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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THE FOUNDATIONS OF RELIGIOUS FAITH
제 102 편종교적 믿음의 기초
제102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제 102 편: 종교적 신앙의 기초
종교적 믿음의 기초
1955 102:0.1 TO THE unbelieving materialist, man is simply an evolutionary accident. His hopes of survival are strung on a figment of mortal imagination; his fears, loves, longings, and beliefs are but the reaction of the incidental juxtaposition of certain lifeless atoms of matter. No display of energy nor expression of trust can carry him beyond the grave. The devotional labors and inspirational genius of the best of men are doomed to be extinguished by death, the long and lonely night of eternal oblivion and soul extinction. Nameless despair is man’s only reward for living and toiling under the temporal sun of mortal existence. Each day of life slowly and surely tightens the grasp of a pitiless doom which a hostile and relentless universe of matter has decreed shall be the crowning insult to everything in human desire which is beautiful, noble, lofty, and good.
2000 102:0.1 믿지 않는 유물론자에게 사람은 다만 진화에서 우연히 생긴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은 필사자의 상상력의 결과에 달려 있다. 사람의 두려움ㆍ사랑ㆍ갈망ㆍ관념은 겨우, 생명이 없는 어떤 물질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에서 생긴 반응일 뿐이다. 아무리 대단하게 에너지를 전시하거나 신뢰를 표현해도 무덤을 지나서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최선의 사람들이 기울이는 헌신적 노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능도 죽고 나서 사라지도록 운명이 정해졌고, 죽음은 영원히 잊혀지고 혼이 소멸되는 길고도 외로운 밤이다. 필사자로 존재하던 현세의 태양 밑에서 살고 땀흘린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절망이 유일한 보상이다. 인생의 하루하루가 무자비한 멸망의 손아귀를 천천히, 단단히 조이며, 냉담하고 혹독한 물질 우주는 이 멸망이 인간의 소망 중에 아름답고 고귀하고, 고상하고 선한 모든 것에 최고의 모욕이 될 것이라 선포했다.
2001 CM 102:0.1 믿음 없는 물질주의자에게 사람은 단순히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사람이 생존할 것이라는 희망은, 필사자가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에 속은 것이며;그의 두려움과 사랑과 간절함 및 믿음은, 생명 없는 어떤 물질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에서 생긴 반응에 불과하다. 아무리 에너지를 과시하거나 신용을 표명해도, 필사자를 무덤 저 편으로 데려갈 수 없다. 최상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헌신적 수고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능도, 죽음 후에 소멸될 운명에 처해있고, 죽음은 영원한 망각과 혼의 사멸{死滅}이라는 길고 고독한 밤이다. 현세의 태양 아래서 필사자 실존이 영위한 삶과 수고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절망만이 인간의 유일한 보상이다. 매일의 삶이, 무자비한 멸망의 손아귀를 서서히 단단하게 조이며, 냉담하고 혹독한 물질 우주는, 이 멸망이 인간의 소망 중에 아름답고 고귀하고 고상하고 유익한 모든 것에 최고 모욕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07 URKA 102:0.1 믿지-않는 물질주의자에게는 사람은 단지 진화적으로 일어난 우연한-사건이다. 그의 생존의 희망은 필사자 상상에서의 형성으로 만든 어떤 허구에 매달려 있다; 그의 두려움, 사랑, 열망, 그리고 믿음은 기껏해야 물질의 생명-없는 특정한 원자들의 우발적인 나란한-배열에서 나오는 반응일 뿐이다. 그 어떤 에너지의 과시나 혹은 신뢰의 표현도 무덤을 넘어 그를 데려갈 수 없다. 사람의 가장 뛰어난 자의 헌신적인 수고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성도 죽음 곧, 영원한 망각과 혼 소멸의 그 길고도 외로운 밤으로 인하여 사라지도록 숙명으로 정해져 있다. 오직 형언할 수 없는 절망만이, 필사자 실존에의 일시적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삶과 수고에 대해 사람이 얻는 보상이다. 적대적이고 냉혹한 물질의 우주가 법령으로 포고해 온, 그 무자비한 숙명의 손아귀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조이는 일생의 매일매일은, 인간 열망 안에 있는 아름답고 고귀하며 숭고하고 그리고 선한 그 모든 것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 될 것이다.
2025 102:0.1 믿지 않는 유물론자에게 사람은 다만 진화에서 우연히 생긴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은 필사자의 상상력이 지어낸 형태에 달려 있다. 사람의 두려움ㆍ사랑ㆍ갈망ㆍ관념은 겨우, 생명이 없는 어떤 물질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에서 생긴 반응일 뿐이다. 아무리 대단하게 에너지를 전시하거나 신뢰를 표현해도 무덤을 지나서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최선의 사람들이 기울이는 헌신적 노력,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능도 죽고 나서 사라지도록 운명이 정해졌고, 죽음은 영원히 잊혀지고 혼이 소멸되는 길고도 외로운 밤이다. 필사자가 존재하던 현세의 태양 밑에서 살고 땀을 흘린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절망이 유일한 보상이다[1]. 인생의 하루하루가 무자비한 멸망의 손아귀를 천천히, 단단히 조이며, 냉담하고 혹독한 물질 우주는 이 멸망이 인간의 소망 중에 아름답고 고귀하고, 고상하고 선한 모든 것에 최고의 모욕이 될 것이라 선포했다.
[1]
1955 102:0.2 But such is not man’s end and eternal destiny; such a vision is but the cry of despair uttered by some wandering soul who has become lost in spiritual darkness, and who bravely struggles on in the face of the mechanistic sophistries of a material philosophy, blinded by the confusion and distortion of a complex learning. And all this doom of darkness and all this destiny of despair are forever dispelled by one brave stretch of faith on the part of the most humble and unlearned of God’s children on earth.
2000 102:0.2 그러나 그런 것이 사람의 종말과 영원한 운명은 아니다. 그러한 환상은 단지 영적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물질적 철학의 기계론적 궤변에 직면하여 용감하게 싸우며, 복잡한 배움의 혼란과 왜곡으로 인하여 눈이 먼, 어떤 헤매는 사람이 절망에 빠져 내뱉은 외침일 뿐이다.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딸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배우지 못한 자의 편에서 믿음이 한 번 용감히 손을 뻗으면, 이 캄캄한 죽음이 전부, 그리고 이 모든 절망스러운 운명이, 언제까지나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2001 CM 102:0.2 그러나 그런 것은 사람의 종말이나 영원한 운명이 아니며;그런 환상은 영적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복잡한 학문의 혼돈과 왜곡으로 눈먼 채, 물질 철학의 기계론적 궤변에 직면하여 용감하게 투쟁하는, 소수의 방랑하는 혼이 외친 절망의 함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모든 어둠의 파멸과 이런 모든 절망의 운명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배우지 못한 자의 편에서, 신앙이 한 번 용감하게 손을 뻗음으로써 영원히 사라진다.
2007 URKA 102:0.2 그러나 그러한 것이 사람의 끝이나 그리고 영원한 운명이 아니다; 그러한 광경은 영적 흑암 속에서 길을 잃게 된, 그리고 물질적 철학의 기계론적 궤변의 얼굴과 모습으로 용감하게 투쟁하는, 복잡한 배움에서의 혼돈과 왜곡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어있는 그러한 일부 헤매고 있는 혼이 외치는 절망의 함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이러한 흑암의 숙명과 모든 이러한 절망의 운명은 이 땅에서 가장 비천하고 배우지 못한 하느님의 자녀들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신앙에서의 단 한번 뻗어주는 용감한 손길로 말미암아 영영토록 일소되는 것이다.
1955 102:0.3 This saving faith has its birth in the human heart when the moral consciousness of man realizes that human values may be translated in mortal experience from the material to the spiritual, from the human to the divine, from time to eternity.
2000 102:0.3 인간의 가치 기준이 필사자의 체험에서 물질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으로, 인간다운 것으로부터 신다운 것으로, 시간 세계에서 영원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의 도덕적 의식이 깨달을 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이 구원하는 믿음이 태어난다.
2001 CM 102:0.3 필사자의 체험에서 인간의 가치기준이 물질계로부터 영계로, 인간다움으로부터 신성함으로, 시간세계로부터 영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사람의 도덕의식이 깨달을 때, 이 구원하는 신앙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잉태된다.
2007 URKA 102:0.3 이러한 구원하는 신앙은, 필사자의 체험 안에서 인간적 가치들이 물질인 것으로부터 영적인 것으로,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시간으로부터 영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사람의 도덕적 의식이 실현할 때, 인간의 가슴속에서 태어난다.
2025 102:0.3 인간의 가치가 필사자의 체험에서 물질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인간다운 것에서 신다운 것으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의 도덕적 의식이 깨달을 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이 구원하는 믿음이 태어난다.
1. ASSURANCES OF FAITH
1. 믿음의 확신
1. 신앙의 확신
1. 신앙의 확신
1. 믿음의 확신
1955 102:1.1 The work of the Thought Adjuster constitutes the explanation of the translation of man’s primitive and evolutionary sense of duty into that higher and more certain faith in the eternal realities of revelation. There must be perfection hunger in man’s heart to insure capacity for comprehending the faith paths to supreme attainment. If any man chooses to do the divine will, he shall know the way of truth. It is literally true, “Human things must be known in order to be loved, but divine things must be loved in order to be known.” But honest doubts and sincere questionings are not sin; such attitudes merely spell delay in the progressive journey toward perfection attainment. Childlike trust secures man’s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ly ascent, but progress is wholly dependent on the vigorous exercise of the robust and confident faith of the full-grown man.
2000 102:1.1 생각 조절자가 하는 일은, 사람의 원시적이고 진화적인 의무 감각이, 계시되는 영원한 실체들에 대하여 더 확실한 상급 신앙으로 변화되는 것을 설명한다. 최상의 달성에 이르는 신앙의 길을 이해할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완전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신의 뜻을 행하기를 선택하면, 진리의 길을 알게 된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인간의 것은 이해해야 사랑을 받지만, 신다운 것은 사랑해야 이해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의심하고 진지하게 묻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한 태도는 다만 완전을 달성하기 위하여 진보하는 나그네 길에서 늦어짐을 의미한다. 어린아이처럼 의지하는 것은 사람이 올라가서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지만, 진보는 완전히 성장한 어른이 튼튼하고 확신하는 믿음을 힘차게 연습하는 데 온전히 달려 있다.
2001 CM 102:1.1 사람의 원시적이고 진화적인 의무감이, 계시되는 영원한 실체를 믿는 더 높고 더 확실한 신앙으로 변환되는 것을, 사고 섭리사 과업이 밝혀준다. 최상의 달성에 이르는 신앙 경로를 납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 속에 완벽함을 향한 갈급함이 있어야한다. 신의 뜻을 선택한다면, 누구든지 진리의 길을 알게 된다. “인간적인 것은 알려져야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신성한 것은 사랑받아야만 알려질 수 있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옳다. 그러나 정직한 의심과 진지한 질문은 죄가 아니며;그런 태도는 완벽성을 달성하려고 진보하는 여행에서, 단순히 지체시킬 뿐이다. 어린아이 같은 신용은 사람이 하늘로 상승해서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보장하지만, 진보는, 온전히-성장한 어른이 튼튼하고 자신감 있는 신앙을 활기차게 실행하는 데 전적으로 달려있다.
2007 URKA 102:1.1 생각 조절자의 활동은 의무로 여기는 인간의 원시적이고 진화적인 감각이, 더욱 높고 더욱 확실한 신앙, 계시에서의 영원한 실체들에 대한 신앙으로 전환됨을 설명하는 요소가 된다. 최극 달성에 이르는 신앙의 행로들을 깊이 이해하는 수용력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가슴 안에서 완전함을 이루려는 갈망이 있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신성한 뜻을 행하기를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는 진리의 길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적인 것들은 사랑받으려면 알려져야만 하지만, 신성한 것들은 알려지려면 사랑받아야만 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그러나 정직한 의심과 진지한 질문은 죄가 아니다; 그러한 태도들은 완전함 달성을 향한 진보하는 여행에서 단지 지연을 초래할 따름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가 하늘로 상승하여 이르는 왕국 안으로 사람이 입장하는 것을 확보하지만, 그러나 진보는 전적으로, 충만하게-성장한 사람의 튼튼하고 확신하는 신앙에서의 활기찬 실행에 달려 있다.
2025 102:1.1 생각 조절자가 하는 일은, 사람의 원시적ㆍ진화적 의무 감각이, 계시되는 영원한 실체들을 믿는 더 확실한 상급 신앙으로 변화되는 것을 설명한다. 최상의 달성에 이르는 신앙의 길을 이해하는 능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 속에 완전을 향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신의 뜻을 행하기를 선택하면, 진실의 길을 알게 된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인간의 것은 이해해야 사랑을 받지만, 신다운 것은 사랑해야 이해한다[3].” 그러나 정직하게 의심하고 진지하게 묻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한 태도는 다만 완전을 달성하기 위하여 진보하는 나그네 길에서 늦어짐을 의미한다
[4]. 어린아이처럼 의지하는 것은 사람이 올라가서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지만, 진보는 완전히 성장한 어른이 튼튼하고 확신하는 믿음을 힘차게 연습하는 데 온전히 달려 있다.
1955 102:1.2 The reason of science is based on the observable facts of time; the faith of religion argues from the spirit program of eternity. What knowledge and reason cannot do for us, true wisdom admonishes us to allow faith to accomplish through religious insight and spiritual transformation.
2000 102:1.2 과학의 논리는 시간 세계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실에 바탕을 두며, 종교에서 믿음은 영원 세계에서 영의 계획에 근거를 두고 주장한다. 우리를 위하여 지식과 논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참된 지혜는 종교적 통찰력과 영적 변화를 통해서 믿음으로 성취하라고 우리에게 타이른다.
2001 CM 102:1.2 과학의 논리는 시간세계에서 관찰 가능한 사실에 기초하며;종교에서 신앙은 영원 세계의 영 계획표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지식과 이성이 우리를 위하여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종교적 통찰력과 영적 변화를 통해서 신앙이 완성하도록 허용하라고, 참 지혜가 우리에게 훈계한다.
2007 URKA 102:1.2 과학에서의 이성은 시간의 관찰 가능한 사실에 바탕을 둔다; 종교에서의 신앙은 영원에서의 영 계획으로부터 주장을 펼친다. 지식과 이성이 우리를 위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참된 지혜는 종교적 통찰과 영적 변형을 통하여 신앙이 성취하도록 허용하라고 우리를 타이른다.
2025 102:1.2 과학의 논리는 시간 세계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실에 바탕을 두며, 종교에서 믿음은 영원 세계에서 영의 계획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지식과 논리가 우리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을, 참된 지혜는 종교적 통찰력과 영적 변화를 통해서 믿음으로 성취하라고 우리에게 타이른다.
1955 102:1.3 Owing to the isolation of rebellion, the revelation of truth on Urantia has all too often been mixed up with the statements of partial and transient cosmologies. Truth remains unchang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ut the associated teachings about the physical world vary from day to day and from year to year. Eternal truth should not be slighted because it chances to be found in company with obsolete ideas regarding the material world. The more of science you know, the less sure you can be; the more of religion you have, the more certain you are.
2000 102:1.3 반란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유란시아에서 진리의 계시는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우주론의 진술과 너무나 자주 혼동되어 왔다. 진리는 대대로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만, 그와 관련된 가르침, 물리적 세계에 대한 가르침은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바뀐다. 영원한 진리는 어쩌다가 물질 세계에 관한 낡은 관념과 함께 발견된다고 해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과학을 알수록 너희는 더욱 확신이 줄어든다. 종교를 믿을수록 너희는 더욱 확신을 가진다.
2001 CM 102:1.3 반역으로 격리됐기 때문에, 유란시아에 주어진 진리 계시는 모두,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우주론의 주장과 너무 종종 혼동돼왔다. 진리는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지만, 물리적 세계에 관한 관련된 교훈은 해마다 날마다 바뀐다. 영원한 진리는, 물질세계와 관련된 진부한 관념과 함께 우연히 발견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시돼서는 안 된다. 과학을 많이 알수록, 너희는 점점 확신이 줄어들며;종교에 열심일수록, 더욱 확실해진다.
2007 URKA 102:1.3 반란에 의한 고립 때문에, 유란시아에서 진리의 계시는 부분적이고 과도기적인 우주론들의 진술과 너무나도 자주 뒤섞여 왔다. 진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변함없이 남아 있지만, 물리적 세계에 대한 연관된 가르침들은 날마다, 해마다 바뀐다. 어쩌다가 영원한 진리가 물질세계와 연관되는 진부한 관념들과 나란히 짝을 이루어 발견된다고 해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너희가 과학에서 점점 많은 것을 알수록, 너희는 점점 더 확신이 줄어들 것이다; 너희가 종교에서 점점 많은 것을 가질수록, 너희는 점점 더 확실해질 것이다.
2025 102:1.3 반란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에, 유란시아에서 진실의 계시는 부분적ㆍ일시적 우주론의 진술과 너무나 자주 혼동되어 왔다. 진실은 대대로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만, 그와 관련된 가르침, 물리적 세계에 대한 가르침은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바뀐다. 영원한 진실은 어쩌다가 물질 세계에 관한 낡은 관념과 함께 발견된다고 해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과학을 알수록 너희는 더욱 확신이 줄어들지만, 종교를 믿을수록 너희는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된다.
1955 102:1.4 The certainties of science proceed entirely from the intellect; the certitudes of religion spring from the very foundations of the entire personality. Science appeals to the understanding of the mind; religion appeals to the loyalty and devotion of the body, mind, and spirit, even to the whole personality.
2000 102:1.4 과학에서 확실한 것들은 전부 지능으로부터 진행한다. 종교에서 확실한 것들은 전체 인격의 바로 그 기초에서 솟아나온다. 과학은 지성의 이해력에 호소하며, 종교는 육체ㆍ지성ㆍ영의 충성과 헌신에, 아니 인격 전체에도 호소한다.
2001 CM 102:1.4 과학에서 확실성은 전적으로 지능에서 생겨나며;종교에서 확신은 전체 인격의 바로 그 기초에서 솟아난다. 과학은, 정신의 이해력에 호소하며;종교는, 몸과 정신과 영의 충성 및 헌신에, 심지어 전{全} 인격에 호소한다.
2007 URKA 102:1.4 과학에서의 확실성은 전적으로 지능으로부터 나아간다; 종교에서의 확신은 총체적 개인성의 바로 그 기초들로부터 솟아 나온다. 과학은 마음의 납득력에 동의를 호소한다; 종교는 몸, 마음, 그리고 영의 충성과 헌신에 동의를 호소하며, 심지어 전체 개인성에게까지 동의를 호소한다.
2025 102:1.4 과학에서 확실한 것들은 전부 지능에서 진행한다. 종교에서 확실한 것들은 전체 인격의 바로 그 기초에서 솟아나온다. 과학은 지성의 이해력에 호소하며, 종교는 육체ㆍ지성ㆍ영의 충성과 헌신에, 아니 인격 전체에도 호소한다.
1955 102:1.5 God is so all real and absolute that no material sign of proof or no demonstration of so-called miracle may be offered in testimony of his reality. Always will we know him because we trust him, and our belief in him is wholly based on our personal participation in the divine manifestations of his infinite reality.
2000 102:1.5 하나님은 온통 너무나 현실이고 절대적이어서, 어떤 물질적 증명의 표징이나 이른바 기적의 전시(展示)도 하나님의 실체를 증언하는 데 내놓을 수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알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무한한 실체의 신성한 명시에 우리가 몸소 참여하는 데 근거를 둔다.
2001 CM 102:1.5 하나님은 가장 실제적이고 절대적이시므로, 물질적으로 증명하는 어떤 표징이든지, 또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어떤 증거든지, 하나님 실체에 대한 증거로서 제시될 수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알게 되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무한한 실체가 신성하게 현시됨에 우리가 몸소 참여하는 것에 기초한다.
2007 URKA 102:1.5 하느님은 너무나도 모든 것이 실제적이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물질적 표징이나 또는 소위 기적이라 불리는 그 어떤 실증도 그의 실체에 대한 증언으로 제공될 수 없다. 우리는그를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그를 알 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전적으로 그의 무한한 실체에 대한 신성한 현시활동들 속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25 102:1.5 하나님은 온통 너무나 현실이고 절대적이어서, 어떤 물질적 증명의 표징이나 이른바 기적의 전시(展示)도 하나님의 실체를 증언하는 데 내놓을 수 없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알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무한한 실체의 신성한 명시에 우리가 몸소 참여하는 데 근거를 둔다.
1955 102:1.6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unfailingly arouses in man’s soul a true and searching hunger for perfection together with a far-reaching curiosity which can be adequately satisfied only by communion with God, the divine source of that Adjuster. The hungry soul of man refuses to be satisfied with anything less than the personal realization of the living God. Whatever more God may be than a high and perfect moral personality, he cannot, in our hungry and finite concept, be anything less.
2000 102:1.6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광범위한 호기심과 더불어, 사람의 혼 속에서 완전을 찾으려는 참된 갈망을 어김없이 불러일으킨다. 오로지 하나님, 그 조절자의 신성한 근원과 교통함으로 이 호기심을 적절히 채울 수 있다. 사람의 간절한 혼은 살아 있는 하나님을 몸소 깨달음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에도 흡족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높고 완전한 도덕적 성격자보다 더 높은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우리의 갈급하고 유한한 개념 속에서 하나님은 그보다 못한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2001 CM 102:1.6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는, 광범한 호기심과 더불어 완벽성을 추구하는 참된 갈급함을 인간의 혼에 반드시 발생시키는데, 이 호기심은, 그 섭리사의 신성한 근원인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만 충분히 만족될 수 있다. 사람의 굶주린 혼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깨달음보다 못한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높고 완전한 도덕적 인격체 이상의 어떤 분이 되실 수는 있어도, 우리의 갈급하고 제한된 개념 속에서, 그보다 못한 어떤 분도 되실 수 없다.
