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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THE REALITY OF RELIGIOUS EXPERIENCE
제 103 편종교적 체험의 실체
제103편: 종교 체험의 실체
제 103 편: 종교적 체험의 실체
종교적 체험의 실체
1955 103:0.1 ALL of man’s truly religious reactions are sponsored by the early ministry of the adjutant of worship and are censored by the adjutant of wisdom. Man’s first supermind endowment is that of personality encircuitment in the Holy Spirit of the Universe Creative Spirit; and long before either the bestowals of the divine Sons or the universal bestowal of the Adjusters, this influence functions to enlarge man’s viewpoint of ethics, religion, and spirituality. Subsequent to the bestowals of the Paradise Sons the liberated Spirit of Truth makes mighty contributions to the enlargement of the human capacity to perceive religious truths. As evolution advances on an inhabited world, the Thought Adjusters increasingly participate in the development of the higher types of human religious insight. The Thought Adjuster is the cosmic window through which the finite creature may faith-glimpse the certainties and divinities of limitless Deity, the Universal Father.
2000 103:0.1 사람의 참된 종교적 반응은 모두, 예배 보조자가 일찍부터 베푸는 봉사로 후원을 받고, 지혜 보조자의 검열을 받는다. 사람의 첫 초월 지성의 재산은 우주 창조 영의 성령 안에서 인격이 회로로 연결되는 재산이다. 신다운 아들들이 수여되거나 조절자가 보편적으로 수여되기 오래 전에, 이 영향은 윤리와 종교와 영적 수준에 대하여 사람의 관점을 확대하도록 작용한다. 파라다이스 아들의 수여가 있은 뒤에, 해방된 진리의 영은 종교적 진리를 깨닫는,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데 힘차게 이바지한다. 사람 사는 세계에서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생각 조절자는 인간이 가진 상급 부류의 종교적 통찰력을 개발시키는 데 더욱 참여한다. 생각 조절자는 우주의 창문이요, 이를 통하여 유한한 인간은 한없는 신, 우주의 아버지가 확실하고 신다운 것을 믿음으로 볼지도 모른다.
2001 CM 103:0.1 사람의 참된 종교적 반응은 모두, 경배 보조체가 초기에 베푸는 섬김으로 후원받고, 지혜 보조체의 검열을 받는다. 사람의 첫 초월정신 자질은, 우주 창조적 영의 거룩한 영 안에서 인격이 회로화{回路化}되는 자질이며;신의 아들들이 증여되거나 섭리사가 보편적으로 증여되기 훨씬 전에, 이 영향력은 윤리와 종교와 영성{靈性}에 대한 사람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한다. 낙원 아들이 증여된 후에는, 종교적 진리를 감지할 수 있는 인간 수용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해방된 진리의 영이 강력하게 기여한다. 인간거주 세계에서 진화가 진척됨에 따라, 사고 섭리사는 인간이 지닌 더 높은 유형의 종교적 통찰력을 개발시키는 데 점점 더 참여하게 된다. 사고 섭리사는 시공우주의 창문인데, 무한한 신격 곧 우주 아버지의 확실성과 신성{神性}을, 그 창문을 통해서 유한 피조물이 신앙으로 어렴풋이 볼지도 모른다.
2007 URKA 103:0.1 사람의 참된 종교적 반응들 전체는 경배 보조자가 베푸는 초기 사명활동에 의해 지원을 받으며 또한 지혜 보조자에 의해 검열을 받는다. 사람의 첫 번째 초(超)마음 자질은 우주 창조 영의 성령 안에서 개인성 순환회로에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한 아들들의 증여 또는 조절자들의 우주적 증여가 이루어지기 훨씬 이전에, 이 영향력은 윤리와 종교 그리고 영성에 대한 사람의 관점을 확대시키는 기능을 한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증여가 이루어진 뒤에는, 종교적 진리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수용력의 확대를 위하여, 해방시키는 진리의 영이 엄청난 기여를 한다. 거주민이 사는 세계에서 진화가 진척됨에 따라, 생각 조절자들은 보다 높은 유형의 인간적 종교 통찰력 개발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게 된다. 생각 조절자는 그것을 통하여 유한한 창조체가 한계가-없는 신(神), 우주 아버지에 대한 확실성과 신성을 신앙으로-어렴풋이 볼 수 있는 조화우주 창문이다.
2025 103:0.1 사람의 참된 종교적 반응은 모두, 예배 보조자가 일찍부터 베푸는 봉사로 후원받고, 지혜 보조자의 검열을 받는다. 사람의 첫 지성 초월 재산은 우주 창조 영의 성령 안에서 인격이 회로로 연결되는 재산이다. 신다운 아들들이 수여되거나 조절자가 보편적으로 수여되기 오래 전에, 이 영향은 윤리ㆍ종교ㆍ영성을 보는 사람의 관점을 확대하도록 작용한다.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수여가 있은 뒤에, 해방된 진실의 영은 종교적 진실을 깨닫는,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데 힘차게 기여한다. 사람 사는 세계에서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생각 조절자는 인간이 가진 상급 부류의 종교적 통찰력을 개발시키는 데 더욱 참여한다. 생각 조절자는 우주의 창문이요, 이를 통하여 유한한 인간은 한없는 신, 우주의 아버지가 확실히 계심과 신다움을 믿음으로 볼지도 모른다.
1955 103:0.2 The religious tendencies of the human races are innate; they are universally manifested and have an apparently natural origin; primitive religions are always evolutionary in their genesis. As natural religious experience continues to progress, periodic revelations of truth punctuate the otherwise slow-moving course of planetary evolution.
2000 103:0.2 인류의 종교적 성향은 타고난 것이다. 보편적으로 표현되고 자연 기원을 가진 듯하다. 원시 종교는 반드시 진화로 창시된다. 자연스러운 종교적 체험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서, 다른 면에서는 천천히 움직이는 행성의 진화 과정에 진리의 정기적 계시가 때때로 끼어든다.
2001 CM 103:0.2 인류의 종교적 성향은 타고난 것이며;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외견상 자연적으로 발생되며;원시 종교는 반드시 진화로 유래된다. 자연스런 종교 체험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서, 계시가 없다면 느리게-움직일 행성의 진화 과정에, 진리 계시가 주기적으로 끼어든다.
2007 URKA 103:0.2 인간 종족들의 종교적 경향들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들은 우주적으로 현시되고 겉으로 보기에 자연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원시적인 종교들은 그 유래에서 항상 진화적이다. 자연적인 종교 체험이 진보하기를 계속하면 그에 따라, 진리의 주기적인 계시가, 그것이 없었다면 행성 진화의 느리게-움직일, 그 과정을 마침표로 끊어준다.
2025 103:0.2 인류의 종교적 성향은 타고난 것이다. 보편적으로 표현되고 자연 기원을 가진 듯하다. 원시 종교는 반드시 진화로 창시된다. 자연스러운 종교적 체험이 계속 진보함에 따라서, 다른 면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행성의 진화 과정에 진실의 정기적 계시가 때때로 끼어든다.
2000 103:0.3 유란시아에는 오늘날 네 종류의 종교가 있다:
2001 CM 103:0.3 오늘날 유란시아에는 네 종류의 종교가 있다:
2007 URKA 103:0.3 오늘날 유란시아에는 네 종류의 종교들이 있다:자연적 또는 진화적 종교.초자연적 또는 계시적 종교.자연적 종교와 초자연적 종교가 다양하게 섞인, 실천적 또는 현재 종교.철학적 종교들, 사람이 만들었거나 철학적으로 용의주도한 신학적 교리들과 이성으로 창출된 종교들.
2025 103:0.3 유란시아에는 오늘날 네 종류의 종교가 있다:
1955 103:0.4 1. Natural or evolutionary religion.
2000 103:0.4 1. 자연 종교, 곧 진화 종교.
2001 CM 103:0.4 1. 자연 종교 곧 진화 종교.
2007 URKA 103:0.4 자연적 또는 진화적 종교.
2025 103:0.4 1. 자연 종교, 곧 진화 종교.
2000 103:0.5 2. 초자연 종교, 곧 계시 종교.
2001 CM 103:0.5 2. 초자연 종교 곧 계시 종교.
2007 URKA 103:0.5 초자연적 또는 계시적 종교.
2025 103:0.5 2. 초자연 종교, 곧 계시 종교.
1955 103:0.6 3. Practical or current religion, varying degrees of the admixture of natural and supernatural religions.
2000 103:0.6 3. 실제의 종교, 곧 유행하는 종교, 다른 정도로 자연 종교와 초자연 종교가 섞여 있다.
2001 CM 103:0.6 3. 실질적 종교 곧 자연 종교와 초자연 종교가 다양한 정도로 섞여있는, 유행되는 종교.
2007 URKA 103:0.6 자연적 종교와 초자연적 종교가 다양하게 섞인, 실천적 또는 현재 종교.
2025 103:0.6 3. 실제의 종교, 곧 유행하는 종교, 다른 정도로 자연 종교와 초자연 종교가 섞여 있다.
1955 103:0.7 4. Philosophic religions, man-made or philosophically thought-out theologic doctrines and reason-created religions.
2000 103:0.7 4. 철학적 종교, 사람이 만든 종교, 즉 철학으로 생각해낸 신학 교리, 그리고 이치를 따짐으로 만들어진 종교.
2001 CM 103:0.7 4. 철학적 종교 곧 사람이-만들었거나 철학적으로 생각해-낸 신학 교리와, 이성으로-창출된 종교.
2007 URKA 103:0.7 철학적 종교들, 사람이 만들었거나 철학적으로 용의주도한 신학적 교리들과 이성으로 창출된 종교들.
2025 103:0.7 4. 철학적 종교, 사람이 만든 종교, 즉 철학으로 생각해낸 신학 교리, 그리고 이치를 따짐으로 만들어진 종교.
1. PHILOSOPHY OF RELIGION
1. 종교에 담긴 철학
1. 종교에 관한 철학
1. 종교의 철학
1. 종교에 담긴 철학
1955 103:1.1 The unity of religious experience among a social or racial group derives from the identical nature of the God fragment indwelling the individual. It is this divine in man that gives origin to his unselfish interest in the welfare of other men. But since personality is unique—no two mortals being alike—it inevitably follows that no two human beings can similarly interpret the leadings and urges of the spirit of divinity which lives within their minds. A group of mortals can experience spiritual unity, but they can never attain philosophic uniformity. And this diversity of the interpretation of religious thought and experience is shown by the fact that twentieth-century theologians and philosophers have formulated upward of five hundred different definitions of religion. In reality, every human being defines religion in the terms of his own experiential interpretation of the divine impulses emanating from the God spirit that indwells him, and therefore must such an interpretation be unique and wholly different from the religious philosophy of all other human beings.
2000 103:1.1 한 사회 집단이나 민족 집단 사이에서 종교적 체험이 일치하는 것은 개인에 깃드는 하나님의 분신(分身)이 동일한 성질을 가진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관하여 사심 없는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이 성직자이다. 그러나 인격이 독특하기 때문에―어느 두 필사자도 같지 않으니까―따라서 어느 두 인간도 자기 지성 속에 사는 신성한 영의 인도와 재촉을 비슷하게 풀이할 수 없는 것이 필연이다. 한 무리의 필사자는 영적 통일성을 체험할 수 있지만, 결코 철학적으로 균일하게 될 수 없다. 그리고 종교적 생각과 체험의 풀이의 이러한 다양성은 20세기의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종교에 대하여 500가지가 넘게 다르게 정의를 내렸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솟아나는 신의 충동에 대하여 자신의 체험적 해석으로 종교를 정의하며, 따라서 그러한 해석은 독특하고, 모든 다른 인간의 종교 철학과 온전히 달라야 한다.
2001 CM 103:1.1 종교 체험은 사회 집단 또는 인종 집단 가운데서 일치하는데, 이는 각 개인에게 내주하는 하나님 단편{斷片}이 동일한 본성을 지닌 데서 연유한다.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사심 없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이 신성{神性}한 존재다. 그러나 인격의 독특성--곧 어떤 두 필사 존재도 똑같지 않은 것-- 때문에, 어떤 두 인간도, 자기 정신 속에 거주하는 신성한 영의 안내와 충동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없음이 불가피하다. 한 필사자 집단이 영적 통일성을 체험할 수 있으나, 결코 사상의 획일성을 달성할 수는 없다. 그리고 종교적 사고{思考}와 체험에 대한 해석의 이런 다양성은, 20세기 신학자와 철학자가 종교에 대하여 500여 가지 서로 다른 정의를 내렸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내주하는 하나님의 영{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의 자극{刺戟}에 대하여, 자신의 체험적 해석에 따른 말로 종교를 정의하며, 따라서 그런 해석은 독특하고, 다른 모든 인간의 종교 철학과 전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007 URKA 103:1.1 사회적 또는 인종적 집단 속에 이루어진 종교적 체험의 합일은 개별존재 속에 내주하는 하느님 단편(斷片)의 동일한 자연본성으로부터 도출된다. 다른 사람의 번영에 그의 사심-없는 관심을 사람 안에 기원시키게 하는 그것이 이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성의 독특성─어떤 두 필사자도 똑같지 않음─때문에, 어떤 두 인간 존재도 자기들 마음속에 거주하는 신성(神性)을 갖는 영의 안내와 충동을 유사하게 해석할 수 없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 필사자들 집단이 영적인 합일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코 철학적 획일성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종교적 생각과 체험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의 이러한 다양성은 20세기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종교에 대하여 50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정의들을 내세웠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 있다. 실체 안에서, 각각의 인간 존재는 자기 안에 내주하는 하느님 영으로부터 발산되는 신성한 충동에 대한 자신만의 체험적 해석에 기초를 두고 종교를 정의한다. 따라서 그러한 해석은 독특할 수밖에 없고, 다른 모든 인간존재의 종교 철학과 전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025 103:1.1 한 사회 집단이나 민족 집단 가운데서 종교적 체험이 일치하는 것은 개인에 깃드는 하나님의 분신(分身)이 동일한 성질을 가진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관하여 사심 없는 관심이 생기게 하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이 성직자이다. 그러나 인격이 독특하기 때문에 ― 어느 두 필사자도 같지 않으니까 ― 따라서 어느 두 인간도 자기 지성 속에 사는 신성한 영의 인도와 재촉을 비슷하게 풀이할 수 없는 것이 필연이다. 한 무리의 필사자는 영적 통일성을 체험할 수 있지만, 결코 철학적으로 균일하게 될 수 없다. 그리고 종교적 생각과 체험 해석의 이러한 다양성은 20세기의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종교에 대하여 500가지가 넘게 다르게 정의를 내렸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에서 솟아나는 신의 충동에 대하여 자신의 체험적 해석으로 종교를 정의하며, 따라서 그러한 해석은 독특하고, 모든 다른 인간의 종교 철학과 온전히 달라야 한다.
1955 103:1.2 When one mortal is in full agreement with the religious philosophy of a fellow mortal, that phenomenon indicates that these two beings have had a similar religious experience touching the matters concerned in their similarity of philosophic religious interpretation.
2000 103:1.2 한 필사자가 동료 필사자의 종교 철학에 완전히 찬성할 때, 그 현상은 이 두 존재가 철학적ㆍ종교적 해석의 유사성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하여 비슷한 종교적 체험을 겪었음을 가리킨다.
2001 CM 103:1.2 한 필사자가 동료 필사자의 종교 철학에 온전히 동의할 때, 그런 현상은, 철학적인 종교 해석의 유사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접근하는 비슷한 종교 체험을, 이 두 존재가 겪었음을 의미한다.
2007 URKA 103:1.2 필사자가 동료 필사자의 종교 철학과 전적으로 동의할 때, 그러한 현상은 이 두 존재들이 철학적인 종교적 해석에 대한 자신들의 유사성과 관계된 문제들에 접하는 비슷한 종교적 체험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5 103:1.2 한 필사자가 동료 필사자의 종교 철학에 완전히 찬성할 때, 그 현상은 이 두 존재가 유사한 철학적ㆍ종교적 해석에 관련된 문제들에 관하여 비슷한 종교적 체험을 겪었음을 가리킨다.
1955 103:1.3 While your religion is a matter of personal experience, it is most important that you should be exposed to the knowledge of a vast number of other religious experiences (the diverse interpretations of other and diverse mortals) to the end that you may prevent your religious life from becoming egocentric—circumscribed, selfish, and unsocial.
2000 103:1.3 너의 종교는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문제이지만, 너의 종교 생활이 자기 중심―한정되고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으로 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너는 방대한 다른 종교적 체험을 (서로 다르고 다채로운 필사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이해하는 지식을 얻어야 한다.
2001 CM 103:1.3 너의 종교가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문제라고 해도, 네가 자신의 종교 생활을 자기중심적인--곧 외부와 담을 쌓고, 이기적이고, 반{反}사회적인-- 상태가 되지 않도록 막을 목적으로, 수많은 다른 종교 체험(곧 다양한 다른 필사자들의 다양한 해석)에 대한 지식을 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007 URKA 103:1.3 너희의 종교가 개인적인 체험의 문제인 반면, 너희가 너희 종교적 삶을 자기중심적인─한정되어지고 이기적이며 반(反)사회적인─상태가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그 목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른 종교적 체험들(다른 다양한 필사자들의 다양한 해석들)의 지식에 자신을 노출시켜야만 한다.
2025 103:1.3 너의 종교는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문제이지만, 너의 종교 생활이 자기 중심이 ― 한정되고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으로 ― 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너는 방대한 다른 종교적 체험을 (서로 다르고 다채로운 필사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이해하는 지식을 얻어야 한다.
1955 103:1.4 Rationalism is wrong when it assumes that religion is at first a primitive belief in something which is then followed by the pursuit of values. Religion is primarily a pursuit of values, and then there formulates a system of interpretative beliefs. It is much easier for men to agree on religious values—goals—than on beliefs—interpretations. And this explains how religion can agree on values and goals while exhibiting the confusing phenomenon of maintaining a belief in hundreds of conflicting beliefs—creeds. This also explains why a given person can maintain his religious experience in the face of giving up or changing many of his religious beliefs. Religion persists in spite of revolutionary changes in religious beliefs. Theology does not produce religion; it is religion that produces theologic philosophy.
2000 103:1.4 종교가 처음에 무언가를 믿는 원시적 신념이고, 다음에 가치 기준의 추구가 뒤따른다고 가정할 때, 합리주의는 그릇되다. 종교는 1차적으로 가치 기준의 추구이며, 다음에 해석하는 관념 체계가 형성된다. 믿는 관념―해석―보다 종교적 가치 기준―목표―에 대하여 사람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훨씬 쉽다. 이것이 어째서 종교가 서로 충돌하는 수백 가지 관념―교리―를 유지하는 혼잡한 현상을 나타내면서, 한편 가치 기준과 목표에 찬성할 수 있는가 설명한다. 이것은 또한 특정한 개인이 종교 관념을 버리거나 바꾸는 마당에 자기의 종교적 체험을 지킬 수 있는가 설명한다. 종교적 관념에 혁신적 변화가 있는데도 종교는 버틴다. 신학(神學)은 종교를 낳지 않는다. 신에 관한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은 종교이다.
2001 CM 103:1.4 합리주의는, 종교가 처음에는 무언가에 대한 원시적 믿음이고 가치 추구가 그다음에 뒤따라온다고 가정할 때 오류를 범한다. 종교는 1차적으로 가치기준을 추구함이고, 해석하는 믿음 체계가 그다음에 형성된다. 사람들은 믿음--곧 해석--보다 종교적 가치기준--곧 목표--에 대하여 동의하기가 훨씬 쉽다. 이것은 종교가 어떻게 하여 수백 가지 모순되는 신념--곧 신조--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혼란된 현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치와 목표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또한 이것은, 특정한 개인이 자신의 종교 신념을 많이 포기하거나 바꾸면서도, 자신의 종교 체험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종교는, 종교적 믿음에 혁신적 변화가 있음에도 존속한다. 신학은 종교를 산출하지 못하며;종교가 신학 사상을 산출한다.
2007 URKA 103:1.4 종교가 처음에는 어떤 원시적인 믿음이고, 다음에 그에 대한 어떤 가치들에 대한 추구가 뒤따라 오는 것이라고 가정할 때, 합리주의는 오류를 범한다. 종교는 시원적으로 가치들에 대한 추구이며, 그 다음에 해석적인 믿음들에 대한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사람들은 믿음들─해석들─에 대해서보다는 종교적인 가치들─목표들─에 대해서 동의하기가 훨씬 쉽다.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하여 종교가 수백 가지의 모순되는 믿음들─신조들─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혼란된 형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치들과 목표들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이것은 일정한 사람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들 대부분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종교는 종교적 신념들에 있어서의 혁명적인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재한다. 신학은 종교를 산출하지 못한다; 신학적인 철학을 낳는 것은 종교이다.
2025 103:1.4 종교가 처음에 무엇인가를 믿는 원시적 신념이고, 다음에 가치 기준의 추구가 뒤를 따른다고 가정할 때, 합리주의는 그릇되다. 종교는 1차적으로 가치 기준의 추구이며, 다음에 해석하는 관념 체계가 형성된다. 믿는 관념 ― 해석 ― 보다 종교적 가치 기준 ― 목표 ― 에 대하여 사람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훨씬 쉽다. 이것이 어째서 종교가 서로 충돌하는 수백 가지 관념 ― 교리 ― 를 유지하는 혼잡한 현상을 나타내면서, 한편 가치 기준과 목표에 찬성할 수 있는가 설명한다. 이것은 또한 특정한 개인이 종교 관념을 버리거나 바꾸는 마당에 자기의 종교적 체험을 지킬 수 있는가 설명한다. 종교적 관념에 혁신적 변화가 있는데도 종교는 버틴다. 신학(神學)은 종교를 낳지 않는다. 신에 관한 철학을 만들어 내는 것은 종교이다.
1955 103:1.5 That religionists have believed so much that was false does not invalidate religion because religion is founded on the recognition of values and is validated by the faith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Religion, then, is based on experience and religious thought; theology, the philosophy of religion, is an honest attempt to interpret that experience. Such interpretative beliefs may be right or wrong, or a mixture of truth and error.
2000 103:1.5 신봉자들이 거짓된 것을 무척 많이 믿었다고 해서 종교가 무효로 되지는 않는데, 이는 종교가 가치 인식에 기초를 두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서 생긴 믿음으로 종교가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종교는 체험과 종교적 생각에 기초를 둔다. 신학, 즉 종교에 관한 철학은 그 체험을 풀이하려는 정직한 시도이다. 그러한 해석하는 관념은 옳거나 그를 수 있고, 아니면 진실과 잘못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2001 CM 103:1.5 종교인이 거짓된 것을 너무 깊게 믿어왔다고 해서 종교가 무효화되지는 않는데, 이는 종교가 가치기준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고, 개인의 종교 체험이라는 신앙으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교는 체험과 종교적 사고에 기초하며;신학 곧 종교에 관한 철학은, 그 체험을 해석하려는 정직한 시도다. 그런 해석적 믿음은 옳거나 옳지 않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진리와 오류의 혼합일 수도 있다.
2007 URKA 103:1.5 종교가 가치들에 대한 이해 위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신앙에 의해 정당화되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잘못된 것을 너무 깊이 믿어왔다는 것으로 종교가 무효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는 체험과 종교적 생각 위에 기초를 둔다; 즉 종교의 철학인 신학은 그 체험을 해석하기 위한 정직한 시도이다. 그러한 해석에서 비롯된 신념들은 옳을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으며, 또는 진리와 실수의 혼합일 수도 있다.
2025 103:1.5 신봉자들이 거짓된 것을 무척 많이 믿었다고 해서 종교가 무효로 되지는 않는데, 이는 종교가 가치 인식에 기초를 두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서 생긴 믿음으로 종교가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종교는 체험과 종교적 생각에 기초를 둔다. 신학, 즉 종교에 관한 철학은 그 체험을 풀이하려는 정직한 시도이다. 그러한 해석하는 관념은 옳거나 그를 수 있고, 아니면 진실과 잘못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1955 103:1.6 The realization of the recognition of spiritual values is an experience which is superideational. There is no word in any human language which can be employed to designate this “sense,” “feeling,” “intuition,” or “experience” which we have elected to call God-consciousness. The spirit of God that dwells in man is not personal—the Adjuster is prepersonal—but this Monitor presents a value, exudes a flavor of divinity, which is personal in the highest and infinite sense. If God were not at least personal, he could not be conscious, and if not conscious, then would he be infrahuman.
2000 103:1.6 영적 가치 기준을 인식함을 깨닫는 것은 관념 작용을 초월하는 체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라 부르기로 작정한 이 “감각,” “느낌,” “직관,” 또는 “체험”을 가리키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아무런 낱말이 어느 인간 언어에도 없다. 사람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은 인격을 가지지 않았다―조절자는 선(先)인격이다―하지만 이 훈계자는 가치를 제시하고, 신성의 맛을 풍기며, 신성은 가장 높고 무한한 의미에서 성격을 가졌다. 하나님이 적어도 성격을 가지지 않았다면, 의식할 수 없으며, 의식(意識)이 없다면 사람 밑에 있을 것이다.
2001 CM 103:1.6 영적 가치기준을 인식한다는 것을 깨달음은, 관념작용을-초월하는 체험이다. 하나님을-의식{意識}하는 것이라고 명명하기로 우리가 결정했던 이 “감각”이나 “느낌”이나 “직관” 또는 “체험”을 가리키기 위하여 채택될 수 있는 인간 언어가 전혀 없다. 사람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은 인격있는 존재가 아니지만--곧 섭리사는 인격이전{人格以前}이지만--, 이 관찰자는 어떤 가치를 제시하는데, 가장 고상하고 무한한 의미에서 인격적인, 신성{神性}의 향기를 발산한다. 하나님이 적어도 인격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분은 의식하실 수 없으며, 의식이 없다면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일 것이다.
2007 URKA 103:1.6 영적 가치들의 실현과 인지는 하나의 체험이며 그 체험은 초(超)관념적이다. 하느님-의식함으로 부르기로 우리가 작정한 이 “감각”, “느낌”, “직관”, 또는 “체험”을 정의하는 데 채택할 수 있는 단어는, 그 어떤 인간 언어에도 없다. 사람 속에 거주하는 하느님의 영은 개인성 존재가 아니지만─조절자는 전(前)개인적 존재이다─이는 가치를 제시하고, 신성(神性)의 향기를 발산하며, 가장 높고 무한한 감각에서 개인적이다. 만약에 하느님이 적어도 개인적이 아니라면, 그는 의식할 수 없으며, 그리고 의식이 없다면, 그러면 인간이하일 것이다.
2025 103:1.6 영적 가치 기준을 인식함을 깨닫는 것은 관념 작용을 초월하는 체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라 부르기로 작정한 이 “감각,” “느낌,” “직관,” 또는 “체험”을 가리키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아무런 낱말이 어느 인간 언어에도 없다. 사람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은 인격을 가지지 않았다 ― 조절자는 선(先)인격이다 ― 하지만 이 훈계자는 가치를 제시하고, 신성의 맛을 풍기며, 신성은 가장 높고 무한한 의미에서 성격을 가졌다. 하나님이 적어도 성격을 가지지 않았다면, 의식할 수 없으며, 의식(意識)이 없다면 사람 밑에 있을 것이다[1].
2. RELIGION AND THE INDIVIDUAL
2. 종교와 개인
2. 종교와 개인
2. 종교와 개별존재
2. 종교와 개인
1955 103:2.1 Religion is functional in the human mind and has been realized in experience prior to its appearance in human consciousness. A child has been in existence about nine months before it experiences birth. But the “birth” of religion is not sudden; it is rather a gradual emergence. Nevertheless, sooner or later there is a “birth day.” You do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unless you have been “born again”—born of the Spirit. Many spiritual births are accompanied by much anguish of spirit and marked psychological perturbations, as many physical births are characterized by a “stormy labor” and other abnormalities of “delivery.” Other spiritual births are a natural and normal growth of the recognition of supreme values with an enhancement of spiritual experience, albeit no religious development occurs without conscious effort and positive and individual determinations. Religion is never a passive experience, a negative attitude. What is termed the “birth of religion” is not directly associated with so-called conversion experiences which usually characterize religious episodes occurring later in life as a result of mental conflict, emotional repression, and temperamental upheavals.
