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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ANDITE EXPANSION IN THE ORIENT
제 79 편동양에서 팽창하는 안드 족속
제79편: 동양에서 안드족속의 확장
제 79 편: 동방에서의 안드-사람 확대
동양에서 팽창하는 안드 족속
1955 79:0.1 ASIA is the homeland of the human race. It was on a southern peninsula of this continent that Andon and Fonta were born; in the highlands of what is now Afghanistan, their descendant Badonan founded a primitive center of culture that persisted for over one-half million years. Here at this eastern focus of the human race the Sangik peoples differentiated from the Andonic stock, and Asia was their first home, their first hunting ground, their first battlefield. Southwestern Asia witnessed the successive civilizations of Dalamatians, Nodites, Adamites, and Andites, and from these regions the potentials of modern civilization spread to the world.
2000 79:0.1 아시아가 인류의 고향이다. 이 대륙의 남쪽 반도에서 안돈과 폰타가 태어났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고지에서 그들의 후손 바도난은 원시 문화 중심의 기초를 세웠고, 이것은 50만 년이 넘도록 이어 왔다. 여기서 인류의 이 동부 초점에서 산긱 민족들은 안돈의 혈통으로부터 분화(分化)되었고, 아시아는 그들의 처음 집이요, 첫 사냥터, 첫 전쟁터였다. 남서 아시아는 달라마시아 사람, 놋 족속, 아담 족속, 안드 족속의 이어지는 문명을 보았고, 이 지역으로부터 현대 문명의 잠재성이 세계로 퍼졌다.
2001 CM 79:0.1 아시아가 인류의 모국{母國}이다. 안돈과 훤타가 태어난 곳은, 이 대륙 남부의 어느 반도{半島}였으며;그들의 후손인 바도난이, 지금은 아프카니스탄이 된 고원지대에서 원시 문화 중심지를 세웠고, 50만 년 이상 유지했다. 인류의 이 동부 중심지에서, 안돈족속 혈통으로부터 상익 민족들이 갈라져 나왔고, 아시아는 그들의 처음 고향이자 첫 사냥터였고 첫 전쟁터였다. 남서부 아시아는, 달라마시아인과 놋족속과 아담족속 및 안드족속으로 이어진 문명을 목격했고, 이 지역으로부터 현대 문명의 잠재력이 세계로 퍼졌다.
2007 URKA 79:0.1 아시아는 인간 종족의 고향이다. 안돈의-과 폰타가 태어난 곳은 이 대륙의 남부에 있는 어느 반도(半島)였으며;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이 된 고원지대에서, 그들의 후손인 바도난이 원시적인 문화 중심지를 세웠고 50만년 이상 동안 유지되었다. 인간 종족의 이 동부 중심지에서, 안돈의-혈통으로부터 산긱 민족들이 갈라져 나왔고, 아시아는 그들의 최초의 고향이자 최초의 사냥터였고 최초의 전쟁터였다. 남서부 아시아는 달라마시아인, 놋-사람, 아담-사람, 그리고 안드-사람들로 이어진 문명들을 목격하였고, 이 지역으로부터 강력한 현대 문명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25 79:0.1 아시아가 인류의 고향이다. 이 대륙의 남쪽 반도에서 안돈과 폰타가 태어났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고지에서 그들의 후손 바도난은 원시 문화 중심의 기초를 세웠고, 이것은 50만 년이 넘도록 이어 왔다. 여기서 인류의 이 동부 초점에서 산긱 민족들은 안돈의 혈통에서 분화(分化)되었고, 아시아는 그들의 처음 집이요, 첫 사냥터, 첫 전쟁터였다. 남서 아시아는 달라마시아 사람, 놋 족속, 아담 족속, 안드 족속의 이어지는 문명을 보았고, 이 지역으로부터 현대 문명의 잠재성이 세계로 퍼졌다.
1. THE ANDITES OF TURKESTAN
1. 투르키스탄의 안드 족속
1. 투르케스탄의 안드족속
1. 투르케스탄의 안드-사람
1. 투르키스탄의 안드 족속
1955 79:1.1 For over twenty-five thousand years, on down to nearly 2000 B.C., the heart of Eurasia was predominantly, though diminishingly, Andite. In the lowlands of Turkestan the Andites made the westward turning around the inland lakes into Europe, while from the highlands of this region they infiltrated eastward. Eastern Turkestan (Sinkiang) and, to a lesser extent, Tibet were the ancient gateways through which these peoples of Mesopotamia penetrated the mountains to the northern lands of the yellow men. The Andite infiltration of India proceeded from the Turkestan highlands into the Punjab and from the Iranian grazing lands through Baluchistan. These earlier migrations were in no sense conquests; they were, rather, the continual drifting of the Andite tribes into western India and China.
2000 79:1.1 2만 5천 년이 넘도록, 거의 기원전 2000년까지 계속해서, 유라시아의 심장부는 주로 안드 족속이었으나 그 성분이 줄어들었다. 투르키스탄의 낮은 땅에서 안드 족속은 서쪽으로 내륙 호수들을 돌아서 유럽으로 들어갔고, 한편 이 지역의 고지로부터 동쪽으로 침투했다. 동부 투르키스탄 (신장), 그리고 그보다 덜한 정도로 티벳은 고대의 출입구였고, 거기를 통해서 이 메소포타미아 민족들은 산을 거쳐서 황인의 북쪽 땅으로 갔다. 안드 족속의 인도 침투는 투르키스탄의 고지로부터 펀잡으로, 그리고 이란의 풀 뜯는 땅으로부터 발루키스탄을 거쳐서 진행되었다. 이 초기의 민족 이동은 어떤 의미에서도 정복(征服)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안드 부족들이 인도의 서부와 중국으로 계속하여 흘러 들어간 것이다.
2001 CM 79:1.1 거의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기까지 2만 5천 년이 넘는 동안, 안드족속은 유라시아 중심부에서 현저히 많았으나 점점 줄었다. 안드족속은 투르케스탄 저지대로부터 서쪽을 향해 내륙 호수들을 돌아서 유럽으로 들어갔고, 한편 이 지역의 고지대에서는 동쪽으로 스며들었다. 동부 투르케스탄(곧 신장)은 고대의 통로 역할을 했고, 그보다 미약하기는 했지만 티벳 역시 그런 통로였는데, 이곳을 통해서 이 메소포타미아 민족들이 산맥을 넘어, 황색인이 사는 북부 땅으로 들어갔다. 안드족속의 인도 침투는, 투르케스탄 고지대에서 유래되어 펀잡 지방으로 들어갔고, 이란의 목초지역에서 바루키스탄을 통과해 들어갔다. 이런 초기 이주는 결코 정복이라 할 수 없었으며;오히려 안드족속 부족들이 서부 인도와 중국으로 되풀이해서 흘러 들어간 것이었다.
2007 URKA 79:1.1 거의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기까지, 25,000년 이상 동안, 유라시아의 중심부에는 점점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안드-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투르케스탄의 저지대에서 안드-사람들은 서쪽으로 향하여 내륙 호수들을 돌아 유럽으로 들어갔고, 반면에 이 지역의 고지대에서는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투르케스탄의 동쪽(신경)은 고대의 통로 역할을 하였고, 그보다 미약하기는 하였지만 티베트 역시 그러한 통로였는데, 그곳들을 통하여 메소포타미아의 이 민족들이 많은 산을 넘어서 황색 인종들이 사는 북부 지역으로 들어갔다. 안드-사람의 인도 침투는 투르케스탄 고지대에서 유래되어 펀잡 지방으로 들어갔고 이란의 목초지역으로부터 바루키스탄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이러한 비교적 초기의 이주들은 결코 정복이라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들은 안드-사람이 서부 인도와 중국으로 스며들어간 것이었다.
2025 79:1.1 2만 5천 년이 넘도록, 거의 기원전 2000년까지 계속해서, 유라시아의 심장부는 주로 안드 족속이었으나 그 성분이 줄어들었다. 투르키스탄의 낮은 땅에서 안드 족속은 서쪽으로 내륙 호수들을 돌아서 유럽으로 들어갔고, 한편 이 지역의 고지로부터 동쪽으로 침투했다. 동부 투르키스탄 (신장), 그리고 그보다 덜한 정도로 티벳은 고대의 출입구였고, 거기를 통해서 이 메소포타미아 민족들은 산을 거쳐서 황인의 북쪽 땅으로 갔다. 안드 족속의 인도 침투는 투르키스탄의 고지에서 펀잡으로, 그리고 이란의 풀 뜯는 땅에서 발루키스탄을 거쳐서 진행되었다. 이 초기의 민족 이동은 어떤 의미에서도 정복(征服)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히려 안드 부족들이 인도의 서부와 중국으로 계속하여 흘러 들어간 것이다.
1955 79:1.2 For almost fifteen thousand years centers of mixed Andite culture persisted in the basin of the Tarim River in Sinkiang and to the south in the highland regions of Tibet, where the Andites and Andonites had extensively mingled. The Tarim valley was the easternmost outpost of the true Andite culture. Here they built their settlements and entered into trade relations with the progressive Chinese to the east and with the Andonites to the north. In those days the Tarim region was a fertile land; the rainfall was plentiful. To the east the Gobi was an open grassland where the herders were gradually turning to agriculture. This civilization perished when the rain winds shifted to the southeast, but in its day it rivaled Mesopotamia itself.
2000 79:1.2 거의 1만 5천 년 동안, 혼합된 안드 족속의 문화 중심들은 신장에서 타림 강의 분지에, 남쪽으로는 티벳의 고지 지역에서 지속되었고, 여기서 안드 족속과 안돈 족속이 널리 섞였다. 타림 강 유역은 가장 동쪽에 있는 참 안드 문화의 전진 기지(基地)였다. 여기서 그들은 촌락들을 지었고, 동쪽으로 진취적인 중국인, 북쪽으로 안돈 족속과 무역 관계를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 타림 지역은 기름진 땅이었고, 비가 많이 왔다. 고비의 동쪽에는 탁 트인 초원이 있었고, 거기서 동물을 기르던 자들은 차츰 농업으로 전향하였다. 이 문명은 비를 실은 바람이 남동쪽으로 바뀌었을 때 무너졌으나, 그 전성기에 이 문명은 바로 메소포타미아와 힘을 겨루었다.
2001 CM 79:1.2 거의 1만 5천 년 동안, 잡다한 안드족속 문명 중심지들이, 신장에서 다림 강 분지와 티벳 고원지대 남부에 유지됐고, 거기서 안드족속과 안돈족속이 광범하게 섞였다. 다림 계곡은, 변질되지 않은 안드족속 문화의 동쪽 끝 전초기지였다. 그들은 여기서 정착지를 형성했고, 동쪽으로는 진취적인 중국인과, 그리고 북쪽으로는 안돈족속과, 거래 관계를 이루게 됐다. 당시에 다림 지역은 비옥한 땅이었으며;강우량이 풍부했다. 동쪽으로 고비 지역은 넓게 펼쳐진 목초지였고, 목축업이 점차 농업으로 바뀌고 있었다. 비바람이 남동쪽으로 바뀌자 이 지역 문명이 쇠퇴했지만, 당시에는 바로 메소포타미아와 쌍벽을 이뤘다.
2007 URKA 79:1.2 거의 15,000년 동안, 혼합된 안드-사람 문명 중심지들이 신경에 있는 다림 강 분지와 티베트의 고원지대 남부에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안드-사람들과 안돈-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어울려 살았다. 다림 계곡은 변질되지 않은 안드-사람 문화의 동쪽 끝에 있는 전초기지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정착지를 형성하였고 동쪽으로는 진보적인 중국인들과 그리고 북쪽으로는 안돈-사람들과 거래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그 당시에, 다림 지역은 비옥한 땅이었다; 강우량이 풍부하였다. 동쪽으로 고비 지역은 넓게 펼쳐진 목초지였으며 목축업이 점차적으로 농업으로 바뀌고 있었다. 비바람이 남동쪽으로 바뀌게 되자 이 지역의 문명이 쇠퇴되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메소포타미아 자체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2025 79:1.2 거의 1만 5천 년 동안, 혼합된 안드 족속의 문화 중심들은 신장에서 타림 강의 분지에, 남쪽으로는 티벳의 고지 지역에서 지속되었고, 여기서 안드 족속과 안돈 족속이 널리 섞였다. 타림 강 유역은 가장 동쪽에 있는 참 안드 문화의 전진 기지(基地)였다. 여기서 그들은 촌락들을 지었고, 동쪽으로 진취적인 중국인, 북쪽으로 안돈 족속과 무역 관계를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 타림 지역은 기름진 땅이었고, 비가 많이 왔다. 고비의 동쪽에는 탁 트인 초원이 있었고, 거기서 동물을 기르던 자들은 차츰 농업으로 전향하였다. 이 문명은 비를 실은 바람이 남동쪽으로 바뀌었을 때 무너졌으나, 그 전성기에 이 문명은 바로 메소포타미아와 힘을 겨루었다.
1955 79:1.3 By 8000 B.C. the slowly increasing aridity of the highland regions of central Asia began to drive the Andites to the river bottoms and the seashores. This increasing drought not only drove them to the valleys of the Nile, Euphrates, Indus, and Yellow rivers, but it produced a new development in Andite civilization. A new class of men, the traders, began to appear in large numbers.
2000 79:1.3 기원전 8000년이 되어, 중앙 아시아의 고지 지역에서 건조함이 천천히 심해진 것은 안드 족속을 강의 저지대와 바닷가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해지는 가뭄은 그들을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황하 유역으로 몰았을 뿐 아니라, 안드 문명에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새 계급의 사람들, 곧 상인이 큰 무리를 지어 비로소 나타났다.
2001 CM 79:1.3 기원전 8000년경에, 중앙 아시아 고지대가 더욱 건조해짐으로써, 안드족속은 강변과 해변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심해지는 건조 현상 때문에,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및 황하{黃河} 유역으로 그들이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안드족속 문명에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게 됐다. 새로운 부류 사람들 곧 상인{商人}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7 URKA 79:1.3 기원전 8,000년경에, 중앙아시아의 고지대가 점점 더 건조해짐으로써 안드-사람들은 강변과 해변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점점 더 심해지는 이러한 건조 현상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나일, 유프라테스, 인더스, 그리고 황하의 계곡들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안드-사람 문명에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새로운 등급인 상인(商人)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많은 숫자를 이루었다.
2025 79:1.3 기원전 8000년이 되어, 중앙 아시아의 고지 지역에서 건조성이 천천히 심해진 것은 안드 족속을 강의 저지대와 바닷가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심해지는 가뭄은 그들을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황하 유역으로 몰았을 뿐 아니라, 안드 문명에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새 계급의 사람들, 곧 상인이 큰 무리를 지어 비로소 나타났다.
1955 79:1.4 When climatic conditions made hunting unprofitable for the migrating Andites, they did not follow the evolutionary course of the older races by becoming herders. Commerce and urban life made their appearance. From Egypt through Mesopotamia and Turkestan to the rivers of China and India, the more highly civilized tribes began to assemble in cities devoted to manufacture and trade. Adonia became the central Asian commercial metropolis, being located near the present city of Ashkhabad. Commerce in stone, metal, wood, and pottery was accelerated on both land and water.
2000 79:1.4 기후 조건이 이동하는 안드 족속에게 사냥을 쓸모없게 만들었을 때, 그들은 목자가 됨으로 더 오래 된 민족들의 진화 과정을 밟지 않았다. 상업과 도시 생활이 나타났다. 에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투르키스탄을 거쳐서 중국과 인도의 강들까지, 상당히 문명화된 부족들이 제조업과 무역에 전념하는 여러 도시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아도니아는 중앙 아시아에서 상업(商業)의 대도시가 되었고, 그 위치는 오늘날 아슈카바드 시 가까이 있었다. 돌ㆍ금속ㆍ나무ㆍ도기를 다루는 상업이 땅과 바다에서 빨리 발달되었다.
2001 CM 79:1.4 기후 조건 때문에 사냥하기 어렵게 되자, 이주하는 안드족속은 목축업자가 됨으로써 옛 인종들의 진화 과정을 답습하지 않았다. 상업과 도시 생활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투르케스탄을 거쳐서 중국과 인도의 강들까지, 상당히 문명화된 부족들이 제조업과 무역에 몰두하는 여러 도시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도니아는 중앙 아시아의 상업 중심지가 됐는데, 오늘날 아쉬카바드라는 도시 근처에 자리잡았다. 돌, 금속, 나무, 및 도기{陶器}의 교역{交易}이 땅과 바다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2007 URKA 79:1.4 이주하는 안드-사람들이 기후 조건 때문에 사냥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옛날의 종족들이 목축업자가 됨으로써 진화해 갔던 과정을 답습하지 않았다. 상업과 도시 생활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투르케스탄을 거쳐 중국과 인도의 강들에 이르는, 더욱 높게 문명화된 부족들이 도시에서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생산과 무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안도니아는 중앙아시아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는데, 현재의 아쉬카바드라고 하는 도시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돌과 금속 그리고 나무와 도기(陶器)의 교역이 육지와 해상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2025 79:1.4 기후 조건이 이동하는 안드 족속에게 사냥을 쓸모없게 만들었을 때, 그들은 목자가 됨으로 더 오래 된 민족들의 진화 과정을 밟지 않았다. 상업과 도시 생활이 나타났다. 에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투르키스탄을 거쳐서 중국과 인도의 강들까지, 상당히 문명화된 부족들이 제조업과 무역에 전념하는 여러 도시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아도니아는 중앙 아시아에서 상업(商業)의 대도시가 되었고, 그 위치는 오늘날 아슈카바드 시 가까이 있었다. 돌ㆍ금속ㆍ나무ㆍ도기를 다루는 상업이 땅과 바다에서 빨리 발달되었다.
1955 79:1.5 But ever-increasing drought gradually brought about the great Andite exodus from the lands south and east of the Caspian Sea. The tide of migration began to veer from northward to southward, and the Babylonian cavalrymen began to push into Mesopotamia.
2000 79:1.5 그러나 항상 심해지는 가뭄이 차츰 카스피 바다의 남쪽과 동쪽 땅으로부터 안드 족속의 대탈출을 가져왔다. 민족 이동의 물결이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향하여 길을 바꾸기 시작했고, 말을 탄 바빌로니아인은 메소포타미아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2001 CM 79:1.5 그러나 계속-심화되는 건조 현상이, 안드족속으로 하여금 그 지역에서 카스피 해 남부와 동부로 대이동 하도록 만들었다. 이주 물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뀌었고, 바벨론 기마병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2007 URKA 79:1.5 그러나 계속 심화되는 건조 현상은 안드-사람으로 하여금 그 지역으로부터 카스피 해 남부와 동부로 대이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주의 물결이 북쪽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바뀌었고, 말을 탄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2025 79:1.5 그러나 항상 심해지는 가뭄이 차츰 카스피 해의 남쪽과 동쪽 땅에서 안드 족속의 대탈출을 가져왔다. 민족 이동의 물결이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향하여 길을 바꾸기 시작했고, 말을 탄 바빌로니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1955 79:1.6 Increasing aridity in central Asia further operated to reduce population and to render these people less warlike; and when the diminishing rainfall to the north forced the nomadic Andonites southward, there was a tremendous exodus of Andites from Turkestan. This is the terminal movement of the so-called Aryans into the Levant and India. It culminated that long dispersal of the mixed descendants of Adam during which every Asiatic and most of the island peoples of the Pacific were to some extent improved by these superior races.
2000 79:1.6 더 나아가서 중앙 아시아에서 심해지는 건조성은 인구를 줄이고 이 사람들의 호전성을 약화시키도록 작용하였다. 북쪽에서 강우량이 줄어들어 유목하는 안돈 족속이 할 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 투르키스탄에서 엄청난 안드 족속의 탈출이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아리아인이 레반트와 인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이동이다. 이렇게 아담의 혼합된 후손들의 오랜 분산이 절정에 이르렀고, 이 동안에 모든 아시아 민족, 그리고 태평양의 섬 민족들의 대부분이, 이 우수한 종족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 개량되었다.
2001 CM 79:1.6 중앙 아시아의 심해지는 건조 상태가 인구를 더 감소시켰고, 이 사람들의 호전성을 줄였으며;북쪽 지역의 강우량이 줄어듦으로써, 방랑하던 안돈족속이 강제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됐을 때, 수많은 안드족속이 투르케스탄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소위 아리아인이 레반트와 인도 지역으로 들어간 마지막 이동이다. 오랫동안 이뤄진 잡다한 아담 후손의 분산이 절정에 달했고, 그러는 동안에 아시아의 모든 민족과 태평양 섬들의 민족 대부분이, 우수한 이 인종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 개선됐다.
2007 URKA 79:1.6 중앙아시아의 점점 더 심해지는 건조 상태는 인구를 더욱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였고 이 사람들의 호전성을 줄여주었다; 북쪽 지역의 강우량이 줄어듦으로 말미암아 유목하던 안돈-사람들이 강제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수많은 안드-사람들이 투르케스탄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소위 아리아인들이 레반트와 인도 지역으로 들어간 마지막 이동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루어진 아담의 혼합된 후손들의 분산이 절정에 달하였으며, 그 동안에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과 태평양에 있는 섬들의 대부분의 민족들이 우월한 이 종족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2025 79:1.6 더 나아가서 중앙 아시아에서 심해지는 건조성은 인구를 줄이고 이 사람들의 호전성을 약화시키도록 작용하였다. 북쪽에서 강우량이 줄어들어 유목하는 안돈 족속이 할 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 투르키스탄에서 엄청난 안드 족속의 탈출이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아리아인이 레반트와 인도로 들어가는 마지막 이동이다. 이렇게 아담의 혼합된 후손들의 오랜 분산이 절정에 이르렀고, 이 동안에 모든 아시아 민족, 그리고 태평양의 섬 민족들의 대부분이, 이 우수한 종족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 개량되었다.
1955 79:1.7 Thus, while they dispersed over the Eastern Hemisphere, the Andites were dispossessed of their homelands in Mesopotamia and Turkestan, for it was this extensive southward movement of Andonites that diluted the Andites in central Asia nearly to the vanishing point.
2000 79:1.7 이렇게 동반구에 흩어졌으나, 안드 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투르키스탄에 있는 고향을 잃어버렸는데, 안돈 족속의 광범위한 이 남방 이동이 중앙 아시아에서 거의 사라지는 점까지 안드 족속의 수를 줄어들게 했기 때문이다.
2001 CM 79:1.7 그리하여, 그들이 동반구로 퍼져나가는 동안, 안드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투르케스탄에서 본거지를 잃어버리게 됐는데, 안드족속의 이런 광대한 남쪽 이동 때문에 중앙 아시아의 안드족속이 희귀해져서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07 URKA 79:1.7 그리하여, 안드-사람들이 지구의 동반구에 널리 분산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투르케스탄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이는 안돈-사람들의 이와 같은 광범위한 남쪽으로의 이동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안드-사람들이 희귀해져서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도달하였기 때문이었다.
2025 79:1.7 이렇게 동반구에 흩어졌으나, 안드 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투르키스탄에 있는 고향을 잃어버렸는데, 안돈 족속의 광범위한 이 남방 이동이 중앙 아시아에서 거의 사라지는 점까지, 안드 족속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1955 79:1.8 But even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there are traces of Andite blood among the Turanian and Tibetan peoples, as is witnessed by the blond types occasionally found in these regions. The early Chinese annals record the presence of the red-haired nomads to the north of the peaceful settlements of the Yellow River, and there still remain paintings which faithfully record the presence of both the blond-Andite and the brunet-Mongolian types in the Tarim basin of long ago.