2007 URKA 102:1.6 내주 하는 생각 조절자는, 오직 조절자의 신성한 근원인 하느님과의 교제로만 적절하게 만족될 수 있는 그러한 멀리-미치는 호기심과 더불어, 사람의 혼 속에 완전함을 향한 참되고 그리고 찾아나서는 긂주림을 어김없이 불러일으킨다. 사람의 굶주린 혼은 살아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개인적 실현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는 그 어떤 것이건 만족되기를 거부한다. 하느님이 높고 완전한 도덕적 개인성보다 얼마나 더한 것인지에 상관없이, 우리의 굶주린 그리고 유한한 개념 안에 있는 그보다 못한 그 어떤 것도 될 수는 없다.
2025 102:1.6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방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사람의 혼 속에서 완전을 찾으려는 참된 갈망을 어김없이 불러일으킨다. 오로지 하나님, 그 조절자의 신성한 근원과 교통함으로 이 호기심을 적절히 채울 수 있다. 사람의 간절한 혼은 살아 있는 하나님을 몸소 깨달음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높고 완전한 도덕적 성격자보다 더 높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갈급하고 유한한 개념 속에서 하나님은 그보다 못한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2. RELIGION AND REALITY
2. 종교와 실체
2. 종교와 실체
2. 종교와 실체
2. 종교와 실체
1955 102:2.1 Observing minds and discriminating souls know religion when they find it in the lives of their fellows. Religion requires no definition; we all know its social, intellectual, moral, and spiritual fruits. And this all grows out of the fact that religion is the property of the human race; it is not a child of culture. True, one’s perception of religion is still human and therefore subject to the bondage of ignorance, the slavery of superstition, the deceptions of sophistication, and the delusions of false philosophy.
2000 102:2.1 관찰하는 지성인과 분별하는 사람들은 동료들의 생활에서 종교를 발견할 때 그 종교를 알아본다. 종교는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 종교의 사회적ㆍ지적ㆍ도덕적ㆍ영적 열매를 알아본다. 이것은 모두, 종교가 인류의 재산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종교는 문화의 소산이 아니다. 종교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인간답고, 따라서 무지의 사슬에 묶이고 미신에 노예가 되며, 궤변의 속임수와 거짓 철학의 망상에 지배된다.
2001 CM 102:2.1 주의 깊은 정신과 식별력 있는 혼은, 동료의 삶에서 종교를 발견할 때 그 종교를 알아본다. 종교는 정의{定義}할 필요가 없으며;우리는 모두 종교의 사회적, 지적, 도덕적, 및 영적 열매를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종교가 인간 종족의 자산{資産}이라는 사실에서 자라나며;종교는 문화의 소산이 아니다. 정말로, 사람이 종교를 인지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다우며, 따라서 무지에 속박되거나, 미신에 노예가 되거나, 궤변에 속거나, 잘못된 철학에 미혹되기 쉽다.
2007 URKA 102:2.1 관찰력이 예민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과 식별력 있는 혼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동료들의 삶 속에서 종교를 발견할 때 그것을 알게 된다. 종교는 어떤 정의(定義)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그것의 사회적, 지적, 도덕적, 영적 열매들을 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종교가 인간 종족의 자산이라는 사실로부터 자라나며; 그것은 문화의 소산이 아니다. 정말로, 종교에 대한 어떤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인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무지의 속박, 미신의 포로, 억지 이론의 속임, 그리고 잘못된 철학의 환상에 종속된다.
2025 102:2.1 관찰하는 지성인과 분별하는 사람들은 동료들의 생활에서 종교를 발견할 때 그 종교를 알아본다. 종교는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 종교의 사회적ㆍ지적ㆍ도덕적ㆍ영적 열매를 알아본다. 이것은 모두, 종교가 인류의 재산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종교는 문화의 소산이 아니다. 사람이 종교를 인식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답고, 따라서 무지의 사슬에 묶이고 미신에 노예가 되며, 궤변의 속임수와 거짓 철학의 망상에 지배된다.
1955 102:2.2 One of the characteristic peculiarities of genuine religious assurance is that, notwithstanding the absoluteness of its affirmations and the stanchness of its attitude, the spirit of its expression is so poised and tempered that it never conveys the slightest impression of self-assertion or egoistic exaltation. The wisdom of religious experience is something of a paradox in that it is both humanly original and Adjuster derivative. Religious force is not the product of the individual’s personal prerogatives but rather the outworking of that sublime partnership of man and the everlasting source of all wisdom. Thus do the words and acts of true and undefiled religion become compellingly authoritative for all enlightened mortals.
2000 102:2.2 진정한 종교적 확신을 보여주는 특징 중에 하나는, 그 주장이 절대적이고 태도가 굳건한데도, 확신을 표현하는 정신이 무척 차분하고 부드러워서, 결코 자기 주장이나 자기 본위의 찬미라는 인상을 한 푼도 전하지 않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에서 얻은 지혜는 인간적으로 특유하고 조절자에서 파생되니까 어딘가 역설(逆說)이다. 종교적 힘은 개인의 사사로운 특권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그리고 모든 지혜의 영구한 근원의 그 숭고한 협동 관계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참되고 더러워지지 않은 종교에서 나오는 말씀과 행위는 모든 깨우친 필사자에게 강력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2001 CM 102:2.2 진심에서 우러난 종교적 확신의 독특한 특색 가운데 하나는, 그 주장의 절대성과 그 태도의 완고함에도, 그것이 표현하는 정신이 너무나 침착하고 조절되어서, 자기를-주장하거나 자기본위적으로 찬미한다는 인상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교 체험에서 얻는 지혜는, 인간적으로 독창적인 동시에 섭리사의 유도를 받는다는 면에서,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효력은, 사사로운 개인 특권의 산물{産物}이라기보다 오히려 모든 지혜의 영구한 근원과 사람의 숭고한 동반자 관계가 맺는 결실이다. 그래서 참되고 순수한 종교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모든 계몽된 필사자에게 어쩔 수 없이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2007 URKA 102:2.2 참된 종교적 확신의 특유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확언하는 바의 절대성과 그것의 태도의 억제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영이 너무나도 침착하고 조절되어서 자아-주장 또는 자기본위적인 도취라는 인상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체험의 지혜는 그것이 인간적으로 기원되는 동시에 조절자의 유도를 받는다는 면에서 역설적인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인 효력은 개별존재의 개인적 특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지혜의 영속하는 근원과 사람의 숭고한 동반자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참되고 순수한 종교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모든 깨우친 필사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명령적인 것이 된다.
2025 102:2.2 진정한 종교적 확신을 보여주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 주장이 절대적이고 태도가 굳건한데도, 확신을 표현하는 정신이 무척 차분하고 부드러워서, 결코 자기 주장이나 자기 본위의 찬미라는 인상을 한 푼도 전하지 않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에서 얻은 지혜는 인간적으로 특유하고 조절자에서 파생되니까 어딘가 역설(逆說)이다. 종교적 힘은 개인의 사사로운 특권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그리고 모든 지혜의 영구한 근원, 이 둘의 숭고한 협동 관계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참되고 더러워지지 않은 종교에서 나오는 말씀과 행위는 모든 깨우친 필사자에게 강력한 권위를 가지게 된다.
1955 102:2.3 It is difficult to identify and analyze the factors of a religious experience, but it is not difficult to observe that such religious practitioners live and carry on as if already in the presence of the Eternal. Believers react to this temporal life as if immortality already were within their grasp. In the lives of such mortals there is a valid originality and a spontaneity of expression that forever segregate them from those of their fellows who have imbibed only the wisdom of the world. Religionists seem to live in effective emancipation from harrying haste and the painful stress of the vicissitudes inherent in the temporal currents of time; they exhibit a stabilization of personality and a tranquillity of character not explained by the laws of physiology, psychology, and sociology.
2000 102:2.3 종교적 체험의 요인을 규명하고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종교를 실천하는 자가 마치 영원자가 계신 앞에 이미 있는 것처럼 살고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을 지켜보기는 어렵지 않다. 믿는 사람은 마치 불멸을 자기 손아귀에 이미 쥐고 있는 것처럼 이 현세의 생활에 반응한다. 그러한 필사자의 생활에는, 세상의 지혜만 흡수한 동료들의 생활과 그들을 영원히 구분할 타당한 독창성과 꾸밈없는 표현이 있다. 신자들은 현세의 풍조에 본래 있는 흥망으로 인하여 서두르는 고달픔과 고통스러운 압박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생리학ㆍ심리학ㆍ사회학의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안정된 인격과 차분한 인품을 나타낸다.
2001 CM 102:2.3 종교 체험을 확인하고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마치 이미 영원자의 면전에 있는 것처럼 계속 살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 믿는 사람은, 마치 불멸성이 이미 자신의 소유라도 된 듯이 이 현세의 삶에 반응한다. 그런 필사자들의 생활에는, 오직 세상의 지혜만 흡수해온 동료들의 생활로부터 저희를 영원히 구분시키는, 정당한 창의력과 자발적 표현이 있다. 종교인은, 현세의 풍조에 내재하는 흥망으로 인해 서두르는, 고달픔과 고통스런 압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서 사는 듯이 보이며;생리학이나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안정된 인간성과 평안한 성품을 나타낸다.
2007 URKA 102:2.3 종교적 체험의 요소들을 정체화하고 분석하는 일은 어렵지만, 그러나 그러한 종교적 실천관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이미 영원한 자의 현존 안에 있는 것처럼 살면서 할 일을 꾸준히 해 나아가는 것은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자들은 마치 불멸성이 이미 그들의 장악에 들어있는 것처럼, 이 일시적 삶에 반응한다. 그러한 필사자들의 삶 안에는, 오직 세상의 지혜만을 빨아들여 온 그들 동료들의 삶으로부터 자신들을 언제까지나 분리하는 그러한 어떤 타당한 기원성과 그리고 표현에서의 자연발생성이 있다. 종교인들은 시간의 일시적인 흐름 안에 선천적으로 있는, 변천들의 서두르는 조급함과 고통-가득한 스트레스로부터 효과적으로 해방을 이루어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생리학과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의 법칙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인성의 안정과 성격의 평온함을 전시한다.
2025 102:2.3 종교적 체험의 요인을 규명하고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그러한 종교를 실천하는 자가 마치 영원자가 계신 앞에 이미 있는 것처럼 살고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을 지켜보기는 어렵지 않다. 믿는 사람은 마치 불멸을 자기 손아귀에 이미 쥐고 있는 것처럼 이 현세의 생활에 반응한다. 그러한 필사자의 생활에는, 세상의 지혜만 흡수한 동료들의 생활과 그들을 영원히 구분할 타당한 독창성과 꾸밈없는 표현이 있다. 신자들은 현세의 풍조에 본래 있는 흥망으로 인하여 서두르는 고달픔과 고통스러운 압박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생리학ㆍ심리학ㆍ사회학의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안정된 인격과 차분한 인품을 나타낸다.
1955 102:2.4 Time is an invariable element in the attainment of knowledge; religion makes its endowments immediately available, albeit there is the important factor of growth in grace, definite advancement in all phases of religious experience. Knowledge is an eternal quest; always are you learning, but never are you able to arrive at the full knowledge of absolute truth. In knowledge alone there can never be absolute certainty, only increasing probability of approximation; but the religious soul of spiritual illumination knows, and knows now. And yet this profound and positive certitude does not lead such a sound-minded religionist to take any less interest in the ups and downs of the progress of human wisdom, which is bound up on its material end with the developments of slow-moving science.
2000 102:2.4 시간은 지식을 얻는 데 변치 않는 요소이다. 은총 속에 성장하는 요인, 곧 종교적 체험의 모든 단계에서 분명히 진보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지만, 종교는 그 재산을 즉시 소용되게 만든다. 지식은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배우고 있지만, 결코 절대 진리를 완전히 아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다. 지식만 가지고는 결코 절대로 확실한 것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어림하는 확률이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영적 빛을 받은 종교적인 사람은 알고, 지금 안다. 그래도 깊고 분명한 이 확신은 그러한 건전한 머리를 가진 신자로 하여금 인간의 지혜의 진보에서 생기는 기복(起伏)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덜 느끼도록 만들지 않으며, 인간의 지혜는 그 지혜의 물질적 밑바닥에 천천히 움직이는 과학의 발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2001 CM 102:2.4 시간은 지식을 얻는 데 불변의 요소이며;은혜 속에서 성장하는 요소, 즉 종교 체험의 모든 국면에서 분명히 발전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음에도, 종교는 그 재능을 즉시 쓸모 있게 만든다. 지식은 영원한 탐구이며;너희가 항상 배우고 있더라도, 절대 진리를 충분히 아는 데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지식만으로는 절대 확실성이 있을 수 없고, 오직 근사치의 가능성이 증가될 뿐이지만;영적 조명을 받는 종교적 혼은 아는데, 지금 안다. 그럼에도 이 심원하고 긍정적인 확신은, 느리게-움직이는 과학의 발달과 물질적 한계에 밀접하게 관련된 인간 지혜의 진보로 인해 생기는 기복{起伏}에, 그런 건전한-정신을 지닌 종교인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관심을 덜 갖도록 이끌지 않는다.
2007 URKA 102:2.4 시간은 지식의 달성에서 변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은혜 가운데에 성장하는 중요한 요인들도 있긴 하지만, 종교는 그러한 수여자질들이 종교적 체험의 모든 위상 안에서 명백한 전진에 즉시 쓰여 지도록 만든다. 지식이란 영원한 탐구이다; 너희는 항상 배우고 있지만, 너희는 결코 절대 진리에 대한 충만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지식 자체 속에는 절대적 확실성이 결코 있을 수 없다, 오직 어림잡음의 가능성이 증가될 뿐이다; 그러나 영적 빛을 받은 종교적 혼은 알고 있으며, 바로 지금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심오하고 적극적인 확신성은, 그러한 건전한-마음을 지닌 종교인으로 하여금, 느리게-움직이는 과학의 발전에 그 물질적 끝이 있는 처지에 묶인, 인간 지혜의 진보에서 생기는 상승과 하강 안에서, 흥미를 잃는 그 어떤 것이 일어나도록 인도하지도 않는다.
2025 102:2.4 시간은 지식을 얻는 데 변치 않는 요소이다. 은총 속에 성장하는 요인, 곧 종교적 체험의 모든 단계에서 분명히 진보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지만, 종교는 그 재산을 즉시 소용되게 만든다. 지식은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다[5]. 너희는 항상 배우고 있지만, 결코 절대 진실을 완전히 아는 데까지 도달할 수 없다. 지식만 가지고는 결코 절대로 확실한 것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어림하는 확률이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영적 빛을 받은 종교적인 사람은 알고, 지금 안다. 그래도 깊고 분명한 이 확신은 그러한 건전한 머리를 가진 신자로 하여금 인간의 지혜의 진보에서 생기는 기복(起伏)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덜 느끼도록 만들지 않으며, 인간의 지혜는 그 지혜의 물질적 밑바닥에 천천히 움직이는 과학의 발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1955 102:2.5 Even the discoveries of science are not truly real in the consciousness of human experience until they are unraveled and correlated, until their relevant facts actually become meaning through encircuitment in the thought streams of mind. Mortal man views even his physical environment from the mind level, from the perspective of its psychological registry. It is not, therefore, strange that man should place a highly unified interpretation upon the universe and then seek to identify this energy unity of his science with the spirit unity of his religious experience. Mind is unity; mortal consciousness lives on the mind level and perceives the universal realities through the eyes of the mind endowment. The mind perspective will not yield the existential unity of the source of reality, the First Source and Center, but it can and sometime will portray to man the experiential synthesis of energy, mind, and spirit in and as the Supreme Being. But mind can never succeed in this unification of the diversity of reality unless such mind is firmly aware of material things, intellectual meanings, and spiritual values; only in the harmony of the triunity of functional reality is there unity, and only in unity is there the personality satisfaction of the realization of cosmic constancy and consistency.
2000 102:2.5 과학에서 얻는 발견조차, 발견한 것들을 파헤치고 서로 관계지을 때까지, 머리 속 생각의 흐름 속에 순회함으로 당면한 여러 사실이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이 될 때까지, 인간이 체험하는 의식 속에서 참으로 현실은 아니다. 필사 인간은 그의 물리적 환경조차 지성 수준에서, 지성이 심리적으로 기록한 견지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사람이 우주에 대하여 상당히 통일된 해석을 내리고, 다음에 과학에서 이 에너지의 통일을 그의 종교적 체험에서 영의 통일과 동일시하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성은 통일되어 있다. 필사자의 의식은 지성 수준에서 살고, 부여받은 지성의 눈을 통해서 우주의 실체들을 파악한다. 지성의 견지(見地)는 실체의 근원인 첫째 근원 중심의 실존적 통일성을 낳지 못하겠지만, 에너지ㆍ지성ㆍ영이 최상 존재 안에서, 또 최상 존재로서, 체험으로 통합됨을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성이 물질적 사물, 지적 의미를 가진 것, 영적 가치 기준을 단단히 알고 있지 않으면, 지성은 실체의 다양성을 이렇게 통일하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직 세 가지 기능적 실체가 하나로 조화되어 통일이 있으며, 오직 통일된 가운데 우주의 불변성과 일관성을 깨닫는 인격자가 만족한다.
2001 CM 102:2.5 심지어 과학이 발견한 것들조차, 그것들을 해명하고 상호 연결하기 전에는, 즉 정신의 사고{思考} 흐름 속에서 순환함으로써, 연관된 여러 사실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전에는, 인간이 체험하는 의식 속에서 정말로 실제적이지 않다. 필사적 사람은 자신의 물리적 환경조차, 정신 수준에서 곧 정신이 심리적으로 기록한 견지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사람이 우주에 대해 매우 통합된 해석을 내리고, 그다음에는 과학에서 이 에너지의 통일을 자신의 종교 체험에서 영{靈} 통일과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신은 통일돼있으며;필사자의 의식은 정신 수준에서 존속하고 정신 자질의 눈을 통하여 우주 실체를 감지한다. 정신의 전망은, 실체의 근원인 제1 근원 및 중심의 실존적 통일을 초래하지 못하겠으나, 에너지와 정신과 영이 지존하신 분 안에서, 그리고 지존하신 분으로서, 체험으로 통합됨을 사람에게 묘사할 수 있고,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사물과 지적 의미와 영적 가치기준을 그런 정신이 확고하게 자각하지 못하면, 정신은 실체의 다양성을 이렇게 통합하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오직 기능적 실체의 삼자일체가 조화될 때에만 통일이 있고, 통일된 가운데서만 시공우주 불변성과 일관성을 깨닫는 인격체가 만족한다.
2007 URKA 102:2.5 심지어는 과학이 발견하는 것들조차도 그것들이 해명되고 상호 관계성을 가지기 전에는, 그 관련 사실들이 마음의 생각 흐름 안에서의 순회를 통하여 실재적으로 의미가 되기 전에는 인간 체험의 의식 안에서 진정으로 실재가 아니다. 필사 사람은 자신의 물리적 환경조차 마음 차원에서, 곧 그것의 정신 심리적 기록부에서의 전망으로부터 바라본다. 그러므로 사람이 우주에 관해 고도로 통합된 해석을 하려고 하고 그런 다음 이러한 자신의 과학적 에너지 합일체를 자신의 종교적 체험에서의 영적 합일체와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음은 합일체이다; 필사자의 의식은 마음 차원에서 존재하며 마음 자질의 눈을 통하여 우주적 실체들을 지각한다. 마음 투시도가 실체의 근원인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실존적 합일을 산출하지 않지만, 최극존재로서 그리고 그 안에서 에너지와 마음과 영의 체험적 합성을 사람에게 묘사할 수 있고 또 가끔 그렇게 한다. 그러나 마음은 만일 그러한 마음이 물질적 사물, 지능적 의미, 그리고 영적 가치들을 확고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실체의 다양성에서의 이 통일을 결코 이룩하지 못한다; 오직 기능적 실체의 삼원일체(三元一體)의 조화 속에서만 합일체가 있으며, 오직 합일체 속에서만 조화우주 불변성과 일관성의 실현에서의 개인성 만족이 있다.
2025 102:2.5 과학에서 얻는 발견조차, 발견한 것들을 파헤치고 서로 관계를 지을 때까지, 머리 속 생각의 흐름 속에 순회함으로 당면한 여러 사실이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이 될 때까지, 인간이 체험하는 의식 속에서 참으로 현실은 아니다. 필사 인간은 그의 물리적 환경조차 지성 수준에서, 지성이 심리적으로 기록한 견지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사람이 우주에 대하여 상당히 통일된 해석을 내리고, 다음에 과학에서 이 에너지의 통일을 그의 종교적 체험에서 영의 통일과 동일시하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성은 통일되어 있다. 필사자의 의식은 지성 수준에서 살고, 부여된 지성의 눈을 통해서 우주의 실체들을 파악한다. 지성의 견지(見地)는 실체의 근원인 첫째 근원 중심의 실존적 통일성을 낳지 못하겠지만, 에너지ㆍ지성ㆍ영이 최상 존재 안에서, 또 최상 존재로서, 체험으로 통합됨을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고,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성이 물질적 사물, 지적 의미를 가진 것, 영적 가치 기준을 단단히 알고 있지 않으면, 지성은 결코 실체의 다양성을 이렇게 통일하는 데 성공할 수 없다. 오직 세 가지 기능적 실체가 하나로 조화되어 통일이 있으며, 오직 통일된 가운데 우주의 불변성과 일관성을 깨닫는 인격자가 만족한다.
1955 102:2.6 Unity is best found in human experience through philosophy. And while the body of philosophic thought must ever be founded on material facts, the soul and energy of true philosophic dynamics is mortal spiritual insight.
2000 102:2.6 통일성은 인간의 체험에서 철학을 통해서 가장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철학적 사고(思考) 전체가 늘 물질적 사실 위에 기초를 두어야 하지만, 참된 철학적 활력의 혼이자 에너지는 필사자의 영적 통찰력이다.
2001 CM 102:2.6 통일성은 인간의 체험에서 철학을 통하여 가장 잘 발견된다. 그리고 철학 사고의 본론은 반드시 물질적 사실에 기초해야하지만, 참된 철학적 원동력{原動力}의 혼과 에너지는 필사자의 영적 통찰력이다.
2007 URKA 102:2.6 합일체는 인간 체험 속에서 철학을 통하여 가장 잘 발견된다. 그리고 철학적 생각의 본체가 반드시 물질적인 사실들 위에 항상 기초를 두는 반면, 참된 철학적 원동력의 혼과 에너지는 필사자의 영적 통찰력이다.