2000 103:2.1 종교는 인간의 지성 속에서 작용하며 인간의 의식 속에서 종교가 나타나기 전에, 체험 속에서 사람은 종교를 깨달았다. 어린아이는 출생을 체험하기 전에, 약 아홉 달 동안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의 “출생”은 갑작스럽지 않고, 오히려 차츰차츰 솟아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머지않아 “태어나는 날”이 있다. 너희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영에게서 태어나지 않으면―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많은 육체의 출생이 “폭풍 같은 산고”와 기타 비정상 “출산”의 특징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다한 영적 출생에 영의 고통이 많이 따르고 심리적 동요의 표시가 생긴다. 다른 영적 출생은 영적 체험이 높아짐과 함께, 최고의 가치를 인식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성장이다. 하지만 의식해서 기울이는 노력, 그리고 분명한 개인적 결심이 없이는 아무런 종교적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종교는 결코 소극적 체험, 부정적 태도가 아니다. “종교의 탄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른바 종교적 감화를 받는 체험과 직접 관계되지는 않고, 이러한 감화는 정신의 갈등, 감정의 억압, 기분의 동요가 일어나는 결과로서, 생애의 후기에 일어나는 종교적 사건의 특징을 보통 나타낸다.
2001 CM 103:2.1 종교는 인간 정신 속에서 작용하며, 인간 의식에 나타나기 전에 체험을 통해 실현돼왔다. 어린아이는 출생을 체험하기 전에 약 아홉 달 동안 실존했다. 그러나 종교의 “출생”은 갑작스럽지 않으며;오히려 점진적인 출현이다. 그럼에도, 곧 “출생일”이 있게 된다. 너희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즉 영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육체적 출생의 특징이 “격렬한 산고{産苦}”와 기타 비정상 “분만”인 것과 마찬가지로, 허다한 영적 출생은 영의 깊은 고뇌를 동반하고 현저한 심리적 교란을 흔적으로 남긴다. 그 밖의 영적 출생은, 영적 체험이 증진됨과 함께 최고 가치를 인식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성장이지만, 의식해서 기울이는 노력과 분명한 개인적 결단 없이는 종교적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종교는 결코 소극적 체험 곧 부정적 태도가 아니다. “종교의 탄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정신의 갈등과 감정의 억압과 신경과민적 동요가 일어난 결과로, 대개 후기 생애에 발생하는 종교적 사건을 특징짓는 소위 회심{回心} 체험이라는 것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다.
2007 URKA 103:2.1 종교는 인간 마음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며 인간 의식 속에 나타나기 전에 체험 속에서 실현되어 왔다. 어린아이는 출생을 체험하기에 앞서서 약 9개월 전부터 실존되었다. 그러나 종교의 “탄생”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단계적인 창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출생일”이 존재하게 된다. 너희는 만일 “다시 태어나지”─영으로 태어나지─않으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영적인 출생들 대부분은 영의 심한 고뇌를 수반하며 심리적 혼란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육체적인 출생들 대부분이 “격렬한 산통”과 “분만”에 있어서의 다른 비정상적 상황들로 특징 지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다른 영적 출생들은, 비록 그 어떤 종교적인 발전도 의식적인 노력과 적극적이고 개별적인 결심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영적 체험의 증진으로 있는 최극 가치들에 대한 인지에서의 하나의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성장이다, 종교는 결코 소극적인 체험,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다. “종교의 탄생”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일반적으로 정신적 갈등, 감정적 억압, 그리고 기분적인 동요의 결과로서 일생에서 후기에 발생되는 종교적 에피소드들을 특징짓는 소위 변환 체험이라 불리는 그러한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2025 103:2.1 종교는 인간의 지성 속에서 작용하며 인간의 의식 속에서 종교가 나타나기 전에, 체험 속에서 사람은 종교를 깨달았다. 어린아이는 출생을 체험하기 전에, 약 아홉 달 동안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의 “출생”은 갑작스럽지 않고, 오히려 차츰차츰 솟아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머지않아 “태어나는 날”이 있다[2]. 너희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 영에게서 태어나지 않으면 ―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많은 육체의 출생이 “폭풍 같은 산고”와 기타 비정상 “출산”의 특징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다한 영적 출생에 영의 고통이 많이 따르고 심리적 동요의 표시가 생긴다. 다른 영적 출생은 영적 체험이 높아짐과 함께, 최고의 가치를 인식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인 성장이다. 하지만 의식해서 기울이는 노력, 그리고 분명한 개인적 결심이 없이는 아무런 종교적 발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종교는 결코 소극적 체험, 부정적 태도가 아니다. “종교의 탄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른바 종교적 감화를 받는 체험과 직접 관계되지는 않고, 이러한 감화는 정신의 갈등, 감정의 억압, 기분의 동요가 일어나는 결과로서, 생애의 후기에 일어나는 종교적 사건의 특징을 보통 나타낸다.
1955 103:2.2 But those persons who were so reared by their parents that they grew up in the consciousness of being children of a loving heavenly Father, should not look askance at their fellow mortals who could only attain such consciousness of fellowship with God through a psychological crisis, an emotional upheaval.
2000 103:2.2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임을 의식하면서 자라도록 부모가 기른 사람들은 정신적 위기, 감정의 격변을 통해야 하나님과 그렇게 친교함을 겨우 의식할 수 있는 필사 동료들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2001 CM 103:2.2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임을 의식하면서 자라날 만큼 부모의 양육을 잘 받은 사람은, 심리적 위기 곧 감정적 격변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친교하는 것을 그렇게 의식할 수 있는 동료 필사자들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2007 URKA 103:2.2 그러나 하늘에 계신 사랑 넘치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의식(意識) 속에서 자라날 만큼 자신들의 부모들에 의해 그렇게 보살펴진 그러한 개인들은, 정신적 고비, 정서적 격변을 통해서만 하느님과의 동료관계에 대하여 그러한 의식을 달성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동료 필사자들을 흘겨보아서는 안 된다.
2025 103:2.2 그러나 사랑이 넘치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임을 의식하면서 자라도록 부모가 기른 사람들은 정신적 위기, 감정의 격변을 통해야 하나님과 그렇게 친교함을 겨우 의식할 수 있는 필사 동료들을 탐탁하지 않은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1955 103:2.3 The evolutionary soil in the mind of man in which the seed of revealed religion germinates is the moral nature that so early gives origin to a social consciousness. The first promptings of a child’s moral nature have not to do with sex, guilt, or personal pride, but rather with impulses of justice, fairness, and urges to kindness—helpful ministry to one’s fellows. And when such early moral awakenings are nurtured, there occurs a gradual development of the religious life which is comparatively free from conflicts, upheavals, and crises.
2000 103:2.3 사람의 지성에 있는 진화의 토양에서 계시된 종교의 씨앗이 싹트며, 이 토양은 아주 일찍부터 사회 의식을 낳는 도덕적 성품이다. 한 아이의 도덕적 성품을 처음 자극하는 것은 남녀의 차이나 죄책감이나 개인의 자부심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 및 공평의 충동, 그리고 친절―동료들에게 유익한 봉사―를 베풀려는 충동과 상관이 있다. 일찍부터 생긴 그러한 도덕적 각성을 길렀을 때 갈등ㆍ격변ㆍ위기가 비교적 없는 종교 생활이 차츰 발달한다.
2001 CM 103:2.3 계시된 종교의 씨가, 사람의 정신 속에 있는 진화의 토양에서 싹트며, 이 토양은 아주 일찍부터 사회의식을 낳는 도덕적 본성이다. 어린이의 도덕적 본성을 처음 격려하는 것은 남녀 차이나 죄의식이나 개인의 자존심이 아니라, 오히려 공의와 공평과 친절을 베풀도록 자극함--곧 동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섬김--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런 어린 시절의 도덕적 각성이 성숙될 때, 갈등이나 격변이나 위기에 속박 받지 않는 종교 생활이 차츰 발달한다.
2007 URKA 103:2.3 계시된 종교의 씨가 싹트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진화의 토양은 매우 일찍부터 사회의식을 기원시킨 도덕적 본성이다. 어린이의 도덕적 본성에 있어서 최초의 자극은 성욕이나 죄의식 또는 개인적인 자부심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의와 공정성 그리고 친절함을 향한 충동─어떤 사람의 이웃들에 대해 도움이 되는 사명활동─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러한 초기의 도덕적 각성이 성숙될 때, 모순과 격변 그리고 위기들로부터 비교적 속박을 받지 않는 종교적 삶의 단계적 발달이 발생한다.
2025 103:2.3 사람의 지성에 있는 진화의 토양에서 계시된 종교의 씨앗이 싹트며, 이 토양은 아주 일찍부터 사회 의식을 낳는 도덕적 성품이다. 한 아이의 도덕적 성품을 처음 자극하는 것은 남녀의 차이나 죄책감이나 개인의 자부심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 및 공평의 충동, 그리고 친절 ― 동료에게 유익한 봉사 ― 를 베풀려는 충동과 상관이 있다. 일찍부터 생긴 그러한 도덕적 각성을 길렀을 때 갈등ㆍ격변ㆍ위기가 비교적 없는 종교 생활이 차츰 발달한다.
1955 103:2.4 Every human being very early experiences something of a conflict between his self-seeking and his altruistic impulses, and many times the first experience of God-consciousness may be attained as the result of seeking for superhuman help in the task of resolving such moral conflicts.
2000 103:2.4 인간은 누구나 아주 일찍부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충동과 이타적 충동 사이에 싸움 비슷한 것을 체험한다. 그러한 도덕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제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도움을 찾는 결과로서, 흔히 하나님을 의식하는 첫 체험을 얻을 수 있다.
2001 CM 103:2.4 인간은 누구나, 아주 일찍부터 사리{私利}를-꾀하게 하는 자극과 이타적 자극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갈등을 체험하며, 그런 도덕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제에서 초인적 도움을 구한 결과로, 하나님을-의식하는 첫 체험을 얻을 수 있다.
2007 URKA 103:2.4 모든 인간 존재는 자신의 자아-탐구와 이타적 충동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갈등을 매우 일찍부터 체험하며, 그리고 많은 경우 하느님-의식의 첫 체험은 그러한 도덕적 갈등들을 해결하는 과업에서 초인간적인 도움을 추구하는 결과로서 얻어질 수 있다.
2025 103:2.4 인간은 누구나 아주 일찍부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충동과 이타적 충동 사이에 싸움 비슷한 것을 체험한다. 그러한 도덕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제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도움을 찾는 결과로서, 흔히 하나님을 의식하는 첫 체험을 얻을 수 있다.
1955 103:2.5 The psychology of a child is naturally positive, not negative. So many mortals are negative because they were so trained. When it is said that the child is positive, reference is made to his moral impulses, those powers of mind whose emergence signals the arrival of the Thought Adjuster.
2000 103:2.5 어린아이의 심리 상태는 부정적이 아니라, 자연히 긍정적이다. 허다한 필사자가 부정적인 것은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긍정적이라고 할 때, 그의 도덕적 충동을 언급하며, 이 지성의 힘이 솟아나는 것은 생각 조절자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2001 CM 103:2.5 어린이의 심리상태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이다. 수많은 필사자가 부정적인 까닭은 그렇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긍정적이라고 할 때, 이는 그의 도덕적 자극을 언급하는 것인데, 이런 정신의 힘이 솟아나는 것은, 사고 섭리사가 도래했음을 나타낸다.
2007 URKA 103:2.5 어린이의 심리 상태는 본능적으로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이다. 수많은 필사자들이 부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긍정적이라고 말해질 때, 그의 도덕적 충동을 언급하는 것이며 그렇게 마음의 힘이 창발하는 것은 그에게 생각 조절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2025 103:2.5 어린아이의 심리 상태는 부정적이 아니라, 자연히 긍정적이다. 허다한 필사자가 부정적인 것은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긍정적이라고 할 때, 그의 도덕적 충동을 언급하며, 이 지성의 힘이 솟아나는 것은 생각 조절자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1955 103:2.6 In the absence of wrong teaching, the mind of the normal child moves positively, in the emergence of religious consciousness, toward moral righteousness and social ministry, rather than negatively, away from sin and guilt. There may or may not be conflict in the development of religious experience, but there are always present the inevitable decisions, effort, and function of the human will.
2000 103:2.6 그릇된 가르침이 없는 가운데, 정상 아이의 지성은, 부정적으로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이 고개를 들면서, 도덕적 올바름과 사회 봉사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종교적 체험이 발달하면서 갈등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피할 수 없이 인간 의지의 결정ㆍ노력ㆍ기능이 언제나 있다.
2001 CM 103:2.6 잘못된 가르침이 없으면, 정상적인 어린이의 정신은, 부정적으로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멀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의식{意識}이 출현함에 따라서 도덕적 정의와 사회 봉사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종교 체험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인간 의지의 결정과 수고와 역할은 필연적으로 반드시 있다.
2007 URKA 103:2.6 잘못된 가르침이 없으면, 정상적인 어린이의 마음은, 종교적인 의식의 창발에 따라, 도덕적인 정의와 사회적인 사명활동을 향하여, 부정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죄와 범죄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긍정적으로 움직인다. 종교 체험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갈등은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필연적인 결정과 수고 그리고 인간 의지의 기능은 반드시 따라온다.
2025 103:2.6 그릇된 가르침이 없는 가운데, 정상 아이의 지성은, 부정적으로 죄와 죄책감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식이 고개를 들면서, 도덕적 올바름과 사회 봉사를 향하여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종교적 체험이 발달하면서 갈등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인간 의지의 피할 수 없는 결정ㆍ노력ㆍ기능이 그 자리에 있다.
1955 103:2.7 Moral choosing is usually accompanied by more or less moral conflict. And this very first conflict in the child mind is between the urges of egoism and the impulses of altruism. The Thought Adjuster does not disregard the personality values of the egoistic motive but does operate to place a slight preference upon the altruistic impulse as leading to the goal of human happiness and to the joys of the kingdom of heaven.
2000 103:2.7 도덕적 선택에는 많든 적든, 도덕적 갈등이 보통 따른다. 아이의 지성 속에서 맨 처음에 생기는 바로 이 싸움은 이기심의 욕구와 이타심의 충동 사이에 생긴다. 생각 조절자는 이기적 동기를 가진 인격의 가치 기준을 무시하지 않지만, 인간의 행복을 얻는 목표에 이르고, 하늘 나라의 기쁨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타심의 충동을 조금 더 우대하도록 작용한다.
2001 CM 103:2.7 도덕적 선택은 대개 다소간의 도덕적 갈등을 동반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마음에 맨 처음 생기는 바로 이런 갈등은, 이기주의적 충동과 이타주의적 자극 사이에서 일어난다. 사고 섭리사는, 자기본위적 동기를 갖는 인격의 가치기준을 무시하지는 않으나,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표에 이르고 하늘 나라의 기쁨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타적 자극을 조금 더 우대하도록 작용한다.
2007 URKA 103:2.7 도덕적인 선택은 대개 다소간의 도덕적인 갈등을 동반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바로 이러한 최초의 갈등은 이기주의의 강한 충동과 이타주의의 자극 사이에 존재한다. 생각 조절자는 자기본위적인 동기를 갖는 개인성 가치들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표와 하늘의 왕국의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이타적인 충동을 조금 더 높게 인정한다.
2025 103:2.7 도덕적 선택에는 보통, 많든 적든, 도덕적 갈등이 따른다. 아이의 지성 속에서 맨 처음에 생기는 바로 이 싸움은 이기심의 욕구와 이타심의 충동 사이에 생긴다. 생각 조절자는 이기적 동기를 가진 인격의 가치 기준을 무시하지 않지만, 인간의 행복을 얻는 목표에 이르고, 하늘 나라의 기쁨에 이르는 것으로서, 이타심의 충동을 조금 더 우대하도록 작용한다.
1955 103:2.8 When a moral being chooses to be unselfish when confronted by the urge to be selfish, that is primitive religious experience. No animal can make such a choice; such a decision is both human and religious. It embraces the fact of God-consciousness and exhibits the impulse of social service, the basis of the brotherhood of man. When mind chooses a right moral judgment by an act of the free will, such a decision constitutes a religious experience.
2000 103:2.8 한 도덕적 존재가 이기심의 욕구가 있는데도 사심 없이 되기를 선택할 때, 그것은 원시 종교의 체험이다. 어떤 동물도 그렇게 선택할 수 없다. 그러한 결정은 인간답고도 종교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실을 용납하고, 사회에 봉사하려는 충동을 나타내며, 이 충동이 사람의 형제 정신의 기초이다. 자유 의지 행위로 머리가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러한 결정은 종교적 체험이 된다.
2001 CM 103:2.8 한 도덕적 존재가, 이기적이 되려는 충동에 직면해서 이타적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은 원시적 종교 체험이다. 어떤 동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으며;그런 결정은 인간다운 동시에 종교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을-의식한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사회봉사에 대한 자극을 나타내며, 이 자극이 사람의 형제관계의 기초다. 정신이 자유의지 행위로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런 결정은 종교 체험에 해당된다.
2007 URKA 103:2.8 도덕적 존재가 이기적으로 되려는 충동에 직면하여 사심-없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였을 때, 그것은 원시적인 종교적 체험이다. 어떤 동물도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다; 그런 결정은 인간적이며 또한 종교적이다. 그것은 하느님-의식함의 사실을 포옹하며 사회적인 봉사의 충동, 사람이 형제신분을 이루는 기초를 보여준다. 마음이 자유의지의 행동에 의해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선택하였을 때, 그러한 결정이 종교 체험을 구성한다.
2025 103:2.8 한 도덕적 존재가 이기심의 욕구가 있는데도 사심 없이 되기를 선택할 때, 그것은 원시 종교의 체험이다. 어떤 동물도 그렇게 선택할 수 없다. 그러한 결정은 인간답고도 종교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실을 용납하고, 사회에 봉사하려는 충동을 나타내며, 이 충동이 사람의 형제 정신의 기초이다. 자유 의지 행위로 머리가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러한 결정은 종교적 체험이 된다.
1955 103:2.9 But before a child has developed sufficiently to acquire moral capacity and therefore to be able to choose altruistic service, he has already developed a strong and well-unified egoistic nature. And it is this factual situation that gives rise to the theory of the struggle between the “higher” and the “lower” natures, between the “old man of sin” and the “new nature” of grace. Very early in life the normal child begins to learn that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2000 103:2.9 그러나 어린아이가 도덕적 능력을 얻고, 따라서 이타적 봉사를 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그는 이미 튼튼하고 잘 통일된 이기적 성품을 개발하였다. 사실로 일어나는 바로 이 상황이 “높은” 성품과 “낮은” 성품 사이에, “죄 많은 늙은이”와 은혜로운 “새 성품” 사이에 싸움이 있다는 이론을 낳는다. 일생에 아주 일찍부터 정상인 어린아이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2001 CM 103:2.9 그러나 어린이는 도덕적 수용력을 습득하여 이타적 봉사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이미 강력하고 상당히-통합된 자기본위적 본성이 발달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실에 입각한 상황이, “높은” 본성과 “낮은” 본성 사이에, 즉 “죄 속에 있는 옛 사람”과 은혜로운 “새 본성”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이론을 낳았다. 정상적인 어린이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것을 삶에서 아주 일찍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2007 URKA 103:2.9 그러나 어린이가 도덕적인 역량을 충분하게 습득하도록 발달되어 이타적인 봉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되기 전에, 그에게는 이미 하나의 강력하고도 잘 통합된 이기주의적 본성이 개발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적 상황이 “높은” 본성과 “낮은” 본성 사이, “죄를 지닌 옛 사람”과 은혜의 “새로운 본성” 사이에 투쟁이 있다는 이론을 일으키게 한다. 정상적인 어린이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복되다”는 것을 삶 속에서 매우 일찍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1955 103:2.10 Man tends to identify the urge to be self-serving with his ego—himself. In contrast he is inclined to identify the will to be altruistic with some influence outside himself—God. And indeed is such a judgment right, for all such nonself desires do actually have their origin in the leadings of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and this Adjuster is a fragment of God. The impulse of the spirit Monitor is realized in human consciousness as the urge to be altruistic, fellow-creature minded. At least this is the early and fundamental experience of the child mind. When the growing child fails of personality unification, the altruistic drive may become so overdeveloped as to work serious injury to the welfare of the self. A misguided conscience can become responsible for much conflict, worry, sorrow, and no end of human unhappiness.
2000 103:2.10 사람은 제 실속을 찾는 욕구를 자아―그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반대로 이타심을 가지려는 의지를 제 몸 바깥에 있는 어떤 영향―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싶어한다. 정말로 그러한 판단이 옳으니, 이는 자아를 추구하지 않는 모든 그러한 욕구는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인도하심에 실제로 기원을 가지며, 이 조절자는 하나님의 분신이다. 인간은 의식 속에서 영 훈계자의 충동을 이타적 욕구, 동료 인간을 생각하는 욕구로서 깨닫는다. 적어도 이것이 어린아이의 머리 속에서 일찍부터 생기는 근본적 체험이다. 자라는 어린아이가 통일된 인격을 얻지 못할 때, 이타심의 욕구가 너무 지나치게 자라서 자아의 복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릇된 지도를 받은 양심은 많은 갈등ㆍ걱정ㆍ슬픔,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01 CM 103:2.10 사람은, 자기를-섬기려는 충동을 자아와--곧 그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반대로, 이타적이 되려는 의지를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영향력--곧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정말로 그런 판단은 옳은데, 이는 이타적인 그런 모든 욕구가, 내주하는 사고 섭리사의 인도함에서 실제로 기원되기 때문이고, 이 섭리사는 하나님의 단편이기 때문이다. 영 관찰자의 자극은 인간 의식 속에서 이타적 충동 곧 동료-피조물에게 신경 쓰려는 충동으로 인식된다. 적어도 이것은 어린이의 정신이 일찍부터 겪는 근본적인 체험이다. 성장하는 아이가 인격 통합에 실패하면 이타적 본능욕구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자신의 복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잘못 인도된 양심은, 많은 갈등이나 염려나 슬픔 또는 끝없는 인간적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07 URKA 103:2.10 사람은 자아-봉사하려는 충동을, 자기─자신으로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는 자신의 의리를, 자기 자신의 밖으로부터의 어떤 영향력─하느님─으로 이타적이 되도록,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기울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정말로 사실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이타적 욕구들은 내주 하는 생각 조절자의 인도에서 실재적으로 기원되고, 이 조절자는 하느님의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 감시자의 충동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이타적이 되려는, 동료-창조체를 염두에 두는, 그러한 충동으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겪는 초기의 근본적인 체험이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개인성 통일을 이루지 못할 때, 이타적인 충동은 자아의 복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만큼 과도하게 발전될 수도 있다. 잘못 인도된 양심은 많은 갈등과 염려와 슬픔 그리고 끝없는 인간적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2025 103:2.10 사람은 제 실속을 찾는 욕구를 자아 ― 그 자신 ― 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반대로 이타심을 가지려는 의지를 제 몸 바깥에 있는 어떤 영향 ―하나님 ― 과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정말로 그러한 판단이 옳으니, 이는 자아를 추구하지 않는 모든 그러한 욕구는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인도하심에 실제로 기원을 가지며, 이 조절자는 하나님의 분신이다. 인간은 의식 속에서 영 훈계자의 충동을 이타적 욕구, 동료 인간을 생각하는 욕구로서 깨닫는다. 적어도 이것이 어린아이의 머리 속에서 일찍부터 생기는 근본적 체험이다. 자라는 어린아이가 통일된 인격을 얻지 못할 때, 이타심의 욕구가 너무 지나치게 자라서 자아의 복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릇된 지도를 받은 양심은 많은 갈등ㆍ걱정ㆍ슬픔,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3. RELIGION AND THE HUMAN RACE
3. 종교와 인류
3. 종교와 인류
3. 종교와 인종
3. 종교와 인류
1955 103:3.1 While the belief in spirits, dreams, and diverse other superstitions all played a part in the evolutionary origin of primitive religions, you should not overlook the influence of the clan or tribal spirit of solidarity. In the group relationship there was presented the exact social situation which provided the challenge to the egoistic-altruistic conflict in the moral nature of the early human mind. In spite of their belief in spirits, primitive Australians still focus their religion upon the clan. In time, such religious concepts tend to personalize, first, as animals, and later, as a superman or as a God. Even such inferior races as the African Bushmen, who are not even totemic in their beliefs, do have a recognition of the difference between the self-interest and the group-interest, a primitive distinction between the values of the secular and the sacred. But the social group is not the source of religious experience. Regardless of the influence of all these primitive contributions to man’s early religion, the fact remains that the true religious impulse has its origin in genuine spirit presences activating the will to be unselfish.
2000 103:3.1 영ㆍ꿈, 그리고 다양한 기타 미신을 믿는 관념은 모두 원시 종교들의 진화적 기원에 하나의 역할을 했지만, 너희는 씨족이나 부족의 단결 정신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기 인간 지성의 도덕적 성품에서 생기는 이기심ㆍ이타심의 갈등에 도전한 바로 그 사회적 상황이 집단 관계에서 제시되었다. 원시적 오스트랄리아인은 영들을 믿는데도, 아직도 종교의 초점을 씨족에 둔다.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종교 개념은 처음에는 동물로, 나중에는 초인간이나 어떤 신으로서 인격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프리카 부시맨의 신앙은 토템 신앙조차도 되지 않지만, 그처럼 열등한 종족조차 자기 이익과 집단 이익의 차이를 인식하며, 이것은 세속의 것과 신성한 것의 가치를 원시적으로 구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집단은 종교적 체험의 근원이 아니다. 사람의 초기 종교에 이 모든 원시적 기여가 어떤 영향을 미치든 상관 없이, 참된 종교적 충동은 사심 없이 되려는 의지를 촉진하는 진정한 영 존재에 그 기원을 가지는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
2001 CM 103:3.1 영이나 꿈 또는 다양한 기타 미신에 대한 믿음은 모두, 원시 종교들이 진화적으로 기원되는 데 어떤 역할을 했지만, 너희는 씨족 또는 부족의 단결하는 기풍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기 인간 정신의 도덕적 본성에서 생기는 자기본위적-이타적 갈등에 도전한 엄밀한 사회 상황이, 집단 관계에서 제시됐다. 원시 오스트랄리아인은 영들을 믿음에도, 여전히 자기 종교의 초점을 씨족에 둔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종교 개념은 처음에는 동물로, 나중에는 초인간이나 하나님으로서 인격화되는 경향이 있다. 토템 믿음조차 없는, 아프리카의 부시먼 같은 열등한 인종도, 자기-이익과 집단-이익의 차이를 인식하고, 세속의 것과 신성시되는 것의 가치를 원시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사회 집단은 종교 체험의 근원이 아니다. 인간의 초기 종교에 이 모든 원시적 공헌이 어떤 영향을 미치든지 상관없이, 참된 종교적 자극은, 이타적이 되려는 의지를 촉진시키는 진짜 영 현존에서 기원되는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
2007 URKA 103:3.1 영과 꿈 그리고 다양한 다른 미신들에 대한 믿음이 모두 원시적인 종교들의 진화적인 기원 속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반면, 너희는 씨족 또는 부족이 가진 단결의 영이 끼치는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집단적인 관계 속에는 초기 인간 마음의 도덕적인 본성 속에 있는 자기본위적-이타적 갈등에 도전을 주는, 엄격한 사회적 상황이 존재하였다. 영들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원시적인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종교를 씨족에게 중심을 두고 있다. 때가 이르면, 그러한 종교들은 개인성구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에는 동물들로, 그리고 나중에는 어떤 초인간으로 또는 하느님으로 된다. 토템적인 믿음도 갖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부시맨 같은 열등한 종족들도 자아-이익과 집단-이익 사이의 차이, 세속적인 가치들과 신성한 가치들 사이의 기초적인 차이를 인식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집단은 종교 체험의 근원이 아니다. 사람의 초기 종교에 대한 이러한 모든 원시적 공헌들의 영향에 상관없이, 참된 종교적 충동은, 의지로 하여금 사심-없는 상태가 되도록 활성화시키는 순전한 영 현존들 속에 그 기원을 가진다는 것이 여전히 사실로 남아있다.
