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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THE SECOND PREACHING TOUR
제 149 편두 번째 전도 여행
제149편: 2차 전도여행
제 149 편: 두 번째 전도 여행
두 번째 전도 여행
1955 149:0.1 THE second public preaching tour of Galilee began on Sunday, October 3, A.D. 28, and continued for almost three months, ending on December 30. Participating in this effort were Jesus and his twelve apostles, assisted by the newly recruited corps of 117 evangelists and by numerous other interested persons. On this tour they visited Gadara, Ptolemais, Japhia, Dabaritta, Megiddo, Jezreel, Scythopolis, Tarichea, Hippos, Gamala, Bethsaida-Julias, and many other cities and villages.
2000 149:0.1 갈릴리에서 두 번째 대중 전도 여행은 서기 28년 10월 3일 일요일에 시작되었고 거의 석 달 동안 계속되어 12월 30일에 끝났다. 이 노력에는 예수와 열두 사도가 참여했고 새로 모집한 117명의 전도사 집단, 그리고 관심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이 여행에서 가다라ㆍ프톨레마이스ㆍ야피아, 다바리타ㆍ메기도ㆍ예즈릴, 스키토폴리스ㆍ타리케아ㆍ히포, 가말라ㆍ벳세다 줄리아스, 그리고 기타 여러 도시와 마을을 방문했다.
2001 CM 149:0.1 갈릴리에서 2차 대중 전도여행은, 서기 28년 10월 3일 일요일에 시작됐고, 세 달 동안 계속되다가, 12월 30일에 끝났다. 예수와 열두 사도는, 새로 뽑은 117명의 전도자 단체와, 수많은 다른 관심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 일을 진행했다. 그들은 이 여행을 통해서, 가다라, 프톨레마이스, 야피아, 다바리따, 므깃도, 에즈릴, 스키토폴리스, 다리키아, 힙보, 가말라, 벳새다-유리아, 그리고 기타 여러 도시와 마을을 방문했다.
2007 URKA 149:0.1 갈릴리에서의 두 번째 대중 설교 여행은 서기 28년 10월 3일 일요일에 시작되어 거의 석 달 동안을 계속하여 12월 30일에 끝났다. 예수와 그의 열두 사도들은 새로 뽑은 117명의 전도자 무리단과 관심을 가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받으며, 이번 노력에 참여하였다. 이 여행에서 그들은 가다라, 프톨레마이스, 야피아, 다바리타, 메기도, 예즈릴, 스키토 폴리스, 타리케아, 히포, 가말라, 벳새다-줄리아스, 그리고 많은 다른 도시들과 마을들을 방문하였다.
2025 149:0.1 갈릴리에서 두 번째 대중 전도 여행은 서기 28년 10월 3일 일요일에 시작되었고 거의 석 달 동안 계속되어 12월 30일에 끝났다. 이 노력에는 예수와 열두 사도가 참여했고 새로 모집한 117명의 전도사 집단, 그리고 관심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이 여행에서 가다라ㆍ프톨레마이스ㆍ야피아, 다바리타ㆍ메기도ㆍ예즈릴, 스키토폴리스ㆍ타리케아ㆍ히포, 가말라ㆍ벳세다 줄리아스, 그리고 기타 여러 도시와 마을을 방문했다.
1955 149:0.2 Before the departure on this Sunday morning Andrew and Peter asked Jesus to give the final charge to the new evangelists, but the Master declined, saying that it was not his province to do those things which others could acceptably perform. After due deliberation it was decided that James Zebedee should administer the charge. At the conclusion of James’s remarks Jesus said to the evangelists: “Go now forth to do the work as you have been charged, and later on, when you have shown yourselves competent and faithful, I will ordain you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2000 149:0.2 이 일요일 아침에 떠나기 전에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에게 새 전도사들에게 마지막 책임을 맡기는 말씀을 부탁했으나 예수는 남들이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직분이 아니라 하면서 물리쳤다. 마땅한 검토를 거친 뒤에, 야고보 세배대가 책임 지우는 선서를 시행하기로 결정이 내렸다. 야고보의 논평이 끝났을 때 예수는 전도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떠나서 너희가 책임을 맡은 대로 일하러 떠나라, 나중에 너희가 능력과 충성심이 있음을 보였을 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도록 너희를 세우리라.”
2001 CM 149:0.2 이 일요일 아침에 떠나기 전에, 새 전도자들에게 목적에 관한 훈시를 말씀해 달라고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께 요청했으나, 주님은 사양하면서,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일은 자신의 직무가 아니라고 말씀했다. 충분히 심의한 끝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훈시를 맡기로 결정했다. 야고보의 말이 결론에 이르자, 예수께서 전도자들에게 말씀했다:“너희는 나가서 자신이 맡은 업무를 행하라, 그리고 나중에, 너희가 스스로 자격 있고 신실하다는 것을 보이면, 그때 천국 복음을 전파하도록 너희를 임명하겠다.”
2007 URKA 149:0.2 이 일요일 아침 떠나기에 앞서, 안드레와 베드로가 예수에게 새 전도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주(主)는 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행할 수 있는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자기 몫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충분한 토의 끝에 야고보 세베대가 그 임무를 맡아서 관리-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야고보의 말이 결론에 이를 때에 예수가 전도자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너희가 나가서 너희에게 맡겨진 일을 행하라. 나중에 너희가 너희 자신의 유능함과 충실함을 보여주었을 때, 내가 그때 너희에게 왕국 복음을 전도하도록 성직-임명을 할 것이다.”
2025 149:0.2 이 일요일 아침에 떠나기 전에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에게 새 전도사들에게 마지막 책임을 맡기는 말씀을 부탁했으나 예수는 남들이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의 직분이 아니라 하면서 물리쳤다. 마땅한 검토를 거친 뒤에, 야고보 세배대가 책임 지우는 선서를 시행하기로 결정이 내렸다. 야고보의 논평이 끝났을 때 예수는 전도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떠나서 너희가 책임을 맡은 대로 일하러 떠나라, 나중에 너희가 능력과 충성심이 있음을 보였을 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도록 너희를 세우리라.”
1955 149:0.3 On this tour only James and John traveled with Jesus.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each took with them about one dozen of the evangelists and maintained close contact with them while they carried on their work of preaching and teaching. As fast as believers were ready to enter the kingdom, the apostles would administer baptism. Jesus and his two companions traveled extensively during these three months, often visiting two cities in one day to observe the work of the evangelists and to encourage them in their efforts to establish the kingdom. This entire second preaching tour was principally an effort to afford practical experience for this corps of 117 newly trained evangelists.
2000 149:0.3 이 여행에는 오직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났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저마다 전도사를 열두 명쯤 데리고 갔으며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나가는 동안 그들과 밀접하게 연락을 유지했다. 신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자마자 사도들이 세례를 주곤 하였다. 예수와 두 동반자는 이 석 달 동안 널리 여행했다. 전도사들의 일을 지켜보고 하늘나라를 세우려는 노력을 격려하느라고 때때로 하루에 두 도시를 방문했다. 이 둘째 전도 여행 전부가 주로, 새로 훈련받은 이 전도사 117명의 무리를 위하여 실용적 경험을 마련해 주려는 노력이었다.
2001 CM 149:0.3 이번 여행에서는 야고보와 요한만이 예수와 함께 이동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다른 사도들은 각각 약 열두 명에 달하는 전도자를 함께 데리고 다녔으며,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했다. 사도들은, 신자들이 천국으로 들어올 준비가 되는 즉시 세례를 베풀곤 했다. 예수와 두 동행자는 이 세 달 동안 광범하게 여행했는데, 때로는 하루에 두 도시를 방문하면서 전도자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천국을 건설하려고 애쓰는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 2차 전도여행 전체는 주로, 새로 훈련받은 117명의 이 전도자 단체에게 실질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2007 URKA 149:0.3 이 여행에서는 단지 야고보와 요한만이 예수와 함께 여행하였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각각은 약 열두 명에 달하는 전도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한편으로는 전도하고 가르치는 그들의 일을 수행하는 동안에, 그들과 가까운 접촉을 유지하였다. 신자들이 왕국으로 들어올 준비가 되자마자, 사도들은 세례를 실시하곤 하였다. 예수와 그의 두 동행자들은 이 석 달 동안 광범위하게 여행하였다. 그들은 때로는 하루에 두 도시를 방문하면서 왕국을 건설하려고 자신들의 노력을 쏟고 있는 전도자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그리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 두 번째 전도 여행은 주로 새로 훈련받은 117명의 무리단을 위하여, 실천적인 체험을 마련해주려는, 하나의 노력이었다.
2025 149:0.3 이 여행에는 오직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났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저마다 전도사를 열두 명쯤 데리고 갔으며 전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나가는 동안 그들과 밀접하게 연락을 유지했다. 신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자마자 사도들이 세례를 주곤 하였다. 예수와 두 동반자는 이 석 달 동안 널리 여행했다. 전도사들의 일을 지켜보고 하늘나라를 세우려는 노력을 격려하느라고 때때로 하루에 두 도시를 방문했다. 이 둘째 전도 여행 전부가 주로, 새로 훈련받은 이 전도사 117명의 무리를 위하여 실용적 경험을 마련해 주려는 노력이었다.
1955 149:0.4 Throughout this period and subsequently, up to the time of the final departure of Jesus and the twelve for Jerusalem, David Zebedee maintained a permanent headquarters for the work of the kingdom in his father’s house at Bethsaida. This was the clearinghouse for Jesus’ work on earth and the relay station for the messenger service which David carried on between the workers in various parts of Palestine and adjacent regions. He did all of this on his own initiative but with the approval of Andrew. David employed forty to fifty messengers in this intelligence division of the rapidly enlarging and extending work of the kingdom. While thus employed, he partially supported himself by spending some of his time at his old work of fishing.
2000 149:0.4 이 기간 내내, 그리고 그 뒤에 예수와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침내 떠날 때까지, 다윗 세베대는 벳세다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하늘나라 일을 위하여 영구 본부를 유지했다. 여기가 땅에서 예수의 일을 위한 정보 교환소였고 사자들의 봉사를 위하여 연결하는 역(驛)이었으며, 다윗은 팔레스타인의 여러 곳과 인접 지역에 있는 일꾼들 사이에서 이 봉사를 계속하였다. 그는 이것을 모두 솔선해서, 그러나 안드레의 승인을 얻어서 했다. 다윗은 급히 커지고 뻗어나가는 하늘나라 사무의 정보 분과에서 40에서 50명의 사자(使者)를 고용했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다윗은 예전의 고기잡이 일에 얼마큼 시간을 써서 어느 정도 자신을 부양했다.
2001 CM 149:0.4 이 기간 내내 계속해서, 그리고 예수와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을 향해 마침내 출발할 때까지, 다윗 세베대는 벳새다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천국 업무를 위한 상설 본부를 꾸려나갔다. 이곳은 이 세상에서 예수의 업무를 위한 정보 교환소였고, 다윗이 팔레스틴의 여러 지역과 주변 지역들 사이에 진행했던 심부름꾼 봉사를 위한 교대 장소였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그러나 안드레의 승인을 얻어서 행했다. 다윗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확장되는 천국 업무에서 이 정보 분야에 40에서 50명의 심부름꾼을 고용했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동안, 다윗은 예전의 고기잡이 일에도 시간을 할애하여, 일부나마 경비를 충당했다.
2007 URKA 149:0.4 이 기간과 그리고 뒤이어진 기간을 두루 통하여, 예수와 열두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 최종 출발할 그때까지 내내, 다윗 세베대는 벳세다에 있는 그의 아버지 집에 왕국의 일을 위한 상설 본부를 만들어 유지하였다. 이것은 이 땅에서의 예수의 일을 위한 정보교환 장소였고 그리고 다윗이 팔레스타인의 다양한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서 일하는 일꾼들 사이에서 수행한, 메신저 봉사를 위한 중계 정거장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안드레의 승인을 얻어서 했지만, 그 자신이 앞장서서 행하였다. 다윗은 급속도로 확장되고 확대되는 왕국 일의 이러한 정보 부문에서 일할, 40명에서 50명 정도의 메신저들을 고용하였다. 그는 그의 오래된 고기잡이 일에 자신의 시간을 어느 정도 사용함으로써, 그렇게 고용하는 비용을 부분적으로 스스로 충당하였다.
2025 149:0.4 이 기간 내내, 그리고 그 뒤에 예수와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침내 떠날 때까지, 다윗 세베대는 벳세다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하늘나라 일을 위하여 영구 본부를 유지했다. 여기가 땅에서 예수의 일을 위한 정보 교환소였고 사자들의 봉사를 위하여 연결하는 역(驛)이었고, 다윗은 팔레스타인의 여러 곳과 인접 지역에 있는 일꾼들 사이에서 이 봉사를 계속하였다. 그는 이것을 모두 솔선해서, 그러나 안드레의 승인을 얻어서 했다. 다윗은 급히 커지고 뻗어 나가는 하늘나라 사무의 정보 분과에서 40에서 50명의 사자(使者)를 고용했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다윗은 예전의 고기잡이 일에 얼마큼 시간을 써서 어느 정도 자신을 부양했다.
1. THE WIDESPREAD FAME OF JESUS
1. 널리 알려진 예수의 이름
1. 널리 퍼진 예수의 명성
1. 널리-퍼진 예수의 명성
1. 널리 알려진 예수의 이름
1955 149:1.1 By the time the camp at Bethsaida had been broken up, the fame of Jesus, particularly as a healer, had spread to all parts of Palestine and through all of Syria and the surrounding countries. For weeks after they left Bethsaida, the sick continued to arrive, and when they did not find the Master, on learning from David where he was, they would go in search of him. On this tour Jesus did not deliberately perform any so-called miracles of healing. Nevertheless, scores of afflicted found restoration of health and happiness as a result of the reconstructive power of the intense faith which impelled them to seek for healing.
2000 149:1.1 벳세다의 캠프가 해산될 때가 되자, 예수의 이름은 특히 병 고치는 자로서, 팔레스타인의 구석구석, 그리고 시리아와 그 주위의 여러 지역 전체를 통해서 알려졌다. 그들이 벳세다를 떠난 뒤에 몇 주 동안, 병자들이 계속 도착했다. 주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다윗으로부터 그가 어디에 계신가 알아내고서 예수를 찾으러 가곤 하였다. 이 여행에서 예수는 병 고치는 기적이라 부르는 일을 일부러 전혀 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자 몇십 명이 병 고침을 찾게 한 맹렬한 믿음의 치유 능력의 결과로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
2001 CM 149:1.1 벳새다 야영지가 해산될 무렵에는, 예수의 명성, 특히 치유자로서의 명성이, 팔레스틴 전 지역은 물론 시리아와 주변의 모든 지방에 퍼졌다. 그들이 벳새다를 떠난 후에도 여러 주 동안 병자들이 계속 거기로 왔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에는, 어디에 계신지를 다윗에게서 알아낸 후에 주님을 찾아가곤 했다. 예수께서는 이 여행에서, 소위 기적이라고 불리는 치유를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난당하는 수십 명이, 치유를 추구하도록 자신을 재촉하는 끈질긴 신앙에서 나오는 재건하는 능력의 결과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
2007 URKA 149:1.1 벳세다의 야영지가 해산될 무렵에는 예수의 명성, 특히 치유자로서의 명성이 팔레스타인 모든 지역과 그리고 시리아와 그 주위의 모든 지방들에 두루 퍼져 나갔다. 그들이 벳세다를 떠난 후 몇 주 동안에도 병자들이 계속하여 그곳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그들이 주(主)를 찾지 못하자, 다윗으로부터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는 그를 찾아 나서곤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예수는 의도적으로 이른바 치유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던 수십 명이, 치료를 간구하도록 그들을 재촉하여 몰아간 강렬한 신앙의 회복하는 힘의 결과에 따라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게 되었다.
2025 149:1.1 벳세다의 캠프가 해산될 때가 되자, 예수의 이름은 특히 병 고치는 자로서, 팔레스타인의 구석구석, 그리고 시리아와 그 주위의 여러 지역 전체를 통해서 알려졌다. 그들이 벳세다를 떠난 뒤에 몇 주 동안, 병자들이 계속 도착했다. 주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다윗으로부터 그가 어디에 계신가 알아내고서 예수를 찾으러 가곤 하였다. 이 여행에서 예수는 병 고치는 기적이라 부르는 일을 일부러 전혀 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자 몇십 명이 병 고침을 찾게 한 맹렬한 믿음의 치유 능력의 결과로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
1955 149:1.2 There began to appear about the time of this mission—and continued throughout the remainder of Jesus’ life on earth—a peculiar and unexplained series of healing phenomena. In the course of this three months’ tour more than one hundred men, women, and children from Judea, Idumea, Galilee, Syria, Tyre, and Sidon, and from beyond the Jordan were beneficiaries of this unconscious healing by Jesus and, returning to their homes, added to the enlargement of Jesus’ fame. And they did this notwithstanding that Jesus would, every time he observed one of these cases of spontaneous healing, directly charge the beneficiary to “tell no man.”
2000 149:1.2 이 사명을 수행하던 무렵에―그리고 땅에서 예수의 여생 동안 내내―특이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 현상이 계속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석 달 동안 여행하는 과정에서 유대ㆍ이두미아ㆍ갈릴리ㆍ시리아ㆍ티레ㆍ시돈으로부터, 또 요단강 건너로부터, 1백 명이 넘는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의 이러한 무의식 치유의 수혜자였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예수의 이름을 더욱 퍼뜨렸다. 뜻밖에 고침받은 이 경우를 지켜볼 때마다, 예수가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수혜자들에게 직접 당부하곤 했는데도 그리하였다.
2001 CM 149:1.2 이 사명을 수행하던 무렵에 --그리고 이 땅에서 예수의 나머지 생애 내내 계속-- 이상하고 설명되지 않는 일련의 치유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세 달 동안의 여행 도중에, 유대지방, 이두메, 갈릴리, 시리아, 두로, 시돈, 및 요단강 건너편 지방에서 온 100명 이상의 남녀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의 이런 무의식적 치유를 받았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예수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그리고 자생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혜택을 입은 자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예수께서 직접 지시했음에도, 그들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2007 URKA 149:1.2 이 사명활동의 시기 무렵에─그리고 예수의 나머지 땅에서 살았던 나머지 기간을 두루 통하여 계속되는─특이하고 그리고 설명이 되지 않는 일련의 치유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석 달 동안의 여행의 과정에서 유대, 이두미아, 갈릴리, 시리아, 티레, 시돈 그리고 요단강 너머에 있는 지방에서 온 100명이 넘는 남자들,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이 예수로 인하여 일어난 이 무의식적인 치유의 혜택을 받았고. 그리고는 그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예수의 명성이 확장되는 데에 힘을 더했다. 예수가 이들 저절로 일어난 치유의 경우를 관찰할 때마다 매번 혜택을 받은 자들에게 직접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행했다.
2025 149:1.2 이 사명을 수행하던 무렵에 ― 그리고 땅에서 예수의 여생 동안 내내 ― 특이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 현상이 계속하여 나타나기 시작했다[1]. 이 석 달 동안 여행하는 과정에서 유대ㆍ이두미아ㆍ갈릴리ㆍ시리아ㆍ투로ㆍ시돈으로부터, 또 요단 강 건너로부터, 1백 명이 넘는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의 이러한 무의식 치유의 수혜자였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예수의 이름을 더욱 퍼뜨렸다. 뜻밖에 고침받은 이 경우를 지켜볼 때마다, 예수가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수혜자들에게 직접 당부하곤 했는데도 그리하였다
[2].