2025 102:2.6 통일성은 인간의 체험에서 철학을 통해서 가장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철학적 사고(思考) 전체가 늘 물질적 사실에 기초를 두어야 하지만, 참된 철학적 활력의 혼이자 에너지는 필사자의 영적 통찰력이다.
1955 102:2.7 Evolutionary man does not naturally relish hard work. To keep pace in his life experience with the impelling demands and the compelling urges of a growing religious experience means incessant activity in spiritual growth, intellectual expansion, factual enlargement, and social service. There is no real religion apart from a highly active personality. Therefore do the more indolent of men often seek to escape the rigors of truly religious activities by a species of ingenious self-deception through resorting to a retreat to the false shelter of stereotyped religious doctrines and dogmas. But true religion is alive. Intellectual crystallization of religious concepts is the equivalent of spiritual death. You cannot conceive of religion without ideas, but when religion once becomes reduced only to an idea, it is no longer religion; it has become merely a species of human philosophy.
2000 102:2.7 진화된 인간은 자연히 힘든 일을 즐기지 않는다. 그의 생활 체험에서, 성장하는 종교적 체험의 강제적 요구 및 강력한 충동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은 영적 성장, 지적 확장, 사실의 확대, 사회 봉사(奉仕) 면에서 끊임없이 활동함을 뜻한다. 상당히 활발한 인격과 따로 아무런 참된 종교가 없다. 따라서 사람들 중에서 게으른 축에 속하는 자는, 판에 박힌 종교의 교리와 신조가 마련하는 가짜 피난처로 물러감으로, 일종의 교묘한 자기 속임수로, 참된 종교 활동의 단련을 피하려고 흔히 애쓴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 있다. 종교적 개념을 지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영적 죽음과 마찬가지다. 너희는 믿는 관념이 없는 종교를 생각할 수 없지만, 일단 종교가 겨우 하나의 관념으로 격하되면, 이제 더 종교가 아니다. 종교가 단지 일종의 인간 철학이 된 것이다.
2001 CM 102:2.7 진화적인 사람은 힘든 일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생애 체험에서, 증대되는 종교 체험의 강제적 충동과 밀려오는 요구에 대해 보조를 맞추는 것은, 영적 성장, 지적 확장, 사실에 입각한 확대, 그리고 사회 봉사에서 끊임없이 활동함을 의미한다. 매우 활동적인 인물과 상관없는 진정한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교적 나태한 사람은, 정형화된 종교 교리와 교의가 마련하는 가짜 피난처로 피신함으로써, 일종의 교묘한 자아-기만으로, 참된 종교 활동의 엄격함에서 벗어나려고 종종 애쓴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있다. 종교 개념을 지적 형태로 굳어지게 하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너희는 관념 없는 종교를 생각할 수 없지만, 일단 종교가 오직 하나의 관념으로 축소되면, 이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며;그저 일종의 인간 철학이 된 것이다.
2007 URKA 102:2.7 진화적인 사람은 원래 어려운 일을 좋아하지 않도록 태어났다. 증대되는 종교적 체험의 강제적인 충동들과 밀려오는 요구들에 대하여 삶의 체험 속에서 보조를 맞추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적 성장과 지적 확대, 사실적 확장, 그리고 사회적 봉사 안에서의 끊임없는 활동이다. 매우 활동적인 개인성과 상관이 없는 실제적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태한 사람들은 진부한 종교적 신조들과 독단들의 거짓된 피난처로 은거하는 휴양을 통하여 일종의 교묘한 자아-기만 형식으로, 참다운 종교적 활동에서의 엄중함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찾아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있다. 종교적 개념들의 지적 결정화(結晶化)는 영적 죽음과 마찬가지다. 너희가 관념이 없는 종교를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종교가 일단 오직 하나의 관념으로 축소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일종의 인간 철학이 되었을 뿐이다.
2025 102:2.7 진화된 인간은 자연히 힘든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의 생활 체험에서, 성장하는 종교적 체험의 강제적 요구 및 강력한 충동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은 영적 성장, 지적 확장, 사실의 확대, 사회 봉사(奉仕) 면에서 끊임없이 활동함을 뜻한다. 상당히 활발한 인격과 따로 아무런 참된 종교가 없다. 따라서 사람들 중에서 게으른 축에 속하는 자는, 판에 박힌 종교의 교리와 신조가 마련하는 거짓 피난처로 물러감으로, 일종의 교묘한 자기 속임수로, 참된 종교 활동의 단련을 피하려고 흔히 애쓴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 있다. 종교적 개념을 지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영적 죽음과 마찬가지다. 너희는 관념이 없는 종교를 생각할 수 없지만, 종교가 겨우 하나의 관념으로 일단 격하되면, 이제 더 종교가 아니다. 종교가 단지 일종의 인간 철학이 된 것이다.
1955 102:2.8 Again, there are other types of unstable and poorly disciplined souls who would use the sentimental ideas of religion as an avenue of escape from the irritating demands of living. When certain vacillating and timid mortals attempt to escape from the incessant pressure of evolutionary life, religion, as they conceive it, seems to present the nearest refuge, the best avenue of escape. But it is the mission of religion to prepare man for bravely, even heroically, facing the vicissitudes of life. Religion is evolutionary man’s supreme endowment, the one thing which enables him to carry on and “endure as seeing Him who is invisible.” Mysticism, however, is often something of a retreat from life which is embraced by those humans who do not relish the more robust activities of living a religious life in the open arenas of human society and commerce. True religion must act. Conduct will be the result of religion when man actually has it, or rather when religion is permitted truly to possess the man. Never will religion be content with mere thinking or unacting feeling.
2000 102:2.8 또한 불안정하고 잘 훈련받지 못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인생의 짜증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길로서 종교의 감상적 관념을 이용하고 싶어한다. 마음이 오락가락 흔들리고 겁이 많은 어떤 필사자들이 진화적 인생의 끊임없는 압박을 벗어나려고 할 때, 그들이 이해하는 종교는 가장 가까운 피난처, 가장 좋은 도망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용감하게, 아니 영웅답기까지, 인생의 풍파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종교는 진화된 인간의 최고 재산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꾸준히 버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듯 계속하게” 만드는 한 가지이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흔히 생활에서 물러나는 것과 같으며, 인간 사회와 상업이 펼쳐지는 확 트인 경기장에서 종교적 인생을 사는 더 벅찬 활동을 즐기지 않는 인간이 그런 후퇴를 받아들인다. 참된 종교는 행동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종교를 가졌을 때, 아니면 그보다도 종교가 사람을 참으로 지배하도록 버려둘 때, 행동은 종교의 결과가 될 것이다. 종교는 단지 생각만 하거나, 실행이 없이 느낌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2001 CM 102:2.8 그 밖에, 불안정하고 거의 훈련되지 않은 다른 유형의 혼들이 있는데, 이들은 삶의 짜증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길로서 종교의 감상적 관념을 이용하려고 한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어떤 필사자들이, 진화적 삶의 끊임없는 압박에서 피하려고 시도할 때, 이들이 이해하는 종교는 가장 가까운 피난처, 즉 탈출하기에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종교의 사명은, 사람이 용감하게 그리고 심지어 영웅적으로 삶의 변천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종교는 진화적인 사람의 최상의 재능인데,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듯이 인내하고” 계속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아무튼 신비주의는 종종, 인간 사회 및 교류라는 열린 운동장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더 벅찬 활동을 즐기지 못하는 인간들이 환영하는, 삶의 도피 같은 것이다. 참된 종교는 반드시 행한다. 사람이 실제로 종교를 가졌을 때, 또는 오히려 종교가 그 사람을 정말로 지배하도록 허용됐을 때, 행위는 종교의 결과가 될 것이다. 종교는, 단지 생각만 하거나 행함 없이 느끼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2007 URKA 102:2.8 다시 말하지만, 삶의 짜증나는 요구들로부터 탈출하는 하나의 큰길로 종교의 정서적인 관념들을 이용하려는 불안정하고 거의 단련 되지 않은 혼들의 다른 유형들이 존재한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어떤 필사자들이 진화적인 삶의 끊임없는 압박으로부터 피하려고 시도할 때, 종교는 그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피난처, 가장 좋은 탈출 큰길을 제시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용감하게 그리고 심지어는 영웅적으로 삶의 변천에 대처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종교는 진화적인 사람이 천부적으로 가진 최극의 자질인데, 그로 하여금 “보이지 아니하시는 그 분을 보는 것처럼 인내하고” 계속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아무튼, 신비주의적 신앙은, 인간적 사회와 교제라는 열린 경기장 안에서 종교적 삶을 사는 보다 더 강건한 활동들을 즐기지 않는 그 인간들이 영위하는 삶으로부터 도피한 어떤 것인 경우가 종종 있다. 참된 종교는 반드시 행한다. 사람이 실재적으로 종교를 가질 때, 또는 오히려 종교가 그 사람을 지배하도록 정말로 허용되었을 때, 행위는 그것의 결과가 될 것이다. 종교는 단순한 사고(思考) 또는 행함이 없는 느낌에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2025 102:2.8 또한 불안정하고 잘 훈련받지 못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인생의 짜증나는 책임을 회피하는 길로서 종교의 감상적 관념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 마음이 오락가락 흔들리고 겁이 많은 어떤 필사자들이 진화적 인생의 끊임없는 압박을 벗어나려고 할 때, 그들이 이해하는 종교는 가장 가까운 피난처, 가장 좋은 도망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용감하게, 아니 영웅다운 지경까지, 인생의 풍파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종교는 진화된 인간의 최고 재산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꾸준히 버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듯 계속하게” 만드는 한 가지이다[6]. 그러나 신비주의는 흔히 생활에서 물러나는 것과 같으며, 인간 사회와 상업이 펼쳐지는 확 트인 경기장에서 종교적 인생을 사는 더 벅찬 활동을 즐기지 않는 인간이 그런 후퇴를 받아들인다. 참된 종교는 행동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종교를 가졌을 때, 아니면 그보다도 종교가 사람을 참으로 지배하도록 버려 둘 때, 행동은 종교의 결과가 될 것이다. 종교는 단지 생각만 하거나, 실행함이 없이 느낌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1955 102:2.9 We are not blind to the fact that religion often acts unwisely, even irreligiously, but it acts. Aberrations of religious conviction have led to bloody persecutions, but always and ever religion does something; it is dynamic!
2000 102:2.9 종교가 흔히 지혜롭지 못하게, 아니 때때로 종교답지 않게 행동하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지 않지만, 종교는 행동한다. 빗나간 종교적 확신이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낳았지만, 언제나, 늘 종교는 무엇인가 행한다. 종교는 힘차다!
2001 CM 102:2.9 종교가 때로는 어리석게 그리고 심지어 비종교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종교는 적어도 행한다. 빗나간 종교적 신념은 피로 얼룩진 박해를 가져오지만, 반드시, 종교는 무언가 행하며;역동적이다!
2007 URKA 102:2.9 우리는 종교가 때로 어리석게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행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도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적어도 행한다. 종교적인 신념의 탈선은 피로 얼룩진 박해를 가져오지만, 종교는 항상 그리고 무언가를 한다; 그것은 역동적이다!
2025 102:2.9 종교가 흔히 지혜롭지 못하게, 아니 때때로 종교답지 않게 행동하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지 않지만, 종교는 행동한다. 빗나간 종교적 확신이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낳았지만, 반드시, 늘 종교는 무엇인가 행한다. 종교는 활동적이다!
3. KNOWLEDGE, WISDOM, AND INSIGHT
3. 지식과 지혜와 통찰력
3. 지식, 지혜, 및 통찰력
3. 지식, 지혜, 그리고 통찰력
3. 지식과 지혜와 통찰력
1955 102:3.1 Intellectual deficiency or educational poverty unavoidably handicaps higher religious attainment because such an impoverished environment of the spiritual nature robs religion of its chief channel of philosophic contact with the world of scientific knowledge. The intellectual factors of religion are important, but their overdevelopment is likewise sometimes very handicapping and embarrassing. Religion must continually labor under a paradoxical necessity: the necessity of making effective use of thought while at the same time discounting the spiritual serviceableness of all thinking.
2000 102:3.1 지능의 부족이나 교육의 빈곤은 어김없이 상급의 종교적 달성을 불리하게 만든다. 이것은 영적으로 부족한 환경이 종교가 과학 지식의 세계와 철학적으로 접촉하는 주요 경로를 종교로부터 빼앗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지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이 요소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마찬가지로, 때때로 무척 장애가 되고 곤란해진다. 종교는 다음의 역설적 필요 밑에서 줄곧 수고해야 한다: 즉 모든 생각의 영적 효용을 경시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효과 있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
2001 CM 102:3.1 지능의 부족이나 교육의 결핍은 더 높은 종교적 달성을 불가피하게 방해하는데, 이는 영적 본성이 힘을 빼앗긴 그런 환경이, 종교가 과학 지식의 세계와 철학적으로 접촉하는 주요 경로를 종교로부터 강탈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지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이 요소가 과도하게 발달하면, 마찬가지로 종종 심하게 방해가 되고 곤란해진다. 종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역설적 필요 아래서 계속 수고해야하는데:즉 모든 사고의 영적 실용성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사고{思考}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7 URKA 102:3.1 지식의 부족이나 교육의 결핍은 보다 높은 종교적 달성을 불가피하게 장애가 되는데 왜냐하면 영적 본성에서의 그러한 허약한 환경은 과학적 지식의 세계와 철학적으로 접하는 주요 통로를 종교로부터 빼앗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에서의 지적 요소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들의 과도한 발달은 심하게 장애가 되고 곤란하다. 종교는 반드시 역설적인 필요성 밑에서 계속적으로 수고하여야만 한다: 그것은 곧 생각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필요성과 한편으로는 그와 동시에 모든 사고의 영적인 봉사가능성을 깎아내리는 필요성이다.
2025 102:3.1 지능의 부족이나 교육의 빈곤은 어김없이 상급의 종교적 달성을 불리하게 만든다. 이것은 영적으로 부족한 환경이 종교가 과학 지식의 세계와 철학적으로 접촉하는 주요 경로를 종교로부터 빼앗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지적 요소가 중요하지만 이 요소의 지나친 발달은 마찬가지로, 때때로 무척 장애가 되고 난처한 상황이 된다. 종교는 다음의 역설적 필요 밑에서 줄곧 수고해야 한다: 즉 모든 생각의 영적 효용을 경시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효과 있게 이용할 필요가 있다.
1955 102:3.2 Religious speculation is inevitable but always detrimental; speculation invariably falsifies its object. Speculation tends to translate religion into something material or humanistic, and thus, while directly interfering with the clarity of logical thought, it indirectly causes religion to appear as a function of the temporal world, the very world with which it should everlastingly stand in contrast. Therefore will religion always be characterized by paradoxes, the paradoxes resulting from the absence of the experiential connection between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levels of the universe—morontia mota, the superphilosophic sensitivity for truth discernment and unity perception.
2000 102:3.2 종교적 억측은[1] 피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해롭다. 억측은 어김없이 그 대상을 변조한다. 억측은 종교를 무언가 물질이거나 인본주의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논리적 사고를 맑게 하지 못하도록 직접 방해하는 한편, 간접으로 종교가 현세의 기능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종교는 바로 그 세상과 영원히 대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는 반드시 역설(逆說)의 특징을 가질 터이고, 이 역설은 우주의 물질 수준과 영 수준 사이에 체험적 연결―상물질계의 상지혜(上知慧), 즉 진리를 헤아리고 통일을 파악하는, 철학을 뛰어넘는 민감성―이 없어서 생겨난다.
2001 CM 102:3.2 종교적 추론{推論}은 필연이지만 항상 해로우며;추론은 변함없이 그 대상을 왜곡한다. 추론은 종교를 물질적이거나 인본주의적인 어떤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리하여 논리적 사고의 명료성을 직접 방해하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종교가 현세의 기능인 것처럼 나타나게 만드는데, 종교는 바로 그 세상과 영구히 대조를 이뤄야한다. 따라서 역설이 종교의 특징일 수밖에 없는데, 이 역설은 우주의 물질적 수준과 영적 수준사이에 체험적 연결이 없음--곧 모론시아 모타, 즉 진리를 분별하고 통일을 감지하는, 철학을 뛰어넘는 민감성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된다.
2007 URKA 102:3.2 종교적인 사색은 필연적이기는 하지만 항상 해로우며; 사색은 변함없이 그것의 대상을 왜곡한다. 사색은 물질적이거나 또는 인본주의적인 어떤 것으로 종교를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그리하여 논리적인 생각의 명료성을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반면, 간접적으로는 종교가 현세적인 세계, 그것이 영속적으로 대조를 이루어야만 할 바로 그 세상에서의 하나의 기능인 것처럼 나타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항상 역설적인 특성을 갖게 될 것인데, 그 역설은 우주의 물질적 차원과 영적 차원─모론시아 모타, 진리 식별과 합일체 인식을 위한 초이성적 감수성─사이의 체험적 연결이 결핍됨으로 인하여 발생된다.
2025 102:3.2 종교적 억측은[129] 피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해롭다. 억측은 어김없이 그 대상을 변조한다. 억측은 종교를 무언가 물질이거나 인본주의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논리적 사고를 맑게 하지 못하도록 직접 방해하는 한편, 간접으로 종교가 현세의 기능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종교는 바로 그 세상과 영원히 대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는 반드시 역설(逆說)의 특징을 가질 터이고, 이 역설은 우주의 물질 수준과 영 수준 사이에 체험적 연결 ― 상물질계의 상지혜(上知慧), 즉 진실을 헤아리고 통일을 파악하는, 철학을 뛰어넘는 민감성 ― 이 없어서 생겨난다.
1955 102:3.3 Material feelings, human emotions, lead directly to material actions, selfish acts. Religious insights, spiritual motivations, lead directly to religious actions, unselfish acts of social service and altruistic benevolence.
2000 102:3.3 물질적 느낌, 인간의 감정은 물질적 행동, 이기적 행위로 바로 이끈다. 종교적 통찰력, 영적 동기는 종교 활동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이타심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심 없는 행위로 바로 이끈다.
2001 CM 102:3.3 물질적 느낌 곧 인간 감정이, 물질적 행위 곧 이기적 행동으로 직접 이끈다. 종교적 통찰력 곧 영적 동기가, 종교 활동 곧 사회 봉사와 이타적 선행이라는 사심 없는 행동으로 직접 이끈다.
2007 URKA 102:3.3 물질적인 느낌, 인간 감정은 물질적인 행동, 이기적 행동에 직접적으로 이끈다. 종교적인 통찰력, 영적 동기는 종교적인 행동, 사회적 봉사의 사심-없는 행동 그리고 이타적 박애심에 직접적으로 이끈다.
2025 102:3.3 물질적 느낌, 인간의 감정은 물질적 행동, 이기적 행위로 바로 이끈다. 종교적 통찰력, 영적 동기는 종교 활동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이타심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심 없는 행위로 바로 이끈다.
1955 102:3.4 Religious desire is the hunger quest for divine reality. Religious experience is the realization of the consciousness of having found God. And when a human being does find God, there is experienced within the soul of that being such an indescribable restlessness of triumph in discovery that he is impelled to seek loving service-contact with his less illuminated fellows, not to disclose that he has found God, but rather to allow the overflow of the welling-up of eternal goodness within his own soul to refresh and ennoble his fellows. Real religion leads to increased social service.
2000 102:3.4 종교적 소망은 신다운 실체를 갈급하게 찾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은 하나님을 찾아냈다는 의식을 깨닫는 것이다. 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낼 때, 그 존재의 혼 속에서, 발견하고서 말할 수 없는 승리에 들뜬 상태를 체험하고, 그래서 그는 그보다 깨달음이 적은 동료들에게 사랑에 넘친 봉사로 그들과 접촉하도록 재촉을 받는다. 그가 하나님을 찾아낸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료들이 생기를 되찾게 하고 고귀하게 만들려고 자기 혼 속에서 영원한 선이 넘쳐흐르게 두는 것이다. 진짜 종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에 더욱 봉사하게 만든다.
2001 CM 102:3.4 종교적 열망은, 신성한 실체를 탐구하는 갈급함이다. 종교적 체험은,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의식{意識}을 깨닫는 것이다. 한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했을 때, 그 존재의 혼 속에서, 발견했다는 승리감으로 인한 그런 설명할 수 없는 흥분상태를 체험하고, 그래서 그는 자신보다 덜 계몽된 동료에게 애정 어린 봉사로-접촉하라고 재촉을 받는데, 이는 하나님을 발견했음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동료를 회복시키고 고귀하게 만들려고, 자기 혼에서 영원한 선{善}이 흘러넘치도록 허용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종교는 사회에 더욱 봉사하도록 이끈다.
2007 URKA 102:3.4 종교적 욕망은 신성한 실체를 갈구하며 탐구하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은 하느님을 발견하고 있음에 대한 의식(意識)의 실현이다. 그리고 어떤 인간 존재가 하느님을 발견할 때는, 그 존재의 혼 안에서는 함께 체험되는 것이 있으니, 발견에서 나오는 승리의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격정이 너무나 일어나서, 그는 자신보다 덜 계몽된 자기 동료들을 찾아내어 사랑 넘치는 봉사-접촉을 추구하려고 재촉되는데 , 그것은 그가 하느님을 찾아냈음을 드려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동료들을 새롭게 하고 그리고 고귀하게 하려고 자신의 혼 안에서 영원한 선함이 넘쳐흐르게 허용하는 그러한 체험이다. 실제적인 종교는 증가되는 사회 봉사로 이끈다.
2025 102:3.4 종교적 소망은 신다운 실체를 갈급하게 찾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은 하나님을 찾아냈다는 의식을 깨닫는 것이다. 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낼 때, 그 존재의 혼 속에서, 발견하고서 말할 수 없는 승리에 들뜬 상태를 체험하고, 그래서 그는 그보다 깨달음이 적은 동료들에게 사랑에 넘친 봉사로 그들과 접촉하도록 재촉을 받는다. 그가 하나님을 찾아낸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료들에게 생기를 되찾고 고귀하게 만들려고 자기 혼 속에서 영원한 선이 넘쳐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에 더욱 봉사하게 만든다.