2000 79:1.8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도, 투란과 티벳 종족들 사이에, 이 지역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금발 종류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안드 족속 혈통의 흔적이 있다. 옛날 중국의 연대기(年代記)는 양자강에 있는 평화로운 촌락들 북쪽으로, 붉은 머리털의 유목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며, 거기서 오래 전에 타림 분지에서 금발의 안드 족속 종류와 갈색 머리의 몽고인 부류가 있었다는 것을 충실히 기록하는 그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2001 CM 79:1.8 그러나 기원후 20세기까지도, 우랄알타이 어족과 티벳 민족들 가운데에는 안드족속 핏줄의 흔적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금발 유형의 사람들이 이를 증거한다. 초기 중국 사료{史料}는 황하의 평화로운 정착지 북쪽 지역에 붉은 색 머리카락을 지닌 유목민이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옛날에 다림 분지에서 금발-안드족속과 갈색-몽골족 유형들이 같이 있었음을 정확하게 기록한 그림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2007 URKA 79:1.8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 20세기까지도, 우랄알타이 어족(語族)의 민족들과 티베트 민족들 속에는 안드-사람 혈통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 지역에서 때때로 발견되는 금발 유형의 사람들에 의해서 증거 된다. 초기 중국 사료들은 황하 유역의 평화로운 정착지 북쪽 지역에서 붉은 색 머리를 가진 유목민들의 현존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으며, 옛날에 다림 분지에 금발의 안드-사람과 갈색 머리의 몽고족들의 현존이 같이 있었음을 정확하게 기록한 그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2025 79:1.8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도, 투란과 티벳 종족들 사이에, 이 지역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금발 종류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안드 족속 혈통의 흔적이 있다. 옛날 중국의 연대기(年代記)는 양자강에 있는 평화로운 촌락들 북쪽으로, 붉은 머리털의 유목민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며, 거기서 오래 전에 타림 분지에서 금발의 안드 족속 종류와 갈색 머리의 몽고인 부류가 있었다는 것을 충실히 기록하는 그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55 79:1.9 The last great manifestation of the submerged military genius of the central Asiatic Andites was in A.D. 1200, when the Mongols under Genghis Khan began the conquest of the greater portion of the Asiatic continent. And like the Andites of old, these warriors proclaimed the existence of “one God in heaven.” The early breakup of their empire long delayed cultural intercourse between Occident and Orient and greatly handicapped the growth of the monotheistic concept in Asia.
2000 79:1.9 중앙 아시아의 안드 족속의 잠자던 군사적 재능이 마지막으로 크게 나타난 것은 서기 1200년이었는데, 이때 징기스칸 밑에서 몽고인이 아시아 대륙의 반 이상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옛날의 안드 족속처럼, 이 용사들은 “하늘에 계신 유일한 하나님”이 존재함을 선포하였다. 그들의 제국이 일찍 무너진 것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교류를 오랫동안 늦추었고, 아시아에서 유일신 개념이 성장하는 것을 크게 방해했다.
2001 CM 79:1.9 중앙 아시아 안드족속의 잠자던 군사적 천재성이 마지막으로 크게 나타난 것은, 서기 1200년에 징기스칸이 지배하는 몽골이, 아시아 대륙 거의 대부분을 점령했을 때였다. 그리고 옛 안드족속과 마찬가지로, 이 전사{戰士}들은 “하늘에 계신 유일한 하나님”의 실존을 전파했다. 그들의 제국이 일찍 무너짐으로써, 서양과 동양의 문화 교류가 오랫동안 연기됐고, 아시아에서 유일신 개념이 성장하는 것을 엄청나게 방해했다.
2007 URKA 79:1.9 중앙아시아 안드-사람들의 숨겨진 군사적 재능의 마지막 큰 현시활동은, 서기 1,200년에 징기스칸이 지배하는 몽고가 아시아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을 때였다. 그리고 옛날의 안드-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사들은 “하늘에 계신 유일하신 하느님”의 실존을 전파하였다. 그들의 제국이 일찍 무너짐으로써, 동방과 서방 간의 문화 교류가 오랫동안 연기되었으며, 아시아에서의 유일신(唯一神) 개념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게 되었다.
2. THE ANDITE CONQUEST OF INDIA
2. 안드 족속의 인도 정복
2. 안드족속의 인도 정복
2. 안드-사람의 인도 정복
2. 안드 족속의 인도 정복
1955 79:2.1 India is the only locality where all the Urantia races were blended, the Andite invasion adding the last stock. In the highlands northwest of India the Sangik races came into existence, and without exception members of each penetrated the subcontinent of India in their early days, leaving behind them the most heterogeneous race mixture ever to exist on Urantia. Ancient India acted as a catch basin for the migrating races. The base of the peninsula was formerly somewhat narrower than now, much of the deltas of the Ganges and Indus being the work of the last fifty thousand years.
2000 79:2.1 인도는 유란시아 민족들이 모두 섞인 유일한 지역이며, 안드 족속의 침공이 마지막 혈통을 더했다. 인도 북서쪽에 있는 고지에서 산긱 종족들이 태어났고, 예외 없이 각 종족의 사람들이 옛 시절에 인도 아대륙(亞大陸)에 파고들었으며, 유란시아에서 일찍이 존재한 가장 이질적 종족 혼합을 뒤에 남겼다. 고대의 인도는 이동하는 종족들을 붙잡아 두는 분지로 작용했다. 그 반도의 기초는 옛날에 지금보다 좁았고, 간지스 강과 인더스 강 삼각지의 상당한 부분은 최근 5만 년 동안 생긴 결과이다.
2001 CM 79:2.1 인도는 모든 유란시아 인종이 섞인 유일한 장소인데, 안드족속의 침입이 마지막 혈통을 더했다. 인도 북서부 고지대에서 상익 인종이 출현했고, 초기에 인도 아{亞}대륙에 들어온 각 종족 사람들이 예외 없이 섞임으로써, 유란시아에 이제까지 존재했던 종족 가운데 가장 잡다한 인종을 남겼다. 고대 인도는, 이주하는 인종들을 붙잡아두는 웅덩이 역할을 했다. 반도의 아래쪽 폭이 전에는 현재보다 약간 좁았으며, 간지스와 인더스 삼각주{三角洲} 대부분은 지난 5만 년 세월의 작품이다.
2007 URKA 79:2.1 인도는유란시아의 모든 인종들이 섞인 유일한 지역이며, 안드-사람의 침입은 마지막으로 덧붙여진 혈통을 제공하였다. 인도의 북서쪽 고지대에서 산긱 종족들이 출현하였으며, 초기에 인도 대륙에 들어온 각 종족의 사람들이 예외 없이 섞임으로써, 유란시아에 이제까지 존재하였던 종족들 중에서 가장 잡다한 종족을 남겨두었다. 고대의 인도는 이주하는 인종들을 붙잡아두는 웅덩이 역할을 하였다. 그 반도의 출발 지점은, 이전에는 현재보다 약간 좁았으며, 갠지스와 인더스의 삼각주는 지난 50,000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2025 79:2.1 인도는 유란시아 민족들이 모두 섞인 유일한 지역이며, 안드 족속의 침공이 마지막 혈통을 더했다. 인도 북서쪽에 있는 고지에서 산긱 종족들이 태어났고, 예외 없이 각 종족의 사람들이 옛 시절에 인도 아대륙(亞大陸)에 파고들었으며, 유란시아에서 일찍이 존재한 가장 이질적 종족 혼합을 뒤에 남겼다. 고대의 인도는 이동하는 종족들을 붙잡아 두는 분지로 작용했다. 그 반도의 기초는 옛날에 지금보다 좁았고, 간지스 강과 인더스 강 삼각지의 상당 부분은 최근 5만 년 동안 생긴 결과이다.
1955 79:2.2 The earliest race mixtures in India were a blending of the migrating red and yellow races with the aboriginal Andonites. This group was later weakened by absorbing the greater portion of the extinct eastern green peoples as well as large numbers of the orange race, was slightly improved through limited admixture with the blue man, but suffered exceedingly through assimilation of large numbers of the indigo race. But the so-called aborigines of India are hardly representative of these early people; they are rather the most inferior southern and eastern fringe, which was never fully absorbed by either the early Andites or their later appearing Aryan cousins.
2000 79:2.2 인도에서 가장 일찍부터 있었던 종족 혼합은 이동하는 홍인과 황인이 원주민 안돈 족속과 섞인 것이다. 이 집단은 큰 무리의 주황 민족 뿐 아니라, 동부에 절멸한 녹색 민족의 대부분을 흡수하여 나중에 약화되었고, 제한된 양으로 청인과 혼합하여 얼마큼 개량되었지만, 큰 집단의 남인종을 동화함으로 극도로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이른바 인도 원주민은 도저히 이 옛 민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가장 열등한 남쪽과 동쪽의 변두리 세력이고, 이것은 초기의 안드 족속이나 나중에 나타나는 아리아인 사촌들에게 결코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2001 CM 79:2.2 인도에서 있었던 첫 인종 혼합은, 이주하는 홍인종과 황인종이 토착민 안돈족속과 섞인 것이었다. 이 집단은, 소멸된 동부 녹색 민족들 대부분과 큰 무리의 주황인종을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약화됐고, 청색인과 제한적으로 혼합됨으로써 조금이나마 진보했으나, 큰 무리의 남색인종과 혼합됨으로써 크게 수난 당했다. 그러나 소위 인도 원주민은 도저히 이런 초기 민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으며;그들은 오히려 남부와 동부 지역에 사는 가장 열등한 사람이었는데, 그 지역은 초기 안드족속 또는 후대에 나타난 아리아 동족에게 결코 온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2007 URKA 79:2.2 인도에서 있었던 최초의 인종 혼합은, 이주하는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이 토착민인 안돈-사람들과 섞인 것이었다. 이 집단은 소멸된 동부의 녹색 인종들의 대부분과 많은 숫자의 오렌지색 종족을 흡수함으로써 나중에 약화되었고, 청색 인종과 약간 혼합됨으로써 약하게나마 진보를 이루었지만, 많은 숫자의 남색 종족과 혼합됨으로써 크게 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소위 인도의 원주민이 이러한 초기 민족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오히려 남부와 동부 지역에 사는 가장 열등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지역은 초기의 안드-사람들이나 또는 후대에 나타난 그들의 아리아 동족들에 의해서 한 번도 충만하게 흡수되지 못한 곳이었다.
2025 79:2.2 인도에서 가장 일찍부터 있었던 종족 혼합은 이동하는 홍인과 황인이 원주민 안돈 족속과 섞인 것이다. 이 집단은 큰 무리의 주황 민족만 아니라, 동부에 절멸한 녹색 민족의 대부분을 흡수하여 나중에 약화되었고, 제한된 양으로 청인과 혼합하여 얼마큼 개량되었지만, 큰 집단의 남인종을 동화하여 극도로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이른바 인도 원주민은 도저히 이 옛 민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가장 열등한 남쪽과 동쪽의 변두리 세력이고, 이것은 초기의 안드 족속이나 나중에 나타나는 아리아인 사촌들에게 결코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다.
1955 79:2.3 By 20,000 B.C. the population of western India had already become tinged with the Adamic blood, and never in the history of Urantia did any one people combine so many different races. But it was unfortunate that the secondary Sangik strains predominated, and it was a real calamity that both the blue and the red man were so largely missing from this racial melting pot of long ago; more of the primary Sangik strains would have contributed very much toward the enhancement of what might have been an even greater civilization. As it developed, the red man was destroying himself in the Americas, the blue man was disporting himself in Europe, and the early descendants of Adam (and most of the later ones) exhibited little desire to admix with the darker colored peoples, whether in India, Africa, or elsewhere.
2000 79:2.3 기원전 20,000년이 되기까지, 인도 서부의 인구는 이미 아담 족속의 피 흔적이 있었고, 유란시아 역사에서 결코 어느 한 민족이 그렇게 많은 종족을 통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산긱 혈통들이 지배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고, 옛날에 있었던 이 종족의 도가니에 청인과 홍인이 대체로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난이었다. 1차 산긱 혈통이 더 많았더라면, 더욱 위대하게 되었을까 싶은 문명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일이 전개된 바와 같이, 홍인은 두 아메리카에서 자신을 죽이고 있고, 청인은 유럽에서 즐겁게 장난치고 있었으며, 아담의 초기 후손은 (나중의 후손 대부분도) 인도나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 검은 빛을 띤 민족들과 섞일 욕구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01 CM 79:2.3 기원전 20,000년경에, 서부 인도 주민은 이미 아담의 피로 물들기 시작했고, 유란시아 역사상 한 민족이 그토록 많은 다른 종족의 혼합으로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2차 상익 종족이 우위를 차지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고, 오래 전의 이 인종 용광로에서 청색인과 홍색인이 너무 많이 사라진 것은 정말로 재난{災難}이었는데;1차 상익 종족이 더 많았다면, 훨씬 훌륭한 문명이 발생되도록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아주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전개된 바와 같이, 홍색인은 아메리카에서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었고, 청색인은 유럽에서 흥겹게 살고 있었고, 아담의 초기 후손(그리고 후대의 후손 대부분)은, 인도와 아프리카 그리고 다른 어느 지역에서든지, 짙은 색 인종과는 혼합되기를 싫어했다.
2007 URKA 79:2.3 기원 전 20,000년경에, 서부 인도의 사람들은 이미 아담의-피와 혼혈되기 시작하였으며, 유란시아의 역사상 한 민족이 그토록 많은 다른 종족들의 병합으로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2차 산긱 혈통들이 우위를 차지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고, 오래 전의 이 인종(人種) 용광로로부터 청색 인종과 적색 인종이 너무 많이 사라진 것은 실제적인 하나의 재난이었는데; 1차 산긱 혈통들이 더 많았다면 훨씬 훌륭한 문명이 발생되도록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매우 많이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발달하면서, 적색 인종은 아메리카에서 자멸하였고, 청색 인종은 유럽에서 활동하였으며, 아담의 초기 후손들(그리고 후대의 후손들 대부분)은 인도와 아프리카 그리고 다른 어느 지역에서든지 짙은 색깔의 인종들과는 어울리기를 싫어하였다.
2025 79:2.3 기원전 20,000년이 되기까지, 인도 서부의 인구는 이미 아담 족속의 피 흔적이 있었고, 유란시아 역사에서 결코 어느 한 민족이 그렇게 많은 종족을 통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산긱 혈통들이 지배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고, 옛날에 있었던 이 종족의 도가니에 청인과 홍인이 대체로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난이었다. 1차 산긱 혈통이 더 많았더라면, 더욱 위대하게 되었을까 싶은 문명의 향상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일이 전개된 바와 같이, 홍인은 두 아메리카에서 자신을 죽이고 있고, 청인은 유럽에서 즐겁게 장난치고 있었으며, 아담의 초기 후손은 (나중의 후손 대부분도) 인도나 아프리카나 다른 곳에서, 검은 빛을 띤 민족들과 섞일 욕구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1955 79:2.4 About 15,000 B.C. increasing population pressure throughout Turkestan and Iran occasioned the first really extensive Andite movement toward India. For over fifteen centuries these superior peoples poured in through the highlands of Baluchistan, spreading out over the valleys of the Indus and Ganges and slowly moving southward into the Deccan. This Andite pressure from the northwest drove many of the southern and eastern inferiors into Burma and southern China but not sufficiently to save the invaders from racial obliteration.
2000 79:2.4 기원전 15,000년 무렵에, 투르키스탄과 이란 전역에서 인구의 압력이 팽창한 것은 인도를 향하여 정말로 광범위한 안드 민족의 이동을 일으켰다. 1천 5백 년이 넘도록 이 우수한 민족들은 발루키스탄의 고지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와서 인더스와 간지스 강 유역에 퍼졌으며, 천천히 남쪽으로 데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북서쪽에서 온 이 안드 족속의 압력은 남쪽과 동쪽에 있는 열등한 사람들의 다수를 버마와 중국 남부로 몰았지만, 침공자들이 종족으로서 사라지는 것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2001 CM 79:2.4 기원전 15,000년경에, 늘어나는 인구로 인한 압력이 투르케스탄과 이란에서 전역으로 확장됐고, 정말로 광범한 안드족속 이동이 처음으로 인도 쪽으로 이뤄졌다. 열다섯 세기가 넘는 동안, 우수한 이 민족들이 바루키스탄 고지대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갔는데, 인더스와 간지스 강 유역으로 퍼져나갔고,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북서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안드족속에 밀려서, 남부와 동부에 있던 열등한 사람들이 쫓겨나 버마와 남부 중국으로 들어갔지만, 침입자들이 인종 소멸을 당하지 않을 만큼 숫자가 충분치는 않았다.
2007 URKA 79:2.4 기원 전 약 15,000년경에, 늘어나는 인구에 의한 압력이 투르케스탄 전역으로 확장되었고 이란으로부터 실제로 최초의 안드-사람 이동이 인도 쪽으로 일어났다. 15세기가 넘는 동안, 우월한 이 민족들이 바루키스탄 고지대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왔고, 인더스와 갠지스 계곡으로 퍼져나갔으며 서서히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북서쪽으로부터 들어오는 안드-사람 압력은, 남부와 동부에 있던 열등한 사람들을 쫓아내 버마와 남부 중국으로 들어가게 했지만, 침입자들은 종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2025 79:2.4 기원전 15,000년 무렵에, 투르키스탄과 이란 전역에서 인구의 압력이 팽창한 것은 인도를 향하여 정말로 광범위한 안드 민족의 이동을 일으켰다. 1천 5백 년이 넘도록 이 우수한 민족들은 발루키스탄의 고지를 통하여 쏟아져 들어와서 인더스와 간지스 강 유역에 퍼졌으며, 천천히 남쪽으로 데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북서쪽에서 온 이 안드 족속의 압력은 남쪽과 동쪽에 있는 열등한 사람들의 다수를 버마와 중국 남부로 몰았지만, 침공자들이 종족으로서 사라지는 것을 막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1955 79:2.5 The failure of India to achieve the hegemony of Eurasia was largely a matter of topography; population pressure from the north only crowded the majority of the people southward into the decreasing territory of the Deccan, surrounded on all sides by the sea. Had there been adjacent lands for emigration, then would the inferiors have been crowded out in all directions, and the superior stocks would have achieved a higher civilization.
2000 79:2.5 인도가 유라시아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은 대체로 지형(地形)의 문제였다. 북쪽으로부터 받는 인구의 압력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남쪽으로, 데칸의 줄어드는 영토로 밀어냈을 뿐이고, 데칸은 어디나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주해 갈 인접한 땅이 있었더라면, 그 열등한 사람들은 사방으로 밀려났을 터이고, 우수한 혈통은 더 높은 문명을 이룩했을 것이다.
2001 CM 79:2.5 인도가 유라시아에서 패권을 잡지 못한 것은 주로 지형{地形} 때문이었는데, 인구 팽창으로 인해 북쪽에서만 붐비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감으로써, 거주지는 더 줄어들었고,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였다. 부근에 이주해 들어갈 만한 땅이 있었다면, 열등한 민족은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우수한 혈통이 훨씬 발전된 문명을 성취했을 것이다.
2007 URKA 79:2.5 인도가 유라시아의 패권을 잡지 못한 것은 주로 지형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북쪽에만 붐비고 있던 인구 압력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여 데칸 지역으로 들어가 영토는 더욱 줄어들었고,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만일 그 부근에 이주해 들어갈 만한 땅이 있었다면, 열등한 민족은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우월한 혈통을 가진 그 사람들이 훨씬 발전된 문명을 성취하였을 것이다.
2025 79:2.5 인도가 유라시아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은 대체로 지형(地形)의 문제였다. 북쪽에서 받는 인구의 압력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남쪽으로, 데칸의 줄어드는 영토로 밀어냈을 뿐이고, 데칸은 어디나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주해 갈 인접한 땅이 있었더라면, 그 열등한 사람들은 사방으로 밀려났을 터이고, 우수한 혈통은 더 높은 문명을 이룩했을 것이다.
1955 79:2.6 As it was, these earlier Andite conquerors made a desperate attempt to preserve their identity and stem the tide of racial engulfment by the establishment of rigid restrictions regarding intermarriage. Nonetheless, the Andites had become submerged by 10,000 B.C., but the whole mass of the people had been markedly improved by this absorption.
2000 79:2.6 실제로 일어난 바와 같이, 초기 정복자인 이 안드 족속은 서로 결혼하는 것에 관하여 엄격한 제한을 둠으로 그들의 신분을 보존하고 종족을 삼키는 인파를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런데도 안드 족속은 기원전 10,000년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민족의 대중 전체가 이들을 흡수함으로 두드러지게 개량되었다.
2001 CM 79:2.6 사실 그랬듯이, 초기의 이 안드족속 정복자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종족 간 결혼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율을 제정함으로써, 종족을 흡수하는 인파를 막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럼에도, 안드족속은 기원전 10,000년경에 사라졌지만, 그 민족 대부분은 이들을 흡수함으로써 괄목할만한 증진을 이룩했다.
2007 URKA 79:2.6 사실 그대로, 초기의 이 안드-사람 정복자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종족간의 결혼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는 규율을 제정함으로써 종족 흡수의 물결을 제거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사람들은 기원 전 10,000년경에 사라졌지만, 전체의 민족은 이들이 흡수됨으로써 괄목할만한 증진을 이룩하였다.
2025 79:2.6 실제로 일어난 바와 같이, 초기 정복자인 이 안드 족속은 서로 결혼하는 것에 관하여 엄격한 제한을 두어 그들의 신분을 보존하고 종족을 삼키는 인파를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런데도 안드 족속은 기원전 10,000년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민족의 대중 전체가 이들을 흡수함으로 두드러지게 개량되었다.
1955 79:2.7 Race mixture is always advantageous in that it favors versatility of culture and makes for a progressive civilization, but if the inferior elements of racial stocks predominate, such achievements will be short-lived. A polyglot culture can be preserved only if the superior stocks reproduce themselves in a safe margin over the inferior. Unrestrained multiplication of inferiors, with decreasing reproduction of superiors, is unfailingly suicidal of cultural civilization.
2000 79:2.7 종족의 혼합은 문화의 융통성을 촉진하고 진보하는 문명에 도움이 되므로 언제나 유익하다. 그러나 종족 혈통에서 열등한 요소가 주류를 이룬다면, 그러한 성취는 잠시일 뿐이다. 여러 나라 말을 쓰는 문화는 우수한 혈통이 열등한 혈통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자체를 번식할 때에야 보존될 수 있다. 우수한 자의 번식이 줄어들면서 열등한 자가 제한 없이 번식하는 것은, 어김없이 문화적 문명의 자살이 된다.
2001 CM 79:2.7 인종 혼합은,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진보하는 문명을 이룩한다는 점에서 항상 유익하지만, 열등한 요소를 지닌 종족 혈통이 우세할 경우에는, 그런 성취가 오래 가지 못한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는, 우세한 혈통이 열등한 사람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자손을 퍼뜨릴 때에만 유지될 수 있다. 열등한 사람의 자손이 제한 없이 늘어나고 우수한 사람의 자손이 줄어들면, 문화가 있는 문명은 반드시 자멸{自滅}한다.
