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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RELIGION IN HUMAN EXPERIENCE
제 100 편인간이 체험하는 종교
제100편: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
제 100 편: 인간 체험 속의 종교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
1955 100:0.1 THE experience of dynamic religious living transforms the mediocre individual into a personality of idealistic power. Religion ministers to the progress of all through fostering the progress of each individual, and the progress of each is augmented through the achievement of all.
2000 100:0.1 힘찬 종교 생활의 체험은 평범한 개인을 하나의 이상주의의 힘을 가진 인격자로 변화시킨다. 종교는 각 사람의 진보를 촉진함으로 모든 사람의 진보를 도우며, 모든 사람의 성취를 통해서 각자는 더욱 진보한다.
2001 CM 100:0.1 역동적인 종교 생활 체험은, 평범한 개인을 이상주의적 능력을 지닌 인물로 변화시킨다. 종교는 각 개인의 진보를 촉진시킴으로써 전체의 진보에 공헌하며, 각 개인의 진보는 전체의 성취를 통하여 증대된다.
2007 URKA 100:0.1 역동적인 종교 생활의 체험은 평범한 개별존재를 이상적인 힘을 가진 개인성으로 변환시킨다. 종교는 각 개인의 진보를 조성함으로써 전체의 진보를 충족시키며, 각 개별존재의 진보는 전체의 성취를 통하여 증강된다.
2025 100:0.1 힘찬 종교 생활의 체험은 평범한 개인을 이상주의의 힘을 가진 하나의 인격자로 변화시킨다. 종교는 각 사람의 진보를 촉진함으로 모든 사람의 진보를 도우며, 모두의 성취를 통해서 각자는 더욱 진보한다.
1955 100:0.2 Spiritual growth is mutually stimulated by intimate association with other religionists. Love supplies the soil for religious growth—an objective lure in the place of subjective gratification—yet it yields the supreme subjective satisfaction. And religion ennobles the commonplace drudgery of daily living.
2000 100:0.2 다른 신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서로의 영적 성장을 자극한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이 일어나는 토양―주관적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객관적 매력―을 제공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최고의 주관적 만족감을 낳는다. 종교는 일상 생활의 평범한 고역(苦役)을 귀중한 일로 만든다.
2001 CM 100:0.2 영적 성장은 다른 종교인들과 갖는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상호 자극을 받는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곧 주관적 욕구 충족이 아니라 객관적 매혹--에 토양을 제공하고, 더욱이 최상의 주관적 만족감을 낳는다. 그리고 종교는 일상생활의 진부한 고단함을 고상하게 만든다.
2007 URKA 100:0.2 영적인 성장은 다른 종교인들과의 긴밀한 관계적-연합에 의하여 서로 자극을 받는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주관적인 충족 대신 객관적인 매력─에 토양을 제공하며 더욱이 그것은 최극의 주관적 만족을 가져온다. 그리고 종교는 일상적인 생활의 진부한 고역을 고상하게 만든다.
2025 100:0.2 다른 신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서로의 영적 성장을 자극한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이 일어나는 토양 ― 주관적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객관적 매력 ― 을 제공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최고의 주관적 만족감을 낳는다. 종교는 일상 생활의 평범한 고역(苦役)을 귀중한 일로 만든다.
1. RELIGIOUS GROWTH
1. 종교적 성장
1. 종교적 성장
1. 종교적 성장
1. 종교적 성장
1955 100:1.1 While religion produces growth of meanings and enhancement of values, evil always results when purely personal evaluations are elevated to the levels of absolutes. A child evaluates experience in accordance with the content of pleasure; maturity is proportional to the substitution of higher meanings for personal pleasure, even loyalties to the highest concepts of diversified life situations and cosmic relations.
2000 100:1.1 종교는 의미의 성장과 가치 기준의 향상을 낳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가 절대적인 것의 수준으로 높아질 때 반드시 해악이 생긴다. 어린아이는 쾌락의 내용에 따라서 체험을 평가한다. 사람의 성숙도는 개인의 쾌락 대신에 더 고상한 의미를 찾는 정도, 아니 다양해진 생활 상황과 우주 관계에서 최고의 개념에 충성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2001 CM 100:1.1 종교는 의미의 성장과 가치기준의 향상을 가져오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評價}를 절대불변 수준으로 높일 때, 반드시 악{惡}이 생겨난다. 어린이는 즐거움의 크기에 따라서 체험을 평가하며;성숙도는 개인의 즐거움 대신 더 높은 의미를 찾는 정도, 즉 다양해진 생활환경과 시공우주 관계에서 최고 개념에 충성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2007 URKA 100:1.1 종교가 의미들의 성장과 가치들의 증진을 가져오지만 한편으로, 전적으로 개인적인 평가들이 절대차원으로 들어 오를 때는 반드시 악(惡)이 귀결된다. 어린이는 즐거움의 내용에 따라서 체험을 평가한다; 성숙은 개인적인 즐거움을 보다 높은 의미들로 치환된 양(量), 여러 가지 생활환경과 조화우주적 관계들의 가장 높은 개념들에 대한 충성심에 비례한다.
2025 100:1.1 종교는 의미의 성장과 가치 기준의 향상을 낳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가 절대물의 수준으로 높아질 때 반드시 해악이 생긴다. 어린아이는 쾌락의 내용에 따라서 체험을 평가한다. 사람의 성숙도는 개인의 쾌락 대신에 더 고상한 의미를 찾는 정도, 아니 다양해진 생활 상황과 우주 관계에서 최고의 개념에 충성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1955 100:1.2 Some persons are too busy to grow and are therefore in grave danger of spiritual fixation. Provision must be made for growth of meanings at differing ages, in successive cultures, and in the passing stages of advancing civilization. The chief inhibitors of growth are prejudice and ignorance.
2000 100:1.2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성장할 수 없고, 따라서 영적으로 고정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다른 시대에, 연속되는 문화에서, 그리고 진보하는 문명의 지나가는 단계에서, 의미의 성장을 위하여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성장을 억제하는 주요한 요소는 편견과 무지(無知)이다.
2001 CM 100:1.2 어떤 사람은 너무 바빠서 성장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고착{固着}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다양한 시대와 연속되는 문화 그리고 문명의 발전 단계에 따라, 의미를 성장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장의 가장 큰 방해요소는 편견과 무지다.
2007 URKA 100:1.2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성장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고착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의미들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서로 다른 시대들에, 계속되는 문화들 속에서, 그리고 발전하는 문명의 발생 단계들 속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편견과 무지가 성장을 억제하는 주된 것들이다.
2025 100:1.2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성장할 수 없고, 따라서 영적으로 고정되는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다른 시대에, 연속되는 문화에서, 그리고 진보하는 문명의 지나가는 단계에서, 의미 있는 것들의 성장을 위하여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성장을 억제하는 주요한 요소는 편견과 무지(無知)이다.
1955 100:1.3 Give every developing child a chance to grow his own religious experience; do not force a ready-made adult experience upon him. Remember, year-by-year progress through an established educational regime does not necessarily mean intellectual progress, much less spiritual growth. Enlargement of vocabulary does not signify development of character. Growth is not truly indicated by mere products but rather by progress. Real educational growth is indicated by enhancement of ideals, increased appreciation of values, new meanings of values, and augmented loyalty to supreme values.
2000 100:1.3 모든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종교적 체험이 자랄 기회를 주어라. 이미 만들어진 어른의 체험을 아이에게 떠맡기지 말라. 기존 교육 체제를 통해서 해가 갈수록 조금씩 진보하는 것은, 영적 성장은커녕 반드시 지적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휘가 늘어난다고 인품이 성장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가 성장을 참되게 가리킨다. 이상을 높이는 것, 가치 기준을 더욱 이해하는 것, 가치 기준의 새로운 의미, 그리고 최상의 가치 기준에 더욱 충성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성장을 가리킨다.
2001 CM 100:1.3 성장하는 모든 어린이에게, 그의 종교 체험이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진부한 어른의 체험을 그에게 강요하지 말라. 확립된 교육체제를 통하여 매년 진보되는 것이 반드시 지적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영적 성장은 더욱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라.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성품의 발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장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진행되는 정도로 참되게 표시된다. 진정한 교육적 성장은, 이상{理想}이 향상됨, 가치기준을 더 깊이 음미함, 가치기준의 새로운 의미, 그리고 최상의 가치기준에 더욱 충실함으로 나타난다.
2007 URKA 100:1.3 발달하고 있는 모든 어린이에게 그 자신만의 종교적 체험이 성장할 기회를 주어라; 이미-만들어진 어른의 체험을 그에게 기세로서 밀어붙이지 말라. 이미 확립되어있는 교육 체제를 통하여 두루, 한해 한해 진보하는 것이 필요로 하는 지적 진보를 뜻하지 않음을, 영적 성장은 더더욱 아주 적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휘의 확대가 성격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은 단순한 산출 결과에 의해서 진실로 가리켜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에 의해서 표시된다. 실제 교육적 성장은 이상의 향상, 가치의 증가된 깊은 이해, 가치의 새로운 의미 그리고 최극 가치에 대한 증강된 충성에 의해서 가리켜진다.
2025 100:1.3 모든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종교적 체험이 성장할 기회를 주어라. 이미 만들어진 어른의 체험을 아이에게 떠맡기지 말라. 기존 교육 체제를 통해서 해가 갈수록 조금씩 진보하는 것은, 영적 성장은커녕 반드시 지적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어휘가 늘어난다고 인품이 성장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가 성장을 참되게 가리킨다. 이상을 높이는 것, 가치 기준을 더욱 이해하는 것, 가치 기준의 새로운 의미, 그리고 최상의 가치 기준에 더욱 충성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성장을 가리킨다.
1955 100:1.4 Children are permanently impressed only by the loyalties of their adult associates; precept or even example is not lastingly influential. Loyal persons are growing persons, and growth is an impressive and inspiring reality. Live loyally today—grow—and tomorrow will attend to itself. The quickest way for a tadpole to become a frog is to live loyally each moment as a tadpole.
2000 100:1.4 아이들은 오직 어른 동료들이 충실해야 영구하게 감명을 받는다. 교훈이나 본보기조차 오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충실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이요,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일으키는 현실이다. 오늘을 충성스럽게 살라―자라라―그러면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올챙이가 가장 빨리 개구리가 되는 길은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2001 CM 100:1.4 어린이는 오직 어른 지인{知人}들의 충실함으로만 영구적으로 감명 받으며;교훈이나 본보기조차 오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충실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이며;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일으키는 실체다. 지금 충실하게 살면--즉 성장하면--, 그 결과가 나중에 반드시 따라올 것이다. 올챙이가 개구리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2007 URKA 100:1.4 어린이들은 오직 자신들의 어른 연관-동료들의 충성심에 의해서만 영구적으로 감명을 받는다; 교훈이나 본보기조차도 계속 이어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충성스런 개인들은 성장하는 개인들이다;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실체이다. 오늘을 충성으로 살라─성장하라─그러면 내일은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매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성스럽게 사는 것이다.
2025 100:1.4 아이들은 오직 어른 동료들이 충실해야 영구히 감명을 받는다. 교훈이나 본보기조차 오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충실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이요,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일으키는 현실이다. 오늘을 충성스럽게 살라 ― 자라라 ― 그러면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올챙이가 가장 빨리 개구리가 되는 길은 순간마다 올챙이로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1955 100:1.5 The soil essential for religious growth presupposes a progressive life of self-realization, the co-ordination of natural propensities, the exercise of curiosity and the enjoyment of reasonable adventure, the experiencing of feelings of satisfaction, the functioning of the fear stimulus of attention and awareness, the wonder-lure, and a normal consciousness of smallness, humility. Growth is also predicated on the discovery of selfhood accompanied by self-criticism—conscience, for conscience is really the criticism of oneself by one’s own value-habits, personal ideals.
2000 100:1.5 종교적 성장에 필수인 토양의 전제 조건은 자아를 실현하는 진취적 생활, 타고난 성향의 조정, 호기심을 따르고 적당한 모험을 즐기는 것, 만족한 느낌을 맛보는 것, 정신 차리고 깨어 있도록 자극하는 두려움의 작용, 놀라움의 매력, 그리고 자신이 보잘것 없음을 정상으로 의식하는 것, 즉 겸손이다. 성장은 또한 자아의 발견과 그에 따른 자기 비평―양심―에 의존하며, 이는 양심이 참말로 사람이 자신의 가치 기준과 습관, 개인의 이상에 따라서 스스로를 비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1 CM 100:1.5 종교적 성장에 필수인 토양{土壤}은, 자아를-실현하는 진취적 생활, 타고난 성향의 조화, 호기심 발동 및 타당한 모험심 향유, 만족감 체험, 주목하고 경계하도록 자극하는 두려움의 작용, 경이감의-매력, 그리고 겸손 곧 자신이 보잘 것 없음을 정상으로 의식하는 것 등을 전제로 한다. 성장은 또한, 개성의 발견과 그에 따른 자기-비평--곧 양심--에 입각하는데, 이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와-습성 곧 개인의 이상{理想}에 따라서 스스로를 비평하는 것이, 정말로 양심이기 때문이다.
2007 URKA 100:1.5 종교적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토양은 자아-실현의 진보적인 일생, 자연적 성향의 조화-협동, 호기심의 발동과 타당한 모험의 즐김, 만족함의 느낌의 체험, 주목하기와 알아차림에의 두려워하는 자극의 기능작용, 경이로움의-매혹, 그리고 작고 빈약함의 정상적 의식, 즉 겸손, 이 모든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성장은 자아-비판으로 완수되는 자아신분의 발견─곧 양심에 근거를 두는데, 이는 양심은 실제로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가치-습관들, 곧 개인적 이상들에 의한 자기자아에의 비판이기 때문이다.
2025 100:1.5 종교적 성장에 필수인 토양의 전제 조건은 자아를 실현하는 진취적 생활, 타고난 성향의 조정, 호기심을 따르고 적당한 모험을 즐기는 것, 만족한 느낌을 맛보는 것, 정신 차리고 깨어 있도록 자극하는 두려움의 작용, 놀라움의 매력, 그리고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정상으로 의식하는 것, 즉 겸손이다. 성장은 또한 자아의 발견과 그에 따른 자기 비평 ― 양심 ― 에 의존하며, 이는 양심이 참말로 사람이 자신의 가치 기준과 습관, 개인의 이상에 따라서 스스로를 비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5 100:1.6 Religious experience is markedly influenced by physical health, inherited temperament, and social environment. But these temporal conditions do not inhibit inner spiritual progress by a soul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re are present in all normal mortals certain innate drives toward growth and self-realization which function if they are not specifically inhibited. The certain technique of fostering this constitutive endowment of the potential of spiritual growth is to maintain an attitude of wholehearted devotion to supreme values.
2000 100:1.6 종교적 체험은 몸의 건강, 물려받은 기질, 사회적 환경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현세의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하는 내면의 영적 진보를 막지 않는다.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어떤 타고난 욕구가 모든 정상 필사자에게 있으며, 이것은 특별히 억제되지 않으면 작용한다. 영적 성장 잠재성을 가진 구성 자질을 기르는 확실한 기법은 최상의 가치 기준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2001 CM 100:1.6 종교 체험은, 육체의 건강과 유전된 기질과 사회 환경에 현저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현세의 이런 조건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몰두하는 혼이 이룩하는 내면의 영적 진보를 막지 못한다. 정상적인 모든 필사자 속에는, 그들이 특별히 억압하지만 않으면 기능을 발휘할, 성장하고 자아를-실현하려는 어떤 타고난 본능욕구가 있다. 영적 성장 잠재력을 갖는 이 구조적 재능을 육성하는 확실한 기법은, 최상의 가치에 대해서 전심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2007 URKA 100:1.6 종교적인 체험은 육체적인 건강과 타고난 기질 그리고 사회 환경에 의해 현저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세적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바쳐진 혼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면의 영적 진보를 막지 않는다. 정상적인 모든 필사자들 속에는 만일 그들이 특별히 억압하지만 않으면 기능을 발휘하는 성장과 자아-실현에 대한 어떤 타고난 본능적 욕구들이 존재한다. 영적인 성장의 잠재를 갖는 이 구조적 자질을 육성하는 확실한 기법은 최극 가치들에 대해 전심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2025 100:1.6 종교적 체험은 몸의 건강, 물려받은 기질, 사회적 환경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현세의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하는, 내면의 영적 진보를 막지 않는다.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어떤 타고난 욕구가 모든 정상 필사자에게 있으며, 이것은 특별히 억제되지 않으면 작용한다. 영적 성장 잠재성을 가진 구성 자질을 기르는 확실한 기법은 최상의 가치 기준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1955 100:1.7 Religion cannot be bestowed, received, loaned, learned, or lost. It is a personal experience which grows proportionally to the growing quest for final values. Cosmic growth thus attends on the accumulation of meanings and the ever-expanding elevation of values. But nobility itself is always an unconscious growth.
2000 100:1.7 사람은 종교를 주거나 받거나, 빌리거나 배우거나 잃어버릴 수 없다. 종교는 최종의 가치를 더욱 추구하는 데 비례하여 성장하는 개인적 체험이다. 따라서 우주적 견지에서 성장은 의미가 쌓이고 가치 기준이 늘 높아지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함 그 자체는 언제나 의식하지 않고 성장한다.
2001 CM 100:1.7 종교는 증여되거나, 받거나, 빌리거나, 배우거나, 또는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최종 가치를 더욱 탐구하는 데 비례하여 성장하는 개인 체험이다. 따라서 시공우주적 성장은, 의미가 누적되고 가치기준이 계속-확장하면서 높아진 결과로 일어난다. 그러나 숭고함 자체는 반드시 무의식적 성장이다.
2007 URKA 100:1.7 종교는 증여되거나, 받아들이거나, 빌리거나, 배워지거나, 또는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가치들을 향하여 자라가는 탐구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개인적 체험이다. 그래서 우주적 성장은 의미들의 누적과 가치들의 계속 확대되는 상승의 결과로 수반된다. 그러나 숭고함 그 자체는 항상 무의식적인 성장이다.
2025 100:1.7 사람은 종교를 주거나 받거나, 빌리거나 배우거나 잃어버릴 수 없다. 종교는 최종의 가치를 더욱 추구하는 데 비례하여 성장하는 개인적 체험이다. 따라서 우주적 견지에서 성장은 의미가 쌓이고 가치 기준이 늘 높아지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함 그 자체는 언제나 의식하지 않고 성장한다.
1955 100:1.8 Religious habits of thinking and acting are contributory to the economy of spiritual growth. One can develop religious predispositions toward favorable reaction to spiritual stimuli, a sort of conditioned spiritual reflex. Habits which favor religious growth embrace cultivated sensitivity to divine values, recognition of religious living in others, reflective meditation on cosmic meanings, worshipful problem solving, sharing one’s spiritual life with one’s fellows, avoidance of selfishness, refusal to presume on divine mercy, living as in the presence of God. The factors of religious growth may be intentional, but the growth itself is unvaryingly unconscious.