1955 149:1.3 It was never revealed to us just what occurred in these cases of spontaneous or unconscious healing. The Master never explained to his apostles how these healings were effected, other than that on several occasions he merely said, “I perceive that power has gone forth from me.” On one occasion he remarked when touched by an ailing child, “I perceive that life has gone forth from me.”
2000 149:1.3 뜻밖에, 즉 의식하지 않으면서 고치는 이 여러 경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계시받은 적이 없다. 몇몇 경우에 단지 “권능이 내게서 나갔음을 내가 깨닫노라” 말한 것 외에 주는 사도들에게 어떻게 이 치유가 일어났는가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 어느 아픈 아이가 그를 만졌을 때 말씀하였다: “생명이 내게서 나갔음을 내가 깨닫노라.”
2001 CM 149:1.3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즉 무의식적인 이런 치유의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전혀 계시되지 않았다. 주님은 이런 치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사도들에게 한 번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다만 몇 번의 경우에, “권능이 나에게서 나간 줄을 내가 안다”고 말씀했을 뿐이다. 한번은, 병든 아이가 그에게 손을 대자, 주님은 “생기{生氣}가 나에게서 나간 줄을 내가 안다”고 말씀했다.
2007 URKA 149:1.3 이러한 저절로 곧 무의식적으로 치유되는 사례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결코 계시되지 않았다. 몇 번의 경우에서 단지 “나로부터 힘이 나간 줄을 내가 감지한다.”라고 주(主)가 말씀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는 결코 이러한 치유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사도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 한번 어떤 병약한 아이가 그에게 손을 대었을 때 그가 언급하였다. “생명이 나로부터 나갔다는 것을 내가 감지한다.
1955 149:1.4 In the absence of direct word from the Master regarding the nature of these cases of spontaneous healing, it would be presuming on our part to undertake to explain how they were accomplished, but it will be permissible to record our opinion of all such healing phenomena. We believe that many of these apparent miracles of healing, as they occurred in the course of Jesus’ earth ministry, were the result of the coexistence of the following three powerful, potent, and associated influences:
2000 149:1.4 이러한 의식하지 않고 치유하는 사례들의 성질에 관하여 주로부터 직접 말씀이 없는 마당에 우리 편에서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졌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는 주제넘을 터이지만, 모든 그런 치유 현상에 대하여 우리의 의견을 기록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병 고치는 기적으로 보이는 이 일들은, 땅에서 예수가 봉사를 베푸는 과정에서 일어난 바와 같이, 강력하고 유효하고 관련된 다음 세 가지 영향이 공존한 결과였다고 우리는 믿는다:
2001 CM 149:1.4 이런 자연발생적 치유의 본질에 관해 주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었는지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제넘은 일인 줄 알지만, 그런 모든 치유 현상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기록하는 것은 허용될 것이다. 우리가 믿기에, 예수의 이 세상 사역 도중에 일어났던, 이런 외견상 치유 기적 가운데 다수는, 다음 세 가지의 강력하고 효력 있고 연합된 영향이 공존한 결과였던 것 같다:
2007 URKA 149:1.4 이러한 저절로 치유되는 사례들의 본성에 관하여 주(主)가 직접적인 아무런 말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었는지를 설명하려고 우리가 떠맡는 것은 우리에게 주제넘은 일인 줄 알고 있지만, 그러한 모든 치유의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기록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 세상 사명에서 발생했던 이러한 뚜렷한 치유의 기적은 다음 세 가지, 곧 강력한 영향력, 유력한 영향력 그리고 관계적-연합의 영향력이 공존했던 결과라고 믿는다:
2025 149:1.4 이러한 의식하지 않고 치유하는 사례들의 성질에 관하여 주로부터 직접 말씀이 없는 마당에 우리 편에서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졌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는 주제넘을 터이지만, 모든 그런 치유 현상에 대하여 우리의 의견을 기록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병 고치는 기적으로 보이는 이 일들은, 땅에서 예수가 봉사를 베푸는 과정에서 일어난 바와 같이, 강력하고 유효하고 관련된 다음 세 가지 영향이 공존한 결과였다고 우리는 믿는다:
1955 149:1.5 1. The presence of strong, dominant, and living faith in the heart of the human being who persistently sought healing, together with the fact that such healing was desired for its spiritual benefits rather than for purely physical restoration.
2000 149:1.5 1. 끈질기게 치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강하고 지배적이고 생생한 믿음이 있는 것. 아울러 순전히 육체의 회복보다 오히려 그 영적 이익 때문에 그러한 치유가 바람직하다는 사실.
2001 CM 149:1.5 1. 그런 치유가 순수한 육체적 회복보다는 영적 혜택을 열망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끊임없이 치유 받기를 추구하는 인간 심성에 강하고 우세하고 생생한 신앙이 현존함.
2007 URKA 149:1.5 1. 끈질기게 치유받기를 추구하는, 그리고 그러한 치유가 순수하게 육체적인 회복보다는 오히려 그로 인한 영적 은혜를 위해 갈망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추구하는 그러한 인간 존재의 가슴 안에 있는 강하고 지배적이고, 살아있는 신앙의 현존.
2025 149:1.5 1. 끈질기게 치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강하고 지배적이고 생생한 믿음이 있는 것. 아울러 순전히 육체의 회복보다 오히려 그 영적 이익 때문에 그러한 치유가 바람직하다는 사실.
1955 149:1.6 2. The existence, concomitant with such human faith, of the great sympathy and compassion of the incarnated and mercy-dominated Creator Son of God, who actually possessed in his person almost unlimited and timeless creative healing powers and prerogatives.
2000 149:1.6 2. 그러한 인간의 믿음과 동시에, 육신화되고 자비에 지배된, 하나님의 창조 아들의 큰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 그는 몸 안에 거의 한없고 시간을 초월하는 창조적 치유 권능과 특권을 실제로 소유했다.
2001 CM 149:1.6 2. 인간의 그런 신앙과 공존하는, 거의 무제한적이고 무시간적인 창조적 치유 능력과 특권을 그의 인격자 안에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육신화하고 자비가-지배하는 하나님의 창조주 아들의 큰 동정심과 연민이 실존함.
2007 URKA 149:1.6 2. 그러한 인간의 신앙과 동시에 함께 하는, 거의 무제한적이고 무시간적인 창조적 치유의 능력들과 특권들을 그의 개인 안에 실재로 소유하고 있는, 육신화하고 자비에-지배된 하느님의 창조자 아들의 커다란 동정심과 연민의 실존.
2025 149:1.6 2. 그러한 인간의 믿음과 동시에, 육신화되고 자비에 지배된, 하나님의 창조 아들의 큰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 그는 몸 안에 거의 한없고 시간을 초월하는 창조적 치유 권능과 특권을 실제로 소유했다.
1955 149:1.7 3. Along with the faith of the creature and the life of the Creator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this God-man was the personified expression of the Father’s will. If, in the contact of the human need and the divine power to meet it, the Father did not will otherwise, the two became one, and the healing occurred unconsciously to the human Jesus but was immediately recognized by his divine nature. The explanation, then, of many of these cases of healing must be found in a great law which has long been known to us, namely, What the Creator Son desires and the eternal Father wills IS.
2000 149:1.7 3. 인간의 믿음과 창조자의 생명과 함께, 하나님인 이 사람이 아버지의 뜻이 인격으로 표현된 것임을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필요와 이를 채우는 신의 권능이 접촉할 때 아버지가 달리 뜻하지 않으면, 그 둘이 하나가 되고 인간 예수가 의식하지 않고서 치유가 일어났지만, 즉시 신다운 성품이 이를 인식했다. 그러면 병을 고친 이 많은 사례(事例)의 설명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알려진 큰 법칙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렇다: 창조 아들이 바라고 영원한 아버지가 뜻하시는 것은 동시에 존재한다.
2001 CM 149:1.7 3. 피조물의 신앙과 창조자의 생애와 더불어, 이 하나님-사람은 아버지 뜻이 인격화된 표현이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한다. 인간의 필요와 이를 채워주는 신의 권능이 접촉할 때, 아버지께서 다르게 뜻하시지 않으면, 그 둘이 하나가 됐고, 인간 예수께는 치유가 무의식적으로 발생됐지만, 그의 신성한 본성에게는 즉각 인식됐다. 다수의 이런 치유에 대한 설명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알려진 위대한 법칙, 즉 창조주 아들이 원하고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것은 그대로 이뤄진다는 법칙에서 발견할 수밖에 없다.
2007 URKA 149:1.7 3. 창조체의 신앙과 창조자의 일생이 함께 있는 것과 더불어, 이 하느님-사람이 아버지의 뜻의 개인화(個人化)된 표현이라는 것도 또한 주목해야만 한다. 만약 인간 필요와 그에 부합하는 신성한 능력이 접촉을 이루고 있다면, 아버지가 달리 뜻하는 것이 없을 때는 그 둘은 하나가 되고, 그러면 치유가 인간 예수에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났고, 한편 그것은 그의 신성한 본성에 의하여 즉각적으로 인지되었다. 이러한 많은 치유의 사례들에 대한 설명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알려진 하나의 위대한 법칙, 창조자 아들이 원하고 그리고 영원한 아버지가 뜻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법칙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다.
2025 149:1.7 3. 인간의 믿음과 창조자의 생명과 함께, 하나님인 이 사람이 아버지의 뜻이 인격으로 표현된 것임을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인간의 필요와 이를 채우는 신의 권능이 접촉할 때 아버지가 달리 뜻하지 않으면, 그 둘이 하나가 되고 인간 예수가 의식하지 않고서 치유가 일어났지만, 즉시 신다운 성품이 이를 인식했다. 그러면 병을 고친 이 많은 사례(事例)의 설명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알려진 큰 법칙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렇다: 창조 아들이 바라고 영원한 아버지가 뜻하시는 것은 이미 존재한다.
1955 149:1.8 It is, then, our opinion that, in the personal presence of Jesus, certain forms of profound human faith were literally and truly compelling in the manifestation of healing by certain creative forces and personalities of the universe who were at that time so intimately associated with the Son of Man. It therefore becomes a fact of record that Jesus did frequently suffer men to heal themselves in his presence by their powerful, personal faith.
2000 149:1.8 그러면 예수가 친히 계신 앞에서, 어떤 형태의 심오한 인간의 믿음은 우주의 어떤 창조 세력, 그리고 당시에 사람의 아들과 아주 밀접히 연결된 성격자들로 말미암아 치유가 나타나는 것을 글자 그대로, 참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예수는 그가 계신 앞에서 사람들이 힘찬 개인적 믿음으로 스스로 고치도록 흔히 버려두었다는 것이 기록된 사실이 된다.
2001 CM 149:1.8 우리의 의견은, 그때, 예수께서 몸소 현존하는 앞에서, 당시에 사람의 아들과 매우 가깝게 연합돼있던 어떤 창조 세력과 우주 인격체들로 말미암아 치유가 일어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심오한 인간 신앙이, 글자 그대로 그리고 정말로 있어야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주, 자신이 보는 앞에서, 병든 사람이 강렬한 개인 신앙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하셨음이, 기록된 사실대로다.
2007 URKA 149:1.8 그렇다면 우리의 의견은, 예수의 개인적 현존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인간의 심오한 신앙이, 특정한 창조적 기세와 그리고 그 당시에 사람의 아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우주의 개인성들에 의한 치유의 현시활동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그리고 참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자주,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강력한, 개인적 신앙에 의해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했다는 기록은 하나의 사실이 된다.
2025 149:1.8 그러면 예수가 친히 계신 앞에서, 어떤 형태의 심오한 인간의 믿음은 우주의 어떤 창조 세력, 그리고 당시에 사람의 아들과 아주 밀접히 연결된 성격자들로 말미암아 치유가 나타나는 것을 글자 그대로, 참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예수는 그가 계신 앞에서 사람들이 힘찬 개인적 믿음으로 스스로 고치도록 흔히 버려두었다는 것이 기록된 사실이 된다.
1955 149:1.9 Many others sought healing for wholly selfish purposes. A rich widow of Tyre, with her retinue, came seeking to be healed of her infirmities, which were many; and as she followed Jesus about through Galilee, she continued to offer more and more money, as if the power of God were something to be purchased by the highest bidder. But never would she become interested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it was only the cure of her physical ailments that she sought.
2000 149:1.9 다른 여러 사람은 온전히 이기적 목적으로 치유받기를 추구했다. 티레의 어느 부유한 과부는 수행원들과 함께 질병을 고침받으려고 왔는데,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갈릴리를 통해서 여기저기 예수를 따라다니는 동안, 마치 하나님의 권능이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살 물건인 듯, 점점 더 많은 돈을 계속 내밀었다. 그러나 한 번도 하늘나라의 복음을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얻고자 한 것은 오직 육체의 병의 치유였다.
2001 CM 149:1.9 다른 많은 사람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치유를 추구했다. 두로의 부유한 과부가 시종들과 함께 질병을 치유 받으러 왔었는데, 그에게는 여러 가지 병이 있었으며;가장 돈을 많이 낸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을 살 수 있다는 듯이, 그 여자는 갈릴리 지방 여기저기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계속 내밀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천국 복음을 한 번도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으며;그 여자가 추구한 것은 육신의 질병 치료뿐이었다.
2007 URKA 149:1.9 다른 많은 이들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치유를 구하였다. 티레의 부유한 과부는 자기 시종들과 함께 그녀의 병을 고치러 왔었는데,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의 병이 있었다. 그녀는 가장 돈을 많이 내는 자가 하느님의 힘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갈릴리 지방의 여기저기를 두루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점점 더 많은 돈을 계속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왕국 복음에는 결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육체적 질병들의 치료였기 때문이다.
2025 149:1.9 다른 여러 사람은 온전히 이기적 목적으로 치유 받기를 추구했다. 투로의 어느 부유한 과부는 수행원들과 함께 질병을 고침받으려고 왔는데,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갈릴리를 통해서 여기저기 예수를 따라다니는 동안, 마치 하나님의 권능이 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살 물건인 듯, 점점 더 많은 돈을 계속 내밀었다. 그러나 한 번도 하늘나라의 복음을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얻고자 한 것은 오직 육체의 병의 치유였다.
2. ATTITUDE OF THE PEOPLE
2. 사람들의 태도
2. 사람들의 태도
2. 사람들의 태도
2. 사람들의 태도
1955 149:2.1 Jesus understood the minds of men. He knew what was in the heart of man, and had his teachings been left as he presented them, the only commentary being the inspired interpretation afforded by his earth life, all nations and all religions of the world would speedily have embraced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well-meant efforts of Jesus’ early followers to restate his teachings so as to make them the more acceptable to certain nations, races, and religions, only resulted in making such teachings the less acceptable to all other nations, races, and religions.
2000 149:2.1 예수는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가 알았다. 그의 가르침이 그가 제시한 대로 간직되었더라면, 그에 관한 유일한 해설(解說)이 땅에서 사신 그의 생애가 허락하는 해석, 영감을 주는 해석이므로, 세상의 모든 민족과 종교가 빨리 하늘나라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초기 추종자들이 특정한 민족ㆍ종족ㆍ종교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려고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의도는 좋았지만, 다만 그러한 가르침을 모든 다른 민족ㆍ종족ㆍ종교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2001 CM 149:2.1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으며, 그의 교훈이 그가 제시한대로 간직됐더라면, 그에 관한 유일한 해설서가 그의 이 세상 생애로 인해 제공된 영감 어린 설명일 것이므로, 세상의 모든 민족과 종교가 신속하게 천국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예수의 교훈을, 특정한 민족과 종족과 종교가 받아들이기 쉽도록 고치려고 초기에 따르던 자들이 애쓴 것은, 의도는 좋았지만, 그런 교훈을 다른 모든 민족과 종족과 종교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2007 URKA 149:2.1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납득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가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으며 그래서 그의 가르침이 그가 그들에게 제시하였던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자신의 땅에서의 일생으로 잘 갖추어서 제공된 당대의 유일한 영감 받은 해석은, 모든 민족과 세상의 모든 종교가 신속하게 왕국 복음을 끌어안도록 하였을 것이다.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이 특정한 민족, 인류, 종교에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지도록 그의 가르침을 다시 진술했던 노력은 좋은 의도였지만, 오히려 그러한 가르침들이 모든 다른 민족, 종족 그리고 종교들에게 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2025 149:2.1 예수는 사람들의 정신을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가 알았다. 그의 가르침이 그가 제시한 대로 간직되었더라면, 그에 관한 유일한 해설(解說)이 땅에서 사신 그의 생애가 허락하는 해석, 영감을 주는 해석이므로, 세상의 모든 민족과 종교가 빨리 하늘나라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초기 추종자들이 특정한 민족ㆍ종족ㆍ종교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려고 노력을 기울인 것은 의도는 좋았지만, 다만 그러한 가르침을 모든 다른 민족ㆍ종족ㆍ종교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1955 149:2.2 The Apostle Paul, in his efforts to bring the teachings of Jesus to the favorable notice of certain groups in his day, wrote many letters of instruction and admonition. Other teachers of Jesus’ gospel did likewise, but none of them realized that some of these writings would subsequently be brought together by those who would set them forth as the embodiment of the teachings of Jesus. And so, while so-called Christianity does contain more of the Master’s gospel than any other religion, it does also contain much that Jesus did not teach. Aside from the incorporation of many teachings from the Persian mysteries and much of the Greek philosophy into early Christianity, two great mistakes were made:
2000 149:2.2 사도 바울은 당대에 예수의 가르침을 특정한 집단들이 호감을 가지고 주목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는 편지를 많이 썼다. 예수의 복음을 가르치는 다른 선생들도 똑같이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것이라고 발표하려는 자들이 후일에 이 중에 더러를 수집하리라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이른바 기독교가 다른 어떤 종교보다 주의 복음을 더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예수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허다하다. 페르시아의 신비교로부터 온 많은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의 많은 것을 기독교로 끌어들인 외에도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2001 CM 149:2.2 사도 바울은, 예수의 교훈을 당시의 특정한 집단들이 호감을 갖도록 만들려고 애쓰면서, 지침과 훈계를 주는 많은 편지를 썼다. 예수의 복음을 가르쳤던 다른 선생들도 그와 비슷한 일을 했는데, 이런 글들 가운데 일부를, 예수의 교훈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이 나중에 함께 수집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주님의 복음이, 다른 종교보다는 그리스도교라고 불리는 것에 더 많이 포함돼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예수께서 가르치지 않은 것도 또한 많이 포함하고 있다. 페르시아 신비주의로부터 온 여러 교훈과 많은 그리스 철학이 초기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것 외에도,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2007 URKA 149:2.2 사도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이 그가 살던 시절에 있던 특정한 집단에게 우호적으로 주목받도록 만들려는 노력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는 편지들을 많이 썼다. 예수의 복음을 가르쳤던 다른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글들의 일부가 나중에 가서, 예수의 가르침을 체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저들에 의하여, 한 군데 모아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른바 그리스도교라고 불리는 것에 주(主)의 복음이 다른 종교에서보다는 더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예수가 가르치지 않은 것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페르시아 신비주의의 많은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의 많은 것들이 초기 그리스도교에 들어온 것 말고도, 거기에는 두 가지의 엄청난 실수가 범해졌다:
2025 149:2.2 사도 바울은 당대에 예수의 가르침을 특정한 집단들이 호감을 가지고 주목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는 편지를 많이 썼다. 예수의 복음을 가르치는 다른 선생들도 똑같이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것이라고 발표하려는 자들이 후일에 이 중에 더러를 수집하리라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이른바 기독교가 다른 어떤 종교보다 주의 복음을 더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또한 예수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허다하다. 페르시아의 신비교로부터 온 많은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의 많은 것을 기독교로 끌어들인 외에도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1955 149:2.3 1. The effort to connect the gospel teaching directly onto the Jewish theology, as illustrated by the Christian doctrines of the atonement—the teaching that Jesus was the sacrificed Son who would satisfy the Father’s stern justice and appease the divine wrath. These teachings originated in a praiseworthy effort to make the gospel of the kingdom more acceptable to disbelieving Jews. Though these efforts failed as far as winning the Jews was concerned, they did not fail to confuse and alienate many honest souls in all subsequent generations.