2007 URKA 79:2.7 종족 혼합은, 문화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진보적인 문명을 이룩한다는 점에서 항상 유리한 것이지만, 만약에 열등한 요소를 가진 종족이 우세할 경우에는, 그러한 성취가 오래가지 못한다.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는, 열등한 사람들과의 안전한 간격 안에서, 우월한 혈통이 재생산하여야만 오로지 유지될 수 있다. 우월한 자들의 재생산이 줄어들면서, 열등한 자들이 제약 없이 번식하면, 문화적인 문명은 반드시 자멸하게 된다.
2025 79:2.7 종족의 혼합은 문화의 융통성을 촉진하고 진보하는 문명에 도움이 되므로 언제나 유익하다. 그러나 종족 혈통에서 열등한 요소가 주류를 이룬다면, 그러한 성취는 잠시일 뿐이다. 여러 나라 말을 쓰는 문화는 우수한 혈통이 열등한 혈통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자체를 번식할 때에야 보존될 수 있다. 우수한 자의 번식이 줄어들면서 열등한 자가 제한 없이 번식하는 것은, 어김없이 문화적 문명의 자살이 된다.
1955 79:2.8 Had the Andite conquerors been in numbers three times what they were, or had they driven out or destroyed the least desirable third of the mixed orange-green-indigo inhabitants, then would India have become one of the world’s leading centers of cultural civilization and undoubtedly would have attracted more of the later waves of Mesopotamians that flowed into Turkestan and thence northward to Europe.
2000 79:2.8 안드 정복자들이 실제보다 세 배가 되었거나, 아니면 주황ㆍ녹색ㆍ남색의 혼합 거주자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3분의 1을 몰아내거나 없앴더라면, 인도는 세계에서 주요한 문화적 문명 중심의 하나가 되었을 터이고, 의심할 여지 없이, 투르키스탄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북쪽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메소포타미아인의 후기 인파를 더 유인했을 것이다.
2001 CM 79:2.8 안드족속 정복자들이 당시에 실제 숫자보다 세 배가 됐거나, 아니면 혼합된 주황색-녹색-남색 주민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3분의 1을 쫓아내든지 파멸시켰다면, 인도는 문화가 있는 문명의 세계 중심지들 가운데 하나가 됐을 것이며, 투르케스탄으로 흘러 들어가고 거기서 유럽으로 건너간, 후기 메소포타미아인 인파를 확실히 더 많이 끌어들였을 것이다.
2007 URKA 79:2.8 안드-사람 정복자들이 그 당시 그들의 숫자보다 3배가 되었다면, 또는 그들이 혼합된 오렌지색-녹색-남색 주민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3분의 1을 쫓아내었거나 파멸시켰더라면, 인도는 문화적 문명의 세계적인 중심지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며, 투르케스탄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곳으로부터 유럽으로 건너간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후반기 무리들을 더 많이 끌어들였을 것이다.
2025 79:2.8 안드 정복자들이 실제보다 세 배가 되었거나, 아니면 주황ㆍ녹색ㆍ남색의 혼합 거주자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3분의 1을 몰아내거나 없앴더라면, 인도는 세계에서 주요한 문화적 문명 중심의 하나가 되었을 터이고, 의심할 여지없이, 투르키스탄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북쪽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메소포타미아인의 후기 인파를 더 유인했을 것이다.
3. DRAVIDIAN INDIA
3. 드라비다인의 인도
3. 드라비다인의 인도
3. 드라비다의 인도
3. 드라비다인의 인도
1955 79:3.1 The blending of the Andite conquerors of India with the native stock eventually resulted in that mixed people which has been called Dravidian. The earlier and purer Dravidians possessed a great capacity for cultural achievement, which was continuously weakened as their Andite inheritance became progressively attenuated. And this is what doomed the budding civilization of India almost twelve thousand years ago. But the infusion of even this small amount of the blood of Adam produced a marked acceleration in social development. This composite stock immediately produced the most versatile civilization then on earth.
2000 79:3.1 인도를 정복한 안드 족속과 토종 핏줄의 혼합은 결국 드라비다인이라 부른 그 혼합된 민족을 낳았다. 초기에 있었고 좀더 순수했던 드라비다인은 문화적으로 성취할 큰 능력을 소유했는데, 이 능력은 그들의 안드 족 유산(遺産)이 점진적으로 묽어짐에 따라서 줄곧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1만 2천 년 전에 인도의 싹트는 문명을 망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적은 양의 아담의 피를 주입한 것조차 사회의 발전을 두드러지게 가속하였다. 이 복합 혈통은 대번에 그때 땅에서 가장 다능한 문명을 낳았다.
2001 CM 79:3.1 인도를 정복한 안드족속과 원주민 혈통의 결합은 결국, 드라비다인이라 불리는 잡다한 민족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초기에 있었고 좀 더 순수했던 드라비다인은, 문화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큰 능력을 지녔는데, 이 능력은 그들의 안드족속 유전자가 점점 희박해짐에 따라서 계속 약화됐다. 이것이 거의 1만 2천 년 전에 인도에서 싹트는 문명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아담의 피가 이렇게 적은 양만 주입됐어도, 사회 발전에서는 괄목할만한 촉진을 이룩했다. 이런 혼합 혈통이,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문명을 즉시 꽃피웠다.
2007 URKA 79:3.1 인도를 정복한 안드-사람과 원주민 혈통의 결합은 결국에는 드라비다인이라 불린 혼합된 민족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다 초기의 그리고 보다 순수한 드라비다인들은 문화적 성취를 위한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안드-사람 유전자가 점점 더 희박해짐에 따라 계속 약화(弱化)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12,000년 전에 인도 문명을 싹트게 하였다. 그러나 아담의 피가 이렇게 적은 양만이 주입되었지만, 사회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괄목할만한 촉진을 가져왔다. 이렇게 혼합된 혈통은 그 당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문명을 즉각적으로 꽃피웠다.
2025 79:3.1 인도를 정복한 안드 족속과 토종 핏줄의 혼합은 결국 드라비다인이라 부른 그 혼합된 민족을 낳았다. 초기에 있었고 더 순수했던 드라비다인은 문화적으로 성취할 큰 능력을 소유했는데, 이 능력은 그들의 안드 족 유산(遺産)이 점진적으로 묽어짐에 따라서 줄곧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1만 2천 년 전에 인도의 싹트는 문명을 망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적은 양의 아담의 피를 주입한 것조차 사회의 발전을 두드러지게 가속하였다. 이 복합 혈통은 대번에 그때 땅에서 가장 다능한 문명을 낳았다.
1955 79:3.2 Not long after conquering India, the Dravidian Andites lost their racial and cultural contact with Mesopotamia, but the later opening up of the sea lanes and the caravan routes re-established these connections; and at no time within the last ten thousand years has India ever been entirely out of touch with Mesopotamia on the west and China to the east, although the mountain barriers greatly favored western intercourse.
2000 79:3.2 인도를 정복한 뒤에 얼마 안 되어, 드라비다 안드 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종족 및 문화의 접촉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뱃길과 카라반 길이 열리자 이 연락이 다시 회복되었다. 지난 1만 년 안에 어느 때도 인도가 서쪽으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동쪽으로 중국과 완전히 접촉을 잃은 적이 없다. 하지만 산의 장벽은 서쪽의 교류를 크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2001 CM 79:3.2 인도를 정복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드라비다인 안드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인종적 및 문화적으로 접촉하지 못하게 됐지만, 나중에 뱃길과 대상{隊商} 행로가 개통되자 이 관계가 회복됐고, 지난 1만 년 동안, 서쪽으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동쪽으로 중국과 관계가 한결같이 단절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산이 가로막았기 때문에 서쪽과의 교류가 훨씬 유리했다.
2007 URKA 79:3.2 인도가 정복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드라비다의 안드-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와의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접촉이 끊어졌지만, 나중에 개통된 해안 도로와 카라반 행로가 이 관계를 다시 회복시켰고, 산악지대 때문에 서쪽과의 교통이 훨씬 활발하기는 하였지만, 지난 10,000년 동안 서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와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단절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25 79:3.2 인도를 정복한 뒤에 얼마 안 되어, 드라비다 안드 족속은 메소포타미아와 종족 및 문화의 접촉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뱃길과 카라반 길이 열리자 이 연락이 다시 회복되었다. 지난 1만 년 안에 어느 때도 인도가 서쪽으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동쪽으로 중국과 완전히 접촉을 잃은 적이 없다. 하지만 산의 장벽은 서쪽의 교류를 크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1955 79:3.3 The superior culture and religious leanings of the peoples of India date from the early times of Dravidian domination and are due, in part, to the fact that so many of the Sethite priesthood entered India, both in the earlier Andite and in the later Aryan invasions. The thread of monotheism running through the religious history of India thus stems from the teachings of the Adamites in the second garden.
2000 79:3.3 인도 종족들의 우수한 문화와 종교적 경향은 드라비다인이 지배하던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일부는 일찍이 있었던 안드 족속의 침공과 나중에 아리아인의 침공을 통하여 셋 사람 사제들이 아주 많이 인도로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도의 종교 역사를 통하여 이어지는 일신교의 실마리는 이처럼 둘째 동산에서 아담 족속의 가르침으로부터 뻗어나온다.
2001 CM 79:3.3 인도 사람들의 우수한 문화적 및 종교적 성향은, 드라비다인이 지배한 초기 시대부터 시작됐으며, 일부는 일찍이 있었던 안드족속과 후대에 아리아인의 침입을 통해서, 아주 많은 셋족속 사제가 인도에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도의 종교 역사 내내 이어지던 일신교의 가느다란 빛은, 두 번째 동산의 아담족속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렇게 유래됐다.
2007 URKA 79:3.3 인도에 있는 민족들의 우월한 문화적 종교적 성향들은 드라비다인이 지배한 초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초기 안드-사람 침입과 후대의 아리아인 침입의 두 차례에 걸쳐, 수많은 셋 족속 사제들이 인도에 들어왔다는 사실에도 부분적으로 기인된다. 인도의 종교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유일신 론의 가느다란 빛은 두 번째 동산의 아담-사람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렇게 유래되었다.
2025 79:3.3 인도 종족들의 우수한 문화와 종교적 경향은 드라비다인이 지배하던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일부는 일찍이 있었던 안드 족속의 침공과 나중에 아리아인의 침공을 통하여 셋 사람 사제들이 아주 많이 인도로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인도의 종교 역사를 통하여 이어지는 일신교의 실마리는 이처럼 둘째 동산에서 아담 족속의 가르침으로부터 뻗어 나온다.
1955 79:3.4 As early as 16,000 B.C. a company of one hundred Sethite priests entered India and very nearly achieved the religious conquest of the western half of that polyglot people. But their religion did not persist. Within five thousand years their doctrines of the Paradise Trinity had degenerated into the triune symbol of the fire god.
2000 79:3.4 기원전 16,000년부터 일찍 셋 사람 사제 1백 명의 일행이 인도로 들어가서, 다국어를 쓰는 그 민족의 서쪽 절반에서 종교적 정복을 거의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는 오래 가지 않았다. 5천 년 안에 그들이 지녔던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교리는 불의 신(神)의 삼자일체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2001 CM 79:3.4 기원전 16,000년경에, 이미 100명에 이르는 셋족속 사제 일행이 인도에 들어갔고,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그 민족의 절반에 해당하는 서쪽 지역에서 종교적 정복을 거의 성취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가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5천 년 이내에, 낙원 삼위일체에 관한 그들의 교리는 삼자일체 화신{火神} 상징으로 퇴화됐다.
2007 URKA 79:3.4 이미 기원 전 16,000년경에 100명에 이르는 셋 자손 사제 무리가 인도에 들어왔으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그 민족의 절반에 해당하는 서쪽 지역에 대한 종교적 정복을 거의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는 계속 유지되지 않았다. 5,000년이 지나기 전에,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에 관한 그들의 교리들은 화신(火神)에 대한 삼원적 상징으로 퇴화되었다.
1955 79:3.5 But for more than seven thousand years, down to the end of the Andite migrations, the religious status of the inhabitants of India was far above that of the world at large. During these times India bid fair to produce the leading cultural, religious, philosophic, and commercial civilization of the world. And but for the complete submergence of the Andites by the peoples of the south, this destiny would probably have been realized.
2000 79:3.5 그러나 안드 족속의 이동이 끝나기까지 7천 년이 넘도록 인도 거주자의 종교 상태는 세계 전체보다 훨씬 높았다. 이 시절에 인도는 세계에서 선두를 이끄는 문화ㆍ종교ㆍ철학ㆍ상업을 가진 문명을 낳을 가망이 있었다. 그리고 안드 족속이 남쪽 사람들 밑에 완전히 파묻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이 운명이 아마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2001 CM 79:3.5 그러나 안드족속의 이주가 끝나기까지 7천 년 이상, 인도 주민의 종교 상태는 세계 대부분의 상태보다 훨씬 높았다. 인도는, 이 시기 동안 세계에서 선도적이었던 문화와 종교와 철학 및 상업 문명을 창출할 가능성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안드족속이 남쪽의 민족들 밑에 전면적으로 파묻혀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런 운명이 아마 실현됐을 것이다.
2007 URKA 79:3.5 안드-사람 이주가 끝나기까지, 7,000년 이상 동안, 인도에 사는 주민들의 종교적 지위는 세계 대부분의 상태보다 훨씬 높았다. 이 기간 동안, 인도는 지도적인 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철학적, 상업적 문명을 산출할 가능성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남쪽에 있는 민족들에 의한 안드-사람들의 완벽한 침몰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운명은 아마도 실현되었을 것이다.
2025 79:3.5 그러나 안드 족속의 이동이 끝나기까지 7천 년이 넘도록 인도 거주자의 종교 상태는 세계 전체보다 훨씬 높았다. 이 시절에 인도는 세계에서 선두를 이끄는 문화ㆍ종교ㆍ철학ㆍ상업을 가진 문명을 낳을 가망이 있었다. 그리고 안드 족속이 남쪽 사람들 밑에 완전히 파묻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이 운명이 아마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1955 79:3.6 The Dravidian centers of culture were located in the river valleys, principally of the Indus and Ganges, and in the Deccan along the three great rivers flowing through the Eastern Ghats to the sea. The settlements along the seacoast of the Western Ghats owed their prominence to maritime relationships with Sumeria.
2000 79:3.6 드라비다인 문화의 중심은 강 유역에서, 주로 인더스 강과 간지스 강에서, 그리고 동 갓츠를 통해서 바다로 흐르는 큰 세 강을 따라서, 데칸에서 자리를 잡았다. 서 갓츠의 바닷가를 따라서 있던 촌락들의 탁월성은 바다로 수메르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2001 CM 79:3.6 드라비다 문화 중심지들은 강 유역에 자리잡았는데, 대개 인더스와 간지스 지역이었으며, 데칸에서는 3개의 큰 강물이 동{東} 가트 지역을 흘러서 바다로 들어갔다. 서{西} 가트 해변을 따라서 형성된 정착지들의 탁월성은, 바다를 통해서 수메르와 관계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7 URKA 79:3.6 드라비다의 문화적 중심지들은 강이 있는 계곡들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대개 인더스와 갠지스 지역이었으며, 데칸에서는 3개의 큰 강물이 동부 가트 지역을 흘러서 바다로 들어갔다. 서부 가트의 해변을 따라 형성된 정착지들은 수메르와 해상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2025 79:3.6 드라비다인 문화의 중심은 강 유역에서, 주로 인더스 강과 간지스 강에서, 그리고 동 갓츠를 통해서 바다로 흐르는 큰 세 강을 따라서, 데칸에서 자리를 잡았다. 서 갓츠의 바닷가를 따라서 있던 촌락들의 탁월성은 바다로 수메르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1955 79:3.7 The Dravidians were among the earliest peoples to build cities and to engage in an extensive export and import business, both by land and sea. By 7000 B.C. camel trains were making regular trips to distant Mesopotamia; Dravidian shipping was pushing coastwise across the Arabian Sea to the Sumerian cities of the Persian Gulf and was venturing on the waters of the Bay of Bengal as far as the East Indies. An alphabet, together with the art of writing, was imported from Sumeria by these seafarers and merchants.
2000 79:3.7 드라비다인은 가장 일찍 도시를 세우고, 육지와 바다로 널리 수출입 사업에 종사한 민족들에 속한다. 기원전 7000년이 되어 낙타의 일행들이 먼 메소포타미아까지 정기적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드라비다인의 해상 운송은 아라비아 해를 가로질러 페르시아 만에 있는 수메르인의 여러 도시까지 해안을 따라 밀고 들어갔으며, 벵골 만의 바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동인도 제도(諸島)까지 멀리 갔다. 글쓰는 기술과 함께, 알파벳이 이 뱃사람과 상인들을 통해서 수메르에서 수입되었다.
2001 CM 79:3.7 드라비다인은, 가장 일찍 도시를 건설하고, 육상{陸上}과 해상{海上}의 광대한 수출입 업무에 종사한 민족에 속했다. 기원전 7000년경에 낙타 행렬이 메소포타미아의 먼 지역까지 정기적으로 여행했으며;드라비다의 선박은 해안을 따라 활동했는데, 아라비아 해를 지나서 페르시아 만의 수메르 도시들까지 이르렀고, 해상에서 모험을 감행하여 벵골 만을 지나 동인도 제도까지 이르렀다. 이 해상 여행자와 상인들을 통해서, 글 쓰는 기술과 함께 알파벳이 수메르에서 수입됐다.
2007 URKA 79:3.7 드라비다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육상과 해상의 광대한 수출입 업무에 종사한 최초의 민족들에 속하였다. 기원 전 7,000년경에는 낙타 행렬이 메소포타미아의 먼 지역까지 정기적으로 여행하였다; 드라비다의 선박은 해안을 따라 활동하였는데, 아라비아 해를 지나 페르시아 만에 있는 수메르의 도시들까지 이르렀으며, 해상에서 모험을 감행하여 벵갈 만(灣)을 지나 동인도 제도(諸島)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해상 여행자들과 상인들에 의해서, 알파벳과 글 쓰는 기술이 수메르에서 수입되었다.
2025 79:3.7 드라비다인은 가장 일찍 도시를 세우고, 육지와 바다로 널리 수출입 사업에 종사한 민족들에 속한다. 기원전 7000년이 되어 낙타의 일행들이 먼 메소포타미아까지 정기적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드라비다인의 해상 운송은 아라비아 해를 가로질러 페르시아 만에 있는 수메르인의 여러 도시까지 해안을 따라 밀고 들어갔으며, 벵골 만의 바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동인도 제도(諸島)까지 멀리 갔다. 글 쓰는 기술과 함께, 알파벳이 이 뱃사람과 상인들을 통해서 수메르에서 수입되었다.
1955 79:3.8 These commercial relationships greatly contributed to the further diversification of a cosmopolitan culture, resulting in the early appearance of many of the refinements and even luxuries of urban life. When the later appearing Aryans entered India, they did not recognize in the Dravidians their Andite cousins submerged in the Sangik races, but they did find a well-advanced civilization. Despite biologic limitations, the Dravidians founded a superior civilization. It was well diffused throughout all India and has survived on down to modern times in the Deccan.
2000 79:3.8 이 상업 관계는 국제적 문화를 더욱 다양화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도시 생활의 많은 세련된 물건이, 그리고 사치품도, 일찍부터 나타나게 만들었다. 나중에 나타나는 아리아인이 인도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드라비다인의 얼굴에서 산긱 종족들 안에 파묻힌 사촌(四寸)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상당히 진보된 문명을 발견하였다. 생물학적 한계가 있었어도 드라비다인은 우수한 문명을 세웠다. 그것은 온 인도 전역에 걸쳐서 흩어졌고, 데칸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았다.
2001 CM 79:3.8 이런 상업 관계는 국제적 문화를 더 다양화시키는 데 기여했고, 도시 생활의 많은 진보와, 심지어 사치품이 일찍부터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나타난 아리아인이 인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안드족속 동족이 상익 인종에 스며들었던 것을 드라비다인의 모습에서 인식하지 못했으나, 잘-증진된 문명은 발견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 제한조건에도, 드라비다인은 우수한 문명을 건설했다. 이 문명은 인도 전역으로 잘 확산됐고, 데칸 지역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돼왔다.
2007 URKA 79:3.8 이러한 상업적인 관계들은 세계적인 문화를 더욱 다양화 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도시 생활의 많은 진보와 심지어는 사치품들이 일찍부터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나타난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안드-사람 동족들이 산긱 종족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을 드라비다 사람들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잘 발달된 문명은 발견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드라비다 사람들은 우월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그것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데칸 지역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2025 79:3.8 이 상업 관계는 국제적 문화를 더욱 다양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도시 생활의 많은 세련된 물건이, 그리고 사치품도, 일찍부터 나타나게 만들었다. 나중에 나타나는 아리아인이 인도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드라비다인의 얼굴에서 산긱 종족들 안에 파묻힌 사촌(四寸)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상당히 진보된 문명을 발견하였다. 생물학적 한계가 있었어도 드라비다인은 우수한 문명을 세웠다. 그것은 온 인도 전역에 걸쳐서 흩어졌고, 데칸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았다.
4. THE ARYAN INVASION OF INDIA
4. 아리아인의 인도 침공
4. 아리아인의 인도 침입
4. 아리아족의 인도 침입
4. 아리아인의 인도 침공
1955 79:4.1 The second Andite penetration of India was the Aryan invasion during a period of almost five hundred years in the middle of the third millennium before Christ. This migration marked the terminal exodus of the Andites from their homelands in Turkestan.
2000 79:4.1 안드 족속의 두 번째 인도 침투는 그리스도 이전 제3 천년의 중간에, 거의 5백 년 동안에 벌어진 아리아인의 침공이었다. 이 민족 이동은 안드 족속이 투르키스탄의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것을 가리킨다.
2001 CM 79:4.1 안드족속의 두 번째 인도 침투는, 기원전 셋째 천년 중간쯤에 거의 500년 동안 일어난 아리아인 침입이었다. 이 이주{移住}는, 안드족속의 고향 투르케스탄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것을 가리킨다.
2007 URKA 79:4.1 안드-사람의 두 번째 인도 침투는, 그리스도 이전(以前) 2,500년 부근의 거의 500년 기간 동안에 일어난 아리아인 침입이었다. 이 이주(移住)는 안드-사람들의 고향인 투르케스탄으로부터 마지막 탈출을 이룩하였다.
2025 79:4.1 안드 족속의 두 번째 인도 침투는 그리스도 이전 제3 천년의 중간에, 거의 5백 년 동안에 벌어진 아리아인의 침공이었다. 이 민족 이동은 안드 족속이 투르키스탄의 고향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것을 가리킨다.
1955 79:4.2 The early Aryan centers were scattered over the northern half of India, notably in the northwest. These invaders never completed the conquest of the country and subsequently met their undoing in this neglect since their lesser numbers made them vulnerable to absorption by the Dravidians of the south, who subsequently overran the entire peninsula except the Himalayan provinces.
2000 79:4.2 초기 아리아인의 중심들은 인도의 북쪽 절반에, 특히 북서쪽에 흩어져 있었다. 이 침공자들은 그 나라의 정복을 결코 끝내지 않았고, 나중에 이것을 소홀히 여겨서 파멸을 만났는데, 이는 그들의 적은 수가 남쪽에 있는 드라비다인에게 흡수되도록 취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 드라비다인은 나중에 히말라야 지방을 제외하고 반도(半島) 전체에 들끓었다.
