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된 유란시아 책은 2006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번역: © 2000, 2025 유란시아 재단
번역: © 2001, 2007 Urantia Society of Greater New York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제 194 편진리의 영을 수여하다
제194편: 진리의 영이 증여됨
제 194 편: 진리의 영 증여
진실의 영을 수여하다
1955 194:0.1 ABOUT one o’clock, as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were engaged in prayer, they all became aware of a strange presence in the room. At the same time these disciples all became conscious of a new and profound sense of spiritual joy, security, and confidence. This new consciousness of spiritual strength was immediately followed by a strong urge to go out and publicly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the good news that Jesus had risen from the dead.
2000 194:0.1 1시쯤에 신자 120명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모두가 이상한 것이 방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모두 새롭고 깊은 느낌, 곧 영적 기쁨ㆍ안전ㆍ자신감을 의식하게 되었다. 영적 힘을 이렇게 새롭게 의식하고 나서, 나가서 하늘나라 복음, 그리고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좋은 소식을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려는 강한 욕구가 뒤따랐다.
2001 CM 194:0.1 한 시 쯤에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신자 120명은 모두 어떤 이상한 존재가 방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됐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모두, 영적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확신을 주는 새롭고 심오한 느낌을 의식하게 됐다. 이렇게 영적 힘을 새롭게 의식한 후에,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과 천국 복음을 나가서 공개적으로 전파하려는, 강한 충동이 즉시 뒤따랐다.
2007 URKA 194:0.1 약 1시 경에, 120명의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그 방안에서 이상한 현존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영적 기쁨과 안심 그리고 자신감을 주는 하나의 새롭고도 깊은 느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적 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후 즉시,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과 왕국 복음을 나가서 공개적으로 선포하려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1955 194:0.2 Peter stood up and declared that this must be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Master had promised them and proposed that they go to the temple and begi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committed to their hands. And they did just what Peter suggested.
2000 194:0.2 베드로가 일어나서, 주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진리의 영(靈)이 오신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하고, 그들이 성전으로 가서 그들의 손에 맡겨진 좋은 소식의 선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그대로 하였다.
2001 CM 194:0.2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것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약속했던 진리의 영이 도래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에게 위탁된 기쁜 소식을, 성전으로 가서 전파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대로 했다.
2007 URKA 194:0.2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것은 주(主)께서 자기들에게 약속하였던 진리의 영이 도래하였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들에게 위임된 그 기쁜 소식을 성전으로 가서 전파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대로하였다.
2025 194:0.2 베드로가 일어나서, 주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진실의 영(靈)이 오신 것이 틀림없다고 선언하고, 그들이 성전으로 가서 그들의 손에 맡겨진 좋은 소식의 선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그대로 하였다.
1955 194:0.3 These men had been trained and instructed that the gospel which they should preach was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an, but at just this moment of spiritual ecstasy and personal triumph, the best tidings, the greatest news, these men could think of was the fact of the risen Master. And so they went forth, endowed with power from on high, preaching glad tidings to the people—even salvation through Jesus—but they unintentionally stumbled into the error of substituting some of the facts associated with the gospel for the gospel message itself. Peter unwittingly led off in this mistake, and others followed after him on down to Paul, who created a new religion out of the new version of the good news.
2000 194:0.3 이 사람들은 그들이 전해야 하는 복음이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을 훈련받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영적 환희와 개인적 승리를 느낀 바로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 가장 큰 뉴스는 주가 부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서 권능을 받고, 떠나가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예수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까지도―전파했지만, 뜻하지 않게, 복음 말씀 그 자체를 복음과 연결된 얼마큼의 사실로 바꿔치우는 잘못에 빠졌다. 베드로는 생각지 않고 이 실수에 앞장섰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의 뒤를 따랐으며, 바울은 좋은 소식의 신판(新版)으로부터 새 종교를 만들어냈다.
2001 CM 194:0.3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시요 사람은 아들신분이라는 것이, 자신들이 전도해야 할 복음이라는 것을 훈련받고 교육받았었으나, 영적 황홀감과 개인적 승리감을 느낀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사건, 가장 엄청난 소식은,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위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아, 사람들에게 희소식--즉 예수를 통해서 구원받음--을 전도하면서 나아갔지만, 복음의 메시지 자체를, 복음과 관련된 어떤 사실로 바꿔치는 오류를, 무심코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실수에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앞장섰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라갔고, 기쁜 소식의 개정판으로부터 새 종교를 창시한 바울로 이어졌다.
2007 URKA 194:0.3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전도해야 할 복음이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아들관계라는 것을 훈련받고 교육받았었지만, 영적 흥분과 개인적 승리감의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소식, 가장 엄청난 소식은 주(主)가 부활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위로부터 주어진 힘을 자질로서 부여받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예수를 통한 구원까지도─을 전파하며 나아갔다 그러나 고의는 아니지만 복음에 연관되는 사실들의 몇 개로 복음의 내용 그 자체를 대체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오류에 있어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앞장섰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라갔고, 기쁜 소식의 새로운 해석으로부터 새 종교를 창시한 바울에 까지 이어졌다.
2025 194:0.3 이 사람들은 그들이 전해야 하는 복음이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을 훈련받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영적 환희와 개인적 승리를 느낀 바로 이 순간에,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 가장 큰 뉴스는 주가 부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에서 권능을 받고, 떠나가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까지 ― 전파했지만, 뜻하지 않게, 복음 말씀 그 자체를 복음과 연결된 얼마큼의 사실로 바꿔 치우는 잘못에 빠졌다. 베드로는 생각지 않고 이 실수에 앞장섰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의 뒤를 따랐으며, 바울은 신판(新版)의 좋은 소식에서 새 종교를 만들어냈다.
1955 194:0.4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he fact of the fatherhood of God, coupled with the resultant truth of the sonship-brotherhood of men. Christianity, as it developed from that day, is: the fact of God a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in association with the experience of believer-fellowship with the risen and glorified Christ.
2000 194:0.4 하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 결과로 사람들이 아들이요 형제라는 진리이다. 그날부터 발전된 바와 같이 기독교는, 살아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의 친교 체험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2001 CM 194:0.4 천국 복음은: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사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 결과로 사람이 아들신분이요 형제관계라는 진리다. 그날 이후로 생겨난 그리스도교는:부활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신자로서-친교하는 체험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2007 URKA 194:0.4 왕국 복음은 이것이다: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 대한 사실, 이와 나란히 짝을 이루는 사람들의 형제신분-아들관계의 결과적 진리이다. 그리스도교는, 그 날부터 발전된 바와 같이, 이것이다: 일어났고 그리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갖는 믿는 자-친교관계의 체험과 관련되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사실이다.
2025 194:0.4 하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 결과로 사람들이 아들이요 형제라는 진실이다. 그날부터 발전된 바와 같이 기독교는, 살아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함께, 신자의 친교 체험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1955 194:0.5 It is not strange that these spirit-infused men should have seized upon this opportunity to express their feelings of triumph over the forces which had sought to destroy their Master and end the influence of his teachings. At such a time as this it was easier to remember their personal association with Jesus and to be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the Master still lived, that their friendship had not ended, and that the spirit had indeed come upon them even as he had promised.
2000 194:0.5 주를 죽이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말소하려고 애썼던 세력을 이겼다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영을 받은 이 사람들이 이 기회를 낚아챈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때에, 예수와 함께 가졌던 개인적 관계를 기억하고, 주가 아직도 살아 계시다, 그들의 우정은 끝나지 않았다, 주가 약속하신 대로 그 영이 정말로 그들에게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떨기가 더 쉬웠다.
2001 CM 194:0.5 영이-주입된 이 사람들이, 주님을 죽이려하고 그의 교훈의 영향력을 없애버리려 했던 세력들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는 느낌을 표현할 이 기회를 포착해야했던 것은 당연하다. 이런 시기에, 예수와 함께 가졌던 개인적 관계를 기억하면서, 주님이 여전히 살아있고 친구관계가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약속대로 그 영이 정말로 도래했다는 확신으로 감동되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2007 URKA 194:0.5 영이 주입(注入)된 이 사람들이, 그들의 주(主)를 죽이려 하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없애버리려고 하였던 그 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승리의 감정들을 표현할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예수와 그들의 개인적 관련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주(主)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자신들과의 친구 관계가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약속대로 영이 정말로 도래하였다는 확신으로 감동되는 것이 보다 쉬운 일이었다.
2025 194:0.5 주를 죽이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말소하려고 애썼던 세력을 이겼다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영을 받은 이 사람들이 이 기회를 낚아챈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때에, 예수와 함께 가졌던 개인적 관계를 기억하고, 주가 아직도 살아 계시다, 그들의 우정은 끝나지 않았다, 주가 약속하신 대로 그 영이 정말로 그들에게 왔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떨기가 더 쉬웠다.
1955 194:0.6 These believers felt themselves suddenly translated into another world, a new existence of joy, power, and glory. The Master had told them the kingdom would come with power, and some of them thought they were beginning to discern what he meant.
2000 194:0.6 이 신자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갔다, 기쁨ㆍ권능ㆍ영광에 싸인 새로운 존재로 변했다고 느꼈다. 주는 그들에게 하늘나라가 권능을 가지고 오리라 일렀고, 더러는 그가 무슨 의미로 말씀했는가 비로소 깨닫는다고 생각했다.
2001 CM 194:0.6 이 신자들은, 다른 세계 곧 기쁨과 권능과 영광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존재로 자신들이 갑자기 전환됐다고 느꼈다. 주님은 그들에게, 천국이 권능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했었으며, 그들 가운데 더러는, 그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분별하기 시작했다.
2007 URKA 194:0.6 이 신자들은 자기들이 다른 세계, 기쁨과 힘과 영광의 새로운 생활로 갑자기 전환되었음을 느꼈다. 주(主)는 그들에게 왕국이 힘을 가지고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였으며, 그들 중의 일부는 그가 의미하였던 것 그들이 알아보기 시작하였다고 생각하였다.
1955 194:0.7 And when all of this is taken into consideration,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how these men came to preach a new gospel about Jesus in the place of their former message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2000 194:0.7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라는, 예전에 전한 말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2001 CM 194:0.7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이 고려되고 나면, 어떻게 하여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초기 메시지 내용 대신,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을 전파하게 됐는지 이해하기 쉬워진다.
2007 URKA 194:0.7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고려되고 나면, 어떻게 하여 이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이라는 내용의 초기 메시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지를 납득하는 것이 쉬워진다.
2025 194:0.7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라는, 예전에 전한 말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1. THE PENTECOST SERMON
1. 오순절 설교
1. 오순절 설교
1. 오순절 설교
1. 오순절 설교
1955 194:1.1 The apostles had been in hiding for forty days. This day happened to be the Jewish festival of Pentecost, and thousands of visitors from all parts of the world were in Jerusalem. Many arrived for this feast, but a majority had tarried in the city since the Passover. Now these frightened apostles emerged from their weeks of seclusion to appear boldly in the temple, where they began to preach the new message of a risen Messiah. And all the disciples were likewise conscious of having received some new spiritual endowment of insight and power.
2000 194:1.1 사도들은 40일 동안 숨어 있었다. 이날은 마침 유대인의 오순절(五旬節) 축제일이었고, 세계의 온 구석으로부터 수천의 방문자들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축제 때문에 도착했지만, 대다수는 유월절 뒤에 도시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겁이 난 이 사도들이 몇 주 동안의 은둔 생활에서 솟아나서 이제 대담하게 성전에 나타났고, 거기서 메시아가 살아났다는 새로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사도가 마찬가지로 얼마큼 새롭게 통찰력과 힘을 영적으로 받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2001 CM 194:1.1 사도들은 지난 40일 동안 숨어있었다. 이날은 마침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일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이 예루살렘에 와있었다. 이 축제 때문에 도착한 사람도 많았으나, 대다수는 유월절 이후에도 계속 성에 머물고 있었다. 두려워하던 사도들은, 이제 숨어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담대하게 성전에 나타났고, 부활한 메시야라는 새 메시지를 거기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제자도, 통찰력과 권능을 지닌 어떤 새로운 영적 천부재능을 받았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의식했다.
2007 URKA 194:1.1 사도들은 지난 40일 동안 숨어 있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일이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이 축제를 위하여 도착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월절 이후 계속 그 성안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움츠렸던 사도들은 그들의 몇 주간의 은거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성전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부활한 메시아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마찬가지로 통찰력과 힘의 새로운 영적 자질을 받아들였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1955 194:1.2 It was about two o’clock when Peter stood up in that very place where his Master had last taught in this temple, and delivered that impassioned appeal which resulted in the winning of more than two thousand souls. The Master had gone, but they suddenly discovered that this story about him had great power with the people. No wonder they were led on into the further proclamation of that which vindicated their former devotion to Jesus and at the same time so constrained men to believe in him. Six o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this meeting: Peter, Andrew, James, John, Philip, and Matthew. They talked for more than an hour and a half and delivered messages in Greek, Hebrew, and Aramaic, as well as a few words in even other tongues with which they had a speaking acquaintance.
2000 194:1.2 2시쯤에, 베드로는 주가 이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열렬하게 연설하였고, 그 결과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주는 가셨지만, 그들은 주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갑자기 발견했다. 그들이 전에 예수에게 헌신한 것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야기를 더욱 선포하도록 계속 마음이 이끌린 것은 당연하다. 사도들 가운데 여섯 명,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ㆍ빌립ㆍ마태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했고, 말씀을 그리스어ㆍ히브리어ㆍ아람어로 전했으며, 또한 말할 만큼 익숙한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 하였다.
2001 CM 194:1.2 주님이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바로 그 자리에 베드로가 서서 열정적으로 연설했고, 그 결과로 2천 명 이상의 혼을 설득한 것은 두 시쯤이었다. 주님은 떠났지만, 그들은 그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권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했다. 그들이 전에 예수께 헌신했던 것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더욱 선포하도록, 계속 마음이 끌린 것은 당연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여섯 사도는: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였다. 그들은 한 시간 반 이상 이야기했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및 아람어로 메시지를 전했으며, 또한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었던 다른 방언들로도 몇 마디씩 설교했다.
2007 URKA 194:1.2 주(主)가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치셨던 바로 그 자리에 베드로가 서서 열정적으로 호소하여,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는 감동적인 호소를 한 것은 2시 경이었다. 주(主)는 떠났지만, 그들은 그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하였다. 그들이 이전에 예수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정당화하며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그를 믿도록 강요하는 더 많은 설교를 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여섯 명의 사도들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였다. 그들은 1시간 30분 이상 이야기하였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로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씩 설교하였다.
2025 194:1.2 2시쯤에, 베드로는 주가 이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열렬하게 연설하였고, 그 결과로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5]. 주는 가셨지만, 그들은 주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갑자기 발견했다. 그들이 전에 예수에게 헌신한 것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야기를 더욱 선포하도록 계속 마음이 이끌린 것은 당연하다. 사도들 가운데 여섯 명,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ㆍ빌립ㆍ마태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했고, 말씀을 그리스어ㆍ히브리어ㆍ아람어로 전했으며, 또한 말할 만큼 익숙한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 하였다
[6].
1955 194:1.3 The leaders of the Jews were astounded at the boldness of the apostles, but they feared to molest them because of the large numbers who believed their story.
2000 194:1.3 유대인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대담해진 것에 놀랐지만, 사도들의 이야기를 믿는 큰 무리 때문에 그들을 건드리기를 두려워했다.
2001 CM 194:1.3 유대인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대담함에 몹시 놀랐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 많은 사람 때문에 그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2007 URKA 194:1.3 유대인 영도자들은 사도들의 대담함에 몹시 놀랐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방해하지 못하였다.
2025 194:1.3 유대인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대담해진 것에 놀랐지만, 사도들의 이야기를 믿는 큰 무리 때문에 그들을 건드리기를 두려워했다.
1955 194:1.4 By half past four o’clock more than two thousand new believers followed the apostles down to the pool of Siloam, where Peter, Andrew, James, and John baptized them in the Master’s name. And it was dark when they had finished with baptizing this multitude.
2000 194:1.4 4시 반이 되어서, 2천 명이 넘는 새 신자들이 사도들을 따라서 실로암의 못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베드로ㆍ안드레ㆍ야고보ㆍ요한은 주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군중에게 세례 주기를 마친 것은 어두워졌을 때였다.
2001 CM 194:1.4 네 시 반쯤에, 2천 명 이상의 새 신자가 사도들을 따라서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 및 요한이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줬다. 그들은 날이 어두워서야 이 대중에게 세례 주기를 마칠 수 있었다.
2007 URKA 194:1.4 4시 30분경에 2,000명 이상의 새 신자들이 사도들을 따라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주(主)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날이 어두워서야 그들은 이 군중들에게 세례를 다 마칠 수 있었다.
1955 194:1.5 Pentecost was the great festival of baptism, the time for fellowshipping the proselytes of the gate, those gentiles who desired to serve Yahweh. It was, therefore, the more easy for large numbers of both the Jews and believing gentiles to submit to baptism on this day. In doing this, they were in no way disconnecting themselves from the Jewish faith. Even for some time after this the believers in Jesus were a sect within Judaism. All of them, including the apostles, were still loyal to the essential requirements of the Jewish ceremonial system.
2000 194:1.5 오순절은 세례받는 큰 축제요, 대문에서 전향자(轉向者), 즉 야웨 섬기기를 소망하는 이방인과 사귀는 때였다. 따라서 큰 무리의 유대인과 이방(異邦) 신자들이 이날에 세례받는 것이 더 수월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어떤 면에서도 유대 신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 뒤에도 얼마 동안, 예수 믿는 자들은 유대교 안에 있는 한 종파였다. 사도들을 포함해서 그들 모두가 유대인 예식 체계의 기본 요건에 아직도 충성했다.
