선한 유머로 인한 영감{靈感}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쁜 소식의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이것은 변형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쉽게 전달된다. 우리 종교는 새 생명과 새 의미로 약동하고 있다. 이 가르침을 받는 자는 큰 기쁨으로 가득차고, 그 마음에는 항상 즐거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자는 누구나, 점증하는 행복을 반드시 체험한다.
2007 URKA 159:3.10 너희는 너희 선생을 묘사할 때, 슬픔에 찬 한 남자로 그리지 마라. 장차 올 세대들도 우리의 기쁨에서의 광채, 우리의 선한 뜻에서의 떠오르는 힘, 그리고 우리의 선한 재치에서의 영감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변환시키는 그 자체의 힘으로 전염되는 좋은 소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우리의 종교는 새로운 일생과 새로운 의미들로 약동하고 있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기쁨이 가득 채워지고, 또한 그들의 가슴 안에서는 더욱 많은 기쁨이 언제까지나 억눌려 있다. 하느님을 확신하는 자 모두는 항상 증가하고 있는 행복을 체험한다.
1955 159:3.11 Teach all believers to avoid leaning upon the insecure props of false sympathy. You cannot develop strong characters out of the indulgence of self-pity; honestly endeavor to avoid the deceptive influence of mere fellowship in misery. Extend sympathy to the brave and courageous while you withhold overmuch pity from those cowardly souls who only halfheartedly stand up before the trials of living. Offer not consolation to those who lie down before their troubles without a struggle. Sympathize not with your fellows merely that they may sympathize with you in return.
2000 159:3.11 거짓 동정심이라는 불안한 버팀목에 기대는 것을 피하라고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라. 너희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데 빠져서는 튼튼한 인품을 기를 수 없다. 불쌍한 처지를 단지 같이 슬퍼하는 거짓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직하게 애쓰라. 생활의 시련 앞에서 겨우 마지못해 버티는 비겁한 사람에게 지나친 동정을 삼가며, 담대하고 용감한 자에게 동정(同情)을 베풀라. 한 번 싸우지도 않고 자기 문제 앞에 드러눕는 자를 위로하지 말라. 단지 친구들이 보답으로 너희를 불쌍히 여길까 하여 친구들을 동정하지 말라.
2001 CM 159:3.11 거짓 동정심이라는 불안정한 기둥에 기대지 말라고, 모든 믿는 자를 가르쳐라. 너희가 자기-연민에 빠져있을 때에는 강한 성품을 개발할 수 없으며;불쌍한 처지를 단순히 함께 슬퍼하는 거짓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직하게 애써라. 인생의 시련 앞에 마지못해 서 있는 소심한 사람을 너무 불쌍히 여기지 말고, 용감하고 담력 있는 자들에게 동정심을 베풀어라. 재난이 닥쳐왔는데도 투쟁하기보다 그저 안일하게 누워있는 자들을 위로하지 말라. 단지 보답으로 네가 동조를 받을까 기대하여 동료에게 동조하지는 말아라.
2007 URKA 159:3.11 거짓된 공감의 불안전한 버팀목에 기대는 것을 피하라고 모든 신자들을 가르쳐라. 너희가 자아-연민의 탐닉에서는 강한 성격을 개발할 수 없다; 비참한 불행에서 이루어지는 단순한 동료관계의 기만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를 정직하게 노력하라. 삶의 시련 앞에 단지 건성으로 서 있는 비겁한 혼을 가진 저들에 대한 지나친 연민을 보류하고, 그러면서 용감하고 용기 있는 자들에게 공감을 펼쳐라. 어떤 투쟁도 없이 자신들의 곤경 앞에 드러누워 있는 자들에게 위로를 제시하지 말라. 너희가 단지 보답으로 그들에게 공감될 수도 있다고 해서, 너희 동료에 공감되지 말라.
2025 159:3.11 거짓 동정심이라는 불안한 버팀목에 기대는 것을 피하라고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라. 너희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데 빠져서는 튼튼한 인품을 기를 수 없다. 불쌍한 처지를 단지 같이 슬퍼하는 거짓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직하게 애쓰라. 생활의 시련 앞에서 겨우 마지못해 버티는 비겁한 사람에게 지나친 동정을 삼가며, 담대하고 용감한 자에게 동정(同情)을 베풀라. 한 번 싸우지도 않고 자기 문제 앞에 드러눕는 자를 위로하지 말라. 단지 친구들이 보답으로 너희를 불쌍히 여길까 하여 친구들을 동정하지 말라.
1955 159:3.12 When my children once become self-conscious of the assurance of the divine presence, such a faith will expand the mind, ennoble the soul, reinforce the personality, augment the happiness, deepen the spirit perception, and enhance the power to love and be loved.
2000 159:3.12 내 자녀들이 일단 신이 앞에 계시다는 확신을 스스로 의식하게 될 때, 그러한 믿음은 시야를 넓히고, 혼을 고귀하게 만들고, 인격을 단련하며, 행복을 키우고, 영적 이해를 깊이 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키워준다.
2001 CM 159:3.12 내 자녀들이 신의 현존하심을 확신하는 자아-의식에 일단 도달하게 되면, 그런 신앙은 정신을 확장시키고, 혼을 고상하게 하고, 인간성을 강화시키고, 행복을 증대시키고, 영을 더 깊이 인식하게 하고, 사랑하는 능력과 사랑 받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2007 URKA 159:3.12 나의 자녀들이 일단 신성한 현존에 대한 확신에 자아-의식적이 되면, 그러한 신앙은 마음을 확대시키고, 혼을 고귀하게 하며, 개인성을 더욱 기세-넘치게 하고, 행복을 증강시키고, 영 감지를 심화시키고,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힘을 강화시킨다.
2025 159:3.12 내 자녀들이 일단 신이 앞에 계시다는 확신을 스스로 의식하게 될 때, 그러한 믿음은 시야를 넓히고, 혼을 고귀하게 만들고, 인격을 단련하며, 행복을 키우고, 영적 이해를 깊이 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키워준다.
1955 159:3.13 Teach all believers that those who enter the kingdom are not thereby rendered immune to the accidents of time or to the ordinary catastrophes of nature. Believing the gospel will not prevent getting into trouble, but it will insure that you shall be unafraid when trouble does overtake you. If you dare to believe in me and wholeheartedly proceed to follow after me, you shall most certainly by so doing enter upon the sure pathway to trouble. I do not promise to deliver you from the waters of adversity, but I do promise to go with you through all of them.
2000 159:3.13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그렇게 한다고, 어쩌다 생기는 사고나 자연에 일어나는 보통 재앙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라. 복음을 믿는 것은 곤경에 빠지지 않게 만들지 않을 터이나, 너희에게 고난이 덮칠 때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리라. 너희가 감히 나를 믿고 마음을 다하여 나서서 나를 따르고자 하면, 그리함으로 분명한 고난의 길로 아주 확실히 들어설 것이다. 나는 역경(逆境)의 바다에서 너희를 구하리라 약속하지 않지만, 그 모든 역경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갈 것을 약속한다.
2001 CM 159:3.13 천국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상의 사고나 자연적인 일반 재앙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모든 믿는 자에게 가르쳐라. 복음을 믿는 것은,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지는 않겠지만, 재난이 너희를 덮칠 때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켜줄 것이다. 용기를 갖고 나를 믿고자 하고 전심으로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그리함으로써 너희는 반드시 확실한 고난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나는 불운의 강물에서 너희를 건져주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그 모든 과정에 너희와 함께 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2007 URKA 159:3.13 왕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그것으로써 시간의 우연한 사고나 일상적인 자연의 재앙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신자들에게 가르쳐라. 복음을 믿는 것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줄 것은 아니지만, 곤경이 너를 덮칠 때에 너희가 반드시 두려움-없이 있을 것을 보장할 것이다. 만일 너희가 과감하게 나를 믿고 전심으로 나를 따라서 나아가려 한다면, 너희는 확실히 곤경으로 가는 통로에서 가장 확신하면서 그렇게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역경의 바다에서 건지리라 약속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나는 그러한 모든 것에 두루 내내 너희와 함께 갈 것을 약속한다.
2025 159:3.13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그렇게 한다고, 어쩌다 생기는 사고나 자연에 일어나는 보통 재앙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신자에게 가르치라. 복음을 믿는 것은 곤경에 빠지지 않게 만들지 않을 터이나, 너희에게 고난이 덮칠 때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리라. 너희가 감히 나를 믿고 마음을 다하여 나서서 나를 따르고자 하면, 그리함으로 분명한 고난의 길로 아주 확실히 들어설 것이다. 나는 역경(逆境)의 바다에서 너희를 구하리라 약속하지 않지만, 그 모든 역경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갈 것을 약속한다.
1955 159:3.14 And much more did Jesus teach this group of believers before they made ready for the night’s sleep. And they who heard these sayings treasured them in their hearts and did often recite them for the edification of the apostles and disciples who were not present when they were spoken.
2000 159:3.14 그리고 이 무리의 신자들이 밤에 자려고 준비하기 전에 예수는 그들에게 훨씬 더 가르쳤다. 그리고 듣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했고, 이 말씀이 있을 때 자리에 없던 사도와 제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이 말씀을 자주 되풀이했다.
2001 CM 159:3.14 이 신자들 집단이 잠잘 준비를 하기 전에, 예수께서는 더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었던 자들은 그것을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했으며, 이 말씀을 할 때 그 자리에 없던 사도와 제자들을 교화시키려고 이 말씀을 종종 되풀이하곤 했다.
2007 URKA 159:3.14 그리고 이 신자 집단이 그날 밤 자려고 준비하기 전까지 예수는 그들에게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쳤다. 이들 말씀을 들었던 자들은 그것들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도들과 제자들의 교화를 위하여 종종 반복하여 이야기하였다.
2025 159:3.14 그리고 이 무리의 신자들이 밤에 자려고 준비하기 전에 예수는 그들에게 훨씬 더 가르쳤다. 그리고 듣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했고, 이 말씀이 있을 때 자리에 없던 사도와 제자들의 수련을 위하여 이 말씀을 자주 되풀이했다.