2000 100:1.8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교적 버릇은 영적 성장 체제에 기여한다. 사람은 영적 자극에 유리하게 반응하도록, 일종의 영적 조건 반사(反射)를 일으키도록,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버릇에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 발달된 감수성, 남의 종교 생활의 인식, 우주적 의미가 있는 것을 돌이켜보는 명상, 경건한 마음으로 문제를 푸는 것, 자기의 영적 생활을 동료들과 나누기, 이기심의 회피, 신의 자비를 주제넘게 바라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 서 있듯 사는 것을 포함한다. 종교적 성장의 여러 요인은 의도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성장 그 자체는 어김없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2001 CM 100:1.8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교 습관은, 질서 있는 영적 성장에 기여한다. 사람은 영적 자극에 호의적으로 반응하도록, 즉 일종의 영적 반사행동을 일으키도록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도와주는 습관에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 다른 사람들의 종교 생활을 인식함, 시공우주 의미에 대한 깊은 묵상, 경건한 문제 해결, 자신의 영적 삶을 다른 동료들과 나눔, 이기심을 회피함, 신의 자비를 전제하지 않음,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살기 등이 있다. 종교적 성장의 요소는 의도적일지 모르나, 성장 자체는 반드시 무의식적{無意識的}이다.
2007 URKA 100:1.8 사고(思考)하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에서의 종교적 습관들은 영적 성장의 섭리에 기여한다. 사람은 영적 자극, 곧 일종의 조건에 따른 영적 반영에 호의적인 반응을 하는 쪽으로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도와주는 습관들에는 신성한 가치들에 대한 세련된 감수성,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인 삶 인식, 조화우주 의미들에 대한 깊은 명상, 경건한 문제 해결, 자신의 영적 삶을 다른 동료들과 나눔, 이기심의 극복, 신성한 자비를 부정적으로 이용하지 않음, 하느님의 현존에 있는 것처럼 살기 등이 있다. 종교적 성장의 요소들은 계획적일 수 있지만 성장 그 자체는 반드시 무의식적이다.
2025 100:1.8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교적 버릇은 영적 성장 체제에 기여한다. 사람은 영적 자극에 유리하게 반응하도록, 일종의 영적 조건 반사(反射)를 일으키도록,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버릇에는 신성한 가치에 대하여 발달된 감수성, 남의 종교 생활의 인식, 우주적 의미가 있는 것을 돌이켜보는 명상, 경건한 마음으로 문제를 푸는 것, 자기의 영적 생활을 동료들과 나누기, 이기심의 회피, 신의 자비를 주제넘게 바라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 서 있듯 사는 것을 포함한다. 종교적 성장의 여러 요인은 의도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성장 그 자체는 어김없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1955 100:1.9 The unconscious nature of religious growth does not, however, signify that it is an activity functioning in the supposed subconscious realms of human intellect; rather does it signify creative activities in the superconscious levels of mortal mind. The experience of the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unconscious religious growth is the one positive proof of the functional existence of the superconsciousness.
2000 100:1.9 그러나 종교적 성장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나는 성질은 그 성장이 인간 지능의 하의식(下意識)이라 생각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임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사자 지성의 상의식(上意識) 수준에 있는 창조적 활동임을 가리킨다. 의식하지 않고 종교적으로 성장하는 현실을 깨닫는 체험은 상의식 기능이 존재함을 가리키는 하나의 분명한 증명이다.
2001 CM 100:1.9 그렇지만, 종교적 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은, 그 성장이 인간 지능의 잠재의식 영역으로 가정되는 곳에서 작용하는 활동임을 뜻하지 않으며;오히려 필사 정신의 초월의식 수준에서 이뤄지는 창조적 활동임을 뜻한다. 종교적 성장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는 현실을 깨닫는 체험은, 초의식 기능이 실존한다는, 하나의 명확한 증거다.
2007 URKA 100:1.9 그렇지만, 종교적 성장에서의 무의식적인 본성은, 어찌되었건, 그것이 인간 지능의 무의식적 영역이라고 가정되는 곳에서, 기능하는 활동이라고 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사자 마음의 초(超)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활동들을 신호한다. 무의식적인 종교적 성장에서의 실체의 실현에 대한 체험은, 초월의식의 기능적 실존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증거이다.
2025 100:1.9 그러나 종교적 성장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나는 성질은 그 성장이 인간 지능의 하의식(下意識)이라 생각되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임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사자 지성의 상의식(上意識) 수준에 있는 창조적 활동임을 가리킨다. 의식하지 않고 종교적으로 성장하는 현실을 깨닫는 체험은 상의식 기능이 존재함을 가리키는 하나의 분명한 증명이다.
2. SPIRITUAL GROWTH
2. 영적 성장
2. 영적 성장
2. 영적 성장
2. 영적 성장
1955 100:2.1 Spiritual development depends, first, on the maintenance of a living spiritual connection with true spiritual forces and, second, on the continuous bearing of spiritual fruit: yielding the ministry to one’s fellows of that which has been received from one’s spiritual benefactors. Spiritual progress is predicated on intellectual recognition of spiritual poverty coupled with the self-consciousness of perfection-hunger, the desire to know God and be like him, the wholehearted purpose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2000 100:2.1 영적 발전은 첫째로, 참 영적 세력과 생생한 영적 연락을 유지하고, 둘째로 영적 열매를 줄곧 맺는 것에 달려 있다. 즉 사람이 영적 은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영적 진보는 사람이 영적으로 부족함을 머리로 인식하고, 아울러 완전을 향한 욕구,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구, 마음을 다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을 자의식하는 데 달려 있다.
2001 CM 100:2.1 영적 발전은 첫째로, 참된 영적 무리와 생생한 영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달려있고, 둘째로, 영적 열매를 계속 맺음에:즉 자신이 영적 은인{恩人}으로부터 받은 것을 동료들에게 베푸는 데 달려있다. 영적 진보는, 완벽함에-굶주린 자들의 자아-의식,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열망,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행하겠다는 결심과 더불어, 영적으로 부족함을 지적으로 깨달음에 달려있다.
2007 URKA 100:2.1 영적인 발전은, 첫째로, 참된 영적 기세와 살아있는 영적 관계를 유지함에 있으며, 두 번째는, 영적 열매를 계속해서 맺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동료에게 자신의 영적 은인으로부터 받아들였던 것을 사명활동으로 결실을 거두어가는 것이다. 영적인 진보는 완전함에-굶주림의 자아-의식, 하느님을 알고 그리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망,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전심전력의 목적과 짝을 이루고 있는, 영적 빈곤의 지능적 인지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25 100:2.1 영적 발전은 첫째로, 참 영적 세력과 생생한 영적 연락을 유지하고, 둘째로 영적 열매를 줄곧 맺는 것에 달려 있다. 즉 사람이 영적 은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영적 진보는 사람이 영적으로 부족함을 머리로 인식하고, 아울러 완전을 향한 욕구,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구, 진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을 자의식하는 데 달려 있다.
1955 100:2.2 Spiritual growth is first an awakening to needs, next a discernment of meanings, and then a discovery of values. The evidence of true spiritual development consists in the exhibition of a human personality motivated by love, activated by unselfish ministry, and dominated by the wholehearted worship of the perfection ideals of divinity. And this entire experience constitutes the reality of religion as contrasted with mere theological beliefs.
2000 100:2.2 영적 성장은 처음에 필요를 각성하고, 다음에 의미 있는 것을 헤아리며, 그리고 나서 가치 기준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증거는 사랑으로 동기를 얻고, 사심 없는 봉사로 인하여 자극받고, 신의 완전한 이상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에 지배된 인격을 전시하는 데 있다. 이 체험 전부가 종교의 실체이며, 단순한 신학적 관념과 대조가 된다.
2001 CM 100:2.2 영적 성장이란, 처음에 필요를 각성하고, 다음에는 의미를 식별하고, 그리고 나서 가치기준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증거는, 사랑으로 인해 자극받고, 사심 없는 섬김으로 활성화되고, 신성{神性}에 속하는 완벽한 이상{理想}을 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에 지배되는, 인간 인격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이런 체험 전체가 종교의 실체이며, 단순한 신학적 믿음과 대조된다.
2007 URKA 100:2.2 영적 성장은 먼저 필요에 대한 각성이며, 다음에는 의미들에 대한 인식이고, 그 다음에는 가치들의 발견이다. 참된 영적 발전의 증거는 사랑에 의해 출발되고, 사심-없는 사명활동에 의해 활성화되며, 신성(神性)의 완전 이상들에 대한 전심으로의 경배에 의하여 지배되는 개인성의 표현 속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 체험은 단순히 신학적인 믿음과는 대조적으로 종교의 실체를 구성한다.
2025 100:2.2 영적 성장은 처음에 필요를 각성하고, 다음에 의미 있는 것을 헤아리며, 다음에 가치 기준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영적 성장이 일어나는 증거는 사랑으로 동기를 얻고, 사심 없는 봉사에 자극받고, 신의 완전한 이상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에 지배된 인격을 전시하는 데 있다. 이 체험 전부가 종교의 실체이며, 단순한 신학적 관념과 대조가 된다.
1955 100:2.3 Religion can progress to that level of experience whereon it becomes an enlightened and wise technique of spiritual reaction to the universe. Such a glorified religion can function on three levels of human personality: the intellectual, the morontial, and the spiritual; upon the mind, in the evolving soul, and with the indwelling spirit.
2000 100:2.3 종교는 우주에 대하여 영적으로 반응하는 기법, 깨우침을 받은 지혜로운 기법이 되는 체험 수준까지 진보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로운 종교는 인격의 세 수준, 지성ㆍ상물질ㆍ영 수준에서, 즉 지성에 대하여, 진화하는 혼 속에서, 깃드는 영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
2001 CM 100:2.3 종교는, 우주에 대해 영적으로 반응하는, 개화되고 현명한 기법이 되는 체험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다. 영화롭게 된 그런 종교는, 인간 인격의 3가지 수준, 즉:지적 수준과 모론시아 수준과 영적 수준에서;정신에 대하여, 진화하는 혼 속에서, 그리고 내주{內住}하는 영과 함께 작용할 수 있다.
2007 URKA 100:2.3 종교는 그것이 우주에 대하여 영적으로 반응하는, 깨우치고 그리고 현명한 기법이 되는 체험의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영화롭게 된 그러한 종교는 인간 개인성의 3가지 차원 즉: 지적 차원, 모론시아적 차원, 영적 차원; 마음 위에, 진화하는 혼속에, 내주하는 영과 함께 기능할 수 있다.
2025 100:2.3 종교는 우주에 대하여 영적으로 반응하는 기법, 깨우침을 받은 지혜로운 기법이 되는 체험 수준까지 진보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로운 종교는 인격의 세 수준, 지성ㆍ상물질ㆍ영 수준에서, 즉 지성에 대하여, 진화하는 혼 속에서, 깃드는 영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
1955 100:2.4 Spirituality becomes at once the indicator of one’s nearness to God and the measure of one’s usefulness to fellow beings. Spirituality enhances the ability to discover beauty in things, recognize truth in meanings, and discover goodness in values. Spiritual development is determined by capacity therefor and i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elimination of the selfish qualities of love.
2000 100:2.4 영적 수준은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움을 가리키는 지표이자 사람이 동료 존재들에게 쓸모 있음을 재는 자가 된다. 영적 성향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의미 있는 것에 담긴 진리를 헤아리고, 가치 기준에 담긴 선을 발견하는 능력을 높여 준다. 영적 발전은 발전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되며, 사랑의 이기적 성질을 없애는 데 비례하여 커진다.
2001 CM 100:2.4 영성{靈性}은 곧바로, 한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친근한지, 그리고 동료 존재들에게 얼마나 유익한지를 재는 척도가 된다. 영성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 하고, 의미에 담겨있는 진리를 알아보고, 가치기준에서 선함을 발견하는 역량을 증진시킨다. 영적 발달은, 발달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결정되고, 사랑의 이기적 특성을 제거하는 만큼 즉시 이뤄진다.
2007 URKA 100:2.4 영성(靈性)은 사람이 하느님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그리고 동료 존재에게는 한 존재로서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한번에 즉시 가늠하는 지도계이자 척도가 된다. 영성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미에서 진리를 깨닫고 가치에서 선을 발견하는 능력을 강화시킨다. 영적 발달은 영성을 담을 수용력으로 결정되며 또한 사랑에서 이기적 본질특성을 얼마나 제거 하느냐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2025 100:2.4 영적 수준은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움을 가리키는 지표이자 사람이 동료 존재들에게 쓸모 있음을 재는 자가 된다. 영적 성향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의미 있는 것에 담긴 진실을 헤아리고, 가치 기준에 담긴 선을 발견하는 능력을 높여 준다. 영적 발전은 발전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되며, 사랑의 이기적 성질을 없애는 데 비례하여 커진다.
1955 100:2.5 Actual spiritual status is the measure of Deity attainment, Adjuster attunement. The achievement of finality of spirituality is equivalent to the attainment of the maximum of reality, the maximum of Godlikeness. Eternal life is the endless quest for infinite values.
2000 100:2.5 실제의 영적 상태는 신에 도달한 정도, 조절자와 조화된 정도를 측정한다. 궁극의 영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최대의 실체에 이르는 것, 하나님다운 모습의 극대화와 대등하다. 영생은 무한한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2001 CM 100:2.5 실제 영적 상태는, 신격에 도달한 정도, 즉 섭리사와 동조{同調}되는 정도와 같다. 궁극의 영성 성취는, 실체가 최고점에 도달함, 즉 하나님처럼 되는 최고점과 일치한다. 영생{永生}이란, 무한한 가치기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2007 URKA 100:2.5 실재적인 영적 지위는 신(神) 달성, 조절자가 동조된 정도와 같다. 영성(靈性)의 최종 성취는 실체의 최고점 달성, 하느님과-같음을-이룸의 최고점과 일치한다. 영원한 삶은 무한한 가치들에 대한 끝없는 추구이다.
2025 100:2.5 실제의 영적 상태는 신에 도달한 정도, 조절자와 조화된 정도를 측정한다. 궁극의 영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최대의 실체에 이르는 것, 하나님다운 모습의 극대화와 대등하다. 영생은 무한한 가치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1955 100:2.6 The goal of human self-realization should be spiritual, not material. The only realities worth striving for are divine, spiritual, and eternal. Mortal man is entitled to the enjoyment of physical pleasures and to the satisfaction of human affections; he is benefited by loyalty to human associations and temporal institutions; but these are not the eternal foundations upon which to build the immortal personality which must transcend space, vanquish time, and achieve the eternal destiny of divine perfection and finaliter service.
2000 100:2.6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는 목표는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유일하게 얻으려고 애쓸 가치가 있는 것은 신답고, 영적이고, 영원하다. 필사 인간은 육체의 기쁨을 즐기고 인간적 사랑에서 얻는 만족감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는 인간 관계와 현세의 제도에 충실함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간을 뛰어넘고, 시간을 극복하고, 신다운 완전함을 얻고 최후자로 봉사하는 영원한 운명을 성취할 불멸의 인격을 기르기 위한 영원한 기초가 아니다.
2001 CM 100:2.6 인간이 자아를-실현하는 목표는, 물질적이 아니라 영적이어야 한다. 신성하고 영적이고 영원한 실체만이, 얻으려고 애쓸만한 값어치가 있다. 필사적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인간적 애정을 만족시킬 권리가 있으며;인간 관계와 현세의 제도에 충성함으로써 유익을 얻지만;이런 것들은, 공간을 초월하게 돼있는, 시간을 극복하게 돼있는, 그리고 신성한 완벽성과 완결성취자 봉사라는 영원한 운명을 성취하게 돼있는 불멸{不滅}의 인격을 그 위에 건축하기 위한 영원한 토대가 아니다.
2007 URKA 100:2.6 인간 자아-실현의 목표는 물질적이 아니라 영적이어야만 한다. 분투할만한 가치를 갖는 유일한 실체들은 신성하고 영적이며 영원한 것들이다. 필사 사람은 육체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인간 애정에서의 만족을 누릴 권리가 있다; 또한 인간 관계적-연합들과 그리고 현세적 제도에 충성함으로써 은혜를 누린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극복하며 신성한 완전성과 최종자의 봉사에 대한 영원한 운명을 성취해야만 하는 불멸의 개인성을 세울, 영원한 기초가 아니다.
2025 100:2.6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는 목표는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유일하게 얻으려고 애쓸 가치가 있는 것은 신답고, 영적이고, 영원하다. 필사 인간은 육체의 기쁨을 즐기고 인간적 사랑에서 얻는 만족감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는 인간 관계와 현세의 제도에 충실함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간을 뛰어넘고, 시간을 극복하고, 신다운 완전함을 얻고 최후자로 봉사하는 영원한 운명을 성취할 불멸의 인격을 기르기 위한 영원한 기초가 아니다.
1955 100:2.7 Jesus portrayed the profound surety of the God-knowing mortal when he said: “To a God-knowing kingdom believer, what does it matter if all things earthly crash?” Temporal securities are vulnerable, but spiritual sureties are impregnable. When the flood tides of human adversity, selfishness, cruelty, hate, malice, and jealousy beat about the mortal soul, you may rest in the assurance that there is one inner bastion, the citadel of the spirit, which is absolutely unassailable; at least this is true of every human being who has dedicated the keeping of his soul to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eternal God.
2000 100:2.7 “하나님을 알고 하늘나라를 믿는 자에게 땅에 있는 만물이 무너진다 해도 무슨 상관이냐?”하고 말했을 때, 예수는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깊은 확신을 보여주었다. 현세의 안전은 사라지기 쉽지만, 영적 보장은 깨어질 수 없다. 인간의 곤경ㆍ이기심ㆍ잔인ㆍ미움ㆍ악의ㆍ질투의 큰 물결이 필사자의 혼을 내려칠 때, 너희는 마음 속에 한 거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영의 요새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안심해도 좋다. 깃드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에게 자기의 혼을 맡기려고 바친 모든 인간에게 적어도 이것이 참말이다.
2001 CM 100:2.7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심오한 확신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씀했다:“하나님을 알고 천국을 믿는 자라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들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느냐?” 현세의 안전은 무너지기 쉬우나, 영적 확실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역경, 이기심, 잔인함, 미움, 악의, 또는 질투심의 큰 물결이 필사자의 혼을 휩쓸 때, 너희는 하나의 내적 요새, 즉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영의 성곽이 존재한다는 확신 속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으며;적어도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내주하는 영에게 자신의 혼을 맡겨버리는 모든 인간에게 확실히 적용된다.
2007 URKA 100:2.7 예수는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의 깊은 확실성을 묘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느님을 알고 왕국을 믿는 자들이라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진들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 되겠느냐?” 현세적인 안전은 무너지기 쉽지만, 영적인 확실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적인 역경과 이기심과 사악함과 증오와 원한과 시기심의 밀물이 필사자의 혼을 휩쓸 때, 너희는 하나의 내적인 요새, 절대적으로 무너질 수 없는 영의 성채가 존재한다는 확신 속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 이것은 적어도 내주하고 있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영에게 자신의 혼을 맡기는 것에 전념해 온 모든 인간 존재들에게 진실이다.
1955 100:2.8 After such spiritual attainment, whether secured by gradual growth or specific crisis, there occurs a new orientation of personality as well as the development of a new standard of values. Such spirit-born individuals are so remotivated in life that they can calmly stand by while their fondest ambitions perish and their keenest hopes crash; they positively know that such catastrophes are but the redirecting cataclysms which wreck one’s temporal creations preliminary to the rearing of the more noble and enduring realities of a new and more sublime level of universe attainment.