2025 103:3.1 영ㆍ꿈, 그리고 다양한 기타 미신을 믿는 관념은 모두 원시 종교들의 진화적 기원에 한 역할을 했지만, 너희는 씨족이나 부족의 단결 정신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초기에 인간 지성의 도덕적 성품에서 생기는 이기심ㆍ이타심의 갈등에 도전한 바로 그 사회적 상황이 집단 관계에서 제시되었다. 원시적 오스트랄리아인은 영들을 믿는데도, 아직도 종교의 초점을 씨족에 둔다.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종교 개념은 처음에는 동물로, 나중에는 초인간이나 어떤 신으로서 인격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프리카 부시맨의 신앙은 토템 신앙조차도 되지 않지만, 그처럼 열등한 종족조차 자기 이익과 집단 이익의 차이를 인식하며, 이것은 세속의 것과 신성한 것의 가치를 원시적으로 구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 집단은 종교적 체험의 근원이 아니다. 사람의 초기 종교에 이 모든 원시적 기여가 어떤 영향을 미치든 상관없이, 참된 종교적 충동은 사심 없이 되려는 의지를 촉진하는 진정한 영 존재에 그 기원을 가지는 것이 여전히 사실이다.
1955 103:3.2 Later religion is foreshadowed in the primitive belief in natural wonders and mysteries, the impersonal mana. But sooner or later the evolving religion requires that the individual should make some personal sacrifice for the good of his social group, should do something to make other people happier and better. Ultimately, religion is destined to become the service of God and of man.
2000 103:3.2 자연의 경이와 신비, 즉 비인격 마나를[1] 믿는 원시 신앙은 후일의 종교가 나타날 것을 예시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진화하는 종교는 개인이 사회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얼마큼 몸소 희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궁극에 종교는 하나님과 사람이 베푸는 봉사가 되도록 정해졌다.
2001 CM 103:3.2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 곧 비인격적 마나에 대한 원시적 믿음은, 후일에 종교가 나타날 것을 예시한다. 그러나 진화하는 종교는 머지않아, 개인이 사회 집단의 유익을 위하여 어느 정도 몸소 희생해야한다고, 즉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더 낫게 만들기 위하여 무언가 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종교는 하나님께 예배드림과 사람이 베푸는 봉사가 되게 마련이다.
2007 URKA 103:3.2 후대의 종교는 자연적인 경이로움과 기적들, 미(未)개인적 초자연성에 대한 원시적인 믿음 안에서 예시된다. 그러나 진화하는 종교는, 개별존재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유익을 위하여 어떤 개인적인 희생을 해야만 한다고, 다른 사람들을 보다 행복하고, 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고 곧 요구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종교는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봉사가 되도록 되어 있다.
2025 103:3.2 자연의 경이와 신비, 비인격 마나를[131] 믿는 원시 신앙은 후일의 종교가 나타날 것을 예시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진화하는 종교는 개인이 사회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얼마큼 몸소 희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고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궁극에 종교는 하나님과 사람이 베푸는 봉사가 되도록 정해졌다.
1955 103:3.3 Religion is designed to change man’s environment, but much of the religion found among mortals today has become helpless to do this. Environment has all too often mastered religion.
2000 103:3.3 종교는 사람의 환경을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오늘날 필사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종교에서 많은 것은 이렇게 할 힘이 없게 되었다. 환경이 너무나 자주 종교를 지배하였다.
2001 CM 103:3.3 종교는 사람의 환경을 변경시키도록 설계돼있지만, 오늘날 필사자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종교는 이렇게 행할 힘을 잃어버렸다. 환경이 너무나 자주 종교를 지배해왔다.
2007 URKA 103:3.3 종교는 사람의 환경을 변경시키도록 계획되어 있지만, 오늘날 필사자들 속에서 발견되는 그 종교의 대부분은 이것을 행하는 데에서 어떤 도움도 없는 것이 되어왔다. 환경이 너무나도 자주 종교를 지배해 왔다.
2025 103:3.3 종교는 사람의 환경을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오늘날 필사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종교에서 많은 것은 이렇게 할 힘이 없게 되었다. 환경이 너무나 자주 종교를 지배하였다.
1955 103:3.4 Remember that in the religion of all ages the experience which is paramount is the feeling regarding moral values and social meanings, not the thinking regarding theologic dogmas or philosophic theories. Religion evolves favorably as the element of magic is replaced by the concept of morals.
2000 103:3.4 어느 시대의 종교에도 지극히 중요한 체험은 신학적 교리나 철학 이론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 기준과 사회적 의미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도덕 개념이 마술 요소를 대체함에 따라서 종교는 유리하게 진화한다.
2001 CM 103:3.4 어느 시대의 종교에서든지 지극히 중요한 체험은, 신학적 교의 또는 철학적 이론에 관한 사고{思考}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관과 사회적 의미에 관한 느낌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도덕 개념이 마술의 요소를 대체함에 따라서 종교는 순조롭게 진화한다.
2007 URKA 103:3.4 모든 시대들의 종교 속에서 탁월하다고 인정되는 체험은, 신학적 독단론이나 혹은 철학적 이론에 관한 사고(思考)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들과 사회적 의미들에 관한 느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술의 요소가 도덕의 개념에 의해 대체되면서 그에 따라 종교는 순조롭게 진화한다.
2025 103:3.4 어느 시대의 종교에도 지극히 중요한 체험은 신학적 교리나 철학 이론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 기준과 사회적 의미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도덕 개념이 마술 요소를 대체함에 따라서 종교는 유리하게 진화한다.
1955 103:3.5 Man evolved through the superstitions of mana, magic, nature worship, spirit fear, and animal worship to the various ceremonials whereby the religious attitude of the individual became the group reactions of the clan. And then these ceremonies became focalized and crystallized into tribal beliefs, and eventually these fears and faiths became personalized into gods. But in all of this religious evolution the moral element was never wholly absent. The impulse of the God within man was always potent. And these powerful influences—one human and the other divine—insured the survival of religion throughout the vicissitudes of the ages and that notwithstanding it was so often threatened with extinction by a thousand subversive tendencies and hostile antagonisms.
2000 103:3.5 사람은 마나, 마술, 자연 숭배, 귀신 공포증, 동물 숭배와 같은 미신을 거쳐서 여러 가지 예식에 이르기까지 진화했고, 그런 예식으로 인하여 개인의 종교적 태도는 씨족의 집단 반응이 되었다. 다음에 이 예식들은 부족 신앙으로 집중되고 구체화되었고, 궁극에 이 두려움과 신앙은 신으로 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종교적 진화에서 결코 도덕 요소가 통째로 빠지지는 않았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동은 언제나 힘이 있었다. 그리고 이 강력한 영향은―하나는 인간의 영향이요 다른 하나는 신의 영향인데―1천 가지의 파괴적 성향과 적대심 때문에 무척 자주 절멸의 위협을 받았는데도 세월의 변천을 통해서 종교가 살아남는 것을 보장했다.
2001 CM 103:3.5 사람은, 마나, 마술, 자연 숭배, 영에 대한 두려움, 및 동물숭배 등의 미신을 거쳐서, 다양한 예식절차로 진화했는데, 그런 예식으로 인해, 개인의 종교적 태도는 씨족의 집단 반응이 됐다. 그다음에 이 예식은 부족 믿음으로 집중되고 형태화됐으며, 결국 이 두려움과 신앙이 신{神}들로 인격화됐다. 그러나 이 모든 종교적 진화에서 도덕 요소가 통째로 빠진 적은 없었다.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자극은 항상 효력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인간적이고 다른 하나는 신성한-- 이런 강력한 영향력은, 1,000가지 파괴적 성향과 냉담한 적개심으로 인해 사멸될 위기에 자주 처했음에도, 세월의 변천에서 종교가 살아남도록 보장했다.
2007 URKA 103:3.5 사람은 신비의 힘, 마술, 자연 경배, 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동물 경배의 미신들을 통하여 다양한 예식으로 진화하였는데, 개별존재의 종교적 태도는 그러한 것들에 의해서 그 씨족의 집단적 반응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예식들은 부족 신앙들로 초점화구현 되고 형태화 되었으며, 결국에는 이 두려움들과 신앙들이 하느님들로 개인성구현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종교적 진화들 속에는 도덕적인 요소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 속에 있는 하느님에 대한 충동은 항상 효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영향력─하나는 인간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성한─은 시대들의 변화 속에서 종교가 살아남도록 보장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수많은 파괴적 경향들과 악의적인 반목에 의해서 너무나도 자주 사멸될 위기에 처했다.
2025 103:3.5 사람은 마나, 마술, 자연 숭배, 귀신 공포증, 동물 숭배와 같은 미신을 거쳐서 여러 가지 예식에 이르기까지 진화했고, 그런 예식으로 인하여 개인의 종교적 태도는 씨족의 집단 반응이 되었다. 다음에 이 예식들은 부족 신앙으로 집중되고 구체화되었고, 궁극에 이 두려움과 신앙은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종교적 진화에서 결코 도덕적 요소가 통째로 빠지지는 않았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동은 언제나 힘이 있었다. 그리고 이 강력한 영향들은 ― 하나는 인간의 영향이요 다른 하나는 신의 영향인데 ― 1천 가지의 파괴적 성향과 적대심 때문에 무척 자주 절멸의 위협을 받았는데도 세월의 변천을 통해서 종교가 살아남는 것을 보장했다.
4. SPIRITUAL COMMUNION
4. 영적 친교
4. 영적 교류
4. 영적 교제
4. 영적 친교
1955 103:4.1 The characteristic difference between a social occasion and a religious gathering is that in contrast with the secular the religious is pervaded by the atmosphere of communion. In this way human association generates a feeling of fellowship with the divine, and this is the beginning of group worship. Partaking of a common meal was the earliest type of social communion, and so did early religions provide that some portion of the ceremonial sacrifice should be eaten by the worshipers. Even in Christianity the Lord’s Supper retains this mode of communion. The atmosphere of the communion provides a refreshing and comforting period of truce in the conflict of the self-seeking ego with the altruistic urge of the indwelling spirit Monitor. And this is the prelude to true worship—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which eventuates in the emergence of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03:4.1 사회의 행사와 종교적 모임의 차이, 특징이 되는 차이는, 세속의 모임과 반대로 종교적 모임이 친교의 분위기에 젖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인간의 교제는 신다운 자와 친교하는 느낌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집단 예배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함께 먹는 것은 가장 초기 종류의 사회적 친교였고, 그래서 초기 종교들은 예식에서 바치는 희생물의 얼마큼을 예배자들이 먹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독교에서도 주의 성찬은 이 형태의 친교를 유지한다. 친교 분위기는 이기적 자아와 깃드는 영 훈계자의 이타적 욕구의 싸움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고 위로하는 휴전 기간을 마련해 준다. 이것이 참된 예배에 이르는 전주곡이다―하나님의 계심을 연습하는 것이요, 궁극에 사람의 형제 정신이 태어나게 만든다.
2001 CM 103:4.1 사회 행사와 종교 모임의 특징적 차이점은, 세속 모임과는 대조적으로 종교 모임이 교류 분위기로 충만된다는 것이다. 인간 연합체는 이런 방법으로 신성한 존재들과 친교하는 느낌을 창출하며, 이것이 집단 숭배의 시발점이다. 공동 식사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초기 유형의 사회 교류였으며, 그래서 초기 종교들은, 예식절차로 바친 희생제물 일부분을 숭배자들이 반드시 먹도록 규정했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주{主}의 만찬이 이런 교류 방식을 유지한다. 교류하는 분위기는, 사리를-꾀하는 자아와, 내주하는 영{靈} 관찰자의 이타적 충동의 싸움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고 위로하는 휴전 기간을 마련해준다. 이것이 참된 경배에 이르는 전주곡이다--즉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실습하는 것이요, 결국 사람의 형제관계가 출현되게 만든다.
2007 URKA 103:4.1 사회적 행사와 종교적 모임의 특징적인 차이점은, 종교적인 것이 세속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교제의 분위기에 의해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적 관계적-연합은 이러한 방법으로 신성한 것과 친교를 나누는 느낌을 창출하며, 이것이 집단적 경배의 시발점이다. 공동 식사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적 교제에 있어서 가장 초기적인 유형이었으며, 그래서 초기의 종교들은 예식으로 바친 희생 제물의 일부분을 그 예식에 참여한 자들이 반드시 먹도록 제공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교에서도 주님의 만찬이 이러한 교제 형태를 내포하고 있다. 그 교제의 분위기는 자아를-탐구하는 자기와 내주 하는 영 감시자의 이타적 충동과의 갈등에 있어서 산뜻하고도 위안이 되는 휴식기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참된 경배─사람의 형제신분의 창발로 결국 생겨난 하느님 현존의 실천 관행─의 전주곡이다.
2025 103:4.1 사회의 행사와 종교적 모임의 차이, 특징이 되는 차이는, 세속의 모임과 반대로 종교적 모임이 친교의 분위기에 젖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인간의 교제는 신다운 자와 친교하는 느낌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집단 예배의 시작이다. 사람들이 함께 먹는 것은 가장 초기 종류의 사회적 친교였고, 그래서 초기 종교들은 예식에서 바치는 희생물의 얼마큼을 예배자들이 먹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독교에서도 주의 성찬은 이 형태의 친교를 유지한다. 친교 분위기는 이기적 자아와 깃드는 영 훈계자의 이타적 욕구의 싸움에서, 신선한 느낌을 주고 위로하는 휴전 기간을 마련해 준다. 이것이 참된 예배에 이르는 전주곡이다 ― 하나님의 계심을 연습하는 것이요, 궁극에 사람의 형제 정신이 태어나게 만든다.
1955 103:4.2 When primitive man felt that his communion with God had been interrupted, he resorted to sacrifice of some kind in an effort to make atonement, to restore friendly relationship. The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leads to the discovery of truth, and truth augments ideals, and this creates new problems for the individual religionists, for our ideals tend to grow by geometrical progression, while our ability to live up to them is enhanced only by arithmetical progression.
2000 103:4.2 원시인이 하나님과 친교가 중단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속죄하려고, 친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어떤 종류의 희생물을 바치는 데 의존하였다. 올바름을 간절히 목마르게 찾는 것은 진리의 발견으로 이끌고, 진리는 이상을 키우며, 이것은 개별 신자에게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우리의 이상이 기하 급수(級數)로 자라는 경향이 있고, 한편 그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우리의 능력은 겨우 산술 급수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2001 CM 103:4.2 하나님과 교류하는 것이 단절됐다고 느낄 때, 원시인은 속죄{贖罪}하기 위한, 즉 친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어떤 종류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방법에 의존했다.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진리를 발견하도록 인도했고, 진리가 이상{理想}을 증대시켰고, 이것이 개별 종교인에게 새로운 문제를 안겨줬는데, 이는 우리의 이상이 기하급수 진행과정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 이상에 맞춰서 생활하는 우리의 역량은 오직 산술급수로 증대되기 때문이다.
2007 URKA 103:4.2 원시인이 자신의 하느님과의 교제가 이미 단절되었음을 느낄 때, 그는 화해를 이루기 위하여, 다정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어떤 종류의 희생제물을 제공하는 방법에 의지하였다.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진리를 발견하도록 인도하였으며, 진리가 이상을 증강시켰고, 이것이 개별 종교인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었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이상들은 등비수열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그것들에 맞추어 생활하는 우리의 능력은 오직 등차수열로 증강되기 때문이다.
2025 103:4.2 원시인이 하나님과 친교가 중단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속죄하려고, 친근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어떤 종류의 희생물을 바치는 데 의존하였다. 올바름을 간절히 목마르게 찾는 것은 진실의 발견으로 이끌고, 진실은 이상을 키우며, 이것은 개별 신자에게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우리의 이상이 기하 급수(級數)로 자라는 경향이 있고, 한편 그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우리의 능력은 겨우 산술 급수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1955 103:4.3 The sense of guilt (not the consciousness of sin) comes either from interrupted spiritual communion or from the lowering of one’s moral ideals. Deliverance from such a predicament can only come through the realization that one’s highest moral ideals are not necessarily synonymous with the will of God. Man cannot hope to live up to his highest ideals, but he can be true to his purpose of finding God and becoming more and more like him.
2000 103:4.3 (죄를 의식함이 아니라) 죄를 지은 느낌은 영적 교통이 중단되거나 사람이 도덕적 이상을 낮추는 데서 생긴다. 사람의 가장 높은 도덕적 이상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그러한 곤경을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자기의 가장 높은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바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찾아내고, 갈수록 더 그를 닮아가는 목표에 충실할 수 있다.
2001 CM 103:4.3 (죄를 인식함이 아니라) 죄의식은, 영적 교류가 단절되는 데서, 또는 사람이 도덕적 이상{理想}을 낮추는 데서 생긴다. 사람의 가장 높은 도덕적 이상이 반드시 하나님 뜻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그런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가장 높은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기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를 더욱 닮아가는 목적에 충실할 수 있다.
2007 URKA 103:4.3 죄의식(죄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은 영적 교제의 단절로부터 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도덕적인 타락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그러한 궁지로부터의 탈출은 오직 어떤 사람의 가장 높은 도덕적 이상들이 반드시 하느님의 뜻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실현을 통하여 두루 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의 가장 높은 이상들에 맞추어 살 수는 없지만, 하느님을 발견하려는 자신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고 점점 더 그를 닮아갈 수 있다.
2025 103:4.3 (죄를 의식함이 아니라) 죄를 지은 느낌은 영적 교통이 중단되거나 사람이 도덕적 이상을 낮추는 데서 생긴다. 사람의 가장 높은 도덕적 이상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그러한 곤경을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은 자기의 가장 높은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바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찾아내고, 갈수록 더 그를 닮아가는 목표에 충실할 수 있다.
1955 103:4.4 Jesus swept away all of the ceremonials of sacrifice and atonement. He destroyed the basis of all this fictitious guilt and sense of isolation in the universe by declaring that man is a child of God; the creature-Creator relationship was placed on a child-parent basis. God becomes a loving Father to his mortal sons and daughters. All ceremonials not a legitimate part of such an intimate family relationship are forever abrogated.
2000 103:4.4 예수는 희생물을 바치고 속죄하는 예식을 쓸어버렸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선포함으로, 이 모든 꾸며낸 죄책감의 근거와 우주에서 고립된 느낌을 없애버렸다. 인간과 창조자의 관계는 자식과 부모의 기초 위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필사 아들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된다. 그러한 친밀한 가족 관계의 정당한 부분이 아닌 모든 예식은 영원히 취소된다.
2001 CM 103:4.4 예수께서는 희생제물과 속죄의 모든 예식절차를 제거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함으로써, 즉:피조물-창조주 관계를 자녀-부모 기초 위에 놓음으로써, 이런 모든 허구적 죄의식의 근본과, 우주에서 소외됐다는 느낌을 파괴했다. 하나님은 필사 아들과 딸들에게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신다. 그런 친밀한 가족 관계에 맞지 않는 모든 예식절차는 영원히 폐기됐다.
2007 URKA 103:4.4 예수는 희생 제물과 죄 값에 대한 모든 예식들을 제거하셨다. 그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선언함으로써 즉: 창조체-창조자 관계를 자녀-부모 기초 위에 놓음으로써 이러한 모든 허구적인 죄의식의 근본과 우주에서의 고독감을 파괴하셨다. 하느님은 자신의 필사자 아들들과 딸들에게 사랑 넘치는 아버지가 되신다. 그러한 긴밀한 가족 관계에 맞지 않는 모든 예식들은 언제까지나 폐기되었다.
2025 103:4.4 예수는 희생물을 바치고 속죄하는 예식을 없애 버렸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선포함으로, 이 모든 꾸며낸 죄책감의 근거와 우주에서 고립된 느낌을 없애 버렸다. 인간과 창조자의 관계는 자식과 부모의 기초 위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필사 아들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된다. 그러한 친밀한 가족 관계의 정당한 부분이 아닌 모든 예식은 영원히 취소된다.
1955 103:4.5 God the Father deals with man his child on the basis, not of actual virtue or worthiness, but in recognition of the child’s motivation—the creature purpose and intent. The relationship is one of parent-child association and is actuated by divine love.
2000 103:4.5 아버지 하나님은, 자식의 실제 미덕이나 자격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사람의 목적과 의도―를 인식함으로 자식인 사람을 다룬다. 그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이며, 신의 사랑이 이를 움직이게 만든다.
2001 CM 103:4.5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실제 덕행이나 자격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동기{動機}--곧 피조물의 목적과 의지--에 대한 보답으로, 사람을 자녀로 취급하신다. 그 관계는 부모-자녀 관계이고, 신성한 사랑이 이를 작동시킨다.
2007 URKA 103:4.5 아버지 하느님은 실재적 덕목이나 가치성의 기초 위에서가 아니라, 그 자녀의 동기─창조체의 목적과 의도─를 인식하여 사람을 자기 자녀로서 다룬다. 그 관계는 부모-자녀 관계적-연합의 하나이며 신성한 사랑에 의해 활성화된다.
2025 103:4.5 아버지 하나님은, 자식의 실제 미덕이나 자격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 ― 사람의 목적과 의도 ― 를 인식함으로 사람을 자식으로 다룬다. 그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이며, 신의 사랑이 이를 움직이게 만든다.
5. THE ORIGIN OF IDEALS
5. 이상의 기원
5. 이상의 기원
5. 이상의 기원
5. 이상의 기원
1955 103:5.1 The early evolutionary mind gives origin to a feeling of social duty and moral obligation derived chiefly from emotional fear. The more positive urge of social service and the idealism of altruism are derived from the direct impulse of the divine spirit indwelling the human mind.
2000 103:5.1 초기의 진화적 지성은 두려운 느낌에서 주로 파생되는,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이 생기게 만든다. 사회에 봉사하려는 더 분명한 욕구와 이타주의 이상(理想)은 인간의 지성에 깃드는 신다운 영의 직접 충동에서 파생된다.
2001 CM 103:5.1 주로 감정적 두려움에서 유래되는 느낌,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느낌을, 초기의 진화적 정신이 발생시킨다. 사회에 봉사하려는 더 적극적인 충동과 이타주의라는 관념론은, 인간 정신에 내주하는 신의 영이 직접 자극함에서 파생된다.
2007 URKA 103:5.1 주로 감정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유래되는 도덕적 책무와 사회적 의무에 대한 감각은 초기의 진화적인 마음에 의해서 기원된다. 더 많은 사회적 봉사의 긍정적인 충동과 이타주의의 이상주의가 인간 마음속에 내주 하는 신성한 영의 직접적인 충동으로부터 도출된다.
1955 103:5.2 This idea-ideal of doing good to others—the impulse to deny the ego something for the benefit of one’s neighbor—is very circumscribed at first. Primitive man regards as neighbor only those very close to him, those who treat him neighborly; as religious civilization advances, one’s neighbor expands in concept to embrace the clan, the tribe, the nation. And then Jesus enlarged the neighbor scope to embrace the whole of humanity, even that we should love our enemies. And there is something inside of every normal human being that tells him this teaching is moral—right. Even those who practice this ideal least, admit that it is right in theory.
2000 103:5.2 남에게 착한 일을 하는 이 생각과 이상―사람이 이웃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 희생하려는 충동―은 처음에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원시인은 오직 그에게 아주 가까운 자, 그를 이웃으로 다루는 자들만 이웃으로 여긴다. 종교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사람의 이웃 개념은 씨족ㆍ부족ㆍ나라를 포함하도록 커진다. 그리고 나서 예수는 온 인류를 포함하도록, 우리가 적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기까지, 이웃의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모든 정상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 가르침이 도덕적이라―옳다―고 말해 주는 무엇이 있다. 이 이상을 가장 적게 실천하는 자들조차 이것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인정한다.
2001 CM 103:5.2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한다는 관념-이상{理想}--곧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무언가 자아를 희생하도록 자극함--은 처음에는 매우 제한적이다. 원시인은, 자신에게 아주 가까운 자들 곧 자신에게 친절한 자들만 이웃으로 간주하며;종교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사람의 이웃 개념은 씨족, 부족, 국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께서는 온 인류, 심지어 우리가 원수도 사랑해야하는 정도까지, 이웃에 대한 관점을 확대시켰다. 그리고 이 가르침이 도덕적이라고--즉 옳다고-- 말해주는 어떤 존재가 모든 정상 인간에게 들어있다. 이런 이상을 거의 실천하지 않는 사람조차, 이것이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시인한다.
2007 URKA 103:5.2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자신의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어떤 것을 부인하려는 충동─의 관념-이상은 처음에는 매우 제한적이다. 원시인은 자신에게 매우 가까운 자들, 자신에게 친절한 자들만을 이웃으로 간주한다; 종교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어떤 사람의 이웃은 씨족, 부족, 국가를 포옹하는 개념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인간성 전체, 심지어는 우리가 우리의 원수들도 사랑해야 하는 정도까지 포옹하도록 이웃에 대한 범위를 확대시키셨다. 그리고 모든 정상적인 인간 존재들 속에는 이 가르침이 도덕이라고─옳다고─그에게 말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이러한 이상을 거의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이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시인한다.
2025 103:5.2 남에게 좋은 일을 하는 이 생각과 이상 ― 사람이 이웃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 희생하려는 충동 ― 은 처음에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6]. 원시인은 오직 그에게 아주 가까운 자, 그를 이웃으로 다루는 자들만 이웃으로 여긴다
[7][8]. 종교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사람의 이웃 개념은 씨족ㆍ부족ㆍ나라를 포함하도록 커진다
[9][10]. 다음에 예수는 온 인류를 포함하도록, 우리가 적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기까지, 이웃의 규모를 크게 만들었다. 모든 정상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 가르침이 도덕적이라 ― 옳다 ― 고 말해 주는 무엇이 있다. 이 이상을 가장 적게 실천하는 자들조차 이것이 이론적으로 옳다고 인정한다.
1955 103:5.3 All men recognize the morality of this universal human urge to be unselfish and altruistic. The humanist ascribes the origin of this urge to the natural working of the material mind; the religionist more correctly recognizes that the truly unselfish drive of mortal mind is in response to the inner spirit leadings of the Thought Adjuster.
2000 103:5.3 모든 사람은 사심 없고 이타심을 가지려는 이 보편적 인간 욕구가 도덕적인 것을 인식한다. 인본주의자는 이 욕구의 기원을 물질 지성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탓으로 돌린다. 종교가는 필사 지성이 가진 참으로 사심 없는 욕구는 생각 조절자가 안에서 영적으로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더 바르게 인식한다.
2001 CM 103:5.3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이 되려는, 이 보편적 인간 충동이 도덕적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식한다. 인본주의자는, 이런 충동의 근원이 물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이라고 설명하지만;종교인은, 정말로 이기적이지 않은 필사 정신 추진력은 사고 섭리사라는 내면적 영 인도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더 정확하게 인식한다.
2007 URKA 103:5.3 모든 인간들은 이타적이고 사심-없이 되고자하는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충동을 인지한다. 인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충동의 기원이 물질적인 마음의 자연적인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종교인들은 필사자 마음의 정말로 사심-없는 충동이 생각 조절자라는 내부의 영의 인도에 반응하는 것임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한다.
2025 103:5.3 모든 사람은 사심 없고 이타심을 가지려는 이 보편적 인간 욕구가 도덕적인 것을 인식한다. 인본주의자는 이 욕구의 기원을 물질 지성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탓으로 돌린다. 종교가는 필사 지성이 가진 참으로 사심 없는 욕구는 생각 조절자가 안에서 영적으로 인도하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더 바르게 인식한다.