1955 102:3.5 Science, knowledge, leads to fact consciousness; religion, experience, leads to value consciousness; philosophy, wisdom, leads to co-ordinate consciousness; revelation (the substitute for morontia mota) leads to the consciousness of true reality; while the co-ordination of the consciousness of fact, value, and true reality constitutes awareness of personality reality, maximum of being, together with the belief in the possibility of the survival of that very personality.
2000 102:3.5 과학, 곧 지식은 사실을 의식하게 만들고, 종교, 곧 체험은 가치를 의식하게 만든다. 철학, 즉 지혜는 조화된 의식(意識)으로 이끌고, 계시는 (상물질계의 상지혜 대용품) 참된 실체를 의식하게 만든다. 한편 사실, 가치, 참된 실체를 조화되게 의식하는 것은 인격 실체, 곧 최대한의 존재를 깨닫고, 이와 함께 바로 그 인격이 살아남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2001 CM 102:3.5 과학 곧 지식은 사실을 의식하도록 인도하며;종교 곧 체험은 가치를 의식하도록 인도하며;철학 곧 지혜는 조화를 의식하도록 인도하며;계시는(곧 모론시아 모타의 대용품은) 참된 실체를 의식하도록 인도하며;한편 사실과 가치와 참된 실체에 대한 의식을 조화시키는 것은, 인격 실체 곧 최대한의 존재를 자각하고, 이와 함께 바로 그 인격이 생존할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2007 URKA 102:3.5 과학, 지식은 사실 의식으로 이끈다; 종교, 체험은 가치 의식으로 이끈다; 철학, 지혜는 조화-협동 의식으로 이끈다; 계시(모론시아 모타의 대용품)는 참된 실체의 의식으로 이끈다; 반면에 사실과 가치 그리고 참된 실체에 대한 의식의 조화-협동은, 바로 그 개인성의 생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함께, 개인성 실체, 존재의 최고점에 대한 인식을 구축한다.
2025 102:3.5 과학, 곧 지식은 사실을 의식하게 만들고, 종교, 곧 체험은 가치를 의식하게 만든다. 철학, 즉 지혜는 조화된 의식(意識)으로 이끌고, 계시는 (상물질계의 상지혜 대용품) 참된 실체를 의식하게 만든다. 한편 사실, 가치, 참된 실체를 조화되게 의식하는 것은 인격 실체, 곧 최대한의 존재를 깨닫고, 이와 함께 바로 그 인격이 살아남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1955 102:3.6 Knowledge leads to placing men, to originating social strata and castes. Religion leads to serving men, thus creating ethics and altruism. Wisdom leads to the higher and better fellowship of both ideas and one’s fellows. Revelation liberates men and starts them out on the eternal adventure.
2000 102:3.6 지식은 사람에게 자리를 정해 주며, 사회 계층과 계급 제도를 낳는다. 종교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길로 이끌고, 따라서 윤리와 이타주의를 창조한다. 지혜는 이 두 관념과 사람의 동료들의 유대가 더 깊어지고 나아지도록 인도한다. 계시는 사람을 해방하고 사람이 영원한 모험을 떠나게 한다.
2001 CM 102:3.6 지식은 사람의 지위가 정해지도록 이끄는데, 사회 계층과 계급제도를 창설한다. 종교는 사람을 섬기는 길로 이끌고, 그리하여 윤리와 이타주의를 생성한다. 지혜는 이 두 관념과 동료 사람들의 친교가 더 깊어지고 더 나아지도록 이끈다. 계시는 사람을 해방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모험을 시작하게 한다.
2007 URKA 102:3.6 지식은 사람들을 배치하도록, 사회적인 계층과 특권계급을 창설하도록 유도한다. 종교는 사람들을 섬기도록, 그리하여 윤리와 이타심이 생성되도록 유도한다. 지혜는 각 사람의 동료들과 관념들 둘 모두에 대한 더 높고 더 나은 교제로 인도한다. 계시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모험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2025 102:3.6 지식은 사람에게 자리를 정해 주며, 사회 계층과 계급 제도를 낳는다. 종교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길로 이끌고, 따라서 윤리와 이타주의를 창조한다. 지혜는 이 두 관념과 사람의 동료들의 친교가 더 깊어지고 개선되도록 인도한다. 계시는 사람을 해방하고 사람이 영원한 모험을 떠나게 한다.
1955 102:3.7 Science sorts men; religion loves men, even as yourself; wisdom does justice to differing men; but revelation glorifies man and discloses his capacity for partnership with God.
2000 102:3.7 과학은 사람을 분류하고, 종교는 네 몸과 같이 사람을 사랑한다. 지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공정(公正)하게 대우한다. 그러나 계시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그가 하나님과 협동할 능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2001 CM 102:3.7 과학은 사람을 분류하며;종교는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람을 사랑하며;지혜는 다양한 사람들을 공의롭게 대우하지만;계시는 사람을 찬미하고, 하나님과 동역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의 역량을 드러낸다.
2007 URKA 102:3.7 과학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종교는 사람들을 너희 자신처럼 사랑한다; 지혜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행하지만; 계시는 사람을 찬미하고 하느님과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그의 역량을 드러낸다.
2025 102:3.7 과학은 사람을 분류하고, 종교는 네 몸과 같이 사람을 사랑한다. 지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공정(公正)하게 대우한다. 그러나 계시는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그가 하나님과 협동할 능력이 있음을 드러낸다.
1955 102:3.8 Science vainly strives to create the brotherhood of culture; religion brings into being the brotherhood of the spirit. Philosophy strives for the brotherhood of wisdom; revelation portrays the eternal brotherhood,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2000 102:3.8 과학은 문화 단체를 창조하려고 헛되이 애쓴다. 종교는 영의 단체를 낳는다. 철학은 지혜의 단체를 위하여 애쓴다. 계시는 영원한 단체, 파라다이스 최후 군단을 묘사한다.
2001 CM 102:3.8 과학은 문화 형제단(兄弟團)을 창설하려고 헛되이 애쓰며;종교는 영 형제단을 실현한다. 철학은 지혜의 형제관계를 지향하며;계시는 영원한 형제단 곧 낙원 완결성취 단체를 묘사한다.
2007 URKA 102:3.8 과학은 문화의 형제신분을 이루기 위하여 헛되이 분투한다; 종교는 영의 형제신분이 이룩되게 한다. 철학은 지혜의 형제신분을 위해 분투한다; 계시는 영원한 형제신분인 파라다이스 최종의 무리단들을 묘사한다.
2025 102:3.8 과학은 문화 단체를 창조하려고 헛되이 애쓴다. 종교는 영의 단체를 낳는다. 철학은 지혜의 단체를 위하여 애쓴다. 계시는 영원한 단체, 파라다이스 최후 군단을 묘사한다.
1955 102:3.9 Knowledge yields pride in the fact of personality; wisdom is the consciousness of the meaning of personality; religion is the experience of cognizance of the value of personality; revelation is the assurance of personality survival.
2000 102:3.9 지식은 사람이 인격을 가진 사실에 긍지를 가지게 하며, 지혜는 인격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종교는 인격의 가치를 인식하는 체험이요, 계시는 인격이 살아남는 것을 보장한다.
2001 CM 102:3.9 지식은 인격이 실제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하며;지혜는 인격의 의미를 의식하는 것이며;종교는 인격의 가치를 인지{認知}하는 체험이며;계시는 인격이 생존하는 것을 보장한다.
2007 URKA 102:3.9 지식은 개인성의 사실에서 자부심을 산출한다; 지혜는 개인성의 의미에 대한 의식이다; 종교는 개인성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체험이다; 계시는 개인성 구원에 대한 확신이다.
2025 102:3.9 지식은 사람이 인격을 가진 사실에 긍지를 가지게 하며, 지혜는 인격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종교는 인격의 가치를 인식하는 체험이요, 계시는 인격이 살아남는 것을 보장한다.
1955 102:3.10 Science seeks to identify, analyze, and classify the segmented parts of the limitless cosmos. Religion grasps the idea-of-the-whole, the entire cosmos. Philosophy attempts the identification of the material segments of science with the spiritual-insight concept of the whole. Wherein philosophy fails in this attempt, revelation succeeds, affirming that the cosmic circle is universal, eternal, absolute, and infinite. This cosmos of the Infinite I AM is therefore endless, limitless, and all-inclusive—timeless, spaceless, and unqualified. And we bear testimony that the Infinite I AM is also the Father of Michael of Nebadon and the God of human salvation.
2000 102:3.10 과학은 한없는 우주의 분할된 부분들을 확인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기를 추구한다. 종교는 전체의 관념, 우주 전체를 붙잡는다. 철학은 과학의 여러 물질 부분을 전체의 영적 통찰력 개념과 동일시하려고 애쓴다. 철학이 이 시도에 실패하는 곳에 계시가 성공하며, 우주의 영역이 보편적이고 영원하며, 절대적이고 무한함을 확인한다. 따라서 무한한 스스로 계신 이의 우주는 끝이 없고, 한이 없고, 모든 것을 담는다―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고 조건이 없다. 그리고 무한한 스스로 계신 이가 또한 네바돈 미가엘의 아버지이자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증언한다.
2001 CM 102:3.10 과학은, 무한한 시공우주의 분할된 부분들을 확인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려고 시도한다. 종교는 전체-관념 곧 전체 시공우주를 파악하려고 한다. 철학은, 과학의 물질 단편{斷片}들을 전체의 영적-통찰력 개념과 동일시하려고 애쓴다. 철학이 이렇게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점에서 계시는 성공하는데, 시공우주 궤도가 보편적이고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무한함을 확언한다. 무한한 자존자의 이 시공우주는 그래서 끝이 없고 무한하고 전부-포함한다--시간이 없고 공간도 없고 조건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한 자존자가 또한 네바돈의 미가엘의 아버지시고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심을 증언한다.
2007 URKA 102:3.10 과학은 무한한 조화우주의 분할된 부분들을 정체성 확인하고 분석하며 분류하려고 추구한다. 종교는 전부로서의-관념, 전체 조화우주를 파악한다. 철학은 전부로서의 영적-통찰력 개념과 과학의 물질적 부분들을 정체화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에 있어서 철학이 실패하는 그 점에서, 계시는 성공을 거두는데, 조화우주 순환계가 우주적이고 영원하며 절대적이고 무한함을 확언한다. 무한자 스스로 이신이의 이 조화우주는 그렇기 때문에 끝이 없고 무한하며 모든 것─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으며 제한이 없음─을 포함 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자 스스로 이신 이가 또한 네바돈 미가엘의 아버지이시며 인간을 구원하는 하느님이심을 증언하는 바이다.
2025 102:3.10 과학은 한없는 우주의 분할된 부분들을 확인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기를 추구한다. 종교는 전체의 관념, 우주 전체를 파악한다. 철학은 과학의 여러 물질 부분을 전체의 영적 통찰력 개념과 동일시하려고 애쓴다. 철학이 이 시도에 실패하는 곳에 계시가 성공하며, 우주의 영역이 보편적이고 영원하며, 절대적이고 무한함을 확인한다. 따라서 무한한 스스로 계신 이의 우주는 끝이 없고, 한이 없고, 모든 것을 담는다 ― 시간이 없고 공간이 없고 조건이 없다[7]. 그리고 무한한 스스로 계신 이가 또한 네바돈 미가엘의 아버지이자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증언한다.
1955 102:3.11 Science indicates Deity as a fact; philosophy presents the idea of an Absolute; religion envisions God as a loving spiritual personality. Revelation affirms the unity of the fact of Deity, the idea of the Absolute, and the spiritual personality of God and, further, presents this concept as our Father—the universal fact of existence, the eternal idea of mind, and the infinite spirit of life.
2000 102:3.11 과학은 신이 하나의 사실임을 가리키고, 철학은 한 절대자 개념을 제시한다. 종교는 하나님이 자애로운 영적 성격자라고 상상한다. 계시(啓示)는 신이 계신 사실, 절대자 관념, 하나님의 영적 성격, 이 세 가지가 하나임을 확인하며, 더 나아가서 이 개념―존재하는 보편적 사실, 영원한 지성 관념, 생명을 가진 무한한 영―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제시한다.
2001 CM 102:3.11 과학은 신격이 사실임을 나타내며;철학은 절대자 관념을 제시하며;종교는 하나님이 자애로운 영적 인격이라고 상상한다. 계시는, 신격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절대자라는 관념과 하나님의 영적 인격, 이 세 가지의 일관성을 확인하며, 더 나아가 이 개념이--즉 실존하는 보편적 사실, 영원한 정신 관념, 그리고 무한한 생명의 영이-- 우리 아버지라고 제시한다.
2007 URKA 102:3.11 과학은 신(神)을 하나의 사실로 표시한다; 철학은 하나의 절대자의 관념을 제시한다; 종교는 하나의 사랑하는 영적 개인성으로 하느님을 그린다. 계시는 신(神)의 사실, 절대자의 관념 그리고 하느님의 영적인 개인성의 합일을 단언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 개념을 우리의 아버지─실존에서의 우주적 사실, 마음에서의 영원한 관념, 생명에서의 무한한 영─로 나타낸다.
2025 102:3.11 과학은 신이 하나의 사실임을 가리키고, 철학은 한 절대자 개념을 제시한다. 종교는 하나님이 자애로운 영적 성격자라고 상상한다. 계시(啓示)는 신이 계신 사실, 절대자 관념, 하나님의 영적 성격, 이 세 가지가 하나임을 확인하며, 더 나아가서 이 개념 ― 존재하는 보편적 사실, 영원한 지성 관념, 생명을 가진 무한한 영 ― 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제시한다.
1955 102:3.12 The pursuit of knowledge constitutes science; the search for wisdom is philosophy; the love for God is religion; the hunger for truth is a revelation. But it is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that attaches the feeling of reality to man’s spiritual insight into the cosmos.
2000 102:3.12 지식의 추구는 과학이며, 지혜의 탐구는 철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종교요, 진리를 갈급하게 찾는 것은 하나의 계시이다. 그러나 사람이 우주를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에 현실의 느낌을 붙여놓는 것은 깃드는 생각 조절자이다.
2001 CM 102:3.12 지식 추구가 과학을 구성하며;지혜 탐구가 철학이며;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종교이며;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계시이다. 그러나 시공우주를 꿰뚫어보는, 사람의 영적 통찰력에 실체의 느낌을 덧붙여 주는 것은,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다.
2007 URKA 102:3.12 지식의 추구는 과학의 구성 요소이다; 지혜 탐구는 철학이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종교이다; 진리에 대한 굶주림이 계시이다. 그러나 실체의 느낌을 조화우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영적 통찰력에 덧붙여 주는 것은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이다.
2025 102:3.12 지식의 추구는 과학이며, 지혜의 탐구는 철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종교요, 진실을 갈급하게 찾는 것은 하나의 계시이다. 그러나 사람이 우주를 꿰뚫어보는 영적 통찰력에 현실적 느낌을 부여하는 것은 깃드는 생각 조절자이다.
1955 102:3.13 In science, the idea precedes the expression of its realization; in religion, the experience of realization precedes the expression of the idea. There is a vast difference between the evolutionary will-to-believe and the product of enlightened reason, religious insight, and revelation—the will that believes.
2000 102:3.13 과학에서 생각은 생각이 실현되는 표현보다 앞서며, 종교에서 실현하는 체험은 생각의 표현보다 앞서 간다. 깨우친 이성, 종교적 통찰력, 계시, 이 세 가지의 결과―믿는 의지―와 믿고자 하는 진화적 의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2001 CM 102:3.13 과학에서는, 관념이 깨달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관념이 앞서며;종교에서는, 깨닫는 체험이 관념의 표현보다 앞선다. 계몽된 이성과 종교적 통찰력과 계시, 이 세 가지의 산물과--곧 믿는 의지와 -- 믿고자하는-진화적-의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07 URKA 102:3.13 과학에서는, 관념이 그 실현에서의 표현보다 앞서며; 종교에서는, 실현의 체험이 관념에서의 표현보다 앞선다. 진화하는 믿고자-하는-의지와, 깨우친 이성, 종교적 통찰력, 계시의 산물─믿고 있는 의지─사이에는 광대한 차이가 있다.
2025 102:3.13 과학에서 생각은 그 생각이 실현되는 표현보다 앞서며, 종교에서 실현하는 체험은 생각의 표현보다 앞서 간다. 깨우친 이성, 종교적 통찰력, 계시, 이 세 가지의 결과 ― 믿는 의지 ― 와 믿고자 하는 진화적 의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1955 102:3.14 In evolution, religion often leads to man’s creating his concepts of God; revelation exhibits the phenomenon of God’s evolving man himself, while in the earth life of Christ Michael we behold the phenomenon of God’s revealing himself to man. Evolution tends to make God manlike; revelation tends to make man Godlike.
2000 102:3.14 진화의 경우에, 종교는 흔히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개념들을 지어내게 만든다.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사람을 진화시키는 현상을 드러내며, 한편 그리스도 미가엘이 땅에서 사신 인생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현상을 바라본다. 진화는 하나님을 사람 모습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계시는 사람을 하나님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2001 CM 102:3.14 진화에서는, 종교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개념을 창출하도록 종종 인도하며;하나님이 바로 그 사람을 진화시키는 현상을 계시가 드러내며, 한편 우리는, 그리스도 미가엘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드러내시는 현상을 목격했다. 진화는 하나님을 사람답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계시는 사람을 하나님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2007 URKA 102:3.14 진화에 있어서, 사람이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창출하도록 종교가 인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계시는 진화하는 하느님의 사람 자신에 대한 현상을 나타내는 반면, 그리스도 미가엘이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하느님이 자기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시는 현상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진화는 하느님을 사람과-같음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계시는 사람을 하느님과-같음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2025 102:3.14 진화의 경우에, 종교는 흔히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개념들을 지어내게 만든다. 계시는 하나님이 바로 사람을 진화시키는 현상을 드러내며, 한편 그리스도 미가엘이 땅에서 사신 인생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현상을 바라본다. 진화는 하나님을 사람 모습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계시는 사람을 하나님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1955 102:3.15 Science is only satisfied with first causes, religion with supreme personality, and philosophy with unity. Revelation affirms that these three are one, and that all are good. The eternal real is the good of the universe and not the time illusions of space evil. In the spiritual experience of all personalities, always is it true that the real is the good and the good is the real.
2000 102:3.15 과학은 오로지 처음 원인(原因)들에 만족하고, 종교는 최상의 성격에, 철학은 통일에 만족한다. 계시는 이 세 가지가 하나이며, 모두가 선한 것을 확인한다. 우주에서 선한 것은 영원히 실재하는 것이요, 공간에서 악한 것이 낳는 일시적 망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성격자의 영적 체험에서 이것이 반드시 참이니, 실재하는 것은 선한 것이요, 선한 것은 실재하는 것이다.
2001 CM 102:3.15 과학은 오직 최초 원인들로 만족하고, 종교는 최상 인격으로 만족하고, 철학은 통일로 만족한다. 계시는 이 세 가지가 하나이고, 그 모든 것이 선하다고 확언한다. 영원한 실상은 우주가 선하다는 것이고, 공간이 악하다는 한때의 착각이 아니다. 모든 인물의 영적 체험에서는, 실재하는 것이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은 실재하는 것임이 항상 참이다.
2007 URKA 102:3.15 과학은 단지 최초의 원인으로, 종교는 최극 개인성으로, 철학은 합일로서 만족된다. 계시는 이러한 세 가지가 하나이며, 그 모든 것들이 선하다는 것을 확언한다. 영원한 실제는 우주의 선(善)이며 공간 악에서의 시간 환상이 아니다. 모든 개인성들의 영적인 체험 속에서는, 실제가 선이고 선이 실제라는 사실이 항상 진리이다.
2025 102:3.15 과학은 오로지 처음 원인(原因)들에 만족하고, 종교는 최상의 성격에, 철학은 통일에 만족한다. 계시는 이 세 가지가 하나이며, 모두가 선한 것을 확인한다. 우주에서 선한 것은 영원히 실재하는 것이요, 공간에서 악한 것이 낳는 일시적 망상은 그렇지 않다. 모든 성격자의 영적 체험에서 이것이 반드시 참이니, 실재하는 것은 선한 것이요, 선한 것은 실재하는 것이다.
4. THE FACT OF EXPERIENCE
4. 체험에 관한 사실
4. 체험의 실상
4. 체험에서의 사실
4. 체험하는 사실
1955 102:4.1 Because of the presence in your minds of the Thought Adjuster, it is no more of a mystery for you to know the mind of God than for you to be sure of the consciousness of knowing any other mind, human or superhuman. Religion and social consciousness have this in common: They are predicated on the consciousness of other-mindness. The technique whereby you can accept another’s idea as yours is the same whereby you may “let the mind which was in Christ be also in you.”
2000 102:4.1 너희의 지성 속에 생각 조절자가 계시기 때문에, 너희가 하나님의 지성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든 초인간이든, 어느 다른 지성을 이해하는 의식을 확신하는 것보다 더 신비스러운 것은 아니다. 종교와 사회 의식은 이것을 공통으로 가졌다: 두 가지가 남의 생각을 의식하는 데 바탕을 둔다. 너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너희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던 지성을 너희가 또한 품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바로 그 기법이다.
2001 CM 102:4.1 사고 섭리사가 너희의 정신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인간이든지 초인간이든지 다른 어떤 정신을 안다고 의식{意識}함을 너희가 확신하는 것보다 더 신비롭지는 않다. 종교와 사회 의식은 이런 공통점을 갖는데:남에게-신경쓰임을 의식하는 데 입각한다. 너희가 다른 존재들의 관념을 마치 너희 것인 양 받아들이게 하는 기법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던 그 마음을 너희 안에도 품으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기법이다.
2007 URKA 102:4.1 생각 조절자의 너희 마음속에 있는 현존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신비로운 일이 아니듯이, 인간적이든지 초인간적이든지 다른 어떤 존재의 마음을 안다는 의식(意識)의 확신은 너희에게 신비로운 일이 아니다. 종교와 사회적 의식은 이러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그것들이 다른 존재가 염두에 두는 것에 대한 의식에 입각한다는 점이다. 너희가 다른 존재들의 관념을 마치 너희 것인 양 받아들이게 하는 기법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던 마음을 너희 속에 품어라”고 할 수 있는 기법과 같다.