4. THE TALK WITH NATHANIEL
4. 나다니엘과 한 이야기
4. 나다니엘과 나눈 대화
4. 나다니엘과의 대화
4. 나다니엘과 한 이야기
1955 159:4.1 And then went Jesus over to Abila, where Nathaniel and his associates labored. Nathaniel was much bothered by some of Jesus’ pronouncements which seemed to detract from the authority of the recognized Hebrew scriptures. Accordingly, on this night, after the usual period of questions and answers, Nathaniel took Jesus away from the others and asked: “Master, could you trust me to know the truth about the Scriptures? I observe that you teach us only a portion of the sacred writings—the best as I view it—and I infer that you reject the teachings of the rabbis to the effect that the words of the law are the very words of God, having been with God in heaven even before the times of Abraham and Moses. What is the truth about the Scriptures?” When Jesus heard the question of his bewildered apostle, he answered:
2000 159:4.1 그리고 나서 예수는 아빌라로 갔는데, 거기에는 나다니엘과 그 동료들이 수고하였다. 예수의 선언 중에 더러가 인정된 히브리 성서(聖書)의 권한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나다니엘은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따라서 이날 밤에, 여느 때처럼 질문 대답 시간이 지난 뒤에, 나다니엘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데로 예수를 모시고 가서 물었다: “주여, 당신은 성서에 관하여 내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할 수 있나이까? 내가 지켜보기에, 당신은 우리에게 신성한 기록의 일부만―내가 보건대 최선을―가르치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절 이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사오니, 내가 추측하건대 율법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취지로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당신은 거절하시나이다. 성서에 관하여 무엇이 진실이나이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도의 물음을 듣고서 예수는 대답했다:
2001 CM 159:4.1 그다음에는 예수께서 나다니엘과 그 동역자들이 수고하는 아빌라로 갔다. 나다니엘은, 공인된 히브리 성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듯이 보이는 예수의 어떤 발언들로 인해,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날 밤, 통상적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나다니엘은 아무도 없는 다른 곳으로 예수를 모시고 가서 질문했다:“주님, 성서에 관하여 내가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성시되는 기록들 중에서 --내가 보기에도 가장 훌륭한-- 일부분만을 당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봐왔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대 이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율법의 말씀이 바로 그 하나님 말씀이라는 취지에서, 랍비들의 교훈을 거부하신다고 추측합니다. 성서에 관한 진실은 무엇입니까?” 당황하고 있는 사도의 질문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했다:
2007 URKA 159:4.1 그다음에는 예수가 나다니엘과 그의 일행들이 수고하고 있는 아빌라로 갔다. 나다니엘은 인정된 히브리 성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듯이 보이는 예수의 어떤 발언들로 인하여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날 밤에, 일상적인 질문과 대답의 시간이 지난 뒤에, 나다니엘은 예수를 아무도 없는 다른 곳으로 모시고 가서 물었다: “주(主)여, 제가 성서를 진리로 알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실 수 있으시지요? 저는 당신께서 성스러운 기록들 중에서 일부분─제가 보기에도 가장 훌륭한 부분─만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지켜보아 왔으며, 당신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절 이전에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함께 있어 왔기에, 당신은 율법의 말씀들이 바로 하느님 말씀이라는 취지로 말하는 랍비들의 가르침을 거부한다고 추측합니다. 성서는 과연 어떤 것입니까?” 곤혹스러워하는 사도의 질문을 들은 예수가 대답하였다:
2025 159:4.1 다음에 예수는 아빌라로 갔는데, 거기에는 나다니엘과 그 동료들이 수고하였다. 예수의 선언 중에 더러가 인정된 히브리 성서(聖書)의 권한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나다니엘은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따라서 이날 밤에, 여느 때처럼 문답 시간이 지난 뒤에, 나다니엘은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데로 예수를 모시고 가서 물었다: “주여, 당신은 성서에 관하여 내가 진실을 안다고 생각할 수 있나이까? 내가 지켜보기에, 당신은 우리에게 신성한 기록의 일부만 ― 내가 보건대 최선을 ― 가르치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시절 이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사오니, 내가 추측하건대 율법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취지로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당신은 거절하시나이다. 성서에 관하여 무엇이 진실이나이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도의 물음을 듣고서 예수는 대답했다:
1955 159:4.2 “Nathaniel, you have rightly judged; I do not regard the Scriptures as do the rabbis. I will talk with you about this matter on condition that you do not relate these things to your brethren, who are not all prepared to receive this teaching. The words of the law of Moses and the teachings of the Scriptures were not in existence before Abraham. Only in recent times have the Scriptures been gathered together as we now have them. While they contain the best of the higher thoughts and longings of the Jewish people, they also contain much that is far from being representative of the character and teachings of the Father in heaven; wherefore must I choose from among the better teachings those truths which are to be gleaned for the gospel of the kingdom.
2000 159:4.2 “나다니엘아, 네가 옳게 판단하였으니, 나는 랍비들과 같은 견지에서 성서를 바라보지 않노라. 너의 형제들이 모두 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지는 않았으니 저희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너와 함께 이야기하리라. 모세의 율법에 담긴 말씀과 성서의 가르침은 아브라함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겨우 요즈음에 와서 성서가 우리가 가진 대로 수집되었느니라. 유대 민족의 상급 사상과 최선의 소망을 담고 있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가르침을 대표하기에는 아득히 먼 것을 또한 많이 담고 있느니라. 그런즉 나는 상급의 가르침 중에서 하늘나라 복음을 위하여 이삭을 줍듯 진리를 골라야 하노라.
2001 CM 159:4.2 “나다니엘아, 네가 옳게 판단했으며;나는 랍비들이 하는 것처럼 성서를 대하지 않는다. 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너의 형제들에게 아직 온전히 갖춰지지 않았으니, 저희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문제에 대해 너와 이야기하려고 한다. 모세의 율법의 말씀과 성서의 교훈이 아브라함 이전에는 없었다. 다만 최근에 성서가 모아져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처럼 됐다. 유대 민족의 높은 사고{思考}와 가장 훌륭한 동경을 포함하고 있으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교훈을 대표하기에는 아주 부족한 것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그러므로 나는 더 나은 교훈 가운데서, 천국 복음을 위하여 이삭 줍듯이 진리를 골라낼 수밖에 없다.
2007 URKA 159:4.2 “나다니엘아, 네가 옳게 판단하였다. 나는 랍비들이 하는 것처럼 성서를 대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네 형제들에게 네가 이것들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너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모세의 율법의 말들과 성서의 가르침들은 아브라함 이전에는 실존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 와서, 성서가 모아져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처럼 되었다. 그 글들이 유대 민족의 더욱 높은 사고와 열망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반면에 거기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격이나 가르침을 대변하기에는 아득히 먼 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왕국 복음을 위하여 추려져야만 하는 저들 진리 중에서, 보다 나은 가르침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2025 159:4.2 “나다니엘아, 네가 옳게 판단하였으니, 나는 랍비들과 같은 견지에서 성서를 바라보지 않노라. 너의 형제들이 모두 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지는 않았으니 저희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문제에 대하여 너와 함께 이야기하리라. 모세의 율법에 담긴 말씀과 성서의 가르침은 아브라함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겨우 요즈음에 와서 성서가 우리가 가진 대로 수집되었느니라. 유대 민족의 상급 사상과 최선의 소망을 담고 있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가르침을 대표하기에는 아득히 먼 것을 또한 많이 담고 있느니라. 그런즉 나는 상급의 가르침 중에서 하늘나라 복음을 위하여 이삭을 줍듯 진실을 골라야 하노라.
1955 159:4.3 “These writings are the work of men, some of them holy men, others not so holy. The teachings of these books represent the views and extent of enlightenment of the times in which they had their origin. As a revelation of truth, the last are more dependable than the first. The Scriptures are faulty and altogether human in origin, but mistake not, they do constitute the best collection of religious wisdom and spiritual truth to be found in all the world at this time.
2000 159:4.3 “이 여러 기록은 사람들이 쓴 것이요, 저희 가운데 더러는 거룩한 사람이었고, 더러는 그다지 거룩하지 않았느니라. 이 책들의 가르침은 그 기원이 있던 시절에 깨우친 관점과 정도를 나타내느니라. 진리의 계시(啓示)로서, 마지막 것은 처음 것보다 더 믿을 만하니라. 성서는 결함이 있고 그 기원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지만, 그릇 생각하지 말라, 성서는 이때에 온 세상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지혜와 영적 진리 가운데 최선의 수집(收集)이라.
2001 CM 159:4.3 “이 여러 기록은 사람들의 작품인데, 그들 가운데 더러는 거룩한 사람이었고, 또한 더러는 그렇게 거룩하지 못했다. 이 책들의 교훈은, 그것이 기원된 그 시대에 깨우친 견해와 범위를 나타낸다. 진리 계시로서,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더 의존할 만하다. 성서에 결함이 있고 모두 인간에게서 기원되기는 했지만, 실수하지 말라, 오늘날 온 세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종교적 지혜와 영적 진리 중에서 최고 수집품이다.
2007 URKA 159:4.3 “이들 기록들은 사람들의 작품인데, 그들 중에 더러는 거룩한 사람들이었고, 다른 자들은 그렇게 거룩하지 않았다. 이들 책의 가르침들은 그것들이 기원된 그 시절의 관점과 깨우침의 범위를 대표한다. 진리의 계시로서는, 처음 부분보다는 마지막 부분이 더 신뢰할 만하다. 실수를 범하지 말라, 성서가 결점이 있고 인간으로부터 기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 시점에 온 세계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지혜와 영적 진리의 최상의 것이 수집되어 구성되어 있다.
2025 159:4.3 “이 여러 기록은 사람들이 쓴 것이요, 저희 가운데 더러는 거룩한 사람이었고, 더러는 그다지 거룩하지 않았느니라. 이 책들의 가르침은 그 기원이 있던 시절에 깨우친 관점과 정도를 나타내느니라. 진실의 계시(啓示)로서, 마지막 것은 처음 것보다 더 믿을 만하니라. 성서는 결함이 있고 그 기원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지만, 그릇 생각하지 말라, 성서는 이때에 온 세상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지혜와 영적 진실 가운데 최선의 수집(收集)이라.
1955 159:4.4 “Many of these books were not written by the persons whose names they bear, but that in no way detracts from the value of the truths which they contain. If the story of Jonah should not be a fact, even if Jonah had never lived, still would the profound truth of this narrative, the love of God for Nineveh and the so-called heathen, be none the less precious in the eyes of all those who love their fellow men. The Scriptures are sacred because they present the thoughts and acts of men who were searching for God, and who in these writings left on record their highest concepts of righteousness, truth, and holiness. The Scriptures contain much that is true, very much, but in the light of your present teaching, you know that these writings also contain much that is misrepresentative of the Father in heaven, the loving God I have come to reveal to all the worlds.
2000 159:4.4 “이 책들 가운데 여럿은 그 책들이 지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쓰지 않았으나 이는 그 책에 담긴 진리의 가치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느니라. 요나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도, 요나가 결코 세상을 산 적이 없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깊은 진리, 곧 하나님이 니느베와 이른바 이교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역시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눈에 여전히 귀중하니라. 성서가 거룩한 것은 성서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제시하는 까닭이요, 저희는 이 여러 글에서 올바름과 진리와 거룩함에 대하여 가장 높은 개념을 기록으로 남겼느니라. 성서는 참인 것을 많이, 허다하게 담고 있으나, 너희의 현재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이 기록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릇 대표하는 많은 것을 또한 담고 있음을 네가 알며, 나는 그 사랑의 하나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려고 왔노라.