1955 103:5.4 But man’s interpretation of these early conflicts between the ego-will and the other-than-self-will is not always dependable. Only a fairly well unified personality can arbitrate the multiform contentions of the ego cravings and the budding social consciousness. The self has rights as well as one’s neighbors. Neither has exclusive claims upon the attention and service of the individual. Failure to resolve this problem gives origin to the earliest type of human guilt feelings.
2000 103:5.4 그러나 자아의 의지(意志)와 자아를 넘는 의지 사이에서 생기는 이 초기의 싸움에 관한 사람의 해석은 반드시 믿을 만하지 않다. 오로지 상당히 잘 통일된 인격자가 자아의 갈망과 싹트는 사회 의식이 여러 모습으로 다투는 것을 중재할 수 있다. 자아는 자기의 이웃만큼 권리를 가지고 있다. 둘 중에 어느 것도 개인의 눈길과 봉사를 독점으로 요구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인간의 가장 초기 형태의 죄책감이 생긴다.
2001 CM 103:5.4 그러나 자아-의지와 타자{他者}-의지 사이의 이런 초기 갈등에 대한 사람의 해석은, 반드시 의존할 만하지는 않다. 자아의 열망과 싹트는 사회의식이 여러 형태로 논쟁하는 것을, 정말로 잘 통합된 인격만이 중재할 수 있다. 자아는 이웃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갖고 있다. 어느 쪽도, 개인의 친절과 봉사를 독점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가장 초기 유형의 인간 죄책감이 기원됐다.
2007 URKA 103:5.4 그러나 자기-의지와 자아가-아닌-다른-의지 사이의 이들 초기 갈등들에서의 사람의 해석은,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잘 통합된 개인성만이, 싹트기 시작한 사회의식과 자기 열망에 대한 여러 형태의 다툼을 중재할 수 있다. 자아는 자신의 이웃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갖고 있다. 어느 쪽도 개별존재의 관심과 봉사를 배타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인간 죄의식에서의 가장 초기 유형에 기원을 준다.
2025 103:5.4 그러나 자아의 의지(意志)와 자아를 넘는 의지 사이에서 생기는 이 초기의 싸움에 관한 사람의 해석은 반드시 믿을 만하지는 않다. 오로지 상당히 잘 통일된 인격자가 자아의 갈망과 싹트는 사회 의식이 여러 모습으로 다투는 것을 중재할 수 있다. 자아는 자기의 이웃만큼 권리를 가지고 있다. 둘 중에 어느 것도 개인의 눈길과 봉사를 독점으로 요구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인간의 가장 초기 형태의 죄책감이 생긴다.
1955 103:5.5 Human happiness is achieved only when the ego desire of the self and the altruistic urge of the higher self (divine spirit) are co-ordinated and reconciled by the unified will of the integrating and supervising personality. The mind of evolutionary man is ever confronted with the intricate problem of refereeing the contest between the natural expansion of emotional impulses and the moral growth of unselfish urges predicated on spiritual insight—genuine religious reflection.
2000 103:5.5 오로지 자아의 자존심 욕구와 더 높은 자아(신다운 영)의 이타적 욕구가, 통합하고 감독하는 인격의 통일된 의지로 조정되고 절충될 때에야 인간의 행복을 얻게 된다. 진화 인간의 지성은 감정적 충동의 자연스러운 증가, 그리고 영적 통찰력―진정한 종교적 반성―에 바탕을 둔 사심 없는 욕구의 도덕적 성장, 이 둘 사이의 싸움을 심판하는 까다로운 문제에 늘 부딪친다.
2001 CM 103:5.5 인간의 행복은, 오로지 자아의 자기 욕구와 더 높은 자아(곧 신성한 영)의 이타적 충동이, 통합하고 감독하는 인격의 단일화된 의지로 조정되고 절충될 때에만 성취된다. 진화하는 사람의 정신은, 감정적 자극의 자연스런 증가와, 영적 통찰력--곧 진실된 종교적 사색{思索}--에 입각한 이타적 충동의 도덕적 성장, 이 둘 사이의 싸움을 중재하는 복잡한 문제에 늘 부딪친다.
2007 URKA 103:5.5 인간의 행복은 자아의 자기 욕망과 보다 높은 자아(신성한 영)의 이타적 충동이 집대성하고 감독하는 개인성의 통합된 의지에 의해서 조화-협동되고 화해될 때에만 성취된다. 진화적인 사람의 마음은, 영적 통찰력─진정한 종교적 반영 작용─에 입각한 사심-없는 충동의 도덕적 성장과 감정적 충동들의 자연적인 확대 사이의 싸움을 중재하는 복잡한 문제에 항상 봉착해 있다.
2025 103:5.5 오로지 자아의 자존심 욕구와 더 높은 자아(신다운 영)의 이타적 욕구가, 통합하고 감독하는 인격의 통일된 의지로 조정되고 절충될 때에야 인간의 행복을 얻게 된다. 진화 인간의 지성은 감정적 충동의 자연스러운 증가, 그리고 영적 통찰력 ― 진정한 종교적 반성 ― 에 근거한 사심 없는 욕구의 도덕적 성장, 이 둘 사이의 싸움을 심판하는 까다로운 문제에 늘 부딪친다.
1955 103:5.6 The attempt to secure equal good for the self and for the greatest number of other selves presents a problem which cannot always be satisfactorily resolved in a time-space frame. Given an eternal life, such antagonisms can be worked out, but in one short human life they are incapable of solution. Jesus referred to such a paradox when he said: “Whosoever sha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shall lose his life for the sake of the kingdom, shall find it.”
2000 103:5.6 자아를 위해서, 그리고 최다수의 타아(他我)를 위해서 똑같은 이익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시간과 공간의 틀 속에서 반드시 만족스럽게 풀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한다. 영원히 산다면 그러한 적대 관계는 해결될 수 있지만, 짧은 인생에서 이것은 해결될 수 없다. 예수는 이렇게 그러한 역설(逆說)을 언급하였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는 자는 잃겠거니와 누구든지 하늘 나라를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는 자는 얻으리라.”
2001 CM 103:5.6 자아를 위하여 그리고 수많은 다른 자아를 위하여 균등한 유익을 보장하려는 시도는, 시간-공간 틀 속에서 항상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 영원히 산다면 그런 적대감이 해결될 수 있겠으나, 한 번의 짧은 인간 생애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그런 모순을 언급하면서 말씀했다:“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잃게 되지만, 천국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누구든지 얻을 것이다.”
2007 URKA 103:5.6 자아를 위한 그리고 수많은 다른 자아들을 위한 균등한 유익을 보장하려는 시도는, 시간-공간 틀 안에서는 항상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한다. 영원한 생명을 가정한다면 그러한 반목들이 해결될 수 있지만, 한 번의 짧은 삶 속에서는 그들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예수는 그러한 모순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게 될 것이지만, 왕국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찾게 될 것이다.”
1955 103:5.7 The pursuit of the ideal—the striving to be Godlike—is a continuous effort before death and after. The life after death is no different in the essentials than the mortal existence. Everything we do in this life which is good contributes directly to the enhancement of the future life. Real religion does not foster moral indolence and spiritual laziness by encouraging the vain hope of having all the virtues of a noble character bestowed upon one as a result of passing through the portals of natural death. True religion does not belittle man’s efforts to progress during the mortal lease on life. Every mortal gain is a direct contribution to the enrichment of the first stages of the immortal survival experience.
2000 103:5.7 이상을 추구하는 것―하나님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죽기 전과 후에 이어지는 노력이다. 죽은 뒤의 인생은 필사 존재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 이 생명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좋은 일이 앞날의 생명을 향상하는 데 바로 기여한다. 진정한 종교는 자연사의 문을 거치는 결과로서 사람에게 부여되는 미덕, 고귀한 인품의 모든 미덕을 얻는다는 헛된 희망을 북돋음으로 도덕적 태만과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가 수명이 있는 동안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을 헐뜯지 않는다. 필사자의 소득은 모두 첫 단계에 살아남는 불멸의 체험을 강화하는 데 바로 기여한다.
2001 CM 103:5.7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것--곧 하나님처럼 되고자 애쓰는 것--은 죽기 전과 후에 계속되는 노력이다. 죽은 후의 삶은 본질적인 면에서 필사자 실존 상태와 전혀 차이가 없다. 이 세상 삶에서 행하는 선한 모든 것은, 미래의 삶을 증진시키는 데 직접 기여한다. 사람에게 부여된 고귀한 성품의 모든 덕행을, 자연사의 관문을 통과한 결과로 소유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불어넣음으로써, 도덕적 게으름과 영적 나태함을 조장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가 수명이 다하기까지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수고를 경시하지 않는다. 필사자가 획득한 것은 모두, 첫 단계에서 생존하는 불멸 체험을 강화하는 데 직접 기여한다.
2007 URKA 103:5.7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하느님과-같음이 되고자 애쓰는 것은─죽음 이전과 이후로 계속 이어지는 노력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근본적인 면에서 볼 때 필사자 실존의 상태와 어떤 차이도 없다. 이 일생 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것들은 미래 일생의 증진에 직접 기여한다. 실제 종교는, 자연적 죽음의 관문을 거쳐 통과한 결과로서 사람에게 증여되는 고귀한 성격에서의 모든 미덕을 가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북돋음으로서 일어나는 도덕적 태만과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가 일생을 빌려 사는 동안 진보하려고 하는, 사람의 노력들을 얕잡아보지 않는다. 모든 필사자의 소득은 불멸적 생존 체험에서 첫 단계들을 강화하는 데에 직접 기여하는 것이다.
2025 103:5.7 이상을 추구하는 것 ― 하나님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 ― 은 죽기 전과 후에 이어지는 노력이다. 죽은 뒤의 인생은 필사 존재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 이 생명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좋은 일이 앞날의 생명을 향상하는 데 바로 기여한다. 진정한 종교는 자연사의 문을 거치는 결과로서 사람에게 부여되는 미덕, 고귀한 인품의 모든 미덕을 얻는다는 헛된 희망을 북돋음으로 도덕적 태만과 영적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가 수명이 있는 동안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을 헐뜯지 않는다. 필사자의 소득은 모두 첫 단계에 살아남는 불멸의 체험을 강화하는 데 바로 기여한다.
1955 103:5.8 It is fatal to man’s idealism when he is taught that all of his altruistic impulses are merely the development of his natural herd instincts. But he is ennobled and mightily energized when he learns that these higher urges of his soul emanate from the spiritual forces that indwell his mortal mind.
2000 103:5.8 사람의 모든 이타적 충동이 단지 자연스러운 군집 본능이 발달된 것이라 가르칠 때, 이것은 사람의 이상주의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자기 혼의 이 상급 욕구가 필사 지성에 깃드는 영적 세력으로부터 방출된다는 것을 사람이 알게 될 때, 사람은 고귀하게 되고 힘차게 에너지를 얻는다.
2001 CM 103:5.8 사람의 모든 이타적 자극은 단지 자연스런 군집 본능이 발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칠 때, 그의 이상주의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자기 혼의 이런 수준 높은 충동이, 자신의 필사 정신에 내주하는 영적 세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은 고상하게 되고 크게 에너지를 얻는다.
2007 URKA 103:5.8 인간의 모든 이타적 충동들이 단지 자신의 자연적인 집단 본능에 불과하다고 배웠을 때 그것은 인간의 이상주의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자신의 혼의 이러한 보다 높은 충동들이 자신의 필사자 마음속에 내주 하는 영적 세력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배울 때 그는 고상하게 되고 크게 기세를 얻는다.
2025 103:5.8 사람의 모든 이타적 충동이 단지 자연스러운 군집 본능이 발달된 것이라 가르칠 때, 이것은 사람의 이상주의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자기 혼의 이 상급 욕구가 필사 지성에 깃드는 영적 세력으로부터 방출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은 고귀하게 되고 힘차게 에너지를 얻는다.
1955 103:5.9 It lifts man out of himself and beyond himself when he once fully realizes that there lives and strives within him something which is eternal and divine. And so it is that a living faith in the superhuman origin of our ideals validates our belief that we are the sons of God and makes real our altruistic convictions, the feelings of the brotherhood of man.
2000 103:5.9 영원하고 신다운 무엇이 자기 속에 살며 애쓴다는 것을 사람이 일단 완전히 깨닫는 것은 사람을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넘어서 들어올린다. 그래서 우리의 이상이 초인간 기원을 가졌다는 힘찬 믿음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의 이타적 확신, 사람이 형제라는 느낌을 현실로 만든다.
2001 CM 103:5.9 그것은, 사람이 자기 안에 영원하고 신성한 어떤 존재가 살면서 애쓰고 있음을 일단 충분히 자각할 때, 사람을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 너머로 끌어올려준다. 그래서 우리의 이상{理想}이 초인적으로 기원됐다는 생생한 신앙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우리 믿음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우리의 이타적 신념 곧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느낌을 실제화한다.
2007 URKA 103:5.9 인간은 영원하고 신성한 어떤 존재가 자기 속에 살면서 애쓰고 있음을 일단 충만하게 깨닫게 되면, 그것이 사람을 그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을 너머서 멀리 높이 들어 올려주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상들이 초인간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살아있는 신앙이, 우리들이 하느님의 아들들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유효하게 하고, 우리의 이타적인 신념들,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느낌을 현실로 만든다.
2025 103:5.9 영원하고 신다운 무엇이 자기 속에 살며 애쓴다는 것을 사람이 일단 완전히 깨닫는 것은 사람을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넘어서 들어올린다. 그래서 우리의 이상이 초인간 기원을 가졌다는 힘찬 믿음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의 이타적 확신, 사람이 형제라는 느낌을 현실로 만든다.
1955 103:5.10 Man, in his spiritual domain, does have a free will. Mortal man is neither a helpless slave of the inflexible sovereignty of an all-powerful God nor the victim of the hopeless fatality of a mechanistic cosmic determinism. Man is most truly the architect of his own eternal destiny.
2000 103:5.10 사람은 자기의 영적 분야에서 자유 의지가 있다. 필사 인간은 전능한 하나님의 엄격한 통치에 복종하는 힘없는 종이 아니요, 기계론적 우주 결정론에서 희망 없는 숙명에 희생되는 자도 아니다. 아주 참되게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설계하는 자이다.
2001 CM 103:5.10 사람은 자신의 영적 영역에서 자유 의지가 있다. 필사적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고한 주권 아래서 아무 힘없는 노예가 아니고, 기계적인 시공우주 결정론에서 절망적인 운명에 희생되는 자도 아니다. 사람은 정말로 확실하게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이뤄가는 건축가다.
2007 URKA 103:5.10 사람은, 그 자신의 영적 권역 안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게 비록 죽음이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이신 하느님의 위대하고 준엄한 통치권 밑에서 힘도 없이 어떤 도움도 없는 노예가 아니며 더구나 기계론자의 조화우주 결정론의 어떤 도움도 없는 숙명의 희생자도 아니다. 사람은 최고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영원한 운명의 고안건축가이다.
2025 103:5.10 사람은 자기의 영적 분야에서 자유 의지가 있다. 필사 인간은 전능한 하나님의 엄격한 통치에 복종하는 힘없는 종이 아니요, 기계론적 우주 결정론에서 희망 없는 숙명에 희생되는 자도 아니다. 아주 참되게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설계하는 자이다.
1955 103:5.11 But man is not saved or ennobled by pressure. Spirit growth springs from within the evolving soul. Pressure may deform the personality, but it never stimulates growth. Even educational pressure is only negatively helpful in that it may aid in the prevention of disastrous experiences. Spiritual growth is greatest where all external pressures are at a minimum.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Man develops best when the pressures of home, community, church, and state are least. But this must not be construed as meaning that there is no place in a progressive society for home, social institutions, church, and state.
2000 103:5.11 그러나 사람은 압력을 받는다고 구원을 얻거나 고귀하게 되지 않는다. 영의 성장은 진화하는 혼 속에서 일어난다. 압력을 가하면 인격을 비뚤어지게 만들지 모르지만, 결코 성장을 자극하지 않는다. 교육시키는 압력조차도, 비참한 체험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겨우 부정적으로 유익하다. 모든 바깥 압력이 최소인 곳에서 영적 성장이 가장 크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도다.” 사람은 가정과 공동체, 교회와 국가의 압력이 가장 적을 때 가장 좋게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하는 사회에서 가정, 사회 단체, 교회, 국가가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2001 CM 103:5.11 그러나 사람은 강압으로 구원되지도 고귀하게 되지도 않는다. 영의 성장은 진화하는 혼 속에서 솟아난다. 강압은 인간성을 비뚤어지게 만들 수는 있어도, 결코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육적 강압도 겨우 부정적 유익을 줄 수 있을 뿐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비참한 체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영적 성장은 모든 외부 강압이 최소화될 때 극대화된다. “주{主}의 영이 있는 곳에 해방이 있다.” 사람은,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 및 국가의 강압이 최소화될 때 최고로 발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취적 사회집단에서, 가정이나 사회 기관이나 교회 또는 국가가 나설 자리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2007 URKA 103:5.11 그러나 인간은 압력에 의해서 구원되거나 고귀하게 되지 않는다. 영의 성장은 진화하는 혼속으로부터 솟아난다. 압력은 개인성을 일그러지게 만들지 모르지만, 결코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교육적인 압력도 오직 부정적인 유익을 줄 수 있을 뿐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비참한 체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영적인 성장은 모든 외부적 압력들이 최소화 될 때 극대화된다.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 해방이 있다.” 인간은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 그리고 국가의 압력이 최소화 될 때 최고로 발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적 공동체에서 가정, 사회 기관, 교회 그리고 국가가 나설 자리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2025 103:5.11 그러나 사람은 압력을 받는다고 구원을 얻거나 고귀하게 되지 않는다. 영의 성장은 진화하는 혼 속에서 일어난다. 압력을 가하면 인격을 비뚤어지게 만들지 모르지만, 결코 성장을 자극하지 않는다. 교육시키는 압력조차도, 비참한 체험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겨우 부정적으로 유익하다. 모든 바깥 압력이 최소인 곳에서 영적 성장이 가장 크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도다[12].” 사람은 가정과 공동체, 교회와 국가의 압력이 가장 적을 때 가장 좋게 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하는 사회에서 가정, 사회 단체, 교회, 국가가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1955 103:5.12 When a member of a social religious group has complied with the requirements of such a group, he should be encouraged to enjoy religious liberty in the full expression of his own personal interpretation of the truths of religious belief and the facts of religious experience. The security of a religious group depends on spiritual unity, not on theological uniformity. A religious group should be able to enjoy the liberty of freethinking without having to become “freethinkers.” There is great hope for any church that worships the living God, validates the brotherhood of man, and dares to remove all creedal pressure from its members.
2000 103:5.12 사회의 종교 집단에서 한 구성원이 그런 단체의 요구 조건을 따랐을 때, 그는 종교적 관념이 진실인가, 그리고 종교적 체험이 사실인가에 관하여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완전히 표현하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도록 격려를 받아야 한다. 한 종교 집단의 안전은, 동질의 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통일되는 데 달려 있다. 한 종교 집단은 “자유 사상가”가 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교회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이 형제인 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감히 그 구성원에게 어떤 교리의 압력도 주지 않는다면 큰 희망이 있다.
2001 CM 103:5.12 사회적 종교 집단에서 한 구성원이 그런 집단의 요구에 순응해왔을 때, 종교적 신념이 진실인가에 관하여, 그리고 종교 체험이 사실인가에 관하여, 그는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충분히 표현하는 종교적 자유를 누리도록 장려돼야한다. 한 종교 집단의 안전은, 신학적으로 동일한가가 아니라, 영적으로 통일됐는가에 달려있다. 종교 집단은, “자유 사상가”가 되지 않고도 자유롭게 생각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한다. 어떤 교회든지,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사람이 형제관계인 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신조{信條}로 인한 어떤 압력도 구성원에게 가하지 않을 때 큰 희망이 있다.
2007 URKA 103:5.12 사회의 종교 집단에 속한 한 구성원이 그러한 집단의 요구들에 순응할 때, 그는 종교적 신념으로 이루어진 진리들과 종교 체험으로 이루어진 사실들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충만하게 표현함에 있어서 종교적인 해방을 누릴 수 있도록 장려되어야만 한다. 종교 집단의 안전은 신학적인 획일성이 아니라 영적인 합일에 달려있다. 종교 집단은 “자유사상가”가 되지 않고도 자유롭게 생각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 어떤 교회든지 살아 계신 하느님께 경배하고, 사람의 형제신분을 정당화하며, 그 구성원들로부터 교리로 인한 모든 압력을 과감하게 제거할 때 위대한 희망이 거기에 존재한다.
2025 103:5.12 사회의 종교 집단에서 한 구성원이 그런 단체의 요구 조건을 따랐을 때, 그는 종교적 관념이 진실인가, 그리고 종교적 체험이 사실인가에 관하여 자신의 개인적 해석을 완전히 표현하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도록 격려받아야 한다. 한 종교 집단의 안전은, 동질의 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통일되는 데 달려 있다. 한 종교 집단은 “자유 사상가”가 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교회이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이 형제인 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감히 그 구성원에게 어떤 교리의 압력도 주지 않는다면 큰 희망이 있다.
6. PHILOSOPHIC CO-ORDINATION
6. 철학적 조정
6. 철학적 조화
6. 철학적 조화-협동
6. 철학적 조정
1955 103:6.1 Theology is the study of the actions and reactions of the human spirit; it can never become a science since it must always be combined more or less with psychology in its personal expression and with philosophy in its systematic portrayal. Theology is always the study of your religion; the study of another’s religion is psychology.
2000 103:6.1 신학은 인간 정신의 행동과 반응을 연구하는 것이다. 신학의 개인적 표현에는 심리학과, 신학의 체계적 묘사에는 철학과, 어느 정도 반드시 통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학은 결코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없다. 신학은 언제나 너의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심리학이다.
2001 CM 103:6.1 신학은 인간의 영이 작용하고 반응하는 것에 대한 연구이며;신학의 개별 표현에는 심리학과, 신학의 체계적 묘사에는 철학과, 반드시 어느 정도 결합돼야하기 때문에, 신학은 결코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없다. 신학은 항상 너의 종교에 대한 연구이며;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이다.
2007 URKA 103:6.1 신학은 인간 영의 행동과 반응에 대한 연구이다; 결코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그 개인적 표현에서는 심리학과, 체계적인 묘사에서는 철학과 어느 정도 병합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신학은 항상 너의 종교에 대한 연구이다;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이다.
2025 103:6.1 신학은 인간 정신의 행동과 반응을 연구하는 것이다. 신학의 개인적 표현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 심리학과 통합되고, 신학의 체계적 묘사에는 철학과 어느 정도 통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학은 결코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없다. 신학은 언제나 너의 종교를 연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심리학이다.
1955 103:6.2 When man approaches the study and examination of his universe from the outside, he brings into being the various physical sciences; when he approaches the research of himself and the universe from the inside, he gives origin to theology and metaphysics. The later art of philosophy develops in an effort to harmonize the many discrepancies which are destined at first to appear between the findings and teachings of these two diametrically opposite avenues of approaching the universe of things and beings.
2000 103:6.2 사람이 바깥에서 그의 우주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에 접근할 때, 그는 여러 가지 자연 과학을 만들어낸다. 자신과 우주의 연구를 안에서 접근할 때, 그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기원을 준다. 사물과 존재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접근하는 이 두 가지 정반대되는 길에서 얻은 조사 결과와 가르침 사이에 처음에 나타나도록 정해진 많은 차이점을 조화하려는 노력으로, 후일에 철학이라는 기술이 발달한다.
2001 CM 103:6.2 사람이 자신의 우주를 외부로부터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에 접근할 때, 다양한 자연 과학이 생겨나며;자신과 우주에 대한 연구를 내부에서 접근할 때, 신학과 형이상학이 기원된다. 사물과 존재들로 이뤄진 우주에 접근하는, 이런 두 가지 정 반대되는 방법에서 얻은 조사 결과와 교훈 사이에 처음 나타나도록 정해진 많은 차이점을 조화시키려고 수고함으로, 후일에 철학이라는 기술이 발달한다.
2007 URKA 103:6.2 인간이 외부로부터 그의 우주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에 접근할 때, 그는 다양한 물리 과학을 만들어낸다; 그가 자기 자신과 우주에 대한 연구를 내부로부터 접근할 때, 그는 신학과 형이상학을 창출하게 된다. 사물과 존재로 이루어진 우주에 접근하는 이러한 두 가지의 정반대되는 큰길에서의 발견과 가르침 사이에서 맨 처음에 나타나도록 예정된 많은 불일치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철학이라는 후일의 기법이 발달한다.
2025 103:6.2 사람이 바깥에서 그의 우주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일에 접근할 때, 그는 여러 가지 자연 과학을 만들어낸다. 자신과 우주의 연구를 안에서 접근할 때, 그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기원을 준다. 사물과 존재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접근하는 이 두 가지 정반대되는 길에서 얻은 조사 결과와 가르침 사이에 처음에 나타나도록 정해진 많은 차이점을 조화하려는 노력으로, 후일에 철학이라는 기술이 발달한다.
1955 103:6.3 Religion has to do with the spiritual viewpoint, the awareness of the insideness of human experience. Man’s spiritual nature affords him the opportunity of turning the universe outside in. It is therefore true that, viewed exclusively from the insideness of personality experience, all creation appears to be spiritual in nature.
2000 103:6.3 종교는 영적 관점, 인간 체험의 내면성을 깨닫는 것과 상관이 있다. 사람의 영적 성품은 그에게 바깥에 있는 우주를 안에서 보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따라서, 순전히 인격이 체험하는 내면성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모든 창조의 성질이 영적인 듯 보인다는 것이 참말이다.
2001 CM 103:6.3 종교는 영적 관점, 즉 인간 체험의 내면성에 대한 자각을 다뤄야한다. 사람의 영적 본성은, 우주를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사람에게 제공한다. 그러므로 순전히 인격이 체험하는 내면성의 견지에서 볼 때에는, 모든 창조가 본질에서 영적인 듯 보인다는 것이 참말이다.
2007 URKA 103:6.3 종교는 영적인 관점, 인간 체험의 내면성에서의 깨달음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영적 본성은 우주의 밖을 안으로 돌려놓는 기회를 그에게 잘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개인성 체험의 내면성으로부터 배타적으로 바라볼 때에는 모든 창조가 자연본성에서 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참말이다.
2025 103:6.3 종교는 영적 관점, 인간 체험의 내면성을 깨닫는 것과 상관이 있다. 사람의 영적 성품은 그에게 바깥에 있는 우주를 안에서 보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따라서, 순전히 인격이 체험하는 내면성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모든 창조가 영적 성질을 가진 듯 보인다는 것이 참말이다.
1955 103:6.4 When man analytically inspects the universe through the material endowments of his physical senses and associated mind perception, the cosmos appears to be mechanical and energy-material. Such a technique of studying reality consists in turning the universe inside out.
2000 103:6.4 사람이 자신의 육체 감각의 물질적 자질 및 관계된 지성의 파악을 통해서 우주를 분석하여 검사할 때, 우주는 기계적이고 에너지와 물질인 듯하다. 실체를 연구하는 그러한 기법은 안에 있는 우주를 바깥으로 내놓는 것이다.
2001 CM 103:6.4 사람이 자신의 육체적 감각으로 이뤄진 물질 재능 및 이와 관련된 정신의 인식을 통해서 우주를 분석적으로 조사할 때, 시공우주는 기계적이고 에너지-물질인 것처럼 보인다. 실체를 연구하는 그런 기법은, 우주를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007 URKA 103:6.4 인간이 자신의 연관된 마음 인식과 물리적 감각들로 이루어진 물질적 자질들을 통하여 우주를 분석적으로 검열할 때, 조화우주는 기계적이고 에너지-물질로 보인다. 실체를 연구하는 그러한 기법은 우주의 안을 바깥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2025 103:6.4 사람이 자신의 육체 감각의 물질적 자질 및 관계된 지성의 파악을 통해서 우주를 분석하여 검사할 때, 우주는 기계적이고 에너지와 물질인 듯하다. 실체를 연구하는 그러한 기법은 안에 있는 우주를 바깥으로 내놓는 것이다.