2000 149:2.3 1. 기독교의 속죄(贖罪) 교리가―예수가 아버지의 엄격한 응보를 만족시키고 신의 진노를 달래려고 하는 희생된 아들이라는 가르침이―보여주다시피, 복음의 가르침을 유대인의 신학(神學)과 직결시키려 하는 노력. 이 가르침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하늘나라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려고 하는 칭찬할 노력에서 생겼다. 유대인을 설득하려는 이 노력은 실패했어도, 모든 이후 세대에 많은 정직한 사람을 헛갈리게 하고 따돌리는 데 실패하지는 않았다.
2001 CM 149:2.3 1. 그리스도교의 속죄 교리가--곧 예수께서 아버지의 엄격한 공의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신의 진노를 완화시켜주는 희생양 아들이라는 가르침이-- 설명하다시피, 복음의 가르침을 유대 신학에 직접 연결시키려고 애씀. 이런 교훈은, 믿지 않는 유대인이 천국 복음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려는 갸륵한 노력에서 나왔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는 이런 노력은 실패했으나, 모든 후세 세대에서 많은 정직한 혼을 혼란시키고 따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2007 URKA 149:2.3 1. 복음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유대의 신학에 연결시키려는 노력, 곧 그리스도교의 속죄의 교리─예수가 아버지의 엄격한 공의를 만족시키고 또한 신성한 진노를 완화시키는 희생제물이 되었던 아들이라고 가르침─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왕국 복음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좀 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데에서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후의 모든 세대에서 많은 정직한 혼들을 혼동시키고 소외시키는 데에서는 실패하지 않았다.
2025 149:2.3 1. 기독교의 속죄(贖罪) 교리 ― 예수가 아버지의 엄격한 응보를 만족시키고 신의 진노를 달래려고 하는 희생된 아들이라는 가르침 ― 이 보여주다시피, 복음의 가르침을 유대인의 신학(神學)과 직결시키려 하는 노력. 이 가르침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하늘나라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려고 하는 칭찬할 노력에서 생겼다. 유대인을 설득하려는 이 노력은 실패했어도, 모든 이후 세대에 많은 정직한 사람을 헛갈리게 하고 따돌리는 데 실패하지는 않았다.
1955 149:2.4 2. The second great blunder of the Master’s early followers, and one which all subsequent generations have persisted in perpetuating, was to organize the Christian teaching so completely about the person of Jesus. This overemphasis of the personality of Jesus in the theology of Christianity has worked to obscure his teachings, and all of this has made it increasingly difficult for Jews, Mohammedans, Hindus, and other Eastern religionists to accept the teachings of Jesus. We would not belittle the place of the person of Jesus in a religion which might bear his name, but we would not permit such consideration to eclipse his inspired life or to supplant his saving message: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49:2.4 2. 주의 초기 추종자들이 저지른 둘째로 큰 잘못, 모든 후일의 세대가 영구하게 지속한 큰 잘못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아주 온통 예수라는 인물에 관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의 인격을 이렇게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그의 가르침을 가리도록 작용했고, 이 모두가 유대인ㆍ이슬람교인ㆍ힌두교인, 그리고 기타 동방(東方)의 종교인이 예수의 가르침을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수의 이름을 지닐까 싶은 종교에서 예수 본인이 차지하는 자리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그러한 배려가 영감을 받은 그의 생애가 빛을 잃게 만들거나 구원하는 그의 말씀―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임―을 대신하도록 버려두고 싶지 않다.
2001 CM 149:2.4 2. 초기에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저지른 두 번째 대단히 큰 실책, 그리고 모든 후세 세대가 지속적으로 범한 실책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아주 철저하게 예수라는 인격자에 관한 것으로 조직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예수의 인격에 관한 이런 과잉 강조가 그의 교훈을 애매하게 만들었고, 이 모든 것이, 유대인, 모하멧 교도, 힌두인, 그리고 동방의 다른 종교인들이 예수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예수의 이름을 지니고 있을 법한 종교에서 예수라는 인격자의 위치를 우리는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그런 배려가 그의 영감 어린 생애를 덮어버리거나, 그의 구원의 메시지, 즉: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것을 대신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7 URKA 149:2.4 2. 주(主)의 초기 추종자들의 두 번째의 큰 실책이자 또한 모든 후세 세대들이 영속으로 오류를 끈질기게 계속했던 것은, 너무나 완벽하게 예수의 개인에 관해서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조직화한 것이었는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예수의 개인성에 관한 이러한 지나친-강조는 오히려 그의 가르침을 모호하게 만들도록 작용했으며,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유대인, 모하멧 교도, 힌두인, 다른 동방의 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지닐지도 모르는 어떤 종교 안에서 예수의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배려가 그의 영감 어린 일생이 빛을 잃도록 만들거나 그의 구원의 메시지─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를 대신하도록 허용하고 싶지는 않다.
2025 149:2.4 2. 주의 초기 추종자들이 저지른 둘째로 큰 잘못, 모든 후일의 세대가 영구하게 지속한 큰 잘못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아주 온통 예수라는 인물에 관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의 인격을 이렇게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그의 가르침을 가리도록 작용했고, 이 모두가 유대인ㆍ이슬람교인ㆍ힌두교인, 그리고 기타 동방(東方)의 종교인이 예수의 가르침을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수의 이름을 지닐까 싶은 종교에서 예수 본인이 차지하는 자리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그러한 배려가 영감을 받은 그의 생애가 빛을 잃게 만들거나 구원하는 그의 말씀 ―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임 ― 을 대신하도록 버려두고 싶지 않다.
1955 149:2.5 The teachers of the religion of Jesus should approach other religions with the recognition of the truths which are held in common (many of which come directly or indirectly from Jesus’ message) while they refrain from placing so much emphasis on the differences.
2000 149:2.5 예수의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공통으로 지니는 진리를 인정하고서 (이 중에 많은 것이 직접ㆍ간접으로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다른 종교들에 접근해야 하며, 한편 지나치게 차이를 강조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2001 CM 149:2.5 예수의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공통으로 유지되는 진리를(많은 것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예수의 메시지에서 왔음을) 인정하면서 다른 종교에 접근하는 동시에, 차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를 삼가야한다.
2007 URKA 149:2.5 예수의 종교의 선생들은 다른 종교를 다루면서 그들의 차이점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삼가는 한편,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많은 것들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예수의 메시지에서 온) 진리를 인지하면서 접근해야만 할 것이다.
2025 149:2.5 예수의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공통으로 지니는 진리를 인정하고서 (이 중에 많은 것이 직접ㆍ간접으로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다른 종교들에 접근해야 하며, 한편 지나치게 차이를 강조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1955 149:2.6 While, at that particular time, the fame of Jesus rested chiefly upon his reputation as a healer, it does not follow that it continued so to rest. As time passed, more and more he was sought for spiritual help. But it was the physical cures that made the most direct and immediate appeal to the common people. Jesus was increasingly sought by the victims of moral enslavement and mental harassments, and he invariably taught them the way of deliverance. Fathers sought his advice regarding the management of their sons, and mothers came for help in the guidance of their daughters. Those who sat in darkness came to him, and he revealed to them the light of life. His ear was ever open to the sorrows of mankind, and he always helped those who sought his ministry.
2000 149:2.6 바로 그 시절에, 예수의 이름은 주로 병 고치는 자로서 얻은 평판에 달려 있었지만 계속 그랬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자, 갈수록 더욱 사람들이 영적 도움을 받으려고 그를 찾았다. 그러나 서민들에게 아주 직접, 즉시 호소한 것은 육체의 치유였다. 도덕적으로 종살이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찾았고 그는 변함없이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 아버지들은 아들을 다루는 것에 관하여 조언(助言)을 구했고, 어머니들은 딸을 지도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고 왔다.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를 찾아 왔고 그는 생명의 빛을 드러냈다. 귀는 언제라도 인류의 슬픔을 들으려고 열려 있었고, 그는 언제나 보살핌을 찾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2001 CM 149:2.6 그런 특이한 시기에, 예수의 명성은 주로 치유자로서의 평판에 의거했지만,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영적 도움을 구하려고 그를 찾아왔다. 그러나 일반 사람에게 아주 즉시 직접 호소한 것은 역시 육신의 치유였다. 도덕적으로 예속되고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희생자들이 더 많이 예수를 찾았으며, 그는 구원되는 길을 변함없이 그들에게 가르쳤다. 아버지들은 아들을 다루는 것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들은 딸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다. 어둠 속에 앉아있던 자들이 그에게로 나왔고, 그는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드러냈다. 그의 귀는 언제나 인류의 슬픔을 향해서 열려 있었고, 그의 보살핌을 구하는 자들을 늘 도와줬다.
2007 URKA 149:2.6 바로 그 특정한 시기에, 예수의 명성은 주로 치유자로서의 평판에 근거를 두었지만, 그러한 근거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사람들이 그에게 영적 도움을 받기 위하여 그를 찾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육체적 치료였다. 날이 갈수록 도덕적 노예상태의 희생자들과 정신적 고통의 희생자들이 예수를 찾았으며, 그는 변함없이 구원의 길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아버지들은 그들의 아들들을 다루는 것에 관하여 그의 조언을 구하였고, 어머니들은 그들의 딸들을 인도하는 것에 관하여 도움을 얻기 위해 예수를 찾아왔다. 어둠 속에 앉았던 자들이 그에게로 왔으며, 그는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계시하였다. 그의 귀는 언제까지나 인류의 슬픔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그리고 그는 그의 사명활동을 구하는 자들을 항상 도왔다.
2025 149:2.6 바로 그 시절에, 예수의 이름은 주로 병 고치는 자로서 얻은 평판에 달려 있었지만 계속 그랬다고 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자, 갈수록 더욱 사람들이 영적 도움을 받으려고 그를 찾았다. 그러나 서민들에게 아주 직접, 즉시 호소한 것은 육체의 치유였다. 도덕적으로 종살이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찾았고 그는 변함없이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 아버지들은 아들을 다루는 것에 관하여 조언(助言)을 구했고, 어머니들은 딸을 지도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고 왔다.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고 그는 생명의 빛을 드러냈다[4]. 귀는 언제라도 인류의 슬픔을 들으려고 열려 있었고, 그는 보살핌을 찾는 사람들을 언제나 도와주었다.
1955 149:2.7 When the Creator himself was on earth, incarnated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it was inevitable that some extraordinary things should happen. But you should never approach Jesus through these so-called miraculous occurrences. Learn to approach the miracle through Jesus, but do not make the mistake of approaching Jesus through the miracle. And this admonition is warranted, notwithstanding that Jesus of Nazareth is the only founder of a religion who performed supermaterial acts on earth.
2000 149:2.7 바로 창조자가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하여 땅에 계실 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는 결코 이른바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을 통해서 예수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통해서 기적(奇蹟)에 접근하기를 배우고, 기적을 통해서 예수한테 다가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초물질 행위를 연출했던 유일한 종교 창시자였는데도 이 훈계는 틀림없다.
2001 CM 149:2.7 창조주 자신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있었을 때, 어떤 유별난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런 소위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 접근하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예수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배우되, 기적을 통해서 예수를 알려고 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그리고, 나사렛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초물질 행동을 실행한 유일한 종교 창시자임에도, 이런 경고는 정당하다.
2007 URKA 149:2.7 창조자 자신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육신화 되어 땅에 있을 때, 무언가 비상한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던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결코 이들 소위 기적적인 사건을 두루 통하여 예수에게 접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두루 통하여 기적애 접근하는 것을 배워라, 그러나 기적을 두루 통하여 예수에 접근해가는 실수를 범하지 마라. 그리고 이러한 권고는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초-물질적인 행동을 행한 유일한 종교적 창시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것이다.
2025 149:2.7 바로 창조자가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하여 땅에 계실 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는 결코 이른바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을 통해서 예수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통해서 기적(奇蹟)에 접근하기를 배우고, 기적을 통해서 예수한테 다가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초물질 행위를 연출했던 유일한 종교 창시자였는데도 이 훈계는 틀림없다.
1955 149:2.8 The most astonishing and the most revolutionary feature of Michael’s mission on earth was his attitude toward women. In a day and generation when a man was not supposed to salute even his own wife in a public place, Jesus dared to take women along as teachers of the gospel in connection with his third tour of Galilee. And he had the consummate courage to do this in the face of the rabbinic teaching which declared that it was “better that the words of the law should be burned than delivered to women.”
2000 149:2.8 땅에서 미가엘의 사명 중에 가장 놀라운 혁신적 특징은 여자에 대한 태도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도 인사를 건네지 않기로 되어 있던 시절과 세대에, 예수는 셋째 갈릴리 여행과 관련하여 감히 여자들을 복음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데리고 갔다. “율법의 말씀을 여자에게 전하는 것보다 불에 태우는 것이 낫다”하고 선포했던 율법학자들의 가르침 앞에서 이렇게 행하는 최고의 용기를 가졌다.
2001 CM 149:2.8 이 세상에서 미가엘의 사명 가운데 가장 놀랍고 혁신적인 부분은, 여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공공장소에서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도 아는 척 하지 않아야했던 시절에, 예수께서는 3차 갈릴리 여행과 관련하여 여자들이 감히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따라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의 말씀을 여자에게 주기보다 차라리 태워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율법학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행할 만큼, 최고 용기를 가졌다.
2007 URKA 149:2.8 땅에서 미가엘이 수행한 사명활동에서의 가장 놀랍고 그리고 가장 혁명적인 모습은 여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공공장소에서 남자가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에게조차 인사를 건네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던 시절과 세대에서, 예수는 대담하게 갈릴리에서의 그의 세 번째 전도 여행과 관련해서 복음의 선생들로 여인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율법의 말씀을 여자에게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에 태우는 것이 더 낫다.”라고 선언했던 랍비의 가르침의 면전에서 이런 일을 행할 정도로,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용기를 가졌다.
1955 149:2.9 In one generation Jesus lifted women out of the disrespectful oblivion and the slavish drudgery of the ages. And it is the one shameful thing about the religion that presumed to take Jesus’ name that it lacked the moral courage to follow this noble example in its subsequent attitude toward women.
2000 149:2.9 오랜 세월에 걸쳐 무시되어 잊혀지고 노예처럼 고된 일을 하는 상태로부터, 한 세대 안에 예수는 여자들을 구조했다. 후일에 여자에 대한 태도에 이 고귀한 모범을 따를 도덕적 용기가 모자란 것은 예수의 이름을 주제넘게 가져간 종교에 한 가지 부끄러운 일이다.
2001 CM 149:2.9 오랜 세월 멸시 당하여 잊혀지고 노예처럼 고된 일을 하던 여자들을, 예수께서는 한 세대 만에 풀어줬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주제넘게 취한 그 종교가, 후일에 여자들에 대한 태도에서 이 고귀한 모범을 따를만한 도덕적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하나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7 URKA 149:2.9 한 세대를 통하여 예수는 멸시 당하면서 잊혀서 사는 그 시대의 노예와 같은 고난에서 여자들을 들어 올렸다. 예수의 이름을 붙잡는 것으로 믿어지는 종교의 후세의 세대들이 그들의 태도에서 여자에 대한 이 고귀한 모범을 따를 용기를 잃은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2025 149:2.9 오랜 세월에 걸쳐 무시되어 잊혀지고 노예처럼 고된 일을 하는 상태로부터, 한 세대 안에 예수는 여자들을 구조했다. 후일에 여자에 대한 태도에 이 고귀한 모범을 따를 도덕적 용기가 모자란 것은 예수의 이름을 주제넘게 가져간 종교에 한 가지 부끄러운 일이다.
1955 149:2.10 As Jesus mingled with the people, they found him entirely free from the superstitions of that day. He was free from religious prejudices; he was never intolerant. He had nothing in his heart resembling social antagonism. While he complied with the good in the religion of his fathers, he did not hesitate to disregard man-made traditions of superstition and bondage. He dared to teach that catastrophes of nature, accidents of time, and other calamitous happenings are not visitations of divine judgments or mysterious dispensations of Providence. He denounced slavish devotion to meaningless ceremonials and exposed the fallacy of materialistic worship. He boldly proclaimed man’s spiritual freedom and dared to teach that mortals of the flesh are indeed and in truth sons of the living God.
2000 149:2.10 예수가 사람들과 섞이는 동안, 사람들은 예수가 도무지 그 시절의 미신에 매어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는 종교적 편견이 조금도 없었고, 결코 관대함이 모자라지 않았다. 사회에 대하여 적대감과 비슷한 아무것도 마음 속에 지니지 않았다. 조상의 종교에 있는 좋은 것에 순응했으나 미신과 속박과 같은, 사람이 만든 전통을 서슴지 않고 무시했다. 자연의 재난, 뜻밖의 사고, 기타 재앙은 신이 내리는 심판이나 섭리의 신비로운 작용이 아니라고 감히 가르쳤다. 의미 없는 예식에 종처럼 헌신하는 것을 비난했고, 물질적 예배의 잘못됨을 밝혔다. 그는 대담하게 사람의 영적 자유를 선포했고, 육체를 가진 필사자가 정말로, 진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감히 가르쳤다.
2001 CM 149:2.10 예수께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들은 예수께서 그 시대의 미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런 종교적 편견도 없었으며;결코 편협하지 않았다. 사회적 적대감과 비슷한 어떤 것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선조{先祖}의 종교에서 좋은 점은 따르는 반면, 미신이나 노예신분 같은, 사람이-만든 전통을 무시하는 데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자연의 재난, 뜻밖의 사고, 그리고 기타 재앙은, 신이 내리는 심판이나 섭리의 신비로운 처방이 아니라고, 대담하게 가르쳤다. 의미 없는 예식절차에 노예처럼 헌신하는 것을 비난했고, 물질적 숭배라는 궤변을 폭로했다. 그는 사람의 영적 해방을 담대하게 선포했고, 육신을 입은 필사자들은 정말로 그리고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담대하게 가르쳤다.
2007 URKA 149:2.10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 사람들은 예수가 그 시절의 미신들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종교적 편견들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는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적대감과 비슷한 그 어떤 것도 그의 가슴속에 지니지 않았다. 그는 선조들의 종교에서 좋은 점을 따랐지만, 한편으론 미신과 속박에서의 사람이-만든 전통을 무시하는 것에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대담하게 자연의 큰 재해, 뜻밖의 사고, 다른 여러 가지 비참한 재앙들이 신성한 심판이거나 섭리의 신비한 시대의-경륜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는 의미 없는 예식에 노예처럼 헌신하는 것을 공공연히 비난하였으며, 물질적 경배의 오류를 폭로하였다. 그는 용감하게 사람의 영적 자유를 선포하였으며, 육신의 필사자들이 정말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대담하게 가르쳤다.