2001 CM 79:4.2 초기 아리아인 중심지는 인도 북쪽 지역 절반에 산재해있었는데, 북서부에서 두드러졌다. 이 침입자들은 그 나라 정복을 완료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이것을 소홀히 여김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게 됐는데, 히말라야 지방을 제외한 반도 전체를 휩쓸게 됐던 남부의 드라비다인에게 흡수될 정도로, 그들의 수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2007 URKA 79:4.2 초기의 아리아인 중심지들은 인도의 북쪽 지역 절반 부분에 산재해 있었는데, 특별히 북서부에 많았다. 이 침입자들은 그 나라를 완벽하게 정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나중에 히말라야 지방을 제외한 전체의 반도를 휩쓸게 되었던 남부의 드라비다 사람들에 의해서 흡수될 정도로 그들의 숫자가 미약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러한 무관심속에서 파멸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5 79:4.2 초기 아리아인의 중심들은 인도의 북쪽 절반에, 특히 북서쪽에 흩어져 있었다. 이 침공자들은 그 나라의 정복을 결코 끝내지 않았고, 나중에 이것을 소홀히 여겨서 파멸을 만났는데, 이는 그들의 적은 수가 남쪽에 있는 드라비다인에게 흡수되도록 취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 드라비다인은 나중에 히말라야 지방을 제외하고 반도(半島) 전체에 들끓었다.
1955 79:4.3 The Aryans made very little racial impression on India except in the northern provinces. In the Deccan their influence was cultural and religious more than racial. The greater persistence of the so-called Aryan blood in northern India is not only due to their presence in these regions in greater numbers but also because they were reinforced by later conquerors, traders, and missionaries. Right on down to the first century before Christ there was a continuous infiltration of Aryan blood into the Punjab, the last influx being attendant upon the campaigns of the Hellenistic peoples.
2000 79:4.3 아리아인은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 인도에서 종족 면에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데칸에서 그들의 영향은 종족보다 문화ㆍ종교에 끼친 것이었다. 인도 북부에서 이른바 아리아인 피가 더 많이 지속한 것은 이 지역에 그들이 큰 무리로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나중에 정복자ㆍ상인ㆍ선교사들로 인하여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이전 바로 1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아리아인의 피가 펀잡으로 줄곧 스며들었고, 마지막 유입(流入)은 헬라 민족의 전투를 뒤따랐다.
2001 CM 79:4.3 아리아인은 북쪽 지방들을 제외하고는 인도에서 인종적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데칸에서 그들은 인종보다 문화와 종교에 영향을 끼쳤다. 북부 인도의 소위 아리아인 핏줄이 더 많이 지속된 것은, 이 지역에서 그들의 현존 인구가 훨씬 많았던 것뿐만 아니라, 정복자와 상인과 선교사들로 인해서 그들이 나중에 보강됐기 때문이다. 바로 기원전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리아인 핏줄의 계속적인 침투가 펀잡 지방으로 이뤄졌는데, 마지막 유입은 헬라 민족들의 군사행동에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2007 URKA 79:4.3 아리아인들은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는 인도에서 인종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였다. 데칸에서의 그들의 영향은 인종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었다. 북부 인도의 소위 아리아인 혈통이라 불리는 아주 강한 인내심은, 이 지역에서 그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던 현존에 기인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후대의 정복자들과 상인들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보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이전 100년경에 이르기까지, 아리아인 혈통의 계속적인 침투가 펀잡 지방으로 들어갔는데, 마지막 유입은 헬라 민족들의 출정에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2025 79:4.3 아리아인은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 인도에서 종족 면에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데칸에서 그들의 영향은 종족보다 문화ㆍ종교에 끼친 것이었다. 인도 북부에서 이른바 아리아인 피가 더 많이 지속한 것은 이 지역에 그들이 큰 무리로 있었을 뿐 아니라 또한 나중에 정복자ㆍ상인ㆍ선교사들로 인하여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이전 바로 1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아리아인의 피가 펀잡으로 줄곧 스며들었고, 마지막 유입(流入)은 헬라 민족의 전투를 뒤따랐다.
1955 79:4.4 On the Gangetic plain Aryan and Dravidian eventually mingled to produce a high culture, and this center was later reinforced by contributions from the northeast, coming from China.
2000 79:4.4 간지스 강 평야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은 결국에 섞여서 높은 문화를 일으켰고, 이 중심은 북동쪽으로부터, 중국이 기여(寄與)한 것으로 인하여 나중에 강화되었다.
2001 CM 79:4.4 간지스 강 평원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이 결국 섞여서 고상한 문화를 창출했고, 이 중심지는, 중국이 기여{寄與}한 것으로 인해 나중에 북동쪽으로부터 보강됐다.
2007 URKA 79:4.4 갠지스 평원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이 결국에는 혼합되어서 하나의 높은 문화를 창출하였으며, 이 중심지는 나중에 중국으로부터 온 북동쪽으로부터의 기여에 의해서 보강되었다.
2025 79:4.4 간지스 강 평야에서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은 결국에 섞여서 높은 문화를 일으켰고, 이 중심은 북동쪽으로부터, 중국이 기여(寄與)한 것으로 인하여 나중에 강화되었다.
1955 79:4.5 In India many types of social organizations flourished from time to time, from the semidemocratic systems of the Aryans to despotic and monarchial forms of government. But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 of society was the persistence of the great social castes that were instituted by the Aryans in an effort to perpetuate racial identity. This elaborate caste system has been preserved on down to the present time.
2000 79:4.5 인도에는, 얼마큼 민주적인 아리아인 체계로부터 전제(專制) 형태와 군주 형태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사회 조직이 때때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모습은 큰 사회 카스트가 지속된 것이었는데, 종족의 신분을 지속하려는 노력으로 아리아인이 이를 시작하였다. 정교한 이 카스트 제도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다.
2001 CM 79:4.5 인도에서는, 민주주의 비슷한 아리아인체제로부터 전제적이고 군주적인 정부 형태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형의 사회 조직이 때때로 번성했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독자적인 특색은, 인종의 주체성을 영존시키려는 노력으로 아리아인이 설립한, 거대한 사회 신분계층을 끈질기게 고수한 것이었다. 이런 정교한 신분계층 체계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2007 URKA 79:4.5 인도에서는, 아리아인들의 반(半)민주주의 체제로부터 전제적이고 군주적인 정부 형태에 이르는, 여러 유형의 사회 조직들이 때때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가장 독특한 사회적 특징은, 종족의 정체성을 영존시키고자하는 노력으로 아리아인들에 의해 설립된 위대한 사회적 특권계급을 끈질기게 고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교한 특권계급 체계는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다.
2025 79:4.5 인도에는, 얼마큼 민주적인 아리아인 체계로부터 전제(專制) 형태와 군주 형태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사회 조직이 때때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모습은 큰 사회 카스트가 지속된 것이었는데, 종족의 신분을 지속하려는 노력으로 아리아인이 이를 시작하였다. 정교한 이 카스트 제도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다.
1955 79:4.6 Of the four great castes, all but the first were established in the futile effort to prevent racial amalgamation of the Aryan conquerors with their inferior subjects. But the premier caste, the teacher-priests, stems from the Sethites; the Brahmans of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are the lineal cultural descendants of the priests of the second garden, albeit their teachings differ greatly from those of their illustrious predecessors.
2000 79:4.6 4대 카스트 가운데서 첫째를 빼고 모두가, 정복자인 아리아인이 열등한 백성과 피가 섞이는 것을 막으려는 헛된 노력에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상급의 카스트, 곧 선생인 사제들은, 셋 족속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스도 뒤 20세기의 브라만들은 둘째 동산의 사제들로부터 직계로 내려온 문화적 후손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화려한 그 선조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다.
2001 CM 79:4.6 네 개의 큰 신분계층 가운데, 첫째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는, 아리아인 정복자들이 자신보다 열등한 백성과 인종적으로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하찮은 노력으로 인해 설립됐다. 그러나 첫 신분계층인 선생-사제는 셋족속에서 유래됐으며;기원후 20세기의 브라만은 두 번째 동산의 사제들로부터 직계로 내려온 문화적 후손이지만, 그 교훈은 그들의 저명한 조상의 교훈과 크게 다르다.
2007 URKA 79:4.6 네 개의 위대한 특권계급들 중에서, 첫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는 아리아인 정복자들이 자신들보다 열등한 백성들과 인종적으로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하찮은 노력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러나 첫 번째 특권계급인 선생-사제 계급은 셋-사람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의 브라만 계급은, 비록 그들의 가르침이 그들의 저명한 조상들의 것과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동산의 사제들의 문화적 직계 후손들이다.
2025 79:4.6 4대 카스트 가운데서 첫째를 빼고 모두가, 정복자인 아리아인이 열등한 백성과 피가 섞이는 것을 막으려는 헛된 노력에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상급의 카스트, 곧 선생인 사제들은, 셋 족속에서 유래한다. 그리스도 뒤 20세기의 브라만들은 둘째 동산의 사제들로부터 직계로 내려온 문화적 후손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은 화려한 그 선조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다.
1955 79:4.7 When the Aryans entered India, they brought with them their concepts of Deity as they had been preserved in the lingering traditions of the religion of the second garden. But the Brahman priests were never able to withstand the pagan momentum built up by the sudden contact with the inferior religions of the Deccan after the racial obliteration of the Aryans. Thus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tion fell into the bondage of the enslaving superstitions of inferior religions; and so it was that India failed to produce the high civilization which had been foreshadowed in earlier times.
2000 79:4.7 아리아인이 인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둘째 동산의 종교에서 남아 있던 전통에 간직된 그들의 신 개념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리아인이 민족으로서 없어진 뒤에, 브라만 사제들은 데칸의 열등한 종교들과 갑자기 접촉하여 생긴 이교도의 여세를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이처럼 인구의 대다수가 열등한 종교들의 미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미신의 속박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서 인도는 옛 시절에 전조가 보였던 높은 문명을 일으키지 못했다.
2001 CM 79:4.7 아리아인이 인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두 번째 동산에 있었던 종교의 남아있는 전통에 간직돼있는 그대로, 신격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브라만 사제들은, 아리아인이 소멸된 후에 데칸의 열등한 종교와 갑작스럽게 접촉함으로써 생긴 이교적 타성{異敎的 惰性}을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거의 대부분의 주민은, 사람을 미신의 노예가 되게 하는 열등한 종교들의 속박으로 굴러 떨어졌으며;따라서 인도는 초기 시대에 징조를 보여 왔던 고상한 문명을 일으키지 못했다.
2007 URKA 79:4.7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두 번째 동산에 있었던 종교의 남아있는 전통들을 보존해 왔던 그대로 신(神)에 대한 자기들의 개념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브라만 사제들은, 아리아인들의 멸종 이후에 데칸의 열등한 종교와 갑작스럽게 접촉함으로써 세워진 다신교적(多神敎的) 타성을 전혀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한 종교들의 노예화시키는 미신들의 굴레에 속박되고 말았다; 그것으로 인하여 인도는 초기 시대에 징조를 보여 왔던 고차원의 문명을 창출하는 데 실패하였다.
2025 79:4.7 아리아인이 인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둘째 동산의 종교에서 남아 있던 전통에 간직된 그들의 신 개념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리아인이 민족으로서 없어진 뒤에, 브라만 사제들은 데칸의 열등한 종교들과 갑자기 접촉하여 생긴 이교도의 여세를 결코 막아낼 수 없었다. 이처럼 인구의 대다수가 열등한 종교들의 미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미신의 속박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서 인도는 옛 시절에 전조가 보였던 높은 문명을 일으키지 못했다.
1955 79:4.8 The spiritual awakening of the sixth century before Christ did not persist in India, having died out even before the Mohammedan invasion. But someday a greater Gautama may arise to lead all India in the search for the living God, and then the world will observe the fruition of the cultural potentialities of a versatile people so long comatose under the benumbing influence of an unprogressing spiritual vision.
2000 79:4.8 그리스도 이전 6세기에 일어난 영적 각성은 인도에서 버티지 못했고, 마호메트 교도의 침공이 있기 전에 망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에 온 인도를 이끌려고 언젠가 더 위대한 고타마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리고 나서 사람을 마비시키는 영향, 진보하지 않는 영적 시력(視力)의 영향 밑에서 아주 오랫동안 혼미 상태에 빠졌던, 다능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이 열매 맺는 것을 세상이 지켜볼 것이다.
2001 CM 79:4.8 기원전 6세기의 영적 각성이 인도에서는 유지되지 못했고, 모하메드교가 침투하기 전에 이미 소멸됐다. 그러나 언젠가는 더 위대한 고타마가 나타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도록 모든 인도 사람을 인도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온 세상 사람은, 진보하지 않는 영적 식견의 무감각한 영향력 아래서 아주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던, 다재다능한 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력이 열매 맺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2007 URKA 79:4.8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영적 각성이 인도에서는 유지되지 못하였으며, 이슬람교 침투 전에 이미 소멸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더 위대한 고타마가 나타나 모든 인도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찾도록 인도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은 보수적인 영적 통찰력의 무감각한 영향력 밑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던 다재다능한 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에 대한 결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2025 79:4.8 그리스도 이전 6세기에 일어난 영적 각성은 인도에서 버티지 못했고, 마호메트 교도의 침공이 있기 전에 망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에 온 인도를 이끌려고 언젠가 더 위대한 고타마가 나타날지 모른다. 다음에 사람을 마비시키는 영향, 진보하지 않는 영적 시력(視力)의 영향 밑에서 아주 오랫동안 혼미 상태에 빠졌던, 다능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이 열매 맺는 것을 세상이 지켜볼 것이다.
1955 79:4.9 Culture does rest on a biologic foundation, but caste alone could not perpetuate the Aryan culture, for religion, true religion, is the indispensable source of that higher energy which drives men to establish a superior civilization based on human brotherhood.
2000 79:4.9 문화는 생물학적 기초 위에 세워지지만, 카스트만 가지고 아리아인의 문화를 지킬 수 없었다. 이는 종교, 참 종교가, 인간의 형제 정신에 기초를 둔 우수한 문명을 세우도록 사람을 재촉하는 더 높은 에너지의 필수 근원이기 때문이다.
2001 CM 79:4.9 생물학적 기초 위에 문화가 얹혀있었지만, 계층만으로는 아리아인 문화를 존속시킬 수 없었는데, 이는 종교 곧 참된 종교가, 인간의 형제관계에 기초하는 우수한 문명을 설립하도록 사람들을 재촉하는, 더 높은 에너지의 필수 근원이기 때문이다.
2007 URKA 79:4.9 문화는 생물학적인 기초 위에서 존재하지만, 특권계급만으로는 아리아인 문화를 영속시킬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종교, 참된 종교는 인간 형제신분에 기초를 둔 우월한 문명을 설립하도록 사람들을 내모는 높은 에너지의 필요 불가결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2025 79:4.9 문화는 생물학적 기초 위에 세워지지만, 카스트만 가지고 아리아인의 문화를 지킬 수 없었다. 이는 종교, 참 종교가, 인간의 형제 정신에 기초를 둔 우수한 문명을 세우도록 사람을 재촉하는 더 높은 에너지의 필수 근원이기 때문이다.
5. RED MAN AND YELLOW MAN
5. 홍인과 황인
5. 홍색인과 황색인
5.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
5. 홍인과 황인
1955 79:5.1 While the story of India is that of Andite conquest and eventual submergence in the older evolutionary peoples, the narrative of eastern Asia is more properly that of the primary Sangiks, particularly the red man and the yellow man. These two races largely escaped that admixture with the debased Neanderthal strain which so greatly retarded the blue man in Europe, thus preserving the superior potential of the primary Sangik type.
2000 79:5.1 인도에 관한 이야기는 안드 족속이 더 오래 된 진화 민족들을 정복하고 궁극에 그 속에 파묻힌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 아시아의 이야기는 1차 산긱, 특히 홍인과 황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온당하다. 이 두 민족은, 유럽에서 청인들을 아주 크게 뒤처지게 만든, 저하된 네안데르탈인의 피와 섞이는 것을 대체로 피했으며, 따라서 1차 산긱 부류의 우수한 잠재성을 간직하였다.
2001 CM 79:5.1 인도에 관한 이야기는, 더 오래된 진화 민족들을 안드족속이 정복하고 결국에는 그 속으로 침몰된 것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부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1차 상익, 특히 홍색인 및 황색인과 관계된다. 이 두 인종은, 유럽에서 청색인들을 아주 크게 뒤떨어지게 만든 저질{低質}의 네안데르탈 혈통과 섞이는 것을 거의 겪지 않았고, 그리하여 1차 상익 유형의 우수한 잠재력을 간직했다.
2007 URKA 79:5.1 인도에 관한 이야기가 안드-사람의 정복에 관한 것과 결국에는 보다 오래된 진화적 민족들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에 관계되는 반면, 동부 아시아에 관한 이야기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산긱들 특히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과 관계된다. 이 두 종족들은 청색 인종이 유럽에서 크게 발달이 뒤떨어진 저질(低質)의 네안데르탈 혈통과의 혼합을 대부분 겪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첫 번째 산긱 유형의 우월한 잠재를 간직하고 있었다.
2025 79:5.1 인도에 관한 이야기는 안드 족속이 더 오래 된 진화 민족들을 정복하고 궁극에 그 속에 파묻힌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 아시아의 이야기는 1차 산긱, 특히 홍인과 황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온당하다. 이 두 민족은, 유럽에서 청인들을 아주 크게 뒤처지게 만든, 저하된 네안데르탈인의 피와 섞이는 것을 대체로 피했으며, 따라서 1차 산긱 부류의 우수한 잠재성을 간직하였다.
1955 79:5.2 While the early Neanderthalers were spread out over the entire breadth of Eurasia, the eastern wing was the more contaminated with debased animal strains. These subhuman types were pushed south by the fifth glacier, the same ice sheet which so long blocked Sangik migration into eastern Asia. And when the red man moved northeast around the highlands of India, he found northeastern Asia free from these subhuman types. The tribal organization of the red races was formed earlier than that of any other peoples, and they were the first to migrate from the central Asian focus of the Sangiks. The inferior Neanderthal strains were destroyed or driven off the mainland by the later migrating yellow tribes. But the red man had reigned supreme in eastern Asia for almost one hundred thousand years before the yellow tribes arrived.
2000 79:5.2 초기의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흩어졌고, 동쪽 날개는 저하된 동물 핏줄로 더욱 오염되었다. 이 인간 이하 부류들은 제5 빙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밀려났고, 이것은 동 아시아로 산긱의 민족 이동을 아주 오랫동안 막았던 바로 그 빙상(氷床)이었다. 홍인이 인도의 고지를 돌아서 북동쪽으로 움직였을 때, 홍인은 북동 아시아가 이 인간 이하의 부류가 없음을 발견했다. 홍인종의 부족 조직은 다른 어느 민족들보다 더 일찍 형성되었고, 그들은 산긱 종족들의 중앙 아시아 중심지로부터 처음으로 이주한 자이다. 열등한 네안데르탈인의 핏줄은 나중에 이동하는 황인 부족들에게 멸망되거나 본토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홍인은 황인 부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거의 10만 년 동안 동 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쳤다.
2001 CM 79:5.2 초기 네안데르탈인이 유라시아 전체에 퍼지는 동안, 동쪽 주변지역은 저질의 동물 핏줄로 더 많이 오염됐다. 이런 유인원 유형은 다섯 번째 빙하기에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는데, 바로 이 빙하 때문에 상익이 동부 아시아로 이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홍색인이 인도 고원지대를 돌아서 북동쪽으로 이동했을 때, 홍색인은 북동쪽 아시아에 이 유인원 유형의 사람이 없음을 발견했다. 홍인종의 부족 조직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먼저 형성됐고, 상익 인종의 중앙 아시아 중심지로부터 처음으로 이주한 인종이었다. 열등한 네안데르탈 종족은, 나중에 이주하는 황색 부족들에게 파멸되거나, 아니면 본토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홍색인은, 황색 부족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거의 10만 년 동안 동부 아시아를 호령했다.
2007 URKA 79:5.2 초기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유라시아 전체에 퍼진 반면, 동쪽 부분은 저질의 동물적 혈통들에 의해 더 많이 오염되었다. 이러한 유인원 유형의 사람들은 다섯 번째 빙하기에 남쪽으로 밀려 내려갔는데, 바로 그 빙하가 동부 아시아로 나아가는 산긱 이주를 가록 막았다. 그리고 적색 인종이 인도의 고원지대를 돌아 북동쪽으로 이동하였을 때, 그들은 북동쪽 아시아에 유인원 유형의 사람들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백색 인종들의 부족 체제는 다른 모든 민족들보다 먼저 형성되었으며, 산긱들의 중앙아시아 중심지로부터 이주한 최초의 인종이었다. 열등한 네안데르탈 혈통들은, 나중에 이주하는 황색 인종에 의해서 파멸되거나 아니면 본토로부터 쫓겨났다. 그러나 적색 인종은, 황색 인종의 부족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거의 100,000년 동안 동부 아시아를 차지하고 있었다.
2025 79:5.2 초기의 네안데르탈인은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흩어졌고, 동쪽 날개는 저하된 동물 핏줄로 더욱 오염되었다. 이 인간 이하 부류들은 제5 빙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밀려났고, 이것은 동 아시아로 산긱의 민족 이동을 아주 오랫동안 막았던 바로 그 빙상(氷床)이었다. 홍인이 인도의 고지를 돌아서 북동쪽으로 움직였을 때, 홍인은 북동 아시아가 이 인간 이하의 부류가 없음을 발견했다. 홍인종의 부족 조직은 다른 어느 민족들보다 더 일찍 형성되었고, 그들은 산긱 종족들의 중앙 아시아 중심지로부터 처음으로 이주한 자이다. 열등한 네안데르탈인의 핏줄은 나중에 이동하는 황인 부족들에게 멸망되거나 본토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홍인은 황인 부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거의 10만 년 동안 동 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쳤다.
1955 79:5.3 More than three hundred thousand years ago the main body of the yellow race entered China from the south as coastwise migrants. Each millennium they penetrated farther and farther inland, but they did not make contact with their migrating Tibetan brethren until comparatively recent times.
2000 79:5.3 30만 년도 더 전에 황인종의 주류가 남쪽에서 바닷가의 이주민으로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천년이 지날 때마다 그들은 내륙으로 멀리 멀리 침투했으나, 그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동하는 티벳 형제들과 접촉을 가지지 않았다.
2001 CM 79:5.3 30만 년 보다 더 전에, 황인종 본대{本隊}가 남쪽에서 해안을 따라 이주하여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1,000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티벳으로 이주한 형제들과는 비교적 최근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2007 URKA 79:5.3 300,000년 전에 황색 인종의 본대가 남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이주하여 중국으로 들어갔다. 매 1,000년마다 그들은 점점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티베트로 이주한 동족들과는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주치지 않았다.
2025 79:5.3 30만 년도 더 전에 황인종의 주류가 남쪽에서 바닷가의 이주민으로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천년이 지날 때마다 그들은 내륙으로 멀리멀리 침투했으나, 그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동하는 티벳 형제들과 접촉을 가지지 않았다.