2000 100:2.8 차츰차츰 성장하든지 특정한 위기로 인하여 도달하든지 상관 없이, 그러한 영적 달성이 있은 뒤에, 새 가치 기준이 생길 뿐 아니라 인격의 새로운 적응이 일어난다. 영에게서 태어난 그러한 개인들은 인생에 다시 자극받으며,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포부가 물거품이 되고 아주 간절한 꿈이 깨어지는 동안에 차분히 구경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재난이 단지, 우주에서 새롭고 더 숭고한 성취 수준에서 더 고귀하고 오래 가는 실체들을 육성하기 전에, 사람이 현세에 창조한 것을 부서뜨리는, 방향을 바꾸는 격변인 줄 분명히 안다.
2001 CM 100:2.8 그런 영적 달성이 이뤄지고 나면, 점차 성장하여 확립되든지, 또는 특정한 위기로 인해 확립되든지 상관없이, 새 가치기준의 발달은 물론, 새로운 인격 적응이 일어난다. 영으로 태어난 그런 개인은 확실한 동기를 삶에 다시 부여받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야망이 사라지고 가장 열중하는 희망이 무너지는 동안에도 태연히 기다릴 수 있으며;그런 재난이 단지, 새롭고 더 웅대한 수준의 우주 달성이라는 더 고상하고 영속적인 실체를 높여주기에 앞서, 사람이 현세에 창작한 것을 파괴하는, 방향을 수정하는 격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2007 URKA 100:2.8 그러한 영적인 달성이 이루어지고 나면, 점차적인 성장 또는 특이한 분기점에 의해 야기되더라도, 개인성의 새로운 적응은 물론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의 발달이 발생한다. 영으로-태어난 그러한 개별존재들은 삶에 다시 확실한 동기를 부여받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열정들이 사라지고 가장 열망하는 희망이 무너지는 속에서도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큰 재앙들이 다만 새롭게 방향을 정해주는 대변혁이며. 그것은 우주적 달성에서의 새롭고도 더욱 웅대한 차원의 실체들로 이루어진 더욱 고귀한 그리고 참을성으로 견디어내는 뒤편에게, 준비단계로서 자신들의 현세적 창조계를 파괴하는 그러한 대 변혁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안다.
2025 100:2.8 차츰차츰 성장하든지 특정한 위기로 인하여 도달하든지 상관없이, 그러한 영적 달성이 있은 뒤에, 새 가치 기준이 생길 뿐 아니라 인격의 새로운 적응이 일어난다. 영에게서 태어난 그러한 개인들은 인생에서 다시 자극 받으며,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포부가 물거품이 되고 아주 간절한 꿈이 깨어지는 동안에 차분히 구경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재난이 단지, 우주에서 새롭고 더 숭고한 성취 수준에서 더 고귀하고 오래 가는 실체들을 육성하기 전에, 사람이 현세에 창조한 것을 부서뜨리는, 방향을 바꾸는 격변인 줄 분명히 안다.
3. CONCEPTS OF SUPREME VALUE
3. 최상의 가치에 관한 여러 개념
3. 최상의 가치에 관한 여러 개념
3. 최극 가치의 개념들
3. 최상의 가치에 관한 여러 개념
1955 100:3.1 Religion is not a technique for attaining a static and blissful peace of mind; it is an impulse for organizing the soul for dynamic service. It is the enlistment of the totality of selfhood in the loyal service of loving God and serving man. Religion pays any price essential to the attainment of the supreme goal, the eternal prize. There is a consecrated completeness in religious loyalty which is superbly sublime. And these loyalties are socially effective and spiritually progressive.
2000 100:3.1 종교는 정적(靜的)이고 지극한, 정신의 평안을 얻는 기법이 아니다. 종교는 힘찬 봉사를 위하여 혼을 가라앉히는 충동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시중드는 충실한 봉사에 자아 전체가 지원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고의 목표, 영원한 상을 얻는 데 필수인 어떤 값이라도 치른다. 종교적 충성에는 완벽하게 바치는 마음이 있으며, 이것은 뛰어나게 숭고하다. 이 충성심은 사회적으로 효과 있고 영적 진취성이 있다.
2001 CM 100:3.1 종교는, 정적{靜的}이고 복이 넘치는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기법이 아니며;역동적 봉사를 위하여 혼을 체계화하는 자극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돌보는 충성된 봉사에 자아성{自我性} 전체가 지원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고 목표인 영원한 상을 받기에 필요한 어떤 값이든지 지불한다. 종교적 충성심에는 지극히 숭고한 헌신적 완결성이 있다. 이런 충성심은 사회적으로 효력있고 영적으로 진보적이다.
2007 URKA 100:3.1 종교는 정적(靜的)이고 행복한 마음의 평화 달성을 위한 기법이 아니며; 동적(動的)인 봉사를 위해 혼을 조직하는 추진력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충성된 봉사에 자아신분의 전체성이 입대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극의 목표 달성, 영원한 보상에 필수적인 어떤 값이라도 치른다. 빼어나게 숭고한 종교적 충성심 안에 성스럽게 바친 완성됨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은 사회적으로 효력이 있고 영적으로 진보적이다.
2025 100:3.1 종교는 정적(靜的)이고 지극한, 정신의 평안을 얻는 기법이 아니다. 종교는 힘찬 봉사를 위하여 혼을 가라앉히는 충동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시중드는 충실한 봉사에 자아 전체가 지원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고의 목표, 영원한 상을 얻는 데 필수인 어떤 값이라도 치른다. 종교적 충성에는 헌신적인 완벽함이 있으며, 이것은 뛰어나게 숭고하다. 이 충성심은 사회적으로 효과 있고 영적 진취성이 있다.
1955 100:3.2 To the religionist the word God becomes a symbol signifying the approach to supreme reality and the recognition of divine value. Human likes and dislikes do not determine good and evil; moral values do not grow out of wish fulfillment or emotional frustration.
2000 100:3.2 신자에게 하나님이란 낱말은 사람이 최고의 실체에 접근하고 신성한 가치를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선악을 좌우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는 소망의 성취나 감정의 좌절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2001 CM 100:3.2 종교인에게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최상급 실체에 접근하고 신성한 가치를 깨닫는 것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인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선과 악을 결정하지 않으며;도덕적 가치관은 소망의 실현이나 감정적 좌절감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2007 URKA 100:3.2 종교인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라는 말은 최극 실체를 향한 접근과 신성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인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선과 악을 결정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들은 소망의 달성이나 감정적 좌절감으로부터 발생되지 않는다.
2025 100:3.2 신자에게 하나님이란 낱말은 사람이 최고의 실체에 접근하고 신성한 가치를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선악을 좌우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는 소망의 성취나 감정의 좌절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1955 100:3.3 In the contemplation of values you must distinguish between that which is value and that which has value. You must recognize the relation between pleasurable activities and their meaningful integration and enhanced realization on ever progressively higher and higher levels of human experience.
2000 100:3.3 가치 기준을 숙고할 때, 너희는 가치 그 자체와 가치가 있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너희는 즐거운 활동, 그리고 늘 점진적으로 더욱 높아지는 인간 체험의 수준에서 즐거운 활동을 뜻 있게 통합하고 더 낫게 진행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헤아려야 한다.
2001 CM 100:3.3 가치기준을 성찰할 때, 너희는 가치 있는 것과 가치를 지닌 것의 차이를 반드시 구분해야한다. 유쾌하게 활동하는 것과, 늘 점진적으로 더욱 높아지는 인간 체험 수준에서 유쾌한 활동을 의미 있게 통합하고 더 낫게 실현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해야한다.
2007 URKA 100:3.3 가치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길 때, 너희는 가치인 것과 가치를 갖는것의 차이를 반드시 구분해야만 한다. 너희는 유쾌한 활동들과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인간 체험의 언제까지나 더욱 높고 높게 진보되는 차원 위에서의 의미깊은 집대성활동과 증진된 실현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여야만 한다.
2025 100:3.3 가치 기준을 숙고할 때, 너희는 가치 그 자체와 가치가 있는 물건을 구별해야 한다. 너희는 즐거운 활동, 그리고 늘 점진적으로 더욱 높아지는 인간 체험의 수준에서 즐거운 활동을 뜻 있게 통합하고 더 낫게 진행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관계를 헤아려야 한다.
1955 100:3.4 Meaning is something which experience adds to value; it is the appreciative consciousness of values. An isolated and purely selfish pleasure may connote a virtual devaluation of meanings, a meaningless enjoyment bordering on relative evil. Values are experiential when realities are meaningful and mentally associated, when such relationships are recognized and appreciated by mind.
2000 100:3.4 의미는 체험이 가치 기준에 더하는 무엇이다. 의미는 가치 기준을 이해하여 의식하는 것이다. 혼자서만 누리는 순전히 이기적 기쁨은 실질적으로 목적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상대적 악에 가까워지는 의미 없는 쾌락을 암시할지 모른다. 실체들이 의미가 있고 정신적으로 연결될 때, 지성이 그러한 관계들을 인식하고 이해할 때, 가치는 사람이 체험하는 것이다.
2001 CM 100:3.4 의미는, 체험이 가치에 덧붙이는 무엇이며;가치기준을 식별하여 의식하는 것이다. 혼자서만 누리는 순전히 이기적인 쾌락은, 의미를 실질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상대적 악{惡}에 가까운 무의미한 향락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현실이 의미 있고 정신적으로 연관돼있을 때, 그런 관계가 마음으로 인식되고 음미될 때, 가치기준은 체험적이다.
2007 URKA 100:3.4 의미는 체험이 가치에 덧붙이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가치에서의 깊이-이해하는 의식이다. 고립되고 순전히 이기적인 즐거움은 의미에서의 실질적 평가절하, 상대적인 악(惡)에 가까운 무의미한 향락을 내포할 수도 있다. 가치는 실체가 의미 있고 정신적으로 관계적-연합이 될 때, 그러한 관계들이 마음에 의해 인지되고 깊이-이해될 때, 체험적인 것이 된다.
2025 100:3.4 의미는 체험이 가치 기준에 더하는 무엇이다. 의미는 가치 기준을 이해하여 의식하는 것이다. 혼자서만 누리는 순전히 이기적 기쁨은 실질적으로 목적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상대적 악에 가까워지는 의미 없는 쾌락을 암시할지 모른다. 실체들이 의미가 있고 정신적으로 연결될 때, 지성이 그러한 관계들을 인식하고 이해할 때, 가치는 체험적인 것이다.
1955 100:3.5 Values can never be static; reality signifies change, growth. Change without growth, expansion of meaning and exaltation of value, is valueless—is potential evil. The greater the quality of cosmic adaptation, the more of meaning any experience possesses. Values are not conceptual illusions; they are real, but always they depend on the fact of relationships. Values are always both actual and potential—not what was, but what is and is to be.
2000 100:3.5 가치 기준은 결코 정지(靜止) 상태에 있을 수 없다. 실체는 변화, 성장이 있음을 가리킨다. 성장이 없이, 의미가 확대되고 가치가 높아지는 일이 없이, 변화는 가치가 없다―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적응이 잘 되어 있을수록, 어떤 체험이라도 더 많은 중요성을 가진다. 가치는 개념의 착각이 아니다. 가치 기준은 실재하지만 반드시 관계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가치 기준은 언제나 실재하면서도 잠재한다―지난날에 어떠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이요,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2001 CM 100:3.5 가치기준은 결코 고정돼있을 수 없으며;현실은 변화 곧 성장을 의미한다. 성장이 없는 변화, 즉 의미를 확장함과 가치를 높임이 없는 변화는 무가치하다--곧 잠재적 악이다. 시공우주적 적응의 질이 높을수록, 어떤 체험이든지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가치는 개념적 착각이 아니며;실재하지만, 반드시 관계라는 실상에 의존한다. 가치기준은 항상 실제적인 동시에 잠재적이다--곧 과거의 무엇이 아니라, 현재의 무엇, 그리고 앞으로 있을 무엇이다.
2007 URKA 100:3.5 가치는 결코 정적(靜的)인 것이 될 수 없다; 실체는 변화, 성장을 뜻하는 것이다. 성장이 없는, 곧 의미의 확장과 가치의 고취가 없는 그러한 변화는 가치가 없는 것─잠재적인 악이다. 조화우주적 적응에서의 본질특성이 더욱 위대할수록, 그 어떤 체험이라도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치는 개념적인 환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실제이지만, 그러나 항상 관계의 사실에 의존한다. 가치는 항상 실재적이며 동시에 잠재적이다─예전의 어떤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무엇 그리고 앞으로 되어질 무엇이다.
2025 100:3.5 가치 기준은 결코 정지(靜止) 상태에 있을 수 없다. 실체는 변화, 성장이 있음을 가리킨다. 성장이 없이, 의미가 확대되고 가치가 높아지는 일이 없이, 변화는 가치가 없다 ― 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적응하는 품질이 고급일수록, 어떤 체험이라도 더 많은 의미를 가진다. 가치는 개념의 착각이 아니다. 가치 기준은 실재하지만 반드시 관계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가치 기준은 언제나 실재하면서도 잠재한다 ― 지난날에 어떠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이요,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1955 100:3.6 The association of actuals and potentials equals growth, the experiential realization of values. But growth is not mere progress. Progress is always meaningful, but it is relatively valueless without growth. The supreme value of human life consists in growth of values, progress in meanings, and realization of the cosmic interrelatedness of both of these experiences. And such an experience is the equivalent of God-consciousness. Such a mortal, while not supernatural, is truly becoming superhuman; an immortal soul is evolving.
2000 100:3.6 실재하는 것과 잠재하는 것을 연결하면 성장이 된다, 가치가 체험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그저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전진은 언제나 의미가 있지만, 성장이 없으면 전진은 비교적 가치가 없다. 인생에서 최고로 값진 것은 가치 기준의 성장, 의미 있는 것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체험이 우주에서 서로 관계되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러한 체험은 하나님을 의식함과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필사자는 자연을 초월하지는 않더라도, 참으로 인간을 초월하고 있다. 죽지 않는 혼이 생성되고 있다.
2001 CM 100:3.6 실제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결합은 성장, 즉 가치가 체험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항상 의미심장하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 인생에서 최고로 값진 것은, 가치기준이 성장함, 의미가 향상됨, 그리고 이 두 체험이 시공우주에서 서로 관계있음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런 체험은, 하나님을-의식함과 동등하다. 그런 필사자는, 자연을 초월하지는 않더라도 정말로 인간을 초월하고 있으며;불멸의 혼{魂}이 진화하고 있다.
2007 URKA 100:3.6 실재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관계적-연합은 성장, 가치에 대한 체험적 깨달음과 동일하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반드시 의미를 갖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 인간 삶의 최극 가치는, 가치의 성장과 의미의 진보 그리고 이 두 체험의 조화우주 상호-관련의 실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은 하느님-인식에 상응한다. 그러한 필사자는 초자연적 존재는 아니지만, 정말로 초인간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혼(魂)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2025 100:3.6 실재하는 것과 잠재하는 것을 연결하면 성장이 된다, 가치가 체험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그저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전진은 언제나 의미가 있지만, 성장이 없으면 전진은 비교적 가치가 없다. 인생에서 최고로 값진 것은 가치 기준의 성장, 의미 있는 것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체험이 우주에서 서로 관계되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러한 체험은 하나님을 의식함과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필사자는 자연을 초월하지는 않더라도, 참으로 인간을 초월하고 있다. 죽지 않는 혼이 생성되고 있다.
1955 100:3.7 Man cannot cause growth, but he can supply favorable conditions. Growth is always unconscious, be it physical, intellectual, or spiritual. Love thus grows; it cannot be created, manufactured, or purchased; it must grow. Evolution is a cosmic technique of growth. Social growth cannot be secured by legislation, and moral growth is not had by improved administration. Man may manufacture a machine, but its real value must be derived from human culture and personal appreciation. Man’s sole contribution to growth is the mobilization of the total powers of his personality—living faith.
2000 100:3.7 사람은 성장을 일으킬 수 없어도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육체의 성장이거나, 지능의 성장이거나 영적 성장이거나 상관 없이, 성장은 반드시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따라서 사랑은 자란다. 사랑을 창조하거나, 만들어 내거나,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랑은 자라야 한다. 진화는 성장을 일으키는 우주 기법이다. 사회의 성장은 법을 세운다고 보장할 수 없고, 행정을 개선한다고 도덕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기계를 만들어낼지 모르지만, 기계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문화와 개인의 평가로부터 얻어야 한다. 사람이 성장에 유일하게 기여하는 것은 인격의 온 힘을―살아 있는 믿음을―동원하는 것이다.
2001 CM 100:3.7 사람은 성장을 일으킬 수 없지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는 있다. 육체의 성장이거나 지적 성장이거나 영적 성장이거나 상관없이, 성장은 반드시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사랑은 이렇게 성장하며;창조되거나 만들어지거나 구매될 수 없으며;사랑은 자라야한다. 진화는 성장을 일으키는 시공우주 기법이다. 사회의 성장은 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도덕의 성장은 경영을 개선함으로 이룰 수 없다. 사람이 기계를 만들 수 있으나, 그 참된 가치는 반드시 인간의 문화와 개인적인 평가에서 비롯돼야한다. 성장에 사람이 유일하게 기여하는 것은, 자기 인격의 온 힘--곧 살아있는 신앙--을 동원하는 것이다.
2007 URKA 100:3.7 사람이 성장에 대한 원인일 수가 없지만, 그러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성장은 육체적이든, 지적이든 또는 영적이든 상관없이 항상 무의식적이다. 사랑은 그렇게 성장한다; 그것은 창조되거나 제조되거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라나야만 한다. 진화는 성장의 조화우주 기법이다. 사회적인 성장은 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도덕적인 성장은 향상된 관리-행정으로 얻을 수 없다. 사람이 기계를 제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의 실제적 가치는 반드시 인간의 문화와 개인적인 깊은-이해에서 유래되어야만 한다. 성장에 대한 사람의 유일한 기여는 자신의 개인성의 전체 힘─살아있는 신앙─을 동원하는 것이다.
2025 100:3.7 사람은 성장을 일으킬 수 없어도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육체의 성장이거나, 지능의 성장이거나 영적 성장이거나 상관없이, 성장은 반드시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따라서 사랑은 자란다. 사랑을 창조하거나, 만들어 내거나,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랑은 자라야 한다. 진화는 성장을 일으키는 우주 기법이다. 사회의 성장은 법을 세운다고 보장할 수 없고, 행정을 개선한다고 도덕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기계를 만들어낼지 모르지만, 기계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문화와 개인적 평가로부터 얻어야 한다. 사람이 성장에 유일하게 기여하는 것은 인격의 온 힘 ― 살아 있는 믿음 ― 을 동원하는 것이다.
4. PROBLEMS OF GROWTH
4. 성장의 문제
4. 성장의 문제
4. 성장의 문제들
4. 성장의 문제
1955 100:4.1 Religious living is devoted living, and devoted living is creative living, original and spontaneous. New religious insights arise out of conflicts which initiate the choosing of new and better reaction habits in the place of older and inferior reaction patterns. New meanings only emerge amid conflict; and conflict persists only in the face of refusal to espouse the higher values connoted in superior meanings.
2000 100:4.1 종교 생활은 헌신하는 인생이고, 헌신하는 인생은 창조하는 인생이요,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생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갈등에서 생겨나며, 갈등은 예전에 열등하게 반응하는 형식 대신에, 새롭고 더 낫게 반응하는 버릇의 선택을 개시한다. 새 의미가 있는 것들은 오로지 갈등 속에서 솟아난다. 오직 우수한 의미가 있는 것들에 담긴 상급 가치를 지지하지 않을 때에야 갈등이 지속된다.