2001 CM 194:1.5 오순절은 세례 받는 큰 축제였는데, 대문 밖의 개종자들, 즉 야훼를 섬기기 원하는 이방인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기간이었다. 그러므로 큰 무리의 이방인과 유대인 신자들이 이날 세례에 참여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어떤 면에서도 유대인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한동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남아있었다.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들은 모두, 유대인의 예식 체계의 기본 요건에 여전히 충실했다.
2007 URKA 194:1.5 오순절은 야훼를 섬기려는 할례의 의무가 없는 이방인들이 서로 교제하는 기간으로 세례의 큰 축제였다. 그러므로 믿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많은 무리가 이 날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유대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동안까지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아 있었다.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는, 유대인의 의식적(儀式的) 체계의 기본 조건들을 여전히 신봉하였다.
2025 194:1.5 오순절은 세례를 받는 큰 축제요, 대문에서 전향자(轉向者), 즉 야웨 섬기기를 소망하는 이방인과 사귀는 때였다. 따라서 큰 무리의 유대인과 이방(異邦) 신자들이 이날에 세례를 받는 것이 더 수월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어떤 면에서도 유대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 뒤에도 얼마 동안, 예수 믿는 자들은 유대교 안에 있는 한 종파였다. 사도들을 포함해서 그들 모두가 유대인 예식 체계의 기본 요건에 아직도 충성했다.
2. THE SIGNIFICANCE OF PENTECOST
2. 오순절의 중요성
2. 오순절의 의미
2. 오순절의 의의(意義)
2. 오순절의 중요성
1955 194:2.1 Jesus lived on earth and taught a gospel which redeemed man from the superstition that he was a child of the devil and elevated him to the dignity of a faith son of God. Jesus’ message, as he preached it and lived it in his day, was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spiritual difficulties in that day of its statement. And now that he has personally left the world, he sends in his place his Spirit of Truth, who is designed to live in man and, for each new generation, to restate the Jesus message so that every new group of mortals to appear upon the face of the earth shall have a new and up-to-date version of the gospel, just such personal enlightenment and group guidance as will prove to be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ever-new and varied spiritual difficulties.
2000 194:2.1 예수는 땅에서 살았고, 사람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미신으로부터 사람을 되찾고 하나님의 아들, 믿음의 아들의 위엄까지 올려놓은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가 전한 말씀은 당대에 그가 전도하고 실천한 바와 같이, 말씀했던 시절에 사람의 영적 문제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는 자기 대신에 진리의 영을 보낸다. 이 영은 사람 속에서 살고, 새로운 각 세대를 위하여 예수의 말씀을 다시 진술(陳述)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래서 땅의 표면에서 나타날 새 집단의 필사자마다 새로운 최신판 복음을 가지게 될 것이요, 바로 그러한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을 위한 지침은 사람의 늘 새롭고 다채로운 영적 문제에 효과적 해결책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2001 CM 194:2.1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 마귀의 자손이라는 미신으로부터 사람을 건져내고, 하나님의 신앙 아들이라는 존엄성에 이르기까지 높여주는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께서 전파하고 또한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한 그 메시지는, 그것을 전한 그 시대에 사람이 갖는 영적 고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이때 그가 몸으로는 이 세상을 떠났더라도, 자기를 대신하는, 자신의 진리의 영을 보냈는데, 이 진리의 영은 사람 속에 살도록, 그리고 새 세대들마다 예수의 메시지를 다시 진술하도록 고안됐으며, 그리하여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새 집단의 각 필사자마다 새로운 최신 복음 개정판을 갖게 될 것이요, 바로 그런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적 지침이, 사람의 늘-새롭고 다채로운 영적 어려움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2007 URKA 194:2.1 예수는 땅에서 사셨으며, 그리고 사람이 악마의 자손이라는 미신으로부터 사람을 되찾아 회복해서 그를 하느님의 신앙 아들의 존엄으로 들어 올리는 복음을 가르치셨다. 예수의 메시지는, 그의 시대에 그가 그것을 설교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사신 것처럼, 그것이 진술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영적 어려움을 위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그의 자리에 그의 진리의 영을 보내는데, 이는 사람 안에 살도록, 그리고 각각의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예수 메시지를 다시 진술하도록, 그로서 이 땅 표면에 새로 나타나는 필사자들의 모든 새로운 집단마다 복음의 새롭고도 가장 최신의 해석본을 가지도록, 바로 그러한 것이 사람의 언제까지나-새롭고도 다양해지는 영적 고난들에 대해 효과있는 해결이 될 것임을 입증하는,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적 안내가 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2025 194:2.1 예수는 땅에서 살았고, 사람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미신으로부터 사람을 되찾고 하나님의 아들, 믿음의 아들의 위엄에 이르기까지 올려놓은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가 전한 말씀은 당대에 그가 전도하고 실천한 바와 같이, 말씀했던 시절에 사람의 영적 문제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는 자기 대신에 진실의 영을 보낸다. 이 영은 사람 속에서 살고, 새로운 각 세대를 위하여 예수의 말씀을 다시 진술(陳述)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래서 땅의 표면에서 나타날 새 집단의 필사자마다 새로운 최신판 복음을 가지게 될 것이요, 바로 그러한 개인적 깨우침과 집단을 위한 지침은 사람의 늘 새롭고 다채로운 영적 문제에 효과적 해결책인 것이 입증될 것이다.
1955 194:2.2 The first mission of this spirit is, of course, to foster and personalize truth, for it is the comprehension of truth that constitutes the highest form of human liberty. Next, it is the purpose of this spirit to destroy the believer’s feeling of orphanhood. Jesus having been among men, all believers would experience a sense of loneliness had not the Spirit of Truth come to dwell in men’s hearts.
2000 194:2.2 물론, 이 영의 첫 사명은 진리를 육성하고 개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니, 이는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높은 형태의 인간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 영의 목적은 신자에게서 고아라는 느낌을 없애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으니까, 진리의 영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거하려고 오지 않았다면, 모든 신자가 외로운 느낌을 맛볼 것이다.
2001 CM 194:2.2 이 영의 첫째 사명은 당연히, 진리를 촉진시키고 개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인데, 진리를 납득하는 것이 최고 형태의 인간 자유를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영의 목적은 신자들이 자신을 고아처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이 사람의 마음에 내주하려고 도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동안에도 신자들이 고독감을 느낄 수 있었다.
2007 URKA 194:2.2 이 영의 첫 번째 임무는, 물론, 진리를 육성하고 그리고 개인성구현하는 것이니, 이는 인간 해방의 최고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심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영의 목적은 신자들이 가지는 고아-신분의 느낌을 파괴하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니, 진리의 영이 사람들 가슴속에 내주하기 위하여 오지 않았더라면, 모든 신자들은 외로움의 감각을 체험하였을 것이다.
1955 194:2.3 This bestowal of the Son’s spirit effectively prepared all normal men’s minds for the subsequent universal bestowal of the Father’s spirit (the Adjuster) upon all mankind. In a certain sense, this Spirit of Truth is the spirit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2000 194:2.3 아들의 영을 이렇게 수여한 것은 온 인류에게 나중에 아버지 영(조절자)의 보편적 수여를 위하여 모든 정상(正常) 인간의 지성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이 진리의 영은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 이 두 분의 영이다.
2001 CM 194:2.3 이렇게 증여된 아들의 영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아버지의 영(곧 섭리사)의 보편적 증여가 모든 인류에게 일어나도록, 정상적인 모든 사람의 정신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면에서 진리의 영은,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 두 분의 영이다.
2007 URKA 194:2.3 아들의 영의 이 증여는, 그 다음에 모든 인류에 대한 아버지의 영(조절자)의 우주적 증여를 위하여 모든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들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진리의 영은 우주 아버지와 창조자 아들 둘 모두의 영이다.
2025 194:2.3 아들의 영을 이렇게 수여한 것은 온 인류에게 나중에 아버지 영(조절자)의 보편적 수여를 위하여 모든 정상(正常) 인간의 지성을 효과적으로 준비시켰다. 어떤 의미에서, 이 진실의 영은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 이 두 분의 영이다.
1955 194:2.4 Do not make the mistake of expecting to become strongly intellectually conscious of the outpoured Spirit of Truth. The spirit never creates a consciousness of himself, only a consciousness of Michael, the Son. From the beginning Jesus taught that the spirit would not speak of himself. The proof, therefore, of your fellowship with the Spirit of Truth is not to be found in your consciousness of this spirit but rather in your experience of enhanced fellowship with Michael.
2000 194:2.4 퍼부어진 진리의 영을 뚜렷이 지적으로 의식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그 영은 결코 영 자신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가엘, 곧 아들을 의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예수는 진리의 영이 스스로 말하지 않으리라 가르쳤다. 그러므로 네가 진리의 영과 친교한다는 증명은 이 영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가엘과 향상된 친교(親交)를 가지는 체험에서 발견된다.
2001 CM 194:2.4 쏟아 부어진 진리의 영을 지적으로 강하게 의식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그 영은 결코 자신을 의식{意識}하게 만들지 않고, 오직 미가엘 곧 아들을 의식하게 만든다. 그 영은 스스로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처음부터 가르쳤다. 그러므로, 너희가 진리의 영과 교제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증거는, 너희가 이 영을 의식함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가엘과 더 향상된 교제를 나누는 체험에서 발견된다.
2007 URKA 194:2.4 부어진 진리의 영을 지적으로 강하게 인식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라. 영은 결코 그 스스로에 대한 의식(意識)을 창조하지 않으며, 오직 아들인 미가엘의 의식만 창조한다. 처음부터 예수는 영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과 너희의 친교의 증거는 이 영에 대한 너희의 의식 속에서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너희의 미가엘과 더욱 강화된 친교의 체험 속에서 발견된다.
1955 194:2.5 The spirit also came to help men recall and understand the words of the Master as well as to illuminate and reinterpret his life on earth.
2000 194:2.5 그 영은 또한 땅에서 사신 주의 일생을 비추고 다시 풀이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도와서 주의 말씀을 회상하고 알아듣게 하려고 왔다.
2001 CM 194:2.5 또한 이 영은, 주님의 이 세상 생애를 조명하고 재해석해줄 뿐만 아니라, 사람이 그의 말씀을 잘 기억해 내고 이해하도록 도와주려고 왔다.
2007 URKA 194:2.5 영은 또한 사람이 주(主)의 말씀을 상기하고 납득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왔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의 일생을 조명하고 재-해석하기 위하여 왔다.
2025 194:2.5 그 영은 또한 땅에서 사신 주의 일생을 비추고 다시 풀이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도와서 주의 말씀을 회상하고 알아듣게 하려고 왔다.
1955 194:2.6 Next, the Spirit of Truth came to help the believer to witness to the realities of Jesus’ teachings and his life as he lived it in the flesh, and as he now again lives it anew and afresh in the individual believer of each passing generation of the spirit-filled sons of God.
2000 194:2.6 다음에, 예수가 육체를 입고 살았던 것 같이, 또 영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세대, 지나가는 각 세대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 지금 다시 새로이, 거듭하여 사는 것 같이, 진리의 영은 신자가 예수의 가르침과 일생이 현실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을 도우려고 왔다.
2001 CM 194:2.6 다음으로 진리의 영은, 육신 속에서 살았던 예수의 생애와 그의 교훈이 실체였다고 증언하도록 신자를 돕기 위하여 왔고, 영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들 각 세대마다 신자 개개인 속에서 이제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가고 있다.
2007 URKA 194:2.6 다음으로, 진리의 영은 예수의 가르침들과 일생에서의 실체, 그가 육신으로 그것을 살았던 것으로 보여준, 그리고 이제 다시 각각 지나가는 세대들의, 영으로-채워진 하느님의 아들들의 개별 신자 안에서, 또 새로운 그리고 또 육신으로 그것을 살고 그에 따라 보여주는, 그 실체들을 신자가 목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다.
2025 194:2.6 다음에, 예수가 육체를 입고 살았던 것 같이, 또 영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세대, 지나가는 각 세대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속에서 지금 다시 새로이, 거듭하여 사는 것 같이, 진실의 영은 신자가 예수의 가르침과 일생이 현실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을 도우려고 왔다.
1955 194:2.7 Thus it appears that the Spirit of Truth comes really to lead all believers into all truth, into the expanding knowledge of the experience of the living and growing spiritual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of eternal and ascending sonship with God.
2000 194:2.7 그래서 진리의 영은 정말로, 모든 신자를 모든 진리로, 하나님의 아들, 하늘 가는 영원한 아들이라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고 차츰차츰 영적으로 의식하는 체험을 더욱 알도록 이끌려고 오는 것처럼 보인다.
2001 CM 194:2.7 그래서 진리의 영은, 정말로 모든 신자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려고, 즉 하나님의 영원하고 상승하는 아들신분의 실체를 생생하게 점점 더 영적으로 의식하는 체험을 더 폭넓게 알도록 이끌려고 오는 것처럼 보인다.
2007 URKA 194:2.7 그리하여, 진리의 영은 실제로 모든 신자들을 모든 진리로, 영원하고 상승하는 하느님의 아들관계로 살아있고 성장하는 영적 의식의 체험의 확대되는 지식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1955 194:2.8 Jesus lived a life which is a revelation of man submitted to the Father’s will, not an example for any man literally to attempt to follow. This life in the flesh, together with his death on the cross and subsequent resurrection, presently became a new gospel of the ransom which had thus been paid in order to purchase man back from the clutch of the evil one—from the condemnation of an offended God. Nevertheless, even though the gospel did become greatly distorted, it remains a fact that this new message about Jesus carried along with it many of the fundamental truths and teachings of his earlier gospel of the kingdom. And, sooner or later, these concealed truth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will emerge to effectually transform the civilization of all mankind.
2000 194:2.8 예수는, 누구라도 글자 그대로 따르려고 애쓸 본보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사람을 드러내는 일생을 살았다. 육체로 산 이 일생은, 십자가에서 죽고 나중에 부활한 것과 함께, 당장에 사람을 악마의 손아귀로부터―기분 상한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있다고 판결받지 않도록―사람을 도로 사려고 이처럼 몸값을 치렀다는 새 복음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그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어도, 예수에 대한 이 새 소식이 초기의 하늘나라 복음의 근본 진리와 가르침을 많이 지녔다는 것이 사실이다. 머지 않아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라는 이 감추어진 진리가 솟아나서 온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바꿀 것이다.
2001 CM 194:2.8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아버지 뜻을 곧이곧대로 따르려고 시도하는 하나의 예{例}로서가 아니라, 아버지 뜻에 복종하는 사람을 드러내는 생애를 살았다. 육신 속에서 살았던 이 생애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과 그후에 부활하심과 함께, 당장에 악한 것의 손아귀로부터--곧 화나신 하나님의 유죄판결로부터-- 사람을 다시 사들이기 위하여 대신 그렇게 값을 지불했다는 새로운 속죄 복음이 됐다. 비록 복음이 크게 왜곡됐더라도, 예수에 관한 이런 새 메시지가, 그의 초기 천국 복음 중에서 근본적인 진리를 많이 전수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감춰진 진리는, 모든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변모시키기 위하여 세상에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2007 URKA 194:2.8 예수는 어떤 한 사람이 명확하게 따르려고 시도하는 예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사람을 계시한 그런 일생을 사셨다. 육신으로의 이러한 일생은, 곧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과 그 후에 일어난 부활과 더불어, 악한 자의 쇠사슬로부터─화나신 하느님의 유죄판결로부터─ 사람을 다시 사기 위해 그렇게 지불된 속죄의 새로운 복음으로 되어 버렸다.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관한 이러한 새로운 메시지가 그의 초기 왕국 복음의 근본적인 진리들을 많이 함께 전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조만간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감추어진 진리들은 모든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곧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2025 194:2.8 예수는, 누구라도 글자 그대로 따르려고 애쓸 본보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사람을 드러내는 일생을 살았다. 육체로 산 이 일생은, 십자가에서 죽고 나중에 부활한 것과 함께, 당장에 사람을 악마의 손아귀에서 ― 기분 상한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있다고 판결 받지 않도록 ― 사람을 도로 사려고 이처럼 몸값을 치렀다는 새 복음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그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어도, 예수에 대한 이 새 소식이 초기의 하늘나라 복음의 근본 진실과 가르침을 많이 지녔다는 것이 사실이다. 머지않아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라는 이 감추어진 진실이 솟아나서 온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바꿀 것이다.
1955 194:2.9 But these mistakes of the intellect in no way interfered with the believer’s great progress in growth in spirit. In less than a month after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the apostles made more individual spiritual progress than during their almost four years of personal and loving association with the Master. Neither did this substitution of the fact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saving gospel truth of sonship with God in any way interfere with the rapid spread of their teachings; on the contrary, this overshadowing of Jesus’ message by the new teachings about his person and resurrection seemed greatly to facilitate the preaching of the good news.
2000 194:2.9 그러나 지능의 이러한 잘못은 어떤 면에서도 신자(信者)가 영적으로 크게 진보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진리의 영이 내린 뒤 한달이 채 안 되어, 주와 함께 몸소 사랑에 넘친 관계를 가졌던 거의 4년 동안보다, 사도들 하나하나가 영적으로 더 진보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유익한 복음의 진실을 예수가 부활한 사실로 이렇게 갈아치운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 때문에 예수의 말씀이 빛을 잃은 것은 좋은 소식의 전파를 크게 용이하게 만든 듯하였다.