1955 79:5.4 Growing population pressure caused the northward-moving yellow race to begin to push into the hunting grounds of the red man. This encroachment, coupled with natural racial antagonism, culminated in increasing hostilities, and thus began the crucial struggle for the fertile lands of farther Asia.
2000 79:5.4 증가하는 인구의 압력은 북쪽으로 움직이는 황인종으로 하여금 홍인의 사냥터 속으로 비로소 밀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종족 사이의 자연스런 적대 감정과 더불어 이 침략은 적대 행위가 증가되게 하였고, 이처럼 더 깊이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얻으려는 중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2001 CM 79:5.4 북쪽으로 이동하던 황인종은 인구가 과도하게 팽창함으로써 홍색인의 사냥터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침입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인종적 적개심과 함께, 최고 지점까지 호전성을 부추겼고, 이처럼 비옥한 아시아 땅을 더 널리 차지하기 위한 혹독한 투쟁이 시작됐다.
2007 URKA 79:5.4 인구 압력이 증가됨으로서 황색인종을 북쪽-방향으로 움직이게 하였고 적색 인종의 사냥터로 밀려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침해는 선천적인 종족간의 반목과 함께 호전성을 증가시켜 절정에 이르게 하였고, 그리하여 아시아의 더 먼 곳에 있는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한 혹독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2025 79:5.4 증가하는 인구의 압력은 북쪽으로 움직이는 황인종으로 하여금 홍인의 사냥터 속으로 비로소 밀고 들어가게 만들었다. 종족 사이의 자연스런 적대 감정과 더불어 이 침략은 적대 행위가 늘어나게 만들었고, 이처럼 더 깊이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얻으려는 중대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1955 79:5.5 The story of this agelong contest between the red and yellow races is an epic of Urantia history. For over two hundred thousand years these two superior races waged bitter and unremitting warfare. In the earlier struggles the red men were generally successful, their raiding parties spreading havoc among the yellow settlements. But the yellow man was an apt pupil in the art of warfare, and he early manifested a marked ability to live peaceably with his compatriots; the Chinese were the first to learn that in union there is strength. The red tribes continued their internecine conflicts, and presently they began to suffer repeated defeats at the aggressive hands of the relentless Chinese, who continued their inexorable march northward.
2000 79:5.5 홍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오랜 세월에 걸친 이 싸움은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이다. 20만 년이 넘도록 우수한 이 두 민족은 끊임없이 지독한 싸움을 벌였다. 초기의 투쟁에서는 홍인들이 대체로 성공했고, 그들의 침공하는 패거리들은 황인의 여러 촌락에 대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황인은 전투 기술을 배우는 똑똑한 생도였고, 친구들과 평화롭게 사는 두드러진 능력을 일찍부터 나타냈다. 중국인은 뭉친 가운데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홍인 부족들은 서로 죽이는 싸움을 계속하였고, 무자비한 중국인의 공격하는 손에 대번에 거듭 패배를 겪기 시작했으며, 중국인은 용서 없이 북쪽으로 행진을 계속했다.
2001 CM 79:5.5 홍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있었던 오랜 세월의 이 이야기는,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敍事詩}다. 이 두 우수한 인종은, 20만 년이 넘는 동안 더욱 냉혹하고 끈질긴 전쟁을 벌였다. 초기 투쟁에서는 대체로 홍색인이 우세해서, 습격을 담당하는 그들의 무리는 황색인 정착지를 황폐화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황색인은 전쟁 기술을 배우는 데 무척 기민했고, 동포와 평화롭게 사는 상당한 역량을 일찍부터 나타냈는데, 중국인은 합동하는 것에 힘이 있음을 처음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홍색 부족들은 내부 투쟁을 계속했으며, 이윽고 냉혹한 중국인의 적극적인 공격에 계속 패배를 맛보기 시작했고, 중국인은 사정없이 북쪽으로 계속 진군했다.
2007 URKA 79:5.5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 사이에 있었던 오랜 세월 동안의 이 이야기는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와도 같다. 2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들 두 우월한 인종들은 더욱 격심하고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초기의 투쟁에서는 대체적으로 적색 인종이 우세하여, 습격을 담당하는 그들의 무리들은 황색 인종의 정착지를 황폐화시키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황색 인종은 전쟁의 기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매우 기민하였으며, 동포들과 평화롭게 사는 상당한 능력을 일찍부터 현시되어 있었는데, 연합 안에 힘이 있음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중국인들이었다. 적색 부족들은 내부적인 투쟁을 계속하였으며, 이윽고 그들은 북쪽을 향한 자신들의 진군을 가차 없이 계속한 냉혹한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손길에서 반복되는 패배로 고통을 맛보기 시작했다.
2025 79:5.5 홍인종과 황인종 사이에 오랜 세월에 걸친 이 싸움은 유란시아 역사에서 하나의 서사시이다. 20만 년이 넘도록 우수한 이 두 민족은 끊임없이 지독한 싸움을 벌였다. 초기의 투쟁에서는 홍인들이 대체로 성공했고, 그들의 침공하는 패거리들은 황인의 여러 촌락에 대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황인은 전투 기술을 배우는 똑똑한 생도였고, 친구들과 평화롭게 사는 두드러진 능력을 일찍부터 나타냈다. 중국인은 뭉친 가운데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홍인 부족들은 서로 죽이는 싸움을 계속하였고, 무자비한 중국인의 공격하는 손에 대번에 거듭 패배를 겪기 시작했으며, 중국인은 용서 없이 북쪽으로 행진을 계속했다.
1955 79:5.6 One hundred thousand years ago the decimated tribes of the red race were fighting with their backs to the retreating ice of the last glacier, and when the land passage to the West, over the Bering isthmus, became passable, these tribes were not slow in forsaking the inhospitable shores of the Asiatic continent. It is eighty-five thousand years since the last of the pure red men departed from Asia, but the long struggle left its genetic imprint upon the victorious yellow race. The northern Chinese peoples, together with the Andonite Siberians, assimilated much of the red stock and were in considerable measure benefited thereby.
2000 79:5.6 10만 년 전에, 크게 학살당한 홍인 부족들이 마지막 빙하기의 물러가는 얼음을 등지고 싸우고 있었는데, 베링 지협(地峽) 위로, 서반구로[1] 가는 육상 통로가 지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부족들은 아시아 대륙의 불친절한 바닷가를 망설이지 않고 버렸다. 순수한 마지막 홍인들이 아시아를 떠난 지 8만 5천 년이 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그 싸움은 승리한 황인종에게 유전의 자국을 남겼다. 북쪽의 중국 종족들은, 시베리아에 사는 안돈 족속과 함께, 홍인의 핏줄을 많이 동화(同化)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어지간히 이득을 보았다.
2001 CM 79:5.6 10만 년 전에, 많은 사람을 잃은 홍인종 부족들은, 뒤로는 퇴각하는 마지막 빙하기 얼음 덩어리와 싸워야했고, 베링 해협이 육로{陸路}를 통해서 서부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열자, 이 부족들은 야박스런 아시아 대륙 해안을 서슴없이 떠나게 됐다. 순수한 홍인종이 마지막으로 아시아를 떠난 지 8만 5천 년이 지났지만, 오랜 기간의 투쟁은 승리를 거둔 황인종에게 유전적인 흔적을 남겼다. 안돈족속 시베리아인과 함께, 북부 지역 중국 민족들은 홍색 혈통을 많이 닮았고, 이로 인해 상당한 정도의 유익을 얻었다.
2007 URKA 79:5.6 10만 년 전에, 격감된 적색 인종은, 뒤로는 마지막 빙하기의 퇴각하는 얼음 덩어리와 싸워야 했으며, 베링 해협을 지나 육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이 부족들은 야박스러운 아시아 대륙 해안을 서슴없이 떠나게 되었다. 순수한 적색 인종이 마지막으로 아시아를 떠난 지 85,000년이 지났지만, 오랜 기간의 투쟁은 승리를 거둔 황색 인종에게 유전적인 흔적을 남겨 두었다. 안돈-사람인 시베리아인 들과 함께, 북부 지역의 중국 민족들은 적색 종족을 많이 닮았으며 그것에 의해서 상당한 정도의 유익을 얻었다.
2025 79:5.6 10만 년 전에, 크게 학살당한 홍인 부족들이 마지막 빙하기의 물러가는 얼음을 등지고 싸우고 있었는데, 베링 지협(地峽) 위로, 서반구로[78] 가는 육상 통로가 지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부족들은 아시아 대륙의 불친절한 바닷가를 망설이지 않고 버렸다. 순수한 마지막 홍인들이 아시아를 떠난 지 8만 5천 년이 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그 싸움은 승리한 황인종에게 유전의 자국을 남겼다. 북쪽의 중국 종족들은, 시베리아에 사는 안돈 족속과 함께, 홍인의 핏줄을 많이 동화(同化)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어지간히 이득을 보았다.
1955 79:5.7 The North American Indians never came in contact with even the Andite offspring of Adam and Eve, having been dispossessed of their Asiatic homelands some fifty thousand years before the coming of Adam. During the age of Andite migrations the pure red strains were spreading out over North America as nomadic tribes, hunters who practiced agriculture to a small extent. These races and cultural groups remained almost completely isolated from the remainder of the world from their arrival in the Americas down to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of the Christian era, when they were discovered by the white races of Europe. Up to that time the Eskimos were the nearest to white men the northern tribes of red men had ever seen.
2000 79:5.7 북 아메리카의 인디안은 아담과 이브의 안드 자손과도 결코 접촉을 가지지 않았고, 아담이 오기 5만여 년 전에, 그들의 아시아 고향을 빼앗겼다. 안드 족속이 이동하던 시절에 순수 홍인의 핏줄은 북 아메리카에서 유목하는 부족으로서 퍼지고 있었고, 이들은 소규모로 농사를 짓던 사냥꾼이었다. 이 종족 및 문화 집단들은, 두 아메리카에 도착할 때부터 기독교 시대의 첫째 천년 끝에 유럽의 백인 종족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나머지 세계와 거의 완전히 고립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는 에스키모인이, 북쪽의 홍인 부족들이 본 중에서 백인에 가장 가까웠다.
2001 CM 79:5.7 북 아메리카 인디언은, 아담과 이브의 안드족속 후손과 전혀 접촉하지 못했는데, 아담의 도래보다 약 5만 년 전에, 그들의 고향이었던 아시아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안드족속이 이주하는 동안, 순수한 홍색 혈통은 방랑하는 부족 곧 농사를 약간 짓는 사냥꾼이 되면서 북 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이 종족들 및 문화 집단들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첫 1,000년이 끝날 무렵에 유럽의 백인종에게 발견될 때까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래 세계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거의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때까지, 북부에서 홍색인 부족들이 봤던 사람들 가운데 에스키모가 백색인에 가장 가까웠다.
2007 URKA 79:5.7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담과 이브의 안드-사람 후손과도 전혀 접촉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아담의 도래보다 약 50,000년 전에 그들의 고향이었던 아시아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안드-사람의 이주 기간 동안, 순수한 적색 혈통의 사람들이 방랑하는 부족, 농사를 약간 실천한 사냥꾼이 되면서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이 종족들과 문화 집단들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첫 1,000년이 끝날 무렵, 유럽의 백색 인종들에 의해 그들이 발견될 때까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래 세계의 다른 민족들과 거의 완벽하게 고립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 때까지, 북쪽에 있는 적색 인종 부족들이 보았던 사람들 중에서 에스키모들이 백색 인종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2025 79:5.7 북 아메리카의 인디안은 아담과 이브의 안드 자손과도 결코 접촉을 가지지 않았고, 아담이 오기 5만여 년 전에, 그들의 아시아 고향을 빼앗겼다. 안드 족속이 이동하던 시절에 순수 홍인의 핏줄은 북 아메리카에서 유목하는 부족으로서 퍼지고 있었고, 이들은 소규모로 농사를 짓던 사냥꾼이었다. 이 종족 및 문화 집단들은, 두 아메리카에 도착할 때부터 기독교 시대의 첫째 천년 끝에 유럽의 백인 종족들에게 발견될 때까지, 나머지 세계와 거의 완전히 고립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는 에스키모인이, 북쪽의 홍인 부족들이 본 중에서 백인에 가장 가까웠다.
1955 79:5.8 The red and the yellow races are the only human stocks that ever achieved a high degree of civilization apart from the influences of the Andites. The oldest Amerindian culture was the Onamonalonton center in California, but this had long since vanished by 35,000 B.C. In Mexico, Central America, and in the mountains of South America the later and more enduring civilizations were founded by a race predominantly red but containing a considerable admixture of the yellow, orange, and blue.
2000 79:5.8 안드 족속의 영향을 제쳐놓고, 오직 홍인과 황인 종족이 높은 정도의 문명을 일찍이 이룩한 인간 혈통이었다. 가장 오래 된 아메리카 인디안의 문화는 칼리포니아에 있는 오나모나론톤 중심이었으나, 이것은 기원전 35,000년이 되어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그리고 남 아메리카의 산지에서 나중에 더 오래 지속되는 문명은, 주로 홍인이지만 황인ㆍ주황인ㆍ청인이 상당히 섞인 종족이 세운 것이다.
2001 CM 79:5.8 홍인종과 황인종은, 안드족속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유일한 인간 혈통이었다. 가장 오래된 아메리카인디언 문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나모나론톤 중심지였으나, 이것은 기원전 3만 5천 년경에 사라진 지 오래 됐다. 중앙 아메리카의 멕시코에서 그리고 남 아메리카의 산악지대에서 나중에 더 오래 지속된 문명들은, 주로 홍인종이지만 황인종과 주황인종과 청인종이 상당히 섞인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2007 URKA 79:5.8 적색 인종과 황색 인종은, 안드-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유일한 인간 혈통이었다. 최고로 오래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나모나론톤이었지만, 이것은 오래 전인 기원 전 35,000년경에 사라졌다. 중앙아메리카인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의 산악지대에서는, 보다 후대의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된 문명들이, 주로 적색 인종이지만 황색과 오렌지색 그리고 청색 인종이 상당히 섞여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2025 79:5.8 안드 족속의 영향을 제쳐 놓고, 오직 홍인과 황인 종족이 높은 정도의 문명을 일찍이 이룩한 인간 혈통이었다. 가장 오래 된 아메리카 인디안의 문화는 칼리포니아에 있는 오나모나론톤 중심이었으나, 이것은 기원전 35,000년이 되어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그리고 남 아메리카의 산지에서 나중에 더 오래 지속되는 문명은, 주로 홍인이지만 황인ㆍ주황인ㆍ청인이 상당히 섞인 종족이 세운 것이다.
1955 79:5.9 These civilizations were evolutionary products of the Sangiks, notwithstanding that traces of Andite blood reached Peru. Excepting the Eskimos in North America and a few Polynesian Andites in South America, the peoples of the Western Hemisphere had no contact with the rest of the world until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after Christ. In the original Melchizedek plan for the improvement of the Urantia races it had been stipulated that one million of the pure-line descendants of Adam should go to upstep the red men of the Americas.
2000 79:5.9 안드 족속 혈통의 흔적이 페루에 다다르기는 했어도, 이 문명은 산긱의 진화적 산물이었다. 북 아메리카의 에스키모, 그리고 남 아메리카의 폴리네시아 안드 족속 몇을 빼고, 서반구의 민족들은 그리스도 이후 제1 천년 끝까지 나머지 세상과 아무 접촉이 없었다. 유란시아 종족들을 개량하려는 멜기세덱의 최초의 계획에는, 아담의 순수 핏줄 후손 1백만 명이 두 아메리카의 홍인을 개량하러 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2001 CM 79:5.9 이 문명은 상익 인종의 진화 산물이었는데, 그럼에도 안드족속 핏줄의 흔적이 페루에서도 발견된다. 북 아메리카의 에스키모와 남 아메리카의 소수 폴리네시아 안드족속을 제외하면, 서반구 민족들은 기원후 첫 1,000년이 끝날 무렵까지 세계의 다른 인종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유란시아 종족들을 개선시키기 위한 멜기세덱의 원래 계획에서는, 아담의 순수-계통 후손 100만 명이, 두 아메리카 대륙의 홍색인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나아가게 돼있었다.
2007 URKA 79:5.9 안드-사람 혈통의 흔적이 페루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 문명들은 산긱 종족들의 진화적인 산물이었다. 북아메리카의 에스키모와 남아메리카에 있는 소수의 폴리네시아 안드-사람들을 제외한다면, 서반구(西半球)의 민족들은 그리스도 이후 첫 1,000년이 끝날 무렵까지 세계의 다른 인종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유란시아 종족들을 개선시키기 위한 멜기세덱의 기원적 계획에서는, 아담의 순수 혈통을 가진 백만 명의 후손들이 아메리카의 적색 인종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나아가게 되어 있었다.
2025 79:5.9 안드 족속 혈통의 흔적이 페루에 다다르기는 했어도, 이 문명은 산긱의 진화적 산물이었다. 북 아메리카의 에스키모, 그리고 남 아메리카의 폴리네시아 안드 족속 몇을 빼고, 서반구의 민족들은 그리스도 이후 제1 천년 끝까지 나머지 세상과 아무 접촉이 없었다. 유란시아 종족들을 개량하려는 멜기세덱의 최초의 계획에는, 아담의 순수 핏줄 후손 1백만 명이 두 아메리카의 홍인을 개량하러 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6. DAWN OF CHINESE CIVILIZATION
6. 중국 문명이 밝아오다
6. 중국 문명의 발단
6. 중국 문명의 여명
6. 중국 문명이 밝아오다
1955 79:6.1 Sometime after driving the red man across to North America, the expanding Chinese cleared the Andonites from the river valleys of eastern Asia, pushing them north into Siberia and west into Turkestan, where they were soon to come in contact with the superior culture of the Andites.
2000 79:6.1 건너 북 아메리카로 홍인을 몰아낸 뒤에 얼마 있다가, 세력이 커지는 중국 민족은 동 아시아의 여러 강 유역에서 안돈 족속을 깨끗이 쓸어 버렸고, 북쪽에 시베리아로, 그리고 서쪽에 투르키스탄으로 그들을 몰아냈는데, 거기서 그들은 곧 안드 족속의 우수한 문화와 접촉하게 되었다.
2001 CM 79:6.1 홍색인이 북 아메리카로 쫓겨 건너가고 얼마 후에, 확장하는 중국인이 동부 아시아의 여러 강 유역에서 안돈족속을 몰아냈는데,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그리고 서쪽으로는 투르케스탄으로 저희를 밀어냈으며, 거기서 그들은 곧 안드족속의 우수한 문화와 접촉하게 됐다.
2007 URKA 79:6.1 적색 인종이 북아메리카로 쫓겨난 지 얼마 후에, 확대되는 중국인들은 동부 아시아의 강 유역들로부터 안돈-사람들을 몰아내었는데, 북쪽으로는 시베리아로 그리고 서쪽으로는 투르케스탄으로 밀어내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곧 안드-사람들의 우월한 문화와 접촉하게 되었다.
2025 79:6.1 건너 북 아메리카로 홍인을 몰아낸 뒤에 얼마 있다가, 세력이 커지는 중국 민족은 동 아시아의 여러 강 유역에서 안돈 족속을 깨끗이 쓸어버렸고, 북쪽에 시베리아로, 그리고 서쪽에 투르키스탄으로 그들을 몰아냈는데, 거기서 그들은 곧 안드 족속의 우수한 문화와 접촉하게 되었다.
1955 79:6.2 In Burma and the peninsula of Indo-China the cultures of India and China mixed and blended to produce the successive civilizations of those regions. Here the vanished green race has persisted in larger proportion than anywhere else in the world.
2000 79:6.2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섞이고 혼합되어서 그 지역에서 연속되는 문명을 일으켰다. 사라진 녹색 인종이 세계에서 어느 다른 데보다 여기서 큰 비율로 지속하였다.
2001 CM 79:6.2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섞이고 혼합되어 그 지역에 연속되는 문명을 창출했다. 여기서는, 사라진 녹색인종이 세계의 다른 어떤 장소보다 더 큰 비율로 존속돼왔다.
2007 URKA 79:6.2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인도와 중국의 문화들이 혼합되고 섞여져서 그 지역에 계속적인 문명을 창출하게 하였다. 이곳에서는, 사라진 녹색 인종이 세계의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더 많은 비율로 남아 있었다.
2025 79:6.2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섞이고 혼합되어서 그 지역에서 연속되는 문명을 일으켰다. 사라진 녹색 인종이 세계에서 어느 다른 데보다 여기서 큰 비율로 지속하였다.
1955 79:6.3 Many different races occupied the islands of the Pacific. In general, the southern and then more extensive islands were occupied by peoples carrying a heavy percentage of green and indigo blood. The northern islands were held by Andonites and, later on, by races embracing large proportions of the yellow and red stocks. The ancestors of the Japanese people were not driven off the mainland until 12,000 B.C., when they were dislodged by a powerful southern-coastwise thrust of the northern Chinese tribes. Their final exodus was not so much due to population pressure as to the initiative of a chieftain whom they came to regard as a divine personage.
2000 79:6.3 많은 다른 인종이 태평양의 섬들을 차지했다. 대체로, 남쪽에, 그리고 그때 더 널리 퍼져 있던 섬들은 녹인(綠人)과 남인(藍人)의 피를 많이 지닌 민족들이 차지하였다. 북쪽 섬들은 안돈 족속이, 나중에는 황인과 홍인의 혈통을 많이 품은 종족들이 차지했다. 일본 민족의 선조는 기원전 12,000년까지 본토에서 밀려나지 않았는데, 이때 그들은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의 중국 부족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받고서 쫓겨났다. 그들의 마지막 탈출은 인구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신다운 인물로 여기게 된 어느 추장이 주도권을 쥐었기 때문이었다.
2001 CM 79:6.3 여러 다른 인종이 태평양 섬들을 점령했다. 대체로 남부 섬들을, 그다음에는 더 광범한 지역의 섬들을, 높은 비율의 녹색 및 남색 피를 지닌 민족들이 점령했다. 북부 섬들은 안돈족속이 차지했고, 나중에는 황색 혈통과 홍색 혈통 중에서 큰 부분을 포함하는 인종들이 차지했다. 일본인 민족의 조상은 기원전 12,000년까지 본토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가, 그때 북쪽 중국인 부족들이 남쪽 해안을 따라 강력하게 밀려 내려옴으로써 쫓겨났다. 그들의 최종 탈출은, 인구 팽창 압력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신성한 인물로 간주하게 된 추장이 주도권을 쥐었기 때문이었다.
2007 URKA 79:6.3 많은 다른 종족들이 태평양의 섬들을 점령하였다. 일반적으로, 남쪽의 섬들이 그 다음에는 광범위한 지역의 섬들이, 높은 비율의 녹색과 남색 혈통을 간직한 민족들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북쪽의 섬들은 안돈-사람들에 의해서 지배되었으며, 나중에는 높은 비율의 황색 혈통과 적색 혈통을 포함하는 종족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일본 민족의 조상들은 기원 전 12,000년까지 본토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다가, 그 때 그들은 북쪽에 있는 중국 부족들이 남쪽 해안을 따라 강력하게 밀려 내려옴으로써 쫓겨나게 되었다. 그들의 최종적인 탈출은 인구 압력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신성한 인물로 간주하게 된 족장의 주도권에 기인된 것이었다.