2001 CM 100:4.1 종교 생활은 헌신적인 삶이며, 헌신적인 삶은 색다르고 자발적인 창의적 생활이다. 새로운 종교 통찰력은 갈등에서 생겨나며, 갈등은 예전에 열등하게 반응하던 경향 대신, 새롭고 더 낫게 반응하는 습관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새로운 의미는 오직 갈등 한가운데서만 생겨나며;갈등은, 우월한 의미에 내포된 더 높은 가치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에만 지속된다.
2007 URKA 100:4.1 종교적인 삶은 헌신적인 삶이며, 헌신적인 삶은 창조적인 삶, 기원적이고 자발적인 것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오래되고 열등한 반응 원형틀 대신에, 새롭고도 더 나은 반응 습관들을 선택하기로 시작하는 갈등으로부터 발생한다. 새로운 의미는 갈등의 한가운데서만 오직 창발한다; 그리고 갈등은 오직 우월한 의미 안에 내포된 더 높은 가치를 지지하는 것에 거절하려는 경우에만 끈질기게 지속된다.
2025 100:4.1 종교 생활은 헌신하는 인생이고, 헌신하는 인생은 창조하는 인생이요,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생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갈등에서 생겨나며, 갈등은 예전에 열등하게 반응했던 형식 대신에, 새롭고 더 낫게 반응하는 버릇의 선택을 개시한다. 새 의미가 있는 것들은 오로지 갈등 속에서 솟아난다. 오직 우수한 의미가 있는 것들에 담긴 상급 가치를 지지하지 않을 때에야 갈등이 지속된다.
1955 100:4.2 Religious perplexities are inevitable; there can be no growth without psychic conflict and spiritual agitation. The organization of a philosophic standard of living entails considerable commotion in the philosophic realms of the mind. Loyalties are not exercised in behalf of the great, the good, the true, and the noble without a struggle. Effort is attendant upon clarification of spiritual vision and enhancement of cosmic insight. And the human intellect protests against being weaned from subsisting upon the nonspiritual energies of temporal existence. The slothful animal mind rebels at the effort required to wrestle with cosmic problem solving.
2000 100:4.2 종교적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정신적 갈등과 영적 동요가 없이 아무런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철학적 생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지성의 철학 영역에서 어지간한 소동을 일으킨다. 투쟁이 없이는 위대하고 선하고 참되고 고귀한 것들을 위한 충성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영적 시력이 맑아지고 우주 통찰력이 향상될 때 노력이 따른다. 인간의 지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영(非靈) 에너지를 먹고 살다가 젖떼듯 떨어져 나가는 것에 저항한다. 게으른 짐승 같은 지성은 우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2001 CM 100:4.2 종교적 혼란은 피할 수 없으며;심령의 갈등과 영적 동요 없이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철학적 생활 기준을 체계화할 때, 상당한 소란이 정신의 철학 영역에 발생한다. 투쟁 없이는, 위대하고 선하고 진실하고 고결한 것들을 위한 충성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영적 시력이 밝아지고 시공우주 통찰력이 증진되는 데는 수고가 수반된다. 그리고 인간 지능은, 의존하던 일시적인 비영적 에너지 실존으로부터 떨어져나가기를 거부한다. 나태한 동물적 정신은, 시공우주 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하는 데 필요한 수고를 몹시 싫어한다.
2007 URKA 100:4.2 종교적인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적인 갈등과 영적인 동요 없이는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삶에 대한 철학적 규범의 조직은 마음의 철학적 영역 안에 상당한 소동을 수반한다. 갈등이 없이는 위대한 자와 선한 자와 참된 자 그리고 고결한 자를 위한 충성심이 발휘될 수 없다. 영적 시력의 정화(淨化)와 조화우주 통찰력의 증진에 노력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인간 지성은 현세적 실존에서의 비(非)영적 에너지 위에서 존속하는 것에서, 젖이 떼어진다는 것에 항거한다. 나태한 동물적 마음은 조화우주 문제 해결과 싸우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에 반발한다.
2025 100:4.2 종교적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정신적 갈등과 영적 동요가 없이 아무런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철학적 생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지성의 철학 영역에서 어지간한 소동을 일으킨다. 투쟁이 없이는 위대하고 선하고 참되고 고귀한 것들을 위한 충성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영적 시력이 맑아지고 우주 통찰력이 향상될 때 노력이 따른다. 인간의 지능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영(非靈) 에너지를 먹고 살다가 젖 떼듯 떨어져 나가는 것에 저항한다. 게으른 짐승 같은 지성은 우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1955 100:4.3 But the great problem of religious living consists in the task of unifying the soul powers of the personality by the dominance of love. Health, mental efficiency, and happiness arise from the unification of physical systems, mind systems, and spirit systems. Of health and sanity man understands much, but of happiness he has truly realized very little. The highest happiness is indissolubly linked with spiritual progress. Spiritual growth yields lasting joy, peace which passes all understanding.
2000 100:4.3 그러나 종교 생활에서 큰 문제는 사랑이 지배함으로 인격자의 혼의 능력을 통일하는 과제에 있다. 건강, 정신의 효율성, 행복은 육체 체계, 지성 체계, 영 체계가 통일되었을 때 생겨난다. 사람은 건강과 위생에 관하여 이해하는 것이 많지만, 행복에 관해서 참으로 거의 깨우친 것이 없다. 가장 높은 행복은 영적 진보와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영적 성장은 오래 가는 기쁨, 너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평화를 낳는다.
2001 CM 100:4.3 그러나 종교 생활에서 중대한 문제는, 사랑이 지배함으로 그 인격체의 혼의 힘을 통합하는 과제에 있다. 건강과 심적{心的} 능률과 행복은, 육신 체계와 정신 체계 그리고 영 체계가 통합될 때 발생한다. 사람이 건강과 건전함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지만, 행복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깨닫는 바가 거의 없다. 가장 고상한 행복은, 영적 진보와 뗄 수 없을 만큼 연결돼있다. 영적 성장은, 오래 가는 환희 곧 너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평화를 가져온다.
2007 URKA 100:4.3 그러나 개인성이 가진 혼의 힘을 사랑, 건강, 정신적 효과 그리고 행복에서의 통치에 따라 통합해보려는 과업에 있는 그 종교적 삶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물리적 체계, 마음 체계 그리고 영의 체계의 통일이라는 것에서 생겨난다. 사람은 몸의 건강과 정신의 온전함은 많이 납득하지만, 그러나 행복에 대해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거의 없다. 최고의 행복은 분리가 불가능하도록 영적 진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적 성장은 영구적인 즐거움, 모든 납득을 거치는 평화를 낳는다.
2025 100:4.3 그러나 종교 생활에서 큰 문제는 사랑이 지배함으로 인격자의 혼 능력을 통일하는 과제에 있다. 건강, 정신의 효율성, 행복은 육체 체계, 지성 체계, 영 체계가 통일되었을 때 생겨난다. 사람은 건강과 위생에 관하여 이해하는 것이 많지만, 행복에 관해서 참으로 거의 깨우친 것이 없다. 가장 높은 행복은 영적 진보와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영적 성장은 오래 가는 기쁨, 너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평화를 낳는다.
1955 100:4.4 In physical life the senses tell of the existence of things; mind discovers the reality of meanings; but the spiritual experience reveals to the individual the true values of life. These high levels of human living are attained in the supreme love of God and in the unselfish love of man. If you love your fellow men, you must have discovered their values. Jesus loved men so much because he placed such a high value upon them. You can best discover values in your associates by discovering their motivation. If someone irritates you, causes feelings of resentment, you should sympathetically seek to discern his viewpoint, his reasons for such objectionable conduct. If once you understand your neighbor, you will become tolerant, and this tolerance will grow into friendship and ripen into love.
2000 100:4.4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감각은 사물의 존재에 대하여 일러준다. 지성은 의미 있는 것들의 현실성을 발견하지만, 영적 체험은 개인에게 인생에서 참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함으로, 사심 없이 사람을 사랑함으로, 인간 생활의 이 높은 수준에 이른다. 네가 동료 인간을 사랑하면, 너는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예수가 사람을 그토록 사랑한 것은 사람을 무척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너는 동료들의 동기를 발견함으로 그들의 가치를 가장 쉽게 발견한다. 누가 너를 짜증나게 하고 분개하는 느낌이 일게 하면, 너는 동정심을 가지고 그렇게 불쾌한 행위를 하는 그의 관점, 이유를 헤아리려고 애써야 한다. 일단 이웃을 이해하면, 너는 너그러워질 터이고, 이러한 너그러움은 자라서 우정이 되고 무르익으면 사랑이 될 것이다.
2001 CM 100:4.4 육체 속에서 사는 동안에는 감각이 물체의 실존을 밝혀주며;정신은 의미를 지닌 실체를 발견하지만;영적 체험은 생애의 참된 가치관을 각 개인에게 드러낸다. 인간의 이런 높은 수준의 삶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사람을 이타적으로 사랑함으로 달성된다. 너희가 동료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예수께서 사람을 그토록 사랑한 것은, 사람에게 그런 높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동역자들의 동기를 발견함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누가 너를 짜증나게 한다면, 분개하는 느낌을 일으킨다면, 너는 그의 관점, 즉 그런 불쾌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분별하기 위해 동정심을 갖고 노력해야한다. 일단 너의 이웃을 이해하면, 너는 인내할 수 있게 되고, 이 아량이 자라서 우정이 되고, 무르익으면 사랑이 될 것이다.
2007 URKA 100:4.4 육체적인 삶 속에서는, 감각이 물체들의 실존들을 밝혀준다; 마음은 의미들에 대한 실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영적인 체험은 개별존재들에게 일생에 대한 참된 가치들을 계시해 준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러한 높은 차원들은 하느님의 최극의 사랑 속에서 그리고 사람의 사심-없는 사랑 속에서 성취된다. 만약에 너희가 너희 연관-동료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가치들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높은 가치를 두셨기 때문에 그들을 그토록 사랑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너희 관계적-연합들 속에서 가치들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너를 짜증나게 한다면, 화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너는 그의 관점, 그러한 불유쾌한 행위를 일으키게 한 그에게 있는 이유들을 식별하기 위하여 동정심을 가지고 노력해야만 한다. 만일 너희가 일단 너희 이웃을 납득하게 되면, 너희는 관대해 질 것이며, 이 관대함이 우정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고 사랑으로 익어갈 것이다.
2025 100:4.4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감각은 사물의 존재에 대하여 일러준다. 지성은 의미 있는 것들이 현실임을 발견하지만, 영적 체험은 개인에게 인생에서 참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함으로, 사심 없이 사람을 사랑함으로, 인간 생활의 이 높은 수준에 이른다. 네가 동료 인간을 사랑하면, 너는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예수가 사람을 그토록 사랑한 것은 사람을 무척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너는 동료들의 동기를 발견함으로 그들의 가치를 가장 쉽게 발견한다. 누가 너를 짜증나게 하고 분개하는 느낌이 일게 하면, 너는 동정심을 가지고 그렇게 불쾌한 행위를 하는 그의 관점, 이유를 헤아리려고 애써야 한다. 일단 이웃을 이해하면, 너는 너그러워질 터이고, 이러한 너그러움은 자라서 우정이 되고 무르익으면 사랑이 될 것이다.
1955 100:4.5 In the mind’s eye conjure up a picture of one of your primitive ancestors of cave-dwelling times—a short, misshapen, filthy, snarling hulk of a man standing, legs spread, club upraised, breathing hate and animosity as he looks fiercely just ahead. Such a picture hardly depicts the divine dignity of man. But allow us to enlarge the picture. In front of this animated human crouches a saber-toothed tiger. Behind him, a woman and two children. Immediately you recognize that such a picture stands for the beginnings of much that is fine and noble in the human race, but the man is the same in both pictures. Only, in the second sketch you are favored with a widened horizon. You therein discern the motivation of this evolving mortal. His attitude becomes praiseworthy because you understand him. If you could only fathom the motives of your associates, how much better you would understand them. If you could only know your fellows, you would eventually fall in love with them.
2000 100:4.5 정신의 눈을 뜨고서, 사람이 동굴에서 살던 시절에 네 원시 조상 중에 한 사람의 그림을 상상해 보아라―키가 작고, 보기 흉하고, 더럽고, 으르렁거리는 뚱뚱이이며, 바로 앞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곤봉을 치켜올리고, 미움과 적개심으로 씩씩거린다. 그러한 그림은 도저히 사람의 신다운 위엄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그림을 확대해 보자. 활기가 생긴 이 인간 앞에 칼이를 가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고,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있다. 그러한 그림이 인류 중에서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의 시작을 나타낸다는 것을 네가 즉시 깨닫지만, 그 사람은 이 두 그림에서 똑같다. 오직 이 둘째 스케치에서 너는 넓어진 시야의 덕을 보고 있다. 거기서 너희는 이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를 헤아린다. 너희가 그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칭찬할 가치가 있게 된다. 오직 동료들의 동기를 헤아릴 수만 있다면, 너희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더 쉬워질까. 동료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001 CM 100:4.5 동굴에서 살던 시대에 너희 원시인 조상 가운데 하나의 모습--곧 키가 작고, 흉하고, 불결하고, 고함치는 괴물 같은 인간이 다리를 벌리고, 몽둥이를 들고, 정면을 사납게 바라보면서 미움과 증오심으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상상해보라. 그런 모습은 사람의 신성한 존엄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그림을 확대시켜보자. 힘찬 이 인간 앞에, 날카로운-송곳니를 가진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 남자 뒤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있다.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이 인간 종족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그런 그림이 보여준다는 것을 너는 곧 알아채겠지만, 그 남자는 두 그림 속에서 동일한 주인공이다. 너는 오직 두 번째 그림에서만 넓어진 시야의 덕을 보고 있다. 너는 그 속에서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를 헤아린다. 네가 그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칭찬 받을 만한 것이 된다. 네가 동료들의 동기를 헤아릴 수만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쉬워질까. 동료들을 알 수만 있다면, 너는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007 URKA 100:4.5 동굴 속에 살던 시대의 원시적인 너희 조상들 중의 하나에 대한 모습─키가 작고, 보기 흉하며, 불결하고, 으르렁거리는 사람 괴물이 선 채로 막대기를 들어 올리고 정면을 사납게 쳐다보면서 증오심과 악의에 가득 차 숨을 몰아쉬는─을 마음의 눈으로 상상해 보라. 그러한 모양은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거의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그림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바란다. 살아있는 이 인간 앞에 송곳니가 날카롭게 나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인과 두 아이들이 있다. 너희는 그러한 모습이 인간 종족 속에 있는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임을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사람은 두 가지 그림 속에서 똑같은 주인공이다. 오직 두 번째 그림에서만 너희는 넓혀진 시야에 호감을 갖게 된다. 그 속에서 너희는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유발을 식별하게 된다. 그의 태도는 너희가 그를 납득하기 때문에 칭찬 받을 만한 것으로 바뀐다. 만일 너희가 너희 친구들의 동기들을 추측할 수만 있다면, 너희가 얼마나 그들을 더 잘 납득할 수 있겠는가. 만일 너희가 너희 연관-동료들을 알 수만 있다면, 너희는 결국에는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2025 100:4.5 정신의 눈을 뜨고서, 사람이 동굴에서 살던 시절에 네 원시 조상 중 한 사람의 그림을 상상해 보아라 ― 키가 작고, 보기 흉하고, 더럽고, 으르렁거리는 뚱뚱이이며, 바로 앞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곤봉을 치켜 올리고, 미움과 적개심으로 씩씩거린다. 그러한 그림은 도저히 사람의 신다운 위엄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그림을 확대해 보자. 흥분한 이 인간 앞에 검치(劍齒)를 가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고,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있다. 그러한 그림이 인류 중에서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의 시작을 나타낸다는 것을 네가 즉시 깨닫지만, 그 사람은 이 두 그림에서 똑같다. 오직 이 둘째 스케치에서 너는 넓어진 시야의 덕을 보고 있다. 거기서 너희는 이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를 헤아린다. 너희가 그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칭찬할 가치가 있게 된다. 오직 동료들의 동기를 헤아릴 수만 있다면, 너희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더 쉬워질까. 동료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1955 100:4.6 You cannot truly love your fellows by a mere act of the will. Love is only born of thoroughgoing understanding of your neighbor’s motives and sentiments. It is not so important to love all men today as it is that each day you learn to love one more human being. If each day or each week you achieve an understanding of one more of your fellows, and if this is the limit of your ability, then you are certainly socializing and truly spiritualizing your personality. Love is infectious, and when human devotion is intelligent and wise, love is more catching than hate. But only genuine and unselfish love is truly contagious. If each mortal could only become a focus of dynamic affection, this benign virus of love would soon pervade the sentimental emotion-stream of humanity to such an extent that all civilization would be encompassed by love, and that would be the realiza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00:4.6 너는 단순히 의지(意志)하는 행위로 참으로 동료를 사랑할 수는 없다. 오직 이웃의 동기와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서 사랑이 태어난다.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네가 한 사람 더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하루 또는 한 주 한 주, 동료 중에 또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해낸다면, 그리고 이것이 네 능력의 한계라면, 너는 분명히 친교하고 있고 네 인격을 참으로 영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은 전염되며, 사람이 총명하고 지혜롭게 헌신할 때,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잘 번진다. 그러나 오직 진정하고 사심 없는 사랑이라야 참으로 전염된다. 각 필사자가 오직 힘찬 애정을 퍼붓는 초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을 옮기는 이 유익한 바이러스는 곧 인류의 감정 흐름에 크게 침투해서, 모든 문명이 사랑으로 휩싸일 터이고, 그것이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일 것이다.
2001 CM 100:4.6 너는 단순히 의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너의 동료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네 이웃의 동기와 감상을 속속들이 이해함으로써만 생겨난다. 네가 매일 한 사람씩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매일 또는 매주, 동료 가운데 한 사람씩 더 이해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것이 너의 역량의 한계라면, 너는 분명히 사회화돼갈 것이고, 너의 인격을 진정으로 영성화시켜갈 것이다. 사랑은 전염성이 있으며, 인간의 헌신이 지성적이고 현명할 때에는, 사랑이 미움보다 더 매력 있다. 그러나 참되고 이타적인 사랑만이 정말로 전염된다. 각 사람이 역동적 애정의 중심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이라는 이 친절한 바이러스는 곧 인류의 다정다감한 감정-흐름에 널리 침투하여, 모든 문명 세계가 사랑으로 휩싸이고, 사람의 형제관계가 실현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2007 URKA 100:4.6 너희는 단순한 의지에서의 행동으로는 너희 동료들을 참되게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너희 이웃의 동기와 정서를 속속들이 납득함으로써만 태어난다. 너희가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매일 인간 존재 또 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배우는 것이다. 너희가 매일 또는 매주마다 너희 동료들 중에 한 사람씩을 더 납득하게 된다면, 그리고 만일 이것이 너희 능력의 한계를 다한 것이라면, 너희는 너희 개인성을 확실하게 사회화 하고 있는 것이며 참되게 영성화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전염되는 것이며, 인간의 헌신이 총명하고 지혜로울 때에는, 사랑이 미움보다 더욱 잘 전염된다. 그러나 오직 진정한 그리고 사심-없는 사랑만이 참으로 전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에 각 필사자가 역동적 애정의 초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의 이 고마운 바이러스는 인류애의 정서적인 감정-흐름에 곧 바로 스며들어가, 모든 문명이 사랑으로 감싸이게 되기까지, 그리고 사람의 형제신분의 실현이 되기까지 그처럼 확장될 것이다.