2001 CM 194:2.9 그러나 지식인들의 이런 실수는, 신자의 영적 성장이 크게 진보하는 것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진리의 영이 증여된 지 한 달도 못되어, 사도들은 거의 4년에 걸쳐 주님과 나눴던 개인적이고 사랑하는 교제에서 얻은 것보다 훨씬 많은 영적 진보를 개인마다 이뤘다.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신분이라는 구원하는 복음의 진리를, 예수의 부활이라는 사실로 대치시킨 것도, 그들의 교훈이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방해하지 못했으며;도리어, 그의 인품과 부활에 관한 새 교훈으로 인해 예수의 메시지에 드리워진 이 그늘이, 기쁜 소식 전파를 크게 촉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2007 URKA 194:2.9 그러나 이들 지능에서의 오류들은 신자의 영적 성장의 커다란 진보를 어떤 방법으로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 사도들은 진리의 영이 증여된 후 한 달도 못되어서, 거의 4년에 걸친 주(主)와의 개인적이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얻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별적인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관계에서의 구원하는 복음 진리 대신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대치시킨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 신속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방해하지 못하였다; 그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하여 예수의 메시지에 드리워진 이 그늘은 오히려 새로운 소식의 전파를 크게 촉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2025 194:2.9 그러나 지능의 이러한 잘못은 어떤 면에서도 신자(信者)가 영적으로 크게 진보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진실의 영이 내린 뒤 한 달이 채 안 되어, 주와 함께 몸소 사랑에 넘친 관계를 가졌던 거의 4년 동안보다, 사도들 하나하나가 영적으로 더 진보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유익한 복음의 진실을 예수가 부활한 사실로 이렇게 갈아치운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 때문에, 예수의 말씀이 빛을 잃은 것은 좋은 소식의 전파를 크게 용이하게 만든 듯하였다.
1955 194:2.10 The term “baptism of the spirit,” which came into such general use about this time, merely signified the conscious reception of this gift of the Spirit of Truth and the personal acknowledgment of this new spiritual power as an augmentation of all spiritual influences previously experienced by God-knowing souls.
2000 194:2.10 “영의 세례”라는 용어는 이 무렵에 아주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다만 이렇게 진리의 영이 수여된 것을 의식하여 받아들이고, 이 새로운 영적 능력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이전에 겪은 모든 영적 영향이 확대된 것임을 개인적으로 인정함을 의미한다.
2001 CM 194:2.10 “영의 세례{洗禮}”라는 용어가 당시에 널리 쓰이게 됐는데, 단순히 진리의 영이라는 이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해 의식했음을, 그리고 이런 새 영적 능력은 하나님을 아는 혼들이 전에 체험했던 모든 영적 영향력이 증대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고백했음을 의미했을 뿐이다.
2007 URKA 194:2.10 이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게 된 “영의 세례(洗禮)”라는 용어는, 단지 진리의 영이라는 이 선물의 의식적인 받아들임과, 새로운 이 영적 힘이 하느님을-아는 혼들이 전에 체험하였던 모든 영적 영향들이 증강된 것임을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1955 194:2.11 Sinc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man is subject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a threefold spirit endowment: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Thought Adjuster; the spirit of the Son, the Spirit of Truth; the spirit of the Spirit, the Holy Spirit.
2000 194:2.11 진리의 영이 수여된 이후로 사람은 아버지의 영, 즉 생각 조절자, 아들의 영, 즉 진리의 영, 영의 영, 즉 성령, 이렇게 세 가지 영의 가르침과 안내에 지배된다.
2001 CM 194:2.11 진리의 영이 증여된 후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자신에게 부여된 삼중적 영 천부재능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게 됐다:아버지의 영 곧 사고 섭리사;아들의 영 곧 진리의 영;영의 영 곧 거룩한 영.
2007 URKA 194:2.11 진리의 영이 증여된 이후로, 사람은 아버지의 영, 생각 조절자; 아들의 영, 진리의 영; 영의 영, 성령과 같이 자신에게 부여된 삼중적 영 자질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1955 194:2.12 In a way, mankind is subject to the double influence of the sevenfold appeal of the universe spirit influences. The early evolutionary races of mortals are subject to the progressive contact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s man progresses upward in the scale of intelligence and spiritual perception, there eventually come to hover over him and dwell within him the seven higher spirit influences. And these seven spirits of the advancing worlds are:
2000 194:2.12 어떤 면에서, 인류는 우주 영(靈)의 일곱 가지 영향력이 미치는 이중 세력에 지배된다. 초기의 진화 종족의 필사자는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일곱 보조 지성 영의 점진적 접촉에 지배를 받는다. 지능과 영적 인식의 눈금에서 사람이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궁극에 일곱 가지 상급 영적 세력이 사람 위에 떠돌고, 사람 안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진보하는 여러 세계에 있는 이 일곱 영은 다음과 같다:
2001 CM 194:2.12 어떤 면에서, 인류는 칠중{七重}으로 호소하는 우주 영 영향력 중에서 이중{二重} 영향력에 종속된다. 초기 진화 과정에 있던 필사자 인종들은, 지방우주 어머니 영의 일곱 보조 정신-영의 점진적 접촉에 지배를 받는다. 지성과 영적 감지력의 눈금에서 사람이 위쪽으로 올라가면, 결국 더 높은 일곱 영{靈} 영향력이 그에게 임하고 그의 안에 거한다. 그리고 진보하는 세계들의 이 일곱 영은 다음과 같다:
2007 URKA 194:2.12 얼마간, 인류는 우주 영의 영향들의 일곱 가지 힘의 중복된 작용을 필요로 한다. 필사자들의 초기 진화 종족들은 지역우주의 어머니 영의 일곱 가지 보조 마음-영들의 진보적 접촉이 필요하다. 사람이 지능과 영적 지각의 눈금에서 상향 진보하면, 결국에는 일곱 가지의 더 높은 영(靈)의 영향들이 그에게 날아와서 그의 안에 내주 하게 된다. 그리고 진보하는 세계들의 이 일곱 가지 영들은 다음과 같다:
2025 194:2.12 어떤 면에서, 인류는 우주 영(靈)의 일곱 가지 영향력이 미치는 이중 세력에 지배된다. 초기의 진화 종족의 필사자는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일곱 보조 지성 영의 점진적 접촉에 지배를 받는다. 지능과 영적 인식의 눈금에서 사람이 위로 올라감에 따라서, 궁극에 일곱 가지 상급 영적 세력이 사람 위에 떠돌고, 사람 안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진보하는 여러 세계에 있는 이 일곱 영은 다음과 같다:
1955 194:2.13 1. The bestowed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the Thought Adjusters.
2000 194:2.13 1. 우주의 아버지가 내리신 영―생각 조절자.
2001 CM 194:2.13 1. 우주 아버지가 증여하신 영{靈} --사고 섭리사.
2007 URKA 194:2.13 1. 우주 아버지의 증여된 영(靈)─생각 조절자들.
2025 194:2.13 1. 우주의 아버지가 내리신 영 ― 생각 조절자.
1955 194:2.14 2. The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the spirit gravity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e certain channel of all spirit communion.
2000 194:2.14 2. 영원한 아들의 영적 계심―온 우주의 영 인력(引力), 모든 영의 교통에 쓰이는 확실한 경로.
2001 CM 194:2.14 2. 영원 아들의 영 현존 --온갖 우주의 영 인력{引力}과 모든 영 교통의 특정한 경로.
2007 URKA 194:2.14 2. 영원한 아들의 영 현존─우주들의 우주의 영 중력 그리고 모든 영 교제의 확실한 경로.
2025 194:2.14 2. 영원한 아들의 영적 계심 ― 온 우주의 영 인력(引力), 모든 영의 교통에 쓰이는 확실한 경로.
1955 194:2.15 3. The spirit presence of the Infinite Spirit—the universal spirit-mind of all creation, the spiritual source of the intellectual kinship of all progressive intelligences.
2000 194:2.15 3. 무한한 영의 영적 계심―모든 창조에 널리 있는 영 지성, 모든 진보하는 지성 존재가 가진 지적(知的) 인척 관계의 영적 근원.
2001 CM 194:2.15 3. 무한 영의 영 현존 --모든 창조물의 보편적 영-정신, 즉 진보하는 모든 지성체의 지적 유사성의 영적 근원.
2007 URKA 194:2.15 3. 무한한 영(靈)의 영 현존─모든 창조의 우주 영-마음, 진보하는 모든 지능들의 지적 친족관계의 영적 근원.
2025 194:2.15 3. 무한한 영의 영적 계심 ― 모든 창조에 널리 있는 영 지성, 모든 진보하는 지성 존재가 가진 지적(知的) 인척 관계의 영적 근원.
1955 194:2.16 4.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the Spirit of Truth,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on.
2000 194:2.16 4.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의 영―진리의 영, 이것은 대체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여겨진다.
2001 CM 194:2.16 4.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의 영 --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는, 진리의 영.
2007 URKA 194:2.16 4. 우주 아버지와 창조자 아들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는 진리의 영.
2025 194:2.16 4. 우주의 아버지와 창조 아들의 영 ― 진실의 영, 이것은 대체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여겨진다.
1955 194:2.17 5. The spirit of the Infinite Spirit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the Holy Spirit,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pirit.
2000 194:2.17 5. 무한한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성령(聖靈), 이것은 대체로 우주 영의 영으로 여겨진다.
2001 CM 194:2.17 5. 무한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 --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되는, 거룩한 영.
2007 URKA 194:2.17 5. 무한한 영(靈)의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되는 성령.
2025 194:2.17 5. 무한한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 ― 성령(聖靈), 이것은 대체로 우주 영의 영으로 여겨진다.
1955 194:2.18 6. The mind-spirit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2000 194:2.18 6. 우주 어머니 영의 지성 영―지역 우주의 일곱 보조 지성 영(靈).
2001 CM 194:2.18 6. 우주 어머니 영의 정신-영 --지방우주의 일곱 보조 정신-영.
2007 URKA 194:2.18 6. 우주 어머니 영의 마음-영─지역우주의 일곱 보조 마음-영들.
2025 194:2.18 6. 우주 어머니 영의 지성 영 ― 지역 우주의 일곱 보조 지성 영(靈).
1955 194:2.19 7. The spirit of the Father, Sons, and Spirits—the new-name spirit of the ascending mortals of the realms after the fusion of the mortal spirit-born soul with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and after the subsequent attainment of the divinity and glorification of the status of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2000 194:2.19 7. 아버지와 아들들과 영들의 영―영에게서 태어난 필사자의 혼이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절자와 융합한 뒤에, 그리고 나중에 파라다이스 최후 군단에서 신답고 영화로운 지위에 이른 뒤에, 그 영역에서 하늘 가는 필사자가 가지는 새로운 이름의 영.
2001 CM 194:2.19 7. 아버지와 아들들과 영들의 영 --영으로-태어난 필사자의 혼이 낙원 사고 섭리사와 결합한 후에, 그리고 나중에 낙원 완결성취 단체 신분이라는 신성{神性}과 영화로움을 달성한 후에, 이 영역에서 상승하는 필사자가 갖는 새-이름의 영.
2007 URKA 194:2.19 7. 아버지, 아들들 그리고 영들의 영─영으로 태어난 필사자의 혼과 파라다이스 생각 조절자의 융합 이후 그리고 그에 따라 나중에 파라다이스 최종의 무리단의 지위에서의 신성과 영광을 받은 이후에, 영역들에서 상승하는 필사자가 가지는 새로운-이름의 영.
1955 194:2.20 And so did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bring to the world and its peoples the last of the spirit endowment designed to aid in the ascending search for God.
2000 194:2.20 그래서 진리의 영이 내린 것은 하나님을 찾아서 승천하는 탐구를 도우려고 고안된 최종의 영 재산을 세상으로, 또 거기 있는 민족들에게 가져왔다.
2001 CM 194:2.20 그리고 진리의 영이 그렇게 증여됨으로써, 하나님을 찾아서 상승하는 것을 도와주도록 계획된 마지막 영 재능을 그 세계에,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왔다.
2007 URKA 194:2.20 그리하여 그렇게 진리의 영의 증여는 하느님을 찾아 상승하는 것을 도와주도록 계획된 영 자질의 마지막을 세상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2025 194:2.20 그래서 진실의 영이 내린 것은 하나님을 찾아서 승천하는 탐구를 도우려고 고안된 최종의 영 재산을 세상으로, 또 거기 있는 민족들에게 가져왔다.
3. WHAT HAPPENED AT PENTECOST
3. 오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3. 오순절에 일어난 일
3. 오순절에 일어난 일
3. 오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955 194:3.1 Many queer and strange teachings became associated with the early narratives of the day of Pentecost. In subsequent times the events of this day, on which the Spirit of Truth, the new teacher, came to dwell with mankind, have become confused with the foolish outbreaks of rampant emotionalism. The chief mission of this outpoured spirit of the Father and the Son is to teach men about the truths of the Father’s love and the Son’s mercy. These are the truths of divinity which men can comprehend more fully than all the other divine traits of character. The Spirit of Truth is concerned primarily with the revelation of the Father’s spirit nature and the Son’s moral character. The Creator Son, in the flesh, revealed God to men; the Spirit of Truth, in the heart, reveals the Creator Son to men. When man yield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his life, he is simply showing forth the traits which the Master manifested in his own earthly life. When Jesus was on earth, he lived his life as one personality—Jesus of Nazareth. As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new teacher,” the Master has, since Pentecost, been able to live his life anew in the experience of every truth-taught believer.
2000 194:3.1 야릇하고 이상한 많은 가르침이 오순절 날에 대한 초기의 이야기와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 진리의 영, 즉 새 선생이 인류와 함께 거하려고 온 이날에 일어난 사건들은 후세에, 어리석게도 감정 중시 주의가 갑자기 확산되는 것과 혼동되었다. 쏟아진 이 아버지와 아들의 영의 주요한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로움에 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신다운 모든 다른 신격 특성보다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신성(神性)의 진실이다. 진리의 영은 1차적으로 아버지의 영 성품과 아들의 도덕적 품위를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진다. 창조 아들은 육체를 입고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진리의 영은 마음 속에서 창조 아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낸다. 일생에 “영의 열매”를 맺을 때, 사람은 다만 땅에서 산 자신의 일생에서 주가 나타낸 특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땅에 살았을 때, 예수는 하나의 인격자로서―나사렛 예수로서―일생을 살았다. 사람에게 깃드는 “새 선생”의 영으로서, 오순절 뒤로, 주는 진리를 가르침 받은 각 신자의 체험 속에서 일생을 새로이 살 수 있었다.
2001 CM 194:3.1 기묘하고 이상한 많은 교훈이, 오순절 날에 대한 초기 전승들과 결합됐다. 진리의 영 곧 새 선생이 인류에게 내주하려고 임한 이날의 사건 이후로 계속, 어리석게도 폭발적으로 번져나간 감정주의와 혼동돼왔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쏟아 부어진 이 영의 주된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라는 진리에 관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다른 모든 신성한 성품 특징보다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신성{神性}에 대한 진리다. 진리의 영은 1차적으로 아버지의 영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 성품을 드러내는 데 관여한다. 창조주 아들은 육신 속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드러냈으며;진리의 영은 마음 속에서 창조주 아들을 사람에게 드러낸다. 인생에서 “영의 열매”를 맺을 때, 사람은 그저 주님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애 속에 형태화했던 특징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의 인격체로서--곧 나사렛 예수로서-- 일생을 살았다. 주님은, 오순절 후에, “새 선생”이라는 내주하는 영으로서, 진리의-가르침을 받는 각 신자의 체험 속에서 생애를 새로이 살 수 있다.
2007 URKA 194:3.1 쓸모없고 이상한 많은 가르침들이 오순절 날의 초기 이야기들과 결합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시대들 속에서, 인류에 내주하기 위하여 새로운 선생님으로 진리의 영이 왔던 이날의 사건들은 사납게 휩쓸린 감정주의의 어리석은 봉기들과 혼동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유출된 이 영의 주된 사명활동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에 대한 진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다른 모든 성격의 신성한 특색들 보다 더욱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신성의 진리들이다. 진리의 영은 무엇보다도 먼저 아버지의 영에 대한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인 성격을 계시하는데 관계가 있다 창조자 아들은 육신으로 하느님을 사람에게 계시하였다; 진리의 영은 가슴으로 창조자 아들을 사람들에게 계시한다. 사람이 그의 일생 속에서 “영의 열매들”을 맺었을 때, 그는 단순히 주(主)께서 이 세상에서 그자신의 일생 속에 현시되하셨던 그 특색들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뿐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는 하나의 개인성─나사렛 예수─로서 그의 일생을 영위하였다. 오순절 이후, 주(主)는 “새로운 선생”의 내주 하는 영으로서, 진리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신자의 체험 속에서 그의 새로운 일생을 사실 수 있게 되었다.
2025 194:3.1 야릇하고 이상한 많은 가르침이 오순절 날에 대한 초기의 이야기와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 진실의 영, 즉 새 선생이 인류와 함께 거하려고 온 이날에 일어난 사건들은 후세에, 어리석게도 감정 중시 주의가 갑자기 확산되는 것과 혼동되었다[14]. 쏟아진 이 아버지와 아들의 영의 주요한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로움에 관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신다운 모든 다른 신격 특성보다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신성(神性)의 진실이다. 진실의 영은 1차적으로 아버지의 영 성품과 아들의 도덕적 품위를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진다
[15]. 창조 아들은 육체를 입고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진실의 영은 마음 속에서 창조 아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낸다
[16]. 일생에 “영의 열매”를 맺을 때, 사람은 다만 땅에서 산 자신의 일생에서 주가 나타낸 특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땅에 살았을 때, 예수는 하나의 인격자로서 ― 나사렛 예수로서 ― 일생을 살았다. 사람에게 깃드는 “새 선생”의 영으로서, 오순절 뒤로, 주는 진실을 가르침받은 각 신자의 체험 속에서 일생을 새로이 살 수 있었다.