2025 79:6.3 많은 다른 인종이 태평양의 섬들을 차지했다. 대체로, 남쪽에, 그리고 그때 더 널리 퍼져 있던 섬들은 녹인(綠人)과 남인(藍人)의 피를 많이 지닌 민족들이 차지하였다. 북쪽 섬들은 안돈 족속이, 나중에는 황인과 홍인의 혈통을 많이 품은 종족들이 차지했다. 일본 민족의 선조는 기원전 12,000년까지 본토에서 밀려나지 않았는데, 이때 그들은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북쪽의 중국 부족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받고서 쫓겨났다. 그들의 마지막 탈출은 인구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신다운 인물로 여기게 된 어느 추장이 주도권을 쥐었기 때문이었다.
1955 79:6.4 Like the peoples of India and the Levant, victorious tribes of the yellow man established their earliest centers along the coast and up the rivers. The coastal settlements fared poorly in later years as the increasing floods and the shifting courses of the rivers made the lowland cities untenable.
2000 79:6.4 인도와 레반트의 민족들처럼, 승리한 황인 부족들은 물가를 따라서, 또 강의 상류에 최초의 중심지들을 세웠다. 해안에 있던 촌락들은 잦아지는 홍수(洪水)와 바뀌는 강 물줄기가 낮은 땅의 도시들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자, 후일에는 잘 견디지 못했다.
2001 CM 79:6.4 인도와 레반트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황색인 부족이 해안선과 강줄기를 따라서 초기 중심지들을 건설했다. 연안{沿岸}에 있는 주거지는, 홍수가 잦아지고 강줄기가 변경됨으로 인해 낮은 지역의 도시들이 유지될 수 없게 되면서, 나중에는 살아가기 힘들게 됐다.
2007 URKA 79:6.4 인도와 레반트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황색 인종의 다양한 부족들은 해안선과 강줄기를 따라서 초기의 중심지들을 건설하였다. 연안에 있는 주거지들은 나중에 홍수가 증가하면서 살아가기 힘들게 되었고, 강줄기의 변경은 낮은 지역에 있는 도시들이 지탱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2025 79:6.4 인도와 레반트의 민족들처럼, 승리한 황인 부족들은 물가를 따라서, 또 강의 상류에 최초의 중심지들을 세웠다. 해안에 있던 촌락들은 잦아지는 홍수(洪水)와 바뀌는 강 물줄기가 낮은 땅의 도시들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자, 후일에는 잘 견디지 못했다.
1955 79:6.5 Twenty thousand years ago the ancestors of the Chinese had built up a dozen strong centers of primitive culture and learning, especially along the Yellow River and the Yangtze. And now these centers began to be reinforced by the arrival of a steady stream of superior blended peoples from Sinkiang and Tibet. The migration from Tibet to the Yangtze valley was not so extensive as in the north, neither were the Tibetan centers so advanced as those of the Tarim basin. But both movements carried a certain amount of Andite blood eastward to the river settlements.
2000 79:6.5 2만 년 전에 중국인의 선조는 원시 문화와 배움이 있는 강력한 중심을 열두 군데, 특히 황하와 양자강을 따라서 세웠다. 그리고 신장(新彊)과 티벳으로부터 우수한 혼합 민족들의 꾸준한 인파가 도착함으로, 이제 이 중심들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티벳으로부터 양자강 유역까지의 이민은 북쪽처럼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았고, 티벳의 중심들은 타림 분지만큼 진보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동은 안드 족속의 피를 얼마큼 동쪽으로 강가의 촌락들로 날랐다.
2001 CM 79:6.5 2만 년 전에, 중국인 조상은 열둘에 달하는 강력한 원시 문화 및 교육 중심지를 건설했는데, 특히 황하와 양쯔강을 따라서 세웠다. 그리고 그때 이 중심지들은, 신장과 티벳으로부터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피가 섞인 우수한 민족들이 도착함으로 인해 보강되기 시작했다. 티벳으로부터 양쯔강 유역에 이르는 이주는, 북쪽에서 일어난 것처럼 광범하게 이뤄지지는 않았고, 티벳 중심지들도 다림 분지 중심지들만큼 발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두 무리는 상당한 양의 안드족속 핏줄을 지니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강변에 정착했다.
2007 URKA 79:6.5 20,000년 전에, 중국인들의 조상들은 12개에 달하는 원시적인 문화와 교육의 강력한 중심지들을 건설하였었는데, 특별히 황하와 양쯔 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때 이 중심지들은 신경과 티베트에서 꾸준히 밀려들어오는 피가 섞인 우월한 민족들이 도착됨으로 인하여 보강되기 시작하였다. 티베트로부터 양쯔 강 계곡으로의 이주는 북쪽에서 일어난 것처럼 광대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중심지들도 다림 분지의 중심지들만큼 발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두 이동 물결은 상당한 양의 안드-사람 피를 동쪽으로 강 정착지에 옮겨주었다.
2025 79:6.5 2만 년 전에 중국인의 선조는 원시 문화와 배움이 있는 강력한 중심을 열두 군데, 특히 황하와 양자강을 따라서 세웠다. 그리고 신장(新彊)과 티벳에서 우수한 혼합 민족들의 꾸준한 인파가 도착하여, 이제 이 중심들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티벳으로부터 양자강 유역까지 간 이민은 북쪽처럼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았고, 티벳의 중심들은 타림 분지만큼 진보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동은 안드 족속의 피를 얼마큼 동쪽으로 강가의 촌락들로 날랐다.
1955 79:6.6 The superiority of the ancient yellow race was due to four great factors:
2000 79:6.6 고대 황인종의 우수성은 4대 요인 때문이다:
2001 CM 79:6.6 고대 황인종의 우월성은 네 가지 큰 요인 때문이었다:
2007 URKA 79:6.6 고대 황색 인종의 우월성은 네 가지 큰 요소들로부터 기인되었다:
2025 79:6.6 고대 황인종의 우수성은 4대 요인 때문이다:
1955 79:6.7 1. Genetic. Unlike their blue cousins in Europe, both the red and yellow races had largely escaped mixture with debased human stocks. The northern Chinese, already strengthened by small amounts of the superior red and Andonic strains, were soon to benefit by a considerable influx of Andite blood. The southern Chinese did not fare so well in this regard, and they had long suffered from absorption of the green race, while later on they were to be further weakened by the infiltration of the swarms of inferior peoples crowded out of India by the Dravidian-Andite invasion. And today in China there is a definite difference between the northern and southern races.
2000 79:6.7 1. 유전 요인. 유럽에 있는 푸른 사촌들과 달리, 홍인종과 황인종 모두가 저하된 인간 핏줄과 섞이는 것을 대체로 피했다. 북쪽의 중국인은 소량의 우수한 홍인과 안돈 족속의 핏줄로 이미 강화되어 있었고, 안드 족속의 피가 상당히 흘러 들어옴으로 곧 이득을 보게 되어 있었다. 남쪽의 중국인은 이 점에서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녹인종을 흡수함으로 고생하였고, 나중에 드라비다 안드 족속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밀려나오는 열등한 민족들의 떼가 침투해 들어와서 더욱 약해졌다. 오늘날 중국에는 북부 종족과 남부 종족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2001 CM 79:6.7 1. 유전적 요인. 그들의 유럽 청색 동족과는 달리, 홍인종과 황인종은 저질{低質}의 인간 혈통들과 혼합되는 것을 대개 피할 수 있었다. 우수한 홍색 혈통과 안돈 혈통이 약간 섞인 북부 중국인은, 안드족속 피가 상당히 유입됨으로써 곧 유익을 얻게 됐다. 남부의 중국인은 이런 점에서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는데, 녹색인종을 흡수함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생했고, 나중에는 드라비다-안드족속 침입으로 인해 인도에서 도망 나온 열등한 민족들 무리가 침투해 들어와서 훨씬 약화됐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에서는 북부 종족과 남부 종족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
2007 URKA 79:6.7 1. 유전적 요인. 유럽에 있는 그들의 청색 사촌들과는 달리, 적색 종족과 황색 종족 모두는 저하된 인간 핏줄과 혼합되는 것을 대체적으로 피해왔다. 우월한 적색 혈통과 안돈의-혈통이 약간 섞인 북부의 중국인들은, 안드-사람 혈통이 상당히 유입됨으로써 곧 유익을 얻게 되었다. 남부의 중국인들은 이러한 면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녹색 인종의 흡수로 인하여 오랫동안 수난을 당하였고, 반면에 나중에는 드라비다-안드-사람 침입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도망 나온 열등한 민족들 무리가 침투함으로써 훨씬 약화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에는 북부 지역의 인종과 남부 지역의 인종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2025 79:6.7 1. 유전 요인. 유럽에 있는 푸른 사촌들과 달리, 홍인종과 황인종 모두가 저하된 인간 핏줄과 섞이는 것을 대체로 피했다. 북쪽의 중국인은 소량의 우수한 홍인과 안돈 족속의 핏줄로 이미 강화되어 있었고, 안드 족속의 피가 상당히 흘러 들어옴으로 곧 이득을 보게 되어 있었다. 남쪽의 중국인은 이 점에서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녹인종을 흡수함으로 고생하였고, 나중에 드라비다 안드 족속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인도에서 밀려나오는 열등한 민족들의 떼가 침투해 들어와서 더욱 약해졌다. 오늘날 중국에는 북부 종족과 남부 종족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1955 79:6.8 2. Social. The yellow race early learned the value of peace among themselves. Their internal peaceableness so contributed to population increase as to insure the spread of their civilization among many millions. From 25,000 to 5000 B.C. the highest mass civilization on Urantia was in central and northern China. The yellow man was first to achieve a racial solidarity—the first to attain a large-scale cultural, social, and political civilization.
2000 79:6.8 2. 사회적 요인. 황인종은 자기들끼리 평화를 지키는 것이 귀중함을 일찍이 배웠다. 내부의 평화 성향은 그들의 문명이 수백만 사이에 퍼지는 것을 보장하도록 인구의 증가에 크게 이바지했다. 기원전 25,000년부터 5000년까지, 유란시아에서 가장 큰 집단 문명은 중국의 중앙과 북부에 있었다. 황인은 종족의 단결을 처음으로―대규모의 문화ㆍ사회ㆍ정치 문명을 처음으로―이룩한 사람이었다.
2001 CM 79:6.8 2. 사회적 요인. 자기들끼리 평화로운 것이 귀중함을, 황인종은 일찍부터 습득했다. 그들의 내부적 평화 유지 능력은 인구 증가에 막대하게 기여해서 그들의 문명이 수백만의 사람에게 퍼지게 했다. 기원전 25,000년부터 5000년까지, 유란시아에서 가장 높은 집단 문명은 중국 중앙과 북부 지역에 있었다. 황색인이 인종적 결속을 처음 성취했다--큰 규모의 문화, 사회, 및 정치 문명을 처음 달성했다.
2007 URKA 79:6.8 2. 사회적 요인. 황색 인종은 자기들끼리의 평화에 대한 가치를 일찍부터 습득하였다. 그들의 내부적인 평화 유지 능력은 인구 증가에 막대하게 기여하였으며 그들의 문명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퍼지도록 만들었다. 기원 전 25,000년부터 5,000년에 이르기까지, 유란시아에서 가장 높은 집단적 문명은 중국의 중앙과 북부 지역에 있었다. 황색 인종은 종족의 결속을 이룩한 최초의 종족이었다.─큰 규모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문명을 처음으로 달성하였다.
2025 79:6.8 2. 사회적 요인. 황인종은 자기들끼리 평화를 지키는 것이 귀중함을 일찍이 배웠다. 내부의 평화 성향은 그들의 문명이 수백만 사이에 퍼지는 것을 보장하도록 인구의 증가에 크게 이바지했다. 기원전 25,000년부터 5000년까지, 유란시아에서 가장 큰 집단 문명은 중국의 중앙과 북부에 있었다. 황인은 종족의 단결을 처음으로 ― 대규모의 문화ㆍ사회ㆍ정치 문명을 처음으로 ― 이룩한 사람이었다.
1955 79:6.9 The Chinese of 15,000 B.C. were aggressive militarists; they had not been weakened by an overreverence for the past, and numbering less than twelve million, they formed a compact body speaking a common language. During this age they built up a real nation, much more united and homogeneous than their political unions of historic times.
2000 79:6.9 기원전 15,000년에 중국인은 공격적인 군국주의자였다. 그들은 지난날을 지나치게 존중함으로 약화되지 않았고, 그 수가 1천2백만이 채 되지 않았으며, 하나의 공통 언어를 쓰는 밀집된 단체를 이루었다. 이 시대에 그들은 진짜 국가를 세웠고, 유사(有史) 시대의 정치적 연합보다 훨씬 더 뭉쳐지고 동질성이 있었다.
2001 CM 79:6.9 기원전 15,000년에 중국인은 공격적인 군국주의자였으며;옛 사람을 과도하게 숭상함으로써 약화되는 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그 수는 1,200만이 채 안됐고, 하나의 공통 언어를 사용하는 밀집된 집단을 형성했다. 그들은 이 시기 동안에 실제 국가를 형성했는데, 역사 시대에 이룩한 그들의 정치적 합동보다 훨씬 결합됐고 동질성이 있었다.
2007 URKA 79:6.9 기원 전 15,000년의 중국인은 공격적인 군국주의자 들이었다; 그들은 과거를 지나치게 존경함으로써 약화되는 일이 있어나지 않았었고, 인구수가 1,200만 명 미만이었으며, 간단한 신체적 표현으로 공통 언어를 사용하는 알찬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들은 실제적인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역사 시대에 이룩한 그들의 정치적 연합보다도 훨씬 더 연합되었고 균질성을 갖고 있었다.
2025 79:6.9 기원전 15,000년에 중국인은 공격적인 군국주의자였다. 그들은 지난날을 지나치게 존중함으로 약화되지 않았고, 그 수가 1천2백만이 채 되지 않았으며, 하나의 공통 언어를 쓰는 밀집된 단체를 이루었다. 이 시대에 그들은 진짜 국가를 세웠고, 유사(有史) 시대의 정치적 연합보다 훨씬 더 뭉쳐지고 동질성이 있었다.
1955 79:6.10 3. Spiritual. During the age of Andite migrations the Chinese were among the more spiritual peoples of earth. Long adherence to the worship of the One Truth proclaimed by Singlangton kept them ahead of most of the other races. The stimulus of a progressive and advanced religion is often a decisive factor in cultural development; as India languished, so China forged ahead under the invigorating stimulus of a religion in which truth was enshrined as the supreme Deity.
2000 79:6.10 3. 영적 요인. 안드 족속이 이동하던 시대에 중국인은 땅에서 영적 민족에 속했다. 싱랑톤이 선포한 하나의 진리를 숭배하는 데 오랫동안 매달린 것은 대부분의 다른 민족들보다 그들이 앞서게 했다. 진취적이고 앞선 종교의 자극은 흔히 문화의 발전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인도가 시드는 동안, 진리를 최고의 신으로서 모시는 종교의 자극, 활력을 주는 자극을 받으며 중국은 선두를 달렸다.
2001 CM 79:6.10 3. 영적 요인. 안드족속이 이주하는 동안에, 중국인은 이 세상에서 더 영적인 민족에 속했다. 그들은 싱글랑톤이 전한 하나의 진리를 숭배하는 데 오랫동안 집착했으므로, 대부분의 다른 인종들보다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진취적이고 발전된 종교의 자극이, 때로는 문화 발전에 중대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인도가 쇠약해졌을 때, 중국은 진리를 최고 신격으로 모시는 어떤 종교의 자극, 활력을 주는 자극 아래서 착실히 전진했다.
2007 URKA 79:6.10 3. 영적 요인. 안드-사람이 이주하던 시기 동안, 중국인들은 이 세상에 있는 비교적 더 영적인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싱랑톤이 전한 하나의 진리에 대한 경배에 오랫동안 집착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가장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진보적이고 발전된 종교에 의한 자극이 때로는 문화적 발전에 중대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인도가 쇠약해졌을 때, 중국은 진리를 최극 신(神)으로 모시는 한 종교의 활기찬 자극 밑에서 서서히 앞으로 나갔던 것이다.
2025 79:6.10 3. 영적 요인. 안드 족속이 이동하던 시대에 중국인은 땅에서 영적 민족에 속했다. 싱랑톤이 선포한 하나의 진실을 숭배하는 데 오랫동안 매달린 것은 대부분의 다른 민족들보다 그들이 앞서게 했다. 진취적이고 앞선 종교의 자극은 흔히 문화의 발전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인도가 시드는 동안, 진실을 최고의 신으로서 모시는 종교의 자극, 활력을 주는 자극을 받으며 중국은 선두를 달렸다.
1955 79:6.11 This worship of truth was provocative of research and fearless exploration of the laws of nature and the potentials of mankind. The Chinese of even six thousand years ago were still keen students and aggressive in their pursuit of truth.
2000 79:6.11 이렇게 진리를 숭상하는 정신은 자연의 법칙과 인류의 잠재성을 연구하고 두려움 없이 탐구하도록 자극하였다. 6천 년 전에도 중국인은 아직도 날카로운 연구자였고 진리를 적극적으로 탐구하였다.
2001 CM 79:6.11 이런 진리 숭배는, 자연 법칙과 인류의 잠재력을 연구하고 대담하게 탐구하도록 유도했다. 6,000년 전에도, 중국인은 여전히 예민한 학생이었고, 진리를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2007 URKA 79:6.11 이러한 진리 경배는 자연 법칙과 인류의 잠재에 대한 연구와 대담한 탐구를 유도하였다. 6,000년 전까지도 중국인들은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여전히 예민한 학생들이었고 적극성을 띠고 있었다.
2025 79:6.11 이렇게 진실을 숭상하는 정신은 자연의 법칙과 인류의 잠재성을 연구하고 두려움 없이 탐구하도록 자극하였다. 6천 년 전에도 중국인은 아직도 날카로운 연구자였고 진실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였다.
1955 79:6.12 4. Geographic. China is protected by the mountains to the west and the Pacific to the east. Only in the north is the way open to attack, and from the days of the red man to the coming of the later descendants of the Andites, the north was not occupied by any aggressive race.
2000 79:6.12 4. 지리적 요인. 중국은 서쪽에 산, 동쪽에는 태평양의 보호를 받는다. 오로지 북쪽에 공격받을 길이 열려 있으며, 홍인의 시절부터 후일에 안드 족속의 후손이 오기까지, 어떤 공격하는 민족도 북쪽을 차지하지 않았다.
2001 CM 79:6.12 4. 지형적 요인. 중국은, 서쪽은 산맥 때문에, 그리고 동쪽은 태평양 때문에 보호 받았다. 오직 북쪽에서만 공격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으며, 홍색인 시대부터 후대에 안드족속 자손이 도래할 때까지, 호전적인 어떤 종족도 북쪽을 차지하지 못했다.
2007 URKA 79:6.12 4. 지형적 요인. 중국은 서쪽으로는 산들에 의해서 그리고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의해서 보호를 받았다. 오직 북쪽으로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으며, 적색 인종의 시대부터 후대의 안드-사람 자손들이 도래할 때까지, 북쪽 지역은 어떤 공격적인 종족에 의해서도 점령되지 않았었다.
2025 79:6.12 4. 지리적 요인. 중국은 서쪽에 산, 동쪽에는 태평양의 보호를 받는다. 오로지 북쪽에 공격 받을 길이 열려 있으며, 홍인의 시절부터 후일에 안드 족속의 후손이 오기까지, 어떤 공격하는 민족도 북쪽을 차지하지 않았다.
1955 79:6.13 And but for the mountain barriers and the later decline in spiritual culture, the yellow race undoubtedly would have attracted to itself the larger part of the Andite migrations from Turkestan and unquestionably would have quickly dominated world civilization.
2000 79:6.13 그리고 산의 장벽이 없고 나중에 영적 문화가 쇠퇴하지 않았더라면, 황인종은 의심할 여지 없이, 투르키스탄으로부터 안드 민족 이동의 더 큰 부분을 끌어들이고, 의문의 여지 없이 세계 문명을 재빨리 지배했을 것이다.
2001 CM 79:6.13 또한 산이 가로막지 않았다면, 그리고 영적 문화에서 후대{後代}의 퇴보가 없었다면, 황인종은 분명히, 투르케스탄으로부터 이주하는 안드족속 대부분을 끌어들일 수 있었고, 그렇게 됐다면 틀림없이 세계 문명을 재빨리 지배했을 것이다.
2007 URKA 79:6.13 또한 산에 의한 장벽이 없었다면, 그리고 영적 문화에 있어서 후대의 퇴보가 없었다면, 황색 인종은 투르케스탄으로부터 이주하는 안드-사람의 대부분을 이끌어 들일 수 있었음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세계 문명을 재빨리 지배하였을 것이다.
2025 79:6.13 그리고 산이라는 장벽이 없고 나중에 영적 문화가 쇠퇴하지 않았더라면, 황인종은 의심할 여지없이, 투르키스탄으로부터 안드 민족 이동의 더 큰 부분을 끌어들이고, 의문의 여지없이 세계 문명을 재빨리 지배했을 것이다.
7. THE ANDITES ENTER CHINA
7. 안드 족속이 중국으로 들어가다
7. 중국에 들어온 안드족속
7. 중국에 들어온 안드-사람
7. 안드 족속이 중국으로 들어가다
1955 79:7.1 About fifteen thousand years ago the Andites, in considerable numbers, were traversing the pass of Ti Tao and spreading out over the upper valley of the Yellow River among the Chinese settlements of Kansu. Presently they penetrated eastward to Honan, where the most progressive settlements were situated. This infiltration from the west was about half Andonite and half Andite.
2000 79:7.1 약 1만 5천 년 전에 안드 족속은 어지간히 큰 떼를 지어서, 디다오 (狄道)[2] 통로를 가로질러서, 간쑤(甘肅)의 중국 촌락들 사이에서, 황하 상류의 유역 위에 퍼지고 있었다. 당장에 그들은 동쪽으로 허난(河南)까지 침투했고, 거기에는 가장 진보한 촌락들이 자리를 잡았다. 서쪽으로부터 이렇게 침투한 것은 대체로 안돈 족속이 절반이고 안드 족속이 절반이었다.
2001 CM 79:7.1 약 1만 5천 년 전에, 상당한 숫자의 안드족속이 티 타오 고개를 넘었고, 칸수의 중국인 정착지들 중에서 황하 상류 유역으로 퍼졌다. 그들은 이윽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호난에 이르렀고, 거기서 가장 진취적인 정착지를 조성했다. 이렇게 서쪽에서 침투한 사람들은 대체로 안돈족속이 절반, 안드족속이 절반이었다.
2007 URKA 79:7.1 약 15,000년 전에, 상당한 숫자의 안드-사람들이 티 타오 고개를 넘었고 칸수에 있는 중국인 정착지들 중에서 황하 상류 계곡으로 퍼져 나갔다. 이윽고 그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호난에 이르렀으며, 그곳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착지들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서쪽으로부터 침투한 사람들은 반(半)은 안돈-사람이고 나머지 반은 안드-사람이였다.