2001 CM 159:4.4 이 책들 가운데 다수는 그것이 지닌 이름의 그 사람이 기록하지 않았으나, 그렇더라도 거기에 담겨있는 진리의 가치는 결코 감소되지 않을 것이다. 요나에 관한 기록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해도, 심지어 요나라는 사람이 살았던 적이 없었다고 해도,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심오한 진리가 있고, 그 진리는 이방이라 불리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인데, 동료를 사랑하는 자의 눈에는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성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성시되며, 그들은 이 작품들에서, 정의와 진리와 신성함 등에 대한 가장 높은 개념을 기록으로 남겼다. 성서는 참된 것을 많이 포함하지만, 오늘날 너희가 가르치고 있는 것에 비춰본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릇되게 설명하는 많은 부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 것인데, 그 사랑의 하나님을 온 세상에 나타내려고 내가 왔다.
2007 URKA 159:4.4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그 책에 적힌 이름을 가진 사람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지만, 그것으로 담겨 있는 진리의 가치가 떨어질 수는 없다. 만일에 요나에 관한 기사가 사실이 아니었다 해도, 심지어는 요나라는 사람이 전혀 있지 않았다 해도, 이 이야기에 있는 그 심오한 진리, 곧 니느웨와 이른바 이방인을 위한, 하느님의 그 사랑은, 자신의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의 눈에는 여전히 소중하다. 성서는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신성하며, 그들은 이 글 속에 정의, 진리 그리고 거룩함에 대한 그들의 가장 높은 개념들을 기록해 놓았다. 성서는 참된 것을 매우 많이 포함하고 있지만, 오늘날 너희가 가르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 내가 와서 모든 세계에 계시하고자 하는 사랑의 하느님에 대하여 그릇되게-나타내는 많은 것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다.
2025 159:4.4 “이 책들 가운데 여럿은 그 책들이 지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쓰지 않았으나 이는 그 책에 담긴 진실의 가치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느니라. 요나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도, 요나가 결코 세상을 산 적이 없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깊은 진실, 곧 하나님이 니느베와 이른바 이교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역시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눈에 여전히 귀중하니라. 성서가 거룩한 것은 성서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제시하는 까닭이요, 저희는 이 여러 글에서 올바름과 진실과 거룩함에 대하여 가장 높은 개념을 기록으로 남겼느니라. 성서는 참인 것을 많이, 허다하게 담고 있으나, 너희의 현재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이 기록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릇 대표하는 많은 것을 또한 담고 있음을 네가 알며, 나는 그 사랑의 하나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려고 왔노라.
1955 159:4.5 “Nathaniel, never permit yourself for one moment to believe the Scripture records which tell you that the God of love directed your forefathers to go forth in battle to slay all their enemies—men, women, and children. Such records are the words of men, not very holy men, and they are not the word of God. The Scriptures always have, and always will, reflect the intellectual, moral, and spiritual status of those who create them. Have you not noted that the concepts of Yahweh grow in beauty and glory as the prophets make their records from Samuel to Isaiah? And you should remember that the Scriptures are intended for religious instruction and spiritual guidance. They are not the works of either historians or philosophers.
2000 159:4.5 “나다니엘아, 사랑의 하나님이 너의 조상에게 싸움터에 나가서, 적을 모두―어른과 아이들을―도륙하라 지시했다고 이르는 성서의 기록을 한 순간이라도 믿으려 하지 말라. 그러한 기록은 사람들, 그다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서는 성서를 쓴 사람들의 지적ㆍ도덕적ㆍ영적 상태를 언제나 비쳐 왔고, 언제나 그러하리라. 선지자들이 사무엘부터 이사야까지 기록을 만드는 동안, 야웨 개념이 더 아름답고 영화롭게 성장하는 것을 너는 눈치채지 못하였느냐? 그리고 성서의 의도(意圖)는 종교적 교육과 영적 안내를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하느니라. 성서는 역사가나 철학자의 작품이 아니라.
2001 CM 159:4.5 “나다니엘아, 사랑의 하나님께서 너의 조상에게, 그들의 적--곧 남녀 어른과 아이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려고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한 순간도 결코 믿으려하지 말라. 그런 기록은 사람의 말, 그다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서는 그것을 창작한 사람들의, 지적, 도덕적, 영적 상태를 늘 반영해왔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 사무엘부터 이사야까지 선지자들이 기록을 작성하는 동안, 야훼 개념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변화 발전해간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느냐? 그리고, 성서가 종교적 지침과 영적 안내를 위한 것임을 꼭 기억해라. 성서는 역사가나 철학자의 작품이 아니다.
2007 URKA 159:4.5 “나다니엘아, 사랑의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싸움터에 나가서, 그들의 적을 모두─남자들과 여자들 및 아이들을 막론하고─도륙하라고 지시했다는 성서의 기록을 한 순간이라도 믿으려는 것에 너 자신을 결코 허락하지 말라. 그러한 기록들은 사람들의, 그다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서는 그것을 지어낸 사람들의 지적, 도덕적, 영적 지위를 늘 반영해 왔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선지자들이 사무엘로부터 이사야에 이르는 그들의 기록을 만들어 가면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개념이 아름다움과 영광 안에서 성장해간 것을 네가 알아차리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는 성서가 종교적인 교육과 영적 안내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들은 역사가나 철학자들의 작품이 아니다.
2025 159:4.5 “나다니엘아, 사랑의 하나님이 너의 조상에게 싸움터에 나가서, 적을 모두 ― 어른과 아이들을 ― 도륙하라 지시했다고 이르는 성서의 기록을 한 순간이라도 믿으려 하지 말라[21]. 그러한 기록은 사람들, 그다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서는 성서를 쓴 사람들의 지적ㆍ도덕적ㆍ영적 상태를 언제나 비쳐 왔고, 언제나 그러하리라. 선지자들이 사무엘부터 이사야까지 기록을 만드는 동안, 야웨 개념이 더 아름답고 영화롭게 성장하는 것을 너는 눈치채지 못하였느냐? 그리고 성서의 의도(意圖)는 종교적 교육과 영적 안내를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하느니라. 성서는 역사가나 철학자의 작품이 아니라.
1955 159:4.6 “The thing most deplorable is not merely this erroneous idea of the absolute perfection of the Scripture record and the infallibility of its teachings, but rather the confusing misinterpretation of these sacred writings by the tradition-enslaved scribes and Pharisees at Jerusalem. And now will they employ both the doctrine of the inspiration of the Scriptures and their misinterpretations thereof in their determined effort to withstand these newer teaching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Nathaniel, never forget, the Father does not limit the revelation of truth to any one generation or to any one people. Many earnest seekers after the truth have been, and will continue to be, confused and disheartened by these doctrines of the perfection of the Scriptures.
2000 159:4.6 “가장 한탄할 것은 단지 성서 기록이 절대 완전하고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는 이 그릇된 생각 뿐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 노예가 된, 예루살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신성한 기록을 혼동하여 그릇 해석하는 것이라. 저희가 하늘나라 복음, 이 새로운 가르침에 저항하려고 굳게 각오하고, 이제 성서가 영감을 받았다는 교리와 그에 관한 저희의 그릇된 해석을 이용하리라. 나다니엘아, 결코 잊지 말라, 아버지는 진리의 계시를 어느 한 세대나 어느 한 민족에게만 주지 않느니라.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많은 사람이 성서가 완벽하다는 이 교리(敎理)에 헛갈리고 낙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
2001 CM 159:4.6 “가장 통탄할 일은, 단지 성서 기록이 절대로 완벽하다는 생각과, 그 교훈이 무오{無誤}하다는 잘못된 생각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사로잡힌 예루살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신성시되는 작품들을 혼동해서 잘못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천국 복음이라는 더 새로운 이 교훈에 저항하기 위해, 성서가 영감{靈感}된 것이라는 교리, 그리고 고집스럽게 노력해서 만든 해석상 오류, 이 둘을 다 채택하려고 한다. 나다니엘아, 아버지께서는 진리 계시를 어느 한 세대 또는 어느 한 민족에게만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한 많은 사람이, 성서가 완벽하다는 이 교리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낙심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2007 URKA 159:4.6 “가장 통탄할 일은, 단순히 성서 기록의 절대적인 완전성과 그 가르침의 무-오류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사로잡힌 예루살렘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이들 성스러운 글이 잘못-해석되어 혼란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왕국 복음의 더욱 새로운 가르침에 그들이 저항하는데 애쓰기로 굳게 결정하면서, 성서가 영감 받았다는 교리와 그에 대한 잘못된-해석의 그 두 가지를 모두 적용할 것이다. 나다니엘아, 아버지는 진리에 대한 계시를 어느 한 세대 또는 어느 한 민족에게만 한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해 왔던, 많은 사람들이 성서가 완전하다는 이들 교리들 때문에 혼동되고 낙심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다.
2025 159:4.6 “가장 한탄할 것은 단지 성서 기록이 절대 완전하고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는 이 그릇된 생각만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 노예가 된, 예루살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 신성한 기록을 혼동하여 그릇 해석하는 것이라[22]. 저희가 하늘나라 복음, 이 새로운 가르침에 저항하려고 굳게 각오하고, 이제 성서가 영감을 받았다는 교리와 그에 관한 저희의 그릇된 해석을 이용하리라. 나다니엘아, 결코 잊지 말라, 아버지는 진실의 계시를 어느 한 세대나 어느 한 민족에게만 주지 않느니라. 진지하게 진실을 찾는 많은 사람이 성서가 완벽하다는 이 교리(敎理)에 헛갈리고 낙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
1955 159:4.7 “The authority of truth is the very spirit that indwells its living manifestations, and not the dead words of the less illuminated and supposedly inspired men of another generation. And even if these holy men of old lived inspired and spirit-filled lives, that does not mean that their words were similarly spiritually inspired. Today we make no record of the teachings of this gospel of the kingdom lest, when I have gone, you speedily become divided up into sundry groups of truth contenders as a result of the diversity of your interpretation of my teachings. For this generation it is best that we live these truths while we shun the making of records.
2000 159:4.7 “진리의 권위는 진리의 생생한 명시에 깃드는 바로 그 정신이요, 다른 세대에 깨우침이 덜한 사람들,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죽은 말이 아니라. 이 거룩한 옛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영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저희의 말씀이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았음을 의미하지 않느니라. 내가 떠났을 때, 내 가르침을 다양하게 풀이하는 결과로 너희가 진리를 놓고 다투는 자들의 잡다한 집단으로 급속히 갈라질까 저어하여, 오늘날 이 하늘나라 복음의 가르침을 우리가 하나도 기록하지 않느니라. 기록 만들기를 피하면서 우리가 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이 세대에게 최선이라.