1955 102:4.2 What is human experience? It is simply any interplay between an active and questioning self and any other active and external reality. The mass of experience is determined by depth of concept plus totality of recognition of the reality of the external. The motion of experience equals the force of expectant imagination plus the keenness of the sensory discovery of the external qualities of contacted reality. The fact of experience is found in self-consciousness plus other-existences—other-thingness, other-mindness, and other-spiritness.
2000 102:4.2 인간의 체험은 무엇인가? 이는 다만 활발하고 궁금해하는 자아와 활발하고 바깥에 있는 어느 다른 실체 사이에 생기는 상호 작용이다. 체험의 양은 개념의 깊이, 그리고 외부에 있는 것들의 실체를 전부 인식한 것의 합으로 결정된다. 체험의 운동량은 기대하는 상상의 힘, 그리고 접촉한 실체의 외부 성질을 감각으로 발견하는 민감성을 더한 것이다. 체험하는 사실은 자의식과 기타 존재들―다른 것의 성질, 다른 지성의 성질, 다른 영의 성질―의 합에서 발견된다.
2001 CM 102:4.2 인간의 체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자아와, 활동적이고 밖에 있는 어느 다른 실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 체험의 양은, 개념의 깊이 그리고 외부에 있는 것들의 실체를 인식한 것 전체의 합으로 결정된다. 체험하고 싶은 충동은, 기대하는 상상력의 힘에, 접촉했던 실체의 외부 특성을 감각으로 발견하는 민감성을 더한 것이다. 체험의 진상{眞相}은, 자아를-의식함에 다른-실재들--곧 다른-사물성{事物性 객관적 존재나 실재의 성질이나 상태}, 타인을-배려함, 타인의-기운을 북돋움--을 덧붙인 것에서 발견된다.
2007 URKA 102:4.2 인간의 체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자아와, 그리고 다른 어떤 활동적인 외부 실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 체험의 질량은 개념의 깊이와, 여기에 더해진 외부자의 실체에 대한 인지의 전체성으로 결정된다. 체험의 운동은 기대하는 상상의 기세와, 여기에 더해진 접촉되는 실체의 외부 본질특성에 대한 감각적 발견에서의 예민함과 동등하다. 체험의 사실은 자아-의식과 다른-실존들─다른 사물존재성, 다른 마음존재성, 다른 영(靈)존재성─을 합한 것 안에서 발견된다.
2025 102:4.2 인간의 체험은 무엇인가? 이는 다만 활발하고 궁금해하는 자아와 활발하고 바깥에 있는 어느 다른 실체 사이에 생기는 상호 작용이다. 체험의 양은 개념의 깊이, 그리고 외부에 있는 것들의 실체를 전부 인식한 것의 합으로 결정된다. 체험의 운동량은 기대하는 상상의 힘, 그리고 접촉한 실체의 외부 성질을 감각으로 발견하는 민감성을 더한 것이다. 체험하는 사실은 자의식과 기타 존재들 ― 다른 것의 성질, 다른 지성의 성질, 다른 영의 성질 ― 의 합에서 발견된다.
1955 102:4.3 Man very early becomes conscious that he is not alone in the world or the universe. There develops a natural spontaneous self-consciousness of other-mindness in the environment of selfhood. Faith translates this natural experience into religion, the recognition of God as the reality—source, nature, and destiny—of other-mindness. But such a knowledge of God is ever and always a reality of personal experience. If God were not a personality, he could not become a living part of the real religious experience of a human personality.
2000 102:4.3 사람은 아주 일찍부터 그가 세상이나 우주에서 혼자 있지 않음을 의식하게 된다. 자아의 환경 속에서, 남의 생각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저절로 자의식이 생겨난다. 믿음은 이 자연스러운 체험을 종교로 바꾸며, 이것은 남의 생각의 실체로서―근원ㆍ성질ㆍ운명으로서―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런 지식은 언제나, 반드시 몸소 체험하는 실체이다. 하나님이 성격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한 인간 성격이 얻는 진짜 종교적 체험의 생생한 부분이 될 수 없다.
2001 CM 102:4.3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또는 우주에서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아주 일찍부터 의식하게 된다. 자기본위 환경에서, 타인을-배려하는 자연스런 자발적 자아-의식이 발달한다. 신앙은 이런 자연스런 체험을 종교 곧 타인을-배려함의 실체로서--즉 근원과 본성과 운명으로서--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발전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런 지식은 언제나 반드시 몸소 체험하는 실체다. 하나님이 인격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한 인간 인격이 겪는 진짜 종교 체험의 생생한 부분이 될 수 없다.
2007 URKA 102:4.3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또는 우주 안에서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매우 일찍부터 인식하게 된다. 자아신분의 환경 속에서, 다른-마음작용에 대한 자아-의식이 자연 본성적으로 저절로 발달된다. 신앙은 이러한 자연적 체험을 종교, 하느님을 다른-마음작용에서의 실체─근원, 자연, 그리고 운명─로서 인지하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또한 그러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언제라도 그리고 항상 개인적 체험의 실체이다. 만약에 하느님이 개인성이 아니시라면, 그는 인간 개인성이 겪는 실제 종교 체험의 살아있는 부분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2025 102:4.3 사람은 아주 일찍부터 그가 세상이나 우주에서 혼자 있지 않음을 의식하게 된다. 자아의 환경 속에서, 남의 생각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저절로 자의식이 생겨난다. 믿음은 이 자연스러운 체험을 종교로 바꾸며, 이것은 남의 의식의 실체 ― 근원ㆍ성질ㆍ운명 ― 인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런 지식은 언제나, 반드시 몸소 체험하는 실체이다. 하나님이 성격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한 인간 성격이 얻는 진짜 종교적 체험의 생생한 부분이 될 수 없다.
1955 102:4.4 The element of error present in human religious experience i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content of materialism which contaminates the spiritual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Man’s prespirit progression in the universe consists in the experience of divesting himself of these erroneous ideas of the nature of God and of the reality of pure and true spirit. Deity is more than spirit, but the spiritual approach is the only one possible to ascending man.
2000 102:4.4 인간의 종교적 체험에서 잘못의 요소는 우주의 아버지라는 영적 개념을 오염시키는 유물론의 내용에 정비례한다. 우주에서 영이 되기 전에 사람의 진보는 하나님의 성품과 순수하고 참된 영의 실체, 이 두 가지에 대한 이 그릇된 관념들을 스스로 벗어버리는 체험에 있다. 신은 영보다 더한 것이지만, 영적 접근법은 하늘 가는 사람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접근법이다.
2001 CM 102:4.4 인간의 종교 체험에서 오류의 요소는, 우주 아버지라는 영적 개념을 오염시키는 유물론의 내용에 정비례한다. 우주에서 사람의 영-이전{靈-以前} 진행과정은 하나님의 본성과 순수하고 참된 영 실체, 이 두 가지에 대한 이런 잘못된 관념을 떨쳐버리는 체험에 있다. 신격은 영{靈} 이상{以上}이지만, 영적 접근법만이, 상승하는 사람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접근법이다.
2007 URKA 102:4.4 인간의 종교적 체험 속에 나타나는 실수의 요소는, 우주 아버지에 대한 영적 개념을 오염시키는 물질주의의 내용물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영-이전(以前)의 사람의 우주 안에서의 진보는, 순수하고 참된 영의 실체와 하느님의 자연본성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관념들을 떨쳐버리는 체험 속에 존재한다. 신(神)은 영(靈) 이상(以上)이지만, 영적인 접근만이 상승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유일한 것이다.
2025 102:4.4 인간의 종교적 체험에서 잘못의 요소는 우주의 아버지라는 영적 개념을 오염시키는 유물론의 내용에 정비례한다. 우주에서 영이 되기 전에 사람의 진보는 하나님의 성품과 순수하고 참된 영의 실체, 이 두 가지에 대한 이 그릇된 관념들을 스스로 벗어버리는 체험에 있다. 신은 영보다 더한 것이지만, 영적 접근법은 하늘 가는 사람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접근법이다.
1955 102:4.5 Prayer is indeed a part of religious experience, but it has been wrongly emphasized by modern religions, much to the neglect of the more essential communion of worship. The reflective powers of the mind are deepened and broadened by worship. Prayer may enrich the life, but worship illuminates destiny.
2000 102:4.5 기도(祈禱)는 정말로 종교적 체험의 일부이지만, 더 본질적 교통, 신을 예배하는 교통을 많이 소홀히 하기까지, 현대 종교는 기도를 그릇되게 강조해 왔다. 지성의 숙고하는 힘은 예배로 인하여 깊어지고 넓어진다. 기도는 인생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신을 예배하는 것은 운명이 보이게 빛을 밝힌다.
2001 CM 102:4.5 기도는 정말로 종교 체험의 한 부분이지만, 경배라는 더 근본적인 교통을 많이 소홀히 할 정도까지, 현대 종교는 기도를 잘못 강조해왔다. 사색에 잠기는 정신력은 경배로 인해 깊어지고 넓어진다. 기도는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경배는 운명을 밝혀준다.
2007 URKA 102:4.5 기도가 종교적인 체험의 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현대 종교인들에 의해 잘못되게 강조되어 왔는데, 더욱이 경배라는 더욱 근본적인 교제가 너무 무시되어 왔다. 마음의 반영하는 힘은 경배에 의해 결정되고 확장된다. 기도는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반면 경배는 운명을 밝혀준다.
2025 102:4.5 기도(祈禱)는 정말로 종교적 체험의 일부이지만, 더 본질적 교통, 신을 예배하는 교통을 많이 소홀히 하기까지, 현대 종교는 기도를 그릇되게 강조해 왔다. 지성의 숙고하는 힘은 예배로 인하여 깊어지고 넓어진다. 기도는 인생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신을 예배하는 것은 운명이 보이게 빛을 밝힌다.
1955 102:4.6 Revealed religion is the unifying element of human existence. Revelation unifies history, co-ordinates geology, astronomy, physics, chemistry, biology, sociology, and psychology. Spiritual experience is the real soul of man’s cosmos.
2000 102:4.6 계시된 종교는 인간의 존재에서 통일하는 요소이다. 계시는 역사를 통일하며, 지리학ㆍ천문학ㆍ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사회학ㆍ심리학을 조화시킨다. 영적 체험은 사람의 우주에 담긴 진정한 혼이다.
2001 CM 102:4.6 계시된 종교는 인간 실존을 통합시키는 요소다. 계시는 역사를 통일시키고, 지질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 및 심리학 등을 조화시킨다. 영적 체험이 사람의 시공우주 곧 진짜 혼이다.
2007 URKA 102:4.6 계시된 종교는 인간 실존에서 통합을 이루게 하는 요소이다. 계시는 역사를 통합하고, 지질학, 우주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을 조화-협동시킨다. 영적 체험은 사람의 조화우주의 실제 혼이다.
2025 102:4.6 계시된 종교는 인간의 존재에서 통일하는 요소이다. 계시는 역사를 통일하며, 지리학ㆍ천문학ㆍ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사회학ㆍ심리학을 조화시킨다. 영적 체험은 사람의 우주에 담긴 진정한 혼이다.
5. THE SUPREMACY OF PURPOSIVE POTENTIAL
5. 의도한 잠재성의 우월성
5. 의도적 잠재력의 지존성
5. 목적에-맞는 잠재의 최극위
5. 의도한 잠재성의 우월성
1955 102:5.1 Although the establishment of the fact of belief is not equivalent to establishing the fact of that which is believed, nevertheless, the evolutionary progression of simple life to the status of personality does demonstrate the fact of the existence of the potential of personality to start with. And in the time universes, potential is always supreme over the actual. In the evolving cosmos the potential is what is to be, and what is to be is the unfolding of the purposive mandates of Deity.
2000 102:5.1 무엇을 믿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믿는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과 대등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간단한 생명이 인격의 지위까지 진화로 진보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격 잠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공 우주에서 잠재성은 언제나 사실인 것보다 우월하다. 진화하는 우주에서 잠재성은 앞으로 다가올 무엇이요, 다가올 무엇은 신이 의도하여 내린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001 CM 102:5.1 믿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믿는 대상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격 지위를 향한 단순 생명체의 진화 진행과정은, 처음부터 인격 잠재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한{時限}이 있는 우주에서는, 잠재력이 실제보다 반드시 훨씬 우세하다. 진화하는 시공우주에서 잠재력은 앞으로 이뤄질 무엇이며, 앞으로 이뤄질 무엇은, 신격이 의도적으로 내린 명령이 전개되는 것이다.
2007 URKA 102:5.1 믿음이라는 사실의 확립이, 믿어지는 것에 대한 사실을 성립시키는 것과 일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성의 지위를 향하는 단순한 삶의 진화적인 진보는, 시작할 수 있는 개인성 잠재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존재하는 우주들에서는, 잠재가 항상 실재보다 최극이다. 진화하는 조화우주에서의 잠재는 앞으로 이루어질 어떤 것이며, 앞으로 이루어질 어떤 것은 신(神)의 의도적인 지시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5 102:5.1 믿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믿는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과 대등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간단한 생명이 인격의 지위까지 진화로 진보하는 것은, 처음부터 인격 잠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공 우주에서 잠재성은 언제나 사실인 것보다 우월하다. 진화하는 우주에서 잠재성은 앞으로 다가올 무엇이요, 다가올 무엇은 신이 의도하여 내린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955 102:5.2 This same purposive supremacy is shown in the evolution of mind ideation when primitive animal fear is transmuted into the constantly deepening reverence for God and into increasing awe of the universe. Primitive man had more religious fear than faith, and the supremacy of spirit potentials over mind actuals is demonstrated when this craven fear is translated into living faith in spiritual realities.
2000 102:5.2 동물의 원시적 두려움이 항상 깊어지는 하나님 존경심으로, 그리고 커지는 우주 경외감으로 변화될 때, 바로 이 의도한 우월성은 지성의 개념 작용이 진화하는 데서 나타난다. 원시인은 믿음보다 종교적 두려움이 더 많았고, 잠재 영들이 실재하는 지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이 소심한 두려움이 영적 실체들을 믿는 생생한 믿음으로 바뀔 때 전시된다.
2001 CM 102:5.2 동물적인 원시 공포심이, 계속 깊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전환되고, 우주에 대한 더욱 심화되는 경외심으로 전환될 때, 바로 이 의도된 지존성은 정신의 관념작용이 진화하는 데서 나타난다. 원시인은 신앙보다는 종교적인 두려움이 더 많았으며, 영 잠재력이 현재의 정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이 소심한 두려움이 영적 실체들을 믿는 생생한 신앙으로 전환될 때 나타난다.
2007 URKA 102:5.2 그와 동일한 의도적 최극위는, 원시적인 동물적 공포심이 계속적으로 깊어지는 하느님에 대한 존경으로 그리고 우주에 대한 점점 더 심화되는 경외심으로 전환될 때, 마음 관념작용의 진화 속에서 나타난다. 원시인은 신앙보다 더 종교적인 두려움을 가졌었으며, 실재적인 마음을 지배하는 잠재적 영의 최극위는 비겁한 이 두려움이 영적인 실체들에 대한 살아있는 신앙으로 전환될 때 실증되어 진다.
2025 102:5.2 동물의 원시적 두려움이 항상 깊어지는 하나님 존경심으로, 그리고 커지는 우주 경외감으로 변화될 때, 바로 이 의도한 우월성은 지성의 개념 작용이 진화하는 데서 나타난다. 원시인은 믿음보다 종교적 두려움이 더 많았고, 잠재 영들이 실재하는 지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이 소심한 두려움이 영적 실체들을 믿는 생생한 믿음으로 바뀔 때 전시된다.
1955 102:5.3 You can psychologize evolutionary religion but not the personal-experience religion of spiritual origin. Human morality may recognize values, but only religion can conserve, exalt, and spiritualize such values. But notwithstanding such actions, religion is something more than emotionalized morality. Religion is to morality as love is to duty, as sonship is to servitude, as essence is to substance. Morality discloses an almighty Controller, a Deity to be served; religion discloses an all-loving Father, a God to be worshiped and loved. And again this is because the spiritual potentiality of religion is dominant over the duty actuality of the morality of evolution.
2000 102:5.3 너희는 진화 종교를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영적 기원을 가진, 몸소 체험하는 종교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도덕은 가치를 인식할지 모르지만, 오로지 종교가 그러한 가치를 보존하고, 높이고,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활동이 있어도, 종교는 감정으로 변한 도덕보다 더한 무엇이다. 종교와 도덕의 관계는, 사랑과 의무, 아들 신분과 노예 신세, 본질과 물질의 관계와 같다. 도덕은 전능한 통제자, 섬겨야 할 신을 드러낸다. 종교는 모두를 사랑하는 아버지, 즉 예배와 사랑을 받을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이것은 종교의 영적 잠재성이 진화된 도덕의 사실화된 의무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2001 CM 102:5.3 너희는 진화 종교를 심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영적으로 기원되는 개인-체험 종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인간의 도덕은 가치를 인식할지 모르지만, 오직 종교만이 그런 가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고 영성화{靈性化}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있더라도, 종교는 감정으로 취급되는 도덕 이상의 어떤 것이다. 종교와 도덕의 관계는, 사랑과 의무의 관계, 아들신분과 노예 신세의 관계, 본질과 물체의 관계와 같다. 도덕은, 전능한 지배자 즉 섬김 받으실 신격을 드러내며;종교는, 만유를-사랑하시는 아버지 곧 경배와 사랑을 받으실 하나님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이는 진화의 도덕성이라는 의무 실재보다 종교의 영적 잠재성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2007 URKA 102:5.3 너희는 진화 종교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영적으로 기원되는 개인적-체험의 종교는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도덕성이 가치들을 깨달을 수 있지만, 오직 종교만이 그러한 가치들을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영성화(靈性化)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감정적으로 취급되는 도덕성 이상의 어떤 것이다. 사랑이 의무를 가져오듯이, 아들관계가 예속성을 가져오듯이, 본질이 실체를 가져오듯이, 종교는 도덕성을 가져온다. 도덕성은 전능의 통제자, 섬김을 받으실 신(神)을 드러내며; 종교는 모든-사랑이신 아버지, 경배를 받으시고 사랑을 받으실 하느님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말해서 이것은 종교의 영적인 잠재성이 진화의 도덕성이 갖는 실재성 의무를 지배한다.
2025 102:5.3 너희는 진화 종교를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영적 기원을 가진, 몸소 체험하는 종교를 그리할 수는 없다. 인간의 도덕은 가치를 인식할지 모르지만, 오로지 종교가 그러한 가치를 보존하고, 높이고,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활동이 있어도, 종교는 감정으로 변한 도덕보다 더한 무엇이다. 종교와 도덕의 관계는, 사랑과 의무, 아들 신분과 노예 신세, 본질과 물질의 관계와 같다. 도덕은 전능한 통제자, 섬겨야 할 신을 드러낸다. 종교는 모두를 사랑하는 아버지, 즉 예배와 사랑을 받을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이것은 종교의 영적 잠재성이 진화된 도덕의 사실화된 의무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6. THE CERTAINTY OF RELIGIOUS FAITH
6. 종교적 믿음의 확실성
6. 종교적 신앙의 확실성
6. 종교적 신앙의 확실성
6. 종교적 믿음의 확실성
1955 102:6.1 The philosophic elimination of religious fear and the steady progress of science add greatly to the mortality of false gods; and even though these casualties of man-made deities may momentarily befog the spiritual vision, they eventually destroy that ignorance and superstition which so long obscured the living God of eternal love. The relation between the creature and the Creator is a living experience, a dynamic religious faith, which is not subject to precise definition. To isolate part of life and call it religion is to disintegrate life and to distort religion. And this is just why the God of worship claims all allegiance or none.
2000 102:6.1 종교적 두려움을 철학적으로 없애고 과학이 꾸준히 진보하는 것은 거짓 신들의 사망률을 크게 높인다. 사람이 만든 신들이 이렇게 죽은 것은 잠시 영적 시력을 흐리게 만들지 모르지만, 영원한 사랑이자 살아 있는 하나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가렸던 그 무지와 미신을 궁극에 없애버린다. 인간과 창조자의 관계는 생생한 체험이요, 힘찬 종교적 믿음이며, 이를 엄밀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생명의 일부를 떼어놓고 이를 종교라 부르는 것은 생명을 해체하고 종교를 왜곡한다. 이것이 바로 예배를 받는 하나님이 모든 충성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2001 CM 102:6.1 종교적 두려움을 철학적으로 제거함과 과학의 꾸준한 발전은, 거짓된 신{神}들을 엄청나게 제거했으며;사람이 만든 신격들이 이렇게 무력화됨으로써 영적 시력이 일시적으로 흐려질지 모르지만, 영원한 사랑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토록 오랫동안 불분명하게 만들었던 그 무지와 미신을 결국 파괴할 것이다.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관계는, 생생한 체험 곧 역동적인 종교적 신앙인데,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일부 생활을 격리시키면서 그것을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생활을 붕괴시키고 종교를 왜곡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경배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순전한 충의 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는 바로 그 이유다.
2007 URKA 102:6.1 종교적 두려움을 철학적으로 제거하는 것과 그리고 꾸준한 과학의 발전은 잘못된 하느님들을 사라지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사람이 만든 신(神)들이 이렇게 사라짐으로써 영적인 선견지명을 일시적으로 흐리게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에는 영원한 사랑의 살아 계신 하느님을 그토록 오랫동안 불분명하게 만들었던 그 무지와 미신을 타파할 것이다. 창조체와 창조자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살아있는 체험, 명확한 경계에 속박되지 않는, 하나의 역동적인 종교적 신념이다. 삶의 일부를 고립시키고 그것을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삶의 집대성을-해체시키고 그리고 종교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배를 받으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충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는 바로 그 이유이다.
2025 102:6.1 종교적 두려움을 철학적으로 없애고 과학이 꾸준히 진보하는 것은 거짓 신들의 사망률을 크게 높인다. 사람이 만든 신들이 이렇게 죽은 것은 잠시 영적 시력을 흐리게 만들지 모르지만, 영원한 사랑이자 살아 있는 하나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가렸던 그 무지와 미신을 궁극에 없애 버린다. 인간과 창조자의 관계는 생생한 체험이요, 힘찬 종교적 믿음이며, 이를 엄밀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생명의 일부를 떼어놓고 이를 종교라 부르는 것은 생명을 해체하고 종교를 왜곡한다. 이것이 바로 예배를 받는 하나님이 모든 충성을 요구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1955 102:6.2 The gods of primitive men may have been no more than shadows of themselves; the living God is the divine light whose interruptions constitute the creation shadows of all space.