1955 194:3.2 Many things which happen in the course of a human life are hard to understand, difficult to reconcile with the idea that this is a universe in which truth prevails and in which righteousness triumphs. It so often appears that slander, lies, dishonesty, and unrighteousness—sin—prevail. Does faith, after all, triumph over evil, sin, and iniquity? It does. And the life and death of Jesus are the eternal proof that the truth of goodness and the faith of the spirit-led creature will always be vindicated. They taunted Jesus on the cross, saying, “Let us see if God will come and deliver him.” It looked dark on that day of the crucifixion, but it was gloriously bright on the resurrection morning; it was still brighter and more joyous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s of pessimistic despair seek to obtain release from the burdens of life; they crave extinction in endless slumber and rest. These are the religions of primitive fear and dread. The religion of Jesus is a new gospel of faith to be proclaimed to struggling humanity. This new religion is founded on faith, hope, and love.
2000 194:3.2 인생을 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 우주에서 진리가 지배하고 그 속에서 올바름이 승리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너무나 흔히 중상(中傷)ㆍ거짓말ㆍ부정직(不正直)ㆍ불의―죄―가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궁극에 믿음이 악ㆍ죄ㆍ불의를 이기는가? 이긴다. 예수의 일생과 죽음은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선이 진실하고 그의 믿음이 언제나 정당화되리라는 영원한 증명이다. “하나님이 와서 구원할 것인가 보자” 하면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비웃었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날은 어둡게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은 영화롭게 밝았다. 오순절 날은 더욱 밝고 더욱 즐거웠다. 비관적으로 절망하는 종교들은 인생의 짐에서 벗어나기를 찾으며, 끝없이 잠자고 쉬는 가운데 멸종되기를 바란다. 이것들은 원시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생긴 종교이다. 예수의 종교는 허덕이는 인류에게 선포해야 할 새로운, 믿음의 복음이다. 이 새 종교는 믿음ㆍ희망ㆍ사랑에 바탕을 둔다.
2001 CM 194:3.2 인간 생애 과정에서, 이 우주에서 진리가 지배하고 의가 승리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 어려운,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이 발생된다. 중상과 거짓말 그리고 부정직과 불의--곧 죄--가 승리하는 상황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 신앙이 결국에는, 악과 죄와 죄악을 이기게 될까? 물론이다. 그리고 예수의 생애와 죽음은, 선한 진리와 영의-인도함을 받는 피조물의 신앙이 항상 정당화되리라는 영원한 증거다. 그들은 “하나님이 오셔서 저를 구출하시는지 보자”고 하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조롱했다. 십자가형이 있던 날에는 암울하게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에는 찬란하게 빛났으며;오순절 날에는 더욱 밝았고 기쁨이 넘쳤다. 염세적인 절망의 종교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며;끝없는 수면과 휴식 속에서 사멸돼가기를 갈구한다. 그런 것은 원시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종교다. 예수의 종교는, 허덕이고 있는 인류에게 선포돼야 할 신앙의 새 복음이다. 이 새 종교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에 바탕을 둔다.
2007 URKA 194:3.2 인간 일생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이것이 진리가 우세하고 정의(正義)가 승리하는 그러한 우주라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너무나 자주 중상, 거짓말, 부정직, 그리고 불의─죄─가 득세하는 것이 나타난다. 신앙이, 결국에는, 악과 죄와 사악한 불의를 이기게 될까? 그렇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일생과 죽음이 선(善)의 진리와, 영으로 인도 받는 창조체의 신앙이 항상 정당화된다는 영원한 증명이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하느님이 와서 그를 구원하시는지 보자.”라고 말하며 조롱하였다. 십자가형의 그날은 암울하였지만, 부활의 아침에는 영화롭게 빛났다; 오순절에는 여전히 더욱 빛나고 그리고 더욱 기쁨 넘치는 날이었다. 비관론적인 절망의 종교들은 일생의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그들은 끝없는 수면과 휴식 안에서 절멸되기를 갈망한다. 이것들은 원시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종교이다. 예수의 종교는 분투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하여 선포되는 신앙의 새 복음이다. 새로운 이 종교는 신앙, 희망 그리고 사랑 위에 세워진다.
2025 194:3.2 인생을 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 우주에서 진실이 지배하고 그 속에서 올바름이 승리한다는 관념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 너무나 흔히 중상(中傷)ㆍ거짓말ㆍ부정직(不正直)ㆍ불의 ― 죄 ― 가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궁극에 믿음이 악ㆍ죄ㆍ불의를 이기는가? 이긴다. 예수의 일생과 죽음은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선이 진실하고 그의 믿음이 언제나 정당화되리라는 영원한 증명이다. “하나님이 와서 구원할 것인가 보자” 하면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비웃었다[17]. 십자가에 처형되는 그날은 어둡게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은 영화롭게 밝았다. 오순절 날은 더욱 밝고 더욱 즐거웠다. 비관적으로 절망하는 종교들은 인생의 짐에서 벗어나기를 찾으며, 끝없이 잠자고 쉬는 가운데 멸종되기를 바란다. 이것들은 원시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생긴 종교이다. 예수의 종교는 허덕이는 인류에게 선포해야 할 새로운, 믿음의 복음이다
[18]. 이 새 종교는 믿음ㆍ희망ㆍ사랑에 바탕을 둔다.
1955 194:3.3 To Jesus, mortal life had dealt its hardest, cruelest, and bitterest blows; and this man met these ministrations of despair with faith, courage, and the unswerving determination to do his Father’s will. Jesus met life in all its terrible reality and mastered it—even in death. He did not use religion as a release from life. The religion of Jesus does not seek to escape this life in order to enjoy the waiting bliss of another existence. The religion of Jesus provides the joy and peace of another and spiritual existence to enhance and ennoble the life which men now live in the flesh.
2000 194:3.3 필사의 일생은 예수에게 아주 힘들고, 아주 모질고, 아주 심한 타격을 입혔다. 이 사람은 믿음과 용기,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이 절망스러운 직무에 대응하였다. 예수는 모든 끔찍한 현실 가운데서 인생을 살고―죽을 때에도―인생을 통달하였다. 인생에서 해방되려고 종교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또 다른 존재에서 기다리는 더없는 기쁨을 누리려고 이 생명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이 육체를 입고 지금 사는 인생을 높이고 고상하게 만들기 위하여 또 다른 영적 존재의 기쁨과 평화를 마련해 준다.
2001 CM 194:3.3 필사자 인생이, 예수에게 가장 힘들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비통한 일격을 가했으며;이 사람은 아버지 뜻을 행하기 위해, 신앙과 용기와 확고한 결단력으로 이런 절망스런 직무에 대처했다. 예수께서는 인생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 인생에 대처했고, --죽을 때에도-- 인생을 통달했다. 그는 삶에서 풀려나는 방편으로서 종교를 이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또 다른 실존에서 기다리는 복을 누리려고 이 생애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이 육신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을 증진시키고 고상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영적 실존의 기쁨과 평강을 제공한다.
2007 URKA 194:3.3 필사자 일생은 예수께 가장 힘들고 가장 잔인하며 가장 비통한 일격(一擊)을 가하였다;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신앙과 용기와 확고한 결단력으로 절망의 이 사명활동들에 대처하였다. 예수는 일생의 무시무시한 실체 속에서 생을 맞이하였고 그것을 정복하였다 ─죽음에서까지도. 그는 일생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종교를 이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다른 실존의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즐기기 위해서 이 일생을 피하려고 추구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들이 현재 육신으로 살고 있는 그 일생을 고양하고 고상하게 하기 위하여 다른 영적 실존의 기쁨과 평화를 제공한다.
2025 194:3.3 필사의 일생은 예수에게 아주 힘들고, 아주 모질고, 아주 심한 타격을 입혔다. 이 사람은 믿음과 용기,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흔들리지 않는 결심으로 이 절망스러운 직무에 대응하였다. 예수는 모든 끔찍한 현실 가운데서 인생을 살고 ― 죽을 때에도 ― 인생을 통달하였다. 인생에서 해방되려고 종교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의 종교는 또 다른 존재에서 기다리는 더없는 기쁨을 누리려고 이 생명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이 육체를 입고 지금 사는 인생을 높이고 고상하게 만들기 위하여 또 다른 영적 존재의 기쁨과 평화를 마련해 준다.
1955 194:3.4 If religion is an opiate to the people, it is not the religion of Jesus. On the cross he refused to drink the deadening drug, and his spirit, poured out upon all flesh, is a mighty world influence which leads man upward and urges him onward. The spiritual forward urge is the most powerful driving force present in this world; the truth-learning believer is the one progressive and aggressive soul on earth.
2000 194:3.4 종교가 사람들에게 아편이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물리쳤고, 모든 육체에 쏟아진 그의 영은 사람을 위로 이끌고 앞으로 재촉하는, 힘찬 세계적 영향이다. 앞을 향하는 영적 욕구는 이 세상에 있는 가장 힘센 추진력이다. 진리를 배우는 신자는 땅에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2001 CM 194:3.4 종교가 사람에게 마취제라면, 그 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는 마취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거절했으며, 모든 육체에게 부어진 그의 영은, 사람을 위로 이끌어주고 앞으로 나가도록 촉구하는 강력한 세상 영향력이다. 영적으로 전진하도록 하는 그 충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며;진리를-배우는 신자는 이 땅에서 유일하게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혼이다.
2007 URKA 194:3.4 만일 종교가 인간에게 마취제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거절하였으며, 모든 육체에게 부어진 그의 영은 높은 곳을 향하도록 사람을 이끌고, 계속 향하도록 그를 충동하는 막강한 세계적 영향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영적 충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힘차게 몰아가는 기세이다; 진리를 배우는 신자는 이 세상에서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혼을 가진 자이다.
2025 194:3.4 종교가 사람들에게 아편이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을 마시기를 물리쳤고, 모든 육체에 쏟아진 그의 영은 사람을 위로 이끌고 앞으로 재촉하는, 힘찬 세계적 영향이다. 앞을 향하는 영적 욕구는 이 세상에 있는 가장 힘센 추진력이다. 진실을 배우는 신자는 땅에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1955 194:3.5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 of Jesus broke all national restrictions and racial fetters. It is forever true,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On this day the Spirit of Truth became the personal gift from the Master to every mortal. This spirit was bestowed for the purpose of qualifying believers more effectively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they mistook the experience of receiving the outpoured spirit for a part of the new gospel which they were unconsciously formulating.
2000 194:3.5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민족의 제한과 종족의 사슬을 모두 깨뜨렸다. 이것은 언제까지나 진리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해방이 있다.” 이날에 진리의 영은 주가 모든 필사자에게 친히 주신 선물이 되었다. 이 영은 하늘나라 복음을 더욱 효과 있게 전파하라고 신자들에게 자격을 주는 목적으로 내렸지만, 그들은 쏟아진 영을 받는 체험이,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면서 형성하는 새 복음의 일부라고 잘못 생각했다.
2001 CM 194:3.5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모든 민족적 제약조건과 인종적 족쇄를 깨뜨렸다. “주의 영이 임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진리의 영은, 이날에 주님이 모든 필사자 마다 친히 주시는 선물이 됐다. 천국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자격을 신자들에게 줄 목적으로 이 영이 증여됐지만, 쏟아 부어진 그 영을 받는 체험을, 그들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형성한 새 복음의 일부분으로 삼는 실수를 범했다.
2007 URKA 194:3.5 그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모든 국가적 제약들과 종족간의 족쇄들을 없애버렸다. “주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 해방이 있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진리이다. 이 날, 진리의 영은 주(主)로부터 모든 필사자 각자에게 주어지는 개인적 선물이 되었다. 이 영은 왕국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도하도록 신자들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는 목적으로 증여되었지만, 그들은 쏟아 부어지는 영을 받는 체험을,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있었던 새로운 복음의 일부분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였다.
1955 194:3.6 Do not overlook the fact that the Spirit of Truth was bestowed upon all sincere believers; this gift of the spirit did not come only to the apostles. The one hundred and twenty men and women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all received the new teacher, as did all the honest of heart throughout the whole world. This new teacher was bestowed upon mankind, and every soul received him in accordance with the love for truth and the capacity to grasp and comprehend spiritual realities. At last, true religion is delivered from the custody of priests and all sacred classes and finds its real manifestation in the individual souls of men.
2000 194:3.6 진리의 영이 모든 성실한 신자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 이 영 선물은 사도들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다. 위층 방에 모인 남녀 120명은 모두, 온 세상에 두루, 마음이 정직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새 선생을 받았다. 이 새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고, 진리를 사랑하는 데 따라서, 그리고 영적 실체를 깨닫고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받았다. 마침내, 참 종교는 사제(司祭)들과 모든 신성한 계급의 보호를 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혼 속에서 그 진정한 표현을 발견한다.
2001 CM 194:3.6 진리의 영이 모든 진실한 신자에게 증여됐다는 사실을 경시하지 말라;영의 이 선물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남녀 120명 모두 새로 나타난 선생을 받았으며, 온 세상에 두루, 정직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나타난 이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됐으며, 진리를 사랑함에 따라서, 그리고 영적 실체를 파악하고 납득하는 역량만큼, 각자의 혼이 그를 받아들인다. 마침내, 참된 종교는 사제{司祭}들과 모든 신성시되는 계층에게 맡겨진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각 사람의 혼 속에서 실질적으로 나타난다.
2007 URKA 194:3.6 진리의 영이 모든 진실 된 신자들에게 증여되었다는 사실을 경시하지 말라; 영의 선물은 오직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남자와 여자들은 모두 이 새로운 선생을 받았으며, 온 세상의 정직한 가슴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새로운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으며, 진리를 사랑하고 그리고 영적 실체를 파악하고 깨닫는 힘에 따라서 모든 혼은 그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참된 종교는 사제들과 그리고 모든 신성한 계층들의 보호관리에서 해방되고, 사람들의 개별적인 혼 안에서 그 실제 현시활동을 발견한다.
2025 194:3.6 진실의 영이 모든 성실한 신자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 이 영 선물은 사도들에게만 내린 것이 아니다[20]. 위층 방에 모인 남녀 120명은 모두, 온 세상에 두루, 마음이 정직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새 선생을 받았다. 이 새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고, 진실을 사랑하는 데 따라서, 그리고 영적 실체를 깨닫고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받았다. 마침내, 참 종교는 사제(司祭)들과 모든 신성한 계급의 보호를 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의 혼 속에서 그 진정한 표현을 발견한다.
1955 194:3.7 The religion of Jesus fosters the highest type of human civilization in that it creates the highest type of spiritual personality and proclaims the sacredness of that person.
2000 194:3.7 예수의 종교는 가장 높은 부류의 영적 인격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의 신성함을 선포하므로, 가장 높은 종류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
2001 CM 194:3.7 예수의 종교는, 가장 고귀한 유형의 영적 인격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이 신성하다고 선포한다는 점에서 가장 고상한 유형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
2007 URKA 194:3.7 예수의 종교는 영적 개인성에서의 가장 높은 유형을 창조하고 그 개인의 신성함을 선포하는 가장 높은 유형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
2025 194:3.7 예수의 종교는 가장 높은 부류의 영적 인격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의 신성함을 선포하므로, 가장 높은 종류의 인간 문명을 육성한다.
1955 194:3.8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on Pentecost made possible a religion which is neither radical nor conservative; it is neither the old nor the new; it is to be dominated neither by the old nor the young. The fact of Jesus’ earthly life provides a fixed point for the anchor of time, whil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provides for the everlasting expansion and endless growth of the religion which he lived and the gospel which he proclaimed. The spirit guides into all truth; he is the teacher of an expanding and always-growing religion of endless progress and divine unfolding. This new teacher will be forever unfolding to the truth-seeking believer that which was so divinely folded up in the person and nature of the Son of Man.
2000 194:3.8 오순절에 진리의 영이 온 것은 과격하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만들며, 그런 종교는 낡은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늙은이나 젊은이에게 지배되어서도 안 된다. 예수가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시간을 표시하는 닻을 내리기 위하여 고정된 점을 마련해 주며, 한편 진리의 영을 수여한 것은 그가 실천한 종교와 선포한 복음을 영구히 확장하고 끝없이 성장하게 만든다. 그 영은 모든 진리로 안내하며, 영은 끝없이 진보하고 신성하게 펼쳐지는 종교, 확대되고 늘 성장하는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새 선생은 진리를 찾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의 인격과 성품 안에 아주 거룩하게 접혀 있던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줄 것이다.
2001 CM 194:3.8 오순절에 진리의 영이 옴으로써, 급진적이지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했으며;그 종교는 낡은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며;늙은이나 젊은이에게 지배돼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살았다는 그 사실은, 시간이라는 닻을 내리기 위한 위치를 제공해주며, 한편 진리의 영의 수여는, 그가 실천했던 종교와 그가 전파했던 복음을 영구히 확장하고 끝없이 성장하게 만든다. 그 영이 모든 진리 속으로 안내하며;그 영은, 끝없이 진보하고 신성하게 펼쳐지는 종교, 확장하고 항상 자라가는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새로 나타난 이 선생은, 사람의 아들의 인품과 본성 속에 너무나 신성하게 감춰져있던 것을, 진리를 추구하는 신자에게 끊임없이 밝혀줄 것이다.