2025 100:4.6 너는 단순히 의지(意志)하는 행위로 동료를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오직 이웃의 동기와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서 사랑이 태어난다.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네가 한 사람 더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하루 또는 한 주 한 주, 동료 중에 또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해낸다면, 그리고 이것이 네 능력의 한계라면, 너는 분명히 친교하고 있고 네 인격을 참으로 영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랑은 전염되며, 사람이 총명하고 지혜롭게 헌신할 때,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잘 번진다. 그러나 오직 진정하고 사심 없는 사랑이어야 참으로 전염성이 있다. 각 필사자가 오직 힘찬 애정을 퍼붓는 초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을 옮기는 이 유익한 바이러스는 곧 인류의 감정 흐름에 크게 침투해서, 모든 문명이 사랑으로 휩싸일 터이고, 그것이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일 것이다.
5. CONVERSION AND MYSTICISM
5. 감화와 신비주의
5. 회심과 신비주의
5. 전향과 신비주의
5. 종교적 감화와 신비주의
1955 100:5.1 The world is filled with lost souls, not lost in the theologic sense but lost in the directional meaning, wandering about in confusion among the isms and cults of a frustrated philosophic era. Too few have learned how to install a philosophy of living in the place of religious authority. (The symbols of socialized religion are not to be despised as channels of growth, albeit the river bed is not the river.)
2000 100:5.1 세상에는 길 잃은 혼이 가득하다. 신학적 의미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향 면에서 길을 잃었고, 좌절된 철학 시대의 여러 주의와 종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종교적 권한에 복종하는 대신에 어떻게 생활 철학을 세우는가를 배운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강의 바닥이 강은 아니지만, 성장의 경로인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2001 CM 100:5.1 길 잃은 혼들이 세상에 가득한데, 그들은 신학적 감각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지시 면에서 길을 잃었고, 좌절감을 느끼는 철학 시대의 이론과 종파들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한다. 종교 권세에 복종하는 대신, 어떻게 삶의 철학을 세우는지를 배운 사람이 너무 적다. (강바닥은 강이 아니라하더라도,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은 성장이 흘러가는 통로로서 무시되지 않아야한다.)
2007 URKA 100:5.1 세상은 길을 잃은 혼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은 신학적인 감각에 있어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적 의미에 있어서 길을 잃었고, 좌절감을 느끼는 철학 시대의 이론들과 예배종파들 속에서 혼돈하여 방황하고 있다. 종교적 권한 대신에 하나의 삶의 철학을 세우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이 너무 적다.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들도 성장의 경로들로서 무시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둑은 강이 아니다.)
2025 100:5.1 세상에는 길 잃은 혼이 가득하다. 신학적 의미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향 면에서 길을 잃었고, 좌절된 철학 시대의 여러 주의와 종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종교적 권한에 복종하는 대신에 어떻게 생활 철학을 세우는가를 배운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강의 바닥이 강은 아니지만, 성장의 경로인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1955 100:5.2 The progression of religious growth leads from stagnation through conflict to co-ordination, from insecurity to undoubting faith, from confusion of cosmic consciousness to unification of personality, from the temporal objective to the eternal, from the bondage of fear to the liberty of divine sonship.
2000 100:5.2 종교적 성장의 발걸음은 침체로부터 갈등을 거쳐서 조정된 길로, 불안한 상태로부터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혼란스러운 우주 의식으로부터 통일된 인격으로, 현세의 목표로부터 영원한 목표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처지로부터 신의 아들이 되는 자유로 이끈다.
2001 CM 100:5.2 종교적 성장의 진행은, 침체로부터 갈등을 거쳐서 조화로, 불확실성으로부터 확신하는 신앙으로, 혼돈 된 시공우주 의식으로부터 인격 통합으로, 현세의 목표로부터 영원한 목표로, 두려움에 속박된 상태로부터 신의 아들신분을 되찾는 해방으로 이어진다.
2007 URKA 100:5.2 종교적 성장의 진보는 침체로부터 갈등을 거쳐 조화-협동으로, 불확실성으로부터 확신하는 신앙으로, 혼돈 된 조화우주 의식으로부터 개인성의 통일으로, 현세에서의 목적으로부터 영원한 것으로, 두려움의 속박으로부터 신성한 아들관계의 해방으로 이끈다.
2025 100:5.2 종교적 성장의 발걸음은 침체에서 갈등을 거쳐서 조정된 길로, 불안한 상태에서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혼란스러운 우주 의식으로부터 통일된 인격으로, 현세의 목표에서 영원한 목표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처지에서 신의 아들이 되는 자유로 이끈다.
1955 100:5.3 It should be made clear that professions of loyalty to the supreme ideals—the psychic, emotional, and spiritual awareness of God-consciousness—may be a natural and gradual growth or may sometimes be experienced at certain junctures, as in a crisis. The Apostle Paul experienced just such a sudden and spectacular conversion that eventful day on the Damascus road. Gautama Siddhartha had a similar experience the night he sat alone and sought to penetrate the mystery of final truth. Many others have had like experiences, and many true believers have progressed in the spirit without sudden conversion.
2000 100:5.3 최고의 이상에 충성함을 고백하는 것―하나님을 의식함을 정신으로, 감정으로, 영적으로 깨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점진적 성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위기의 경우처럼, 때때로 어떤 길목에서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중대한 날에 다마스커스 길에서 바로 그러한, 갑작스럽고 대단한 감화를 받았다. 고타마 싯달타는 혼자 앉아서 궁극의 진리의 신비를 파고들려고 애쓴 그날 밤에 비슷한 체험을 했다. 많은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많은 참 신자가 갑작스러운 감화 없이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2001 CM 100:5.3 최고 이상{理想}--곧 하나님을-의식함을 심령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자각함--에 대한 충성심 고백은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성장일지도 모르며, 또는 위기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시점에 때때로 체험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그 중대한 날에, 바로 그런 갑작스럽고 장엄한 회심을 체험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홀로 앉아서 궁극적 진리의 신비를 꿰뚫어보고자 하던 그 밤에, 비슷한 체험을 했다. 여러 다른 사람도 유사한 체험을 했으며, 갑작스런 회심 없이 영적 진보를 이룩한 참된 신자도 많이 있었다.
2007 URKA 100:5.3 최극의 이상들에 대한 충성심의 고백─하느님-의식을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깨달음─이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성장이 될 수 있거나 또는 어떤 위기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시점에서 때때로 체험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그 사건 많은 날에 바로 그러한 갑작스럽고도 장엄한 회심을 체험하였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그가 홀로 앉아 최종 진리에 대한 신비를 꿰뚫어보고자 하던 그 밤에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 많은 다른 사람들도 유사한 체험들을 하였으며, 갑작스러운 회심 없이 영적인 진보를 이룩한 참된 신자들도 많이 있었다.
2025 100:5.3 최고의 이상에 충성을 고백하는 것 ― 하나님을 의식함을 정신으로, 감정으로, 영적으로 깨닫는 것 ― 은 자연스러운 점진적 성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위기의 경우처럼, 때때로 어떤 길목에서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중대한 날에 다마스커스 길에서 바로 그러한, 갑작스럽고 대단한 감화를 받았다[2]. 고타마 싯달타는 혼자 앉아서 궁극의 진리의 신비를 파고들려고 애쓴 그날 밤에 비슷한 체험을 했다. 많은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많은 참 신자가 갑작스러운 감화 없이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1955 100:5.4 Most of the spectacular phenomena associated with so-called religious conversions are entirely psychologic in nature, but now and then there do occur experiences which are also spiritual in origin. When the mental mobilization is absolutely total on any level of the psychic upreach toward spirit attainment, when there exists perfection of the human motivation of loyalties to the divine idea, then there very often occurs a sudden down-grasp of the indwelling spirit to synchronize with the concentrated and consecrated purpose of the superconscious mind of the believing mortal. And it is such experiences of unified intellectual and spiritual phenomena that constitute the conversion which consists in factors over and above purely psychologic involvement.
2000 100:5.4 이른바 종교적 감화와 연결된 대단한 현상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심리적 성질을 가졌지만, 영적 기원을 가진 체험이 이따금 일어난다. 영적 달성을 향하여 정신적으로 발돋움하는 어떤 수준에서도 절대로 온전히 정신을 기울일 때, 신다운 개념에 인간이 충성하는 동기가 완벽할 때, 믿는 필사자의 상의식(上意識) 지성의 목적, 집중되고 거룩하게 된 목적과 시간을 맞추려고 그 깃드는 영이 갑자기 내려와서 잡아채는 일이 무척 자주 생긴다. 통일된 지적ㆍ영적 현상을 그렇게 체험하는 것이 순전한 심리적 관계를 초월하는 요인에서 생기는 감화를 구성한다.
2001 CM 100:5.4 소위 종교적 회심이라고 불리는 것과 관련된 극적 현상 대부분은 본질상 오롯이 심리적인 것이었으나, 때로는 영적인 기원을 갖는 체험이 발생하기도 한다. 영 달성을 향해서 심령적으로 상승하여 도달하는 어떤 수준에서든지 절대로 온전히 정신을 집중시킬 때, 즉 신성한 개념에 충성하려는 인간의 동기가 완벽할 때에는, 믿는 그 필사자의 초월의식 정신이 갖는, 응집되고 정화된 목적에 동조하려고, 내주하는 영이 갑자기 내려와서-잡아채는 현상이 무척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순전히 심리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요소들 속에서 회심을 성립시키는 것은, 바로 지적 현상과 영적 현상을 통합하는 그런 체험이다.
2007 URKA 100:5.4 소위 종교적인 회심이라 불리는 것들과 연관된 극적인 현상들 대부분은 본성에서는 전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때로는 그 근원이 영적인 그러한 체험들이 분명히 일어난다. 심적 동원이, 영 달성을 향한 정신적 발돋움의 어떤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되었을 때는, 신성한 관념에 대한 충성에서 인간 동기의 완전함이 존재하고 있을 때는, 내주하는 영이, 믿고 있는 필사자의 초(超)의식적 마음의 집중되고 성화되어 있는 목적에 동조하기 위하여, 갑자기 내려와-잡아채는 일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종교적 회심은, 그처럼 지적이면서 영적 현상이 통합되는 그러한 체험이라서, 순수하게 심리적인 개입 위에서, 그리고 그것을 뛰어 넘는 요소들로서 구성되어 있다.
2025 100:5.4 이른바 종교적 감화와 연결된 대단한 현상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심리적 성질을 가졌지만, 영적 기원을 가진 체험이 이따금 일어난다. 영적 달성을 향하여 정신적으로 발돋움하는 어떤 수준에서도 절대로 온전히 정신을 기울일 때, 신다운 개념에 인간이 충성하는 동기가 완벽할 때, 믿는 필사자의 상의식(上意識) 지성의 목적, 집중되고 거룩하게 된 목적과 시간을 맞추려고 그 깃드는 영이 갑자기 내려와서 잡아채는 일이 무척 자주 생긴다. 통일된 지적ㆍ영적 현상을 그렇게 체험하는 것이 순전한 심리적 관계를 초월하는 요인에서 생기는 감화를 구성한다.
1955 100:5.5 But emotion alone is a false conversion; one must have faith as well as feeling. To the extent that such psychic mobilization is partial, and in so far as such human-loyalty motivation is incomplete, to that extent will the experience of conversion be a blended intellectual, emotional, and spiritual reality.
2000 100:5.5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거짓된 감화이다. 사람은 느낌뿐 아니라 믿음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일부 기울이는 그 한도까지, 그러한 인간의 충성심을 불완전하게 기울이는 그 한도까지, 감화 받는 체험은 지적 실체, 감정적 실체, 영적 실체의 혼합이 될 것이다.
2001 CM 100:5.5 그러나 감정 자체만으로는 잘못된 회심이며;느낌뿐 아니라 신앙도 가져야한다. 그런 심령 집중이 부분적이고 그런 인간적-충성심의 동기부여가 미완성인 한도 내에서 회심 체험은, 그 정도까지 지적 실체와 감정적 실체와 영적 실체의 혼합이 될 것이다.
2007 URKA 100:5.5 그러나 감정 자체만으로는 잘못된 회심이다; 느낌뿐만 아니라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한 심리적 동기가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인간적-충성심의 동기가 미완성(未完成)인 한, 회심의 체험은 그 정도에서 지적이고 감정적이며 영적인 실체가 혼합된 상태가 될 수 있다.
2025 100:5.5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거짓된 감화이다. 사람은 느낌만 아니라 믿음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일부 기울이는 그 한도까지, 그러한 인간의 충성심을 불완전하게 기울이는 그 한도까지, 감화되는 체험은 지적 실체, 감정적 실체, 영적 실체의 혼합이 될 것이다.
1955 100:5.6 If one is disposed to recognize a theoretical subconscious mind as a practical working hypothesis in the otherwise unified intellectual life, then, to be consistent, one should postulate a similar and corresponding realm of ascending intellectual activity as the superconscious level, the zone of immediate contact with the indwelling spirit entity, the Thought Adjuster. The great danger in all these psychic speculations is that visions and other so-called mystic experiences, along with extraordinary dreams, may be regarded as divine communications to the human mind. In times past, divine beings have revealed themselves to certain God-knowing persons, not because of their mystic trances or morbid visions, but in spite of all these phenomena.
2000 100:5.6 다른 면에서는 통일된 지적 생활에 실용적으로 소용되는 가정(假定)으로서, 사람이 이론적 하의식 지성을 인정하고 싶다면, 다음에 일관성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은 그에 상당하는 비슷한 영역, 더 높은 지적 활동이 있는 상의식 수준을 가정해야 한다. 이 상의식 수준은 깃드는 영 개체, 생각 조절자와 바로 접촉하는 지대이다. 이 모든 정신적 추측에 담긴 큰 위험은 놀라운 꿈과 함께, 환상과 기타 이른바 신비스러운 체험을 신이 인간 지성에게 전하는 것이라 여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시절에, 신성한 존재들은 하나님을 아는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냈고, 그들이 신비스러운 황홀경이나 병적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현상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였다.
2001 CM 100:5.6 다른 면에서 통합된 지적 생활에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전제{前提}로서, 이론적 잠재의식 정신을 인정하고 싶다면, 일관성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비슷한 영역인, 더 높은 지적 활동이 있는 초의식 수준을 가정해야하는데, 이 초월의식 수준은, 내주하는 영 실재 곧 사고 섭리사와 바로 접촉할 수 있는 지대다. 이런 모든 심령적 고찰에서 큰 위험성은, 색다른 꿈을 포함해서 환상과 소위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불리는 그것들이, 인간 정신에게 주는 신{神}의 전언{傳言}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성한 존재들은 지난 시절에, 신비로운 황홀경이나 병적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7 URKA 100:5.6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의 이론적 잠재의식 마음을 통합된 다른 지적 삶 속에 있는 실천적으로 작용하는 전제로 이해할 마음이 있다면, 그는 초의식적 차원처럼 상승하는 지적 활동의 비슷하고 상응하는 영역, 내주 하는 영적 실존개체인 생각 조절자와 즉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모든 심리적 고찰 속에 있는 큰 위험성은 색다른 꿈들을 포함하여 환상들과 소위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인간 마음을 향한 신성한 교통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신성한 존재들이 하느님을 아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나타내어 온 것은, 그들의 신비로운 황홀경이나 병적인 환상들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현상들을 무시한 상태에서였다.
2025 100:5.6 다른 면에서는 통일된 지적 생활에 실용적으로 소용되는 가정(假定)으로서, 사람이 이론적 하의식 지성을 인정하고 싶다면, 다음에 일관성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은 그에 상당하는 비슷한 영역, 더 높은 지적 활동이 있는 상의식 수준을 가정해야 한다. 이 상의식 수준은 깃드는 영 개체, 생각 조절자와 바로 접촉하는 지대이다. 이 모든 정신적 추측에 담긴 큰 위험은 놀라운 꿈과 함께, 환상과 기타 이른바 신비스러운 체험을 신이 인간 지성에게 전하는 것이라 여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시절에, 신성한 존재들은 하나님을 아는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냈고, 그들이 신비스러운 황홀경이나 병적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현상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였다.
1955 100:5.7 In contrast with conversion-seeking, the better approach to the morontia zones of possible contact with the Thought Adjuster would be through living faith and sincere worship, wholehearted and unselfish prayer. Altogether too much of the uprush of the memories of the unconscious levels of the human mind has been mistaken for divine revelations and spirit leadings.
2000 100:5.7 감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조절자와 접촉이 가능한 상물질 지대에 접근하는 더 좋은 방법은, 생생한 믿음과 진정한 예배, 마음을 다하는 사심 없는 기도를 통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지성이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기억 중에 허다한 것이 신의 계시(啓示)요, 영의 인도라고 잘못 생각되어 왔다.
2001 CM 100:5.7 회심을-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사고 섭리사와 접촉할 수 있는 모론시아 지대에 더 잘 접근하는 방식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실한 경배, 즉 전심으로 하는 사심 없는 기도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다. 무의식 수준의 인간 정신에서 급격히 솟아나는 기억들 가운데 허다한 것이, 신의 계시나 영의 인도라고 잘못 생각돼왔다.
2007 URKA 100:5.7 전환을-추구하는 것과 대조해서, 생각 조절자와의 접촉이 가능할, 모론시아 지대에 더욱 잘 접근하는 길은 살아있는 신앙과 진지한 경배, 전심을 다하고 그리고 사심-없는 기도를 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요컨대 인간 마음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기억들이 용솟음쳐 오르는 것 가운데 너무 많은 것들이, 신성한 계시와 영이 인도하는 것으로 잘못 다루어져 왔다.
2025 100:5.7 감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조절자와 접촉이 가능한 상물질 지대에 접근하는 더 좋은 방법은, 생생한 믿음과 진정한 예배, 마음을 다한 사심 없는 기도를 통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지성이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기억 중에 허다한 것이 신의 계시(啓示)요, 영의 인도라고 잘못 생각되어 왔다.
1955 100:5.8 There is great danger associated with the habitual practice of religious daydreaming; mysticism may become a technique of reality avoidance, albeit it has sometimes been a means of genuine spiritual communion. Short seasons of retreat from the busy scenes of life may not be seriously dangerous, but prolonged isolation of personality is most undesirable. Under no circumstances should the trancelike state of visionary consciousness be cultivated as a religious experience.
2000 100:5.8 버릇처럼 종교적 백일몽에 잠기는 습관과 관련하여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신비주의는 때때로 진정한 영적 교통 수단이었지만,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바쁜 장면으로부터 잠시 물러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 아닐지 모르지만, 인격이 오랫동안 고립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경우라도 환상을 의식하는 황홀경 같은 상태를 종교적 체험으로 길러서는 안 된다.
2001 CM 100:5.8 종교적 백일몽{白日夢}을 습관적으로 실행함과 관련하여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신비주의는 때로 참된 영적 교류 수단이었지만, 현실을 도피하는 기법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바쁜 현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 아닐지 모르지만, 인격이 긴 기간 고립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아지경 상태의 몽상적 의식{意識}이 종교 체험으로 장려돼서는 안 된다.