2001 CM 159:4.7 “진리의 권위는, 진리가 생생하게 증거하는 것들 속에 깃들어있는 바로 그 진의{眞意}이며, 덜 교화되고 영감 받았다고 짐작되는 다른 세대 사람들의 케케묵은 말이 아니다. 그리고 옛날에 살았던 이 거룩한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영으로-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그들의 말도 비슷하게 영적으로 영감 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이 천국 복음의 교훈을 기록하지 않는데, 이는 내가 떠난 후에, 내 교훈을 다양하게 해석한 결과로, 너희가 진리를 놓고 논쟁하는 자들의 잡다한 분파로 속히 나뉘게 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 세대를 위해서는, 우리가 기록 만들기를 피하면서 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최선이다.
2007 URKA 159:4.7 “진리의 권위는 그 살아있는 현시활동 안에 내주 하는 바로 그 영이고, 어떤 다른 세대의 더욱 희미하고 또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정되는 사람들의 죽어있는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옛사람 중에 성스러운 사람들이 설혹 영감을 받고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들의 말들도 똑같이 영적으로 영감 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왕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떠난 후에 내 가르침에 대한 너희의 다양한 해석의 결과로 인하여 가지각색의 진리를 다투는 논쟁자들의 분파로 속히 분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세대를 위하여 우리가 기록을 만드는 것을 피하고 우리는 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최선이다.
2025 159:4.7 “진실의 권위는 진실의 생생한 명시에 깃드는 바로 그 정신이요, 다른 세대에 깨우침이 덜한 사람들,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죽은 말이 아니라. 이 거룩한 옛 사람들이 영감을 받고 영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저희의 말씀이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았음을 의미하지 않느니라. 내가 떠났을 때, 내 가르침을 다양하게 풀이하는 결과로 너희가 진실을 놓고 다투는 자들의 잡다한 집단으로 급속히 갈라질까 저어하여, 오늘날 이 하늘나라 복음의 가르침을 우리가 하나도 기록하지 않느니라. 기록 만들기를 피하면서 우리가 이 진실을 행하는 것이 이 세대에게 최선이라.
1955 159:4.8 “Mark you well my words, Nathaniel, nothing which human nature has touched can be regarded as infallible. Through the mind of man divine truth may indeed shine forth, but always of relative purity and partial divinity. The creature may crave infallibility, but only the Creators possess it.
2000 159:4.8 “내 말을 잘 주목하여라, 나다니엘아, 인간의 성품이 만진 것은 무엇이나 전혀 오류가 없다고 여길 수 없느니라. 사람의 머리를 통해서 신성한 진리는 정말로 빛을 낼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것은 비교적 순수하고 부분적으로 신성한 진리이라. 사람은 전혀 잘못이 없기를 몹시 바랄지 몰라도 오직 창조자들이 절대로 잘못이 없는 속성을 가지느니라.
2001 CM 159:4.8 “나다니엘아, 내 말을 잘 기억해라, 인간 본성이 관여된 것은 어떤 것이든지 무오{無誤}하다고 간주될 수 없다. 사람의 정신을 통해서 신성한 진리가 참으로 빛을 발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상대적으로 순전할 뿐이며, 부분적인 신성{神性}이 있을 뿐이다. 피조물은 완전무결함을 갈구하지만, 오직 창조주들만 그것을 지닌다.
2007 URKA 159:4.8 “나다니엘아, 내 말을 잘 표시해 두어라, 인간 본성이 닿은 것은 그 어떤 것도 무-오류류로 간주될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신성한 진리가 정말로 빛을 뿜어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상대적인 순수함과 부분적인 신성일뿐이다. 창조체는 무-오류류성을 갈구하지만, 그러나 오직 창조자들만 그것을 소유한다.
2025 159:4.8 “내 말을 잘 주목하여라, 나다니엘아, 인간의 성품이 만진 것은 무엇이나 전혀 오류가 없다고 여길 수 없느니라. 사람의 머리를 통해서 신성한 진실은 정말로 빛을 낼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것은 비교적 순수하고 부분적으로 신성한 진실이라. 사람은 전혀 잘못이 없기를 몹시 바랄지 몰라도 오직 창조자들이 절대로 잘못이 없는 속성을 가지느니라.
1955 159:4.9 “But the greatest error of the teaching about the Scriptures is the doctrine of their being sealed books of mystery and wisdom which only the wise minds of the nation dare to interpret. The revelations of divine truth are not sealed except by human ignorance, bigotry, and narrow-minded intolerance. The light of the Scriptures is only dimmed by prejudice and darkened by superstition. A false fear of sacredness has prevented religion from being safeguarded by common sense. The fear of the authority of the sacred writings of the past effectively prevents the honest souls of today from accepting the new light of the gospel, the light which these very God-knowing men of another generation so intensely longed to see.
2000 159:4.9 “그러나 성서에 관한 가르침에 가장 큰 착오는 성서가 오로지 그 민족의 지혜로운 지성인만 감히 풀이하는 봉인된 책, 신비와 지혜의 책이라는 교리이라. 신성한 진리의 계시는 인간의 무지, 편견, 좁게 생각하는 불관용이 아니면 봉인되지 않느니라. 성서의 빛을 오직 편견이 가리고 미신이 어둡게 만드느니라. 신성한 것을 헛되이 두려워하는 것은 종교가 상식(常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막아왔느니라. 지난날의 신성한 기록의 권한을 무서워하는 것은 오늘날 정직한 사람들이 복음의 새로운 빛, 지난 세대에 하나님을 아는 바로 이 사람들이 지극히 보고 싶어했던 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실질적으로 막느니라.
2001 CM 159:4.9 “그러나 성서를 가르칠 때 가장 큰 잘못은, 오직 그 민족 중에서 현명한 정신을 가진 자들만 감히 해석할 수 있는 지혜와 신비의 책이라고 봉해 버리는 교리에 있다. 신성한 진리가 계시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의 무지와 완고함 그리고 편협한-성향의 불관용이다. 성서가 발하는 빛은 오직 편견 때문에 약해지며, 미신으로 인해 어두워질 뿐이다. 신성시되는 것을 헛되이 두려워하는 것이, 종교가 상식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과거의 신성시되는 기록의 권위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 때문에, 오늘날 정직한 사람들이, 복음의 새 빛, 즉 하나님을 알던 다른 세대의 사람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보고 싶어 하던 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2007 URKA 159:4.9 “그러나 성서에 관한 가르침에서의 가장 큰 잘못은, 오로지 그 민족의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감히 해석할 수 있는 그러한 지혜와 신비의 봉인된 책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교리에 있다. 신성한 진리에 대한 계시는 인간의 무지, 완고함, 그리고 편협된 불관용을 제외한다면 어떤 것으로도 봉인되는 않는다. 성서의 빛은 오직 선입관에 의해서 약해지며 미신에 의해서만 어두워진다. 성스러움에 대한 거짓된 두려움은 종교가 상식에 따라 보호수단이 되는 것을 방해해 왔다. 과거의 성스러운 기록들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은, 복음의 새로운 빛, 곧 하느님을-알고 있던 다른 세대의 바로 그 사람들이 그토록 보려고 강렬하게 갈망했던 빛을 승낙하는 것에서. 오늘의 정직한 혼들을 효과적으로 가로막는다.
2025 159:4.9 “그러나 성서에 관한 가르침에 가장 큰 착오는 성서가 오로지 그 민족의 지혜로운 지성인만 감히 풀이하는 봉인된 책, 신비와 지혜의 책이라는 교리이라. 신성한 진실의 계시는 인간의 무지, 편견, 좁게 생각하는 불관용이 아니면 봉인되지 않느니라. 성서의 빛을 오직 편견이 가리고 미신이 어둡게 만드느니라. 신성한 것을 헛되이 두려워하는 것은 종교가 상식(常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막아왔느니라. 지난날의 신성한 기록의 권한을 무서워하는 것은 오늘날 정직한 사람들이 복음의 새로운 빛, 지난 세대에 하나님을 아는 바로 이 사람들이 지극히 보고 싶어 했던 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실질적으로 막느니라.
1955 159:4.10 “But the saddest feature of all is the fact that some of the teachers of the sanctity of this traditionalism know this very truth. They more or less fully understand these limitations of Scripture, but they are moral cowards, intellectually dishonest. They know the truth regarding the sacred writings, but they prefer to withhold such disturbing facts from the people. And thus do they pervert and distort the Scriptures, making them the guide to slavish details of the daily life and an authority in things nonspiritual instead of appealing to the sacred writings as the repository of the moral wisdom, religious inspiration, and the spiritual teaching of the God-knowing men of other generations.”
2000 159:4.10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슬픈 특징은 이 전통이 신성하다고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 더러가 바로 이 진실을 안다는 사실이라. 저희는 성서의 이 한계를 대체로 충분히 알지만, 도덕적으로 겁쟁이요,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으니라. 저희는 신성한 기록에 관하여 진실을 알아도 사람들에게 그런 불안한 사실을 알리지 않기를 더 좋아하느니라. 이렇게 저희는 성서를 달리 해석하고 왜곡하며, 그 신성한 기록이 다른 세대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도덕적 지혜, 종교적 영감, 영적 가르침의 저장소라고 호소하는 대신에, 성서를 일상 생활의 깨알 같은 세부를 담은 안내서요, 비영적인 것에 관한 권위 있는 책으로 만드느니라.”
2001 CM 159:4.10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슬픈 점은, 이 전통주의의 고결함을 가르치는 교사들 가운데 일부가, 이것을 진정한 진리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희는 성서의 이 한계를 대체로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도덕적으로 비겁하고, 지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하다. 저희는 신성시되는 문서들에 관해 진상을 알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런 혼란스런 사실을 계속 감추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저희는 성서를 오용하고 왜곡하는데, 신성시되는 그 문서들이, 하나님을-아는 다른 세대 사람들의 도덕적 지혜와 종교적 영감과 영적 가르침의 보고{寶庫}라고 호소하는 대신, 성서를 일상생활에서 맹종해야할 세부사항을 담은 안내서요, 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권위 있는 책인 것처럼 만든다.”
2007 URKA 159:4.10 “그러나 모든 것에서 가장 슬픈 점은 이런 전통주의의 성스러움을 가르치는 선생들 가운데 몇몇이 바로 이러한 진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많든 적든 성서의 이들 한계를 충분히 납득하고 있지만, 그러나 도덕적으로 비겁하며, 지적으로 부정직하다. 그들은 성스러운 기록들에 관한 진리를 알고 있지만, 그러한 교란시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서 감추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을-알고 있던 다른 세대의 사람들의 도덕적 지혜, 종교적 영감 그리고 영적 가르침의 저장고로서 그 성스러운 기록들에 호소하는 것 대신에, 그러한 기록들을 일상생활의 노예로 만드는 세부사항과, 비-영적인 것에 대한 권위에 대한 안내서로 만들면서, 그것을 악용하고 왜곡하고 있다.”