2007 URKA 194:3.8 오순절에 진리의 영의 도래는 급진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것은 오래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며; 나이 든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고 젊은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지도 않는다. 예수의 땅에서의 일생의 사실은 시간의 닻을 위한 고정된 점을 제공하는 반면에, 진리의 영의 수여는 그가 실천하였던 그 종교와 그가 전파하였던 그 복음의 영속하는 확대와 끝없는 성장을 제공한다. 영은 모든 진리로 인도한다; 그는 끝없는 진보와 신성한 전개로 확대되고 항상 성장하는 종교의 선생이다. 이 새로운 선생은 진리를 추구하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의 개인 안에 그리고 본성 안에 신성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 줄 것이다.
2025 194:3.8 오순절에 진실의 영이 온 것은 과격하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가능하게 만들며, 그런 종교는 낡은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늙은이나 젊은이에게 지배되어서도 안 된다. 예수가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시간을 표시하는 닻을 내리기 위하여 고정된 점을 마련해 주며, 한편 진실의 영을 수여한 것은 그가 실천한 종교와 선포한 복음을 영구히 확장하고 끝없이 성장하게 만든다. 그 영은 모든 진실로 안내하며, 영은 끝없이 진보하고 신성하게 펼쳐지는 종교, 확대되고 늘 성장하는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새 선생은 진실을 찾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의 인격과 성품 안에 아주 거룩하게 접혀 있던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줄 것이다.
1955 194:3.9 The manifestations associated with the bestowal of the “new teacher,” and the reception of the apostles’ preaching by the men of various races and nations gathered together at Jerusalem, indicate the universality of the religion of Jesus. The gospel of the kingdom was to be identified with no particular race, culture, or language. This day of Pentecost witnessed the great effort of the spirit to liberate the religion of Jesus from its inherited Jewish fetters. Even after this demonstration of pouring out the spirit upon all flesh, the apostles at first endeavored to impose the requirements of Judaism upon their converts. Even Paul had trouble with his Jerusalem brethren because he refused to subject the gentiles to these Jewish practices. No revealed religion can spread to all the world when it makes the serious mistake of becoming permeated with some national culture or associated with established racial, social, or economic practices.
2000 194:3.9 “새 선생”을 주신 것과 관련되어 나타난 현상,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였던 여러 종족과 민족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전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예수의 종교가 보편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하늘나라 복음은 어떤 특별한 민족이나 문화나 언어와도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오순절 날은 예수의 종교를 자체가 물려받은 유대인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려고 영이 크게 노력했음을 입증했다. 모든 육체에 영이 쏟아지는 이 전시가 있은 뒤에도, 처음에 사도들은 개종한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요구 조건을 부과하려고 애썼다. 바울조차도 이방인을 이 유대 관습에 복종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다툼이 있었다. 어떤 계시(啓示)된 종교도 어떤 민족 문화에 젖게 되거나, 아니면 기존의 종족ㆍ사회 또는 경제 관습과 연결되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온 세상에 퍼질 수 없다.
2001 CM 194:3.9 “새로 나타난 선생”의 증여와 관련된 현상, 그리고 예루살렘에 함께 모인 다양한 종족과 민족이 사도들의 전도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예수의 종교의 보편성을 암시한다. 천국 복음은 특정한 종족이나 문화 또는 언어와 관계되지 않는다. 이 오순절 날에, 유대인에게 상속돼오던 속박 상태에서 예수의 종교를 해방시키려고, 그 영이 엄청나게 수고했음이 입증됐다. 사도들은 심지어 그 영이 모든 육체에게 드러나게 부어진 이 사건 이후에도, 처음에는 개종하는 자들에게 유대교의 요구조건을 강요하려고 애썼다. 심지어 바울도, 이방인들에게 이런 유대 관행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일을 거부함으로써, 예루살렘 형제들과 불편한 관계가 됐었다. 어떤 계시된 종교든지, 특정 민족 문화에 스며들거나 기존의 인종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관행과 연관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경우에는, 결코 세계적으로 퍼져나가지 못한다.
2007 URKA 194:3.9 “새로운 선생”의 증여와 연관된 현시활동들과, 예루살렘에 모인 여러 종족들과 나라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받아들임은 예수의 종교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왕국 복음은 그 어떠한 특정한 종족, 문화 또는 언어도 없이 정체성이 확인되어야 한다. 오순절의 이 날이 그것의 고유한 유대교의 속박으로부터 예수의 종교를 해방시키는 영의 커다란 수고를 입증하였다. 모든 육체에 영이 부어진 이 실증이 있은 후에도 역시, 처음에 사도들은 유대주의의 요구조건들을 그들의 개종자들에게 부과하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는 바울도 그가 이방인들을 이 유대교 실천 관행들에 복종시키려 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다툼이 있었다. 계시된 종교는 그것이 어떤 국가적인 문화가 침투되거나, 또는 확립된 인종적(人種的), 사회적(社會的), 또는 경제적 실천 관행들과 연관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때에는 모든 세계로 퍼지지 못한다.
2025 194:3.9 “새 선생”을 주신 것과 관련되어 나타난 현상,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였던 여러 종족과 민족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전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예수의 종교가 보편성이 있음을 가리킨다[21]. 하늘나라 복음은 어떤 특별한 민족이나 문화나 언어와도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오순절 날은 예수의 종교를 자체가 물려받은 유대인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려고 영이 크게 노력했음을 입증했다. 모든 육체에 영이 쏟아지는 이 전시가 있은 뒤에도, 처음에 사도들은 개종한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요구 조건을 부과하려고 애썼다. 바울조차도 이방인을 이 유대 관습에 복종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형제들과 다툼이 있었다. 어떤 계시(啓示)된 종교도 어떤 민족 문화에 젖게 되거나, 아니면 기존의 종족ㆍ사회 또는 경제 관습과 연결되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때는 온 세상에 퍼질 수 없다.
1955 194:3.10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was independent of all forms, ceremonies, sacred places, and special behavior by those who received the fullness of its manifestation. When the spirit came upon those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they were simply sitting there, having just been engaged in silent prayer. The spirit was bestowed in the country as well as in the city.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apostles to go apart to a lonely place for years of solitary meditation in order to receive the spirit. For all time, Pentecost disassociates the idea of spiritual experience from the notion of especially favorable environments.
2000 194:3.10 진리의 영의 수여는 어떤 형태와 예식과 신성한 장소에도, 그 영이 충분히 나타난 것을 맛본 자의 특별한 행위에도, 달려 있지 않다. 그 영이 위층 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닥쳤을 때, 그들은 말없이 기도에 막 들어갔으니까,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영은 도시 뿐 아니라 시골에도 내렸다. 사도들이 그 영을 받기 위하여, 몇년 동안 혼자서 명상하려고 외로운 곳으로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오순절은 영적 체험의 관념과 특별히 유리한 환경에서 얻는다는 개념을 별개의 것으로 만든다.
2001 CM 194:3.10 진리의 영 증여는, 모든 형식과 예식과 신성시되는 장소 그리고 그 영이 충만하게 나타나는 것을 맛본 자들의 특별한 행태와 무관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영이 임했을 때, 그들은 다만 침묵 속에서 기도에 참여하면서 거기에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 영은 그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 지역에서도 수여됐다. 사도들은, 그 영을 받을 목적으로, 몇 년 동안 각자 외로이 묵상하려고 한적한 곳으로 멀리 떠나있을 필요가 없었다. 오순절은 언제든지, 각별히 유리한 환경에서 받는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부터, 영적 체험 관념을 분리시킨다.
2007 URKA 194:3.10 진리의 영의 증여는 모든 형식들, 의식(儀式)들, 거룩한 장소들, 그리고 그것의 현시활동을 충만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와 무관하였다. 다락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영이 임하였을 때, 그들은 다만 아무 소리 없이 기도를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영은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교외 지역에서도 수여되었다. 사도들은 영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뿔뿔이 헤어져 외로운 곳에서 몇 년간의 고독한 묵상이 필요 없었다. 모든 시간에서, 오순절은 특별하게 은혜로운 환경들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영적 체험의 관념을 분리하여 연관되지 않도록 한다.
2025 194:3.10 진실의 영의 수여는 어떤 형태와 예식과 신성한 장소에도, 그 영이 충분히 나타난 것을 맛본 자의 특별한 행위에도, 달려 있지 않다. 그 영이 위층 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닥쳤을 때, 그들은 말없이 기도에 막 들어갔으니까,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영은 도시만 아니라 시골에도 내렸다. 사도들이 그 영을 받기 위하여, 몇 년 동안 혼자서 명상하려고 외로운 곳으로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오순절은 영적 체험의 관념과 특별히 유리한 환경에서 얻는다는 개념을 별개의 것으로 만든다.
1955 194:3.11 Pentecost, with its spiritual endowment, was designed forever to loose the religion of the Master from all dependence upon physical force; the teachers of this new religion are now equipped with spiritual weapons. They are to go out to conquer the world with unfailing forgiveness, matchless good will, and abounding love. They are equipped to overcome evil with good, to vanquish hate by love, to destroy fear with a courageous and living faith in truth. Jesus had already taught his followers that his religion was never passive; always were his disciples to be active and positive in their ministry of mercy and in their manifestations of love. No longer did these believers look upon Yahweh as “the Lord of Hosts.” They now regarded the eternal Deity as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made that progress, at least, even if they did in some measure fail fully to grasp the truth that God is also the spiritual Father of every individual.
2000 194:3.11 오순절은, 그날 영적으로 부여된 것과 함께, 언제까지나 주의 종교를 물리적 세력에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해방하려고 고안되었다. 이 새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를 갖추었다. 그들은 어김없는 용서, 견줄 데 없는 선의(善意), 풍부한 사랑으로, 나가서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고, 진리 속에서 용감하고 팔팔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장비를 갖추었다. 예수는 그의 종교가 결코 소극적이 아니라고 이미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제자들은 봉사를 베푸는 데, 사랑을 드러내는 데, 언제나 활발하고 적극성이 있어야 했다. 이 신자들은 이제 더 야웨를 “만군의 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 영원한 신을 “하나님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여겼다. 하나님이 또한 누구에게도 영적 아버지라는 진리를 충분히 깨닫는 데 어느 정도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거기까지 진보했다.
2001 CM 194:3.11 오순절은 영적 천부재능을 부여받음으로, 주님의 종교가 물리적인 힘에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영원히 해방시키려고 고안됐으며;이런 새 종교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이제 영적 무기를 갖추게 됐다. 그들은, 끊임없는 용서와 비길 데 없는 선한 뜻 그리고 풍부한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나아가게 됐다. 선으로 악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고, 진리에 대한 용감하고 생생한 신앙으로 두려움을 파괴시킬 준비가 됐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종교가 결코 부정적이지 않음을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며;제자들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과 자비를 베푸는 사역을 하는 데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이 신자들은 야훼를 더 이상 “만군의 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영원한 신격을, “하나님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간주하게 됐다. 하나님이 각 개인의 영적 아버지가 되시기도 한다는 진리를 충분히 파악하기에는 어느 정도 실패했으나, 그들은 적어도 그런 진보는 이뤘다.
2007 URKA 194:3.11 오순절은, 그것의 영적 자질(자질)로, 주(主)의 종교를 모든 물리적인 기세에 의존으로부터 언제까지나 풀어내도록 예정되었다; 이 새로운 종교의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들을 구비하였다. 그들은 끊임없는 용서, 비할 바 없는 선한 뜻, 그리고 풍부한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며 진리에 대한 용감하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두려움을 파괴시킬 준비를 갖추었다. 예수는 자신의 종교가 결코 피동적이 아님을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현시활동과 자비의 사명활동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이 신자들은 야훼를 더 이상 “무리들의 주님”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영원한 신(神)을 “하느님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이 또한 모든 개별존재의 영적 아버지라는 진리를 충분하게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실패하였지만, 적어도 거기까지는 진보를 이루었다.
2025 194:3.11 오순절은, 그날 영적으로 부여된 것과 함께, 언제까지나 주의 종교를 물리적 세력에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해방하려고 고안되었다[22]. 이 새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를 갖추었다. 그들은 어김없는 용서, 견줄 데 없는 선의(善意), 풍부한 사랑을 가지고, 나가서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
[23][24].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고, 진실 속에서 용감하고 팔팔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장비를 갖추었다. 예수는 그의 종교가 결코 소극적이 아니라고 이미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25]. 제자들은 봉사를 베푸는 데, 사랑을 드러내는 데, 언제나 활발하고 적극성이 있어야 했다
[26]. 이 신자들은 이제 더 야웨를 “만군의 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 영원한 신을 “하나님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여겼다. 하나님이 또한 누구에게도 영적 아버지라는 진실을 충분히 깨닫는 데 어느 정도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적어도 거기까지 진보했다.
1955 194:3.12 Pentecost endowed mortal man with the power to forgive personal injuries, to keep sweet in the midst of the gravest injustice, to remain unmoved in the face of appalling danger, and to challenge the evils of hate and anger by the fearless acts of love and forbearance. Urantia has passed through the ravages of great and destructive wars in its history. All participants in these terrible struggles met with defeat. There was but one victor; there was only one who came out of these embittered struggles with an enhanced reputation—that was Jesus of Nazareth and his gospel of overcoming evil with good. The secret of a better civilization is bound up in the Master’s teachings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 good will of love and mutual trust.
2000 194:3.12 개인적으로 상처받은 것을 용서하고, 가장 지독한 불의(不義) 한가운데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끔찍한 위험이 앞에 닥쳐도 차분히 있으며, 두려움 없이 사랑과 인내의 행위로 미움과 진노의 악에 도전하는 힘을 오순절은 필사 인간에게 주었다. 유란시아는 그 역사 속에서 파괴적인 여러 대전쟁의 상처를 겪었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에 참여한 모든 편이 패배했다. 승자는 오직 하나 있었다. 이 모진 투쟁에서 평판이 높아져 솟아난 유일한 승자가 있었으니―곧 나사렛 예수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의 복음이었다. 더 좋은 문명을 세우는 비결은 인간이 형제라는 주의 가르침, 사랑하고 서로 신뢰하는 선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2001 CM 194:3.12 오순절은, 개인의 무례함을 용서하는 능력, 가장 심각하게 불공평한 상황에서 상냥할 수 있는 능력, 무시무시한 위험에 직면해서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랑과 관용으로 두려움 없이 행동하여 미움과 분노라는 악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필사적 사람에게 부여했다. 유란시아는 자체 역사에서 엄청난 파괴적 전쟁들로 인한 참혹한 피해를 겪어왔다. 이런 끔찍한 투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은 좌절을 체험했다. 승리자는 하나였으며;이런 비참한 투쟁들에서, 드높아진 명성과 함께 떠오른 승리자는 오직 하나--곧 나사렛 예수 그리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그의 복음--밖에 없었다. 더 나은 문명의 비결은, 사람의 형제관계에 대한 주님의 교훈, 즉 사랑의 호의와 상호적 신용에 밀접하게 관련된다.
2007 URKA 194:3.12 오순절은 필사 사람에게 개인적 상처를 받아들여 용서하는 힘과, 가장 심각한 불공정의 상황에서도 상냥할 수 있는 힘과, 무시무시한 위험에 직면하여서도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랑과 인내의 두려움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미움과 분노의 악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자질로서 부여하였다. 유란시아는 그 역사 속에서 엄청난 파괴적인 전쟁들에 의한 참혹한 피해들을 겪어 왔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 속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좌절을 체험하였다. 승리자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참한 투쟁들로부터, 드높아진 명성과 함께 떠오른 유일한 사람은─나사렛 예수와,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그의 복음뿐이었다. 보다 나은 문명에 대한 비결은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주(主)의 가르침들, 상호적인 신뢰와 사랑의 선한 뜻 속에 깊이 묻혀 있다.
2025 194:3.12 개인적으로 상처받은 것을 용서하고, 가장 지독한 불의(不義) 한가운데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끔찍한 위험이 앞에 닥쳐도 차분히 있으며, 두려움 없이 사랑과 인내의 행위로 미움과 진노의 악에 도전하는 힘을 오순절은 필사 인간에게 주었다. 유란시아는 그 역사 속에서 파괴적인 여러 대전쟁의 상처를 겪었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에 참여한 모든 편이 패배했다. 승자는 오직 하나 있었다[27]. 이 모진 투쟁에서 평판이 높아져 솟아난 유일한 승자가 있었으니 ― 곧 나사렛 예수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의 복음이었다. 더 좋은 문명을 세우는 비결은 인간이 형제라는 주의 가르침, 사랑하고 서로 신뢰하는 선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1955 194:3.13 Up to Pentecost, religion had revealed only man seeking for God; since Pentecost, man is still searching for God, but there shines out over the world the spectacle of God also seeking for man and sending his spirit to dwell within him when he has found him.
2000 194:3.13 오순절이 닥칠 때까지, 종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을 드러냈을 뿐이다. 오순절 이후에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이 또한 사람을 찾고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내고 나서 그 사람 안에서 거하라고 자신의 영을 보내는 광경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2001 CM 194:3.13 오순절이 있기 전에는, 종교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만 드러내 왔었다면;오순절 이후로는,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을 찾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발견하신 후에는 그에게 내주하려고 자신의 영을 보내시는 광경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2007 URKA 194:3.13 오순절이 있기까지는, 하느님을 추구하는 사람만을 종교가 계시해 왔었으나; 오순절 이후로는, 사람이 여전히 하느님을 찾기는 하지만, 하느님께서도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발견한 후에는 그의 안에 내주 하도록 그의 영을 보내신다는 장관(壯觀)이 세상을 비친다.