1955 103:6.5 A logical and consistent philosophic concept of the universe cannot be built up on the postulations of either materialism or spiritism, for both of these systems of thinking, when universally applied, are compelled to view the cosmos in distortion, the former contacting with a universe turned inside out, the latter realizing the nature of a universe turned outside in. Never, then, can either science or religion, in and of themselves, standing alone, hope to gain an adequate understanding of universal truths and relationships without the guidance of human philosophy and the illumination of divine revelation.
2000 103:6.5 우주에 대하여 논리와 일관성이 있는 철학 개념은 유물론(唯物論)이나 유심론(唯心論)의[2] 가설 위에 세울 수 없으니, 이는 이 두 생각 체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을 때 우주를 왜곡하여 보도록 강요되기 때문이다. 즉 전자는 내면을 바깥에서 보는 우주를 접촉하며, 후자는 바깥을 안에서 보는 우주의 성질을 깨닫는다. 그러면 과학이나 종교는 결코 그 자체로서 저절로, 혼자 힘으로, 인간 철학의 안내가 없이, 신의 계시의 빛을 받지 않고서, 보편적 진리 및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다.
2001 CM 103:6.5 우주에 대한 논리적이고 모순 없는 철학 개념은, 유물론 또는 심령술{心靈術}이라는 가정{假定} 위에 세워질 수 없는데, 보편적으로 적용될 때 이 두 가지 사고{思考} 체계는 왜곡된 상태로 시공우주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전자는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는 우주와 접촉하고, 후자는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는 우주의 본질을 인식한다. 그래서, 과학이든지 종교든지, 독립된 상태에서 그 자체로는 그리고 그 스스로는, 인간 철학의 안내와 신성한 계시의 조명 없이 보편적 진리와 관계를 결코 합당하게 깨닫기를 기대할 수 없다.
2007 URKA 103:6.5 우주에 대한 논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는 철학 개념은 물질주의 또는 영성주의의 가설 위에 세워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사고(思考) 체계들은, 우주적으로 적용될 때, 왜곡된 상태로 조화우주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전자는 안에서 밖으로 돌려놓은 우주와 접촉하고, 후자는 밖에서 안으로 돌려진 우주의 자연본성을 파악한다. 그래서 과학이든 종교든 독립된 상태에서 그 자체로는 그리고 그 스스로는 인간의 철학과 신성한 계시의 조명의 인도함 없이 우주적 진리들과 관계들에 대한 적절한 납득을 얻을 수가 결코 없다.
2025 103:6.5 우주에 대하여 논리와 일관성이 있는 철학 개념은 유물론(唯物論)이나 유심론(唯心論)의[132] 가설 위에 세울 수 없으니, 이는 이 두 생각 체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을 때 우주를 왜곡하여 보도록 강요되기 때문이다. 즉 전자는 내면을 바깥에서 보는 우주를 접촉하며, 후자는 바깥을 안에서 보는 우주의 성질을 깨닫는다. 그러면 과학이나 종교는 결코 그 자체로서 저절로, 혼자 힘으로, 인간 철학의 안내가 없이, 신의 계시의 빛을 받지 않고서, 보편적 진실 및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다.
1955 103:6.6 Always must man’s inner spirit depend for its expression and self-realization upon the mechanism and technique of the mind. Likewise must man’s outer experience of material reality be predicated on the mind consciousness of the experiencing personality. Therefore are the spiritual and the material, the inner and the outer, human experiences always correlated with the mind function and conditioned, as to their conscious realization, by the mind activity. Man experiences matter in his mind; he experiences spiritual reality in the soul but becomes conscious of this experience in his mind. The intellect is the harmonizer and the ever-present conditioner and qualifier of the sum total of mortal experience. Both energy-things and spirit values are colored by their interpretation through the mind media of consciousness.
2000 103:6.6 언제나 사람 속에 있는 영은 자체를 표현하고 자아의 실현을 위하여 지성의 장치와 기법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물질 실체를 바깥에서 체험하는 것은 그 체험하는 인격자의 지성 의식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영적인 것과 물질인 것, 인간의 속 체험과 바깥 체험은 반드시 지성의 기능과 상관되며, 그들이 의식으로 깨닫는 것에 관하여, 지성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사람은 머리 속에서 물질을 체험한다. 사람은 혼 속에서 영적 실체를 체험하지만, 머리 속에서 이 체험을 의식하게 된다. 지능은 필사자가 겪는 체험의 총합을 조화시키고, 항상 조정하고 제한하는 물건이다. 에너지 및 사물, 그리고 영적 가치, 이 두 가지는 의식하는 머리의 매체를 통해서 그 해석에 따라 색깔을 얻는다.
2001 CM 103:6.6 사람의 내면적 영은, 항상 정신의 심리과정과 기법에 따라 그 표현과 자아-실현이 달라져야한다. 마찬가지로, 물질 실체에 대한 사람의 외부 체험은, 체험하는 그 인격체의 정신 의식{意識}에 입각한다. 따라서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즉 인간의 내적 체험과 외적 체험은, 반드시 정신의 기능과 상호 관련되며, 그들이 의식으로 깨달음에 따라서 정신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사람은 정신 속에서 물질을 체험하며;혼{魂} 속에서 영적 실체를 체험하지만, 이 체험을 정신 속에서 의식하게 된다. 지능은 필사자가 겪는 체험 전체를 조화시키고, 항상 조절하고 제한하는 도구다. 에너지-물체와 영 가치기준은 모두, 의식이라는 정신 매개체를 통한 해석에 따라서 채색{彩色}된다.
2007 URKA 103:6.6 인간의 내부 영은 그것의 표현과 자아-실현을 위하여 항상 마음의 심리 작용과 기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물질적 실체에 대한 인간의 외부적 체험은 체험하는 개인성의 마음의식에 입각한다. 그러므로 영적인 체험과 물질적인 체험, 내부적인 체험과 외부적인 체험은 항상 마음 기능과 상관관계되며, 그들의 의식적 실현에 따라 그렇게 마음 활동에 조건을 받는다.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서 물질을 체험한다; 혼(魂) 안에서 영적인 실체를 체험하지만 이러한 체험은 그의 마음속에서 인식하게 된다. 지성은 인간 체험 전체를 조화시키는 것이고 항상-제시되어 있는 조정 장치이며 본질특성권한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에너지-물체들과 영 가치들 두 가지는 모두 의식이라는 마음 매개자를 통한 해석에 의해서 채색된다.
2025 103:6.6 사람 속에 있는 영은 자체를 표현하고 자아의 실현을 위하여, 언제나 지성의 장치와 기법에 의존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물질 실체를 바깥에서 체험하는 것은 그 체험하는 인격자의 지성 의식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영적인 것과 물질인 것, 인간의 내면 체험과 바깥 체험은 반드시 지성의 기능과 상관되며, 체험들을 의식하여 깨닫는 것에 관하여, 지성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사람은 머리 속에서 물질을 체험한다. 사람은 혼 속에서 영적 실체를 체험하지만, 머리 속에서 이 체험을 의식하게 된다. 지능은 필사자가 겪는 체험의 총합을 조화시키고, 항상 조정하고 제한하는 물건이다. 에너지 및 사물, 그리고 영적 가치, 이 두 가지는 의식하는 지성 매체를 통해서 그 해석에 따라 색깔을 얻는다.
1955 103:6.7 Your difficulty in arriving at a more harmonious co-ordination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is due to your utter ignorance of the intervening domain of the morontia world of things and beings. The local universe consists of three degrees, or stages, of reality manifestation: matter, morontia, and spirit. The morontia angle of approach erases all divergence between the findings of the physical sciences and the functioning of the spirit of religion. Reason is the understanding technique of the sciences; faith is the insight technique of religion; mota is the technique of the morontia level. Mota is a supermaterial reality sensitivity which is beginning to compensate incomplete growth, having for its substance knowledge-reason and for its essence faith-insight. Mota is a superphilosophical reconciliation of divergent reality perception which is nonattainable by material personalities; it is predicated, in part, on the experience of having survived the material life of the flesh. But many mortals have recognized the desirability of having some method of reconciling the interplay between the widely separated domains of science and religion; and metaphysics is the result of man’s unavailing attempt to span this well-recognized chasm. But human metaphysics has proved more confusing than illuminating. Metaphysics stands for man’s well-meant but futile effort to compensate for the absence of the mota of morontia.
2000 103:6.7 과학과 종교가 더 조화되도록 조정하는 데 너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중간에 개재하는 상물질 사물 및 존재가 있는 세계의 영토를 너희가 까맣게 모르기 때문이다. 지역 우주는 물질ㆍ상물질ㆍ영으로 이렇게 실체가 명시되는 세 등급이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상물질 각도의 접근은 자연 과학에서 발견된 것과 종교 정신의 작용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점을 지워 버린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과학을 이해하는 기법이요, 믿음은 종교에서 통찰력을 얻는 기법이며, 상지혜는 상물질 수준의 기법이다. 상지혜는 초물질 실체에 대한 감수성이며, 그 내용이 지식 및 이치이고 그 본질이 믿음과 통찰력이기 때문에, 상지혜는 불완전한 성장을 보상하기 시작한다. 상지혜는 물질 인격자가 도달할 수 없는, 서로 달라지는 실체 파악을 초월 철학으로 절충하는 것이다. 상지혜는 어느 정도 육체로 사는 물질 인생 이후에 살아남은 체험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상당히 동떨어진 과학과 종교 분야의 상호 작용을 절충하는 어떤 방법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많은 필사자가 인식했다. 그리고 형이상학은 잘 알려진 이 간격에 다리를 놓으려고, 사람이 쓸데없이 시도한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의 형이상학은 빛을 던지기보다 사람을 헛갈리게 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형이상학은 상물질의 상지혜의 부재를 메우려고, 의도는 좋았지만, 사람이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2001 CM 103:6.7 과학과 종교가 더 조화되도록 조정하는 데 너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중간에 개재하는 모론시아 세계의 사물 및 존재 영역에 대하여 너희가 철저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지방우주는, 실체가 형태화되는 세 가지 정도 또는 단계, 즉:물질과 모론시아와 영으로 이뤄져있다. 모론시아 견지에서 접근하면, 자연 과학에서 발견된 것과 종교 기질의 작용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가 없어진다. 이성은 과학이 이해하는 기법이며;신앙은 종교가 통찰하는 기법이며;모타는 모론시아 수준의 기법이다. 모타는 초물질 실체에 대한 감수성인데, 그 내용이 지식-이성이고 그 본질이 신앙-통찰력이기 때문에, 불충분한 성장을 모타가 보정하기 시작한다. 모타는, 물질 인격체가 달성할 수 없는, 서로 틀리게 실체를 인지함을 초월 철학으로 절충하는 것이며;어느 정도는, 육신을 입은 물질적 생애 이후에 살아남은 체험에 입각한다. 그러나 상당히 동떨어진 과학과 종교 분야의 상호작용을 절충하는 어떤 방법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많은 필사자가 인지해왔으며;형이상학은, 잘-알려진 이런 간격을 연결시키려고 사람이 무익하게 시도한 결과다. 그러나 인간의 형이상학은, 빛을 비춰주기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 입증돼왔다. 형이상학은, 모론시아 모타의 부재{不在}를 보상하려는 사람의, 의도는 좋았으나 헛된 수고였음을 나타낸다.
2007 URKA 103:6.7 과학과 종교 사이에 끼어들어 개입하는 더욱 균형을 이루는 조화-협동에 도달하는 데에 있어서, 너희가 겪는 어려움은, 그 중간에 게재하는 권역인, 물질들과 존재들로 이루어진 모론시아 세계에 대한 너희의 철저한 무지에서 기인된다. 지역우주는 실체 현시활동에서의 세 가지 정도 또는 단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과 모론시아 그리고 영이다. 접근에서의 모론시아적 각도는 물질적인 과학들에서의 발견들과 그리고 종교에서의 영의 기능활동 사이에 있는 모든 상이한 다양성을 지워버린다. 이성은 과학에서의 납득하는 기법이다; 신앙은 종교에서의 통찰 기법이다; 모타는 모론시아 차원에서의 기법이다. 모타는 초-물질적 실체 감수성으로서, 그 자체에 각각 미완성의 성장을 가지고 있는, 본체인 지식-이성과 그리고 본질인 신앙-통찰력을 보정하기 시작하는, 그러한 초물질적인 실체 감수성이다. 모타는 초-철학적 화해로서, 그것은 물질적 개인성들로서는 달성될 수 없는 서로 다른 다양한 실체 감지를 화해하는 그러한 초-철학적 화해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생존을 거치는 육신의 물질적 생명의 살아남는 체험에 근거를 둔다. 그러나 많은 필사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폭넓게 분리된 권역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절충하는 무언가의 방법을 갖는 것이 바람직함을 인지해 왔다; 그리고 형이상학은 잘 인지된 이러한 넓은 간격에 디리를 놓으려는 인간의 무익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의 형이상학은 계몽보다는 더 많은 혼란을 증명하고 있다. 형이상학은 인간이 좋은-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론시아의 모타가 없는 그 부재를 보상하려는 헛된 노력에 나타내고 있다.
2025 103:6.7 과학과 종교가 더 조화되도록 조정하는 데 너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중간에 개재하는 상물질 사물 및 존재가 있는 세계의 영토를 너희가 까맣게 모르기 때문이다. 지역 우주는 물질ㆍ상물질ㆍ영으로 이렇게 실체가 명시되는 세 등급이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상물질 각도의 접근은 자연 과학에서 발견된 것과 종교의 정신 작용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점을 지워 버린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과학을 이해하는 기법이요, 믿음은 종교에서 통찰력을 얻는 기법이며, 상지혜는 상물질 수준의 기법이다. 상지혜는 초물질 실체에 대한 감수성이며, 그 내용이 지식 및 이치이고 그 본질이 믿음과 통찰력이기 때문에, 상지혜는 불완전한 성장을 보상하기 시작한다. 상지혜는 물질 인격자가 도달할 수 없는, 서로 달라지는 실체 파악을 철학을 초월하여 절충하는 것이다. 상지혜는 어느 정도 육체로 사는 물질 인생 이후에 살아남은 체험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상당히 동떨어진 과학과 종교 분야의 상호 작용을 절충하는 어떤 방법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많은 필사자가 인식했다. 그리고 형이상학은 잘 알려진 이 간격에 다리를 놓으려고, 사람이 쓸데없이 시도한 결과이다. 그러나 인간의 형이상학은 빛을 던지기보다 사람을 헛갈리게 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형이상학은 상물질의 상지혜의 부재를 메우려고, 의도는 좋았지만, 사람이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1955 103:6.8 Metaphysics has proved a failure; mota, man cannot perceive. Revelation is the only technique which can compensate for the absence of the truth sensitivity of mota in a material world. Revelation authoritatively clarifies the muddle of reason-developed metaphysics on an evolutionary sphere.
2000 103:6.8 형이상학은 실패인 것이 입증되었다. 사람은 상지혜를 파악할 수 없다. 계시는 진리를 알아보는 상지혜 민감성이 물질 세계에 부재하는 것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이다. 계시는 진화하는 구체(球體)에서 이치를 따짐으로 발달한 형이상학의 혼란을 권위 있게 명료하게 해준다.
2001 CM 103:6.8 형이상학이 실패했음이 입증됐으며;사람은 모타를 감지할 수 없다. 계시는, 진리에 대한 모타의 민감성이 물질세계에 없음을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이다. 진화하는 구체에서 이치를-따짐으로 발달한 형이상학의 혼란을, 계시가 권위 있게 밝혀준다.
2007 URKA 103:6.8 형이상학은 실패를 증명해 왔으며; 인간은 모타를 감지할 수 없다. 계시는 물질세계 안에 있는 모타의 진리에 대한 민감성의 부재를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이다. 계시는 진화적인 구체에서 이성에 의해 발달된 형이상학의 혼란을 엄중하게 규명한다.
2025 103:6.8 형이상학은 실패인 것이 입증되었다. 사람은 상지혜를 파악할 수 없다. 계시는 진실을 알아보는 상지혜 민감성이 물질 세계에 부재하는 것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이다. 계시는 진화하는 구체(球體)에서 이치를 따짐으로 발달한 형이상학의 혼란을 권위 있게 밝혀준다.
1955 103:6.9 Science is man’s attempted study of his physical environment, the world of energy-matter; religion is man’s experience with the cosmos of spirit values; philosophy has been developed by man’s mind effort to organize and correlate the findings of these widely separated concepts into something like a reasonable and unified attitude toward the cosmos. Philosophy, clarified by revelation, functions acceptably in the absence of mota and in the presence of the breakdown and failure of man’s reason substitute for mota—metaphysics.
2000 103:6.9 과학은 사람이 자기의 물리적 환경, 에너지 및 물질의 세계를 연구하려는 시도이다. 종교는 사람이 영적 가치가 있는 우주를 체험하는 것이다. 상당히 거리가 먼 이 개념들의 조사 결과를 우주에 대한 합리적이고 통일된 태도와 비슷한 무엇으로 조직하고 관련지으려는, 사람의 정신 노력으로 철학이 개발되어 왔다. 계시로 분명해진 철학은, 상지혜가 없는 가운데, 그리고 상지혜를 대신하는, 사람의 이치의 대용품―형이상학―이 붕괴하고 실패한 마당에, 적절하게 활동한다.
2001 CM 103:6.9 과학은, 자체의 물리적 환경 곧 에너지-물질 세계를 사람이 연구하려는 시도이며;종교는, 영적 가치가 있는 시공우주를 사람이 체험하는 것이며;철학은, 상당히 거리가 먼 이런 개념들이 발견한 것들을, 시공우주를 향한 합리적이고 통합된 태도와 비슷한 무엇이 되도록 조직하고 연결시키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으로 발전돼왔다. 모타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모타를 대신하는 사람의 이성 대용품--곧 형이상학--이 좌절하고 실패한 처지에서, 계시로 명료해진 철학이 만족스럽게 작용한다.
2007 URKA 103:6.9 과학은 인간이 자신의 물리적인 환경, 에너지-물질세계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다; 종교는 영적인 가치들로 구성된 조화우주에 대한 인간의 체험이다; 철학은 폭넓게 분리된 이러한 개념들이 발견한 것들을, 조화우주를 향한 정당하면서도 조화된 태도와 같은 어떤 것이 되도록 조직하고 상관관계 시키려는 인간 마음의 노력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계시에 의해서 규명되는 철학은 모타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모타─형이상학─를 대신하는 인간의 이성의 좌절과 실패라는 현존 속에서 만족스럽게 활동한다.
2025 103:6.9 과학은 사람이 자기의 물리적 환경, 에너지 및 물질의 세계를 연구하려는 시도이다. 종교는 사람이 영 가치가 있는 우주를 체험하는 것이다. 상당히 분리된 이 개념들의 조사 결과를 우주에 대한 합리적이고 통일된 태도와 비슷한 무엇으로 조직하고 관련을 지으려는, 사람의 정신 노력으로 철학이 개발되어 왔다. 계시로 분명해진 철학은, 상지혜가 없는 가운데, 그리고 상지혜를 대신하는, 사람의 논리 대용품 ― 형이상학 ― 이 붕괴하고 실패한 마당에, 적절하게 활동한다.
1955 103:6.10 Early man did not differentiate between the energy level and the spirit level. It was the violet race and their Andite successors who first attempted to divorce the mathematical from the volitional. Increasingly has civilized man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the earliest Greeks and the Sumerians who distinguished between the inanimate and the animate. And as civilization progresses, philosophy will have to bridge ever-widening gulfs between the spirit concept and the energy concept. But in the time of space these divergencies are at one in the Supreme.
2000 103:6.10 옛날 사람은 에너지 수준과 영 수준을 구별하지 않았다. 수학적인 것과 의지가 있는 것을 처음으로 분리하려고 애쓴 것은 보라 인종과 그 안드 족 후계자들이었다. 문명화된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 아주 예전의 그리스인과 수메르인의 발걸음을 갈수록 더 따라갔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철학은 영 개념과 에너지 개념 사이에 항상 벌어지는 틈에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 시대에 이 여러 차이점은 최상위 안에서 조화된다.
2001 CM 103:6.10 옛 사람들은 에너지 수준과 영 수준을 구분하지 않았다. 수학적인 것과 의지 있는 것을 분리시키려고 처음 시도한 이는, 보라색 인종과 그들의 안드족속 후계자들이었다. 문명화된 사람은, 생명 없는 것과 생명 있는 것을 구별한, 아주 초기의 그리스인과 수메르인의 발자취를 더욱 따라갔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철학은 영 개념과 에너지 개념 사이의 계속 넓어지는 간격에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 시대에, 이런 여러 차이점은 지존자 안에서 조화된다.
2007 URKA 103:6.10 초기의 인간은 에너지 차원과 영의 차원을 구분하지 않았다. 의지적인 것으로부터 수학적인 것을 분리시키려고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보라색 인종과 그들의 안드-사람 후손들이었다. 문명화된 인간은 무생물과 생물 사이를 구분시킨 초기 그리스인들과 수메르인 들의 발자취를 점점 더 많이 따라갔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됨에 따라, 철학은 영 개념과 에너지 개념 사이의 계속 넓어지는 하구(河口)에 다리를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시간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들은 최극자 안에서 일치된다.
2025 103:6.10 옛날 사람은 에너지 수준과 영 수준을 구별하지 않았다. 수학적인 것과 의지가 있는 것을 처음으로 분리하려고 애쓴 것은 보라 인종과 그 안드 족속 후계자들이었다. 문명화된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 아주 예전의 그리스인과 수메르인의 발걸음을 갈수록 더 따라갔다. 그리고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서, 철학은 영 개념과 에너지 개념 사이에 항상 벌어지는 틈에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 시대에 이 여러 차이점은 최상위 안에서 조화된다.
1955 103:6.11 Science must always be grounded in reason, although imagination and conjecture are helpful in the extension of its borders. Religion is forever dependent on faith, albeit reason is a stabilizing influence and a helpful handmaid. And always there have been, and ever will be, misleading interpretations of the phenomena of both the natural and the spiritual worlds, sciences and religions falsely so called.
2000 103:6.11 상상과 추측은 과학의 범위를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학은 반드시 이치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안정시키는 영향력이요 도움 되는 하녀이지만, 종교는 언제까지나 믿음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 현상의 잘못된 해석, 과학과 종교라고 잘못 부르는 것들이 언제나 있어 왔고, 늘 있을 것이다.
2001 CM 103:6.11 상상과 추측은 과학의 범위 확장에 유용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이성{理性}에 기초해야한다. 이성은 안정시키는 영향력이고 도와주는 시녀{侍女}지만, 종교는 영원히 신앙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를 과학과 종교라고 잘못 부르는 부당한 해석이 항상 존재해왔고, 또한 언제든지 존재할 것이다.
2007 URKA 103:6.11 상상력과 추측이 과학의 영역의 확장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이성에 기초를 두어야만 한다. 이성이 안정시키는 영향력이며 도움을 주는 시녀(侍女)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언제까지나 신앙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서의 둘 모두의 현상을 잘못되게 해석한 것, 그렇게 그릇되게 과학과 종교라 불리는 것들이 항상 있어왔고 또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다.
2025 103:6.11 상상과 추측은 과학의 범위를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학은 반드시 논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논리는 안정시키는 영향력이요 도움이 되는 하녀이지만, 종교는 언제까지나 믿음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 현상의 잘못된 해석, 과학과 종교라고 잘못 부르는 것들이 언제나 있어 왔고, 늘 있을 것이다.
1955 103:6.12 Out of his incomplete grasp of science, his faint hold upon religion, and his abortive attempts at metaphysics, man has attempted to construct his formulations of philosophy. And modern man would indeed build a worthy and engaging philosophy of himself and his universe were it not for the breakdown of his all-important and indispensable metaphysical connection between the worlds of matter and spirit, the failure of metaphysics to bridge the morontia gulf between the physical and the spiritual. Mortal man lacks the concept of morontia mind and material; and revelation is the only technique for atoning for this deficiency in the conceptual data which man so urgently needs in order to construct a logical philosophy of the universe and to arrive at a satisfying understanding of his sure and settled place in that universe.
2000 103:6.12 과학을 어설프게 파악하고, 종교를 힘없이 붙잡고, 하다가 그만둔 형이상학의 시도로부터 사람은 철학의 뼈대를 지으려고 애썼다. 물질 세계와 영 세계 사이에 온통 중요하고 필수인 형이상학의 연결이 붕괴되지 않고, 형이상학이 물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상물질 간격에 다리 놓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면, 현대인은 정말로 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가치 있고 마음을 끄는 철학을 세우려할 것이다. 필사 인간에게는 상물질 지성 및 물질에 관한 개념이 모자란다. 계시는 우주에 대한 논리적 철학을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그 우주에서 확실하고 안정된 자기 자리를 만족스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이 무척 긴급히 필요한 이 개념 자료의 부족을 메우는 유일한 기법이다.
2001 CM 103:6.12 과학을 어설프게 파악함, 종교에 어렴풋이 매달림, 그리고 수포로 돌아간 형이상학의 시도로부터, 사람은 철학의 뼈대를 세우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물질 세계와 영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중요하고 필수적인 형이상학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형이상학이 물리계와 영계 사이의 모론시아 간격에 다리를 놓는데 실패하지 않았다면, 현대인은 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훌륭하고 매력 있는 철학을 정말로 세우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필사적 사람은 모론시아 정신과 물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며;계시만이, 우주에 대한 논리적 철학을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그 우주에서 확실하고 안정된 자기 자리를 만족스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그토록 다급하게 필요한 이런 개념 자료의 결핍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07 URKA 103:6.12 과학에 대한 인간의 미완성 파악과 종교에 대한 연약한 이해력 그리고 형이상학에 대한 미성숙한 시도들로부터, 그는 철학이라는 자신의 공식들을 형성해 보려고 시도해 왔다. 그리고 현대인은 물질과 영 사이를 연결하는 자신의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형이상학적 관계를 결렬시키지만 않았다면,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 사이의 모론시아 만(灣)에 다리를 놓으려는 형이상학의 실패가 없었다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우주에 대한 훌륭하고도 매력 있는 철학을 세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필사 사람은 모론시아 마음과 물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계시는 우주에 대한 논리적 철학을 조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우주 안에 있는 자신의 확실하고 안정된 장소에 대한 만족스러운 납득에 도달하기 위하여 인간에게 그토록 다급하게 필요한 개념적 자료에 있어서의 이러한 결핍을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법이다.
2025 103:6.12 과학을 어설프게 파악하고, 종교를 힘없이 붙잡고, 하다가 그만둔 형이상학의 시도로부터 사람은 철학의 뼈대를 지으려고 애썼다. 물질 세계와 영 세계 사이에 온통 중요하고 필수인 형이상학의 연결이 붕괴되지 않고, 형이상학이 물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상물질 간격에 다리 놓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면, 현대인은 정말로 자신과 우주에 대하여 가치 있고 매력 있는 철학을 세우려 할 것이다. 필사 인간에게는 상물질 지성 및 물질에 관한 개념이 모자란다. 계시는 우주에 대한 논리적 철학을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그 우주에서 확실하고 안정된 자기 자리를 만족스럽게 이해하기 위하여, 사람이 무척 긴급히 필요한 이 개념 자료의 부족을 메우는 유일한 기법이다.
1955 103:6.13 Revelation is evolutionary man’s only hope of bridging the morontia gulf. Faith and reason, unaided by mota, cannot conceive and construct a logical universe. Without the insight of mota, mortal man cannot discern goodness, love, and truth in the phenomena of the material world.