2025 159:4.10 “그러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슬픈 특징은 이 전통이 신성하다고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 더러가 바로 이 진실을 안다는 사실이라. 저희는 성서의 이 한계를 대체로 충분히 알지만, 도덕적으로 겁쟁이요,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으니라. 저희는 신성한 기록에 관하여 진실을 알아도 사람들에게 그런 불안한 사실을 알리지 않기를 더 좋아하느니라. 이렇게 저희는 성서를 달리 해석하고 왜곡하며, 그 신성한 기록이 다른 세대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도덕적 지혜, 종교적 영감, 영적 가르침의 저장소라고 호소하는 대신에, 성서를 일상 생활의 깨알 같은 세부를 담은 안내서요, 비영적인 것에 관한 권위 있는 책으로 만드느니라.”
1955 159:4.11 Nathaniel was enlightened, and shocked, by the Master’s pronouncement. He long pondered this talk in the depths of his soul, but he told no man concerning this conference until after Jesus’ ascension; and even then he feared to impart the full story of the Master’s instruction.
2000 159:4.11 나다니엘은 주의 선언에 깨우침과 충격을 받았다. 마음 속 깊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예수가 승천하기까지 이 회담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때도 주가 가르친 이야기를 전부 전하기를 두려워했다.
2001 CM 159:4.11 나다니엘은 주님의 분명한 말씀에 교화{敎化}됐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대화를 혼 깊숙이 오래 숙고했지만,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까지 이 회담에 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그후에도 주님이 설명한 전체 줄거리를 전하기를 두려워했다.
2007 URKA 159:4.11 나다니엘은 주(主)의 선언에 깨우쳐졌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대화를 그의 혼의 깊은 곳에서 심사숙고해 보았지만, 예수가 상승할 때까지는 이 대화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후에도 그는 주(主)가 가르친 이야기 전부를 전수하기가 두려웠다.
2025 159:4.11 나다니엘은 주의 선언에 깨우침과 충격을 받았다. 마음 속 깊이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예수가 승천하기까지 이 회담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때도 주가 가르친 이야기를 전부 전하기를 두려워했다.
5. THE POSITIVE NATURE OF JESUS’ RELIGION
5. 예수의 종교의 적극적 성질
5. 예수의 종교의 적극적 본성
5. 예수의 종교에서의 적극적 본성
5. 예수의 종교의 적극적 성질
1955 159:5.1 At Philadelphia, where James was working, Jesus taught the disciples about the positive nature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When, in the course of his remarks, he intimated that some parts of the Scripture were more truth-containing than others and admonished his hearers to feed their souls upon the best of the spiritual food, James interrupted the Master, asking: “Would you be good enough, Master, to suggest to us how we may choose the better passages from the Scriptures for our personal edification?” And Jesus replied: “Yes, James, when you read the Scriptures look for those eternally true and divinely beautiful teachings, such as:
2000 159:5.1 필라델피아에는 야고보가 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예수는 하늘나라 복음의 적극적 성질에 관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논평을 하는 과정에서, 성서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진리를 더 담고 있음을 넌지시 비추었고,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자기 혼에게 먹이라고 훈계했을 때, 야고보는 주의 말씀을 가로막고 물었다: “주여, 우리 개인의 수양을 위하여 성서로부터 좀더 나은 구절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당신이 친절을 베풀어 우리에게 제안하시겠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그렇다 야고보야, 너희가 성서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이 영원히 참되고 신성하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찾아보라:
2001 CM 159:5.1 예수께서는 야고보가 사역하는 필라델피아에서, 천국 복음의 적극적 본성에 관해 제자들에게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성서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들보다 진리를 더 많이 담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가장 좋은 영적 음식으로 혼을 먹이라고 청중에게 훈계했는데, 말씀하는 도중에 야고보가 끼어들어 질문했다:“주님, 우리 개인의 수양을 위하여 성서에서 좀 더 적당한 구절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좋다. 야고보야, 네가 성서를 읽을 때, 영원히 참되고 신성하게 아름다운 이런 교훈을 찾아봐라:
2007 URKA 159:5.1 야고보가 사명활동하는 필라델피아에서, 예수는 왕국 복음의 적극적 본성에 관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주(主)가 그의 청중들에게, 자신의 논평으로, 성서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은 진리를 담고 있음을 넌지시 알리면서, 가장 좋은 영적 음식으로 그들의 혼을 먹이라고 훈계하고 있을 때, 야고보가 끼어들어 물었다: “주(主)여, 우리의 개인적 교화를 위한 더욱 좋은 구절들을 성서에서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지, 선을 베푸시어 우리에게 제시해주시겠습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야고보야, 네가 성서를 읽을 때에 다음과 같이 영원히 참되고 신성하게 아름다운 가르침들을 찾아보라:
2025 159:5.1 필라델피아에는 야고보가 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예수는 하늘나라 복음의 적극적 성질에 관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논평을 하는 과정에서, 성서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진실을 더 담고 있음을 넌지시 비추었고,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자기 혼에게 먹이라고 훈계했을 때, 야고보는 주의 말씀을 가로막고 물었다: “주여, 우리 개인의 수양을 위하여 성서로부터 좀더 나은 구절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당신이 친절을 베풀어 우리에게 제안하시겠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그렇다 야고보야, 너희가 성서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이 영원히 참되고 신성하게 아름다운 가르침을 찾아보라:
1955 159:5.2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Lord.
2000 159:5.2 “아 주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이 생기게 하옵소서.”
2001 CM 159:5.2 “오, 주여, 내 속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2007 URKA 159:5.2 “오 주님. 내 안에 꺠끗한 가슴을 창조하소서.
1955 159:5.3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2000 159:5.3 “주는 나의 목자요, 나에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01 CM 159:5.3 “주는 내 목자시니;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07 URKA 159:5.3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000 159:5.4 “너희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느니라.”
2001 CM 159:5.4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2007 URKA 159:5.4 “너희는 너희 이웃을 너희 자신을 사랑함같이 사랑해야 한다.
1955 159:5.5 “For I, the Lord your God, will hold your right hand, saying, fear not; I will help you.
2000 159:5.5 “나, 주 너희 하나님이 너의 바른 팔을 붙들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이를 것임이라.”
2001 CM 159:5.5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니, 너의 오른 손을 붙들고 너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내가 너를 도우리라.
2007 URKA 159:5.5 “이는 나, 너의 하느님 주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이야기할 것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1955 159:5.6 “Neither shall the nations learn war any more.”
2000 159:5.6 “민족들이 이제 더 전쟁을 배우지도 아니하리라.”
2001 CM 159:5.6 “민족들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2007 URKA 159:5.6 “나라들이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고.”
1955 159:5.7 And this is illustrative of the way Jesus, day by day, appropriated the cream of the Hebrew scriptures for the instruction of his followers and for inclusion in the teachings of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Other religions had suggested the thought of the nearness of God to man, but Jesus made the care of God for man like the solicitude of a loving father for the welfare of his dependent children and then made this teaching the cornerstone of his religion. And thus did the doctrine of the fatherhood of God make imperative the practice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 worship of God and the service of man became the sum and substance of his religion. Jesus took the best of the Jewish religion and translated it to a worthy setting in the new teaching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2000 159:5.7 이것은 예수가 어떻게 히브리 성서의 노른자를 추종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늘나라의 새 복음의 가르침에 넣으려고 날마다 이용했는가 예를 든 것이다. 다른 종교들은 하나님이 사람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살피는 것을 다정한 아버지가 의존하는 자녀들의 복지를 위하여 걱정하는 것으로 비유했고, 다음에 이 가르침을 그의 종교의 주춧돌로 만들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신조는 사람이 형제 정신을 실천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은 그의 종교의 총합이요 요점이 되었다. 예수는 유대 종교의 최선을 가져다가 하늘나라 복음의 새 가르침에서 쓸 만한 배경으로 바꿔놓았다.
2001 CM 159:5.7 그리고 이것은, 예수께서 따르는 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또는 새 천국 복음을 가르칠 때 삽입하기 위해, 날마다 히브리 성서에서 정선된 것을 인용한 실례{實例}다. 다른 종교들은 하나님을 사람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도록 암시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을, 독립하지 못한 자녀의 번영을 위하여 사랑하는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에 비유했고, 이 가르침을 자기 종교의 주춧돌로 삼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신조가, 사람이 형제관계를 필연적으로 실행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 경배 드림과 사람에게 봉사함이 그의 종교의 전부이며 실질적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유대교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취하여, 천국 복음이라는 새 교훈에서 쓸 만한 배경으로 바꿔놓았다.
2007 URKA 159:5.7 이것은 예수가 자신의 추종자들의 지침을 위하여 그리고 새로운 왕국 복음의 가르침에 포함시키기 위하여, 나날이 히브리 성서에서 제일 좋은 부분을 활용한 그의 방식에 대한 예시이다. 다른 종교들은 하느님과 사람이 가까이-있음에 대한 생각을 제시했었지만, 예수는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보살핌을, 독립하지 못한 자기 자녀의 복지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에 비유하였고, 그다음에는 이 가르침을 그의 종교에 주춧돌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서의 교리는 반드시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실천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사람에 대한 봉사는 그의 종교의 총합이자 본체가 되었다. 예수는 유대교 안에서 최상인 것을 취하여 왕국 복음의 새로운 가르침 안에 훌륭한 장치로 전환하였다.
2025 159:5.7 이것은 예수가 어떻게 히브리 성서의 노른자를 추종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고 하늘나라의 새 복음의 가르침에 넣으려고 날마다 이용했는가 예를 든 것이다. 다른 종교들은 하나님이 사람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살피는 것을 다정한 아버지가 의존하는 자녀들의 복지를 위하여 걱정하는 것으로 비유했고, 다음에 이 가르침을 그의 종교의 주춧돌로 만들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신조는 사람이 형제 정신을 실천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은 그의 종교의 총합이요 요점이 되었다. 예수는 유대 종교의 최선을 가져다가 하늘나라 복음의 새 가르침에서 쓸 만한 배경으로 바꿔 놓았다.
1955 159:5.8 Jesus put the spirit of positive action into the passive doctrines of the Jewish religion. In the place of negative compliance with ceremonial requirements, Jesus enjoined the positive doing of that which his new religion required of those who accepted it. Jesus’ religion consisted not merely in believing, but in actually doing, those things which the gospel required. He did not teach that the essence of his religion consisted in social service, but rather that social service was one of the certain effects of the possession of the spirit of true religion.