2025 194:3.13 오순절이 닥칠 때까지, 종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을 드러냈을 뿐이다. 오순절 이후에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하나님이 또한 사람을 찾고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내고 나서 그 사람 안에서 거하라고 자신의 영을 보내는 광경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1955 194:3.14 Before the teachings of Jesus which culminated in Pentecost, women had little or no spiritual standing in the tenets of the older religions. After Pentecost, in 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 woman stood before God on an equality with man.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who received this special visitation of the spirit were many of the women disciples, and they shared these blessings equally with the men believers. No longer can man presume to monopolize the ministry of religious service. The Pharisee might go on thanking God that he was “not born a woman, a leper, or a gentile,” but among the followers of Jesus woman has been forever set free from all religious discriminations based on sex. Pentecost obliterated all religious discrimination founded on racial distinction, cultural differences, social caste, or sex prejudice. No wonder these believers in the new religion would cry out,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2000 194:3.14 오순절에 절정에 이른 예수의 가르침이 있기 전에, 더 오래 된 여러 종교의 교리에는 여자에게 거의 또는 아무런 영적 지위가 없었다. 오순절 이후에, 하늘나라의 형제 단체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섰다. 이렇게 영의 특별한 방문을 받은 120명 가운데 여인 제자가 많이 있었고, 그들은 이 축복을 남자 신도와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예배 의식을 주관하는 성직을 이제 더 남자가 감히 독점할 수 없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문둥병자나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릴지 모르지만,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여자는 성에 근거를 둔 온갖 종교적 차별에서 언제까지나 해방되었다. 오순절은 종족의 특징, 문화의 차이, 사회 계급, 또는 성(性) 편견에 근거를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다. 새 종교를 믿는 이 신자들이 “주의 영이 있는 곳에 해방이 있다”하고 늘 외쳤던 것이 당연하다.
2001 CM 194:3.14 오순절에 최고조에 달했던 예수의 교훈이 있기 전에는, 여자들은 전통적 종교의 테두리 속에서 영적 지위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순절 이후로, 여자는 천국의 형제관계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됐다. 그 영의 이런 특별한 방문을 받은 120명 중에는 여제자가 다수 있었고, 그들은 이 복을 남자 신도와 동등하게 누렸다. 종교 예배를 위한 성직자의 자리를, 더 이상 남자만 독점할 수 없게 됐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나병 환자 또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겠으나, 예수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서, 여자는 모든 종교적 성{性} 차별에서 영원히 해방됐다. 오순절은, 종족의 구별이나 문화적 차이나 사회 신분계층 또는 성적{性的} 편견에 근간을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다. 새 종교를 믿는 이 사람들이, “주의 영이 임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외쳤던 것은 당연하다.
2007 URKA 194:3.14 오순절에 최고조에 달하였던 예수의 가르침이 있기 이전에는, 여인들은 오래된 종교들의 교의(敎義)에서는 영적 지위가 조금 있거나 또는 없었다. 오순절 이후로, 여자는 왕국의 형제신분 속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다. 영의 이 특별한 방문을 받아들인 120명중에는 여성 제자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들은 이 축복을 남성 신자들과 동등하게 누렸던 것이다. 종교적인 예배봉사의 사명활동을 더 이상 남자들만이 독점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문둥병 환자 또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였겠지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서 여인들은 성별에 따른 모든 종교적인 차별에서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되었다. 오순절은 인종의 구별, 문화적인 차이들, 사회적인 특권계급, 또는 성별에 따른 편견에 근간을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다. 이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주(主)의 영이 임하는 곳에 해방이 있다.”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25 194:3.14 오순절에 절정에 이른 예수의 가르침이 있기 전에, 더 오래 된 여러 종교의 교리에는 여자에게 거의 또는 아무런 영적 지위가 없었다. 오순절 이후에, 하늘나라의 형제 단체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섰다. 이렇게 영의 특별한 방문을 받은 120명 가운데 여인 제자가 많이 있었고, 그들은 이 축복을 남자 신도와 똑같이 나눠 가졌다. 예배 의식을 주관하는 성직을 이제 더 남자가 감히 독점할 수 없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문둥병자나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릴지 모르지만,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여자는 성에 근거를 둔 온갖 종교적 차별에서 언제까지나 해방되었다. 오순절은 종족의 특징, 문화의 차이, 사회 계급, 또는 성(性) 편견에 근거를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 버렸다. 새 종교를 믿는 이 신자들이 “주의 영이 있는 곳에 해방이 있다”하고 늘 외쳤던 것이 당연하다[28].
1955 194:3.15 Both the mother and brother of Jesus were present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and as members of this common group of disciples, they also received the outpoured spirit. They received no more of the good gift than did their fellows. No special gift was bestowed upon the members of Jesus’ earthly family. Pentecost marked the end of special priesthoods and all belief in sacred families.
2000 194:3.15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가 120명의 신자들 사이에 있었고, 이 보통 제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쏟아부은 영을 받았다. 이들은 좋은 선물을 동료들보다 더 많이 받지 않았다. 아무런 특별한 선물이 땅에서 예수의 집안 사람들에게 내려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 계급과 신성한 가족에 대한 온갖 관념의 종말을 고했다.
2001 CM 194:3.15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신자 120명 가운데 있었고, 그들도 쏟아 부어진 영을 이런 일반 제자들 가운데 일원으로서 받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사{恩賜}를 받지 않았다. 육신적으로 예수의 가족의 일원이라 해서 특별한 다른 은사가 주어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계급과 신성시되는 혈통에 대한 모든 믿음을 종식{終熄}시켰다.
2007 URKA 194:3.15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120명의 신자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도 이러한 일반 제자들의 일원으로서 쏟아 부어진 영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했던 것보다 좋은 선물을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의 땅에서의 가족이라고 해서 특별한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신분과 신성한 가문에 대한 모든 믿음을 종식시켰다.
2025 194:3.15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가 120명의 신자들 사이에 있었고, 이 보통 제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또한 쏟아 부은 영을 받았다. 이들은 좋은 선물을 동료들보다 더 많이 받지 않았다. 아무런 특별한 선물이 땅에서 예수의 집안 사람들에게 내려지지 않았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 계급과 신성한 가족에 대한 온갖 관념의 종말을 고했다.
1955 194:3.16 Before Pentecost the apostles had given up much for Jesus. They had sacrificed their homes, families, friends, worldly goods, and positions. At Pentecost they gave themselves to God, and the Father and the Son responded by giving themselves to man—sending their spirits to live within men. This experience of losing self and finding the spirit was not one of emotion; it was an act of intelligent self-surrender and unreserved consecration.
2000 194:3.16 오순절 이전에, 사도들은 예수를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렸다. 집과 가족과 친구, 속세의 물건과 지위를 바쳤다.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을 사람에게 줌으로―사람 안에서 살라고 그들의 영을 보내어―응답했다. 자아(自我)를 버리고 영을 얻는 이 체험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었다. 총명하게 자아를 포기하고, 아낌없이 거룩하게 바치는 행동이었다.
2001 CM 194:3.16 사도들은 오순절이 있기 전에 예수를 위하여 많은 것을 포기했다. 가정과 가족과 친구 그리고 세상의 재물과 지위를 희생했다. 그들은 오순절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을 사람에게 주심으로써--곧 사람 속에 내주할 수 있도록 그분들의 영을 보내심으로써-- 응답하셨다. 자아를 버리고 그 영을 받는 이 체험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었으며;지성적 자아-복종과 스스럼없는 헌신 행위였다.
2007 URKA 194:3.16 오순절이 있기 전에 사도들은 예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다. 그들은 그들의 가정, 가족들, 친구들, 세상의 재물들과 지위를 희생하였다. 오순절에 그들은 자신을 하느님께 드렸으며,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을 사람에게 주심─사람들 속에 내주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을 보내심─으로써 그에 응답하였다. 자아를 버리고 영을 발견하는 이 체험은 하나의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능적인 자아-복종과 무조건적인 헌신의 행동이었다.
2025 194:3.16 오순절 이전에, 사도들은 예수를 위하여 많은 것을 버렸다. 집과 가족과 친구, 속세의 물건과 지위를 바쳤다.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을 사람에게 줌으로 ― 사람 안에서 살라고 그들의 영을 보내어 ― 응답했다. 자아(自我)를 버리고 영을 얻는 이 체험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었다. 총명하게 자아를 포기하고, 아낌없이 거룩하게 바치는 행동이었다.
1955 194:3.17 Pentecost was the call to spiritual unity among gospel believers. When the spirit descended on the disciples at Jerusalem, the same thing happened in Philadelphia, Alexandria, and at all other places where true believers dwelt. It was literally true that “there was but one heart and soul among the multitude of the believers.” The religion of Jesus is the most powerful unifying influence the world has ever known.
2000 194:3.17 오순절은 복음을 믿는 자들 사이에 영적 단결의 부름이었다. 그 영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내려왔을 때,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와 알렉산드리아에, 참 신자들이 거하는 모든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신자 무리 가운데 오로지 한 마음과 혼이 있었다”는 것이 글자 그대로 참말이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이 일찍이 본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일하는 영향력이다.
2001 CM 194:3.17 오순절이, 복음을 믿는 자들 가운데 영적 통일을 가져왔다. 그 영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임했을 때,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참된 신자들이 거주하는 모든 다른 장소에서도 일어났다. “신자들 무리 가운데는 오직 하나의 마음과 혼만 있었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 맞는 말이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에 알려진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합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2007 URKA 194:3.17 오순절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영적 합일이 이루어지는 부름이었다. 영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때,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참된 신자들이 거주하는 모든 다른 장소들에서도 일어났다. “믿는 자들의 무리 중에는 오직 한 마음과 혼이 있었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히 통합시키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1955 194:3.18 Pentecost was designed to lessen the self-assertiveness of individuals, groups, nations, and races. It is this spirit of self-assertiveness which so increases in tension that it periodically breaks loose in destructive wars. Mankind can be unified only by the spiritual approach, and the Spirit of Truth is a world influence which is universal.
2000 194:3.18 오순절은 개인ㆍ집단ㆍ나라ㆍ종족들의 자기 주장을 줄이려고 예정된 것이다. 긴장이 너무 고조되어 이따금 파괴하는 전쟁으로 터져나오는 것은 이 자기 주장의 정신이다. 인류는 오직 영적 접근으로 통일될 수 있고, 진리의 영은 세계에 보편적 영향력이다.
2001 CM 194:3.18 오순절은, 각 개인과 집단과 민족 및 종족의 자기-독단을 줄여주도록 고안됐다. 너무 긴장이 고조되어 이따금 파괴적인 전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자기-독단이라는 기질이다. 인류는 영적 접근을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으며, 진리의 영은 세계에 보편적인 영향력이다.
2007 URKA 194:3.18 오순절은 개별존재들과 집단들과 국가들 그리고 인종들의 자아-주장을 줄여주도록 예정되었다. 긴장 속에서 그렇게 증가되어 주기적으로 파괴적인 전쟁들로 파열되어 느슨하게 되는 것은 이 자아-주장의 영이다. 인류는 영적 접근을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으며, 진리의 영은 우주적인 세상의 영향력이다.
2025 194:3.18 오순절은 개인ㆍ집단ㆍ나라ㆍ종족들의 자기 주장을 줄이려고 예정된 것이다. 긴장이 너무 고조되어 이따금 파괴하는 전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이 자기 주장의 정신이다. 인류는 오직 영적 접근으로 통일될 수 있고, 진실의 영은 세계에 보편적 영향력이다.
1955 194:3.19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purifies the human heart and leads the recipient to formulate a life purpose single to the will of God and the welfare of men. The material spirit of selfishness has been swallowed up in this new spiritual bestowal of selflessness. Pentecost, then and now, signifies that the Jesus of history has become the divine Son of living experience. The joy of this outpoured spirit, when it is consciously experienced in human life, is a tonic for health, a stimulus for mind, and an unfailing energy for the soul.
2000 194:3.19 진리의 영이 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받는 자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복지에 마음을 다하는, 일생의 목적을 표현하도록 인도한다. 이기심(利己心)이라는 물질적 정신은 영적으로 새로이 내려준 이 사심없는 정신에 먹혀 사라졌다. 그때에도 지금도, 오순절은 역사 속의 예수가 실제로 체험하는 신의 아들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쏟아진 이 영을 받는 기쁨을 인간 생활에서 의식하며 맛보았을 때, 이는 건강에 좋은 강장제요, 지성에 자극이요, 혼에 한없는 에너지이다.
2001 CM 194:3.19 진리의 영의 도래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그 영을 받은 사람을 인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번영을 목적으로 삼는 삶을 살게 한다. 이기심이라는 물질적 기질은, 사심 없는 이런 새 영적 증여에 흡수됐다. 오순절은,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적인 예수께서 생생한 체험을 겪은 신의 아들이 됐음을 나타낸다. 쏟아 부어진 이 영이 주는 기쁨은, 인간의 삶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될 때, 건강을 위한 강장제{强壯劑}, 정신을 향한 자극, 그리고 혼을 위한 끊임없는 에너지가 된다.
2007 URKA 194:3.19 진리의 영의 도래는 인간의 가슴을 정화시키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인도하여 하느님의 뜻과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단 하나의 어떤 일생의 목적을 형성하도록 만든다. 자아본위의 물질적 영은 자아없음의 이 새로운 영적 증여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오순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역사 속에서의 예수가 살아있는 체험의 신성한 아들이 되셨음을 가리킨다. 이 넘쳐나는 영의 기쁨은, 그것이 인간 일생 안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될 때, 건강을 위한 강장제(强壯劑), 마음에 대한 자극, 그리고 혼을 위한 부단한 힘이 된다.
1955 194:3.20 Prayer did not bring the spirit on the day of Pentecost, but it did have much to do with determining the capacity of receptivity which characterized the individual believers. Prayer does not move the divine heart to liberality of bestowal, but it does so often dig out larger and deeper channels wherein the divine bestowals may flow to the hearts and souls of those who thus remember to maintain unbroken communion with their Maker through sincere prayer and true worship.
2000 194:3.20 기도가 오순절 날에 영을 데려오지 않았지만, 기도는 각 신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영을 받는 능력을 결정하는 데 많이 상관되었다. 기도는 아낌없이 영을 내리도록 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지만, 아주 흔히 더 크고 더 깊은 길을 파며, 그래서 그 길로, 성실한 기도와 참된 예배를 통해서, 잊지 않고 창조주와 끊임없는 교통을 유지하는 사람의 가슴과 혼으로, 신이 내려주시는 것이 흘러갈 수도 있다.
2001 CM 194:3.20 기도했기 때문에 그 영이 오순절 날에 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기도는 개별 신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수용 역량을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기도는, 아낌없이 수여하도록 신의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않더라도, 아주 흔히 더 크고 더 깊은 경로를 열어주며, 그리하여 그 경로로, 진지한 기도와 참된 경배를 통해서, 조물주와의 중단 없는 교통을 유지하기를 잊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혼 속으로, 신이 증여하는 것들이 흘러갈 수도 있다.
2007 URKA 194:3.20 기도로 영이 오순절 날에 임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개별적인 신자들을 특징짓는 접수성의 수용능력을 결정하는 데에 많은 일을 하였다. 기도가 증여의 풍성함이 되도록 신성한 가슴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진지한 기도와 참된 경배를 통하여 자신들의 조물주와 중단 없는 교제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과 혼 속에, 그 신성한 증여들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보다 확대되고 깊어진 통로를 열어주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다.
2025 194:3.20 기도가 오순절 날에 영을 데려오지 않았지만, 기도는 각 신자의 특징을 나타내는, 영을 받는 능력을 결정하는 데 많이 상관되었다. 기도는 아낌없이 영을 내리도록 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지만, 아주 흔히 더 크고 더 깊은 길을 파며, 그래서 그 길로, 성실한 기도와 참된 예배를 통해서, 잊지 않고 창조주와 끊임없는 교통을 유지하는 사람의 가슴과 혼으로, 신이 내려주시는 것이 흘러갈 수도 있다.
4. BEGINNINGS OF THE CHRISTIAN CHURCH
4. 기독교 교회의 시작
4. 그리스도교 교회의 시작
4. 그리스도인 교회의 시작
4. 기독교회의 시작
1955 194:4.1 When Jesus was so suddenly seized by his enemies and so quickly crucified between two thieves, his apostles and disciples were completely demoralized. The thought of the Master, arrested, bound, scourged, and crucified, was too much for even the apostles. They forgot his teachings and his warnings. He might, indeed, have been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but he could hardly be the Messiah they had hoped would restore the kingdom of Israel.
2000 194:4.1 예수가 그렇게 갑자기 적들에게 붙잡히고, 그렇게 빨리 두 도둑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사도와 제자들은 완전히 사기(士氣)가 꺾였다. 주가 체포되고 묶이고 채찍 맞고 십자가에 달렸다는 생각은 사도들에게도 너무 지나쳤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과 경고를 잊어버렸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행위와 말씀이 힘찬 선지자”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희망했던 대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메시아는 도저히 될 수 없었다.
2001 CM 194:4.1 예수께서 적에게 갑자기 체포되고, 두 강도 사이에서 그토록 신속하게 십자가에 처형됐을 때, 사도와 제자들은 철저히 기가 꺾였었다. 체포되어 묶이고 채찍에맞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에 대한 기억은, 제자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과 경고를 잊고 있었다. 정말로 그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 말씀과 행위에서 대단한 선지자”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리라고 희망하는 메시야는 될 수 없었다.
2007 URKA 194:4.1 예수가 적에게 갑자기 체포되시고 두 강도들 사이에서 그토록 신속하게 십자가형에 처해지셨을 때,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완벽하게 사기가 꺾였었다. 체포되시고, 묶이시고, 채찍에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主)에 대한 기억이 제자들에게는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들과 경고들을 잊었다. 정말로 그는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 말씀과 행위에 있어서 힘 있는 선지자일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리라고 희망하는 그 메시아가 될 수는 없었다.