2007 URKA 100:5.8 종교적 백일몽의 습관적인 실천 관행과 연관되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신비주의는 하나의 실체 기피의 기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때로 참된 영적 교제의 수단이 되어 왔다. 바쁜 삶의 현장으로부터 짧은 시기동안 물러나 있는 것이 심각하게 위험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성의 장기간의 고립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망상적 의식에서의 황홀경과 같은 상태가 종교적인 체험으로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
2025 100:5.8 버릇처럼 종교적 백일몽에 잠기는 습관과 관련하여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신비주의는 때때로 진정한 영적 교통 수단이었지만,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바쁜 장면에서 잠시 물러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 아닐지 모르지만, 인격이 오랫동안 고립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경우라도 환상을 의식하는 황홀경 같은 상태를 종교적 체험으로 길러서는 안 된다.
1955 100:5.9 The characteristics of the mystical state are diffusion of consciousness with vivid islands of focal attention operating on a comparatively passive intellect. All of this gravitates consciousness toward the subconscious rather than in the direction of the zone of spiritual contact, the superconscious. Many mystics have carried their mental dissociation to the level of abnormal mental manifestations.
2000 100:5.9 신비스러운 상태의 특징은 비교적 수동적인 지능에 작용하면서 주의(注意)가 집중되는 선명한 점들과 함께 의식이 산만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상의식인 영적 접촉 지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의식을 향하여 의식을 끌어당긴다. 많은 신비주의자가 정신적 분리를 정신이 비정상으로 표현되는 수준까지 밀고 갔다.
2001 CM 100:5.9 신비스런 상태의 특질은, 비교적 수동적인 지능에 작용하면서 관심이 집중되는 선명한 격리지대들과 함께 의식이 산만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 접촉 지대인 초월의식의 방향이 아닌 잠재의식 쪽으로 의식을 끌어내린다. 많은 신비주의자가, 정신 징후가 비정상으로 나타나는 수준까지 자신이 정신적으로 분리되도록 몰아갔다.
2007 URKA 100:5.9 신비적인 상태의 특징은, 비교적 수동적 지능위에서 작용하는, 주의가 집중된 상태에서의 생생한 섬과 함께 하는 의식의 확산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 접촉의 지대, 즉 초의식의 방향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오히려 잠재의식을 향하여 의식을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게 하는 것이다.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신적 분리작용을 비정상적인 정신적 현시활동의 차원까지 옮겨왔다.
2025 100:5.9 신비스러운 상태의 특징은 비교적 수동적인 지능에 작용하면서 주의(注意)가 집중되는 선명한 점들과 함께 의식이 산만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상의식인 영적 접촉 지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의식을 향하여 의식을 끌어당긴다. 많은 신비주의자가 정신적 분리를 정신이 비정상으로 표현되는 수준까지 밀고 갔다.
1955 100:5.10 The more healthful attitude of spiritual meditation is to be found in reflective worship and in the prayer of thanksgiving. The direct communion with one’s Thought Adjuster, such as occurred in the later years of Jesus’ life in the flesh,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hese so-called mystical experiences. The factors which contribute to the initiation of mystic communion are indicative of the danger of such psychic states. The mystic status is favored by such things as: physical fatigue, fasting, psychic dissociation, profound aesthetic experiences, vivid sex impulses, fear, anxiety, rage, and wild dancing. Much of the material arising as a result of such preliminary preparation has its origin in the subconscious mind.
2000 100:5.10 영적 명상에 잠기는 더욱 건전한 태도는, 돌이켜 신을 예배함으로, 그리고 감사드리는 기도에서 찾아야 한다. 육체를 입은 예수의 일생 후반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사람이 생각 조절자와 직접 교통하는 것을 이른바 이 신비의 체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비스러운 교통의 시작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정신 상태가 위험한 것을 가리킨다. 육체의 피로, 금식, 정신의 분리, 깊은 아름다움을 의식하는 체험, 선명한 성욕 충동, 두려움ㆍ걱정ㆍ분노, 그리고 야단스러운 춤과 같은 것들이 신비스러운 상태를 촉진한다. 그러한 기초적 준비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많은 것들은 하의식 지성에서 기원을 가진다.
2001 CM 100:5.10 더욱 건전한 영적 묵상 태도는, 사려 깊은 경배와 감사드리는 기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육체를 입은 예수의 일생 말년에 일어난 것과 같은 사고 섭리사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이른바 이 신비 체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비스런 교류가 시작되도록 기여하는 요소는, 그런 심령 상태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신비 상태는:육체의 피로, 금식, 심령적 분리, 깊은 심미적 체험, 강렬한 성적 자극, 두려움, 불안, 분노, 그리고 격렬한 춤 등으로 촉진된다. 이런 사전 준비 결과로 발생하는 부산물들 대부분은 잠재의식 정신에서 기원된다.
2007 URKA 100:5.10 영적인 명상의 보다 더 건전한 태도는 사려 깊은 경배와 감사기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육체 속에 있었던 예수의 일생 중에서 후기에 발생하였던 것과 같은, 자기 생각 조절자와의 직접적인 교제는 소위 신비적 체험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적인 교제의 개시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심리 상태들의 위험성을 암시한다. 신비상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촉진된다: 그것은 육체적 피로, 금식, 심리적 분열, 깊은 심미적 체험, 생생한 성적 충동, 두려움, 불안, 분노, 격렬한 춤이다. 그러한 예비행사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물질적 것의 대부분은 잠재의식 마음에서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
2025 100:5.10 영적 명상에 잠기는 더욱 건전한 태도는, 돌이켜 신을 예배함으로, 그리고 감사드리는 기도에서 찾아야 한다. 육체를 입은 예수의 일생 후반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사람이 생각 조절자와 직접 교통하는 것을 이른바 이 신비의 체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비스러운 교통의 시작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정신 상태가 위험한 것을 가리킨다. 육체의 피로, 금식, 정신의 분리, 깊은 아름다움을 의식하는 체험, 선명한 성욕 충동, 두려움ㆍ걱정ㆍ분노, 그리고 야단스러운 춤과 같은 것들이 신비스러운 상태를 촉진한다. 그러한 기초적 준비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많은 것들은 하의식 지성에서 기원을 가진다.
1955 100:5.11 However favorable may have been the conditions for mystic phenomena, it should be clearly understood that Jesus of Nazareth never resorted to such methods for communion with the Paradise Father. Jesus had no subconscious delusions or superconscious illusions.
2000 100:5.11 신비 현상이 일어날 조건이 얼마나 유리했든지 상관 없이, 나사렛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교통하기 위하여 결코 그런 방법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예수는 아무런 하의식의 망상이나 상의식의 착각을 겪지 않았다.
2001 CM 100:5.11 신비 현상이 일어날 조건이 아무리 호의적이더라도, 나사렛 예수께서는 낙원 아버지와 교류하기 위하여 그런 방법에 의존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이해해야한다. 예수께서는 잠재의식의 망상 또는 초월의식의 착각을 겪지 않았다.
2007 URKA 100:5.11 그 조건들이 신비적 현상들에게 아무리 호의적이더라도, 나사렛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교제하기 위하여 그러한 방법에 의존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납득해야만 한다. 예수는 잠재의식적 망상 또는 초(超)의식적 환상을 이용하지 않으셨다.
2025 100:5.11 신비 현상이 일어날 조건이 얼마나 유리했든지 상관없이, 나사렛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교통하기 위하여 결코 그런 방법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예수는 아무런 하의식의 망상이나 상의식의 착각을 겪지 않았다.
6. MARKS OF RELIGIOUS LIVING
6. 종교적 생활의 표시
6. 종교 생활의 징후
6. 종교적인 삶의 징후들
6. 종교적 생활의 표시
1955 100:6.1 Evolutionary religions and revelatory religions may differ markedly in method, but in motive there is great similarity. Religion is not a specific function of life; rather is it a mode of living. True religion is a wholehearted devotion to some reality which the religionist deems to be of supreme value to himself and for all mankind. And the outstanding characteristics of all religions are: unquestioning loyalty and wholehearted devotion to supreme values. This religious devotion to supreme values is shown in the relation of the supposedly irreligious mother to her child and in the fervent loyalty of nonreligionists to an espoused cause.
2000 100:6.1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는 방법이 뚜렷이 다를지 모르지만, 동기는 대단히 비슷하다. 종교는 생명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오히려 생활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신자가 자신에게, 그리고 온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하는 어떤 실체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뛰어난 특징은 최고의 가치 기준에 의심 없이 충성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최상의 가치 기준에 바치는 이 종교적 헌신은 종교심이 없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종교가 없는 자들이 지지하는 운동에 열심히 충성을 바치는 데서 나타난다.
2001 CM 100:6.1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는 방법이 뚜렷이 다를지 몰라도, 동기는 매우 비슷하다. 종교는 생명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며;오히려 삶의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종교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하여, 최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에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의 뚜렷한 특질은:최상의 가치기준에 의심 없이 충성하고,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최상의 가치기준에 대한 이런 종교적 헌신은, 신앙심이 없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서, 그리고 비종교인들이 지지하는 운동에 열심히 충성을 바치는 데서 나타난다.
2007 URKA 100:6.1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는 방법상에서 분명하게 다른 반면, 동기에 있어서는 매우 비슷하다. 종교는 삶에 있어서 하나의 명확한 기능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그 종교인이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최극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에게 전심으로 제공하는 헌신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들의 뚜렷한 특징은: 최극 가치들에 대한 의심하지 않는 충성심과 전심으로의 헌신이다. 최극 가치에 대한 이 종교적 헌신은 종교심이 없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의 자기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에서 그리고 비종교인이 지지하는 이유에 대하여 보이는 열렬한 충성심 속에 나타난다.
2025 100:6.1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는 방법이 뚜렷이 다를지 모르지만, 동기는 대단히 비슷하다. 종교는 생명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오히려 생활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신자가 자신에게, 그리고 온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하는 어떤 실체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뛰어난 특징은 최고의 가치 기준에 의심 없이 충성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최상의 가치 기준에 바치는 이 종교적 헌신은 종교심이 없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종교가 없는 자들이 지지하는 운동에 열심히 충성을 바치는 데서 나타난다.
1955 100:6.2 The accepted supreme value of the religionist may be base or even false, but it is nevertheless religious. A religion is genuine to just the extent that the value which is held to be supreme is truly a cosmic reality of genuine spiritual worth.
2000 100:6.2 신자가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는 저속하거나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종교성이 있다. 최고로 여기는 가치가 참으로, 진정한 영적 가치를 가진 우주 실체인 그 한도까지, 종교는 진정하다.
2001 CM 100:6.2 종교인이 용납하는 최고 가치는, 저속하든지 거짓일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종교적이다. 최상이라고 여겨지는 가치가 진짜 영적 값어치를 지닌 시공우주 실체인 바로 그 한도까지, 종교는 정말로 참되다.
2007 URKA 100:6.2 그 종교인이 용납한 최극의 가치는 열등한 것일 수 있고 또는 심지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종교적이다. 종교는 최극의 것으로 유지되는 그 가치가 정말로 참된 영적 가치를 갖는 조화우주 실체가 되는 바로 그 한도 내에서 참되다.
2025 100:6.2 신자가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는 저속하거나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종교성이 있다. 최고로 여기는 가치가 참으로, 진정한 영적 가치를 가진 우주 실체인 그 한도까지, 종교는 진정하다.
1955 100:6.3 The marks of human response to the religious impulse embrace the qualities of nobility and grandeur. The sincere religionist is conscious of universe citizenship and is aware of making contact with sources of superhuman power. He is thrilled and energized with the assurance of belonging to a superior and ennobled fellowship of the sons of God. The consciousness of self-worth has become augmented by the stimulus of the quest for the highest universe objectives—supreme goals.
2000 100:6.3 인간이 종교적 충동에 반응하는 표시는 고귀하고 위대한 성질을 띤다. 성실한 신자는 우주 시민임을 의식하고, 초인간 능력의 근원과 접촉함을 의식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우수하고 고결한 단체에 속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떨고 활력을 얻는다. 가장 높은 우주 목표―최상의 목표―를 추구하는 자극으로 인하여 자아의 가치를 더욱 의식하게 된다.
2001 CM 100:6.3 인간이 종교적 자극에 반응하는 징후는 고귀하고 웅장한 특성을 띤다. 진지한 종교인은, 우주 시민임을 의식하고, 초인적 권능의 근원과 접촉함을 자각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뛰어나고 고상한 친교에 소속된다는 확신으로 감격하고 활력을 얻는다. 가장 높은 우주 목표--곧 최상의 목표--를 탐색하려는 충동으로 인해 자아의-진가를 더욱 의식{意識}하게 된다.
2007 URKA 100:6.3 종교적인 충동에 대한 인간 반응의 표시들에는 숭고함과 웅장함의 본질특성들이 있다. 진지한 종교인은 우주의 시민 됨을 의식하며 초인간적 힘의 근원들과 접촉하는 것을 인식한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들의 우월한 고상한 친교에 소속된다는 확신으로 감격하고 격려를 받는다. 자아-가치에 대한 의식은 가장 높은 우주적 목표들─최극의 목표들─을 향한 탐색의 충동에 의해서 증강된다.
2025 100:6.3 인간이 종교적 충동에 반응하는 표시는 고귀하고 위대한 성질을 띤다. 성실한 신자는 우주 시민임을 의식하고, 초인간 능력의 근원과 접촉함을 의식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우수하고 고결한 단체에 속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떨고 활력을 얻는다. 가장 높은 우주 목표 ― 최상의 목표 ― 를 추구하는 자극으로 인하여 자아의 가치를 더욱 의식하게 된다.
1955 100:6.4 The self has surrendered to the intriguing drive of an all-encompassing motivation which imposes heightened self-discipline, lessens emotional conflict, and makes mortal life truly worth living. The morbid recognition of human limitations is changed to the natural consciousness of mortal shortcomings, associated with moral determination and spiritual aspiration to attain the highest universe and superuniverse goals. And this intense striving for the attainment of supermortal ideals is always characterized by increasing patience, forbearance, fortitude, and tolerance.
2000 100:6.4 자아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동기의 충동, 흥미를 자아내는 충동에 무릎을 꿇었으며, 그 동기는 더욱 높은 자제를 부과하고 감정의 갈등을 줄이고 필사자의 인생을 참으로 살 가치가 있게 만든다. 인간의 한계의 병적 인식은, 가장 높은 우주 및 초우주 목표에 미치려는 도덕적 각오, 영적 포부와 관련하여 필사자의 결점을 자연히 의식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리고 인간을 초월하는 이상을 달성하려는 이 뜨거운 노력의 특징은 반드시 참을성ㆍ인내심ㆍ불굴ㆍ관대함이 늘어나는 것이다.
2001 CM 100:6.4 자아는, 전부-포함하는 동기로 인한 흥미로운 본능욕구에 굴복했으며, 그 동기는 강화된 자기-훈련을 강요하고, 감정의 갈등을 줄여주고, 필사자의 생애를 정말로 값어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준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병적 인식은, 가장 높은 우주 및 초우주 목표를 달성하려는 도덕적 각오와 영적 염원과 관련하여,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결점을 자연스럽게 의식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리고 필사자를-초월하는 이상{理想}을 달성하려는 열정적인 이 노력의 특징은 항상, 인내와 관용과 꿋꿋함 및 아량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2007 URKA 100:6.4 자아는 높아지는 자아-단련을 강요하고 감정적 갈등을 줄이게 하는, 그리고 필사자 삶을 정말로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는, 모든 것을-포옹하는 동기의 흥미를 일으키는 충동에 몸을 맡기어 왔다. 인간적 한계들에 대한 과민한 인식은, 가장 높은 우주적 그리고 초우주적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도덕적인 결정과 영적인 열망에 연관되어서, 필사자의 결점들에 대한 자연 본성적 의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초인간적 이상들의 달성에 대한 열정적인 이 분투는 항상 증가하는 인내와 자제심과 꿋꿋함 그리고 관대함으로 특징 지워진다.
2025 100:6.4 자아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동기의 충동, 흥미를 자아내는 충동에 무릎을 꿇었으며, 그 동기는 더욱 높은 자제를 부과하고 감정의 갈등을 줄이고 필사자의 인생을 참으로 살 가치가 있게 만든다. 인간의 한계의 병적 인식은, 가장 높은 우주 및 초우주 목표에 미치려는 도덕적 각오, 영적 포부와 관련하여 필사자의 결점을 자연히 의식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리고 인간을 초월하는 이상을 달성하려는 이 뜨거운 노력의 특징은 반드시 참을성ㆍ인내심ㆍ불굴ㆍ관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1955 100:6.5 But true religion is a living love, a life of service. The religionist’s detachment from much that is purely temporal and trivial never leads to social isolation, and it should not destroy the sense of humor. Genuine religion takes nothing away from human existence, but it does add new meanings to all of life; it generates new types of enthusiasm, zeal, and courage. It may even engender the spirit of the crusader, which is more than dangerous if not controlled by spiritual insight and loyal devotion to the commonplace social obligations of human loyalties.
2000 100:6.5 그러나 참된 종교는 실천하는 사랑이요, 봉사하는 인생이다. 신자가 순전히 현세적이고 하찮은 많은 것에 초연하는 것은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지 않으며, 초연하면서 유머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존재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지만, 인생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준다. 그런 종교는 새 종류의 열심ㆍ열의ㆍ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십자군 정신까지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이것은 영적 통찰력으로, 그리고 인간이 충성하는 평범한 사회적 의무에 충실히 헌신함으로, 고삐를 쥐지 않으면 극도로 위험하다.
2001 CM 100:6.5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있는 사랑 곧 봉사하는 삶이다. 순전히 현세적이고 진부한 많은 것들에 대한 종교인의 초연함은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유머감각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실존으로부터 아무 것도 빼앗지 않고, 오히려 인생 전체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주며;새 유형의 의욕과 열심과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십자군의 기풍까지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영적 통찰력으로, 그리고 인간이 충성하는 평범한 사회적 책무에 충실히 헌신함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극도로 위험하다.
2007 URKA 100:6.5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삶을 살아가는 사랑이며, 봉사하는 일생이다. 순전히 일시적이고 사소한 많은 것에서 벗어나는 종교인의 초연함은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지 않으며, 또한 그것이 유머 감각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실존으로부터 아무 것도 빼앗지 않고, 오히려 삶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들을 더해 준다; 새로운 유형의 열정, 열의 그리고 용기를 발생시킨다. 그것이 십자군 전사의 영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만일 영적 통찰력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 충성심에서의 평범한 사회적 책무에 대한 충실한 헌신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험한 정도가 아니고 그 이상이다.
2025 100:6.5 그러나 참된 종교는 실천하는 사랑이요, 봉사하는 인생이다. 신자가 순전히 현세적이고 하찮은 많은 것에 초연하는 것은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지 않으며, 초연하면서 유머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존재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지만, 인생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준다. 그런 종교는 새 종류의 열심ㆍ열의ㆍ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십자군 정신까지도 불러일으킬지 모르며, 이것은 영적 통찰력으로, 그리고 인간이 충성하는 평범한 사회적 의무에 충실히 헌신하여 고삐를 쥐지 않으면 극도로 위험하다.