2000 159:5.8 예수는 유대 종교의 소극적 교리 속에 적극적 행동 정신을 집어넣었다. 예식의 요구 조건에 소극적으로 순응하는 대신에, 예수는 새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새 종교가 요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했다. 예수의 종교는 그 복음이 요구한 것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하는 데 있다. 그의 종교의 핵심이 사회 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봉사는 참된 종교 정신을 가져서 생기는 한 가지 확실한 결과라고 가르쳤다.
2001 CM 159:5.8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수동적 교리 속에 적극적 행동 기질을 불어넣었다. 예식의 요구사항을 소극적으로 추종하는 대신, 새 종교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새 종교가 요구하는 것을 적극 행하도록 명했다. 예수의 종교는,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단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하는 데 있다. 그의 종교의 근본이 사회에 대한 봉사에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사회 봉사는 참된 종교의 기질을 소유함으로써 나타나는 한 가지 확실한 결과라고 가르쳤다.
2007 URKA 159:5.8 예수는 적극적인 행동의 영을 유대인 종교의 수동적인 교리 속에 집어넣었다. 예수는, 예식으로서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순응하는 대신에, 자신의 새로운 종교가 요구하는 것들을 수락하는 자들에게 수락한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라고 명하였다. 예수의 종교는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단순히 믿는 것에 있지 않고, 실재로 행하는 것에 있었다. 예수는 그의 종교의 핵심이 사회적 봉사에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았고, 오히려 사회적 봉사는 참된 종교의 영을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효과들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쳤다.
1955 159:5.9 Jesus did not hesitate to appropriate the better half of a Scripture while he repudiated the lesser portion. His great exhortation,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he took from the Scripture which reads: “You shall not take vengeance against the children of your people, bu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Jesus appropriated the positive portion of this Scripture while rejecting the negative part. He even opposed negative or purely passive nonresistance. Said he: “When an enemy smites you on one cheek, do not stand there dumb and passive but in positive attitude turn the other; that is, do the best thing possible actively to lead your brother in error away from the evil paths into the better ways of righteous living.” Jesus required his followers to react positively and aggressively to every life situation. The turning of the other cheek, or whatever act that may typify, demands initiative, necessitates vigorous, active, and courageous expression of the believer’s personality.
2000 159:5.9 예수는 서슴지 않고 성서에서 더 좋은 반쪽을 이용했고, 한편 못한 부분을 거부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큰 훈계는 “너희는 네 민족의 아이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지니라”하고 기록한 성서로부터 고른 것이다. 예수는 부정적 부분을 물리치면서 이 성서의 적극적 부분을 이용했다. 부정적이거나 순전히 소극적 무저항도 반대하였다. 그는 말했다: “적이 네 한쪽 뺨을 치거든, 잠자코 소극적으로 서 있지 말고, 적극적 태도로 다른 뺨을 돌려 대라. 다시 말해서, 잘못에 빠진 네 형제를 잘못된 길로부터 올바르게 사는 더 나은 길로 이끌도록 가능한 최선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라.”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어떤 생활 상황에 대해서도 긍정적ㆍ적극적 반응을 요구했다.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이나 또는 그것이 무슨 행위를 상징하든지, 주도권을 요구하고 그 신자의 인격이 활기 있고 능동적이고 용기 있게 표현하기를 요구한다.
2001 CM 159:5.9 예수께서는 더 나은 절반가량의 성서를 서슴지 않고 인용한 반면, 비교적 덜 중요한 부분은 거부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위대한 권유는, “너희는 너희 민족의 자녀들에게 복수하지 말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는 성서의 기록에서 취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 가운데 긍정적인 부분은 수용했지만, 부정적인 부분은 거부했다. 부정적이거나 순전히 소극적인 무저항은 더욱 반대했다. 그는:“원수가 네 한 쪽 뺨을 칠 때, 소극적으로 멍하니 서 있지만 말고, 적극적인 태도로 다른 뺨을 돌려대라;다시 말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형제를 악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적극 행하라”고 말씀했다. 예수께서는 따르는 자들에게 삶의 모든 경우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할 것을 요구했다. 다른 뺨을 돌려대든지 또는 상징될만한 어떤 행동이든지, 믿는 자의 인격에 어울리도록 주도권을 잡고 활기차고 적극적이고 용기 있게 표현하기를 요구한다.
2007 URKA 159:5.9 예수는 성서의 보다 좋은 반쪽을 활용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고, 반면에 보다 뒤떨어진 부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위대한 간곡한 권유는 “너희는 네 민족의 자녀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성서의 기록으로부터 예수가 취한 것이다. 예수는 이 성서 중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수용하였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부분은 거부하였다. 그는 부정적이거나 순전히 수동적인 무저항을 마찬가지로 반대하였다. 그가 말했다: “원수가 네 한쪽 뺨을 때리면 수동적으로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적극적인 태도로 다른 뺨을 돌려 대라; 다시 말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네 형제를 악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더욱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라.”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일생의 모든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라고 요구하였다. 다른 뺨을 돌려대거나 또는 그것을 나타낼만한 어떤 행동을 하든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요구되며, 신자의 개인성에서의 활기찬, 적극적인 그리고 용기 있는 표현이 필요된다.
2025 159:5.9 예수는 서슴지 않고 성서에서 더 좋은 반쪽을 이용했고, 한편 못한 부분을 거부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의 큰 훈계는 “너희는 네 민족의 아이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지니라”하고 기록한 성서에서 고른 것이다[29][30]. 예수는 부정적 부분을 물리치면서 이 성서의 적극적 부분을 이용했다. 부정적이거나 순전히 소극적 무저항도 반대하였다. 그는 말했다: “적이 네 한쪽 뺨을 치거든, 잠자코 소극적으로 서 있지 말고, 적극적 태도로 다른 뺨을 돌려 대라
[31]. 다시 말해서, 잘못에 빠진 네 형제를 잘못된 길로부터 올바르게 사는 더 나은 길로 이끌도록 가능한 최선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하라.”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어떤 생활 상황에 대해서도 긍정적ㆍ적극적 반응을 요구했다.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이나 또는 그것이 무슨 행위를 상징하든지, 주도권을 요구하고 그 신자의 인격이 활기 있고 능동적이고 용기 있게 표현하기를 요구한다.
1955 159:5.10 Jesus did not advocate the practice of negative submission to the indignities of those who might purposely seek to impose upon the practitioners of nonresistance to evil, but rather that his followers should be wise and alert in the quick and positive reaction of good to evil to the end that they might effectively overcome evil with good. Forget not, the truly good is invariably more powerful than the most malignant evil. The Master taught a positive standard of righteousness: “Whosoever wishes to be my disciple, let him disregard himself and take up the full measure of his responsibilities daily to follow me.” And he so lived himself in that “he went about doing good.” And this aspect of the gospel was well illustrated by many parables which he later spoke to his followers. He never exhorted his followers patiently to bear their obligations but rather with energy and enthusiasm to live up to the full measure of their human responsibilities and divine privileges in the kingdom of God.
2000 159:5.10 예수는 악에 대하여 무저항을 실천하는 자를 일부러 악용할 자가 모욕을 주는 데 소극적 굴복을 실천하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종자들이 선으로 악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목적으로, 지혜롭고 민첩하게 악에 대하여 선으로 빨리 적극 반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된 선은 가장 지독한 악보다 변함없이 훨씬 더 힘이 있음을 잊지 말라. 주는 올바름의 적극적 표준을 가르쳤다: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자신을 거들떠보지 말고 나를 따르기 위하여 날마다 책임을 한껏 지라.” 그리고 “그가 선한 일을 하며 다녔으므로”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복음의 이 모습은 나중에 추종자들에게 말씀한 여러 비유에 그 예가 잘 나타났다. 결코 추종자들에게 자기 책임을 참을성 있게 지라고 훈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간적 책임과 신성한 특권을 한껏 수행하기 위하여 에너지와 열심을 가지고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
2001 CM 159:5.10 예수께서는, 악{惡}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사람을 이용하려고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주는 모욕에 소극적으로 굴복하도록 권유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따르는 자들이 선{善}으로 악을 효과적으로 이기게 될 때까지, 악에 대해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반응하되, 현명하고 민첩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가장 고약한 악보다 진실한 선함이 반드시 더 강력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 주님은 의{義}의 적극적 표준을 가르쳤다:“내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기 위하여 매일 주어지는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라.” 그리고 주님 자신이, “부지런히 선한 일을 행하셨다”는 말 그대로 살았다. 그리고 복음의 이 관점은, 따르는 자들에게 나중에 말씀한 많은 비유에 그 예가 잘 나타났다. 따르는 자들에게 참으면서 자기 책무를 감당하라고 훈계한 적이 결코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 인간적 책임과 신성한 특권을 온전히 이루기까지, 에너지와 의욕을 품고 책무를 감당하라고 가르쳤다.
2007 URKA 159:5.10 예수는, 악에 대하여 무저항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찾아 나서는 그런 자들의 모욕적인 행위에, 소극적으로 굴복하는 실천 관행을 옹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추종자들이 선(善)으로 악을 효과적으로 이기게 될 때까지, 악에 대하여 신속하고 적극적인 반응을 하되, 지혜롭고 민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된 선은 가장 지독한 악보다 반드시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주(主)는 정의에 대한 적극적인 표준을 가르쳤다: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일상적인 책임들을 충분히 감당하라.” 그리고 주(主) 자신은, “그는 부지런히 선한 일을 행하였다.”는 말 그대로 살았다. 그리고 복음에서의 이 양상은, 추종자들에게 후에 이야기했던 많은 비유들에 의하여 잘 예증되었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인내심으로 책무들을 짊어지라고 간곡하게 권고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하느님의 왕국 안에서 그들의 인간적인 책임과 신성한 특권을 충분한 정도까지 채우며 살아가도록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라고 간곡하게 권고하였다.