2000 102:6.2 원시인이 섬기던 신들은 자신의 그림자보다 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신성한 빛이요, 그 빛이 중단되는 것은 모든 공간에서 창조의 그림자를 만든다.
2001 CM 102:6.2 원시인이 섬기던 신들은 원시인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 같으며;살아계신 하나님은 신성한 빛이신데, 그 빛을 차단하는 것이 모든 공간에서 창조 그림자를 만든다.
2007 URKA 102:6.2 원시인의 하느님들은 그들 자신의 그림자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상태였으며; 살아 계신 하느님은 신성한 빛이신데, 그것의 중단이 모든 공간의 창조 그림자들을 구성한다.
2025 102:6.2 원시인이 섬기던 신들은 자신의 그림자보다 더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신성한 빛이요, 그 빛이 중단되는 것은 모든 공간에서 창조의 그림자를 만든다.
1955 102:6.3 The religionist of philosophic attainment has faith in a personal God of personal salvation, something more than a reality, a value, a level of achievement, an exalted process, a transmutation, the ultimate of time-space, an idealization, the personalization of energy, the entity of gravity, a human projection, the idealization of self, nature’s upthrust, the inclination to goodness, the forward impulse of evolution, or a sublime hypothesis. The religionist has faith in a God of love. Love is the essence of religion and the wellspring of superior civilization.
2000 102:6.3 철학으로 도달한 신자는 개인에게 구원을 주는, 개인적으로 대하는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은 한 실체, 한 가치 기준, 하나의 성취 수준, 하나의 고상해진 과정, 하나의 변화, 시공의 궁극, 이상으로 만든 것, 에너지의 인격화, 인력(引力)을 가진 개체, 인간의 한 계획, 자아를 이상으로 만든 것, 자연의 융기(隆起), 선을 향하는 것, 앞을 향하는 진화의 충동, 또는 하나의 숭고한 가설보다 더한 무엇이다. 신자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 사랑은 종교의 본질이요, 우수한 문명이 솟아나는 근원이다.
2001 CM 102:6.3 철학적 달성을 이룩한 종교인은, 개인의 구원을 이루시는 인격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소유하며, 실체, 가치, 성취 수준, 강화된 과정, 변이, 시간-공간의 최종 단계, 이상화{理想化}, 에너지의 인격화, 인력{引力}을 지닌 실재, 인간의 예측, 자아를 이상화함, 자연의 역습, 선을 향한 경향,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화의 자극, 또는 탁월한 가설보다 더한 무엇이다. 종교인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소유한다. 사랑은 종교의 근본이고 뛰어난 문명의 원천이다.
2007 URKA 102:6.3 철학적인 달성에서의 종교인들은 개인적 구원의 개인적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소유하며, 그것은 실체, 가치, 성취의 차원, 고양된 과정, 변형, 시간-공간의 궁극자, 이상화(理想化), 에너지의 개인성구현, 중력의 실존개체, 인간 구체적 투사 활동, 자아의 이상화, 자연본성의 상승, 선(善)함을 향한 경향, 진화의 나가려는 충동, 또는 숭고한 전제보다도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 종교인은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 사랑은 종교의 본질이며 우월한 문명의 원천이다.
1955 102:6.4 Faith transforms the philosophic God of probability into the saving God of certainty i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Skepticism may challenge the theories of theology, but confidence in the dependability of personal experience affirms the truth of that belief which has grown into faith.
2000 102:6.4 믿음은 있음직한 철학적 하나님을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서 확실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화시킨다. 회의론은 신학 이론에 도전할지 모르지만, 몸소 겪는 체험의 신빙성을 확신하는 것은, 성장하여 믿음이 된 그 관념이 진실한 것을 확인한다.
2001 CM 102:6.4 신앙은, 있음직한 철학적 하나님을, 개인의 종교 체험에서 확실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바꾼다. 무신론이 신학 이론에 도전할지 모르지만, 몸소 겪은 체험의 신빙성에 대한 확신이, 그 믿음이 성장하여 신앙이 된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준다.
2007 URKA 102:6.4 신앙은 그럴듯한 철학적 하느님을 변환시켜서 개인적인 종교 체험 속에서 확실성을 주는 구원의 하느님이 되게 한다. 무신론이 신학의 이론에 도전할 수 있지만, 개인적 체험의 신빙성에 대한 자신감은, 자라나서 신앙이 되고 있는 그 믿음에서의 진리를 확인한다.
2025 102:6.4 믿음은 있음직한 철학적 하나님을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서 확실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변화시킨다. 회의론은 신학 이론에 도전할지 모르지만, 몸소 겪는 체험의 신빙성을 확신하는 것은, 성장하여 믿음이 된 그 관념이 진실한 것을 확인한다.
1955 102:6.5 Convictions about God may be arrived at through wise reasoning, but the individual becomes God-knowing only by faith, through personal experience. In much that pertains to life, probability must be reckoned with, but when contacting with cosmic reality, certainty may be experienced when such meanings and values are approached by living faith. The God-knowing soul dares to say, “I know,” even when this knowledge of God is questioned by the unbeliever who denies such certitude because it is not wholly supported by intellectual logic. To every such doubter the believer only replies, “How do you know that I do not know?”
2000 102:6.5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지혜로운 논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오로지 믿음으로, 몸소 겪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생명에 관계되는 많은 일에는 확률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우주의 실체와 접촉할 때, 그러한 목적과 가치를 팔팔한 믿음으로 접근할 때 확실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지적 논리가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을 온전히 지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러한 확신을 부인하는 불신자가 이를 문제 삼을 때에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나는 안다”하고 감히 말한다. 그렇게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신자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내가 모르는 줄 네가 어찌 아는가?”[2]
2001 CM 102:6.5 하나님에 관한 신념은 현명한 이성 작용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은 오직 신앙으로 곧 개인 체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알게 된다. 삶에 관계되는 많은 일에는 가능성이 고려돼야하지만, 시공우주 실체와 접촉할 때에는, 그런 의미와 가치를 생생한 신앙으로 접근할 때 확실성을 체험할 수 있다. 지적 논리가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을 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확신을 부인하는 불신자들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에도, 하나님을-아는 혼은 “내가 안다”고 감히 말한다. 그렇게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믿는 자는 오직, “내가 알지 못함을 당신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대답할 뿐이다.
2007 URKA 102:6.5 하느님에 관한 신념은 현명한 이성 작용을 통하여 도달될 수 있지만, 각 개별존재는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개인적인 체험에 의해서만 하느님을 알게 된다. 삶에 관계하는 한, 가능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지만, 조화우주 실체와 접촉할 때에는, 그러한 의미들과 가치들이 살아있는 신앙에 의해 접근되면서 확실성이 체험될 수 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이 지식이 지적인 논리에 의해 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확신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될 경우에도, “내가 안다”고 감히 말한다. 의심하는 그러한 각 사람에게 믿는 자는 오직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대답할 뿐이다.
2025 102:6.5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지혜로운 논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오로지 믿음으로, 몸소 겪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생명에 관계되는 많은 일에는 확률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우주의 실체와 접촉할 때, 그러한 목적과 가치를 팔팔한 믿음으로 접근할 때 확실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지적 논리가 하나님을 아는 이 지식을 온전히 지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러한 확신을 부인하는 불신자가 이를 문제 삼을 때에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나는 안다”하고 감히 말한다. 그렇게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신자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내가 모르는 줄 네가 어찌 아는가?”[130][2]
1955 102:6.6 Though reason can always question faith, faith can always supplement both reason and logic. Reason creates the probability which faith can transform into a moral certainty, even a spiritual experience. God is the first truth and the last fact; therefore does all truth take origin in him, while all facts exist relative to him. God is absolute truth. As truth one may know God, but to understand—to explain—God, one must explore the fac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vast gulf between the experience of the truth of God and ignorance as to the fact of God can be bridged only by living faith. Reason alone cannot achieve harmony between infinite truth and universal fact.
2000 102:6.6 사리(事理)는 언제나 믿음을 의심할 수 있지만, 믿음은 언제나 사리와 논리를 보충할 수 있다. 사리는 확률을 만들고, 믿음은 가망성을 대단히 확실한 것으로, 아니 영적 체험으로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처음 진리이자 마지막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기원을 가지며, 한편 모든 사실은 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하나님은 절대 진리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진리임을 알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설명하기 위해서―사람은 온 우주의 사실을 탐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진실임을 체험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실에 관한 무지 사이의 엄청난 간격에는 오로지 생생한 믿음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사리만 가지고 무한한 진리와 우주의 사실을 조화시킬 수 없다.
2001 CM 102:6.6 이성은 언제든지 신앙을 의심할 수 있으나, 신앙은 항상 이성과 논리 양쪽을 보충할 수 있다. 이성은, 신앙이 도덕적 확실성으로, 그리고 심지어 영적 체험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은 최초 진리이자 최종적 사실이며;따라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고, 한편 모든 사실은 하나님에 대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하나님은 절대 진리시다. 사람은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알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려면--즉 설명하려면-- 반드시 온갖 우주라는 사실을 탐구해야한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과, 하나님이 사실임을 모르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격에는, 오직 생생한 신앙으로만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이성만으로는 무한한 진리와 보편적 사실 사이의 조화를 이룩할 수 없다.
2007 URKA 102:6.6 이성이 항상 신앙을 의심할지라도, 신앙은 항상 이성과 논리 두 가지를 다 보충할 수 있다. 이성은 신앙이 도덕적 확실성으로 그리고 심지어는 영적 체험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창조한다. 하느님은 최초의 진리이시고 최종적인 사실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진리는 그로부터 기원되는 반면, 모든 사실들은 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하느님은 절대 진리이시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진리로 알 수 있지만, 하느님을 납득하려면─설명하려면─, 그는 반드시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사실을 탐구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체험과 사실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무지 사이의 광대한 심해(深海)는 살아있는 신앙에 의해서만 연결될 수 있다. 이성 자체만으로는 무한한 진리와 우주적 사실 사이의 조화-협동을 이룰 수 없다.
2025 102:6.6 사리(事理)는 언제나 믿음을 의심할 수 있지만, 믿음은 언제나 사리와 논리를 보충할 수 있다. 사리는 확률을 만들고, 믿음은 가망성을 대단히 확실한 것으로, 아니 영적 체험으로도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처음 진실이자 마지막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진실은 하나님에게서 기원을 가지며, 한편 모든 사실은 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하나님은 절대 진실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진실임을 알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 설명하기 위해서 ― 사람은 온 우주의 사실을 탐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진실임을 체험하는 것과 하나님이 사실임을 모르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격에는 오로지 생생한 믿음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사리만 가지고 무한한 진실과 우주의 사실을 조화시킬 수 없다.
1955 102:6.7 Belief may not be able to resist doubt and withstand fear, but faith is always triumphant over doubting, for faith is both positive and living. The positive always has the advantage over the negative, truth over error, experience over theory, spiritual realities over the isolated facts of time and space. The convincing evidence of this spiritual certainty consists in the social fruits of the spirit which such believers, faithers, yield as a result of this genuine spiritual experience. Said Jesus: “If you love your fellows as I have loved you, then shall all men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2000 102:6.7 믿는 관념은 의심에 저항하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믿음은 반드시 의심을 이기며, 이는 믿음이 적극적이고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보다, 진리는 잘못보다, 체험은 이론보다, 영적 실체는 시공의 따로 떨어진 사실보다 장점이 있다. 이 영적 확신에 대하여 납득이 가는 증거는 영이 사회에서 맺는 열매에 있으며, 그러한 신자, 믿는 사람들은 이 진정한 영적 체험을 얻는 결과로서 그 열매를 맺는다. 예수는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친구들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2001 CM 102:6.7 믿음은 의심을 저지할 수 없고 두려움에 저항할 수 없을지 몰라도, 신앙은 반드시 의심을 물리치는데, 신앙은 긍정적인 동시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긍정은 부정보다, 진리는 오류보다, 체험은 이론보다, 영적 실체들은 시공간 속에서 격리된 사실보다, 항상 장점이 있다. 이 영적 확실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는, 영이 사회에서 맺는 열매에 있으며, 그런 신자{信者} 곧 신앙인은 참된 이 영적 체험의 결과로 그 열매를 맺는다. 예수께서 말씀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동료를 사랑하면, 너희가 나의 제자임을 모든 사람이 알 것이다.”
2007 URKA 102:6.7 믿음은 의심을 이겨내거나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은 항상 의심을 이겨내고 승리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긍정적이고 또한 동시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보다, 진리가 실수보다, 체험이 이론보다, 영적인 실체가 시간과 공간의 고립된 사실들보다 언제든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적인 이 확실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는, 그러한 신자들, 신앙인들이 참된 이 영적 체험의 결과로 맺힌 영의 사회적 열매 속에 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 이웃을 사랑한다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2025 102:6.7 믿는 관념은 의심에 저항하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믿음은 반드시 의심을 이기며, 이는 믿음이 적극적이고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보다, 진실은 잘못보다, 체험은 이론보다, 영적 실체는 시공의 따로 떨어진 사실보다 장점이 있다. 이 영적 확신에 대하여 납득이 가는 증거는 영이 사회에서 맺는 열매에 있으며, 그러한 신자, 믿는 사람들은 이 진정한 영적 체험을 얻는 결과로서 그 열매를 맺는다. 예수는 말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친구들을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10].”
1955 102:6.8 To science God is a possibility, to psychology a desirability, to philosophy a probability, to religion a certainty, an actuality of religious experience. Reason demands that a philosophy which cannot find the God of probability should be very respectful of that religious faith which can and does find the God of certitude. Neither should science discount religious experience on grounds of credulity, not so long as it persists in the assumption that man’s intellectual and philosophic endowments emerged from increasingly lesser intelligences the further back they go, finally taking origin in primitive life which was utterly devoid of all thinking and feeling.
2000 102:6.8 하나님은 과학에서 하나의 가능성이요, 심리학에서 바람직한 것이며, 철학에서 있음직한 것, 종교에서는 확실히 있는 것, 종교적으로 체험하는 사실이다. 있음직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철학은, 확실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하는 그 종교적 믿음을 대단히 존중해야 한다고 논리는 요구한다. 사람이 쉽게 믿는다는 이유로, 과학은 종교적 체험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지적ㆍ철학적 재산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낮은 지능에서 생겨났다고, 마침내 전혀 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원시 생명에서 기원을 가진다고 계속 가정하는 한, 그래서는 안 된다.
2001 CM 102:6.8 하나님은, 과학에서는 가능성이고, 심리학에서는 바람직함이고, 철학에서는 있음직함이고, 종교에서는 확실성 곧 종교적 체험이라는 실제상황이다. 있음직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철학은, 확실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발견하는 그 종교적 신앙을 대단히 존중해야한다고, 이성이 요구한다. 또한 사람의 지적 재능과 철학적 재능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더 열등한 지성체에서 출현하여 마침내 모든 생각과 느낌이 전혀 없는 원시 생명체에서 기원됐다고 과학이 계속 가정하는 한, 신빙성을 이유로 하여 종교 체험을 깎아내려서도 안 된다.
2007 URKA 102:6.8 과학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하나의 가능성이고, 심리학에 있어서는 바람직스러운 것이며, 철학에 있어서는 하나의 있음직한 것이고, 종교에게 있어서는 확실성, 종교적 체험이라는 하나의 실재성이다. 이성은, 있음직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는 철학이, 정확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하는 그 종교적 신앙을 매우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은 경솔한 믿음이라는 구실로 종교적 체험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며, 사람의 지적 자질과 철학적 자질이 단계적으로 더 열등한 지성으로부터 창발하였다는 가정을 고집 하는 한 그들은 더욱 뒷걸음질 쳐서 결국에는 모든 생각과 느낌이 철저히 배제된 원시적 생명에서 기원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2025 102:6.8 하나님은 과학에서 하나의 가능성이요, 심리학에서 바람직한 것이며, 철학에서 있음직한 것, 종교에서는 확실히 있는 것, 종교적으로 체험하는 사실이다. 있음직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철학은, 확실히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하는 그 종교적 믿음을 대단히 존중해야 한다고 논리는 요구한다. 사람이 쉽게 믿는다는 이유로, 과학은 종교적 체험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지적ㆍ철학적 재산이,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낮은 지능에서 생겨났다고, 마침내 전혀 생각이나 느낌이 없는 원시 생명에서 기원을 가진다고 계속 가정하는 한, 그래서는 안 된다.
1955 102:6.9 The facts of evolution must not be arrayed against the truth of the reality of the certainty of the spiritual experience of the religious living of the God-knowing mortal. Intelligent men should cease to reason like children and should attempt to use the consistent logic of adulthood, logic which tolerates the concept of truth alongside the observation of fact. Scientific materialism has gone bankrupt when it persists, in the face of each recurring universe phenomenon, in refunding its current objections by referring what is admittedly higher back into that which is admittedly lower. Consistency demands the recognition of the activities of a purposive Creator.
2000 102:6.9 진화의 여러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종교 생활에서 얻는 확실한 영적 체험이 실재한다는 진실에 맞서 대항해서는 안 된다. 총명한 사람들은 아이들처럼 따지기를 그만두고, 사실의 관찰과 나란히, 진리의 개념을 너그럽게 대하는 논리, 일관성 있는 어른의 논리를 사용하려고 애써야 한다. 거듭하여 일어나는 우주 현상 하나하나와 마주쳐서, 틀림없이 높은 것을 틀림없이 낮은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 현재의 반론을 지속해서 되풀이할 때, 과학적 유물론은 파산되었다. 일관성이 있으려면, 목적을 가진 창조자의 활동을 인정해야 한다.
2001 CM 102:6.9 진화에 속하는 여러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가 종교 생활에서 얻는 영적 체험의 확실성이, 실체라는 진리에 맞서서 대항해서는 결코 안 된다. 총명한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따지기를 멈추고, 일관성 있는 어른의 논리, 즉 사실을 관찰함과 나란히 진리 개념을 허용하는 논리를 적용하려고 애써야한다. 반복되는 우주 현상에 직면할 때마다, 명백하게 높은 것을 명백하게 낮은 것 탓으로 돌림으로써 현재의 반론을 지속해서 반박할 때, 과학적 유물론은 파산했다. 일관성이 있으려면, 목적을 지닌 창조주의 활동을 인정해야한다.
2007 URKA 102:6.9 진화의 사실들은,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가 종교적 삶에서 얻는 영적 체험의 확실성이 지니고 있는 실체의 진리에 반하여 열거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지능적 사람들은 어린아이같이 따지는 것을 멈추어야만 한다, 그리고 사실의 관찰과 함께 나란히, 진리의 개념을 너그럽게 견디어내는 논리, 어른다운 일관된 논리를 적용하려고 시도해야만 한다. 과학적 물질주의는, 되풀이되어 일어나는 각각의 우주 현상에 부딪쳐서, 명백하게 우수한 것이 명백하게 열등한 것 속으로 되돌아감으로서, 그 현재의 결함들을 배상해 주려고 끈질기게 매달려 있을 때, 파탄되어 버린다. 일관성에는 목적을 가진 창조자의 활동을 인지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
2025 102:6.9 진화의 여러 사실은,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종교 생활에서 얻는 확실한 영적 체험이 실재한다는 진실에 맞서 대항해서는 안 된다. 총명한 사람들은 아이들처럼 따지기를 그만두고, 사실의 관찰과 나란히, 진실의 개념을 너그럽게 대하는 논리, 일관성 있는 어른의 논리를 사용하려고 애써야 한다. 거듭하여 일어나는 우주 현상 하나하나와 마주쳐서, 틀림없이 높은 것을 틀림없이 낮은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 현재의 반론을 지속해서 되풀이할 때, 과학적 유물론은 파산되었다. 일관성이 있으려면, 목적을 가진 창조자의 활동을 인정해야 한다.
1955 102:6.10 Organic evolution is a fact; purposive or progressive evolution is a truth which makes consistent the otherwise contradictory phenomena of the ever-ascending achievements of evolution. The higher any scientist progresses in his chosen science, the more will he abandon the theories of materialistic fact in favor of the cosmic truth of the dominance of the Supreme Mind. Materialism cheapens human life; the gospel of Jesus tremendously enhances and supernally exalts every mortal. Mortal existence must be visualized as consisting in the intriguing and fascinating experience of the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the meeting of the human upreach and the divine and saving downreach.
2000 102:6.10 유기체의 진화는 하나의 사실이다. 의도한 진화, 곧 진취적 진화는 진실이며, 늘 올라가는 진화적 성취 현상, 다른 면에서 모순되는 현상을 일관성 있게 만든다. 어떤 과학자라도 그가 선택한 과학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최상 지성이 지배한다는 우주 진리의 편을 들어, 유물론적 사실에 근거를 둔 이론들을 점점 더 버릴 것이다. 유물론은 인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예수의 복음은 모든 필사자를 엄청나게 향상시키고 하늘 같이 높인다. 필사자의 존재는 사람이 위로 뻗은 손과 신이 아래로 뻗은 구원의 손이 만나는 현실을 깨닫는, 흥미를 자아내는 황홀한 체험이라고 상상해야 한다.
2001 CM 102:6.10 유기체의 진화는 사실이며;목적에 맞거나 점진적인 진화는, 끊임없이-증가하는 진화 성과의 모순적 현상들을 일관되게 만드는 진리이다. 어떤 과학자든지, 자신이 선택한 과학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지존자 정신이 지배한다는 시공우주 진리를 지지하여, 유물론적 사실에 근거한 이론들을 점점 더 포기하게 될 것이다. 물질주의는 인간의 생애를 값싸게 만들며;예수의 복음은 모든 필사자를 엄청나게 증진시키고 숭고하게 높여준다. 인간이 위로-뻗음과 신이 구원하려고 아래로-뻗음이 만나고 있는 현실을 깨닫는 체험, 흥미를 자아내고 매혹적인 그 체험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로 필사자 실존이라고, 마음 속에 떠올려야한다.