2025 149:2.10 예수가 사람들과 섞이는 동안, 사람들은 예수가 도무지 그 시절의 미신에 매어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는 종교적 편견이 조금도 없었고, 결코 관대함이 모자라지 않았다. 사회에 대하여 적대감과 비슷한 아무것도 마음 속에 지니지 않았다. 조상의 종교에 있는 좋은 것에 순응했으나 미신과 속박과 같은, 사람이 만든 전통을 서슴지 않고 무시했다. 자연의 재난, 뜻밖의 사고, 기타 재앙은 신이 내리는 심판이나 섭리의 신비로운 작용이 아니라고 감히 가르쳤다[6]. 의미 없는 예식에 종처럼 헌신하는 것을 비난했고, 물질적 예배의 잘못됨을 밝혔다
[7]. 그는 대담하게 사람의 영적 자유를 선포했고, 육체를 가진 필사자가 정말로, 진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감히 가르쳤다
[8].
1955 149:2.11 Jesus transcended all the teachings of his forebears when he boldly substituted clean hearts for clean hands as the mark of true religion. He put reality in the place of tradition and swept aside all pretensions of vanity and hypocrisy. And yet this fearless man of God did not give vent to destructive criticism or manifest an utter disregard of the religious,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usages of his day. He was not a militant revolutionist; he was a progressive evolutionist. He engaged in the destruction of that which was only when he simultaneously offered his fellows the superior thing which ought to be.
2000 149:2.11 깨끗한 손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이 참된 종교의 표시(表示)라고 했을 때, 예수는 조상의 모든 가르침을 초월했다. 전통 대신에 현실을 존중하였고 허영과 위선이 가득한 모든 허식을 치워버렸다. 그래도 두려움 없는 이 하나님의 사람은 파괴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그 시대의 종교ㆍ사회ㆍ경제ㆍ정치 관습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싸우기 좋아하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점진적 진화를 부르짖는 이였다. 동료들에게 있어야 할 우수한 것을 동시에 제공할 때에야 그는 지금 있는 것을 없애는 일에 들어갔다.
2001 CM 149:2.11 깨끗한 손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이 참된 종교의 표시라고 용감하게 선언했을 때, 예수께서는 선조의 모든 교훈을 뛰어넘었다. 전통 대신 현실을 존중했고, 허영심과 위선이 가득한 모든 허세를 부정했다. 그렇지만 두려움 없는 이 하나님의 사람은, 파괴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당시의 종교, 사회, 경제, 및 정치 관례를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호전적인 혁명가가 아니었으며;점진적 진화를 주장하는 이였다. 돼있는 그것을 파괴하는 일에 그가 관여한 것은, 오직 그렇게 돼야 할 뛰어난 것을 동료들에게 동시에 제시할 때뿐이었다.
2007 URKA 149:2.11 예수가 참된 종교의 표시로 청결한 손 대신에 청결한 가슴으로 대담하게 대체하였을 때, 그는 자기 선조들의 모든 가르침을 초월하였다. 그는 전통의 자리에 실체를 놓았고 그리고 허영과 위선의 모든 허식을 쓸어 버렸다. 그럼에도 이 두려움 없는 하느님의 사람은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관례에 대한 파괴적인 비난의 말을 퍼붓거나, 혹은 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현시하지 않았다. 그는 호전적인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진보적인 진화론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되어 있어야만 하는 그러한 우월한 것을 동시에 제공할 때에만 오직 이미 있는 것들의 파괴에 들어갔다.
2025 149:2.11 깨끗한 손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이 참된 종교의 표시(表示)라고 했을 때, 예수는 조상의 모든 가르침을 초월했다[9]. 전통 대신에 현실을 존중하였고 허영과 위선이 가득한 모든 허식을 치워버렸다. 그래도 두려움 없는 이 하나님의 사람은 파괴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그 시대의 종교ㆍ사회ㆍ경제ㆍ정치 관습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싸우기 좋아하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점진적 진화를 부르짖는 이였다. 동료들에게 있어야 할 우수한 것을 동시에 제공할 때에야 그는 지금 있는 것을 없애는 일에 들어갔다.
1955 149:2.12 Jesus received the obedience of his followers without exacting it. Only three men who received his personal call refused to accept the invitation to discipleship. He exercised a peculiar drawing power over men, but he was not dictatorial. He commanded confidence, and no man ever resented his giving a command. He assumed absolute authority over his disciples, but no one ever objected. He permitted his followers to call him Master.
2000 149:2.12 예수는 강요하지 않고서 추종자들로부터 복종을 얻었다. 그가 친히 부른 사람들 중에서 세 사람만 제자가 되라는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 대하여 특별히 마음을 끄는 힘을 가졌지만 독재자처럼 행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고, 아무도 그의 지시를 분개하지 않았다. 제자들에 대하여 절대 권한을 가졌지만, 아무도 항의한 적이 없었다. 추종자들이 그를 주라고 부르도록 두었다.
2001 CM 149:2.12 예수께서는 따르는 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순종을 받았다. 그가 친히 부르신 사람들 가운데 세 사람만이, 제자가 되라는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독재적이지 않았다. 신임을 요구했으나, 아무도 그가 지시하는 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절대 권위를 행사했지만,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따르는 자들이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허용했다.
2007 URKA 149:2.12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복종을 받았다. 그의 개인적인 부름을 받은 자 중에서 단지 세 사람만이 제자 신분에 대한 초청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출한 힘을 행사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독재적이 아니었다. 그는 확신에 넘쳐 명령하였지만, 누구도 그의 명령에 분개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 대하여 절대적 권한을 떠맡고 있었으나, 결코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다. 그는 추종자들이 자신을 주(主)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였다.
1955 149:2.13 The Master was admired by all who met him except by those who entertained deep-seated religious prejudices or those who thought they discerned political dangers in his teachings. Men were astonished at the originality and authoritativeness of his teaching. They marveled at his patience in dealing with backward and troublesome inquirers. He inspired hope and confidence in the hearts of all who came under his ministry. Only those who had not met him feared him, and he was hated only by those who regarded him as the champion of that truth which was destined to overthrow the evil and error which they had determined to hold in their hearts at all cost.
2000 149:2.13 뿌리 깊은 종교적 편견을 품은 사람이나 그의 가르침에 정치적 위험이 있음을 식별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제쳐놓고 그를 만난 모든 사람이 주를 찬미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의 독창성과 권위에 놀랐다. 뒤처지고 성가시게 구는 질문자들을 다루면서 참을성을 보인 것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의 봉사 활동 밑에 들어온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그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음 속에 꼭 붙들고 있으려고 작정했던 해악과 잘못을 뒤집어엎도록 정해진 진리를 예수가 옹호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그를 미워했다.
2001 CM 149:2.13 뿌리-깊은 종교적 편견에 빠진 자들, 또는 그의 교훈에서 정치적 위험을 식별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제외하면, 주님은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의 독창성과 권위에 감탄했고, 우둔하고 성가신 질문자들에게 인내심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 경탄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 영역에 들어온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희망과 확신을 심어 줬다. 그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만 그를 두려워했으며,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매달리기로 그들이 작정했던 악과 오류를 뒤집어엎게 돼있는 진리를 그가 옹호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그를 미워했다.
2007 URKA 149:2.13 주(主)는 뿌리 깊은 종교적 편견을 품은 자들이나 그의 가르침 안에서 그들이 정치적인 위험을 분별했다고 생각했던 자들을 제외하면,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미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서의 기원성과 권위 있음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거꾸로 가고 또 문제를 야기하는 질문들을 대하면서 보여준 그의 인내에 경탄하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 영역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만이 그를 두려워하였으며,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의 가슴속에 붙들고 있으려고 결심한 악과 잘못을 타도하도록 운명된, 그러한 진리의 투사라고 예수를 여기었던 사람들만이, 그를 증오하였다.
2025 149:2.13 뿌리 깊은 종교적 편견을 품은 사람이나 그의 가르침에 정치적 위험이 있음을 식별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제쳐놓고 그를 만난 모든 사람이 주를 찬미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의 독창성과 권위에 놀랐다. 뒤처지고 성가시게 구는 질문자들을 다루면서 참을성을 보인 것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의 봉사 활동 밑에 들어온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그를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음 속에 꼭 붙들고 있으려고 작정했던 해악과 잘못을 뒤집어엎도록 정해진 진실을 예수가 옹호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그를 미워했다.
1955 149:2.14 On both friends and foes he exercised a strong and peculiarly fascinating influence. Multitudes would follow him for weeks, just to hear his gracious words and behold his simple life. Devoted men and women loved Jesus with a well-nigh superhuman affection. And the better they knew him the more they loved him. And all this is still true; even today and in all future ages, the more man comes to know this God-man, the more he will love and follow after him.
2000 149:2.14 그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강하고 특이하게 매혹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군중은 그저 품위 있는 말씀을 듣고 소박한 생활을 구경하려고 몇 주 동안 따라다니곤 하였다. 헌신하는 남녀들이 거의 초인간적 애정으로 예수를 사랑했다. 그를 알면 알수록, 예수를 더욱 사랑했다. 이 모두가 아직도 참말이다. 오늘날도, 그리고 모든 미래 시대에, 하나님인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더욱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2001 CM 149:2.14 그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강력하고 기묘하게 매혹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사람이, 단지 그의 우아한 말을 듣고 그의 간결한 생활을 보려고, 몇 주 동안 따라다니곤 했다. 헌신하는 남녀들이 거의 초인간적 애정으로 예수를 사랑했다. 그들은 그를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사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참말인데:오늘날에도 그리고 모든 미래 시대에도, 사람들은 이 하나님-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고 따를 것이다.
2007 URKA 149:2.14 그는 친구들이나 적들 모두에게 강력한, 그리고 특출하게 매혹적인 영향을 끼쳤다. 군중들은 단지 그의 품위 있는 말을 듣고 그의 검소한 일생을 보기 위하여 몇 주일 동안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헌신했던 남자들과 여인들은 거의 초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예수를 사랑하였다. 그들이 그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더 그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세기에서까지도 사람들은 이 하느님-사람을 좀 더 알면 알수록, 그를 더욱 사랑하고 그의 뒤를 더욱 따르게 될 것이다.
2025 149:2.14 그는 친구와 적, 모두에게 강하고 특이하게 매혹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군중은 그저 품위 있는 말씀을 듣고 소박한 생활을 구경하려고 몇 주 동안 따라다니곤 하였다. 헌신하는 남녀들이 거의 초인간적 애정으로 예수를 사랑했다. 그를 알면 알수록, 예수를 더욱 사랑했다. 이 모두가 아직도 참말이다. 오늘날도, 그리고 모든 미래 시대에, 하나님인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더욱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3. HOSTILITY OF THE RELIGIOUS LEADERS
3.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3.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3. 종교 영도자들의 적개심
3.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1955 149:3.1 Notwithstanding the favorable reception of Jesus and his teachings by the common people, the religious leaders at Jerusalem became increasingly alarmed and antagonistic. The Pharisees had formulated a systematic and dogmatic theology. Jesus was a teacher who taught as the occasion served; he was not a systematic teacher. Jesus taught not so much from the law as from life, by parables. (And when he employed a parable for illustrating his message, he designed to utilize just one feature of the story for that purpose. Many wrong ideas concerning the teachings of Jesus may be secured by attempting to make allegories out of his parables.)
2000 149:3.1 서민들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호의로 받아들였는데도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놀라고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체계 있는 독단적 신학을 형성하였다. 예수는 경우가 닿는 대로 가르친 선생이었다.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었다. 예수는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그의 말씀의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비유를 썼을 때 그 목적을 위하여 이야기의 꼭 한 모습을 이용하려고 머리를 썼다. 그의 비유로부터 우화를 지어내려고 애씀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관하여 많은 그릇된 관념이 생길 수 있다.)
2001 CM 149:3.1 평민들이 예수와 그의 교훈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경계심과 적대감을 더욱 품게 됐다. 바리새인은 조직적이고 독단적인 신학을 형성했다. 예수께서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가르치는 선생이었으며;규칙을 따르는 선생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의거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비유를 사용했을 때, 그 목적을 위하여, 이야기의 단 한 가지 특색만 이용하려고 계획했다. 그의 비유에서 우화{寓話}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함으로써, 예수의 교훈에 관한 잘못된 관념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2007 URKA 149:3.1 일반 사람들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종교 영도자들은 점점 더 경계심과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조직적이고 독단적인 신학을 형성해왔었다. 그런데 예수는 기회가 있으면 봉사하면서 가르침을 베푸는 선생이었다; 그는 조직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었다. 예수는 율법으로부터 보다는 일생으로부터 비유를 사용하여 가르쳤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했을 때, 그는 그 목적을 위한 이야기의 단 한 가지만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많은 그릇된 관념이 그의 비유로부터 우화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2025 149:3.1 서민들이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호의로 받아들였는데도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놀라고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체계 있는 독단적 신학을 형성하였다. 예수는 경우가 닿는 대로 가르친 선생이었다.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었다. 예수는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그의 말씀의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비유를 썼을 때 그 목적을 위하여 이야기의 꼭 한 모습을 이용하려고 머리를 썼다. 그의 비유로부터 우화를 지어내려고 애씀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관하여 많은 그릇된 관념이 생길 수 있다.)
1955 149:3.2 The religious leaders at Jerusalem were becoming well-nigh frantic as a result of the recent conversion of young Abraham and by the desertion of the three spies who had been baptized by Peter, and who were now out with the evangelists on this second preaching tour of Galilee. The Jewish leaders were increasingly blinded by fear and prejudice, while their hearts were hardened by the continued rejection of the appealing truth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When men shut off the appeal to the spirit that dwells within them, there is little that can be done to modify their attitude.
2000 149:3.2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젊은 아브라함이 최근에 전향한 결과로,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례받은 세 첩자가 도망한 것 때문에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었으며, 이들은 이제 이 둘째 갈릴리 전도(傳道) 여행에 전도사들과 함께 나다녔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두려움과 편견에 더욱 눈이 멀었고, 한편 하늘나라 복음의 매력 있는 진리를 계속 물리침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사람들이 안에 깃드는 영의 호소에 귀를 막을 때, 그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2001 CM 149:3.2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최근에 젊은 아브라함이 개종한 사건의 결과로,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이제는 이 2차 갈릴리 전도여행에서 전도자들과 함께 나가있는 세 정탐꾼이 변절한 사건 때문에,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두려움과 편견으로 인해 더욱 눈이 멀었으며, 한편 천국 복음의 매력적인 진리를 계속 배척함으로 인해 마음이 완고해졌다. 내주하는 영의 호소에 사람이 귀를 막을 때, 그 태도를 변경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2007 URKA 149:3.2 예루살렘 종교 영도자들은 최근에 젊은 아브라함이 개종했던 사건과 그리고 세 명의 첩자들이 예수를 감시하다가 떨어져 나가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고 지금은 갈릴리의 두 번째 전도 여행에 전도자들과 함께 다닌 사건의 결과로 거의 광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유대인 영도자들은 두려움과 편견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 눈이 멀어 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왕국 복음의 호소하는 진리를 계속하여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가슴이 점점 굳어져 갔다. 사람이 그들과 함께 거주하는 영의 호소를 차단하여 잠가 버릴 때, 거기에는 그들의 태도를 변경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2025 149:3.2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젊은 아브라함이 최근에 전향한 결과로,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례받은 세 첩자가 도망한 것 때문에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었으며, 이들은 이제 이 둘째 갈릴리 전도(傳道) 여행에 전도사들과 함께 나다녔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두려움과 편견에 더욱 눈이 멀었고, 한편 하늘나라 복음의 매력 있는 진실을 계속 물리침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사람들이 안에 깃드는 영의 호소에 귀를 막을 때, 그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1955 149:3.3 When Jesus first met with the evangelists at the Bethsaida camp, in concluding his address, he said: “You should remember that in body and mind—emotionally—men react individually. The only uniform thing about men is the indwelling spirit. Though divine spirits may vary somewhat in the nature and extent of their experience, they react uniformly to all spiritual appeals. Only through, and by appeal to, this spirit can mankind ever attain unity and brotherhood.” But many of the leaders of the Jews had closed the doors of their hearts to the spiritual appeal of the gospel. From this day on they ceased not to plan and plot for the Master’s destruction. They were convinced that Jesus must be apprehended, convicted, and executed as a religious offender, a violator of the cardinal teachings of the Jewish sacred law.