2025 79:7.1 약 1만 5천 년 전에 안드 족속은 어지간히 큰 떼를 지어서, 디다오(狄道)[79] 통로를 가로질러서, 간쑤(甘肅)의 중국 촌락들 사이에서, 황하 상류의 유역 위에 퍼지고 있었다. 당장에 그들은 동쪽으로 허난(河南)까지 침투했고, 거기에는 가장 진보한 촌락들이 자리를 잡았다. 서쪽으로부터 이렇게 침투한 것은 대체로 안돈 족속이 절반이고 안드 족속이 절반이었다.
1955 79:7.2 The northern centers of culture along the Yellow River had always been more progressive than the southern settlements on the Yangtze. Within a few thousand years after the arrival of even the small numbers of these superior mortals, the settlements along the Yellow River had forged ahead of the Yangtze villages and had achieved an advanced position over their brethren in the south which has ever since been maintained.
2000 79:7.2 황하를 따라서 생긴 문화의 북부 중심들은 언제나 양자강에 있는 남쪽 촌락들보다 더 진취성이 있었다. 적은 무리라도 이 우수한 필사자들이 도착한 뒤 몇천 년 안에, 황하를 따라 생긴 촌락들은 양자강에 있는 마을들보다 선두로 나섰고, 남쪽에 있는 형제보다 우위를 차지했으며, 이 자리는 그 뒤로 늘 유지되었다.
2001 CM 79:7.2 황하 유역을 따라서 이뤄진 북부 문화 중심지들은, 남부 양쯔강 정착지보다 항상 더 진취적이었다. 소수의 무리이기는 했지만 우수한 이 필사자들이 도착한 후 수천 년 내에, 황하 유역 정착지들은 양쯔강 마을들보다 착실히 앞서 나갔고, 남부에 있는 동족보다 우위를 차지했으며, 이 우위는 그후로 늘 유지됐다.
2007 URKA 79:7.2 황하 유역을 따라 이루어진 북쪽의 문화 중심지들은, 양쯔 강 유역의 남쪽 정착지들보다 항상 더 진보를 이룩하였다. 소수의 무리이기는 하였지만 우월한 이 필사자들이 도착된 후 수천 년 내에, 황하 유역의 정착지들은 양쯔 강 유역의 마을들보다 앞서 나갔고, 그 후에 유지되었던 모든 남부에 있는 그들의 동족들보다 우위를 차지하였다.
2025 79:7.2 황하를 따라서 생긴 문화의 북부 중심들은 언제나 양자강에 있는 남쪽 촌락들보다 더 진취성이 있었다. 적은 무리라도 이 우수한 필사자들이 도착한 뒤 몇천 년 안에, 황하를 따라 생긴 촌락들은 양자강에 있는 마을들보다 선두로 나섰고, 남쪽에 있는 형제보다 우위를 차지했으며, 이 자리는 그 뒤로 늘 유지되었다.
1955 79:7.3 It was not that there were so many of the Andites, nor that their culture was so superior, but amalgamation with them produced a more versatile stock. The northern Chinese received just enough of the Andite strain to mildly stimulate their innately able minds but not enough to fire them with the restless, exploratory curiosity so characteristic of the northern white races. This more limited infusion of Andite inheritance was less disturbing to the innate stability of the Sangik type.
2000 79:7.3 안드 족속이 그렇게 많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문화가 그다지 우수했기 때문도 아니었으나, 그들과 섞인 것은 더 능력 있는 혈통을 낳았다. 북쪽의 중국인은 타고난 유능한 지성을 약간 자극하기에 겨우 넉넉할 만큼 안드 족속의 피를 받았지만, 이것은 북부 백인 종족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들떠 있고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그들을 불태울 만큼 많지는 않았다. 이렇게 안드 족속의 유전을 적게나마 주입한 것은 산긱 부류의 타고난 침착성을 적게 방해하였다.
2001 CM 79:7.3 이는 안드족속이 거기에 훨씬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그들의 문화가 훨씬 우수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오직 그들과 혼합하여 더 다재다능한 혈통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북부 중국인은 선천적으로 유능한 정신을 약간 자극하기에 겨우 충분할 만큼 안드족속 혈통을 받아들였으나, 북부 백인종의 특질처럼, 들떠있고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그들을 불태울 만큼 충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안드족속 유전형질이 이렇게 더 제한적으로 주입됨으로써, 상익 유형의 타고난 안정성은 별로 교란되지 않았다.
2007 URKA 79:7.3 그것은 그곳에 훨씬 더 많은 안드-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그들의 문화가 훨씬 우월하였기 때문도 아니었으며, 오직 그들과의 혼합으로 더욱 다재다능한 혈통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북부의 중국인들은 그들의 선천적인 유능한 마음들을 약간 자극하기에 겨우 충분할 만큼 안드-사람 혈통을 받아들였지만, 북부에 있는 백색 인종들의 특징처럼 끊임없이 탐구심을 갖는 호기심이 불타오를 정도로 충분하게 받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안드-사람 유전의 더욱 제한적인 주입은 산긱 유형의 타고난 안정성을 적게 교란시키고 있었다.
2025 79:7.3 안드 족속이 그렇게 많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문화가 그다지 우수했기 때문도 아니었으나, 그들과 섞인 것은 더 능력 있는 혈통을 낳았다. 북쪽의 중국인은 타고난 유능한 지성을 약간 자극하기에 겨우 넉넉할 만큼 안드 족속의 피를 받았지만, 이것은 북부 백인 종족들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들떠 있고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그들을 불태울 만큼 많지는 않았다. 이렇게 안드 족속의 유전을 적게나마 주입한 것은 산긱 부류의 타고난 침착성을 적게 방해하였다.
1955 79:7.4 The later waves of Andites brought with them certain of the cultural advances of Mesopotamia; this is especially true of the last waves of migration from the west. They greatly improved the economic and educational practices of the northern Chinese; and while their influence upon the religious culture of the yellow race was short-lived, their later descendants contributed much to a subsequent spiritual awakening. But the Andite traditions of the beauty of Eden and Dalamatia did influence Chinese traditions; early Chinese legends place “the land of the gods” in the west.
2000 79:7.4 후일에 안드 족속의 인파는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진보된 문화를 함께 가져왔다. 서쪽으로부터 온 마지막 이민 물결의 경우에 이것이 특히 참말이었다. 그들은 북쪽 중국인의 경제 및 교육 관습을 크게 개량하였다. 황인종의 종교 문화에 그들이 미친 영향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나중 후손들은 후일에 생긴 영적 각성에 많이 이바지했다. 그러나 에덴과 달라마시아의 아름다움에 관한 안드 족속의 전통은 중국인의 전통에 영향을 미쳤다. 옛날 중국의 전설은 “신들의 땅”이 서쪽에 있다고 본다.
2001 CM 79:7.4 후대에 이동한 안드족속은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향상된 문화를 지니고 왔으며;이것은 특히 서쪽에서 이동한 마지막 물결에서 더 그랬다. 그들은 북부 중국인의 경제 및 교육 풍습을 크게 증진시켰으며;반면에 황인종의 종교 문화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의 먼 후손이, 나중에 일어난 영적 각성에 많이 기여했다. 그러나 에덴과 달라마시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드족속 전승이 중국의 전승에 영향을 줬으며;초기 중국 전설은 “신{神}들의 땅”이 서쪽에 있다고 간주했다.
2007 URKA 79:7.4 후대에 이동한 안드-사람은 향상된 특정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를 가져왔으며; 이것은 특별히 서쪽으로부터 이동한 마지막 물결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들은 북부 중국인들의 경제적 교육적 실천 관행들을 크게 증진시켰으며; 반면에 황색 인종의 종교적 문화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은 오래 가지 못하였고, 그들의 먼 후손들이 나중에 일어난 영적 각성에 많이 기여하였다. 그러나 에덴과 달라마시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드-사람 전승들이 중국의 전승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초기 중국의 전설들은 “하느님들의 땅”이 서쪽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2025 79:7.4 후일에 안드 족속의 인파는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진보된 문화를 가져왔다. 서쪽에서 온 마지막 이민 물결의 경우에 이것이 특히 참말이었다. 그들은 북쪽 중국인의 경제 및 교육 관습을 크게 개량하였다. 황인종의 종교 문화에 그들이 미친 영향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나중 후손들은 후일에 생긴 영적 각성에 많이 기여했다. 그러나 에덴과 달라마시아의 아름다움에 관한 안드 족속의 전통은 중국인의 전통에 영향을 미쳤다. 옛날 중국의 전설은 “신들의 땅”이 서쪽에 있다고 본다.
1955 79:7.5 The Chinese people did not begin to build cities and engage in manufacture until after 10,000 B.C., subsequent to the climatic changes in Turkestan and the arrival of the later Andite immigrants. The infusion of this new blood did not add so much to the civilization of the yellow man as it stimulated the further and rapid development of the latent tendencies of the superior Chinese stocks. From Honan to Shensi the potentials of an advanced civilization were coming to fruit. Metalworking and all the arts of manufacture date from these days.
2000 79:7.5 중국 민족은, 투르키스탄에서 기후가 변하고 후일의 안드 족속 이민이 도착하고 나서 기원전 1만 년이 되기까지, 비로소 도시를 세우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않았다. 이 새로운 피가 주입된 것은 황인의 문명에 크게 보태기보다, 우수한 중국인 혈통의 잠재 성향을 더욱, 그리고 빨리 개발하도록 자극하였다. 허난(河南)에서부터 산시(陝西)까지, 진보된 문명의 잠재성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금속 가공과 모든 제조 기술이 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 CM 79:7.5 중국인 민족은, 기원전 10,000년이 지날 때까지, 즉 투르케스탄에 기후 변화가 발생하고 후대 안드족속이 도착한 후까지, 도시 건설을 시작하지 못했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못했다. 이런 새로운 핏줄의 주입은, 황색인 문명에 많이 기여했다기보다, 오히려 우수한 중국인 혈통의 잠재적 경향이 더 깊이 빠르게 발전하도록 자극했다. 호난에서 셴시에 이르기까지, 진보된 문명 잠재력이 결실을 맺게 됐다. 금속 가공과 모든 제조 기술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7 URKA 79:7.5 중국 민족은 기원 전 10,000년이 지날 때까지, 투르케스탄에 기후 변화가 발생하고 후대의 안드-사람들이 도착한 후까지, 도시를 건설하지 못하였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못하였다. 이 새로운 혈통의 주입은, 황색 인종의 문명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월한 중국 혈통의 잠재적인 경향이 더 깊이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호난에서 셴시에 이르기까지, 진보된 문명의 잠재가 결실을 맺게 되었다. 금속 가공과 모든 제조 기술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2025 79:7.5 중국 민족은, 투르키스탄에서 기후가 변하고 후일의 안드 족속 이민이 도착하고 나서 기원전 1만 년이 되기까지, 비로소 도시를 세우고 제조업에 종사하지 않았다. 이 새로운 피의 주입은 황인의 문명에 크게 보태기보다, 우수한 중국인 혈통의 잠재 성향을 더욱, 그리고 빨리 개발하도록 자극하였다. 허난(河南)에서부터 산시(陝西)까지, 진보된 문명의 잠재성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금속 가공과 모든 제조 기술이 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 79:7.6 The similarities between certain of the early Chinese and Mesopotamian methods of time reckoning, astronomy, and governmental administration were due to the commercial relationships between these two remotely situated centers. Chinese merchants traveled the overland routes through Turkestan to Mesopotamia even in the days of the Sumerians. Nor was this exchange one-sided—the valley of the Euphrates benefited considerably thereby, as did the peoples of the Gangetic plain. But the climatic changes and the nomadic invasions of the third millennium before Christ greatly reduced the volume of trade passing over the caravan trails of central Asia.
2000 79:7.6 옛날에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시간 계산, 천문학, 정부의 행정 방법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두 중심 사이에 상업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생겼다. 중국 상인들은 수메르인 시절에도, 투르키스탄을 거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육로로 여행하였다. 이 교환은 한편으로 치우치지도 않았다―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간지스 평야에 있던 민족들처럼, 이로 인하여 상당히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기후의 변화와 그리스도 이전 제3 천년에 있었던 유목민의 침공은 중앙 아시아의 카라반 길을 거치는 무역의 양을 크게 줄였다.
2001 CM 79:7.6 시간 계산과 천문학 그리고 정부 경영에 대한 중국의 방법과 메소포타미아의 방법 일부가 비슷한 것은, 멀리 떨어져있는 이 두 중심지 사이의 상업 관계 때문이었다. 중국 상인들은, 수메르인 시대에 이미 육로{陸路}를 통해 투르케스탄을 거쳐서 메소포타미아로 여행했다. 이런 거래는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즉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갠지스 평원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기원전 셋째 천년의 유목민 침입으로 말미암아, 중앙 아시아의 대상로{隊商路}를 지나가는 교역량이 크게 줄었다.
2007 URKA 79:7.6 시간 계산과 천문학 그리고 정부 관리-행정에 대한 중국의 방법과 메소포타미아의 방법 일부가 비슷한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두 중심지들 사이의 상업적 관계로부터 기인되었다. 중국의 상인들은 수메르인 시대에 이미 육로를 통하여 투르케스탄을 거쳐 메소포타미아로 여행하였다. 이러한 교환은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유프라테스 계곡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익을 얻었고, 갠지스 평원의 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그리스도 이전 3,000년경의 유목민 침입으로 말미암아, 중앙아시아의 카라반 길을 지나가는 무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2025 79:7.6 옛날에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시간 계산, 천문학, 정부의 행정 방법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두 중심 사이에 상업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생겼다. 중국 상인들은 수메르인 시절에도, 투르키스탄을 거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육로로 여행하였다. 이 교환은 한편으로 치우치지도 않았다 ―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간지스 평야에 있던 민족들처럼, 이로 인하여 상당히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기후의 변화와 그리스도 이전 제3 천년에 있었던 유목민의 침공은 중앙 아시아의 카라반 길을 거치는 무역의 양을 크게 줄였다.
8. LATER CHINESE CIVILIZATION
8. 후일의 중국 문명
8. 후대의 중국 문명
8. 후대의 중국 문명
8. 후일의 중국 문명
1955 79:8.1 While the red man suffered from too much warfare, it is not altogether amiss to say that the development of statehood among the Chinese was delayed by the thoroughness of their conquest of Asia. They had a great potential of racial solidarity, but it failed properly to develop because the continuous driving stimulus of the ever-present danger of external aggression was lacking.
2000 79:8.1 홍인은 너무 많이 전투를 겪어서 고생했지만, 중국인 사이에서 국가의 발전은, 아시아를 철저히 정복했기 때문에 늦어졌다는 것이 아주 빗나간 말은 아니다. 그들은 민족을 단결하는 큰 잠재성을 가졌으나 그 잠재성을 알맞게 개발하지 못했는데, 항상 바깥에서 침공하는 위험이 주는, 계속 몰아붙이는 자극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2001 CM 79:8.1 홍색인은 너무 많은 전쟁으로 인해 시달렸지만, 중국인 가운데서 국가체제의 발달은, 그들이 아시아를 철저히 정복했기 때문에 연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종족의 결속{結束}을 이룰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을 지녔으나, 그 잠재성을 적절하게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항상-존재하는 외부 공격으로 인한 위기감이 주는, 계속 몰아붙이는 자극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007 URKA 79:8.1 적색 인종이 너무 많은 전쟁으로 인하여 시달린 반면, 중국인들 속에서의 국가적인 상태의 발전은 그들이 아시아를 속속들이 정복할 때까지 연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종족의 결속을 이룩할 수 있는 많은 잠재를 갖고 있었지만, 외적인 공격에 항상 수반되는 위험성에 대응되는 계속적인 강렬한 충동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적절하게 발전되지 못하고 말았다.
2025 79:8.1 홍인은 너무 많이 전투를 겪어서 고생했지만, 중국인 사이에서 국가의 발전은, 아시아를 철저히 정복했기 때문에 늦어졌다는 것이 아주 빗나간 말은 아니다. 그들은 민족을 단결하는 큰 잠재성을 가졌으나 그 잠재성을 알맞게 개발하지 못했는데, 항상 바깥에서 침공하는 위험이 주는, 계속 몰아붙이는 자극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1955 79:8.2 With the completion of the conquest of eastern Asia the ancient military state gradually disintegrated—past wars were forgotten. Of the epic struggle with the red race there persisted only the hazy tradition of an ancient contest with the archer peoples. The Chinese early turned to agricultural pursuits, which contributed further to their pacific tendencies, while a population well below the land-man ratio for agriculture still further contributed to the growing peacefulness of the country.
2000 79:8.2 동 아시아의 정복을 마치는 것과 함께 이 고대의 군사(軍事) 국가는 차츰차츰 허물어졌다―지난날의 전쟁을 잊어버렸다. 홍인종과 가졌던 서사시 같은 투쟁에서, 활 쏘는 민족들과 옛날에 싸웠다는 흐릿한 전통이 겨우 지속되었다. 중국인은 일찍부터 농사를 짓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것은 그들의 평화 성향에 더 이바지했다. 한편 농업에 필요한 인구 밀도보다 훨씬 적은 인구는 그 나라의 평화 성향에 더욱 기여했다.
2001 CM 79:8.2 동부 아시아 정복이 완료됨과 함께, 고대의 군사체제가 서서히 붕괴됐다--과거의 전쟁은 잊혀졌다. 홍인종과 투쟁했던 이야기 가운데, 옛날에 활 쏘는 민족들과 싸웠다는 희미한 전승만 남았다. 중국인은 일찍부터 농업으로 돌아섰고, 이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성향을 더 심화시켰고, 동시에 농사짓기에 필요한 인구 밀도보다 훨씬 적은 인구도, 그 나라의 평화로움을 증대시키기에 더욱 기여했다.
2007 URKA 79:8.2 동부 아시아 정복의 완료와 함께, 고대의 군사적 체제가 서서히 집대성이-해체되었다─과거의 전쟁들은 잊혀졌다. 적색 인종과 투쟁하였던 이야기들 중에서, 활 쏘는 민족들과의 오래 전의 투쟁에 대한 희미한 전승만이 남아 있었다.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농업으로 돌아섰고, 그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성향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동시에 농사를 짓기에 필요한 땅에 대한 인구의 비율이 상당히 낮은 것도 그 나라의 평화로움을 증대시키는 일에 더욱 기여하였다.
2025 79:8.2 동 아시아의 정복을 마치는 것과 함께 이 고대의 군사(軍事) 국가는 차츰차츰 허물어졌다 ― 지난날의 전쟁을 잊어버렸다. 홍인종과 가졌던 서사시 같은 투쟁에서, 활 쏘는 민족들과 옛날에 싸웠다는 흐릿한 전통이 겨우 지속되었다. 중국인은 일찍부터 농사를 짓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것은 그들의 평화 성향에 더 이바지했다. 한편 농업에 필요한 인구 밀도보다 훨씬 적은 인구는 그 나라의 평화 성향에 더욱 기여했다.
1955 79:8.3 Consciousness of past achievements (somewhat diminished in the present), the conservatism of an overwhelmingly agricultural people, and a well-developed family life equaled the birth of ancestor veneration, culminating in the custom of so honoring the men of the past as to border on worship. A very similar attitude prevailed among the white races in Europe for some five hundred years following the disruption of Greco-Roman civilization.
2000 79:8.3 지난날의 성취를 의식하는 태도 (오늘날 얼마큼 줄어들었다), 압도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보수주의, 잘 발달된 가족 생활은 조상 숭배를 낳았고, 궁극에는 과거의 인물을 숭배하다시피 존경하는 관습을 초래하였다. 그리스ㆍ로마의 문명이 붕괴된 뒤에 5백여 년 동안, 유럽에서 백인 종족들 사이에 아주 비슷한 태도가 지배하였다.
2001 CM 79:8.3 (지금은 어느 정도 쇠퇴한) 과거의 성취에 대한 의식, 압도적으로 농사짓는 민족의 보수적 경향, 그리고 잘 발달된 가족생활이 조상 공경을 탄생시켰는데, 조상에 대한 존경이 극에 달한 나머지, 숭배 비슷한 관습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붕괴된 후에 거의 500년 동안, 유럽 백인종들 가운데서 무척 비슷한 태도가 유행된 적이 있었다.
2007 URKA 79:8.3 과거의 성취(현재는 어느 정도 쇠퇴한)에 대한 의식과 압도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민족의 보수적 경향 그리고 잘 발달된 가정생활이 조상 숭배를 탄생시켰는데, 조상에 대한 존경이 극에 달한 나머지 경배와 비슷한 상태로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붕괴된 후 거의 500년 동안 유럽에 있는 백색 인종들 가운데에서 매우 비슷한 태도가 유행된 적이 있었다.
2025 79:8.3 지난날의 성취를 의식하는 태도 (오늘날 얼마큼 줄어들었다), 압도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보수주의, 잘 발달된 가족 생활은 조상 숭배를 낳았고, 궁극에는 과거의 인물을 숭배하다시피 존경하는 관습을 초래하였다. 그리스ㆍ로마의 문명이 붕괴된 뒤에 5백여 년 동안, 유럽에서 백인 종족들 사이에 아주 비슷한 태도가 지배하였다.
1955 79:8.4 The belief in, and worship of, the “One Truth” as taught by Singlangton never entirely died out; but as time passed, the search for new and higher truth became overshadowed by a growing tendency to venerate that which was already established. Slowly the genius of the yellow race became diverted from the pursuit of the unknown to the preservation of the known. And this is the reason for the stagnation of what had been the world’s most rapidly progressing civilization.
2000 79:8.4 싱랑톤이 가르쳤던 “하나의 진리”를 믿는 신앙과 숭배는 결코 완전히 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상급 진리의 추구는 이미 확립된 것을 존경하는 성향이 깊어짐으로 빛을 잃게 되었다. 황인종의 천재는 천천히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진 것의 보존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진보하던 문명이었던 것이 정체(停滯)하게 된 이유이다.
2001 CM 79:8.4 싱글랑톤이 가르쳤던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숭배는 한결같이 사라진 적이 결코 없었지만;시간이 흐르자, 새롭고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은, 이미 설립된 것을 공경하려는 경향이 커짐으로써 빛을 잃었다. 황인종의 천재성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추구하려는 태도에서, 이미 알려진 것을 보존하려는 태도로 서서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보하던 문명이 정체 상태에 빠졌다.
2007 URKA 79:8.4 싱랑톤이 가르쳤던 “하나의 진리”에 대한 믿음과 경배는 한 번도 전반적으로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롭고도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은, 이미 설립된 것을 숭배하려는 경향이 커짐으로써 빛을 잃게 되었다. 황색 인종의 천재는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알려진 것을 보존하는 쪽으로 서서히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게 진보하던 문명이 정체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1955 79:8.5 Between 4000 and 500 B.C. the political reunification of the yellow race was consummated, but the cultural union of the Yangtze and Yellow river centers had already been effected. This political reunification of the later tribal groups was not without conflict, but the societal opinion of war remained low; ancestor worship, increasing dialects, and no call for military action for thousands upon thousands of years had rendered this people ultrapeaceful.
2000 79:8.5 기원전 4000년과 500년 사이에 황인종의 정치적 재통일이 이루어졌으나 양자강과 황하(黃河)에 있던 중심들의 문화적 연합은 이미 그 전에 성취되었다. 후일에 부족 집단의 이러한 정치적 재통일은 싸움 없이 되지 않았지만, 전쟁에 대한 사회의 여론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조상 숭배, 늘어나는 지방 언어, 그리고 몇천 년 동안 군사 행동의 요청이 없어진 것은 이 민족을 극도로 평화롭게 만들었다.