2025 159:5.10 예수는 악에 대하여 무저항을 실천하는 자를 일부러 악용할 자가 모욕을 주는 데 소극적 굴복을 실천하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종자들이 선으로 악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목적으로, 지혜롭고 민첩하게 악에 대하여 선으로 빨리 적극 반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2]. 참된 선은 가장 지독한 악보다 변함없이 훨씬 더 힘이 있음을 잊지 말라. 주는 올바름의 적극적 표준을 가르쳤다: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자신을 거들떠보지 말고 나를 따르기 위하여 날마다 책임을 한껏 지라
[33].” 그리고 “그가 선한 일을 하며 다녔으므로”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34]. 복음의 이 모습은 나중에 추종자들에게 말씀한 여러 비유에 그 예가 잘 나타났다. 결코 추종자들에게 자기 책임을 참을성 있게 지라고 훈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간적 책임과 신성한 특권을 한껏 수행하기 위하여 에너지와 열심을 가지고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
1955 159:5.11 When Jesus instructed his apostles that they should, when one unjustly took away the coat, offer the other garment, he referred not so much to a literal second coat as to the idea of doing something positive to save the wrongdoer in the place of the olden advice to retaliate—“an eye for an eye” and so on. Jesus abhorred the idea either of retaliation or of becoming just a passive sufferer or victim of injustice. On this occasion he taught them the three ways of contending with, and resisting, evil:
2000 159:5.11 사람이 겉옷을 부당하게 빼앗을 때 다른 옷도 내밀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때, 예수는 글자 그대로 또 다른 겉옷이 아니라, 앙갚음하라는 옛 충고―”눈에는 눈으로” 따위―대신에 행악자를 구원하려고 긍정적인 무슨 일을 하는 생각을 언급했다. 예수는 복수하거나 그저 불공평을 소극적으로 참거나 그에 희생되는 자가 되는 관념을 몹시 싫어했다. 이 경우에 그는 악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음을 가르쳤다:
2001 CM 159:5.11 어떤 사람이 겉옷을 부당하게 벗겨 가거든 다른 옷도 벗어주라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쳤을 때, 문자적으로 두 번째 겉옷을 의미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눈에는 눈으로” 등의-- 보복하라는 옛 충고 대신, 가해자를 구원할 수 있는 어떤 긍정적인 일을 하라는 뜻이었다. 예수께서는 보복하려는 생각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소극적 수난자 또는 불법의 희생자가 되려는 생각도 아주 싫어했다. 이 경우에 예수께서는 악에 대하여 저항하고 싸우는 세 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2007 URKA 159:5.11 예수가 사도들에게, 어떤 사람이 겉옷을 부당하게 벗겨가거든 다른 옷도 벗어주라고 가르쳤을 때, 글자 그대로 두 번째 겉옷을 언급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복하라고 충고하는─“눈에는 눈으로”─의 옛 가르침 대신에 그런 악행을 저지른 자를 구원하기 위해 무언가 적극적인 것을 행하라는 관념으로서 언급한 것이었다. 예수는 보복하려는 관념뿐만 아니라 불의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고통을 참는 자가 되거나 또는 희생자가 되어가는 관념을 모두 혐오하였다. 이 경우에 있어서 예수는 악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세 가지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2000 159:5.12 1. 악을 악으로 갚는 것―적극적이지만 올바르지 않은 방법.
2001 CM 159:5.12 1. 악을 악으로 갚음 --적극적이지만 불의{不義}한 방법.
2007 URKA 159:5.12 1. 악을 악으로 되돌려 줌─적극적이지만 불의한 방법.
2025 159:5.12 1. 악을 악으로 갚는 것 ― 적극적이지만 올바르지 않은 방법.
1955 159:5.13 2. To suffer evil without complaint and without resistance—the purely negative method.
2000 159:5.13 2. 불평 없이 저항하지 않고 악을 견디는 것―순전히 부정적인 방법.
2001 CM 159:5.13 2. 불평이나 저항 없이 악을 견딤 --순전히 소극적인 방법.
2007 URKA 159:5.13 2. 불평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으면서 악을 견딤─순전히 소극적인 방법.
2025 159:5.13 2. 불평 없이 저항하지 않고 악을 견디는 것 ― 순전히 부정적인 방법.
1955 159:5.14 3. To return good for evil, to assert the will so as to become master of the situation, to overcome evil with good—the positive and righteous method.
2000 159:5.14 3. 악을 선으로 갚는 것, 그 상황의 주인이 되도록 의지(意志)를 주장하는 것,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적극적이고 올바른 방법.
2001 CM 159:5.14 3. 악을 선으로 갚음, 그 상황의 주인이 되도록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선으로 악을 정복함 --적극적이고 의로운 방법.
2007 URKA 159:5.14 3. 악을 선으로 되돌려 줌, 그 상황의 주인이 되도록 의지를 주장하는 것, 선으로 악을 극복하는 것─적극적이며 의로운 방법.
2025 159:5.14 3. 악을 선으로 갚는 것, 그 상황의 주인이 되도록 의지(意志)를 주장하는 것,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 ― 적극적이고 올바른 방법.
1955 159:5.15 One of the apostles once asked: “Master, what should I do if a stranger forced me to carry his pack for a mile?” Jesus answered: “Do not sit down and sigh for relief while you berate the stranger under your breath. Righteousness comes not from such passive attitudes. If you can think of nothing more effectively positive to do, you can at least carry the pack a second mile. That will of a certainty challenge the unrighteous and ungodly stranger.”
2000 159:5.15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한때 물었다: “주여, 어느 낯선 자가 짐을 지고 십리를 가라 강제하면 어찌해야 하나이까?” 예수는 대답하였다: “소리를 죽여 그 낯선 자를 헐뜯으면서, 앉아서 위안을 얻으려 한숨을 쉬지 말라. 올바름은 그러한 수동적 태도에서 솟아나오지 않느니라. 더 효과 있게 적극적인 일을 전혀 생각할 수 없거든, 적어도 그 짐을 십리 더 나를 수 있느니라. 이것은 부당하고 사악한 낯선 사람에게 분명히 도전이 되리라.”
2001 CM 159:5.15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질문한 적이 있었다:“주님, 어떤 낯선 사람이 자기 짐을 일 마일이나 지고 가도록 나에게 강요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그 낯선 이를 혼잣말로 꾸짖으면서, 기분전환하려고 앉아서 한숨을 쉬지 않도록 해라. 소극적인 그런 태도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 더 적극적으로 할 만한 효과적인 일을 생각할 수 없거든, 적어도 네가 그 짐을 지고 다음 일 마일을 더 가 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면, 불의하고 사악한 그 낯선 이에게 확실한 도전이 될 것이다.”
2007 URKA 159:5.15 사도들 중에 하나가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주(主)여, 만일 어떤 낯선 사람이 자기 짐을 1마일이나 지고 가도록 제게 강요한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속으로 그 낯선 사람에게 심한 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벗어나려고 앉아서 한숨을 쉬지 말라. 그러한 소극적인 태도에서는 정의가 나오지 않는다. 네가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거든, 적어도 네가 그 짐을 일 마일 더 나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불의하고 불경한 낯선 자에게 확실한 도전이 될 것이다.”
1955 159:5.16 The Jews had heard of a God who would forgive repentant sinners and try to forget their misdeeds, but not until Jesus came, did men hear about a God who went in search of lost sheep, who took the initiative in looking for sinners, and who rejoiced when he found them willing to return to the Father’s house. This positive note in religion Jesus extended even to his prayers. And he converted the negative golden rule into a positive admonition of human fairness.
2000 159:5.16 유대인은 뉘우치는 죄인을 용서하고 그릇된 행위를 잊으려고 애쓰는 하나님에 관하여 들은 적이 있었지만, 예수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고, 먼저 죄인을 찾아 나서며, 그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기꺼이 돌아오려고 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기뻐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듣지 못했다. 종교에서 이 적극적 음성을 예수는 기도(祈禱)에도 연장하였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사람이 공정해야 한다는 적극적 훈계로 바꾸었다.
2001 CM 159:5.16 유대인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고, 그들의 잘못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으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고, 죄인들을 찾는 데 앞장서고, 죄인들이 아버지 집으로 기꺼이 돌아오려는 것을 발견했을 때 크게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오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종교에서 이런 적극적 내용의 말씀을, 자신의 기도에도 적용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황금률을, 인간이 공평해야한다는 적극적 훈계로 바꿨다.
2007 URKA 159:5.16 유대인들은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고 또 그들의 그릇된 행위를 잊으려고 애쓰곤 하였던 하느님에 관하여는 들었었지만,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고, 죄인을 찾아보는 데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그리고 그들이 기꺼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즐기는 하느님에 대하여는, 예수가 오기 전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수는 종교에 있어서의 이 적극적인 특색은 심지어 그의 기도에도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극적인 황금률을 인간의 공정성에서의 적극적 훈계로 바꾸었다.
1955 159:5.17 In all his teaching Jesus unfailingly avoided distracting details. He shunned flowery language and avoided the mere poetic imagery of a play upon words. He habitually put large meanings into small expressions. For purposes of illustration Jesus reversed the current meanings of many terms, such as salt, leaven, fishing, and little children. He most effectively employed the antithesis, comparing the minute to the infinite and so on. His pictures were striking, such as, “The blind leading the blind.” But the greatest strength to be found in his illustrative teaching was its naturalness. Jesus brought the philosophy of religion from heaven down to earth. He portrayed the elemental needs of the soul with a new insight and a new bestowal of affection.
2000 159:5.17 어떤 가르침에도 예수는 어수선한 세부를 어김없이 피했다. 화려한 언어를 피하고 말장난인 단순한 시(詩)같은 묘사를 피했다. 그는 작은 표현 속에 큰 의미를 넣는 버릇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소금ㆍ누룩ㆍ고기잡이ㆍ어린아이와 같은 여러 낱말의 현재 통용되는 뜻을 뒤집었다. 정반대를 가장 효과 있게 이용했고, 티끌과 무한, 그리고 그런 따위를 비교했다. “소경을 이끄는 소경”처럼 그의 그림은 놀라웠다. 그러나 예를 보이는 가르침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힘은 그 자연스러움이었다. 예수는 종교의 철학을 하늘로부터 땅까지 가져왔다. 그는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사랑을 새로이 줌으로 혼의 근원적 필요를 묘사했다.
2001 CM 159:5.17 어떤 가르침에서든지, 예수께서는 산만하게 만드는 세부사항을 확실하게 피했다. 화려한 언어를 멀리했고, 단순히 시적{詩的}인 표현으로 말장난하기를 피했다. 작은 표현 속에 큰 의미를 습관적으로 부여했다. 예수께서는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소금, 누룩, 고기잡이, 어린아이 등과 같은 많은 단어의 현재 통용되는 의미를 뒤집어서 사용했다. 순간을 영원과 대비시킨 것 외에도, 많은 경우에 대조법을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 한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묘사하는 방법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예를 들어 가르친 것들 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설득력은,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종교 철학을 하늘로부터 이 세상으로 가져왔다. 그는 새로운 통찰력과 새롭게 증여하는 애정으로,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묘사했다.
2007 URKA 159:5.17 예수는 모든 그의 가르침에서, 산만하게 만드는 세부적인 것들을 어김없이 피하였다. 예수는 화려한 언어를 멀리하였으며 말장난하는 단순한 시적 표현을 피하였다. 그는 커다란 의미를 작은 표현 속에 습관적으로 넣었다. 예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는 소금, 누룩, 고기잡이,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많은 용어들에 대해 현재 통용되는 의미를 바꾸어서 사용하였다. 티끌처럼 사소한 것을 무한한 것처럼 그렇게 많은 경우에 정반대의 대조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다.”라는 것처럼 그의 묘사는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를 들어 가르친 것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힘은 그 자연스러움이었다. 예수는 하늘로부터 종교의 철학을 가져와 땅으로 내려왔다. 그는 혼에서의 기본적 필요를, 새로운 통찰력과 함께 그리고 새로운 애정의 증여와 함께 묘사하였다.