2000 149:3.3 벳세다 캠프에서 전도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는 연설을 마치면서 말했다: “너희는 몸과 머리 속에서―감정으로―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느니라. 사람들에게 오직 한 가지 한결같은 것은 깃드는 영이라. 신다운 영들이 어느 정도 체험의 성질과 범위가 다를지라도, 저희는 어떤 영적 호소에도 한결같이 반응하느니라. 오직 이 영을 통해서, 그리고 그 영에게 호소함으로 인류는 언제라도 하나가 되고 형제가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느니라.” 그러나 유대인의 많은 지도자가 복음의 영적 호소에 마음 문을 닫았다. 이날부터 계속, 주의 파멸을 계획하고 일을 꾸미기를 그치지 않았다. 종교범으로서, 유대인의 신성한 율법의 으뜸가는 가르침을 어긴 자로서, 그들은 예수를 잡아들이고, 선고(宣告)하고 처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2001 CM 149:3.3 예수께서 벳새다 야영지에서 전도자들과 처음 만났을 때, 강연을 마치면서 말씀했다:“육체와 정신 속에서 --감정적으로--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너희는 기억해야한다.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한결같은 것은 내주하는 영이다. 체험의 본질과 정도가 다소 다를지라도, 신성한 영들은 모든 영적 호소에 한결같이 반응한다. 인류는 오직 이 영을 통해서만, 그리고 이 영에게 호소함으로써만, 언제라도 하나가 되고 형제관계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 가운데 다수는 복음의 영적 호소에 마음 문을 닫았다. 그들은 이날부터 계속, 주님을 제거하려는 계획과 음모를 멈추지 않았다. 종교 범죄자, 즉 유대의 신성시되는 율법의 주요 교훈을 어긴 자로서 예수를 체포하고, 유죄를 선고하여 처형해야한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2007 URKA 149:3.3 예수가 처음 벳세다 야영지에서 전도자들과 만났을 때, 자신의 연설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몸과 마음으로─감정적으로─반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똑같은 형태인 것은 내주하는 영뿐이다. 신성한 영들이 그들의 체험의 범위가 어느 정도 가지각색일 수 있지만, 그들은 모든 영적 호소에 한결같이 반응한다. 오직 이 영을 통해서, 그리고 이 영에 호소하고 따름으로써만 인류는 언제까지나 합일성과 형제애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의 많은 영도자들은 복음의 영적 호소에 그들의 가슴의 문을 닫았다. 이 날부터 계속하여 그들은 주(主)를 없애려는 계획과 음모를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가 종교적 범죄자, 유대의 성스런 율법의 으뜸가는 가르침을 어긴 자로서 체포되고 유죄 판결을 받아서 처형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2025 149:3.3 벳세다 캠프에서 전도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는 연설을 마치면서 말했다: “너희는 몸과 머리 속에서 ― 감정으로 ―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느니라. 사람들에게 오직 한 가지 한결같은 것은 깃드는 영이라. 신다운 영들이 어느 정도 체험의 성질과 범위가 다를지라도, 저희는 어떤 영적 호소에도 한결같이 반응하느니라. 오직 이 영을 통해서, 그리고 그 영에게 호소함으로 인류는 언제라도 하나가 되고 형제가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느니라.” 그러나 유대인의 많은 지도자가 복음의 영적 호소에 마음 문을 닫았다. 이날부터 계속, 주의 파멸을 계획하고 일을 꾸미기를 그치지 않았다. 종교범으로서, 유대인의 신성한 율법의 으뜸가는 가르침을 어긴 자로서, 그들은 예수를 잡아들이고, 선고(宣告)하고 처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4. PROGRESS OF THE PREACHING TOUR
4. 전도 여행의 진행
4. 전도여행의 진전
4. 전도 여행의 진행
4. 전도 여행의 진행
1955 149:4.1 Jesus did very little public work on this preaching tour, but he conducted many evening classes with the believers in most of the cities and villages where he chanced to sojourn with James and John. At one of these evening sessions one of the younger evangelists asked Jesus a question about anger, and the Master, among other things, said in reply:
2000 149:4.1 이 전도 여행에서 예수는 대중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어쩌다가 머무른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서, 신자들과 함께 저녁 수업을 많이 열었다. 어느 날 이 저녁 시간에, 새로 된 어느 전도사가 예수에게 성내는 것에 대하여 물었고, 주는 다른 것들과 함께 이런 말씀으로 대답하였다:
2001 CM 149:4.1 예수께서는, 이 전도여행에서 대중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우연히 머물게 된 대부분의 도시나 동네에서 신자들과 함께 저녁 수업을 여러 번 열었다. 이런 저녁 수업시간 중에 한 번은, 나이 어린 전도자가 분노에 관하여 예수께 질문했고, 주님이 다른 것들과 함께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2007 URKA 149:4.1 이 전도 여행에서 예수는 대중을 위한 일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야고보와 요한과 우연히 머물게 된 대부분의 도시나 동네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많은 저녁 수업을 지도하였다. 이러한 저녁 수업시간 가운데 하나에서, 나이 어린 전도자가 예수에게 분노에 관해서 질문하자, 주(主)는 다른 것들 중에도 이렇게 대답했다:
2025 149:4.1 이 전도 여행에서 예수는 대중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어쩌다가 머무른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서, 신자들과 함께 저녁 수업을 많이 열었다. 어느 날 이 저녁 시간에, 새로 된 어느 전도사가 예수에게 성내는 것에 대하여 물었고, 주는 다른 것들과 함께 이런 말씀으로 대답하였다:
1955 149:4.2 “Anger is a material manifestation which represents, in a general way, the measure of the failure of the spiritual nature to gain control of the combined intellectual and physical natures. Anger indicates your lack of tolerant brotherly love plus your lack of self-respect and self-control. Anger depletes the health, debases the mind, and handicaps the spirit teacher of man’s soul. Have you not read in the Scriptures that ‘wrath kills the foolish man,’ and that man ‘tears himself in his anger’? That ‘he who is slow of wrath is of great understanding,’ while ‘he who is hasty of temper exalts folly’? You all know that ‘a soft answer turns away wrath,’ and how ‘grievous words stir up anger.’ ‘Discretion defers anger,’ while ‘he who has no control over his own self is like a defenseless city without walls.’ ‘Wrath is cruel and anger is outrageous.’ ‘Angry men stir up strife, while the furious multiply their transgressions.’ ‘Be not hasty in spirit, for anger rests in the bosom of fools.’” Before Jesus ceased speaking, he said further: “Let your hearts be so dominated by love that your spirit guide will have little trouble in delivering you from the tendency to give vent to those outbursts of animal anger which are inconsistent with the status of divine sonship.”
2000 149:4.2 “성내는 것은 무릇, 영적 성품이 지능과 육체의 두 성품을 제어하지 못한 척도를 가리키는 물질적 현상이라. 성내는 것은 너그러운 형제다운 사랑이 모자라고 자존심과 자제가 모자람을 가리키느니라. 성내는 것은 건강을 소모하고, 지능의 질을 떨어뜨리며 인간의 혼을 가르치는 영 선생을 방해하느니라. ‘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이느니라,’ 사람은 ‘성이 나서 스스로를 상하느니라’ 함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아니하였느냐? ‘더디게 성내는 자는 큰 이해심을 가졌고’ 한편 ‘급히 성내는 자는 어리석음을 찬양하느니라’ 하는 것을? ‘부드러운 대답이 진노를 거두느니라’ 그리고 어떻게 ‘모진 말이 진노를 불러일으키는가’ ‘신중함은 진노를 늦추며’ 한편 ‘자신을 제어할 줄 모르는 자는 담이 없어 방어할 수 없는 도시와 같다’ 함을 너희가 아느니라. ‘진노하는 것은 잔인하며 성내는 것은 터무니 없느니라.’ ‘성난 자는 싸움을 부채질하고 격노한 자는 계율을 많이 어기느니라.’ ‘서두르는 마음을 갖지 말지니, 분노가 바보들의 가슴 속에서 쉬는 까닭이라.’” 말씀을 그치기 전에, 예수는 이어서 말했다: “사랑이 너희 마음을 다스려서, 신의 아들인 지위와 어울리지 않게 동물처럼 분노를 터뜨리는 경향으로부터 영 안내자가 너희를 구원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
2001 CM 149:4.2 “분노는 대체로, 지능과 육체의 혼합된 본성을 영적 본성이 통제하지 못한 정도를 나타내는 물질적 증상이다. 분노는, 너그러운 형제다운 사랑이 모자라고, 자존감과 자기-통제가 모자람을 가리킨다. 분노는 건강을 해치고, 정신의 질을 저하시키고, 사람의 혼을 가르치는 영 선생을 무력하게 만든다. ‘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은 ‘분노해서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진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지만,’ 반면에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는 글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너희는 모두 이런 말도 잘 알고 있다:‘유순한 대답은 진노를 가라앉혀도, 과격한 말은 분노를 격동시킨다.’ ‘신중함이 분노를 지연시킨다.’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자는 성벽 없는 무방비한 성과 같다.’ ‘진노는 잔인하고 분노는 난폭하다.’ ‘분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격노하는 자는 계명을 많이 어기게 된다.’ ‘영으로 조급하지 말라, 분노가 우매자의 품에 머물기 때문이다.’” 말씀을 마치기 전에 예수께서 이어서 말했다:“사랑이 너희 마음을 다스려서, 신의 아들신분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동물적 분노를 터뜨리는 경향으로부터, 영 안내자가 너희를 건져내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게 하라.”
2007 URKA 149:4.2 “분노는, 일반적인 방법에서, 통합된 지적(知的) 본성과 육체적 본성에 대해 통제를 이루어 보려는 영적 본성에서 그 실패를 재어볼 수 있는 물질적 현시활동이다. 분노는 너그러운 형제로서의 사랑에 대한 너의 부족함과 여기에 너의 자아-존중과 자아-통제에 대한 부족함이 합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분노는 건강을 해치고 마음을 저하시키며 사람 혼의 영적 선생에게 장애가 된다. ‘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인다.’라는 것과 사람이 ‘분노 안에서 스스로 상처를 낸다.’ 또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다,’ 한편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는 글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너희 모두는 다음의 말들도 잘 알고 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혀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 ‘슬기가 노하기를 더디게 한다.’ ‘자기 자신의 자아를 통제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벽이 없는 무방비한 성과 같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게 하는 자는 범죄 함이 많다.’ ‘정신에서 서두르지 말라. 분노는 바보들의 품에 머문다.’” 예수가 말씀을 마치기 전에 좀 더 계속하였다: “신성한 아들관계의 직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동물적인 진노를 터뜨리는 경향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하고 있는, 너의 영 안내자가 아무 문제도 가지지 않도록, 너희의 가슴이 사랑에 의해 지배되어 있도록 하라.”
2025 149:4.2 “성내는 것은 무릇, 영적 성품이 지능과 육체의 두 성품을 제어하지 못한 척도를 가리키는 물질적 현상이라[12]. 성내는 것은 너그러운 형제다운 사랑이 모자라고 자존심과 자제가 모자람을 가리키느니라
[13]. 성내는 것은 건강을 소모하고, 지능의 질을 떨어뜨리며 인간의 혼을 가르치는 영 선생을 방해하느니라. ‘분노가 어리석은 사람을 죽이느니라,’ 사람은 ‘성이 나서 스스로를 상하느니라’ 함을 너희가 성서에서 읽지 아니하였느냐? ‘더디게 성내는 자는 큰 이해심을 가졌고’ 한편 ‘급히 성내는 자는 어리석음을 찬양하느니라’ 하는 것을? ‘부드러운 대답이 진노를 거두느니라’ 그리고 어떻게 ‘모진 말이 진노를 불러일으키는가’ ‘신중함은 진노를 늦추며’ 한편 ‘자신을 제어할 줄 모르는 자는 담이 없어 방어할 수 없는 도시와 같다’ 함을 너희가 아느니라
[14][15][16][17][18][19]. ‘진노하는 것은 잔인하며 성내는 것은 부당하니라
[20].’ ‘성난 자는 싸움을 부채질하고 격노한 자는 계율을 많이 어기느니라
[21].’ ‘서두르는 마음을 가지지 말지니, 분노가 바보들의 가슴 속에서 쉬는 까닭이라
[22].’” 말씀을 그치기 전에, 예수는 이어서 말했다: “사랑이 너희 마음을 다스려서, 신의 아들인 지위와 어울리지 않게 동물처럼 분노를 터뜨리는 경향으로부터 영 안내자가 너희를 구원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
[23].”
1955 149:4.3 On this same occasion the Master talked to the group about the desirability of possessing well-balanced characters. He recognized that it was necessary for most men to devote themselves to the mastery of some vocation, but he deplored all tendency toward overspecialization, toward becoming narrow-minded and circumscribed in life’s activities. He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any virtue, if carried to extremes, may become a vice. Jesus always preached temperance and taught consistency—proportionate adjustment of life problems. He pointed out that overmuch sympathy and pity may degenerate into serious emotional instability; that enthusiasm may drive on into fanaticism. He discussed one of their former associates whose imagination had led him off into visionary and impractical undertakings. At the same time he warned them against the dangers of the dullness of overconservative mediocrity.
2000 149:4.3 바로 이 기회에 주는 그 무리에게 차분한 인격의 소유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씀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직업을 통달하기까지 그에 헌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예수는 인정했다. 하지만 지나친 전문화를 향하고 일생의 활동에 생각이 좁아지고 제한하는 모든 경향을 한탄했다. 어떤 미덕이라도 지나치게 실행하면 악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예수는 늘 절제를 외치고 일관성―생활 문제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을 가르쳤다. 지나치게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태도는 심각한 불안감으로 변할 수 있다, 열심이 계속되면 광신(狂信)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예수는 옛 동료들 중 한 사람에 관하여 논의했는데, 그의 공상은 환상적이고 쓸모 없는 사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동시에 예수는 지나친 보수적 평범은 지루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2001 CM 149:4.3 바로 이 기회에, 주님은 균형-잡힌 성품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관하여 그 무리에게 이야기했다. 어떤 직업에 숙련되기까지 몰두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예수께서 인정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전문화되고, 일생의 활동을 편협하게 만들고 제한하는 모든 경향에 대해 개탄했다. 어떤 미덕이든지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면 결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예수께서는 항상 절제를 설교했고, 일관성--곧 삶의 문제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을 가르쳤다. 과잉 동정심과 연민은 심각한 감정적 불안감으로 퇴보할지도 모르며;그 열광이 광신으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예수께서는 옛 동역자들 가운데 하나에 관하여, 그의 상상력이 그를 몽상적이고 비실제적인 이행업무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예수께서는, 지나친 보수적 진부함은 둔감한 자가 되게 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2007 URKA 149:4.3 바로 이 기회에, 주(主)는 무리들에게 균형 잡힌 성격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어떤 직업에 통달하려고 그들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전문화를 지향하는 것, 일생의 활동에 있어서 편협한 마음을 갖게 되어 스스로를 한정 짓는 모든 경향을 개탄하였다. 어떤 미덕이든지 그것이 극단으로 실행된다면 악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주었다. 예수는 항상 절제를 설교하였고, 일관성─일생 문제에서의 균형 잡힌 조절─을 가르쳤다. 지나친 동정심과 연민은 심각한 감정적인 불안정으로 퇴행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열정이 광신주의로 계속 몰아갈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그들의 옛 연관-동료들 중 하나가, 스스로의 상상력이 그 자신을 환상적이고 비-실천적인 과업으로 이끌었었던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지나치게-보수적인 단조로움에서의 둔감성이 주는 위험을 그들에게 경고하였다.
2025 149:4.3 바로 이 기회에 주는 그 무리에게 차분한 인격의 소유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말씀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직업을 통달하기까지 그에 헌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예수는 인정했다. 하지만 지나친 전문화를 향하고 일생의 활동에 생각이 좁아지고 제한하는 모든 경향을 한탄했다. 어떤 미덕이라도 지나치게 실행하면 악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예수는 늘 절제를 외치고 일관성 ― 생활 문제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 ― 을 가르쳤다. 지나치게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태도는 심각한 불안감으로 변할 수 있다, 열심이 계속되면 광신(狂信)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예수는 옛 동료들 중 한 사람에 관하여 논의했는데, 그의 공상은 환상적이고 쓸모 없는 사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동시에 예수는 지나친 보수적 평범은 지루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1955 149:4.4 And then Jesus discoursed on the dangers of courage and faith, how they sometimes lead unthinking souls on to recklessness and presumption. He also showed how prudence and discretion, when carried too far, lead to cowardice and failure. He exhorted his hearers to strive for originality while they shunned all tendency toward eccentricity. He pleaded for sympathy without sentimentality, piety without sanctimoniousness. He taught reverence free from fear and superstition.
2000 149:4.4 그리고 나서 예수는 용기와 믿음의 위험에 대하여, 어떻게 때때로 이것들이 생각 없는 사람들을 무모(無謀)와 과신(過信)으로 이끄는가 강론하였다. 또한 어떻게 조심과 신중함이 너무 지나치면 비겁과 태만으로 이끄는가 보여주었다. 말씀 듣는 자들에게 비정상으로 가는 온갖 성향을 피하면서, 독창적이 되려고 애쓰라고 훈계하였다. 감상적이 되지 않으면서 동정심을 보이며, 신성한 체하지 않으면서 경건하라고 타일렀다. 두려움과 미신에 매이지 않고 공손하기를 가르쳤다.
2001 CM 149:4.4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용기와 신앙이 때로는 어떻게 지각없는 혼들을 무모함과 억측으로 이끌어 가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세심함과 신중함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들이 어떻게 비겁함과 실패로 이끌어 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듣는 이들에게, 정도{正道}를 벗어나려는 모든 경향을 피하고, 독창성을 얻으려 애쓰라고 권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동정심과, 독실한 신자인 척 하지 않는 경건함을 지니라고 호소했다. 두려움과 미신에 매이지 않는 공경{恭敬}을 가르쳤다.
2007 URKA 149:4.4 그러고 나서 예수는 용기와 신앙이 때로는 어떻게 생각이 없는 혼들을 무모함과 억측으로 이끌어 가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서 강론하였다. 그는 또한 신중함과 사려 깊은 분별력이 너무 지나치면 어떻게 그것들이 비겁함과 실패로 이끌어 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그는 듣는 이들에게 편향으로 기우는 모든 성향을 피하고, 독창성을 위하여 분투할 것을 교훈하였다. 그는 감상에 젖음이 없는 동정심과 독실한 척하지 않는 경건함을 가지도록 호소하였다. 그는 두려움과 미신에 속박받지 않고 드리는 존경을 가르치셨다.
2025 149:4.4 다음에 예수는 용기와 믿음의 위험에 대하여, 어떻게 때때로 이것들이 생각 없는 사람들을 무모(無謀)와 과신(過信)으로 이끄는가 강론하였다. 또한 어떻게 조심과 신중함이 너무 지나치면 비겁과 태만으로 이끄는가 보여주었다. 말씀 듣는 자들에게 비정상으로 가는 온갖 성향을 피하면서, 독창성을 살리려고 애쓰라고 훈계하였다. 감상적이 되지 않으면서 동정심을 보이며, 신성한 체하지 않으면서 경건하라고 타일렀다. 두려움과 미신에 매이지 않고 공손하기를 가르쳤다.
1955 149:4.5 It was not so much what Jesus taught about the balanced character that impressed his associates as the fact that his own life was such an eloquent exemplification of his teaching. He lived in the midst of stress and storm, but he never wavered. His enemies continually laid snares for him, but they never entrapped him. The wise and learned endeavored to trip him, but he did not stumble. They sought to embroil him in debate, but his answers were always enlightening, dignified, and final. When he was interrupted in his discourses with multitudinous questions, his answers were always significant and conclusive. Never did he resort to ignoble tactics in meeting the continuous pressure of his enemies, who did not hesitate to employ every sort of false, unfair, and unrighteous mode of attack upon him.
2000 149:4.5 동료들을 감동시킨 것은 예수가 차분한 인품에 대하여 말씀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생 자체가 그 가르침의 본보기였다는 사실이다. 긴장과 폭풍 한가운데서 살았지만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적들은 그를 잡으려고 계속 덫을 놓았지만, 결코 그를 옭아매지 못했다. 지혜롭고 학식 있는 자들이 그를 넘어지게 하려고 애썼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를 토론에 말려들게 하려 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사람을 깨우치고 위엄이 있고 단호하였다. 강론하다가 가지가지의 물음으로 중단되었을 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의미가 깊었고 확실하였다. 적들의 계속된 압력과 맞서면서, 한 번도 비열한 술수를 쓰지 않았고, 그들은 서슴지 않고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2001 CM 149:4.5 동역자들에게 감명을 준 것은, 균형 잡힌 성품에 관하여 가르친 것보다는, 예수의 생애 자체가 그 가르침의 감동적인 본보기였다는 사실이었다. 압박과 격동 한가운데서 살았으나,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적들은 계속해서 그의 앞에 덫을 놓았지만, 그는 결코 걸려들지 않았다. 교활하고 박식한 자들이 그를 넘어뜨리려고 했으나,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그를 논쟁에 휩쓸어 넣으려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교화를 주고, 위엄 있고, 또한 확정적이었다. 여러 종류의 질문으로 말미암아 강론이 중단됐을 때에도, 그의 대답은 항상 의미심장하고 확실했다. 적의 계속된 압력에 맞서면서, 그는 결코 비열한 술책을 동원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을 써서 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2007 URKA 149:4.5 예수 자신의 연관-동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은 균형 잡힌 성격에 관한 그의 가르침보다는 예수 자신의 일생 자체가 그의 가르침을 웅변적으로 예증하는 본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압박감과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살았지만,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적들은 그에 대하여 계속해서 덫을 놓았지만, 결코 그를 옭아매지 못하였다. 지혜롭고 학식 있는 자들이 그를 넘어뜨리려고 애썼으나,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논쟁에 휩쓸어 넣으려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깨우침을 주고, 위엄 있고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가 여러 종류의 질문으로 말미암아 그의 강론이 중단되었을 때에도, 그의 대답은 항상 의미심장하고 결론적이었다. 그는 그에 대한 공격으로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며 불의한 방법을 주저 없이 동원하는 그의 적들의 계속되는 압력을 만나면서도, 결코 비열한 전략에 기대지 않았다.