2007 URKA 102:6.10 유기적인 진화는 하나의 사실이다; 목적에-맞는 그 목적적인 또는 진보적인 진화는 다른 한편으로 진화의 언제까지나-상승하는 성취에서의 모순되는 현상을 일관성 있게 만드는 하나의 진리이다. 어떤 과학자라도 자신이 선택한 과학에 있어서 더욱 높게 진보하면 할수록, 그는 최극 마음의 통치에 대한 조화우주 진리를 위하여 물질주의적 사실의 이론들을 점점 더 많이 내던져 버리게 될 것이다. 물질주의는 인간의 일생을 값싸게 만든다; 예수의 복음은 모든 필사자 각자를 엄청나게 증진시키고 숭고하게 고양시킨다. 필사자 실존은, 인간의 위로-뻗는-다다름과 신성한 자 그리고 구원하는 아래로-뻗는-다다름의 만남에서의 실체의 실현에 관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매혹하고 있는 체험에 존재하는 그러한 것으로서 가시화되어야만 한다..
2025 102:6.10 유기체의 진화는 하나의 사실이다. 의도한 진화, 곧 진취적 진화는 진실이며, 늘 올라가는 진화적 성취 현상, 다른 면에서 모순되는 현상을 일관성 있게 만든다. 어떤 과학자라도 그가 선택한 과학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최상 지성이 지배한다는 우주 진실의 편을 들어, 유물론적 사실에 근거를 둔 이론들을 점점 더 버릴 것이다. 유물론은 인생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예수의 복음은 모든 필사자를 엄청나게 향상시키고 하늘 같이 높인다. 필사자의 존재는 사람이 위로 뻗은 손과 신이 아래로 뻗은 구원의 손이 만나는 현실을 깨닫는, 흥미를 자아내는 황홀한 체험이라고 상상해야 한다.
7. THE CERTITUDE OF THE DIVINE
7. 신다운 자의 확실성
7. 신성한 존재에 대한 확신
7. 신성한 자에 대한 확신감
7. 신다운 자의 확실한 계심
1955 102:7.1 The Universal Father, being self-existent, is also self-explanatory; he actually lives in every rational mortal. But you cannot be sure about God unless you know him; sonship is the only experience which makes fatherhood certain. The universe is everywhere undergoing change. A changing universe is a dependent universe; such a creation cannot be either final or absolute. A finite universe is wholly dependent on the Ultimate and the Absolute. The universe and God are not identical; one is cause, the other effect. The cause is absolute, infinite, eternal, and changeless; the effect, time-space and transcendental but ever changing, always growing.
2000 102:7.1 우주의 아버지는 스스로 존재하므로, 또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는 모든 합리적인 필사자 안에서 실제로 산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를 확신할 수 없다. 아들 신분은 아버지 신분을 확실하게 만드는 유일한 체험이다. 우주는 어디서나 변화를 겪고 있다. 변하는 우주는 의존하는 우주요, 그러한 창조는 최종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 유한한 우주는 온전히 궁극위와 절대자에게 의존한다. 우주와 하나님은 동일하지 않으니, 하나는 원인이요 다른 하나는 결과이다. 원인은 절대적이고 무한ㆍ영원하고 변함이 없다. 결과는 시공에서 일어나며, 초월성이 있지만 항상 바뀌고 언제나 성장하고 있다.
2001 CM 102:7.1 스스로-실존하시므로, 우주 아버지는 설명 역시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데;이성적인 모든 필사자 속에 실제로 사신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분에 관해 확신할 수 없으며;아들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이심을 확신하게 하는 유일한 체험이다. 우주는 어디서나 변화를 겪는다. 변화하는 우주는 종속적인 우주이며;그런 창조는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 유한한 우주는 궁극자와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종속된다. 우주와 하나님은 동일하지 않으며;하나는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다. 원인은 절대적이고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함이 없으며;결과는 시간-공간에서 일어나고, 초월적이지만 영원히 변화하고 항상 성장한다.
2007 URKA 102:7.1 자아-실존적이신 우주 아버지는 또한 자아-설명적이시다; 모든 이성적 필사자 속에 실재적으로 살아 계시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가 만일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면 그에 관하여 확신할 수 없으며; 아들관계는 아버지신분을 확실하게 만드는 유일한 체험이다. 그 우주는 어디에서나 변화를 겪는다. 변화하는 우주는 종속적인 우주이다; 그러한 창조는 최종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유한(有限)한 우주는 궁극자와 절대자에게 온통 종속된다. 우주와 하느님은 일치되지 않는다; 하나는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이다. 그 원인은 절대적이고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화가 없으며; 그 결과는 시간-공간이며 초월적이지만 영원히 변화하고 항상 성장한다.
2025 102:7.1 우주의 아버지는 스스로 존재하므로, 또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는 모든 합리적인 필사자 안에서 실제로 산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를 확신할 수 없다. 아들 신분은 아버지 신분을 확실하게 만드는 유일한 체험이다. 우주는 어디서나 변화를 겪고 있다. 변하는 우주는 의존하는 우주요, 그러한 창조는 최종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 유한한 우주는 온전히 궁극위와 절대자에게 의존한다. 우주와 하나님은 동일하지 않으니, 하나는 원인이요 다른 하나는 결과이다. 원인은 절대적이고 무한ㆍ영원하고 변함이 없다. 결과는 시공에서 일어나며, 초월성이 있지만 항상 바뀌고 언제나 성장하고 있다.
1955 102:7.2 God is the one and only self-caused fact in the universe. He is the secret of the order, plan, and purpose of the whole creation of things and beings. The everywhere-changing universe is regulated and stabilized by absolutely unchanging laws, the habits of an unchanging God. The fact of God, the divine law, is changeless; the truth of God, his relation to the universe, is a relative revelation which is ever adaptable to the constantly evolving universe.
2000 102:7.2 하나님은 우주에서 스스로 원인이 된, 하나 뿐인 사실이다. 그는 사물과 존재들로 이루어진 온 창조의 질서ㆍ계획ㆍ목적의 비밀이다. 어디서나 변하는 우주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법칙,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버릇에 따라서 규제되고 안정된다. 하나님의 사실, 신의 법칙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진실, 그와 우주의 관계는 항상 진화하는 우주에 늘 적응할 수 있는 상대적 계시이다.
2001 CM 102:7.2 하나님은 우주에서 오직 한 분인, 스스로-원인이 되신 실상{實狀}이다. 그는 사물과 존재들로 이뤄진 온 창조의 질서와 계획과 목적의 비결이시다. 어디서나 변하는 우주는, 절대로 불변하는 법칙, 즉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기질에 따라서 통제되고 안정된다. 하나님의 실상 곧 신의 법칙은 변함없으며;하나님의 진리 곧 그분과 우주의 관계는, 항상 진화하는 우주에 언제나 적응할 수 있는 상대적 계시{啓示}이다.
2007 URKA 102:7.2 하느님은 한 분이고 그리고 우주 안에서 자아-원인이 되는 오직 유일한 사실이다. 그는 물체들과 존재들에 대한 전체 창조의 계층과 계획과 목적의 비밀이시다. 어디에서나 변화하는 우주는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법칙들,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기질에 의해서 규제되고 안정된다. 하느님의 사실, 신성한 법칙은 변함이 없으며; 하느님의 진리, 그가 우주와 가지는 관계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우주에 언제까지도 적응할 수 있는 상대적 계시이다.
2025 102:7.2 하나님은 우주에서 스스로 원인이 된, 하나뿐인 사실이다. 그는 사물과 존재들로 이루어진 온 창조의 질서ㆍ계획ㆍ목적의 비밀이다. 어디서나 변하는 우주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법칙,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버릇에 따라서 규제되고 안정된다. 하나님의 사실, 신의 법칙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진실, 그와 우주의 관계는 항상 진화하는 우주에 늘 적응할 수 있는 상대적 계시이다.
1955 102:7.3 Those who would invent a religion without God are like those who would gather fruit without trees, have children without parents. You cannot have effects without causes; only the I AM is causeless. The fact of religious experience implies God, and such a God of personal experience must be a personal Deity. You cannot pray to a chemical formula, supplicate a mathematical equation, worship a hypothesis, confide in a postulate, commune with a process, serve an abstraction, or hold loving fellowship with a law.
2000 102:7.3 하나님 없이 종교를 발명하려고 하는 자는 나무 없이 열매를 모으고, 부모 없이 아이들을 가지려 하는 자와 같다. 너희는 원인 없이 결과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스스로 계신 이만 원인이 없다. 종교적 체험이 일어나는 사실은 하나님이 계심을 가리키며, 사람이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그러한 하나님은 성격을 가진 신인 것이 틀림없다. 너희는 어느 화학 공식에게 빌거나, 어느 수학 등식에게 애걸하거나, 어느 가정(假定)을 숭배하거나, 어떤 가설에게 속을 털어놓거나, 어떤 과정과 교통하거나, 어떤 추상(抽象)에게 봉사하거나, 어떤 법칙과 함께 사랑에 넘치는 교제를 가질 수 없다.
2001 CM 102:7.3 하나님 없이 종교를 창안하려는 자는, 나무 없이 과일을 모으려하거나, 부모 없이 자녀를 두려는 사람과 같다. 너희는 원인 없이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으며;오직 자존자{自存者}만 원인이 없다. 종교 체험의 실상은 하나님을 내포하며, 개인이 체험하는 그런 하나님은 인격있는 신격이어야 한다. 너희는 화학 공식에게 기도하거나, 수학 방정식에게 간구하거나, 가정{假定}을 경배하거나, 공리를 신뢰하거나, 과정과 사귀거나, 추상 개념을 섬기거나, 또는 애정어린 친교를 법칙과 나눌 수 없다.
2007 URKA 102:7.3 하느님 없이 종교를 창안하려는 사람들은 나무 없이 과일을 모으려는, 부모 없이 자녀를 가지려는 사람들과 같다. 너희는 원인이 없는 결과를 소유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 이신 이만이 원인이 없으시다. 종교적 체험의 사실은 하느님을 내포하며, 개인적 체험의 그러한 하느님은 반드시 개인적 신(神)이어야만 한다. 너희는 하나의 화학 공식에게 기도하거나, 수학 방정식에게 탄원하거나, 가상적 추측을 경배하거나, 가설을 믿고 속을 털어놓거나, 일련의 수행과정과 교통하거나, 추상개념을 섬기거나, 또는 어떤 법칙과 사랑에 넘치는 우애관계를 가질 수 없다.
2025 102:7.3 하나님 없이 종교를 발명하려고 하는 자는 나무 없이 열매를 모으고, 부모 없이 아이들을 가지려 하는 자와 같다. 너희는 원인 없이 결과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스스로 계신 이만 원인이 없다. 종교적 체험이 일어나는 사실은 하나님이 계심을 가리키며, 사람이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그러한 하나님은 성격을 가진 신인 것이 틀림없다. 너희는 어느 화학 공식에게 빌거나, 어느 수학 등식에게 애걸하거나, 어느 가정(假定)을 숭배하거나, 어떤 가설에게 속을 털어놓거나, 어떤 과정과 교통하거나, 어떤 추상(抽象)에게 봉사하거나, 어떤 법칙과 사랑에 넘치는 교제를 가질 수 없다.
1955 102:7.4 True, many apparently religious traits can grow out of nonreligious roots. Man can, intellectually, deny God and yet be morally good, loyal, filial, honest, and even idealistic. Man may graft many purely humanistic branches onto his basic spiritual nature and thus apparently prove his contentions in behalf of a godless religion, but such an experience is devoid of survival values, God-knowingness and God-ascension. In such a mortal experience only social fruits are forthcoming, not spiritual. The graft determines the nature of the fruit, notwithstanding that the living sustenance is drawn from the roots of original divine endowment of both mind and spirit.
2000 102:7.4 겉보기에 종교적인 여러 특성이 비종교적 뿌리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참말이다. 사람은 지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래도 도덕적으로 선하고 충성스럽고, 효도하고 정직하며, 아니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다. 사람은 순전히 인도주의인 많은 가지를 그의 기본 영적 성품에 접붙이고, 이처럼 신이 없는 종교의 편을 들어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체험에는 살아남는 가치,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빠져 있다. 그러한 필사 체험에는 겨우 사회적 열매는 열려도, 영적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신이 최초에 부여한 지성과 영의 뿌리로부터 살아 있는 영양소를 뽑아내는데도, 접붙임은 그 열매의 성질을 결정한다.
2001 CM 102:7.4 사실,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인 많은 특징이, 비종교적 근원에서 자라날 수 있다. 사람은, 지적으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면서도, 도덕적으로는 선하고 충실하고 효심 있고 정직하고 심지어 이상적일 수도 있다. 사람은, 순전히 인본주의적인 많은 가지를 자신의 기본적인 영적 본성에 접목{接木}시키고, 이처럼 신이 없는 종교의 편을 들어서 자기 주장을 증명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체험에는, 생존하는 가치, 즉 하나님을-알아감과 하나님께로-상승함이 빠져있다. 그런 필사자 체험에는, 영적 열매가 아니라 오직 사회적 열매만 맺힌다. 신이 원래 내려준 정신과 영의 뿌리로부터 생존을 위한 자양물을 흡수함에도, 어디에 접목됐는지에 따라서 열매의 본질이 결정된다.
2007 URKA 102:7.4 사실,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인 많은 특색들이 비종교적인 근원으로부터 자라날 수 있다. 사람은 지적으로 하느님을 부정하면서도 도덕적으로는 선하고 충실하며 효심이 있고 정직하며 심지어는 이상적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기본적인 영적 자연본성 위에 순전히 인본주의적인 많은 가지들을 접목시킬 수 있지만, 그러한 체험은 생존되는 가치들, 하느님을 알아감과 하느님께로 상승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한 인간적 체험 속에는 영적인 열매들이 아니라 오직 사회적인 열매들만이 맺힌다. 생존을 위한 자양물이 마음과 영 두 가지의 기원적인 신성한 자질의 뿌리로부터 흡수됨에도 불구하고, 그 접목이 열매의 본성을 결정한다.
2025 102:7.4 겉보기에 종교적인 여러 특성이 비종교적 뿌리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참말이다. 사람은 지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래도 도덕적으로 선하고 충성스럽고, 효도하고 정직하며, 아니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다. 사람은 순전히 인도주의인 많은 가지를 그의 기본 영적 성품에 접붙이고, 이처럼 신이 없는 종교의 편을 들어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체험에는 살아남는 가치,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 빠져 있다. 그러한 필사 체험에는 겨우 사회적 열매가 열리지만, 영적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신이 최초에 부여한 지성과 영의 뿌리에서 살아 있는 영양소를 뽑아내는데도, 접붙임은 그 열매의 성질을 결정한다.
1955 102:7.5 The intellectual earmark of religion is certainty; the philosophical characteristic is consistency; the social fruits are love and service.
2000 102:7.5 종교의 지적(知的) 표시는 확신이다. 그 철학적 특징은 일관성이요, 사회적 열매는 사랑과 봉사이다.
2001 CM 102:7.5 종교의 지적 표식은 확실성이며;철학적 특질은 일관성이며;사회적 열매는 사랑과 봉사다.
2007 URKA 102:7.5 종교의 지적인 특징은 확실성이다; 철학적 특징은 일관성이고; 사회적인 열매들은 사랑과 봉사이다.
1955 102:7.6 The God-knowing individual is not one who is blind to the difficulties or unmindful of the obstacles which stand in the way of finding God in the maze of superstition, tradition, and materialistic tendencies of modern times. He has encountered all these deterrents and triumphed over them, surmounted them by living faith, and attained the highlands of spiritual experience in spite of them. But it is true that many who are inwardly sure about God fear to assert such feelings of certainty because of the multiplicity and cleverness of those who assemble objections and magnify difficulties about believing in God. It requires no great depth of intellect to pick flaws, ask questions, or raise objections. But it does require brilliance of mind to answer these questions and solve these difficulties; faith certainty is the greatest technique for dealing with all such superficial contentions.
2000 102:7.6 하나님을 아는 개인은 미신과 전통, 그리고 현대의 유물론 경향이 있는 미로에서 하나님 찾아내는 길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못보거나 장애물을 눈치채지 못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 모든 방해물과 마주쳐서 이겼고, 팔팔한 믿음으로 이겨내고, 방해물이 있는데도 영적 체험의 고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을 수집하고 어려움을 불리는 자들이 허다하고 영리하기 때문에, 속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확신하는 많은 사람이 그런 확신의 느낌을 주장하기 두려워한다. 결점을 찾아내거나, 질문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놓는 데는 아무런 대단한 지능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이 여러 물음에 대답하고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눈부신 지성이 요구된다. 모든 그러한 피상적 주장을 다루는 데는 믿음의 확신이 가장 좋은 기법이다.
2001 CM 102:7.6 하나님을-아는 개인은, 미신과 전통과 현대 유물론 경향이 있는 미로{迷路}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문제들을 못 보거나, 장애물을 눈치 채지 못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런 모든 방해물에 봉착해왔고, 그것들을 극복했고, 생생한 신앙으로 이겨냈고, 방해물이 있음에도 영적 체험의 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을 모으면서 어려움을 부풀리는 자들이 허다하고 교묘하기 때문에, 속으로 하나님에 관해서 확신하는 많은 사람이, 그런 확실성의 느낌을 주장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함을 골라내거나, 질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데는 아무런 대단한 지능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이런 여러 질문에 대답하고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뛰어난 정신이 요구되며;그런 모든 하찮은 논쟁을 처리하는 데는, 신앙 확실성이 가장 탁월한 기법이다.
2007 URKA 102:7.6 하느님을 아는 개별존재는 현대 시대의 미신, 전통 그리고 물질주의적 성향의 미로들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려움을 눈이 멀어 보지 못하거나 장애물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러한 모든 방해물에 봉착해 왔고 그것들을 극복하였으며, 그것들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이겨내었으며, 방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체험의 고지(高地)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깊이 확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것에 대한 반대 주장들을 끌어 모으고 그 어려움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의 그 다양성과 교묘함 때문에 확실성에서의 그 어떤 느낌들을 강력히 주장하기를 두려워한다. 결점을 찾아내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반대 주장을 제기하는 것에는 그 어떤 아무런 지성의 깊은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 질문에 대답하고 이들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는 마음의 눈부신 재기(才氣)가 요구된다; 신앙의 확실성은 그러한 모든 피상적인 논쟁들을 다루는 데에서 가장 위대한 기법이다.
2025 102:7.6 하나님을 아는 개인은 미신과 전통, 그리고 현대의 유물론 경향이 있는 미로에서 하나님 찾아내는 길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못 보거나 장애물을 눈치채지 못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 모든 방해물과 마주쳐서 이겼고, 팔팔한 믿음으로 이겨내고, 방해물이 있는데도 영적 체험의 고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대 의견을 수집하고 어려움을 불리는 자들이 허다하고 영리하기 때문에, 속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확신하는 많은 사람이 그런 확신의 느낌을 주장하기 두려워한다. 결점을 찾아내거나, 질문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놓는 데는 아무런 대단한 지능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이 여러 물음에 대답하고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눈부신 지성이 요구된다. 모든 그러한 피상적 주장을 다루는 데는 믿음의 확신이 가장 좋은 기법이다.
1955 102:7.7 If science, philosophy, or sociology dares to become dogmatic in contending with the prophets of true religion, then should God-knowing men reply to such unwarranted dogmatism with that more farseeing dogmatism of the certainty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I know what I have experienced because I am a son of I AM.” If the personal experience of a faither is to be challenged by dogma, then this faith-born son of the experiencible Father may reply with that unchallengeable dogma, the statement of his actual sonship with the Universal Father.
2000 102:7.7 과학이나 철학이나 또는 사회학이 참된 종교의 선지자들과 싸우는 데 감히 독단적이 된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근거없는 독단적 태도에, 개인의 확실한 영적 체험에서 생긴 태도, 더 멀리 내다보는 독단적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계신 이의 아들이니까, 내가 무엇을 겪었는가 알고 있다.” 한 신자의 개인적 체험이 독단(獨斷)에 도전받는다면,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 믿음으로 태어난 이 아들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바로 그 독단으로, 자기가 실제로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말로 대답해도 좋다.
2001 CM 102:7.7 과학이나 철학 또는 사회학이 참된 종교의 선지자들과 논쟁함에서 감히 독단적이 된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나는 자존자의 아들이므로 내가 무엇을 체험했는지 안다”고 하면서, 개인의 확실한 영적 체험에서 생긴, 더 선견지명 있는 독단적 태도로, 그런 근거 없는 독단적 태도에 답변해야한다. 한 신앙인의 개인 체험이 교의{敎義}의 도전을 받는다면, 체험-가능한 아버지의 이 신앙-아들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그 교의, 즉 자신이 실제로 우주 아버지의 자녀라는 진술로 응답해도 좋다.
2007 URKA 102:7.7 만약에 과학이나 철학 또는 사회학이 참된 종교의 선지자들과 논쟁하는 데 있어서 감히 독단적인 상태가 된다면,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나는 스스로 이신 이의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체험한 것을 안다”고 하면서 개인적인 영적 체험의 확실성에 대한 더욱 선견지명이 있는 독단적인 태도로 그러한 인정할 수 없는 독단적인 태도에 답변해야만 한다. 만약에 신앙인의 개인적인 체험이 독단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된다면, 체험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 신앙으로 태어난 이 아들은 도전할 수 없는 독단, 곧 자신의 우주 아버지에 대한 실재적 자녀관계를 선언하는 것으로 응답할 수도 있다.
2025 102:7.7 과학이나 철학이나 또는 사회학이 참된 종교의 선지자들과 싸우는 데 감히 독단적이 된다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근거 없는 독단적 태도에, 개인의 확실한 영적 체험에서 생긴 태도, 더 멀리 내다보는 독단적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계신 이의 아들이니까, 내가 무엇을 겪었는가 알고 있다.” 한 신자의 개인적 체험이 독단(獨斷)에 도전을 받는다면,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 믿음으로 태어난 이 아들은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바로 그 독단으로, 자기가 실제로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말로 대답해도 좋다.[3]
1955 102:7.8 Only an unqualified reality, an absolute, could dare consistently to be dogmatic. Those who assume to be dogmatic must, if consistent, sooner or later be driven into the arms of the Absolute of energy, the Universal of truth, and the Infinite of love.
2000 102:7.8 오로지 무조건의 실체, 한 절대자가 감히 한결같이 독단을 주장할 수 있다. 독단을 주장하려고 가정하는 자는, 일관성이 있다면 머지않아 에너지 절대자, 보편적 진리, 무한한 사랑의 품으로 끌려감이 틀림없다.