2000 103:6.13 계시는 진화 인간이 상물질 간격을 메우는 유일한 희망이다. 상지혜의 도움 없이, 믿음과 이치는 합리적 우주를 파악하고 연구할 수 없다. 상지혜의 통찰력이 없이, 필사인은 물질 세계의 현상에서 선(善)ㆍ사랑ㆍ진리를 헤아릴 수 없다.
2001 CM 103:6.13 계시는, 진화하는 사람이 모론시아 간격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모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신앙과 이성은, 논리적 우주를 상상할 수 없고 그려볼 수 없다. 모타의 통찰력이 없으면, 필사적 사람은 물질 세계의 현상에서 선과 사랑과 진리를 식별할 수 없다.
2007 URKA 103:6.13 계시는 모론시아 만에 다리를 놓는 진화적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다. 모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신앙과 이성은 하나의 논리적인 우주를 상상할 수 없고 그려볼 수 없다. 모타의 통찰력이 없으면, 필사 사람은 물질적인 세계의 현상들 속에서 선과 사랑 그리고 진리를 식별할 수 없다.
2025 103:6.13 계시는 진화 인간이 상물질 간격을 메우는 유일한 희망이다. 상지혜의 도움 없이, 믿음과 이치는 합리적 우주를 파악하고 연구할 수 없다. 상지혜의 통찰력 없이, 필사인은 물질 세계의 현상에서 선(善)ㆍ사랑ㆍ진실을 헤아릴 수 없다.
1955 103:6.14 When the philosophy of man leans heavily toward the world of matter, it becomes rationalistic or naturalistic. When philosophy inclines particularly toward the spiritual level, it becomes idealistic or even mystical. When philosophy is so unfortunate as to lean upon metaphysics, it unfailingly becomes skeptical, confused. In past ages, most of man’s knowledge and intellectual evaluations have fallen into one of these three distortions of perception. Philosophy dare not project its interpretations of reality in the linear fashion of logic; it must never fail to reckon with the elliptic symmetry of reality and with the essential curvature of all relation concepts.
2000 103:6.14 사람의 철학은 물질 세계를 향하여 상당히 기울어질 때, 합리주의나 자연주의가 된다. 영적 수준을 향하여 특별히 기울어질 때 철학은 이상주의나 신비주의가 되기도 한다. 몹시 불행하게도 형이상학에 기댈 때, 철학은 어김없이 회의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난 시대에, 사람의 지식과 지적 평가의 대부분은 이 세 가지 파악의 왜곡 중 하나에 빠졌다. 철학은 감히 직선 모양의 논리로 실체에 관한 해석을 예측하지 않는다. 철학은 결코 실체가 타원 모양으로 균형된 것, 그리고 모든 관계 개념이 본질적으로 굽어진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1 CM 103:6.14 사람의 철학은, 물질 세계를 향해서 과도하게 기울어질 때 합리주의적이 되거나 자연주의적이 된다. 영적 수준으로 두드러지게 기울어질 때, 철학은 이상주의적이 되거나 신비적이 되기도 한다. 형이상학에 기댈 정도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면, 철학은 반드시 회의적인, 혼란된 상태가 된다. 지난 시절에, 사람의 지식과 지적 평가 대부분은, 이런 세 가지 감지의 왜곡 가운데 하나에 빠져들었다. 철학은 실체에 대한 해석을 감히 직선형 방식의 논리로 제시하지 않으며;철학은, 실체가 타원형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 그리고 모든 관계 개념이 본질적으로 구부러져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2007 URKA 103:6.14 인간의 철학이 물질세계를 향하여 과도하게 기울어질 때, 그것은 합리주의적 또는 자연주의적 상태가 된다. 철학이 두드러지게 영적인 차원으로 기울어질 때, 그것은 이상주의적 또는 심지어 신비적 상태가 된다. 철학이 형이상학에 기댈 정도의 불행한 사태가 되면 그것은 반드시 회의론적인, 혼란된 상태가 된다. 지나간 시대들에 있어서 대부분의 인간의 지식과 지적 평가들은 이러한 세 가지의 왜곡된 인식에 빠져들었다. 철학은 그러한 실체에 대한 해석을 논리의 직선 모양으로 무작정 내비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실체의 타원형 대칭성과, 그리고 모든 관계 개념의 본질적 곡률(曲率)로서 다루는 데에서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된다.
2025 103:6.14 사람의 철학은 물질 세계를 향하여 상당히 기울어질 때, 합리주의나 자연주의가 된다. 영적 수준을 향하여 특별히 기울어질 때 철학은 이상주의나 아니 신비주의가 되기도 한다. 몹시 불행하게도 형이상학에 기댈 때, 철학은 어김없이 회의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난 시대에, 사람의 지식과 지적 평가의 대부분은 이 세 가지 왜곡된 파악 중 하나에 빠졌다. 철학은 감히 직선 모양의 논리로 실체에 관한 해석을 예측하지 않는다. 철학은 결코 실체가 타원 모양으로 균형된 것, 그리고 모든 관계 개념이 본질적으로 굽어진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55 103:6.15 The highest attainable philosophy of mortal man must be logically based on the reason of science, the faith of religion, and the truth insight afforded by revelation. By this union man can compensate somewhat for his failure to develop an adequate metaphysics and for his inability to comprehend the mota of the morontia.
2000 103:6.15 필사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철학은 과학의 이치에, 종교의 믿음에, 그리고 계시가 주는, 진리를 알아보는 통찰력에, 논리적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으로 사람은 적당한 형이상학을 개발하지 못하고 상물질의 상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상할 수 있다.
2001 CM 103:6.15 필사적 사람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 철학은, 과학의 이성에, 종교의 신앙에, 그리고 계시가 제공하는 통찰력 곧 진리를 알아보는 통찰력에 논리적으로 기초해야한다. 이렇게 통합함으로, 사람은 적당한 형이상학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모론시아의 모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보상할 수 있다.
2007 URKA 103:6.15 필사 사람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철학은 과학의 이성과 종교의 신앙 그리고 계시에 의해서 제공되는 진리 통찰 위에 논리적으로 기초를 두어야만 한다. 인간은 충분한 형이상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자신의 실패와 모론시아의 모타를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위하여 이러한 연합에 의해 어느 정도 보상을 이룩할 수 있다.
2025 103:6.15 필사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철학은 과학의 논리에, 종교의 믿음에, 그리고 계시가 주는, 진실을 알아보는 통찰력에, 논리적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으로 사람은 적당한 형이상학을 개발하지 못하고 상물질의 상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상할 수 있다.
7. SCIENCE AND RELIGION
7. 과학과 종교
7. 과학과 종교
7. 과학과 종교
7. 과학과 종교
1955 103:7.1 Science is sustained by reason, religion by faith. Faith, though not predicated on reason, is reasonable; though independent of logic, it is nonetheless encouraged by sound logic. Faith cannot be nourished even by an ideal philosophy; indeed, it is, with science, the very source of such a philosophy. Faith, human religious insight, can be surely instructed only by revelation, can be surely elevated only by personal mortal experience with the spiritual Adjuster presence of the God who is spirit.
2000 103:7.1 이치를 따지는 것은 과학을 지탱하고 믿음은 종교를 지탱한다. 추론에 바탕을 두지는 않아도, 믿음은 이치에 맞는다. 비록 논리에 의존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건전한 논리가 믿음을 북돋아 준다. 이상적 철학조차 믿음을 기를 수 없다. 정말로, 과학과 더불어, 믿음은 그러한 철학의 바로 그 근원이다. 믿음, 인간의 종교적 통찰력은 오로지 계시함으로 사람에게 확실히 가르칠 수 있고, 영이신 하나님이 영적 조절자로 깃드심을 필사자가 몸소 겪어야 확실하게 깊어질 수 있다.
2001 CM 103:7.1 과학은 이성으로 인해 지속되고, 종교는 신앙으로 인해 지속된다. 신앙은, 이성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이성적이며;논리와 무관함에도, 건전한 논리로 인해 촉진된다. 이상적 철학조차 신앙을 조성할 수 없으며;신앙은 정말로 과학과 함께 그런 철학의 바로 그 근원이다. 신앙 곧 인간의 종교적 통찰력은 계시에 의해서만 분명히 가르침 받을 수 있으며, 영이신 하나님이 영적 섭리사로서 현존하심을 필사자가 몸소 체험해야만 확실히 증진될 수 있다.
2007 URKA 103:7.1 과학은 이성에 의해 지속되고, 종교는 신앙에 의해 지속된다. 신앙은, 이성에 입각하지는 않더라도 이성적이다; 논리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논리에 의해 촉진된다. 신앙은 이상적인 철학에 의해서조차도 조성될 수 없으며; 그것은 정말로 과학과 함께 그러한 철학의 바로 그 근원이다. 인간의 종교적 통찰력인 신앙은 오직 계시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지시를 받는데, 영이신 하느님의 영적인 조절자 현존과 함께 오직 개인적인 인간 체험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증진될 수 있다.
1955 103:7.2 True salvation is the technique of the divine evolution of the mortal mind from matter identification through the realms of morontia liaison to the high universe status of spiritual correlation. And as material intuitive instinct precedes the appearance of reasoned knowledge in terrestrial evolution, so does the manifestation of spiritual intuitive insight presage the later appearance of morontia and spirit reason and experience in the supernal program of celestial evolution, the business of transmuting the potentials of man the temporal into the actuality and divinity of man the eternal, a Paradise finaliter.
2000 103:7.2 참된 구원은, 물질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상물질 연락이 있는 분야를 거쳐서, 영적 상호 관계가 있는 높은 우주 상태에 이르기까지, 필사 지성을 신답게 진화시키는 기법이다. 지상의 진화에서 물질적 직관 본능이 논리로 따져 얻은 지식의 출현을 앞서는 것처럼, 영적 직관의 통찰력이 나타나는 것은 상물질 및 영적 추리가 나중에 출현하고 하늘에서 진화하는 훌륭한 프로그람을 체험할 것을 미리 알리며, 이 천상의 진화는 일시적 인간의 잠재성을 실제로, 신다운 영원한 인간, 파라다이스 최후자로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2001 CM 103:7.2 참된 구원은, 물질과 일체화된 상태로부터, 모론시아 접촉이 있는 영역을 거쳐서, 영적 상호관계가 있는 높은 우주 상태에 이르기까지, 필사 정신을 신성하게 진화시키는 기법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직관 본능이 이 세상의 진화에서 이성에 의거한 지식의 출현보다 앞서는 것처럼, 영적인 직관적 통찰력이 나타남은, 하늘에서 이뤄지는 진화의 초월적 계획표, 즉 일시적 존재인 사람의 잠재성을 영원한 존재인 사람의 실체성과 신성{神性} 곧 낙원 완결성취자로 변환시키는 사업에서 모론시아와 영 이성과 체험이 나중에 출현할 것을 미리 예고한다.
2007 URKA 103:7.2 참된 구원은 필사자 마음을 사물 정체화구현에서 부터 모론시아 연락의 영역을 통과하여 영적인 상관관계의 높은 우주 지위에 이르게 하는 신성한 진화의 기법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직관적 본능이 이 세상의 진화 속에서 도리에 맞는 지식의 출현보다 앞서는 것처럼, 영적인 직관적 통찰의 현시활동이 천상(天上)의 진화에 대한 숭고한 계획, 일시적 존재인 인간의 잠재를 변환시켜서 파라다이스의 최종자인 영원한 인간의 실재성과 신성을 이룩하는 일에 있어서 나중에 나타나는 모론시아 그리고 영의 이성과 체험의 전조(前兆)가 된다.
2025 103:7.2 참된 구원은, 물질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상물질 연락이 있는 분야를 거쳐서, 영적 상호 관계가 있는 높은 우주 상태에 이르기까지, 필사 지성을 신이 진화시키는 기법이다. 지상의 진화에서 물질적 직관 본능이 논리로 따져 얻은 지식의 출현보다 앞서는 것처럼, 영적 직관의 통찰력이 나타나는 것은 상물질 및 영적 추리가 나중에 출현하고 하늘에서 진화하는 훌륭한 프로그람을 체험할 것을 미리 알리며, 이 천상의 진화는 일시적 인간의 잠재성을 실제로, 신다운 영원한 인간, 파라다이스 최후자로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1955 103:7.3 But as ascending man reaches inward and Paradiseward for the God experience, he will likewise be reaching outward and spaceward for an energy understanding of the material cosmos. The progression of science is not limited to the terrestrial life of man; his universe and superuniverse ascension experience will to no small degree be the study of energy transmutation and material metamorphosis. God is spirit, but Deity is unity, and the unity of Deity not only embraces the spiritual values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but is also cognizant of the energy facts of the Universal Controller and the Isle of Paradise, while these two phases of universal reality are perfectly correlated in the mind relationships of the Conjoint Actor and unified on the finite level in the emerging Deity of the Supreme Being.
2000 103:7.3 그러나 하늘 가는 사람이 하나님 체험을 얻으려고 안으로, 파라다이스를 향하여 손을 뻗음에 따라서,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물질 우주의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바깥으로, 공간을 향하여 손을 뻗고 있을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사람이 땅에서 사는 인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지역 우주와 초우주를 올라가는 체험은, 적지 않게 에너지의 변질과 물질 변형의 연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지만, 신은 하나되는 것이요, 신이 하나됨은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영적 가치를 담을 뿐 아니라, 우주 통제자와 파라다이스 섬의 에너지 사실을 또한 인식하고, 한편 이 두 단계의 우주 실체는 합동 행위자의 지성 관계에서 완전히 서로 상관되고, 최상 존재의 솟아나는 신의 유한 수준에서 통일된다.
2001 CM 103:7.3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려고 안쪽으로 그리고 낙원 쪽으로 손을 뻗음에 따라서, 상승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물질 시공우주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바깥쪽으로, 그리고 외계{外界} 쪽으로 손을 뻗고 있을 것이다. 과학의 진행과정은 사람이 땅에서 사는 인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사람이 지방우주와 연방우주에서 상승하는 체험은, 적지 않게 에너지 변형과 물질적 변질에 대해 연구함일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지만, 신격은 통일성이고, 신격의 통일성은,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의 영적 가치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우주 통제관과 낙원 섬의 에너지 실상을 인지하며, 한편 이 두 국면의 우주 실체는, 공동 행위자와 정신의 연관성에서 서로 완전하게 관련되고, 지존하신 분의 떠오르는 신격 속에서 유한 수준으로 통합된다.
2007 URKA 103:7.3 그러나 상승하는 사람이 하느님 체험을 위하여 안쪽으로 그리고 파라다이스 쪽으로 도달함에 따라, 마찬가지로 그는 물질적 조화우주를 납득하는 하나의 에너지를 위하여 바깥쪽으로 그리고 공간 쪽으로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사람의 세속적 일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의 우주와 초우주 상승 체험은, 에너지 변질과 물질 변환의 연구와 그 어떤 작은 차이도 없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영이지만, 신(神)은 합일이며, 신(神)의 합일은 우주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영적 가치들을 포옹할 뿐만 아니라 우주통제자와 파라다이스 섬의 에너지 사실들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주 실체의 이들 두 현상은 공동 행위자의 마음 관계들안에서 완전하게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리고 최극존재의 창발하는 신(神) 안에 있는 유한 차원 위에서 통합된다.
2025 103:7.3 그러나 하늘 가는 사람이 하나님 체험을 얻으려고 안으로, 파라다이스를 향하여 손을 뻗음에 따라서,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물질 우주의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바깥으로, 공간을 향하여 손을 뻗고 있을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사람이 땅에서 사는 인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지역 우주와 초우주를 올라가는 체험은, 적지 않게 에너지의 변질과 물질 변형의 연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지만, 신은 하나되는 것이요, 신이 하나됨은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영적 가치를 담을 뿐 아니라, 우주 통제자와 파라다이스 섬의 에너지 사실을 또한 인식하고, 한편 이 두 단계의 우주 실체는 합동 행위자의 지성 관계에서 완전히 서로 상관되고, 최상 존재의 솟아나는 신의 유한 수준에서 통일된다.
1955 103:7.4 The union of the scientific attitude and the religious insight by the mediation of experiential philosophy is part of man’s long Paradise-ascension experience. The approximations of mathematics and the certainties of insight will always require the harmonizing function of mind logic on all levels of experience short of the maximum attainment of the Supreme.
2000 103:7.4 체험적 철학의 중재로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통찰력을 연합하는 것은 사람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오랜 체험의 일부이다. 수학이 추정(推定)한 것과 통찰력이 확실히 얻은 것은 최대의 달성인 최상위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수준의 체험에서, 지성 논리의 조화시키는 기능을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이다.
2001 CM 103:7.4 체험적 철학의 중재로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통찰력을 결합시키는 일은, 사람의 긴 낙원-상승{上昇} 체험의 일부분이다. 수학이 추정한 것과 통찰력이 확실히 얻은 것은, 지존자라는 최고 달성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수준의 체험에서, 정신 논리의 조화시키는 역할을 항상 필요로 할 것이다.
2007 URKA 103:7.4 체험적 철학의 중재에 의한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통찰력의 연합은 인간의 긴 파라다이스-상승 체험의 일부이다. 수학의 추정과 통찰력의 확실성은 최극자의 최대 달성에 약간 못 미치는 모든 체험 차원 위에서 항상, 마음 논리적 속성의 조화하는 기능을 요구할 것이다.
2025 103:7.4 체험적 철학의 중재로 과학적 태도와 종교적 통찰력을 연합하는 것은 사람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오랜 체험의 일부이다. 수학이 추정(推定)한 것과 통찰력이 확실히 얻은 것은 최대의 달성인 최상위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수준의 체험에서, 지성 논리의 조화시키는 기능을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이다.
1955 103:7.5 But logic can never succeed in harmonizing the findings of science and the insights of religion unless both the scientific and the religious aspects of a personality are truth dominated, sincerely desirous of following the truth wherever it may lead regardless of the conclusions which it may reach.
2000 103:7.5 그러나 한 인격의 과학적ㆍ영적 모습이 진리에 지배되고, 진리가 무슨 결론을 내리든 상관 없이 어디든지 이끄는 대로 진리를 따를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한, 논리는 과학의 조사 결과와 종교의 통찰력을 조화시키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2001 CM 103:7.5 그러나 한 인격의 과학적 면과 종교적 면 양쪽이 진리에 지배되지 못하면, 즉 진리가 무슨 결론을 내리든지 상관없이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어디든지 따라가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면, 논리는 과학의 연구결과와 종교의 통찰력을 조화시키기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2007 URKA 103:7.5 그러나 논리는 과학의 발견들과 종교의 통찰들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서, 개인성의 과학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 둘 모두가 진리의 지배를 받지 못한다면, 도달할 수도 있는 결론에 상관없이, 진리가 인도할 수 있는 어느 곳이나 따라가기를 진지하게 바라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2025 103:7.5 그러나 한 인격의 과학적ㆍ영적 모습이 진실에 지배되고, 진실이 무슨 결론을 내리든 상관없이 어디든지 이끄는 대로 진실을 따를 것을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한, 논리는 과학의 조사 결과와 종교의 통찰력을 조화시키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1955 103:7.6 Logic is the technique of philosophy, its method of expression. Within the domain of true science, reason is always amenable to genuine logic; within the domain of true religion, faith is always logical from the basis of an inner viewpoint, even though such faith may appear to be quite unfounded from the inlooking viewpoint of the scientific approach. From outward, looking within, the universe may appear to be material; from within, looking out, the same universe appears to be wholly spiritual. Reason grows out of material awareness, faith out of spiritual awareness, but through the mediation of a philosophy strengthened by revelation, logic may confirm both the inward and the outward view, thereby effecting the stabilization of both science and religion. Thus, through common contact with the logic of philosophy, may both science and religion become increasingly tolerant of each other, less and less skeptical.
2000 103:7.6 논리는 철학의 기법이요, 철학의 표현 방법이다. 참 과학의 분야 안에서, 추리는 반드시 진정한 논리에 순종한다. 참된 종교의 분야 안에서, 속을 들여다보는 과학적 접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믿음이 도무지 근거가 없어 보이더라도, 믿음은 안에서 보는 관점의 기초에서 볼 때 반드시 논리가 있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우주는 물질로 보일지 모른다. 안에서 바깥을 보면, 바로 그 우주는 온통 영적인 듯이 보인다. 이치는 물질을 의식함에서 생기고, 믿음은 영적 의식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계시로 강화된 철학의 중재를 통해서, 논리는 안과 바깥의 관점 모두를 확인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함으로 과학과 종교, 이 두 가지를 안정시킨다. 따라서, 공동으로 철학의 논리와 접촉함으로, 과학과 종교, 이 두 가지가 갈수록 더 서로에게 관대하게 되고, 회의(懷疑)가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
2001 CM 103:7.6 논리는 철학의 기법이요 그 표현 방법이다. 참된 과학 영역에서, 이성은 진실된 논리를 항상 쾌히 받아들이며;참된 종교 영역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과학적 접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런 신앙이 지극히 근거 없는 것처럼 보임에도, 신앙은 내부 관점의 기준으로 볼 때 반드시 논리가 있다.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우주는 물질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며;안에서 밖으로 보면, 바로 그 우주는 온통 영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성은 물질을 자각함에서 자라나고, 신앙은 영적 자각에서 자라나지만, 논리는 계시로 강화된 철학의 중재를 통해서 안쪽 관점과 바깥쪽 관점 양쪽을 확인할 수 있고, 이렇게 하여 과학과 종교의 안정에 효력을 미친다. 따라서, 과학과 종교 양쪽은, 철학의 논리와 공동으로 접촉함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점점 더 관대하게 되고 회의{懷疑}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
2007 URKA 103:7.6 논리는 철학의 기법, 그것의 표현 방법이다. 참된 과학의 권역 안에서, 이성은 진실한 논리에 항상 복종할 수 있다; 참된 종교의 권역 안에서, 신앙은 내부 관점의 바탕에서 볼 때 항상 논리적이며, 설사 그러한 신앙이 과학적 접근에서 안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볼 때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논리적이다. 외부로부터 안을 들여다보면, 우주는 물질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안에서 밖으로 보면, 동일한 그 우주는 온통 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성은 물질적인 깨달음으로부터 자라나고 신앙은 영적인 깨달음으로부터 자라나지만, 논리는 계시에 의해 강화된 철학의 중재를 통하여 안쪽으로의 관점과 바깥쪽으로의 관점 둘 모두를 확립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여 과학과 종교의 안정에 효력을 미친다. 그래서 철학의 논리와 평범하게 접촉함을 통하여 과학과 종교는 서로에 대하여 점점 더 관대하게 되고 회의(懷疑)가 점점 줄어든다.
2025 103:7.6 논리는 철학의 기법이요, 철학의 표현 방법이다. 참 과학의 분야 안에서, 추리는 반드시 진정한 논리에 순종한다. 참된 종교의 분야 안에서, 속을 들여다보는 과학적 접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믿음이 도무지 근거가 없어 보이더라도, 믿음은 내면의 관점의 기초에서 볼 때 반드시 논리가 있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우주는 물질로 보일지 모른다. 안에서 바깥을 보면, 바로 그 우주는 온통 영적인 듯이 보인다. 논리는 물질을 의식함에서 생기고, 믿음은 영적 의식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계시로 강화된 철학의 중재를 통해서, 논리는 안과 바깥의 관점 모두를 확인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함으로 과학과 종교, 이 두 가지를 안정시킨다. 따라서, 공동으로 철학의 논리와 접촉함으로, 과학과 종교, 이 두 가지가 갈수록 더 서로에게 관대하게 되고, 회의(懷疑)가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
1955 103:7.7 What both developing science and religion need is more searching and fearless self-criticism, a greater awareness of incompleteness in evolutionary status. The teachers of both science and religion are often altogether too self-confident and dogmatic. Science and religion can only be self-critical of their facts. The moment departure is made from the stage of facts, reason abdicates or else rapidly degenerates into a consort of false logic.
2000 103:7.7 발달하는 과학과 종교가 필요한 것은 더욱 탐구하는, 두려움 없는 자아 비판이요, 진화적 지위의 불완전함을 더욱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의 스승들은 흔히 너무 자신 있고 독단적이다. 과학과 종교는 오로지 그들이 가진 사실에 대하여 자체를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의 무대를 떠나는 순간, 이치는 물러나든지, 아니면 거짓 논리의 배우자로 빨리 퇴화되어 버린다.
2001 CM 103:7.7 발달하는 과학과 종교 양쪽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탐색과 담대한 자기-비평, 즉 미완된 진화 상태를 더 많이 자각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의 선생들은, 너무 과잉된 자기-확신과 독단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학과 종교는 그 사실에 대해 자체-비평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이라는 무대에서 떠나는 순간, 이성은 기권하든지 아니면 잘못된 논리라는 닮은꼴 속으로 급속도로 타락한다.
2007 URKA 103:7.7 발달하는 과학과 종교 둘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탐색과 담대한 자아-비판, 진화 지위에 있어서의 미완성에 대한 더 많은 깨달음이다. 과학과 종교의 스승들은 양쪽 모두 흔히 너무나도 자아-확신적이고 독단적이다. 과학과 종교는 오직 그들이 지닌 사실들에 대해서만 자아-비판적이 될 수 있다. 사실들의 무대에서 떠나는 순간, 이성은 물러나든지 아니면 거짓 논리 속으로 급속도로 퇴화한다.
2025 103:7.7 발달하는 과학과 종교가 필요한 것은 더욱 탐구하는, 두려움 없는 자아 비판이요, 진화적 지위의 불완전함을 더욱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의 스승들은 흔히 너무 자신 있고 독단적이다. 과학과 종교는 오로지 그들이 가진 사실에 대하여 자체를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의 무대를 떠나는 순간, 이치는 물러나든지, 아니면 거짓 논리의 배우자로 빨리 퇴화되어 버린다.
1955 103:7.8 The truth—an understanding of cosmic relationships, universe facts, and spiritual values—can best be had through the ministry of the Spirit of Truth and can best be criticized by revelation. But revelation originates neither a science nor a religion; its function is to co-ordinate both science and religion with the truth of reality. Always, in the absence of revelation or in the failure to accept or grasp it, has mortal man resorted to his futile gesture of metaphysics, that being the only human substitute for the revelation of truth or for the mota of morontia personality.
2000 103:7.8 진리―우주 관계, 우주 사실 및 영적 가치의 이해―는 진리의 영이 베푸는 봉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 최선이고, 계시로 비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계시는 과학도 종교도 창시하지 않는다. 계시의 기능은 과학과 종교를 실체의 진리와 조정하는 것이다. 계시가 없는 가운데서 또는 계시를 받아들이거나 붙잡지 못할 때, 필사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만든 쓸데없는 형이상학의 손짓에 의존했고, 형이상학은 인간에게 진리의 계시, 또는 상물질 인격의 상지혜를 대신하는 유일한 대용품이다.
2001 CM 103:7.8 진리--곧 시공우주 관계와 우주 실상과 영적 가치에 대한 이해--는, 진리의 영의 섬김을 통해서 얻는 것이 최선이고, 계시로 비평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계시는 과학도 종교도 창시하지 않으며;계시의 역할은 과학과 종교를 실체의 진리와 조화시키는 것이다. 계시가 없을 때, 또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파악하지 못할 때, 필사적 사람은 늘, 자신이 만든 형이상학이라는 헛된 손짓에 의지해 왔는데, 형이상학은 진리 계시 또는 모론시아 인격의 모타를 대신하는 유일한 인간적 대용품이다.
2007 URKA 103:7.8 진리─조화우주 관계들, 우주 사실들, 그리고 영적인 가치들에 대한 납득─은 진리의 영의 사명활동을 통하여 가장 잘 소유될 수 있으며 계시에 의해서 가장 잘 비판될 수 있다. 그러나 계시는 과학과 종교 중 어떤 것도 창출하지 않는다; 계시의 기능은 과학과 종교를 실체에 대한 진리로 조화-협동시키는 것이다. 계시가 없을 때 또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파악하지 못할 때에는, 필사 사람은, 항상, 형이상학에 대한 자신의 쓸데없는 몸짓에 호소하는데, 그것은 진리의 계시 또는 모론시아 개인성의 모타에 대한 유일한 인간적 대용품이다.