2025 149:4.5 동료들을 감동시킨 것은 예수가 차분한 인품에 대하여 말씀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생 자체가 그 가르침의 본보기였다는 사실이다. 긴장과 폭풍 한가운데서 살았지만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적들은 그를 잡으려고 계속 덫을 놓았지만, 결코 그를 옭아매지 못했다. 지혜롭고 학식 있는 자들이 그를 넘어지게 하려고 애썼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를 토론에 말려들게 하려 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사람을 깨우치고 위엄이 있고 단호하였다. 강론하다가 가지가지의 물음으로 중단되었을 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의미가 깊었고 확실하였다. 적들의 계속된 압력과 맞서면서, 한 번도 비열한 술수를 쓰지 않았고, 그들은 서슴지 않고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1955 149:4.6 While it is true that many men and women must assiduously apply themselves to some definite pursuit as a livelihood vocation, it is nevertheless wholly desirable that human beings should cultivate a wide range of cultural familiarity with life as it is lived on earth. Truly educated persons are not satisfied with remaining in ignorance of the lives and doings of their fellows.
2000 149:4.6 많은 남녀가 생계를 잇는 직업으로 어떤 분명한 업무에 부지런히 힘써야 하는 것이 참말이지만, 그런데도 땅에서 사는 대로, 인생에 대하여 두루 문화적 지식을 개발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참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동료의 생활과 행적을 모르고 지내면서 만족하지 않는다.
2001 CM 149:4.6 많은 남녀가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어떤 분명한 업무에 부지런히 힘써야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폭넓은 문화적 정통함을 배양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진심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동료들의 삶과 활동을 모르고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2007 URKA 149:4.6 많은 남자들과 여인들이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어떤 정해진 일에 스스로 부지런하게 애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들은 땅에서 살아가는대로 자신의 일생과 함께 광범위한 문화적 친숙함을 경작해야만 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참으로 교육받은 개인들은 자기 동료들의 일상과 행하는 것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아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2025 149:4.6 많은 남녀가 생계를 잇는 직업으로 어떤 분명한 업무에 부지런히 힘써야 하는 것이 참말이지만, 그런데도 땅에서 사는 대로, 인생에 대하여 두루 문화적 지식을 개발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다. 참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동료의 생활과 행적을 모르고 지내면서 만족하지 않는다.
5. LESSON REGARDING CONTENTMENT
5. 만족에 관한 교훈
5. 만족에 대한 교훈
5. 만족에 관한 교훈
5. 만족에 관한 교훈
1955 149:5.1 When Jesus was visiting the group of evangelists working under the supervision of Simon Zelotes, during their evening conference Simon asked the Master: “Why are some persons so much more happy and contented than others? Is contentment a matter of religious experience?” Among other things, Jesus said in answer to Simon’s question:
2000 149:5.1 열심당원 시몬의 감독 하에서 일하는 전도사 무리를 예수가 찾아보았을 때, 저녁 회의 동안에 시몬이 주께 물었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만족하나이까? 만족은 종교적 체험의 문제이나이까?” 다른 것들 가운데, 시몬의 물음에 대답하여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2001 CM 149:5.1 열심당 시몬과 함께 일하던 전도자 집단을 예수께서 방문했을 때, 저녁 회담 시간에 시몬이 예수께 질문했다:“어찌하여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하는지요? 만족은 종교 체험의 문제인가요?”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 예수께서 시몬의 질문에 대답했다:
2007 URKA 149:5.1 예수가 열심당원 시몬의 감독 밑에서 일하고 있던 전도자들의 집단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이 저녁 회의를 하는 도중에, 시몬이 예수에게 질문하였다: “어찌하여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행복해하고 또 만족스러워하는지요? 만족하다는 것은 종교적 체험의 문제인가요?” 여러 다른 것들 중에서, 예수가 시몬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2025 149:5.1 열심당원 시몬의 감독 하에서 일하는 전도사 무리를 예수가 찾아보았을 때, 저녁 회의 동안에 시몬이 주께 물었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만족하나이까? 만족은 종교적 체험의 문제이나이까?” 다른 것들 가운데, 시몬의 물음에 대답하여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1955 149:5.2 “Simon, some persons are naturally more happy than others. Much, very much, depends upon the willingness of man to be led and directed by the Father’s spirit which lives within him. Have you not read in the Scriptures the words of the wise man, ‘The spirit of man is the candle of the Lord, searching all the inward parts’? And also that such spirit-led mortals say: ‘The lines are fallen to me in pleasant places; yes, I have a goodly heritage.’ ‘A little that a righteous man has is better than the riches of many wicked,’ for ‘a good man shall be satisfied from within himself.’ ‘A merry heart makes a cheerful countenance and is a continual feast. Better is a little with the reverence of the Lord than great treasure and trouble therewith. Better is a dinner of herbs where love is than a fatted ox and hatred therewith. Better is a little with righteousness than great revenues without rectitude.’ ‘A merry heart does good like a medicine.’ ‘Better is a handful with composure than a superabundance with sorrow and vexation of spirit.’
2000 149:5.2 “시몬아,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 자연히 더 행복하니라. 많은 것, 허다한 것이 사람이 자신 안에 사는 아버지의 영이 이끌고 지도하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느니라. 성서에서 너는 현자의 말씀을 읽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의 영은 주의 촛불이니, 마음 속의 모든 구석을 훑어보느니라.’ 또한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필사자들이 말하느니라. ‘경계선이 내가 기뻐하는 곳에 떨어졌구나. 옳거니, 나는 값진 유산을 물려받았구나.’ ‘올바른 자의 작은 재산이 악한 자 여럿의 재산보다 나으니’ 왜냐하면 ‘착한 사람은 마음 속에서 만족할 것임이라.’ ‘즐거운 마음은 얼굴빛을 밝게 하며 또한 계속되는 잔치이라. 주를 경외하고 조금 가진 것이 큰 보물과 아울러 골칫거리를 가진 것보다 좋으니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쓴 나물로 저녁 먹는 것이 미워하면서 살찐 송아지 고기를 먹는 것보다 낫도다. 올바르게 조금 가진 것이 옳지 않게 큰 돈을 버는 것보다 낫도다.’ ‘즐거운 마음은 약처럼 좋으니라.’ ‘평온하게 한 줌 가진 것은 슬퍼하며 영이 괴로운 가운데 넘치게 풍부한 것보다 나으니라.’
2001 CM 149:5.2 “시몬아, 어떤 사람은 천부적으로 남들보다 더 행복해 한다. 사람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의 영이 인도하고 지도하시는 것을 그 자신이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는지에, 많은, 아주 많은 것이 달려있다. ‘사람의 영은 주의 등불인데, 중심에 있는 모든 것을 살핀다’고 현자가 한 말을 너는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또한 그런 영으로 인도된 필사자들이 말했다:‘나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쾌적한 곳에 있으니;그렇다, 내 기업이 실로 아름답다.’ ‘한 의인의 작은 재물이 여러 악인의 풍부한 재물보다 많다.’ ‘선한 사람은 자기 행위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마음은 얼굴을 빛나게 하고, 항상 잔칫날이다. 재물이 적어도 주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 채소를 먹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면서 서로 증오하는 것보다 낫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 ‘마음의 즐거움은 좋은 약이다.’ ‘한 움큼 밖에 없지만 평온한 것이, 남아돌지만 영이 슬프고 속상한 것보다 낫다.’
2007 URKA 149:5.2 “시몬아, 어떤 사람들은 자연-본성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 많은 것, 아주 많은 것이, 사람이 자기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의 영에게 인도받고 지도받으려고 기꺼이 나서는 데에 달려있다. 너희의 현자가 ‘사람의 영은 주님의 촛불이다. 내면의 모든 부분을 탐색하고 있다.’고 한 말을 성서에서 읽지 않았느냐? 또한 저들 영에-인도된 필사자들이 말하였다: ‘줄이 그어져 기쁨이 넘치는 곳 안에 내가 들게 되었다. 그렇다. 값진 유산을 받았구나.’ ‘정의로운 사람이 가진 적은 것이 많은 것을 가진 사악한 자의 부유함보다 더욱 낫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로부터 만족될 것이기 때문이다.’ ‘쾌활한 가슴은 활기찬 표정을 만들고, 계속 이어지는 잔치와 같다. 주님을 존경하면서 적게 가진 자가, 커다란 재물과 함께 하고 있는 괴로움을 가지는 것보다 낫다. 사랑이 있는 곳에서 나물로 먹는 저녁밥이 살찐 송아지를 증오와 함께 있는 먹는 것보다 낫다. 정의로움과 함께하는 적은 소득이 공정함이 없는 커다란 소득보다 낫다.’ ‘쾌활한 가슴은 약처럼 좋은 것이다.’ ‘평정과 함께 있는 한 움큼이, 슬프고 괴로운 영과 함께 있는 넘치도록-풍성함보다 낫다.’
2025 149:5.2 “시몬아, 어떤 사람들은 남보다 자연히 더 행복하니라. 많은 것, 허다한 것이 사람이 자신 안에 사는 아버지의 영이 이끌고 지도하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느니라. 성서에서 너는 현자의 말씀을 읽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의 영은 주의 촛불이니, 마음 속의 모든 구석을 훑어보느니라[24][25].’ 또한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필사자들이 말하느니라
[26][27]. ‘경계선이 내가 기뻐하는 곳에 떨어졌구나
[28]. 옳거니, 나는 값진 유산을 물려받았구나
[29].’ ‘올바른 자의 작은 재산이 악한 자 여럿의 재산보다 나으니’ 왜냐하면 ‘착한 사람은 마음 속에서 만족할 것임이라.’ ‘즐거운 마음은 얼굴빛을 밝게 하며 또한 계속되는 잔치이라
[30]. 주를 경외하고 조금 가진 것이 큰 보물과 아울러 골칫거리를 가진 것보다 좋으니라
[31]. 사랑이 있는 곳에서 쓴 나물로 저녁 먹는 것이 미워하면서 살찐 송아지 고기를 먹는 것보다 낫도다
[32]. 올바르게 조금 가진 것이 옳지 않게 큰 돈을 버는 것보다 낫도다.’ ‘즐거운 마음은 약처럼 좋으니라.’ ‘평온하게 한 줌 가진 것은 슬퍼하며 영이 괴로운 가운데 넘치게 풍부한 것보다 나으니라.’
1955 149:5.3 “Much of man’s sorrow is born of the disappointment of his ambitions and the wounding of his pride. Although men owe a duty to themselves to make the best of their lives on earth, having thus sincerely exerted themselves, they should cheerfully accept their lot and exercise ingenuity in making the most of that which has fallen to their hands. All too many of man’s troubles take origin in the fear soil of his own natural heart. ‘The wicked flee when no man pursues.’ ‘The wicked are like the troubled sea, for it cannot rest, but its waters cast up mire and dirt; there is no peace, says God, for the wicked.’
2000 149:5.3 “사람의 많은 슬픔은 포부를 이루지 못하여 실망함으로, 그리고 자존심을 다침으로 생기느니라. 땅에서 일생을 최선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신에게 의무일지라도, 이렇게 성실하게 힘쓴 뒤에 사람들은 즐겁게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희 손에 들어온 것을 최선으로 이용하는 머리를 써야 하느니라. 사람의 허다한 문제가 모두 자신의 평상시의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의 흙에서 생기느니라. ‘사악한 자는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달아나느니라.’ ‘사악한 자는 사나운 바다와 같으니, 쉴 수 없지만 그 물이 더러운 것과 쓰레기를 던져 올리는 까닭이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느니라.’
2001 CM 149:5.3 “사람의 슬픔 대부분은,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자존심으로 상처 받는 데서 나온다. 이 세상에서 일생을 최대한 이용해야하는 것이 자신에게 의무일지라도, 이렇게 성실하게 힘쓴 뒤에,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자기 수중에 들어온 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데 창의력을 발휘해야할 것이다. 사람의 허다한 근심거리는 모두, 자신의 평상시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이라는 토양에서 기원된다. ‘악인은 좇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 ‘악인은 요동치는 바다와 같으니, 잠잠할 수 없고, 그 물이 진창과 쓰레기를 밀어올리기 때문이며;평강이 없음은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2007 URKA 149:5.3 “대부분의 사람의 슬픔이 그의 야망을 이루지 못한 실망과 자부심의 상처에서 탄생되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그들의 삶에서 최선의 것을 만들어내야 할 의무를 지고 있고, 그래서 진지하게 전력을 기울여 가야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몫을 활기차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에서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본래의 창의력을 행사하여야만 한다. 사람의 괴로움의 너무 많은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의 자연 본성적 가슴 안에 있는 두려움이라는 토양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사악한 자는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 ‘사악한 자는 사나운 바다와 같으니, 그것은 쉴 수 없고, 단지 진창과 더러움이 솟구치는 물일 뿐이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다.’
2025 149:5.3 “사람의 많은 슬픔은 포부를 이루지 못하여 실망함으로, 그리고 자존심을 다침으로 생기느니라. 땅에서 일생을 최선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신에게 의무일지라도, 이렇게 성실하게 힘쓴 뒤에 사람들은 즐겁게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희 손에 들어온 것을 최선으로 이용하는 머리를 써야 하느니라. 사람의 허다한 문제가 모두 자신의 평상시의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의 흙에서 생기느니라. ‘사악한 자는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달아나느니라[33].’ ‘사악한 자는 사나운 바다와 같으니, 쉴 수 없지만 그 물이 더러운 것과 쓰레기를 던져 올리는 까닭이라
[34].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느니라.’
1955 149:5.4 “Seek not, then, for false peace and transient joy but rather for the assurance of faith and the sureties of divine sonship which yield composure, contentment, and supreme joy in the spirit.”
2000 149:5.4 “그러면 거짓된 평화와 일시의 기쁨을 찾지 말고, 오히려 믿음의 확신과 신의 아들이라는 보장을 찾을지니, 이것들은 정신적 안정과 만족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낳느니라.”
2001 CM 149:5.4 “그러니, 거짓 평강과 일시적인 기쁨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 안에, 평강과 만족과 최상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신앙의 확신과 신의 아들신분에 대한 보증을 찾아라.”
2007 URKA 149:5.4 “그러므로 거짓 평화와 과도기적인 기쁨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 안에서 평정, 가득한 만족 그리고 최극의 즐거움을 결실로 낳는 그러한 신앙의 확신과 그리고 신성한 아들관계의 확실성을 구하라.”
2025 149:5.4 “그러면 거짓된 평화와 일시의 기쁨을 찾지 말고, 오히려 믿음의 확신과 신의 아들이라는 보장을 찾을지니, 이것들은 정신적 안정과 만족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낳느니라.”
1955 149:5.5 Jesus hardly regarded this world as a “vale of tears.” He rather looked upon it as the birth sphere of the eternal and immortal spirits of Paradise ascension, the “vale of soul making.”
2000 149:5.5 예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로 여겼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이 세상이 오히려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영원한 불멸의 영들이 태어나는 구체, “혼을 만드는 골짜기”로 보았다.
2001 CM 149:5.5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조금도 “눈물 골짜기”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을, 오히려 영원한 불멸의 낙원 상승 영들이 탄생하는 장소 곧 “혼을 만드는 골짜기”로 여겼다.
2007 URKA 149:5.5 예수는 이 세상을 전혀 “눈물의 골짜기”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세상을 파라다이스 상승의 영원하고 불멸의 영들이 탄생하는 구체, “혼을 만드는 골짜기”로 바라보았다.
2025 149:5.5 예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로 여겼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이 세상이 오히려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영원한 불멸의 영들이 태어나는 구체, “혼을 만드는 골짜기”로 보았다.
6. THE “FEAR OF THE LORD”
6. “주를 두려워하는 것”
6. “주를 두려워함”
6. “주(主)님을 두려워 함”
6. “주를 두려워하는 것”
1955 149:6.1 It was at Gamala, during the evening conference, that Philip said to Jesus: “Master, why is it that the Scriptures instruct us to ‘fear the Lord,’ while you would have us look to the Father in heaven without fear? How are we to harmonize these teachings?” And Jesus replied to Philip, saying:
2000 149:6.1 가말라에서 저녁 회의 동안에, 빌립이 예수에게 말했다: “주여, 어찌하여 성서는 우리에게 ‘주를 두려워하라’ 가르치며, 한편 당신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이 두 가르침을 조화시켜야 하리이까?” 예수는 빌립에게 대답했다:
2001 CM 149:6.1 가말라에서 있었던 저녁 회담 시간에, 빌립이 예수께 말했다:“주님, 성서에서는 ‘주{主}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치는데,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두려움 없이 바라보라고 하시는지요? 우리가 이 교훈을 어떻게 조화시켜야합니까?” 예수께서 빌립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말씀했다:
2007 URKA 149:6.1 가말라에서 있었던 저녁 회합 시간에 빌립이 예수에게 말하였다: “주(主)여, 성서에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치는데, 어찌하여 주(主)는 저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지요? 우리가 이 두 가르침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합니까?” 예수가 빌립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1955 149:6.2 “My children, I am not surprised that you ask such questions. In the beginning it was only through fear that man could learn reverence, but I have come to reveal the Father’s love so that you will be attracted to the worship of the Eternal by the drawing of a son’s affectionate recognition and reciprocation of the Father’s profound and perfect love. I would deliver you from the bondage of driving yourselves through slavish fear to the irksome service of a jealous and wrathful King-God. I would instruct you in the Father-son relationship of God and man so that you may be joyfully led into that sublime and supernal free worship of a loving, just, and merciful Father-God.
2000 149:6.2 “아이들아, 네가 그렇게 묻는 것에 나는 놀라지 아니하노라. 시초에는 오직 두려움을 통해서 사람이 신을 공경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느니라.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려고 온 것은 아버지의 깊고 완전한 사랑을 아들이 애정으로 인식하고 그에 보답하도록 당기는 힘으로 너희가 영원자를 예배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자 함이라. 노예처럼 두려워서, 질투하고 진노하는 임금이자 하나님을 지겹게 섬기라고 너희를 족치는 속박에서 너희를 벗어나게 하고자 하노라. 다정하고 공정하고 자비로운 아버지 하나님을 숭고하게,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게 예배하는 길로 즐겁게 마음이 이끌리도록,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너희에게 가르치고자 하노라.
2001 CM 149:6.2 “얘들아, 너희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이 단지 두려움을 통해서 공경을 배울 수 있었지만,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는데, 그리하여 너희가 아버지의 깊고 완전한 사랑을 아들로서 다정하게 인식하고 그에 보답하도록 이끌어서, 영원자를 경배하려는 마음이 너희에게 생기게 하려는 것이다. 노예근성의 두려움으로 너희를 몰아가서, 질투하고 진노가 가득한 왕-하나님께 따분하게 예배드리게 하는, 그 속박으로부터 너희를 구해주려고 한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아버지와-아들의 관계임을 일깨워서, 사랑 많고 정확하고 자비로우신 아버지-하나님께, 숭고하고 탁월하게 자유로운 경배를 너희가 기쁨으로 드리게 하려고 한다.
2007 URKA 149:6.2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것에 나는 놀라지 않는다. 태초에는 단지 두려움을 통하여 사람이 존경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고, 그로서 아버지의 깊고 완전한 사랑에 대한 아들의 애정 넘치는 인지와 이에 대한 보답인 그려냄으로써, 너희는 영원자에 대한 경배로 이끌릴 것이다. 내가, 질투하고 자주 진노하는 왕-하느님을 지겹도록 섬기게 만드는 노예와 같은 두려움으로 너희 자신들을 몰아가는 그 속박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아버지-아들 관계라는 것을 일깨워서, 그것으로 사랑이 많으시고, 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아버지-하느님에게 숭고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자유로운 경배 속으로 너희가 기쁘게 인도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25 149:6.2 “아이들아, 네가 그렇게 묻는 것에 나는 놀라지 아니하노라. 시초에는 오직 두려움을 통해서 사람이 신을 공경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느니라.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려고 온 것은 아버지의 깊고 완전한 사랑을 아들이 애정으로 인식하고 그에 보답하도록 당기는 힘으로 너희가 영원자를 예배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자 함이라. 노예처럼 두려워서, 질투하고 진노하는 임금인 하나님을 지겹게 섬기라고 너희를 족치는 속박에서 너희를 벗어나게 하고자 하노라. 다정하고 공정하고 자비로운 아버지 하나님을 숭고하게,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게 예배하는 길로 즐겁게 마음이 이끌리도록,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너희에게 가르치고자 하노라.