1955 100:6.6 One of the most amazing earmarks of religious living is that dynamic and sublime peace, that peace which passes all human understanding, that cosmic poise which betokens the absence of all doubt and turmoil. Such levels of spiritual stability are immune to disappointment. Such religionists are like the Apostle Paul, who said: “I am persuad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pow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height, nor depth, nor anything else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2000 100:6.6 종교 생활의 가장 놀라운 표시 중에 하나는 힘차고 숭고한 평안이니, 이것은 어떤 인간도 이해하기 힘든 평안이요, 모든 의심과 소동이 없음을 가리키는, 우주에 대한 자세이다. 그러한 수준의 영적 안정은 실망에 면역이 되어 있다. 그러한 신자들은 이렇게 말한 사도 바울과 같다: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나 군주나 권력이나, 현재 일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이나, 높이나 깊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할 것을 내가 확신하노라.”
2001 CM 100:6.6 종교 생활의 가장 놀랄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역동적이고 숭고한 평화인데, 이 평화는 모든 인간을 이해시키는, 즉 모든 의심과 혼란이 없음을 나타내는 시공우주 균형이다. 그런 수준의 영적 안정성이 실망의 원인을 제거해준다. 그런 종교인은, “내가 확신하나니,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능력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밖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다”고 말한 사도 바울과 같다.
2007 URKA 100:6.6 종교적인 삶의 가장 놀랄만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역동적이고 장엄한 평화인데, 그 평화는 모든 인간들을 납득시키는, 모든 의심과 혼란의 부재(不在)를 나타내는 조화우주 평형이다. 그러한 영적 안정성의 차원들은 실망의 원인을 제거해 준다. 그러한 종교인들은,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에 있는 것도 장차 도래할 것도 높음도 깊음도 그밖에 다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분리시킬 수 없음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한 사도 바울과 같다.
1955 100:6.7 There is a sense of security, associated with the realization of triumphing glory, resident in the consciousness of the religionist who has grasped the reality of the Supreme, and who pursues the goal of the Ultimate.
2000 100:6.7 승리하는 영광을 깨닫는 것과 관련하여 보장받는 느낌이 있으니, 이 느낌은 최상위의 실체를 깨달은 신자, 궁극위에 이르는 목표를 추구하는 신자의 의식 속에 거한다.
2001 CM 100:6.7 승리하는 영광을 실현하는 것과 관련된 보호받는 느낌이 있는데, 이런 느낌은 지존자의 실체를 파악한, 그리고 궁극자의 목표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의식에 내재한다.
2007 URKA 100:6.7 최극자의 실체를 파악하는 그리고 궁극자의 목표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의식 속에 내재하는, 승리를 거두는 영광의 실현과 연관된, 어떤 안전감에 대한 느낌이 있다.
2025 100:6.7 승리의 영광을 깨달음과 관련하여 어떤 보장의 느낌이 있으니, 이 느낌은 최상위의 실체를 깨달은 신자, 궁극위에 이르는 목표를 추구하는 신자의 의식 속에 거한다.
1955 100:6.8 Even evolutionary religion is all of this in loyalty and grandeur because it is a genuine experience. But revelatory religion is excellent as well as genuine. The new loyalties of enlarged spiritual vision create new levels of love and devotion, of service and fellowship; and all this enhanced social outlook produces an enlarged consciousnes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00:6.8 진화된 종교가 진정한 체험이기 때문에, 진화된 종교조차 충성심과 위엄 면에서 이 모든 것이 해당된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진정할 뿐 아니라 우수하다. 영적 시력이 확대됨으로 생기는 새로운 충성은 새 수준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친교를 창조한다. 그리고 향상된 이 모든 사회적 전망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인 것을 더욱 크게 의식하게 한다.
2001 CM 100:6.8 심지어 진화 종교도 충성심과 숭고함에서 이 모든 것이 해당되는데, 그 종교가 참된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참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훌륭하다. 영적 선견지명이 증대됨으로 생기는 새로운 충성심은, 새 수준의 사랑과 헌신 곧 봉사와 친교를 창출하며;증진시킨 이 모든 사회적 전망은,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인 것을 더욱 크게 의식하도록 만든다.
2007 URKA 100:6.8 심지어 진화 종교도 충성심과 장대함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이 해당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참된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참될 뿐만 아니라 지극히 훌륭하다. 증대된 영적 선견지명에 대한 새로운 충성심은 새로운 차원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교제를 창출한다; 사회적인 전망을 증진시킨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의식을 확대시킨다.
2025 100:6.8 진화된 종교가 진정한 체험이기 때문에, 그 종교조차 충성심과 위엄 면에서 이 모든 것이 해당된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진정할 뿐 아니라 우수하다. 영적 시력이 확대됨으로 생기는 새로운 충성은 새 수준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친교를 창조한다. 그리고 향상된 이 모든 사회적 전망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인 것을 더욱 크게 의식하게 한다.
1955 100:6.9 The characteristic difference between evolved and revealed religion is a new quality of divine wisdom which is added to purely experiential human wisdom. But it is experience in and with the human religions that develops the capacity for subsequent reception of increased bestowals of divine wisdom and cosmic insight.
2000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의 특별한 차이점은 새 품질의 신다운 지혜이니, 이 지혜가 순전히 체험으로 얻은 인간의 지혜에 더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 안에서, 그리고 그 종교와 더불어 얻는 체험은 더욱 내려주는 신다운 지혜와 우주 통찰력을 나중에 받을 능력을 개발시킨다.
2001 CM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 사이의 독특한 차이점은 새로운 특성의 신성한 지혜인데, 이 지혜는 순전히 체험으로 얻은 인간 지혜에 덧붙여진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들에서, 그리고 그 종교들과 함께 얻은 체험은, 더 한층 부여하는 신성한 지혜와 시공우주 통찰력을 차후에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킨다.
2007 URKA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 사이의 특징적인 차이는, 순전히 체험적인 인간적 지혜에 덧붙여진 신성한 지혜의 새로운 본질특성이다. 그러나 신성한 지혜와 우주적인 통찰력의 증가되는 증여를 그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적인 종교들 속에서 갖는 체험과 그 종교들을 체험하는 것이다.
2025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의 특별한 차이점은 새 품질의 신다운 지혜이니, 이 지혜가 순전히 체험으로 얻은 인간의 지혜에 더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 안에서, 그리고 그 종교와 함께 얻는 체험은 더욱 내려주는 신다운 지혜와 우주 통찰력을 나중에 받을 능력을 개발시킨다.
7. THE ACME OF RELIGIOUS LIVING
7. 최고의 종교 생활
7. 종교 생활의 절정
7. 종교적인 삶의 절정
7. 최고의 종교 생활
1955 100:7.1 Although the average mortal of Urantia cannot hope to attain the high perfection of character which Jesus of Nazareth acquired while sojourning in the flesh, it is altogether possible for every mortal believer to develop a strong and unified personality along the perfected lines of the Jesus personality. The unique feature of the Master’s personality was not so much its perfection as its symmetry, its exquisite and balanced unification. The most effective presentation of Jesus consists in following the example of the one who said, as he gestured toward the Master standing before his accusers, “Behold the man!”
2000 100:7.1 유란시아의 보통 필사자는 비록 나사렛 예수가 육체를 입고 머무르던 동안에 얻은 그 완벽한 인품의 높이까지 이르기를 바랄 수 없어도, 필사 신자는 누구나 예수의 인격이 완전해진 길을 따라서, 튼튼하고 통일된 인격을 개발하는 것이 아주 가능하다. 주의 인격의 독특한 모습은 그의 인격이 완전하기보다 균형된 것, 인격이 아름답게, 치우치지 않게 통일된 것이다. 예수를 가장 효과 있게 보여주는 것은 다음의 어떤 사람의 예이니, 예수를 고발하는 자들 앞에 서 있는 주를 향하여 손짓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
2001 CM 100:7.1 유란시아의 보통 필사자는, 나사렛 예수께서 육체 속에 머무는 동안에 획득한, 그 완벽한 성품에 도달하기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필사 신자는 누구든지, 예수의 인간성이 완전하게 된 계통을 따라서, 강력하고 통합된 인간성을 개발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주님 인격자의 독특한 특색은, 그 인격자의 완벽성보다는 대칭성 곧 그 인격자의 절묘하고 균형 잡힌 통합이었다. 예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고소하는 자들 앞에 서 있는 주님을 향하여 손짓하면서 “이 사람을 보라!”고 외친 사람을 거울삼는 것이다.
2007 URKA 100:7.1 유란시아에 있는 보통 수준의 필사자들이, 나사렛 예수가 육체 속에 머무른 동안 달성하셨던 성격의 높은 이상에 다다르게 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예수의 개인성의 완전해진 계통들을 따라서 하나의 강력하고 통일된 개인성을 개발하는 것은 모든 필사자 신자들에게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주(主)의 개인성의 독특한 모습은 그것의 완전성보다는 오히려 그 균형, 그 섬세함 그리고 지극하고 치우치지 않은 통일성이었다. 예수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소개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고소하는 자들 앞에 서 계신 주(主)를 향하여 손짓하며 “이 사람을 보라!”고 말하였던 본보기에서 볼 수 있다.
2025 100:7.1 유란시아의 보통 필사자는 비록 나사렛 예수가 육체를 입고 머무르던 동안에 얻은 그 완벽한 인품의 높이까지 이르기를 바랄 수 없어도, 필사 신자는 누구나 예수의 인격이 완전해진 길을 따라서, 튼튼하고 통일된 인격을 개발하는 것이 아주 가능하다. 주의 인격의 독특한 모습은 그의 인격이 완전하기보다 균형된 것, 인격이 아름답게, 치우치지 않게 통일된 것이다. 예수를 가장 효과 있게 보여주는 것은 다음의 어떤 사람의 예이니, 예수를 고발하는 자들 앞에 서 있는 주를 향하여 손짓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5]
1955 100:7.2 The unfailing kindness of Jesus touched the hearts of men, but his stalwart strength of character amazed his followers. He was truly sincere; there was nothing of the hypocrite in him. He was free from affectation; he was always so refreshingly genuine. He never stooped to pretense, and he never resorted to shamming. He lived the truth, even as he taught it. He was the truth. He was constrained to proclaim saving truth to his generation, even though such sincerity sometimes caused pain. He was unquestioningly loyal to all truth.
2000 100:7.2 예수의 어김없는 친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지만, 그의 강건한 인품은 따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참으로 성실했다. 그에게 아무런 위선이 없었다. 전혀 꾸밈이 없었고, 언제나 그는 무척 신선하게 진심이었다. 겉치레에 몸을 굽히지 않았고, 무엇인 체한 적이 없었다. 진리를 가르친 그대로 그는 진리를 실천하였다. 그는 바로 그 진리였다. 그의 세대에게 구원의 진리를 성실하게 선포하는 것이 때때로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는 그런 진리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모든 진리에 충성했다.
2001 CM 100:7.2 예수의 끊임없는 친절이 사람의 가슴을 감동시켰지만, 신념이 굳은 그의 강력한 성품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정말로 진실했으며;그의 안에는 위선적인 것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허세 부림이 없었으며;항상 아주 참신하게 진실했다. 겉치레로 자신을 낮춘 적이 없었고, 결코 체면 차리지 않았다.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 진리를 실천했다. 그가 바로 진리였다. 구원하는 진리를 그의 세대에게 진지하게 선포하는 것이 때때로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렇게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진리에 충실했다.
2007 URKA 100:7.2 예수의 어김없는 친절이 필사자들의 가슴에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건장하고 힘찬 성격은 그의 추종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참으로 성실하였다; 그 어떤 아무런 위선도 그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는 허식이 없었다; 항상 매우 신실하게 진심이었다. 그는 결코 겉치레로 자신을 낮춘 적이 없었으며, 가식을 부리는 것에 안주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진리로 사셨다. 그는 진리 그 자체였다. 그는 당대의 사람만을 구원하는 진리를 선포하도록 강요되었었고, 그에 대한 진지함이 때때로 고통의 원인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였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모든 진리에 충성을 바쳤다.
2025 100:7.2 예수의 어김없는 친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지만, 그의 강건한 인품은 따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참으로 성실했다. 그에게 아무런 위선이 없었다. 전혀 꾸밈이 없었고, 언제나 그는 무척 신선하게 진심이었다. 겉치레에 몸을 굽히지 않았고, 무엇인 체한 적이 없었다. 진실을 가르친 그대로 그는 진실을 실천하였다[6]. 그는 바로 그 진실이었다. 그의 세대에게 구원의 진실을 성실하게 선포하는 것이 때때로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는 그런 진실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모든 진실에 충성했다.
1955 100:7.3 But the Master was so reasonable, so approachable. He was so practical in all his ministry, while all his plans were characterized by such sanctified common sense. He was so free from all freakish, erratic, and eccentric tendencies. He was never capricious, whimsical, or hysterical. In all his teaching and in everything he did there was always an exquisite discrimination associated with an extraordinary sense of propriety.
2000 100:7.3 그러나 주는 무척 분별이 있었고,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가 베푼 모든 봉사는 대단히 실용적이었고, 한편 그의 모든 계획은 그러한 인가된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기형(奇形)이고 유별나고 이상한 성향이 전혀 그에게 없었다. 그는 쉽게 변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히스테리를 보인 적이 없었다. 어떤 가르침에도, 무슨 일을 행해도, 특별한 예의 바른 감각과 아울러 언제나 지극한 분별이 있었다.
2001 CM 100:7.3 그러나 주님은 무척 이성적이었고, 무척 사귀기 쉬운 분이었다. 어떤 섬김을 베풀든지 대단히 실용적이었으며, 한편 그의 모든 계획은 정당하다고 인정된 그런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기형적이거나, 불규칙적이거나, 괴벽스런 모든 경향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변덕스럽거나 유별나거나 병적으로 흥분하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어떤 가르침이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항상 비범한 예의바름과 관련된 절묘한 분별이 있었다.
2007 URKA 100:7.3 그러나 주(主)는 너무나 이성적이었고, 너무나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계획들이 그처럼 성스럽게된 상식으로 특징을 지니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사명활동에서 너무나도 실천적이었다. 그는 기형적이고 변덕스럽고 괴벽스러운 모든 경향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셨다. 그는 변덕스럽거나 별나거나 이성을 잃는 경우가 한 번도 없으셨다. 그의 모든 가르침 속에 그리고 그가 행한 모든 것들 속에는 항상 정교한 분별이 있었으며 그것은 예의를 갖춘 비범한 감각이 따르고 있었다.
2025 100:7.3 그러나 주는 무척 분별이 있었고,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가 베푼 모든 봉사는 대단히 실용적이었고, 한편 그의 모든 계획은 그러한 인가된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기형(奇形)이고 유별나고 이상한 성향이 전혀 그에게 없었다. 그는 쉽게 변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히스테리를 보인 적이 없었다. 어떤 가르침에도, 무슨 일을 행해도, 특별한 예의 바른 감각과 아울러 언제나 지극한 분별이 있었다.
1955 100:7.4 The Son of Man was always a well-poised personality. Even his enemies maintained a wholesome respect for him; they even feared his presence. Jesus was unafraid. He was surcharged with divine enthusiasm, but he never became fanatical. He was emotionally active but never flighty. He was imaginative but always practical. He frankly faced the realities of life, but he was never dull or prosaic. He was courageous but never reckless; prudent but never cowardly. He was sympathetic but not sentimental; unique but not eccentric. He was pious but not sanctimonious. And he was so well-poised because he was so perfectly unified.
2000 100:7.4 사람의 아들은 언제나 매우 침착한 인물이었다. 적들조차 그에게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다. 그들은 그가 앞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예수는 두려움이 없었다. 신다운 열심이 가득했지만, 결코 광신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살아 있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상력이 있었으나 언제나 실용적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인생의 현실에 부딪쳤으나 결코 무디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용기가 있어도 결코 무모하지 않았고, 신중했으나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있어도 감상에 빠지지 않았고, 독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건해도 거룩한 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매우 침착했으니, 인품이 아주 완전히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2001 CM 100:7.4 사람의 아들은 항상 아주 침착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를 대적하는 적들도 그에게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으며;그가 나타나는 것을 무서워하기조차 했다. 예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신성한 의욕으로 가득 찼지만, 결코 광신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적극적이었으나 결코 경솔하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언제나 실용적이었다. 인생의 실체를 솔직하게 대면했으나, 결코 침체되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용감했으나 무모하지 않았으며;신중하면서도 비열하지 않았다. 연민의 정이 깊었으나 감상적이지 않았으며;독특했지만 괴벽스럽지 않았다. 경건하면서도 거룩한 척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침착했는데, 아주 완전하게 통합됐기 때문이다.
2007 URKA 100:7.4 그 사람의 아들은 항상 매우 침착한 개인성을 유지하셨다. 심지어는 그의 적들도 그에게 건전한 존중을 나타냈다; 그들은 그의 현존을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예수는 신성한 열심히 넘치게 채워져 계셨지만, 광신적으로 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감성적으로 활발하셨지만 경솔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셨지만 항상 실천적이셨다. 그는 삶의 실체들과 솔직하게 마주하셨으나, 흥미 없거나 둔감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용감하셨지만 무모하시지 않았다; 세심하시면서도 결코 심약하지 않으셨다. 그는 동정심이 깊으셨지만 정서에 빠지지 않으셨으며; 독특하셨지만 괴상하지는 않으셨다. 그는 경건하셨지만 경건한 척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는 매우 침착하셨는데 이는 그는 너무나도 완전하게 통합되었기 때문이었다.
2025 100:7.4 사람의 아들은 언제나 매우 침착한 인물이었다. 적들조차 그에게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다. 그들은 그가 앞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예수는 두려움이 없었다. 신다운 열심이 가득했지만, 결코 광신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살아 있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상력이 있었으나 언제나 실용적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인생의 현실에 부딪쳤으나 결코 무디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용기가 있어도 결코 무모하지 않았고, 신중했으나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있어도 감상에 빠지지 않았고, 독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건해도 거룩한 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매우 침착했으니, 인품이 아주 완전히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1955 100:7.5 Jesus’ originality was unstifled. He was not bound by tradition or handicapped by enslavement to narrow conventionality. He spoke with undoubted confidence and taught with absolute authority. But his superb originality did not cause him to overlook the gems of truth in the teachings of his predecessors and contemporaries. And the most original of his teachings was the emphasis of love and mercy in the place of fear and sacrifice.
2000 100:7.5 예수의 독창성은 억눌리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묶이거나 좁은 관습에 종처럼 순종함으로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의심 없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절대 권한을 가지고 가르쳤다. 그러나 훌륭한 독창성이 있었어도 그의 선조와 그 시대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의 보배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은 신을 두려워하고 희생물을 바치는 관습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었다.
2001 CM 100:7.5 예수의 독창성은 억압되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묶이거나 편협한 인습에 사로잡힘으로 방해받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신으로 말씀했고, 절대적 권세로 가르쳤다. 그러나 훌륭한 독창성이 있었어도, 그의 선조와 그 시대 사람들의 교훈에 담긴 진리라는 보물을 경시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의 교훈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은, 두려움과 희생제물 대신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었다.
2007 URKA 100:7.5 예수의 기원성은 억압받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묶이거나 제한된 인습에 젖음으로써 방해를 받는 일이 없으셨다. 그는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말씀하였으며 절대적 권한으로 가르치셨다. 그러나 그의 장엄한 기원성은 그로 하여금 그보다 전에 그리고 동시대에 있던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의 보석들을 경시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기원적인 것은 두려움과 희생 제물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신 것이었다.