2025 103:7.8 진실 ― 우주 관계, 우주 사실 및 영적 가치의 이해 ― 는 진실의 영이 베푸는 봉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 최선이고, 계시로 비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계시는 과학도 종교도 창시하지 않는다. 계시의 기능은 과학과 종교를 실체의 진실과 조정하는 것이다. 계시가 없는 가운데서 또는 계시를 받아들이거나 붙잡지 못할 때, 필사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만든 쓸데없는 형이상학의 손짓에 의존했고, 형이상학은 인간에게 진실의 계시, 또는 상물질 인격의 상지혜를 대신하는 유일한 대용품이다.
1955 103:7.9 The science of the material world enables man to control, and to some extent dominate, his physical environment. The religion of the spiritual experience is the source of the fraternity impulse which enables men to live together in the complexities of the civilization of a scientific age. Metaphysics, but more certainly revelation, affords a common meeting ground for the discoveries of both science and religion and makes possible the human attempt logically to correlate these separate but interdependent domains of thought into a well-balanced philosophy of scientific stability and religious certainty.
2000 103:7.9 물질 세계를 다루는 과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리적 환경을 통제하고,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게 만든다. 영적 체험의 종교는 친교하는 충동의 근원이며, 이것은 과학 시대의 문명이 복잡한 와중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만든다. 형이상학, 그러나 계시는 더 확실히, 과학과 종교, 이 둘을 발견하기 위하여 공통으로 만나는 장소를 마련해 주며, 동떨어졌어도 서로 의존하는 이 생각 분야들을 논리 있게 서로 연결지어서, 과학적으로 안정되고 종교적으로 확실한, 잘 균형된 철학으로 만드는 인간의 노력을 가능하게 한다.
2001 CM 103:7.9 물질 세계를 다루는 과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리적 환경을 통제하고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게 한다. 영적 체험의 종교는, 과학 시대의 문명의 복잡성 속에서 사람이 함께 살 수 있게 해주는 형제애를 자극하는 근원이다. 과학과 종교, 이 둘을 발견하기 위해 공통으로 만나는 토대를 형이상학이, 그러나 더 확실하게는 계시가 제공하며, 분리돼있으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이런 사고 분야들을 논리적으로 서로 관련시켜서, 과학적으로 안정되고 종교적으로 확실한, 잘 균형 잡힌 철학이 되도록 만드는 인간의 수고를 가능하게 한다.
2007 URKA 103:7.9 물질적 세계의 과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고 어느 정도는 지배할 수 있게 한다. 영적인 체험의 종교는, 과학 시대의 문명의 복잡성 속에서 인간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형제우애관계 충동의 근원이다. 형이상학이,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는 계시가, 과학과 종교의 발견들을 위한 일반적인 접합 토대를 제공하며, 인간적인 노력으로 하여금 이러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생각 권역이 과학적인 안정성과 종교적인 확실성의 잘 균형 잡힌 철학에 이르도록 논리적으로 관련시키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2025 103:7.9 물질 세계를 다루는 과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물리적 환경을 통제하고,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게 만든다. 영적 체험의 종교는 친교하는 충동의 근원이며, 이것은 과학 시대의 문명이 복잡한 와중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만든다. 형이상학, 그러나 계시는 더 확실히, 과학과 종교, 이 둘을 발견하기 위하여 공통으로 만나는 장소를 마련해 주며, 동떨어졌어도 서로 의존하는 이 생각 분야들을 논리 있게 서로 연결 지어서, 과학적으로 안정되고 종교적으로 확실한, 잘 균형된 철학으로 만드는, 인간의 노력을 가능하게 한다.
1955 103:7.10 In the mortal state, nothing can be absolutely proved; both science and religion are predicated on assumptions. On the morontia level, the postulates of both science and religion are capable of partial proof by mota logic. On the spiritual level of maximum status, the need for finite proof gradually vanishes before the actual experience of and with reality; but even then there is much beyond the finite that remains unproved.
2000 103:7.10 필사자의 지위에서는 아무것도 절대로 증명할 수 없다. 과학과 종교 모두가 가정(假定)에 바탕을 둔다. 상물질 수준에서 과학과 종교의 여러 가설은 상지혜 논리로 어느 정도 증명이 가능하다. 최대의 지위인 영적 수준에서, 실제로 실체를 맛보고 실체와 함께 맛보는 체험 이전에, 유한한 증명을 보일 필요가 차츰 사라진다. 그러나 그때에도 유한한 것을 지나서 증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있다.
2001 CM 103:7.10 필사자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데;과학과 종교 둘 다 가정{假定}에 입각하기 때문이다. 모론시아 수준에서, 과학과 종교의 여러 가설은 모타 논리로 어느 정도 증명될 수 있다. 최고 상태인 영적 수준에서는, 실제로 실체를 체험하고 실체와 함께 체험하기 전에, 유한한 증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지만;그럴 때에도, 유한 상태를 뛰어넘어 증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다.
2007 URKA 103:7.10 필사자 상태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절대적으로 증명될 수 없으며; 과학과 종교 모두 가정들 위에 입각한다. 모론시아 차원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가정들이 모타 논리에 의해 부분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최고의 지위인 영적 차원에서는, 실체에 대한 그리고 실체와의 실재적 체험 앞에서 제한적인 증명의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지만; 그럴지라도 거기에는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유한적 상태를 크게 뛰어넘는 것들이 존재한다.
2025 103:7.10 필사자의 지위에서는 아무것도 절대로 증명할 수 없다. 과학과 종교 모두가 가정(假定)에 바탕을 둔다. 상물질 수준에서 과학과 종교의 여러 가설은 상지혜 논리로 어느 정도 증명이 가능하다. 최대의 지위인 영적 수준에서, 실제로 실체를 맛보고 실체와 함께 맛보는 체험 이전에, 유한한 증명을 보일 필요가 차츰 사라진다. 그러나 그때에도 유한한 것을 지나서 증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많이 있다.
1955 103:7.11 All divisions of human thought are predicated on certain assumptions which are accepted, though unproved, by the constitutive reality sensitivity of the mind endowment of man. Science starts out on its vaunted career of reasoning by assuming the reality of three things: matter, motion, and life. Religion starts out with the assumption of the validity of three things: mind, spirit, and the universe—the Supreme Being.
2000 103:7.11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분야는, 증명되지 않았어도, 사람의 지성 자질을 구성하는 실체에 대한 민감성을 이용하여 받아들인 어떤 여러 가정에 근거를 둔다. 물질ㆍ움직임ㆍ생명, 이 세 가지 실체를 가정함으로, 과학은 자랑스러운 그 추리 경력을 시작한다. 종교는 지성ㆍ영ㆍ우주―즉 최상 존재―이 세 가지가 정당함을 가정하고서 시작한다.
2001 CM 103:7.11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분야는, 증명되지 않은 가정임에도, 사람의 정신 재능을 구성하는 실체에 대한 감수성을 이용해서 받아들인, 어떤 여러 가정에 입각한다. 과학은:물질과 움직임과 생명, 이 세 가지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자랑스러운 이성작용의 경력을 시작한다. 종교는:정신과 영과 우주 이 세 가지가--곧 지존하신 분이-- 정당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2007 URKA 103:7.11 인간 생각의 모든 분야들은, 사람의 마음 자질이 갖는 구조적 실체 감수성에 의해,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여지는 어떤 가정들에 입각한다. 과학은 세 가지 즉: 물질과 동작과 생명에 대한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추론 활동의 그 자랑스러운 생애를 시작한다. 종교는 세 가지 즉: 마음과 영 그리고 우주─최극존재─의 정당성에 대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2025 103:7.11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분야는, 증명되지 않았어도, 사람의 지성 자질을 구성하는 실체에 대한 민감성을 이용하여 받아들인 어떤 여러 가정에 근거를 둔다. 물질ㆍ움직임ㆍ생명, 이 세 가지 실체를 가정함으로, 과학은 칭찬 받는 그 추리 경력을 시작한다. 종교는 지성ㆍ영ㆍ우주 ― 즉 최상 존재 ― 이 세 가지가 정당함을 가정하고서 시작한다.
1955 103:7.12 Science becomes the thought domain of mathematics, of the energy and material of time in space. Religion assumes to deal not only with finite and temporal spirit but also with the spirit of eternity and supremacy. Only through a long experience in mota can these two extremes of universe perception be made to yield analogous interpretations of origins, functions, relations, realities, and destinies. The maximum harmonization of the energy-spirit divergence is in the encircuitment of the Seven Master Spirits; the first unification thereof, in the Deity of the Supreme; the finality unity thereof, in the infin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the I AM.
2000 103:7.12 과학은 공간에서 시간적 에너지와 물질을 다루는 수학을 생각하는 분야가 된다. 종교는 유한한 현세의 영 뿐 아니라, 또한 영원한 최고의 영을 다루기를 가정한다. 오로지 상지혜를 오랫동안 겪는 체험을 통해서, 우주를 파악하는 이 두 가지 극단이 기원ㆍ기능ㆍ관계ㆍ실체ㆍ운명을 비슷하게 풀이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일곱 으뜸 영의 회로에는 에너지와 영의 분산이 최대로 조화되어 있다. 최상위의 신 속에 에너지와 영이 처음으로 통일되고, 첫째 근원 중심, 스스로 계신 이의 무한 속에 최종으로 통일된다.
2001 CM 103:7.12 과학은, 공간에서 시간세계의 에너지와 물질을 다루는, 수학의 사고 영역이 된다. 종교는 유한한 속세의 기질 뿐만 아니라, 영원한 최상의 영을 다루고자 한다. 오직 모타를 오랫동안 겪는 체험을 통해서만, 우주를 감지하는 이런 두 극단이, 기원, 기능, 관계, 실체, 및 운명을 유사하게 해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일곱 으뜸 영의 순회활동에서, 에너지와-영의 확산이 최고로 조화돼있으며;지존자 신격 속에서, 에너지와-영이 처음으로 통합되며;자존자{自存者}이신 제1 근원 및 중심의 무한성 안에서, 최종으로 통일된다.
2007 URKA 103:7.12 과학은 공간 속에서 시간의 에너지와 물질을 다루는, 수학의 생각 권역이 된다. 종교는 유한하고 현세적인 영뿐만 아니라 영원과 최극위의 영(靈)도 다루려고 가정한다. 우주 인식의 이들 두 극단들은 오직 모타 속에서의 긴 체험을 통해서만 기원, 기능, 관계, 실체, 그리고 운명에 대한 비슷한 해석을 산출할 수 있다. 에너지-영 분산에 대한 최고의 조화로움은 일곱 주(主) 영들의 회로연결 안에 있다; 그것으로부터의 최초 통일은 최극자의 신(神) 속에 있다; 그것으로부터의 최종자 합일은 스스로 이신 이,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무한성 안에 있다.
1955 103:7.13 Reason is the act of recognizing the conclusions of consciousness with regard to the experience in and with the physical world of energy and matter. Faith is the act of recognizing the validity of spiritual consciousness—something which is incapable of other mortal proof. Logic is the synthetic truth-seeking progression of the unity of faith and reason and is founded on the constitutive mind endowments of mortal beings, the innate recognition of things, meanings, and values.
2000 103:7.13 이치를 따지는 것은 에너지와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계 속에서, 그 세계와 함께 겪는 체험에 관하여, 의식이 내리는 결론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믿음은 영적 의식―필사자가 달리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정당함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논리는 믿음과 이치가 통일되어 진리를 찾아 통합하여 전진하는 것이며, 필사 존재를 구성하는 지성 자질에, 사물ㆍ의미, 가치 기준을 날 때부터 인식하는 데, 기초를 둔다.
2001 CM 103:7.13 이성은, 에너지와 물질로 이뤄진 물리 세계에서, 그리고 이 세계와 함께 겪는 체험에 관하여, 의식{意識}이 내리는 결정을 인식하는 활동이다. 신앙은, 영적 의식--곧 필사자가 달리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의 타당성을 인식하는 활동이다. 논리는, 신앙과 이성이 통일되어 진리를-추구함으로 일관되게 진행하는 것이고, 필사 존재를 구성하는, 정신 재능 곧 사물과 의미와 가치기준을 선천적으로 인식하는 데 기초한다.
2007 URKA 103:7.13 이성은 에너지와 물질의 물리적 세계 안에서의 그리고 그 세계와의 체험에 관한 인식의 결정을 인식하는 행동이다. 신앙은 영적인 의식(意識)─다른 인간적 증명이 불가능한 어떤 것─의 정당성에 대한 인식 활동이다. 논리는 신앙과 이성의 합일이 이루는 종합적인 진리-추구 진행이며, 필사 존재들의 구조적인 마음 자질들, 사물들과 의미들과 가치들에 대한 타고난 인식에 기초한다.
2025 103:7.13 이치를 따지는 것은 에너지와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세계 속에서, 그 세계와 함께 겪는 체험에 관하여, 의식이 내리는 결론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믿음은 영적 의식 ― 필사자가 달리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 ― 이 정당함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논리는 믿음과 이치가 통일되어 진실의 추구를 향하여 통합하여 전진하는 것이며, 필사 존재를 구성하는 지성 자질에, 즉 사물ㆍ의미, 가치 기준을 날 때부터 인식하는 데, 기초를 둔다.
1955 103:7.14 There is a real proof of spiritual reality in the presence of the Thought Adjuster, but the validity of this presence is not demonstrable to the external world, only to the one who thus experiences the indwelling of God. The consciousness of the Adjuster is based on the intellectual reception of truth, the supermind perception of goodness, and the personality motivation to love.
2000 103:7.14 생각 조절자의 계심에는 영적 실체가 있다는 진정한 증명이 있다. 그러나 이 계심이 정당한 것을 바깥 세계에 증명할 수 없고, 이처럼 하나님이 깃드심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만 그럴 수 있다. 조절자를 의식하는 것은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선을 초월 지성이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인격의 사랑하는 동기에 기초를 둔다.
2001 CM 103:7.14 영적 실체가 있음을 사고 섭리사 현존이 실제로 증명하지만, 이 현존의 타당성은, 외부세계에 증명될 수 없고,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그렇게 체험하는 사람에게만 증명될 수 있다. 섭리사를 의식하는 것은, 진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선을 초월정신이 감지하는 것에, 그리고 인격의 사랑하고자 하는 동기에 기초한다.
2007 URKA 103:7.14 생각 조절자의 현존 안에 영적 실체에 대한 실제 증거가 있지만, 이 현존의 정당성은 외부 세계에 실증되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내주하심을 그렇게 체험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조절자에 대한 인식은 진리에 대한 지적 수용과 선(善)에 대한 초(超)마음 인식 그리고 사랑하고자 하는 개인성 동기유발에 기초를 둔다.
2025 103:7.14 생각 조절자의 계심에는 영적 실체가 있다는 진정한 증명이 있다. 그러나 이 계심이 정당한 것을 바깥 세계에 증명할 수 없고, 이처럼 하나님이 깃드심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만 그럴 수 있다. 조절자를 의식하는 것은 진실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선을 초월 지성이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인격의 사랑하는 동기에 기초를 둔다.
1955 103:7.15 Science discovers the material world, religion evaluates it, and philosophy endeavors to interpret its meanings while co-ordinating the scientific material viewpoint with the religious spiritual concept. But history is a realm in which science and religion may never fully agree.
2000 103:7.15 과학은 물질 세계를 발견하고, 종교는 그 세계를 평가하고, 철학은 그 의미를 풀이하려 애쓰며, 한편 과학의 물질적 관점과 종교의 영적 개념을 조정한다. 그러나 역사(歷史)는 과학과 종교가 결코 완전히 의견이 같을 수 없는 영역이다.
2001 CM 103:7.15 과학은 물질 세계를 발견하고, 종교는 그 세계를 평가하고, 철학은 그 의미를 해석하는 한편, 과학의 물질적 관점과 종교의 영적 개념을 조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역사는, 과학과 종교가 결코 충분히 동의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다.
2007 URKA 103:7.15 과학은 물질적 세계를 발견하고, 종교는 그것을 평가하며, 철학은 과학의 물질적 관점을 종교의 영적 개념과 조화-협동시키면서 그 의미 해석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 안에서 과학과 종교가 결코 충만하게 동의할 수 없는 그러한 영역이다.
2025 103:7.15 과학은 물질 세계를 발견하고, 종교는 그 세계를 평가하고, 철학은 그 의미를 풀이하려 애쓰며, 한편 과학의 물질적 관점과 종교의 영적 개념을 조정한다. 그러나 역사(歷史)는 과학과 종교가 결코 완전히 의견이 같을 수 없는 영역이다.
8. PHILOSOPHY AND RELIGION
8. 철학과 종교
8. 철학과 종교
8. 철학과 종교
8. 철학과 종교
1955 103:8.1 Although both science and philosophy may assume the probability of God by their reason and logic, only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a spirit-led man can affirm the certainty of such a supreme and personal Deity. By the technique of such an incarnation of living truth the philosophic hypothesis of the probability of God becomes a religious reality.
2000 103:8.1 과학과 철학이 모두 이치와 논리로 하나님이 있음직하다는 것을 가정할까 싶어도,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몸소 겪는 종교적 체험만이 성격을 가진 그러한 최상의 신이 확실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생한 진리를 그렇게 육신화하는 기법으로, 하나님이 아마도 있으리라는 철학적 가정은 종교적 현실이 된다.
2001 CM 103:8.1 과학과 철학이 모두 자체의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의 실존가능성을 가정할 수 있더라도, 오직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몸소 겪는 종교 체험만이, 인격있는 그런 최상의 신격이 확실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철학적 가정은, 살아있는 진리를 그렇게 실현하는 기법으로 종교의 실체가 된다.
2007 URKA 103:8.1 비록 과학과 철학이 그들의 이성과 논리에 의해 하느님의 존재 가능성을 가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오직 개인적인 종교 체험만이 영의 인도를 받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최극 그리고 개인적 신(神)에 대한 확실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가정은 살아있는 진리에 대한 그러한 구체적 실현 기법에 의해서 하나의 종교적 실체가 된다.
2025 103:8.1 과학과 철학이 모두 이치와 논리로 하나님이 있음직하다는 것을 가정할까 싶어도,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몸소 겪는 종교적 체험만이 성격을 가진 그러한 최상의 신이 확실히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생한 진실을 그렇게 육신화하는 기법으로, 하나님이 아마도 있으리라는 철학적 가정은 종교적 현실이 된다.
1955 103:8.2 The confusion about the experience of the certainty of God arises out of the dissimilar interpretations and relations of that experience by separate individuals and by different races of men. The experiencing of God may be wholly valid, but the discourse about God, being intellectual and philosophical, is divergent and oftentimes confusingly fallacious.
2000 103:8.2 하나님이 확실히 계심을 체험하는 것에 관한 혼란은 개인들이 따로, 그리고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 그 체험을 달리 풀이하고 진술하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 관한 대화는 지적ㆍ철학적이니까 서로 다르며, 때때로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허위이다.
2001 CM 103:8.2 하나님이 확실히 계심을 체험하는 것에 관한 혼동은, 개인들이 따로따로, 그리고 다른 종족 사람들이 그 체험을 달리 해석하고 진술하는 데서 발생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이고 철학적이기 때문에 서로 다르고, 때로는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불합리하다.
2007 URKA 103:8.2 하느님의 확실성 체험에 관한 혼동은 분리된 개별존재들과 서로 다른 인간 종족들에 의해 얻어진 그 체험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그 관계들로부터 발생된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할 수 있지만, 하느님에 관하여 강연하는 것은 지적이고 철학적이기는 하나 여러 가지로 나뉘고 때로는 혼란스럽게 잘못되기도 한다.
2025 103:8.2 하나님이 확실히 계심을 체험하는 것에 관한 혼란은 개인들이 따로, 그리고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 그 체험을 달리 풀이하고 진술하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 관한 대화는 지적ㆍ철학적이니까 서로 다르며, 때때로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허위이다.
1955 103:8.3 A good and noble man may be consummately in love with his wife but utterly unable to pass a satisfactory written examination on the psychology of marital love. Another man, having little or no love for his spouse, might pass such an examination most acceptably. The imperfection of the lover’s insight into the true nature of the beloved does not in the least invalidate either the reality or sincerity of his love.
2000 103:8.3 착하고 고귀한 남자가 제 아내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지만 결혼 애정 심리학의 필기 시험에 도저히 만족스럽게 합격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 다른 남자는 제 배우자를 거의 또는 전혀 사랑하지 않아도, 그러한 시험에 아주 적절히 합격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의 참된 성품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불완전하다고 그의 사랑의 현실이나 성실성을 한 푼어치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2001 CM 103:8.3 선하고 고상한 남자가 아내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해도, 부부 애정 심리학의 필기시험에서는 도저히 만족스럽게 합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다른 남자는, 배우자를 향한 사랑이 거의 또는 전혀 없으면서도, 그런 시험에서 아주 만족스럽게 통과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 받는 자의 참된 본성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완전치 못하다고 해서, 그의 사랑의 실체 또는 진심을 조금도 무효화되지 않는다.
2007 URKA 103:8.3 선하고 고귀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할 수도 있지만, 결혼에 이른 사랑의 심리학에 관한 필기시험에서 만족스럽게 통과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또 어떤 남자는, 자기 배우자에게 거의 또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시험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통과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의 참된 자연본성을 살피는 통찰력에서의 불완전성은 그의 사랑의 실체나 혹은 진실성을 조금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2025 103:8.3 착하고 고귀한 남자가 제 아내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지만 결혼 애정 심리학의 필기 시험에 도저히 만족스럽게 합격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 다른 남자는 제 배우자를 거의 또는 전혀 사랑하지 않아도, 그러한 시험에 아주 적절히 합격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 받는 자의 참된 성품을 들여다보는 통찰력이 불완전하다고 그의 사랑이 현실이거나 성실한 것을 한 푼어치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1955 103:8.4 If you truly believe in God—by faith know him and love him—do not permit the reality of such an experience to be in any way lessened or detracted from by the doubting insinuations of science, the caviling of logic, the postulates of philosophy, or the clever suggestions of well-meaning souls who would create a religion without God.
2000 103:8.4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믿음으로 그를 알고 사랑한다면―그러한 체험의 현실이, 과학이 의심을 넌지시 비치는 말이나, 논리로 트집잡기나, 철학의 가설, 아니면 하나님 없는 종교를 만들려는,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영리한 제안 때문에, 어떤 면에서도 줄어들거나 상처 입게 하지 말라.
2001 CM 103:8.4 너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곧 신앙으로 그를 알고 그를 사랑한다면--, 그런 체험의 실체가, 의혹을 품는 과학의 암시, 논리의 트집 잡기, 철학의 가설, 또는 하나님 없이 어떤 종교를 창설할 수 있는 선의를 지닌 혼들의 영리한 제안으로 인해, 어떤 면에서도 줄어들거나 손상되지 못하게 하라.
2007 URKA 103:8.4 만약에 너희가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신앙으로 그를 알고 그를 사랑한다면─그러한 체험의 실체가, 과학의 의심하는 암시, 논리의 트집 잡기, 철학의 가설, 아니면 하느님 없는 종교를 창조하려는, 좋은-의미를 지닌 혼들의 영리한 제안들 때문에, 그 어떤 면에서도 줄어들거나 손상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
2025 103:8.4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 믿음으로 그를 알고 사랑한다면 ― 그러한 체험의 현실을, 과학이 의심을 넌지시 비치는 말이나, 논리로 트집 잡기나, 철학의 가설, 아니면 하나님 없는 종교를 만들려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영리한 제안 때문에, 어떤 면에서도 위축시키거나 그에 상처 입히지 말라.
1955 103:8.5 The certainty of the God-knowing religionist should not be disturbed by the uncertainty of the doubting materialist; rather should the uncertainty of the unbeliever be mightily challenged by the profound faith and unshakable certainty of the experiential believer.
2000 103:8.5 하나님을 아는 신자의 확신은 의심하는 유물론자의 불확신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체험을 가진 신자의 깊은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불신자의 불확신에 힘차게 도전해야 한다.
2001 CM 103:8.5 하나님을 아는 종교인의 확실성은, 의심하는 유물론자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교란돼서는 안 되며;오히려, 체험을 겪은 신자의 견고한 신앙과 흔들릴 수 없는 확실성이, 믿지 않는 자의 불확실성에 강하게 도전해야한다.
2007 URKA 103:8.5 하느님을 아는 종교인들의 확신은 의심하는 물질주의자의 불확신에 의해 교란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믿지 않는 자의 불확신이 체험적 신자의 견고한 신앙과 흔들릴 수 없는 확신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아야만 한다.
2025 103:8.5 하나님을 아는 신자의 확신은 의심하는 유물론자의 불확신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체험을 가진 신자의 깊은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불신자의 불확신에 힘차게 도전해야 한다.
1955 103:8.6 Philosophy, to be of the greatest service to both science and religion, should avoid the extremes of both materialism and pantheism. Only a philosophy which recognizes the reality of personality—permanence in the presence of change—can be of moral value to man, can serve as a liaison between the theories of material science and spiritual religion. Revelation is a compensation for the frailties of evolving philosophy.
2000 103:8.6 철학이 과학과 종교 양자에게 최대의 도움을 주려면, 유물론과 범신주의의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오로지 인격의 실체―변화 가운데 영구한 것―을 인식하는 철학이 사람에게 도덕적 가치가 있을 수 있고, 물질 과학과 영적 종교를 다루는 이론 사이에 다리로서 소용될 수 있다. 계시는 진화하는 철학의 허약성을 보상하는 물건이다.
2001 CM 103:8.6 철학이 과학과 종교 둘 다에게 가장 훌륭하게 공헌하려면, 유물론과 범신론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피해야 한다. 인격이라는 --변화에 직면해서도 불변하는-- 실체를 인식하는 철학만이, 사람에게 도덕적 가치가 있을 수 있고, 물질 과학과 영적 종교를 다루는 이론 사이를 연결시키는 다리로서 이바지할 수 있다. 진화하는 철학의 약점을 계시가 보완한다.
2007 URKA 103:8.6 과학에게나 종교에게나 가장 강력한 공헌을 하려면 철학은 물질주의와 범신주의라는 두 극단을 피해야만 한다. 개인성의 실체─변화의 현존 안에서의 영구성─를 깨닫는 철학만이 사람에게 도덕적 가치가 될 수 있고, 물질적 과학과 영적 종교의 이론들 사이의 연락매개자로 봉사할 수 있다. 계시는 진화하는 철학의 허약함을 위한 보완이다.
2025 103:8.6 철학이 과학과 종교 양자에게 최대의 도움을 주려면, 유물론과 범신주의의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오로지 인격의 실체 ― 변화 가운데 영구한 것 ― 을 인식하는 철학이 사람에게 도덕적 가치가 있을 수 있고, 물질 과학과 영적 종교를 다루는 이론 사이에 다리로서 소용될 수 있다. 계시는 진화하는 철학의 허약성을 보상하는 물건이다.
9. THE ESSENCE OF RELIGION
9. 종교의 본질
9. 종교의 본질
9. 종교의 핵심
9. 종교의 본질
1955 103:9.1 Theology deals with the intellectual content of religion, metaphysics (revelation) with the philosophic aspects. Religious experience is the spiritual content of religion. Notwithstanding the mythologic vagaries and the psychologic illusions of the intellectual content of religion, the metaphysical assumptions of error and the techniques of self-deception, the political distortions and the socioeconomic perversions of the philosophic content of religion, the spiritual experience of personal religion remains genuine and valid.
2000 103:9.1 신학(神學)은 종교의 지적 내용을 다루고, 형이상학(계시)은 철학적 모습을 다룬다. 종교적 체험은 종교의 영적 내용이다. 종교의 지적 내용에 신화 같은 변덕과 심리학적 망상이 있고, 형이상학의 잘못된 가정(假定)과 스스로 속이는 기법, 종교의 철학적 내용의 정치적 왜곡과 사회ㆍ경제적 변질이 있는데도, 개인적 종교에서 얻는 영적 체험은 여전히 진정하고 타당하다.