1955 149:6.3 “The ‘fear of the Lord’ has had different meanings in the successive ages, coming up from fear, through anguish and dread, to awe and reverence. And now from reverence I would lead you up, through recognition, realization, and appreciation, to love. When man recognizes only the works of God, he is led to fear the Supreme; but when man begins to understand and experience the personality and character of the living God, he is led increasingly to love such a good and perfect, universal and eternal Father. And it is just this changing of the relation of man to God that constitutes the mission of the Son of Man on earth.
2000 149:6.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고민하고 불안해 하는 단계를 거쳐서 경외하고 공경하는 높이까지 올라오면서, 연속된 여러 시대에 다른 뜻을 가졌느니라. 이제 공경함에서 시작하여 인식(認識)하고 깨닫고 이해함을 거쳐서 사랑하는 높이에 이르기까지 너희를 이끌고자 하노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 인식할 때, 사람은 최상위를 두려워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격과 성품을 비로소 이해하고 체험할 때, 사람은 그렇게 좋고 완전한, 우주의 영원한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도록 마음이 끌리느니라.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이 땅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룰 사명이라.
2001 CM 149:6.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어지는 여러 시대에 다른 의미를 가졌는데,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고통과 근심의 단계를 거쳐서 위엄과 공경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는 공경에서 시작하여, 인식과 깨달음과 감사함을 통해서 사랑에 이르도록 너희를 인도하겠다. 사람이 하나님의 업적만 알아볼 때에는 지존자를 두려워하게 되지만;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비로소 이해하고 체험할 때에는, 점차로 그런 선하고 완전하고 보편적이고 영원하신 아버지를 사랑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사람의 아들의 사명이다.
2007 URKA 149:6.3 “‘주님에 대한 두려움'은 연속되어진 여러 세대에서 다른 의미들을 가졌는데, 그것은 두려움으로부터 시작하여 고통과 불안을 거쳐서, 경외와 존경까지 올라와 있다. 이제는 내가 존경에서 시작하여 인지, 실현, 그리고 깊은 감사를 거쳐서 사랑에 올라와 이르도록 너희를 이끌고자 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업적만을 인지할 때, 그는 최극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끌려오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 계신 하느님의 개인성과 성격을 납득하고 체험하기 시작할 때, 그는 점점 더 어떤 선하고 완전하며 우주적이며 영원한 그러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땅에 있는 사람의 아들의 사명을 구성하고 있다.
2025 149:6.3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단계를 거쳐서 경외하고 공경하는 높이까지 올라오면서, 연속된 여러 시대에 다른 뜻을 가졌느니라[36]. 이제 공경함에서 시작하여 인식(認識)하고 깨닫고 이해함을 거쳐서 사랑하는 높이에 이르기까지 너희를 이끌고자 하노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 인식할 때, 사람은 최상위를 두려워하게 되느니라.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격과 성품을 비로소 이해하고 체험할 때, 사람은 그렇게 좋고 완전한, 우주의 영원한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도록 마음이 끌리느니라.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이 땅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룰 사명이라.
1955 149:6.4 “Intelligent children do not fear their father in order that they may receive good gifts from his hand; but having already received the abundance of good things bestowed by the dictates of the father’s affection for his sons and daughters, these much loved children are led to love their father in responsive recognition and appreciation of such munificent beneficence. The goodness of God leads to repentance; the beneficence of God leads to service; the mercy of God leads to salvation; while the love of God leads to intelligent and freehearted worship.
2000 149:6.4 “총명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손에서 좋은 선물을 받을까 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주신 좋은 것들을 이미 풍부히 받았은즉 사랑을 많이 받은 이 아이들은 아낌없이 베푸는 그런 은혜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이해함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을 뉘우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봉사로, 하나님의 자비는 구원으로 이끌며, 한편 하나님의 사랑은 지적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를 예배하게 하느니라.
2001 CM 149:6.4 “총명한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을까 하여 그를 두려워하지 않지만;아버지가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물한 좋은 것들을 이미 풍성하게 받았으므로,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자녀들은, 그런 한량없는 은혜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감사함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회개로 이끌며;하나님의 은혜는 봉사로 이끌며;하나님의 자비는 구원으로 이끌며;한편 하나님의 사랑은 지성적이고 진솔한 경배를 드리도록 이끈다.
2007 URKA 149:6.4 “지능적인 자녀들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애정에서의 구술에 따라서 자신의 아들들과 딸들에게 증여된 풍부한 선물을 이미 가진, 사랑을 많이 받아들인 이들 자녀들은 그러한 아낌없이 주는 은혜에 대한 인지와 깊은 감사로 응답하면서, 자신들의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인도된다. 하느님의 선함은 회개로 인도한다; 하느님의 은혜는 봉사로 인도한다; 하느님의 자비는 구원으로 인도한다; 한편 하느님의 사랑은 지능적인 경배와 자유로운-가슴의 경배로 인도한다.
1955 149:6.5 “Your forebears feared God because he was mighty and mysterious. You shall adore him because he is magnificent in love, plenteous in mercy, and glorious in truth. The power of God engenders fear in the heart of man, but the nobility and righteousness of his personality beget reverence, love, and willing worship. A dutiful and affectionate son does not fear or dread even a mighty and noble father.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put love in the place of fear, joy in the place of sorrow, confidence in the place of dread, loving service and appreciative worship in the place of slavish bondage and meaningless ceremonies. But it is still true of those who sit in darkness that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But when the light has more fully come, the sons of God are led to praise the Infinite for what he is rather than to fear him for what he does.
2000 149:6.5 “너희의 선조(先祖)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니, 그가 막강하고 신비스러웠음이라. 너희는 그를 찬미할지니 그의 사랑이 견줄 데 없고 자비가 넘치며 그의 진리가 영화로움이라. 하나님의 권능은 사람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일으켜도 그 성격의 고귀함과 올바름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얻고 즐거이 그를 예배하게 하느니라. 의무에 충실하고 애정을 가진 아들은 막강하고 고귀한 아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느니라. 내가 온 것은 신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사랑하고, 슬퍼하는 대신에 기뻐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며, 노예처럼 속박되어 의미 없는 예식을 치르지 말고 사랑으로 봉사하고 감사함으로 신을 예배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는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하는 것이 아직도 참말이라. 그러나 빛이 더욱 충만히 다가왔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무한자가 하시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 성품 때문에 찬미할 마음이 생기느니라.
2001 CM 149:6.5 “너희의 선조는, 하나님이 강력하고 신비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을 두려워했다. 너희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풍성한 자비와 영광스런 진리로 인해 그분을 흠모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은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그 인격의 고귀함과 의로움은, 공경과 사랑과 자발적인 경배를 초래한다. 본분을 지키고 애정 어린 자녀는, 아버지가 강력하고 고귀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 대신 사랑으로, 슬픔 대신 기쁨으로, 공포 대신 확신으로, 노예근성의 굴종과 무의미한 예식 대신 사랑의 봉사와 감사의 경배로 바꾸려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있는 자에게는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 하지만 빛이 더욱 충분하게 비췄을 때, 하나님의 자녀는 그 무한자의 행하신 일로 인해 그를 두려워하기보다, 그가 어떤 분이신가로 인해 찬미할 마음이 생긴다.
2007 URKA 149:6.5 “너희의 조상들은 하느님의 막강하심과 신비로움으로 인해 그를 두려워하였다. 너희는 그를 찬미할 것이니 이는 그가 사랑에서 장엄하고, 자비에서 충만하며, 그리고 진리에서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힘은 사람의 가슴 안에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그의 개인성에서의 고귀성과 정의로움은 존경, 사랑, 자발적인 경배를 하게 만든다. 순종적이고 애정 깊은 아들은 실로 막강하고 고귀한 아버지일지라도 그를 두려워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두려움의 자리에 사랑을, 슬픔의 자리에 기쁨을, 공포의 자리에 자신감을, 노예적인 억압과 무의미한 의식(儀式)의 자리에 사랑하는 봉사와 감사의 경배를 놓아두기 위하여 이 세상 속으로 나왔다.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는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지혜의 시작’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그러나 빛이 더욱 충만하게 와 있을 때에는, 하느님의 아들들은 무한자를 그가 행한 것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가 그인 것 때문에 찬양하도록 인도된다.
2025 149:6.5 “너희의 선조(先祖)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니, 그가 막강하고 신비스러웠음이라. 너희는 그를 찬미할지니 그의 사랑이 견줄 데 없고 자비가 넘치며 그의 진실이 영화로움이라. 하나님의 권능은 사람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일으켜도 그 성격의 고귀함과 올바름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얻고 즐거이 그를 예배하게 하느니라. 의무에 충실하고 애정을 가진 아들은 막강하고 고귀한 아버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느니라. 내가 온 것은 신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사랑하고, 슬퍼하는 대신에 기뻐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신뢰하며, 노예처럼 속박되어 의미 없는 예식을 치르지 말고 사랑으로 봉사하고 감사함으로 신을 예배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는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하는 것이 아직도 참말이라[38]. 그러나 빛이 더욱 충만히 다가왔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무한자가 하시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 성품 때문에 찬미할 마음이 생기느니라.
1955 149:6.6 “When children are young and unthinking, they must necessarily be admonished to honor their parents; but when they grow older and become somewhat more appreciative of the benefits of the parental ministry and protection, they are led up, through understanding respect and increasing affection, to that level of experience where they actually love their parents for what they are more than for what they have done. The father naturally loves his child, but the child must develop his love for the father from the fear of what the father can do, through awe, dread, dependence, and reverence, to the appreciative and affectionate regard of love.
2000 149:6.6 “아이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을 때는 부모를 존경하라고 반드시 훈계를 받아야 하지만 아이들이 나이가 들고 부모의 보살핌과 보호가 유익함을 얼마큼 더 이해하게 될 때, 저희는 공경하는 마음과 늘어나는 애정을 통해서 부모가 한 일보다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실제로 사랑하는 체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느니라. 아버지는 자연히 자식을 사랑하지만, 아이는 무슨 일을 아버지가 할 수 있는가 두려워하다가 경외하고 무서워하고 의존하고 존경하는 수준을 거쳐서,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존중하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느니라.
2001 CM 149:6.6 “아이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을 때에는, 부모를 존경하라는 훈계를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나이가 들어서 부모의 봉사와 보호의 혜택을 좀 더 고마워할 줄 알게 될 때에는, 이해심에서 나오는 존경과 깊어지는 애정을 통해서, 실제로 부모가 행한 일보다는 그의 현존{現存}으로 인해 부모를 실제로 사랑하는 체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녀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두려워하다가, 경외하고 무서워하고 의존하고 존경하는 수준을 거쳐서,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존중하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한다.
2007 URKA 149:6.6 “자녀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을 때는, 그들은 그들의 부모를 명예로 존경하도록 훈계를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나이가 들어 부모의 사명활동과 보호의 혜택을 어느 정도 좀 더 깊이 감사하게 될 때는, 그들은 납득하는 존경과 증가하는 애정을 두루 통하여. 부모가 무엇을 행하였는가 보다는 부모가 무엇인지로 인하여, 자신들의 부모를 실재적으로 사랑하는 그러한 체험의 차원까지 올라가도록 인도된다. 아버지는 본성적으로 자기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자녀는 아버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경외, 공포, 의존 그리고 존경을 두루 통하여, 사랑에 관해 깊이 감사하고 그리고 애정 깊은 사랑까지 이르도록,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2025 149:6.6 “아이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을 때는 부모를 존경하라고 반드시 훈계를 받아야 하지만 아이들이 나이가 들고 부모의 보살핌과 보호가 유익함을 얼마큼 더 이해하게 될 때, 저희는 공경하는 마음과 늘어나는 애정을 통해서 부모가 한 일보다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실제로 사랑하는 체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느니라. 아버지는 자연히 자식을 사랑하지만, 아이는 무슨 일을 아버지가 할 수 있는가 두려워하다가 경외하고 무서워하고 의존하고 존경하는 수준을 거쳐서,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존중하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느니라.
1955 149:6.7 “You have been taught that you should ‘fear God and keep his commandments, for that is the whole duty of man.’ But I have come to give you a new and higher commandment. I would teach you to ‘love God and learn to do his will, for that is the highest privilege of the liberated sons of God.’ Your fathers were taught to ‘fear God—the Almighty King.’ I teach you, ‘Love God—the all-merciful Father.’
2000 149:6.7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지니, 그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임이라’하고 너희는 가르침을 받았도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새롭고 더 높은 계명을 주고자 함이라. 이렇게 너희에게 가르치고자 하노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행하기를 배울지니, 이것이 하나님의 해방된 아들들의 최고 특권인 까닭이라.’ 너희의 조상은 ‘하나님―전능한 임금―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나는 너희에게 가르치노니, ‘하나님―온통 자비로운 아버지―를 사랑하라.’
2001 CM 149:6.7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지니, 그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새롭고 더 높은 계명을 주러 왔다.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 행하기를 배울지니, 그것이 하나님의 해방된 자녀의 최고 특혜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치려한다. 너희의 선조는, ‘하나님--곧 전능하신 왕--을 두려워하라’고 배웠다.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을--곧 대단히-자비로우신 아버지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2007 URKA 149:6.7 “너희는 이것이 사람의 전적인 의무이니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라.’라고 배웠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새롭고 더욱 높은 계명을 주려고 왔다. 나는 너희에게 이는 하느님의 해방된 자녀의 최고의 특권이니,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을 배워라.’고 가르치겠다. 너희의 선조들은 ‘하느님─막강하신 왕을 두려워하라.’고 배웠지만, 나는 ‘하느님─ 모든-자비넘치는 아버지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1955 149:6.8 “In the kingdom of heaven, which I have come to declare, there is no high and mighty king; this kingdom is a divine family. The universally recognized and unreservedly worshiped center and head of this far-flung brotherhood of intelligent beings is my Father and your Father. I am his Son, and you are also his sons. Therefore it is eternally true that you and I are brethren in the heavenly estate, and all the more so since we have become brethren in the flesh of the earthly life. Cease, then, to fear God as a king or serve him as a master; learn to reverence him as the Creator; honor him as the Father of your spirit youth; love him as a merciful defender; and ultimately worship him as the loving and all-wise Father of your more mature spiritual realization and appreciation.
2000 149:6.8 “나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왔나니 거기에는 높고 강력한 임금이 없느니라. 이 나라는 신의 가족이라. 방대한 이 지적(知的) 존재인 형제들의 중심,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아낌없이 섬김받는 중심이자 우두머리는 내 아버지요 너희 아버지라. 나는 그의 아들이요 너희도 또한 아들이라. 그러므로 하늘의 지위로 보면 너희와 내가 형제인 것이 영원히 진리요, 땅에서 사는 인생에서 육체를 입고 우리가 형제가 되었은즉 더욱 그러하니라. 그러면 하나님을 임금으로 두려워하거나 주인으로 섬기지 말라. 창조자인 그를 존경하기를 배우고 너희 어린 영의 아버지로 공경하며 자비로운 변호자인 그를 사랑하라. 궁극에는 너희가 더 성숙하게 영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아버지, 사랑이 깊고 전적으로 지혜로운 아버지로 예배하라.
2001 CM 149:6.8 “나는 하늘 나라를 선포하러 왔는데, 거기에는 높고 강력한 왕이 없으며;이 나라는 신{神}의 가족이다.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절대로 경배 받는 중심이시요 지성 존재들의 광범한 형제관계의 머리이신 분이, 내 아버지시요 너희의 아버지시다. 내가 그분의 아들이며, 너희 또한 그분의 아들이다. 따라서 너희와 내가 하늘 신분상태에서 형제라는 사실은 영원한 진리이며, 우리는 이 세상 생활에서도 육신의 형제가 됐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하나님을 왕으로 두려워하거나 주인으로 섬기기를 그만 둬라;그분을 창조주로 공경하기를 배우며;너희 미숙한 영{靈}의 아버지로 예우하며;자비로운 옹호자로 사랑하며;궁극에는 너희의 좀 더 성숙된 영적 깨달음과 감사함의 대상인, 사랑 많으시고 온전히-지혜로우신 아버지로 경배하라.
2007 URKA 149:6.8 “내가 선포하러 온 하늘의 왕국에는 높고 막강한 왕이 없다; 이 왕국은 하나의 신성한 가족이다. 우주보편적으로 인지되고 망설임 없이 경배되는 중심이며, 지능 존재들의 이처럼 광대하게-펼쳐진 형제신분에서의 우두머리가 되는 분이, 나의 아버지이자 또한 너희의 아버지이시다. 나는 그의 아들이며 그리고 너희도 역시 그의 아들들이다. 따라서 너희와 내가 하늘 영토 안에서 형제라는 사실은 영원한 진실이며, 우리가 땅에서 사는 일생에서 육신으로 형제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 하느님을 왕으로서 두려워하거나 주로서 그를 섬기는 것을 그만 두라. 그를 창조자로 존경하는 것을 배우라; 젊은 너희 영의 아버지로 명예롭게 공경하라; 그를 자비 넘치는 옹호자로 사랑하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너희의 더욱 성숙한 영적 실현과 깊은 감사에서의 아버지로, 사랑넘치는 그리고 모든-지혜의 아버지로 경배하라,
2025 149:6.8 “나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왔나니 거기에는 높고 강력한 임금이 없느니라. 이 나라는 신의 가족이라[40]. 방대한 이 지적(知的) 존재인 형제들의 중심,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아낌없이 섬김 받는 중심이자 우두머리는 내 아버지요 너희의 아버지라
[41]. 나는 그의 아들이요 너희도 또한 아들이라. 그러므로 하늘의 지위로 보면 너희와 내가 형제인 것이 영원히 진실이요, 땅에서 사는 인생에서 육체를 입고 우리가 형제가 되었은즉 더욱 그러하니라. 그러면 하나님을 임금으로 두려워하거나 주인으로 섬기지 말라. 창조자인 그를 존경하기를 배우고 너희 어린 영의 아버지로 공경하며 자비로운 변호자인 그를 사랑하라. 궁극에는 너희가 더 성숙하게 영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아버지, 사랑이 깊고 전적으로 지혜로운 아버지로 예배하라.
1955 149:6.9 “Out of your wrong concepts of the Father in heaven grow your false ideas of humility and springs much of your hypocrisy. Man may be a worm of the dust by nature and origin, but when he becomes indwelt by my Father’s spirit, that man becomes divine in his destiny. The bestowal spirit of my Father will surely return to the divine source and universe level of origin, and the human soul of mortal man which shall have become the reborn child of this indwelling spirit shall certainly ascend with the divine spirit to the very presence of the eternal Father.
2000 149:6.9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너희의 그릇된 개념들로부터 거짓된 겸손 개념이 자라고 많은 위선(僞善)이 솟아나느니라. 사람의 성품과 기원은 흙 속의 벌레일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의 영이 깃들 때 그 사람의 운명이 신성하게 되느니라. 내 아버지가 수여하는 영은 분명히 그 신성한 근원으로, 기원이 있던 우주 수준까지 돌아가겠고, 필사자의 인간 혼은 이 깃드는 영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아이가 되었을 것이요, 그 혼은 신다운 영과 더불어 영원한 아버지가 계신 바로 그 앞까지 확실히 올라가리라.