1955 194:4.2 Then comes the resurrection, with its deliverance from despair and the return of their faith in the Master’s divinity. Again and again they see him and talk with him, and he takes them out on Olivet, where he bids them farewell and tells them he is going back to the Father. He has told them to tarry in Jerusalem until they are endowed with power—until the Spirit of Truth shall come. And on the day of Pentecost this new teacher comes, and they go out at once to preach their gospel with new power. They are the bold and courageous followers of a living Lord, not a dead and defeated leader. The Master lives in the hearts of these evangelists; God is not a doctrine in their minds; he has become a living presence in their souls.
2000 194:4.2 다음에 부활과 함께 절망에서 벗어나고, 그들이 주의 신성을 믿는 신앙이 회복된다. 거듭해서 주를 만나고 주와 함께 이야기하며, 그는 그들을 올리브산으로 데리고 나가서, 거기서 작별(作別)을 알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일러준다. 그들이 권능을 부여받을 때까지―진리의 영이 올 때까지―예루살렘에서 머물라고 이른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 선생이 오고, 그들은 당장에 새 힘을 얻어 복음을 전파하러 나간다. 죽어서 패배한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를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사람들이다. 주는 이 전도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머리 속에 있는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혼 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2001 CM 194:4.2 부활이 이뤄지자, 그들은 절망에서 벗어났고, 주님의 신성{神性}에 대한 신앙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여러 번 그를 봤고 그와 함께 대화했으며, 그는 그들을 감람원으로 데리고 나가서, 거기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했다. 그들이 권능을 부여받을 때--곧 진리의 영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 선생이 도래했으며, 그들은 일제히 나가서 새로운 권능으로 자신들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실패한 죽은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를 담대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자들이었다. 주님은 이런 복음 전파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으며;하나님은 그들의 정신 속에 있는 교리가 아니며;그들의 혼 속에 생생하게 현존하시게 됐다.
2007 URKA 194:4.2 그때에, 그것의 절망으로부터 해방과 주(主)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신앙의 회복과 함께 부활이 있었다. 그들은 여러 번 그를 보았고 그와 같이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는 그들을 올리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그곳에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고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였다. 그는 그들이 힘을 자질로서 부여받을 때까지─진리의 영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로운 선생이 도래하였으며, 그들은 즉시 나아가서 새로운 힘으로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들은 죽었으며 패배 당한 영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자들이었다. 주(主)는 이러한 복음 전파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계신다;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교리가 아니다; 그들의 혼 속에서 살아있는 현존이 되었다.
2025 194:4.2 다음에 부활과 함께 절망에서 벗어나고, 그들이 주의 신성을 믿는 신앙이 회복된다. 거듭해서 주를 만나고 주와 함께 이야기하며, 그는 그들을 올리브 산으로 데리고 나가서, 거기서 작별(作別)을 알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일러준다. 그들이 권능을 부여받을 때까지 ― 진실의 영이 올 때까지 ― 예루살렘에서 머물라고 이른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 선생이 오고, 그들은 당장에 새 힘을 얻어 복음을 전파하러 나간다. 죽어서 패배한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를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사람들이다. 주는 이 전도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머리 속에 있는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혼 속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1955 194:4.3 “Day by day they continued steadfastly and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at home. They took their food with gladness and singleness of heart,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spirit, and they spoke the word of God with boldness. And the multitudes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t one of them said that aught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d was his own, and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
2000 194:4.3 “날마다 저희는 굳세게 마음을 합하여 성전에서 계속 모였고 집에서 빵을 나누었더라. 먹을 것을 기쁨으로, 한 마음으로 받았고, 저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사람의 지지를 얻었더라. 저희 모두가 영으로 충만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으며, 믿은 군중은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졌고, 저희 가운데 한 사람도 무엇을 가졌든지 제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함께 썼더라.”
2001 CM 194:4.3 “그들은 한결같이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서 계속 모였고, 집에서 음식을 나눴다. 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나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사람의 총애를 받았다. 저희는 모두 영으로 충만했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믿는 대중은 한 마음이 됐으며;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2007 URKA 194:4.3 “그들은 한결같이 날마다 성전에서 함께 모였으며 집에서 빵을 떼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과 은혜를 나누고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한 가슴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그들의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모두 영으로 충만하였으며 대담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군중들은 한 마음과 혼 이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들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1955 194:4.4 What has happened to these men whom Jesus had ordained to go f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They have a new gospel; they are on fire with a new experience; they are filled with a new spiritual energy. Their message has suddenly shift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risen Christ: “Jesus of Nazareth, a man God approved by mighty works and wonders; him, being delivered up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did crucify and slay. The things which God foreshadowed by the mouth of all the prophets, he thus fulfilled. This Jesus did God raise up.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 Being, by the right hand of God, exalted and having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 of the spirit, he has poured forth this which you see and hear. Repent, that your sins may be blotted out; that the Father may send the Christ, who has been appointed for you, even Jesus, whom the heaven must receive until the times of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2000 194:4.4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하늘나라 복음을 나가서 전도하라고 예수가 세웠던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새 복음을 가졌고, 새 체험으로 불이 붙었으며,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살아나신 주를 선포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 막강한 행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 하나님이 미리 아신 것 같이, 굳게 결의한 법정이 넘겨준 주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죽였도다. 그는 모든 선지자의 입으로 하나님이 미리 알려준 것들을 이처럼 이루셨느니라. 하나님이 이 예수를 살렸고, 하나님은 그를 주, 그리스도로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바른 손으로 높임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영의 약속을 받았으므로, 그는 너희가 보고 듣는 영을 퍼부었도다. 너희의 죄가 지워지고, 아버지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그리스도를 보내도록 회개하라. 모든 것이 회복되는 시절까지 하늘은 그 예수를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2001 CM 194:4.4 천국 복음, 즉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사람이 형제관계임을 나가서 전파하도록 예수께서 임명하신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들은 새 복음을 소유했으며;새로운 체험으로 불붙었으며;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경됐다:“기적과 이적을 통해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한 인간 나사렛 예수를;하나님의 명확한 의도와 예지{豫知}에 따라 넘겨진바 된 그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미리 나타내신 것을 그가 이렇게 이루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하나님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올라갔고, 아버지로부터 그 영에 대한 약속을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들은 그 영을 쏟아부어주셨다. 너희의 죄가 깨끗이 지워질 수 있도록;너희에게 약속된 그리스도, 즉 만물이 소생될 때까지 하늘이 받아 둘 수밖에 없는 예수를, 아버지께서 보내시도록 회개하라.”
2007 URKA 194:4.4 예수가 왕국 복음,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을 전파하면서 나아가라고 임명한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가? 그들은 새로운 복음을 가졌다; 그들은 새로운 체험으로 흥분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 그들의 메시지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경되었다: “기적과 이적으로서 사람인 하느님이 증명된. 나사렛 예수; 최종적인 조언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예지로 들어 올려 해방되신 이, 그를, 넘겨받아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살해하였다. 하느님께서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미리 나타내신 것들을 그가 이렇게 성취하였다. 이 예수를 하느님이 소생시키셨다. 하느님은 그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다. 하느님의 오른 손으로 드높여지고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영의 약속을 받게 되었음으로, 그가 너희가 보고 있고 듣고 있는 바로 이것을 쏟아부어주셨다. 회개하라, 그것으로 너희 죄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것으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지명해왔던 분, 곧 그리스도를 보내실 수 있고, 만물의 소생의 시기까지 하늘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분, 예수님 까지도, 보내실 수 있다.”
2025 194:4.4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하늘나라 복음을 나가서 전도하라고 예수가 세웠던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새 복음을 가졌고, 새 체험으로 불이 붙었으며,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다[34].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살아나신 주를 선포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나사렛 예수, 막강한 행적과 이적으로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 하나님이 미리 아신 것 같이, 굳게 결의한 법정이 넘겨준 주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죽였도다. 그는 모든 선지자의 입으로 하나님이 미리 알려준 것들을 이처럼 이루셨느니라. 하나님이 이 예수를 살렸고, 하나님은 그를 주, 그리스도로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바른 손으로 높임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영의 약속을 받았으므로, 그는 너희가 보고 듣는 영을 퍼부었도다. 너희의 죄가 지워지고, 아버지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그리스도를 보내도록 회개하라. 모든 것이 회복되는 시절까지 하늘은 그 예수를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1955 194:4.5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message of Jesus, had been suddenly changed into the gospel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now proclaimed the facts of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and preached the hope of his speedy return to this world to finish the work he began. Thus the message of the early believers had to do with preaching about the facts of his first coming and with teaching the hope of his second coming, an event which they deemed to be very near at hand.
2000 194:4.5 하늘나라 복음, 예수가 가르친 말씀은, 갑자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이제 예수가 살다가 죽고 부활한 사실을 선포했고, 그가 시작한 일을 마치려고 이 세상으로 빨리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전파했다. 그래서 초기 신자들이 전한 소식은 그가 처음에 오셨던 사실에 관하여 전도하는 것,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신다는 희망을 가르치는 것과 상관되었고, 그들은 그의 두 번째 오심이 아주 가까이 다가올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2001 CM 194:4.5 천국 복음 곧 예수의 메시지는, 갑자기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변경됐다. 그들은 이제,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실을 선포했으며, 그가 시작했던 일을 완성하려고 이 세상으로 속히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전파했다. 그리하여 초기 신자들이 전파한 메시지는, 그가 초림{初臨}한 사실을 전파하는 것, 그리고 그가 재림{再臨}하신다는 희망을 가르치는 것과 상관있었고, 그들은 그의 재림이 아주 가까운 시기에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2007 URKA 194:4.5 왕국 복음, 예수의 메시지는 갑자기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그들은 이제 그의 일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사실들을 전파하였으며, 그가 시작했던 일을 완결하기 위하여 그가 이 세상으로 속히 돌아오시리라는 희망을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초기 신자들의 메시지는 그의 초림(初臨)에 대한 사실들을 전파하는 것과 그리고, 그들이 아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사건인, 그의 재림(再臨)에 대한 희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2025 194:4.5 하늘나라 복음, 예수가 가르친 말씀은, 갑자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이제 예수가 살다가 죽고 부활한 사실을 선포했고, 그가 시작한 일을 마치려고 이 세상으로 빨리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전파했다. 그래서 초기 신자들이 전한 소식은 그가 처음에 오셨던 사실에 관하여 전도하는 것,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신다는 희망을 가르치는 것과 상관되었고, 그들은 그의 두 번째 오심이 아주 가까이 다가올 사건이라고 생각하였다.
1955 194:4.6 Christ was about to become the creed of the rapidly forming church. Jesus lives; he died for men; he gave the spirit; he is coming again. Jesus filled all their thoughts and determined all their new concepts of God and everything else. They were too much enthused over the new doctrine that “God i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to be concerned with the old message that “God is the loving Father of all men,” even of every single individual. True, a marvelous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and unexampled good will did spring up in these early communities of believers. But it was a fellowship of believers in Jesus, not a fellowship of brothers in the family kingdom of the Father in heaven. Their good will arose from the love born of the concept of Jesus’ bestowal and not from the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ortal man. Nevertheless, they were filled with joy, and they lived such new and unique lives that all men were attracted to their teachings about Jesus. They made the great mistake of using the living and illustrative commentary on the gospel of the kingdom for that gospel, but even that represented the greatest religion mankind had ever known.
2000 194:4.6 그리스도는 바야흐로 급속히 형성되는 교회의 신조가 되려고 했다. 그는 살아 있고, 사람들을 위해 죽었으며, 영을 주었고, 다시 오신다. 예수는 신자들의 모든 생각을 채웠고, 하나님과 그밖에 모든 다른 것에 대하여 모든 새로운 개념을 좌우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 예수의 아버지”라는 새 교리에 너무 열중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아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의 아버지이라”는 예전에 전하던 말씀에 아랑곳할 수 없었다. 형제 사랑과 전례 없는 선의가 신자들의 이 초기 공동체에서 놀랍게 표현된 것은 참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친교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 국가에 속하는 형제들의 친교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의(善意)는 예수가 수여되었다는 개념에서 태어난 사랑에서 솟아났고, 필사 인간이 형제임을 인식한 데서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모든 사람이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이끌리는 그러한 새롭고 독특한 인생을 살았다. 하늘나라 복음 대신에, 그 복음에 관한 활기있고 해설적 논평을 사용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조차도 인류가 일찍이 알게 된 가장 위대한 종교였다.
2001 CM 194:4.6 그리스도는, 신속하게 형성되는 교회의 신조가 되려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살아있으며;사람을 위하여 죽었으며;그 영을 주셨으며;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모든 사고{思考}를 충만하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모든 새 개념을 정립했다. 그들은, “하나님은 주 예수의 아버지시라”는 새 교리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모든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아버지시라”는 원래의 메시지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경이롭게 나타난 형제간 사랑과 전례 없는 선한 뜻이, 이런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솟아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교제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천국{家族天國}에서 나누는 형제간의 교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한 뜻은, 예수의 증여 개념에서 발생된 사랑 때문이었고, 필사적 사람의 형제관계를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했고, 예수에 관한 그들의 교훈에 모든 사람이 매혹되는, 그런 새롭고 독특한 인생을 살았다. 그들은 천국 복음 대신, 그 복음에 관한 활기차고 예증이 되는 해설을 동원하는 큰 실수를 범했으나, 그것조차 인류가 일찍이 알게 된 가장 훌륭한 종교였다.
2007 URKA 194:4.6 그리스도는 급속도로 형성된 교회의 교리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예수는 살아 계시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 그는 영을 주었다; 그는 다시 오고 계신다. 예수는 그들의 모든 생각들을 채웠으며 그리고 그들의 하느님과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새로운 개념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은 주님 예수의 아버지시다.”라는 새로운 교리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모든 개개의 개별존재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라는 오랜 메시지에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형제로서의 사랑에 대한 놀라운 현시활동과 전례 없는 선한 뜻이 이러한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 속에서 솟아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동료관계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적인 왕국 속에서의 형제들의 동료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한 뜻은 예수의 증여 개념에서 발생된 사랑에서 기인된 것이었으며, 필사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하였으며,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모든 사람들이 매혹되는 그러한 새롭고도 독특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왕국 복음에 있는 살아있고 예증이 되는 해설을 바로 그 복음대신에 사용하는 큰 오류를 범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류에게 알려진 것 중 가장 훌륭한 종교를 나타내었다.
2025 194:4.6 그리스도는 바야흐로 급속히 형성되는 교회의 신조가 되려고 했다. 그는 살아 있고, 사람들을 위해 죽었으며, 영을 주었고, 다시 오신다. 예수는 신자들의 모든 생각을 채웠고, 하나님과 그밖에 모든 다른 것에 대하여 모든 새로운 개념을 좌우했다. “하나님이 주 예수의 아버지”라는 새 교리에 그들이 너무 열중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아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의 아버지이라”는 예전에 전하던 말씀에 아랑곳할 수 없었다[35][36]. 형제 사랑과 전례 없는 선의가 신자들의 이 초기 공동체에서 놀랍게 표현된 것은 참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친교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 국가에 속하는 형제들의 친교가 아니었다. 그들의 선의(善意)는 예수가 수여되었다는 개념에서 태어난 사랑에서 솟아났고, 필사 인간이 형제임을 인식한 데서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모든 사람이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이끌리는 그러한 새롭고 독특한 인생을 살았다. 하늘나라 복음 대신에, 그 복음에 관한 활기있고 해설적 논평을 사용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조차도 인류가 일찍이 알게 된 가장 위대한 종교였다.
1955 194:4.7 Unmistakably, a new fellowship was arising in the world. “The multitude who believed continued steadfastly in the apostles’ teaching and fellowship, in the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They called each other brother and sister; they greeted one another with a holy kiss; they ministered to the poor. It was a fellowship of living as well as of worship. They were not communal by decree but by the desire to share their goods with their fellow believers. They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return to complete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during their generation. This spontaneous sharing of earthly possessions was not a direct feature of Jesus’ teaching; it came about because these men and women so sincerely and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he was to return any day to finish his work and to consummate the kingdom. But the final results of this well-meant experiment in thoughtless brotherly love were disastrous and sorrow-breeding. Thousands of earnest believers sold their property and disposed of all their capital goods and other productive assets. With the passing of time, the dwindling resources of Christian “equal-sharing” came to an end—but the world did not. Very soon the believers at Antioch were taking up a collection to keep their fellow believers at Jerusalem from starving.
2000 194:4.7 새로운 친교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믿은 군중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 빵을 같이 먹고 기도하기를 꾸준히 계속하였더라.” 그들은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다.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했고, 가난한 자를 보살폈다. 그것은 예배할 때뿐 아니라 살면서 가지는 친교였다. 그들은 법령 때문에 공동체인 것이 아니라, 재물을 동료 신자와 함께 나누려는 소망 때문에 공동체였다. 자기 세대 안에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마치려고 예수가 돌아올 것이라 자신 있게 기대했다. 땅에 있는 소유물을 자진하여 이렇게 나누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직접 나타난 특징이 아니었다. 할 일을 마치고 하늘나라를 완성하려고 그가 언제라도 돌아오리라고, 이 남녀들이 아주 진지하고 자신 있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생각이 모자라는 이 형제 사랑을 좋은 의도로 이렇게 실험한 마지막 결과는 비참했고 불행을 낳고 있었다. 수천의 성실한 신자들이 재산을 팔고 그들의 자본재(資本財)와 기타 생산적 자산을 처분해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기독교인들의 “똑같이 나누는” 재산은 줄어들어 종말에 이르렀다―그러나 세상은 종말에 이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안티옥의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돈을 걷고 있었다.