2025 159:5.17 어떤 가르침에도 예수는 어수선한 세부를 어김없이 피했다. 화려한 언어를 피하고 말장난인 단순한 시(詩)같은 묘사를 피했다. 그는 작은 표현 속에 큰 의미를 넣는 버릇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소금ㆍ누룩ㆍ고기잡이ㆍ어린아이와 같은 여러 낱말의 현재 통용되는 뜻을 뒤집었다. 정반대를 가장 효과 있게 이용했고, 티끌과 무한, 그리고 그런 따위를 비교했다. “소경을 이끄는 소경”처럼 그의 그림은 놀라웠다[43]. 그러나 예를 보이는 가르침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힘은 그 자연스러움이었다. 예수는 종교의 철학을 하늘로부터 땅까지 가져왔다. 그는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사랑을 새로이 줌으로 혼의 근원적 필요를 묘사했다.
6. THE RETURN TO MAGADAN
6. 마가단으로 돌아오다
6. 마가단으로 돌아옴
6. 마가단으로 돌아감
6. 마가단으로 돌아오다
1955 159:6.1 The mission of four weeks in the Decapolis was moderately successful. Hundreds of souls were received into the kingdom, and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had a valuable experience in carrying on their work without the inspiration of the immediate personal presence of Jesus.
2000 159:6.1 데카폴리스에서 4주 동안의 임무는 어지간히 성공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하늘나라에 받아들였고, 사도와 전도사들은 예수가 친히 가까이 계심으로 격려받지 않고서 할 일을 수행하는 값진 체험을 가졌다.
2001 CM 159:6.1 4주 동안의 데가볼리 전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수백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왔고, 사도와 전도자들은, 예수께서 친히 함께 계심으로 격려 받지 않고서도 사역을 감당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체험을 했다.
2007 URKA 159:6.1 데카폴리스에서의 네 주간 동안의 전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왕국에 받아들여졌고,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즉각적인 예수의 개인적 현존에서의 영감이 없이도, 그들의 일을 수행하는 값진 체험을 가졌다.
2025 159:6.1 데카폴리스에서 4주 동안의 임무는 어지간히 성공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하늘나라에 받아들였고, 사도와 전도사들은 예수가 친히 가까이 계심으로 격려받지 않고서 할 일을 수행하는 값진 체험을 가졌다.
1955 159:6.2 On Friday, September 16, the entire corps of workers assembled by prearrangement at Magadan Park. On the Sabbath day a council of more than one hundred believers was held at which the future plans for extending the work of the kingdom were fully considered. The messengers of David were present and made reports concerning the welfare of the believers throughout Judea, Samaria, Galilee, and adjoining districts.
2000 159:6.2 9월 16일 금요일에, 일꾼들의 일행 전부가 마가단 공원에서 미리 주선하여 모였다. 안식일에 1백 명이 넘는 신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하늘나라의 일을 확장하기 위하여 앞날의 계획이 충분히 고려되었다. 다윗의 사자들이 자리에 있었고, 유대ㆍ사마리아ㆍ갈릴리, 그리고 인접한 구역에 두루, 신자들의 복지에 관하여 보고가 있었다.
2001 CM 159:6.2 9월 16일 금요일에, 전체 사역자 단체가, 미리 지시됐던대로 마가단 공원에 모두 모였다. 안식일이 되자, 천국 업무를 확장시키기 위한 장차의 계획이 충분히 고려되도록 논의하려고, 100명 이상의 신자 협의회가 소집됐다. 다윗의 심부름꾼들이 와서, 유대지방, 사마리아, 갈릴리, 그리고 인접한 지역에 퍼져있는 신자들이 잘 지내는지에 대해 보고했다.
2007 URKA 159:6.2 9월 16일, 금요일에, 모든 일꾼들의 무리단은 이전에 준비했던 대로 마가단 공원에 모였다. 안식일에, 백 명이 넘는 신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거기에서 왕국의 일을 확장하기 위한 미래의 계획들이 충분히 논의되었다. 다윗의 메신저들이 참석했고,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그리고 인접한 지역들에 두루 퍼져 있는 신자들의 안녕에 관하여 보고를 하였다.
2025 159:6.2 9월 16일 금요일에, 일꾼들의 일행 전부가 마가단 공원에서 미리 주선하여 모였다. 안식일에 1백 명이 넘는 신자들의 회의가 열렸고, 거기서 하늘나라의 일을 확장하기 위하여 앞날의 계획이 충분히 고려되었다. 다윗의 사자들이 자리에 있었고, 유대ㆍ사마리아ㆍ갈릴리, 그리고 인접한 구역에 두루, 신자들의 복지에 관하여 보고가 있었다.
1955 159:6.3 Few of Jesus’ followers at this time fully appreciated the great value of the services of the messenger corps. Not only did the messengers keep the believers throughout Palestine in touch with each other and with Jesus and the apostles, but during these dark days they also served as collectors of funds, not only for the sustenance of Jesus and his associates, but also for the support of the families of the twelve apostles and the twelve evangelists.
2000 159:6.3 이때 예수의 추종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사자단이 얼마나 값진 수고를 했는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자(使者)들은 팔레스타인에 두루, 신자들이 서로, 그리고 예수와 사도들과 연락을 유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 어두운 시절에 또한 자금을 모으는 자로서 예수와 그 동료들을 부양할 뿐 아니라, 또한 열두 사도와 열두 전도사의 가족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일했다.
2001 CM 159:6.3 이때 예수를 따르는 자들 중에서, 심부름꾼 단체의 굉장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심부름꾼들은, 팔레스틴 전역의 신자를 서로 연결시키고, 예수와 사도들과 연락이 유지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암울한 기간에 자금을 모으는 역할도 담당했는데, 이 돈은 예수와 동역자들의 양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열두 사도의 가족과 열두 전도자들의 가족을 돕기 위해서였다.
2007 URKA 159:6.3 이때 예수의 추종자들 가운데 메신저 무리단에서의 봉사의 커다란 가치를 충분하게 인정하며 감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메신저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의 신자들끼리의 접촉과 예수와 사도들과의 접촉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이 어두운 시절 동안에 기금을 모으는 자로도 봉사했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또한 열두 사도들과 열두 전도자들의 가족들을 후원하기 위해서도 기금을 모았다.
2025 159:6.3 이때 예수의 추종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사자단이 얼마나 값진 수고를 했는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자(使者)들은 팔레스타인에 두루, 신자들이 서로, 그리고 예수와 사도들과 연락을 유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 어두운 시절에 또한 자금을 모으는 자로서 일하고, 예수와 그 동료들을 부양할 뿐 아니라, 또한 열두 사도와 열두 전도사의 가족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일했다.
1955 159:6.4 About this time Abner moved his base of operations from Hebron to Bethlehem, and this latter place was also the headquarters in Judea for David’s messengers. David maintained an overnight relay messenger service between Jerusalem and Bethsaida. These runners left Jerusalem each evening, relaying at Sychar and Scythopolis, arriving in Bethsaida by breakfast time the next morning.
2000 159:6.4 이 무렵에 아브너는 활동의 근거지를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겼는데, 여기는 또한 유대 지방에서 다윗의 사자들의 본부였다. 다윗은 예루살렘과 벳세다 사이에 주자를 바꾸어 밤 동안에 사자 봉사를 유지했다. 이 주자(走者)들은 저녁마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시카와 스키토폴리스에서 교체되었고, 이튿날 아침 식사 때에 벳세다에 도착했다.
2001 CM 159:6.4 이 무렵에, 아브넬은 활동 근거지를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겼는데, 여기는 또한 다윗의 심부름꾼들의 유대지방 본부이기도 했다. 다윗은 예루살렘과 벳새다 사이에 교대식 연락 용역을 밤새 유지했다. 이들은 매일 저녁 예루살렘에서 달려나가, 사이카와 스키토폴리스에서 교대하고, 이튿날 아침식사시간에 벳새다에 도착하곤 했다.
2007 URKA 159:6.4 이 무렵에 아브너는 자신의 활동 기지를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겼으며, 새로 옮긴 장소는 유대 안에서 다윗의 메신저들을 위한 본부가 있는 장소였다. 다윗은 예루살렘과 벳세다 사이에 밤을 새워 이어 달리는 메신저 봉사를 유지했다. 이들은 매일 저녁에 예루살렘을 떠나 달려갔으며, 시카와 스키토폴리스에서 다른 주자로 교체되어,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 시간까지 벳세다에 도착하였다.
2025 159:6.4 이 무렵에 아브너는 활동의 근거지를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겼는데, 여기는 또한 유대 지방에서 다윗의 사자들의 본부였다. 다윗은 예루살렘과 벳세다 사이에 주자를 바꾸어 밤 동안에 사자 봉사를 유지했다. 이 주자(走者)들은 저녁마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시카와 스키토폴리스에서 교체되었고, 이튿날 아침 식사 때에 벳세다에 도착했다.
1955 159:6.5 Jesus and his associates now prepared to take a week’s rest before they made ready to start upon the last epoch of their labors in behalf of the kingdom. This was their last rest, for the Perean mission developed into a campaign of preaching and teaching which extended right on down to the time of their arrival at Jerusalem and of the enactment of the closing episodes of Jesus’ earth career.
2000 159:6.5 예수와 동료들은 이제 하늘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마지막 시기를 개시할 준비가 되기 전에, 한 주 동안 휴식을 취하려고 준비했다. 이것은 마지막 휴식이었는데, 페레아 사명이 전도하고 가르치는 운동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예루살렘에 그들이 도착하고 예수의 지상 생애를 마무리하는 사건들을 연출할 때까지 바로 이어졌다.
2001 CM 159:6.5 예수와 동역자들은, 이제 천국을 위하여 수고하는 마지막 기간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전에, 한 주 동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휴식이 됐는데, 베뢰아 전도가 설교하고 가르치는 운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며, 이 운동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생애를 마무리하는 장면들을 연출할 때까지 곧바로 이어졌다.
2007 URKA 159:6.5 예수와 그의 연관-동료들은 이제 왕국을 위한 그들의 수고에서의 마지막 신기원-시대를 시작하려고 준비를 갖추기 전에,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려고 준비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휴식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페레아에서의 전도가 설교하고 가르치는 하나의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되었고,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또한 예수의 땅에서의 생애의 막이 닫히는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시기까지 곧바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2025 159:6.5 예수와 동료들은 이제 하늘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마지막 시기를 개시할 준비가 되기 전에, 한 주 동안 휴식을 취하려고 준비했다. 이것은 마지막 휴식이었는데, 페레아 사명이 전도하고 가르치는 운동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예루살렘에 그들이 도착하고 예수의 지상 생애를 마무리하는 사건들을 연출할 때까지 바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