2001 CM 149:6.9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너희의 그릇된 관념들로부터, 잘못된 겸손 개념이 자라나고, 대부분의 위선이 생겨났다. 사람이 본질과 기원으로는 흙에서 나온 벌레 같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아버지의 영이 내재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운명은 신성하게 된다. 내 아버지께서 증여하시는 영은 신성한 근원 곧 기원된 우주 수준으로 확실히 돌아가며, 필사적 사람의 인간 혼은, 내주하는 이 영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자녀가 됐을 것이요, 신성한 영과 함께 그 혼은, 영원한 아버지 현존 바로 그 앞까지 틀림없이 상승할 것이다.
2007 URKA 149:6.9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너희의 그릇된 개념으로부터 겸손에 대한 거짓된 관념이 자라나고 많은 너희의 위선이 생겨났다. 사람이 본성과 기원에서 흙에서 난 벌레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에게 내 아버지의 영이 깃들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운명이 신성하게 된다. 내 아버지로부터 증여된 영은 신성한 근원과 기원이 되는 우주 차원으로 확실하게 되돌아갈 것이며, 그리고 내주하는 이 영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 아이가 될 필사 사람의 인간 혼도, 분명히 그 신성한 영과 함께 영원한 아버지의 바로 그 현존까지 상승하게 될 것이다.
2025 149:6.9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너희의 그릇된 개념들로부터 거짓된 겸손 개념이 자라고 많은 위선(僞善)이 솟아나느니라. 사람의 성품과 기원은 흙 속의 벌레일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의 영이 깃들 때 그 사람의 운명이 신성하게 되느니라. 내 아버지가 수여하는 영은 분명히 그 신성한 근원으로, 기원이 있던 우주 수준까지 돌아가겠고, 필사자의 인간 혼은 이 깃드는 영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아이가 되었을 것이요, 그 혼은 신다운 영과 더불어 영원한 아버지가 계신 바로 그 앞까지 확실히 올라가리라.
1955 149:6.10 “Humility, indeed, becomes mortal man who receives all these gifts from the Father in heaven, albeit there is a divine dignity attached to all such faith candidates for the eternal ascent of the heavenly kingdom. The meaningless and menial practices of an ostentatious and false humility are incompatible with the appreciation of the source of your salvation and the recognition of the destiny of your spirit-born souls. Humility before God is altogether appropriate in the depths of your hearts; meekness before men is commendable; but the hypocrisy of self-conscious and attention-craving humility is childish and unworthy of the enlightened sons of the kingdom.
2000 149:6.10 “하늘나라의 영원으로 올라가는 모든 그러한 믿음의 후보자에게 비록 신다운 위엄이 붙을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이 모든 선물을 받는 필사 인간에게 겸손이 정말로 어울리느니라. 의미 없이 비천하게, 보아란 듯 거짓 겸손을 떠는 것은 구원의 근원을 이해하고 영에게서 태어난 너희 혼의 운명을 인식하는 것과 모순되느니라. 마음 속 깊이, 하나님 앞에 겸손함은 아주 적절하니라. 사람들 앞에서 온유함은 칭찬할 만하여도, 자의식하면서 몹시 눈을 끌고 싶어 겸손을 떠는 위선은 유치하며, 하늘나라의 깨우친 아들들에게 어울리지 않느니라.
2001 CM 149:6.10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상승할 그런 모든 신앙 후보자에게 신성한 품위가 덧붙여져 있을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이런 모든 선물을 받은 필사적 사람에게는 정말로 겸손이 어울린다. 거짓 겸양으로 허세부리는 무의미하고 천박한 풍습은, 구원의 근원을 이해하고 영으로 태어난 너희 혼의 운명을 인식하는 것과 모순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함은, 너희의 마음 속 깊은 데서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며;사람 앞에서 온유함은 칭찬받을 만한 것이지만;자신을-의식하는 위선과 주의를 끌기 위한 겸양은 유치하고, 계몽된 천국 자녀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2007 URKA 149:6.10 “하늘 왕국으로 가는 영원한 상승의 그러한 모든 신앙의 후보자들에게 신성한 존엄성이 붙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이들 모든 선물을 받는 필사 사람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것이다. 외양으로 꾸미는 그리고 거짓된 겸손의 무의미하고 천박한 실천-관행은, 너희 구원의 근원에 대한 깊은 감사와 그리고 너희 영으로-태어난 혼의 운명에 대한 인지와 모순된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은 너희 가슴의 깊은 속에서 모든 면에서 적절한 것이다; 사람 앞에서의 온유함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자아-의식적이고 그리고 관심을-갈망하는 겸손의 위선은 왕국의 깨우친 자녀에게서 유치한 것이며 그리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2025 149:6.10 “하늘나라의 영원으로 올라가는 모든 그러한 믿음의 후보자에게 비록 신다운 위엄이 붙을지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이 모든 선물을 받는 필사 인간에게 겸손이 정말로 어울리느니라. 의미 없이 비천하게, 보아란 듯 거짓 겸손을 떠는 것은 구원의 근원을 이해하고 영에게서 태어난 너희 혼의 운명을 인식하는 것과 모순되느니라. 마음 속 깊이, 하나님 앞에 겸손함은 아주 적절하니라. 사람들 앞에서 온유함은 칭찬할 만하여도, 자의식하면서 몹시 눈을 끌고 싶어 겸손을 떠는 위선은 유치하며, 하늘나라의 깨우친 아들들에게 어울리지 않느니라.
1955 149:6.11 “You do well to be meek before God and self-controlled before men, but let your meekness be of spiritual origin and not the self-deceptive display of a self-conscious sense of self-righteous superiority. The prophet spoke advisedly when he said, ‘Walk humbly with God,’ for, while the Father in heaven is the Infinite and the Eternal, he also dwells ‘with him who is of a contrite mind and a humble spirit.’ My Father disdains pride, loathes hypocrisy, and abhors iniquity. And it was to emphasize the value of sincerity and perfect trust in the loving support and faithful guidance of the heavenly Father that I have so often referred to the little child as illustrative of the attitude of mind and the response of spirit which are so essential to the entrance of mortal man into the spirit realities of the kingdom of heaven.
2000 149:6.11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제하는 것이 좋으니라. 그러나 온유함이 영적 기원으로부터 나오게 하고, 혼자만 옳다는 우월감을 자각하는, 스스로 속이는 표현이 되게 하지 말라. 선지자가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으라’하였을 때 지혜롭게 말하였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무한자요 영원자이기는 하여도 또한 ‘뉘우치는 정신과 겸손한 영과 더불어’ 거하심이라. 내 아버지는 자만을 멸시하고 위선을 몹시 싫어하며 불의를 언짢아하시니라. 성실의 가치를 강조하고 하늘 아버지가 사랑으로 지원하고 충실히 안내함을 완전히 의지할 것을 강조하려고, 생각하는 태도와 영의 반응을 보여주는 예로서 어린아이를 내가 무척 자주 언급하였으니, 그런 태도와 반응이 필사 인간이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로 들어가는 데 아주 필요하니라.
2001 CM 149:6.11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고 사람 앞에서 자신을-통제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너희의 온유함이 영적 기원에서 나오게 하고, 독선적 우월감을 자아-의식하는 감각으로 나타내는 자기-기만이 되지 않도록 해라. 선지자가 충고하기를,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걸으라’고 했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무한자시고 영원자시기 때문이며, 그분은 또한 ‘통회하는 마음 그리고 겸손한 영과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자존심을 경멸하고, 위선을 싫어하고, 죄악을 혐오하신다. 진지함의 가치를 강조하고, 하늘 아버지가 사랑으로 지원하고 신실하게 인도하심을 완전히 신뢰할 것을 강조하려고, 정신 태도와 영 반응을 보여주는 예로서 내가 무척 종종 어린아이를 언급했는데, 그런 태도와 반응은, 필사적 사람이 하늘 나라의 영 실체들 속으로 들어가는 데 아주 필요하다.
2007 URKA 149:6.11 “너희가 하느님 앞에서 온유하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자아-통제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의 온유함이 영적 기원에 있게 하라, 그래서 자아-정의로운 우월성의 자아-의식적 감각에서의 자아-기만적 전시가 되지 않도록 하라. 선지자가 충고하여 말하기를, ‘하느님과 함께 겸손하게 걸으라.'라고 하였으니,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무한자이며 영원자이지만 한편으로는 또한 그는, ‘뉘우치는 마음과 겸손한 영을 지닌 그러한 자와 함께'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자만심을 경멸하며, 위선을 몹시 싫어하며, 사악한 불의를 혐오한다. 그리고 내가 필사 사람이 하늘의 왕국의 영 실체로 들어가는 데에 그토록 필수적인 마음의 태도와 영의 반응을 예증하면서, 어린아이를 그렇게 자주 언급했던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이 넘치는 지원과 신실한 인도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성실성에서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025 149:6.11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제하는 것이 좋으니라. 그러나 온유함이 영적 기원으로부터 나오게 하고, 혼자만 옳다는 우월감을 자각하는, 스스로 속이는 표현이 되게 하지 말라[42][43]. 선지자가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으라’하였을 때 지혜롭게 말하였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무한자요 영원자이기는 하여도 또한 ‘뉘우치는 정신과 겸손한 영과 더불어’ 거하심이라. 내 아버지는 자만을 멸시하고 위선을 몹시 싫어하며 불의를 언짢아하시니라
[44]. 성실의 가치를 강조하고 하늘 아버지가 사랑으로 지원하고 충실히 안내함을 완전히 의지할 것을 강조하려고, 생각하는 태도와 영의 반응을 보여주는 예로서 어린아이를 내가 무척 자주 언급하였으니, 그런 태도와 반응이 필사 인간이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로 들어가는 데 아주 필요하니라.
1955 149:6.12 “Well did the Prophet Jeremiah describe many mortals when he said: ‘You are near God in the mouth but far from him in the heart.’ And have you not also read that direful warning of the prophet who said: ‘The priests thereof teach for hire, and the prophets thereof divine for money. At the same time they profess piety and proclaim that the Lord is with them.’ Have you not been well warned against those who ‘speak peace to their neighbors when mischief is in their hearts,’ those who ‘flatter with the lips while the heart is given to double-dealing’? Of all the sorrows of a trusting man, none are so terrible as to be ‘wounded in the house of a trusted friend.’”
2000 149:6.12 “‘너희가 입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도 마음 속에서는 멀도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했을 때 숱한 사람을 잘도 묘사하였느니라. ‘거기 있는 사제들은 보수를 받고 가르치며, 거기 있는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치는도다. 동시에 저희는 경건함을 고백하고, 주가 저희와 함께 있다고 선포하는도다’ 하고 이른 선지자의 끔찍한 경고를 너희는 또한 읽지 아니하였느냐. ‘마음 속에 해악이 있으면서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는’ 자, ‘입으로는 칭찬하나 마음에 두 생각을 품는’ 자에 대하여 너희는 좋이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을 믿는 자의 모든 슬픔 가운데, ‘믿었던 친구의 집에서 상처를 받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느니라.”
2001 CM 149:6.12 “선지자 예레미야가 많은 필사자에 대해 서술하면서 잘 말했다:‘너희가 입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우나, 마음으로는 멀리 있다.’ 그리고 너희는 또한 무서운 경고를 한 선지자의 말을 읽지 못했느냐?:‘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신앙심을 말하고, 주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선포한다.’ 너희는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사람들과, ‘입으로는 아첨하나 마음으로는 이중으로 거래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 받지 않았는가? 신임하는 사람의 모든 슬픔 가운데, ‘믿었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보다 더 지독한 것은 없다.”
2007 URKA 149:6.12 “선지자 예레미야가 많은 필사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은 잘 묘사한 것이었다: ‘너희가 입으로는 하느님 가까이에 있지만, 그러나 가슴 안에서는 그에게서 멀리 있다.’ 그리고 너희는 또한 무서운 경고를 한 선지자의 말을 읽지 못했느냐?: ‘그렇게 사제는 보수를 위하여 가르치고, 그렇게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예언을 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경건함을 고백하고, 주님이 저희와 함께 있다고 선포한다.’ 너희는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가슴에는 해악이 있는’ 사람들과, ‘입술로는 치켜세우지만, 한편 가슴은 이중-거래에 쏠려있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받지 않았는가? 신뢰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슬픔 가운데, ‘신뢰하던 친구의 집에서 상처를 받은 것’만큼 그처럼 끔찍한 것은 없다.”
2025 149:6.12 “‘너희가 입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도 마음 속에서는 멀도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했을 때 숱한 사람을 잘도 묘사하였느니라[45]. ‘거기 있는 사제들은 보수를 받고 가르치며, 거기 있는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치는도다
[46]. 동시에 저희는 경건함을 고백하고, 주가 저희와 함께 있다고 선포하는도다’ 하고 이른 선지자의 끔찍한 경고를 너희는 또한 읽지 아니하였느냐
[47][48][49]. ‘마음 속에 해악이 있으면서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는’ 자, ‘입으로는 칭찬하나 마음에 두 생각을 품는’ 자에 대하여 너희는 좋이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느냐? 사람을 믿는 자의 모든 슬픔 가운데, ‘믿었던 친구의 집에서 상처를 받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느니라.”
7. RETURNING TO BETHSAIDA
7. 벳세다로 돌아가다
7. 벳새다로 돌아감
7. 벳세다로 돌아감
7. 벳세다로 돌아가다
1955 149:7.1 Andrew, in consultation with Simon Peter and with the approval of Jesus, had instructed David at Bethsaida to dispatch messengers to the various preaching groups with instructions to terminate the tour and return to Bethsaida sometime on Thursday, December 30. By supper time on that rainy day all of the apostolic party and the teaching evangelists had arrived at the Zebedee home.
2000 149:7.1 시몬 베드로와 상의하고 예수의 승인을 얻어서, 안드레는 벳세다에 있는 다윗에게, 여행을 마치고 12월 30일 목요일 아무 때나 벳세다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주어 사자들을 여러 전도 집단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비가 오는 그날 저녁때가 되자, 사도 일행을 비롯하여 가르치는 전도사들은 모두 세베대의 집에 도착했다.
2001 CM 149:7.1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와 상의하고 예수의 승인을 받은 후에, 12월 30일 목요일에 모든 사람이 여행을 끝내고 벳새다로 돌아오라는 전갈을 보내기 위하여, 전도하는 여러 집단에 심부름꾼을 파견하라고, 벳새다에 있는 다윗에게 지시했다. 비가 오는 그날 저녁식사시간까지, 모든 사도 일행과 전도자들이 세베대의 집에 도착했다.
2007 URKA 149:7.1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와 상의하고 예수의 승인을 얻은 후,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끝내고 12월 30일, 목요일에 벳세다로 돌아오라는 지침을 전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전도하고 있는 집단에게 메신저들을 파견하라고 벳세다에 있는 다윗에게 지시하였다. 비 오는 날인 그날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 까지, 모든 사도 일행들과 가르치는 전도자들은 세베대의 집에 도착하였다.
2025 149:7.1 시몬 베드로와 상의하고 예수의 승인을 얻어서, 안드레는 벳세다에 있는 다윗에게, 여행을 마치고 12월 30일 목요일 아무 때나 벳세다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주어 사자들을 여러 전도 집단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비가 오는 그날 저녁때가 되자, 사도 일행을 비롯하여 가르치는 전도사들은 모두 세베대의 집에 도착했다.
1955 149:7.2 The group remained together over the Sabbath day, being accommodated in the homes of Bethsaida and near-by Capernaum, after which the entire party was granted a two weeks’ recess to go home to their families, visit their friends, or go fishing. The two or three days they were together in Bethsaida were, indeed, exhilarating and inspiring; even the older teachers were edified by the young preachers as they narrated their experiences.
2000 149:7.2 그 일행은 안식일에 함께 남아 있었고, 벳세다의 여러 집과 근처 가버나움에서 묵었다. 그 뒤에 일행 전부가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거나, 친구들을 찾아보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가도록 2주 동안 휴가를 얻었다. 함께 벳세다에서 지낸 이삼일은 정말로 상쾌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고참(古參) 선생들조차 새 전도사들이 자기 체험을 이야기할 때 교훈을 얻었다.
2001 CM 149:7.2 그 일행은 안식일까지 함께 있었고, 벳새다 및 가까이 있는 가버나움의 여러 집에서 지냈으며, 그후에 가족과 친구를 방문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가도록 두 주일의 휴가가 그 일행 전체에게 주어졌다. 그들이 벳새다에서 함께 지낸 이삼일은, 정말로 흥겹고 인상적인 날들이었으며;선배 선생들조차 새 설교자들의 체험담을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2007 URKA 149:7.2 그 일행은 벳세다와 근처에 있는 가버나움의 여러 집들에서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안식일 동안에 함께 머물렀다. 그 후에 일행 전부에게는 각자의 집으로 가족들에게 가거나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혹은 고기를 잡으러 가도록 두 주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들이 벳세다에서 함께 있었던 2-3일은 정말로 상쾌하고 그리고 영감을 주는 날들이었다. 심지어 더 나이든 선생들조차도 젊은 전도자들이 자신들의 체험담을 서술할 때에 교화되었다.
2025 149:7.2 그 일행은 안식일에 함께 남아 있었고, 벳세다의 여러 집과 근처 가버나움에서 묵었다. 그 뒤에 일행 전부가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거나, 친구들을 찾아보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가도록 2주 동안 휴가를 얻었다. 함께 벳세다에서 지낸 이삼일은 정말로 상쾌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고참(古參) 선생들조차 새 전도사들이 자기 체험을 이야기할 때 교훈을 얻었다.
1955 149:7.3 Of the 117 evangelists who participated in this second preaching tour of Galilee, only about seventy-five survived the test of actual experience and were on hand to be assigned to service at the end of the two weeks’ recess. Jesus, with Andrew, Peter, James, and John, remained at the Zebedee home and spent much time in conference regarding the welfare and extension of the kingdom.
2000 149:7.3 이 둘째 갈릴리 전도 여행에 참여한 전도사 117명 가운데 오직 약 75명이 실제로 체험하는 시험을 견디었고, 2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봉사에 배치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안드레ㆍ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과 함께, 예수는 세베대의 집에 남아 있었고, 하늘나라의 복지와 확장에 관하여 회의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1 CM 149:7.3 이 2차 갈릴리 전도여행에 참가했던 전도자 117명 중에서 약 75명만이 실제로 체험하는 시험을 통과했으며, 두 주의 휴가를 마치고 봉사에 배정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안드레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세베대의 집에 남았고, 천국의 복지와 확장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7 URKA 149:7.3 갈릴리의 두 번째 전도 여행에 참가했던 117명의 전도자들 중에서 겨우 약 75명만이 실재적인 체험의 시험에서 생존하였으며, 그리고 이들은 두 주일의 휴가가 끝났을 때 봉사에 배정되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예수는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세베대의 집에 남아있었으며, 그리고 왕국의 복지와 확장에 관한 회의를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25 149:7.3 이 둘째 갈릴리 전도 여행에 참여한 전도사 117명 가운데 오직 약 75명이 실제로 체험하는 시험을 견디었고, 2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봉사에 배치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안드레ㆍ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과 함께, 예수는 세베대의 집에 남아 있었고, 하늘나라의 복지와 확장에 관하여 회의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