2001 CM 194:4.7 틀림없이, 새 공동체가 세상에 나타나고 있었다. “믿는 사람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속에서 음식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계속했다.” 그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으며;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했으며;가난한 자들을 보살폈다. 그것은 경배의 교제였을 뿐만 아니라 살면서 나누는 교제였다. 법률로 인한 공동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재물을 동료 신자들과 나누려는 열망으로 인한 공동체였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의 나라 설립을 완성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다. 세상 소유물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서로 나눈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직접 나타나는 특색이 아니었으며;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완료하고 천국을 완성할 것에 대해, 이 남녀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 그러나 선의에서 시도했던 이런 경솔한 형제간 사랑의 최종 결과는, 비탄을 낳는 참담한 것이었다. 진지한 수천의 신자가 부동산을 팔았고, 자본이 되는 모든 재물과 기타 생산적인 자산 일체를 처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교인의 자산은 줄어들었고, “동등한 분배”는 끝나게 됐다--그러나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굶주리는 예루살렘 동료 신자들을 돕기 위해, 안디옥에서 신자들이 모금하고 있었다.
2007 URKA 194:4.7 틀림없이, 새로운 친교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믿는 사람들의 무리가 성찬례와 기도에서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를 변함없이 계속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호칭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보살폈다. 이것은 삶에서와 같이 경배의 친교이었다. 그들은 법에 의한 공동사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재물을 동료 신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에 의한 공동체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가 아버지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자신 있게 기대하였다. 세상에서의 소유물들을 이렇게 자발적으로 서로 나눈 것은 예수의 가르침의 직접적인 특성이 아니었다; 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완결하고 그리고 그 왕국을 더할 나위 없이 이루실 것에 대하여 이 남자와 여자들은 너무도 진지하고 자신 있게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제간의 경솔한 사랑에서의 선의적인 실험의 최종 결과는 비참하였고 슬픔을-낳게 하였다. 수천 명의 착실한 신자들은 그들의 부동산을 팔았고 그들의 자본이 되는 모든 재물들과 기타 생산적인 자산 일체를 처분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교인 들의 자산은 줄어들었고, “동등한 분배”는 끝이 나게 되었지만─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서,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이, 굶주리는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을 하게 되었다.
2025 194:4.7 새로운 친교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믿은 군중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친교, 빵을 같이 먹고 기도하기를 꾸준히 계속하였더라.” 그들은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다[37][38][39].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했고, 가난한 자를 보살폈다
[40]. 그것은 예배할 때만 아니라 살면서 가지는 친교였다
[41]. 그들은 법령 때문에 공동체인 것이 아니라, 재물을 동료 신자들과 함께 나누려는 소망 때문에 공동체였다. 자기 세대 안에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마치려고 예수가 돌아올 것이라 자신 있게 기대했다. 땅에 있는 소유물을 자진하여 이렇게 나누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직접 나타난 특징이 아니었다. 할 일을 마치고 하늘나라를 완성하려고 그가 언제라도 돌아오리라고, 이 남녀들이 아주 진지하고 자신 있게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42]. 그러나 생각이 모자라는 이 형제 사랑을 좋은 의도로 이렇게 실험한 마지막 결과는 비참했고 불행을 낳고 있었다. 수천의 성실한 신자들이 재산을 팔고 그들의 자본재(資本財)와 기타 생산적 자산을 처분해버렸다
[43]. 시간이 지나자, 기독교인들의 “똑같이 나누는” 재산은 줄어들어 종말에 이르렀다 ― 그러나 세상은 종말에 이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안티오크의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돈을 걷고 있었다.
1955 194:4.8 In these days they celebrated the Lord’s Supper after the manner of its establishment; that is, they assembled for a social meal of good fellowship and partook of the sacrament at the end of the meal.
2000 194:4.8 이 시절에 그들은 주의 만찬(晩餐)을 제정된 방식에 따라서 축하했다. 다시 말해서, 사이 좋게 친교하는 회식을 위하여 모였고 식사가 끝날 때 성찬을 들었다.
2001 CM 194:4.8 이 무렵에 그들은 주의 만찬을 설립된 방식에 따라서 거행했는데;다시 말해서, 너그럽게 친교하는 공동 식사를 위해서 모였고, 식사 후에 성찬식에 참여했다.
2007 URKA 194:4.8 이 무렵, 그들은 주님의 만찬을, 그것이 창설된 방법에 따라서 거행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훌륭한 교제 속에서 음식을 서로 나누는 것이었고 식사 후에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2025 194:4.8 이 시절에 그들은 주의 만찬(晩餐)을 제정된 방식에 따라서 축하했다. 다시 말해서, 사이 좋게 친교하는 회식을 위하여 모였고 식사가 끝날 때 성찬을 들었다.
1955 194:4.9 At first they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it was almost twenty years before they began to baptiz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Baptism was all that was required for admission into the fellowship of believers. They had no organization as yet; it was simply the Jesus brotherhood.
2000 194:4.9 처음에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거의 20년이 지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세례가 신자의 친교에 가입하는 데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아무런 조직이 없었고, 단지 예수를 믿는 형제 단체였다.
2001 CM 194:4.9 처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줬으나;20년 정도 흐른 후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신자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세례였다. 그들은 아직 아무런 조직도 갖추지 못했으며;단순히 예수 형제단체였다.
2007 URKA 194:4.9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이것은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한지 거의 20년 전이었다. 신자들의 교제에 참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세례였다. 그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조직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신분이었다.
1955 194:4.10 This Jesus sect was growing rapidly, and once more the Sadducees took notice of them. The Pharisees were little bothered about the situation, seeing that none of the teachings in any way interfered with the observance of the Jewish laws. But the Sadducees began to put the leaders of the Jesus sect in jail until they were prevailed upon to accept the counsel of one of the leading rabbis, Gamaliel, who advised them: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is of men, it will be overthrown;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lest haply you be found even to be fighting against God.” They decided to follow Gamaliel’s counsel, and there ensued a time of peace and quiet in Jerusalem, during which the new gospel about Jesus spread rapidly.
2000 194:4.10 이 예수 종파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고, 다시 한 번 사두개인들이 그들을 주목했다. 그 가르침 가운데 아무것도 전혀 유대 율법의 준수를 방해하지 않는 것을 알고서, 바리새인들은 그 상황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종파의 지도자들을 감옥에 넣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력한 랍비들 중의 한 사람,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들이라고 설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말리엘은 이들에게 조언하였다, “이 사람들을 멀리하고 버려두라. 이 회의나 이 일이 사람에게서 생겨났다면 뒤집히려니와 하나님에게서 생겨났다면, 너희가 뒤집어엎을 수 없을 것임이라. 아마도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까지 발견될까 두려우니라.”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예루살렘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이 뒤따랐으며, 이 동안에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은 빨리 퍼졌다.
2001 CM 194:4.10 이런 예수 교파는 신속하게 확장됐고, 사두개인이 다시 그들을 주목하게 됐다. 바리새인은, 그 교훈 가운데서 아무 것도 유대인의 율법 준수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런 상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사두개인은, 예수 교파 지도자들을 투옥시키기 시작했고, 지도적 랍비 가운데 하나인 가말리엘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설득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했는데:그는, “이 사람들의 모임과 활동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결국 없어질 것이니,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도록 하라;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생겨났다면, 너희가 없애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 대적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으며, 그 결과로 예루살렘에는 평화와 안정이 이어졌고, 그동안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이 신속히 퍼져나갔다.
2007 URKA 194:4.10 이 예수의 교파는 신속하게 확장되었으며, 사두개인들이 다시 그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의 법의 계율과 가르침들의 어떤 것도 충돌하는 면이 없음을 알았기에 이러한 상황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교파의 영도자들을 투옥시키기 시작하였고, 지도적인 랍비들 중 하나인 가말리엘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설득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조언과 활동이 사람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면 결국 없어지게 될 것이니 이 사람들에게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도록 하라;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면, 너희가 그들을 없애지 못할 것이며, 하느님을 배척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었으며, 그 동안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이 신속하게 퍼졌다.
2025 194:4.10 이 예수 종파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고, 다시 한번 사두개인들이 그들을 주목했다. 그 가르침 가운데 아무것도 전혀 유대 율법의 준수를 방해하지 않는 것을 알고서, 바리새인들은 그 상황을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종파의 지도자들을 감옥에 넣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력한 랍비들 중의 한 사람, 가말리엘의 조언을 받아들이라고 설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45][46]. 가말리엘은 이들에게 조언하였다, “이 사람들을 멀리하고 버려두라
[47]. 이 회의나 이 일이 사람에게서 생겨났다면 뒤집히려니와 하나님에게서 생겨났다면, 너희가 뒤집어엎을 수 없을 것임이라. 아마도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까지 발견될까 두려우니라.”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예루살렘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이 뒤따랐으며, 이 동안에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은 빨리 퍼졌다.
1955 194:4.11 And so all went well in Jerusalem until the time of the coming of the Greeks in large numbers from Alexandria. Two of the pupils of Rodan arrived in Jerusalem and made many converts from among the Hellenists. Among their early converts were Stephen and Barnabas. These able Greeks did not so much have the Jewish viewpoint, and they did not so well conform to the Jewish mode of worship and other ceremonial practices. And it was the doings of these Greek believers that terminated the peaceful relations between the Jesus brotherhood and the Pharisees and Sadducees. Stephen and his Greek associate began to preach more as Jesus taught, and this brought them into immediate conflict with the Jewish rulers. In one of Stephen’s public sermons, when he reached the objectionable part of the discourse, they dispensed with all formalities of trial and proceeded to stone him to death on the spot.
2000 194:4.11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만사가 순조로웠다. 로단의 생도 두 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헬라파 사이에서 사람을 많이 개종(改宗)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다. 이 유능한 그리스인들은 그다지 유대인의 관점을 가지지 않았고, 유대인 형태의 예배와 기타 예식 절차를 잘 따르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 신자들의 행위 때문에, 예수 단체와 바리새인 및 사두개인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종결되었다. 스테반과 그리스인 동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전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 권력자들과 직접 충돌하게 만들었다. 스테반의 한 대중 설교에서, 그가 강연의 못마땅한 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모든 재판 형식을 걷어치우고, 나서서 그 자리에서 그를 돌로 쳐 죽였다.
2001 CM 194:4.11 그리하여 큰 무리의 그리스인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로단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헬라파 유대인 가운데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시킨 사람 중에는 스데반과 바나바도 있었다. 유능한 이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의 관점과 많이 달랐으며, 유대인의 경배와 기타 예식 풍습을 잘 시행하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들의 행동으로 인해, 예수 형제단체와 바리새인 및 사두개인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깨지게 됐다. 스데반과 그의 그리스인 동역자는 예수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전도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들은 곧 유대인 관리들과 충돌하게 됐다. 스데반이 공개적으로 전한 어떤 설교에서, 그가 강론 도중에 그들이 못마땅하게 여길만한 말을 하자, 모든 공식 심문 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서 죽여버렸다.
2007 URKA 194:4.11 그리하여 많은 숫자의 그리스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로단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그리스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시킨 사람들 중에는 스테반과 바나바도 있었다. 유능한 이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의 관점과 많이 달랐으며, 유대식의 경배와 기타 제의적 실천 관행들을 잘 따르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예수의 형제신분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사두개인들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스테반과 그의 그리스인 연관-동료들은 더욱 더 예수가 가르쳤던 대로 전파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은 곧 유대인 통치자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스테반은 대중 설교 가운데 하나에서. 그의 강연이 도중에 반감을 일으키는 부분에 이르자. 그들은 모든 공식적인 재판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에서 그를 돌팔매질로 죽게 하였다.
2025 194:4.11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만사가 순조로웠다. 로단의 생도 두 명이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헬라파 사이에서 사람을 많이 개종(改宗)시켰다. 그들이 초기에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다. 이 유능한 그리스인들은 그다지 유대인의 관점을 가지지 않았고, 유대인 형태의 예배와 기타 예식 절차를 잘 따르지 않았다. 이 그리스인 신자들의 행위 때문에, 예수 단체와 바리새인 및 사두개인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종결되었다. 스테반과 그리스인 동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더 가깝게 전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 권력자들과 직접 충돌하게 만들었다. 스테반의 한 대중 설교에서, 그가 강연의 못마땅한 부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모든 재판 형식을 걷어치우고, 나서서 그 자리에서 그를 돌로 쳐 죽였다[48].
1955 194:4.12 Stephen, the leader of the Greek colony of Jesus’ believers in Jerusalem, thus became the first martyr to the new faith and the specific cause for the formal organiz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 This new crisis was met by the recognition that believers could not longer go on as a sect within the Jewish faith. They all agreed that they must separate themselves from unbelievers; and within one month from the death of Stephen the church at Jerusalem had been organized under the leadership of Peter, and James the brother of Jesus had been installed as its titular head.
2000 194:4.12 스테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서 그리스 거류민의 지도자였고, 이렇게 새 신앙의 첫 순교자요, 초기 기독교회를 정식으로 조직하는 구체적 원인이 되었다. 이 새로운 위기로 인하여 신자들은 이제 더 유대 신앙 안에 있는 한 종파로서 계속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따로 독립해야 한다고 모두 찬성했다. 스테반이 죽은 지 한 달 안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지도 하에서 조직되었고, 예수의 아우 야고보가 그 교회에서 이름으로는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2001 CM 194:4.12 스데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인 거주민의 지도자였으며, 그렇게 해서,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는 일에 새 신앙과 특별한 원인을 제공하는, 첫 순교자가 됐다. 이런 새로운 위기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더 이상 유대인 신앙 속에서 한 교파로서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됐음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모두,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따로 독립해야한다고 동의했으며;스데반이 죽은 후 한 달이 못되어,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지도 아래 교회가 조직됐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명목상 우두머리로 임명됐다.
2007 URKA 194:4.12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인 거류민단의 영도자인 스테반은 새로운 신앙의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공식적인 조직에 특별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위기로 말미암아, 신자들이 더 이상 유대 신앙 속에서 한 교파로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비(非)신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야만 하겠다는 데에 모두 의견이 일치되었다; 스테반이 죽은 후 한 달이 못되어서,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영도자관계 아래, 그리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교회가 조직되었다.
2025 194:4.12 스테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서 그리스 거류민의 지도자였고, 이렇게 새 신앙의 첫 순교자요, 초기 기독교회를 정식으로 조직하는 구체적 원인이 되었다. 이 새로운 위기로 인하여 신자들은 이제 더 유대 신앙 안에 있는 한 종파로서 계속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따로 독립해야 한다고 모두 찬성했다. 스테반이 죽은 지 한 달 안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지도 하에서 조직되었고, 예수의 아우 야고보가 그 교회에서 이름으로는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1955 194:4.13 And then broke out the new and relentless persecutions by the Jews, so that the active teachers of the new religion about Jesus, which subsequently at Antioch was called Christianity, went forth to the ends of the empire proclaiming Jesus. In carrying this message, before the time of Paul the leadership was in Greek hands; and these first missionaries, as also the later ones, followed the path of Alexander’s march of former days, going by way of Gaza and Tyre to Antioch and then over Asia Minor to Macedonia, then on to Rome and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mpire.
2000 194:4.13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의 새롭고 무자비한 박해가 터졌으며, 예수에 관한 이 새 종교를 안티옥에서 나중에 기독교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이 종교를 활발하게 가르치는 선생들은 떠나서 예수를 선포하면서 제국의 끝까지 갔다. 바울의 시절 이전에, 이 소식을 가지고 가는 주도권은 그리스인의 손에 있었다. 이 첫 선교사들은 후일의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알렉산더가 행진한 길을 따라서, 가자와 티레를 거쳐, 안티옥, 다음에 소 아시아를 지나서 마케도니아까지, 그런 뒤에 계속 로마까지, 그리고 제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갔다.
2001 CM 194:4.13 그리고 나서 유대인들이 새롭고 무자비한 박해를 시작했고, 그리하여 예수에 관한 새 종교를 가르치는 적극적인 선생들이 예수를 전파하면서 제국의 변방{邊方}까지 나아갔는데, 이 종교는 나중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교라고 불리게 됐다. 바울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 메시지를 전하는 주도적 역할을 그리스인이 했으며;이 첫 선교사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에 알렉산더가 행진했던 길을 따라갔는데, 가자와 두로로 통하는 길을 따라서 안디옥으로 갔으며, 이어서 소아시아를 지나 마게도니아로 갔고, 그다음에는 로마를 지나서 제국의 끝까지 갔다.
2007 URKA 194:4.13 그러고 나서 유대인들에 의해 새로운 잔인한 박해가 시작되었으므로, 예수에 관한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는 의욕적인 선생들은 예수를 전파하면서 그 제국의 변방(邊方)들을 향하여 퍼져 나갔으며, 그 종교는 후에 안디옥에서 그리스도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 바울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리스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 최초의 선교사들은,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에 알렉산더가 행진하였던 길을 따라서, 가자와 티레로 통하는 길을 따라 안디옥으로 갔으며, 이어서 소아시아를 지나 마케도니아로 갔고, 그 후에는 로마를 지나 그 제국의 변두리 지방들 까지 퍼져 나갔다.
2025 194:4.13 다음에 유대인들의 새롭고 무자비한 박해가 터졌으며, 예수에 관한 이 새 종교를 안티오크에서 나중에 기독교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이 종교를 활발하게 가르치는 선생들은 떠나서 예수를 선포하면서 제국의 끝까지 갔다[49][50]. 바울의 시절 이전에, 이 소식을 가지고 가는 주도권은 그리스인의 손에 있었다. 이 첫 선교사들은 후일의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알렉산더가 행진한 길을 따라서, 가자와 투로를 거쳐, 안티오크, 다음에 소 아시아를 지나서 마케도니아까지, 그런 뒤에 계속 로마까지, 그리고 제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갔다.