2025 100:7.5 예수의 독창성은 억눌리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묶이거나 좁은 관습에 종처럼 순종함으로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의심 없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절대 권한을 가지고 가르쳤다. 그러나 훌륭한 독창성이 있었어도 그의 선조와 그 시대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실의 보배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은 신을 두려워하고 희생물을 바치는 관습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었다.
1955 100:7.6 Jesus was very broad in his outlook. He exhorted his followers to preach the gospel to all peoples. He was free from all narrow-mindedness. His sympathetic heart embraced all mankind, even a universe. Always his invitation was, “Whosoever will, let him come.”
2000 100:7.6 예수는 대단히 넓은 견지에서 세상을 보았다. 그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도하라고 추종자들에게 타일렀다. 그는 전혀 마음이 좁지 않았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온 인류, 아니 한 우주조차도 담았다. 언제나 그는 이렇게 초청하였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올지어다.”
2001 CM 100:7.6 예수께서는 대단히 폭넓은 견해를 가졌다. 그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추종자들에게 간곡히 타일렀다. 그에게는 편협함이 없었다. 그의 동정적 심성은 온 인류, 심지어 한 우주까지 포용했다. 그는 항상,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고 초청했다.
2007 URKA 100:7.6 예수는 매우 넓은 견해를 갖고 계셨다. 그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간곡히 타이르셨다. 그에게는 편협함이 없었다. 그의 동정적인 가슴은 모든 인류 그리고 우주까지라도 포옹하였다. 그의 초청의 말씀은 항상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내게로 오라”는 것이었다.
1955 100:7.7 Of Jesus it was truly said, “He trusted God.” As a man among men he most sublimely trusted the Father in heaven. He trusted his Father as a little child trusts his earthly parent. His faith was perfect but never presumptuous. No matter how cruel nature might appear to be or how indifferent to man’s welfare on earth, Jesus never faltered in his faith. He was immune to disappointment and impervious to persecution. He was untouched by apparent failure.
2000 100:7.7 예수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라”하고 사람들이 참되게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주 숭고하게 의지했다.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의지했다. 그의 믿음은 완전했어도 결코 주제넘지 않았다. 자연이 아무리 모질게 보여도, 땅에 있는 사람의 복지에 아무리 개의치 않는 듯 보여도, 예수는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실망에 면역(免疫)이 되었고,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실패로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2001 CM 100:7.7 예수의 경우에,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말은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장 숭고하게 신뢰했다. 어린아이가 육신의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아버지를 신뢰했다. 그의 신앙은 완전했지만 뻔뻔한 적이 결코 없었다. 자연현상이 아무리 가혹해 보이고, 이 세상 사람의 복지에 무관심한 듯 보였어도, 예수께서는 신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실망당할 염려가 없었고 박해에 영향 받지 않았다. 외견상 실패에 흔들리지 않았다.
2007 URKA 100:7.7 예수께 있어서는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셨다”는 것이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장 탁월하게 신뢰하셨다. 그는 어린아이가 자기 육신의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자신의 아버지를 신뢰하셨다. 그의 신앙은 완전하였지만 무례한 적이 결코 없었다. 잔인한 자연본성이 어떻게 나타나든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사람의 복지에 관계가 없을지라도, 예수는 자신의 신앙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었다. 그는 실망을 당할 염려가 없었으며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 그는 외견상의 실패에 의해서 흔들리는 법이 없으셨다.
1955 100:7.8 He loved men as brothers, at the same time recognizing how they differed in innate endowments and acquired qualities. “He went about doing good.”
2000 100:7.8 그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사랑했고, 동시에 사람들의 타고난 자질과 얻은 성질이 어떻게 다른가 헤아렸다. “그는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하였더라.”
2001 CM 100:7.8 그는 사람들을 형제로 사랑했고, 동시에 그들의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특성이 어떻게 다른지 헤아렸다. “그는 부지런히 선을 행하셨다.”
2007 URKA 100:7.8 그는 사람들을 형제로서 사랑하셨으며, 동시에 그들이 타고난 자질과 후천적인 본질특성에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셨다. “그는 부지런히 선(善)을 행하셨다.”
1955 100:7.9 Jesus was an unusually cheerful person, but he was not a blind and unreasoning optimist. His constant word of exhortation was, “Be of good cheer.” He could maintain this confident attitude because of his unswerving trust in God and his unshakable confidence in man. He was always touchingly considerate of all men because he loved them and believed in them. Still he was always true to his convictions and magnificently firm in his devo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2000 100:7.9 예수는 드물게 명랑한 사람이었지만, 눈이 먼 분별 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늘 이렇게 훈계의 말씀을 주었다, “기운을 내라.” 확고히 하나님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사람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는 이러한 자신 있는 태도를 지킬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에, 언제나 감동을 주도록 사람들에게 마음을 썼다. 그래도 언제나 그의 신념에 충실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헌신하려고 훌륭하게 각오가 굳었다.
2001 CM 100:7.9 예수께서는 유별나게 쾌활한 사람이었으나, 맹목적이고 불합리한 낙관주의자는 아니었다. 늘 훈계한 말씀은, “활기찬 기분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확신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임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감동적으로 인정이 많았는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신념에 항상 진실했고, 아버지 뜻을 행하기에 헌신하는 동안, 당당하게 견고했다.
2007 URKA 100:7.9 예수는 유별나게 쾌활한 사람이셨지만, 맹목적이고 불합리한 낙관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가 늘 훈계하신 말씀은 “명랑한 기분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자신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사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항상 측은한 심정으로 이해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믿으셨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대한 자신의 헌신에 있어서 숭고하게 확고하였고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항상 진실하셨다.
1955 100:7.10 The Master was always generous. He never grew weary of saying,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Said he,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And yet, with all of his unbounded generosity, he was never wasteful or extravagant. He taught that you must believe to receive salvation. “For every one who seeks shall receive.”
2000 100:7.10 주는 언제나 너그러웠다. 그는 지치지 않고 말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도다.” 그는 말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한없이 너그러웠는데도, 그래도 그는 결코 낭비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구원을 받으려면 너희가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얻을지니라.”
2001 CM 100:7.10 주님은 항상 관대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기를 늘 즐거워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또한, 끝없이 모든 관용을 베풀면서도, 결코 낭비하거나 지나치지 않았다. 너희가 구원을 받으려면 믿어야한다고 가르쳤다.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다.”
2007 URKA 100:7.10 주(主)는 언제나 관대하셨다. 그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욱 축복이 있다”고 말하시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나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한, 그의 한없이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낭비적이거나 지나치신 적이 없었다. 그는 구원을 받기 위헤서는 너희가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르치셨다.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일 것이다.”
1955 100:7.11 He was candid, but always kind. Said he,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He was frank, but always friendly. He was outspoken in his love for the sinner and in his hatred for sin. But throughout all this amazing frankness he was unerringly fair.
2000 100:7.11 그는 솔직했으나 언제나 친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고 거침없이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놀랍게 솔직하면서 내내 그는 어김없이 공정했다.
2001 CM 100:7.11 그는 솔직했지만 항상 친절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숨김없었지만, 항상 친근했다.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증오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놀라울 만큼 솔직하면서도, 어김없이 공평했다.
2007 URKA 100:7.11 그는 솔직하면서도 항상 친절하셨다. 그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숨김이 없었지만, 항상 친근하셨다. 그는 죄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죄에 대한 자신의 증오를 거리낌 없이 선언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솔직함 전체에 있어서 그는 틀림없이 공정하셨다.
1955 100:7.12 Jesus was consistently cheerful, notwithstanding he sometimes drank deeply of the cup of human sorrow. He fearlessly faced the realities of existence, yet was he filled with enthusiasm for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he controlled his enthusiasm; it never controlled him. He was unreservedly dedicated to “the Father’s business.” This divine enthusiasm led his unspiritual brethren to think he was beside himself, but the onlooking universe appraised him as the model of sanity and the pattern of supreme mortal devotion to the high standards of spiritual living. And his controlled enthusiasm was contagious; his associates were constrained to share his divine optimism.
2000 100:7.12 때때로 인간적 슬픔의 잔을 깊숙이 들이켰는데도, 예수는 변치 않고 명랑했다. 두려움 없이 그는 존재의 현실에 부딪쳤고, 그래도 하늘나라 복음을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열심을 자제했고, 결코 열심이 그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다. 이 신다운 열심은 영적 생각이 없는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구경하는 우주는 그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의 모형이라고, 높은 수준의 영적 생활에 필사자가 최고로 헌신하는 본보기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리고 자제된 그의 열심은 쉽게 번졌다. 동료들은 그와 함께 신답게 낙관할 수밖에 없었다.
2001 CM 100:7.12 예수께서는 가끔 인간적 슬픔의 잔을 진하게 마시기도 했지만, 변함없이 쾌활했다. 실존하는 실체에 담대히 대면했고, 더욱이 천국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의욕을 통제했으며;의욕이 그를 통제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일”에 무제한 헌신했다. 이런 신성한 열정 때문에, 영적이지 못한 형제들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으나, 지켜보던 온 우주는, 그를 온전한 사람의 본보기라고, 그리고 영적 삶의 고상한 표준에 헌신한 고귀한 인간 원형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통제된 의욕은 전염성 있었으며;동역자들은 그의 신성한 낙관주의를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다.
2007 URKA 100:7.12 예수는 가끔 인간적인 슬픔의 잔을 깊이 들이마시기도 하였지만, 변함없이 쾌활하셨다. 그는 실존하는 실체들에 대담하게 대면하셨고, 더욱이 왕국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열심을 통제했다; 그것이 그를 통제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아낌없이 전념하셨다. 이러한 신성한 열정이 비(非)영적인 그의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지켜보고 있던 온 우주는 그를 온전한 사람의 본보기로 그리고 영적 삶에서의 높은 기준에 대한 최극의 필사자 헌신의 원형틀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제된 열심은 확 전염되었다; 그의 연관-동료들은 그의 신성한 낙관주의를 공유하는 것에 갇히게 되었다.
2025 100:7.12 때때로 인간적 슬픔의 잔을 깊숙이 들이켰는데도, 예수는 변치 않고 명랑했다. 두려움 없이 그는 존재의 현실에 부딪쳤고, 그래도 하늘나라 복음을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15]. 그러나 열심을 자제했고, 결코 열심이 그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다
[16]. 이 신다운 열심은 영적 생각이 없는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구경하는 우주는 그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의 모형이라고, 높은 수준의 영적 생활에 필사자가 최고로 헌신하는 본보기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리고 자제된 그의 열심은 쉽게 번졌다. 동료들은 그와 함께 신답게 낙관할 수밖에 없었다.
1955 100:7.13 This man of Galilee was not a man of sorrows; he was a soul of gladness. Always was he saying,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But when duty required, he was willing to walk courageously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He was gladsome but at the same time humble.
2000 100:7.13 이 갈릴리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즐거운 사람이었다. “기뻐하고 지극히 즐거워하라”하고 늘 말했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할 때, “그늘진 죽음의 골짜기”를 기꺼이 용감히 걸었다. 즐거워했지만 동시에 겸손했다.
2001 CM 100:7.13 이 갈릴리 사람은 슬픔에 잠긴 한 남자가 아니었으며;기쁨이 넘치는 혼이었다. “크게 기뻐하고 넘치도록 즐거워하라”고 늘 말씀했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할 때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깔린 골짜기”를 기꺼이 용감하게 걸어갔다. 그는 유쾌했지만 동시에 겸손했다.
2007 URKA 100:7.13 이 갈릴리 사람은 슬픔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쁨의 혼이었다. 그는 “기쁨을 향유하고 넘치도록 즐거워하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될 때, 그는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기꺼이 용감하게 걸으려 하셨다. 그는 기쁨에 찬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겸손하셨다.
1955 100:7.14 His courage was equaled only by his patience. When pressed to act prematurely, he would only reply, “My hour has not yet come.” He was never in a hurry; his composure was sublime. But he was often indignant at evil, intolerant of sin. He was often mightily moved to resist that which was inimical to the welfare of his children on earth. But his indignation against sin never led to anger at the sinner.
2000 100:7.14 그의 용기는 그의 참을성에 못지 않았다. 때이르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받았을 때, 그는 오직 “내 때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느니라” 대답하곤 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의 차분한 자세는 탁월하였다. 그러나 악을 보고서 자주 분개하였고, 죄를 참지 못했다. 이따금 땅에 있는 자녀들의 복지에 해로운 것에 저항하도록 힘차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죄를 분개하는 태도는 결코 죄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았다.
2001 CM 100:7.14 그의 용기는 그의 인내심에 못지않았다. 시기상조임에도 행동하라고 압력을 받았을 때, 오직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으며;그의 침착성은 탁월했다. 그러나 종종 악에 분개했고, 죄를 참지 못했다. 땅에 있는 자녀들의 복지에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항하도록, 강하게 감동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죄에 대한 그의 의분{義憤}은 결코 그 죄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았다.
2007 URKA 100:7.14 그의 용기는 그의 참을성에 못지 않았다. 조급하게 행동하도록 강요받았을 때, 그는 오직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대답하곤 하셨다. 그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의 침착함은 숭고하였다. 그러나 그는 악에서는 자주 분개하셨고 죄를 참지 못하셨다. 그는 땅에 있는 자기 자녀들의 번영에 해를 끼치는 것에 저항하려고 자주 강력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죄에 대한 그의 분개가 죄인에 대한 분노로 이끈 적은 결코 없었다.
1955 100:7.15 His courage was magnificent, but he was never foolhardy. His watchword was, “Fear not.” His bravery was lofty and his courage often heroic. But his courage was linked with discretion and controlled by reason. It was courage born of faith, not the recklessness of blind presumption. He was truly brave but never audacious.
2000 100:7.15 그의 용기는 대단했지만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대단히 용기가 있었고, 때때로 영웅답게 용감했다. 그러나 그의 용기에 신중함이 있었고 이성(理性)으로 자제되었다. 그 용기는 믿음에서 생겨난 용기요, 함부로 맹목으로 주제넘게 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용감했지만 결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2001 CM 100:7.15 그의 용기는 대단했지만,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 말라”였다. 그의 용감함은 고상했고 그의 용기는 종종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분별력과 연결됐고, 이성으로 통제됐다. 그 용기는 신앙으로 말미암는 용기였고, 아무렇게나 확신하는 무모함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용감했으나, 결코 주제넘지 않았다.
2007 URKA 100:7.15 그의 용기는 뛰어났지만, 그는 결코 무모한 적은 없었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 말라”였다. 그의 용감성은 드높았고, 그의 용기는 자주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사려 깊은 분별력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성에 의해 통제되었다. 그것은 신앙에서 탄생된 용기였고, 맹목적 추측에서의 무모함이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용감하였지만 호기를 부린 적은 결코 없었다.
1955 100:7.16 The Master was a pattern of reverence. The prayer of even his youth began, “Our Father who i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He was even respectful of the faulty worship of his fellows. But this did not deter him from making attacks on religious traditions or assaulting errors of human belief. He was reverential of true holiness, and yet he could justly appeal to his fellows, saying, “Who among you convicts me of sin?”
2000 100:7.16 주는 존경심의 본보기였다. 젊을 때에도 그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하옵소서.” 그는 동료들이 그릇되게 숭배하는 것조차 존중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로 하여금 종교적 전통을 공격하거나 사람의 잘못된 관념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는 참된 거룩함을 존중했고, 그래도 “너희 가운데 누가 나를 죄 있다고 선언하느냐?”하고 말하면서 동료들에게 온당하게 호소할 수 있었다.
2001 CM 100:7.16 주님은 공경의 본보기였다. 젊었을 때에도 그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로 시작했다. 동료의 그릇된 경배조차 존중했다. 그러나 이것이, 종교적 전통을 공격하거나 인간의 잘못된 믿음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참된 거룩함을 존중했으나 동료에게는,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라고 정당하게 호소할 수 있었다.
2007 URKA 100:7.16 주(主)는 존경의 원형틀이셨다. 그가 젊었을 때에도 그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소서.”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의 그릇된 경배조차도 존중했다. 그러나 이것이 종교적 전통에 대해 공격 하거나, 잘못된 인간의 믿음에 대하여 공격을 하는 것을 가로 막지는 않았다. 그는 참된 성스러움은 존경하였지만, 자기 동료들에게는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인이라 확신하겠느냐?”라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다.
1955 100:7.17 Jesus was great because he was good, and yet he fraternized with the little children. He was gentle and unassuming in his personal life, and yet he was the perfected man of a universe. His associates called him Master unbidden.
2000 100:7.17 예수가 위대한 것은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어린아이들과 사귀었다. 부드러웠어도 사생활에서 잘난 체하지 않았고, 그래도 우주에서 완전해진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를 주라고 불렀다.
2001 CM 100:7.17 예수가 위대한 것은 선하셨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그는 어린아이와 친하게 사귀었다. 개인 생활에서 온화하고 겸손했으며, 그럼에도 한 우주에서 완전하게 된 사람이었다. 동역자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주님이라고 불렀다.
2007 URKA 100:7.17 예수는 자신이 선하셨기 때문에 위대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린아이들과 형제우애관계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삶에 있어서 온화하고 겸손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우주의 완성된 사람이셨다. 그의 연관-동료들은 그를 자발적으로 주(主)라고 불렀다.
2025 100:7.17 예수가 위대한 것은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어린아이들과 사귀었다. 부드러웠어도 사생활에서 잘난 체하지 않았고, 그래도 우주에서 완전해진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를 주라고 불렀다.
1955 100:7.18 Jesus was the perfectly unified human personality. And today, as in Galilee, he continues to unify mortal experience and to co-ordinate human endeavors. He unifies life, ennobles character, and simplifies experience. He enters the human mind to elevate, transform, and transfigure it. It is literally true: “If any man has Christ Jesus within him,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ing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ing new.”
2000 100:7.18 예수는 완전하게 통일된 인격자였다. 그리고 오늘날, 갈릴리에서 한 것처럼, 그는 계속 필사자의 체험을 통일하고 인간의 수고를 조정한다. 그는 생명을 하나가 되게, 인품을 고귀하게, 체험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는 인간의 지성 속에 들어가서 그 지성을 높이고 변화시키고 그 모습을 바꾼다.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 속에 가졌으면 새 사람이라. 오래된 것이 지나가고 있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있도다.”
2001 CM 100:7.18 예수께서는 완전히 통합된 인격체였다. 그리고 그는, 갈릴리에서 했던 것처럼, 오늘날 인간의 체험을 계속 통합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수고를 조화시키고 있다. 삶을 통합시키고, 성품을 고상하게 하고, 체험을 단순화시킨다. 그는 인간 정신에 들어가서 그 정신을 증진시키고 변형시키고 변모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으면, 누구든지 새 피조물이요;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됐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참되다.
2007 URKA 100:7.18 예수는 완전하게 통합된 개인성이셨다. 그리고 갈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오늘도 필사자의 체험을 통합하고 인간의 수고들을 조화-협동하는 것을 계속하시고 있다. 그는 일생을 통합하고, 성격을 고귀하게 하며, 체험을 단순화하신다. 그는 인간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높이 올리고, 변환시키고 그리고 변모시킨다. 다음의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 안에 그리스도 예수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새로운 창조체이다; 옛 것들은 지나가고 있다; 보라,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되어가고 있다.”
1955 100:7.19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
2000 100:7.19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2001 CM 100:7.19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제시했음.]
2007 URKA 100:7.19 [네바돈의 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2025 100:7.19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