2001 CM 79:8.5 기원전 4000년에서 500년 사이에, 황인종의 정치적 재통합{再統合}이 이룩됐지만, 양쯔강과 황하에 있던 중심지들의 문화적 연합은 이미 완료돼있었다. 후대 부족 집단들의 정치적 재통일에 갈등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쟁에 대한 사회 여론은 빈약한 상태에 머물렀으며;조상숭배와 늘어나는 방언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군사를 일으킬 필요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과도한 평화를 누렸다.
2007 URKA 79:8.5 기원 전 4,000년으로부터 500년 사이에, 황색 인종의 정치적인 재(再)통일이 이룩되었지만, 양쯔 강과 황하에 있는 중심지들의 문화적 연합은 이미 이룩되어 있었다. 후대의 부족 집단들의 정치적인 재통일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에 대한 사회적 견해는 빈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조상 경배와 늘어나는 숫자의 방언들 그리고 수천 년 동안의 군사적 활동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과도한 평화를 누려 왔었다.
2025 79:8.5 기원전 4000년과 500년 사이에 황인종의 정치적 재통일이 이루어졌으나 양자강과 황하(黃河)에 있던 중심들의 문화적 연합은 이미 그 전에 성취되었다. 후일에 부족 집단의 이러한 정치적 재통일은 싸움 없이 되지 않았지만, 전쟁에 대한 사회의 여론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조상 숭배, 늘어나는 지방 언어, 그리고 몇천 년 동안 군사 행동의 요청이 없어진 것은 이 민족을 극도로 평화롭게 만들었다.
1955 79:8.6 Despite failure to fulfill the promise of an early development of advanced statehood, the yellow race did progressively move forward in the realization of the arts of civilization, especially in the realms of agriculture and horticulture. The hydraulic problems faced by the agriculturists in Shensi and Honan demanded group co-operation for solution. Such irrigation and soil-conservation difficulties contributed in no small measure to the development of interdependence with the consequent promotion of peace among farming groups.
2000 79:8.6 진보된 국가를 일찍 개발하리라는 전망을 실현하지 못했는데도, 황인종은 문명의 기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특히 농업과 원예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산시와 허난에서 농본주의자들이 부닥친 치수(治水)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집단의 협동을 요구했다. 그러한 관개 및 토양 보존의 문제는 적지 않게 서로 의존하는 성향이 발달하도록 이바지했고, 그 결과로 농업 집단들 사이에 평화가 촉진되었다.
2001 CM 79:8.6 황인종은, 발전된 국가체제로 일찍부터 발전할 가능성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문명의 기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특히 농업과 원예술의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갔다. 셴시와 호난에서는 농민들이 물을 이용하는 문제에 부딪쳤고, 해결하는 데는 집단의 협동이 요구됐다. 그런 관개{灌漑}와 토양-보존 문제는, 상호의존의 발달에 상당히 기여했고, 나중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평화가 촉진됐다.
2007 URKA 79:8.6 발전된 국가 체제로 일찍부터 발전될 가능성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황색 인종은 문명의 기술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농업과 원예술의 영역에 있어서는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센시와 호난에서는 농민들이 물을 이용하는 문제에 부딪혔고 그 해결을 위해 집단적인 협동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관개(灌漑)와 토양-보존의 문제들은, 상호의존의 발달에 상당히 기여하였고 나중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집단들 간의 평화 증진을 가져왔다.
2025 79:8.6 진보된 국가를 일찍 개발하리라는 전망을 실현하지 못했는데도, 황인종은 문명의 기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특히 농업과 원예 분야에서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산시와 허난에서 농본주의자들이 부닥친 치수(治水)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집단의 협동을 요구했다. 그러한 관개 및 토양 보존의 문제는 적지 않게 서로 의존하는 성향이 발달하도록 이바지했고, 그 결과로 농업 집단들 사이에 평화가 촉진되었다.
1955 79:8.7 Soon developments in writing, together with the establishment of schools, contributed to the dissemination of knowledge on a previously unequaled scale. But the cumbersome nature of the ideographic writing system placed a numerical limit upon the learned classes despite the early appearance of printing. And above all else, the process of social standardization and religio-philosophic dogmatization continued apace. The religious development of ancestor veneration became further complicated by a flood of superstitions involving nature worship, but lingering vestiges of a real concept of God remained preserved in the imperial worship of Shang-ti.
2000 79:8.7 학교가 세워짐과 더불어, 글쓰기의 발전이 곧 전례 없는 규모로 지식을 보급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뜻을 표시하는 글쓰기 체계의 거추장스러운 본질은 인쇄술이 일찍 나타났는데도, 지식 계급의 수에 한계를 지워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표준화하고 종교ㆍ철학적으로 독단화되는 과정이 빨리 진행되었다. 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 발전은 자연 숭배를 포함하는 미신의 범람으로 더욱 복잡하게 되었으나, 진정한 하나님 개념의 남은 흔적이 제국의 상제(上帝) 숭배에 간직된 채로 남아 있다.
2001 CM 79:8.7 곧, 기록하는 기술이 발달되고 학교가 설립됨으로써,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식이 보급되도록 기여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인쇄술이 출현했음에도, 표의문자{表意文字}체제의 복잡한 특성 때문에, 지식인 계층의 숫자는 몹시 제한됐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사회의 표준화{標準化}와 종교-철학의 교의화{敎義化}가 빠른 속도로 계속 진행됐다. 조상을 공경하는 종교의 발달은, 자연 숭배를 포함하는 미신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더 복잡하게 됐지만, 남아있던, 하나님에 대한 참된 개념의 끈질긴 흔적이, 샹-티라는 황제 숭배에 간직된 채 유지됐다.
2007 URKA 79:8.7 곧, 기록하는 기술이 발달되고 학교들이 설립됨으로써,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식이 보급되도록 기여하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인쇄술이 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표의문자 체제의 복잡한 특성 때문에 지식인 계층의 숫자가 매우 제한되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사회적인 표준화와 종교-철학적 독단화에 대한 진행이 빠른 속도로 계속 진행되었다. 조상 숭배에 대한 종교적 발전은, 자연 경배를 포함하는 미신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더욱 복잡하게 되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실제적 개념의 남겨져 있던 흔적이 상제(上帝)에 대한 황제로서의 경배 속에 간직된 채로 남아 있었다.
2025 79:8.7 학교가 세워지는 것과 더불어, 글쓰기의 발전이 곧 전례 없는 규모로 지식을 보급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뜻을 표시하는 글쓰기 체계의 거추장스러운 본질은 인쇄술이 일찍 나타났는데도, 지식 계급의 수에 한계를 지워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를 표준화하고 종교ㆍ철학적으로 독단화되는 과정이 빨리 진행되었다. 조상을 숭배하는 종교의 발전은 자연 숭배를 포함하는 미신의 범람으로 더욱 복잡하게 되었으나, 진정한 하나님 개념의 남은 흔적이 제국의 상제(上帝) 숭배에 간직된 채로 남아 있다.
1955 79:8.8 The great weakness of ancestor veneration is that it promotes a backward-looking philosophy. However wise it may be to glean wisdom from the past, it is folly to regard the past as the exclusive source of truth. Truth is relative and expanding; it lives always in the present, achieving new expression in each generation of men—even in each human life.
2000 79:8.8 조상 숭배의 큰 단점은 뒤를 돌아보는 철학을 조장하는 것이다. 지난날로부터 지혜를 거두는 것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지난날을 진리의 유일한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팽창한다. 진리는 언제나 현재에서 살고, 각 세대의 사람들 안에서―아니 각 인생 속에서―새 표현을 이룩한다.
2001 CM 79:8.8 조상 공경의 중대한 약점은, 과거만-생각하는 사상을 증진시킨다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지혜를 수집하는 것이 아무리 현명할지라도, 과거만을 유일한 진리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리석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확장하며;현재 속에 항상 살아있어서, 각 인간 세대마다 --심지어 각 인생마다-- 새 표현을 이룩한다.
2007 URKA 79:8.8 조상 숭배의 커다란 약점은, 그것이 뒤쪽을-바라보는 철학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지혜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현명하다 해도, 과거를 진리의 독점적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리는 상대적이고 그리고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각각의 세대 안에서─심지어 각각의 인간 일생 안에서─새로운 표현을 성취하면서, 항상 현재 속에서 살고 있다.
2025 79:8.8 조상 숭배의 큰 단점은 뒤를 돌아보는 철학을 조장하는 것이다. 지난날로부터 지혜를 거두는 것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지난날을 진실의 유일한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실은 상대적이고 팽창한다. 진실은 언제나 현재에서 살고, 각 세대의 사람들 안에서 ― 아니 각 인생 속에서 ― 새 표현을 이룩한다.
1955 79:8.9 The great strength in a veneration of ancestry is the value that such an attitude places upon the family. The amazing stability and persistence of Chinese culture is a consequence of the paramount position accorded the family, for civilization is directly dependent on the effective functioning of the family; and in China the family attained a social importance, even a religious significance, approached by few other peoples.
2000 79:8.9 조상 존중에 있는 큰 장점은 그러한 태도가 가족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중국 문화가 놀랍게 안정되고 지속하는 것은 가족에게 최고의 지위를 줌으로 생기는 결과이니, 왜냐하면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 작용에 직접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 아니 어떤 다른 민족도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그런 종교적 중요성까지 얻었다.
2001 CM 79:8.9 조상 공경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태도가 가족에게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중국인 문명의 놀랄만한 안정성과 지속성은, 최고 지위를 가족에 부여함으로 생긴 결과인데,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 기능발휘에 직접 의존하기 때문이며;중국에서 가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달성했고, 심지어 어떤 다른 민족도 거의 접근하지 못한 종교적 의미까지 달성했다.
2007 URKA 79:8.9 조상 숭배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태도가 가족에게 미치는 유용성이다. 중국 문명의 놀랄만한 안정성과 지속성은 최고의 상태로 화합된 가족의 결과인데, 왜냐하면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인 활동에 직접적으로 의존되기 때문이다; 중국에 있어서의 가족은 사회적 중요성을 달성하였고, 심지어는 종교적인 의의(意義)를 성취하였는데, 다른 민족들이 이것을 시도한 경우는 거의 없다.
2025 79:8.9 조상 존중에 있는 큰 장점은 그러한 태도가 가족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중국 문화가 놀랍게 안정되고 지속하는 것은 가족에게 최고의 지위를 줌으로 생기는 결과이니, 왜냐하면 문명은 가족의 효과적 작용에 직접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 아니 어떤 다른 민족도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그런 종교적 중요성까지 얻었다.
1955 79:8.10 The filial devotion and family loyalty exacted by the growing cult of ancestor worship insured the building up of superior family relationships and of enduring family groups, all of which facilitated the following factors in the preservation of civilization:
2000 79:8.10 짙어져 가는 조상 숭배 교파가 강요하는 효도(孝道)와 가족에 대한 충성은 우수한 가족 관계와 오래 가는 가족 집단이 세워지는 것을 보장했고, 이것은 모두 문명을 보존하는 데 다음 요소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2001 CM 79:8.10 심화되는 조상숭배 종파{宗派}가 강요하는, 자식으로서의 헌신과 가족에 대한 충성은, 뛰어난 가족 관계 형성과 영구적 가족 집단 형성을 보장했고, 문명 보존에서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촉진시켰다:
2007 URKA 79:8.10 성장하는 조상 경배의 예배종파에 의해서 강요되는, 자식으로서의 헌신과 가족에 대한 충성은, 우월한 가족 관계 형성과 영구적인 가족 집단의 형성을 보장하였으며, 문명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촉진시켰다:재산과 부(富)의 보존.한 세대 이상의 체험이 쌓이게 함.과거의 기술과 과학에 있어서의 자녀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의무에 대한 강한 인식의 발달, 도덕성 증진, 그리고 윤리적 민감성의 증강.
2025 79:8.10 짙어 가는 조상 숭배 교파가 강요하는 효도(孝道)와 가족에 대한 충성은 우수한 가족 관계와 오래 가는 가족 집단이 세워지는 것을 보장했고, 이것은 모두 문명을 보존하는 데 다음 요소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1955 79:8.11 1. Conservation of property and wealth.
2000 79:8.11 1. 재산과 부(富)의 보존.
2001 CM 79:8.11 1. 재산과 부{富}의 보존.
2007 URKA 79:8.11 재산과 부(富)의 보존.
2025 79:8.11 1. 재산과 부(富)의 보존.
1955 79:8.12 2. Pooling of the experience of more than one generation.
2000 79:8.12 2. 한 세대를 넘어서 지식을 한데 모은다.
2001 CM 79:8.12 2. 한 세대 이상의 체험이 축적되게 함.
2007 URKA 79:8.12 한 세대 이상의 체험이 쌓이게 함.
2025 79:8.12 2. 한 세대를 넘어서 지식을 한데 모은다.
1955 79:8.13 3. Efficient education of children in the arts and sciences of the past.
2000 79:8.13 3. 지난날의 예술과 과학을 아이들에게 효과 있게 교육한다.
2001 CM 79:8.13 3. 과거의 기술과 과학을 자녀에게 효과적으로 교육함.
2007 URKA 79:8.13 과거의 기술과 과학에 있어서의 자녀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
2025 79:8.13 3. 지난날의 예술과 과학을 아이들에게 효과 있게 교육한다.
1955 79:8.14 4. Development of a strong sense of duty, the enhancement of morality, and the augmentation of ethical sensitivity.
2000 79:8.14 4. 강한 의무 감각의 개발, 도덕의 향상, 윤리 감각의 증진.
2001 CM 79:8.14 4. 강한 의무 감각의 개발, 도덕의 향상, 그리고 윤리적 민감성{敏感性}의 증진.
2007 URKA 79:8.14 의무에 대한 강한 인식의 발달, 도덕성 증진, 그리고 윤리적 민감성의 증강.
2025 79:8.14 4. 강한 의무 감각의 개발, 도덕의 향상, 윤리 감각의 증진.
1955 79:8.15 The formative period of Chinese civilization, opening with the coming of the Andites, continues on down to the great ethical, moral, and semireligious awakening of the sixth century before Christ. And Chinese tradition preserves the hazy record of the evolutionary past; the transition from mother- to father-family, the establishment of agriculture, the development of architecture, the initiation of industry—all these are successively narrated. And this story presents, with greater accuracy than any other similar account, the picture of the magnificent ascent of a superior people from the levels of barbarism. During this time they passed from a primitive agricultural society to a higher social organization embracing cities, manufacture, metalworking, commercial exchange, government, writing, mathematics, art, science, and printing.
2000 79:8.15 안드 족속이 오면서 시작된 중국 문명의 형성기는, 그리스도 전 6세기에 크게 윤리적ㆍ도덕적ㆍ반(半)종교적 각성이 있기까지 계속된다. 중국인의 전통은 지난날의 발전에 관한 흐릿한 기록을 간직한다. 즉 모계 가족에서 부계(父系) 가족으로 옮겨 간 것, 농업의 확립, 건축의 발전, 산업의 시작―이 모든 것을 연달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어떤 다른 비슷한 설명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한 우수한 민족이 미개한 수준에서 훌륭히 올라간 그림을 제시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원시 농경 사회로부터 도시ㆍ제조업, 금속 가공과 상업 교류, 정부ㆍ글쓰기ㆍ수학ㆍ예술ㆍ과학ㆍ인쇄술을 포함하는 더 높은 사회 조직으로 성장했다.
2001 CM 79:8.15 중국 문명의 형성기는, 안드족속의 도래와 함께 시작됐고, 기원전 6세기에 엄청난 윤리적, 도덕적, 및 반{半}종교적 각성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중국의 전승{傳承}은 과거의 발전에 대한 어렴풋한 기록을 보존했는데, 즉;모계{母系}에서 부계{父系}중심의 가족으로 전환함, 농업의 확립, 농업의 발달, 산업의 개시--, 이 모든 것이 연속으로 다뤄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어떤 비슷한 설명보다 훨씬 정확하게, 우수한 민족이 미개한 수준에서 훌륭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들은 원시 농업사회로부터, 도시, 제조업, 금속 가공, 상업 교역, 정부, 기록, 수학, 예술, 과학, 인쇄 등을 포함하는, 더 높은 사회체제로 발전했다.
2007 URKA 79:8.15 안드-사람들의 도래와 함께 시작되었던, 중국 문명의 발달기는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엄청난 윤리적, 도덕적, 반(半)종교적 각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전승은 과거의 진화에 대한 어렴풋한 기록을 보존하였다; 어머니 중심의 가족으로부터 아버지 중심의 가족으로의 전환, 농업의 확립, 고안건축의 발달, 산업의 개시─이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다른 비슷한 설명들보다 훨씬 정확하게, 미개한 차원으로부터 우월한 민족이 훌륭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 동안에 그들은 원시적인 농업사회로부터 보다 높은 사회적 체제로 발전되었는데, 그 체제는 도시들, 제조업, 금속 가공, 상업 교역, 정부, 기록, 수학, 예술, 인쇄 등을 포함한다.
2025 79:8.15 안드 족속이 오면서 시작된 중국 문명의 형성기는, 그리스도 전 6세기에 크게 윤리적ㆍ도덕적ㆍ반(半)종교적 각성이 있기까지 계속된다. 중국인의 전통은 지난날의 발전에 관한 흐릿한 기록을 간직한다. 즉 모계 가족에서 부계(父系) 가족으로 옮겨 간 것, 농업의 확립, 건축의 발전, 산업의 시작 ― 이 모든 것을 연달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어떤 다른 비슷한 설명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한 우수한 민족이 미개한 수준에서 훌륭히 올라간 그림을 제시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원시 농경 사회로부터 도시ㆍ제조업, 금속 가공과 상업 교류, 정부ㆍ글쓰기ㆍ수학ㆍ예술ㆍ과학ㆍ인쇄술을 포함하는 더 높은 사회 조직으로 성장했다.
1955 79:8.16 And so the ancient civilization of the yellow race has persisted down through the centuries. It is almost forty thousand years since the first important advances were made in Chinese culture, and though there have been many retrogressions, the civilization of the sons of Han comes the nearest of all to presenting an unbroken picture of continual progression right on down to the times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mechanical and religious developments of the white races have been of a high order, but they have never excelled the Chinese in family loyalty, group ethics, or personal morality.
2000 79:8.16 그래서 황인종의 고대 문명은 여러 세기를 통해서 지속해 왔다. 중국 문화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진보가 있은 지 거의 4만 년이 된다. 비록 후퇴가 여러 번 있었으나, 한(漢)의 아들들의 문명은 20세기 시대에 바로 이르기까지, 계속 진보하는 단절되지 않은 그림을 어느 것보다 가장 가깝게 제시한다. 백인 종족의 기계 및 종교의 발전은 높은 수준이었으나, 그들은 결코 가족에 대한 충성심, 집단 윤리, 또는 개인의 도덕성 면에서 중국인을 뛰어넘은 적이 없다.
2001 CM 79:8.16 그리하여 고대 황인종 문명은 여러 세기 동안 계속 전해 내려왔다. 중요한 처음 발전이 중국인 문명에 발생된 이래, 거의 4만 년이 지났고, 여러 차례 퇴보 과정이 있었지만, 한의 아들들이 세운 문명은 20세기 시대까지 내려오는, 흠없는 계속적인 진행 상황을 보여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전해지고 있다. 백인종의 기계적 및 종교적 발전은 높은 수준이었으나, 가족 충성심이나 집단 윤리 또는 개인의 도덕성 면에서는 중국인보다 뛰어난 적이 없었다.
2007 URKA 79:8.16 그리하여 황색 인종의 고대 문명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내려오면서 지속되어 왔다. 최초의 중요한 발전이 중국 문명에서 발생된 이래 거의 40,000년이 지났으며, 여러 차례 퇴보의 과정이 있었지만, 한의 아들들이 세운 문명은 20세기 시대까지 내려오는 계속적인 진보에 대한 온전한 그림을 보여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전해지고 있다. 백색 인종들의 기계적인 발전과 종교적인 발전이 하나의 높은 체제를 이룩하고는 있지만, 가족의 충성심이나 집단적 윤리 또는 개인적 도덕성에 있어서는 중국인보다 뛰어난 적이 없었다.
2025 79:8.16 그래서 황인종의 고대 문명은 여러 세기를 통해서 지속해 왔다. 중국 문화에서 처음으로 중요한 진보가 있은 지 거의 4만 년이 된다. 비록 후퇴가 여러 번 있었으나, 한(漢)의 아들들의 문명은 20세기 시대에 바로 이르기까지, 계속 진보하는 단절되지 않은 그림을 어느 것보다 가장 가깝게 제시한다. 백인 종족의 기계 및 종교의 발전은 높은 수준이었으나, 그들은 결코 가족에 대한 충성심, 집단 윤리, 또는 개인의 도덕성 면에서 중국인을 뛰어넘은 적이 없다.
1955 79:8.17 This ancient culture has contributed much to human happiness; millions of human beings have lived and died, blessed by its achievements. For centuries this great civilization has rested upon the laurels of the past, but it is even now reawakening to envision anew the transcendent goals of mortal existence, once again to take up the unremitting struggle for never-ending progress.
2000 79:8.17 이 옛 문화는 인간의 행복에 많이 기여했다. 수백만의 인간이 살다가 죽었고, 그 문화의 업적으로 복을 받았다. 몇 세기 동안 이 위대한 문명은 지난날의 월계관에 기대고 있었지만, 지금도 필사 존재의 초월 목표를 새로이 그려 보려고, 끝없는 진보를 위하여 쉴새없는 투쟁을 또 한 번 시작하려고 다시 깨어나고 있다.
2001 CM 79:8.17 이런 고대 문화는 인간의 행복에 많이 기여했으며;수많은 인간이 그 업적으로 혜택을 입으면서 살다가 죽었다. 이 위대한 문명은, 수세기 동안 과거에 얻었던 명예로 만족해왔지만, 필사자 실존의 초월적 목표를 새롭게 계획하기 위하여, 즉 영원한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다시 한 번 시작하기 위하여 지금도 각성하고 있다.
2007 URKA 79:8.17 이러한 고대의 문화는 인간의 행복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수많은 인간 존재들이 그 업적에 의해서 혜택을 받으면서 살다가 죽었다. 이 위대한 운명은 수세기 동안 과거에 얻었던 명예로 만족해 왔지만, 인간 존재의 초월적인 목표를 새롭게 계획하기 위하여, 영원한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다시 한 번 시작하기 위하여 지금도 각성을 하고 있다.
2025 79:8.17 이 옛 문화는 인간의 행복에 많이 기여했다. 수백만의 인간이 살다가 죽었고, 그 문화의 업적으로 복을 받았다. 몇 세기 동안 이 위대한 문명은 지난날의 월계관에 기대고 있었지만, 지금도 필사 존재의 초월 목표를 새로이 그려 보려고, 끝없는 진보를 위하여 쉴 사이 없는 투쟁을 또 한 번 시작하려고 다시 깨어나고 있다.
2000 79:8.18 [네바돈의 한 천사장이 발표했다.]
2001 CM 79:8.18 [네바돈의 한 천사장이 제시했음.]
2007 URKA 79:8.18 [네바돈의 천사장에 의해서 제시되었음]
2025 79:8.18 [네바돈의 한 천사장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