2001 CM 103:9.1 신학은 종교의 지적 내용을 취급하고, 형이상학은(계시는) 철학 양상을 취급한다. 종교 체험은 종교의 영적 내용이다. 종교의 지적 내용에 신화적{神話的}인 변덕과 심리학적 착각, 형이상학의 잘못된 가정과 자아를-기만하는 기법, 종교의 철학적 내용에 대한 정치적 왜곡과 사회경제적 곡해에도 불구하고, 개인 종교에서 얻는 영적 체험은 여전히 참되고 정당하다.
2007 URKA 103:9.1 신학은 종교의 지적 내용을 취급하며, 형이상학(계시)은 철학적 측면을 취급한다. 종교적 체험은 종교의 영적인 내용물이다. 종교의 지적 내용이 갖는 신화적 변덕들과 심리적 환상, 실수에 대한 형이상학적 가정들과 자아-기만의 기법들, 종교의 철학적 내용에 대한 정치적 왜곡과 사회경제적 오용들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종교의 영적인 체험은 언제나 참되고 정당하다.
2025 103:9.1 신학(神學)은 종교의 지적 내용을 다루고, 형이상학(계시)은 철학적 모습을 다룬다. 종교적 체험은 종교의 영적 내용이다. 종교의 지적 내용에 신화 같은 변덕과 심리학적 망상이 있고, 형이상학의 잘못된 가정(假定)과 스스로 속이는 기법, 종교의 철학적 내용의 정치적 왜곡과 사회ㆍ경제적 변질이 있는데도, 개인적 종교에서 얻는 영적 체험은 여전히 진정하고 타당하다.
1955 103:9.2 Religion has to do with feeling, acting, and living, not merely with thinking. Thinking is more closely related to the material life and should be in the main, but not altogether, dominated by reason and the facts of science and, in its nonmaterial reaches toward the spirit realms, by truth. No matter how illusory and erroneous one’s theology, one’s religion may be wholly genuine and everlastingly true.
2000 103:9.2 종교는 단지 생각 뿐 아니라 느낌ㆍ행동ㆍ생활과 상관이 있다. 사고(思考)는 물질 생활과 더 가깝게 관계되며, 온통 그렇지는 않지만, 주로 이치와 과학의 사실에 지배를 받고, 영의 분야를 향한 비물질 범위에서는 진리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사람의 신학이 아무리 착각이고 그릇되더라도, 사람의 종교는 전적으로 진정하고 영구히 참될 수 있다.
2001 CM 103:9.2 종교는, 생각하기뿐만 아니라, 느끼기와 행하기 및 살아가기와 관계가 있다. 생각하기는, 물질생활과 더 가깝게 연관돼있으며, 온통 그렇지는 않더라도, 주로 이성과 과학이라는 사실에 지배를 받아야하고, 영의 영역을 향한 비물질 범위에서는 진리에 지배를 받아야한다. 사람의 신학이 아무리 가공적{架空的}이고 잘못됐더라도, 사람의 종교는 전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고 영구히 참될지도 모른다.
2007 URKA 103:9.2 종교는 사고뿐만 아니라 느낌과 행동 그리고 삶으로 행해야만 한다. 사고는 물질적 삶과 더욱 가깝게 관계되며, 온통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성과 과학의 사실들에 의해서 지배되어야하고 그리고, 영의 영역을 향하는 그러한 비물질적 뻗침에서는 진리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한다. 사람의 신학이 아무리 착각이고 잘못되더라도, 사람의 종교는 전적으로 진실 되며 영속적으로 참될 수 있다.
2025 103:9.2 종교는 단지 생각만 아니라 느낌ㆍ행동ㆍ생활과 상관이 있다. 사고(思考)는 물질 생활과 더 가깝게 관계되며, 온통 그렇지는 않지만, 주로 이치에, 그리고 과학의 사실에 지배를 받고, 영의 분야를 향한 비물질 범위에서는 진실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사람의 신학이 아무리 착각이고 그릇되더라도, 사람의 종교는 전적으로 진정하고 영구히 참될 수 있다.
1955 103:9.3 Buddhism in its original form is one of the best religions without a God which has arisen throughout all the evolutionary history of Urantia, although, as this faith developed, it did not remain godless. Religion without faith is a contradiction; without God, a philosophic inconsistency and an intellectual absurdity.
2000 103:9.3 최초의 형태의 불교는 유란시아의 진화 역사 전체를 통해서 대두된 바, 신이 없는 최선의 종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종교가 발전되자, 신이 없는 채로 남지는 않았다. 신앙이 없는 종교는 모순이다. 하나님 없이, 종교는 하나의 철학적 모순이요 지적 부조리이다.
2001 CM 103:9.3 본래 형태의 불교는, 유란시아의 진화 역사 전반에 걸쳐서 일어났던, 하나님 없이 이뤄진 최고 종교 가운데 하나인데, 그럼에도 이 신앙이 발전하자, 신{神}이 없는 상태로 머물지는 않았다. 신앙 없는 종교는 모순이며;하나님 없는 종교는 철학적 모순이고 지적 불합리다.
2007 URKA 103:9.3 불교는 그 기원 형태에 있어서 유란시아의 진화 역사에 두루 일어났던, 하느님 없이 이루어진 최상의 종교들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앙이 발전됨에 따라 그것은 하느님이 없는 상태로 머물지 않았다. 신앙이 없는 종교는 하나의 모순이다; 하느님이 없는 종교는 하나의 철학적인 불일치이고 지적인 모순이다.
2025 103:9.3 최초의 형태의 불교는 유란시아의 진화 역사 전체를 통해서 대두된 바, 신이 없는 최선의 종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종교가 발전되자, 신이 없는 채로 남지는 않았다. 신앙이 없는 종교는 모순이다. 하나님 없이, 종교는 하나의 철학적 모순이요 지적 부조리이다.
1955 103:9.4 The magical and mythological parentage of natural religion does not invalidate the reality and truth of the later revelational religions and the consummate saving gospel of the religion of Jesus. Jesus’ life and teachings finally divested religion of the superstitions of magic, the illusions of mythology, and the bondage of traditional dogmatism. But this early magic and mythology very effectively prepared the way for later and superior religion by assuming the existence and reality of supermaterial values and beings.
2000 103:9.4 자연 종교가 마술과 신화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후일에 계시 종교들의 실체와 진리, 그리고 예수가 가졌던 종교의 완벽하고 유익한 복음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은 마침내 종교에서 마술을 믿는 미신, 신화(神話)의 환상, 전통적 독단의 사슬을 벗겨 버렸다. 그러나 이 초기의 마술과 신화는 물질을 초월하는 가치와 존재들의 계심과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나중에 나타나는 우수한 종교를 위하여 무척 효과 있게 길을 닦았다.
2001 CM 103:9.4 자연 종교가 마술과 신화에서 생겨났다는 것은, 후대의 계시 종교의 실체와 진리, 그리고 예수가 지녔던 종교의 완성된 구원하는 복음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은 마침내, 마술적 미신과 신화적 착각과 전통적 교조주의{敎條主義}라는 사슬을 벗겨버렸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마술과 신화는, 초물질적 가치기준과 존재들의 실존 및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나중에 나타난 뛰어난 종교를 위하여 매우 효과적으로 길을 예비했다.
2007 URKA 103:9.4 자연적인 종교의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혈통은 후대의 계시 종교와 예수의 종교인 더할 나위 없이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실체와 진리를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마침내 마술적인 미신들과 신화적 환상들 그리고 전통적인 독선주의의 속박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마술과 신화는, 초(超)물질적 가치들과 존재들의 실존 그리고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후대의 우월한 종교를 위하여 길을 매우 효과적으로 예비하였다.
2025 103:9.4 자연 종교가 마술과 신화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후일에 계시 종교들의 실체와 진실, 그리고 예수가 가졌던 종교의 완벽하고 유익한 복음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은 마침내 종교에서 마술을 믿는 미신, 신화(神話)의 환상, 전통적 독단의 사슬을 벗겨 버렸다. 그러나 이 초기의 마술과 신화는 물질을 초월하는 가치와 존재들의 계심과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나중에 나타나는 우수한 종교를 위하여 무척 효과 있게 길을 예비하였다.
1955 103:9.5 Although religious experience is a purely spiritual subjective phenomenon, such an experience embraces a positive and living faith attitude toward the highest realms of universe objective reality. The ideal of religious philosophy is such a faith-trust as would lead man unqualifiedly to depend upon the absolute love of the infinite Father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Such a genuine religious experience far transcends the philosophic objectification of idealistic desire; it actually takes salvation for granted and concerns itself only with learning and doing the will of the Father in Paradise. The earmarks of such a religion are: faith in a supreme Deity, hope of eternal survival, and love, especially of one’s fellows.
2000 103:9.5 종교적 체험은 순전히 영적ㆍ주관적 현상이지만, 그러한 체험은 우주의 객관적 실체의 가장 높은 영역을 향하여 분명하고 생생한 믿음의 태도를 받아들인다. 종교적 철학의 이상은, 온 우주의 무한한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에 사람이 조건 없이 기대도록 이끌 그러한 믿음이요 신뢰이다. 그러한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이상주의적 욕구를 철학으로 구체화한 것을 훨씬 초월한다. 그런 체험은 실제로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로지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일에만 아랑곳한다. 그러한 종교를 가졌다는 표시는, 최상의 신을 믿는 믿음,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희망, 그리고 사랑, 특히 동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2001 CM 103:9.5 종교 체험이 비록 순수한 영적 주관적 현상일지라도, 그런 체험은, 우주의 객관적 실체의 가장 높은 영역을 향한, 긍정적이고 살아있는 신앙의 태도를 받아들인다. 종교 철학의 이상{理想}은, 온갖 우주의 무한하신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에, 사람이 제한없이 의존하도록 이끌 수 있는 그런 신앙이요-신용이다. 그런 참다운 종교 체험은, 이상주의적 욕구를 철학적으로 객관화한 것을 훨씬 초월하며;그런 체험은, 실제로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직 낙원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일에만 관여한다. 그런 종교의 특징은:최상의 신격을 믿는 신앙, 영원히 생존하리라는 희망, 그리고 사랑, 특히 동료에 대한 사랑이다.
2007 URKA 103:9.5 종교 체험이 비록 하나의 순수한 영적인 주관적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체험은 우주의 객관적 실체의 가장 높은 영역들을 향한 긍정적이고도 살아있는 신앙 태도를 포옹한다. 종교 철학의 이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들의 우주의 무한하신 아버지의 절대 사랑에 분별불가하게 의존하도록 이끌 수 있는 그러한 신앙-신뢰이다. 그러한 참다운 종교 체험은 이상적인 욕구의 철학적 객관화를 훨씬 초월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 구원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을 오직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것만으로 관여한다. 그러한 종교의 특징들은: 최극의 신(神)에 대한 신앙과 영원한 구원에 대한 희망 그리고 사랑인데, 그 사랑은 특별히 자기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2025 103:9.5 종교적 체험은 순전히 영적ㆍ주관적 현상이지만, 그러한 체험은 우주의 객관적 실체의 가장 높은 영역을 향하여 분명하고 생생한 믿음의 태도를 받아들인다. 종교적 철학의 이상은, 온 우주의 무한한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에 사람이 조건 없이 기대도록 이끌 그러한 믿음이요 신뢰이다. 그러한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이상주의적 욕구를 철학으로 구체화한 것을 훨씬 초월한다. 그런 체험은 실제로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로지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일에만 아랑곳한다. 그러한 종교를 가졌다는 표시는, 최상의 신을 믿는 믿음,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희망, 그리고 사랑, 특히 동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1955 103:9.6 When theology masters religion, religion dies; it becomes a doctrine instead of a life. The mission of theology is merely to facilitate the self-consciousness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Theology constitutes the religious effort to define, clarify, expound, and justify the experiential claims of religion, which, in the last analysis, can be validated only by living faith. In the higher philosophy of the universe, wisdom, like reason, becomes allied to faith. Reason, wisdom, and faith are man’s highest human attainments. Reason introduces man to the world of facts, to things; wisdom introduces him to a world of truth, to relationships; faith initiates him into a world of divinity, spiritual experience.
2000 103:9.6 신학이 종교의 주인이 될 때, 종교는 죽는다. 종교는 생명이 아니라 교리가 된다. 신학(神學)의 사명은 단지 개인이 영적 체험을 자의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신학은 종교의 체험적 주장을 정의하고 분명히 밝히고 해설하고 정당화하는 종교적 노력이며, 결국 이 주장은 오직 생생한 믿음으로만 입증할 수 있다. 우주의 상급 철학에서, 지혜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믿음과 연합하게 된다. 이치ㆍ지혜ㆍ믿음은 사람의 가장 높은 인간적 성취이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사람에게 사실의 세계, 사물을 소개하며, 지혜는 사람에게 진리의 세계, 즉 관계를 소개한다. 믿음은 사람을 신의 세계로, 영적 체험을 겪게 한다.
2001 CM 103:9.6 신학이 종교를 지배할 때 종교는 사라지며;생명이 아니라 교리가 된다. 신학의 사명은, 단지 개인이 영적 체험을 자아-의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신학은, 종교의 체험적 주장을 정의하고, 명료하게 하고, 해석하고, 정당화시키려는 종교적 노력인데, 이 주장은 결국 살아있는 신앙으로만 입증될 수 있다. 고등 우주 철학에서 지혜는, 이성과 마찬가지로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성과 지혜와 신앙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최고 인간적 달성이다. 이성은, 사실의 세계 곧 사물을 사람에게 소개하며;지혜는, 진리의 세계 곧 관계를 그에게 소개하며;신앙은, 신성{神性}의 세계 곧 영적 체험으로 사람을 이끈다.
2007 URKA 103:9.6 신학이 종교를 지배할 때 종교는 사라지며; 그것은 생명 대신에 하나의 교리가 된다. 신학의 임무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대한 자아-의식을 촉진시키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은 종교의 체험적인 주장들을 정의하고 설명하며 해석하고 정당화시키려는 종교적 노력을 구성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살아있는 신앙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우주에 대한 보다 높은 철학에서는, 이성의 지혜가 신앙과 결합하게 된다. 이성과 지혜 그리고 신앙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인간적 달성이다. 이성은 인간에게 사실들의 세계, 사물들을 가르쳐주며; 지혜는 그에게 진리의 세계, 관계들을 가르쳐주며; 신앙은 그를 신성의 세계, 영적인 체험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2025 103:9.6 신학이 종교의 주인이 될 때, 종교는 죽는다. 종교는 생명이 아니라 교리가 된다. 신학(神學)의 사명은 단지 개인이 영적 체험을 자의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신학은 종교의 체험적 주장을 정의하고 분명히 밝히고 해설하고 정당화하는 종교적 노력이며, 결국 이 주장은 오직 생생한 믿음으로 입증할 수 있다. 우주의 상급 철학에서, 지혜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믿음과 연합하게 된다. 이치ㆍ지혜ㆍ믿음은 사람의 가장 높은 인간적 성취이다. 이치를 따지는 것은 사람에게 사실의 세계, 사물을 소개하며, 지혜는 사람에게 진실의 세계, 즉 관계를 소개한다. 믿음은 사람을 신의 세계로, 영적 체험으로 이끈다.
1955 103:9.7 Faith most willingly carries reason along as far as reason can go and then goes on with wisdom to the full philosophic limit; and then it dares to launch out upon the limitless and never-ending universe journey in the sole company of TRUTH.
2000 103:9.7 믿음은 이치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기꺼이 이치를 데리고 가며, 그리고 나서 철학의 한계 끝까지 지혜와 함께 계속 간다. 다음에 믿음은 오직 진리의 동반을 받으면서, 한이 없고 결코 그치지 않는 우주 여행 길을 감히 떠난다.
2001 CM 103:9.7 신앙은, 이성이 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기꺼이 이성을 옮겨주고, 그후에는 철학 한계 끝에 도달할 때까지 지혜와 동행하며;그다음에 신앙은, 오직 진리만 따라가면서, 무한하고 끝나지-않는 우주 여행을 감히 시작한다.
2007 URKA 103:9.7 신앙은 이성이 갈 수 있는 최대한도로 이성을 가장 기꺼이 옮겨주고 그 후에는 충만한 철학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지혜와 동행한다; 그 후에 그것은 오직 진리만이 홀로 동행하는 무제한적이고 끝이 없는 우주 여행을 기꺼이 시작한다.
2025 103:9.7 믿음은 이치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아주 기꺼이 이치를 데리고 가며, 다음에 철학의 한계 끝까지 지혜와 함께 계속 간다. 그 다음에 믿음은 오직 진실의 동반을 받으면서, 한이 없고 결코 그치지 않는 우주 여행 길을 감히 떠난다.
1955 103:9.8 Science (knowledge) is founded on the inherent (adjutant spirit) assumption that reason is valid, that the universe can be comprehended. Philosophy (co-ordinate comprehension) is founded on the inherent (spirit of wisdom) assumption that wisdom is valid, that the material universe can be co-ordinated with the spiritual. Religion (the truth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is founded on the inherent (Thought Adjuster) assumption that faith is valid, that God can be known and attained.
2000 103:9.8 과학(지식)은 이치가 정당하다, 사람이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본래의(보조 영의) 가정 위에 기초를 둔다. 철학(조화된 이해)은 지혜가 정당하다, 물질 우주가 영적 우주와 조화될 수 있다는 본래(지혜 영)의 가정(假定) 위에 기초를 둔다. 종교(몸소 영적으로 체험하는 진리)는 믿음이 정당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본래(생각 조절자)의 가정 위에 기초를 둔다.
2001 CM 103:9.8 과학(곧 지식)은, 이성이 타당하다는, 우주가 납득될 수 있다는 선천적 가정{假定}(곧 보조 영)에 기초한다. 철학(곧 조화된 납득)은, 지혜가 타당하다는, 물질 우주가 영적 존재와 조화될 수 있다는 선천적 가정(곧 지혜 기질)에 기초한다. 종교(곧 몸소 영적으로 체험하는 진리)는, 신앙이 타당하다는, 즉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선천적 가정(곧 사고 섭리사)에 기초한다.
2007 URKA 103:9.8 과학(지식)은 이성이 정당하다는, 우주가 이해될 수 있다는 선천적인(보조 영) 가정 위에 기초를 둔다. 철학(조화-협동의 이해)은 지혜가 정당하다는, 물질적인 우주가 영적인 존재와 조화-협동될 수 있다는 선천적인(지혜의 영) 가정 위에 기초를 둔다. 종교(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대한 진리)는 신앙이 정당하다는, 하느님을 알 수 있고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선천적인(생각 조절자) 가정 위에 기초를 둔다.
2025 103:9.8 과학(지식)은 이치가 정당하다, 사람이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본래(보조 영)의 가정에 기초를 둔다. 철학(조화된 이해)는 지혜가 정당하다, 물질 우주가 영적 우주와 조화될 수 있다는 본래(지혜 영)의 가정(假定)에 기초를 둔다. 종교(몸소 영적으로 체험하는 진실)는 믿음이 정당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본래(생각 조절자)의 가정에 기초를 둔다.
1955 103:9.9 The full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mortal life consists in a progressive willingness to believe these assumptions of reason, wisdom, and faith. Such a life is one motivated by truth and dominated by love; and these are the ideals of objective cosmic reality whose existence cannot be materially demonstrated.
2000 103:9.9 필사 인생의 현실을 충분히 깨닫는 것은 이치ㆍ지혜ㆍ믿음, 이 세 가지의 가정을 점진적으로 기꺼이 믿으려 하는 태도에 있다. 그러한 인생은 진리에 자극을 받고 사랑이 지배하는 인생이며, 이것들은, 존재한다는 것을 물질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객관적 우주 실체의 이상이다.
2001 CM 103:9.9 필사 인생의 실체에 대한 충분한 깨달음은, 이성과 지혜와 신앙, 이 세 가지 가정을 믿으려고 하는 점진적 자발의지{自發意志}로 이뤄진다. 그런 인생은, 진리에 자극받고 사랑에 지배되는 인생이며;이것들은, 실존한다는 것을 물질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객관적 시공우주 실체의 이상{理想}이다.
2007 URKA 103:9.9 필사자 삶의 실체에 대한 충만한 실현은 이러한 이성과 지혜와 신앙의 가정들에 대해 점진적으로 기꺼이 믿으려는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러한 삶은 진리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 실존이 물질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객관적 조화우주 실체에 대한 이상이다.
2025 103:9.9 필사 인생의 실체를 제대로 깨닫는 것은 이치ㆍ지혜ㆍ믿음, 이 세 가지의 가정을 점진적으로 기꺼이 믿으려 하는 태도에 있다. 그러한 인생은 진실에 자극을 받고 사랑이 지배하는 인생이며, 이것들은, 존재한다는 것을 물질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객관적 우주 실체의 이상이다.
1955 103:9.10 When reason once recognizes right and wrong, it exhibits wisdom; when wisdom chooses between right and wrong, truth and error, it demonstrates spirit leading. And thus are the functions of mind, soul, and spirit ever closely united and functionally interassociated. Reason deals with factual knowledge; wisdom, with philosophy and revelation; faith, with living spiritual experience. Through truth man attains beauty and by spiritual love ascends to goodness.
2000 103:9.10 일단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인식하고 나서, 이치를 따지는 것은 지혜를 나타낸다. 지혜가 옳은 것과 그른 것, 진리와 잘못 사이에서 선택할 때, 지혜는 영의 인도하심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성ㆍ혼ㆍ영의 활동은 늘 가까이 연합되고, 기능 면에서 서로 연결된다. 이치는 사실에 관한 지식을 다루고, 지혜는 철학과 계시를, 믿음은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을 다룬다. 진리를 통해서 사람은 아름다움에 이르고, 영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선의 높이까지 올라간다.
2001 CM 103:9.10 이성이 일단 옳고 그름을 인식하면, 이성은 지혜를 드러내며;옳고 그름 곧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지혜가 선택하면, 지혜는 영의 인도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신의 기능과 혼의 기능과 영의 기능은 늘 가깝게 연합하고, 기능적으로 서로 연결된다. 이성은 사실에 관한 지식을;지혜는 철학과 계시를;신앙은 생생한 영적 체험을 다룬다. 사람은, 진리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달성하고, 영적 사랑으로 선함의 경지까지 올라간다.
2007 URKA 103:9.10 이성이 일단 옳고 그름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지혜를 드러내며; 지혜가 옳고 그름, 진리와 실수 사이에서 선택하면 그것이 영의 인도를 실증한다. 그리하여 마음과 혼과 영의 작용은 계속 가깝게 연합하며 기능적으로 상호-연관을 이룬다. 이성은 사실적인 지식을 취급한다; 지혜는 철학과 계시를 취급한다; 신앙은 살아있는 영적 체험을 취급한다. 인간은 진리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달성하고 영적인 사랑에 의하여 선(善)에 이른다.
2025 103:9.10 일단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인식하고 나서, 이치를 따지는 것은 지혜를 나타낸다. 지혜가 옳은 것과 그른 것, 진실과 잘못 사이에서 선택할 때, 지혜는 영의 인도하심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성ㆍ혼ㆍ영의 활동은 늘 가까이 연합되고, 기능 면에서 서로 연결된다. 이치는 사실에 관한 지식을 다루고, 지혜는 철학과 계시를, 믿음은 살아 있는 영적 체험을 다룬다. 진실을 통해서 사람은 아름다움에 이르고, 영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선의 높이까지 올라간다.
1955 103:9.11 Faith leads to knowing God, not merely to a mystical feeling of the divine presence. Faith must not be overmuch influenced by its emotional consequences. True religion is an experience of believing and knowing as well as a satisfaction of feeling.
2000 103:9.11 믿음은 단지 신의 계심이 주는 신비스러운 느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는 길로 이끈다. 믿음은 그 감정적 결과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는 만족스러운 감정일 뿐 아니라, 믿고 아는 체험이다.
2001 CM 103:9.11 신앙은, 신의 현존이 주는 신비스런 느낌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한다. 신앙은 그 감정적 결과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는, 만족스런 느낌일 뿐만 아니라, 믿어서 아는 체험이다.
2007 URKA 103:9.11 신앙은 신성한 현존에 대한 신비적 느낌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알도록 이끈다. 신앙은 감정적인 결과들에 의해 과도하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참된 종교는 느낌에서의 만족뿐만 아니라, 믿는 것과 그리고 아는 것의 체험이다.
2025 103:9.11 믿음은 단지 신의 계심이 주는 신비스러운 느낌만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는 길로 이끈다. 믿음은 그 감정적 결과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참된 종교는 만족스러운 감정일 뿐 아니라, 믿고 아는 체험이다.
1955 103:9.12 There is a reality in religious experience that is proportional to the spiritual content, and such a reality is transcendent to reason, science, philosophy, wisdom, and all other human achievements. The convictions of such an experience are unassailable; the logic of religious living is incontrovertible; the certainty of such knowledge is superhuman; the satisfactions are superbly divine, the courage indomitable, the devotions unquestioning, the loyalties supreme, and the destinies final—eternal, ultimate, and universal.
2000 103:9.12 종교적 체험에는 그 영적 내용에 비례하는 한 실체가 있으며, 그러한 실체는 이치ㆍ과학ㆍ철학ㆍ지혜, 그리고 인간의 모든 다른 성취를 뛰어넘는다. 그러한 체험으로 얻은 확신은 무너질 수 없고, 종교적 생활의 논리는 사람이 반박할 수 없다. 그러한 지식의 확신은 인간을 초월한다. 그 만족감은 극도로 신성하고, 그 용기는 꺾을 수 없고, 그 헌신에 의심이 없으며, 그 충성은 더할 나위 없고, 그 운명은 최종이다―영원하고 최종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2001 CM 103:9.12 종교 체험에는 영적 내용에 비례하는 실체가 있으며, 그런 실체는 이성과 과학과 철학과 지혜, 그리고 인간의 기타 모든 성취를 초월한다. 그런 체험으로 얻은 신념은 무너질 수 없으며;종교 생활의 논리는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그런 지식의 확실성은 초인적이며;그 만족감은 최고로 신성하고, 그 용기는 굴하지 않고, 그 헌신은 주저함이 없고, 그 충성심은 더할 나위 없고, 그 운명은 최종적이다--즉 영원하고 궁극적이고 보편적이다.
2007 URKA 103:9.12 종교적 체험 속에는 영적인 내용물에 비례하는 실체가 존재하며, 그러한 실체는 이성, 과학, 철학, 지혜,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적 성취들을 초월한다. 그러한 체험의 신념은 무너질 수 없고; 종교적인 삶의 논리는 논쟁의 여지가 없으며; 그러한 지식의 확실성은 초인간적이고; 그 만족감들은 최고로 거룩하고, 그 용기는 굴하지 않으며, 그 헌신은 주저함이 없고, 그 충성심은 더 할 나위 없으며, 그 운명은 최종적─영원하고 궁극적이며 우주적─이다.
2025 103:9.12 종교적 체험에는 그 영적 내용에 비례하는 한 실체가 있으며, 그러한 실체는 이치ㆍ과학ㆍ철학ㆍ지혜, 그리고 인간의 모든 다른 성취를 뛰어넘는다. 그러한 체험으로 얻은 확신은 무너질 수 없고, 종교적 생활의 논리는 사람이 반박할 수 없다. 그러한 지식의 확신은 인간을 초월한다. 그 만족감은 극도로 신성하고, 그 용기는 꺾을 수 없고, 그 헌신에 의심이 없으며, 그 충성은 더할 나위 없고, 그 운명은 최종이다 ― 영원하고 최종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1955 103:9.13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
2000 103:9.13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했다.]
2001 CM 103:9.13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제시했음.]
2007 URKA 103:9.13 [네바돈의 멜기세덱에 의해 제시되었음]
2025 103:9.13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