2001 CM 102:7.8 제한없는 실체 곧 절대 존재만이, 감히 일관되게 독단적일 수 있다. 독단적 상태가 되려는 자는, 지조가 있다면, 절대자의 에너지와 우주적 존재의 진리와 무한자의 사랑의 품속으로 곧 이끌릴 수밖에 없다.
2007 URKA 102:7.8 분별불가적인 유일한 실체, 절대는 감히 일관되게 독단적으로 될 수 있다. 독단적으로 되려는 자들이, 만약 일관성이 있다면, 머지않아 에너지에서의 절대자, 진리에서의 우주자, 그리고 사랑에서의 무한자의 품안으로 몰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2025 102:7.8 오로지 무조건의 실체, 한 절대자가 감히 한결같이 독단을 주장할 수 있다. 독단을 주장하려고 가정하는 자는, 일관성이 있다면 머지않아 에너지 절대자, 진실의 우주자, 사랑의 무한자의 품으로 끌려감이 틀림없다.
1955 102:7.9 If the nonreligious approaches to cosmic reality presume to challenge the certainty of faith on the grounds of its unproved status, then the spirit experiencer can likewise resort to the dogmatic challenge of the facts of science and the beliefs of philosophy on the grounds that they are likewise unproved; they are likewise experiences in the consciousness of the scientist or the philosopher.
2000 102:7.9 우주 실체에 이르는 비종교적 접근이, 믿음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를 이유로 감히 믿음의 확신에 도전하면, 영을 체험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과학이 다루는 사실과 철학 관념들이 마찬가지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 독단으로 도전하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이 사실과 관념들이 마찬가지로, 과학자나 철학자의 의식 속에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2001 CM 102:7.9 시공우주 실체에 이르는 비종교적 접근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를 이유로 감히 신앙의 확실성에 도전한다면, 영을 체험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과학이 다루는 사실과 철학의 믿음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에 독단적으로 도전하는 길을 택할 수 있는데;이 사실과 믿음도 마찬가지로, 과학자나 철학자의 의식 속에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2007 URKA 102:7.9 만약에 조화우주 실체에 대한 비종교적 접근이 그것의 입증되지 않은 상태를 이유로 하여 신앙의 확실성에 도전하려고 생각한다면, 영을 체험한 그 사람은 과학의 사실들과 철학의 믿음도 마찬가지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들에 대한 독단적 도전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것들도 마찬가지로 과학자와 철학자의 의식 속에 있는 체험들이다.
2025 102:7.9 우주 실체에 이르는 비종교적 접근이, 믿음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를 이유로 감히 믿음의 확신에 도전하면, 마찬가지로, 영을 체험한 사람은 과학이 다루는 사실과 철학 관념들이 똑같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 독단으로 도전하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이 사실과 관념들이 마찬가지로, 과학자나 철학자의 의식 속에 있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1955 102:7.10 Of God, the most inescapable of all presences, the most real of all facts, the most living of all truths, the most loving of all friends, and the most divine of all values, we have the right to be the most certain of all universe experiences.
2000 102:7.10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피할 수 없고, 모든 사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며, 모든 진리 가운데 가장 생생하고, 모든 친구 가운데 가장 사랑이 많으며,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신성한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는 모든 우주 체험 중에서 가장 확실히 해 둘 권리가 있다.
2001 CM 102:7.10 모든 현존 중에서 가장 불가피한, 모든 사실 중에서 가장 실제적인, 모든 진리 중에서 가장 생생한, 모든 친구 가운데서 가장 사랑스런, 그리고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신성한 하나님이, 전체 우주 체험 중에서 가장 확실하다고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2007 URKA 102:7.10 우리는 모든 현존들 중에서 가장 불가피한, 모든 사실들 중에서 가장 실제적인, 모든 진리들 중에서 가장 살아있는, 모든 친구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리고 모든 가치들 중에서 가장 신성한 분이신 하느님을, 모든 우주 체험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2025 102:7.10 모든 존재 중에서 가장 피할 수 없고, 모든 사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며, 모든 진실 가운데 가장 생생하고, 모든 친구 가운데 가장 사랑이 많으며,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신성한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는 모든 우주 체험 중에서 아주 확실히 해 둘 권리가 있다.
8. THE EVIDENCES OF RELIGION
8. 종교의 증거
8. 종교의 징표
8. 종교의 징표들
8. 종교의 증거
1955 102:8.1 The highest evidence of the reality and efficacy of religion consists in the fact of human experience; namely, that man, naturally fearful and suspicious, innately endowed with a strong instinct of self-preservation and craving survival after death, is willing fully to trust the deepest interests of his present and future to the keeping and direction of that power and person designated by his faith as God. That is the one central truth of all religion. As to what that power or person requires of man in return for this watchcare and final salvation, no two religions agree; in fact, they all more or less disagree.
2000 102:8.1 종교의 실체와 효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는 인간이 체험하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천성으로 두려움이 많고 의심하며, 자아를 보존하려는 강한 본능과 죽은 뒤에 살아남고 싶은 갈망을 날 때부터 가진 그 사람은, 오늘과 앞날의 아주 깊은 관심거리를 그의 믿음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권능과 성격자가 보호하고 지도하도록 기꺼이 완전히 맡기려 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한 핵심 진리이다. 이러한 보살핌과 마지막 구원을 받는 값으로 그 권능이나 성격자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하여 어떤 두 종교도 의견이 같지 않다. 사실, 그 종교들은 모두 얼마큼 의견이 다르다.
2001 CM 102:8.1 종교의 실체와 효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징표는, 인간 체험이라는 사실에 있는데;다시 말해서, 선천적으로 두려움이 많고 의심하는 그 사람, 강한 자아-보존 본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시에, 죽음 이후에 생존하기를 갈망하는 그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권능과 인격자가 보존하고 지도하도록,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가장 깊은 관심을, 기꺼이 전적으로 맡기려고 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유일한 중심 진리다. 그 권능 또는 인격자가 이런 보호와 최종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하여, 어떤 두 종교도 일치하지 않으며;사실, 그 종교들은 모두 대체로 의견이 다르다.
2007 URKA 102:8.1 종교의 실체와 효력에 대한 가장 높은 증거는 인간 체험의 사실 속에 들어있다; 말하자면, 자연본성적으로 두려움이 많고 의심하며, 자아-보존의 강한 본능과 죽음 이후의 생존 갈망을 태생적으로 자질로서 부여받은 인간은, 자신의 신앙에 따라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는 그 힘과 개인의 보호와 지도에 대한 그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가장 깊은 관심을 기꺼이 전적으로 신뢰하려 한다. 그것이 모든 종교의 하나의 중심적 진리이다. 그 힘 또는 개인이 이러한 보호와 최종적인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두 종교도 의견이 같지 않다; 사실 종교들은 모두 다소 의견이 다르다.
2025 102:8.1 종교의 실체와 효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는 인간이 체험하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천성으로 두려움이 많고 의심하며, 자아를 보존하려는 강한 본능, 그리고 죽은 뒤에 살아남고 싶은 갈망을 날 때부터 가진 그 사람은, 오늘과 앞날의 아주 깊은 관심거리를 그의 믿음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권능과 성격자가 보호하고 지도하라고 기꺼이 완전히 맡기려 한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한 가지 핵심 진실이다. 이러한 보살핌과 마지막 구원을 받는 값으로 그 권능이나 성격자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하여 어떤 두 종교도 의견이 같지 않다. 사실, 그 종교들은 모두 얼마큼 의견이 다르다.
1955 102:8.2 Regarding the status of any religion in the evolutionary scale, it may best be judged by its moral judgments and its ethical standards. The higher the type of any religion, the more it encourages and is encouraged by a constantly improving social morality and ethical culture. We cannot judge religion by the status of its accompanying civilization; we had better estimate the real nature of a civilization by the purity and nobility of its religion. Many of the world’s most notable religious teachers have been virtually unlettered. The wisdom of the world is not necessary to an exercise of saving faith in eternal realities.
2000 102:8.2 어떤 종교라도 진화의 눈금에서 그 종교가 차지하는 지위에 관해서 말한다면, 종교를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어떤 종교라도 그 종류가 높을수록, 항상 나아지는 사회적 도덕과 윤리적 문화를 권장하며, 또한 이에 격려를 받는다. 우리는 종교를 그에 수반되는 문명의 상태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 차라리 한 문명의 참 본질을 자체 종교의 순수함과 고상함에 따라서 추정하는 것이 좋다.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많은 종교 스승은 거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세상의 지혜는 영원한 실체들을 믿는 유익한 믿음을 실천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2001 CM 102:8.2 어떤 종교든지 진화의 척도에서 그 종교가 차지하는 지위에 관하여 말하자면,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기준으로 종교를 평가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어떤 종교든지 높은 유형일수록, 계속 개선되는 사회적 도덕과 윤리적 문화를 더 권장하고, 또한 이에 격려 받는다. 우리는 종교를 그 종교에 수반되는 문명의 상태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으며;차라리 문명의 실제 본성을 자체 종교의 순수함과 고결함에 따라서 추정하는 것이 좋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많은 종교 선생은 거의 교육받지 않았다. 영원한 실체들을 믿는 구원하는 신앙을 실천하는 데, 세상의 지혜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2007 URKA 102:8.2 진화적인 척도에서는 그 어떤 종교라도 지위에 관한 한, 도덕적 심판과 윤리적 기준에 의해 판결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 어떤 종교도 유형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것은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사회적 도덕성과 윤리적 문화를 점점 더 북돋우고 그리고 또한 그것들에 의해 더욱 북돋아진다. 우리는 종교를 그에 수반되는 문명의 지위에 따라서 판결할 수는 없다; 한 문명에서의 종교가 갖는 순수성과 고결성에 따라서 실제적 본성을 추정하는 것이 더 좋았었다. 세상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종교적 스승들의 대부분은 실질적으로는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영원한 실체를 믿는 구원하는 신앙을 실천하는 데에 세상의 지혜는 필요하지 않다.
2025 102:8.2 어떤 종교라도 진화의 눈금에서 그 종교가 차지하는 지위에 관해서 말한다면, 종교를 도덕적 판단과 윤리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어떤 종교라도 그 종류가 높을수록, 항상 나아지는 사회적 도덕과 윤리적 문화를 권장하며, 또한 이에 격려를 받는다. 우리는 종교를 그에 수반되는 문명의 상태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 차라리 한 문명의 참 본질을 자체 종교의 순수함과 고상함에 따라서 추정하는 것이 좋다.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많은 종교 스승은 거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세상의 지혜는 영원한 실체들을 믿는 유익한 믿음을 실천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1955 102:8.3 The difference in the religions of various ages is wholly dependent on the difference in man’s comprehension of reality and on his differing recognition of moral values, ethical relationships, and spirit realities.
2000 102:8.3 다른 시대에 있던 여러 종교의 차이점은 사람이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 그리고 도덕적 가치, 윤리적 관계, 영적 실체들을 사람이 다르게 인식하는 데 온통 의존한다.
2001 CM 102:8.3 다양한 시대에 있던 여러 종교의 차이점은, 사람이 실체를 다르게 납득함에, 그리고 도덕적 가치관과 윤리적 관계와 영적 실체들을 사람이 다르게 인식함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2007 URKA 102:8.3 다양한 시대들의 종교들 속에 있는 차이는 도덕적 가치들과 윤리적 관계들 그리고 영적인 실체들에 대한 그의 상이한 이해에 따라서 그리고 실체에 대한 사람의 이해에 있어서의 차이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진다.
2025 102:8.3 다른 시대에 있던 여러 종교의 차이점은 사람이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 그리고 도덕적 가치, 윤리적 관계, 영적 실체들을 사람이 다르게 인식하는 데 온통 의존한다.
1955 102:8.4 Ethics is the external social or racial mirror which faithfully reflects the otherwise unobservable progress of internal spiritual and religious developments. Man has always thought of God in the terms of the best he knew, his deepest ideas and highest ideals. Even historic religion has always created its God conceptions out of its highest recognized values. Every intelligent creature gives the name of God to the best and highest thing he knows.
2000 102:8.4 윤리는 다른 방법으로 지켜볼 수 없는, 내부의 영적ㆍ종교적 성장의 걸음을 충실하게 비치는 영원한 거울, 사회나 종족의 거울이다. 사람은 언제나 그가 아는 최선의 조건으로, 가장 깊은 개념과 가장 높은 이상의 조건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다. 역사적 종교도 반드시 그 종교가 인정하는 가장 높은 가치 기준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지적 인간이 그가 아는 바 가장 좋고 가장 높은 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다.
2001 CM 102:8.4 윤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내면의 영적 발전과 종교적 발전의 진보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영원한 사회적 또는 인종적 거울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알았던 최상의 용어 곧 가장 심오한 관념과 가장 높은 이상{理想}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생각해왔다. 심지어 역사적 종교도, 반드시 그 종교가 인정하는 최고 가치기준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고안해냈다. 지성을 지닌 모든 피조물은, 자기가 아는 바 가장 선하고 가장 높은 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여한다.
2007 URKA 102:8.4 윤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내부적인 영적 그리고 종교적 발전의 진보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영원한 사회적 또는 인종적 거울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았던 최상의 용어, 가장 심오한 관념들과 가장 높은 이상으로 항상 하느님을 생각해 왔다. 심지어는 역사적인 종교도 그것의 하느님 개념을 가장 높게 이해된 그것의 가치들로부터 항상 창조해 왔다. 지성을 가진 모든 창조체들은 자기가 아는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것이 되도록 하느님의 이름을 부여한다.
2025 102:8.4 윤리는 다른 방법으로 지켜볼 수 없는, 내부의 영적ㆍ종교적 성장의 걸음을 충실하게 비치는 영원한 거울, 사회나 종족의 거울이다. 사람은 언제나 그가 아는 최선의 조건으로, 가장 깊은 개념과 가장 높은 이상의 조건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다. 역사적 종교도 반드시 그 종교가 인정하는 가장 높은 가치 기준에서 하나님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지적 인간이 그가 아는 바 가장 좋고 가장 높은 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다.
1955 102:8.5 Religion, when reduced to terms of reason and intellectual expression, has always dared to criticize civilization and evolutionary progress as judged by its own standards of ethical culture and moral progress.
2000 102:8.5 종교가 사리와 지적 표현 방식으로 격하될 때, 자체의 윤리적 문화와 도덕적 진보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는 대로, 종교는 언제나 감히 문명과 진화하는 진보를 비판해 왔다.
2001 CM 102:8.5 이성적이고 지적인 표현 방식으로 격하될 때, 종교는 자체의 윤리적 문화와 도덕적 진보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했던 대로, 언제나 감히 문명과 진화적 진보를 비판해왔다.
2007 URKA 102:8.5 종교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언어로 축소될 때, 언제든지 문명과 진화적 발전을 윤리적 문화와 도덕적 진보에 대한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감히 비판하였다.
2025 102:8.5 종교가 사리와 지적 표현 방식으로 격하될 때, 자체의 윤리적 문화와 도덕적 진보의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는 대로, 종교는 언제나 감히 문명과 진화하는 진보를 비판해 왔다.
1955 102:8.6 While personal religion precedes the evolution of human morals, it is regretfully recorded that institutional religion has invariably lagged behind the slowly changing mores of the human races. Organized religion has proved to be conservatively tardy. The prophets have usually led the people in religious development; the theologians have usually held them back. Religion, being a matter of inner or personal experience, can never develop very far in advance of the intellectual evolution of the races.
2000 102:8.6 개인적 종교는 인간의 도덕의 진화를 앞서지만, 제도가 된 종교는 천천히 바뀌는 인류의 도덕 관습 뒤에 변함없이 처졌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은 유감이다. 조직된 종교는 보수적으로 느린 것이 입증되었다. 종교의 발전에서 보통,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신학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었다. 종교는 마음 속의 문제, 즉 개인이 체험하는 문제이니까, 결코 종족들의 지적 진화보다 훨씬 앞서 발달할 수 없다.
2001 CM 102:8.6 개인적 종교는 인간 도덕의 진화보다 앞서지만, 제도화된 종교는, 느리게 발생되는 인류의 서서히 변하는 사회관행보다 항상 뒤쳐졌다고 기록하는 것은 유감이다. 조직화된 종교는 보수적으로 더딘 것이 입증돼왔다. 종교적 발전을 이루도록, 대개 선지자들이 사람을 인도해왔으며;신학자는 대개 그들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들어왔다. 종교는 내적{內的} 문제 곧 개인적 체험의 문제이므로, 결코 종족들의 지적 진화보다 훨씬 앞서서 발달할 수 없다.
2007 URKA 102:8.6 개인적 종교가 인간 도덕의 진화를 앞서는 반면, 제도적인 종교는 인간 종족들의 천천히 바뀌는 사회관례보다도 변함없이 뒤쳐져 있음이 기록되고 있으니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조직화된 종교는 보수적으로 뒤쳐지게 된다는 것이 증명되어 왔다. 선지자들이 보통 종교적 발전에서 민족을 이끌었다; 신학자들은 보통 그들이 뒤돌아 제자리에 있도록 붙들어 왔다. 종교는, 내적인 곧 개인적 체험의 문제이며, 결코 종족들의 지적 진화보다 훨씬 멀리 앞서서 발전할 수는 없다.
2025 102:8.6 개인적 종교는 인간의 도덕의 진화보다 앞서 가지만, 제도가 된 종교는 천천히 바뀌는 인류의 도덕 관습 뒤에 변함없이 처졌다는 것을 기록하니 유감이다. 조직된 종교는 보수적으로 느린 것이 입증되었다. 종교의 발전에서 보통,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신학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었다. 종교는 마음 속의 문제, 즉 개인이 체험하는 문제이니까, 결코 종족들의 지적 진화보다 훨씬 앞서 발달할 수 없다.
1955 102:8.7 But religion is never enhanced by an appeal to the so-called miraculous. The quest for miracles is a harking back to the primitive religions of magic. True religion has nothing to do with alleged miracles, and never does revealed religion point to miracles as proof of authority. Religion is ever and always rooted and grounded in personal experience. And your highest religion, the life of Jesus, was just such a personal experience: man, mortal man, seeking God and finding him to the fullness during one short life in the flesh, while in the same human experience there appeared God seeking man and finding him to the full satisfaction of the perfect soul of infinite supremacy. And that is religion, even the highest yet revealed in the universe of Nebadon—the earth life of Jesus of Nazareth.
2000 102:8.7 그러나 종교는 결코, 이른바 기적 같은 것에 호소함으로 향상될 수 없다.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원시의 마술 종교를 돌이켜 부르는 것이다. 참된 종교는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고, 계시된 종교는 권위를 증명하려고 기적을 내세우지 않는다. 종교는 늘, 언제나 개인의 체험에 뿌리를 내리고 그에 바탕을 둔다. 너희의 가장 높은 종교, 예수의 일생은, 바로 그렇게 몸소 겪은 체험이었다: 육체를 입고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찾다가 한껏 찾아내는 사람, 필사 인간이었고, 한편 바로 그 인간 체험 속에서 사람을 찾다가 무한히 높은 완전한 혼이 한껏 만족하기까지, 사람을 찾아내는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이 종교, 아니 네바돈 우주에서 아직까지 계시된 가장 높은 종교이다―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살았던 인생이다.
2001 CM 102:8.7 그러나 종교는 소위 기적적인 것에 호소함으로써는 결코 향상될 수 없다. 기적을 추구함은 원시 마술 종교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참된 종교는,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과 전혀 상관없으며, 계시된 종교는, 권위를 증명하려고 결코 기적을 내세우지 않는다. 종교는, 영원히 그리고 언제든지, 개인의 체험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 기초한다. 그리고 너희의 가장 고상한 종교인 예수의 생애는, 바로 그렇게 몸소 겪은 체험이었으며:그는 육신 속에서 지냈던 한 번의 짧은 생애에 하나님을 찾다가 마음껏 찾은 사람, 필사적 사람이었고, 한편 바로 그 인간 체험 속에, 무한히 높은 완전한 혼이 철저히 만족하기까지 사람을 찾고 발견하는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것이 종교이며, 이제까지 네바돈 우주에서 계시된 가장 높은 종교는 바로--나사렛 예수의 지상{地上} 생애다.
2007 URKA 102:8.7 그러나 종교는 소위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에 호소함으로써는 결코 강화될 수 없다.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원시적인 마술의 종교들을 돌이켜 불려내는 것이다. 참된 종교는 그들이 내세우는 기적들과 함께 행해지는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계시된 종교는 결코 기적을 권위에 대한 증거로 지목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종교는 언제까지나 그리고 항상 개인적 체험에 뿌리를 두고 기초를 둔다. 그리고 가장 높은 너희 종교인 예수의 삶은 바로 그러한 개인적 체험이었다: 그는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 필사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육신으로의 한 번의 짧은 삶 동안,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을 발견한 사람이었으며, 한편 마찬가지로 바로 그 인간의 체험 속에서, 무한한 최극위의 완전한 혼의 충만한 만족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람을 발견하는 하느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살았던 삶─그것이 종교이며, 나아가 지금까지 네바돈의 우주에서 계시된 최고의 종교이다.
2025 102:8.7 그러나 종교는 결코, 이른바 기적 같은 것에 호소함으로 향상될 수 없다.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원시의 마술 종교로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참된 종교는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과 아무 상관이 없고, 계시된 종교는 권위를 증명하려고 기적을 내세우지 않는다. 종교는 늘, 언제나 개인의 체험에 뿌리를 내리고 그에 바탕을 둔다. 너희의 가장 높은 종교, 예수의 일생은, 바로 그렇게 몸소 겪은 체험이었다: 육체를 입고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찾다가 한껏 찾아내는 사람, 필사 인간이었고, 한편 바로 그 인간 체험 속에서 사람을 찾다가 무한히 높은 완전한 혼이 한껏 만족하기까지, 사람을 찾아내는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이 종교, 아니 네바돈 우주에서 아직까지 계시된 가장 높은 종교이다 ―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살았던 인생이다.
1955 102:8.8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
2000 102:8.8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2001 CM 102:8.8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제시했음.]
2007 URKA 102:8.8 [네바돈의 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2025 102:8.8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